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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제는 경제다

김규인 수필가 경기 둔화 우려에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여 3.00%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장의 고뇌를 느낀다.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로 몸살을 앓는 한국 경제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결론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를 더 힘들게 한다. 관망하다가 이제 막 한국 주식을 사려는 해외 투자가들을 돌아서게 했고 가지고 있던 주식마저 팔았다. 떨어지는 주가에 경제부처의 빠른 대처와 비상계엄의 조기 해제로 낙폭을 줄였다. 환율도 다르지 않다. 크게 하락하다가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비상계엄의 조기 해제로 1410원대에 머문다. 하지만 여전히 환율은 높다. 원화 가치의 하락은 수출하는 회사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불안한 물가를 더 부추기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이마저도 계속되는 정치의 불안정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게 어려운 것일까. 선거철만 되면 국민을 받들겠다던 정치인들은 선거만 끝나면 정권을 잡는 것에 혈안이 되어 국민의 생활은 뒷전이다. 정쟁 중에도 국가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임금 인상과 활동에 필요한 예산은 알뜰히 챙긴다. 팽팽할 거라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문제는 경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가 들어서면 경제가 더 나아질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으로 여러 나라가 자국의 경제를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는 데 우리 정치인은 권력을 잡는 데만 관심을 둔다. 권력을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빼앗으려고 한다. 정치와 경제가 국민을 잘살게 하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갈 수는 없을까. 다른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이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뭐라고 해야 알아들을까. 무지막지한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둘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자신들의 배를 두둑이 하고도 뭘 더 바라는 것인지. 정작 주위를 둘러볼 시간은 없는 것인지.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상가는 문이 닫혔고 시장은 손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 사람들이 가득하다. 씀씀이를 줄이느라 내수 경기는 바닥을 치는데 정치는 그저 자신들의 일로 바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서민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살펴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으로 높이 쌓아 올릴 무역장벽으로 나빠질 우리 경제 때문에 국민은 밤잠을 설친다.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는 강대국의 힘자랑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나라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까. 세 평 정도의 공간에 컴퓨터 3대를 놓고 3명의 국회의원이 같은 공간을 쓰며 내놓는 정책이 국민을 더 편하게 하는 북유럽의 나라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정치인이 국민의 삶을 살필 때 경제는 살아난다. 경제가 멈추면 국민의 삶도 정치도 멈춘다. 국민도 정치인도 답은 경제다.

2024-12-09

선의의 순환을 위하여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라는 웹소설이 있다. 소설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가까운 미래에 우주 개척마저 한계에 이르자, 거대 자본을 가진 강대국들이 심해를 개척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심해기지에 도착한 치과의사 박무현은 부임 후 5일 만에 기지가 물에 잠기는 사태에 직면한다. 심해기지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과 거주 인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탈출 보트 등으로 위기의 순간을 맞고, 사람들은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에 총을 난사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설은 박무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가령 박무현은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탈출을 미루고 동물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위를 한다. 선의를 가진 박무현은 곧 죽음을 맞게 되지만 현실로 회귀하여 반복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보통의 회귀물 웹소설과 다르게 박무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박무현의 관심사는 자신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에 있었다. 이런 박무현의 행동을 일부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비판했지만, 박무현은 ‘선의의 순환’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강변한다.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이전부터 수많은 시국선언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많은 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정치집단은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 연장에 급급한 모습이다. 최소한의 양심도 발견하기 어려운 이들의 뻔뻔함은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편으론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을 주장하는 정치집단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현 대통령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번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동조한 사람이다. 국회의 긴급현안 질의에 참석한 이번 사태의 동조자들은 하나 같이 잔뜩 위축된 표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따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닐까. 막상 내가 그 위치에서 상부의 명령을 용기 있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쉽게 비난할 수 있지만, 자기의 양심을 지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대통령 탄핵이 반복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 대통령은 바로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점에서 나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생업이 발목을 잡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선의의 순환이 이루어질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바로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다시 때가 되었다.

2024-12-09

김병해 시인,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의 파수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김병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뜩한 절간’은 튼실한 언어로 축조된 자신의 시 세계를 반딧불이 같은 초롱불빛 등을 우리들에게 내밀고 있다. 문형렬은 “단단하면서도 깊은 서정의 시어를 빚어낸 그는 이번 시집에서는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로 존재의 적적한 모습들을 가만가만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춤맞은 시평이다. 시인은 새로운 단어를 낳는 연금술사다. 시인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빚어 어떻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수 있는가가 시인에게 거는 나의 기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해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잡종의 혼종어들이 깨끗한 언어를 잡아먹는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에서 우리말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외따름히’, ‘별쫑맞은’, ‘바위너설’, ‘휘우듬히’, ‘생떼거리’, ‘북재비’, ‘구부스름’, ‘무젖은’, ‘들큰’, ‘놋갓쟁이’, ‘흔덕이는’, ‘허릿매’와 같은 잘 사용하지 않거나 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곧잘 만들어 내는 기량을 김 시인은 가지고 있다. “좁장한 이랑의 민둥 산비탈 끝녘/숨은 듯 위뜸 봇둑작은 과수밭/껍질에 닫혀 부푸는 과육이 우겨대던/늦가을 이즘 시렁 문턱밖으로/도톰하니 여문 과실 떠나보낸 나무가 편안합니다//들명달명 되풀이들이밀던 바람의 흘레질/물관부 체액으로 테두리 잎맥마다/얼치기 골백번생각만으로 헤아리던/크기와 무게에다 호흡을 쏟은 탄탄한 열정/그 결기 찬찬히 되걷는 저녁 시간입니다//뭉툭 무뎌진 밑동 늦도록 바닥에 끌리면/휘어진 그루, 결별의 그림자는 길어서/가쁜 숨이 잦아들어 심이 될 때까지/수그린 빈 몸으로 저물을 맞서는/참 오래된 사과나무의 시간입니다”(오랜 사과나무의 시간)에서 ‘좁살한’, ‘위뜸’, ‘이즘’, ‘들명달명’, ‘되걷는’, ‘수그린’, ‘저묾’과 같이 새로운 낱말 만들고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를 살포시 끼워넣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다. ‘안부’는 아예 전편이 경상도 방언이다. “하모 글치/내사 여서 잘 있데이//카마 니는 거 머 하미/어데 우째 지내노//암마 빌일 읎는 기제/공연시리 궁겁네//꽃 지기 전/함 댕기 가그레이”. 경상도 출신 가까운 친구와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로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걸걸한 목소리이다. 이 방언 시의 텍스트를 읽으면 소리가 일어난다. 마치 곁에 경상도 사람들의 일상이 소리와 풍경화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은 누구의 목소리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말이다. 이 대화 시의 주인공은 오랜 친구일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꽃 지기 전일까? 꽃 지기 전이라면 언제일까? 그것은 꽃이 한순간 지고 만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지상의 이 순간이 다하기 전에 서로 한 번 다녀가라고 권하는 절묘함을 표현하고 있다. 꽃이나 나무는 시인의 시적 소재에 매우 중요한 매개인 동시에 시인의 인식과 존재의 옷깃으로 현재화된다. 꽃이 지듯 짧은 시간성은 인간 존재를 빗댄 상징성이다. 김병해 시인은 자연 속 식물에 대한 촉감이 매우 뛰어나다. “살점의 뿌리는 뼈대이고/유년의 뿌리는 기억이다//바다의 뿌리가 강줄기라면/별빛의 뿌리는 어둠이다//세상 모든 뿌리 없는 것들 그러모은/저항의 뿌리는 불길이겠지만//방목한 빈 바람 소리만/내달리는 폐사지//아무 말 않고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뜨겁게 북받치는 모든 것들의 언어//적멸의 뿌리는/여태 숨죽이던 버젓한 비명이다”(‘모든 것들의 뿌리’)에서 그의 인식과 사유의 뿌리가 도달한 곳은 존재라는 나무의 뿌리이고 그 적멸의 뿌리는 언어이며 시라는 비명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김병해 시인은 낱말 만들기에만 능숙하게 아니라 시어의 현상적 의미에 대한 깊이를 철저하게 가늠하는 세련성을 지녔다. ‘뜨다,는 말의 생애’는 11종의 ‘뜨다’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의미망을 엮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내었다. 시인학교를 빗댄 그의 풍자적인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취한 인구 감소에도 시인은 넘쳐 학급 대폭 증설”, 하하하, 위대한 시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2024-12-09

