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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서공감 시낭송의 향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디선가 치자꽃 향기가 날려 올 듯한 7월이다. 제주에서는 치자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보름 전쯤부터 장마가 시작됐으니 아마도 제주의 치자꽃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으리라 여겨진다. 유난히 진하고 멀리 간다는 치자꽃 향기가 들판을 채우면 세상은 한바탕 뜨거운 신열을 앓듯 후끈한 여름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 태세다. 땡볕과 폭염, 장마에 지쳐갈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바람 결에 날려오는 치자꽃 은은한 향기는 여름날의 청량제 같은 시원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7월이 치자꽃 향기를 몰고 오듯이 여름을 맞이하는 가슴을 시낭송의 향기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의 행간을 목소리의 예술로 채우면서 시낭송의 꿈과 상상의 나래 속에 감성과 재능의 여울로 물들이고 익어가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과 지방 사람들이 오가며 만나 시와 낭송의 향기를 피우고 어우러지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들은 ‘시낭송 포럼 동서공감’을 해마다 열면서 화합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시를 통해 영·호남이 하나가 되는 자리, 문화와 예술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의 시인·시낭송가들과 전북에서 활동하는 시인·시낭송가들이 동서의 벽을 허물고 경계의 선을 넘어서 오롯이 시와 시낭송을 매개로 만나서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 빠져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년에 한, 두 차례씩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고 가며 시를 전하고 시를 닮아가는 고운 눈빛으로 영호남의 시낭송가들이 교류하고 공감하는 일은 지역화합과 상생협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고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교감하고 우정을 나눠온지 올해 10년째를 맞았다.올해는 ‘너의 하늘을 봐’라는 주제에 ‘다시금 새롭게, 다함께 더 멀리, 함께 가요 우리!’라는 부제로 전북재능시낭송협회가 주최·주관하여 지난 주 전주교육대학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밤하늘의 별을 다채로운 시낭송과 시극의 변주로 노래하고, 꽃과 달빛에 스며드는 애틋한 시를 품으며 절망이 희망을 낳던 밤에도 별을 만지듯 기다리다가 민들레 꽃으로 피어나는 시의 울림과 떨림은, 강물을 터놓는 기쁨으로 감동을 물결치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한 자리에 본인들의 시가 어떻게 목소리의 예술로 그려지고 음향과 영상을 결들인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해 세상에 다가가는지 시인 자신들이 직접 참석해 한결 자리가 빛났던 것 같다.‘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내가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어쩌면 마지막으로/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중에서시낭송이란 생명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를 우아한 육성으로 전함으로써 시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 주는 소리 표현의 미학이자 예술이다. 향기로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시낭송의 전파로 동서가 교감하고 남북이 더불어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면 동질감 회복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시낭송으로 더욱 행복해지는 동서공감의 융성을 기대해본다.

2024-07-09

여름날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정열과 사랑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어느새 반년이 후딱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과 함께 본격적인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벌써부터 때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장마전선의 간헐적인 영향으로 몇 차례 비를 뿌리면서 여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이어지는 듯하다.여름날의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의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해지지만, 그렇다고 여름날을 건너뛸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저 철저한 대비와 대응으로 무난하고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여름날의 시련을 겪지 않고서는 과실이나 작물 등의 튼실함이나 풍작을 기대하기가 어렵다.세찬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고, 작렬하는 태양이나 타는 듯한 가뭄에도 온전히 내면을 채우며 오지게 익어야만 가을날의 풍성하고 알찬 열매를 거둬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고,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있다고 노래한지도 모른다.여름은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뜨겁고 활기찬 젊음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잎새가 돋아나는 봄날이 화사하고 풋풋한 청춘의 시기라면, 풋과일을 익게 하고 때로는 시원한 녹음을 드리우며 왕성하게 알곡을 살찌워가는 여름날은 청장년의 때가 아닐까 싶다. 열정으로 도전하고 용기와 노력으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멈추지 않는다. 짙푸른 파도마냥 벅차게 용솟음치는 의지로 세상을 활보하는 꿋꿋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여름날은 유난히 낭만과 추억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더위를 피한다거나, 이열치열로 산행 또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등 바깥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도 줄곧 어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서 부는 갯내 바람과 쉼없는 파도소리가 가슴 속까지 철석이며 시원함을 더하고, 계곡에서 반기는 새소리며 물소리는 한결 맑고 정겹기만 할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경주·영덕·울진 등 동해안 일대의 해수욕장이 개장을 앞둔 가운데 포항시지역의 7개 해수욕장이 이번 주말부터 일제히 개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출로 해수 방사능 오염 우려나 동해안 해수온 상승으로 인한 상어떼 출몰 등의 긴장 속에서도 많은 피서객들이 바다를 찾을 것이다.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해변축제나 볼거리, 먹거리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여름날의 선물 같은 낭만과 추억을 넉넉하게 누리는, 그래서 추억으로 더욱 행복한 여름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02

