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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국의 국가경쟁력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자국 내 기업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국민들이 더 나은 경제적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유지하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올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40개 국가 중 15위로 작년보다 2계단 상승한 것으로 발표됐다. 기획재정부가 17일 세계경제포럼(WEF)이 공개한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에서 한국이 이런 성적표를 받았다고 전했다. 작년에는 평가 대상 국가 137개국 가운데 26위(구 지수 기준)를 기록했다. 작년 평가 결과를 올해와 비교할 수 있는 방식(신지수)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17위였다니 종합평가 순위는 작년보다 2계단 상승한 셈이다. 분야별로 보면 한국은 12개 부문 가운데 10개에서 30위 내에 들었는 데, 거시경제 안정성, 정보통신기술(ICT)보급 등 2개 분야는 1위였다. ICT 보급의 하위 항목을 보면 광케이블 인터넷 가입자 수에서 1위를 기록했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6위였다. 거시경제 안정성에선 물가상승률, 공공부문 부채의 지속가능성 등 2개 항목이 1위였다.WEF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 등을 바탕으로 전 세계 ICT 부문을 주도하고 다수의 특허출원과 높은 연구·개발(RD) 지출비중 등을 바탕으로 한 혁신 거점이라는 평가를 한 반면 혁신적 사고(90위), 기업가정신·기업문화(50위) 등의 순위는 상대적으로 저조하게 나오는 등 혁신 부문 중 소프트 파워에서는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시장 독과점, 노동시장 경직성 등 때문에 생산물시장이나 노동시장의 효율성도 부진한 것으로 분석됐다.올해 국가별 순위 1위는 미국이었고 2위는 싱가포르, 3위는 독일이었다. 이어 4위 스위스, 5위 일본, 6위 네덜란드, 7위 홍콩, 8위 영국, 9위 스웨덴, 10위 덴마크, 11위 핀란드, 12위 캐나다, 13위 대만, 14위 호주였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5위였고, 노르웨이(16위), 프랑스(17위), 중국(28위) 등보다는 순위가 높았다. 세계 15위라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일견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8

무관용의 원칙

‘깨진 유리창 이론’은 우리 사회의 무질서와 범죄가 주변의 무관심으로 방치되면 무법천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내용이다.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은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은 그곳이 방치됐다고 생각하고 다른 유리창도 깨고 도둑질까지 해 그 일대가 무법상태로 변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범죄율을 낮추려면 사소한 것부터 잡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 뉴욕의 범죄를 줄이는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학자다.1990년대 일이다. 강력 범죄로 고민하던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지하철 내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강력범죄는 잡지 않고 낙서만 지운다는 시민들의 비난 여론에도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한 결과, 5년 뒤부터는 뉴욕의 범죄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효과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경범죄 단속에 나섰다. 이후 뉴욕의 치안이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깨진 유리창 이론은 범죄학에서 출발했으나 기업에서 더 많은 응용을 했다. 기업이 경영전략을 짜면서 수많은 비용을 투자하면서 정작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해 실패해선 안 된다는 이론의 근거다. 총체적 위기는 사소한 위기관리에서 온다는 교훈적 이론으로 통용된다.‘무관용의 원칙’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근거해 나온 말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규정이나 규칙을 위반하면 용서를 하지 않고 엄벌하겠다는 뜻이다.최근 정부는 미투운동에 대한 공직사회에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키로 했다. 공직자는 모든 유형의 성범죄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당연히 퇴직된다. 벌금형 기준과 구제 기간을 강화한 것이다.사립 유치원의 비리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파만파다. 교육부가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간 2조 원이 넘는 국비가 지원되는 동안 감독기관은 도대체 무얼 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 세금은 언제까지 눈먼 돈 노릇을 해야 하나 답답하다. 무관용의 원칙이 잘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7

그루밍 성범죄

그루밍(길들이기·Grooming) 성범죄는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가정에서 방임되는 취약 아동이나 청소년이 대상이 된다. 선물이나 고민상담 등을 통해 신뢰를 쌓은 뒤 신체접촉을 시작으로 성범죄에 이른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인정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가해자는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십분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는 그루밍을 거치며 가해자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피해자는 성적 학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범행으로 인식하지도 않게 된다. 그루밍 성범죄는 ‘교사와 제자’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 간에도 그루밍 범죄가 일어난다.‘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해 15살 여중생과 수차례 성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하게 했다가 상습 성폭행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그루밍 성범죄 사례다. 그는 법원에서 피해 여중생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항변했고, 1·2심은 차례로 징역 12년형, 9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해 여중생이 평소 A씨에게 보낸 편지와 문자메시지에서 ‘사랑한다’는 표현과 이모티콘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을 거친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의 이례적인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그루밍 성범죄의 문제 중 하나는 처벌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은 만 13세 이하로 규정돼 있어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면 상대 남성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그루밍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지금의 만 13세에서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처럼 만 16세로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동화’가 이달 말 개봉된다. 의붓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으로부터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소년 ‘동화’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루밍 성범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6

