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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을 마중, 영일만시인학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람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불과 몇 일 사이에 8월이 지나고 9월이 시작됐을 뿐인데, 계절의 시계는 기온이며 햇살이며 구름이며 하늘빛까지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그에 맞춰 풀벌레들의 합창은 기다렸다는 듯이 맑고 또렷한 음조로 봇물 터지듯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소리와 빛깔로 보여주는 계절의 세리머니가 가슴을 한결 넉넉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치열했던 여름날과 선선해지는 가을날이 마주하는 자리에 문학을 사랑하고 영일만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한데 모여 소담스런 잔치를 벌였다. 풀벌레 소리가 반겨 맞고 간간이 파도소리가 추임새를 넣는 구룡포의 언덕배기 한 켠에서, 바다를 노래하고 시 얘기를 나누며 감칠맛나는 시낭송과 열띤 강연, 문인과 시민들의 스스럼없는 만남, 기념사진 즉석인화 이벤트, 축하 공연, 문화재 탐방 등으로 이어지는 어울림의 시간, 이른바 ‘영일만 시인학교’ 가 펼쳐진 것이다. 영일만 일대에서 1박2일로 열린 일련의 문학축제는 포항문인협회의 부설기관인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가 주최·주관했다. 포항지역의 문학과 문화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인 삶을 공유, 확산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는 멀리 제주도 등지에서까지 달려오고 예상을 넘는 참가자, 알차고 다양한 프로그램 등으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축제를 통해 바다라는 풍부한 어족자원과 다양한 해양문화를 지닌 포항지역의 역사적·지리적인 문학적 토대 위에 다채로운 해양문화를 접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하고 이색적인 디카시 콘텐츠를 창출하는데 많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포항지역의 문학인구 저변확대와 문예발전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꿈꿔 봤을 문학소녀·소년들이 가슴 한 켠에 묻어둔 문학의 불씨를 지피며 포항문예아카데미를 통해 문학수업을 받은 중년의 문학지망생들이 ‘영일만 시인학교’에서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계기와 수업과정은 포항문예아카데미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에 관심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시조·수필·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강좌를 운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1999년에 발족해 건전한 시민문화를 육성하고 바른 글쓰기와 독서 풍토를 조성하고자 문학을 사랑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교육, 배출해온 포항문예아카데미는 올해 26기생 50여 명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졸업한 700여 명의 회원이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를 결성, 유대감 조성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의지를 돈독히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학행사를 기획, 개최하는 등 포항의 문학발전과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 문학을 읽고 쓴다는 것은 인내와 지구력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롭지만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문학과 창작을 통해 삶을 변혁하는 작은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가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하는 문학적인 감성계발과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삼아 나가며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03

붓으로 다듬는 먹빛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더위를 마감한다는 처서(處暑) 지난 지도 한참이고 태풍도 한 두 차례 올라왔지만, 여전히 한낮으로는 노염(老炎)의 기세가 만만찮은 것 같다. 여름날의 끝자락을 잡고 매미는 막바지 울음을 여기저기서 스테레오로 울리는데, 이에 뒤질세라 가을을 마중하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옥양목을 자르는 가위질 소리마냥 나날이 또렷해지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변곡점도 갈수록 모호해지는 것 같다.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날이 무색하리만치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며 집념과 몰입으로 자신의 기량을 꾸준히 가꿔온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청순한 대학생에서부터 80대 노익장의 작가지망생까지 남녀노소 실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붓끝에서 쓰여지고 그려진 한판 작품 겨루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들은 지난 봄, 아니 어쩌면 연초부터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워 숱한 나날 먹을 갈고 붓을 다듬어 습작과 교정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당당히 내보이며 경쟁과 평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즉, 지역에서 펼쳐진 서예작품 공모전에 출품하여 자신의 노력과 기예를 시험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포항지역의 서예가들이 두루 참여하여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도모하는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한 ‘제32회 전국공모 포항시서예대전’의 작품접수와 심사가 관심과 기대 속에 지난 주 열렸다. 신진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서예 공모전은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붓글씨 솜씨 발휘와 작품 인정을 받으며 조금씩 서예작가의 면모를 갖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예대회를 통해 한글·한문·문인화·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부문의 서예작가가 배출되고 아울러 서예문화의 확산과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 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잡힐 듯 멀어지는/보일 듯 사라지는/불가해(不可解)의 숨결인가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인가/또 한 겹 껍질 벗기며/먹빛 순수 솎는다’ -拙시조 ‘먹빛 솎기’전문모든 예술과 창작행위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신의 고단함과 마음의 척박함에도 애써 붓을 잡아 먹물을 찍어 획을 긋고 점을 찍는 이유는 좀더 순수와 궁극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곡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한 발짝 파고들수록 벽에 부딪치고 타성에 사로잡혀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먹빛의 번뜩임을 향해 외롭고도 쉼없는 걸음을 옮겨 나갈 때, 필묵의 메아리가 비로소 기운생동으로 굽이치리라. 눈물을 이겨낸 자만이 인생의 눈부신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뜨거운 여름날에 후끈한 열정으로 서예삼매(?)에 빠져 무수한 붓질과 숱한 파지(破紙)를 쌓으며 전심전력한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예농사라는 것이 어찌 일희일비에 그치랴. 필묵의 밭을 일구는데는 부지런함이 지름길이요,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기에 배를 노저어 가듯이 인내하고 극복하며 꾸준히 나아가야 하리라.