비 오는 날의 문학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월의 푸르름을 짙게 하는 비가 하루 건너씩 내리고 있다. 새소리나 빗소리에 기분이 맑게 깨이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면 왠지 설레는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계절은 어김없이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날을 열어가고 있다.때이른 무더위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여름의 기온이 전례 없이 높을 것이라고 예보하지만, 날씨와 기상은 변수가 있으니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때이른 무더위도, 줄기찬 빗줄기도 무색하게 하며 뜨겁고 거침없는 마음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인연과 유대가 있었기에 친소여부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어울리며 친근한 동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그들은 이른바 전국을 캠퍼스로 여기고 있는 한국방송대학의 졸업생이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젊은 시절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거나 주경야독(晝耕夜讀) 또는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만학도의 꿈을 다시 펼치면서 동문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색적이고 독특한 방송대 동문문화를 조성해가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동문회의 인적구성과는 달리 나이와 성별, 직급 등 배경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그들은 언제 어느 때 만나고 어울리더라도 한결같으며, 친화력과 포용성이 큰 동문사회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동문회의 일원이 모처럼 만나 강원도 동해안으로 소풍 가듯이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잔뜩 찌푸리던 날씨가 오전부터 비를 뿌렸지만, 오히려 빗소리의 낭만과 운치가 여행의 맛을 더하는 듯했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다다른 곳은 삼척시 신기면에 위치한 강원종합박물관.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2만 여 점의 자연사 및 도자기·금속공예·민속·종교·목공예·석공예 등의 다양한 유물과 예술품들은 기존 박물관의 개념을 깬 듯한 엄청난 규모로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빗길을 한참 치닫아 강릉시 운정동 한 켠의 고가(古家)로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선교장(船橋莊)에 이르러서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정취 속에 조선시대의 숨결이 빗소리의 여운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 기념관엘 들러 매월당(梅月堂)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도 했다. 또한 초당동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개혁정신을 짐작해보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의 문학적 업적과 생가터 유적을 둘러볼 때는 낙숫물 소리가 더없이 정겹게 들리는 듯했다.비오는 날의 문학기행은 또다른 묘미를 안겨준 것 같았다. 아담한 정원의 나무와 연못, 고즈넉한 정자며 고택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수천수만의 음률처럼 들리기도 하고, 먼 옛날의 자취가 아련한 속삭임으로 여울지는 것 같았다. 길 떠나고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몰랐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명소가 많다. 옛적의 학우들과 교유하며 소통과 교감하는 시간 속에는 새로운 추억과 감흥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2024-06-25