가짜뉴스 공방

우리는 이미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의 정보로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측했듯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힘의 근원이 이미 지식 정보계층으로 넘어가고 있다. 국가나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은 이미 과거가 돼버렸다. 권력의 본질 자체가 과학적 혁명과 같은 첨단기술 수단을 통해 변화한 세상이다. 토플러는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3번의 혁명이 있었다고 했다. 하나는 농업혁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식과 두뇌에 바탕을 둔 정보혁명을 손꼽았다.정보화 사회는 정보가 중심이 돼 가치를 만드는 세상이다. 물질과 에너지가 자원이 됐던 농업화 및 공업화 시대와는 대별되는 개념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과잉정보나 불량정보로 인한 부작용이 필수적으로 나타난다.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났던 물질만능주의와 비슷한 사회적 병폐라 할 수 있는 것이다.가짜뉴스 문제가 또다시 국감장에서 논란이 됐다. 가짜뉴스의 범람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여당과 현행법으로도 규제가 가능한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야당의 주장이 맞섰다. 결론적으로 정치권이 이 문제를 두고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공방을 주고받는다면 결론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가짜뉴스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고 사용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가짜뉴스의 역사를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만큼 길다고 말하고 있다. 인류가 생활 속에서 전해 듣는 정보는 가공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가짜정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류는 가짜뉴스와 늘 다퉈 온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정보화 사회에 대한 평가는 정보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사용해 인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정보나 컴퓨터에 지배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올바른 정보화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의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가짜뉴스를 통제할 뾰족한 수단도 없지만 통제보다는 똑똑한 소비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가 없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5

대구 경제의 민낯

대구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내륙도시인 대구가 한때 전국 3대 도시로 명성을 날린 적도 있으나 좀처럼 명예를 회복지 못하고 있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 유치 등 대구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지나고 보면 그게 그거다. 경제를 살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줄 알지만 그분들의 약속이 새삼 야속하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언론사는 창간호에서 인천은 인구 300만 명을 넘기면서 대구를 제치고 국내 3대 도시로 비약했다고 보도했다. 경제지표 등에서 머지않아 부산을 추월할 기세라고 자랑했다. 이른바 수도권에 자리한 인천은 지금 의욕이 넘쳐나고 있다.일각에서는 인천의 국내 3대 도시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인구가 많다고 3대 도시로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천이 성장한 것은 서울의 베드타운이기 때문이지 인천 자체가 도시 기능적으로는 3대 도시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도시는 도시 자체적 구성 요소가 잘 갖춰져야 하고 무엇보다 자립적 도시 기능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만 해도 잠은 인천에서 자고,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사람이 많기에 대구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그러나 대구가 경제적으로 타도시보다 경쟁력이 있고 풍요로운가 하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버린다. 지역 총생산(GRDP)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25년간 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대구를 이처럼 침체 구덩이에 빠뜨렸는지 궁금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또는 정치적 위상에서 우리나라 중심부에 섰다고 자부했던 대구가 지금은 왜 이처럼 초라해졌을까 싶다.대구 근로소득자의 1인당 연평균 급여와 법인 사업자의 평균 당기순이익이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국세청이 국회에 건넨 2016년도 자료다. 지역기업의 경영 상태와 무관치 않은 결과다. 대구 경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같아 어찌 우울하다. 특히 우리지역 봉급생활자의 급여가 울산지역 봉급자의 72%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젊은이가 대구를 떠나는 이유를 알만하다. 백성을 편안케 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리더십이 아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2