2024-08-27

어쩌다 보니 내몽고 여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사상 초유로 두 쪽 난 광복절 행사에 아랑곳없이 징검다리 연휴에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건국절 논란의 염증(?)을 떨치기라도 하듯 저마다의 목적지로 부담없이 떠났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니 하찮은(?) 일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홀가분한 여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정해진다. 아무리 지루하거나 빠듯한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즐겁고 설렘이 가득할 것이다. 여행도 쉼의 일종이듯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의 풍경이 정겨움으로 다가올 것이다.반면 빨리 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보고 혼자 즐기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주마간산격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대부분 어떤 모임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마련이다.하지만 그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느 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여차저차 만나 우연의 일치로 떠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어떤 계기가 되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게 되는 것이다.그러고보니 지난 주 광복절을 전후해 다녀온 해외여행은 정말 즉석에서 던진 말에 우연찮게 동조하면서 어쩌다가(?) 다녀오게 된 것 같다. 길거리나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반가움을 더해 주듯이, 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정이 아닌 즉흥적인 발상과 추진이 한결 흥미와 설렘을 부추겨주지 않았을까 싶다.그렇게 떠난 곳이 내몽고이다. 중국의 다섯 개 자치구 중 첫번째로 지정된 내몽고자치구는 몽골,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17세기 무렵 당시 차르 러시아와 청나라의 이익 다툼으로 외몽고(몽골)와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는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정복을 이룬 불세출의 영웅 징기즈칸은 몽골에서는 영웅으로, 중국에서는 위인으로 추앙받기에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징기즈칸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르도스(궁전) 초원 한 켠에 유택(幽宅)을 마련하는 등 대대로 정복왕에 대한 존숭과 예우를 다하고 있다.광활한 초원에 말과 양이 풀을 뜯고 군데군데 전통가옥인 몽골포(게르)가 놓여진 목가적인 풍경은 더없이 낭만과 평온함이 느껴지지만, 유목민 몽골족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평균 해발고도 1300미터의 고지대로 밤하늘의 별들이 더없이 크고 초롱초롱 빛나며,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데 불현듯 빗금을 치고 사라지는 유성은 찰나의 삶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온순한 낙타를 타고 야트막한 사막을 둘러보다가, 그 옛날 아득한 고비사막을 건너며 삶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을 유목민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애잔함이 묻어나기까지 했다.그리고 푸른 초원에서 말타기를 해보니 척박한 땅에서 기마민족으로서 세계정복을 꿈꾸며 평원을 우렁차게 달렸을 몽골인들의 기개와 용맹함이 지평선 끝의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듯했다.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살고 말 위에서 바람처럼 사라져간다는 몽골인들의 애환과 운명이 곳곳에 펄럭이는 깃발로 아우성치는 듯했다.

2024-08-20

쉼, 재충전의 여정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말복에 즈음하여 바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츰 선선함을 더하는 것 같고,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한결 또렷하고 명징하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낮의 노염(老炎)은 아직도 맹렬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매미들의 열창(熱唱)을 부추기는 듯하다. 만고불변의 청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햇살과 바람과 물소리 매미소리가 스며들면서 차츰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하늘에선 해가 땅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 8월은, 그야말로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추구하며 깊어지기에 타오름달이라고도 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열기와 눈부신 햇살로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고,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으로 집중하고 몰입하여 열정을 사르면서 목표를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가슴이 탈 정도로 뜨겁고 목마르게 갈망하고 혼신을 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동동거리는 것 같아 ‘동동팔월’이라고도 하는 걸까?하지만 8월은 잠시 쉬어가는 달이다. 연중 가장 무덥고 뜨거우며 또한 습하고 꿉꿉하며 비도 많이 내리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게 보전하며 보신(補身)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도록 알려주는 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나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거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보양식으로 기력을 채우기도 하는 등 여름날의 다채로운 풍속도에 젖어들고 있다.‘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오는 것/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 오세영 ‘8월의 시’ 전문사람도 기계도 계속 일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바쁘고 숨차게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내 지치고 기력이 쇠잔해질 것이다. 일터에서의 휴식이 중요하듯이 삶터에서는 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쉼이란 하던 일이나 동작, 집중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느슨하고 편안하게 몸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멍때린다거나 곤한 잠을 자는 등의 방식으로 몸 속에 쌓인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일 못지 않게 쉼이 중요함은, 여가시간이 있어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게 된다. 쉼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당연하고도 자명한 휴식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늘 일에 쫓기고 시간에 발목 잡힌 현대인들이 제 때 쉬거나 여유로운 휴가를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보니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이 강조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8월이다.

2024-08-13

이열치열 삼매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날의 절정이다. 절기상 입추라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는 여전히 기세등등해 몇 차례의 소나기가 지나가도 숙지지 않는 염천(炎天)이다. 거기에 파리올림픽의 열기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지구촌의 온나라가 뜨거운 용광로 속에 있는 듯한(萬國如在紅爐中) 형국이다. 밤에도 기온이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초열대야 현상이 강원도의 해변도시에서 나타나고, 94년만에 최장 열대야가 이어지니 과연 이상기후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그러나 아무리 무더워도 올림픽의 치열하고 불꽃 튀는 열기마저 꺾을 수 있으랴. 제33회 파리 올림픽의 개막과 더불어 세계 206개국의 선수들이 저마다의 기량과 특기로 각축을 벌이느라 세계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선수들이 10회 연속 양궁 여자단체부 금메달을 차지하고, 사격부문에서는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나오는 등 초, 중반까지 쾌조를 보이고 있으니 또 다른 기대와 설렘으로 더위 따위는 무색할 정도다. 그만큼 집중과 몰입은 새로운 내면과 흥미를 낳기도 한다.어떤 대상에 마음을 모으고 한 가지 일에 힘을 쏟으며 깊이 파고 들거나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이나 대상을 아끼며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올림픽 같은 세계무대에 서기까지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은 선수들 자신만이 알고 있으며, 그 누구라도 무한한 땀의 가치와 혼신의 노력을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자신의 특장을 살려 심신을 가다듬고 훈련과 단련을 거듭한 끝에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맘껏 기량을 펼쳐 나갈 때, 관중의 환호와 이목이 집중되며 갈채가 이어질 것이다.‘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남모르게 흘리는 땀이/비범을 낳으리라/처절한/몸부림만이/경이를 보이리라//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활시위의 긴장과/눈물 같은 땀방울로/무진장/뒤척거리는 고독/기적의 꽃이 피리라’ -拙시조 ‘꿈-기적의 꽃’ 전문어떤 학문이나 운동, 음악이나 예술활동에 깊이 몰입하고 집중한다는 것은 삼매경(三昧境)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티끌을 없애고 잡념을 떨쳐 오롯이 대상에만 정신을 쏟으며 노력과 혼신을 다해 나가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독서삼매경은 다른 일이나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책 읽기에만 사뭇 빠져드는 것이고, 운동삼매경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몸동작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대상에 골몰하고 심취하여 반복연습으로 갈고 닦으며 자신의 임계점을 향해 끝없이 추구하게 되면, 운동선수는 기적 같은 명승부를 펼치고 예술가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며 차츰 내공이 깊어질 것이다.한여름의 무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이렇듯 제 나름의 이열치열 같은 삼매경의 비법(?)으로 더위를 이기며 자신을 다스리면 어떨까? 예컨대 자신이 좋아한다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때로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때로는 끼니를 잊기까지 할 정도로 몰두하고 파고들다 보면 수시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조차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만의 비장의 루틴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면서, 태극전사들의 선전과 낭보가 청량감을 더해주기를 기대해본다.

