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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맘마미아’가 선물하는 작은 위로

지난주 개봉한 영화 ‘맘마미아 2’는 “고뇌하는 햄릿에서 멈추지 말고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삶을 살아보라”고 관객들을 추동한다. 그 메시지의 일관성은 10년 전 상영된 1편과 동일하다.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에 1970년대 세계적 인기를 누린 스웨덴 밴드 ‘아바(ABBA)’의 노래까지 얹은 흥미로운 영화. 1999년 4월 초연된 캐서린 존슨의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맘마미아’ 시리즈 2편의 각본과 감독은 올 파커가 맡았다.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셰어, 메릴 스트립, 앤디 가르시아, 콜린 퍼스의 중후한 연기에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제임스의 깜찍함까지 만날 수 있는 ‘맘마미아 2’의 스토리는 간명하다.1979년 한 영국 여성이 프랑스 파리와 그리스 칼로카이리 섬을 여행하며 몇 주 사이에 세 명의 남성과 정열적인 밤을 보낸다. 그 결과 아버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아기가 생긴다. 여성은 그 아이를 버리지 않고,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그 섬에 머물다 죽는다.성인이 된 딸은 엄마의 1주기를 맞아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세 명의 남성에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파티를 열 것”이라는 소식을 알린다. 성공한 중년이 된 셋은 만사 젖혀두고 자신들 청춘의 추억이 묻어있는 칼로카이리 섬을 찾는데….‘맘마미아’ 시리즈에선 생의 고뇌나 고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년 넘게 혼자 아이를 키우며 낯선 곳에서 살았을 여성의 삶이 마냥 행복했을 수는 없었을 것임에도. 하지만, 2시간 남짓의 영화에서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영화는 삶이 주는 아픔이 아닌 ‘아름답게 누려야할 생’에 포커스를 맞췄다.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청년들의 취업난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까지. 최근 한국 상황은 아름답다기보단 고통스럽다. ‘맘마미아 2’는 그런 녹록지 않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위로’한다. “왜 고민만 하며 살 것인가? 비관하건 낙관하건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고,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게 된다”며./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6

1971년 돼지띠의 빛과 그림자

주민등록인구와 행정구역, 지자체 예산 규모 등을 정리한 ‘2018 행정안전통계연보’가 최근 발간됐다. 이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인구는 5천177만8천544명. 이 가운데 1971년 태어난 돼지띠 남녀가 가장 많다고 한다. 1971년 태어난 한국인은 102만4천773명. 이중 사망 또는 실종된 7.9%를 제외한 94만4천179명이 올해 만 47세를 맞았다. 이른바 ‘58 개띠’로 불리는 1958년생 ‘제1차 베이비붐 세대’ 이후 ‘제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71 돼지’들이 숫자 면에서 한국 사회의 중추가 된 것이다.통계가 발표된 후 신문과 SNS 등엔 그 시대를 기억하거나 살아온 언론인과 예술가, 회사원과 공무원 등의 추억담이 넘쳐난다.“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교실은 항상 60~70명의 학생들로 북적였고, 이를 다 수용하지 못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한 학년이 15개 반쯤 됐기에 수학여행이라도 갈라치면 10량이 넘는 기차를 통째 대절하는 장관이 펼쳐졌다.”“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도 밤 10시까지 교실에 남아 졸린 눈을 부비며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외워야 했다.”과장이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 1971년생 돼지띠가 대학 입시를 본 1990년도 학력고사 경쟁률은 4.57대1. 역사상 가장 높았다. 많은 또래들 속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취업 운’ 또한 좋지 못했다. ‘71 돼지’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와 직장을 구할 시기인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것.여러 고통과 수난 속을 살았지만 1971년생 돼지띠들의 삶 전체가 마냥 어두웠던 것만은 아니다.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친구에게 선뜻 내어주는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아웅다웅하는 가운데서 어떤 경쟁도 우정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갔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일찍 철들 듯.세상 모든 물건에는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 ‘71 돼지’들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무한경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그들의 우정은 보석처럼 빛났을 터. /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4

