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모든 것들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산자락 어딘가엔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땀이 서린 들판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잎이나 잎새는 마르거나 물들어가며 조락(凋落)을 기다리고, 벌레나 짐승들은 제 나름의 몸짓으로 먹이를 모으거나 땅을 파며 동장(冬藏)을 채비하고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나선지 쌀쌀해진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미틈달은 결실과 수확, 정리와 준비로 제자리를 채워가는 시간이다.세상만물은 모두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다가 비를 내리듯이(雲行雨施), 자연은 만물이 두루 은택을 받아 잘 생장하고 완성된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 속에 온갖 생명체는 생멸을 거듭하고 만남과 헤어짐은 다반사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정체되면 발전이 없듯이, 우리는 환경과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버물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며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고 변변찮은 미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교감과 상호작용으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미상의 바이러스도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라는 희대의 바이러스와 싸우며 버텨온지 꼬박 2년이 다돼 간다. 설마설마하던 바이러스가 공포와 불안의 회오리를 일으켜 지구촌은 신음과 침체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엄청난 충격과 파장은 수많은 이변과 변화, 생소함과 이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혼돈과 암울의 안개를 여전히 묶어 두고 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모색과 낯선 듯 익숙한 적응으로 난국을 헤쳐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계적 일상회복’이 11월부터 전면적으로 이행되고 조금씩 삶의 제자리 찾기가 시작된 것 같다.단절과 고립을 걷어내는 포용적 방역관리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새로운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의 조치로 여겨진다. 다만, 시민의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방역을 통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추진하여 ‘더 나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솔선수범과 배려와 존중, 신뢰와 공감으로 가정과 이웃을 함께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보듬고 감싸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다독이며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서로가 어울려 위로하고 격려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뜩이나 혼미하고 흉흉해진 세상일수록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챙기고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지켜가는 아량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맞서서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자연과 인간은 공생해야 공존할 수 있다. 어차피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희망과 행복의 바이러스를 불러들여 일상의 제자리를 되찾고 평온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길 기대해본다.
2021-11-08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 가고 있다. 산천의 초목이나 들판의 곡식들이 제 나름의 빛과 색으로 형형색색 물들어가며 가을날이 깊어 가고 있다.청록의 잎새들이 누르스름하게 변조되거나 발그스레하게 물들어가는 풍엽(楓葉)은, 어쩌면 내면의 소리와 울림을 조곤조곤 색조와 빛깔로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갛게 타는 듯 일어나는 가을산의 단풍물결은 그리움의 밀어가 꽃불처럼 온 산에 울부짖듯이 활활 번져가는 것이 아닐까?정갈한 햇살이 부서지는 알록달록한 단풍숲에 들면 정말이지 어디선가 꼭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빠질 때가 있다. 노란 은행나무 숲길에서는 꾀꼬리의 고운 목청이 은행잎 마냥 나풀거리며 우짖는 듯하고, 굴참나무숲에서는 길쭉한 갈잎의 서걱거림이 중저음의 첼로소리로 내려앉는 듯하다. 또한 앙증맞은 단풍나무 숲을 거닐면 오색찬란한 재잘거림이 영롱한 별빛 속삭임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낙엽지는 모습은 비올롱의 긴 흐느낌 마냥 처연하기만 하니, 자연은 빛과 색의 조화를 때때로 율(律)과 현(絃)으로 탄주하며 오묘함을 더해주고 있다.그래서일까? 코로나의 와중이지만 다채로운 가을에는 유난히 음악회가 많다. 정기연주회나 음악 발표회, 길거리 음악제, 산사음악회 등의 음악잔치가 지난 10월부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에 저당 잡힌 갑갑한 일상의 환기구나 탈출구로 여겨 소리와 가락의 흥취에 빠지다 보면, 잠시나마 음악이 주는 선물 같은 평온과 위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굳이 이름난 음악회가 아니더라도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길거리 버스킹 등에 눈과 귀를 열다 보면, 가볍고 편안하게 멜로디에 젖어 들어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음악에는 공감의 흥이 있고 치유의 힘이 있다.지난 주말 교외의 한적한 카페 잔디마당에서 열린 작은음악회는 소박하면서도 정겨웠다. 출연자 중심으로 초청, 진행된 소소한 음악회는, 관객이 출연자가 돼서 준비한 레퍼토리를 발표하고 서로 격려와 응원으로 흥을 돋구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음악 나눔 마당이었다. 가요, 국악, 기타, 색소폰, 하모니카의 선율이 폭포수나 실여울처럼 흐르며 강렬하면서도 잔잔하게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또한 시월의 마지막 날에 열린 산사음악회는 ‘위드 코로나’를 맞이함(?)인지 지역과 중앙의 인기가수와 탤런트, 작곡가, 연주자 등이 출연해 관객들과 함께 깊어 가는 가을의 낭만을 한껏 즐겼다. 특히 오프닝 공연으로 포항시낭송회 낭송가가 우정 출연해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지역의 오낙율 시인의 ‘포항 12경’을 차분하고 멋드러지게 낭송해 음악회의 품격을 더하기도 했다.포항시는 철의 선율로 문화도시 기반 조성을 위한 순수예술 진흥 프로젝트(주제 ‘기억의 시작’)로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포항음악제를 개최한다.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 향유권 조성과 고급화된 문화 수요에 부응하며 화려한 라인업으로 볼거리, 들을거리가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과 함께 코로나의 시름을 털어내며 즐겁고 행복한 가을의 선율에 흠뻑 젖어보면 어떨까?