2024-08-06

정겹고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적하던 어촌의 한 켠이 분주해졌다. 야트막한 처마 밑에 제비집이 지어진 어느 작은 다방 안팎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칸막이와 현수막을 설치하며 작품을 내거는 등 각자의 역할분담으로 어떤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바른 몸짓과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옮기고 작품을 배치하며 조정하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뤄져, 다방의 실내는 금세 멋진 미니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이름하여 ‘포구(浦口) 다방-모두의 어촌여행’이란 주제로 항구 주변에서 열리는 시화전의 준비작업이다.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아닌 다방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발길 뜸하고 비좁은 ‘옛날식 다방’에서 빼곡하게 쓰여 지고 그림까지 그려진 시화전이라니? 모종의 우려와 설마 속에 진행되는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은,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소소한 볼거리와 숨겨진 스토리를 낳으며 잔잔하면서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다담(茶談)을 나누고 휴식하는 가운데, 눈 앞에 보이는 작품을 부담없이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색다르고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지역의 자연경관을 노래하고 짭조름한 삶의 얘기나 처해진 현실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한결 구미가(?) 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사람들이 동네다방으로 모여들어 다향(茶香) 속에 살아가는 얘기나 신세타령을 듣고 나누다가 바로 곁의 시화작품을 눈요기로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정겹고 이색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컨셉으로 어촌다방 시화전이 기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출어(出漁)의 감소, 삭막해져가는 어촌마을의 현실과 공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의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의 주제가 담긴 시와 시조를 시화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쇠퇴해가는 어촌마을에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포구다방’ 시화전은 경상북도 권역 별 특색있는 공연·전시 및 네트워크 형성을 기획·운영·지원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참여형 단체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재단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거점단체에서 전시프로그램을 총괄기획·추진하게 되며, 2권역에 속하는 포항·영덕·울진에서는 이번에 두번째로 ‘포구다방’을 테마로 시화전을 열게 된 것이다.이러한 취지에서 2권역의 3개 단체(한국문협 영덕지부·맥시조문학회·진심문학회)가 7월 20~30일까지 천혜의 아름다운 축산항 한 켠의 ‘그야말로 옛날식’ 고려다방에서 합동으로 출품한 시와 시조를 서예·캘리그라피·디자인을 곁들여 족자·부채·판넬·실사출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든 작품 40여 점을 아기자기하게 선보이고 있다. 축산항 개항 100주년의 또 다른 세리머니(?)로 여겨진다.

2024-07-23

‘북한 이탈주민의 날’ 제정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장마의 영향으로 중남부 곳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시름을 겪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주말쯤 다시 비를 뿌릴 예보라니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또는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아도,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순탄하고 무난한 삶이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슬픔과 어려움은 그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에서는 풍파나 시련의 엄습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가급적이면 피해를 막고 아픔을 줄이는 지혜와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의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 智)는 가르침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하며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는 가운데 또 다른 지혜와 슬기로움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주야장천 흐르면 삶의 자취며 생각의 잔상까지도 시간의 모래밭에 묻히고 스러지며 점차 잊혀지게 되겠지만,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뇌리에 채워 놓으면 쉽사리 소멸되거나 잊혀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두고 기억을 하며 마음 속에 내내 간직하게 된다. 그것을 달리 말해 기념(紀念)이라고도 할 수 있다.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생일이나 졸업, 입사를 기념하고 결혼이나 성공, 퇴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뜻있고 소중하며 가슴에 되새겨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연을 인지하고 축원하며 기억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친밀해지고 깊어지며, 표현이나 기록을 통해 감동과 감사의 정을 격의없이 나누기도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식과 다양한 부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환영할 일로 여겨진다. 철천지원수 같은 북녘땅에서의 질곡을 벗어나 꿈에서나마 그리던 자유의 땅을 밟았지만, 새로운 터전에서의 정착생활이 녹록지 않고 제도적인 지원책 등의 미흡함으로 처우가 미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포용과 정착지원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주문함에 따라 관련규정의 제정 추진으로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다.따라서 매년 7월 14일은 통일부 주관으로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며, 남북 주민 간 통합문화를 형성해 통일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날로 기념할 계획이라 한다. 이날을 통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북한이탈주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의 조성과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16

동서공감 시낭송의 향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디선가 치자꽃 향기가 날려 올 듯한 7월이다. 제주에서는 치자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보름 전쯤부터 장마가 시작됐으니 아마도 제주의 치자꽃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으리라 여겨진다. 유난히 진하고 멀리 간다는 치자꽃 향기가 들판을 채우면 세상은 한바탕 뜨거운 신열을 앓듯 후끈한 여름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 태세다. 땡볕과 폭염, 장마에 지쳐갈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바람 결에 날려오는 치자꽃 은은한 향기는 여름날의 청량제 같은 시원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7월이 치자꽃 향기를 몰고 오듯이 여름을 맞이하는 가슴을 시낭송의 향기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의 행간을 목소리의 예술로 채우면서 시낭송의 꿈과 상상의 나래 속에 감성과 재능의 여울로 물들이고 익어가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과 지방 사람들이 오가며 만나 시와 낭송의 향기를 피우고 어우러지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들은 ‘시낭송 포럼 동서공감’을 해마다 열면서 화합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시를 통해 영·호남이 하나가 되는 자리, 문화와 예술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의 시인·시낭송가들과 전북에서 활동하는 시인·시낭송가들이 동서의 벽을 허물고 경계의 선을 넘어서 오롯이 시와 시낭송을 매개로 만나서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 빠져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년에 한, 두 차례씩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고 가며 시를 전하고 시를 닮아가는 고운 눈빛으로 영호남의 시낭송가들이 교류하고 공감하는 일은 지역화합과 상생협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고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교감하고 우정을 나눠온지 올해 10년째를 맞았다.올해는 ‘너의 하늘을 봐’라는 주제에 ‘다시금 새롭게, 다함께 더 멀리, 함께 가요 우리!’라는 부제로 전북재능시낭송협회가 주최·주관하여 지난 주 전주교육대학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밤하늘의 별을 다채로운 시낭송과 시극의 변주로 노래하고, 꽃과 달빛에 스며드는 애틋한 시를 품으며 절망이 희망을 낳던 밤에도 별을 만지듯 기다리다가 민들레 꽃으로 피어나는 시의 울림과 떨림은, 강물을 터놓는 기쁨으로 감동을 물결치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한 자리에 본인들의 시가 어떻게 목소리의 예술로 그려지고 음향과 영상을 결들인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해 세상에 다가가는지 시인 자신들이 직접 참석해 한결 자리가 빛났던 것 같다.‘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내가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어쩌면 마지막으로/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중에서시낭송이란 생명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를 우아한 육성으로 전함으로써 시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 주는 소리 표현의 미학이자 예술이다. 향기로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시낭송의 전파로 동서가 교감하고 남북이 더불어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면 동질감 회복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시낭송으로 더욱 행복해지는 동서공감의 융성을 기대해본다.