제복입은 불멸의 호국영웅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때이른 더위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수년 전부터 봄과 여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꽃들이 일제히 피면서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인가 싶을 정도로 무더위가 찾아들어 계절의 구분을 다시 책정해야 할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겠지만, 갈수록 한반도도 차츰 열대성기후로 바뀌면서 기상이변과 자연재난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만 하다. 기후와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겠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잊혀지거나 변해서는 안 될 불멸의 가치가 있다. 바로 호국보훈의 의식과 예우이다.해마다 찾아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호국의 일념과 보훈의 마음이 어찌 6월에만 국한되랴. 지정학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유난히 외세침입이 많았고, 한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6·25한국전쟁이 근·현대 들어 가장 뼈저린 상처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와 현재까지도 분단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호국보훈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숭고한 뜻과 훈공에 보답한다는 측면에서 깊이 되새기고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보훈 없는 호국은 없듯이, 공로와 은혜에 보답하는 보훈의 정신이 무너지면 나라를 지키는 호국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2023년 7월 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참전유공자에게 국민적 존경과 감사를 담은 새로운 제복과 넥타이를 국가보훈처에서 맞춰드린 것은 의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이른바 ‘제복의 영웅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이 6·25 참전용사를 대할 때 인식개선이 필요한 기존 조끼형태의 여름 약복의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표하고 영웅을 존경하는 사회적 인식을 증진시키고자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을 제작한 것이다.그렇게 제작된 베이지색의 산뜻한 제복은 전국의 생존 참전유공자 5만8000여 분께 단계적으로 지급됐다. 포항지역에는 300여 분께 지급됐으며, 그 중 30여 분께는 최근 포스코 사진봉사단이 포항시보훈회관을 찾아 6·25전쟁 참전 유공자의 늠름한 모습의 제복영웅사진과 편안한 장수사진, 노병들의 단체사진 등을 촬영해 드려서 의의를 더했다. 그러한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며 존경과 숭고한 뜻을 기리는 봉사자들의 낯빛이 진지하고 역력했었다고나 할까?기억은 기록이나 사진을 통해서 더 또렷해지고 오래 남게 된다. 영웅을 기억하며 새로운 제복을 만들어준 정부도 감사하고, 참전용사들의 영예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봉사단의 활동도 고무적이다.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호국영웅들이 6·25전쟁 때부터 겪었을 험난한 삶의 여정과 희생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 것 같아 뭉클할 정도였다.나라를 지켜낸 6·25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 6·25전쟁 영웅 뿐 아니라 국가유공자 분들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명예를 드높이며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는 많은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진정한 보훈의 의미가 빛날 것이다.

2024-06-18

별빛 같은 선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아침부터 숲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저녁 때 무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왁자하다. 논배미 여기저기서 개굴개굴하다가 멀거나 가까이서 쉴 새 없이 왕왕거리니, 자연의 합창이 따로 없을 정도다. 모처럼 교외로 가서 듣게 되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청아하고 정겨울 것 같은데, 논 가까이에 사는 시골사람들에게는 매일같이 귓전을 맴돌며 요란하게 자극하니 혼절할 듯한(?) 소음으로 여길 정도라 한다.어설픈 듯 줄기차게 외쳐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서막으로 깔리고 서녘 하늘에 노을이 필 무렵, 청하지역의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는 삼삼오오 마실 가듯이 이웃집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박모(薄暮)의 하늘에 한, 두 점 별빛이 뜨고 서늘한 바람 결에 악기의 연주음이 울리며 감미로운 노래의 가락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호 속에 손뼉 치고 기타 치며 노래하니, 흥겨움이 절로 일고 어깨가 들썩이며 신명나는 음악의 향연이 막을 올린 것이다.‘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음악이 피어나고 시가 흐르는 밤/흥겹게 어울리니 도탑고 넉넉하여/지나가던 바람도 설레어 멈춰 서고/별빛마저 서둘러 마당에 내려앉네//더불어 함께 하니 정겹고 아름다워라//마실 가듯 이웃과 소통하며 오고 가고/만나고 나누고 베푸는 인정 속에/잔잔하고 멋스럽게 하모니가 이뤄져/공감의 종이 울리고/상생의 화음이 청하벌에 울려 퍼지네’ -졸시 ‘마음 따라 선율 따라’중이러한 선율이 흐르는 정경은 ‘맑고 푸른 청하’ 고을의 언덕배기 한 켠에 10여 년째 터를 잡고 보금자리를 일궈가는 어느 지인의 잔디마당에서 지난 주 열린 ‘이레정(庭) 네번째 별빛음악제’의 한 부분이다. 즉, 청하읍내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별빛이 내려앉는 초여름날 초저녁에 ‘청하로 220번길’ 주민들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고, 음악과 시낭송 등으로 문화적인 소통을 하며 어울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작은 음악회인 셈이다.이러한 음악회의 출연진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이웃주민·동료 등으로, 자율적인 참여와 재능기부로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회 콘서트를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과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컨셉으로 지난 2019년부터 거의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음악회 타이틀을 마당에서 즉석 서예 퍼포먼스로 펼치면서 붓으로 멋스럽게 썼는가 하면, 해녀를 주제로 해녀복장과 망사리 등의 물질 소품을 활용한 시극공연과 애절한 듯 구성지게 노래한 시창(詩唱)까지 더하면서 한결 다채롭고 흥미롭게 열려 갈채와 눈길을 끌었다.한적한 청하지역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음악과 시를 나누는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이웃과 하나되는 만남의 정을 다독일 수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도시화와 급속한 정보화로 점차 개인화, 고립화돼가는 현대인의 가슴에 별빛이 흐르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피어나게 한다면 한결 정서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시의 선율로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별빛음악제가 청하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끊임없이 빛나고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2024-06-11

