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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대생 집단유급되면 의료시스템 망가진다

심충택 논설위원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일 기준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2학기 등록금을 낸 학생이 전체 1만9374명 중 653명(3.4%)에 불과하다. 의대생 대다수가 아예 등록 자체를 거부해 집단유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학생 중 일부는 다른 대학에 수시모집 원서를 내거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렵게 자녀를 의대에 보낸 학부모들의 속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생들의 유급 판단을 학기 말에서 학년 말로 미루고, F학점(낙제)을 주는 대신 추후 성적을 정정해주는 학점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학에 권고했다. 통상의 학사운영 기준을 적용하면 대다수 의대생이 유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라고 해서 등록도 안 하고 수업도 안 듣는 학생을 진급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다. 법령과 학칙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 불가능하다. 만약 2학기에도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대학교육이라는 첫 단계에서부터 망가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8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수술일정을 잡지못해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 1만2000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 난 수련병원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다. 의사는 전공의 시절이 가장 중요하다. 인턴은 레지던트 1년 차한테, 레지던트 1년 차는 2년 차한테 배운다. 한 해라도 레지던트 정원에 결원이 생기면 이런 ‘도제식 교육’에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에는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4·5·6대 병원장을 지낸 이종철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의료가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들의 노력 덕분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제자리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의료개혁이 성공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24-09-24

지구를 위해 손을 내밀자

김규인 수필가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지났다. 상인들은 불경기로 힘들다고 하지만, 골목마다 내어놓는 쓰레기 더미는 만만치 않다. 버려진 건 빈 상자, 플라스틱 포장 재료, 음료수병, 비닐봉지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이 다 어디로 갈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제대로 재활용하는 물건도 적거니와 버려진 상태도 제멋대로이다. 자세히 보면 음식물이 묻은 종이류, 먹다 남은 음식물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양념이 묻은 종이와 비닐류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몸으로 말한다. 쓰레기의 분리수거는 어려운 것인가. 버려진 양심을 가득 담은 쓰레기들이 거리를 뒹구는데 사람들은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추석인데도 한여름 날씨가 이어지니 사람들은 덥다고 난리를 친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우가 내리는가 하면 비가 내리지 않아 마실 물을 걱정하는 곳도 늘어난다.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계속되는 태풍에 물난리를 만난 이재민은 늘어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 번씩 특집으로 환경문제를 다루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한 행위처럼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환경문제는 밥을 먹듯이 매일 신문의 1면을 차지하거나 방송의 첫머리를 장식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실상은 환경오염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얼마나 더 지구가 망가져야 사람들은 진정으로 환경을 걱정할까. 아니 지구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매달릴까. 지구는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내거나, 걸핏하면 자신을 태우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는 듯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물건보다 포장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사용하지 않아도 될 물건을 채워 넣는다. 보기에 좋게 비닐로 코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려한 장식을 더 한다. 물건보다 소비자의 관심을 받는 데만 신경 쓰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든지 물건이 잘 팔리고 좋은 가격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인터넷 판매를 하는 업체에서는 조그만 물건을 부치는데 너무 큰 상자를 사용한다. 정작 택배 물건을 받아 상자를 뜯어보면 실제 물건은 외롭게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있다. 상자가 작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렇게 보낸다. 운반비도 늘어날 텐데 원가관리 측면에서 보더라도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 국가에서는 재활용을 권장하나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고 공장에서는 물건을 팔기 위해 오늘도 포장에 공을 들인다. 차량은 더 무겁고 큰 상자를 싣고 힘들게 언덕을 오르느라 오염된 가스를 내뿜는다. 일회용품은 넘쳐나고 불어난 쓰레기는 산천을 뒤덮는다.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라도 지구를 위해 무엇이든지 실천하자.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쓰레기와 오염 물질이 가득 찬 별이 될 것이다. 지구가 아파하고 몸부림치는 고통에 사람들도 죽어갈 것이다. 이제라도 스스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절박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2024-09-23

각개전투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곧 마무리될 것 같았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어느 순간 자존심 싸움으로 치달으며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렸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는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사례가 연이어 언론에 보도 되며 긴장감을 높였다. 정부에서는 구급대원의 입을 단속하고 군의관을 현장에 파견하며 문제에 대응하고자 했으며, 의료계는 이런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했다. 동시에 정부는 전공의의 현장 복귀와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특히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돕기 위해, 두 개의 학기로 구성된 연 단위 학사 일정을 변경하는 학칙 개정까지 각 대학에 요구하고 나섰다.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학사경고를 받아서 유급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대책이지만 현장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모두 반대하는 정책이다. 의대생들의 학교 복귀가 요원한 현실에서, 이번 학사일정 변경은 의대생을 위한 특별 혜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 이상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느 한쪽으로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분명한 점은 이번 일로 아픈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아이가 두 살 때 자정이 다된 시간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급하게 간 적이 있었다. 줄자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아이 손가락의 피가 한 시간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의사의 도움으로 베인 손가락을 꿰매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늦은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응급실 밖에는 없다. 중증 환자가 아닌 경우 응급실을 자제하라는 권고에 따르면 이런 환자는 새벽에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할까? 국민은 국가를 믿고 일상을 살아간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추석을 앞두고 지인들과 나눈 인사는 추석 때 절대로 아프지 말자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은 눈앞의 불안과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 누구도 믿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자기와 가족을 지키는 삶, 각개전투의 삶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8년째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8년 동안 빠지지 않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크고 작은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반등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간 출산 장려금 등 부수적인 것에 정책이 집중되었으며, 그럴수록 근본적인 문제, 국가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의료·교육·주거 문제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며 결국 나의 무능력을 탓하는 현실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각개전투의 시대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국가 아닌가.

2024-09-23

유행 흐름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나는 좋게 말해 다소 개성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고, 다르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구닥다리 같은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니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교수이자 은사님이신 유성호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지금 우리나라 시단이 원하는 방향이 제가 쓰고 있는 방향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지.” “다음 원고는 좀 다른 방향으로 써 보려고 합니다.” 나름 생각을 많이 하고 드렸던 말씀인데 선생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지 마쇼. 쓰던 대로 쓰면 돼.” 전화를 끊고서 그 말씀을 한참동안 머릿속에 가두어 두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어렴풋하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가던 조씨’란 사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본명은 조현철. 나와 함께 ‘백수와 조씨’라는 2인조 밴드로 활동한 적 있었던 악기 연주자이다. 그는 여러모로 희한한 사람인데 언제나 가장 눈길을 끈 것 중에 하나는 그의 패션이었다. 그는 내가 기억하기로 이미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검정 계열의 아웃도어 의류를 주구장창 입고 다녔다. 간혹 체크 남방 같은 것을 함께 입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패션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등산복이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패션을 비웃었는데, 최근 들어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와 일상복을 믹스매치하는 고프코어(Gorpcore)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고프코어룩의 선두주자라 하면 모델 겸 방송인 주우재 씨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주우재 씨가 있기 전에 조현철이 있었노라고. 그가 무심코 입던 스타일이 어쩌다 보니 유행과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현대 축구의 반역자’ 후안 로만 리켈메 선수가 떠올랐다. 그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은 전통적인 공격형 플레이메이커가 각광받는 시대가 아니었다. 다양한 선수가 공격을 조립하고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전술을 수행하는 시대에서 리켈메는 여전히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로 남았다. 모든 공격상황에서 공은 그를 거쳐야 했고, 공격의 템포는 빠르지 않았다. 대신 창조적이고 정확한 패스를 뿌릴 줄 알았고 때로는 직접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 축구의 흐름에 역행했지만 그는 스스로 하나의 전술이 되어 수많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스페인 리그와 아르헨티나 리그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한 매체는 그를 200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4위로 꼽았다.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유행을 좇기보다는 뚝심 있게 내 영역을 개척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약간은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지만 지나가던 조씨라는 친구가 더 이상 옷차림으로 놀림받지 않게 된 것처럼, 그리고 리켈메가 결국 자신만의 축구로 역사를 이룬 것처럼 가던 길을 우직하게 가는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르침이셨을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소위 주류라고 하는 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스타일을 내면화하여 쓰는 사람보다 잘 쓸 자신은 없다. 아등바등 그들 꽁무니를 좇다가 드디어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무렵 또 새로운 것들이 유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 유행의 선두에 서서 걷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스타일리시하고 멋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들 뒤에는 끝없이 유행의 뒤를 좇지만 결국 유행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일 촌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차라리 유행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멋져 보이는 때가 많다. 돌고 도는 유행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건 그들은 끝내 살아남는다. 유행을 창조하고 선도하던 이들이 지쳐서 끝내 뒤처지고 마는 순간에도 자기 길을 걷던 사람들은 거기 남아서 그들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시인이 되었을 때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내가 제일 어렸고 그래서 내가 최첨단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이제 곧 사십이고 나보다 어리고 잘 쓰고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라질 순 없다. 나는 계속 여기서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을 거다. 아무도 저런 성은 쌓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두고 보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2024-09-23