풍등

풍등은 특정 행사때 하늘 높이 날리기 위해 만든 연등의 일종으로, 중국에서 유래됐다. 제갈공명이 발명했다해서 공명등으로 불린다. 중국에서는 새해맞이 시점에 대규모로 풍등을 날리기도 한다. 풍등에 소원을 적어 날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는 데다 행사 자체가 장관을 연출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통문화 축제행사로 실시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등축제는 대구 풍등축제다.‘달구벌 관등놀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4월에 열린다. 풍등축제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져서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축제로, 대구에서는 1967년부터 관등놀이의 형태로 전승돼 왔다. 형형색색 오색풍등에 희망, 소망을 적어 푸른 밤하늘에 날려보내며 기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풍등은 그 안에 불덩어리를 품고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는 물건이어서 얼마간 하늘을 난 뒤 땅에 떨어질 경우 화재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2017년 12월 26일 소방기본법 제12조가 개정되면서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의 권한으로‘풍등 등 소형 열기구를 날리기, 그 밖에 화재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행위의 금지 또는 제한’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를 위반해 풍등을 날리다가 적발되면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또 야생동물이 떨어진 풍등을 먹이로 여기고 삼켜서 죽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하늘을 떠 다니는 풍등에 다리가 얽혀 빠져나오지 못해 끝내 목숨을 잃은 올빼미 한 마리의 사진을 공개하며 풍등 사용 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 50여 개 자치단체는 풍등 날리기를 금지시켰다.하지만 그동안 풍등이 전통문화로 취급됐고, 빈번히 시행되어 왔었기에 일반인들에게 풍등을 날리는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하고, 벌금에 대해서도 반발이 크다. ‘전통문화 이벤트’와‘화재위험 요인’이란 인식 사이에 놓였던 풍등이 최근 경기도 고양저유소 화재를 일으켰다고 해서 논란이다. 아름다운 전통문화 행사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큰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11

청도 반시

청도의 감인 반시는 씨가 없고 모양이 쟁반처럼 납작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떫은 감을 대표하는 품종 중 상주와 영동 등에 분포하는 곶감용의 길쭉한 모양의 등시와는 다르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수령 300년의 등시 감나무가 있다면 경북 청도에는 이서면 신촌리에 수령 150년의 반시 효시 감나무가 있다. 반시는 육질이 유연하며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다. 다른 과실에 비해 비타민C가 월등히 많아 노화방지, 피로회복, 감기예방 등에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청도에서 생산되는 반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씨없는 감으로 유명하다. 청도 감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 심으면 씨가 생긴다고 한다. 산림청이 그 원인을 조사해 봤더니 청도 감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꽃만 있고 수꽃 감나무가 없어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도지방의 독특한 기후 등도 반시가 생산되는 이유라 했다. 2010년 산림청은 반시를 지리적 특성에 기인해 생산되는 농산물인 ‘지리적 표시제’ 농산물로 공식 등록했다.감은 예로부터 중국과 일본, 한국 등이 주요 산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은 오래된 농업기술서에 기록이 남아 있을만큼 역사가 있으며 생산량도 압도적으로 많다.청도반시는 조선시대 문인 박호가 평해(울진)군수 재직 시 명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부탁해 감나무 가지를 가져 왔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호가 고향으로 올 때 토종 감나무의 접수를 무속에 꽂아 청도 감나무에 접목한 것이다. 이곳에서 놀랍게도 씨없는 감이 열렸다고 한다. 이서면 신촌리 어귀에 있는 고목의 감나무가 원조 나무라고 한다.청도는 산과 물, 인심이 좋은 삼청의 고장이다. 대구 인근의 전원도시로도 명성을 잘 알리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가을만 되면 온통 감빛으로 물들어 가는 고장으로 더 소문 나 있다. 복잡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가을의 색깔과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기에 적당한 곳이다.12일부터 청도지방에는 반시 축제가 열린다. 청도 반시의 맛과 기분을 느껴볼 좋은 기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0

신라의 미소

불교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 중에 가장 압축된 말은 염화시중의 미소다. 본래 불교는 ‘말이나 관념을 떠나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던 중 연꽃을 들고 대중에게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섭이란 제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하여 염화미소라는 말이 생겼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다.미소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몸짓의 언어다. 웃음 속에 담긴 뜻이 알듯 말듯 하지만 마음이 통했다는 사인임을 서로가 안다. 그것이 어떤 장소든 상대가 누구든 시대가 어느 때든 상관이 없다. 미소 자체로 부처님의 마음을 안 가섭처럼 말없는 모두의 마음이 미소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신라 천년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보물로 지정됐다. 천년의 세월을 미소로 지켜왔던 수막새의 ‘작은 웃음’이 드디어 국가 보물로 인정받은 셈이다. 기와 유물 자체가 보물로 지정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의 예술성과 문화재적 가치가 보물로 지정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특히 틀에 찍어 낸 것이 아니라 섬세한 손으로 빚은 잔잔한 미소의 수막새는 신라인의 체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화유산이다. 수막새는 중국 전국시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백제 미륵사지, 신라 유적지 등에서 발견돼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경주 흥륜사 터에서 지금의 수막새는 발견됐다. 당시 일본인 의사에 의해 일본까지 반출됐으나 박일훈(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라는 분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국내로 돌아왔다.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는 한 사람의 집념과 노력으로 오늘의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아동문학가 이봉직은 ‘웃는 기와’란 동시에서 “기와는 금이 가도 신라 사람의 웃음은 깨지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신라의 미소’가 이젠 이심전심으로 널리 퍼질 모양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08