2024-07-09

여름날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정열과 사랑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어느새 반년이 후딱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과 함께 본격적인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벌써부터 때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장마전선의 간헐적인 영향으로 몇 차례 비를 뿌리면서 여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이어지는 듯하다.여름날의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의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해지지만, 그렇다고 여름날을 건너뛸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저 철저한 대비와 대응으로 무난하고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여름날의 시련을 겪지 않고서는 과실이나 작물 등의 튼실함이나 풍작을 기대하기가 어렵다.세찬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고, 작렬하는 태양이나 타는 듯한 가뭄에도 온전히 내면을 채우며 오지게 익어야만 가을날의 풍성하고 알찬 열매를 거둬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고,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있다고 노래한지도 모른다.여름은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뜨겁고 활기찬 젊음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잎새가 돋아나는 봄날이 화사하고 풋풋한 청춘의 시기라면, 풋과일을 익게 하고 때로는 시원한 녹음을 드리우며 왕성하게 알곡을 살찌워가는 여름날은 청장년의 때가 아닐까 싶다. 열정으로 도전하고 용기와 노력으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멈추지 않는다. 짙푸른 파도마냥 벅차게 용솟음치는 의지로 세상을 활보하는 꿋꿋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여름날은 유난히 낭만과 추억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더위를 피한다거나, 이열치열로 산행 또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등 바깥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도 줄곧 어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서 부는 갯내 바람과 쉼없는 파도소리가 가슴 속까지 철석이며 시원함을 더하고, 계곡에서 반기는 새소리며 물소리는 한결 맑고 정겹기만 할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경주·영덕·울진 등 동해안 일대의 해수욕장이 개장을 앞둔 가운데 포항시지역의 7개 해수욕장이 이번 주말부터 일제히 개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출로 해수 방사능 오염 우려나 동해안 해수온 상승으로 인한 상어떼 출몰 등의 긴장 속에서도 많은 피서객들이 바다를 찾을 것이다.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해변축제나 볼거리, 먹거리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여름날의 선물 같은 낭만과 추억을 넉넉하게 누리는, 그래서 추억으로 더욱 행복한 여름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02

비 오는 날의 문학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월의 푸르름을 짙게 하는 비가 하루 건너씩 내리고 있다. 새소리나 빗소리에 기분이 맑게 깨이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면 왠지 설레는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계절은 어김없이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날을 열어가고 있다.때이른 무더위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여름의 기온이 전례 없이 높을 것이라고 예보하지만, 날씨와 기상은 변수가 있으니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때이른 무더위도, 줄기찬 빗줄기도 무색하게 하며 뜨겁고 거침없는 마음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인연과 유대가 있었기에 친소여부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어울리며 친근한 동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그들은 이른바 전국을 캠퍼스로 여기고 있는 한국방송대학의 졸업생이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젊은 시절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거나 주경야독(晝耕夜讀) 또는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만학도의 꿈을 다시 펼치면서 동문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색적이고 독특한 방송대 동문문화를 조성해가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동문회의 인적구성과는 달리 나이와 성별, 직급 등 배경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그들은 언제 어느 때 만나고 어울리더라도 한결같으며, 친화력과 포용성이 큰 동문사회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동문회의 일원이 모처럼 만나 강원도 동해안으로 소풍 가듯이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잔뜩 찌푸리던 날씨가 오전부터 비를 뿌렸지만, 오히려 빗소리의 낭만과 운치가 여행의 맛을 더하는 듯했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다다른 곳은 삼척시 신기면에 위치한 강원종합박물관.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2만 여 점의 자연사 및 도자기·금속공예·민속·종교·목공예·석공예 등의 다양한 유물과 예술품들은 기존 박물관의 개념을 깬 듯한 엄청난 규모로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빗길을 한참 치닫아 강릉시 운정동 한 켠의 고가(古家)로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선교장(船橋莊)에 이르러서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정취 속에 조선시대의 숨결이 빗소리의 여운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 기념관엘 들러 매월당(梅月堂)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도 했다. 또한 초당동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개혁정신을 짐작해보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의 문학적 업적과 생가터 유적을 둘러볼 때는 낙숫물 소리가 더없이 정겹게 들리는 듯했다.비오는 날의 문학기행은 또다른 묘미를 안겨준 것 같았다. 아담한 정원의 나무와 연못, 고즈넉한 정자며 고택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수천수만의 음률처럼 들리기도 하고, 먼 옛날의 자취가 아련한 속삭임으로 여울지는 것 같았다. 길 떠나고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몰랐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명소가 많다. 옛적의 학우들과 교유하며 소통과 교감하는 시간 속에는 새로운 추억과 감흥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2024-06-25

