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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탄소중립과 바다 지키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는 늘 출렁이며 깨어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거칠게 철썪이고,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바다는 뭍을 향해 조근조근 속삭이듯이 찰랑대고 있다. 때로는 거센 너울로 짙푸른 근육을 보이며 포효하듯 흰 포말로 부서지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호수마냥 흰돛단배가 평온하게 떠가는 여울로 살랑거리기도 한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여 뭍에서 버려지는 온갖 쓰레기와 혼재물을 받아들이면서 삭힐 것은 삭히고 지울 것은 지우며 밀어낼 것은 밀어내고 있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강줄기와 하천을 받아들이기에 ‘바다’라고 하는지도 모른다.그러한 바다가 수십년 전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에 넘쳐나는 쓰레기 때문이다. 해양쓰레기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해양생물을 위협하고 있으며, 침적되거나 부유되는 해양쓰레기로 인해 해안경관 훼손,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전세계적으로 해양쓰레기 심각성은 커져서 한국 면적의 16배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섬이 북태평양 공해상에는 해류를 타고 몰려들고 있다 한다. 국내 해안도 최근 중국 등에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전국의 해변에 쌓이는가 하면, 제주 해안에서 플라스틱을 먹은 바다거북의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끊임없이 몰려드는 해양쓰레기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해양환경이 파괴되고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조차 위협 받아 지구환경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즉,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로 인해 바다가 신음하고, 바다숲과 온갖 생물들의 생태환경이 파괴되고 균형이 무너짐으로써 해양생물의 순환구조에 이상현상이 나타나 결국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후에 영향을 줘서 이상기온과 기후변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곧 육상생태계에서 식물이 광합성으로 흡수하는 그린카본(Green Carbon)이 중요하듯이, 고래나 산호초, 해중림처럼 해양생태계에 저장되는 블루카본(Blue Carbon)의 생성과도 연관성이 있어서 결국 쓰레기는 탄소중립에 직결되는 중요사안이라 할 수 있다.현대 인류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 중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고 합의하며 저탄소·탈탄소·탄소중립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즉,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최대한 줄이고, 배출된 탄소는 블루카본이나 그린카본이 흡수하거나 탄소 포집·이용·저장기술(CCUS)로 제거하여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탄소중립이라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탄소 배출 없는 제품유통과 탄소중립 모빌리티, 재생 에너지, 자원순환, 에너지 효율화 건물 등으로 지속가능한 자연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해양환경을 지키며 탄소중립의 작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포스코의 영일만해양지킴이봉사단의 활동은 나름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해양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비치코밍과 플로깅 등의 활동을 매월 펼치면서 캠페인과 의식함양 교육, 체험활동에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2023-11-15

詩가 있는 뱃나들마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들판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가 싶은데, 절기는 어느새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가을의 본색이 만산홍엽으로 몸살을 채 앓기도 전에 겨울의 입김은 벌써부터 조락(凋落)을 채근이라도 하듯이 돌풍을 내두르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이 오버랩 되는 미틈달은 잠시 쉬어가도 좋을 여유와 안식의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빠듯한 삶의 여정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옆도 뒤도 둘러보며 성찰과 되새김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망중한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곳은 문경시 호계면의 ‘시(詩)가 있는 뱃나들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항아리나 나무, 기와 등에 지역출신 시인의 작품을 써서 전시해놓은 이색적인 곳이다. 간결하고 명징한 감성의 시에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하나하나씩 시의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놓은 손길에서 문향과 인향이 결 고운 단풍 잎새로 피어나는 듯하다. 문경의 젖줄 영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촌에 큰 느티나무와 죽림정 정자가 운치를 더하면서 아기자기한 시화작품들로 감칠맛이 더해지는 그곳에서 지난 주말, ‘커피시인’ 윤보영 시인의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이 소소하고 오붓하게 열렸다.전국적인 규모의 이번 행사는 지난 4월, 뱃나들마을(우로2리)을 ‘윤보영 시(詩)가 있는 마을’로 조성하면서 약속했었던 농촌에서의 문화축제 개최 후속편으로 ‘윤보영 시인과 함께 하는 제1회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에 팬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마을의 예비 사회적기업인 ‘영강나루터’에서 제공한 따끈한 국밥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은 동이 날 정도로 구입하여 호응이 컸다.이어 팬클럽 회원과 주민들은 인천 무형문화재인 부평 두레놀이패의 흥겨운 풍물을 시작으로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시 낭송과 장기자랑, 윤 시인의 감성시쓰기 특강 등으로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한 켠에서는 ‘윤보영캘리랜드연구소’ 회원들과 지방의 서예가가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윤보영 시를 캘리그래피로 써주거나 가훈·명언 등을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며 시향과 묵향에 젖어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시인의 팬들은 강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뱃나들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즉흥시를 지으며 담소하는 등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전국에 8만여 명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의 팬클럽은 이같이 상생으로 함께하는 도농의 문화행사를 통해 도시인들에게는 문화적 만족감을 주고 농촌주민에게는 팬클럽회원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직거래해 농가소득에도 도움을 줘서 윈윈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명시가 시인의 고향마을을 찾아가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명소가 되고, 또한 시를 사랑하는 팬들이 명소를 찾아 음악과 시낭송 등의 테마로 작은 축제마당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번성해지는 새로운 지향점과 성장 가능성이 되리라고 본다.

2023-11-08

詩香으로 깊어 가는 가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소슬바람 결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오색영롱한 단풍이 물들어가듯이 10월엔 각종 축제나 문화행사, 기념식이나 체육대회가 도처에서 열리고 한 켠에선 풍년가를 부르거나 단풍놀이로 화색이 감도는 등 시월 한 달이 짧게만 여겨진다.등을 치며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서 새삼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엔 누구나 가슴 설레는 시인이고 시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테마와 이벤트로 풍성했던 시월을 뒤로 하고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시향(詩香)의 추임새로 11월이 열리고 있다.미틈달의 첫날은 우리나라 ‘시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하여 1987년부터 시의 날을 제정, 기념사업을 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나 은빛 억새의 몸짓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연상(聯想)작용이나 감성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시의 울림은 여전히 삶의 큰 위안과 감동을 줄 것이다. 그만큼 시적인 효능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시는 감정의 순수한 발로이듯이, 자연의 변화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고 짧으면서도 유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문자로만 머물지 않고, 현대 들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출되고 변용되고 있음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시의 구절에 음색을 입혀 말과 목소리로 표현하면 시낭송이 되고, 시의 행간에 곡조를 붙이면 시노래가 되며, 몸동작이나 대화를 곁들여 연기하듯이 시의 퍼포먼스를 펼치면 시극(詩劇)이 되듯이 시의 확장성은 실로 다양하고 무진하다 할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 시낭송과 시극 등이 다양하게 열리면서 ‘시의 날’을 마중한 것 같아 반갑고 넉넉하기만 하다. (사)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는 예천에서 열린 제8회 시낭송 올림피아드에서 회원들의 자작시 또는 경북문협 회원의 발표시로 시낭송의 격조와 향기를 더했고, 포항시낭송회는 10월 중순 울릉도 초청공연에 이어 지난 주말 구룡포읍 아라광장에서 열린 ‘경상북도 해녀 한마당 축제’에서 해녀스토리 시극을 성황리에 펼쳐 갈채를 받았다. 또한 포항문인협회는 시민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낭독함으로써 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포항 문학의 숲을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시는 시인이 쓰지만 쓰고 나면 결국 독자의 것이며, 시낭송이나 시극은 개개인의 독특한 목소리나 몸짓이 말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언어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시의 날을 맞아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며 시처럼 살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10-31