일본의 서재, 진보초 헌책방 거리

연구를 위해 도쿄에 머물면서, 제가 연구실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은 아무래도 진보초 헌책방 거리입니다. ‘간다고서점연맹’에 가입된 서점만 127개에 이르는 진보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인데요. 이렇게 많은 헌책방이 한 곳에 모이게 된 이유는, 이 곳이 책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동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가 이끄는 함대가 내항한 이후, 막부는 서양학문을 취급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이로 인해 진보초 근처에 1855년 ‘요오가쿠쇼(洋学所)’가 만들어지고, 이것은 이후 ‘요오쇼시라베쇼(洋書調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메이지 정부 출범 이후 도쿄의과대학과 합병하여 도쿄대학이 됩니다. 이후 근방에는 1873년에 도쿄외국어학교가 탄생하고, 뒤이어 메이지대학, 주오대학, 센슈대학, 니혼대학 등의 전신이 되는 학교가 잇달아 개교하였던 겁니다. 학생들의 동네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근처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서점이 밀집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세계 최대 헌책방 거리인 진보초의 탄생 배경입니다. 진보초에서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데요. 특히 가을이면 열리는 ‘간다헌책마츠리’는 올해로 64회를 맞이하며, 일본인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유명한 축제입니다. 올해는 10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렸는데요. 이 때는 수많은 고서점들이 가판대를 설치하여, 꼭꼭 숨겨두었던 희귀본들을 싼값에 일반에 공개하고는 합니다. 축제 기간 동안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어 비장의 책을 찾는 모습은 도쿄의 명물인데요. 저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보물같은 책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올해 제가 건진 최고의 수확은, 1970년대 초에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던 ‘朝鮮文学の会(조선문학의회)’라는 단체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現代朝鮮文学選(현대조선문학선) 1’(創土社, 1973)입니다. 11월 23일부터 24일까지는 이틀에 걸쳐, ‘K-BOOK 페스티벌’이 펼쳐지기도 했는데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1시에 출판그룹빌딩에 도착했을 때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빌딩 주위로 길게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한국문학 번역 관련 시상식도 있었고, 한국의 유명 시인 작가들의 대담 행사도 펼쳐졌습니다. 올해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그 열기가 예년보다 더욱 뜨거웠는데요. 행사장의 한 쪽에는 한강 작가의 책들과 한강의 문학세계를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짚어낸 전시물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날의 주인공은 일본에 번역된 한국문학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46개 출판사가 참가하여, 한국문학 관련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어느새 한국문학도 진보초, 나아가 일본 문화의 한복판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온 스무 명의 작가, 시인들과 함께 ‘한·일 작가 교류회’가 열리는 쇼가쿠칸(小學館) 출판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문학인들과의 교류회가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 저를 흥분시킨 일은 나카가미 겐지의 딸인 나카가미 노리를 만난 것입니다. 나카가미 노리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로 유명한데요. 나카가미 노리는 소설가 나카가미 겐지의 딸이기도 합니다. 마흔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나카가미 겐지는 ‘곶’이나 ‘고목탄’으로 유명하지만, 저에게는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문학적 동지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작가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나카가미 겐지가 죽었을 때, 이제 일본근대문학은 끝났다며 본격적인 문학비평을 그만두기도 했으니까요.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나카가미 겐지 이후의 일본 소설이란 로맨스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에도시대(1603-1868) 이야기로의 퇴행이라고까지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교류회가 끝난 이후에는, 관계자 분들의 안내를 받아 헌책방을 구경했는데요. 지금까지 여러 번 둘러본 헌책방 거리이지만, 이전에는 못 가본 귀한 곳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가게는 1882년에 설립된 ‘오야쇼보오(大屋書房)’였습니다. 현재 창업자의 4대 후손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에도 시대와 메이지기의 일본 책, 오래된 지도, 우키요에 판화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는데요. 강의실에서 말로만 듣던(혹은 하던) 도카이 산시의 ‘가인지기우(佳人之奇遇)’(1885-1897)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学問のすすめ)’(1872-1876)과 같은 책의 초판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50여 년 전의 이 책들을 직접 보니, 책이라는 물성이 내뿜는 아우라(원본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서대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이지만, 현재는 서점의 수도 최전성기에 비해 3분의 2로 줄었고, 심지어는 일본인의 절반 이상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책의 위기는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나 책이 지닌 고유한 힘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책도 활자문화도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기도)을 해봤습니다.

2024-12-09

깨진 유리창 앞에서

산산조각 난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기분을 아는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일 학년 때의 일이다. 한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과격한 말다툼이 이어졌다. 순간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꼼짝없이 저 커다란 주먹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남자애의 주먹이란 정말 단단하고 크구나. 저기에 볼이 닿으면 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뭉개질지도 몰라. 오래된 시멘트벽처럼 후드둑 부스러질 수도 있고. 맞은 후에는 곧장 경찰에게 신고해야겠지. 그러면 저 아이는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 그나저나 나 괜찮은 거야?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플 거야.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남학생의 주먹은 내 얼굴을 피해 창문으로 가 닿았다. 유리창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학생의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수업을 듣던 선배들이 뛰쳐나왔다. 너희 미쳤느냐고, 제 정신이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남학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널브러진 유리 파편, 바닥에 묻은 핏자국과 그것을 수습하려는 사람들.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는 현실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깨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 일은 한동안 나와 친구들의 안줏거리였다. 우리는 그날의 사건이 정말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웃어넘겼다.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날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학과 복도를 오갈 때마다 깨진 상태로 봉합되지 못한 유리창이 보였다. 새로운 유리창으로 고쳐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주먹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폭력이란 아주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팔이 부러졌고 나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그 아이 하나였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너는 입으로 남자애의 팔을 부러뜨렸네. 나는 정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일 듯하고 숨이 막혀 온다. 두꺼운 손이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던 그날의 공포. 폭력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매우 선명하게 일상을 맴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 모여 유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는데, 부모님은 그때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그때 말이지, 얘가 얼마나 유난이었느냐면, 오빠가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던 거야. 그러면 얘 오빠는 얼마나 억울해. 조금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맨날 혼나는 거지. 모두가 동시에 웃는 식탁 위로 나는 들고 있던 유리컵을 깨뜨리는 상상을 했다. 유리컵이 깨지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가족들. 유리컵 하나 깨뜨렸을 뿐인데 왜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요? 그 앞에서 와하하 웃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들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기 마련이다. 뾰족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식사를 재개했다. 식도가 따끔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지난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내 귓가에서 무언가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간 겪어온 폭력의 기억이 몰려왔다. 네가 다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살짝 건드렸다고 울었어… 그와 비슷한 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그 말은 오묘한 형식으로 재생산된다. 한밤의 해프닝으로 일축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래요.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누가 다쳤습니까? 온몸이 따끔하다. 이 고통은, 이 상실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내가 겪어온 폭력의 경험, 선배들에게 무수히 들어왔던 과거의 역사, 그간 읽고 보았던 처절한 기록이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주먹은 날아왔고 등 뒤의 유리창은 깨졌다. 우리는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외친다. 어서 빨리 이것을 복구하라고. 틈 사이로 닥쳐오는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 상흔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쓰라리게 다가오는지 느끼라고. 이 일에 손실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을 본다. 이제 나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 또한 알 것 같다. 겨울이 끝나기엔 멀었다는 실감이 난다.

2024-12-09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것

나는 서울 마포구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인디뮤지션이다. 처음 기타를 등에 짊어지고 홍대 앞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스무 살이었고 이제 곧 서른아홉 살이 되니 거의 스무 해 가까이 그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빈 셈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슨 가게가 나오고 거기는 뭐가 맛있고 하는 정보들을 꿰고 있었고, 어딜 가든 아는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 거리가 다 내 영토 같았고 나는 그곳을 지배하는 왕이라도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거리가 참 많이 변했다. 사랑했던 공연장들, 단골집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낯선 간판들이 내걸렸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메인 거리에는 언제부턴가 가기가 부담스럽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바깥쪽으로, 좀 더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 살아남은 몇몇 익숙한 공간들만이 나의 마지막 남은 피난처가 되었다. 내가 거느리던 그 영토에서는 그때의 나를 닮은 젊은 친구들이 취하고, 싸우고, 소리치고,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파도처럼 내 마음을 덮친 밤 나는 노래 한 곡을 썼다. 지난주에 발매된 새 싱글 ‘퇴위’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제는 그 흥성거리는 거리를, 그리고 그곳을 누비던 한 시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고백을 담았다. “난 이제 물려준다. 정들은 내 영토를. 새로운 인류에게로. 난 이제 떠나간다. 세월의 뒤안길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내가 사랑했던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새로운 공간과 시절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겠다고 노래해보았다. 한 시절이 저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야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장들 중에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참 곤란한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첫 문장만큼은 반드시 그 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절한 시기에 지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떠나간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언제나 그 시기를 놓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 앞 거리를 망령처럼 떠돌았고, 오히려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래된 동네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아름답게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구차하게 추한 모습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시절에 들러붙어있지는 말아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가야할 때는 언제 오는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야 하는 공간도 있다. 학교가 그렇고 정년을 맞았을 경우 회사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남들이 정해준 시기에 떠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떠나야 할 시기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늘 어려운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때로는 더 소중한 가치가 내가 머무는 곳 바깥에 생겼을 때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십대 청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번화가를 떠난다는 선언이 그곳에 다시는 발길을 향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이 이제 내 삶의 중심을 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곳 바깥에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더 이상 내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을 시간이 간혹 생긴다. 그때는 물러나야 할 순간이다. 내가 변했거나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 커졌거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러선다면 그 시기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눈치라고 부른다. 눈치가 보이기 전에 눈치를 채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일 수 있다. 어렵게 거머쥔 것이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겠지만 인정해버리면 속 시원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떠나야 하는 때가 오면 스스로 떠나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단 직원부터 기업대표나 국가 최고의 기관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장성이나, 심지어 국가 의전서열 1위 같은 그 어떠한 자리라고 할지라도…. 신곡 ‘퇴위’가 참 공교로운 때에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에 공교로운 일들에도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024-12-09