고령 운전자

90세가 넘은 노인이 사업용 택시를 운전한다고 하면 우리가 이를 단순히 노익장(老益壯)의 한 단면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까. 사람의 건강이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기에 꼭 나이 많은 노인이라고 해서 택시 운전을 못 할 것은 없다. 현행법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택시운전을 제지할 방법은 없다.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택시의 운전자 연령이 90세를 넘어섰다면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 된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90세라는 노령의 연령으로 택시를 모는 것은 어째 불안해 보인다.우리나라에서 90세가 넘은 노인이 사업용 택시를 몰고 있는 숫자가 전국적으로 237명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에서만 110명이 현재 운전 중에 있으며, 대구서도 17명의 90세 이상 노인이 택시 영업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국회에 제출된 국토교통부 자료에서 밝혀진 것이니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자료에 따르면 80~89세의 택시 운전자도 전국에 533명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령사회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설명할 수 있으나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하다.자료를 넘겨받은 국회의원도 고령화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자격증 유지 검사를 좀 더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지난해 일본에서는 치매환자인 60대 후반 여성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사망케 한 사고가 났다. 일본에서는 치매환자의 11%가 여전히 운전 중에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한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고령자 운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운전면허 반납 캠페인 등 다양한 계몽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도 최근 10년 사이 65세 이상 고령자의 교통사고가 2.6배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정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에 비해 고령 운전자 사고는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사회의 고령자 운전도 대책 마련이 절실해졌다. 정부의 대응 노력으로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05

징병제 vs 모병제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부여하는 병역제도는 징병제와 모병제 두가지로 분류된다.징병제는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들은 반드시 징병검사를 받고 군인으로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며, 모병제는 강제 징병하지 않고, 본인의 지원에 의한 직업군인들을 모아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다. 징병제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어가는 후진적 제도로, 모병제를 도입하는 국가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2011년 징병제를 폐지했고, 2015년에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징병제를 폐지했다. 모병제는 병역의무를 강제하는 징병제에 비해 장점이 더 많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인재활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부담이 없고, 인권침해가 적어지는 게 대표적인 장점이다. 군인 전체가 직업 공무원이므로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 내무부조리, 기수열외가 현저히 적어지며 조직력이 강화된다. 군복무 부적응자가 없어지고, 군사반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진다. 징병제와 다르게 군 입대에 대한 개인의 결정권을 박탈하는 사상적 모순의 여지가 없어진다. 군 입대 기피를 위한 조직적 비리인 병역비리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구 일본군 해체로 징병제가 폐지된 일본이나 베트남전 후반기인 1973년 징병제가 폐지된 미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모병제는 교육·훈련 및 동기부여 측면에서 징병제에 비해 장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대부분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다만 모병제는 똑같은 편제를 유지할 경우 모집하는 비용이 더 드는 게 단점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모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저출산이 심화해 지금과 같은 대규모 병력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진 데다 머릿수 대신 첨단 무기를 활용하는 ‘군 과학화’가 진행되면서 모병제 도입 논의가 점차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긴장완화 및 해빙무드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우리 병역제도를 바꾸는 단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2018-10-04