울릉해녀문화제의 가치와 전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울릉도의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천혜의 섬 울릉도 도동항에 간간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도동여객선터미널 옥상 공원에서 시와 음악이 흐르고 해녀들의 삶과 애환이 물결처럼 여울지는 새로운 문화가 피어났다. 바다를 지키고 가꾸며 바다와 함께 적극적인 삶을 살아온 울릉도 독도 해녀해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는 해녀랍니다’ 주제의 해녀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 ‘한 점 섬에 살거나’의 공모사업으로 울릉도에 거주하는 해녀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동호인·관계기관 등의 참여와 협조로 이뤄졌다.햇살 좋고 바람 선선한 휴일 늦은 오후, 울릉도 주민들과 관광객 등이 설렘과 기대로 삼삼오오 공원으로 모여들고 갈매기들도 궁금한지 공중을 선회하며 문화제를 반기는 듯했다. 한 켠에 마련된 시식코너에는 해녀들이 직접 잡거나 채취한 문어·전복·소라 등을 맛볼 수 있었고, (사)독도재단에서는 설문지에 따라 독도 배지 등의 기념품을 나눠주는 등 작은 축제마냥 약간 들뜨는 분위기였다.그런 가운데 울릉도 해녀들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해녀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 해녀 이야기, 경북문협 울릉지부장의 해녀에게 바치는 자작시 낭독과 포항시낭송회 3명의 회원이 해녀, 해남 차림으로 3편의 시를 시극(詩劇)으로 펼쳐서 의미를 더했다. 또한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현대무용팀 ‘팀오르다’의 해녀 물질을 주제로 한 무용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으며, ‘유네스코 해녀의 가치’ 강연에서는 울릉도 해녀의 삶과 활동, 역사와 의의를 이야기해 해녀들을 이해하고 가치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축하공연으로 울릉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인 팀포유색소폰, 울릉아리랑, 독도팝스오케스트라, 통기타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 출연하여 행사의 흥을 더하며 인기를 끌었다.경북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번 울릉도·독도 해녀 문화제를 통해 해녀의 삶이 재조명되고, 해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스토리와 울릉도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울릉도에는 9명의 해녀가 살고 있는데 모두 제주 출신이다. 이들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해녀문화와 함께 독도주민, 독도의용수비대와 더불어 독도의 바다를 일구고 지켜온 산증인이다. 제주출향해녀들의 물질이 울릉도 독도를 이어주고 일궈왔지만, 고단하고 힘겨운 해녀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거론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지난 4월 ‘울릉도독도해녀해남보전회’가 결성되고 해양아카데미가 열리는 등 해녀에 대한 인식변화와 처우개선의 움직임이 보여 다행스럽다. 최근에 경북해녀협회가 창립된 것도 향후 해녀문화 조성과 네트워크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바다의 밥상을 차려주는 해녀들은 바다의 자원이다. 울릉해녀문화제가 제주도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제주해녀축제’와 연계해 세계 유일의 여성공동체 문화인 해녀어업문화의 전승과 보전을 위한 교류와 협력, 육성과 지원 등으로 해녀문화를 선도하고 경북 해녀활동의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2023-10-24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행사와 축제가 즐비하다. 전국각지에 다채로운 문화·체육행사가 늘어나고, 지역특색을 살린 테마축제들이 연이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하루하루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이다. 햇살 좋고 적당한 기온에 바람마저 부드러워 나들이나 야외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데,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볼거리, 즐길거리를 입맛대로 누릴 수 있으니 한결 가을날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에 참여하고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축제마당에 빠져들어 어깨춤이 덩실덩실 춰질지도 모른다.지난 주 목요일부터 4일간 포항 일원에서 열린 ‘제15회 일월문화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개막행사와 주제공연, 기획전시, 체험 및 연계 프로그램 등으로 포항문화예술회관, 해도도시숲,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등지에서 코로나19의 시름과 위축을 완전히 떨치며 4년만에 제대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린 것이다. 이러한 일월문화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오랑(해), 세오녀(달) 부부의 설화에서 비롯된 고유의 일월사상을 기리며 전통문화 유산을 보존, 계승시키는 종합문화예술축제로 격년마다 개최돼 왔다.특히 일월문화제의 개막을 알리며 전야행사로 열리는 연오랑·세오녀 부부 선발대회는, 포항시에 거주하는 선남선녀가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 등 우리 고유의 한복을 입고 맵시를 뽐내며 부부 금슬과 장기자랑, 발표력, 관객 응원 등을 심사해서 뽑게 된다. 올해는 30~70대까지 각 읍면동 대표로 16쌍이 출전해 저마다 멋스런 행진과 독특한 자랑, 재치있는 표현 등으로 관객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며 눈길을 끌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이렇게 선발되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지역 고유의 일월신제 헌관으로 봉행, 포항시 공식행사 참여 및 홍보대사·해외 문화사절 등의 역할로 포항을 빛내고 알리게 되며, 빛과 개척의 포항 정신을 대변하기 위해 1983년부터 이어져 올해 22회째를 맞았다.‘연연이 이어 온 해와 달의 드리움이/오늘날 일월문화의 꽃으로 피어나/낭랑한 동해의 파도로 노래하고 있구나//세세년년 사무치는 연오랑이여! 세오녀여!/오랜 세월 일월의 땅 가꾸고 지켜와/여명을 밝혀주는 꿈, 여기는 대대손손 빛나는 포항이어라!’-拙 즉흥 육행시 ‘연오랑 세오녀’ 전문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의 빼어난 외모와 맵시, 덕목을 갖춘 사람은 주목을 받아왔고 회자되고 있다. 특히 현대 들어 전국춘향선발대회나 지역의 특산물 홍보를 담당하는 영양고추아가씨 등의 미인대회가 있다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모범부부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 선발대회가 전국적으로 유일하다.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 인물 재현의 선발이 아니라 포항의 정체성 발현과 고귀한 향토문화 유산의 현대적인 계승, 발전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효행과 봉사, 맵시와 덕행으로 포항시민들의 귀감이 되는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이 포항의 저력과 경쟁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2023-10-17

