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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무를 심는 마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찬란한 봄이다. 길섶에 다소곳이 알거나 모르게 들꽃이 웃음짓고, 언덕이나 길가에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는 개화의 절정이다. 앞서거나 뒤서며 시시때때로 피어나는 꽃들은, 어쩌면 밤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쏟아져내려 꽃의 화신으로 새롭게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별을 보듯 밝아지는 걸까? 대지에 새 옷을 입히는 풀과 별빛같이 총총한 꽃과 가지마다 연둣빛 잎새가 손짓하며 바야흐로 봄날이 깊어 가고 있다.차분하게 또는 현란하게 꽃잔치를 벌이고 나면 산과 들은 온통 잎새 잔치로 이어진다. 꽃이 피기 전부터 이미 실눈처럼 연한 움을 틔우거나, 꽃이 지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앙증맞은 연초록 잎새들이 동시다발로 생명의 손을 내민다. 하루가 다르게 봉긋봉긋 돋아나며 잎차례를 벌이는 나무들은 힘찬 기지개라도 켜듯이 줄기와 가지 마디마디 연둣빛 촉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쪽저쪽 새순이 나무마다 가지마다 어김없이 돋아나기에 4월을 ‘잎새달’이라 하는 걸까?“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 박목월 시 ‘4월의 노래’ 중피어나는 꽃들과 잎새들이 부쩍 돋아나는 4월은 그야말로 빛나는 생명과 약동의 계절이다. 봄 기운이 충만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잎새달은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튼다’는 말처럼, 강인한 생장을 멈추지 않고 줄기와 이파리를 줄기차게 늘려 나간다. 그래서 나무심기 좋은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해 조림(造林)정책과 산림녹화사업을 강화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무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림육성과 보호를 실천했었기에 녹화사업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기록되기도 했었다.나무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한다. 꽃과 잎새를 드리워 향기와 신선함을 주고,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로 건강과 편안한 쉼을 누리게 해준다. 또한 양식(良識)의 보고(寶庫)인 책 종이를 만들어 주고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가 하면 팍팍한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주기도 한다. 그러한 나무에는 켜켜이 애환이 스며 있고 나이테마다 역사가 점철돼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식 같고 이웃 같으며 친구 같고 스승 같은 나무와 숲을 잘 가꾸고 보전해야 한다.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 보냈듯이 나무는 재산의 밑천이기도 했었다. 요즘도 관공서나 기업체에서 기념식수를 하는 것은 단순히 기념식의 요식행위가 아니라, 어쩌면 봉황을 기다리는 벽오동을 심은 뜻처럼 태평성대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염원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울진 산불로 송이 주산지의 소나무 70%가 소실됐다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예년 같은 송이 생산을 하기까지는 최소한 50년이 걸린다니,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녹화와 조림, 산림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자 식목일인 오늘, 저마다의 반려나무를 심으며 국토와 마음의 밭을 푸르게 일궈보자.

2022-04-04

상호작용의 이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 흠뻑 내린 봄비가 대지의 생명을 일제히 깨우고 있다. 어느새 양지 바른 비탈엔 여린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앙상하던 가지엔 움이 트는가 하면, 서둘러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傳令)들은 새뜻하게 웃음짓고 있다. 언 땅과 세찬 바람 속에서도 뿌리와 가지를 건사했기에 땅의 기운과 봄볕의 입김으로 당당히 땅을 헤치고 일어서며 온몸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노래하듯 흐르는 개울물의 졸졸거림을 추임새 삼아 연둣빛 수양버들이 긴 머리칼을 풀어헤치며 봄맞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봄은 색깔의 변화로부터 온다. 파릇한 새싹이며 연푸른 잎새, 울긋불긋 진달래와 복숭아꽃,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새하얀 목련과 눈송이 같은 벚꽃 등이 돋거나 피어나면서 천연색 봄의 향연이 시작된다. 삭막하고 스산한 무채색의 겨울 화폭에 군데군데 채색의 삽화가 그려지고 더해지면서 화사한 봄의 캔버스가 알록달록 채워지는 것이다. 봄에 피는 노란 꽃은 어쩌면 봄을 대표하는 컬러가 아닐 듯싶다. 샛노란 개나리와 유채꽃은 희망이나 쾌활, 기대 등의 꽃말을 차치하고라도 노오란 꽃물결을 보기만 해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지 않을까 싶다.노란 병아리 역시 봄날의 이미지를 더해준다. 노란 개나리꽃 울타리 옆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병아리떼는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을까? 3~5월경에 자연부화하는 병아리의 탄생과정은 신기하기만 하다. 껍질을 경계로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고 쪼면서 껍질을 깨고 나와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부리로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5550)’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하여, 줄탁동시(5550啄同時)는 생명의 오묘한 탄생 순간이라 할 수 있다.두 존재가 하나의 계기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즉 아무리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한 쪽의 힘이나 논리만으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까? 이렇듯이 어떠한 사물이나 상태의 대부분은 작용과 반작용처럼 동작과 반응으로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결과와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 사회생활 등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이처럼 긴요하고도 치밀한 상호작용의 원리와 동작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무엇이든 한 쪽의 주장이나 노력만으로 성사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의 흐름이고 이치다. 학업을 펼치거나 창작활동의 영역에서도 스승의 가르침이나 우연찮은 동기부여를 통해 문리(文理)가 트이고 번뜩이는 예술혼이 살아날 수도 있다. 행운도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곳엔 깃들지 않는 인간적 노력의 산물이듯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꾸준히 노력하며 쉼없이 추구하는 손길이 어떤 상황이나 시간과 합치되면 보다 긍정과 희망적인 시너지 효과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2022-03-21