가족의 일

이번 추석은 평소의 추석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폭염의 가을이라니.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도 그러했지만, 개인적으론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이 명절 분위기를 흐리는 데 한몫했다. 이번 추석은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는 방식을 택했고 형제들이 모여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만큼 온 가족이 모이는 북적북적한 모습은 연출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체 언제 은강이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는 거야?’ 혹은 ‘시집을 갈 생각이 있긴 하니?’ 같이 잔소리하는 친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간소화된 식사 자리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부모님의 걱정의 눈빛을 묵묵하게 견디는 것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명절을 끝마쳤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가족들 앞에서 내 역할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꽤 오래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방향이 미세하게 수정될 뿐이다. 나는 항상 나대로 살고 있는데, 어쩐지 내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평소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가족이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 것만 같다. 우리 사회는 관계 지향적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의 존속을 위하여 개인의 돌발적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잘살아 보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삶의 강한 동력이었다.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다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훌륭한 문제 해결 방식이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개인의 삶을 지워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것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인의 감정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우리 사회의 기조는 한 사람이 입을 다물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우리가 가진 고유한 모양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 가까운 사람에게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지나온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상대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삶에서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로는 응당 가족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김소연 시인의 저서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며 “오래된 제도로서의 가족은 서로를 계속해서 희생해야만 존속”되어 왔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 개인은 국가로부터 받은 모종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대의라고 명명되는 것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곪아버리기 마련. 겉을 감싸는 화려한 포장지에 집중하느라 썩어버린 내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깊숙한 상처를 마주하고 계속해서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관해 골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명절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음에 슬퍼하는 이와 ‘가족 간에 정을 나누는 일’에 상처받는 영혼이 공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밀폐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이것을 극단적 고립주의나 철저한 개인주의로 나아가려는 신호로 읽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건강한 형태의 집단을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 가까운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어떠한 잣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인생을 그려가고 거기에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이란 함께 묶일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 떨어져 존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등을 맞대더라도 체온을 나누는 것.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2024-09-23

표준어 사이의 이정표, 충북 방언시

충청 방언은 흔히 양반 말이라고도 한다. 호서 방언 혹은 서남방언이라고도 하는데 충북과 충남 방언은 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충청 방언은 경기 방언과 억양, 음운, 문법 면에서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충북 방언은 경기 방언과 호남 방언의 중간점에 위치하여 둘 사이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유’와 같이 말끝이 길게 늘어지고 말의 흐름 또한 느리고 온화하며, 억양이 차분한 것이 특징이다. 충북 방언은 단양, 제원군, 중원군, 괴산군의 연풍과 장연 지역의 동부 방언권과 중원군,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보은군 등지의 중부 방언권, 옥천군, 보은군, 영동군의 동부 지역 등 남부 방언권으로 나뉜다. 충청북도는 박완호, 서경은, 오탁번, 윤관영 등 이름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진천 출신의 박완호 시인은 ‘씨부럴’이라는 시에서 충청도 방언의 특유한 말투인 ‘~유’를 적절하게 섞어 충북 방언의 말맛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시팔이라구 쓰구는, 씨부럴이라구 했시유,/가 봐야 인자는 모냥새도 안 남은/구봉리 고향집, 푹석 자빠져부린/기둥이랑 들보 쓱어가는 새/여그저그 속 모르구 고개 쑥쑥 내민/풀잎사구 흔드는 바람만/괴사리손 빠져나가는 미꾸리들뫼양/눈그물 밖으로 내삐는디” 오랜만에 찾은 구봉리 고향집의 전경을 고향의 어법으로 구사한다. 충청도 방언에서 ‘ㅓ:’는 ‘ㅡ:’로 실현되며 말투 역시 느릿하게 ‘~유’라며 말꼬리가 축 드리워진다. 시의 말미에 “낫살에 안 맞게/엉엉 울어버리구 말았시유”라며 구봉리 고향을 나이들어 뒤늦게야 찾은 시인은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알싸한 고향의 그리움은 고향의 말씨와 뒤섞여 제 맛깔과 빛깔을 찾게 된다. 제천 출신 서경은 시인은 충청도의 낱말 가운데 ‘올뱅이(다슬기)’, ‘새뱅이(새우)’라는 단어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제천과 인접한 경북 영주지역에서도 ‘올뱅이’, ‘올갱이’라는 방언이 나타난다. 옹솥에 펄펄 끓인 새뱅이국과 올뱅이국을 끓여 먹으며 강에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한편의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서 ‘ㅂ’과 ‘ㄱ’은 쉽게 교체된다. 소위 음운교체라고 한다. ‘올뱅이’와 ‘올갱이’는 ㅂ과 ㄱ의 교체형으로 ‘붚(붑)북(鼓)’의 변천과 같은 예이다. “물놀이에 함께 가지 못하고/혼자 집을 보고 있노라니/부아가 치밀었던가/옹솥 안에서 ‘새뱅이’들이/또 한 번 끓어오르며 왁자지끌하였으나/늦은 저녁으로 먹은 ‘새뱅이’국맛은/여전히 달랐다.”라며 충청도 제천의 대표적인 방언 어휘인 ‘올뱅이’와 ‘새뱅이’로 맛있는 한 상의 저녁상을 차려낸다. 오탁번의 산문집 ‘두루마리’(태학사, 2020)를 보면 그가 충북 제천 방언을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라고 ‘자뻑’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방언으로 언어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는 참 아름다운 시인이다. 그의 시 ‘잘코사니’에 나오는 ‘잘코사니’는 얄미운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봉변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길 때 내뱉는 제천 방언이다. 경상도 방언으로는 ‘아방신이다’, 서울방언으로는 ‘고소하다’정도의 말맛을 가진 단어다. 탁월한 방언 시인이기도 했던 오탁번은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에서 ‘쥐코밥상’, ‘늙정이’, ‘야젓하게’와 같은 제천 입말을 고급진 표준어 사이에 이정표처럼 끼워넣어 고향으로 간다. 오탁번 시인은 과연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던”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마치 자신의 모어, 살가운 사투리에 살짝 갸울은 시인이었다. ‘눈부처’의 “이승 저승이/입술에 닿는 술잔만큼/너무 가까워/동네사람들은 함빡취했다/-잔 안 비우고 뭐해유?/한 씨에게 자꾸만 술을 권했다”에서처럼 쉬 이승을 떠난 고향사람들을 회상하듯 자신도 입술에 닿는 술잔만큼 가까운 저승으로 떠났다. 노루잠에 개꿈을 꾸듯 살았던 이승의 그리움을 뒤로 밀어두고. 필자는 오탁번 시인이 남긴 방언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시어로 방언을 마구잡이로 노출시켜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시들은 오히려 방언을 오염되고 누추한 변종으로 추락시킨다. 이에 반해 오탁번은 방언 시어를 적절히 끼워넣어 시적 미의식을 감쇄시키지 않는 절대 균형을 이룬다. 섬세한 절제의 언어 수단으로만 방언을 시어에 사용했다. 방언시어로 언어의 원형을 복원하고 또 그 원형의 상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표준어가 고급진 언어라면 방언은 그 고급진 언어로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09-23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년을 맞아 2025년 9월 1일부터 1년간 도쿄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출국을 앞두고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지진에 대한 염려였는데요. 모두 알다시피, 노토 반도 대지진으로 2024년을 맞이한 일본에서는 지난 8월에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8월 8일 미야지마 지진을 시작으로, 9일 가나가와현에서, 10일 홋카이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던 겁니다. 이로 인해 난카이 해곡에서 100~150년 간격으로 발생한다는 대형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일 ‘난카이 해곡 지진 주의’를 발표하기까지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은 지진에 대한 걱정을 참 많이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저도 나중에는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요. 한국인에게 일본과 지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발생한 간토대지진의 참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일본에 입국한 날은 101년 전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이었습니다. 간토대지진은 참으로 끔찍한 진재(震災, 지진에 의한 재해)였는데요.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도쿄를 비롯한 간토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도쿄제대에 설치된 지진계가 고장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수십 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요. 더욱 끔찍했던 것은 이후 계엄령이 내려지고, 일본군과 경찰들의 직접적인 가담 내지는 방조에 의해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학살은 주로 자경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심지어 ‘임신부처럼 배에 폭탄을 넣고 다니며 일본인을 죽인다‘ 등의 유언비어를 빌미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겁니다. 시인 쓰보이 시게지는 시 ’15엔 50전(十五円五十錢)‘에서 그 날의 참상을 “나라를 빼앗기고/말을 빼앗기고/최후에 생명까지 빼앗긴 조선의 희생자여/나는 그 수를 셀 수가 없구나”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일본에서의 첫 번째 주말을 맞이한 제가 향한 곳은 스미다구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이었습니다. 요코아미초 공원은 간토대지진 당시 공터(본래는 일본 육군 피복창터)여서 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다가, 오히려 갑자기 닥쳐온 열폭풍으로 무려 3만8000명이 희생된 곳입니다. 여기에는 웅장한 일본풍의 도쿄도위령당이 있었는데요. 그 옆에 검은 색의 ’관동대지진조선인희생자추도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추도비 옆에는 ‘관동대진재 조선인희생자 추도행사 실행위원회‘가 1973년에 세운 비석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 비석에는 “1923년 9월 일어난 간토대진재의 혼란 속에서 그릇된 책동과 유언비어로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들은 50주년을 맞아 조선인 희생자를 마음으로부터 추도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올해도 9월 1일에 추도식이 열렸으며, 제가 이곳을 찾은 9월 7일에도 여전히 꽃과 술병들이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사이타마현 지사와 지바현 지사가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 행사에 처음으로 추도 메시지를 담은 조전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9월 1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101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자민당 출신 전직 총리로는 처음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행사 이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며 ‘한·일 공동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6600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전직 총리가 이를 ‘사실’로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았네요. 특히 2016년까지 도쿄도지사가 매년 추도문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2017년 취임 이후 올해까지 단 한 번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추도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본래는 요코아미초 공원 근처의 스미다가와 강변도 걷고, 아사쿠사 관광지까지도 가볼 생각이었으나, 100년 전의 그 처참한 만행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부인의 폭력 때문인지 갑자기 너무나 큰 피로를 느꼈습니다. 급하게 연구실로 돌아왔지만, 토요일이어서 연구실 건물 자체가 출입불가였습니다. 할 수 없이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 놀랍게도 그곳의 1층 전시 코너에서는 ‘눈앞에서 펼쳐진 학살의 기록과 시민의 대처-관동 대지진 당시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뻔한 사람들을 애도한다’는 이름의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진재발생, 그리고 사람들은…’, ‘일고생이 본 관동대진재’, ‘진재 당시의 조선인 유학생’, ‘학살의 실태를 조사하다-조선인 조사단과 요시노 사쿠조’, ‘진재에 대한 끊임없는 증언과 그 후’, ‘잊지 않기 위해-시민의 활동과 추도회’라는 여섯 개의 세부 코너에 총 34개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간토대지진과 관련한 역사적 증언들과 자료들을 살뜰하게 모아 놓은 전시였습니다. 그 전시를 보고 숙소로 걸어가면서, 어쩌면 절망도 그리고 희망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24-09-23

