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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반동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저임금노동자·가계의 임금·소득을 올려 소비증대→ 기업 투자 및 생산확대→소득증가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경제정책이다.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임금 인상 등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보다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전략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경제 정책으로 쓰이고 있다.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개념이 주로 노동·일자리 분야에 국한돼 ‘노동자 임금 인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급기야 이 정책에 대한 반동이 일고있다.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30% 인상을 돌이켜 보면 방향과 취지는 충분히 옳았지만 경제 여건(특히 제조업, 건설업의 부진)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결정적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상황이어서 긍정적, 선순환적 기능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그는“대통령 공약사항인 최저임금과 중점 정책인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부담 때문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며“결국 중소기업, 자영업의 지불 능력 문제와 이를 풀기 위한 취약부문의 교섭력 강화 방안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책이 최저임금은 올렸으나 하청단가, 임대료, 프랜차이즈 수수료, 카드수수료 등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할 구체적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누구의 소득을 어떻게 올리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누구와 누구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등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것도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가도록 해 청년소득을 높이는 방향,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공정한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방향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대통령직속 위원회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는 그의 지적이 소득주도성장정책에 올인하고있는 청와대 분위기와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어 현 정부 진영내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재검토론이 일어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15

김장철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은 김장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결과다. 김치는 한국적 전통과 풍속을 잘 표현한 대표 음식이란 뜻이다. 우리 국민의 95%가 하루에 한번 이상 김치를 먹는다는 조사 결과처럼 한국인의 식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미국 건강잡지 ‘헬스’는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다. 김치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소화를 잘 돕고, 암 예방에 유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실제로 김치는 겨울동안 사람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 등을 보충해 주는 건강식품이다.우리의 조상은 겨울동안 생산되지 않는 채소의 저장 방법으로 김치를 고안해 냈다. 인류가 많은 저장법을 고안했지만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까지 김치만한 저장 방법은 없었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할 수 있으나 이러면 영양이 파괴되고 맛도 없게 된다. 김치는 신선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도 살린 저장식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치는 또한 발효식품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젓갈류 등과 같은 발효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식품이다. 발효식품은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소화를 돕고 맛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다.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지역별 온도에 따라 김장 담는 시기도 다르고 양념과 재료의 사용 방법도 제각각이다. 추운 북부지방은 김치가 쉽게 익지 않으므로 소금, 젓갈, 양념류 등을 적게 사용해 싱거운 김치를 담근다. 그러나 남부지방은 양념을 많이 사용해 맵고 짜게해 저장성을 높인다.올해 김장 적기는 북부지역은 11월 하순, 영남권은 12월 중순이나 하순이 좋다고 한다. 김장은 예부터 입동을 전후해 담그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로 떨어지고 하루 평균 기온이 4℃ 이하를 유지할 때 유산균이 가장 잘 살기 때문이다. 김치를 땅속 장독에 묻어두는 것도 같은 원리로 땅속 온도를 감안한 지혜다. 주부들의 겨울준비가 바빠지는 계절이 왔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4