긍정과 비판 사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려 열흘째 애태우던 울진산불이 진화돼 천만다행이다. 50년만의 최악인 겨울가뭄에 봄의 초입부터 잇따르던 크고 작은 산불로 많은 피해가 나고, 농어촌의 용수부족과 일부 섬마을의 식수부족 비상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건조한 겨울을 지나면서 빈발하는 전국 산불의 70%가 봄철에 집중되고, 1/3 이상이 사람의 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기후변화의 역습에 인재(人災)가 갈수록 더해지는 양상이랄까?자연의 흐름은 구름이 움직이다가 비를 내리고(雲行雨施), 만물이 두루 은택을 받아 큰 조화로운 기운을 보전하여 이롭고 곧게 된다(保合大和 乃利貞)는 것인데, 이러한 천지자연의 변화에 균형이 무너지고 조화가 어긋나게 되면 결국 운행과 순환에 차질을 빚게 된다. 그래서 간혹 기상이변이니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적인 재앙이 닥치는지도 모른다. 작은 우주라 하는 사람도 자연과 같은 원리로 구성되어 자연과 같이 변화하고 상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자연의 이치와 변화에 따르고 순응하는 것이 자신의 삶과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순조로움과 평정을 지켜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평안과 고요함을 의미하는 평정(平靜)은 곧,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의미하는 중용(中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용은 동양철학의 기본개념인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중(中)’이며,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용(庸)’이라 하여, 중용에서 말하는 이른바 ‘도덕론’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용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도(道)를 택하는 일종의 소신과 지혜라 할 수 있다.지난 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향배가 결정돼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0.73% 차이라는 역대 대선치고는 유례없이 근소한 차이의 당락이었지만, 어쨌든 결판이 났기에 희비의 쌍곡선이 제각기 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겸허하게 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하거나, 일각에서는 이념이나 진영, 지역이나 세대를 아우르는 민의를 존중하고 당면과제에 충실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거의 국민 절반이 찬반을 보인 것이기에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이러한 국면일수록 중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비등비등한 상황일수록 상대편의 주장이나 논점을 받아들여 여타의 쟁점을 중화 (中和)하고 융합하는 ‘협치의 모멘트’가 묘책이 될 것이다. 절반의 근사점에서는 갈등의 소지도 많고 공감의 여지도 많기에, 긍정과 비판의 사이에서 배려와 존중의 포용력으로 조율하고 합일점을 꾸준히 찾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 바탕에 어느 한쪽으로도 쏠림 없는 중용의 도를 견지하고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비를 내리는 것은 하늘의 몫이지만, 융화(融和)는 오직 사람에게 달려있다. 모든 일에 중용의 자세로 굳건히 중심을 잡아 두루두루 살피고 보듬어, 견제와 균형으로 평안하고 화애로운 날들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2022-03-14

치곡(致曲)의 마음으로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목이 순탄치만 않다. 날씨가 풀리기가 무섭게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하늘을 가리고, 기류의 변화로 돌풍과 강풍이 불어와 나무와 풀들을 동면에서 깨우고 있다. 유례없는 겨울가뭄에 바람마저 잦아드니, 크고 작은 산불의 복병이 화마로 돌변해 여지없이 봄의 발목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은 정점을 향해가는 듯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연일 역대 최다치를 보이며 애태움을 가중시키고, 후보 선출에서부터 선거유세까지 약 6개월간의 대선 레이스도 오늘로 마감되지만, 선거 막판 구도 재편에 초박빙 혼전이 안개보다 더한 깜깜이 판세로 요동치는 형세다.어쨌든 긴장과 불안의 동토에 요원할 것 같은 봄날이 가까운 발치에서 서성대고, 진영과 이념 대립의 난무 속에 치열한 혼조세를 보였던 혼돈의 대선정국도 내일이면 판가름 나게 된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풀과 나무는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쉼없는 물긷기로 봄날을 준비해왔듯이, 지역과 세대, 계층과 선전의 소용돌이 속에 대선후보들은 진정한 민의와 대의를 읽고 수렴하여 새봄 같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 기저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치곡(致曲)의 마음을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치(致)’는 미루어 지극히 하는 것이요 ‘곡(曲)’은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니, 치곡은 작은 일에도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중용 23장에 나오는 구절로, 매우 정성스럽다는 ‘곡진(曲盡)하다’와 비슷한 말이다. 즉, 치곡은 사소한 일도 무시하지 않고 정성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의 정성스러움(誠)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곧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곧 뚜렷해지며, 뚜렷해지면 곧 밝아지고, 밝아지면 곧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곧 변하게 되고, 변하면 곧 생육된다.(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며, 變則化니라)’-중용 23장그러니까 치곡(致曲)은 ‘誠→形→著→明→動→變→化’의 과정을 통한 변화는 전혀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밝아진다는 말과 변화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늘 긍지를 갖고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게 되면 겉모습만 변하는 아니라, 알맹이 자체가 완전히 변화하는 것으로, 오직 세상에서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唯天下至誠 爲能化)는 것이다.자연은 지성의 세계이다. 흙 한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공(空) 것이 아니라 모두 제 나름의 특성과 자질로 형체가 있고 성의를 다해 생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하듯이(至誠感天) 하늘 아래 극진한 정성(天下至誠)이야말로, 사람과 세상을 능히 움직이고 바꿀 수 있을 것이다.위정자이건 대다수의 민초이건 온 마음을 다해 순리와 이치에 따르고 온전함과 순수함을 위해 정성과 노력을 기울일 때, 진정한 화평과 감화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2022-03-07