국민청원 오른 상장폐지제

상장폐지제는 증시에 상장된 주식이 매매대상으로서 자격을 상실해 상장이 취소되는 것을 말한다. 감사의견 비적정 결정으로 매년 상장폐지 대상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 코스닥 12개사에 대한 결정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요지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려 논란이 일고 있다. 청원자는 게시판에 ‘저를 포함한 20만 주식 개미투자자들을 살려주세요’란 제목의 글을 통해 현 상장폐지제도의 문제점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최근 감사보고서에서 외부 회계감사인의 의견거절·감사범위 제한 등을 받아 상장폐지 대상이 됐던 코스닥 15개 법인 가운데 12곳이 ‘조건부 상장폐지’결정을 받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원자는 상장폐지결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회계법인의 졸속 처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상장폐지제도는 의견거절을 준 회계법인이 다시 재감사를 진행하고 그 재감사에서 다시 의견거절이 나오면 그 즉시 상장폐지가 된다. 법원 판결도 3심제가 적용되는데, 한 회사당 수 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피해 금액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결정을 똑같은 회계사 몇명이 계속 심사하도록 돼 있는 것은 제도적으로 잘못됐고, 회계법인의 횡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의견거절을 준 회계법인이 재심사를 할 경우 자기 스스로 이전의 자기 결정을 뒤집어야 하는 모순이 존재하기에 재감사 때는 회계법인을 바꿀 권리를 주거나 복수의 회계법인한테 감사를 받도록 한 후 그 의견을 종합해서 상장폐지 여부 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었다. 또 해당 회사에게 소명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회계법인의)의견거절이 내려지면, 곧바로 상폐절차에 돌입하는 것도 문제다. 해당 회사가 가처분 신청을 해도 법원의 판결이 나기도 전에 상장회사의 정리매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회계법인의 갑질을 근절하고,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나라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상장폐지 제도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02

두발 완전 자유화

1895년 고종은 자신이 먼저 서양식으로 머리를 깎고, 낡은 관습을 없앤다는 이유로 백성에게 머리를 짧게 깎도록 단발령을 내렸다. 유교문화에 푹 빠져있던 당시로서는 충격적 조치였다.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러받아 몸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비록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백성의 저항은 만만찮았다.히피 문화가 유입된 1970년대의 일이다. 젊은이 사이에 유행한 장발머리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긴 머리가 우리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여성들이 치마를 짧게 입어도 경범죄로 처벌을 받던 시절이다. 국민의 자율성보다는 전통적 관습이나 사회의 규범적 룰이 일상의 문화를 주도했던 때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적 관습은 단시일 내에 깨지기가 좀체 쉽지가 않다.중고교의 두발자유화는 1982년 교복 자율화와 동시에 시작됐다. 까까머리 학생이 머리를 기른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구보다도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사실 그 당시의 두발자유화는 종전보다 좀 더 길게 기르는 완화 정도였지만 학생들의 반향은 완전 좋았다. 물론 염색과 파마는 애초부터 없었던 내용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부터 두발 완전 자유화를 중고교에게 권고키로 했다. 염색과 파마 등도 허용을 검토한다고 한다. 두발 완전자유화를 염두에 둔 조치로 벌써부터 찬반 논쟁이 뜨겁다. 두발자유화가 이젠 대세란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우세한 듯하다. 하나 학생들의 학교생활지도가 사실상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히 숙제다.특히 염색 등으로 빈부격차와 학생 간 위화감 조성 문제에 대해 교육적 대응이 주목된다. 학생의 기본권 존중에서 두발자유화는 출발하였지만 교육 중인 학생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제한은 있어야 한다. 법에도 18세 미만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기본권 제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중고교생의 자율권 인정을 어느 선까지 보느냐는 교육당국의 지혜로운 판단의 문제다. 두발 완전자유화는 교육당국 손에 달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01

내 곁의 영웅

골프 여제의 호칭을 얻은 박세리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다. IMF로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시절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에서 보여준 성공신화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비록 IMF로 나라는 힘들어도 미 골프계로 진출해 국위를 선양했던 그녀의 활약상은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국민은 그녀의 성공신화를 지켜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박세리 키즈’도 생겨났다. 지금까지도 한국여자 골프는 미국의 메이저 대회를 휩쓸고 있다. 박세리의 영향력이다. 박세리는 그해 LPGA 올해의 신인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쓸고 마침내 아시안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국난으로 나라가 어려운 시절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킨 이순신 장군이나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 등과는 다르지만 그녀의 국위 선양은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똑같다.영웅이란 남다른 용기와 재능, 지혜로 보통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비범한 사람을 일컫는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징기스칸과 같이 역사를 진전시킨 대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만이 영웅인 시절은 이제 한물가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영웅에 대한 평가와 무게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정인의 시대가 아닌 보통인의 시대로 바뀌면서 체육인, 연예인까지 우리 곁의 영웅으로 다가오고 있다.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5년만의 우승 복귀가 그를 입증했다. 우즈의 우승을 두고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열광을 했다. 언론은 그의 우승을 두고 ‘부활’, ‘귀환’, ‘금의환향’ 등 동원할 수 있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세계가 그의 복귀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걷기조차 어려웠던 그가 당당히 일어섰기 때문이다. 스포츠인으로서 늦은 43살의 나이에 또다시 골프계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그의 초인적 의지와 노력에 대한 팬들의 격려다. 영웅은 우리 곁에 항상 있는 세상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28