위기의 광주형일자리사업

전남 광주시가 고용 창출을 위해 현대차의 투자를 받아 기존 자동차 생산직 연봉의 반값 수준인 공장을 짓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노사관계, 임금 등으로 기업의 국내투자 기피현상이 일어나 일자리가 감소한 데다 전국 최저수준을 기록한 광주의 고용률과 광주 청년들의 심화되는 도시이탈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된 일자리 정책이다. 광주광역시는 떠나는 청년들을 잡을 수 있는 사회통합형 일자리 창출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했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기업 임금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중앙정부가 주택, 육아, 교육, 의료 등의 높은 복지수준을 제공하는 것을 사업의 핵심골격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공사가 진행되는 빛그린 국가산업단지에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고,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와 광주광역시가 함께 빛그린산단내에 자기자본 2천800억원, 차입금 4천200억원 등 총 7천억원을 들여 SUV 차량 등 10만대를 양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는 투자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내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하기 위해 현대차와 현대차노조와 협상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광주시가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다 보니, 현대차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타협안이 나왔고, 노조는 노조대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주시는 지난 3월 5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방안을 만들었지만 노조의 반발로 ‘단체 협약 5년 유예’를 번복했고, ‘최소 생산 물량 약속’ 등을 현대차에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현대차 역시 “수용 불가”입장을 밝혔고, 현대차 노조 역시 “회사가 협약에 동의하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반대하고 있다. 노조가 반대하는 것은 임금이 절반 수준인 경쟁 공장이 생길 경우 노조의 임금투쟁이 어려워지는 등 기득권이 위협받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한민국 일자리 틀을 바꿀 새로운 시험이자 도전인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귀족노조의 파업위협 등 반대로 무산되어선 절대 안 된다. 노조 개혁이 본격 논의돼야 할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13

별의 도시 영천

영천을 별의 도시라 한다.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맑은 날이 연중 150일 이상이어서 별을 관측하기에 매우 좋다고 한다. 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보현산 천문대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만 보아도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보현산 정상에 세워진 천문대는 1996년에 완성됐다. 동양 최대 구경(1.8m)의 반사망원경을 자랑하고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세계에 대한 관측과 연구가 진행되면서 호기심 많은 학생의 체험 관광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보현산 천문대가 세워지면서 영천은 별이 도시의 브랜드가 됐다. 영천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이름도 별빛포도라 부른다. 보현산 남쪽 입구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은 별빛마을이다. 별별 미술마을도 있다. 천문과학 축제가 열리고 천문과학 프로그램과 함께 하는 별빛 나이트 투어도 해마다 개최된다.영천은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경부고속도로가 영천의 남쪽을 지나간다. 대구에서 이어지는 국도는 영천을 지나 경주로 이어지고, 안동에서 이어지는 국도도 영천과 경주로 연결된다. 인구 10만 명의 작은 소도시지만 편리한 교통으로 사람의 출입이 왕성하다.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 영천이다. 포은이 부모상을 당하고 각각 3년의 여묘(廬墓)를 지내자 공양왕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여 영천 임고면에 유허비를 세웠다.수년 전 한국 영화계의 스타 신성일이 이곳으로 이사와 한옥을 짓고 살면서 영천은 또한번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폐암으로 사망한 영화배우 신성일은 엊그제 장례를 마치고 그가 노후를 보낸 영천 성일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친지와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뒤로 한 채 그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 있을 ‘별들의 고향’에 묻혔다.우연인지 모르나 그는 한국 영화계의 별답게 별의 도시로 귀환했다. 영천시는 그의 업적을 오래 기리기 위해 그가 살던 곳에 신성일 영화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영화배우로서 남긴 그의 신화가 이 말을 실감케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2

결혼이 선택?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의 명언이다.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햄릿처럼 이 구절을 잘 왼다. 선택의 문제는 어렵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선택한 사람의 몫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햄릿의 선택은 삶과 죽음의 선택이다. 실로 중대한 기로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누구나 인생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결혼의 문제는 신중하고 엄중한 선택의 문제다. 본인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족의 생각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결혼의 문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결혼은 공동체의 출발이기에 혼자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 의논 상대가 가족이면 더욱 좋다. 러시아 속담에는 결혼을 하기에 앞서 세 번을 기도하라고 했다. 전쟁에 나설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설 때는 두 번 기도하라면서 결혼은 세 번 하라고 했다. 그만큼 결혼 결정에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이른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이 간다. 통계청이 매년 벌이는 사회인식 조사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20년 전 70%가 넘었던 결혼 필요성에 대한 답변이 2018년 조사에서는 48%로 뚝 떨어졌다. 결혼은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10명 중 4.8명이라는 뜻이다. 충격적인 의식의 변화다. 물론 경제적 이유나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 등 개인적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결혼의 필요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마음이 없지 않다. 결혼은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가까이는 가족의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는 본질의 문제이기도 하다.저출산이 주는 우리사회의 충격파를 떠나 결혼의 문제를 바라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국가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9