연말, 음주운전은 안 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 화나서 한잔, 나쁜 기억을 잊으려고 한잔…. 12월은 피할 수 없는 모임이 많아지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감안할 때 회식 등에서 술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술 마실 자리가 많아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은 연말이면 ‘집중’ 또는 ‘특별’이란 이름을 앞에 붙여 더 자주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운전석에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 규정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20년 개정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하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을 경우 운전자는 매우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상금을 음주운전자가 도로 토해놓아야 하는 것. 이른바 ‘구상권 청구’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의 차량 사고는 보험 혜택도 받기 힘들다. 이렇듯 경제적 손해와 위험성이 큰 음주운전임에도 어째서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는 걸까? 사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외국이 더 강력하다. 튀르키예는 음주운전을 3회 이상 반복한 운전자에겐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고, 핀란드는 1개월치 월급을 국가가 몰수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수억 원이 벌금으로 나간다. 이탈리아 역시 만취 상태 운전자에겐 최대 900만원의 벌금과 징역 1년을 선고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싱가포르는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사람에게 24대의 태형을 명령한다. 비단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음주운전의 악습은 이제 끊어야 할 때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09

이 광기의 바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그가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맹렬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성난 바다는. 미친 바람이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바다는 저도 모르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허기에 사로잡힌 바다였다. 무엇이라도, 통째로, 송두리째 집어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았다. 괴물 같은 바다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미물 같은 생명들은 안쓰럽게 휘둘렸다. 바다는 눈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바다는 오로지 제 사나운 갈퀴를 들어 무엇이라도 찍어버리려 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 갈퀴들이 버티고 선 그를 덮쳐 버리려 했다. 미친 바다 날카로운 거품, 갈퀴 파도가 그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어디를 어떻게 긁혔는지, 빨간 핏물이 버티고 선 그의 두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핏물 아닌 눈물, 피눈물이었다. 그때 성난 포말의 군중들이 사방에서 그를 물어뜯으려 몰려들었다. 하이에나 떼라도 된 것 같은 그들은 미친 문자의 바닷속에서 자기야말로 진짜 갈퀴를 가졌노라, 아우성을 쳤다. 하마 누구한테 뒤질세라, 더 맹렬하게 끓어올라야 하리라, 거품들은 거품처럼 거품답게 부풀어 올랐다. 한없이 부풀어올라 곧 금방이라도 허무하게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친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고독했다. 고립되어 있었다. 처절한 싸움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에 덧없는 거품들, 헛소리들, 휘어진, 찢어진, 너덜너덜한 깃발들, 빛을 잃은 구호, 급조된 발작 버튼, 진실의 표면 위를 핥아대는 혓바닥, 시간에 쫓겨 초를 다투며 초조하게 날뛰는 몸부림들, 가짜 용기들, 가짜 소식들, 오염된 주인들, 가짜들, 어리석음들…. 이 더러운 끓어오르는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산더미같은 고독에 휩싸여 있었다. 과연 그는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몸부림치는 적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진실을, 정의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회복할 수 있을까. 이 현대판 리바이어던, 사나운 미친 포말의 괴물들, 거짓으로 빚은 공포의, 전체주의의, 괴물의 바다에서 그는 살아남아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벗들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본 것은 진리가 아니었음을 사막의 신기루, 씻겨버릴 오물, 녹아버릴 3월의 눈, 말라붙은 쥐오줌, 썩어가는 분뇨더미, 악취 나는 노숙자 발바닥 같은 것들을 아는가? 우리가 우리를 속여왔음을 아는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주박에 걸려, 앞뒤 모르고, 좌우도 모르고 날뛰고 있음을 아는가? 하늘 높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효수가 되어 걸려 있는 것을 아는가? 시간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법, 어떤 것도 시간 속에서 녹슬지 않는 것 없고, 병들지 않는 것 없고, 찌들지 않는 것 없고, 정확히 원래 품었던 염원의 정반대 것으로 전화되어 버리는 것을 아는가? 벗들아, 그대들이 눈이 없는 걸 아는가? 냄새도 맡지 못하는 색맹인 것을 아는가? 그대들의 깃발에 갈고리 문양이 그려진 것을 아는가? 그대들이 포말처럼 솟구쳐 올랐다 꺼져버릴 때, 그가! 우리들 상상 속 피투성이 ‘프로 혼’처럼, 그가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것을 아는가? 모래 시계 속에서 핏덩이 같은 모래알갱이들이 무심하게, 냉정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대들, 허위의 목소리들, 문자들의 시간이 흩어지고 있다.

2024-12-09

닉슨을 따라가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산됐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해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한때 탄핵안이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일단 탄핵을 저지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결과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대통령 선거가 촉박하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앞으로 5개월 정도면 확정판결이 나온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만 확정되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기록을 남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염치가 없다. 표를 달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백전백패다. 국민의힘 계산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버텨서 해결될 일인가.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정치인의 당리당략에 있지 않다. 국민의 이익,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손익으로 따져보면 윤 대통령의 명분이 너무 밀린다. 북한 위협이라느니, 야당의 폭주라느니 하는 건, 국회를 봉쇄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헌법이 그렇게 막아 놨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비상계엄’은 너무 즉흥적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밀 유지를 해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격노’, ‘폭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듣는다. 정신적 불안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면서 일을 도모하는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하다. 군 통수권자의 심리적 불안은 정말 위험하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나라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과거 독재자들이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잘 써먹던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계엄을 발동한 데 불쾌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인 16%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계엄 발령 뒤 조사한 표본은 지지도가 13%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력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를 총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후진국 독재자에게나 있는 행태다. 민주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는 자폭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법과 예산을 틀어쥐고, 발목을 잡아 왔다. 이제 민주당의 그런 무리수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라를 이런 꼴로 2년 5개월 방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망쳐야하나. 무슨 낯으로 다음 정권을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집무실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 야당이 반대해도 설득해 국정을 이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득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건 핑계다. 잠시 탄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건가. 왜, 무엇을 위해.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 탄핵에 앞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닉슨의 길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면받았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다. 국회도 함께 조기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8

월장(越墻)의 추억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요즘 청년 세대는 ‘월장’이란 어휘가 낯설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담장을 뛰어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이는 ‘월담’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한자어 ‘월(越)’과 담벼락을 뜻하는 한글 ‘담’자를 합성한 다소 괴이쩍은 조합이다. 그러므로 한자어 그대로 ‘월장’이라고 쓰는 것이 어법상 옳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한자어는 읽을 줄 알아야 우리말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자명한 이치를 한글 전용론자들이 수용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 학부 시절, 날마다 지구 자전축이 심하게 흔들림을 느껴야 했던 시절 이야기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이란 제목의 주간지 소설에 마음을 주었던 때 일이다. 야간통행금지가 일상화되었던 시절, 제주도와 충청북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시민들의 통행이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어기면 경찰서 보호실로 직행해야 했던 암울했던 시절. 그날도 어김없이 몹시 흔들렸던 나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대문 앞에 이르렀다.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초인종을 누를 수 없었기로 높지 않은 담장을 뛰어넘기로 한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아뿔싸! 이른 시각 화장실 가시던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엉거주춤 인사드리자 아버지 말씀, “이제 오냐?!”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월장의 추억이 있던 내게 아주 낯선 장면이 휴대전화 화면에 잡힌다.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국회의 담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뭐지, 이것은?! 국회 의사당 출입구를 봉쇄한 대한민국 경찰 저지선을 뚫지 못한 60대 후반의 국회의장이 담장을 뛰어넘는 장면이었다. 어, 이거 우리나라야?! 합성사진이 아니라, 진짜 일어난 일이야?! 있을 법하지 않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기이한 밤, 나는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제목의 대중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설픈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울려대는 카톡 신호음에 눈길이 간다. ‘이거, 정말이야?!’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무렵 풍경이다. 아주 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새벽 4시 무렵이나 되었을 때 자리에 누웠다. 근근이 자료준비를 마쳤으나, 잠이 올 리 없잖은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눈이 절로 떠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퍼런 하늘빛이 참으로 고왔다. 마당에 내려앉은 흰 서리와 조화를 이룬 그날 아침 세상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심호흡하고 묵상에 잠긴다. 1980년 5월 28일 새벽 비상계엄 아래 놓여있던 전남도청 시민들이 보았던 하늘도 이렇게 고왔을까, 생각한다. 전날 밤 80만 발의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들도 그 하늘을 보았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전남도청에 난입하여 여린 목숨들을 학살할 때, 그들 내부에는 어떤 느낌이 찾아왔을까, 생각한다. 만일 어젯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여 비상계엄이 관철되었다면, 오늘 아침 하늘이 이토록 아름답게 다가왔을까, 생각한다. 월장을 감행한 국회의장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4-12-08

