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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실가듯 즐기는 ‘포항철길숲 夜行’ 축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처서매직이 신기할 정도로 조석의 선선한 기운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서늘한 바람의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요란하던 매미울음 대신 저마다의 풀피리 음조같은 풀벌레들의 합창이 맑고 또렷하기만 하다. 폭우와 가뭄의 상반된 피해를 남기고 심드렁하던 여름날이 뒷전으로 물러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계절은 살랑살랑 건들바람으로 초가을을 부르고 있다. 아직은 한낮의 노염(老炎)이 꼬리를 무는 듯해도, 물빛과 하늘빛이 서로를 닮아가며 동동거리던 8월을 어련히 재우고 있다.이른바 천랑기청(天朗氣淸)한 계절의 바퀴에 맞춰 자연만물의 빛깔과 움직임이 달라지듯이, 사람사는 세상에도 계절의 시계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마당이 펼쳐져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각종 활동이나 행사를 비롯 지역별 특색과 테마를 살린 축제가 다양하게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라서 다행스럽고 흥미롭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출렁이며 구름이 흘러가듯이, 사람들도 서로 소통하고 왕래하면서 활동과 교류의 폭을 넓히고 공감과 향유의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깨어 있고 살맛나는 문화의 맛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더욱이 가증스러운 코로나19로 3년째 멍울진 가슴이었으니 오죽하랴.그런 차제에 지난 주 금~토요일 포항에서 처음 열린 ‘2022 힐링필링 포항철길숲 야행’은 늦여름 밤의 선물처럼 다가온 즐김과 누림의 축제로서 손색이 없었다. 효자동과 양학동에 이르는 2~3km 구간을 청사초롱과 백열등으로 밝히고 곳곳에 테마존과 체험코너, 버스킹, 전시코너, 라이팅쇼, 플리마켓 등을 마련해 마치 마실가듯이 참여한 시민들이나 타지의 관광객들에게 부담없는 볼거리와 느낄 거리를 안겨준 포항의 대표적인 야간축제였다.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고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 즐기는 코로나의 팬데믹과 엔데믹의 힐링(Healing)과 필링(Feeling)을 위한 축제로, 철길숲을 자전거 타고 수시로 드나드는 필자에게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걸으면서 이색적인 체험과 스탬프 랠리로 곳곳을 눈요기하는 등 짧게나마 설레고 흥겨운 문화축제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었다.아마도 포항철길숲이 조성된 이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들기는 처음인 것 같다. 특히 개막식과 달빛음악회가 열린 주무대와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인 분수 주변의 돗자리 휴식존이나 세대공감 놀이존 등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100년 역사의 철길이 상생과 어울림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다양한 테마와 즐길거리로 도시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고 있으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비록 문화재청에서 지원하는 공식적인 ‘문화재 야행’ 축제는 아니지만, 이와 같이 지자체의 안목과 기획에서 비롯되는 테마형 문화축제는 시민들에게 큰 공감과 호응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더욱 알차고 흥미로울 내년의 야행축제가 사뭇 기대된다.

2022-08-29

無信不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언제나 그렇듯이 자전거를 타고 탁 트인 강변을 달리는 기분은 가뿐하기만 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 결에 철마다 피고지는 꽃들이 특유의 웃음으로 반기고, 강물을 활주로 삼아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날갯짓은 라이딩 마냥 가볍고 활기차 보인다. 그렇게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강둑에 줄지어 선 백일홍과 무궁화꽃의 환호(?)를 받으며 자출을 하거나 한가로이 주말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유롭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주위를 완상하는 자전거 타는 풍경은, 어쩌면 낭만적이다 못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해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모처럼만의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 나홀로 라이딩을 나선 것은 그냥 바람이나 쐬기 위함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두 바퀴를 굴리며 오가는 강둑길이지만,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길섶에서 간간이 자전거 바퀴에 채일 듯 튀어오르는 방아깨비나, 멈춘 듯 흐르는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비약을 달리는 중에도 얼마든지 눈으로 스캔할 수가 있는 것이다.자세히 보거나 오래 보지 않아도 익숙한 길에서는 이처럼 다채롭게 보이거나 들리는 것들이 많아서 한편으론 따스한 시선이 오래 머무는지도 모른다.그러나 핸들을 틀어 형산대교를 건너고 구룡포 방면의 대로변으로 지나가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P사나 H사의 부지경계 측면의 가로수나 가로등 등의 기둥에는 요즘 때아닌 대자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초긴장의 형국이다. 입추가 지났어도 초록에 지쳐 단풍 들기는 아직 한참 이른데, 이곳뿐만이 아니라 포항시내 전역에는 붉고 누런 현수막의 물결이 마치 단풍처럼 울긋불긋 외치듯이 펄럭이고 있으니 이 무슨 기현상일까? 더욱이 핫플레이스 명소 등으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여름 관광철에 난데없이 엇비슷한 색깔과 다소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길거리를 온통 도배한 듯하니, 사뭇 의문과 역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지난 2월의 요원의 불길 같은 현수막의 난립과 악몽이 재연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개인의 관계나 직장, 사회생활은 물론 정치에서조차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서로 굳게 믿고 의지하는 신뢰(信賴)가 아닐까 싶다. 지난 2월에 공식적인 약조가 있었고 또 과거 수십년간 지역상생과 동반성장의 기치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해 왔음에도, 이런 식의 일방적·배타적 논리와 주장은 결코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여름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 마감한다는 처서인 오늘, 칡과 등나무 줄기를 잘 추스르고 악담대신 악수로 마무리하여 자전거 두 바퀴처럼 잘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08-22