성과공유제 vs 협력이익공유제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로는 기존 ‘성과공유제’와 새롭게 시범도입될 예정인 ‘협력이익공유제’가 있다. 성과공유제는 원가절감이나 공정개선을 통해 낮아진 원가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기업이 원가 절감에만 치중해 중소기업 남품대금을 부당하게 깎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와 달리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판매량, 영업이익 등과 연계해 이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협력사와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고, 도입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대·중소기업 모두 혁신을 유도한다는 3대 원칙에 따라 설계됐다. 위탁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협력이익으로 보고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성과공유제보다 이익공유 범위가 커진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공유 이익 범위가 커지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협력이익공유제의 시행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그래서 협력이익공유제는 정부가 도입을 강제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추진·도입할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센티브로는 △세제 3종 패키지 지원(손금인정 10%·법인세 세액공제 10%·투자 및 상생협력촉진세제 가중치) △수·위탁 정기 실태조사 면제 △동반성장평가 우대 △공정거래협약 평가 우대 등이 있다. 또 글로벌 혁신기업들과 국내 기업들이 이미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분석해 △협력사업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사업형 △IT와 유통 등 플랫폼 업종들이 협력사업을 통해 달성한 협력이익을 콘텐츠 조회나 판매량 등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마진보상형 △협력사의 ‘유무형’기여분을 인정해 주는 형태의 인센티브형 등 총 3가지 도입유형을 마련, 기업의 경영상황과 업종 등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해 활용하도록 했다. 이윤의 추구가 목적인 기업입장에서는 이윤을 나누는 성과공유제나 협력이익공유제 모두 마뜩치 않긴 마찬가지일게다. 결국 협력이익공유제의 성패는 정부의 시행의지와 맞물린 대기업의 상생의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8

지도층의 ‘내로남불’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 톱10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전국 736개 직업의 직장인 2만4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국회의원이 3위를 차지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봉을 받는 국회의원이 대학총장과 의사, 금융인 등을 모두 물리치고 당당히 3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국회의원쯤 되면 권력도 상당한 데다 이처럼 연봉마저 두둑하니 누구나 한 번쯤은 국회의원이 돼 보겠다는 욕심이 생길만한 자리다. 그러나 그들이 누리는 혜택만큼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자리라고 여기기에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문재인 정부 들면서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가 있다.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인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문제삼았던 문 정부가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할 적폐를 똑같이 따라한 데 대한 야당의 비아냥이다. 남이 할 땐 비판적 자세이더니 같은 일을 자신이 하면서 합리화로 일관한다는 뜻이다.음주 운전자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자는 내용의 ‘윤창호법’(가칭)이 발의됐으나 정작 법 통과가 안 되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윤창호법은 군 전역을 코앞에 둔 윤창호씨가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사경을 헤매자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만들어진 법이다. 국회의원 104명이 윤씨의 딱한 사정에 공감, 공동발의까지 한 법이다.그러나 법 제정 발의에 나섰던 한 국회의원이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자신이 음주단속에 적발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또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18명이나 음주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비단 정치인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지도층의 자기 반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란 자기 논에 물을 끌어넣는다는 말로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내로남불도 내 생각만 하기 때문에 생긴다. 물질만능으로 세상이 많이 바뀐다 해도 솔선수범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길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7