조선간장의 세계화

우정구 논설위원 옛말에 “간장 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간장이든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장을 담글 때는 집안의 나이 많은 어르신이 일을 직접 해야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 자체의 맛이 그 집안의 전통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간장, 된장, 고추장을 모두 사 먹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장을 직접 담가 먹었다. 그중 간장은 한국의 맛을 내는 핵심 조미료다. 국이나 찌개, 나물무침 등 어느 하나 간장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없다. 조선간장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간장을 이르는 말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본식 간장에 상대되는 표현이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음식으로서는 김장문화에 이어 두 번째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는 23번째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강술래, 탈춤까지 다양한 무형문화재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됐다. 장 담그기 문화의 등재는 김장문화에 이어 K-푸드의 세계화를 알리는 신호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네스코 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장 담그기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콩을 사용해 만든 장의 효능만 아니라 재료를 직접 준비해서 장을 만드는 전 과정을 인류문화 유산 가치로 보았다는 것은 의미있는 평가다. 특히 장 담그기 문화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간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밝힌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장 문화를 인정한 것이어서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이제 조선간장의 세계화를 기대해 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8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피그말리온 효과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피그말리온 효과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하였다. 이 신화에 따르면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상아로 만든 조각품의 주인공 갈라테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인간으로 만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한 믿음과 간절한 기대, 그리고 예측이 실제 일어날 수 있고 당면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가 대상으로 전이되어 실제 행동의 변화와 실질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1968년 로버트 로젠탈과 레노어 제이콥슨이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실시한 후, 무작위로 20%의 학생들을 뽑아 교사들에게 “이 학생들은 곧 지적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알렸다. 8개월 후, 이 학생들의 IQ가 평균적으로 12.22점 상승했으며 특히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은 평균 27.4점으로 두배 이상 상승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어떤 컨설팅 회사에서 실시한 또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새로 입사한 직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관리자들에게만 “이 팀원들은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였다. 1년 후 이 그룹의 생산성은 19% 더 높았고, 고객 만족도와 이직률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단순한 심리학적 이론을 넘어서 조직의 경영과 일상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기대가 동기부여와 인정이 자기효능감을 상승시켜 조직 전체의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일이 인공지능과 지능형 로봇으로 빠른 속도로 대체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조직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서로의 믿음과 기대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전 세계 인공지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는데 120년이 걸릴 것으로 나타났고 45년 내 현재 인간의 일자리 중 50%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특히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작업, 단순 서비스, 고위험 수작업 등에서 인간의 업무가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역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인간의 일과 기계(인공지능)의 일을 구별하고 인간은 특유의 감성과 상호작용으로 시너지를 만들 때 인간과 기계는 조화될 수 있다. 이는 사회 전반에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대체와 함께 세계경제 상황의 장기적 침체는 인간에게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촉발하고,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미래지향적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을 촉진하면 그 피그말리온 효과는 새로운 힘을 발휘할 것이다.

2024-12-08

합법성과 정당성

유영희 작가 지난 화요일 밤 10시 30분, 두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딥 페이크라고 의심하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 생방송을 하던 유튜버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영상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분만에 국회의 해제 결의로 일단락되었고, 6시간이 지나 대통령은 공식 해제를 선언한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2차 비상계엄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니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계엄법 제2조 2항에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되어있다. 3항에 나오는 경비계엄도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시 또는 전시에 준하는 극도의 교란 상태가 아니다. 국방위원회에서 국방부차관과 육군참모총장 역시, 김민석 국회의원이 현재 우리 상황이 시 또는 준전시 상황이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했다. 비상계엄 포고령 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이 역시 삼권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미 대통령의 의회해산권은 헌법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비상계엄을 했다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 행위’라고 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발의한 상태다. 독일의 유명한 법학자 칼 슈미트는 그의 저서 ‘합법성과 정당성’에서 이 두 가지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합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며, 정당성은 구성원의 결단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칼 슈미트의 이런 논리가 나치에 정당성을 부여했기에 부당한 통치행위를 옹호하는 극우 논리라고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칼 슈미트는 합법성을 넘어서 정당성을 획득 여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나 보장하느냐로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합법성을 정당성으로 보는 법치주의에 한계는 많지만 합법보다 더 중요한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합법에서 놓치는 기본권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법 연구자 양천수 영남대 교수에 의하면, 칼 슈미트는 정당성을 한법규범이나 단체가 정할 수 없고 도덕적 올바름이나 모든 구성원의 동의나 승인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합법성을 넘어선 정당성을 주장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번 비상계엄이 모든 구성원의 동의나 승인을 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4-12-08

평생학습이 미래를 결정한다

김하수청도군수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취사선택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원시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현재에는 인공지능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던 현상들이 실현되는 사회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는 피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따라 일정 기간 공부에만 매달리면 원하는 것을 얻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평생 배워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것으로 흐름이 변하며 지자체들은 평생학습을 우선순위에 놓고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지역 주민들을 삶의 질을 높이고 평생교육 욕구를 만족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청도군은 군민과 지역이 행복한 명품 평생학습 도시로 발돋움하고자 지역민의 학습 요구에 맞는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 2013년 교육부의 평생학습 도시로 지정되었다. 특히 민선 8기 청도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해 3대 미래 비전을 추진하며 평생학습 행복 도시를 3대 비전의 첫머리에 올릴 만큼 평생학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청도군의 평생학습은 ‘행복한 라이프케어 희망공동체 평생학습 행복 도시 청도’를 비전으로 평생학습 환경조성과 평생학습 네트워크 강화, 평생학습 문화 확산, 평생학습 프로그램 개발과 제공을 전략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도 평생학습은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해 지역 특성과 군민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으로 개발하고 보급해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신속하고 대응하며 전역을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해 꿈과 희망이 넘치는 평생학습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평생학습행복관을 지난 3월 개관해 행복아카데미와 힐링 청도프로그램, 마을 평생교육지도자 과정, 검정고시 합격자클래스 등 다양한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과 청도형 아카데미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마을 경로당에서도 요가와 노래, 원예, 미술 등 다양한 마을 평생학습 강좌를 운영해 모두가 수준 높은 평생학습을 접할 수 있다. 청도 평생학습 과정 중에는 청도인적자원개발학과와 화상 영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한의대학교 미래라이프융합대학에 전국 최초의 지역 전문학과인 청도인적자원개발학과는 지역 맞춤형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4년 학사과정을 이수하면 학위와 평생교육사와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또 화상 영어 프로그램은 해외 현지에 있는 원어민 강사와 화상을 통해 수준별 맞춤학습과 동시에 스스로 자기 학습도 가능하도록 구성된 획기적인 양질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청도군은 지난 10월 개최한 제1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박람회에서 역대 박람회보다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기도 했다. 청도의 평생학습은 지역 여성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며 지역특화 여성 취업 교육으로 취업과 연계시키고 있다. 지역의 17개에서 스포츠 영어체험학습으로 외국인 강사와 스포츠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영어의 어려움을 해결해 미래 성장동력인 학생들의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청도군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2025년에도 군민을 위한 다채로운 맞춤형 사업을 시행하며 평생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군민을 위해서는 배달강좌로 누구나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평생학습 행복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살고 싶고 이주하고 싶은 청도,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청도로 미래를 준비해 나갈 것이다. 전 생애주기별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군민 개개인의 성장 사다리를 놓아 군민 한명 한명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집중해 평생학습 행복 도시로 완전하게 자리매김해 인구소멸지역이 아닌 자긍심을 군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2024-12-08

씬짜오, 언니

오빠와 나는 9살 차이가 난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돌잔치를 하고, 아장아장 걸을 때에도 오빠는 결혼을 하지 못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맞선을 보았지만 오빠 나이 마흔이 넘도록 성사 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나이 들어가는데 오빠는 손자는커녕 결혼을 하지 못했다. 결혼 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실까 봐 엄마는 자나 깨나 걱정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가는 것도 괜히 눈치가 보여 발길이 뜸해졌다. 특히 명절이 되면 오빠의 친구들은 본가며, 처가며 가는데 늘 방안에 혼자 있는 오빠를 보는 것이 마음의 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다른 나라에서 아가씨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오빠가 장가가는 것이 최고의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부색과 다른 언어, 다른 문화의 올케언니를 맞이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씬짜오” 이 한 마디로 겨우 인사를 나누었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피부색이 다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학교생활을 적응해 나갈지, 혹이나 왕따 같은 것은 당하지 않을지, 부부모임에서 어떻게 오빠를 내조할지, 부모님은 어떻게 모시고,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한국 음식은 어떻게 등등의 걱정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을 이어갔다. 오빠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얼굴색이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다. 걱정이 앞섰던 가족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결혼을 한 후 올케 언니는 부지런히 적응해 갔다. 다문화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 무료로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올케 언니는 오자마자 한글을 금방 익혔다.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도 가고 가까운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살뜰히 챙겼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잘하지 못했던 딸들을 대신해 올케 언니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애를 썼다. 부모님의 생신 때는 손수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한국 전통 음식인 갈비찜, 잡채. 나물도 금방 익혀 한가득 차려냈다. 언니가 한 음식에는 엄마의 맛이 났다. 엄마에게서 배운 음식이라 맛이 있었다. 부모님의 시름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올케 언니는 아들을 둘 낳았다. 부모님이 가장 기뻐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닮았다. 제 엄마와 아빠가 하는 모습들을 보며 아이들은 할머니의 무거운 짐도 잘 들어주고 재롱을 피우며 잘 자라주었다. 학교생활도 너무나 밝게 잘 적응해 갔다. 김경아 작가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있었다. 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늘 옆에 있어야 했다. 우리는 힘드니까 간병인을 쓰자고 했지만 올케 언니는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며 손수 엄마의 간호를 맡았다. 페트병에 물을 떠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머리를 감겼고 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엄마를 부러워했고 엄마는 고마워했고 뿌듯해했다. 지금 언니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한국 여성들에게 학교 방과 후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당당하게 자기의 꿈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베트남 부모님이 한국에 오셔서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올케 언니의 부모님에게 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케 언니가 생긴 후 오빠는 밝아졌다. 이젠 명절이 되면 오빠는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우리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의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부모님을 잘 모셔주어 너무나 감사하다. 언니를 볼 때마다 나도 미소가 생기지만 고마운 마음을 말로 전하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문자라도 한 번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겪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소통은 말이 아니고, 문화가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 감을 알게 되었다. 괜한 걱정에 자신을 묶어 두기 보다는 희망으로, 기대로, 마음으로 서로를 들여다보는 눈이 깊어져야할 것이다.