제복입은 불멸의 호국영웅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때이른 더위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수년 전부터 봄과 여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꽃들이 일제히 피면서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인가 싶을 정도로 무더위가 찾아들어 계절의 구분을 다시 책정해야 할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겠지만, 갈수록 한반도도 차츰 열대성기후로 바뀌면서 기상이변과 자연재난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만 하다. 기후와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겠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잊혀지거나 변해서는 안 될 불멸의 가치가 있다. 바로 호국보훈의 의식과 예우이다.해마다 찾아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호국의 일념과 보훈의 마음이 어찌 6월에만 국한되랴. 지정학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유난히 외세침입이 많았고, 한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6·25한국전쟁이 근·현대 들어 가장 뼈저린 상처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와 현재까지도 분단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호국보훈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숭고한 뜻과 훈공에 보답한다는 측면에서 깊이 되새기고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보훈 없는 호국은 없듯이, 공로와 은혜에 보답하는 보훈의 정신이 무너지면 나라를 지키는 호국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2023년 7월 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참전유공자에게 국민적 존경과 감사를 담은 새로운 제복과 넥타이를 국가보훈처에서 맞춰드린 것은 의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이른바 ‘제복의 영웅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이 6·25 참전용사를 대할 때 인식개선이 필요한 기존 조끼형태의 여름 약복의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표하고 영웅을 존경하는 사회적 인식을 증진시키고자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을 제작한 것이다.그렇게 제작된 베이지색의 산뜻한 제복은 전국의 생존 참전유공자 5만8000여 분께 단계적으로 지급됐다. 포항지역에는 300여 분께 지급됐으며, 그 중 30여 분께는 최근 포스코 사진봉사단이 포항시보훈회관을 찾아 6·25전쟁 참전 유공자의 늠름한 모습의 제복영웅사진과 편안한 장수사진, 노병들의 단체사진 등을 촬영해 드려서 의의를 더했다. 그러한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며 존경과 숭고한 뜻을 기리는 봉사자들의 낯빛이 진지하고 역력했었다고나 할까?기억은 기록이나 사진을 통해서 더 또렷해지고 오래 남게 된다. 영웅을 기억하며 새로운 제복을 만들어준 정부도 감사하고, 참전용사들의 영예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봉사단의 활동도 고무적이다.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호국영웅들이 6·25전쟁 때부터 겪었을 험난한 삶의 여정과 희생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 것 같아 뭉클할 정도였다.나라를 지켜낸 6·25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 6·25전쟁 영웅 뿐 아니라 국가유공자 분들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명예를 드높이며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는 많은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진정한 보훈의 의미가 빛날 것이다.

2024-06-18

별빛 같은 선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아침부터 숲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저녁 때 무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왁자하다. 논배미 여기저기서 개굴개굴하다가 멀거나 가까이서 쉴 새 없이 왕왕거리니, 자연의 합창이 따로 없을 정도다. 모처럼 교외로 가서 듣게 되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청아하고 정겨울 것 같은데, 논 가까이에 사는 시골사람들에게는 매일같이 귓전을 맴돌며 요란하게 자극하니 혼절할 듯한(?) 소음으로 여길 정도라 한다.어설픈 듯 줄기차게 외쳐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서막으로 깔리고 서녘 하늘에 노을이 필 무렵, 청하지역의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는 삼삼오오 마실 가듯이 이웃집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박모(薄暮)의 하늘에 한, 두 점 별빛이 뜨고 서늘한 바람 결에 악기의 연주음이 울리며 감미로운 노래의 가락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호 속에 손뼉 치고 기타 치며 노래하니, 흥겨움이 절로 일고 어깨가 들썩이며 신명나는 음악의 향연이 막을 올린 것이다.‘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음악이 피어나고 시가 흐르는 밤/흥겹게 어울리니 도탑고 넉넉하여/지나가던 바람도 설레어 멈춰 서고/별빛마저 서둘러 마당에 내려앉네//더불어 함께 하니 정겹고 아름다워라//마실 가듯 이웃과 소통하며 오고 가고/만나고 나누고 베푸는 인정 속에/잔잔하고 멋스럽게 하모니가 이뤄져/공감의 종이 울리고/상생의 화음이 청하벌에 울려 퍼지네’ -졸시 ‘마음 따라 선율 따라’중이러한 선율이 흐르는 정경은 ‘맑고 푸른 청하’ 고을의 언덕배기 한 켠에 10여 년째 터를 잡고 보금자리를 일궈가는 어느 지인의 잔디마당에서 지난 주 열린 ‘이레정(庭) 네번째 별빛음악제’의 한 부분이다. 즉, 청하읍내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별빛이 내려앉는 초여름날 초저녁에 ‘청하로 220번길’ 주민들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고, 음악과 시낭송 등으로 문화적인 소통을 하며 어울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작은 음악회인 셈이다.이러한 음악회의 출연진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이웃주민·동료 등으로, 자율적인 참여와 재능기부로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회 콘서트를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과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컨셉으로 지난 2019년부터 거의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음악회 타이틀을 마당에서 즉석 서예 퍼포먼스로 펼치면서 붓으로 멋스럽게 썼는가 하면, 해녀를 주제로 해녀복장과 망사리 등의 물질 소품을 활용한 시극공연과 애절한 듯 구성지게 노래한 시창(詩唱)까지 더하면서 한결 다채롭고 흥미롭게 열려 갈채와 눈길을 끌었다.한적한 청하지역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음악과 시를 나누는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이웃과 하나되는 만남의 정을 다독일 수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도시화와 급속한 정보화로 점차 개인화, 고립화돼가는 현대인의 가슴에 별빛이 흐르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피어나게 한다면 한결 정서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시의 선율로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별빛음악제가 청하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끊임없이 빛나고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2024-06-11

시낭송의 매력과 풍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아침 들리는 새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뜨니, 오늘 하루가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지만, 요즘은 촌락에서도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드물어진 것 같다. 그만큼 삶의 양태가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소쩍새나 부엉이 등 밤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아침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면 도회지만 어디 산 속에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필자의 우거 주위엔 도로 건너의 야산과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뒤뜰과 이어지고 있어서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길다랗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비롯 풀들이 자라고 있는 그곳에선 사시사철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합창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한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자주 듣다 보니, 어쩌면 새들의 특유한 대화법(?) 같은 지저귐에도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새들의 울음은 서로의 안부마냥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전문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운 풀잎이 꽃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유월 아침에,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서정시처럼 들린다. 연록의 잎새가 짙어지면서 산과 들에 초록의 서사시를 쓰듯이, 새들의 낭랑한 지저귐은 계절을 찬미라도 하듯 그 자체가 영롱하고 이슬빛 머금은 명징(明澄)한 시편으로 여겨짐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바람결조차 부드러워 새들의 목놓아 외치는 읊조림에 나뭇잎마저 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듯하다.누렇게 물결치며 맥추(麥秋)의 서정을 노래하던 보리를 베어내고 논배미의 행간에 또박또박 글자를 심듯이 모심기를 하는 망종(芒種) 즈음에, 사람사는 세상에도 시와 음악을 품고 즐기는 모습들이 활달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책방이나 한적한 뜰에서 시를 읊거나 시낭송회를 열고, 십인십색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예술의 얘기꽃을 피워가는 마당에는 풍류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지만 시사하는 의미와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목소리의 음색과 시에 담긴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낭송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활자화된 시를 목소리의 운율과 낭송가의 표정, 몸짓 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게 되면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감동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낭송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시 나눔의 감동을 전달하는 풍류 가인(佳人)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감정과 정서가 메마르고 단절돼가는 현대사회에, 시를 읽으며 시낭송의 매력과 운치를 느껴보는 풍류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2024-06-06

