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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AI와 SNS가 보내는 경고

21세기에 태어난 청소년은 더 이상 궁금한 걸 부모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어려운 수학공식과 영어단어 공부법은 물론, 볼만한 영화와 근사한 여행지에 관한 정보도 AI에게 문의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있으니. 2025년을 사는 젊은 연인들은 펜으로 눌러쓴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왜냐? SNS를 통해 보다 쉽고 편하게 분과 초 단위로 언제건 연결이 가능하니까. 가속도가 붙은 첨단 기술의 발달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자식이 던지는 물음에 일일이 답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사라졌고,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어졌다. 친구 얼굴이 보고 싶다면 영상통화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AI와 SNS가 만들어준 ‘신세계’가 마냥 좋기만 한 걸까? 빛만 있고 그늘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최근 외신 보도에 의하면 2023년 10월 이후 유럽에서 적발된 테러혐의자 60명 가운데 60% 이상이 18세 미만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겨우 16~17세 소년들이 수백 명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소통 경로는 SNS였다. 특정 인종과 종교 혐오라는 극단주의가 SNS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는 것. AI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는 세태도 문제다.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생성형 AI챗봇에 과다 노출된 어린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AI는 인간이 될 수 없고, SNS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더 큰 비극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07

관봉권

조선시대에도 뇌물이 성행했던 모양이다. 왕조실록에도 지방의 수령이 백성으로부터 거둬들인 재물을 조정의 대신에게 뇌물로 주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지금처럼 화폐 유통이 원활하지 않아 뇌물로는 귀금속이나 포목 그리고 지역 특산물 등이 주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이 사는 사회에 뇌물이라는 부정한 거래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든 있었던 악습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전직 대통령 영부인의 옷 구입비에 관봉권이 사용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봉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국민이 많다. 일반인에게는 낯설게 들리는 관봉권은 말 그대로 “관에서 봉인한 지폐”다. 금융권에서는 “조폐공사가 한국은행에 신권을 보낼 때 액수와 화폐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보증하는 의미로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서 보내는 지폐”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봉권은 은행이 개인에게 인출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VIP고객이나 대기업이 명절 때 임직원에 지급할 목적으로 은행에 요구하면 지출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고 한다. 또 과거에는 청와대가 관봉권의 유통 경로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5만원권 5000만원 뭉치의 크기는 각티슈 정도라고 한다.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될 때 일각에서는 뇌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만원권에 비해 부피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시절 지불한 옷값이 4억원에 달한다는 경찰 조사가 있었다. 옷값으로 결제된 현금이 관봉권이라 한다. 개인이 소지하기 어렵다는 관봉권이 옷값으로 사용된 경위를 경찰이 조사한다는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06

스페인 대정전

블랙아웃(Black Out)은 앞이 캄캄해진다는 뜻이다. 발전 용어로는 모든 전력공급이 중단된 최악의 정전사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 국어 순화사전에는 이를 대정전이라고 부른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도시가 불랙아웃되는 일은 가끔 있었으나 한 나라가 통째로 블랙아웃되는 일은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 지난달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동시에 블랙아웃 현상이 벌어졌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리스본 등 대도시 곳곳에서 관광객과 시민들이 기차와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문제는 국가적 대정전에도 아직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력 복구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알아야 할 정전 원인은 오리무중이라 한다. 때문에 정전 원인에 대한 각종 관측이 난무한다고 한다. 사이버 테러 등도 거론이 되나 현재로선 재생에너지원의 과부하가 가장 유력한 원인일 것으로 관측이 되고 있다. 스페인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유럽에선 독일 다음으로 높은 나라다. 날씨 변화에 따라 전력 생산이 급격히 변동될 수 있는 전력 환경이다. 이번 사태도 불안정한 전력 공급이 전력 시스템에 부담을 주어 대규모 정전을 일으킨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외신은 전한다. 아직도 정확한 정전의 원인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위험하다는 교훈은 주목할만한 평가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전력 사용을 위해 지금의 전력 생산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세계가 반면 교사할 블랙아웃 사태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01