포항의 걸출한 문인, 한흑구 선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4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고교시절 문예실 주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포항문학’ 창간호. 그 책에 실린 ‘한흑구 선생 특집’란의 글을 읽고 흑구(黑鷗) 한세광 선생을 우연찮게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주, 포스코국제관에서 열린 한흑구 문학의 장르별 조명과 한국현대문학사의 의의를 다룬 ‘한흑구 문학연구 학술대회’에서 한흑구 선생의 진면목이 뇌리에 각인됐다.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책을 통해 본 문인을 학술대회에서 제대로 알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한흑구 선생은 명작 ‘보리’ 수필 외에도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세계와 명징한 작품을 창작했음에도 문학작품과 공적이 제대로 조명, 평가되거나 예우받지 못한 은둔의 문학인으로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평양과 미국을 오가며 선구적 지성과 폭넓은 문학관으로 한국문학을 새롭고 풍요롭게 만들면서도 단 한 토막의 친일 문장을 쓰지 않은, 의지와 불굴의 지사형 문학가였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의 활동가로서 민족독립을 위해 1년여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특히, 한흑구 선생의 수필은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함으로 우리나라 수필문학 성립기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수필은 말 그대로 독백의 문학이기에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것에 우의(寓意)하여 객관의 세계를 묘사하게 되는데, 선생은 나무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바다를 통해 우주를 설명하며 시적인 비유와 상징, 풍자의 수사법으로 서정성과 간결성을 더해 수필의 완숙도를 높였다. 60, 70년대의 교과서에 2편의 수필이 실린 정도로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며 자연애와 시적인 수필세계로 근대 수필론 정립에 크게 기여한 걸출한 문인이요 관조적 사색가였다.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흑구 선생의 생시나 현재까지 그의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 인정받지 못했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니와 정부에서조차 추서한적이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에서 벗어나 외진 포항에서 주변 장르인 수필을 주로 발표한 변방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과 문단의 비평에서 다소 벗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2009년, 민충환 문학평론가에 의해 ‘한흑구 문학선집 1·2권’이 출간돼 한흑구 문학의 꽃이 부분 개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이에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022년 3월 출범, 포항시와 함께 선생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여 문학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추진 중이라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상, 철학, 문학에 대한 다층적인 탐색과 깊은 연구를 통해 ‘한흑구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 정본전집 발간’ 등 의미있는 사업추진으로 포항의 뿌리깊은 문화자산과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한세광 선생은 포항문학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2-08-15

이열치열 여름나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염천에 폭서의 기세가 등등하다. 일찌감치 벌써 가을의 시작임을 입추가 알렸어도, 바짝 달궈진 대지는 보란듯이 후끈한 열기로 초목을 시들게 하고 사람들을 피서지로 내몰고 있다. 일단 더위는 피하고 볼 일이라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찾거나 그늘로 모여들어 조금이나마 된더위를 멀리하려는 움직임이다. 폭염에도 멈출 수 없는 작업현장이나 일상에서도 온열질환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될 정도로 더위를 먹지 않도록 경계와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오히려 더위에 맞서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움직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푸르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산을 오른다거나 매미소리 경쾌한 강둑길로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다 보면, 어느새 구슬 같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흘러내리고 등줄기에도 땀이 배여 옷이 소금기로 절여지게 된다. 움직이고 오를수록 땀이 비오 듯하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가다 보면 힘겨움 보다는 묘한 희열감에 빠져들어 더 가열차게(?)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그렇게 온몸이 흥건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나면, 그 개운함은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상쾌하기만 하다. 필자가 수년째 즐기듯 터득하고 있는 ‘이열치열 극서(極暑) 대처법’이랄까, 열(熱)은 열로써 다스리는 이열치열은 덥거나 열이 날 때에 오히려 땀을 낸다든지 뜨거운 차를 마셔서 이긴다는 논리이다. 한여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 오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자전거 라이딩(20km)과 도보(4.4km)로 출퇴근을 하고 있으니, 생활 속의 운동으로 건강까지 챙기는 나름의 흡족한 비법(?)이 아닐 수 없다.이열치열은 그러나, 이처럼 가벼운 운동이나 산행 등으로 굳이 땀을 쏟아내면서 더위를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삼매(三昧)에 빠짐으로써 얼마든지 충분하게 삼복더위를 밀치고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독서나 시낭송으로 삼매경에 든다거나, 이웃을 위한 배려의 마음으로 봉사와 나눔의 손길을 펼치는 몰입과 집중을 통해 한더위를 얼마든지 밀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실제 그러한 일들은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포항시 포은도서관 상주작가와 지역 주민의 문학 향유를 돕는 체험 프로그램 ‘낭송이 나리는 금요일’이나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이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펼치는 서예체험학습 테마의 ‘찾아가는 서예교실’ 등의 활동은 정말 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참여하고 끼와 재능을 나누는 가치로운 활동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있는 시도로 한여름의 열기가 더 달궈지는지도 모를 일이다.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夏爐冬扇)라는 말을 나름 긍정적으로 해의하여, 여름날에 화로를 대하듯 부지런히 움직임으로서 땀을 흘리고 몰두와 전념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것은, 그만큼 무슨 일이든 주관과 비전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 아닐까? 열중하며 진취하는 사람에게 더위란 강인함을 끊임없이 다듬질해주고 받쳐주는 모루일 것이다.

2022-08-08

쉼이 있는 삶의 리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휴가의 절정이다. 연이은 태풍 북상 예보에 고온다습한 날이 계속돼도 휴가를 떠나는 발길은 급증하고, 피서지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중복을 넘긴 7월말~8월초가 하계휴가 절정기로 전국민의 60% 이상이 피서나 휴양을 위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어, 국토교통부에서는 안전한 교통환경과 원활한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특별교통대책’을 마련·시행할 정도다. 코로나19의 6차 대유행 조짐으로 불안과 긴장을 떨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캉스 행렬은 왕래부절이니 우려와 설마가 넘나드는 딜레마 같은 나날이랄까?그래도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더군다나 3년째 발목 잡아온 거리두기로 사람들은 얼마나 시달리고 억눌렸는지, 웬만하면 일단 집을 나서 시원한 콧바람을 날리며 그간의 지긋지긋함을 떨쳐 버리려는 모양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환경과 접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신경 써야 하고 부담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며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일 것이다.휴가는 어쩌면 그와 같은 방편과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휴식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일만 하는 ‘개미의 삶’에서 벗어나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라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휴식, 무위(無爲)에서 오는 자유감, 자유시간 동안 빈둥거릴 수 있는 게으름 등도 아주 훌륭한 여가활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휴가를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기계처럼 일만 한다고 해서 결코 능률이나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쉼과 여가생활이 있는 일터의 리듬이 진정한 효율과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논리다.그래서 지난 주말,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부산 나들이를 다녀온 것은 여유로운 쉼과 함께 삶의 리듬을 새삼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최대한 편하고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다가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관광명소를 찾아 눈요기를 하고, 주변 맛집에서 별미 먹거리로 입을 즐겁게 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쐰다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의 리듬을 물결치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더욱이 부산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부산에 유치해 콘서트’장면을 우연히 접하기도 하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르는 밤하늘의 불꽃쇼가 마치 관광객을 반기는 축포로 여겨져 한결 여흥을 돋우는 듯했다.재충전의 시간은 빼곡한 일상의 갈피에서 벗어나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구름처럼 움직이고 물결처럼 흘러가는데 몸을 맡기는 것이리라. 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일을 잘 하듯이, 일만 하고 쉴 줄 모르는 자는 미래 경쟁력인 창의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쉼은 준비와 도약을 위한 워밍업이자 삶의 리듬을 채워주고 생기를 더해주는 일상의 여백이며 행복의 텃밭이 아닐까.