이산가족 울린 북한산 송이버섯

추석 연휴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측에 보내온 ‘송이버섯’선물이 최고의 화제로 떠올랐다.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송이버섯 2t(시가 18억원 상당)을 선물했다. 송이버섯은 소나무, 눈잣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 주변에서 채집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에서만 자란다. 동의보감에서는 송이를 ‘독이 없으며, 맛이 달고 향이 짙다’ ‘위의 기능을 돕고 식욕을 증진하며 설사를 멎게 하고 기를 더해준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송이버섯은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며, 항암작용에 탁월하다. 특히 항암성분인 ‘크리스틴’이 함유돼 있어 위암, 직장암 등의 발생을 억제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면역력 증진 및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문 대통령은 북한 송이버섯을 고령자 위주로 선정한 미상봉 이산가족 4천여명에게 500g씩을 전달했다. 이산가족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2세의 우리 어머니!! 문 대통령을 통해 보내 온 김 위원장의 송이버섯 선물을 받았다. 고령자의 맨 꼭지점에 있을 우리 어머니는 북에서 온 선물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신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북한이 송이버섯을 선물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과 2007년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각각 송이버섯을 선물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진돗개 두 마리와 60인치 TV 1대 등을 선물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풍산개 두 마리와 자연산 송이로 화답한 데 이어 같은 해 추석 때 특별기편으로 송이버섯 3t을 보냈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경남 통영 나전칠기로 만든 12장생도 8폭 병풍과 무궁화 문양 다기·접시, 전남 보성 녹차 등을 선물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송이버섯 4t으로 답례했다. 김정일 위원장과 이번에 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은 모두 칠보산 송이버섯으로 알려졌다. 북한 송이버섯이 많은 미상봉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기를 소망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9-27

신라문화제의 부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흥준 교수는 “경주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한 달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많은 유물을 두고 1박2일, 2박3일 다녀오고서 경주를 봤다고 말하는 것은 만용이라 표현했다.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경주는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별명을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문화유적의 도시다. 땅을 파면 금방이라도 토기와 기왓조각 등 옛 유적이 나올 것같은 문화의 체온이 느껴지는 곳이다.수학여행이나 가족여행 등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본 경험이 있는 도시다. 그러면서도 언제 어느 때 다시 이곳을 찾아도 진한 역사의 향기에 젖어 신비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 도시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경주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불국사 다보탑 등 국보만 67개, 석빙고 등 보물은 92개에 이른다.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재도 76개에 이르며 중요민속자료나 시도 유무형문화재 등을 포함하면 그 수는 끝이 없다. 1천년의 역사가 남겨준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00년에 와서는 경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신라시대 유적들을 성격에 따라 5개 지역으로 나눠 ‘경주역사 유적지구’로 통칭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5개 역사 유적지구는 신라불교의 보고인 남산지구, 신라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인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왕성 방어시설인 산성지구 등이다.경주는 이처럼 문화 유적만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곳이다. 신라 문화의 원류가 생성된 곳으로 그 정신은 영남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우리나라 대표 축제로 전국적 명성을 누렸던 신라문화제가 옛 명성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1962년 시작한 신라문화제는 신라인의 문화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전국적 주목을 받은 축제다. 전통과 문화는 다듬고 사랑할 때 더 빛난다. 신라문화제가 한국의 로마를 꿈꾸는 경주의 변화에 새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21