2021-11-01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를 앞둔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긴장을 하며 발사준비에 신중을 기하고 있던 통제실에 난데없이 이벤트기획사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방송 중계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느라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를 대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 누리호 발사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발표를 하기 위해 생긴 일이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성명 발표 뒷배경이 허전하자 기획 책임자가 누리호 발사를 담당해 온 과학기술자들을 뒤에 ‘병풍’으로 동원하기까지 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현장을 지휘한 사람은 이벤트의 달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었다고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주요 사안은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약속은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쇼통’이란 신개념의 정책(?)을 펼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국민들과 직접 토론이나 기자회견 등으로 소통하는 대신 마치 쇼(show)를 하듯 일방적으로 보여주기 이벤트를 연출하는 걸 비꼬는 말이 ‘쇼통’이란 신조어다. 그런 전시행정이란 집권자의 치적이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기 마련이다.보여주기 이벤트는 이른바 ‘감성팔이’로 효과를 극대화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판문점 도보다리 이벤트였다. 가설된 나무다리를 남과 북의 정상이 다정하게 걷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북한이 당장이라도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서서 남북통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 같은 환상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벤트였다.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는 노벨평화상을 거론할 정도로 고공행진이었다.하지만 김정은의 처지와 속내를 짐작하는 사람들은 ‘4·27 공동선언문’ 따위는 허울 좋은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핵무장을 더욱 강화하는 근본적인 정책 노선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쇼통의 또 한 가지 전략은 ‘숟가락 얹기’라고 한다. 워낙에 내 놓을 만한 업적이 없을 경우 남이 이룬 성과에 편승해서라도 낯을 내보려는 수작을 말한다. 지난번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미국 방문을 하면서 요즘 한창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대동한 것이 바로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얼마나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에 자신이 없었으면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체면을 살려보려는 생각을 했을까.문 정권 초기에는 탁현민이라는 이벤트 전문가를 기용해서 ‘쇼통’의 정책으로 상당한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국민들은 그것이 자화자찬의 홍보 외에는 실익이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쇼는 쇼일 뿐 현실이 아니다. 쇼가 주는 감동의 효과는 현실에 부닥치면 사그라진다. 그리고 그런 이벤트는 거듭할수록 효과가 줄어들기 마련이다.소통 대신 ‘쇼통’으로 대통령 임기를 다한다면 우리는 그를 ‘쇼통령’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2021-10-28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정갈하게 여물어간다. 억새가 손짓하는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고, 도시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기에도 좋으며, 풍성한 축제마당에 빠져 코로나 블루의 갑갑증을 떨쳐버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풍요로운 계절에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때가 되면 유난히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감미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가지마다 주황색의 등을 켜는 감에 대한 얘기다.유년시절의 가을, 고향집 뒷밭과 언덕에는 온통 주홍빛 감이 오지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면 논밭의 모자라는 일손을 거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론 다 익은 감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곶감으로 말리거나 큰 단지에 감잎과 함께 탱탱한 감을 켜켜이 쟁여놓는 일을 할머니와 수시로 하곤 했었다. 냉장고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서 겨울날의 꿀맛 같은 별미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채비를 가을부터 했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감조리개를 이용하거나 큰 감나무에 올라서 감을 따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긴 대나무 장대 같은 막대기 끝에 V홈을 파서 감이 달린 가지를 끼워 돌리는 방식으로 꺾어서 감을 따는 것은, 장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팔의 힘과 끝부분을 가지에 정확하게 맞추는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또한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약도 없다’는 말처럼 약하고 미끄러운 가지를 잡거나 디디고 감을 따는 것은 위태롭기 이를ㅑ 데 없었지만, 공중곡예(?) 하듯이 노련하게 손발을 옮겨가며 몇날 몇일 감을 따야만 했었다. 그렇게 감을 따다 보면 더러 홍시도 나오기 마련인데, 감밭에서 먹는 홍시는 그야말로 꿀보다 더한 맛이랄까! 그러한 꿀맛 같은 감 맛이 어릴 때부터 입에 배어선지 필자는 감나무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좁지만 우거(寓居)의 뜰에는 감나무가 십 수년째 네 그루나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담장 곁으로 단감이나 대봉감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입맛을 돋구며 은근 슬쩍 한 개씩 따먹곤 했었는데, 아뿔싸 올해는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수년째 까치밥을 먹는 재미삼아(?)로 봄날부터 집을 찾아드는 몇 종의 새들이 감이 채 익기도 전에 먹잇감으로 쪼아먹어 거의 모든 감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그저 좋고, 때에 따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미묘한 소통의 방식까지 읽게 된 필자로서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새들끼리는 “저 집에 가면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항상 있어” “가을이면 맛있는 감들이 우릴 기다려” 라고 짹짹거리며 자주 폴폴 날아와 떫은 대봉감까지 저지레를 한 것으로 보인다.먹이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하며 재잘대는 새들이 가을의 한자락을 앗아간 것 같아 약간 떨떠름(?)하지만, 새들과의 공생은 마냥 정겹고 아름답지 않을까?
2021-10-25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들판의 황금물결이 형형색색 조각보 마냥 곱기만 하다. 시월의 어느 때라도 축제가 아닐 수 없을 만큼 멋진 나날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갈한 햇살에 적당히 서늘한 기온, 오곡백과 풍성한 들녘과 초목의 빛 어림이 짙어 가는 모양새는 매양 가을축제를 벌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청순가련한 구절초는 수수하게 피어나고 억새가 긴 목을 뽑아 흔드는가 하면, 핑크뮬리는 양탄자 같은 핑크 카펫을 부드럽게 깔면서 넘실넘실 축제마당을 펼치는 듯하다.
2021-10-18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시월 초순 저녁답, 고즈넉한 고택마당이 부산해졌다. 한쪽에서는 전(煎)을 부치거나 어묵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하고, 다른 편에서는 야외무대에 현수막을 설치하며 음향시설을 준비하는 등 무슨 잔치라도 벌이려는 듯 하나씩 구색을 갖춰가는 모양새가 바쁘기만 하다.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며 일손을 돕던 몇몇 사람들은 막걸리를 몇 잔씩 들이켜고는 김이 설설 나는 정구지전을 손으로 쭉쭉 찢어 안주삼아 먹기도 하는 등 벌써부터 분위기에 들뜨는 듯했다.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풀벌레 합창의 선율 속에 설장고 가락의 들썩임으로 오프닝 되면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아슴하게 찾아 들고 마종기의 ‘우화의 강’이 담담하게 흐르는가 하면, 코로나19의 딜레마에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정호승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시의 울림이 역경의 고비(苦悲)를 이겨내는 용기와 희망의 북돋음처럼 전해졌다. 거기에 그윽한 대금소리가 심금을 파고드는 듯 구성진 시조창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들숨과 날숨으로 경쾌하게 여울지는 하모니카 멜로디 ‘숨어 우는 바람 소리’가 고택의 마당을 휘감는 듯했다.이러한 레퍼토리는 경북문화재단 지역문화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코로나 극복 기원 힐링 콘서트로, 포항지역의 박기영 시낭송가가 기획·연출한 ‘시(詩)와 음악(音樂)이 흐르는 고택(古宅)을 거닐다’의 부분적인 행사 정경이다. 이 행사에는 (사)시 읽는 문화와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와 초청 게스트, 주민 등이 참여해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시 양동마을 만호고택에서 소박하면서도 다채롭게 열렸다. 넓직한 마당 한 켠에는 국화와 쑥부쟁이가 소담스레 피어 반기고 옛적의 흐릿한 등잔불 마냥 정겨운 불빛이 얼비치는 고택을 배경삼아 시를 읊고 시조창을 하며 대금과 하모니카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색창연함 속에 설레임으로 즐기는 이색적인 풍류가 아닐 수 없었다.더욱이 시낭송에 어울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맵시나 남·여고생 교복 또는 기타 고상한 차림 등으로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을 시의 행간에 담아, 흐르는 배경음에 매끄러우면서도 차분하고 애절하고 청순가련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시의 감칠맛을 한껏 더하며 시 나눔의 마당을 고조시켰다. 그 즈음 툇마루 밑의 아궁이에서 지피는 군불로 몽실몽실 피어나는 연기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고택 곳곳에 운무처럼 스며들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했다.그렇게 보낸 두 시간여 시낭송과 음률의 흥취 속에는 별빛도 내려앉고 밤이슬도 내려앉아 모두가 촉촉함에 젖어드는 감미로운 어울림의 마당이었다. 양동마을 이장까지 시종 참관하여 깊은 관심 표명과 문화적인 발전방향의 덕담까지 해줘서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문화는 생활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즐기고 누리며 만들어갈 때 활성화되는 것이리라.