경북예술의 미래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높아지는 하늘과 서늘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푸르던 들판은 차츰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산자락의 잎새는 가볍게 흔들리며 엷게 물들어가고 있다. 청록을 자랑하던 수풀은 기온의 변화에 하나씩 잎사귀를 떨구거나 변색으로 수런대며 서서히 산하를 물들일 채비다. 이른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의 봄’이라는 가을은,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이슬이 번갈아 초목을 쓰다듬고 어우르며 두번째의 봄을 부르고 있다.그렇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가슴도 설렘과 그리움으로 물들기 마련이다. 화사한 단풍에 젖어 구르몽의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낙엽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가 하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파란 하늘과 오색영롱한 풍엽은 감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연의 변주곡이 온갖 상념(想念)의 촉수를 자극하는 10월은, 다채로운 축제와 전시·공연이 많고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대표적인 것이 10월 첫 주부터 열린 경북예술제가 아닐까 싶다. 경북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을 통해 도민의 정서순화에 이바지하며 새로운 문화 경북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제45회 경북예술제’ 개막식이 지난 6일 경산에서 열렸다.민족의 스승이신 원효대사, 설총선생, 일연선사를 기리는 삼성현(三聖賢)역사문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경북도 행정부지사, 경산시장 등의 내빈과 경북예술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억의 노래가락과 신명난 타북 마당, 경북예술상 시상, 축하공연 등이 진행되는 동안 노을 마저 곱게 피어나 시종 흥겹고 아름다운 예술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개막식을 시작으로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 산하의 8개 단체에서는 경산시 및 기타 지역에서 부문별 특색있고 독창적인 전시, 공연 등 한마당 축제의 장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문인협회에서는 경북예술센터에서 ‘2023 경북문인 글과 그림전’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미술협회에서는 아카이브 영상으로 온라인 작품전을 열었는가 하면, 사진과 음악을 비롯해 팝스 연주회, 연극, 국악한마당·무용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전문성을 살린 작품과 공연을 준비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도민들에게 풍부한 볼거리,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북예술의 정체성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융성의 기틀을 다지는데 일조했다.경북예술인들의 땀과 열정으로 펼치는 경북예술제는 경상북도 최대의 문화축제이다. 장르별, 지역별 작가들의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창조력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창작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고유의 풍성한 문화유산과 잠재력을 발굴, 접목하여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대한민국 예술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정치와 경제, 인구 등의 중앙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지만, 문화와 예술의 기반은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린 특성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로 소통하고 예술로 교감하는 일상이 윤택하고 아름답듯이,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이 곧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023-10-11

시월 속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석연휴에 임시휴무까지 더해져 장장 6일간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가을맞이가 한결 넉넉해진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고유한 민속명절인 추석과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까지 연휴가 이어져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많아지고 만남과 어울림의 모습들이 분방하게 보인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이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에게는 황금연휴를 보장받지 못하는 ‘남 얘기’로 휴식권의 사각지대가 발생돼 아쉽고 마음 편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시월이 열리면서 정갈한 햇살 아래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초목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는 본격적인 가을날로 접어들고 있다. 억새는 긴 목을 뽑아 은빛 환호를 하고, 잎새는 바람결에 차츰 황록색을 띠거나 홍조의 빛깔로 손 흔들며 가을을 반기고 있다. 쾌청한 날씨에 기온마저 적당하니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조요(照耀)하고 푸근하기만 하다. 긴 연휴에 한동안 뜸했던 곳을 찾아 적조했던 사람들과의 해후와 소통은 반가움을 넘어 인연의 소중함을 보듬는 각별함이 아닐까 싶다.‘꽃 피고 지는/아름다운 세상에서/살아있는 모든 날이/기쁘고 감사하지만//10월의 하루 하루는/더없이 행복한 시간,/차츰 단풍 물드는/나뭇잎들을 바라보며//내 작은 가슴도/고운빛으로 물들어 가고/높푸른 하늘 우러러/마음은 겸손이 평안하다.//거저 받은 목숨이니/아무런 자랑도 교만도 없이/인생길 소풍가듯/즐거이 걸어가다가//이 몸 또한/한 잎 낙엽 되면/그 뿐인 걸’ - 정연복 시 ‘10월의 노래’ 전문조금은 느긋해진 마음으로 바람따라 길을 나섰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들길을 지나 발길 닿는대로 찾아가서 반가운 분들을 두루 만났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사람 만나는 것 또한 좀체 물리지 않은 일이라 해도, 늘 무엇인가에 쫓기 듯 다급하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주변의 친인척이나 친구, 지인 등과의 연락이나 안부를 제대로 못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가 돼버린 듯하다. 하지만, 너무 뜸하거나 소원해지면 수풀 우거진 오솔길 마냥 교감의 길목이 막히거나 끊어질 수도 있기에 적당한 소통과 왕래가 있어야 마음의 다리가 줄곧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모처럼 만나고 대면하는 모든 분들은 정겨움과 오붓함이 한결 같았다. 추석인사를 겸해서 이런저런 근황과 정담을 나누고 담소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서먹함을 털고 살가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했다. 더욱이 재회의 증표(?)마냥 근사한 팔찌를 선물로 주거나 향기로운 차에 다식(茶食)을 내주고 손수 농사 지은 고구마를 선뜻 건네주는 인정 어린 마음은 두고두고 미덥고 고맙기만 했다.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은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近者說遠者來)이다. 가까울수록 신의를 지키고 배려와 아량으로 챙겨주게 되면, 교분은 더욱 두터워지고 정의(情誼)는 시월의 단풍마냥 색조 곱게 물들 것이다. 세상만사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2023-10-04