통계불신 시대

통계(statistics)는 일상생활이나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자료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수치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특히 사회집단 또는 자연집단의 상황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인구의 생계비, 한국 쌀 생산량의 추이, 추출검사한 제품 중의 불량품의 개수 등이 그것이다. 통계는 사회의 발전과 함께 발달해 왔는데, 최근 통계와 관련한 불신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통계청이 국민들의 소득 분배지표가 최악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정책 실패’논란을 부르자 ‘가계동향조사’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통계조작 논란이 일고있다. 개편의 핵심은 2020년 조사부터 ‘가계동향조사’만을 위한 별도의 표본을 만드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통계청이 하는 다른 통계 작업의 응답자들을 그대로 이용했는데, 앞으로는 이 조사를 위한 전용 응답자를 꾸리겠다는 게 골자다. 이렇게 하면, 고소득과 저소득 가구의 조사를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어 소득 분배 지표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이전 기간과의 비교도 더 정확해진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아울러 소득과 지출도 한꺼번에 조사해 가계 살림이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파악해보기로 했다. 통계청은 표본변경 이유에 대해 “가계수지 진단 및 맞춤형 정책 수립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초자료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가 많이 있어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통계불신을 부추기는 모양새가 됐다. 또 이럴 경우 표본의 잦은 변경으로 이전 기간과의 비교도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2017년 이전 자료, 2018, 2019년 자료 그리고 2020년 이후 자료 등으로 통계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시계열 상의 불연속성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통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계동향 소득조사’에서 분배 지표 악화로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논란을 일으켰고, 통계청장 경질 논란으로 이어지자 정치권에서 ‘통계불신 시대’란 탄식이 터져나온다.사회과학에서 정책검증의 최후 수단인 통계가 불신의 늪에 빠진다면 무슨 수로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9-20

명절 증후군 퇴치법

우리 민족의 으뜸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으나 명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람도 많다. 명절증후군을 걱정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생기는 병으로 우리나라 고유문화에서 파생한 독특한 증상이다. 외국에는 이 같은 현상은 없다.명절 때 일을 많이 해야 하는 한국의 며느리에게 주로 발생했으나 요즘은 남편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일어나 병원을 찾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한국의 산업화 이후, 가정이 핵가족화되면서 생겨난 신종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여성에게 집중된 육체적 노동과 남편 집 조상에 제사를 지내면서 시집의 눈치를 봐야하는 정신적 고통 등으로 여성이 증상을 많이 호소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괜히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온몸에 힘이 쑥 빠지는 증상이다. 명절 이후에도 목이 뻐근하거나 배가 아프거나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들이다.남편도 증상은 비슷하다. 장시간 귀향에 따른 운전과 극도로 날카로워진 아내의 기분을 맞추느라 스트레스가 생긴 것이다. 고향 친지를 만나보겠다는 기대감도 잠시고 명절이 다가오면 괜히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이런 스트레스성 증상으로 명절 후 병원을 찾는 환자는 평소보다 크게 는다. 명절 이후 부부관계가 갑자기 냉전 상태로 돌아선 집도 많다고 한다. 2016년 통계지만 설·추석 전후로 하루 500건이 넘는 이혼신고가 접수돼 평소의 배를 넘었다고 한다.명절증후군을 가볍게 볼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명절증후군 퇴치를 위한 기업의 마케팅이 등장했다. 여행사의 명절 전후 특가 이벤트가 나왔나 하면 제약회사에서는 명절증후군 타파를 위한 영양제를 개발, 선보였다. SNS 상에서는 ‘명절 제사 없애는 방법’이 네티즌 사이에 인기라고 한다.즐거워야 할 명절이 명절증후군으로 망쳐서는 안 된다. 가족 간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 고유의 명절이 가지는 의미를 되살리는 정신운동이 필요하다. 꼭 제사를 지낼지도 생각해 봄직하다. 가족이 모여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다면 명절의 의미는 충분하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19

종부세 폭탄론의 허실

정부가 9·13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서울 등 주택 가격 상승 지역의 다주택자 세부담을 늘리는 종부세법 추가 개정안을 발표하자 ‘종부세 폭탄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똘똘한 한 채’로 불리는 아파트는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집값 상승분과 비교해 종부세·재산세는 미미하게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 그 결과 ‘종부세 폭탄론’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추가 개정안에서 3주택자 이상과 서울·세종 등 집값이 급등한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게 참여정부(3.0%) 때보다 높은 최고세율(3.2%)을 매겼다. 다만 최고세율 적용 대상은 매우 적다. 과표 94억원이 넘는 3주택자·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으로 공시가격 9억원(다주택자는 6억원)까지 공제된다.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1주택자는 공제액인 9억원을 뺀 뒤 세금 할인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80%)을 곱해 과표를 산출한다. 아울러 주택 공시가격이 실거래가 대비 60∼70%에 형성되기 때문에 실제 시세가 17억∼18억원이 돼야 신설된 과표의 적용을 받는다.종부세 인상이 1주택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도 사실과는 다르다. 종부세는 현재 인별 합산과세가 된다. 예를 들어 부부가 공시가격 12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어도 공동명의로 50%씩 소유하면 각각 최대 6억원씩 공제받아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게다가 1주택자는 전년 대비 보유세 부담 상한선도 150%로 유지해 정부의 종부세 인상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9·13대책에서 정부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도 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늘어나고, 재산세액이 증가하는 게 사실이다. 종부세 폭탄론이 불거진 이유다. 하지만 현재 고가 단독주택이나 가격이 급등한 지역의 아파트는 시세의 60% 이하에서 공시가격이 형성돼 있고, 일반 아파트와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시세 대비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시가격의 현실화가 얼마나 형평성있게 실현될 지 지켜볼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9-18