2022-08-01

물소리 물장구소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지만, 너무 덥다 보니 각종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 경보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수온상승으로 인해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과다한 지열 탓에 자연발화 화재가 발생하는 등 지구촌은 보통 난리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습격인지, 산업 문명화의 경고인지, 기상이변에 따른 걷잡을 수 없는 재해재난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꺾이는가 싶던 코로나19 변이종이 교묘하게 재확산되고 날씨마저 극성이니, 정말 한여름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타는 듯한 삼복(三伏)더위 중 가장 덥다는 중복이다. 가마솥이나 찜통 더위로 비유되는 복더위는 작렬하는 태양이 내뿜는 후끈한 열기로 대지를 인정사정없이 달구고 있다. 간혹 소나기나 장마가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숨이 막힐 듯한 무더위를 피해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는 발길이 중복을 전후해 많아지는 하계휴가가 집중되기도 한다. 경제활동을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특히 혹서기에는 쉼과 힐링이 있는 삶이 중차대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일상을 벗어나는 피서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봄날 아침에 들길 거니는 것/여름 한낮에 계곡에서 멱 감는 것/가을 저녁에 오동에 걸린 달을 보는 것/겨울밤에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 듣는 것(春朝行郊外/夏日泳溪中/秋日望桐月/冬夜廳松風)” - 강성위 한시 ‘四時四快’ 오언절구 전문. 여름날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오래 전 당시 초·중학교를 다니거나 들일로 개울가를 지나치다가 좀 덥다 싶으면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일삼기도 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채반이나 반도로 천렵을 할 때면 거의 한나절 이상을 물 속에서 살다시피 하곤 했다. 또한 달 없는 밤엔 비누와 수건을 챙겨 동네의 빨래터나 물목 좋은데로 가서 몸의 때를 제대로 벗기고 씻으며 가슴 속까지 서늘해지는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었다.‘석양이 함께 와/물장구치던 시냇가//그 물결 부드러워/바위들도 옷을 벗고//물소리/물장구소리/먼 옛날 그 시냇가//가슴 결에 묻어 놓은/수줍은 생각 하나//물결이 칠 때마다/애잔한 모습 되어//소년은 냇가에 앉아/지난 세월 줍고 있다’ -拙시조 ‘시냇가에서’ 전문. 밤낮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시냇가를 거닐다 보면 아련한 추억들이 물보라로 일어서거나 물빛 웅성거림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나뭇잎배를 띄우며 바다에 이르는 마음을 그려 보기도 했었고, 풀섶의 반딧불이를 쫓으며 작은 꿈이나마 오래도록 초롱하게 빛나기를 보듬기도 했었다. 잔잔한 여울의 속삭임이 유년의 재잘거림처럼 다가오고, 세차게 굽이치는 물살이 소년의 다부진 포부 마냥 거침없이 달려가던 시절이기도 했었다.하천정비사업으로 물길이 달라지고 아늑한 예전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은 여전히 부드러운 율(律)과 한결 같은 격(格)으로 여울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끝없는 경전의 올을 풀어내고 있다. 물소리에 스민 사연과 물장구에 어우러진 무구함이 때때로 삶의 장단을 부추기는 듯하다.

2022-07-25

詩의 향연 속으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폭염과 소나기를 번갈아 가며 여름날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반짝이는 모래와 찰랑이는 파도가 사람들을 부르고,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와 숲의 그늘이 도심을 벗어난 발걸음을 반기는 듯하다. 감소세를 보이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오미크론 하위변이의 증가세로 다시 고개를 드는 듯해도 산과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은 거침없어 보인다.교외로 떠나는 발길만이 분주해진 것이 아니다. 300만 도민의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가 화합과 감동의 축제로 성황리에 막이 내렸는가 하면, 찾아가는 음악회나 춤 공연, 전시회, 시낭송회 등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크고 작은 행사가 백화제방(百花齊放)처럼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모처럼 활기띠는 도심과 명소 곳곳엔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니, 서로 만나고 소통하며 교류와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가운데 살맛나는 세상이 한결 느껴지게 되는 것이리라.지난주 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에서 열린 ‘제1회 경상북도교육청 시낭송 in 포항 페스티벌’은 시낭송과 춤, 노래의 어울림으로 한여름 밤을 아름답게 수놓은 시의 향연이 아닐 수 없었다. 동해 바다와 연오랑세오녀, 향가, 독도아리랑 등을 비슷하거나 다르게 시낭송의 이미지화, 시노래, 시퍼포먼스 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이며 시가 어떻게 낭송으로 꽃피워지고 이채롭게 표현, 전달되는지 멋스럽게 보여준 감동의 드라마였다. 문자로 쓰여진 시가 음성과 몸짓으로 청중들에게 스밈과 울림으로 다시 태어난 복합적인 콘텐츠였다.이러한 콘셉트는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서관에서 주최하고 경상북도교육청에서 기획한 시낭송 축제로, 경북을 4개권역(서부권, 동부권, 북부권, 중남권)으로 나눠 각 권역별 시낭송가와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적인 특색을 살린 시를 이색적으로 각색, 연출하여 시의 저변확대와 시낭송문화를 일궈 나가는 아이템으로 진행됐다. 지난 4월 구미에서 ‘행복한 꿈의 詩작’을 시작으로 7월에는 포항권역에서 ‘동해 백만의 詩 꽃피우다’를 주제로 포항시낭송회와 소리나눔, 경주시낭송회 등의 시낭송가들이 참여했으며, 10월 안동, 11월 경산에서 열린다 하니 사뭇 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시 삼백편을 알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詩三百 思無邪)는 옛 성현의 가르침도 있지만, 시는 일상의 양념이나 윤활유처럼 부드러움과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해준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 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듬고 달래며 삶의 의욕을 부추기는 매개물로 시낭송이 주는 위안과 효능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난 주말 비 내리는 저녁답에 포항철길숲 한 켠에서 열린 포항문인협회의 ‘문학이 흐르는 숲길’ 주제의 시낭송과 수필, 소설 구절 낭독 등의 문학행사는 지나가는 시민들도 동참해 시를 향유하는 등 의미있게 열렸었다.시를 읽고 낭독을 즐기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할수록 그 도시의 품격과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 좋은 문학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대중과 사회가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내일을 지향하며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지역의 꿈과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