뚱뚱해지는 나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한 것은 2014년도다. 인구 기준으로 중국은 8천960만 명이 비만으로 조사돼 그동안 8천780만 명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미국을 앞섰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중국인 식생활의 서구화가 불과 40여 년만에 중국을 세계 최고 비만국가로 탈바꿈하게 했다.우리나라도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식량을 지원받아야 할 만큼 식량난에 쪼들린 국가였다. 비만은 부자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배 나온 사장님이 부러웠던 때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듯 국민의 비만을 걱정해야 할 나라로 바뀌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가 2030년에 가서는 현재의 2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 경고했다. 2015년 기준 5.3%의 고도 비만율이 2030년에는 9.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은 이젠 질병으로 분류돼야 할 정도로 사회경제적 손실도 작지 않은 사회문제다.정부가 지난달 24일 국민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6년 현재 34.8%인 국민 비만율을 2022년까지 현행대로 유지시키며, 이를 위해 영양, 운동, 비만치료, 인식개선 등의 다각적 사회적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그 방법의 일환으로 정부가 밝힌 먹방 규제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먹방과 같은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TV,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는 2019년까지 가이드 라인을 개발하겠다”고 했던 것이 불씨가 된 것.야당에서는 먹방 규제는 “국민을 어리석은 백성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국가주의 문화’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사회 일각에서도 정부의 먹방 규제 발상에 반발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어쨌거나 자꾸 뚱뚱해지는 국민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든 개인이 관리하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비만에 대한 대책은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 먹방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의 성찰이 먼저 있고 비만 대책에 나서는 것이 순서일 것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3

“이 또한 지나감”

올 여름만큼 여름날이 지루한 적도 드물었다. 전국이 가마솥처럼 달아올라 아우성이다. 올해 최고 기온이 111년 만에 신기록을 수립했다. 대구 등 전국 일부 도시에서 낮 기온이 최고 40℃를 넘겼다. 상상만 하던 기온이 현실이 된 꼴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3천5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3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우리는 이런 온열질환자를 두고 ‘더위 먹었다’고 불렀다. 더위 먹은 환자가 보건당국 집계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오죽하면 일본 근해를 지나가는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으면 하는 염원까지 했을까. 한반도를 비켜가는 태풍에 대한 아쉬움이 깊숙이 남았던 여름날이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에어컨만 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에어컨 틀기가 겁났던 여름이다. 비싼 전기료 때문이다. 몇해전 맞았던 전기료 폭탄이 생각나 에어컨을 틀면서도 가슴은 내내 조마조마했다.정부가 한여름이 지나 한시적으로나마 가정용 전기료를 완화해 주겠다고 밝혔으나 속이 시원할 만큼은 아닌지 국민 반응도 대체로 시무룩하다. 정부 정책이 뒷북을 쳐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지난 7일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다. 우리 조상은 이날부터 입동(立冬)까지를 가을이라고 불렀다. 더위가 한풀 꺾일듯한데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다음 절기인 처서(處暑)까지도 이 더위가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으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 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극성을 부리던 파리, 모기도 어느 듯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고진감래(苦盡甘來)일까. 수확의 계절 가을이 코앞에 와 있다. 짜증나고 힘들게 했던 올여름 폭염도 이젠 떠날 시간이 됐다. 기쁠 때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으라는 솔로몬 왕의 명언이 생각이 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0

마블링

소고기는 마블링이 많을수록 촉촉하고 사르르 녹는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마블링 많은 소고기가 높은 등급을 받았고, 가격도 비싸게 책정돼왔다. 이처럼 근육 내 지방 비율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는 소고기 등급제는 국민에게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좋은 고기’라는 통념을 심어왔다. 하지만 소고기의 지방은 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국내 소고기 등급제는 건강에 해로운 저품질 고기를 가장 비싼 가격에 유통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마블링 많은 소고기가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지방은 결합조직 막과 근섬유 덩어리를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열을 가하면 결합조직이 쉽게 끊어져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지방은 열전도율이 낮아 가열했을 때 고기 내부의 수분 증발을 억제한다. 상대적으로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육즙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블링이 많을수록 기름진 맛이 강하지만 그만큼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갖게 된다. 마블링 많은 고기가 맛은 있지만 포화지방산이 혈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는 만큼 소고기등급제의 개선은 필연적이다.이에 따라 농림식품부는 소고기 등급 판정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흔히 ‘마블링’이라 불리는 소고기의 근내지방도를 우선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던 판정 방식을 버리고, 앞으로는 근내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중 가장 낮은 등급을 최종 등급으로 결정하는 최저등급제가 적용된다. 새로 마련된 방안의 핵심은 육질등급 보완으로, 앞으로는 마블링 7+등급부터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등급도 기존에는 마블링 6등급 이상만 해당됐지만 바뀐 기준에 따르면 마블링 5++등급부터 포함되게 됐다. 소고기 등급은 구이용 부위에 한정해 의무 표시하고 찜, 탕, 스테이크용 부위는 표시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안으로 축산법 시행규칙을 개정할 계획이지만 실제 시행은 내년 하반기 예정이다.소고기 등급제의 개선은 소비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축산농가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9