국회의원 특권,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세계 최고의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정치수준은 낙제점이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고효율의 정치’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극심한 정쟁을 하면서도 자기들 이익을 위해 야합하는 표리부동한 정치행태를 보라. 특권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국민의 공복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은 특권 폐지의 당위성을 말해준다. 국회의원 특권의 무엇이,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첫째, 특권·특혜가 너무 많아서 권력이 봉사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불체포특권·면책특권에다가 연봉 1억6000만원, 명절휴가비 850만원, 입법·특별활동비, 유류비·차량유지비, KTX 특실과 비행기 비즈니스석 제공, 연 2회 해외시찰, 9명의 보좌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180여 가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한국보다 부유한 프랑스·독일·스웨덴·일본 등 정치선진국들보다도 특혜가 더 많으니 어이가 없다. 정치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정치를 ‘봉사와 희생의 직업’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직업’으로 인식하느냐에 있다. 전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보좌관 없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후자는 보좌관이나 비서에게 시켜놓고 전용승용차로 경조사 다니면서 폼을 잡는다. 정치선진국은 의원 보수를 외부 독립기관에서 결정(영국·스웨덴·캐나다)하거나, 경제지수와 공무원 보수액에 연동해서 결정(미국·독일·프랑스)하는데 반해, 한국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아닌가. 둘째, 특권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한국정치가 정상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권 자체가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특권·특혜가 많을수록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민의 공복이 되기 어렵다. 특권을 잡기 위해 정상배(政商輩)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고, 권력에 줄서는 정실주의 정치가 만연한다. 특권을 폐지해야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치꾼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정치인들이 정도정치를 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카르텔을 해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한국정치발전의 길이다. 셋째, 국회의원들이 특권 폐지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그들에게 특권 폐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2023년 국회의원들에게 등기우편으로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총 300명 중 6명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모두 응답을 거부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선거 때만 특권 폐지를 약속하는 그들에게 맡겨두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니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민이 특권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특권에 취한 그들은 절대로 깨어나지 않는다. 주인(국민)이 언제까지 머슴(국회의원)에게 농락당하고 살 것인가. 주인이 현명해야 머슴을 잘 부릴 수 있다.

2024-09-23

멀리 있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정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정치 실망의 시대’를 넘어 ‘정치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는 2024년 가을의 초입이다. 여당과 야당의 화합과 협치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국회의원과 장관이 마주 서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저 멀리 자취를 감춘다. 오직 서로에 대한 비난과 상대방을 향한 질타와 질책만이 신문과 방송의 정치 관련 뉴스 헤드라인에 횡행한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와 대정부질문을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이 상황이 개선되거나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을 펼친다.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섭공문정 자왈 근자열 원자래(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2500년 전 공자는 “바람직한 정치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자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겐 기쁨을 주고, 멀리 있는 사람들을 곁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기쁨을 선물하고, 멀리서 찾아가 들어볼 만한 고담준론을 해줄 수 있는 정치인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너나없이 참혹한 심경이 된다. 공자가 살아온다면 끌탕할 일이다. 정치에서 희망이 사라진 시대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근자열 원자래’ 같은 현자(賢者)의 정치철학을 가지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틀 안에서 자기편만을 보고 정치하지는 말라는 것, 한 번쯤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것, 그게 멀리 있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정치가 될 것이니. 이 정도 부탁도 들어주기 어렵다면 정말 심각한 일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23

통일정책은 국민 합의가 먼저다

김진국 고문 “통일 하지 말자”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일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라면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는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일 하지 말자”라고 외치니 많은 사람이 놀랐다. 지난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은 통일 관련 구호나 조직을 모두 없앴다. 동포가 아니라 ‘원쑤’가 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일제히 김정은 주장에 장단 맞춘다고 비난했다. 해방 정국에서 통일은 절대 가치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비한 역사전쟁은 지금도 뜨겁다. 우파인 백범까지 내세우며 통일을 강조하던 진보 진영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2 국가론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암수(暗數)가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평화통일’은 금기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선언을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을 처음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 총재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녹여냈다. 이것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 원칙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미루자는 얘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두 개의 나라는 아니지만,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 두 나라로 인정받았다. 특수관계를 내세워 관세 등에서 국제사회의 특혜를 요구했다. 임 전 실장 발언에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감춘 비수와 그에 휘둘릴 가능성이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남쪽의 좌파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이에 동조했다.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 통일 한반도’는 자유의 이념으로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쪽의 젊은이들은 이념 전쟁에 회의적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기보다, 굳이 통일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4월 20·30대 남녀를 조사한 결과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61%,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였다. 통일부와 교육부의 22년 통일교육실 태조사에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초·중·고생은 16.2%에 불과했다. 지난해 민주평통의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0%가, ‘단일국가 통일 모델’를 28.5%가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잘못된 안보 전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하면 자멸(自滅)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초당적인 노력 덕분이다. 통일·안보·외교를 다루는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초당(超黨)적 대처는커녕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핵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은지 참담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2

안동시 3대 특구로 미래 100년 위한 발판 마련

권기창 안동시장 지난해 정부의 국정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을 위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함께 지방시대위원회가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지자체가 직면한 지역소멸, 인재 유출 등의 문제에 대응하고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기회발전·교육발전·도심융합·문화도시 등 4대 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국토공간의 공정성, 지방분권이라는 중앙권력의 공정성을 토대로 지방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치고 중앙이 지원하는 상향식 균형발전 체계를 만들어 가려는 계획이다. 문화특구와 교육발전특구 지정에 이어 기회발전특구까지 석권한 안동시는, 이를 통해 미래 100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 안동시는 2023년 12월,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계획 승인대상지로 최종 선정됐다. 시는 이에 따라 올해 1년간 예비사업을 추진하고, 연말에 예비사업 추진실적 심사를 거쳐 최종 지정을 받는다. 최종 지정 시 2025년부터 3년간 최대 국비 100억 원을 포함한 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안동시는 ‘유쾌한 놀이문화도시, K-play hub-안동’이라는 비전과 △안동의 놀이, 문화상품화 △놀이로 젊은 문화도시 만들기 △주민참여 K-마을놀이터 만들기 △어깨동무 놀이문화 네트워킹이라는 4가지 목표 아래 전통문화의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사업을 추진한다. 민관 거버넌스를 토대로 안동의 유교·정신문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고 산업화, 관광자원화하며 안동뿐만 아니라 경북 북부지역과 함께 균형발전, 동반성장을 이끌어 K-전통의 관문도시로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선정 올해 2월, 안동시는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으로 예천과 함께 최종 지정됐다. 교육발전특구는 학생 선발, 교과과정 개편 관련 규제 완화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 기반 교육 자율권을 확대하는 지역으로, 안동시는 K-인문(인성)교육 부분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최종 지정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안동시는 최근 선정된 국립안동대와 경북도립대의 글로컬대학30과 경북도청 신도시 개발이라는 이점을 살려 △지자체가 함께하는 온돌(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 △K-인문(인성)교육을 통한 안동·예천형 공교육 혁신모델 정립 △지역기반산업 연계형 인재양성체계 구축을 주요 전략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1차년도 수요자 중심의 교육 및 연구 추진과 2차년도 ‘K-교육혁신모델’창출에 이어 3~5차년도에는 ‘지역사회와 기업이 함께하는 지역 정주 인재양성 모델 안착’으로 ‘공교육 혁신-인재양성-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지역 정주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 기회발전특구 지정으로 3대 특구 석권 산업통상자원부가 6월 지방시대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안동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했다. 기회발전특구는 지방에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재정지원, 규제특례, 정주여건 개선 등을 지원하는 구역이다. 안동시는 풍산읍 매곡리 일대 경북바이오 2차 일반산업단지 내 약 7만 평에 총 5550억 규모의 신규 투자를 바탕으로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신청했다. 시는 바이오·백신 및 헴프산업의 혁신 성장거점을 구축하고, 미래 첨단 바이오산업을 선도하는 기반을 다져 바이오·백신 및 헴프산업의 ‘산·학·관·연 협력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 안동의 미래 100년 초석 안동시는 기회발전특구 지정으로 기업투자를 통해 양질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교육발전특구로 공교육 혁신을 통해 지역 혁신인재를 양성해 지역에 정착시키고, 문화특구로 관광객 증가 및 이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3대 특구의 복합효과로 지역소멸 위기를 벗어나 사람이 떠나지 않고 오히려 찾아오는 새로운 안동을 만들고자 한다. 민선 8기는 대전환을 꿈꾸며, 변화와 개혁을 통해 ‘활력 넘치는 성장도시’, ‘함께 만드는 희망 안동’을 그리며 쉼 없이 달려왔다.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계기로 안동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등 국가적 위기에 대응해 끊임없는 창의와 혁신의 자세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안동의 미래 100년의 주춧돌을 놓겠다.