정치 무대에서 내려선 홍준표

1954년생. 올해 일흔한 살이니 ‘노정객’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이를 악물고 사법 시험에 도전해 검사가 됐다. 강력부 현역 검사 시절엔 거물 조직폭력배와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줄줄이 구속시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고, 그걸 발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1996년 그의 나이 마흔둘에 치러진 15대 총선 당선을 시작으로 국회의원만 5번을 했고, 경남도지사와 대구시장을 지냈으며,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맡았고, 비록 패했지만 2017년엔 대통령선거에도 나왔다. 정치인으로선 안 해 본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이쯤 되면 드라마틱한 한 편의 소설이나 흥미진진한 영화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위엔 언급한 요약·설명을 읽었다면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그의 이름을 떠올릴 게 분명하다. 맞다 홍준표다. 2025년 4월 29일 홍준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이제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직후였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직설화법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진하는 특유의 저돌적 스타일로 인해 때론 곤경에 빠졌고, 여러 차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던 홍준표.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솔직담백했던 정치인으로 홍준표를 기억할 듯하다. 어쨌건 이제 홍준표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치’라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범부(凡夫)로 귀환한 그가 30여 년간 겪었던 한국 정치판의 혼란과 불화를 다 잊고 자신의 바람처럼 ‘평범한 시민’으로 유유자적하기를 바란다. 누구라 특정할 것도 없다. 고희(古稀) 넘긴 사내에겐 풍파 없는 평화로운 삶이 어울린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30

IMF의 경고

“시급한 외환 확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체제를 활용하겠습니다” 1997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경제는 IMF 관리체제로 들어갔다. 당시 한국경제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단기간에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대량의 실직사태까지 발생했다. 빚 독촉에 시달린 일가가 음독자살을 하는가 하면 회사 중견간부가 졸지에 집을 잃고 노숙자 신세로 돌변했다.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의 부도 등 내로라하던 재벌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증권회사도 파산하는 전대미문의 일들이 벌어졌다. 한국 재벌기업들의 과도한 부채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달러가 고갈됐고, 국내 은행들도 무리한 대출을 해주면서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급기야 IMF 관리로 들어서면서 기업과 은행들의 통폐합 혹은 폐쇄가 속출한다. 국민의 삶의 질은 물어볼 것도 없이 핍박해졌다. IMF는 국제간 금융질서 확립과 균형발전 등을 목적으로 1947년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다. IMF의 지원을 받는 나라는 경제적 구조조정은 필수다. 한국의 IMF를 두고 국가 경제 주권이 빼앗긴 날로 부르는 이유다. 최근 IMF가 한국을 향해 잇단 경고를 보내 주목된다. 4월 세계 경제 전망 발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로 낮추었다. 한달 전보다 1%포인트가 더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치의 배다. 또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내년부터 대만에 역전당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한국을 향한 부정적 경제 수치들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의 불길한 징조일까 걱정스럽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9

교단 떠나는 초등학교 교사들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존경받는 시대는 끝난 것 같아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른 일을 찾으려는 동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는 건 학생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초등학교 교사들 중 3/4 이상이 교직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사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는 겨우 4.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보수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도 2%만이 긍정적 답변을 내놨다고.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지난해 전국 유·초·중등·특수교사 1만1359명을 대상으로 ‘전국 교원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위는 그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교사 스스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숭고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현실 탓일까? 교단을 떠나 다른 일을 찾고 싶어 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 의하면 현직 초등학교 교사 중 42.5%가 ‘기회가 된다면 이직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직을 희망하는 이유는 낮은 직무만족도와 생활만족도, 거기에 더해 성취감과 보람이 갈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최근엔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의 합격 점수가 낮아지고, 지원자도 줄어드는 추세까지 보인다. 현직 교사는 교단을 떠나려 하고, 교사를 꿈꾸는 입시생은 갈수록 적어지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세상이 변했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변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케케묵은 말만으로는 교사를 포기하려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다. 미래 세대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28