2021-10-11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창 가을날이 익어가는 시월은 밝달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라 해서 하늘연달이라 하기도 한다. 양떼구름, 새털구름을 띄우는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들판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가 하면, 산에는 조금씩 초록에 지쳐가는 잎새들이 슬며시 물들어가는 듯하다. 멀지 않아 천자만홍, 만산홍엽으로 결실과 단풍을 부를 계절은 저마다의 색과 빛과 몸짓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라도 펼칠 참이다. 이 같은 자연의 변조에 어우러져 유난히 축제가 많은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미증유의 코로나19가 축제의 발목을 잡아온지 벌써 2년째, 그러나 언제까지 코로나만 탓하고 움츠리며 몸만 사릴 것인가? 궁하면 통한다(窮則通)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축하와 제전의 의미를 담아 문화, 예술, 체육 따위와 관련하여 성대히 열리는 사회적인 행사인 축제(祝祭)는, 사람 사는 세상의 중요하고 긴밀한 연결과 화합의 요소라 할 수 있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의 유대와 소통은 활발해지고 협력과 일체감은 강화된다. 또한 축제는 밝은 내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문화, 관광, 예술 전분야의 핵심적인 성장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의 축제가 명맥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고민과 착잡함이 빠져드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 분위기와 처한 여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대안과 유효적절한 아이템으로 축제의 다변화된 양식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대면, 비접촉 상황임을 전제한 온라인 축제나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이색 테마 등은 한결 축제의 다양성과 흥미로움을 유발할 것이다. 실제 문경찻사발축제 등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곳도 이미 있다.‘문화의 달’답게 포항에서는 지역과 전국 규모의 굵직한 축제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일월 정신문화 전승’ 차원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제14회 일월문화제와 ‘생활문화 백신(100 Scene)으로 만나는 새로운 일상’을 주제로 10월 4일부터 일주일 간 개최되는 ‘2021 전국생활문화축제’가 그것이다. 특히 전국생활문화축제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활문화축제로 전국 시군구 5천여명의 생활문화인들이 비대면으로 접속하여 각 지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다. 올해는 제8회째로 포항을 메인 스튜디오로 하는 메타 유니버스와 생활문화TV온오프라인 등으로 전국을 연결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축제를 통해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다양한 생활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일상을 살고 있는 지역민과 전국의 생활문화인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며, 아울러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누리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져 보길 기대해본다. 일상의 쉼표에서 문화를 느끼며 축제장의 만남을 통해 코로나19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기회로 여긴다면, 삶이 한결 여유롭고 향기롭지 않을까? 매일매일 숙제(?)하듯이 살지 말고 일상을 축제처럼 즐기며 살아보면 어떨까?
2021-10-04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바람의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있다. 간혹 때아닌 먹장구름이 몇 차례 소나기를 흩뿌리기도 하지만, 이내 뭉실뭉실 피어나는 구름이 한가로이 가없는 하늘을 유영하며 추분(秋分) 지난 가을날을 열어가고 있다. 모처럼 맞이한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가을의 본령에 접어드는 9월이 마무리돼 가는데, 코로나19의 급증세가 여전히 불안과 음울의 사슬을 시퍼렇게 하고 있으니 초조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초조와 불안에 직면에서는 차분함과 평온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급급한 현실에 동동거리며 날뛰는 경박함 보다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직시하며 새로운 묘안과 지향점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되는 ‘코로나 블루’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안정과 위무를 삼을 계기가 많다고 본다. 그에 이르는 길 중의 하나가 ‘나다움’을 찾는 길이다.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나다움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지만, 결코 하루 아침에 찾아지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과는 달리 힘들어도 견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일, 작지만 일상의 만족과 기쁨이 보람으로 연결되는 일, 남들이 외면해도 자신의 주관과 안목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스스로가 좋아지는 일 속에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나침반이 숨어 있다고 본다.그러한 마음 속의 나침반이 우리를 더욱 생각하고 탐험하게 이끌어 꾸준한 각도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나다움의 궤도에 진입시키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곧 부단한 도움닫기로 꿈의 현실화에 근접시키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나다움은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나 몸에 어울리는 옷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다. 주변의 환경이나 숱한 경험 속에, 자신의 취향이나 스타일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나다움의 표상일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는 학습이든 업무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로 바꿔 나가는 인식의 전환과 간단없는 노력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은 남들이 뭐라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從吾所好) 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자는 자신만의 편안한 쾌적함을 넉넉하게 누린다(自適其適)고 했는지도 모른다.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스마트폰과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인지 모를 조급함과 고단함 속에 허우적거리며 안정과 균형을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더욱이 2년째 세상을 옥죄이는 괴질의 난맥상에 지칠 듯 무기력해지는 일상에서 그나마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망중한의 여유를 느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면 어떨까?인생은 참다움을 찾는 여행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방향으로 모험하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여정이 행복에 이르는 나다움의 길이라고 본다. 참다운 나다움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꿔 주리라.