2022-07-18

옛 자취를 돌보는 아름다운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만에 내연산 계곡을 찾았다. 녹음이 깃들고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골짜기가 싱그럽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보경사를 찾거나 계곡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걸 보니 확연히 일상의 리듬이 되살아난 듯하다. 코로나19에 억눌린 답답함을 바람 결에 날려 보내고 얼룩진 마음을 청아한 계류(溪流)에 씻어내려는 듯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밝게만 보인다.경북 3경의 하나로 꼽히는 내연산에는 약 14km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골짜기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12개 폭포가 줄지어 있는 아름다운 갑천계곡이 있다. 연산폭포나 상생폭포 등은 협곡 사이로 물줄기가 나는 듯 떨어지는 비경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고, 천년 고찰인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등의 보물이 있는 등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계곡 곳곳에는 사연이 깃든 옛 자취들이 또 다른 보물처럼 남아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보경사 앞을 지나 상가 쪽으로 흐르는 중산보(中山洑)가 400여년 전에 설치되고 보수한 공덕을 기린 송덕비가 길섶에서 반기고, 내연산을 지키는 남녀 산신을 모신 ‘내연산 산왕대신지위’ ‘고모당신지위’ 비석이 제단과 함께 조성돼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바위굴의 협암수로(挾巖修路) 유공비 등이 한적한 옛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고 지낼 수밖에 없는 옛 자취에 유독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고 가꿔 나가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문화재나 유적, 유산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애써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선조들의 얼과 삶을 반추하고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사유의 폭을 넓히며 답사와 학습, 돌봄과 보전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포스코 문화재돌봄봉사단(약칭 포문돌)’이 그들이다.포문돌은 포항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여 포항시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2020년 5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문화재 가치, 문화의식 함양 교육, 주변 환경정화 활동 등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 열화,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 보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만해도 장기면 마현리 장사랑훈도이눌공 사적비의 이정표와 안내해설판 설치, 석곡선생 묘소 이정표 보수, 칠포리 암각화군 주변 수목정리와 해설판 설치 등의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했었다.옛것을 소중히 여겨 성의껏 돌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옛 자취를 보듬는 손길에는 옛것을 본받고 배워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근본을 잃지 않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이 배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알리며 보존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 의미 있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짐짓 기대해본다.

2022-07-11

친환경 예술의 관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무더위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니 저마다 분주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의 안도 속에 일상회복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그간 참고 미뤄왔었던 일들이 도처에서 자주 보이고 있다. 국내외 여행객들의 증가세가 뚜렷해지고 각종 행사나 레저활동, 문화예술 전시, 공연 등도 눈에 띄게 많아지며 사회 전반적으로 활기를 되찾아 가는 모습들이다.이미 예보가 있었지만 올 여름도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 홍수, 태풍 등으로 만만찮은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는 자연과 환경의 파괴로 자원순환사회의 메커니즘이 어긋나면서 예측불허와 악화일로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중요하며, 자연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이나 환경오염, 생태환경의 급변은 결국 인간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역습으로 작용해 급기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어쩌면 이러한 심각성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지키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친환경 예술이 대두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단 친환경 예술뿐만 아니라,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업에서는 지속가능한 기업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ESG경영이나 재생에너지 활용, 탄소중립 등의 현안은 전 세계적인 관심과 화두가 되고 있다. 그만큼 코 앞까지 다가온 기후위기가 환경오염과 생태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친환경 예술은 이러한 측면에서,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요소로 생태와 환경, 재생 이슈를 예술적인 콘셉트로 재해석해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즉, 차고 넘치는 쓰레기와 폐기물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문제나 환경이슈 등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대중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환경보호 실천을 도모하는 친환경 예술활동인 셈이다. 이를테면 캔과 페트병 등을 활용해 자원순환을 강조하는 예술품과 재생품을 만든다거나 나뭇잎 간판, 이끼로 만든 벽화, 친환경 소재의 예술조형물 등을 통해 환경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해 친환경 예술 프로젝트로 연계, 확장시키는 개념이다.‘아트따릉이’는 2021년 시민공모로 선정된 디자인으로 서울시 공공인프라를 활용해 각광받은 친환경 예술 프로젝트다. 또한 포스코 ‘1%나눔 아트스쿨’은 지역사회 아동들에게 4년째 친환경 테마의 예술체험교육과 창작활동 지원으로 환경의식과 실천의지를 심어주고, 예술활동 콘텐츠를 활용해 작지만 지역사회의 문제해결과 변화에 기여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러한 시도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공무원과 임직원들의 재능 나눔과 봉사, 기업체의 지속적인 메세나 활동의 선순환고리로 이어져 활동의 결과물이 결국 지역사회로의 환원과 유지발전을 도모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할 것이다.친환경은 단순히 줄이고 다시 쓰는 것도 좋지만, 환경자원을 도덕적, 윤리적인 개념을 포괄하여 제대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친환경 예술은 우리의 소중한 환경을 지키면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적극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2022-07-04

시간의 마디와 매듭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미끈유월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미끄러지듯이 흘러 곧 하반기로 접어든다. 한해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대선과 지선의 큰 너울을 지나고 나니 벌써 여름이고, 태양도 북회귀선을 지나 남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낮의 길이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시간은 영속적으로 흐르는 나그네(百代之過客)라 하지만, 천체의 운행과 자연만물의 현상에 근거해 연월일시와 춘하추동 따위의 구분과 마디를 정해 놓고 있다.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하고 균등한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예컨대 똑같은 시간이라도 어린아이에게는 더디게만 느껴지고 노인에게는 너무 빠르게만 여겨진다거나, 힘겨운 시간은 지루하고 느리게 가는 것만 같고 기쁘고 좋은 때는 금세 지나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이른바 ‘시간의 상대성’같은 거창한 이론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제각기 시간을 짧은 듯한데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반면, 많은 시간임에도 하릴없이 허비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활용의 방법이나 가꾸는 정도에 따른 산물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 사실이다.시간이나 어떤 일에 마디나 매듭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식물의 줄기에서 가지나 잎이 나는 부분을 일컫는 마디는, 생장이나 분화가 진행되는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의 중간중간마다 생겨난 단단한 마디가 있어서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와 매듭이 있는 삶 또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는 시간을 지탱해주고 삶을 확장시켜주는 시련이자 지혜의 응축이고, 매듭은 진일보를 위한 정리와 각오인 셈이다. 즉, 식물이나 사람은 마디와 매듭을 통해 튼실하게 진화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짧게는 하루, 한달의 계획이나 마감이 중요하고 길게는 분기나 반기, 일년의 목표나 실적을 산출하고 집계하는 것도 일상이나 사회생활에도 마디와 매듭이 두루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5년이나 10, 30년의 중장기적인 청사진이나 자취를 반추하고 정리하는 것은 미래의 포석을 위한 세월의 마디가 그만큼 중차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마디가 약해지면 늘어지거나 부러지기 쉽고, 하는 일들에 마무리가 없다면 성패와 득실을 알 수 없거나 곤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관과 중심을 잡고 끊고 맺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곤 한다.마디와 매듭은 멈춤이 아니라 더욱 강건해지고 유연해지기 위해 안으로 집중하여 자신의 밀도를 높여 나가는 힘이다. 학업이나 취업, 결혼 등 우리는 삶의 수많은 마디를 거치면서 매듭을 짓고 또 새로운 마디로 나아가게 된다. 제대로 마디가 갖춰지고 매듭 또한 잘돼야 삶과 일도 온전해지고 가치로워 질 것이다.