폴리페서의 계절

선거철만 되면 불나방처럼 정치에 등장하는 그룹이 있다. 일명 폴리페서로 불리는 정치 성향의 교수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불나방이란 곤충은 불빛을 향해 빙빙 돌다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습성 때문에 이름이 불나방으로 불린다. 유혹에 빠져 무모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부를 때도 불나방이라 한다. 폴리페서란 정치(Politics)와 교수(Propess)가 합쳐진 말.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가운데 고유어로 토착화되지 못한 말을 고유어로 알기 쉽게 고친 말을 ‘다듬은 말’ 이라 부른다. 예컨대 MZ세대들이 잘 쓰는 미닝아웃(Meaning Out)을 ‘소신 소비’, 가축을 ‘집 짐승’, 노크를 ‘손기척’ 등으로 쓰는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 폴리페서는 오래전 국립국어원이 다듬은 말로 ‘철새 정치교수’라고 불렀다. 그 당시 누리꾼들은 철새 정치교수, 탐관교수, 덧걸이교수, 감바리교수, 가면교수 등을 우리말 표현으로 제시했는데, 국립국어원은 철새 정치교수로 선정 확정한 것이다. 누리꾼의 제시어에서 느낄 수 있듯 폴리페서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관직을 탐한다거나 잇속을 노리고 약삭빠르게 달라붙는 사람의 뜻을 폴리페서 해석에 붙였다. 6월 대선을 앞두고 폴리페서의 등장이 또 논란이다.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이룬 교수들의 철학과 정책이 정치에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치적 야욕에 눈멀어 선거 때만 되면 불나방처럼 선거판에 뛰어드는 교수들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다. 교수도 정치가 하고프면 공무원처럼 사직서를 내고 소신을 펼치는 것이 용기있고 옳은 일이다. 폴리페서 남발을 막을 제도 개선을 생각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7

임시공휴일 논란

국가가 특별한 행사가 발생해 지정하는 임시공휴일은 나라에 따라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개발도상국 중에는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기념으로 공휴일을 지정한 사례도 있다. 아프리카 대륙 서단에 위치한 세네갈은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격침하자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했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세네갈이 월드컵 챔피언 국가인 프랑스를 격파한 대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이 있어 임시공휴일 지정이 특별한 이유가 됐다고 한다. 정부가 5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현재로선 공휴일 지정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고, 5월 5일 어린이 날이 석가탄신일과 겹쳐 6일이 대체 공휴일이 된다.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최장 6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부는 임시공휴일 지정에 난색이다. 공휴일 지정으로 내수경기 활성화가 일어나야 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설날을 앞두고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했지만 연휴기간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내수진작 효과가 없었다는 것. 게다가 6월 3일 대통령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의 반응은 다양했다. 직장인은 공휴일 지정을 기다리는 눈치인 반면 자영업자들은 영업에 악영향을 우려, 반대하는 눈치다. 일부 네티즌은 “또 쉬나” “공휴일이 많아 돈 나갈 곳이 많다”는 반응도 보였다. 국내 경제 사정이 최악인 상황이어서 기업들의 생산성도 고려해야 하는 시기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4

오래 기억될 프란치스코 교황

드물고 희귀한 사례다. 가톨릭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지난 21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교도가 슬퍼하는 건 당연하다. 헌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종교와는 무관하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는 상황. 심지어 무신론자까지 추모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일까? 이유가 있다. 프란치스코는 일생 내내 ‘거리를 떠도는 빈곤한 자들의 아버지’ ‘권위를 내려놓은 친구 같은 성직자’로 불렸다. 젊었을 땐 낡은 신부복을 입고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병든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그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빌었고, 교황이 된 후에는 일흔을 넘긴 노구를 이끌고 전쟁과 불화를 겪는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했다. 피격의 위험성이 상존했음에도 방탄복 입는 걸 거부했다니, 그의 믿음과 용기는 공포를 뛰어넘은 차원의 것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가지기 힘든 태도다.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 터.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말할 수 없다”는 프란치스코의 따스했던 위로를.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그의 검약과 소박함, 사회적 소수자와 핍박당하는 이들을 향한 긍휼의 눈길은 재론할 필요도 없을 테고. 밑창이 닳은 구두를 신고 금이 아닌 쇠로 만든 십자가를 목에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나던 순간을 오래 기억할 가톨릭교도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온화하고 선량한 미소는 더 많은 이들이 쉽게 잊지 못할 듯하다. 무신론자인 기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23