투잡시대

직업 하나만 갖고 먹고 살기 어려워서일까, 투잡 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 취업관련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1명이 현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직장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의 20%정도가 틈틈이 수입을 위해 부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이 다양화되면서 직업에 대한 관념도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라 볼 수 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갈래일 수 있으나 그들의 아르바이트 동기에서 찾아보면 경제적 이익 추구가 주된 이유다. 질문에 응답한 사람의 85%가 수입을 더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주말이나 공휴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혼보다는 기혼 남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수입이 이유일 것으로 유추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우리 사회에 투잡(Two Jobs)이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전통사회에서 직업은 평생직장의 개념이다. 한 곳에서만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이야 말로 모범적 직장인의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직장도 역시 직원이 투잡을 가진다는 것은 애초부터 용납되지 않는 불문율이다. 국가 공무원이 퇴근 후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사가 퇴근 후 학원에 강의를 할 수 없는 것도 직업의 윤리측면에서 당연한 일이다.직장은 속성상 직원이 한 직장에서 충실히 일해 줄 것으로 믿고 그 댓가로 승진과 보수를 부여하고 있다.아직도 이 같은 직장에 대한 고정 관념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잡시대가 젊은이들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예인이나 자영업자, 혹은 인터넷 매체를 매개로 한 직장인의 투잡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시간외 수당이 떨어져 나간 일부 직장인들이 서비스 판매업이나 대리운전 시장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투잡시장은 더 확산될 분위기다.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섣부른 판단은 못한다. 그러나 일과 삶의 균형을 찾겠다는 이상적 가치와는 맞지 않는 변화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8

머나먼 종전선언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국 간에 전쟁상태가 완전히 종료됐음을 확인하는 공동의 의사 표명이다. 즉, 종전을 선언한다는 것은 기존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종전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쟁 당사국들 간의 공식적인 외교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사실상 휴전 상태다. 이 정전협정은 교전을 잠정 중지한 것에 불과하므로, 전쟁 상태의 실질적인 종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종전선언 뒤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질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북한은 노동신문·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미국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31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북한은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북핵 관련 6자 외교장관이 모인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은 조기 종전선언 채택을, 미국은 선 비핵화 조치를 주장했다. 일단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관망세다. 7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핵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종전선언 등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비핵화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감내할 뜻을 내비쳤다. 북한은 미국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4일 ARF 회의 연설에서 “우리가 주동적으로 먼저 취한 선의의 (비핵화) 조치에 화답은 커녕 미국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조선반도 평화 보장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전선언이 되고나면 북한으로선 곧장 유엔사 해체 등을 요구할 것이며, 이럴 경우 북한의 비핵화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우리 국방력만 약화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종전선언 실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종전선언, 그리고 평화의 길은 멀고도 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7

적당한 음주

인류의 삶 속에서 술은 반드시 존재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 곁에는 술이 있는 법이다. 동서고금이나 문명의 발달과는 무관하게 술은 인간 삶의 일부로서 자리를 일찍 잡아 왔다. 술의 역사도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기원전 3천~4천년부터 포도주가 주요 교역상품으로 등장했다. 중국 은나라 때 유적에서도 술 빚는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형태라 할 수 있다.음식의 동반자, 신성한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주, 우정과 화합을 위한 축배의 상징으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인류의 동반자였다. 사람과는 땔 수 없는 관계의 술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술을 ‘악마가 준 선물’이라고도 한 것도 “경계해서 마셔라”는 뜻이다.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술로 인해 패가망신(敗家亡身)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술을 곡식으로 빚었다 하여 곡주(穀酒)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의 혼을 미혹한다고 하여 미혼탕(迷魂湯) 또는 모든 화의 원천이라고 하여 화천(禍泉)이라고도 부른다.프랑스에서는 식사 때 반드시 포도주가 나오지만 예의범절을 지키는 강력한 음주문화가 있다. 서양인의 술 습관은 마시는 것보다 즐기는데 있다. 조선시대 우리의 선비도 향음주례(鄕飮酒禮)라 하여 올바른 주연(酒宴)의 예법을 가르쳤다.현대인이 술로 인해 가장 걱정해야 할 부분은 건강이다. 음주가 유발하는 질병은 매우 다양하다. 간질환뿐 아니라 암과 치매 등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치명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술의 기본적 성질을 대열대독(大熱大毒)이라 한다. 적당히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도를 넘으면 독성물질로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막걸리가 항암효과에 좋다는 것도 적당한 음주 습관을 보일 때 일이다. 영국 한 연구진은 적당한 음주가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이색 보고서를 냈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적당량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47%나 낮다는 것이다. 술의 양면성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새삼스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6