새로운 인증서, 뱅크사인

은행을 이용할 때 본인임을 증명하는 디지털서류인 공인인증서는 이용할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등 매우 번거롭고 불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 은행권이 공동으로 개발해 선보인 새 인증 시스템이 바로‘뱅크 사인’이다. 뱅크사인은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지문 인증으로 간단하게 은행에 연결된다. 컴퓨터를 이용할 때도 별도 프로그램 설치없이, 모바일로 쉽게 인증해 이체까지 이뤄진다. 암호 화폐의 기반 기술로 유명세를 떨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인증서 정보가 개별 은행에 나눠서 저장되는만큼,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유효기간도 공인인증서보다 훨씬 긴 3년으로 재발급의 번거로움을 줄였고, 통합 인증이라 별도의 등록 절차없이도 모든 은행에서 바로 쓸 수 있다. PC에서도 액티브-X나 보안프로그램 등을 설치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인증을 통해 PC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수 있다.다만 아직은 한계가 명확하다. 편의성을 높이긴 했지만, 결국 인증을 위한 수단이라, 공인인증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태옥 의원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뱅크사인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를 소개하면서 “30~40번을 클릭해야 하고 내부 애플리케이션은 4번 오가는 등 할 게 많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시연한 화면에서는 뱅크사인에 가입하기 위해 계좌번호와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보안카드번호 등 개인정보 입력과 인증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또 뱅크사인 가입 후에도 송금 과정에서 또 다시 보안카드 번호를 요구하는 등 불편이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10월말 기준 뱅크사인 이용자는 안드로이드 앱의 경우 5만여명 수준에 불과하고, 아이폰 앱스토어에서는 순위가 금융분야에서도 64위에 그쳤다.한국은행이 ‘2018년 2분기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 자료를 통해 발표한 9천977만여명 규모의 모바일뱅킹 이용자와 비교하면 극히 일부 고객만 뱅크사인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제도의 조그만 나사 하나라도 바꾸려면 그만한 고통이 뒤따르는 모양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6

다시 주목받는 고향세

자신의 고향인 자치단체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본인은 세금 혜택을 받게 되는 제도가 고향세의 취지다. 고향세는 산업의 발달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면서 농어촌 지방의 부실해진 재정과 도시 재정 간의 균형을 잡아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제도다. 우리보다 먼저 농촌의 위기를 경험한 일본은 2008년부터 고향세를 도입해 재정확보 등 긍정적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도 2009년과 2011년 등 국회에서 고향세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아직 입법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연고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다수의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그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경주에 모인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은 고향사랑 기부금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지방분권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재정 확충이 필수적이며 그 방안으로 고향세 도입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향세 도입은 다수의 농민단체들도 찬성의 뜻을 보이고 있다. 국감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도 농어촌의 어려움을 고려, 고향사랑 기부금의 조기 도입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도시민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고향에 기부금을 내면 10만원까지 전액 세금을 공제해 주는 대선 공약을 낸 적이 있다. 약화된 농어촌의 재정을 고려하면 고향세 도입이 절박하다. 그러나 도시마다 또 정치인마다 이해가 달라 당장 입법화는 안 될 전망이다. 지금 우리의 농촌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촌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됐다. 저출산에다 청년층마저 떠나 농촌의 고령화는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촌 소도시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다.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40% 가까이가 재정자립도 20%에도 못 미친다. 자생력이란 말을 붙일 수도 없을 처지다. 중앙의 눈치를 살펴 예산을 잘 따오는 것만이 최선일 뿐이다.새 정부가 공평과 지방 균형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으나 정작 지방과 중앙은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낮잠자는 고향세라도 빨리 법제화시켜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5