시낭송의 매력과 풍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아침 들리는 새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뜨니, 오늘 하루가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지만, 요즘은 촌락에서도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드물어진 것 같다. 그만큼 삶의 양태가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소쩍새나 부엉이 등 밤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아침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면 도회지만 어디 산 속에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필자의 우거 주위엔 도로 건너의 야산과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뒤뜰과 이어지고 있어서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길다랗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비롯 풀들이 자라고 있는 그곳에선 사시사철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합창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한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자주 듣다 보니, 어쩌면 새들의 특유한 대화법(?) 같은 지저귐에도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새들의 울음은 서로의 안부마냥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전문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운 풀잎이 꽃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유월 아침에,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서정시처럼 들린다. 연록의 잎새가 짙어지면서 산과 들에 초록의 서사시를 쓰듯이, 새들의 낭랑한 지저귐은 계절을 찬미라도 하듯 그 자체가 영롱하고 이슬빛 머금은 명징(明澄)한 시편으로 여겨짐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바람결조차 부드러워 새들의 목놓아 외치는 읊조림에 나뭇잎마저 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듯하다.누렇게 물결치며 맥추(麥秋)의 서정을 노래하던 보리를 베어내고 논배미의 행간에 또박또박 글자를 심듯이 모심기를 하는 망종(芒種) 즈음에, 사람사는 세상에도 시와 음악을 품고 즐기는 모습들이 활달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책방이나 한적한 뜰에서 시를 읊거나 시낭송회를 열고, 십인십색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예술의 얘기꽃을 피워가는 마당에는 풍류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지만 시사하는 의미와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목소리의 음색과 시에 담긴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낭송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활자화된 시를 목소리의 운율과 낭송가의 표정, 몸짓 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게 되면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감동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낭송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시 나눔의 감동을 전달하는 풍류 가인(佳人)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감정과 정서가 메마르고 단절돼가는 현대사회에, 시를 읽으며 시낭송의 매력과 운치를 느껴보는 풍류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2024-06-06

잊혀져 가는 것들의 되새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햇살과 바람이 참 좋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만물이 점차 생장하고, 부드러운 바람 결에 연록의 잎새들이 나날이 짙어가며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만물이 생장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 지나자 본격적인 여름날이 시작된 듯 잎새들은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들판의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른 햇살과 때 맞춰 내리는 비를 맞아 만물이 성장과 윤기를 더해가듯이, 보살핌과 가르침의 은혜로 사랑과 감사가 녹음처럼 두터워지는 푸른달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이 시작되고 문득문득 시간의 타래는 슬렁슬렁 잘도 감겨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짧아진 듯한 봄날의 기온도 여름날 못지않게 불쑥불쑥 오르고 있으니, 세월의 갈퀴 속에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달라지면서 세상이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거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영속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게 되면 만물은 빛이 바래거나 퇴색의 갈피를 면할 수 없고, 물과 바람의 철썩임에 자연물도 마멸과 희석의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의 기억이나 생각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반비례하여 차츰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생각이나 경험에서 비롯되는 사상이나 감정, 지식 따위도 어느 경계를 지나게 되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버리기에 애써 기록으로 남기고 그림이나 형상 등으로 그려 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굴 속의 그림이나 기호, 바위벽에 새겨진 문자 등의 각인물도 좀 더 뭔가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오래도록 남겨서 전하려는 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이러한 측면에서 나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글자나 시문 등도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서사적(書史的)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필적이나 서체연구의 매개가 되어 당대의 풍습이나 문화, 명필의 유행 서체 등을 유추, 분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에 드러난 대부분의 각자(刻字)는 현재 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자연 훼손물(?)로 간주돼 일반인들의 관심이나 학계의 연구대상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바위 글자엔 풍상과 세월의 이끼가 더해져 점차 등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그럼에도 최근 포항지역의 한 서예단체에서는 서예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학술조사로, 포항시 북구 기북면의 유서 깊은 덕동문화마을의 명승 덕연구곡(德淵九曲)의 제2경인 ‘막애대(邈埃臺)’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탁본작업을 실시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막애대는 덕동마을 앞을 흐르는 용계천 한켠의 거북 형상을 한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으로, 막애대 위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보며 심신수양을 했던 곳이라 한다.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막애대 바위가 이번의 탁본작업으로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무심해졌던 것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전통문화와 필적이 깃든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되새김이 필요해 보인다고 본다.