2024-12-08

‘권위주의적 허풍(虛風)’은 사라져야

얼마 전 지방의 한 행사에서 “지역 인사의 큰 역할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완공 됐다”는 영웅담(?)을 전해 듣고 적잖이 놀랐다. 더욱이 지역의 한 신문은 영웅담의 주인공을 대담한 내용과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고 한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 SOC 사업이, 특정인의 역할로 결정됐을까? 사실이 아니라면, 영웅담의 주인공은 허풍선이요, 신문기사는 오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교통 분야를 총괄하고, 예비타당성을 수행한 책임자였기에 사업의 추진 배경과 과정 등을 또렷이 기억한다. 기록물이 될 ‘고속도로 건설사’나 지역의 역사를 바로잡는 심정으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의 추진 과정, 국가계획과의 연계성, 대안 검토 내용과 선정절차 등을 되짚어 봤다. 도로는 위계에 따라 건설, 유지·관리·정비하는 주체가 다르다. 고속도로는 국토교통부(이하 현 국토부)로 한국도로공사 소관이고, 국도는 국토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소관이다. 지방정부의 의견 등은 참고될 수 있으나,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지방도, 군도 등은 행정안전부의 위임을 받아 유지·관리·정비 등은 지방정부 소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 등 SOC사업은 해당 지방정부나 중앙정책부서에서 입안, 기획재정부에 의뢰해 예비타당성 조사의 선정과 종합판정(AHP)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 등 지방정부 관계자가 건설 여부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방정부 등 관련 기관에서 제안한 사안을 중앙정책부서를 경유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통해 사업의 필요성과 우선순위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당시에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 전문분야 대학교수와 국책연구원 등 학술과 기술 부문으로 나누어 수행한다. KDI 중심의 내·외부 전문가 자문회의 등 수차례의 치밀한 검토와 기획재정부의 최종보고 단계를 거치게 된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도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선정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제안된 노선은 경제성이 낮게 도출됐다. 이에 교통영향권내의 기존 국도와 지방도를 개량·개선·정비하는 방안, 주요구간별 또는 특정 구간을 자동차전용도로화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현장 정밀조사를 통해 검토됐다. 그 결과, 일부 대안에서 경제성 지표인 B/C가 ‘회색 존’ 즉, 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으로 1차 조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국가균형발전이 국가 주요과제로 부상하면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방안도 재론 됐다. 지역 낙후도가 전국지자체 중 최하위권인 경북 북부지역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고속도로 건설이 주목됐다. 이와함께 경북도청 이전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교통체계 변화가 수도권과 직결체계가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도 변수가 됐다. 이에 따라 당초 중부권 동서간선축인 당진~상주~영덕 간 노선 중 기검토된 상주~영덕 구간의 노선건설계획이 재검토됐다. 필자는 경북도청 이전 관련, 최종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상주~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 등을 기본전제로 도청이전의 적지 지표를 확정했다. 이후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노선을 재검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KDI, 건교부 등 실무자와 전문가 등은 경북도 관계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를 토대로 경상북도를 초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최우선 건의 사항으로 ‘경북도청 이전과 동시에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의 중요성’이 보고 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의견을 개진했고, 이후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경제성이 미흡하나 지역개발 효과와 국가균형발전 등 정책적 판단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경제성이 없는 노선을 왜 건설하느냐’는 감사원의 이의 제기로 한 때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에 영덕군, 청송군, 안동시 등의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감사원, 도로공사, 건교부 등에 찾아가 집단 민원을 제기했었다. 결국 감사원 등이 한발 물러나면서 설계 등의 절차가 순조롭게 추진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천문학적 재정이 소요되는 국가 초대형 SOC사업은 정책집행부서,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책부서가 심도있게 논의, 검토, 조율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특정인의 민원이나 권력 핵심부의 몇몇 지인을 통해 사업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몽환적 영웅심리(?)가 부른 허풍에 불과하다. 자칫 주요정책 결정에 유력인사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오해와 불신을 조장할 수 있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불행하게도 왠만한 SOC사업이 진행중인 지역마다 마치 필연적인양 허풍과 허세적인 영웅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롯해 자치단체장, 광역의원, 지방의원들까지 서로 자신들의 업적인양 내세우는 게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의무적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마치 대단한 업적을 쌓은 양 과대포장한다. 이런 언행들 대부분이 지역민, 지역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비단 SOC 국책사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갖가지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거짓과 위선을 마치 사실인 양 둔갑시키고, 책이나 영화 등을 제작해 자신의 개인적 행각을 호도하고 미화한 기록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자기 편향적인 거짓과 위선적 기록물들이 사실(史實)로 전해질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포함해 개인의 자의적이고 편향된 기록물이 사실인 양 치부되는 현상은 사회 질서를 왜곡시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가당착적이다. 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硏 원장전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어떤 사실을 일시적으로 전하려면 말로하고, 백 년 이상 오래도록 전하려면 기록으로 남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실(fact)을 역사적 사실(historical)로 전하는 기록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다. 그 전제는 사실에 근거 정확하고 명확한 기록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영웅담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업적 평가들은 하루빨리 바로 잡혀야 한다. 국가 주요 정책은 타당성 조사, 정책적 요인, 지역파급 효과, 기술적 가치평가, 당위성 등 다각적으로 치밀한 분석·검토를 통해 결정된다. 지역 언론의 대담기사처럼, 초대형 국책사업이 권력적 편향 논리로 결정되는 일은 없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획재정부 담당자에게 정책사업을 직접 설명하며 예산 지원을 설득했으나 거절당해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노 장관은 거절 이유를 설명하는 기획재정부 담당자의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 탄복했다는 일화가 한동안 회자됐었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 또한 건교부, 기획재정부 등 당시 중앙 정책부서와 전문가 집단의 치밀한 분석과 검토, 객관성과 합리성, 당위성에 근거한 정책적 판단으로 결정된 것임은 당연지사다. 아직도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는 ‘권위주의적 허풍’이 지역민 사이에 떠돌기를 바란다면, 낯부끄러운 일이다.

2024-12-08

가까이 보아야 느낄 수 있는 변화, 농어촌기본소득

임미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2022년부터 파격적인 정책실험을 하고 있다.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 마을에 소득, 직업, 연령 등에 관계없이 실거주하는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다. 며칠 전 그 정책실험을 평가하는 자리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1인당 월 15만 원씩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4인 가족에게는 월 6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소득이 안정적으로 지원된다. 토론회 중에 30여 년 전 아이 둘을 키우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새색시 시절이 생각났다. 전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쌌고 이것저것 손에 닥치는 대로 농사를 골고루 지어야 먹고 살기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여름에는 여름에 돈이 나오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가을에는 가을에 돈이 나오는 농사를, 겨울에는 겨울에 돈이 나오는 농사를 지어야 하니 일 년 열두 달 빠꼼한 날이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고추가 나오는 여름과 사과가 나오는 가을, 겨울은 어찌어찌 살아지는데 수확은 없고 농비만 투입되는 봄은 정말 곤욕이었다. 건강보험료도 밀리기 일쑤고 아이들 우윳값도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 많았다. 그때 생각했던 게 “만약 안정적으로 월30만 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농촌에 사는게 이리 고되지는 않을텐데….” 내게 ‘기본소득’은 그렇게 다가왔다. 농촌에 정착해서 농업소득으로 온전히 살고 싶은데 먹고살 만한 농업소득을 벌기가 정착 초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농업소득으로 먹고살고 아이들 키우기가 가능해진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농촌에 살고 싶었으나 농촌이 나를 떠밀어내는 듯한 현실을 버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천군 청산면의 정책실험에 주민들이 평가한 내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중략)청산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삶이 밝아졌습니다. 사람과 어울릴 때 내가 한 번 사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 확실히 늘었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안가고 큰 일이 있을 때만 가던 미용실은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가면서 한결 밝고 가꿔진 모습, 모든게 변했습니다. 본인을 위해 돈을 쓰는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의 마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의 활력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보아야 느낄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변화입니다. 정서적인 만족과 긍정의 에너지가 생긴 마을을 담아내는 별도의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후략)” ‘정서적인 만족과 긍정의 에너지’. 이 평가가 내 맘에 콕 박혔다. 인구가 늘었다는 행정공무원들이 좋아할 만한 평가는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유의미한 평가가 되지 않겠지만 지역민들의 삶이 밝아지고 지역사회 주민들이 서로에게 반가운 존재가 되는 변화라면 이런 정책 시도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2024년 12월의 시작에 이런 마음을 담아 ‘농어촌기본소득 법안’을 발의했다. 농어촌기본소득 논의가 국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2024-12-05