휴머노이드 시대

휴머노이드는 인간(Human)과 유사함(-Oid)이 결합한 용어로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휴머노이드가 이젠 현실로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 전개될 세상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로봇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으려면 수많은 기술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2000년대 초 처음 선보인 휴머노이드는 두 발로 걷고 큰 물체에 부딪히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는 정도였다. 이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 인간형 로봇으로 기술이 발전했다. 테슬라가 개발한 인간 로봇 옵티머스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어들고 통에 담으며 달걀이 깨지지 않을 정도의 악력도 유지한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만큼 기술적으로 고도로 성장한 것이다. 옵티머스의 시간당 경비가 8000 원 정도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최저 임금보다 싸다. 사람보다 로봇을 쓰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늘어날 수 있는 지경에 온 셈이다. 테슬라는 산업용 로봇을 공장에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가사 도우미를 대체할 로봇생산에 적극 도전한다고 한다. 향후 휴머노이드가 펼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가히 새로운 산업혁명이라 부를 만큼 혁신적 모습이 될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지난 19일 중국이 인간형 로봇 단축마라톤 대회를 열고 첨단기술력을 과시하자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두 발로 로봇이 21km를 뛰려면 정밀한 최첨단기술이 장착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의 일을 대신할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인데 과연 우리 사회는 문제가 없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2

영화는 극장이 아닌 집에서?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최고의 오락이던 시절이 있었다. 화제를 모은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의 마지막에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그래도 영화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가와 정가의 2~3배 가격에 “암표를 사라”고 속삭이는 이들도 흔했다. 극장에서의 데이트도 20세기 연인들에겐 즐거움이었다. 청춘남녀가 팝콘과 콜라를 나눠 먹으며 캄캄한 객석에서 은근슬쩍 서로의 손을 잡던 기억들. 둘의 손바닥에 촉촉하게 배어 있던 땀. 그런데, 시대의 변화 탓인지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643만7886명. 한 해 전 같은 달의 관객 수 1169만7143명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운 45%가 줄었다. 당연지사 매출액 역시 반토막이 났고, 이를 걱정하는 극장 사업자의 한숨이 깊어졌다. ‘영화의 르네상스, 극장의 전성시대’가 끝나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라는 게 영화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극장의 위기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괄목할 만한 약진이 아닐지. 올해 1분기만 봐도 극장에 걸린 영화 중에는 눈에 띄는 대형 히트작이 드물지만, OTT가 내놓은 ‘폭싹 속았수다’ ‘오징어게임 시즌 2’ ‘중증외상센터’ 등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극장이 획기적인 회생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 영화 제작과 감상 시스템의 주도권을 OTT가 쥘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는 게 보편적인 시대가 곧 올 듯하다. 아니, 이미 왔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21

전국 동시 소등의 날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해양 기름 유출 사고는 2010년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다. 바다 속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취 탐사하던 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름이 유출된 사고다. 이 사고로 해양생물 피해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됐다. 내일(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70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1969년 캘리포니아주 해상에서 대규모 해상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지구의 날 제정을 주창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진 날이다. 1972년 스웨던 스톡홀름에서 113개국 대표가 모여 민간환경 선언을 했고, 1990년에 와서 세계적 규모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다르게 순수 민간운동으로 출발한 날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고 2009년부터 지구의 날 전후 일주일 간을 기후변화 주간으로 지정, 운영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생활실천을 위한 행사도 벌인다. 특히 환경부 주관으로 매년 4월 22일을 전국 소등의 날로 정해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행사를 권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과 자치단체에 따라서는 대형육교와 타워 등의 불도 잠시지만 꺼진다. 대기업들의 소등행사 참여도 늘고 있다. 지구의 날 선언문에는 “인간의 환경파괴와 자원낭비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의식을 일깨우고 지구의 날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소등행사다. 많은 이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0

또 포퓰리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포퓰리즘. 6·3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주 4.5일제 근무 도입을 두고 여야가 경쟁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주 4일제를 제안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주 4.5일제 근무를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 형편에 주 4.5일제가 적합한지 여부는 깊이 더 살펴볼 문제다. 국민 여론도 참작돼야 할 문제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로마멸망 원인의 하나로 포퓰리즘을 꼽는 이도 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을 안해도 빵을 주고 원형 경기장에서는 검투사 대결과 같은 축제를 연일 열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재정 낭비가 결국 로마멸망의 원인이 됐다는 이론이다. 남미의 쿠웨이트로 불리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였던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도 포퓰리즘 때문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국가 재정의 73%를 무상복지에 쏟아부어 2017년 이 나라는 국가부도를 맞는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옳고 그름을 외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앞의 사례처럼 국가부도로 종결된다. 무상급식과 같은 정당한 일부 정책이 정치 다툼으로 포퓰리즘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등장하는 포퓰리즘, 국민적 경계가 필요하다. 3년 걸렸던 군 복무 기간이 선거 몇 번 거치는 동안 18개월로 줄었다. 병장 월급 200만원 역시 포퓰리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미래의 불행을 막는다. 국가부채 1200조 원 만해도 감당하기 힘든 우리나라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7