한 몸 같은 포항과 포스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우려했던 산불 발생이 심상찮은 것 같다. 50년만의 최악인 겨울가뭄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산불로 예기치 못한 피해와 손실을 초래했다. 최근의 영덕 산불은 강풍과 혹한으로 축구장 560개 면적의 산림이 순식간에 소실되고 주민대피령까지 내려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대대적인 산불진화 노력으로 조기에 진화됐다. 불은 잘 이용하면 유용함을 주지만, 부주의나 실수로 발화가 되면 화마로 돌변해 위협적이고 가공스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삶의 기반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그런데 겨울철의 산불이나 건물 화재가 아닌 전혀 색다른(?) 불이 길거리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생협력을 도모하며 호혜발전을 유지해온 관계라면? 미상불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에서는 근 달포 전부터 난데없는 현수막의 물결이 거리 곳곳에 요원의 불길처럼 일고 있다. 그것도 지금의 포항과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한 국민기업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과 성토라니, 하루 아침에 돌변한 일도 아닌데 이 무슨 이변인지 씁쓸하기만 하다.이른바 포스코가 창립 54년 만에 지주사 체제 전환을 확정하면서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를 수도권에 설립한다는 소식에 포항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음을 대자보로 드러낸 것이다. 지주사 전환으로 지역경제 침체와 지방소멸 위기를 걱정하면서 포스코의 결정에 반대하고 철회를 종용하는 시민·관변단체 등의 현수막이 포항시 전역을 도배하듯이 앞다투어 설치되고, 대선후보들의 현수막도 길목마다 곳곳에 내걸리니, 가히 포항은 작금 ‘대자보 수난시대(?)’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어느 시대나 사회이건 사람사는 세상에는 늘 문제와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복잡다단함에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얽혀 유불리와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긴장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풀고 매듭짓는가에 있다. 그러한 해결이나 모색을 통해 사회와 국가는 진보의 걸음을 걷고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리라.포항시와 포스코의 유례없는 긴장 고조에 대다수의 시민과 직원들은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고민과 딜레마에 빠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표리부동(表裏不同)하는 것도, 맞불작전(?)으로 직접 나서기도 곤혹스러운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관건은 일부 억측되고 곡해된 일방적인 물살타기 같은 논리와 주장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통한 이해와 신뢰로 소모적인 논쟁과 배타적인 대립을 불식시켜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반 백년 이상 포항에 뿌리를 내린 포스코가 ‘움직이는 마법의 성’이 아닌 이상 절대 포항을 떠나서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우발적인 영덕 산불이지만 총력대응으로 조기진화한 것처럼, 무겁게 드리운 영일만의 전운(?)이 동반적 자세와 합리적인 해법으로 걷혀져 따스한 봄볕이 비치길 기대해본다. 포항과 포스코는 언제까지 한 몸이나 다름없다.

2022-02-21

手不釋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계절의 시계는 어김없이 가고 있다. 지척에서 기웃거릴 듯한 봄날은 서둘지 않고 기다림과 설레임 속에 차분한 걸음으로 오고 있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에 이른 봄맞이라도 하듯 모처럼 보경사 인근의 산을 찾았다. 인적이 드문 산언저리에는 메마른 낙엽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겨울가뭄이 심해선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거림이 눈 밟는 소리 마냥 정겹게 여겨졌다.봉긋하게 쌓인 낙엽더미를 지날 때마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밭을 걷듯 푹푹 밟아 보기도 하고, 한아름의 낙엽을 공중으로 날려 눈처럼 맞기도 하다가, 푹신한 낙엽더미에 그대로 드러누워 낙엽을 이불 삼는 재미가 쏠쏠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적한 산길에서 장난도 치고 익살을 부리며 한참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마루에 이르렀다. 탁 트인 시야에 송라와 월포지역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오고 그 뒤로 동해 바다가 푸른 실루엣으로 드리워졌다. 오후의 햇살 속에 올망졸망 발 아래로 펼쳐진 멋진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으나 아뿔싸, 산행 전부터 줄어들던 폰 배터리가 벌써 소진돼버려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등산 초입부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산을 오르며 갖가지 재미에 빠지다 보니 한동안 폰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다. 정상 주변을 돌아 하산하며 폰의 시달림(?)없는 산행 내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훨씬 많았음은 불문가지였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휴대폰 이상의 많은 의미를 갖게 된지 한참이나 됐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보는 것도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거의 온종일 손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휴대폰이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뜻의 수불석권(手不釋卷)이 요즘은 너나없이 ‘수불석폰’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스마트폰의 활용성과 의존도,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문명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시대의 총아 같은 스마트폰에도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온갖 소통이며 정보, 지식, 콘텐츠 등을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는 분명 우리의 일상에서 편리함과 유용함을 주는 도구지만, 여러 부작용과 위험성에 노출돼 경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일컫는 ‘스몸비 현상’을 스마트폰 사용자의 95%가 경험한다는 통계와 운전 중 스마트기기 사용율이 42%로 높아져 갈수록 사고발생과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듯이, 스마트폰 과의존이나 미디어 중독 예방을 위한 디지털기기 거리두기로 자기조절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휴대폰에 구애됨없이 5시간여 산행을 하는 동안 짧게나마 자연을 보는 여유와 눈을 새롭게 가진 것 같다. 스마트폰과 멀어질수록 자연과 가까워지고, 수불석권할수록 세상 속에서 정을 나누며 지혜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2022-02-14

봄빛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선다는 입춘은 예고편으로 아직은 봄날이 한참 있어야 온다. 설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코로나19 오미크론의 확진자가 하루가 다르게 폭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예상과 우려를 넘어 걷잡을 수 없는 역병의 딜레마에 속수무책으로 빨려드는 것 같다. 3년째 계속되는 지리멸렬한 바이러스의 변이에 몸서리만 쳐지는데, 계절과 세상의 봄날은 허공의 그물에 갇혀버린 듯 싸한 바람이 여전히 빈 가슴을 후비고 있다. 코로나에 빼앗긴 일상에도 과연 봄이 오기는 오는 걸까?그러나 얼음장 밑에서도 봄물은 흐르고 눈 덮인 산야에서도 복수초가 피어나듯이, 봄은 분명 더딘 걸음으로나마 조금씩 오고 있다. 차디찬 땅 속에서도 뿌리는 물긷기를 멈추지 않고 새움을 준비하는 여린 풀들은 단단해진 흙을 하나씩 밀어내고 있다. 비록 비닐하우스 작물이긴 하지만 미나리나 부추 등의 채소는 파릇하고 싱싱하게 싹을 키워 벌써부터 봄의 향과 입맛을 한껏 돋우고 있다. 무채색 겨울빛이라 하지만, 대지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동면 속에서도 봄빛 생동과 희망을 품으며 만물을 다독이고 채비하고 있다.“솔숲 다한 곳에 물소리 새롭고(松林盡處水聲新) 한적한 개울녘엔 미나리 싹 돋아나네(閒溪濕地芹芽發)” - 강성위 한시 ‘次送元二使安西’ 중봄은 색깔과 향기로 온다. 파릇한 새싹이며 향기로운 꽃에서 새봄의 빛깔이 반짝거리면서 눈과 코를 자극할 때 비로소 봄날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봄은 결코 쉽사리 호락호락하게 오지 않는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가 내리면서 두어 차례 봄샘추위가 지나가야 미상불 봄처녀의 발길이 살포시 닿게 되는 것이다. 새 풀 옷을 입고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찾아오는 봄처녀를 맞이하기 위해 봄의 전령인 달래와 냉이가 서둘러 여린 싹을 내밀고 양지 바른 개울 가에는 미나리 싹이 돋아나는 것이리라. 얼음이 녹고 쌓인 눈도 녹아 개울에 보태기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한결 새롭고 맑은 것이리라.이렇게 봄이 다가오면 자연은 저절로 풀리고 녹고 새롭게 돋아나며 더불어 흐르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결코 그렇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숱하고 흔하기만 하다. 끝없는 질시와 반목, 불신과 배신이 팽배하고, 갈등과 대립의 긴장 속에 배타와 독선이 판을 치는 형세이니, 어느 날에야 얼음장 같은 냉랭함이 녹고 칼날 같은 빗장이 풀릴 수 있을런지 요원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해묵은 감정이나 견해차도 그렇지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즈음해 그러한 기류가 더욱 가세되고 증폭되는 듯해 안쓰러움을 넘어 안절부절하기만 하다.미증유의 블랙홀 같은 코로나19의 난마에 구멍 난 가슴인데, 난무하는 가담항설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시선은 고뇌일까 고소(苦笑)일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역병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좀 더 편하고 나은 삶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봄빛 가득한 희망의 새싹이 풋풋하게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2022-02-07