2024-09-22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 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 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그 여름의 끝’전문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끈질긴 여름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혹 72세가 된 이성복 시인이 27세 때 쓴 시를 만난다는 건 이미 27세에 72세가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도 문제는 시간이다. 백일이 붉은 꽃이라 하여 백일홍이라. 이처럼 한정된 여름의 질은 사랑의 힘을 과장하고, 여름의 양은 사랑의 태도를 흔들며, 여름의 속도는 사랑의 한계를 강화한다.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무사했다”는 진술은 폭풍의 격랑 속에서 삶은 무엇이든지 할 수도 있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증언과도 같다. 이즈음 긴 폭염 한 가운데 서 있는 백일홍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목백일홍은 여름만큼이나 힘이 세다. 폭풍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반복된다. 삶의 고통 또한 늘 그렇게 반복된다. 그럼에도“나”는 쉬이 절망하지 않을뿐더러 장난처럼 붉은 꽃을 매달았다고 했다. 이쯤에서“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라고 했던 줄리언 반스의 단 하나의 질문을 대입해 보면, 화자는 마치 폭풍 한 가운데서 “나무 백일홍”이 무사했듯“나”역시 쓰러지지 않고 견뎌내었다고 결연히 답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가 그렇다. 나무 백일홍이 폭풍을 견디고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피우는 것처럼 화자는 절망을 “장난처럼 붉은 꽃들”의 비유처럼 여유롭게 환치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사고와 감정을 유발하는 원동력을‘욕동’이라고 했다. 자아와 동일시된 나무 백일홍의“억센 꽃”은 폭풍에 대한 응전이며, 죽음 욕동을 극복한 삶을 욕동하는 표징이라는 독해는 강인하면서도 연약하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이 피어 있는 두어 평 좁은 마당은 퍽 몽환적이다. 치열한 싸움 끝에 피 냄새를 풍기는 살의의 풍광 속에 사랑은, 삶은 위치한다. 그곳이 화자의 고통스런 내면의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시가 틈입할 자리이지 않겠는가. 삶 속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들이 순하게 이루어진다면 시라는 공간에 들어올 여지는 없을 테니까. 기실 우리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성을 통해 항구성을 말하는 것,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시가 된다. 이희정 시인 시인은 말한다. 행복 속에 불행이 은거하듯 언어는 양면테이프처럼 “이중 접착제”여서“죄가 없으면 은총도 없다.” 그 구조가 언어의 구조가 된다. 죄가 있어 은총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이의 말처럼 있음은 없음으로부터 온 것인 듯하다. 본래 없음에서 왔다는 걸 알면 쉬울 것이다. “존대받으려, 사랑받으려 하면서 홀대받을 짓만 골라 하는데 그게 바로 존대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도 그렇다. 욕망 혹은 그리움의 대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언어화하는 것이다. 충족된 것들은 언어의 옷을 입지 못한다고 했다. 이 시에서 절망의 끝은 다른 세계로의 이환을 예비한다. 왜 유보되거나 지연된 것들만 언어의 옷을 입을까. 그것이 그리움의 문법인 것이고, 사랑의 불가능과 불가피성은 시간의 유한성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도 곧 사라져 갈 테니까. 그 부재와 불구의 문법인 절망이란 단어로 물리적인 유한성조차 항구성으로 탈바꿈하는 장치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마침내“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다”는 고백은 삶이란 시간 속의 어둠을 몰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언어는 시간의 플롯에 잘 어울리는‘미완’과‘불가능’의 꼭지점에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꿈을, 삶을 쓰고 있다.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2024-09-22

지방과 서울의 집값 희비 쌍곡선

우정구 논설위원 9월 중 대구지역의 아파트값이 44주째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9월 셋째 주 대구지역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08%가 떨어졌으며 하락 폭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반면에 같은 기간에 서울의 아파트값은 0.16%가 올랐다. 2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지역도 서울지역 아파트값 상승에 영향을 받아 지속 상승세에 있다. 특히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역인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집값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분당지역의 한 아파트는 지난 4월에 비해 3억원이 올라 거래됐다는 뉴스도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턴가 서울의 똘똘한 집 한 채가 부동산 투자대상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국토면적 세계 108위 좁은 나라에서 서울과 지방의 집값이 이처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 서울은 아파트는 물론 빌딩, 상가 등 닥치는대로 부동산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지역 아파트 매입자 4000여 명 가운데 1000여 명이 서울 외 지역 거주자로 밝혀졌다. 반면에 대구지역은 1만가구가 넘는 미분양 아파트와 준공 후 미분양인 악성 미분양 물량이 겹쳐 집값이 몇 년째 내리막길이다. 중개업소 등 관련 산업계가 벼랑 끝에 몰려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 잡는다고 지방까지 규제로 붙잡고 있으니 집 안팔려 이사도 못하는 지방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질 판이다. 지방은 안중에 없는 정부 정책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실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2

불같은 추석을 보내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년에 네 번은 서울에 간다. 부모님 기일과 추석, 그리고 설 명절에 상경한다. 열차를 타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타자(他者)가 옆자리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어졌기에 승용차를 이용한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과일 같은 제수(祭需) 물품을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3년 전부터 홀가분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이번 추석에는 동생들과 함께 생선 횟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로, 예정보다 하루 일찍 운전대를 잡는다. 312㎞를 4시간 반 운전하여 당도한 동생 집에서 잠시 여독을 풀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상당히 넓은 횟집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불경기라고들 하지만 역시 되는 집은 되는 것이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매양 다르게 굴러간다. 그렇게 3박 4일의 추석 서울 나들이가 시작된다. 나와 두 동생, 계수와 내 큰아들 모두 다섯 사람이 주고받는 지난 시절 이야기가 두 시간 남짓 이어진다. 화제 중심에는 언제나 부모님이 자리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두 분의 행적이나 사건은 조금씩 엇갈린다. 불완전한 기억 때문이다. ‘라쇼몽’(1950)에 그려진 것처럼 인간은 선택적 기억에 의지해 살아간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갈라치면 나는 거의 매번 두 분 묘소를 찾는다. 충북 음성군에 자리한 ‘대지공원묘지’를 22년째 찾아다니고 있다. 한여름처럼 불같은 서울 날씨를 뒤로하고 지난 수요일 오전 7시 13분 운전을 시작한다. 간밤에 길 떠날 만반의 채비했기에 따로 시간을 축낼 일은 없었다. 다음날 일정을 전날에 숙고하면 삶은 그만큼 여유로워진다. 동생이 준비해준 물품 덕에 두 분께 올릴 제수가 풍성하다. 드넓은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영령은 어제 온종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분망했을 터. 하지만 오늘은 드물게 찾아오는 이들을 제외하면 비둘기나 까마귀 등속이 전부다. 묘소 경내를 정리하는 노동자들의 분주한 발길과 고함이 가끔 들릴 뿐이다. 망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 지난 6월 이후 일어난 일에 관해 말씀드리고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전송한다. 저 아래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허위허위 걸어 올라왔기로 온몸이 땀범벅이다. 하얀 고무신이 시멘트 콘크리트와 만나면서 딱딱한 질감을 선물한다. 아득한 동녘 산등성이 쪽으로 아파트 군락이 보인다. 거기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한숨과 걱정이 한창일 것이다. 하지만 망자들의 공간은 고요만이 감돈다. 노자(老子) 말처럼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근간이 된다. 나의 피부와 허연 머리털과 얼굴을 무참하게 들쑤시는 무지막지한 햇살은 얼마나 장려(壯麗)한지,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9월 중순의 태양이 아니라, 8월 초순의 햇살처럼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무엇이 우리의 영원한 태양을 저토록 이글거리도록 했을까?! 하라리 말처럼, 사피엔스는 자발적인 소멸의 길을 밟다가 정말 ‘데우스’가 되기로 한 것일까?! 두 계절이 바뀌면 나는 다시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표표히 귀로에 오를 것이다. 생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복은 살아있음의 진정한 증표다.

2024-09-22

제조 휴머노이드시대 작업자 역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대부분 눈으로 보이는 것인 외모나 태도 행동으로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사려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않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가지를 놓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필자는 단연코 보이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불교에서도 눈을 표현하는 용어로 보이는 것인 육안을 포함하여 보이지 않는 지혜의 눈이 천안 혜안 법안 불안으로 휠씬 많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기업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은 기업이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윤창출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기업에 속해 있는 직원들의 역량으로 인재양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企業)이라는 한자도 사람(人)이 일(業)로 머무른다(止)로 풀이된다. 사람이 일로 머무르기 위해서는 먼저 보이는 것인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며 기업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인 직원들의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에 지속적인 학습과 인재양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제조현장에서 인재란 생산과정에서 돈이 되는 것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거나, 돈이 안되고 원가만 상승시키는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제조 현장의 지능화 로봇화가 진행되면 지금까지는 운전과 조작 조치를 잘하는 기능이 필요하였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지능화 로봇화되어 기계가 일을 대부분하는 현장에서는 사람은 운전 조작하는 기능적인 측면 보다는 생산과정에 낭비를 개선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슈퍼바이저(Supervisor) 역할로 변화가 필요하다. 제조 현장의 직원이 슈퍼바이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산과정에 고객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 일과 가치가 없는 낭비를 제대로 인식하고 발굴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즉 지능화 로봇화 된 단독 기기의 원리와 작동 여러 대의 로봇이나 기계가 연동하여 움직이기 위한 조건과 작용을 이해하고 생산 과정에서 가치가 없는 낭비적인 움직임을 찾아내어 연속 흐름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매우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 대의 로봇이나 기기 작업자의 움직임을 보면서 낭비적인 움직임을 이해하고 찾아내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현재 휴머노이드와 같이 AI를 탑제한 로봇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는 기술이 더 발전하여 사람과 설비가 같이 하던 생산을 지능화된 로봇이 사람의 일까지 대체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조 현장은 재료가 투입되어 제품이 되는 과정에 로봇의 동작 측면의 낭비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며 이는 원가 차이로 나타나게 되고 제조경쟁력이 된다. 결국 같은 로봇으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제조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은 변함없는 사람의 역할이며 지능화되고 로봇화 될수록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낭비발굴 능력과 개선역량이 요구되며 변화되는 현장을 빠르게 학습하고 개선하는 능력이 곧 개인의 경쟁력이 되는 것은 변함 없을 것이다.