무병장수의 꿈

우정구 논설위원 무병장수는 인류의 오래된 꿈이다. 2000여 년 전에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러 신하를 멀리 이국땅까지 보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는 인류의 꿈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5세로 전년보다 0.8세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대수명이란 0세 출생아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수명이다. 연령별 사망률 통계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것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40세를 겨우 넘겼다. 당시에는 60세를 넘기기가 어려워 부모가 60세가 되면 자식이 동네 주민들을 초대해 회갑연 잔치를 벌였다. 불과 80년 만에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두배 수준으로 늘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100년까지 일본과 마카오를 제치고 전세계 2위의 장수국가가 된다고 한다. 또 2140년 이후 세계 최장수 국가에 오르며 2500년에는 한국인의 수명이 무려 154세 이른다고도 했다. 믿어지지 않으나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닌 것 같다. 세계적으로 보면 사망률이 줄고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라마다 그 격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병들거나 아프지 않는 단계의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격차를 줄이는 것 또한 숙제다. 2022년 기준 우리의 건강수명은 65.8세. 기대수명과 15년 정도 차가 있다. 무병장수를 위한 인류의 도전은 그래서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5

함께하는 선율, 하나 되는 마음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경상북도교육청 문화원 대공연장에서 참으로 따뜻한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학생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렸다. 청하중학교와 포항명도학교의 ‘함께하는 선율, 하나 되는 마음’의 합동 연주회였다. 첫 순서는 포항명도학교 어울림 학생 오케스트라. 각자의 악기를 들고 차례로 조용히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그 넓은 무대가 꽉 찬다. 인사를 하고 지휘자의 손놀림 따라 ‘미녀와 야수 OST’ 등 4곡을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일반 연주자들 못지않다. 포항명도학교는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이며 1989년에 개교하여 현재 유치-초-중-고등 및 전공과 등 약 260여 명의 학생이 70여 명 선생님에게 알뜰한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다. ‘어울림 학생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해 2013년에 창단하여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편견의 벽을 허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연주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단원들은 국내 최고의 장애인 예술단을 목표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창단 이후 매년 연주회를 가져 올해 10회째이고 여러 관현악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대상, 금상을 수상하고 장애를 뛰어넘어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여 음악을 통한 소통의 기회를 주고 있음이 훌륭하다. 다음은 임종식 경북교육감이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경북 교육’이라는 비젼을 얘기한 축사에 이어 내빈 소개가 있었고, 이날 특별 출연한 경북도교육청 ‘온울림 앙상블’의 창단 연주회가 이어졌다. 명도학교 어울림 앙상블을 모태로 하여 피아노, 클라리넷 각 1명, 바이올린 2명으로 구성된 경북도교육청 장애인 예술단으로 올해 10월 1일 창단하였다니 이번이 제1회 연주회인 셈이다. 쇼팽의 즉흥곡 1번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누르는 손놀림을 보면 장애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듯,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며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자립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 진정한 연주 활동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다음은 청하중 관송오케스트라 연주로 ‘공감’을 주제로 한 ‘아리랑 판타지’를 포함한 3곡과 독창 2곡을 들려주었다. 2014년 윈드오케스트라로 창단한 후, 8년 뒤에 100명이 넘는 관현악단으로 성장하여 14기 예술꽃 씨앗학교(문화체육관광부) 및 새싹학교로 선정되어, 음악을 통해 청소년기 감수성을 계발하여 전인적 인재로 키워가며 사회와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올해 제9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였으며, 8월엔 제7회 학생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서 금상 수상을 하는 등 경북을 대표하는 학생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높이고 있음이 지방 중학교의 뿌듯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순서로 두 학교의 합동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우리의 꿈’과 ‘흰수염 고래’를 듣고 앙코르까지 외쳤다. 2시간 반 동안 가슴 가득 사랑의 연주를 들려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키우고 가르쳐준 학부모와 선생님들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두 학교가 마음을 같이한 연주를 계속하여 기쁨과 감동을 나누어 주길 바라며….

2024-12-05

역사의 한 페이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죽마고우들 몇 명이 모처럼 고향에서 만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6·25전쟁 중에 태어나서 7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혁신적이고 역동적이었다. 그 드라마틱한 세월을 각계각처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 세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대한 감회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칠십여 성상을 지나는 동안 우리 고장도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도록 많이 변했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에 걸친 우리의 ‘국민학교’ 시절은 조선말기와 일제시대, 6·25를 거친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였다. 점심 도시락을 못 가져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고, 미국이 원조한 강냉이가루로 찐 시루떡을 하나씩 받는 날은 그나마 허기를 면할 수가 있었다.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도 더러 있던 시절이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는 혼·분식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쌀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보리쌀이나 좁쌀을 섞은 밥이나 국수, 수제비 같은 밀가루 음식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이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무미일(無米日)로 정하고 식당에서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할 수 없게 했는데, 단속요원이 불시에 단속을 했고, 무미일을 위반한 가게를 신고한 사람에게는 5000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까지 주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5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상당한 거금이었다. 가정에서 쌀로 술을 빚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열의 대상이었다. 식량부족을 해소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한 산아제한을 실시하기도 했다. 구호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나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에서 ‘무턱대고 놓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로 격해졌다. 불임수술을 적극 권장하고 셋째 출산부터는 불이익을 주는 등 다분히 강압적이었다. 출산장려를 위해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 붓는 요즘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이란 말로는 모자랄 판이다. 1963년 제3공화국수립 후 공업국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미국 등에서 식량을 대량 수입하여 양곡부족을 해결하였다. 중·장기적으로 통일벼 등 벼품종개량과 비료·농약의 공급확대 등으로 식량증산에 매진한 결과 농민의 소득증대와 생활환경 개선이 진전되었고, 그에 따라 보릿고개도 쌀부족 현상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무엇보다도 ‘농촌사회에 팽배되어 있었던 봉쇄성, 숙명론적 체념성, 그리고 지역지향성 등을 극히 단기간 내에 전국적인 규모로 타파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새마을운동이 가난퇴치와 함께 농민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젊은이들도 알아야 제대로 된 현실인식을 할 수 있을 터이다. 풍전등화로 위태로운 정국 앞에서 돌아다보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2024-12-05

머리가 너무 아파요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두통으로 고생해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깟 두통으로 뭔 호들갑이냐’라고 하지만, 현재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이것만 없어지면 소원이 없겠다고도 한다. 두통이라고 하면 머리 안쪽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해서 CT나 MRI 등의 영상 촬영을 해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 두통의 대부분 원인은 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추 쪽 문제로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상부 경추 쪽의 문제가 있으면 경추에서 나오는 대후두신경, 소후두신경, 3차 후두신경 등 머리로 올라가는 신경들이 머리 뒤쪽에서 포착되면서 두통을 일으킨다. 사무직이든 육체 노동을 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굽은 등과 둥근 어깨로 일을 한다. 운동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이런 자세로 운동을 한다. 등이 굽으면 자연스레 시선이 땅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앞을 보기 위해 등을 펴는 것이 아니라 목이 앞으로 빠지면서 시선을 정면을 본다. 이런 자세가 만들어지면 무거운 머리를 밖으로 빠진 목이 받치는 형태가 되어 이전보다 몇 배의 무게를 목으로 받아야 한다. 자연스레 경추 간의 간격도 좁아지고 경추를 잡아주는 근육 긴장도가 올라가고 힘줄과 인대에 문제가 생기고 붓고 유착 등이 발생한다. 당연히 경추로 지나가는 신경들 또한 자연스레 압박되고 포착이 되어 머리로 가는 혈류 순환이 나빠지게 되고 이는 경추 디스크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두통이나 어지럼증, 이명 등의 머리 쪽의 증상을 일으킨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등을 올곧이 펴야 한다. 등을 바로 펴고 턱을 당겨서 허리부터 경추까지 자연스러운 S자 모양을 만들어 무거운 머리의 힘을 자연스레 모든 척추가 수직으로 힘을 받아 분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허벅지가 의자 밑에 닿게 하는 방법으로 앉은 다음 허리를 펴고 턱을 당긴다. 일을 할 때도 허리가 아프거나 어깨, 목이 아프면 잠시 쉬면서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뒷목 윗부분을 자주 마사지하고 꾹꾹 깊이 눌러주는 것이 좋다. 파트너를 정해 서로 5분간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직접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목과 어깨를 꾹 30초간 팔꿈치 아래 뼈로 눌렀다가 떼기를 반복하면 자연스레 뭉쳤던 근육이 풀린다. 열이 위로 오르는 매운 음식과 열이 나는 홍삼, 그리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음료 등은 좋지 않다. 음식은 적게 먹는 것이 좋고 열량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걷는 운동을 한두 시간씩 해주면 전신 혈액 순환과 함께 다리로의 혈액 순환이 원활해져 상부로 올라간 열이 내려오니 바른 자세로 자주 걷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항상 마음을 편히 가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10분씩 해줘도 좋다. 치료는 한의원에서 추나요법, 약침 등의 치료와 함께 처방을 복용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 상부 경추를 추나로 직접 풀어주고 교정을 한 후 대후두신경을 직접 약침으로 풀어주면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확실한 치료를 위해 머리의 열을 내리고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치료 한약을 복용하면 오래된 두통이라도 빠른 시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질환이니 진통제로 버티지 말고 더 큰 병이 되기 전에 빨리 치료를 하자.