가치 정점의 安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 탓일까? 춥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간간이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가 코로나19로 침울해진 가슴에 갑갑함을 가중하고 있으니, ‘삼한사미’가 괜한 푸념이 아닌 듯하다. 겨울의 불청객 같은 미세먼지의 가림막(?)으로 새해 들어 적잖은 화재와 사고로 무고한 종사자들의 생명을 앗아가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무덤덤한 일상 같지만 날씨의 변화에서부터 사회적인 현상이나 개인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행위와 움직임 속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과 사고로 이어지는 불행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고 감독과 제재를 가하는데도 고질적인 사고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데 있다.안전(安全)이란 단어의 안(安) 자는 ‘집 속에 여자(사람)가 고요히 앉아있는 모양’이라 하여 평안함이라 설명하고, 전(全) 자는 아무 데도 흠이 없는 구슬을 지칭하여 모두 가지런한 일을 나타낸다. 즉 안전이란, 일상이건 직장이건 사회생활이건 모두 집 안에 사람이 편안하게 있는 것처럼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여건이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나 행위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주위의 여건을 만드는 것도, 대상을 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안전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결국 거의 모든 사고는 사람이 야기하고 인적, 물적인 피해를 스스로 입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왜 자가당착(自家撞着)한 사고나 재해가 집요하게 꼬리를 무는 걸까? 필자의 관점에서는 시스템과 비용적인 측면이 가장 크다고 본다. 모든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안전해야 하며, 안전해진 개개인이 모이면 부분과 전체의 안전이 확보되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한 조직’과 ‘안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공기단축이니 비용절감 같은 요소가 대두되고 관행이나 불감증이 파고들면 철통 같은 안전체계에도 구멍이 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학문에 왕도란 없듯이 안전에도 절대 왕도가 없다. 철저하게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가고 의식과 시스템으로 하나하나씩 이뤄가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것은 더 까다롭고 꼼꼼하게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엄마 같은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듯이 안전 앞에서는 설마나 예외도, 우연이나 요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안전은 배워서 같이 알아야 하고 안전 시스템을 철저히 이행하며 최우선 가치로 공감하는 ‘안전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동료와 가족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지키는 것들이 나를 지켜 주듯이, 안전은 처방이 아닌 예방이 우리 가족 행복의 확실한 보증수표다.

2022-01-24

새로운 끌림, Space Walk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영일만 한 켠의 이색적인 조형물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포항 환호공원 등성이에 구름처럼 걸터앉은 이른바 ‘Space Walk’가 개장한지 8주만에 총 관람객이 15만명에 이르고 있으니, 과연 ‘핫플’이 아닐 수 없을 정도다. 코로나19가 집요하게 일상의 발목을 잡아도 곡선형 루프 조형물을 따라 올라 영일만을 조망하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가슴 결로 갑갑함과 침울함이 싹 가시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스페이스 워크는 새로운 매력과 끌림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환호해맞이공원은 한낱 야산에 불과하던 환호동의 바닷가 일대를 포스코의 지역협력사업으로 200억원을 기부받아 포항시가 2001년 8월에 준공하여 시민의 건강과 휴양, 정서생활 향상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거기에 2019년 4월 포스코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포항시와 ‘환호공원 명소화’ 업무협약으로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에 걸맞는 랜드마크 스페이스 워크를 포스코에서 설치, 포항시에 기증해 오픈한지 오늘로 꼭 두 달이 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는 제막하면서부터 세간에 회자돼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입소문을 타거나 언론, 방송에 앞다투어 보도되고, SNS 등에 일제히 소개되면서 일약 국민적인 이목과 호기심을 부추겼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새로운 체험형 조형물로, 333미터 길이의 계단통로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공간예술 속으로 빠져들고 마치 구름 위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 위에서 360도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고, 무한한 루프(고리)가 보여주는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배우며 사람과 기술, 예술로 이어지는 상상의 발걸음 속에 신기한 듯 놀라운 희열과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연오랑세오녀를 연상하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공중의 두 개의 큰 원과 공간, 시간, 사람을 이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속도와 균형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의 체험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인 스페이스 워크는, 포항시와 포스코가 하나되어 새로운 100년을 함께 할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생의 미래를 상징하는 빛과 철의 하모니라 할 수 있다.포항시가 올해 시무식을 바다 건너 포스코가 보이는 스페이스 워크에서 개최한 것도 해양관광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공동체 의식의 확고한 표명이 아닐까 싶다.전국 각지에서 스페이스 워크를 걸어 보려는 사람들로 환호공원엔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왕래부절의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체온 체크, 출입 개폐기 관리, 주변 환경정화 등을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핫플만큼 뜨겁기만 하다. 개장 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매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Space Walk 운영 도우미에 나선 포스코 봉사단과 영일만 서포터즈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타지인이 90% 이상인 방문자들에게 개장 초기의 친절하고 편안한 안내로 스페이스 워크가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2022-01-17