세계서예잔치, 눈부신 筆墨의 비상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시시각각 움직이며 온갖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은 청청한 산과 들의 언저리로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의 캔버스에 구름은 유유히 흘러가며 시나 소설을 쓰는 듯 알듯 말듯한 몸짓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사연을 전하고 있다.그러다가 전북 진안군에 이르러 마이산 주변을 지날 때는 말(馬)의 귀(耳)같은 암마이봉·숫마이봉을 흡사히 닮은 두 개의 구름 봉우리 형상으로 변신하기도 하니, 과연 빛과 바람으로 빚은 자연의 수묵화가 따로 없을 정도다.어쩌면 하늘에서 펼쳐지는 바람의 붓질 같은 구름의 천변만화는, 화선지 위에서 각양각색으로 피어나는 붓과 먹의 무진한 변화의 조화로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추분 무렵 차츰 물들고 변해가는 초목과 열매는 정갈한 가을볕을 받아 저마다의 빛과 색을 더해 익어 가듯이, 날을 거듭할수록 붓놀림과 서예 궁구의 내공이 깊어지는 손길은 결 고운 단풍잎 마냥 심오하고 유장한 필묵의 원숙함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문자나 예술이 자연에서 나왔듯이, 붓글씨 역시 자연을 닮아감은 당연한 교효작용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게 구름의 암시(?)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막식이 열리는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형 애드벌룬이 빨간 색상의 현수막을 드리우며 반기고, 분수 옆 국제관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은 행사의 규모와 품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지난 1997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4회째 맞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서예를 매개로 전세계 서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와 화합의 마당과 주제에 걸맞는 작품 전시·국제학술대회·부대행사·전북 14개 시군 ‘2023 서예, 전북의 산하를 날다’ 주제의 연계전시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다채롭게 펼치는 세계서예잔치다.40여 개국 3천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생동’(Vividness)으로, 출품작가들의 개성과 독창성, 창의력, 미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세계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예술적 쾌감과 감동의 희열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 특히, 10미터 이상 높이의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운 강건한 필력의 다채로운 대형작품은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 천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천 편의 시를 동일한 크기(10x10cm)의 전주한지에 써서 모자이크처럼 만든 ‘천인천시’ 10곡병풍은, 세밀함을 살리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로움 등으로 실로 서예작품의 표현방식과 영역, 장법(章法)과 구도가 무궁무진함을 일깨워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외국인 작가와 참여국가의 대사가 쓴 영어, 아랍어 등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진 작품은 다양성의 조화를 거침없이 드러냈다.서예와 예술은 이렇듯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소통하며 화합의 마당으로 모여들게 한다. 서예의 대중화와 실용성을 더 높이는 다양한 기획과 참여로 뉴노멀 시대에 서예문화의 선도적인 역할과 지속가능한 빌전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3-09-26

가을의 어귀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루가 다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백로(白露) 지난 한낮의 가을볕은 노염의 여세를 몰아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지만, 살랑살랑 실바람은 산과 들판을 쓰다듬으며 선들선들 가볍게 지나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가을, 무엇을 해도 좋을 시기라서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산책로 등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삼삼오오 다니면서 얘기꽃을 피우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걸어가는 사람, 운동삼아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가는 사람 등을 둘레길이나 해변, 강변, 공원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마치 가을 마중이라도 하듯이 간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산보하는 모습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특히 휴일의 아침산책이나 산행 등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을 접하며 일상에 절여진 심신을 이완할 수 있기에 필자도 간혹 즐기는 편이다. 쳇바퀴 돌 듯하는 빠듯한 일상의 쉼표같은 휴식이나 멍때리기, 걷기 등은 어쩌면 숨가쁘게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안 삼는 ‘자락(自樂)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지난 주에 이어 이번 휴일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포도(鋪道)를 조금 걷다가 야트막한 산길의 입새부터는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즐겨한다는 맨발 걷기를 지척의 동네 뒷산에서도 할 수 있다니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진흙과 백토, 풀잎, 낙엽 등으로 이어지는 숲길 초반의 촉감은 부드럽고 매끈하고 약간 간지럽게 다가왔다. 거침없이 내딛는 빠른 발길보다는 땅바닥을 살피며 보폭을 작게 하고 조심스럽게 걷는 느린 발걸음으로 차츰 숲에 접어들면, 숲과 나만의 은밀한(?) 대화와 교감이 시작된다.해뜨기 전 숲의 고요를 깨는 것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이다. 간간이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오지만, 일정한 음률과 리듬으로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이른 아침부터 귀를 맑게 해준다. 조금 지나니 댓잎을 가볍게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한여름의 햇살 받아 한껏 푸르던 잎새들이 녹음에 지쳐서 물들 채비를 하는 듯 황록색과 담록으로 어우러지니 눈 호강이 따로 없는 듯하다. 거기에 참나무가 즐비한 숲길 여기저기에 떨어진 도토리가 앙증스럽게 반기니 숲은 언제나 이처럼 같은 자리에서 다른 듯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늘 무엇인가에 쫓겨 안절부절 허둥대는 자신은 언제쯤 숲의 여유와 안식을 배울 수 있을런지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는 돌부리가 채근하는 듯했다.그렇게 2시간여 산길을 맨발로 오가다 보니 서늘함 속에서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길을 나서면 이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지듯이, 사람 사이에도 가끔씩 왕래와 소통이 있어야 잡풀 무성한 산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의 교분이나 정의(情誼)도 결국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2023-09-12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도 맑고 높푸르러지니 바람의 결조차 달라져 한결 선선하다. 무성하게 자라던 초목은 성장을 멈추고 들판의 곡식은 정갈한 햇살을 받아 여물어간다. 아침 저녁의 선들선들한 기온에 한낮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가는 초가을, 알곡이 여물고 과실이 익어가는 9월은 열매달이라고도 한다. 어정거리던 칠월을 지나 동동거리던 팔월의 가슴을 선선한 바람 결에 쓸어 내리는 가을의 어귀로 접어들고 있다.‘지구의 손가락이 궁서체로/공중에 ‘가을’ 한 글자 적으면//무성해 소란스럽던 무더위는/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고//그간 쪼그라들었던 가을바람은/고추잠자리 날개 펼치듯/오금을 쭉 펴고 일어나지//풋풋한 가을이 자박자박 걸어오지’·남정림 시 ‘초가을’전문가을을 찬미라도 하듯이 도처마다 즐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자연의 합주곡마냥 정겹게 들린다. 하늘 높이 떠가는 흰구름이 바람의 시를 쓰고, 또렷하면서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풀숲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계절의 시계마냥 그냥 보이고 저절로 들리는 자연의 시와 음악이 넉넉한 세상의 배경이 되듯이, 사시사철 나눔과 베풂으로 사회 곳곳을 밝고 따스하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상을 숨쉬게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로 소리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음악회가 바로 내일(7일) 포항의 효자아트홀서 열리기에 이채롭고 신선하기만 하다.봉사활동하기 좋은 9월에 마치 자원봉사의 손길과 땀방울을 찬탄하는 양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향연이 벌써부터 설레고 기대된다. 필자도 조금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봉사자들은 자신의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보상이나 위안을 삼기가 머쓱했었는데, 이번에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 뮤직 콘서트가 오랜 준비 끝에 열린다기에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난타와 대중가요, 악기 연주, 시낭송, 밸리댄스 등의 자원봉사 출연진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1부),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는 사람들(2부), 봉사함에 행복한 당신이 있어(3부), 세상은 아름답습니다(4부)’ 등의 테마로 공연을 펼치는 것은 봉사자들의 노고와 기여에 대한 감사와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제공을 위한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출연진들 모두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로 나섰기에 한결 의의가 크지 않을까 싶다.가을 마중을 하듯이 밖에서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들려오고 안에서는 음악의 선율과 시의 향기가 흐르고 있으니 과연 가을의 길목에 어울리는 절묘한 하모니랄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화음인 듯하다. 아름다운 봉사의 손길이 문화와 예술로 승화되고 삶의 힘이 되듯이, 누구나 편하게 참여하고 부담 없이 어울려 자원봉사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를 기대해 본다. 봉사는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최상의 덕목이자 가없는 정성이다.