2024-05-28

한국 시조문학의 산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과 어우러진 풍경은 정겨움을 자아내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쉼과 여유를 보여주는 듯하고, 멈춘 듯 흐르는 강물따라 수면에 비춰지는 정경은 한가롭기만 하다. 하늘과 산이 내려앉고 건물이나 사람의 모습까지 얼비치는 강물은 고요히 흐르면서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쓰는 듯하다. 강물을 바라보면 물결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 같고, 깊은 강이 소리 없이(深江無聲) 흐르는 것처럼 한결같이 깊어지며 소리 없이 살아가는 삶의 깊이가 강물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경남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이 휘돌아가는 가좌산 기슭에는 마치 강물이 소리 없이 깊어진 듯한 문향이 한옥의 아취 속에서 창연하게 피어나고 있다. 강물이 쌓이고 쌓여 깊이를 얻듯이, 수많은 근현대의 서책과 시조집, 문예지, 문인들의 육필, 편지, 서화작품 등이 모이고 더해져 마치 문학의 유장한 강줄기를 이룬 듯하다. 그것도 700여년 면면히 이어진, 우리 겨레의 얼과 숨결이 오롯이 담긴 시조 장르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과 유물이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으니, 가히 시조문학의 산실(産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문 문학관인 ‘한국시조문학관’이다. 고려말~조선시대에 간결하게 다듬어져 성행된 고유의 정형시-시조를 새롭게 부흥하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시조시인인 김정희 선생이 11년 전 남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건립됐다.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여 금계국이 피어나는 자연 속에 모두 한옥 4채로 구성된 한국시조문학관은, 시조의 역사와 변천·홍보·다양한 문학행사를 열면서 시조문학의 발전과 깊이를 더해가는 곳이다.즉, 시조의 근현대의 사료적 가치를 집대성해 놓은 주시설인 시경루(詩境樓), 신라의 향가에 연원을 둔 고시조와 별곡, 무곡, 가사 등 시조의 근본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수류화개(水流花開), 진주와 경남지역의 향토문학 근대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숙소로도 이용되는 보문산방(寶文山房) 등의 공간이 전시·열람·체험·교육·세미나 등으로 시조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전통문학을 지키고 가꿔가는 ‘한민족 시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과연 빼곡하게 들어찬 시조집과 문예지를 비롯 김소월의 필적과 미당선생의 빛 바랜 편지, 엽서 등과 문인들의 시서작품을 직접 보니, 오랜 세월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며 준비와 구상, 정리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공과 안목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문학의 종가라 할 수 있는 시조가 외래문화에 떠밀리고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구순이 지났음에도 시조문학의 융성에 온 힘을 쏟고 계시는 김 관장님을 직접 뵈니 경외심마저 들었다고나 할까?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문화대국에는 겨레시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대로 이어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인들과 지자체의 몫일 것이다. 짧고도 명확한 서사구조를 가진 시조를 일상 속에서 즐겨 지으면서 현대인의 감성을 표현하고, 시조 백일장·시화전·낭송대회 등 창의적인 전환의 모색으로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하여 시조의 대중화,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2024-05-21