잊혀져 가는 것들의 되새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햇살과 바람이 참 좋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만물이 점차 생장하고, 부드러운 바람 결에 연록의 잎새들이 나날이 짙어가며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만물이 생장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 지나자 본격적인 여름날이 시작된 듯 잎새들은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들판의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른 햇살과 때 맞춰 내리는 비를 맞아 만물이 성장과 윤기를 더해가듯이, 보살핌과 가르침의 은혜로 사랑과 감사가 녹음처럼 두터워지는 푸른달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이 시작되고 문득문득 시간의 타래는 슬렁슬렁 잘도 감겨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짧아진 듯한 봄날의 기온도 여름날 못지않게 불쑥불쑥 오르고 있으니, 세월의 갈퀴 속에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달라지면서 세상이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거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영속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게 되면 만물은 빛이 바래거나 퇴색의 갈피를 면할 수 없고, 물과 바람의 철썩임에 자연물도 마멸과 희석의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의 기억이나 생각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반비례하여 차츰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생각이나 경험에서 비롯되는 사상이나 감정, 지식 따위도 어느 경계를 지나게 되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버리기에 애써 기록으로 남기고 그림이나 형상 등으로 그려 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굴 속의 그림이나 기호, 바위벽에 새겨진 문자 등의 각인물도 좀 더 뭔가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오래도록 남겨서 전하려는 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이러한 측면에서 나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글자나 시문 등도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서사적(書史的)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필적이나 서체연구의 매개가 되어 당대의 풍습이나 문화, 명필의 유행 서체 등을 유추, 분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에 드러난 대부분의 각자(刻字)는 현재 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자연 훼손물(?)로 간주돼 일반인들의 관심이나 학계의 연구대상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바위 글자엔 풍상과 세월의 이끼가 더해져 점차 등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그럼에도 최근 포항지역의 한 서예단체에서는 서예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학술조사로, 포항시 북구 기북면의 유서 깊은 덕동문화마을의 명승 덕연구곡(德淵九曲)의 제2경인 ‘막애대(邈埃臺)’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탁본작업을 실시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막애대는 덕동마을 앞을 흐르는 용계천 한켠의 거북 형상을 한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으로, 막애대 위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보며 심신수양을 했던 곳이라 한다.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막애대 바위가 이번의 탁본작업으로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무심해졌던 것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전통문화와 필적이 깃든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되새김이 필요해 보인다고 본다.

2024-05-28

한국 시조문학의 산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과 어우러진 풍경은 정겨움을 자아내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쉼과 여유를 보여주는 듯하고, 멈춘 듯 흐르는 강물따라 수면에 비춰지는 정경은 한가롭기만 하다. 하늘과 산이 내려앉고 건물이나 사람의 모습까지 얼비치는 강물은 고요히 흐르면서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쓰는 듯하다. 강물을 바라보면 물결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 같고, 깊은 강이 소리 없이(深江無聲) 흐르는 것처럼 한결같이 깊어지며 소리 없이 살아가는 삶의 깊이가 강물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경남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이 휘돌아가는 가좌산 기슭에는 마치 강물이 소리 없이 깊어진 듯한 문향이 한옥의 아취 속에서 창연하게 피어나고 있다. 강물이 쌓이고 쌓여 깊이를 얻듯이, 수많은 근현대의 서책과 시조집, 문예지, 문인들의 육필, 편지, 서화작품 등이 모이고 더해져 마치 문학의 유장한 강줄기를 이룬 듯하다. 그것도 700여년 면면히 이어진, 우리 겨레의 얼과 숨결이 오롯이 담긴 시조 장르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과 유물이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으니, 가히 시조문학의 산실(産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문 문학관인 ‘한국시조문학관’이다. 고려말~조선시대에 간결하게 다듬어져 성행된 고유의 정형시-시조를 새롭게 부흥하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시조시인인 김정희 선생이 11년 전 남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건립됐다.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여 금계국이 피어나는 자연 속에 모두 한옥 4채로 구성된 한국시조문학관은, 시조의 역사와 변천·홍보·다양한 문학행사를 열면서 시조문학의 발전과 깊이를 더해가는 곳이다.즉, 시조의 근현대의 사료적 가치를 집대성해 놓은 주시설인 시경루(詩境樓), 신라의 향가에 연원을 둔 고시조와 별곡, 무곡, 가사 등 시조의 근본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수류화개(水流花開), 진주와 경남지역의 향토문학 근대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숙소로도 이용되는 보문산방(寶文山房) 등의 공간이 전시·열람·체험·교육·세미나 등으로 시조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전통문학을 지키고 가꿔가는 ‘한민족 시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과연 빼곡하게 들어찬 시조집과 문예지를 비롯 김소월의 필적과 미당선생의 빛 바랜 편지, 엽서 등과 문인들의 시서작품을 직접 보니, 오랜 세월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며 준비와 구상, 정리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공과 안목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문학의 종가라 할 수 있는 시조가 외래문화에 떠밀리고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구순이 지났음에도 시조문학의 융성에 온 힘을 쏟고 계시는 김 관장님을 직접 뵈니 경외심마저 들었다고나 할까?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문화대국에는 겨레시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대로 이어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인들과 지자체의 몫일 것이다. 짧고도 명확한 서사구조를 가진 시조를 일상 속에서 즐겨 지으면서 현대인의 감성을 표현하고, 시조 백일장·시화전·낭송대회 등 창의적인 전환의 모색으로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하여 시조의 대중화,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24-05-21