2023-09-05

자연의 합주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동동거리면서 ‘동동팔월’이 지나가고 있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에 태풍까지 들이닥치면서 많은 피해와 상처를 남겼었는데, 가을의 초입에 적잖은 비와 노염이 이어지니 여전히 동동거리는 가슴을 재울 수 없는 듯하다. 거기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여야의 대립과 업계의 불안이 가중되어 갈수록 긴장과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답답하고 동동거리는 가슴으로 8월을 보내고 가을 마중을 해야 하는 걸까.복잡한 곡절의 세상사와는 아랑곳없이 이 맘 때가 되면 풀숲이나 수풀에는 가을의 전령사들이 앞다투어 목청을 돋우고 있다. 해뜨기 전부터 이른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한낮의 들판을 지나 저녁답의 들길과 밤중의 산기슭 언저리에까지, 단조롭거나 오묘한 화음으로 소리의 여울처첨 쩌렁쩌렁 흐르고 있다. 필설로 표현하기도 음계를 분간하기조차도 쉽질 않지만, 풀벌레 특유의 투명한 발성으로 자분자분 스며드는 음조는 어쩌면 지난 여름날의 습기를 말려내고 우수를 떨쳐내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처서 무렵 풀숲에는/왁자한 소리잔치//찌르륵 찌륵찌륵 또르르 또륵또륵 철썩 처얼썩 쪼르륵 쪼륵쪼륵 돌돌돌 도르르륵 차랑차랑 낭창낭창 괄괄하고 걸걸하니, 귀뚜리인가 여치인가 철써기인가 방울벌레인가 풀종다리인가 질라래비인가, 풀피리 소리 같고 양금을 두드리는 듯 만도린을 켜는 듯 파람을 부는 듯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일제히 울리고 퍼지고 튀어나고 번뜩이고 스쳐가고 파고들고 젖어 들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햇볕을 머금고 바람이 쓰다듬어 달빛과 주고받고 별빛이 내려앉은 맑고 또렷하고 구슬프고 처량한 듯 흐느끼다가 와글와글 자지러지는 풀벌레들의 목청~//악보도 지휘자도 없는/귀맛 좋은 합주곡’ -拙시조 ‘자연의 합주곡’전문이처럼 자연의 선율은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꾸밈없이 투박한 듯 순수하며 느닷없이 들쑥날쑥하기고 하지만,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대부분 별 것 아닌 것 같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조차 특유의 가락과 소리가 어울림조의 안단테 멜로디로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치유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하고 즐겨 찾게 되는 걸까?최근 공중파 TV프로그램에 풀잎, 나뭇잎이 악기가 되는 ‘풀피리’를 평생의 악기로 여기며 연주와 보급활동을 펼치는 ‘풀깨비’ 선생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일명 ‘풀피리 부는 도깨비-풀깨비’로 알려진 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요즘, 풀피리로 자연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12년 전 연습을 시작하여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풀피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풀피리를 통해 자연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이기도 한 풀피리(草笛)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수풀이나 언덕에서 풀피리를 불고 들으면서 풀벌레들의 합창과 하모니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환상적인 ‘자연의 합주’가 되지 않을까?

2023-08-30

墨香 피는 인사동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조석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와 또렷해지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한낮으로는 아직 노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도, 여름을 마감한다는 처서(處暑)가 오늘이고 보면 늦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난히 심한 무더위와 폭우, 태풍의 상흔이 안타까운 생채기로만 남긴 채 계절은 가을채비를 하고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의 넌더리가 우려스럽기만 하다.더위가 숙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늦더위보다 후끈한 열기로 서예와 문인화의 향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전국의 유망 서예작가 12명이 ‘월간 서예문화’의 초대를 받아 오늘날의 시대성을 살리면서 작가의 개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작품을 부스개인전 형태로 선보인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는 할당된 공간에서 독창성을 살린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의 개인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필묵의 세계화展’의 취지로 한국서예의 단면을 보여주고 다양성의 조화 속에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그룹전으로 열린 것이다.문화와 예술, 트렌드의 원천(源泉)인 서울에서 전국의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아감이 더욱 어렵고 그 보이는 것도 기이한 서예의 세계에 흠뻑 빠져, 오랜 세월 외곬스럽게 일궈온 한묵(翰墨)의 정념을 거침없이 넓고 깊게 펼쳐 보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작가 특유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전통서예의 재해석과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탐색하는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들고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과연 인사동(仁寺洞)은 전통문화의 거리답게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가 서린 소중한 공간이었다. 길거리마다 대부분 외국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갤러리나 전통음식점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왕래부절이었다. 큰길 옆으로 사이사이 이어지는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곳에는 화랑이나 필방,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카페 등이 밀집돼 있어서 독특한 멋이 있고 교류와 소통, 체험과 만남의 장소로 이상적이었다.그렇게 근사한 곳에서 작품전을 열고 새로운 분위기에 젖어드는 기회를 갖는 것은 정말 선물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생면부지의 관람객이 작품전의 느낌을 방명록에 일필휘지하고, 화려한 차림의 어느 외국인이 서예작품에 매료된 듯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며 이색적으로 환호하는가 하면, 각별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몇 번씩 다시 찾거나 특히, 풀잎 하나로 즉석에서 축하연주를 해주신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선생 등의 분들이 새삼 고맙고 정겹게 느껴진다. 인사동을 묵향으로 뜨겁게 달군 ‘2023 KOCAF’는 의미있는 진전과 좋은 추억으로 처서와 함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