깨어 있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울수록 겨울바다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쉴 새 없이 뒤척거리며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해변의 모래톱으로 긴 여울 자락을 펼치며 나울거리는 파도는 육지의 안부를 묻는 잔잔한 속삭임 같고, 갯바위에 철썩거리며 흰 포말로 부서지는 너울은 간간이 응축된 힘을 발산시키는 물살의 함성같이 들린다. 혹한의 계절에도 바다는 온갖 생명체와 유기체를 온전하게 품으며 재우고 걸러내고 찰방이고 있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한적한 해변에 갈매기들의 겨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추위에 떠는듯 깃을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먹이라도 발견한 걸까? 시퍼런 물살이 일 때마다 조금씩 깃을 터는 갈매기들, 이윽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마치 군무라도 펼치는 듯 연이어 날갯짓하며 끼룩끼룩 퍼덕퍼덕 그들만의 어설픈 외침으로 일제히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비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갈매기 날갯짓 따라/파랑(波浪)으로 손짓하며/짙푸른 함성인 듯/근육으로 이는 물살/벅차게 용솟음치는 꿈/깨어 있는 자의 삶//자정(自淨)의 먹을 갈아/뭍의 배설물을 삭히며/트인 가슴으로/넘실대는 사유의 자락/수평선/가뭇한 언저리에/각인되는/올곧음’ -拙시조 ‘깨어 있는 바다’전문(1994)바다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고 가물가물 수평선이 자꾸만 마음을 꾀는 듯했다. 한없이 너른 품새로 모든 것을 받아주다가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격정의 몸부림은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양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바다는 언제나 쉼없이 찰랑이고 삭히고 밀어내면서 평상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듯했다. 중 2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본 동해바다의 설레임과 신기함에, 속내 깊은 바다의 진중함과 유장함이 투영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 인 것 같다.바다는 늘 깨어 있기에 파도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열려 있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고 포용하는 가슴을 열어 바르고 곧은 사유를 일깨우는 것이다. 생각의 물길이 파도로 출렁이고 근육 같은 물살이 일렁이며 꿈을 외치는 것이다. 넘실대는 물의 평정(平靜)이 올곧은 수평선으로 뜨기에 비늘 같은 햇살을 쪼며 갈매기들이 화답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채근하며, 파랑의 몸짓으로 꾸준히 뒤척이고 노력하고 진취해야 하는 것이리라.지구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깨우지만, 문명의 진화에 수반되는 온갖 해악과 해양 쓰레기는 갈수록 바다를 피폐하고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일깨움은 소소한 삶의 편린일 수 있지만, 인류와 미래의 생존과 지속에 직결되는 심대한 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낮없이 읊조리는 바다의 그침 없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며, 바다 살리기와 탄소중립 실천의 시대적 요구와 역할에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보자.

2022-01-10

새해 첫날의 풋기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 첫날, 찬바람과 미명의 어둠을 헤치며 집을 나섰다. 흑호(黑虎)해인 임인년 새해의 첫날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인근의 형산으로 향한 것이다. 초승달과 군데군데 새벽별이 빛나고 은륜(銀輪)의 안장을 호랑이등삼아 올라타 연일대교를 건너 국당리 쪽으로 페달을 밟으니, 역풍으로 체감온도는 낮았지만 기분은 약간 고조되는 듯했다. 형산 라이딩은 수 차례 즐긴 적이 있었는데, 새해 첫날의 해맞이로 벽두부터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여명으로 깨어나는 마을을 지나 완만하거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친 숨을 뿜으며 업힐(uphill)하여 단숨에 산마루까지 올랐다. 먼동이 트는 동녘하늘이 주황빛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고, 밋밋한 등성이와 영일만 바다, 포스코, 시가지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얼어붙은 형산강이 무채색 원근감의 화폭처럼 펼쳐졌다. 도시와 인접한 산에서 강과 바다를 볼 수 있고 도심과 촌락, 공단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형산(兄山)이 이색적인 해맞이 명소가 된지 십수년이 된 듯하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한 해를 의미있게 맞기 위해 형산갓바위 주변으로는 벌써 많은 해맞이객들이 운집하여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이윽고 붉은 광채가 짙어지면서 드디어 동해에서 갓 건져진 쇳물 같은 햇덩이가 산등성이 위로 서서히 떠올랐다. 임인년 새해의 햇살이 누리에 비치면서 2022년의 새날이 마침내 밝은 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주변의 사람들은 짧은 탄성을 내거나 두 손을 모아 소원과 희망을 빌면서 경건하게 기도하기도 하고, 일출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인증샷을 하며 새해 새출발을 새롭게 다지는 것 같았다. 필자는 ‘호랑이 눈처럼 매섭게 현실을 직시하고, 소의 걸음으로 우직하게 나아간다’는 뜻의 호시우보(虎視牛步) 서예 족자를 펼쳐 마음을 다잡기도 하면서 건강, 웃음, 행복 등의 글귀가 쓰여진 연하장을 주변 해맞이객들에게 나눠주며 새해 덕담을 건네기도 했었다.‘낮과 밤/어지러운 세상/긴 터널, 어둠 속/헤어나지 못할 세계/수 차례 왕복하다/너 자신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동트는 밝은 아침/아름다운 마음/좋은 생각으로/늘 깨어 너를 지켜라//안식할 수 있는 밤과/희망의 새 아침이 있어 좋다//아침의 생각은 맑고 깨끗하여/네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염정화 시 ‘새 아침’ 전문해마다 새해 첫날의 풋기운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며 보다 밝고 푸른 꿈을 그려본다.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다.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뉴노멀이 되고, 미상의 바이러스 출현이 일상을 경고하며 삶과 생존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치중으로 잠재적인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신종변이 바이러스가 또 어딘가에서 파생하여 불안과 긴장 속을 파고들지도 모를 형국이다.그래도 새해는 따스하고 희망적으로 맞을 일이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격랑이 예상되지만,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종식과 불편부당, 불평등이 해소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으로 모두가 웃음짓는 날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바람이 다운힐(downhill)하는 바이크처럼 방향과 속도 조절로 순조롭게 질주하고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2-01-03