2021-09-27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 두 차례 비가 오고 나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푸르름을 더해간다. 정갈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결에 들판의 알곡이 여물어 가듯이, 도처에서는 이러저러한 선행과 희소식이 들려온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죽장면의 수해현장을 근 4주째 빠짐없이 찾아 복구와 지원의 일손을 보태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기술인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명장’ 선정 등의 기쁜 일들이 잠시나마 코로나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대한민국명장이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지칭한다.이러한 제도는 1986년부터 시행돼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한 37개 분야 97개 직종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를 대상으로 기계, 재료, 전기, 통신, 조선, 항공 등의 산업분야와 금속, 도자기, 목칠 등의 공예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서류, 현장심사를 통해 선정한다.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장인(匠人)이기에 선정되기까지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대한민국명장에 포항지역의 명문사학 출신의 포스코 기술자가 선정돼 화제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그 뿐만이 아니라 2명의 우수숙련기술자 선정을 비롯하여, 이미 2015년에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돼 산업과 국가 발전에 공로가 인정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산업포장’까지 이번에 함께 받아서 경사를 더했다. 특히 4명 모두 같은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의 15회 동기생으로 포항제철소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채롭기만 하다.우수숙련기술자와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초가 있었을까? 수 없는 학습과 좌절, 부단한 인내와 의지로 현장에서의 기술력과 활용성의 가치를 드높이며 정성과 최선을 다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력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듯이, 어쩌면 서럽도록 힘겨운 노력과 눈물겨운 정성이 빚은 선물 같은 결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했던가. 포철공고는 어느덧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국가산업정책에 부응하는 고급인력 양성, 전문성과 인성을 겸비한 철강분야의 융, 복합 전문기술교육으로 4차 혁명시대를 이끌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재를 육성, 배출하는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많은 변화와 성장의 50년 역사 속에 전국적으로 1만5천여명의 동문들이 산업현장과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에서 저마다의 재능과 기량을 발휘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명장 선정과 산업포장 수훈은 이러한 맥락에서 포공인(浦工人)의 저력을 만방에 드러낸 명문교육의 소중한 결실이다.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듯이(人無遠慮 難成大業), 특히 교육이나 인재양성은 먼 장래를 내다보며 원대한 계획과 치밀한 준비로 지속적인 창의와 혁신이 있어야 개인의 성취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9-13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근 20일째 가을장마가 계속되다 보니 우려와 이변도 뒤따르고 있다. 집중호우가 수시로 내리고 태풍이 쏟아낸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부분적으로 유례없이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또한 일조량이 부족해 곡식과 과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예찰과 더욱이 장기적인 우천과 흐릿한 날씨가 주는 우중충함으로 코로나 블루의 침울함이 더욱 깊어질지도 모를 가을의 길목이다.사람이 보고 듣고 맡고 맛보며 느끼는 등의 감각은 순전히 외부적인 현상과 사물에 대한 반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희소식을 듣거나 맛난 것을 먹으면 기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인 감각기관의 촉수에 따라 인식과 느낌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며, 동일한 현상을 두고도 달리 여길 수 있음은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어떤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은 몸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인 것을 마음이 알고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인지과학(認知科學) 측면에서는 인간이나 생물의 인식과정을 대상으로 한 지식의 표현, 추론기구, 학습, 시각·청각 등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오래 전부터 진행해왔다. 하지만 몸이 느끼는 것을 마음마저 일치시켜 함께 느끼기란 결코 만만찮고 쉽지 않은 일이다.몸은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직감적으로 움직이는데, 마음은 태평이고 무덤덤할 때가 많다. 또한 행실은 바르고 착한데 마음은 악하고 독한 경우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는 곧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이며, 마음은 가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거나 몸은 원하는데 마음이 뒤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 그것은 곧 진심과 진솔함이 아닐까 싶다.옛 현인들은 몸과 마음의 일체와 수양을 위해 수신과 도야를 일삼으며 마음의 밭에 진실의 나무를 심고자 노력했다. 진실되고 너그러운 마음의 바탕에서 건실한 나무가 튼실히 자라난다고 굳게 믿었다.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은 하나이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상호작용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감각적, 감정적 상태와 신체적 변화 사이에는 연관성이 많다. 이를테면 사랑에 가슴이 뛰고, 슬픔에 창자가 끊어지며, 분노에 피가 치솟는다고 하는 것처럼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몸과 마음 사이에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는 ‘명상(瞑想)’이 있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번잡함을 가라앉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명상은, 사유와 관조를 통해 성찰하는 일종의 마음수련이라 할 수 있다. 알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듯이, 평온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비추어보면 코로나에 찌든 심약함도, 구름처럼 드리워진 우울감도 말끔히 치유되지 않을까?
2021-09-06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동동거리면서 시작된 팔월이 건들바람결에 마무리되고 있다. 설마하던 코로나19 감염 4차 유행이 수도권과 지방 전역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위중증자와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나니 초조와 불안이 가중된다. 거기에 지난주 12호 태풍이 몰고온 엄청난 폭우로 포항 죽장면 일대의 도로와 주택, 농경지에 많은 피해를 가져와 시름을 더하고 있다. 코로나의 난맥상에 자연재난까지 겹쳐서 여전히 안절부절 동동거리고 있다.다른 지역이나 어디 먼 곳의 일처럼 여길 때가 많았었는데, 막상 우리 지역, 그것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 하루 아침에 수마에 할퀴고 막대한 피해를 입게돼 피해주민들은 얼마나 애가 타고 허탈해할까? 70년을 넘게 입암리에 살면서 이렇게 물난리가 난 적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분이나, 올해 농사는 접는 셈치더라도 사과나무가 뿌리채 뽑히고 농기계마저 떠내려가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는 분들의 탄식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피해현장은 억장이 무너질 정도지만 복구의 손길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피해지역마다 각계각층의 봉사와 구호물품의 지원이 이어지고 온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늘어나고 있다. 