눈먼 돈

최근 미국판 로또 복권인 메가 밀리언 당첨을 두고 지구촌이 떠들썩했다. 미국 복권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대해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1조7천억원의 주인공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첨자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미국민 사이에는 한동안 복권열풍으로 요란을 떨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복권열풍이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걸고 복권 판매소를 찾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직장인 가운데 본업에도 열심히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복권을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복권에 당첨만 되면 단번에 벼락부자도 될 수 있으니 한번쯤 투자해 볼만한 일이다. 눈먼 돈이라는 말이 있다. 돈에 눈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굴러들어 온 돈을 뜻한다. 사전에서는 ‘임자 없는 돈’ 혹은 ‘우연히 생긴 공돈’으로 풀이한다. 복권 당첨금도 노력없이 생긴 공돈과 비슷해 얼핏 눈먼 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을 둔 복권 사업에 투자해 생긴 돈은 눈먼 돈보다는 오히려 행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요즘 국가 돈이 눈먼 돈 노릇한다는 비아냥이 많이 나돈다. 국가가 용도에 맞게 사용하라며 지원한 예산을 마치 내 돈인양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싼 사립유치원 비리가 그런 경우다. 사립유치원 원장의 개인 비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관리 감독하는 행정기관의 무방비가 국민 혈세를 눈먼 돈으로 만들었다는 책임도 면키 어렵다.이번에는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 돈을 빼먹다 경찰에 무더기 붙잡혀 역시 국민 세금은 눈먼 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있음이 확인된 사건이다.선진국과 후진국 국민이 갖는 세금에 대한 인식은 내가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 한다. 후진국 국민은 세금을 되돌려받기보다 뜯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세금을 도둑질하는 사람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관리 잘못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세금에 대한 불신은 빨리 막아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2

트럼프의 역살라미전술

살라미 전술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살라미(salami)’에서 따온 말로, 협상 테이블에서 한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쟁점화함으로써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말한다. 북한이 핵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하나씩 단계별로 이슈화하고 이를 빌미 삼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최대로 얻어내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다.그런데 요즘에는 북한의 전매특허였던 살라미 전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대해“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전술을 가리켜‘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고 평한다. 이른바‘역(逆)살라미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일리노이주 선거 유세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같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북미간 살라미 전술이 펼쳐지는 동안 남북간 교류협상은 조금씩 진전하는 듯 하면서도 일부 협상은 답보 내지 정체상태를 면치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실감케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1

참 기부(寄附)

불교에서 이르는 보시(布施)란 자비의 마음이다. 자비의 마음에는 대가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서 세속적 명리를 기대한다면 보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이와 같은 이치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대체적으로 자기 가치에 대한 만족을 추구한다. 어떤 반대급부보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서 당위성을 찾는다. 불교에서는 이런 정신을 이타정신(利他精神)이라 부른다. 이타심이란 남을 위한 마음이다. 이기심(利己心)의 반대 뜻이다. 착한 성격이나 희생정신, 배려심 등이 이타심과는 매우 유관한 단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기부도 본질적으로는 이타심에서 출발한다. 기부를 하면서 반대급부를 생각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원봉사도 일종의 기부다.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체험케 하고 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기부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 자원봉사가 자발성, 비대가성, 공익성을 특성으로 하는 것처럼 기부도 같은 맥락의 특성이 있다.2017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때 그는 이 투자액 전액을 재단이 아닌 개인 재산에서 출연할 거라 밝혀 기부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은 기부문화가 잘 발달한 나라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기부문화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에 아주 익숙하다. 한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남다른 가치를 인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최근 어느 노부부의 기부가 화제가 됐다. 평생을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한 노부부가 2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학교 측에 기부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들보다 더 큰 갑부도 엄두를 못 낼 일을 노부부가 해서 사회의 이목을 더 끌었다. 팔순의 나이에 대가를 바랄 것도 없다. 경제가 어려워 답답한 요즘이다. 노부부의 기부가 청량제같이 들린다. 노부부의 기부야말로 참 기부라 할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31