낮잠

낮잠은 대부분의 나라가 인정하는 생리현상이다. 낮잠을 일상생활과 연결지어 관습화 혹은 문화로 형성한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낮잠은 일시적 수면 현상으로 치부하는 쪽이 많다. 업무시간 혹은 수업시간에 잠시 꼬박 졸아도 식곤증과 같은 생리현상으로 알고 가볍게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지중해 연안국가나 라틴아메리카 등과 같이 아주 더운 지방에서는 시에스타(Siesta)라고 하는 낮잠 풍습이 있다. 한낮에는 무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으므로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자는 취지다.특히 스페인의 낮잠 문화는 유별나다. 보통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는 거의 모든 상점과 식당 등이 문을 닫는다. 한때는 관공서까지 문을 닫을 만큼 생활 속에서 낮잠문화의 비중이 컸다. 이를 모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낮잠은 일단 건강에 좋다는 의견이 많다. 하버드대의 한 의학자가 20세와 80세 사이 성인 약 2만 명의 생활습관, 식습관, 낮잠 자는 습관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의 낮잠을 잔 사람은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37%나 낮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잔 사람은 같은 시간동안 깬 상태로 서 있었던 사람보다 혈압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낮잠이 대체적으로 건강에 이로울 것으로 보면서도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너무 길게 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밤에 자는 정상수면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낮잠은 잠시 즐겨 생활의 활력소로 삼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서도 과거에는 대청마루나 그늘진 살평상에 누워 오수(午睡)로 더위를 식히는 문화가 있었다.대형사건 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관련법안 발의를 많이 해 놓고는 본회의 처리는 나 몰라라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는 계류 법안이 1만 건을 넘는다고 한다. 폭염관련 법안도 18대 국회 때부터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서 낮잠을 잔다고 한다. 폭염에 사람도 법안도 지친 요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3

대프리카 & 서프리카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신조어인 ‘대프리카’가 유행이다. 몇 해 전 여름 신문에는 대구 시내 아스팔트 도로에 그어진 차선이 녹아내려 꼬불꼬불해진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열섬 효과’ 등으로 다른 도시보다 기온이 높은 서울과 아프리카를 합성한 ‘서프리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대구와 서울의 무더위를 ‘더운 나라’로 꼽히는 아프리카에 비견하고 있지만 정작 대구와 서울이 아프리카 보다 더 덥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프리카는 면적이 전 세계 육지의 약 20%에 해당하는 큰 대륙으로, 위도와 경도, 해발고도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다. 사하라사막이나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일대에 걸쳐 있는 칼라하리사막 등은 낮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서지만 적도 인근의 도시조차 서울이나 대구보다 기온이 낮은 경우가 흔하다.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적도 인근에 자리한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31일 최고기온은 26도, 최저기온은 17도로 나타났고, 1일은 각각 26도, 16도였다. 역시 적도 인근인 우간다 수도 캄팔라는 1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이 각각 27도, 18도를 기록했으며, 31일은 각각 28도, 17도였다.WMO가 집계한 30년 월평균 기온을 보면 키갈리는 최고기온이 26∼28도, 최저기온이 15∼16도로 1년 내내 큰 차이가 없으며, 캄팔라의 월평균 최고기온과 최저기온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키갈리와 캄팔라는 해발고도가 각각 1천450m, 1천190m 정도로 높아 선선한 편이다. 적도 인근이면서 저지대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경우 이들 지역보다 기온이 높은 편인데, 31일 최고기온이 31도, 최저기온이 21도를 나타냈다.사하라사막보다 위도가 높은 북부 아프리카로 가면 기온이 더 높아진다. 알제리에서도 북단에 자리한 도시 비스크와 이집트 카이로는 1일 최고기온이 각각 40도, 37도로 예보됐다. 이날 낮 최고기온이 39도로 예상되는 서울과 수원, 38도로 예보된 춘천·청주·대전·세종·전주·대구와 비슷한 수준이다.‘아프리카는 덥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한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2