2022-06-27

잊혀지는 것들에 머무는 시선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새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펄펄 뛰는 자유롭고 활달한 나날이다. 보리는 누렇게 익어 타맥장(打麥場)이 펼쳐지고, 풀과 잎새가 더욱 짙어가는 하지초목심(夏至草木深)이다. 청보리가 익어 하지 무렵에 거둬들이니, 여름날에도 가을철의 추수처럼 보리나 감자를 수확하는 이맘 때를 맥추(麥秋)라 하기도 한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는 말도 있듯이,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나라도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해서 요즘도 풋감자를 자주 삶아 먹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향그런 꽃 저버려 온 산 푸른데/가랑비 오는 속에 뻐꾸기 울음 울다/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芳花謝了滿山靑 細雨970F970F布穀廳 春日傷悲如草長 何時得91E4刈心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중‘봄을 보내며(送春)’중자연현상이나 사람 사는 일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산길이나 뜨락은 사람이 다니거나 가꾸지 않으면 금세 풀이 자라 무성해지듯이 사람의 관계도 소통이나 만남이 없으면 어느새 소원해지고 서먹해지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또는 헤어져 가는 사람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날로 친숙해진다(去者日以疎 來者日以親)는 시구처럼, 절친했던 사람도 멀리 떠나면 점차 멀어지고 자주 만나거나 접하는 사람은 친하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 듯싶다.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시간이 지나고 듣거나 눈에 띄지 않게 되면 조금씩 잊혀지고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수없이 접하고 수집되는 정보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의 저장장치나 외장하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날이 갈수록 안 좋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망각작용에 의해 인간은 건강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사람들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반추함으로써 만족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울분과 참회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어릴 적의 추억이나 희미한 옛사진을 보며 회상에 젖어드는가 하면, 치 떨리는 고난의 기억을 접해서는 한사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하고 맹세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일까? 옛 것이나 지난 날들의 시비 속에는 얼마든지 지혜나 교훈으로 삼을 일들이 무수히 많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되새기는 것은 가치와 관점에서 비롯되는 안목일 것이다.6·25전쟁이 발발한지 72년째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무명용사의 넋이 원혼으로 떠돌아 초연이 쓸고 간 6월의 초목이 저리 짙푸른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머무는 따스한 시선으로 관심과 챙김, 정리와 기억의 손길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2022-06-20

나누고 베풀고 누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초목이 두터워지며 여름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초입이 더 경치가 좋다(綠陰芳草勝花時)는 걸 보이기라도 하듯이, 잎새는 생기발랄하게 짙어가며 한껏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다. 새들은 숲이나 하늘에서 맘껏 지저귀다가 날아오르고, 작물과 과수는 때맞춰 내리는 비에 싱싱하게 일렁이거나 도톰한 풋열매를 보듬으며 자양분을 채우고 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장의 기운이 가득하고 마음껏 즐기며 누리는 6월은 누리달이라고도 한다.거침없었던 코로나19의 기세가 서서히 꺾여가자 발목 잡던 제한과 규제도 적잖이 완화조치가 내려져 다행스럽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일상의 기쁨이던가.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어 새싹들의 운동회가 3년만에 다시 열리고 대학에서는 젊음과 열정의 축제가 부활되는가 하면, 다양한 음악적 장르가 융합된 창작뮤지컬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대면공연으로 열리는 등 지역의 문화와 축제, 체육 등의 행사가 크거나 작게 재개되는 추세다. 밝고 활기차게 문화생활을 즐기고 체육활동에 임하는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당연히 누려야 하고 생각나는 대로 즐겨야 할 일인데도, 느닷없이 가로막히고 애써 참아야 했으니 오죽이나 갑갑하고 애가 탔을까? 이러한 문화, 야외활동 못지않게 지역사회의 어려움과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나눔과 베풂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여 조금씩 계속적으로 이어왔지만, 6월 들어 봇물 터지듯이 활발하게 움직여지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하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름아닌 포스코가 지역사회를 위해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생협력과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다.포스코는 오늘부터 6월 25일까지 12일간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로 정하고, 포스코가 진출한 전 세계 53개국 포스코그룹의 기업시민 구성원인 임직원들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에 두루 참여하는 특별봉사주간을 운영한다. 2010년부터 실시해온 이와 같은 활동은 포스코가 50여년간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인연을 바탕으로 봉사와 나눔을 통해 상생과 화합의 장이 되도록 추진하는 것으로, 올해는 포스코의 발자취 재발견, 지역생태 보전, 지역사회 돌봄과 나눔 등의 테마로 진행된다. 포항의 경우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일대에 나무심기와 자매마을 시설물 보수, 해양 생태계 보전, 취약계층 나눔 등의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친환경 포스코의 이미지가 제고될 전망이다.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베풀 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소외의 아쉬움이 커진 현실에 포스코의 이 같은 일련의 활동은 가뭄 끝의 단비 마냥 지역사회의 그늘지고 미진한 부분을 다소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다. 마침 내일로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의 성공적인 궤도진입을 바라는 것처럼 누리달에 펼치는 포스코의 나눔활동도 지속적인 추진동력으로 지역과 사회를 밝히고 돌보는 모범적인 궤도에 진입하여 일상에서 마음껏 봉사활동을 즐기고 누리길 기대해본다.