2023-08-22

필묵의 텃밭, 꾸준한 먹빛 솎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철이나 여름날 비가 잦게 되면 들판에 도사리던 잡초의 복병이 일제히 일어서며 진을 치게 된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이곳저곳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가지 풀로, 뽑고 뽑아도 질기고 끈덕지게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데 해(害)를 끼치게 된다. 잡초, 즉 잡풀은 사람에 의해 재배, 관리되지 않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이라 할 수 있다.잡초나 잡목 같은 것은 논밭이나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밭에도 얼마든지 잡스러움이 튀어나와 쑥쑥 자라며 옳고 바른 일들을 방해하고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잡념이나 잡담 등 쓸데없는 생각이나 말들이 언행에 민망함을 주는가 하면, 잡종이나 잡상(雜常)스러움은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쳐서 불미스러움이나 낭패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春日傷悲如草長/何時得91E4刈心庭)’라고 읊었던가.서예창작활동은 어쩌면 붓과 먹의 언저리에서 무수히 돋아나고 비집어 드는 잡다한 풀 같은 불순(不純)함을 걷어내는 지난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비탈진 선지(宣紙)의 밭뙈기에 무딘 붓의 날(刃)로 먹을 찍어 점과 획의 골을 타서 필묵의 밭을 일구며, 생동하는 글과 향기로운 글자의 숲을 이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묵향으로 텃밭을 일구듯 순백의 설원 같은 화선지에 싹을 틔우는 몸짓으로 붓이 노래하고 먹을 춤추게 하는(筆歌墨舞) 먹빛의 향연을 줄기차게 펼치는 것이리라.‘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 -拙시조 ‘먹빛 솎기’중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농작물이 자라듯이, 글밭(書田)에 어리는 먹의 새순(荀)들은 꾸준하고 한결같은 붓질에서 비롯된다. 부지런히 먹을 갈아 줄기차게 붓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먹물의 거침없는 번짐과 주체 못할 난감이 잡히고, 붓놀림의 잡기같은 난삽하고 생경한 서체의 행색이 차츰 유려해지지 않을까 싶다. 꽃솎기나 적과(摘果)로 실한 열매를 기약하듯이, 먹빛 솎기는 필묵의 절제와 숙성을 가늠한다.붓과 먹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먹빛 솎기를 수십년 일삼아온 전국의 중진 서예가들이 ‘월간 서예문화’가 주최하는 KOCAF ‘筆墨의 世界化展’에 초대되어, 오늘부터 1주일간 서울 인사동에서 먹빛의 향연을 펼치게 된다. 문화와 트렌드의 중심인 서울에서 작가 나름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한국서예의 새로운 아이템과 발전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쉼 없는 먹빛 솎기는 필묵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함에 이르는 길이다.

2023-08-15

찾아가는 서예교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학동(學童)들이 서예삼매에 빠져든다. 벼루에 물을 부어 사각사각 조심스럽게 먹을 갈고, 은은하게 피어나는 먹내음을 맡으면서 붓에 먹물을 찍어 화선지에 천천히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하고 정겹게 보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잡아보는 붓과 생전 겪어보지 못한 붓글씨 쓰기 실습으로 새로운 배움의 세계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묵향에 흠뻑 젖어 들고 있다.이러한 모습은 최근 포항제철소 묵향붓글씨봉사단이 구룡포읍에 위치한 꾸러기마을돌봄센터를 찾아가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붓글씨 체험학습 프로그램 ‘찾아가는 서예교실’의 활동장면들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평소 접하기 어려운 우리 고유의 서예를 알리고 몸소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2년 7월부터 송도동, 해도동에서 시작된 서예체험교실은 주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서 실기 위주의 붓글씨 쓰기로 진행되는데, 1년새 열 세 차례나 열렸다.포항시 읍면단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이번 서예수업은 1부 서예에 대한 설명과 지필연묵 용구 소개, 먹갈기, 붓잡는 방법, 화선지 재단, 기초 점획 연습과 자신의 이름 및 장래 희망을 붓으로 쓰는 등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1부 수업 후 휴식시간에는 구룡포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지원한 치킨과 음료, 과일 등을 학생들이 간식으로 맛있게 먹으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이어 2부에서는 삼복더위에 필요한 부채작품 쓰기로, 학생들은 합죽선, 원형부채, 모시부채, 오죽선 등의 다양한 부채에 자신들의 꿈과 희망의 글귀를 붓으로 직접 쓰거나 그림을 곁들여 ‘나만의 부채작품’을 완성해 흥미와 자신감을 더했다. 이날 서예교실에 참여한 10여 명의 학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쓰고 그린 다양한 붓글씨와 먹그림을 벽면에 부착해 전시하기도 하고, 또한 각자가 만든 부채작품을 보면서 서로 부채질을 해주는 등 시종 밝고 신나는 모습들이었다.“버겁고 여린 손길/어느새 익숙터니//먹 갈고 붓 놀리기/신명으로 삼는 나날//초롱한 망울 속으로/피어나는/꿈 자락” -拙시조 ‘書童’전문(2000년)서예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는 예술이지만 독특한 품격과 매력을 갖고 있어서 생활환경을 미화시키고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효용가치가 큰 심신활동이다. 그리고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매우 유익한 활동으로서 개인의 사상과 인격수양, 예술적 재능과 문화 교양의 개발,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의지의 단련을 강화시키며, 또한 심신의 건강과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비록 재능봉사활동 차원에서 일회성으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다니며 주마간산 격의 서예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지만, 이 마저도 없다면 부조전래의 서예의 명맥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은 어떻게 될까? 서예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꿈나무 육성을 위한 제도적, 교육적인 안목과 보완책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2023-08-09

이열치열 여름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염천 폭서의 성하(盛夏)에 청산녹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국 대부분이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연일 찜통더위에 온열질환으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니, 폭우와 폭염의 기승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극명하고도 심각한 자연재난을 초래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날씨에 민감해서 괜한 기우(杞憂)로 여긴다거나 위축돼서는 안되겠기에, 지난 주말 아침 배낭 매고 더위도 즐길(?) 겸 한여름 속으로 거침없이 길을 나섰다.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싱그러운 들판을 지나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진군과 봉화군 경계의 답운치 고개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했다. 안개가 자주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하다는 답운(踏雲)재에서 능선을 타고 통고산(1067m)을 오른 후 계곡을 따라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는 비교적 순탄한 코스다. 더욱이 산행 기점이 해발 600여 미터라 약간 선선한 느낌이 들었고, 모처럼 산을 찾게 돼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세답게 등산 초입부터 수목이 우거져 햇볕은 잎사귀 사이로 겨우 비춰 들었다. 고산지대의 고요한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들의 합창이 산객을 반겨 맞는 환호처럼 들리고, 길섶에서 만나는 산나리꽃과 패랭이꽃은 청초한 자태로 제 멋을 떨구며 미소 짓는 듯했다. 장마가 끝나고 습기가 남아있는 등산로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자주 눈에 띄는가 하면, 군데군데 우람하게 호위하듯 서있는 금강송은 모진 풍상을 이겨낸 낙락장송답게 꿋꿋한 기상이 서리는 듯했다.능선따라 바람따라 소요하듯 완상하며 새소리와 매미울음의 추임새 속에 몇 차례 구슬 같은 땀방울로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다다른 정상, 10여년 전엔가 메마른 겨울에 오르고 온통 초록에 젖듯 여름날에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산은 이렇듯 오르는 자에게 늘 길을 열어주고 넉넉함과 뿌듯함을 안겨준다.“신발끈에 조인 의지/대찬 걸음으로//풀섶에 머문 꿈/땀방울로 말아내면//호방한 너울로 손짓하며/반겨 맞는/등성이//구름바다에 섬으로 뜨는/서리서리 얽힌 정//바람 결에 실어 보낸/원색의 외침 너머//창망한/메아리로 굽이치는/산정무한의/수묵화” -拙시조 ‘山行記’중(1995)하산길은 언제나 여유롭고 홀가분한 듯하지만,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늘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비단 산행 뿐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내려오고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이열치열로 산행을 하거나 맨발걷기로 애써 땀을 흘리고 움직이는 것은 극기와 내성(耐性)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별천지에 간 듯, 온통 초록 숲과 녹음에 어우러져 깊은 산골짝 석간수의 청량함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즐긴 꿈결 같은 여름산행이었다.