포항시와 유관기관은 군인,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 수천명의 인력과 수백대의 장비 동원으로 서서히 상처를 씻어내고 복구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필자 역시 포항예총 산하단체 수해복구의 일환으로 지난 휴일 방흥리 수해현장에서 포항문인협회 회원 등과 함께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간간이 비 내리는 중에 장화를 신고 자갈에 휩쓸린 사과나무를 일으켜 세우며 가지에 쌓인 풀잎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다 보니 하루가 금세 갔지만, 한결같이 노력과 정성을 다했다.죽장지역의 폭우로 인한 피해 규모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눈덩이처럼 계속 커지고 있다. 죽장면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많아 마을이 주로 하천 주변에 형성돼 있어서, 이번에 하천 범람과 도로 유실 등으로 북부지역 마을 대부분이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 근 3년 전에 발생한 포항촉발지진 피해조사 마감이 8월말인데, 죽장지역에 한정되지만 폭우 피해조사를 해야 하니 포항시가 이래저래 바람 잘날 없는 나날이 돼가는 듯하다.사람사는 세상에는 풍파와 재해가 끊이질 않는다지만, 태풍이나 홍수, 지진 같은 자연재난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천재지변을 탓할 수야 없겠지만,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재앙과 불행 앞에서는 누구라도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기상이변으로 인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풍수해 예방책이나 효과적인 대응체계로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듯싶다.예기치 못한 폭우로 초토화된 수해현장에 그래도 재해 구호와 복구에 온정의 손길이 타지역에서까지 답지해 아름답기만 하다. 어려움 앞에서는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힘을 합해 협력하고 봉사하며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뻗어야 하리라. 그래서 수해복구를 앞당기고 수마의 상흔을 애써 지워 더이상 동동거림 없는 가을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2021-08-30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풀벌레 울음소리가 한결 맑고 또렷해졌다. 처서 지난 하늘은 조금씩 높아져가고 아침저녁의 공기가 서늘해지니, 새벽녘이나 해거름에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온갖 벌레들의 합창이 청아하기만 하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나 습도가 높은 날에 많이 울어대는 지렁이 소리는 어찌나 크고 선명한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요란하지만 결코 시끄럽거나 어수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여름날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둔다고 하는 처서(處暑)는 더위를 마감하고 선선해지는 때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수일째 가을장마가 계속되기도 하지만, 맑은 날에는 노염(老炎)이 만만찮게 꼬리를 물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게 되는 현상은 달력의 숫자보다도 먼저 미세한 자연의 변화나 울림에서 느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여름날을 노래하는 매미나 가을날을 부르는 풀벌레들의 거침없는 울림이다.“소나기 멎자/매미소리//젖은 뜰을/다시 적신다//비오다/멎고//매미소리/그쳤다 다시 일고//또 한여름/이렇게 지나가는가//소나기 소리/매미소리에//아직은 성한 귀/기울이며//또 한여름/이렇게 지나보내는가” -김종길 시 ‘또 한여름’ 전문최근 들어 장마 같은 비가 수시로 내리다 보니 소나기도 잦아졌다. 무더위와 코로나에 시달리는 후줄근한 일상의 쉼표 같은 빗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나면, 때에 따라서는 하늘에서 고운 무지개가 피어나며 잠시나마 행운의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소나기 그치기가 무섭게 매미들은 약속처럼(?) 일제히 선율을 토해낸다. 마치 퍼붓는 소낙비 마냥 온 사방에서 열창(熱唱)을 쏟아내며 여름날을 노래한다. 하긴 7년을 땅 속에서 살았으니 한달 남은 일생을 옹골차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혼신을 다해 뜨겁고 벅차게 여름날의 세레나데를 구가하는지도 모른다.아직은 한낮의 매미소리가 쟁쟁한데, 어느새 귀뚜리며 여치 따위의 풀벌레와 지렁이까지 합세하여 자연의 시계소리 같은 가을의 시작음(始作音)을 연주하는 듯하다. 하찮은 미물도 이렇게 때가 되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온 힘으로 외치거나 울고 노래하면서 계절의 화음을 이어간다. 피고지는 꽃처럼 자연의 변화는 이처럼 울림이나 색채 등으로 아무런 거리낌이나 막힘없이 이치에 순응하며 넘겨주고 이어져서 조화로움을 더해가고 있다.과연 인간사회에서는 이 같은 자연의 편안한 어울림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일까? 물러나고 나설 때를 알고 목소리를 내고 침묵할 때를 알며, 타인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배려와 존중의 지혜는 그토록 까다롭고 체득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사람에게는 말과 글로 의사를 표시하는 것 이상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낄끼빠빠하며 신뢰와 융통성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알량한 학식과 경박한 언행은 빈번한 엇박자로 자신과 주변을 찡그리게 하는 불협화음으로 치달아, 종국에는 자승자박의 그물에 갇히게 되는 꼴이 될런지도 모른다.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등은 결코 아무렇게나 울리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 동화와 상생으로 공명하고 조율되며 변주하는 것이리라.
2021-08-23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벽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이슬 같은 물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어 얼핏 눈을 뜬 것이다. 무더운 탓에 여름 내내 거의 거실에서 서쪽과 남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게 되면서 새벽이면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를 자명종 삼아 깨어나곤 했었는데, 오늘은 빗소리가 대신한 것이다. 후드득 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더위에 지치고 코로나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듯 아침나절까지 시원하게 내렸다.그러한 빗줄기가 필자에게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하염없이 쏟아내는 슬픔의 눈물처럼 다가왔음은 왜일까?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어느 시구절을 차치하고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될 수도 시름을 더하는 홍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 새벽부터 처연히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보내는 친구의 말없는 전갈처럼 전해지니 착잡하기만 하다. 친했던 친구가 세상을 뜬지 꼭 1년만에 은죽(銀竹)으로 보내온 무언의 새벽 안부.“청순한 가슴 결로/주고받던 정겨움//열리고 트인 마음/스스럼없이 나누며//언제나/의형제 같은 눅진함이 있었지//섬과 육지로 이어진 정의(情誼)에는/고난의 갈퀴도 세파의 회오리도//함부로/끊을 수 없는 철석(鐵石)이 스몄는데//불현듯 드리워진/암울의 빗장에도//담담하고 초연하게/단호히 맞섰건만//사십년/학연의 섶은/구천(九泉)에서 떠도네” -拙시조 ‘별리·Ⅰ’ 전문울릉도가 고향인 그 친구와 고교 1년 때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성격이나 취향이 비슷한데다 집이 울릉도여서 왠지 모를 청순가련함이 들어선지 금세 친해졌다. 필자와 비슷하게 힐끗 잘 웃으면서 가끔 장난도 즐기고, 학업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서로 격려와 진솔함으로 다독이고 챙겨줬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육지에 나온 친구와 필자의 고향으로 가서 꼴과 나락을 베고 감을 땄는가 하면, 여름방학 때면 울릉도 태하엘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영과 잠수를 하고 홍합을 따서 열합밥을 함께 해먹기도 했었다. 졸업 후에도 수시로 친구와 연락하고 드나들며 우정을 쌓아 나갔었다.