2024-12-04

한밤중 계엄의 좌절, 국가 혁신 계기로

이상규전 국립국어원장 간밤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 계엄선포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는 한 시민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충동적인 계엄발의와 계엄군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이러다가 국가전란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국가 시스템이나 군사적 대응이 온전히 작동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현대사에 지울 수 없을 검은 역사 흔적을 남긴 안타까운 순간이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비상계엄이라는 한밤중의 도박은 왜 강행되었을까? 대통령의 심경이 이해될 만큼 현재 정국 상황이 엄중하다는 반증이다. 미래의 민주화 목표와 전망을 잃어버린 거대 야당의 밀어붙이기식 정쟁과 여기에 맞선 집권 여당은 집권 이후 단 한 차례도 정치적 협치나 협상의 아량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권력 투쟁으로 일관해 온 협상 정치 실종의 2년 반은 황량한 시간이었다. 국가 미래발전 전략은 포기한 채 오로지 정권 쟁탈과 방어를 위한 투쟁만 가속화하면서 거대 야당의 당대표는 급기야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서 시민들을 선동했다. 그는 엄연한 범법 피의자이자 실형을 받은 범죄자이다. 대통령도 가족 문제와 최근의 명태균 사건에 연루, 국회 특검의 압박을 받아 왔다. 이 극한의 예각 대치상황에서 여야는 투쟁국면에서 벗어날 어떤 여유도 계기도 서로 찾지 못했다. 아니 근본적으로 찾을 수 없었던 딜레마였기도 하다. 그동안 윤 정부의 운영자율권을 철저하게 저지해 온 거대야당의 압박과 선동을 이겨내지 못한 임계점에 도달한 행동적 표현이 간밤의 비상계엄령이었다. 스스로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듯이 결국 거대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제일 먼저 차가운 겨울 밤바다로 뛰어내린 형국이었다. 솔직히 소위 민주화 운동 세력이 주축을 이룬 거대 야당에게는 미래 이념적 비전이나 목표가 없었다. 그들은 비전도 목표 의식도 없이 정치 투쟁에만 몰두했다. 경색된 조직과 퇴화된 주사종속의 이념적 정책에 매몰된 듯한 정치노선 또한 윤 정부에 보낸 큰 위협이었다. 현재 핵무장으로 조직적 군사체계를 완비한 북의 현실 상황을 고려한다면 민주당은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 호전적이고 비타협적인 정쟁으로만 치달을 수 없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를 규탄하면서 강압적 축출로 현재의 문제를 마무리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첫째, 이 사건을 이 나라가 당면한 정치 개혁의 신호탄이 되도록 수습의 길을 찾아 여야 모두 썩은 정치권 세력을 도려내는 새로운 민주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 장기간에 걸친 고금리와 고물가에 시달린 서민 경제의 회복과 대기업 경영의 심각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문을 닫는 중소기업의 회생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나라의 국방과 치안의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연결된 문제이다. 과감한 방위체계 구축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을 여야합의로 이루어내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취 문제는 법리적 절차에 근거한 처리를 최우선으로 해야지 다시 촛불 들고 선동하여 사회치안을 마비시키는 국면 전개는 절대 안 된다.

2024-12-04

늠내

피귀자 수필가 조용한 수런거림이 물처럼 흐르다가 불처럼 타오른다. 설악산 단풍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월 말경이면 새로운 지도가 태어난다. 잠긴 수문을 풀듯 흘러내리며 금빛계절을 알리는 단풍지도. 남쪽을 향하여 달리다가 제주도를 거쳐 무등산까지 이십 여일이면 한반도를 점령해버린다. 단풍의 달리기를 바라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뻗어가는 땅이란 뜻의 ‘늠내’라는 단어다. 넓어지는 땅이라면 먼저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공깃돌을 두 번 튕겨서 한 뼘의 기본 땅 속으로 되돌아 들어오면 그 영역은 모두 내 땅이 되던 기억이. 가진 땅이 빠르게 넓어지듯, 안개가 퍼지듯이 단풍은 이제 동네까지 내려왔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제각각 종을 울린다. 길 떠날 준비를 하는 생명들의 두런거림이 세를 불리며 환청처럼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바야흐로 단풍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단풍 중개 소식에 따라 구경꾼은 점점 늘어간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 단편은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크다. 우연한 기회에 땅을 조금 가지게 된 가난한 농사꾼 바흠은 그 후 욕심이 생겨, 어떤 곳에서 땅을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의 판매 방법은 독특하였다. 하루 종일 걸어서 해가 지기 전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면 그 둘레의 땅을 다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들판을 달렸다. 해가 질 때 겨우 출발했던 지점에 약속대로 돌아왔지만, 욕심이 컸다. 너무 먼 거리를 달렸기 때문에 그만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죽은 뒤에 넓은 땅이 무슨 소용이랴. 그 농부가 묻힌 땅은 겨우 사방 7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은 구덩이에 묻히면서, 죽어버린 몸이기에 후회도 원망도 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이렇듯, 사람은 한 평생을 달려도 누구나 70센티미터 정도의 땅 속에 묻힐 따름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 우리는 누가 시키든 안 시키든 달려야 한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힘껏 달린다. 온갖 힘과 지혜를 짜내고 그래도 모자라면 남을 속이고 밀어내며 좀 더 나은 땅, 좀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달리고 달리는 이들도 있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애쓰고, 힘을 기르는 이유는 더 좋은 땅을 많이 차지하려는 달리기 내기가 아닐까. 땅따먹기 놀이도 마찬가지였다. 욕심을 내어 공깃돌을 너무 멀리 튕긴 후 좁은 본부로 다시 튕겨 넣으려면 밖으로 튀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기회는 날아가 버리므로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 담긴 놀이가 아닌가 한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달은 탓일까. 아직도 땅에는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생존 경쟁, 삶은 전쟁이 아닌가. 싸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한 평화는 쉽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나무의 생존경쟁은 다르다. 다른 대상과의 싸움이 아니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요. 내려놓기이며 물러서기다. 나무는 제자리에서 세월을 맞으며 맡은 책임을 다하려 모진 풍상을 견뎌내느라 잎은 벌레에 파 먹히고 바람에 쓸리며 피멍으로 에둘러 있다. 그것이 바로 단풍인 것을. 쓰라림 없는 결실이 어디 있으랴만 아픔을 이기며 내려놓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 역경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것이 희망이라고, 나뭇잎은 내년을 기약하며 한걸음 물러서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바로 사유의 급전환이다. 사유의 전환을 거쳐야 비로소 더 높은 곳에 설 수 있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색으로 이어지고, 그 색 따라 피고 지고, 지고 피며 사람도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단풍처럼, 내려놓을 때를 아는 나무처럼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들. 경쟁하며 넓혀온 땅을 한순간에 내려놓으며 욕심을 버린 사람들이 존경받는 이유다. 내려놓기 위해 세를 넓혀가는 단풍처럼 사람도 물욕이 아닌 인류를 위한, 또는 자기발전을 위한 소양의 늠내는 넓힐수록 좋으리라. 다가오는 새해에도.

2024-12-04

죽도시장 대성막걸리

부엌에 덧댄 쪽마루라도 임금님의 침상이지 그렇게 잠든 어머님의 주름살에 파르르 떨리는 형광등 불빛이 잔설(殘雪)로 내리면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등쳐먹은 세월이 벽마다 가득하다 살며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사발 퍼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 장아찌 몇 점과 멸치 몇 마리 경계의 벼린 눈빛 스파링 상대처럼 긴장하면서 도열하여 이내 종종걸음으로 입으로 집합할 운명 인생은 싸우는 거야, 상대도 없는 자유로운 술집 주인이 있어도 없어도 시스템 작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계산은 알아서 바가지에 넣을 것 마신 잔은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놓을 것 공화국은 이런 것이라고 민주의 기본은 이런 거라고 생기발랄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굴 대성막걸리 팔순 어머니의 내공은 이렇게 정리된다 씨팔놈들아, 니들 꼴리는 대로 해라 돈도 필요 없다, 니 스스로 쪽팔리지 않으면 된다, 그 쫑알거림의 사자후, 그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잔술로 속을 달래고 공짜 술도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 서울에서 고생한다고, 그 한 잔 못 주겠느냐고, 열심히 살아라, 말씀하셨다. 그 세월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아쉽게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사라졌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04

어른은 누구인가

장규열 고문 ‘어른’은 나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신체적 성장만이 아닌, 독립적 사고와 자율적 책임감,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적절한 역할수행이 ‘어른됨’의 핵심이다. 현대 사회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심지어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독립심과 자율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학 교수들이 학부모들로부터 학점에 대한 항의를 받는 일이 흔해졌다고 한다. 학생 본인이 교수와 소통하는 대신 부모가 대신 나서는 것이다. 한편,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의 부모가 상사에게 연락해 자녀의 부서배치 조정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관찰되는 ‘아이어른’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이로는 성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독립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른들이 증가하고 있는 터이다. ‘아이어른’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과보호적 양육방식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모들이 자녀를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문화는 자녀의 독립심을 극도로 약화시킨다. 둘째, 지극히 경쟁적인 사회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취업난과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자녀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제도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주입식 학습에 치중하며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개인 각자가 독립적 사고와 자율적 행동 역량을 길러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독립심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른은 사회적 책임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책임감을 회피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함은 개인뿐 아니라 정부와 같은 사회적 조직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부가 중요한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인 미성숙함으로 인해 연속적인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적절한 대비와 의사소통 없이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의 혼란과 불안을 초래했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정부가 여러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기획하며 대비했더라면, 이러한 대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는 명확한 대책도 없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왔다. 어른다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에만 달린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개인은 스스로 독립심을 기르고 부모는 자녀를 자율적으로 성장시켜야 하며, 정부와 같은 사회조직 역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적절하게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개인과 사회 모두 어른다움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때다.