더와 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시간의 쳇바퀴 속에 세월은 또 한 겹의 나이테를 감아가고 있다. 시간이야 늘 영구히 쉬지 않고 길을 가는 나그네(百代過客)처럼 가고 오는 것이지만,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누구나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주변과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된다. 과연 지난 한 해 동안 마음먹고 뜻한 바들을 얼마나 이루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점검과 정리를 하는, 대체로 회고와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의 장기화로 2021년은 파란과 질곡의 나날이었던 것 같다. 거침없는 코로나의 신음에 연초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으로 한 가닥의 희망과 안도를 주는 듯했으나, 교묘한 변이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몇 차례 요동치더니 세상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도탄에 빠져가는 듯하다. 거기에 잠재적인 기후변화로 가뭄과 화재, 태풍과 홍수에 휩싸이는가 하면, 내전과 분쟁, 갈등과 경제난민으로 세계는 슬픔과 참혹함이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아 공존의 지혜와 가치마저 위협받는 혼돈과 딜레마에 봉착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자연의 경고(?)같은 수많은 이변과 백신 약화가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해지는 연말이다.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착잡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다. 연초의 계획과 목표를 향해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그래서 어느 만큼 자신을 꾸준한 각도로 변모시키며 꿈의 현실화에 근접시켜 왔는지 가늠해 본다. 대부분이 달성보다는 미진함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많기에 몸과 마음을 추스려 부족함을 가다듬고 새로워진 각오로 새날에의 꿈을 다시 그려보는 것이 아닐까?‘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중사람이 살다 보면 더해서 좋아지는 일들이 많은가 하면 덜해서 좋아지는 일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기쁜 일이나 좋은 생각에 ‘더’를 보태면 더 즐거워지고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고 더 아름답게 더 웃음 지으며 작지만 더 소중하게, 적지만 더 감사하게 더 참고 더 긍정하고 더 노력하다 보면 분명 더 좋은 일들이 더 늘어나게 된다. 반면 꺼리는 일들에 ‘덜’을 붙이면 덜 아프고 덜 슬프고 덜 힘들고 덜 어렵고 덜 실망하고 덜 불안하고 덜 포기하고 덜 욕심내면 필경 고비가 줄어들고 위기가 덜해질 것이다.과연 자신은 한 해 동안 무엇을 더해왔고 어떤 것을 덜해 왔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좀 더 나누고 베풀며 더 겸손하고 더 양보를 했는지, 아니면 좀 덜 시기하고 비난하며 덜 차지하고 덜 교만했어야 했는지 곰곰이 파고들어 새날을 기약해볼 일이다. 세월은 무심치 않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연륜과 지혜를 준다.

2021-12-27

동지(冬至) 무렵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날씨가 제법 추워지니 비로소 겨울이 느껴진다. 세월의 바퀴는 세모로 치닫고 계절의 수레는 한겨울로 굴러간다. 잎새를 떨군 나무들은 당당한 외로움의 가지를 드러내는데, 휑한 들녁은 텅빈 충만으로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만고청산은 조곤조곤 동면의 생물들을 품으며 파리한 푸른빛으로 세한(歲寒)의 화폭을 채우는가 하면,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삶의 질곡에 성찰과 침잠의 몸짓으로 또 한 차례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세찬 칼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그야말로 북풍한설에 산하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야 겨울의 제격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겨울이라야 추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어린시절 겨울은 혹독했지만, 오히려 강추위 속의 겨울놀이로 나름 즐거웠다고나 할까? 매운 바람결에 나목의 신음 같은 전율이 오싹해져도 언덕 위에서 손등이 부르틀 정도로 연날리기를 하고, 얼어붙은 무논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깨어진 얼음장 밑으로 두 발이 빠져도 온종일 한데서 추위와 꼿꼿하게 맞서며 재미난 겨울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보낸 동심의 추억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는 겨울이 가슴 시리게 푸근하기만 하다.‘한겨울 시린 마음 겹겹으로 고이 접어/사랑방 아랫목에 꼬옥 재워두면/눈치는 겨울밤에도/서럽지 않으련만’ - 강성위 시조 ‘겨울밤’ 전문동지가 다가오는 겨울밤은 길기만해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출출해졌다. 그럴 때면 으레 또래들과 뜨뜻한 구들방에 둘러 앉아 시시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무나 고구마를 깎아서 먹고, 살얼음 낀 식혜를 단지에서 퍼먹으며 요기를 달랬다. 요즘처럼 인스턴트식품이 거의 없던 시절 식혜는 겨울 별미 중의 최고였다. 시원 달콤하고 걸쭉 매콤하며 아삭 새큼한 맛이 우러나는 안동식혜는 낮에 일하다가 새참으로 먹기도 했지만, 겨울밤에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 맛이야 말로 어떤 음식맛과도 견줄 바가 못됐다. 구멍 난 문종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오고 간혹 떡가루 같은 눈발이 소리없이 날리던 겨울밤, 아늑하고 쿰쿰한 사랑방에서의 먹거리 나눔은 달달하고 정겹기만 했었다.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는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양기(陽氣)가 살아나기 때문에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도 전하고 있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동지팥죽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릴 적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요즘은 나이 한살 더 먹기가 두렵기만 하니, 연치(年齒)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동지에 즈음하여 팥죽에 대한 의미와 주변을 살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예부터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경사나 재앙이 있을 때에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난마를 팥죽 한그릇으로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