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에게 알 수 없는 병마가 스며들어 작년 이맘 때쯤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년 초여름에 태하성하신당과 친구의 고향집을 손수 찾아 ‘명랑 쾌유’를 간절히 빌었건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산만큼 더 살아도 아까운 나인데, 친구와의 삶의 곡진함을 더 나눠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해 기세(棄世)하듯이 떠나버렸는지 애절하고 비통한 마음 가눌 길 없다.우리는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하며, 매순간 누군가와 무엇을 떠나보내고 있다.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기에 죽음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하여 죽음과 차분하게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고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기에,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그 마음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2021-08-16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더위의 막바지인 말복(末伏)이지만, 좀체 꺾일줄 모르는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세 만큼이나 끈질긴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복날을 나타내는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으로,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여름의 무더운 화기(火氣)를 두려워하여 세번(초복·중복·말복) 엎드리고 나면 무더위가 거의 지나가게 되는 셈이라 한다. 이른바 삼복 중에는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거나 기운이 허약해져서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고 더위를 잊기 위해 청유(淸遊)하거나 탁족(濯足)을 하고, 보신(補身)음식을 먹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지긋지긋한 코로나에 시달리는데 더위마저 먹게 된다면 심신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조차도 힘들어지게 된다. 소나기는 피해가는 게 낫다고, 코로나든 더위든 조금만 더 엎드리고 몸을 사려 조심하고 회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감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독불장군처럼 볼썽사나운 돌출행위로 괜스레 된서리를 맞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폭염과 전염병에 맞닥뜨리기 보다 몇 번 수그리거나 낮추면서 분위기와 여건에 맞게 순응하고 처신해야함은 비단 삼복(三伏)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예컨대 일상이나 주변에선 간혹 무지와 독선, 욕심의 남발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보도되거나 일어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판이다. 세상사 요지경(瑤池鏡)이라서 그러는 걸까? 세상이나 만물은 자연이 그러하듯이 음양과 오행에 따라 조화와 질서가 생기고, 상생상극의 이치와 순리 속에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변화와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자연계에서도 상생상극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듯이 인간사회 역시 개인이나 조직이 화합하고 상충, 상반되는 논리와 견해에 따라 티격태격하는 ‘부조화의 조화’ 속에서 천태만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대부분의 부조화는 관점이나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아집과 욕망에 사로잡힌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으로 표면화하게 된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집단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그들의 노선을 지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진실을 곡해, 호도하여 합리화시키거나 집요하게 선전, 회유를 조장하기도 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켜야 함에도, 수시로 말을 바꾸고 억측과 왜곡으로 전(煎) 뒤집듯이 순식간에 번복을 일삼는데 무슨 수로 문제해결과 합목적적인 조화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형적인 표리부동이요 자가당착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인간과 사회생활의 기본은 믿음과 약속이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지 못하듯이(無信不立), 신의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고 의지하기 어렵다. 철석같이 믿어왔던 사람이 욕망의 왜곡 같은 불신과 의문, 위선적인 행태를 일삼는다면 실망감을 넘어 환멸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우연히 쳐다본 석양 무렵의 하늘에 야누스 형상 같은 구름이 바람에 쓸리고 있었음은 무슨 연유였을까? 사람은 어울림의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귀하다는 배려와 존중으로 겸손과 양보의 마음을 서로 나눌 때, 조화로운 공감의 꽃이 피어나리라.
2021-08-09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동동팔월, 여름날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이 느슨해진 어정칠월의 틈을 타고 들이닥친 4차 대유행에 수도권과 지역별 감염세가 좀처럼 꺾이질 않다 보니,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8월이 되고 말았다. 연일 폭염지수 경신 예보와 무관중 올림픽 경기의 열기 못지않게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세에 여전히 불안하고 동동거리듯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화살 같은 땡볕과 난마 같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어도 여름꽃은 쉬엄쉬엄 하나씩 피어나고 있다. 개망초와 쑥부쟁이가 청록의 캔버스를 군데군데 하얗게 수놓는가 하면 낮은 언덕 한 켠에 긴 목을 뽑아내는 산나리 꽃잎이 살랑거리고 있다. 주위로는 배롱나무 가지마다 분홍빛 꽃망울이 등불처럼 켜지고 있고, 그 너머 능소화 덩굴은 수북한 줄기와 잎새를 드리우며 작은 나팔 같은 주황색 꽃을 촘촘하게 매달고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우거(寓居)의 뒤뜰 풍경이다.대체로 7월 초부터 집 안 뜨락이며 거리, 담벼락에 누런빛이 감도는 주홍빛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곳곳에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생육하는 덩굴나무이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 능소화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던 어사화로 쓰이면서 특히 양반들이 좋아한 꽃이기도 했다. 덩굴로 뻗어가며 꽃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시들지도 않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품위 있게 진다 해서 양반들이 흠모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선비나 양반집 담장에만 심을 수 있다고 해서 ‘양반꽃’ 또는 ‘선비화’라 불렀다고 한다.그러한 뒤뜰의 ‘양반꽃’이 올 여름엔 두벌로 피어나서 이채롭기만 하다. 분명 지난 6월초부터 몇 송이씩 피어나는 걸 보고 올해는 더위가 빨라서 좀 일찍 피는가 싶었었는데, 그렇게 2~3주 정도 맛보기로(?) 피고는 잠잠하다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피는 것이 아닌가! 드문 현상이거니와 십 수년째 서옥(書屋)엘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라 희한하기만 했다. 그러고보니 무언가 유추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하순부터 필자의 서실(書室)에서는 회사의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창단한 ‘붓글씨재능봉사단’의 단원들을 대상으로 서예기초과정 단체수업을 시작했었다. 서예에 관심있는 직원들이 모여 붓글씨를 배우고 익혀서 지역사회의 필요한 곳에 재능을 기부하고 전통문화를 나누자는 취지의 강습이었다.도심 속의 서실에서 묵향을 피우며 붓글씨를 배우는 서생(書生)들의 붓놀림이 궁금해선지 뒤뜰의 능소화가 서둘러 망울을 터트린 것은 아닐까? 선비의 기품 같은 능소화가 ‘어른학생’들이 먹을 갈아 붓으로 정성껏 점과 획을 긋고 연습하는 모습이 반갑고 가상해서(?) 애써 담장을 넘어 축화(祝花)처럼 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무렵 때맞춰 담장 아래 붓꽃이 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붓은 선비의 또 다른 손이다. 코로나의 난국에도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서예기초 학습에 열기를 더해가는 수강생들에게 저만치 능소화가 넌지시 격려의 손을 흔드는 듯했다.