비 내리는 고향집 마당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신록의 초목 위에 비가 내리니 푸르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면서 생동의 기운이 한껏 왕성해지는 듯하다. 파릇한 잎사귀에 은구슬 같은 빗방울이 자분자분 내려앉으며 은밀한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데, 연두와 초록의 물결 위에 빗금 치며 내리는 비는 싱그럽고 산뜻한 오월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 온종일 쉼없이 녹파(綠波)를 더하고 있다.모처럼 고향에서 비를 맞으니 차분한 감회가 산허리에 걸린 실안개마냥 몽실몽실 피어난다. 아카시아 흰꽃을 적신 비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고, 연록의 숲에서 내리는 빗줄기에서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이십 수년째 빈집으로 남아있는 폐허 같은 고향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넓직한 풀잎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가 맑고 정겹지만 더없이 애잔하게 들린다. 불현듯 빗소리가 들려주는 맴돌이 소리에 유년의 울림 같은 회억이 아스라해진 가슴을 적셔주는 듯하다.상수도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처마끝의 물받이에서 떨어지는 지점에 양동이나 큰 단지를 옮겨와 빗물을 받곤 했는데, 초반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가관이었다. 양동이나 알루미늄 세숫대야 떨어지는 낙수소리는 ‘타다다닥~’ 하며 자지러질 듯 요란하게 들리다가 이내 줄어들고, 단지나 옹기 같은 곳에 떨어지는 낙숫물은 마치 마이크 소리를 내는 듯 깊고 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몇 개의 용기에 빗물을 받으면서 내는 소리는 음계도 없고 음정도 제각각이었지만, 산만한 듯 정겹고 또렷하게 들리는 빗물의 이색적인(?) 연주가 아닐 수 없었다.또한 어떤 때는 또래들과 어울려 빗 속을 헤치며 호박순을 잘라서 만든 대롱을 몇 개 이어 빗물의 흐름을 유도하면서 낙수소리를 듣는 재미에(?) 빠지곤 했었다. 그러다 보면 옷이며 양말까지 담방 비에 젖게 되는 일명 ‘노배기’가 돼서 집엘 오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께선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게 하시며 벙드레죽(수제비)을 쑤어 주시거나 배추전을 부쳐 주시곤 했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의 날궂이 음식으로 파전이나 부추전 따위가 단연 구미를 당기게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들었었던 낙숫물의 리듬에 맞춰 전 부치는 소리가 그렇게 맛있게 피어나던 기억이 갈수록 생생해지며 차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그렇게 빗물을 받아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시면서 비 내리는 날에 수제비나 부침개를 해주시던 어머니께선 초록이 우거진 북망산천에서 땅으로 스미는 빗물을 맞고 계시니 애절하기만 하다. 아카시아나무가 고향집 마당까지 침범하고 담쟁이 넝쿨이 옛집을 에워싸며 스산함과 황폐화를 더해도, 문득 기억 속에 낯익은 낙숫물소리와 정재(부엌) 칸에서 들리던 전 부치는 소리가 엷은 감미로움으로 다가오니 어찌할까나?엷은 안개 속에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비가 음률인 듯 리듬인 듯 귓전을 스치는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그나마 활짝 핀 불두화가 위무인 듯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2024-05-07