2021-12-20

친환경을 꿈꾸는 미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철길숲길을 따라 서서히 페달을 밟으니, 넌지시 억새가 흰손을 흔들고 차마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단풍잎새는 팔랑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다.연말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다급함으로 일에 채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다운 시간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이 날만큼은 한동안 세워 둔 자전거를 점검하고 오랫만에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길을 달렸다.철길숲길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포항 철길숲은 ‘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답게 주변에는 수십종의 나무와 화초가 자리잡았고, 특색있는 각종 조형물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여러가지 테마길에 걸맞게 설치된 조형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여년간 철마가 달리던 선로가 사람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친환경 복합테마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한 길을 자전거로 누비며 다다른 곳은 송도해변에 위치한 포항수협 갤러리였다.포항수산업협동조합 문화갤러리에는 (사)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을 통한 환경 사랑운동과 계몽운동에 목적을 둔 순수미술단체인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창립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을 찾은 것은, 필자 나름대로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며 친환경 캠페인에 동참하여 환경의식을 고취해보고자 함이었다. 전시장에는 각종 생활용품이나 자동차, 공구, 도구, 용품 등을 재활용하거나 이색적으로 재해석한 미술품, 설치물 등이 다양하게 반겼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미지와 글귀, 식탁에 올려지는 산해진미의 이면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올가미 등의 그림이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특히 이색적인 것은 전시장 오른쪽 벽면을 가득 메운 ‘길바닥 껌 그림 친환경 캠페인 프로젝트’ 코너였다. 지난 10월 중순 환경미술협회 포항지회 회원들과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길바닥에 버려진 껌딱지에 그림을 그려 50여일간 전시 후 11월 말경 껌 그림을 제거, 회수하여 껌 그림으로 ‘그린 리더 배지’를 만들어 봉사활동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는 추억나눔 테마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길거리 행위예술처럼 길바닥에서 껌 그림 친환경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무심코 버려지는 양심과 이기적인 소비문화 행태에 경각심을 주고 환경사랑의 실천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왔다.인간과 환경은 물과 고기의 관계(水魚之交)이다. 자연스러움이 안정과 평온, 편안함을 가져온다. 일체의 생명과 생태변화의 장(場)인 자연을 가까이하는 친환경적인 요소와 시도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친환경 미술을 운동으로, 문화로 유지, 발전시켜 환경 친화적인 공존의 삶을 꿈꾸는 작지만 큰 변화의 걸음이 고무적으로 여겨졌다.

2021-12-13

세 번째 스무살, 살맛나는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수묵빛 세월의 흐름도 뉘엿뉘엿 세모(歲暮)의 긴 그림자를 드리워가고 있다. 요동치는 코로나의 난국에 살얼음판 걷듯이 불안하고 조바심을 태우며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데, 일월의 바퀴는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물레처럼 감는듯 굴러가고 있다. 뒤돌아보면 책장같이 빼곡한 한 해 하루하루 일상들이 모이고 쌓여 이제 한 권의 책처럼 편철해야 하는 마무리 시점이라고나 할까?대나 갈대, 나무 따위의 줄기에서 생기는 마디는 세월과 사람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무던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시간의 마디 같은 연륜을 쌓고 있고, 사람은 10대나 20대 등 나이대를 통칭해서 세대의 마디 같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것을 뜻하는 전환(轉換)은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용기와 도전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낯선 설레임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세번째 스무살’ 프로그램은 삶에 대한 인식전환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경북문화재단과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100% 국비 지원의 신중년 생애전환 특화사업이다. 2021년 경북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지원사업 ‘세번째 스무살’은 경북지역 신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발견하며 청년시절 꿈꾸었던 숨은 열정을 다시 일깨워 삶을 전환하고자 기획됐다. 즉, 공모사업 신청자가 하고싶은 사업과 테마를 직접 선정하고 강사 초빙, 운영, 평가, 정산 등 일련의 과정을 참여자들이 자체 기획, 진행, 결과물 정리 등 일반 문화예술교육과는 확연히 차별성이 있는 참여 발굴형 문화예술 진흥사업이다. 이러한 시범사업의 운영으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실현의 기반을 마련하고, 경북 내 23개 시·군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창의적 문화예술 체험활동의 장려를 권장하고 있다.필자는 포항지역에 거주하는 시낭송가와 동화구연가 등과 함께 ‘살 맛나는 멋’ 팀명으로 ‘나를 노래하고 세상을 노래한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갈수록 흥미와 재미가 쏠쏠하다. 투박하지만 나를 닮은 토기를 빚고 20대에 즐겨 외웠던 시를 자연 속에서 낭송하는가 하면, 아무런 생각없이 장작불 불멍을 때리며 심신을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별 바라보기와 나에게 편지쓰기 등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 몰입과 자각으로 내 마음을 풀며 새로운 나의 발견과 전환의 의미를 되새겨가고 있다. 그렇게 따로 또는 같이 먹고 살고 놀고 즐기면서 붓과 시낭송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노래할 수 있으니, 정말 살맛나는 멋이 아닐 수 없다.거의 한 달 내내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좀더 차분하게 넓혀가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쓰임에 한땀 한땀 생각과 마음을 담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생과 마주하며 세번째 스무살을 충만하고 충분하게 정성껏 살기로 다짐해본다.

2021-12-06

변화와 모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올해도 이젠 달랑 한 달만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조마조마 위태위태 살얼음판 걷듯이 지내온 날들이 어느새 이다지 빨리 지나고 말았는지, 바람결 같은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진다. 들녘 길섶의 노란 야국(野菊)이 늦가을의 자락을 애써 잡는 듯해도, 서걱이는 몸짓으로 잔추(殘秋)를 배웅한 억새는 희디흰 손을 자꾸만 흔들어대고 있다. 늦은 가을이지만 늦지 않고, 또한 무엇이 거리낌이 있겠는가(晩秋不晩 又何妨)? 늦으면 늦은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그냥저냥 굴러가고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시류가 아닐까 싶다.변화하는 일상들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나날이다. 낯설고 물설은 일들이나 환경도 시간이 흐르고 하나씩 접하다 보면 조금씩 적응이 되고 달가운 모습으로 다가와, 어쩌면 당연한 듯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마치 꽃향기나 어물전의 생선냄새를 맡고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다 보면 그 향이 이미 자신의 몸 속에 들어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환경과 여건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변화와 모색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천변만화하고 만상갱신(萬狀更新)하는 세상인데 어찌 변화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우리는 분명 많이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물을 사서 마시고 파란 하늘이 그리워지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는가 하면, 희대의 감염병으로 온 지구촌이 신음하며 불안과 암울의 안개에 갇힌 채 살아가는 듯하다. 환경은 이렇게 시시때때 변화하기 마련이고 세상만사가 녹록치 않음을 일깨워주기에,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이변에 적극적이고 긴요한 자구책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위협과 위험은 늘 있어왔고 모험과 위기극복은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늘 함께 이겨 나가야 한다.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일상회복을 위한 ‘With 코로나’를 시행한지 한 달, 예견된 일이었지만 일일 신규 확진자가 4천명을 넘어서고 사망자, 위중증자가 역대 최다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생활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방역 전환의 인식과 필요성, 생업 다중시설의 제한 완화, 방역 패스, 재택치료, 사회 경제적인 효과 등 위드 코로나로 가는 여정의 평형점을 찾기에는 아직도 숱한 난항이 있어 보인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했지만 두려움과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난국이다. 기본적이고 치밀한 방역의 토대 위에 높은 백신 접종률, 그리고 국민들의 자율적인 참여와 굳건한 의지가 순조로운 위드 코로나 일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위험을 범하고 모험을 시도하면서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쌓아온 인류에게는 코로나19가 크나 큰 시련이고 고비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변화와 주변의 개인 방역, 안전하고 철저한 방역지침을 지키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히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일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패턴을 정립해야 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2021-11-29