2021-08-02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의 한복판, 삼복더위가 본때를 보이고 있다. 짧은 늦장마가 물러나기 무섭게 염천(炎天)은 대지를 달궈 대고 폭서는 염소뿔이라도 녹일 듯 사정없이 작렬하고 있다. 열돔 현상 탓인지 한반도를 에워싼 열(熱)공기층이 고기압에 지붕처럼 갇혀서 코로나19 감염증의 4차 대유행의 기세 못지않게 사람들의 머리 위로 화살 같은 폭염을 내리꽂고 있다.여름은 덥기 마련이지만 출구 없는 터널 같은 코로나 감염증의 재확산에 가뜩이나 지쳐가는데 더위마저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지역감염의 점차적인 확산세를 꺾기 위해 전국 피서지나 야영장의 인원제한과 시설물 통제, 이동자제 권유 등으로 피서마저 쉽사리 떠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코로나에 시달리고 무더위에 주눅든 나날 속에 허우적대기만 할 것인가? 코로나의 와중에도 저마다의 생활 패턴 변화와 나름의 습성으로 한줄기 시련 같은 여름날을 차분하게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이를테면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와 한판 붙어본다든가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삼매경(三昧境)에 빠지다 보면 날름거리는 폭양의 혀쯤이야 가볍게(?)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도 자전거 출퇴근을 고수하고 있는데, 간혹 주말 라이딩을 할 때는 더위와 정면승부라도 하듯이 푹푹 찌는 포도(鋪道)나 비탈진 흙길을 거침없이 달리면서 정말 비오듯 땀이 쏟아져도 몸과 마음은 외려 가뿐하고 개운함 속에 모종의 희열감을 흠뻑 맛보곤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몰입하는 시간을 통해 흥취에 젖다 보면 어느새 더위가 얼씬도 못하게 됨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묵향이 피어나는 서실에서 서책을 뒤적이며 붓 끝에 마음을 모아 선지에 한 점 한 획 써내려 가다 보면 운필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열기 속에 더위는 아예 무색케 된다. 또한 오죽(烏竹) 잎새 가벼이 일렁이는 뒷마루에 편하게 앉거나 누워 관심있는 책을 탐독하다 보면 기웃대던 더위 따윈 댓잎의 바람소리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만다.각인각색이라 제 나름의 피서법이 있겠지만 필자가 이처럼 수년째 즐기며 터득한 여름 나기 방식은 일종의 삼매(三昧)같은 마음훈련이 아닐까 여겨진다. 삼매란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일심불란(一心不亂)한 경지를 말한다. 그러한 상태에서 일을 하거나 학습, 운동에 몰두하면 주변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심취하여 열의를 쏟고 최선을 다하게 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선택과 집중, 도전과 열정도 어찌보면 이 같은 삼매가 바탕이 된 마음작용이 아닐까 싶다. 사상 초유의 무관중으로 열리고 있는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도 정신집중이 잘돼야 선전(善戰)할 수 있을 것이다.굳이 삼매경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취향과 요령을 살려 건강한 여름날을 보내리라고 본다. 미증유의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의료재난을 넘어 사회, 경제적인 재난의 위기로 파급되는 현실에 더위까지 먹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긴요한 대응을 해나갈 일이다.
2021-07-26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소리에 깨어나고 눈을 뜨는 아침이 싱그럽다. 도심 속이지만 뒤뜰로 이어지는 작은 언덕과 간간이 차들이 오가는 도로 건너 야트막한 산에는 다양한 수목 속에 수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벽부터 아침, 낮과 저녁을 지나 밤이 깊을 때까지 우거(寓居) 주변에는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고 수시로 포르릉 대며 날아가는 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더욱이 주택가와 인접한 아파트 너머 솔숲에 집단서식하고 있는 왜가리떼의 유유한 날갯짓이 눈길만 돌려도 보이고, 끼루룩대거나 색색거리는 소리가 지척의 남창까지 들려오기도 한다.거의 매일 새들의 지저귐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밤새 울음을 자장가(?)로 여기며 하루를 마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짹짹거리거나 깎깍대고 삐르륵하는가 하면 쉬쭉쉬쭉 대다가 새콩새콩하고 보옥보옥하는 등의 경쾌함과 정겨움, 호젓함을 더하는 새 울음소리가 조류 수만큼이나 많고 가지각색이다. 마치 대륙별 인종이 수두룩 하고 언어가 다양하듯이. 뒤섞여 울릴지라도 결코 요란하지 않는 새들의 우짖는 소리는 그들만의 소통 수단이고 말인 셈이다.“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 /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 -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최근 들어 새소리를 가까이서 새벽에 잠이 깰 정도로 들을 수 있다니 새삼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은 결코 알아들을 순 없겠지만, 새나 짐승들의 세계에서는 무리들만이 통하는 미묘한 울림과 특유한 몸동작으로 신호를 하거나 정보를 주고받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뒤뜰 화단의 돌확에 고인 물이나 소나무 아래 간수(澗水)처럼 떨어지는 물방울을 어떻게 알고 몇 종의 새들이 수년째 찾아와 재잘거리며 물을 받아먹거나 몸을 담그기도 하는 걸 간혹 지켜보면서, 짧고 단순한 새들의 지저귐 같아도 새들만의 대화이고 많은 알림을 전해주는 울림으로 여겨지게 됐다.몇 달 전엔가 우연히 TV에서 유럽 알프스의 어느 산골마을에 할머니 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100~200m 이상 떨어진 안보이는 곳에서도 특유의 방식으로 의사소통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분명 말로 외치는 것이 아닌, 무슨 새소리나 휘파람 같은 고함을 서로가 알아듣고서 나뭇가지를 이거나 지고 내려오는 모습에서 어쩌면 ‘새들의 소통’도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뒷마당에 삼삼오오 놀러 와서 모이를 쪼아대거나 목을 축이며 주고받는 재잘거림이 새들의 정겨운 대화로 들리는 듯했다. 이른바 무정설법이란, 흐르는 물과 나는 새, 풀, 나무같은 금수초목(禽獸草木)도 모두 법을 설하며 은혜로 우리를 살리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새들이 아침을 열어주고 정답게 지저귀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에서 새로운 활력과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기만 하다. 새의 노래, 매미의 열창, 퍼붓는 소나기는 단순한 듯 강렬하다. 참 위대함은 단순함이며,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2021-07-19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장마에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해, 올해는 34년 만에 가장 늦은 ‘지각장마’가 전국을 상처 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4차 유행 조짐으로 가뜩이나 불안하고 우려되는 마당에 인명피해와 물적손실을 가져오는 수마마저 덮치니 설상가상이다. 수시로 바뀌는 기후를 탓할 수야 없겠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재난에 근본적인 대비와 예방조치, 신속한 복구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기후문제는 생존의 문제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삶을 위협해온 기후변화는 문명과 개발에 따른 숲 파괴와 환경오염으로 되돌아오는 자연의 역습이 아닐까 싶다. 큰 관점에서 보면 빙하기와 온난화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지구촌의 새로운 팬데믹도 결국 기후변화와 연관성이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요즘 바이러스가 가져온 ‘역설적 평화’의 위기 속에 위태위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아무리 날씨가 변덕스럽고 기후변화가 심해도 사람의 마음 보다야 더하겠는가? 하루 동안 푹푹 찌는 폭염 속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다가 사정없는 장대비에 앞을 못가리는데, 어느새 여우비가 꼬리치더니 그림 같은 무지개가 드리워지는 걸 적지 않게 목격한 적이 있다. 또한 변화무쌍한 날씨 못지않게 자주 변하고 바뀌게 되는 사람의 마음이나 돌연한 행위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도 이쪽저쪽으로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생각이 수시로 기울어지게 됨을 누구라도 몇 번씩은 겪어봤을 것이다.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水深可知 人心難知)고 했을까? 