2022-06-13

노래하는 그릇, 소리명상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내기를 마친 들녘의 저녁때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개구리 소리가 왕왕거린다. 어둠이 깔리면 간간이 소쩍새 소리가 별빛처럼 내려앉고, 심심찮게 부엉이 소리도 드문드문 밤을 수놓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수시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온갖 새소리가 새벽을 열어주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마음의 청량감을 더해주는가 하면, 시원한 파도소리는 바다처럼 늘 깨어 있으라 철썩이고, 맑게 흐르는 시냇물은 지침없이 부지런하라며 끊임없이 졸졸거린다.자연은 어쩌면 거대한 음악회장이다. 풀밭을 스쳐가며 잎새를 흔드는 바람은 부드러운 선율이 손끝에서 묻어나는 하프같고, 늦거나 빠르게 맴도는 듯 쉼없이 흐르는 물은 장엄하게 연주되는 첼로 같으며, 나는 듯 거침없이 떨어지며 수만 갈래로 부서지는 폭포수는 끝 모를 스토리가 담긴 피아노 소리같다. 거기에 플룻이나 대금 같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성진 새소리와, 한가롭거나 무단히 울부짖는 짐승들의 어설픈 외침은 악보 없는 관현악의 합주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자연의 소리는 그저 그렇게 시시각각 울리고 변주되며 곡조를 타지만, 전혀 싫거나 거북하지가 않다. 자연의 음률은 너무 시끄럽거나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우아하며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면 여지없이 듣게 되는 자동차 소리나 공사장의 소음, 공장의 기계음 등은 언짢거나 기피하고 싶지만, 많이 접하고 들을수록 자연음은 마음이 맑아지고 심신의 평온함을 가져다주기에 사람들은 자연을 즐겨 찾고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그런데 바쁜 현대생활 속에서 자연을 접하지 않고도 거의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공감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이른바 노래하는 그릇 ‘싱잉볼(Singing Bowl)’은 충분히 그것을 가능케한다. 히말라야에서 비롯된 명상 주발 ‘싱잉볼’은 독특한 소리와 깊은 울림으로 진동의 하모니를 느끼게 하여 몸과 마음의 안정과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명상 치유법의 일종이다. 인간의 몸이 70%가 물로 되어 있고, 소리는 물을 통해 5배 이상 빠르게 이동하기에, 몸 전체를 자극하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으로 울림의 파동과 진동의 파장으로 신체의 긴장이완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신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사운드 테라피 명상법이기도 하다.최근에 필자는 ‘부부 행복 명상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실제 싱잉볼을 체험하고 소리를 통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싱잉볼의 고요한 소리가 주는 아늑함과 미세한 진동이 온몸에 전해지는 가슴떨림을 느끼면서 오묘한 울림의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것 같았다. 우주의 근원적인 어떤 소리같기도 하고, 깊은 메와 골에서 그윽하게 퍼지는 산명(山鳴)같은 울림을 몸소 느끼는 시간은 그야말로 무아경(無我境)이었다고나 할까?소리는 진동이고 울림이며 물결 같은 에너지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연과 타인의 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여, 배려와 존중이 공명(共鳴)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06-06

지나침의 폐해(弊害)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강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하다. 강둑 언저리에 줄지어 핀 금계국이 노란 웃음으로 손 흔들어 반기고, 듬성듬성 키 자랑하듯 빨간 나팔처럼 흔들리는 접시꽃의 환호를 받으며 강변을 달리다 보면, 바람마저 등 뒤에서 불어와 정말 자전거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는 듯하다. 윤슬로 얼비치는 잔잔한 수면엔 오리떼가 한가로이 유영하고, 간간이 왜가리가 끼룩대며 날아오르는 풍경을 접하는 자전거 출퇴근길은 언제나 가뿐하고 넉넉하기만 하다.그렇게 8km 정도를 달리다가 나머지 2.3km 구간은 최소한 도보나 뜀박질로 사무실 위치까지 가야 하다 보니 거의 ‘철인 2종’이나 다름없는 출퇴근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달간 자전거를 타다가 걷거나 뛰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동료들은 필자더러 아예 형산강까지 헤엄쳐서 건너 ‘철인3종 출퇴근’을 하는게 어떻겠냐며 부러움반 시기 반(?)으로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그에 개의치 않고 나름의 보법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적당히 생활 속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그런데 정말 문제가 생겼다. 자전거 통행이 안되는 구간을 걷거나 뛰어서 가다가 하루는 몸의 컨디션이 마냥 좋은 듯해 퇴근길에 거의 단번에 주파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왼쪽 무릎부위가 통통 붓고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 것이다. 병원의 진찰은 좌슬부의 좌상, 염좌 증상으로 5주 이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함을 짐짓 깨달으며 치료와 안정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본의 아니게 부상상태로 근 2개월간 가료하면서 새삼 깨우친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다. 아침의 출근길부터 무리하지 않고 살살 걸어서 간다거나 퇴근길의 여유로움으로 무한질주(?)를 피했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넘치는 자신감과 과도한 움직임으로 몸이 여지없이 반응한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익히 알고 들었지만, 실천하기가 만만찮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사소한 일에서부터 공인이나 위정자의 언행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지나침의 폐단이 빚은 피해와 망신은 부지기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개인의 욕심이나 욕망에서 비롯되는 욕구의 과잉현상은 적당한 제어나 조절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사람 사는 세상에는 자연의 이치나 순리가 당연하면서도 철저하게 적용되게 마련이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올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가득 찰수록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持滿戒溢)는 구절도 있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가르침으로, 무엇이든지 지나치거나 가득 차서 넘치게 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40여년 전 필자의 서예 입문시절에 당(唐) 해서의 전범으로 즐겨 쓰던 구성궁예천명의 글귀가 마침 전국지방동시선거에 즈음해서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지나친 과욕으로 마음이 동요되어 정신마저 피곤하게 되는(心動神疲)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022-05-30

스침과 스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초록 수채화 같은 5월이 벌써 하순으로 접어들어 초목의 두터움 속에 어느새 초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경쾌한 새소리가 새벽을 깨워주고, 정갈한 햇살과 훈향의 바람이 푸른 오월을 구가하고 있으니,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도 좋을, 그야말로 네 가지의 아름다움(四美)이 꿈결처럼 찾아드는 때가 아닐 듯싶다. 이른바 좋은 시절(良辰)에 아름다운 경치(美景)를 감상하고 마음껏 즐기며(賞心), 즐거운 일(樂事)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 -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 전문야산과 인접한 우거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부터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하루가 시작되고, 밤하늘에 퍼지는 밤새 소리에 그 날을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새소리라 하더라도 참새처럼 그냥 짧고 가볍게 스쳐가는 지저귐이 있는가 하면, 뻐꾸기나 소쩍새처럼 구슬픈 듯 애틋하게 깊이 들리는 새들의 울음도 있다. 새소리의 음절이나 음색, 음역이 각기 다르고 사람의 청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마음의 울림 정도가 저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흔하게 듣는 새소리가 이럴진대, 사람사는 세상에는 오죽이나 복잡미묘한 소리와 별의별 울림들이 난무할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자기본위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거나 들으며 살다 보면 자신의 음색과 비슷하거나 편안하게 어울리는 음률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나 듣기를 좋아하는 곡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통하고 뜻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정을 나누며 공생가치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며 서로 사귄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결국 물이유취(物以類聚)나 초록동색(草綠同色)처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는 뜻이다.시절인연(時節因緣)처럼 인생행로에는 인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과 만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부지기수 나타나고 만나는 사물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돌차간 스쳐 지나는가 하면, 찰나의 마주침 속에서 부침하며 절로 스며드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체의 공명으로 울림이 커지듯이 사람은 공감으로 투합이 많아지게 된다. 소통과 공감으로 상호관계가 합치될 수 있음은 동조와 합심으로 한배를 탄다는 의미이다. 건성의 비위맞춤이 아닌 진솔한 이심전심으로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다.풍파가 그칠 날이 드문 세상살이는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합집산이 많은 곳이다. 위선자의 가식적인 행위나 위정자의 언행에는 무릇 새소리만큼의 무구함이나 명징한 울림이 있기라도 하는 걸까?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 됨을 명심하여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누렸으면 한다.