음주운전

술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국인은 술에 관해 대체적으로 관대하다. 술로 인한 실수는 사람탓보다 술탓으로 돌려 버리면 대강 넘어간다. 술을 잘 마셔야 직장이나 사회생활이나 잘 한다는 평판을 듣는다. 손님 대접을 할 때는 술 접대를 잘해야 잘 대접했다고 여긴다. 세계적으로 고급술이 잘 팔리는 나라로 알려진 것도 이런 음주문화가 한 몫한 탓이다. 지나친 음주는 담배보다 개인의 건강에 더 나쁘다. 국민의 습관성 음주는 국가적 차원에서 부담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모든 질병에 알코올이 기인하는 수준이 4%에 달한다고 했다. 수명단축뿐 아니라 고통도 수반한다. 또 알코올은 폭력사고와 같은 타인에 미치는 폐해도 많다. 반면에 담배에 비해 규제는 느슨하다. 정부가 내놓는 술에 대한 규제라고 해봐야 ‘적당한 음주’ 캠페인이 고작이다.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술 소비가 많은 나라다. 1인당 알코올 섭취량은 12.3ℓ다. 아시아권에서는 최고다. 술 소비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술에 대한 관대한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얼마 전 국가 공무원의 음주운전 현황 자료가 국회에서 발표됐다. 공직사회의 음주운전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보고서다. 2017년까지 최근 5년 간 국가직 공무원 3천655명이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았다. 매년 6백여 명 정도가 반복적으로 음주운전하다 적발되고, 징계를 받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징계된 공무원의 소속도 부처별로 다양했다. 공직사회 전체가 음주운전에 대한 ‘주의’ 인식이 매우 낮음을 짐작케 한 자료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공무원과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공무원까지 음주운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공직자의 각성이 절실하다. 음주운전은 무고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만 연간 수 백 명이 음주운전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좀 더 강력한 제재가 있어야겠다. 국가에 따라 음주운전자에 대한 제재가 각양각색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음주운전자가 기혼일 경우 배우자도 함께 수감한다고 한다. 우리도 더 단단한 대책 마련이 있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17

공직자의 도덕성

공직자의 주요 덕목으로 손꼽으라 하면 청렴성과 도덕성을 먼저 꼽을 수 있다. 공직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에 사인(私人)과는 근본적 생각과 자세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 그런 정신이다. 도덕심이란 선과 악을 구분하여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정상적 사고의 사람이라면 당연시하는 규범이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솔선돼야 할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본래부터 사람의 마음은 착하게 태어난다는 천부적 도덕심에 근간을 둔 학설이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본 사람은 칭찬이나 혹은 주변의 비난이 두려워서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사람의 본성이 착하기 때문에 행한다고 설명한다. 맹자의 성선설은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실천적 근거로 활용되면서 유교사상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우리 사회가 유난히 도덕적 규범을 엄하게 요구하는 시대적 배경에는 유교적 영향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심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훌륭한 정신적 가치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나 경제 그 어떤 분야의 활동이든 도덕심을 잃어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얻기가 어렵다.도덕심이란 측면에서 보면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유럽의 도덕적 가치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설명하지 않아도 동서고금은 도덕성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 생활의 윤리기준을 갖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위장전입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매번 청문회마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국민이 느끼는 혐오감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왜 국가경영에 참여하겠다는 후보들이 도덕적 책무에 소홀한지에 대한 거부감이다. 위장전입을 하고도 자기 나름의 이유가 변명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전쟁에 나서 오십보 도망간 군사가 백보 도망간 군사를 비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위장전입이 공직자 임명의 강제적 기준은 안 된다하더라도 그 사실을 불가피성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수용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