황필상법

국회는 지난해 말 자선·장학 또는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하고 대기업과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성실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의 2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황필상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발단은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립자인 황필상씨가 지난 2002년 180억원 상당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에 기증하면서 비롯됐다. 아주대는 황씨의 주식과 아주대 상조회 출연금을 모아 2003년‘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은 2008년까지 아주대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대 등 19개대 학생 733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2008년 수원세무서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을 근거로 황씨에게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상증세법 제48조는 장학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이 특수관계인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세무당국의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 판결까지 7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황씨가 내야할 세금은 체납액까지 더해 225억원으로 올랐고, 황씨는 고액 세금체납자로 몰려 거주하는 아파트까지 압류당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4월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도 고통을 당한 황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명 ‘황필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최근 홍콩 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전 재산인 56억 홍콩 달러(한화 8천1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해 “영웅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칭송이 자자하다. 그런데 이런 기부조차 만약 한국에서라면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황필상법’이 아니라 기부문화를 적극 장려하는 ‘주윤발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심사가 드는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30

반려동물

동물에 반려(伴侶)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동물도 인간의 반려자라는 의식이 커진데서 비롯됐다.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언급됐다. 개와 고양이, 새 등을 반려동물로 부를 것을 제안한 것이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존중하여 동물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을 펨펫족이라 부른다. 영어의 Family와 Pet를 합성한 단어다. 펫부머(Pet Boomer)는 은퇴해 반려동물을 기르는 중장년층을 일컫는다. 반려동물과 일상을 같이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수도 1천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이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달라진 나라로 분류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반려동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이들에 대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부족,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아직 많은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그 중 동물 화장장 설치는 가장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문제다. 증가하는 반려동물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동물 화장장으로 상당수 반려동물이 불법 매장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최근 대구 서구 상리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동물 화장장이 허가 심의과정에서 주민 반발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적법한 동물 화장장 허가 신청을 반려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주민의 반대에 부닥쳐 어쩔 수 없이 행정 집행이 중단된 모습이다.대구에는 현재 동물 화장장이 한 군데도 없다. 경북 청도에 한 군데가 유일해 동물 화장장 설치의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으나 주민의 반발 또한 만만찮아 이래저래 고민인 것같다.동물 관리에 관한 법적 기준 등 선진적 제도 마련과 함께 행정의 분쟁 조정 능력이 아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9

인구절벽과 ‘베이비 부머’

베이비 붐 세대란 전쟁 후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나라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시기는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46년부터 65년 사이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뤄졌던 결혼이 한꺼번에 성사되면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국에는 그 숫자가 2억6천만 명 정도다. 전체의 29%다. 인구가 집중적으로 생겨난 이들 세대는 그들 사회의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후인 55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 부머’라 부른다. 690만 명 정도다. 이들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경험한 세대다.그들은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입학 때가 되면 학급 증설 붐을 일으켰다. 어느 세대보다 혹독한 입시지옥도 경험했다. 이들 집단의 움직임은 늘 사회 경제적으로 주목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그들 집단은 또한번 우리를 주목시켰다. 이른바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다.일본은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청년실업률이 줄기 시작했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시장에서의 변화는 크지 않다. 그러나 2년 후면 베이비 부머 맏형격인 55년생이 65세에 진입한다. 한해 적어도 30만~40만 명의 생산가능 노동인구가 감소할 거란 전망이다.반면에 복지 등 부양 비용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학자 사이에는 아파트가 유일한 자산인 이들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부동산 시장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했던 베이비 붐 세대의 퇴조를 바라보면서 당면한 인구절벽 문제를 심각히 걱정해 본다.지난 8월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최초로 3만 명 선이 붕괴됐다. 33개월째 연속 하락세다. 사망자수는 최고를 찍었고 혼인 건수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구절벽이 그야말로 가속화되고 있다. 베이비 부머의 출산율은 보통 3.0명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여성은 한명 당 자녀 한명을 채 낳지 못한다는 통계다. 인구절벽의 문제 정말로 심각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6