에어컨 가슴앓이

문명의 이기(利器)도 잘 써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제아무리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사용자가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단순한 전화기일 뿐이다. 인류는 문명 이기의 발명을 통해 상상 이상의 세상에서 즐겁고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요즘 같은 폭염에 에어컨이 없다고 가정 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생활의 불편을 떠나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을 거란 추측도 가능하다. 에어컨도 미국의 한 젊은이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발명된다. 1902년 기계설비 회사에서 일하던 신입직원 윌리스 캐리어는 한 출판회사의 애로점을 듣게 된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습기 때문에 종이가 멋대로 수축되어 도무지 깨끗한 인쇄를 할 수 없다는 사정이다. 그는 연구 끝에 습기를 잡는 장치를 먼저 발명한다. 이어서 열을 잡는 냉각시스템을 개발 한 것이 에어컨 발명의 시작이다.이후 에어컨은 공장과 비행기 등에 장착이 되고 미국 내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미국 가정집에 에어컨이 본격 설치되면서 미국 내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80%나 감소했다고 한다.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는 19세기 발명 이후 인류의 생활을 확 바꾸어 놓았다. 낮과 밤의 구분을 철폐했다. 실내와 실외, 지상과 지하의 구분도 무너뜨렸다. 시간과 공간의 활용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인류는 각종 자원을 24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발명으로 또한번 세상을 진화해 나갔다.올여름 최악의 폭염으로 에어컨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에어컨 없이 하루도 보내기 힘든 날이 많아진 탓이다. 그러나 지금 구입하면 최대 4주 후 설치가 가능하다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살지 말지 진퇴양난의 모양새다. 에어컨 설치 가정은 가정대로 전기료 폭탄을 우려해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전기료 누진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폭염을 재난수준으로 인식해 대응하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여름철 전기료의 한시적 인하 요구도 등장하고 있다.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이 비싼 전기료 때문에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뾰쪽한 대책은 없을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1

폭염과 선팅

37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 많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눈부심과 열기를 막기 위해 자동차 유리에 선팅 필름을 부착한다. 자동차 선팅은 자동차 유리에 햇빛의 투과율을 낮추는 필름을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윈도우 틴팅(Window tinting)’이다. 흔히 말하는 ‘선팅(Sunting)’은 콩글리시다. 다만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는 ‘선팅’이 올바르다.도로교통법 제49조를 보면 “자동차는 앞면 창유리와 운전석 좌우 창유리의 가시광선 투과율이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보다 낮은 필름을 부착하여야 한다”고 나와있다. 요인 경호용, 구급용 및 장의용 차량은 이 기준에서 제외된다.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은 앞면 창유리는 70% 미만, 운전석 좌우 창유리는 40% 미만이다. 이 기준을 어겼을 경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실제 법규 적용은 다르다. 가시광선 투과율 기준을 위반한 차의 운전자에게 부과되는 과태료 부과기준(도로교통법시행령 제88조 제4항)은 2만원이다. 하지만 도로에 짙은 선팅을 한 차가 대다수인 이유로 실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통상 차의 선팅 농도는 상당수가 전면 35%, 측후면 15%가 대다수다. 선팅필름의 종류는 흡수형 필름, 반사형 필름, 염색 필름으로 나뉜다. 염색 필름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기능만 있을 뿐 열차단 기능은 사실상 없다. 선팅 필름을 선택 할 때 중요한 것은 자외선 차단보다 IR(적외선)차단율이다.TSER(Total Solar Energy Rejected, 태양열 차단율)도 확인해야 한다. TSER이란 유리를 통과한 열이 필름에 의해 반사되는 것과 흡수되는 열을 구분한 수치다. TSER이 50% 이상이면 열차단 성능이 좋은 편이다. 흡수형 필름보다 반사형 필름이 더 비싸고 열차단율도 뛰어나다. 하지만 흡수형 필름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반사형 필름은 기능적으로 제일 뛰어난 반면 가격이 비싸다. 싸게는 50만원부터 200만원도 넘는다. 주의할 것은 적외선 차단율이 90퍼센트가 넘는 필름들은 IR통신 방식의 하이패스의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7-31