비 내리는 고향집 마당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신록의 초목 위에 비가 내리니 푸르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면서 생동의 기운이 한껏 왕성해지는 듯하다. 파릇한 잎사귀에 은구슬 같은 빗방울이 자분자분 내려앉으며 은밀한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데, 연두와 초록의 물결 위에 빗금 치며 내리는 비는 싱그럽고 산뜻한 오월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 온종일 쉼없이 녹파(綠波)를 더하고 있다.모처럼 고향에서 비를 맞으니 차분한 감회가 산허리에 걸린 실안개마냥 몽실몽실 피어난다. 아카시아 흰꽃을 적신 비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고, 연록의 숲에서 내리는 빗줄기에서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이십 수년째 빈집으로 남아있는 폐허 같은 고향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넓직한 풀잎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가 맑고 정겹지만 더없이 애잔하게 들린다. 불현듯 빗소리가 들려주는 맴돌이 소리에 유년의 울림 같은 회억이 아스라해진 가슴을 적셔주는 듯하다.상수도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처마끝의 물받이에서 떨어지는 지점에 양동이나 큰 단지를 옮겨와 빗물을 받곤 했는데, 초반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가관이었다. 양동이나 알루미늄 세숫대야 떨어지는 낙수소리는 ‘타다다닥~’ 하며 자지러질 듯 요란하게 들리다가 이내 줄어들고, 단지나 옹기 같은 곳에 떨어지는 낙숫물은 마치 마이크 소리를 내는 듯 깊고 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몇 개의 용기에 빗물을 받으면서 내는 소리는 음계도 없고 음정도 제각각이었지만, 산만한 듯 정겹고 또렷하게 들리는 빗물의 이색적인(?) 연주가 아닐 수 없었다.또한 어떤 때는 또래들과 어울려 빗 속을 헤치며 호박순을 잘라서 만든 대롱을 몇 개 이어 빗물의 흐름을 유도하면서 낙수소리를 듣는 재미에(?) 빠지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옷이며 양말까지 담방 비에 젖게 되는 일명 ‘노배기’가 돼서 집엘 오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께선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게 하시며 벙드레죽(수제비)을 쑤어 주시거나 배추전을 부쳐 주시곤 했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의 날궂이 음식으로 파전이나 부추전 따위가 단연 구미를 당기게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들었었던 낙숫물의 리듬에 맞춰 전 부치는 소리가 그렇게 맛있게 피어나던 기억이 갈수록 생생해지며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그렇게 빗물을 받아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시면서 비 내리는 날에 수제비나 부침개를 해주시던 어머니께선 초록이 우거진 북망산천에서 땅으로 스미는 빗물을 맞고 계시니 애절하기만 하다. 아카시아나무가 고향집 마당까지 침범하고 담쟁이 넝쿨이 옛집을 에워싸며 스산함과 황폐화를 더해도, 문득 기억 속에 낯익은 낙숫물소리와 정재(부엌) 칸에서 들리던 전 부치는 소리가 엷은 감미로움으로 다가오니 어찌할까나?엷은 안개 속에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비가 음률인 듯 리듬인 듯 귓전을 스치는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그나마 활짝 핀 불두화가 위무인 듯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2024-05-07

5월을 맞으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첫날, 푸른달의 시작이다. 연록의 새순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잎새들의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 산야가 온통 신록으로 넘실대며 푸르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봄 향기 그윽한 꽃이 진 자리마다 잎사귀를 드리우며 차츰 신록이 짙어지니, 벌써 여름날로 향하는 춘하의 경계인 셈이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며 색깔로 오던 봄날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개구리의 울음이 지천에서 들리며 소리로 오는 여름날을 맞이하고 있다.소리로 다가오는 오월은 정겹기만 하다. 자명종마냥 새벽을 깨워주던 새소리가 정겹고, 잦아지는 비가 처마 끝에서 낙숫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다가온다.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이랑에서는 이삭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가 하면, 논배미 무논의 군데군데서 왕왕거리는 개구리들의 혼성 합창이 싫증나지 않게 들린다.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새들이 초록의 외침으로 나부끼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갑갑한 가슴 속을 밝히는데,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경(風磬)의 여운으로 남기는 고운 소리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이렇듯 도처에서 들리고 울리는 소리들로 오월이 열리고 있다. 어찌보면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일상이듯이, 5월에는 유난히 생각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선지 기념일에서 시작하여 기념일로 매듭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을 지나 바다의날, 세계 금연의 날로 마무리되니, 과연 푸르름으로 빛나는 계절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 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그러한 기념일에 으레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소리나 노래, 외침 또는 함성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들의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이는 노동현장의 외침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위한 밝고 맑은 기상의 동요, 은혜를 생각하고 기리는 차분하고 평온한 곡조, 세상의 자비와 광명을 위한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민주화를 부르짖은 절규의 함성 등이 기념일의 곳곳에 잠잠히 배여있거나 묻어나고 있다. 그만큼 소리나 노래, 말씀과 울림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리나 울림이 잦아드는 때, 최근 포항지역의 가인(歌人)들이 시조창의 울림으로 맹활약을 펼쳐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대한시조협회 칠곡군지회가 주최·주관한 ‘구상선생 추모 제8회 칠곡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포항의 시조인들이 2개 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시조창은 우리의 전통 아악(雅樂)인 12율려(律呂)를 바탕으로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를 구르고 감거나 흔드는 동법(動法)을 더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소리의 고저장단이 매끄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울림과 떨림 속에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 고유의 전통 대중음악이다.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과 화법을 가다듬으며 바르면서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는(光而不耀) 삶을 가꿔가면 어떨까?