상생의 고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와 인접한 공원 등성이에 특이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멀리서 보면 야트막한 산 위의 무슨 롤러코스트 같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의 길 같은 철구조물이 지난 주 후반에 공개됐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는 이른바 ‘Space Walk’가 포항시 환호공원 산마루에 은빛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계획에 따라 3여년 전부터 다각적인 검토와 설계, 제작, 시공을 거쳐 지난 주에 완공하고 제막과 함께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라는 작품명은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클라우드(Cloud·구름)’라는 애칭처럼 예술 위, 구름 위에서 마치 공간과 우주를 걷는 듯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체험형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포스코의 기획으로 독일의 세계적인 부부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디자인하고 포스코건설이 제작, 설치하여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국내 최대 크기의 체험형 작품이다. 주 재료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강으로, 자연재해의 이슈인 태풍과 지진 대비를 위해 구조설계의 기준을 강화해서 조형물의 안정화와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한다.조형물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Space Walk 시민 Open Day’는 그야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축하비행 에어쇼를 비롯하여 노래와 연주, 댄스 등의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한 켠에서는 초청된 시민들에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담은 글귀를 붓글씨나 캘리그래피로 써서 나눠줬다. 또한 풍선아트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흥미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따끈한 붕어빵을 구워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한편, 행사장 입구와 주차장 등지에서는 교통안내와 인원통제를 하며 시민들의 첫 조형물투어가 안전한 가운데 흥미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배려했다.이러한 일련의 나눔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7개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특유의 재능과 기량을 다양하고 특색 있게 펼친 것이다. 포항의 색다른 랜드마크가 될 조형물을 기부하고 오픈하는 자리에 포스코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이벤트로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준 것 같아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위축 속에 이와 같은 조형물투어는 일상의 돌파구 같은 문화적인 단비(?)가 아닐까 싶다. 포항제철소는 현재 총 41개 재능봉사단을 운영하며 임직원들의 특기와 기술을 이용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맞춤형 재능봉사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 상생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스페이스 워크를 천천히 걸으며 철로 그려진 우아한 트랙의 곡선처럼 포스코의 제반 사회공헌활동이 지역사회 곳곳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착실하고 더불어 함께 걷는 기업시민의 발걸음이 지역과 회사를 연결하는 상생의 가교로 작용해 사회공익가치로 온기를 더해가고 생기를 불어넣는 나눔문화의 고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1-11-22

詩낭송으로 피어난 ‘포항 12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의 언저리에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났다. 툇마루 위에 달아 놓은 주홍빛 곶감이 대롱거리고, 기와 담장을 넘어선 담쟁이 넝쿨이 앙증맞게 반기는 작은 뜰에서 시와 가락의 향연이 소담스럽게 펼쳐졌다. 낭랑한 시낭송의 음색이 오후의 햇살 마냥 정갈하게 스며들고 구성진 민요와 시조창이 대금과 어우러져 흥겹게 흐르는가 하면, 피아노의 선율에 가곡이 더해지고 가녀린 듯 신명나는 춤사위까지 곁들여지니, 날아가던 새들도 감나무 가지에 다투어 내려앉고 기웃대던 오죽(烏竹) 잎새마저 서걱거리는 박수로 환호하는 듯했다.최근 포항시 남구 효자동의 한 서옥(書屋) 뒤뜰에서 열린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풍경이다. 시인을 초청해서 시낭송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주 테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처럼 가락을 곁들이거나 연주를 더해 다채로운 감칠맛을 우려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들과 함께 경향의 시인을 초대해서 시낭송회를 열고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낭송 토크이다. 공연장이나 실내가 아닌 뜨락에서 열리는 시낭송 마당이 신선하고, 문인과 독자가 시를 매개로 만나 교류하고 공감하며 문학과 시낭송 예술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문화사랑방인 셈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시뜨락’은 이번에 여섯번째를 맞아 기북 출신의 오낙율 시인을 초대해서 시 나눔행사를 벌였다. 마침 11월 1일 오낙율 시인의 네번째 시집 ‘포항 12景’(문학공간시선)이 출간되어 축하를 겸해 펼친 시낭송 마당이 뜻있고 정겹게 여겨졌다. 이 시집에는 오낙율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통한 자아성찰과 존재 해석을 진술하는 7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오시인은 사회 현실을 관조하고 그것을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 해석하고 진술하는 시를 쓰며 탄탄한 시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 시집은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포항의 명소 12경을 둘러보고 소박한 소감을 형상화한 것이 주목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포항 12경에 대한 단편적인 시가 더러 쓰여지기도 했었지만, 연작시 형태로 ‘포항 12景’을 쓰고 시집명으로까지 내기는 처음이라고 본다. 그만큼 오낙율 시인은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며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생활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참여한 15여 명의 시낭송가들은 저마다 낭송할 시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특유의 음색과 호흡을 가다듬어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춘하추동 사계의 테마로 낭송할 시들을 구분해서 3~4명씩 배경음이나 하모니카 멜로디에 맞춰 낭송한 시들은, 하늘하늘 나풀나풀거리며 만추의 뜨락에 결 고운 음률의 수를 놓는 듯했다.이렇게 포항 12경이 시로 읊어지고 시낭송으로 울려 퍼짐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더욱이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여 명실상부한 문화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항시에서, 이와 같이 작은 음악회를 곁들인 시낭송회와 문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시뜨락’ 행사는 문화로 너울지는 포항 만들기의 작지만 큰 발돋음이 아닐까? 문화는 삶이고 힘이며 지속발전가능한 미래이다.

202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