천마총

경주 천마총은 신라시대 만들어진 적석목곽분으로 왕릉급 무덤이다.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국보급 유물인 금관을 포함 1만점이 넘는 부장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대급 발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천마총은 이후 두 번의 뜨거운 논쟁거리를 던지며 또한번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첫 번째는 천마총이라는 호칭의 논란이었다. “신라왕의 무덤이 분명한데 말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며 경주 김씨 문중이 국회에 이름 변경 청원을 낸 사건이다. 문화재위에서 재심의까지 벌였지만 고분의 주인이 왕이라고 확신할 발굴조사 결과가 없단 이유로 천마총이란 이름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또 하나는 2009년도 있은 천마도의 적외선 촬영 결과다. 그동안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던 천마의 머리에 뿔이 등장한 것이다. 뿔이 달린 것으로 보아 그림에 등장한 것은 말이 아니고 전설의 동물인 기린이란 주장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명칭도 천마총이 아닌 기린총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논란은 이어져 갔다.천마총은 본래 경주 155호 고분이다. 신라시대 고분의 일련번호는 고분의 명칭이었다. 그러나 발굴이후 드러난 무덤 내 부장품의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천마총으로 이름이 바뀐다. 1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국보급으로 평가된 것도 많았지만 유독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양 옆에 늘어 뜨려 놓은 장식)에 그려진 천마도가 천하일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천마도는 신라시대 회화 수준을 가늠할 유일한 그림인데다 회화 수준 또한 출중했다. 이 무덤은 당연히 천마총으로 명명되었던 것이다.천마총이 1년여의 보수공사 끝에 새로이 일반에 공개됐다. 경주는 천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바로 느껴지는 역사의 고장이다. 경주만큼 역사적 채취가 물씬 풍기는 곳도 별로 없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 만큼 문화와 유적이 넘쳐나는 도시다. 역사는 나라의 정신이요 민족의 자긍심이다. 40여년 만에 선보이는 천마총의 새 단장을 계기로 역사도시 경주의 명성도 되찾았으면 한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30

당나라 군대

하극상(下剋上)을 가장 경계해야 할 집단이 바로 군 조직이다.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지휘체제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계급이 곧 명령이다.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만이 나라와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의 조직이 군이다.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군의 특수부대일수록 엄격한 명령과 지휘체제의 견고함을 자랑한다.이른바 “군기(軍紀)가 세다”는 말로 표현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던 그린베레, 미 해군 특수부대인 실(SEAL), 한국의 해병대 등이 그렇다.우리는 보통 실력이 형편없는 집단을 두고 오합지졸(烏合之卒)과 같다고 부른다. 까마귀 떼처럼 아무 규율도 조직도 없이 무질서하게 모인 무리라는 뜻이다. 어떤 단체이든 간에 오합지졸로 불린다면 기분이 언짢아지는 게 당연지사다. 특히 그 집단이 군 조직이라면 자존심이 구겨지고도 남음이 있다.개판 5분전의 부대를 당나라 군대라고도 조롱한다. 오합지졸의 부대와 비슷한 말이다. 전쟁에서 제대로 공격 한번 못해보고 패배만하는 군대를 비유적으로 쓸 때 이렇게 부른다. 왜 당나라 군대인지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구려 시대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고구려가 비록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을 당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고구려는 당나라를 맞아 큰 승리를 수차례나 거뒀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당나라 군대가 오합지졸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데서 나온 설이다. 또 하나는 군기가 빠진 군대에서는 총을 쏴도 ‘탕소리’가 나지 않고 하나가 빠진 ‘당소리’가 난다고 해서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군인 정신과 기강이 실종 상태인 부대를 두고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대통령으로부터 군 통수권을 위임받아 군을 지휘하는 국방부장관에게 그 부하들이 대드는 해괴한 일이 25일 국회에서 벌어졌다. 계엄령 문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라고 하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총질을 해대듯 하는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쩌다 우리 군이 오합지졸의 당나라 군대 꼴이 돼 버렸는지 통탄할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27

‘홈투카 서비스’

무더운 여름, 폭염속에 세워놓은 더운 차를 타기전에 미리 식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꿈같은 애기지만 현실에서 가능하게 됐다. 바로 집안에서 편리하게 목소리로 자동차 시동을 걸 수 있는‘홈투카(Home to Car)’서비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KT는 인공지능(AI) 스피커인 ‘KT 기가지니’를 현대·기아차의 커넥티드카(정보통신기술과 연결시켜 소통이 가능한 차)에 접목한 홈투카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집안에서 간단한 명령만으로도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다.예를 들면 이용자가 “기가지니야. 내 차 온도를 20℃로 맞춰줘”라고 말하면 자동차가 스스로 시동을 걸고 온도를 조정해 대기한다. 서비스를 통해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주요 기능은 시동 켬·끔, 문 열림·잠금, 비상등, 경적, 차안 온도 설정 등이다. SK텔레콤도 최근 현대차 블루링크·기아차 UVO와 연동되는 차량 제어 서비스인 ‘홈투카(Home2Car)’를 출시했다. SK텔레콤 스마트홈의 ‘Home2Car’는 이용자가 집에서도 SK텔레콤의 AI스피커 NUGU를 통해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다. 주요 기능은 시동 On/Off, 문열림·잠금, 비상등 점멸 및 경적울림, 온도설정, 전기차 충전 시작·중지 등 5가지다. NUGU를 통해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행 전 미리 시동을 걸어 예열하거나 요즘과 같이 더운 날씨에는 차량온도를 시원하게 조절할 수 있다.SK텔레콤은 이미 지난 6월부터‘카투홈’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홈투카와는 달리 차량 안에서 모바일 내비게이션‘T맵×누구’를 통해 음성으로 집의 가전기기를 제어하는 것이다. SK텔레콤 스마트홈 계정을 누구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하면 집의 공기청정기, 에어컨, 보일러, 세탁기, 스마트플러그 등 15종의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이용해 집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서비스 경쟁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 궁금하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일들이 하나하나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으니 신통방통하게 여겨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7-26