2022-05-23

바람에 취하고 소리에 젖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신록 속으로 흠뻑 젖어든다. 연둣빛 잎새와 초록빛 잎사귀의 어우러짐 속에 초목은 나날이 싱그럽고 두터워지고 있다. 녹엽의 나부낌과 연록의 여울 속에 여름날이 어느새 손짓하고 있고, 산천은 온통 푸르고 싱그러운 몸짓으로 청록의 서사시를 쓰는 듯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무엇 하나 거리낌 없이 계절의 여왕을 찬미하는 듯하니, 코로나19의 지겨움에서 다소 안도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연을 찾아 신록의 물결 속에 빠져드는 모양새다.필자 역시 지난 주말, 무심코 초록에 빨려들 듯 풀과 나무들이 반기는 호젓한 오솔길을 걸었다. 봄에는 붉은 꽃에 어리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빛조차 붉게 물드는 홍류동(紅流洞) 계곡 일대에 조성된 가야산소리길을 지인들과 함께 걸어본 것이다. 실로 오랜만의 반가운 나들이가 아닐 수 없었다. 하긴 코로나의 시달림에 만남 자체가 꺼려지고 위축과 결핍의 시기를 거의 빠져나갈 즈음의 부담 없는 걸음이었으니 오죽이나 가뿐했으랴. 모처럼의 만남과 더불어 어울림만으로도 충분히 푸근한 시간들이었다.홍류동계곡은 가야산국립공원에서 해인사입구까지 이르는 4km 계곡으로 신라말의 거유(巨儒) 고운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다. 이곳에는 옛길을 다듬고 복원해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자연과 역사, 경관을 탐방하고 체험할 수 있는 가야산소리길이 계곡을 넘나들며 완만하게 조성돼 있다. 소리길 주변에는 최치원 선생이 제자들과 시회(詩會)를 가졌다는 주요 문화자원인 농산정(籠山亭)을 비롯 칠성대, 낙화담 등의 명소가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연적 요소를 갖춘 생태학습장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으며, 탐방로 곳곳에는 고운 선생의 시판(詩版)과 담담한 여운을 주는 짧은 현대시 구절이 길바닥의 각석으로 깔려져 이색적으로 읽힌다. 소리길 초입부터 조금씩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소리가 한결 청신(淸新)함을 더해준다. 계곡이 깊어지니 송림 사이로 솔바람이 불어오고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번잡함에 찌든 마음을 금방이라도 씻겨줄 것만 같다. 그에 더하여 요란한 듯 경쾌한 산새들의 재잘거림과 폭포수의 물보라 소리 같은 잎새들의 손 흔드는 소리가 울창한 숲의 음률처럼 변주되니, 과연 자연과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걸어야 하는 가야산소리길로서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세속의 시끌벅적함을 물소리가 막아줄 정도로 고운 선생이 둔세시(遁世詩)에서 남긴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一入靑山更不還)’는 시구절이 계곡을 벗어나서도 한참 되뇌어진다.시원한 초록의 바람에 취하고 청아한 소리에 젖어들다 보니 심신의 곤고함이 자신도 모르게 말끔해진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온갖 소음과 불협화음이 난무할수록 산이나 계곡을 찾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계류를 마주하면 어떨까?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솔바람 소리 들으며 마음을 정결히 하듯이(聽松心自潔), 자연에 들면 눈이 더욱 맑아지고 귀가 한결 밝아지게 되리라. 푸른달 푸른 바람과 계곡의 울림이 빠듯해진 일상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듯하다.

2022-05-16

새 대통령의 출발과 기대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초록빛 향연이 눈부신 계절이다. 연두와 초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엔 희끗희끗 아카시아꽃이 수를 놓고, 오월의 고운 꿈으로 내려앉는 햇살은 정갈하기만 하다. 생명의 잔치가 시작되는 봄날이 깊어지자 초목은 무엇 하나 거리낌없이 초록의 진영으로 무성해지고 있다. 바람은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불어오고 때 맞추어 단비(好雨)가 자분자분 내리니, 들판의 농작물은 춤추듯이 반기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부푼 설렘과 새로운 시작의 봄날은 깐깐오월마냥 활기차고 꿋꿋하기만 하다.5월의 푸르름 속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오늘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를 슬로건으로 국민이 소망하며 염원하는 정책을 실천하고, 국민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윤석열정부가 국민의 기대와 축복 속에 새롭게 출범하는 것이다. 이른바 공정과 상식이 통하고 정의와 법치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루며 국민의 뜻을 겸손하게 받들어 나갈 새로운 대통령이 첫 발을 내딛는 의미있는 날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여망과 성원이 큰 날이기도 하다.신선한 새 출발은 언제나 설레고 벅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그렇고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이 그러하다. 하물며 한 나라의 수장으로 통솔과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심정은 오죽하랴.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긍심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질 것이다. 국민들의 축하와 신임을 받은 만큼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며 당면한 역할과 리더의 책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반이 대립되고 갈등이 난무하며 이해가 얽힌 작금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그렇기에 늘 지도자의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任重而道遠)고 하는지도 모른다.지도자의 길은 지고지난(至高至難)하면서도 지엄(至嚴)하다. 보수와 진보의 틈바귀에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고 세대와 성별을 배려하며 균형과 통합을 조율해야 한다. 국민을 살뜰히 섬기면서도 국정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시대정신과 가치를 담아 밝은 미래의 희망을 기약하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국정운영의 희망을 제시하지만, 임기말에는 대부분 국민들의 기대치와 요구치에 다소의 괴리가 있어 왔다. 그만큼 국정과 위정자에게는 복잡다단함이 많고 민심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그래도 새롭게 내딛는 정부에 또 다른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쨌거나 좀 더 나아지고 편안한 삶을 희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과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정부는 특히, 공정과 정의, 통합과 균등을 위한 당찬 의지로 이례적이고 차별화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듯해서 자못 기대가 크다. 이러한 신정부의 순항을 위해서는 늘 국민 앞에 겸손하고 소통을 강화하며 소명과 책임의식으로 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사목지신(徙木之信)의 자세로 굳건히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일 것이다.