2024-04-30

초록빛 챙김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식물과 작물, 나무의 잎사귀가 투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생장하며, 사람들은 싱그러운 초록을 만끽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일까?식물이나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얀빛에 포함된 수많은 빛의 색이 나뭇잎에 흡수 또는 방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식물의 광합성작용 시 필요한 파란색과 빨간색 등의 파장이 빛을 흡수하고, 남은 초록빛은 다시 반사되어 우리가 보는 잎사귀의 초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록빛이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다는 의미이며, 다른 빛들 중 초록파장의 빛이 잎사귀에서 가장 많이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사슴이 풀 뜯으며 뒤돌아본다는 건/두려워해서가 아니다/죽음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겨우내 벗은 채 서있던 산의 능선이/초록으로 물든 탓이다/훌쩍 커버린 능선이 등 뒤에서/출렁이고 있는 탓이다//파도처럼 뒤에서 슬픈 사랑이 덮쳐 온다/파도치게 하는 건/길들여지기 전의 일들이다/…./뒤돌아보는 사슴의 눈동자에/눈록(嫩綠)의 함성과 태양의 절기가 담겨있다’ -손창기 시 ‘뒤돌아본다는 것’중에서생명의 나무는 어쩌면 영원한 초록빛이 아닐까 싶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 잎의 빛깔과 같이 연한 녹색의 눈록이나 엷고 여리기만 한 연둣빛의 잎새가 앙증스럽게 손짓하는 나무는, 한 편의 서정시가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 담록이나 황록, 연초록이나 진초록으로 생명의 잔치를 노래하며 신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은 이미 도도한 기운생동의 흥겨운 춤사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초록빛은 싱그럽고 설레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식물에서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초록빛은 건강과 환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절약과 물품의 재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차량운행 최소화, 자전거 타기, 식물기반의 식사 등 친환경 저탄소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모두 초록빛을 꾸준히 챙겨 나가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언제나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자연처럼 쾌적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초록빛은,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탄소중립의 화두를 초록빛 챙김에서 찾아야 하는 다양한 의미이기도 하다.밝은 초록빛 수풀이 투명한 푸른빛 바다처럼 일렁이는 4월의 들판에서, 사람도 나무처럼 영롱한 초록빛이 될 수 없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2024-04-23

자연에서 배우는 협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벚꽃이 폭죽처럼 터지듯 들끓던 민심이 4·10총선으로 표출됐다. 정권 심판론이 우세해서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그러나 언제까지 폭죽처럼 터진 승리에 도취해 자만한다거나, 참패의 충격에 빠져 낙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花無十日紅), 금세 벚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손을 내밀고 잎새들의 잔치를 준비하며 생동하는 봄날의 기운이 왕성해지고 있다.봄꽃은 기후나 주변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필 수도, 한 해 또는 몇 해 건너 필 수도 있으니, 이번의 선거결과가 여야에 있어서 결코 현재나 미래 모습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陰地轉 陽地變) 세상에 영원한 것도,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다. 당락이나 성패, 행불행 따위는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 말이 가는데 소도 갈 수 있듯이(馬行處 牛亦去),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성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꽃자리를 내주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거나 잎새를 불려 나가는 나무들은, 꽃이 많이 피거나 열매를 적게 맺음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액을 길어 올리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성장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초록이나 담록, 진초록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이며 연이어 잎새를 드리우는 것은, 어쩌면 대지의 광활한 캔버스에 봄날의 신명난 붓질로 생명의 조화로움을 채색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대립하거나 반목, 질시하는 일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울리다가 온통 잎새들의 잔치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 올리고 있다.대화와 타협, 조정의 과정이 생명인 정치판에서도 이 같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무수한 잎새 같은 정치인들의 온갖 말이 공염불이거나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어불성설이라면 결코 초록동색의 순리적인 조화로움에 근접하지 못할 것이다.과반을 과신하여 횡포나 전횡을 일삼고 소수에 대한 안배와 양보가 없다면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상생과 협치의 지혜로움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통과 신뢰, 타협과 협력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다면 급기야 자가당착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많은 견해나 요구, 변수로 인해 돌연히 변화할 수 있기에 각종 현안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취사, 조율을 해나가기가 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견제와 균형의 열린 사고로 대화와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 공생과 공동선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의명분과 국익에 보탬이 되는 합일점을 도출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으로 편향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야 말로 주체적인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2024-04-16

내 삶을 바꾸는 선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천에 흐드러지게 봄꽃이 피어났다. 길거리의 꽃물결 마냥 벚꽃이 꽃터널을 이루며 장관을 이루고 있고, 산자락이나 들녘에서는 희끗희끗 불그스레한 꽃더미가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훈풍 결에 손짓하며 반기고 있다. 오랜 시간 다독이고 쟁여둔 응축된 에너지가 일제히 솟아나며 각양각색의 꽃으로 피어나니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듯하다. 막 돋아나는 움과 싹이며 풀잎도 앙증스럽게 환호하고, 벌 나비와 새들까지 합세해 봄날의 향연을 즐기는 듯하다.봄이면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옛 시인은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해마다 사람은 늙어 같은 사람이 아니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읊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마다 꽃이나 나무들도 조금씩 다르게 꽃이 피거나 잎차례를 하며 가지를 벌이게 된다. 기상이변이나 기후변화로 꽃덤불이 홍수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태풍에 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설해를 입어 가지가 부러지는 등의 수난을 당하기도 해서 해마다 피는 꽃자리가 약간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나무의 경우는 멀쩡하게 열매 맺던 가지가 어느 순간 끝부분이 조금 마르는가 싶더니 급기야 가지 째 나무의 수분공급이 중단돼 살아있는 나무에 죽은 가지로 남아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예컨대 감나무의 경우, 주변 나무들의 영향이나 나무 자체의 수형(樹形) 유지를 위해 해마다 새 움이 트는 이맘 때쯤이면 수 십 갈래의 나뭇가지가 다같이 물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가지는 물이 오르지 않고 마른 채 그대로 남게 된다. 어쩌면 나무의 생존법 같은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수종이나 꽃나무에게도 엇비슷하게 적용되는데, 하나의 생물체인 나무도 그냥 무덤덤하게 서있는 것 같지만 스스로의 생명과 영양, 생장, 증식을 위한 자구책으로 취사선택을 하며 살아난다는 것이다.한 그루 나무조차 생존을 위한 취사선택의 자구책이 이러할진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죽 선택이 많으랴. 어쩌면 사람들은 매순간, 매일처럼 발생되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서 나름의 순간적인 판단이나 직감의 결정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에 따라 무의식적이나 의도적으로 취사(取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자신의 생각이나 기준, 관점에 따라 선택하는 결정으로 삶의 향방이 달라지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일상적인 사소한 선택에서 학업이나 직업, 배우자 등의 중차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며, 선택의 결과 역시 자신에게로 귀결된다. 숲 속에 나타난 두 갈래 길은 운명처럼 다가오지만, 인간은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므로 그 가운데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인 한계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자신의 선택으로 삶이 바뀔 수 있듯이, 지역과 나라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뽑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역대 총선 사전투표율이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제22대 4·10 총선에 대한 관심과 심판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명한 선택으로 공생하는 삶이 되길 기대해 본다.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