2024-09-22

나 혼자 살 수도

유영희 작가 한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실히 명절 풍속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민족 대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해서 며느리가 꼭 시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며칠 전, ‘가족×멜로’라는 특이한 제목의 드라마가 종영했다. 여기서 가족은 아빠 변무진, 엄마 금애연, 딸 미래, 아들 현재, 이렇게 네 명인데, 변무진이 잦은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한 후 죽은 줄 알았다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침 종영한 날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일요일이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금애연은 11년만에 나타난 변무진을 생각보다 빨리 수용하지만, 딸 미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발자전거를 탈 무렵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자기 때문에 아빠가 야구 선수를 포기했다고 오해한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이 우여곡절 끝에 변무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흥미 있었지만, 변무진과 금애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결합하지 않는 결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엄마 금애연은 홈쇼핑 모델이 되어 수입이 늘자 가족에게 상의하지 않고 자동차를 장만한다. 50 넘은 여자가 누구의 도움 없이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설정이다. 보통 자동차는 남성성을 의미하는데, 금애연처럼 소극적으로 살던 여자가 자동차를 자신의 힘으로 장만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앤소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에도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다 지친 엄마가 가출했다 돌아와서 한 일이 자동차를 손보는 것이었다. 딸 미래는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독립 가구가 된다. 비혼주의를 고수하지만 오래도록 연애하기로 한 남자친구는 있다. 네 명의 가족 아닌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것으로 가족의 멜로를 완성한다. 두 주인공이 다시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것은 각자 경제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금애연은 그동안 자신의 삶이 너무 의존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고, 변무진은 그런 금애연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했기 때문이다. ‘가족×멜로’ 드라마의 변무진과 금애연의 선택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예고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마주 앉아 밥 먹는 부부 이상으로 사랑하고 신뢰도 회복했으니 재결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부부가 되지 않고 따로 사니 말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성격, 지향에 따라 어떤 가족 형태를 선택할 것이고, 그래서 가족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도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결혼 당시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살았고, 배우 오나라도 한 사람과 24년째 연애 중이라고 한다. 사회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사회 변화를 체감한다.

2024-09-22

찬밥 신세 된 쌀밥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과 일본, 중국 일부 지역에선 자포니카종의 쌀밥을 먹는다. 쫀득쫀득하며 찰기가 도는 쌀이다. 씹다 보면 은근히 단맛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동남아 등지에서 먹는 안남미라는 별명의 인디카종 쌀은 그렇지 않다. 찰기가 없고 밥알이 흩어진다. 접시에 놓인 쌀밥을 젓가락으로 마시듯 먹는다. 찰지고 맛있는 우리나라 쌀이 소비가 영 안돼 문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소비가 줄어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골몰한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으로 나타났다. 쌀 소비 관측을 시작한 196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쌀값도 작년 10∼12월 80kg들이 한 가마가 평균 20만2797원 하던 것이 지난달에는 17만6628원으로 뚝 떨어졌다. 쌀값이 10달 넘게 폭락하자 성난 농민들이 추석을 앞두고 논을 갈아엎는 일까지 벌어졌다. 쌀 재배 면적을 줄여도 선진농법의 도입으로 생산량은 오히려 더 늘어나 쌀값을 안정시키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소비량 기준으로 한 사람이 하루 밥 한 그릇도 채 먹지 못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우리 속담에 한국인은 밥 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기운이 없어 축 늘어졌을 때 밥 굶지 말고 다니라는 위로의 말이다. “밥 심이 보약”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요즘이다. 정부가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쌀소비 촉진을 권장하고 있으나 효과는 별무인 모양이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쌀을 주류 등 식음료 재료로 권장하고 있는데 그것도 신통찮다고 한다. 쌀밥 먹는 것이 소망인 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젠 쌀밥이 찬밥 신세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19

지방시대 명절날, AI가 밉다

정태옥​​​​​​​​​​​​​​​​​​​​​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나는 경북 영일군(지금은 포항시)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1~2학년 때쯤 다니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 졸업식이 열렸다. 이 골짝 저 골짝 촌로들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식장을 가득 채웠다. 교장 선생님의 거창한 식사에 이어 5학년 언니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누나의 답사(答辭)가 이어지는데 온 식장 안이 눈물바다였다. 아예 엉엉 우는 졸업생 누나들에 영문도 모르게 나도 따라 울었다. 졸업하는 언니들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여학생의 초등학교 졸업은 사실상 사회생활의 끝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집안일을 돕다가 시집가서 육아와 가사 일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70년대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그 서럽던 소녀들이 도회지로 대거 몰려나와 섬유와 전자공장에 취직하고 공장 부설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시골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명절이 되면 그 누나들은 선물셋트를 들고, 형님들은 포니 자가용을 끌고 고향을 찾아왔다. 명절날 시골은 그야말로 잔치집이었다. 그들이 간 곳이 굳이 서울 구로공단이나 성수동 공장도 아니었다. 대구 제일모직과 구미 삼성전자, 울산 자동차 공장이었다. 21세기를 AI가 주도하는 첨단산업시대라고 한다. IT(정보), CT(통신), BT(바이오), NT(나노), ET(엔터테인먼트)가 주력이다. 이들 산업이 지방 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20세기의 주력산업이 섬유산업을 거쳐 철강 자동차 조선 전자 화학 등 중화학 산업이다. 중화학 산업은 본사는 중앙 정부와 가깝고, 해외 무역에 유리한 서울에 둔다고 해도 공장은 지방에 두었다. 넓은 공장부지가 필요하고 항구가 가까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수도권 집중이 심했지만 울산 포항 구미 거제 광양 같은 곳도 번성했다. 한때 울산의 GRDP가 서울을 능가하고 거제의 물가가 서울에 버금갈 경우도 있었다. 불균형적이기는 해도 지방도 개평으로 먹고살만 했다. 첨단산업시대에는 지방이 없다. 일단 대규모 공장용지가 필요하지 않다. 공장이 필요하더라도 굳이 애국심에 불타 지방에 지을 필요가 없다. 베트남이나 폴란드에 지으면 된다. 첨단산업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 좋은 인재다. 인재는 좋은 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소득 수준도 높아 여가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에 살기를 원한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폐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간 청년도 수도권 집값이 너무 높아 결혼하기가 힘들고 애기 키우기가 힘들다. 출퇴근하기 힘드니까 선진국 문턱이라지만 인생은 고달프다. 지방은 노인들만 살아서 마을회관 청년회장이 68세다. 복숭아꽃 살구꽃 꽃대궐 우리 고향에는 스러져가는 빈집과 기름진 문전옥답에 녹음방초만 우거져 있다.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그 비용을 지방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지방에 더 좋은 대학을 만들어 머리 좋은 인재들을 지방에서 키우고, 그 인재들이 지방에서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왜 국민이 다 같이 내는 세금으로 국립 미술관,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를 서울에만 짓는가. 나는 보름달이 훤하게 뜬 명절날 AI가 밉다.

2024-09-19

소나무숲 단풍이 들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 추석은 30도가 넘는 더위에 태풍도 멀리 비껴가 버린 마른 한가위였다. 저녁 바다 위로 떠오른 슈퍼문을 보러 바닷가로 가봤더니, 명절 인파가 북적이는 달밤의 해변은 가을 정취로 가득하고 작은 소나무 숲은 보름달의 고요한 빛을 품고 있었다. 다음날 부모님 산소에 갔다 오기 위해 아침에 서둘러 나섰다. 대구 팔공산 줄기를 찾아가는 먼 길은 딸과 아들이 번갈아 운전대를 잡고 나는 아내와 함께 뒷자리에 평안하게 앉아 창밖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는 풍경을 즐기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붉은색, 아니 갈색의 단풍(?)이 든 소나무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산소를 오르는 길목의 산에는 한 자락 기슭 모두 초록색이 아니었고 산꼭대기까지 단풍이 들어있었다. 아름다운 단풍은 아니다. 근래 번지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材線蟲)에 의해 누렇게 말라버린 탓이다. 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발견된 이후 그 피해가 늘어나며 한동안 주춤했다가 2년 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142개 지자체에서 860만 그루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지난 2년간 90만 그루가 또 갈색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가 계속된다면 70년대 이후 치산녹화 10년 계획으로 산림녹화 운동을 벌여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산림 증가율 1위로 선정했던 삼천리 금수강산의 소나무가 절멸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소나무 병은 1㎜ 크기의 선충이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에 의해 소나무 잣나무 곰솔 등에 옮겨지고 그 중심부의 수관(水管)을 막아 단시간에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인데, 일본 중국 타이완 및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피해가 늘고 있으며, 중국은 모두 베어내고 일본은 홋카이도를 제외한 곳에서 소나무가 사라졌다고 한다. 경북은 경주와 영덕에 피해가 큰 반면 영양과 울진은 현재 미발생지역이라니 다행이다. 포항과 동해안은 지난해 60여만 그루에 발생하여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이다. 불국사 주변에도 번지고 있어 걱정이고 감포 도로변의 폐목 등이 쓰러져 민가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해안이 이암토질의 경우 산사태도 우려되는 만큼 산림청에서는 피해 등급을 1~5단계로 하여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위험예보를 하고 있다. 2005년에 제정된 소나무방제특별법에 따라 병든 나무는 벌목, 파쇄, 소각, 열처리, 훈증 등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텃밭인 푸른 소나무숲이 사라지지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재선충 방제는 베어내는 벌목이 최선이겠지만 잘못 건드리면 확산의 우려가 있으므로 솔수염하늘소가 성충이 되기 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 벌목하는데 예산 부족 등으로 모든 소나무 방제는 불가하다고 본다. 또 벌목한 후에도 이동을 단속하고 베어진 나무는 녹색 비닐로 덮어 훈증을 하게 되는데 ‘나무의 무덤’이다. 약으로 나무에 주사하기도 하고 다른 곤충의 천적을 이용하기도 한다. 송림이 사라지면 송이버섯도 자취를 감추게 될까? 산소에 술 따르고 가족 오붓이 묘원을 내려오는 길 주위에 붉게 타버린 소나무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푸른 소나무 숲과 함께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가을을 걷고 싶다.