2022-05-09

새로운 문화의 발돋움 ‘詩뜨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초록이 흐르고 연둣빛이 피어나는 5월은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르기에 푸른달이라 했던가. 봄의 꽃잔치 속에 조금씩 돋아나던 잎사귀가 오월 들어 본격적으로 피어나며 그야말로 초록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진초록 잎새 위에 연초록 잎새가 겹쳐서 피어나니, 마치 울음처럼 복받치는 연둣빛 그리움이 꿈결처럼 흐르는 듯하다. 온통 초록과 연두의 녹엽으로 펼쳐지는 오월은 맑고 푸르러 싱그럽기만 하다.푸르른 오월을 기약이라도 하듯이 4월의 잎새달 끝자락에 초록빛 문화예술의 향기가 5월의 푸르름마냥 진하게 피어났다. 코로나19의 진저리를 떨치기라도 하는 듯 도심 속 작은 정원에서 잔잔한 시낭송과 악기 연주, 시인과 독자와의 대화가 들꽃처럼 소담스레 피어났다. 초록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편과 일상 속의 다반사인 커피 마시는 얘기,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행복을 부르는 시낭송의 메아리가 수수한 듯 낭랑한 음성으로 다가오고, 간간이 악기의 선율과 시 같은 노래가 그윽하면서도 유장하게 울려 퍼졌다.이같은 일련의 행사는 4월의 마지막 날 포항시 효자동의 한 켠에서 포항시낭송회가 주관한 일곱 번째 시뜨락(詩가 흐르는 뜨락)의 주요 레퍼토리다. 서옥(書屋)의 좁다란 뒤뜰에서 간소하게 열렸지만, 시낭송과 음악의 문화적인 울림은 어느 공연 못지 않게 넓고 깊었다. 특히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커피시인’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을 초대하여 그의 스무 번째 시집인 ‘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에 실린 시를 골라 낭송하고, 서예가의 시서(詩書) 작품으로 미니 전시회까지 곁들여 다채로움을 더했다.이른바 감성시인으로 통하는 윤보영 시인은 신춘문예에 동시(童詩)로 등단해 스무 권의 시집을 내면서 간결하고 섬세한 감정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켜 초등, 중등학교 교과서에 시와 동요의 가사가 수록되는 등 관록있고 독자층이 두터운 시인이다.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 속에서 시를 끌어올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발상이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리며, 순수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메말라 가는 각박한 시대에 커피 한 잔처럼 따스하게 마음을 데워줄 수 있는 감성적인 시를 많이 썼다. 그에 따라 춘천, 파주, 문경 등지에 ‘윤보영 시가 있는 길’이 조성되기도 했고, ‘윤보영 동시 전국 어린이 낭송대회’ 개최와 ‘윤보영 캘리랜드연구소’ 등의 운영으로 시의 저변확대와 새로운 발전 모색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그러한 저명시인을 모시고 봄과 커피에 어우러진 시잔치를 벌였으니 문화도시 포항의 품격이 적지 않게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경향의 문인을 초대하여 시낭송회와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과 예술의 삶을 공감하고 문인과 독자가 소통하는 ‘시뜨락’은 문화의 새로운 발돋움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코로나의 터널에서도 벗어나는 때,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펼치는 시뜨락 같은 시낭송 토크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5-02

물꼬 트는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꽃피고 새가 울며 잎새들이 싱그럽다. 화창한 날씨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초목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듯 푸르고 싱싱하다. 3년째 발목 잡던 코로나19의 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봄을 즐기는 발걸음도 잦아들며 차츰 활기를 더해가는 것 같다. 아직은 여전히 마스크 너머의 세상이지만, 그간 멀어졌던 몸의 거리두기를 없애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며 아쉬움을 달래는 표정들이 사뭇 밝고 넉넉하기만 하다.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때, 마침내 코로나의 안개도 서서히 걷히는 듯하니 날씨마저 청량하고 산천은 한껏 푸르름으로 일렁이고 있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취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가공(可恐)의 코로나19도 홍역, 수두와 같은 2급 감염병으로 조정돼, 일종의 엔데믹(풍토병)으로 가는 대응체계 전환과 일상회복의 길이 열리고 있어서 안도와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에 따라 최근 한강변의 나들이객이 부쩍 늘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는 3년째 미뤄왔던 축제를 재개한다는 소식 등으로 확연히 달라지고 생기를 되찾아가는 모습들이 역력하다.그에 발맞춰 한동안 뜸해졌던 나눔과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반갑고 고무적이다. 곧 개방할 경로당이나 무료급식소를 대청소하고 방역작업을 실시하는가 하면, 야외시설에 대한 일제점검 보수와 묵은때 제거, 칙칙한 골목길 담벼락의 벽화 도색, 바닷가와 산책로 주변의 환경정화, 어르신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 촬영 등의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이 물꼬 트이듯이 동시다발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봉사활동은 포스코 직원과 가족들이 각 부서 자매마을이나 재능봉사단 등을 통해 펼치는 새봄맞이 사랑의 손길, 희망의 나눔활동이다.포스코는 이와 같은 봉사활동을 포함,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활용해 운영되는 1%나눔재단의 고유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정착시켜 2013년부터 다양한 나눔 사업을 적극적,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지역별 소외되거나 취약해진 계층에 대한 맞춤형 나눔, 지원사업은 물론, 아동·청소년, 다문화 가정, 홀몸어르신 등을 중심으로 1%나눔사업을 강화하고, 태풍, 화재 등 자연재난을 입은 지역사회에 임직원들의 봉사활동과 연계시켜 피해복구지원과 상생협력을 도모하는 사회공헌 및 기업시민 나눔활동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나눔활동은 많은 것들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큰 희망의 씨앗이 되고 한, 두발 내딛는 나눔의 발걸음이 큰 세상을 움직이는 기틀이 된다.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고, 함께 나누는 마음들이 자라고 있음은 따스하고 넉넉한 일이다. 배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온정의 나눔 속에 보람이 싹트고 기쁨과 감사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찬란한 햇볕도 나누어 가지고 싱그러운 꽃밭도 함께 뛰놀면 언제나 기쁨이 넘쳐 흐르지 않을까? 코로나로 가뜩이나 메마르고 성글어진 마음 밭에 나눔의 새순들이 신록처럼 움트고 잎새처럼 무성해지면 좋겠다. 나눔과 베풂으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어떨까?

20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