파파게노 효과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던 인물이 자살하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흠모하는 여인에게 실연당한 뒤 권총으로 자살하는 내용을 모방한 자살이 전 유럽으로 퍼지면서 유래된 용어다. 반대 개념인 ‘파파게노 효과’가 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주인공 파파게노가 실연 끝에 자살을 시도하다 요정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생각을 바꿔 먹는데서 유래했다. 지금은 자살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한 보도를 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로 사용된다.실제로 자살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선택한 방법을 모방하려는 성향이 있다. 모방자살이나 자살전염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특히 언론의 유명인 자살과 관련한 보도는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언론도 이를 알고 스스로가 보도에 신중을 기한다. 그러나 사건에 따라서는 흥행성과 주목성 때문에 때로 오버할 때도 있다.중앙자살예방센터가 유명인이 갑자기 숨진 직후 일간지 등 국내 22개 주요 언론사가 보도한 내용을 모니터링 해 본 결과, 127건이 자살보도 권고 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 보도가 베르테르 효과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은 데도 언론들은 여전히 흥행성 보도에 매달렸던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이 13년간 1위를 한 국가다. EU 국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0.9명이나 우리는 26.5명으로 유럽의 평균보다 2.4배나 높다. 한국의 자살률이 이처럼 높은 배경에는 서구와는 다르게 카드빚이나 가족해체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구는 고독이나 실존(實存)에 대한 회의 등이 자살의 주된 이유다.극단적 선택을 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을 두고 언론사 간 보도 경쟁이 치열하다. 진보 정치인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아온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행여 베르테르의 효과가 있을까 우려도 된다. 언론의 파파게노 효과를 기대해 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25

슬리핑 차일드 체크 시스템

2017년 6월부터 강화된 도로교통법(세림이법) 53조 ‘어린이 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등의 의무’에 따라, 현재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운행을 마친 뒤 어린이나 영유아가 모두 하차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통학버스 운전자가 어린이 하차 여부 확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범칙금 12만 원과 벌점 30점이 부과된다. 이런 제도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얼마전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차량 안에서 4살 어린이가 폭염 속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통학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에 온 어린이는 운전기사와 인솔교사, 담임교사 등의 부주의로 인해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고, 32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7시간 동안 차량에 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슬리핑 차일드 체크 제도’를 도입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많은 국민들의 동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슬리핑 차일드 체크 시스템은 말 그대로 ‘잠자는 어린이 확인 경보장치’다. 이 제도는 통학차량의 맨 뒷좌석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야만 시동을 끌 수 있게 한 것으로, 차량 내 아이 방치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원생 등원에 사용되는 차량의 맨 뒷자리에 버튼을 설치해, 운전기사가 시동을 끄기 전 반드시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것이다. 즉, 운전기사가 차량에서 내리기 전 방치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하차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동두천 사고 역시 아이들이 차에서 내릴 때 인솔교사가 한번만 체크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자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현아 의원이 ‘슬리핑 차일드 체크’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어린이나 영유아의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은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망우보뢰(亡牛補牢)’의 형세지만 이제라도 불행한 사고로 죽는 어린이가 없기를 바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7-24

폭염 속 반바지 논쟁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쿨비즈와 관련한 논란이 자주 벌어진다. “쿨비즈란 이유로 여성의 옷차림이 지나치게 노출되어선 곤란하다”는 생각과 “이 정도는 괜찮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여름철 폭염이 불러온 진풍경이지만 그 중에도 남성의 직장 내 반바지 착용 논쟁에 눈길이 쏠린다. 여성에게는 치마와 정장 바지를 허용하면서 남성에게는 여전히 정장 바지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내용은 직장 내 소리함은 물론 청와대 게시판에까지 올라오고 있다. 긴 바지 입고 덥다는 남성과 짧은 치마 입고 춥다는 여성 사이에 에어컨 온도를 놓고 일어나는 의견 충돌 현상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반바지 허용은 사회 통념상 곤란하다는 입장이다.2009년 환경부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에너지 감소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쿨맵시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이후 쿨비즈는 우리사회의 보편화된 현상으로 자리를 잡고,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재킷을 벗는 등 간편복 근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아직까지 까다로운 복장규정을 준수하는 곳도 있다. 2009년 여름 우리나라 법조계에선 쿨비즈 논쟁이 벌어져 화제를 모았다. 변호사들이 지구온난화를 이유로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 그러나 법원은 법정의 권위가 우선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미국의 법원도 정장 관행이 엄격히 지켜진다고 한다. 영국은 법정 내에서 넥타이를 매고 심지어 가발까지 쓴다고 한다. 법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자구 노력으로 풀이된다.법조계의 이런 논쟁과 달리 직장 내 남성의 반바지 착용은 앞으로도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전문가도 직장 사정에 따라 공론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직장 내 적합한 복장문화 정착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 스포츠라는 이유로 까다롭기로 소문난 골프 규정에도 남자의 반바지 착용을 허용 않는다. 그러나 최근 반바지 허용 골프장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직장 내 반바지 논란도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알 수없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23