그만큼 사람의 마음은 복잡미묘하며 생각에 따른 행동이 갈팡질팡할 수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을 대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때는 늘 조심하고 신중하며 한결같음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한가지 일을 두고도 상반된 견해에서 오는 저돌적, 배타적인 생각 보다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와 포용의 마음이 훨씬 현명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사람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말하거나 움직이게 된다. 느낌이나 끌림도 결국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언가에 관심이 있거나 마음이 가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생각이나 행위가 어긋나고 치우치는 것은 평소 개인적인 성향이나 취향의 상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예컨대 하루 아침에 걷잡을 수 없이 틀어지고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대부분 오해나 공감 부족에서 오는 폐단이 아닐까 싶다.갈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듯이(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이, 오랫동안 함께 지내봐야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지 않고 세류(世流)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이라면, 격의 없이 소통하고 흐르는 마음 따라 더불어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7-12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태양이 뜨거워지고 바다나 야외로 떠나는 발길이 잦아드는 7월이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바다를 즐겨 찾는 것은 시원한 파도소리 만큼이나 탁 트인 가슴으로 철썩이는 물결에 몸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름날의 무더위를 피해 강이나 바다, 산이나 계곡 등지로 피서여행을 떠나는 것은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의 활력을 재충전하고 휴식과 휴양을 누리기 위함일 것이다. 더욱이 고질 같은 코로나19의 불안과 시달림에 갑갑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탈출한다는 그 자체가 청량제 같은 설레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피서나 일상의 환기 차원이 아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것도 동틀 무렵에 나타나 맨발로 해변의 모래밭을 걸으며 주변에 버려지거나 파도에 밀려나온 쓰레기를 줍고 일출을 맞이하며 하루를 열어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이면 약속처럼 어김없이 모여들어 신발을 벗고 삼삼오오로 거닐며 해변의 쓰레기를 주어온지 벌써 500일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이색적이고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시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첫 수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별을 보며 도심 속의 바다로 나가서 마대를 옆에 차고 맨발로 모래톱을 거닐며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일이라도 마음먹기는 쉬워도 실천으로 옮기기는 만만찮다. 개인의 의지나 목적을 떠나 지역과 환경, 건강을 챙기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영일대 맨발 플로깅’은 ESG 관점에서 신선한 자극이고 새로운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플로깅(Plogging)이란 걷거나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지난 주말 필자는 애써 시간을 내 영일대해수욕장 맨발 플로깅을 체험했었는데 느낌이 정말 괜찮았다. 여명 속에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을 자극하는 모래의 촉감이 좋았고, 한 발 두 발 옮기며 쓰레기를 주우니 파도마저 추임새로 다가왔다. 더욱이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31년된 500원짜리 동전을 물 속에서 줍는 횡재(?)까지 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폭죽막대를 비롯한 별의별 쓰레기는 의외로 많았으며 철사 꼬챙이 등은 맨발 걷기나 해수욕장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였다.맨발로 땅을 밟는다는 것은 ‘어머니의 대지’인 지구와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전적으로 땅에 의존하고 있지만, 95%가 지구와 절연된 상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선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물과 모래의 질감을 맨발로 느끼는 것은 땅과 우주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 환경사랑까지 실천하며 새벽을 열어가고 있으니, 하루가 얼마나 활기차고 풋풋할까? 작지만 숨은 노력들이 세상을 밝힌다.
2021-07-05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담장 위 능소화의 배웅 속에 유월이 가고 있다. 길손인양 건듯건듯 불어오는 바람 결에 이제 막 피어나는 능소화가 나풀나풀 반기지만, 미끈 유월은 어느새 슬며시 상반기의 담장을 미끄러지듯이 넘고 있다. 초록 잎새의 변조 속에 여름채비를 하는가 싶었는데, 별반 해놓은 일도 없이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세월여시(歲月如矢)가 새삼스럽기만 하다.상반기를 보내면서 저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진척과 성과가 있었는지는 각자가 헤아리고 챙겨야 할 몫이다. 개인의 목표와 계획, 애씀과 성취의 정도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 반복되는 무채색 같은 일상을 무지개빛 아름다움과 설레임으로 채우는 것은 순전히 자기자신이 새롭게 추구하고 힘과 정성을 쏟아 나가기에 달린 것이다. 하는 일이나 하고자 하는 과업의 경중 완급을 가늠하여 믿음과 의욕으로 몰입하고 밀어부치면, 자신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요구와 기대를 어느 정도는 부응하고 충족시키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요구와 기대는 어쩌면 사람의 일생에 늘 따라붙고 함께하는 바람과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 자라면서, 자라나 배우면서, 배우고 일하면서, 일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성장, 성숙과정에서의 요구와 기대는 늘 존재하고 결부되며 이어지게 마련이다.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 성공과 출세를 바라는 일은 모든 부모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희망사항일 것이다. 부모로서의 바람과 요구 속에 자식으로서의 요구와 기대가 어우러져 가정이 굴러가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그러나 인간생활에 있어서 요구가 지나치게 많거나 기대가 너무 커지게 되면 예기치 못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 요구(要求)란 받아야 할 것을 달라고 청하거나 모자람을 보충하고 과잉을 배제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예컨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몸조심하고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과 비슷하다. 반면 기대(期待)는 자녀들이 학업을 성취하고 사업에 성공해서 출세하고 잘살게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일들은 요구하는 수준과 기대하는 범위의 차이와 괴리 속에 차질과 파행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숱하게 나타난다.최근에 조직과 사회적인 시스템의 요구와 기대수준의 엇박자로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을 가져와 안타깝기만 하다. 철거건물 붕괴사고나 물류센터 화재사고 등은 직간접적인 사고원인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을 간과하거나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을 너무 안이하게 경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조직이나 시스템, 제품이나 운영 등에는 조건과 능력에 부합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과 기대수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러한 요구나 기대에 따른 절차나 검토, 확인사항이 결여되거나 편법에 휩쓸리게 되면 결국 폐단과 불행이 파생하게 된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지키고 해야 할 것에 대한 요구치와 이루고 바라는 정도에 대한 기대치의 적절한 균형과 보합으로 보다 알찬 하반기를 맞을 일이다.
2021-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