블록체인의 미래

블록체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대의 컴퓨터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공공 거래 장부’라고도 부른다. 중앙 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주며, 거래 때마다 모든 거래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대조해 데이터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온라인 금융이나 가상화폐 거래에서 해킹을 막는 기술로 쓰인다. 블록체인은 거래에 관여한 모든 컴퓨터가 동시에 기록을 보유한다. 추가적인 거래가 일어나면 각 참여자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거래내역을 고치려면 네트워크상의 모든 컴퓨터가 기록을 바꿔야 해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하다.블록체인은 부동산 계약, 공증 등 모든 종류의 거래가 가능한‘스마트 계약’기술로 발전하면서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도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전자결제나 디지털 인증, 화물 추적, 사물인터넷(IoT) 등 보안성이 필요한 분야에 우선 접목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기업 머스크는 2018년 8월 블록체인 물류플랫폼 ‘트레이드렌즈’를 선보였다. 오픈바자르(OpenBazzar)는 블록체인 기반 커머스 플랫폼이다. 오픈바자르에서는 특정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직접 커뮤니케이션한다. 이베이와 비슷한 시스템이다.위·변조와 조작이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다. 2016년 미국 유타주에서는 공화당 등록 당원이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를 통해 공화당 미국 대통령 후보 지명에 참여했고, 국내에서는 경기도 따복 공동체가 주민제안 공모 심사에서 블록체인 기반 투표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캐나다 스타트업 Axiom Zen사는 블록체인 기술인 이더리움을 게임에 적용한‘CryptoKitties(암호고양이)’서비스를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해킹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ICT 서비스를 넘어 다양한 융합 산업으로 적용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25

실명 공개의 힘

1993년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안겨준 큰 사건이었다. 부유층의 반발과 갑작스런 제도 변경으로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에 따른 국민적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를 단행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올라간 것만 보아도 금융실명제 실시는 잘된 일이었다.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로 건전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특히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는 지하경제화된 음성, 불로소득과 정경유착의 검은돈을 제거하는 목적이 더 컸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금융실명제 실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음성적 거래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 안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실명제라는 것은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예컨대 공사 실명제가 있다면 이 공사에 대해선 실명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실명제는 본인의 명예와 책임을 동시에 내 건 약속인 셈이다.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 실명 논란이 컸다. 고심하던 교육부가 여론에 밀려 결국 실명을 밝히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비리와 연루된 교육 공무원 명단 공개도 요구하면서 실명 공개를 둘러싼 상방 공방이 벌어지는 촌극도 있었다.그러나 자기반성없는 한유총의 성명에 대해 적반하장이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실명 공개 공방은 일단락됐다. 유치원의 입장에서는 이유야 어쨌든 실명 공개란 위협이 칼날처럼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비리 유치원의 실명 공개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는 70%가 찬성이다. 그것이 정보공개로 인한 명예 실추나 선의의 피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민 정서는 공개 쪽에 있다. 그만큼 유치원 비리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나쁘다는 뜻이다.국세청이 악성 세금체납자 명단을 발표, 공개 망신을 주는 것도 일종의 실명 공개에 의한 영향력 표시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자주 충돌하는 복잡한 세상이다. 실명 공개의 힘이 큰만큼 활용 방법도 지혜로워져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4

DSR 규제

DSR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의 영어 약자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연간 총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주택대출 원리금 외에 모든 신용대출 원리금을 포함한 총대출 상환액이 연간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2016년 마련한 대출심사 지표다. 주택담보대출 이외에 금융권에서의 대출 정보를 합산해 계산한다. 비슷한 용어이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에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의 이자를 더한 금융부채로 대출한도를 계산하는 반면 DSR은 대출의 원리금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더한 원리금 상환액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인 셈이다. DSR을 도입하면 연소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금융부채가 커지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된다. 이 DSR은 DTI 규제가 없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도 적용된다.오는 31일부터 저축은행과 여신전문회사의 가계대출 심사에도 DSR이 시범 도입될 예정이어서 금융권은 물론 각 가정에서도 대출금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모든 금융회사 대출 원리금 대비 연간 소득 기준으로 DSR을 산출해 대출에 활용하게 된다. 은행들은 31일부터 ‘DSR 70%’ 관리지표가 도입되지만 제2금융권은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자율 시행을 한 뒤 정보가 축적되면 내년 상반기 쯤 순차적으로 관리지표가 도입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DSR가 70%를 넘는 대출을 고(高)DSR로 분류, 시중은행은 앞으로 고DSR가 전체 대출의 15%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오는 31일부터 은행권을 시작으로 DSR 규제가 강화되면 2건 이상 대출을 받은 이른바 다중채무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현재 소득이 많지 않은 저소득층, 청년층, 은퇴생활자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이대로 지속되면 서민들의 대출금 상환압박이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23