2024-09-19

포항에 살고 싶지만, 포항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녀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 “포항이 너무 좋아서 포항에 살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어요” 얼마 전 포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에 직장을 구해서 떠난 여성 청년이 한 이야기다.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주변에 포항이 좋아서 포항에 살고 싶은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여성 청년들이 제법 있다. 포항에 일자리가 있다면 포항에서 결혼도 하고 살겠다는 그녀들의 바람은 좀처럼 이뤄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포항은 전통적으로 철강 산업 위주로 남성형 일자리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남성 청년들의 유출은 없을까? “의원님! 포항에 좋은 여성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남성 청년들이 포항을 떠나지 않습니다. 남성 신입 사원이 입사해도 맞벌이 부부 경우 여성 일자리가 부족하니 신입 사원의 퇴사가 잦습니다.”라는 포항의 한 대기업 간부의 말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지자체마다 인구 문제는 당면 과제 중 하나다. 문제는 포항의 경우 인구소멸 위험 지역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구 측정값인 ‘소멸위험지수’ 산출 방식이다. 이 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누어 산출한다. 그런 점에서 포항이 소멸 위험 지역에 진입한 것은 여성 청년의 유출이 심각하며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포항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여성 청년 일자리 대책’과 관련해 포항시장에 질의했고 최근 포항시에서 ‘포항시 여성 청년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실시했다. 이번 용역을 수행한 한동대 연구진은 “20~39세 여성 청년 인구 증감은 지역 소멸의 바로미터인 만큼 포항시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여성 청년을 강조하는 것이 여성에게만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역차별이 아니라 남성 청년에게도 적용되는 공식이다. 포항에 여성 청년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곧 저출생과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여성 청년들의 경우 포항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수도권과 비교해 정주 여건이 좋아서 포항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공과 연관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보수적인 지역 정서와 안정적인 여성 일자리 부족 등으로 비싼 집값을 걱정하면서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이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포항시에서는 민간 기업과 함께 지역특화 산업과 연계한 여성 청년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함께 여성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과 지역 산업을 연계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고, 여성 청년이 포항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굳이 여성 청년 일자리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라거나 ‘왜 여성 청년 일자리를 증가해야 하나요?’라는 원점으로 돌리는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정책 접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제 포항시에서는 “포항이 좋아서 포항에 살고 싶지만, 포항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수 있길 바란다.

2024-09-19

울릉도 교통약자의 안전과 불편해소기대…울릉도 교통 전반에 대한 진단 필요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군의회가 최근 임시회에서 통과시킨 ‘대중교통운송사업의 재정지원’에 관한 조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먼저 이 조례는 누구를 위한 조례인가. 조례는 보편타당한 권익과 주민의 불편해소가 가장 우선이 돼야 한다. 따라서 대중교통 관련 조례는 울릉도대중 교통이용자들의 불편해소와 안전이 최우선 돼야 한다. 조례는 어느 특정인을 도와주거나 규제를 위해 만들면 안된다. 보편타당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울릉군의 차량 등록 대수가 6600여 대, 울릉도 세대수는 5560세대다. 1세 대당 1대가 넘는다. 그러면 대중교통을 누가 이용하는가. 운전면허가 없거나, 나이 많은 어르신, 학생, 군인들이다. 또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 중 자가용,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는 개인여행객, 노약자, 학생 등 교통 약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경북도내에는 청송, 봉화군이 군내 이동 마을버스를 무료운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완도, 진도에 이어 영암군도 시행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이용객이 늘면서 자가용 증가 둔화, 교통안전, 주차난 해소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울릉군은 관광지다. 따라서 가장 먼저 시행해야할 지역이다.  교통 약자의 안전, 편의성도 있지만,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의 편리, 안전한 이동도모가 울릉도 전체 교통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울릉도는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주차장을 만들 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다. 도로도 비좁다. 대중교통이 편리하면 자동차 구입이 둔화한다는 연구조사결과도 있다.  그런데 이번 조례안의 입법 취지가 건전한 교통문화 정착 등 대중교통의 발전을 위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용은 전부 규제 또는 사업자 부담이 늘어나도록 되어 있어 이용자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사업자를 배부르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통 약자들과 관광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부당이익 취하는 데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교통 약자들이 불안, 불편한 것은 더욱 더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울릉도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볼썽사납다. 차체가 부식되거나 낡아 곧 부서질 듯한 폐차수준의 차량이 운행되고 있다. 위험천만하고 불안해 보는 사람이 위험을 느낄 정도다.  모든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이용에 불편을 느낀다면 왜 그런지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반드시 살펴보고 개선책을 찾는 것이 순서이다.  이번 조례는 울릉도 대중교통을 더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잘못된 법안이다. 특정사업자에게 지원이 싫으면 아예 공영제로 하면된다. 정부가 울릉군민들에게 여객선비를 7천원만 내게하고 5만7000원을(선박에 따라 다음) 세금으로 지원한다. 이는 선박회사를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서민들이 이동권보장과 섬 생활의 불편을 없애주고 정주여건을 개선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번 조례를 울릉군수의 재개의를 통해  울릉도 교통 약자가 안전,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100만 관광시대를 앞두고 주차난 해소 등을 위한 울릉도 내륙교통의 대 전환 진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09-19

K2군공항 이전사업, 정부가 나서라!

이재혁 (사)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현재 경제 상황과 고금리의 영향으로 인한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K2군공항이전사업의 사업시행자인 대구시가 사업대행자(SPC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그러므로 사업방식을 정부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하거나, 최근 경북도 이철우 도지사가 제안한 신공항 주변 SOC사업 연계, 지자체의 SPC 출자 등을 정부가 적극 검토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K2군공항 이전사업의 종전부지 지자체인 대구시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8조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되며, 이전사업을 대행할 사업대행자(SPC 사업자)를 지정할 수 있다. 작년 연말까지 사업대행자를 지정하기로 계획했지만, 지난 11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SPC 사업자방식은 이자만 14조 8000억원이 들고 적자가 8조원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자금을 장기저리로 빌려 대구시가 단독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SPC 사업자 선정이 어려운 현 상황을 솔직히 밝히고 정부(국방부, 국토부)와 관련 지자체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용역 결과라고 밝히며 사업비 및 이자 과다발생, 적자 등의 이유로 사업대행자를 선정하지 않고 대구시가 단독으로 이전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시는 경북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발언이나, 의성군의 요구들은 뗏법으로 사업을 방해하고 향후 토지 수용할 때 드러눕고 가스통으로 방해한다는 식의 발언과 태도는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을 일으킬 뿐 사업 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군위군이 여객터미널을 요구했듯, 의성군도 화물터미널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여객터미널과 화물터미널의 입지를 의성군과 군위군의 접경지역에 각각 배치했으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공동 합의 정신에도 부합돼 현재와 같은 갈등과 논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간과하고 현재의 이전지역이 무산되면 차순위 후보지인 군위군 우보면으로 변경 가능하다는 대구시의 주장은 특별법상이나 군공항이전과정에서 대구경북녹색연합이 국방부와 수많은 협의 과정에서 파악한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주장이다. 공항 이전 부지는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이전부지 선정위원회’에서 선정되며, 종전부지 지자체인 대구광역시가 이전 부지에 대해 건의는 가능하지만 임의로 변경하거나 선정하는 권한은 없다. 국방부는 군공항이전부지 선정을 위해 예비이전후보지, 이전후보지, 주민투표, 지자체의 유치신청, 이전부지선정위원회의 심의 후 선정 단계를 거쳤으며, 현재의 이전후보지가 무산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단계별로 진행하거나 군공항 이전사업이 장기표류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군위군이 주민투표 이후 승복하지 않고 각종 요구조건을 내놓았을 때도 이미 검토된 내용이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23조와 동법 시행령 제14조에는 민간자본유치사업 지원에 관한 내용에 민간 개발자의 개발사업 촉진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SPC 사업자에 대한 신공항 주변 SOC사업등에 혜택을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 사업시행자도 종전부지지자체인 대구시 단독으로 추진이 힘들다면 경상북도와 의성군, 군위군이 ‘지자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사업에 출자하는 방식도 현시점에서는 좋은 대안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국가안보가 걸린 K2군공항 이전사업과 국가 발전과 지역발전의 미래가 걸린 대구 공항 이전사업을 책임 있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대구시도 협치의 자세로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길 바란다.