2023-08-01

백세만세 장수사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산이 불로하고 녹수가 장존(長存)하는 여름날이다. 청산은 세월이 지나도 늙는 법이 없으니 변함이 없고, 녹수는 세월이 지난 후에 보아도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게 흐르는 물이다.그러나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니 그렇다고 지나가는 세월을 탓할 수도,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세월의 여울에 몸을 맡기면 될 일이다.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生老病死)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 네 가지를 인간이 평생 거치게 되는 큰 고통이라 하여 사고(四苦)라 하기도 한다.즉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은 운명이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현대의학의 발달과 식습관의 개선으로 병고(病苦)를 다소 줄일 수는 있지만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노고(老苦)는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일이기에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어쩌면 젊고 건강한 모습과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오랫동안 남겨두는 습성을 지닌 것이 아닐까 싶다.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좀더 활기차고 발랄한 모습을 보이며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만큼 젊음과 추억과 인연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문명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고 간편하게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또 언제 어느 때 다시 보거나 인화할 수도 있으니, 가히 사진은 현대사회의 필요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멋진 경치나 맛난 음식을 대하면서 사진부터 찍게 되는 것도 결국 오래도록 삶을 회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장수사진도 그러한 관점에서 늙어감의 비애를 줄이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기대와 욕망으로 애써 촬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밝고 편안한 표정을 담은 자신의 인물사진을 대하면 본인도 모르게 마음이 온화하고 넉넉해져서 기분이 좋아지고 만족감 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비록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고 시간의 지문 같은 주름살을 줄일 수는 없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이 배인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각인시키며 여유롭고 완숙한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된다면 한결 새롭고 설레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최근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에서는 구룡포읍행정복지센터에서 제32차 ‘찾아가는 장수사진’ 촬영으로 어르신들께 기쁨을 안겨드렸다.5년째 포항시 전역을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1천200여 분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로 만들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쑥스러운 듯 살갑게 장수사진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백세만세를 기원해본다.

2023-07-26

폭우의 경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폭우 피해가 심각해 안타깝기만 하다. 전국 곳곳이 기습적인 폭우와 산사태, 제방 범람 등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초래해 애타는 가슴이다. 물폭탄 같은 집중호우가 사정없이 쏟아지니 온전한 곳인들 어디 있었으랴. 난데없는 수마의 할큄으로 국토가 신음하고 국민의 시름이 깊어지니 이 무슨 날벼락 같은 변고란 말인가. 절망이란 불청객과 같다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순식간 자연재난의 불청객치고는 갈수록 과격하고 빈번해지는 추세니 망연자실할 따름이다.포항이나 경주 등 인근지역에서는 작년 9월초에 들이닥친 태풍(힌남노)의 막대한 피해를 겪어본 터라 간담이 서늘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상이변은 지역을 막론하고 예고없이 돌변하기도 하고 영향범위나 피해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심각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기에, 철저한 준비와 선제적인 대응만이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싶다.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에서 비롯되는 천재(天災)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응태세와 방재시스템의 체계적인 관리·과학적인 운영에서 비롯되는 실책이나 인재(人災)가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음산한 구름떼/회오리에 휘감겨//비바람 사정없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휘몰아쳐/땅과 하늘이 할퀴고 소스라치니 골(谷)과 내(川)가 요동치고/…./적시고 파고들어 불어나 넘쳐 둥둥 떠서 여지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과욕의 부유(浮遊)같고 오욕의 민낯 같은 잡동사니의 난무(亂舞)-//삼킬 듯 날름거리는/황토빛 하류의 혀’ -拙시조 ‘下流’ 전문하천 범람이나 제방 유실 등의 물난리는 물길이 모이는 하류지역에서 주로 발생되지만, 최근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급류를 타고 흐르다가 약한 제방이 터지면서 중·상류지역에서도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번 충북 오송의 지하차도 참사 역시 폭우로 인근 미호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흙탕물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데도 긴급통제 미실시, 제방관리 부실 등의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논란 속에 전담 감찰팀이 조사 중에 있다. 수년 전 부산지하차도 침수사고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유사사례는 과연 안전불감증인지, 수해대처 미흡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경북에서 가장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난 예천군의 수해현장은 비참하기만 했다. 도로가 종이처럼 접히고 수백톤의 바윗덩이가 마을까지 덮쳤는가 하면, 산사태로 대대로 살아온 집들의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초토화돼버려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또한 예천군의 산 속에서 유명 ‘자연인’으로 살아가던 부부나 귀농·귀촌하여 ‘인생 이모작’을 살아가려던 꿈은 산사태에 휩쓸려버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기습적인 폭우가 이어지고 삼킬 듯한 급류와 한밤 중에 들이닥친 산사태에 속수무책으로 참변을 당해 씁쓸하기만 했다.무참한 수해현장과 참혹한 인명피해까지 몰고온 가증스런 폭우는 과연 기상이변의 경고인가, 기후위기의 암시인가. 어쩌면 기후위기의 다른 이름이 ‘기습 폭우’라면 우리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고마우면서도 무서운 자연과의 동행을 언제까지 위태위태 계속 해야하는 걸까?

2023-07-18

환상적인 울릉도 라이딩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울릉도에서 두번째 라이딩을 즐겼다. 천혜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동해의 진주 같은 울릉도를 찾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한데,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파도소리를 벗삼아 섬일주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3년만에 다시 펼치는 라이딩이니 한결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물론 전체가 화산섬인 울릉도라 해안선을 따라 조금만 내륙으로 향해도 비탈과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만만찮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라이딩의 짜릿함과 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울릉도는 독도 포함 섬 전역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지질유산의 보전과 교육·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큰 곳이다. 수 백 만년 전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울릉도와 독도는 특이한 이중분화구와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용출소 등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질학적인 가치와 자원이 풍부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울릉도 관광객이 작년엔 46만명, 올해는 역대 최다의 방문객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만큼 곳곳마다 자연이 빚은 걸작(?)들이 많기 때문일까?“삐죽삐죽 구불구불 위태위태 난 길 따라/도동에서 통구미로 설레여 밟는 페달/태고의 신비 벗기듯 한 꺼풀씩 저어가네//낙타등 같이 들쭉날쭉 태하령과 현포고개/숨소리 거칠어도 구슬땀이 달가운데/마루턱 언저리에는 바람의 결 정겹기만//…//애환 서린 내수전 옛길 아슬한 걸음으로/휘청이며 비틀대도 끌고 들고 메고 가니/두 바퀴 펼치는 세상 봉래폭포 환호하네” -拙시조 ‘울릉도 라이딩’전문3년 전의 코스와는 달리 이번에는 사동에서 도동~저동~봉래폭포~관음도로 이어지는 역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울릉크루즈 등 대형선박이 드나드는 사동항 주변은 ‘2026년 개항 예정인 경비행기 활주로 개설 등으로 바닷가측 산을 깎아내는 등 공사와 개발이 한창이었다. 몇 차례의 업힐(Up hill)과 다운힐(Down hill)을 거치고, 파도의 추임새와 갈매기의 안부를 들으며 서서히 페달을 밟는 기분은 필설로 못다할 정도였다. 특히, 나리분지로 향하는 가풀막을 힘겹게 오를 때 천천히 지나가던 차량의 운전자가 굳이 창문을 내려 “힘내요~ 파이팅! 멋져요~!” 라고 격려할 때는 정말이지 순간적으로 힘이 불끈 솟기도 했고, 안개 낀 나리분지의 원시림을 통과할 때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돼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7월 들어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기존의 배에 쾌속선이 추가되고, 공항 개항 시 관광객 100만명 목표에 대비하여 울릉도에도 숙박시설·교통 등 인프라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가 정체되고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는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아찔할 정도였다. 또한 대부분의 식당이 단체손님 위주의 영업으로 ‘혼밥’이 어려운 현재의 상황 등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울릉도의 관광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지름길이다.