주 4일, 혹은 4.5일 근무제

금요일 오후에 퇴근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 출근하는 주 4.5일 근무제가 국민의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 4일 근무제를 주요 민생 의제로 선정해 공약화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일과 개인의 삶이 조화롭게 균형 잡히기를 원하는 21세기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진지하게 응답한 격이라 많은 이들이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주 5일제와 주 52시간 근로 규제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제도라 생산성과 자율성 모두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 외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울산 중구청의 사례도 언급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검토하는 주 4일 근무제와 국민의힘이 공약으로 내놓은 주 4.5일 근무제 중 어떤 것이 노동자들의 워라밸을 높이는데 효과적일 것인지는 향후 제도 실행방안 등이 구체화되면 비교해 볼 수 있을 터.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한국의 노동자 대부분은 토요일 오전에도 일하는 주 5.5일 근무를 했고, 업종에 따라서는 일요일과 국경일 특근도 거부할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돌아보면 ‘노동자 잔혹시대’였다. 이제 ‘적절한 휴식이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좋은 변화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 방향은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지향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6

기후 변덕

기후학자들은 지구 상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원인은 엘니뇨 현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엘니뇨 현상이란 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기후변화를 말한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 순환과 강수 패턴에 변화를 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우박이 떨어져 100여명이 다쳤다. 우박의 일반적 크기는 0.5~5cm 정도인데, 이날 떨어진 우박은 직경 7~8cm로 테니스공만 했다. 한여름 강물에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지구 상의 이상기후는 전 세계적 뉴스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에서는 홍수와 폭우, 동남아시아에서는 심각한 가뭄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북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폭설과 한파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기후변화는 농업과 수산업 등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후변화에서 예외는 아니다. 평균기온 상승과 더불어 아열대 기후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이상기후 발생 빈도도 잦아 기후변화 대응에 민감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는 기상청 관측이래 처음으로 4월 중순에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 현상이 빚어졌다. 전국에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오면서 기온마저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장롱에 넣어두었던 겨울 점퍼를 다시 꺼내 입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기후변화가 단순한 변덕만으로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5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소풍의 추억

홍성식(기획특집부장) 봄과 가을 2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0~80년대 초등학생들은 소풍 가는 날을 너나없이 기다렸다. 김밥과 사이다 한 병, 평소엔 엄마가 잘 사주지 않던 과자까지 몇 봉지 조그만 가방에 넣고 학급 전체가 1시간쯤 걸어 유원지나 동물원을 향했다. 아이들답게 목적지로 가는 내내 친구끼리 장난을 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 크게 웃었던 소풍. 도착하면 노래와 춤으로 흥겨운 장기자랑과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로 주는 보물찾기라는 재밌는 놀이가 이어졌다. 그보다 한 세대 전에는 멀리 걸어가 야외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다는 뜻으로 소풍을 원족(遠足)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동시에 일상을 벗어난 짧은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했던 소풍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현장 체험학습(소풍)을 나갔던 초등학생이 사망한 사고에 교사의 형사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학교 측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의 안전사고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으니. 거기에 더해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업무 부담도 소풍을 꺼리는 세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학생들 역시 과거와 달리 매번 비슷비슷한 행사 패턴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단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러 학교가 현장 체험학습을 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안전’에 대한 가치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소풍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학생들의 안전과 학창 시절의 추억. 2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소풍을 즐길 묘책은 없는 걸까? 어려운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4