2024-09-18

인공지능(AI) 교과서와 디지털 교육환경

장규열 고문 내년부터 AI디지털 교과서가 공교육에 적용된다. 세차게 불어온 온라인과 디지털혁명은 교육현장에도 거센 변화를 불러올 참이다. 교육부장관은 더할 나위 없이 자신에 찬 모습이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섞인 반응도 더러 들려온다. 어차피 온라인이 대세가 되어가는 이즈음에 인공지능 AI가 교육에 활용되는 일은 자연스럽다 해도, 한창 성장발달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AI로 대체하는 일이 과연 긍정적인 교육 효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해외 각국에도 유사한 시도와 정책이 간간이 고려되고 운용되었지만, 우리처럼 전국적인 단위로 전개되는 일은 초유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우선 장점. AI교과서를 도입하면 학습의 개인화가 가능해진다. 학생 개인의 학습데이터를 분석해서 개별적인 학습스타일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게 된다.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극대화하고 자신의 페이스에 맞는 학습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터이다. 또한, 이에 따라 학생에게 제공할 정보와 지식 내용의 업데이트가 가능해서 종이로 만든 교과서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점도 여럿 지적된다. 기술접근성에 있어 디지털기기와 인터넷 연결이 고르게 확보되지 않으면 디지털 격차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교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준비가 있는지도 생각 깊은 확인이 있어야 한다. 교육을 맡아 지식을 전달하고 지적발달 뿐 아니라 인성지도와 과 체력인도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교육의 본질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정보의 보호와 교육관련 데이터의 보안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AI가 수집했을 학생 개인의 학습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기술분야 뿐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숙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터이다. 기술은 문화를 바꾼다. AI가 교육도 바꿀 모양이다. 본격적이며 전면적으로 AI디지털 교과서를 공교육에 적용하기 전에 새로운 기술을 세심하게 살피며 검토하는 사회적 노력이 요청된다. 미국에도 AI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교육플랫폼들이 존재한다. 수학학습플랫폼 드림박스(Dreambox)는 학생의 수학학습패턴을 분석하고 맞춤형 수학교육에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영국에도 AI학습플랫폼 센츄리테크(CenturyTech) 등 디지털학습시스템이 여러 학교에서 시험되고 있지만 전국적인 적용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본,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도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보이면서 AI기술을 교육에 접목시키는 시도들이 있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다. 디지털세상의 원주민인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통 아날로그 일변도의 교육방식은 물론 통하지 않는다. 다양한 온라인환경에 제한없이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않은 과제다. AI디지털 교과서를 교육에 적용하는 일도 검토해야 하지만, 온라인 교육환경을 기초부터 새롭게 쌓아올리는 일에는 생각보다 세심하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4-09-18

다가올 미래의 공포 ‘폭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살아오면서 이렇게 지독스레 긴 더위는 처음이구나.” 아흔한 살 집안 어르신의 한탄 섞인 말에 여든둘 제수씨도, 예순일곱 조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보기 드문 풍경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지속됐다.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낮에는 섭씨 30도 중반을 넘나들고, 잠을 자야할 밤에도 25도를 웃도는 지긋지긋한 더위, 폭염 탓이었다. 추석 차례를 지내야 했던 지난 17일 체감온도는 섭씨 35도. 아침부터 불어오는 뜨겁고 눅눅한 바람에 에어컨을 켜놓고 조상께 절을 올리는 진풍경이 가정마다 펼쳐졌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기온은 경북은 물론, 수도권과 충청, 호남이 예외 없이 유사했다. 올라간 온도는 밤에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여 앉은 피붙이들 목덜미로 굵은 땀이 흘러내렸다. 팔열지옥 같은 무더위에 운동선수와 야구팬이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럴 까닭이 없다.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엔 한국야구위원회 사무국이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2시를 피해 5시로 경기 시작을 늦춘다”는 발표까지 했다. 혹여 발생할 수도 있는 ‘더위 관련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터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이상기온이 3개월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폭염과 관련된 각종 기상청 기록이 연일 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간다. 적지 않은 이들은 쓰러지기까지 했다. 인류가 기후 변화의 원인과 그 위험성을 조심스럽고 중요하게 살피지 못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올해만이 아니다. 다가올 앞으로의 여름 폭염은 더 지독하고 그 지속 기간 또한 길 것이라는데, 과연 이 고통에 끝이 있을지. 두렵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18

내방가사 세 자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역시나 내방가사가 인연이 된 또 하나의 모임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방가사는 평생이다시피 내 인생을 바쳐온 연구 과제였고 성취였지만 소중하고 귀한 인간관계의 훌륭한 매개이기도 한 셈이다. 작년 봄, 대구한글서예협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중하고도 예의바른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경상도 억양도 아니었다. 매년 대구한글서예협회전을 개최하는데, 2023년의 주제를 내방가사로 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좋은 기획에 귀가 솔깃했다. 당장 만나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곁에 있던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한글과 관련 있으니 함께 만나자고 했다. 집 부근의 카페에서 만난 최민경 회장님은 단정한 올림머리에 기품있게 성장을 해 오셨다. ‘합쇼체’의 극존대어를 일상으로 쓰고, 예의가 몸에 밴 천상 서예인이셨다. 2022년 세계기록유산 아태 목록에 등재된 내방가사가 여성의 한글문학이니 한글서예전에 마침맞춤이라는 제안은 훌륭했다. 경북도한글문화콘텐츠민간위원장이었던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한국국학진흥원에 연락해서 가능한 지원을 통해 전시를 유치하라고 권했다. 남편의 권유를 받아들인 한국국학진흥원은 한글날을 기념해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내방가사 작품을 선별하여 한글 서예로 옮겨 써 전시하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국학진흥원 훈민정음 사업단의 담당연구원 박혜민 박사를 만났다. 나직나직한 말투에 다소곳한 그이는 아이디어는 풍부하고 일에는 빈틈이 없는 학자였다. 셋이 처음 만났지만 일에 관한 한 어찌 그리 손발이 척척 맞는지, 신기했다. 서예 작품 제작을 담당하는 최 회장님, 원본을 제공하고, 행정적 지원을 책임진 박 연구원의 역할에 보태 나는 약간의 자문을 하는 정도였다. 회원들과 함께 수차례 회의했고 그때마다 만난 우리 셋은 자매같이 정이 들었다. 대구한글서예협회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경북대 도서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릴레이특강도 했다. 경북도청에서 한 한글날 기념 전시는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지고 웅장하기까지 했다. 모든 행사는 끝났지만 우리의 만남은 끝낼 수가 없었다. 나는 최 회장님께 서예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은퇴 후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서예였다. 박 연구원은 최 회장님의 권유로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았다. 또한 최 회장님이 발굴 소개한 내방가사 작품으로 훌륭한 논문을 써서 발표했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자 멘토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작년 말 송년을 겸한 자리에서 우리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잇자고 합의하고 우리 서로 자매가 되면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했다. 그렇게 ‘내방가사 세 자매’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린 서로 언니 동생이라 호칭하지 못한다. 처음 만나 부른 사회적 호칭이 워낙 견고했던 탓도 있지만, 셋의 관계가 다시 스승의 역할로 얽힌 때문이다. 하긴 예전엔 가족끼리도 사회적 역할에 따른 호명을 한 예가 있으니 뭐, 어떠랴. 호칭이야 어떻든 그리우면 이따끔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자매애 그 이상 아니겠는가. 나와 최 회장님은 매주 만나고, 그때마다 박 연구원과도 연락하고 만날 날을 기약한다. 어쨌든 이 좋은 인연을 이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2024-09-18

진시황제가 찾아 해맨 최고의 건강식 (상)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한 황제다. 그 권력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을 정도로 강했고 그 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몸에 좋은 약이나 음식을 얼마나 많이 먹었겠는가? 그는 자기가 이룩한 제국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어서 건강에 좋은 약재를 찾아 전국을 뒤졌다. 그러나 그는 50세인 이른 나이에 사망을 했고 결국 불로초는 찾지 못했다. 실제 불로초가 있진 않다. 모든 태어난 생명은 죽는다는 절대 진리이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야. 항상 건강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도 전국의 병원에선 젊어서 건강을 자신하던 많은 환자들이 아파하고 죽어가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은 한순간이고 30대, 40대가 지나가면서 몸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면 내가 아프다가 갑자기 죽으면 이 어린 새끼들은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이 꺼질 때까지 조금이라도 안 아프게 이왕이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시황제도 몰랐던 최고의 건강식은 바로 채식과 소식이다. 다이어트나 신념으로 인한 극단적인 채식이 아닌 건강한 채식이다. 신념으로 하는 편향된 지식으로 하는 채식이 아닌 다양하고 풍부한 채소와 현미식 그리고 과일로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채식은 나의 몸을 살리고 정신을 부드럽게 해 영혼을 맑게 한다. 채소를 꼭꼭 하나씩 씹어 보면 각 채소마다 그 안에 있는 채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끼니마다 3~5종의 제철 나물과 채소, 해조류를 밥상에 올리고 골고루 씹어서 먹는다. 채소에는 많은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무수히 많은 피토케미컬이 들어 있다. 이 미세 영양소들을 꾸준히 인체가 섭취하면 면역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피가 맑아지고 모든 장기들의 기능이 살아난다. 그리고 채소는 소화되지 않는 섬유질로 구성되어 있어 소화과정에서 소화되지 않고 대변으로 나오는데 이는 위 소장 대장 등에 있는 찌꺼기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유익균을 증대시킨다. 장누수 증후군과 같은 장 관련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이 되고 이는 나의 면역력과 정신을 맑게 하고 안정시킨다. 그동안 고생했던 변비는 해소되고 무른변이나 설사를 하는 민감한 장도 개선된다. 골고루 제대로 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혈중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나 그 이하로 낮고 각종 당뇨병과 고혈압 등 성인병이 거의 없거나 낮게 나온다. 각종 난치병과 암과 같은 질환의 발병률도 낮다. 아토피나 피부 관련 질환도 적을 뿐만 아니라 피부 관련 질환이 있다면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면 피부가 살아난다. 채식을 하면 자연스레 필요 없는 살이 빠지고 피가 맑아지기 때문에 심장질환 비율도 낮아진다. 살이 빠지고 피가 맑아지기 때문에 오장육부가 하는 일이 줄어들고 피로도가 확 준다. 내가 직접 느끼는 피로도가 줄 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올라간다. 제대로 된 채식을 꾸준히 하면 일년에 몇 번씩 하던 병치레가 싹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09-18