노년의 행복지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측정, 그 결과를 내놓았다. 1천 명을 대상으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7개 영역 36개 지표별로 만족도 조사를 벌였다.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을 숫자로 측정해 만족도 여부를 왈가왈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결과에 눈길이 간다.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평균 6.3점이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6.56점으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6.05점으로 가장 낮았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느끼는 행복도가 더 높았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취업난과 주거문제 등으로 20대는 미래안정성 부문에서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행복관련 지수는 어릴 때 높아졌다가 40대에 가장 낮아진 뒤 다시 높아지는 U자형을 보이는 게 정상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60대 연령층이 연령별 세대 중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70대 이상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이 간다.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 OECD 국가 1위의 노인 자살률과 노인빈곤의 문제가 주된 원인일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는 한국의 체면이 구겨진 결과이다.더한 문제는 우리나라가 장수시대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섰다. 초고령사회도 곧 눈앞에 닥칠 일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노인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장수가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축복받아야 할 인간의 장수가 재앙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행복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 판단이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갖는 몫이 따로 있다. 그러나 개인이 가져야 할 행복의 요소와는 별개로 국가가 만들어야 할 국가차원의 몫 또한 따로 있다. 성공적 복지국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 한 국가의 행복지수는 노년층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22

이육사 대구 집 유감

안동 출신의 민족시인 이육사가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0년 17세가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오면서부터다. 1937년 서울로 옮겨갈 때까지 17년간 대구에서 보냈다. 17년 기간 중 영천에서 혹은 일본 동경에서의 대학생활 시절도 있었으나 대구에서의 거주 기간이 적지 않았다. 또 독립운동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되고, 그의 수의번호 264가 뒷날 아호가 된 것도 대구와는 유별한 인연이라 말할 수 있다. 1930년 그의 첫 시 ‘말’이 발표된 것도 대구에서의 일이다. 그는 중외일보 대구기자로 활동도 했으며 이육사라는 필명을 알리기 시작한 무렵의 주무대가 대구였다. 대구는 그에게 시인으로서 또는 독립운동가로서 맹활약한 배경지였다.이육사는 23세의 나이에 투옥되는 등 17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조국의 독립을 누구보다 갈망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시에서 표현한 청포도는 독립을 기다리는 조선의 모습이다. 덜 익어 푸른색을 띠는 풋포도를 독립을 기다리는 조선의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 광야에 목 놓아 부르게 하고 싶은 백마를 탄 초인의 모습에서 민족의 울분과 희망을 표현했다.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을 염원했던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이육사문학관이 그의 고향인 안동에 세워진 것이 2004년의 일이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소박하게 지어진 문학관 뒷산에는 그의 묘소도 있다. 생가터 옆에는 시비 동산도 만들어져 있다.이육사가 대구에서 거처했던 남산동 대구집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가 활용 방안을 놓고 고심하던 사이 아파트 재개발 지역에 포함된 것이다. 이미 건물 외벽이 허물어지는 등 건물로서 가치를 상실한 현장을 본 시민들의 마음이 왠지 착잡하다.대구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역사적 흔적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의 역사적 체취가 남아있던 그곳에 그를 기억할 작지만 의미있는 기념물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 역사란 후손이 다듬고 보존할 때 그 가치가 커지는 법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