일확천금의 보물선

보물선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는 몽상가 이야기가 아직도 심심찮게 전해져 온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중국에서 일본군이 노획한 수많은 금괴와 보물이 일본으로 채 옮겨지지 못하고 한국 남해안 어디에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아직 이런 금괴와 보물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단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다.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건져 올려진 것을 시작으로 신안 해저선의 정체가 드러났다. 최초 발견 이후 9년 동안 11차례에 걸쳐 진행된 발굴로 신안 앞바다 해저선에는 수천 점의 도자기와 금속 공예품 등이 바닷속 깊은 곳에서 700년 만에 신비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배는 1323년 원나라를 떠나 고려에서 청자를 싣고 다시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으로 확인됐다.역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로 손꼽히는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은 지금까지도 배의 침몰과정 등이 베일에 싸여 있다.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는 2천200명의 승선자 중 1천500여 명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건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이 배는 길이 269m, 높이 20층, 증기기관 하나가 3층 가옥 크기였다. 당대의 혁신적 기술이 접목된 타이타닉호는 가라앉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이라 불릴 만큼 안전을 자랑했다. 1985년 한 해양 탐험가에 의해 심해 4천m 아래서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채 발견됐으나 미스테리한 의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당시 수많은 부자가 그 배에 승선함으로써 배에 보물이 많을 것이란 추측이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청춘 남녀의 사랑을 테마로 침몰 과정을 담는 영화가 탄생하면서 타이타닉호는 더 유명하게 된다.울릉도 앞바다에서 러일전쟁 당시 침몰한 것으로 전해진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으로 나라 안이 요란하다. 150조 원의 금화와 금괴가 인양된다는 소문에 관계사의 주식이 상한가까지 쳤다.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그러나 금괴와 배 인양과 관련한 믿을만한 소식은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호사가들 사이에 일확천금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만 쏟아질 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20

현금 없는 사회

소비자본주의 최첨단 시대를 맞아 ‘현금없는 사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발달로 결제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지갑속 현금이 점차 모습을 감추는 이유다. 변화의 징후는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대표적인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최근 전체 매장 1180곳 중 103곳을 ‘현금없는 매장’으로 지정했다. 현금없는 매장은 현금 사용 비율이 3∼4%에 그치는 곳으로 현금 사용 고객에게 다른 결제 수단을 권하고 있다. 다만 손님이 원할 경우 현금결제도 가능하다.편의점에서도 현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GS리테일에 따르면 GS25 편의점의 현금 결제 비중은 2015년 53.9%에서 지난해 41.4%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 상반기(1∼6월) 35.7%까지 뚝 떨어졌다.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매장에 무인결제기(키오스크)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카드결제 비중이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신용카드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한 전자결제가 보편화되면서 현금사용 빈도가 크게 줄었다. 올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 30대의 현금 선호 비율은 각각 8.3%, 5.1%에 그쳤다. 반면 60대와 70대 이상은 현금 선호율이 각각 51.6%, 76.9%로 여전히 높았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661년 유럽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2030년까지 현금을 없앤다는 목표를 세워서 추진 중이고, 소매점은 합법적으로 현금결제도 거부할 수 있단다.실제로 스웨덴 국민의 절반 이상은 2012년 민간 은행들이 공동 개발한 간편결제 서비스 ‘스위시’를 사용한다. 중국에선 노점상도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고, 음식점에서 QR코드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기도 한다.최저임금 인상이 패스트푸드 업체 등에 무인결제기 도입 증가로 이어질 경우 현금없는 사회로의 진입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노인, 빈곤층 등 새로운 금융기법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약자들이다. 이들 금융 취약계층의 불편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