고향 대신 해외로 간다

우정구 논설위원 올 추석명절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추계한 바에 따르면 이번 연휴기간 동안 하루 평균 20만여 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떠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역대 가장 많았던 2017년 18만명 보다 많고 전년 추석 연휴보다도 11.6%가 증가했다. 공항공사는 국민 10명 중 1명이 추석 연휴기간 중 해외로 여행계획을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행 목적지는 일본과 베트남이 가장 많았다. 거리와 가성비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2일간의 연차를 사용하면 최대 9일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직장인 중 연차를 사용할 계획이 있다는 비율이 75.4%로 조사됐다. 추석과 설날이 우리민족 최대 명절이라 하지만 매년 많은 사람들이 연휴기간 해외로 나가고 있다. 그 비율도 매년 증가세다. 반면에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줄어들고 있다. 작년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추석에 차례를 올린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44%에 그쳤다. 56%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올해는 이보다 2%포인트 올라간 58%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 추세라면 추석 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급격히 줄 전망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라는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추석 명절은 한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추석 차례도 조상에게 가을 추수를 잘했다는 감사의 마음에서 올리는 제사다. 추석 명절의 의미가 잊혀져서는 안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12

딥페이크 성범죄 , 피해자 보호는 사회적 책임

국회의원(국민의힘, 대구 수성구을•여성가족위원장) 최근 급속히 발전한 딥페이크 기술은 그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악용될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 특히 딥페이크 성범죄는 기술의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대표적인 사례다. 필자는 국민의힘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동안 국회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의 신상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유포되고, 추가적인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얼굴과 신상이 영상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범죄가 발생하면 빠르게 대응하여 영상을 삭제하고, 더 이상의 유포를 막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범죄 예방은 정부의 책무인 만큼 경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와 협력하여 기술적 대응과 법적 토대 마련 등의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우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특히 여성과 청소년 그리고 아동을 대상으로 많이 발생한다. 이들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취약 계층이어서 대응에도 한계가 있고,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을 위한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그들의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가해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단순한 범죄 행위를 넘어 첨단기술을 악용한 고도의 범죄다. 가해자들은 갈수록 더 정교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기에, 그 피해는 이전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외국은 이미 이 범죄에 대해 엄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처벌규정 강화는 이 범죄의 선제적 예방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우려스런 점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청소년들이 텔레그램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성 착취물을 무차별 유포시키는 사례는 여럿 적발됐고 증가추세에 있다. 현재 학교 등에서 예방에 비상이 걸려 있다. 청소년 경우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10대여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 대상의 교육을 강화하고, 그들이 이러한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법적 책임을 인지하게 하는 등 사회와 가정의 보다 세심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 개정안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강화하고, 경제적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포된 영상과 사진, 개인정보까지 신속하게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관련 기관에 부여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기술 발전과 맞물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다. 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 기술적 대응이 필수적이며, 정부와 각 부처, 그리고 사회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이러한 범죄로 고통 받지 않도록 법적 대응을 강화하고, 예방적 조치를 통해 범죄 발생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2024-09-12

폭염 속의 추석 맞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가을이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계절의 신’도 건망증이 있는지 선선하다는 가을바람은 낌새도 없고 아직도 초가을 폭염이 들끓어 열대야에 밤잠을 뒤척이게 만든다. 거기에다 경북지역은 가뭄까지 겹쳐서 청도 운문댐과 영천 자양댐의 저수율이 반도 못 미치고 있어 주의 단계이며 두 저수지를 수원지로 삼고 있는 대구와 포항 등은 목말라가고 있는 형편이다. 산천에 물이 마르면 곡식과 과일도 알차지 못하다. 영천 꿀사과도 튼실하지 못하고 일부 지방의 산에는 송이버섯도 모습을 감추었다고 이번 추석 특수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농민들은 한숨을 쉰다. 어저께 남부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린 곳도 있지만 동해안에는 가는 빗줄기가 스쳐 가며 조금 시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추석 연휴에는 30도 이상의 더위가 남을 거라고 하니 즐거워야 할 명절이 심히 걱정된다. 언뜻 가을 추(秋) 한자를 살펴본다. 벼 화(禾)에 불 화(火)이니 벼를 뜨거운 햇볕에 잘 말리라는 뜻이겠지 했는데, 불의 의미가 이상해서 자료를 뒤져보니 갑골문(甲骨文)에는 메뚜기 모양이 그려져 있다. 누렇게 익은 벼잎에 붙은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었다는 뜻이란다. 그래, 옛날 시골 초등학교 다닐 때 들판의 논두렁에서 벼잎에 붙어있던 메뚜기들을 잡아서 신주머니에 넣어오면 어머니가 기름에 볶아서 맛있는 반찬으로 해주셨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 가뭄과 더위에 그 녀석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숱하게 뿌려졌을 농약으로 살아있기나 할까? 벼농사 또한 덥고 습한 날씨와 물이 가득한 논에서 잘 되겠지만 올해는 좀 염려된단다. 이러한 사태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생태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쳐서 자연재해와 환경파괴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9월 중순까지 계속될 거라는 찜통더위에 폭우라도 스쳐 가면,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근래 적도 인근 해양에서 발생한 13호 태풍 ‘버빙카’가 서서히 올라오는데 추석날쯤에는 경북과 강원을 지나 동해로 빠질 우려도 있다고 하니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추석 음식을 먹으며 웃음꽃 피울 모습이 걱정된다. 추석이면 강강술래 돌며 온마을이 들떴고 줄다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제기차기나 윷놀이는 하겠지. 그러나 씨름은 국가 스포츠로 발전하여 올해 민속씨름대회는 12일 경남 고성군 체육센터에서 열려 7일간 남녀 장사 250여 명이 힘을 겨루게 된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살리고, K-컬처를 세계에 알리자. 지난 8일 끝난 파리 패럴림픽도 금 6, 은 10, 동 14개로 종합 22위를 달성하여 우리의 장애극복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특히 중증 장애인을 위한 ‘보치아’경기는 10회 연속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일구어 자랑스런 모습으로 귀국했었다. 이제 명절을 맞아 부모님 뵈러 고향을 다녀와야 하는데 열차예매는 다 했는지…. 이미 표는 매진되었을 터,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좀 걱정도 되겠지만 요즘 전기자동차 화재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사전 점검을 잘하여 무사히 귀가하며, 소담스러운 선물과 밝은 미소 가득히 부모님과 형제들의 품으로 찾아왔으면 한다.

2024-09-12

한가위를 앞두고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도 더러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아마도 젊은이들은 이 말 속에 담긴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의식주가 너무 열악하던 시절의 사정을 먹을 것 입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의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6·25전쟁을 전후해서 태어난 우리 세대는 전화(戰禍)가 휩쓸고 간 초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꽁보리밥·나물죽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고, 끼니때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도 있었다. 하지만 궁핍한 살림에도 한가위 명절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마련을 하였다. 쌀밥과 떡, 생선, 과일을 먹을 수 있었고 새 옷이 아니면 양말이라도 새 것으로 신을 수 있었다. 국민소득이 1000불에도 못 미쳤고 100억 불 수출은 원대한 꿈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조로 아사(餓死)를 모면하고 국토 재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이 되었고 여섯 번째로 꼽히는 강대국이 되었다.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만도 한 둘이 아니다. 원전,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전자제품 및 IT산업, 방위산업, K-문화콘텐츠산업 등 실로 기적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발전을 했다. 이제 한가위는 새 옷을 입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기다려지는 명절이 아니다. 초등학교도 겨우 마치고 도시로 나가 공돌이 공순이가 되었던 우리 형제·누이들이 오랜만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귀향하는 그런 명절도 아니다. 흩어졌던 가족·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유대를 돈독히 하는 풍습도 차츰 희석이 되어간다. 대신 모처럼의 연휴를 해외여행의 기회로 삼는 일이 많아졌다. 연휴기간이 길었던 작년 추석에는 국외로 여행을 떠난 인구가 무려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의 뜻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는 김일성 일족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물론 당 간부들이나 평양시민들처럼 호의호식하는 부류가 없지 않겠지만, 대다수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같은 땅 같은 민족인데도 이렇게 극심한 격차가 벌어진 까닭은 그야말로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명한 현실을 두고도 종북·주사파 같은 자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도 덜도 말고, 밥이야 떡이야 실컷 먹을 수 있는 한가위만 같기를 바랐던 세대는 여한이 없도록 소원성취를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반쪽인 북녘 동포들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도록 통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일성 일족의 세습왕조를 종식시키는 일에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와해하고 전복하려는 무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용공·종북 세력들이다. 국민들의 각성과 의지로 이 난관 또한 돌파할 것으로 믿는다.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