구미 국가산단의 변신

우정구 논설위원 산업단지 노후화 문제는 우리보다 산업화가 먼저 일어났던 서구에서는 오래된 과제였다. 노후산단으로 산업이 쇠퇴기를 맞고 청년들이 떠나면서 도시의 몰락을 경험한 도시들은 해외에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도시 가운데 노후산단의 부흥을 통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거나 관광산업 등을 진작하면서 도시의 재기에 성공한 경우도 또한 적지 않다. 빌바오 효과로 유명한 스페인의 빌바오시는 철강산업이 무너진 위기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관광산업도시로서 유명해졌다. 영국 맨체스타 트레퍼드파크 산업단지는 1890년대 조성된 세계 최초 산업단지다. 그러나 영국의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추진한 재생사업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지금은 전성기 이상의 활황 경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전국 최초로 국가지정 1호 문화산단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1호 국가산단이 1호 문화산단으로 지정되면서 갖는 역사적 의미도 있거니와 문화산단으로 변신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문화산단이란 노후산단을 혁신해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미래형 융합산단을 이르는 말이다. 구미시는 이번을 계기로 1조9000억원을 투자해 구미산단 전체를 문화산업 복합형 미래산단으로 확 바꿀 계획이라 한다. 일본의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신도시를 모델로 삼겠다고 한다. 미나토미라이는 1980년대 동력을 상실한 조선 중심의 도시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을 유치하고 일본 3대 미항으로 변신한 곳이다. 구미시의 문화산단 지정과 이에 따른 사업 구상이 일본 미나토미라이를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문화산단 성공 사례로 남길 기대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3

관세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어디까지 뻗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9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상호관세를 84%로 높이는 행정명령에 또다시 서명했다.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이제 중국에 모두 104%의 관세를 부과하게 된 셈이다. 이러자 10일 중국도 미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또다시 8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 간 관세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는 두 나라의 관세 전쟁을 핵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 자동차 게임이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는 게임으로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양쪽 다 크게 다치는 게임이다. 1950년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을 한창 벌일 때, 세계는 두 나라의 경쟁을 치킨게임이라 불렀다. 역사상 국제사회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인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전쟁에 휘말린 경우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힘센 강자들 싸움에 아무 관계없는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를 표현한 말이다. 미중의 관세전쟁에 지금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증시도 9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은 두 나라의 치킨게임 영향력 안에 있는 나라다. 중소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을 벌써부터 걱정한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우리 처지 아닐까. 나라든 기업이든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0

치매와 결혼의 상관관계

홍성식(기획특집부장)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주목받는 병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치매’다. 대뇌 신경세포의 손상이 지능, 의지, 기억 따위를 상실시키는 치매는 대부분 노인들에게서 발병한다. 증상에 따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여섯 살 철부지 아이처럼 행동하며, 심지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 치매는 세상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은 병이 아닐까. 이와 관련,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 하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은 2만4107명을 대상으로 결혼 여부와 인지 장애의 연관성을 오랜 기간 조사했다. 인지 상태에 대한 신경 심리학적 검사와 임상의의 평가가 겸해진 18년 동안의 추적·관찰에 의하면 사별·이혼·미혼인 사람들이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보다 치매 발병 위험성이 40%가량 낮았다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 친구, 이웃과 사회적 교류가 활발했고 보다 자립적이었다. 이런 게 인지 능력 유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연구팀의 부연.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사멸을 불러와 치매 위험성을 높인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결혼이란 관계를 불화 없이 유지시키기 위해선 적지 않은 스트레스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혼을 꺼리는 세태에 더해 과학적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니 앞으론 “나는 치매에 걸리기 싫으니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을 듯하다. 이래저래 결혼이 홀대받는 시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9

대전서 배우자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혼인 건수는 모두 7986건이다. 전년도 보다 53.2%가 증가했다. 증가폭만 보면 전국 평균치(14.8%)의 3.6배나 된다.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계산한 혼인율도 남성이 12.6건, 여성이 12.4건으로 전년보다 모두 4.3건씩 증가했다. 전국 시·도 가운데 혼인 건수와 혼인율 모두 당연히 1위다. 1990년 혼인관련 통계 작성 후 혼인율 1위는 대기업이 많은 서울과 경기, 울산이었다. 이후 행정수도가 이전해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이 9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는 대전이 세종시를 꺾고 1위에 등극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인구추이 속에 대전의 혼인율 증가는 뜻밖의 소식이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방도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살펴볼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대와 30대 청년층 유입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SK온이나 글로벌 바이오기업 머크사 등이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청년층이 늘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지역유치가 관건인 셈이다. 지금 대전은 대기업 자회사와 상징기업 등이 늘면서 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것도 젊은이가 오는 중요 포인트다. 대전시는 신혼부부에게 일시에 5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도 은행과 협력해 돕는다. 그밖에 임산부 배려문화 조성 등도 혼인 증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젊은이가 빠져나가 소멸 위기를 느끼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본받을 내용이다. 좋은 기업이 있고 살기좋은 환경만 되면 서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