2024-12-04

천국과 지옥 오간 비트코인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확정된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은 투자자산을 위험자산이라 부른다. 항시적인 투자 실패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만큼 기대 이익은 안전자산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예금이나 적금처럼 안정성 높은 자산과 비교해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갈 정도의 등락폭을 보일 수 있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는 위험자산의 영역에 있다. 그 위험자산이 단시간에 얼마나 폭락하고, 다시 어느 정도로 반등될 수 있는지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에 확인됐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 약 1억3000만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계엄령이 내려진 직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8000만원 중반대로 폭락했다.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에선 일시적으로 매수와 매도 주문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형국의 암호화폐 가격과 달리 환율은 짧은 시간에 급격한 속도로 폭등했다. 자정을 전후해선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경제 파탄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까지 나왔다. 이후 몇 시간이 흘렀다. 계엄령 해제의 시그널이 가시화된 4일 새벽. 언제 그랬냐는듯 비트코인의 가격이 치솟았다. 아침 7시를 넘어서면서 24시간 전보다 소폭 오른 약 1억3500만원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험자산이 갑작스럽게 부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투자자의 삶을 나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발표가 이뤄진 6시간 사이에 증명된 것.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등의 위험자산이 위태로운 널뛰기를 할 때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것이 분명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험자산은 위험하다. 투자에 신중해야 할 이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04

싸늘해지는 민심, 국정쇄신은 언제 하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하락해 10%대로 내려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번주들어 좀 숙지기는 했지만, 여권이 국정쇄신은 뒤로 한 채 당원게시판 블랙홀에 빠져 이전투구를 벌이자 민심이 이처럼 싸늘해지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6~28일 실시한 11월 넷째 주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에 그쳤다. 대구경북(TK)의 경우 긍정 평가가 40%로 타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여전히 부정 평가(47%)가 많았다. 보수지지층이 주류인 부산·경남(PK) 지지율은 22%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은 “대통령과 명태균씨 간 육성 통화 공개 후 대통령 직무 평가가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대통령과 당 대표 간 불화가 당내 갈등으로 비화해 여당은 여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공감 가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하자 최근 주요언론들은 정부 레임덕 현상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미 차기 정권을 의식하면서 현 정부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꺼린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발끈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대통령실은 어떻게 하면 국민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민심이반 원인은 한국갤럽 조사에 나와 있다. ‘경제·민생·물가’(15%)와 ‘김건희 여사 문제’(12%)가 부정평가 최상위 리스트에 올라와 있고, ‘윤·한 갈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들 현안 모두 용산이나 행정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고, 야당과도 소통해야 한다. 우선 여당만이라도 우군(友軍)으로 만들려면 최근 소수의 친윤계가 의도적으로 당원게시판 논란을 ‘침소봉대’하는 행위를 중지시켜야 한다. 김민전 최고위원이 지난달 25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한동훈 대표와 이름이 같은 8명이 당원 게시판에 윤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썼다’는 이른바 ‘팔동훈’을 언급하면서 당 대표를 직격한 행위를, 그가 지난 9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한 점과 연관 짓는 사람들도 많다. 여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윤계 정치인이라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며칠 전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당원게시판 논란과 관련, 지난달 말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흔히들 얘기하는 ‘김옥균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동훈 대표가 63% 지지로 당선된 사람인데 그 사람을 흔들어낸 다음에 여당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는 스스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후 여권이 정국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현안에 대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권이 지금 가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은 국정쇄신이다. 그러려면 당·정이 원팀이 돼야 하고, 야당과도 대화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2024-12-03

크리스마스 씰

우정구 논설위원 나이가 많이 든 어른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추억이 있다. 6·25 전쟁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에도 결핵이 크게 유행하면서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를 위한 자선사업의 한 형태로 범국민적 참여 운동이 벌어졌었다. 원래는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작은마을 우체국장이 결핵으로 생명을 잃고 있는 유럽 어린이들을 위해 모금방식으로 시작한 것이 시초다. 성탄절 우편물에 작은 금액의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 시작한 모금운동은 이후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 운동의 상징이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직후 대한결핵협회가 결핵퇴치 운동과 함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결핵은 기원전 7000년 신석기시대 화석에서 흔적이 발견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으로 전해진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최초로 발견하고 퇴치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의 목숨을 앗는 위험한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작년에 800만명 이상이 결핵 진단을 받았고, 125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또 결핵이 코로나19를 제치고 전염병 사망 원인 1위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현재 1만6000여 명의 결핵환자가 있다.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병률이 1위며 사망률은 3위다.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모금된 돈은 취약층 결핵환자 발견이나 환자수용시설 지원, 저개발국 결핵사업 등에 지원된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씰을 구입해 결핵퇴치 운동에 동참해 보는 것도 보람있는 연말을 보내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3

조직경영의 리더십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당신이 배를 만들어 주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하나하나 지시한 다음 일감을 나눠주는 식으로 하지 말라. 그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도록 하라’생텍쥐페리의 말이다. 꿈이 있는 조직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리더는 부하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비전을 갖는 것이다. 비전은 누구나 공감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조직경영의 첫번째는 비전 설정이다. 버트 나누스는 비전을 ‘조직의 실제적이고 믿음과 매력적인 미래 조직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이해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향을 안내하기 위해 기술과 재능, 자원을 결합하여 시동을 거는 정략적인 아이디어’라고 묘사했다. 리더라면 비전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은 유배지 생활 9년 동안 나라의 비전과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서 왕을 찾아 옹립하고 건국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한다. IBM을 창시한 톰 왓슨은 회사가 오늘에 이르게 된 데는 첫 사업을 시작 할 때 성공한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나의 꿈, 나의 비전 등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하고 미래 모습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상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실행 모니터링과 부족한 부문에 대한 피드백을 해야 한다. 미래 모습으로 가는 길이 바른지 확인해가는 것이며, 비전은 조직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둘째,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비전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구호나 유행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필자는 광양제철소 혁신 스태프 근무시절 제철소 비전은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구현’이고 목표는 3년 내에 일본 자동차 회사에 1톤을 납품하여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증 받는 것이었다. 제철소장이 직접 설명회를 하고 전 직원들은 물론 시내 콩나물 파는 할머니도 제철소 비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공유되었고, 모두가 꿈꾸는 비전은 실현 될 수 있었다. 셋째, 조직에 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조직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과 권한을 아래로 넘기는 임파워먼트와 스스로 참여하는 동기부여이다. 임파워먼트는 조직의 미션과 목표가 명확하고 의사결정을 실무 팀에서 하게 하여 신속하고 역동적인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동기부여는 결과에 인정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직원을 잘 보살피면 사업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구성원을 신뢰하고 인증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넷째,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혼자 생각보다 대화를 하면 두 배, 토론하면 여섯 배의 성과가 나온다고 한다. 비전을 실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에 두려움을 제거하고 긍정과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경영은 비전 설정과 공유, 조직의 활력과 소통하는 리더십이에서 성공의 단초가 열린다. 혼자 꿈꾸는 것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꿈과 희망을 주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이다.

2024-12-03

매듭달의 비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벌써 끄트머리달로 접어 들었다. 늦더위와 늦은 단풍에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첫눈을 경계로 여지없이 겨울로 바톤터치하며 낙엽으로 사그라들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한 해의 자취를 마무리하는 이른바 ‘매듭달’로 이어져 그 어느때보다 바쁘고 일들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연초부터 이래저래 계획한 일들과 잡다하게 벌려 놓은 일이며 연말까지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보고·정산·결재·마감 등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계 등으로 누구라도 동분서주가 무색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그만큼 한 해의 매듭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구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해의 마무리와 결산, 모임 등으로 부산해지고 일손이 많아지는 때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터지게 된다면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와 손실을 초래하고 주체하기 힘든 변고에 빠지게 된다면?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이 쏟아지고 단체적인 움직임에 시달리게 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같은 일들은 현재 포항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안타까운 실제 상황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쇳물 생산공장에서 정상적인 조업 중 원인불명의 설비사고로 대형화재가 발생, SNS와 방송뉴스를 타고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긴급복구 비상조업 중 2차적인 폭발성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설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등 복원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바다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부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모 단체에서는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을 볼모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포스코노동조합이 임금협상 결렬로 12월 초 포항 본사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개최하자 창사 56년 만의 첫 파업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가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지역 경제계와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상생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3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시황 불황으로 최근 포항제철소 공장 두 곳을 폐쇄하고 공장 화재까지 잇따른 악재에, 노조의 쟁의행위권 확보로 파업 출정식까지 강행하는 등 극도의 불안과 심각한 위기가 지역경제 침체로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기만 하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것(患難相恤)이 지혜와 상생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상호존중과 상생협력으로 원만하게 협상하고 타결하여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매듭을 잘 맺고 풀어야 온전한 마디가 생겨나고, 더 큰 매듭과 마디로 더 큰 성장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미진하고 부족했던 일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따스한 온기 스미는 갑진년의 값진 매듭짓기를 기대해 본다.

202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