2023-07-11

우리 고유의 대중음악, 시조창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푸른 하늘을 유유히 가르는 백로의 날갯짓이 악보로 흐르는 듯하다. 댓잎에 바람소리와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자연의 음률처럼 들리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어울림조 합창 마냥 정겹기만 하다. 도시의 온갖 사람들 소리나 자동차 소리, 공장의 기계음 따위의 소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아늑함과 천연스러움이 있다. 소리나 음악, 가락 등은 인간의 감각기관인 귀로 듣고 느껴져 마음의 자극이나 반응을 일어나게 하기에, 지역적인 정서와 문화의 양식에 따라 많은 갈래와 흐름으로 생겨나 유지, 발전되어 왔다.시조창도 그렇게 파생되어 오랜 세월동안 불리워져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시절단가(時節短歌)이다. 시조는 신라향가에 기원을 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다. 즉 평시조를 기준으로 3·4조의 음수율을 가지고 3장6구 12음보의 45자 내외로 이뤄진 독특한 정형시의 양식으로, 함축적이고 절제된 언어의 노래 가사로서 문학인 동시에 음악인 셈이다. 이러한 시조시에 가락과 장단을 붙이고 감정을 더해 부르는 노래가 시조창이다. 악기 없이 장구나 무릎장단의 부분적인 연주 속에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3음의 계면조(界面調)와 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5음의 우조(羽調)로 되어 있으며, 연결성이 발달한 청아한 소리의 음계가 특징적이다. 또한 특유의 기백과 독창적인 소리예술로 풍류와 멋을 더해 전라도를 중심으로 즐겨 부르던 완제(完制)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이처럼 우리의 전통가락이자 민족혼이 담긴 시조창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있어서 고무적이다. 코로나19의 장막이 걷히면서 전국적인 시조창 경연대회가 5, 6월부터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월 중하순 경에는 성주군과 포항시에서 ‘전국 시조창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열렸고, 7월 중에는 울산광역시와 안동시 등에서 시조창 경연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맵시 고운 한복을 입고 의관을 정제한 전국의 남녀 창자(唱者)들이 독창적인 창법으로 시조창을 즐기며 열띤 경합을 벌이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애써 지키고 가꾸는 그 이상의 유익함이 크다 할 것이다.여리고 강하다가 낮거나 높게 끊어질 듯 꺾이다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조창의 매력은, 느림의 미학으로 일컫는 전통성악의 특이한 음률의 발성과 음악적 경험으로 시조의 품격과 인성을 드높이며 물아일체의 경험과 심신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유장한 가락으로 율려(律呂)의 다변성을 절묘하게 발성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시조창은, 자연을 닮으려는 정신의 흔적이며 동양전래의 자연관에 근거한 시간성을 형상화한 음악형식이 아닐까 싶다.우리 선조들의 얼과 지혜가 응축된 멋과 가풍(歌風), 질박한 정서가 담겨있는 정악(正樂)이 결코 나이가 들거나 특정계층에서만 누리는 편견에서 벗어나 생활 속 문화가 되고, 풍류가 한류(韓流)가 되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저변확대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조와 시조창은 면면히 이어온 우리 정신의 뿌리요 숨결이기 때문이다.

2023-07-04

無信不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재잘재잘 새들은 노래하고 뭉게뭉게 구름꽃이 피어나며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연중 낮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오늘이고 보면 벌써 반년이 마감되는 시점이다. 때이른 더위 탓인지 후끈한 대지의 열기 못지 않게 비지땀을 흘리며 지역사회를 위한 도움의 손길로 분주하고 하루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다. 포스코의 연중 봉사활동에 집중하며 다양한 나눔활동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다.이른바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는 국내외 포스코그룹 임직원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이다. 지난 9일~16일까지 8일간 진행된 ‘2023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는 포스코 직원 3천여명과 31개 협력사 1천여명 등이 포항시 전역 124곳을 방문해 다문화가정 사진촬영, 독거어르신 나들이, 자매마을 취약지역 개선 등의 활동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이 같은 특별봉사활동은 포스코봉사단의 창단일에 즈음해 그룹 임직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나눔·돌봄 활동과 지역생태 보전활동 등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으로 20년째 매년 진행해 왔다. 지역상생과 협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이 기간뿐만 아니라 주말과 휴일을 활용해 일상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직원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 문제를 찾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실행하는 ‘체인지 마이 타운’ 사업 등과 연계해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맞춤형 봉사활동으로 꾸준한 나눔과 베풂의 온정을 전하고 있다.그런데 이와 같은 포스코의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 동반성장의 노력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근 포스코 본사 앞에서는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집회와 궐기대회가 열려 개탄스럽기만 하다. 포스코지주사 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경찰 추산 시민 1천500여 명이 참여해 포스코를 상징하는 파란 근무복의 대역 민간인의 볼기를 치고 망나니 칼을 휘두르며 인형의 코를 자르는 등의 과격한 시위 퍼포먼스는 황당하다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범대위와의 합의사항이 이행되고 있음에도 대낮에 버젓이 포항시민인 포스코 직원들의 자긍심을 짓밟는 행태는 묵과하기 어려울만큼 도를 넘은 것 같다.‘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정치나 사회,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신뢰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포스코와 포항시가 작년에 명시적으로 합의한 대의가 엄연히 있고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합의파기라도 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선동과 자극을 일삼는 처사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생명을 찬미하는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가 자연의 화음으로 들리는 것처럼, 성숙과 인내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미덕이 필요한 때다. 정성과 노력의 손길로 봉사의 꽃을 피워나가듯이, 합리적인 범주에서 믿음과 실행을 바탕으로 한 공존공생의 꽃이 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