5월을 맞으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첫날, 푸른달의 시작이다. 연록의 새순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잎새들의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 산야가 온통 신록으로 넘실대며 푸르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봄 향기 그윽한 꽃이 진 자리마다 잎사귀를 드리우며 차츰 신록이 짙어지니, 벌써 여름날로 향하는 춘하의 경계인 셈이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며 색깔로 오던 봄날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개구리의 울음이 지천에서 들리며 소리로 오는 여름날을 맞이하고 있다.소리로 다가오는 오월은 정겹기만 하다. 자명종마냥 새벽을 깨워주던 새소리가 정겹고, 잦아지는 비가 처마 끝에서 낙숫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다가온다.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이랑에서는 이삭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가 하면, 논배미 무논의 군데군데서 왕왕거리는 개구리들의 혼성 합창이 싫증나지 않게 들린다.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새들이 초록의 외침으로 나부끼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갑갑한 가슴 속을 밝히는데,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경(風磬)의 여운으로 남기는 고운 소리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이렇듯 도처에서 들리고 울리는 소리들로 오월이 열리고 있다. 어찌보면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일상이듯이, 5월에는 유난히 생각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선지 기념일에서 시작하여 기념일로 매듭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을 지나 바다의날, 세계 금연의 날로 마무리되니, 과연 푸르름으로 빛나는 계절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 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그러한 기념일에 으레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소리나 노래, 외침 또는 함성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들의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이는 노동현장의 외침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위한 밝고 맑은 기상의 동요, 은혜를 생각하고 기리는 차분하고 평온한 곡조, 세상의 자비와 광명을 위한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민주화를 부르짖은 절규의 함성 등이 기념일의 곳곳에 잠잠히 배여있거나 묻어나고 있다. 그만큼 소리나 노래, 말씀과 울림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리나 울림이 잦아드는 때, 최근 포항지역의 가인(歌人)들이 시조창의 울림으로 맹활약을 펼쳐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대한시조협회 칠곡군지회가 주최·주관한 ‘구상선생 추모 제8회 칠곡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포항의 시조인들이 2개 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시조창은 우리의 전통 아악(雅樂)인 12율려(律呂)를 바탕으로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를 구르고 감거나 흔드는 동법(動法)을 더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소리의 고저장단이 매끄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울림과 떨림 속에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 고유의 전통 대중음악이다.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과 화법을 가다듬으며 바르면서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는(光而不耀) 삶을 가꿔가면 어떨까?

2024-04-30

초록빛 챙김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식물과 작물, 나무의 잎사귀가 투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생장하며, 사람들은 싱그러운 초록을 만끽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일까?식물이나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얀빛에 포함된 수많은 빛의 색이 나뭇잎에 흡수 또는 방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식물의 광합성작용 시 필요한 파란색과 빨간색 등의 파장이 빛을 흡수하고, 남은 초록빛은 다시 반사되어 우리가 보는 잎사귀의 초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록빛이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다는 의미이며, 다른 빛들 중 초록파장의 빛이 잎사귀에서 가장 많이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사슴이 풀 뜯으며 뒤돌아본다는 건/두려워해서가 아니다/죽음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겨우내 벗은 채 서있던 산의 능선이/초록으로 물든 탓이다/훌쩍 커버린 능선이 등 뒤에서/출렁이고 있는 탓이다//파도처럼 뒤에서 슬픈 사랑이 덮쳐 온다/파도치게 하는 건/길들여지기 전의 일들이다/…./뒤돌아보는 사슴의 눈동자에/눈록(嫩綠)의 함성과 태양의 절기가 담겨있다’ -손창기 시 ‘뒤돌아본다는 것’중에서생명의 나무는 어쩌면 영원한 초록빛이 아닐까 싶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 잎의 빛깔과 같이 연한 녹색의 눈록이나 엷고 여리기만 한 연둣빛의 잎새가 앙증스럽게 손짓하는 나무는, 한 편의 서정시가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 담록이나 황록, 연초록이나 진초록으로 생명의 잔치를 노래하며 신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은 이미 도도한 기운생동의 흥겨운 춤사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초록빛은 싱그럽고 설레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식물에서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초록빛은 건강과 환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절약과 물품의 재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차량운행 최소화, 자전거 타기, 식물기반의 식사 등 친환경 저탄소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모두 초록빛을 꾸준히 챙겨 나가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언제나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자연처럼 쾌적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초록빛은,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탄소중립의 화두를 초록빛 챙김에서 찾아야 하는 다양한 의미이기도 하다.밝은 초록빛 수풀이 투명한 푸른빛 바다처럼 일렁이는 4월의 들판에서, 사람도 나무처럼 영롱한 초록빛이 될 수 없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2024-04-23

자연에서 배우는 협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벚꽃이 폭죽처럼 터지듯 들끓던 민심이 4·10총선으로 표출됐다. 정권 심판론이 우세해서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그러나 언제까지 폭죽처럼 터진 승리에 도취해 자만한다거나, 참패의 충격에 빠져 낙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花無十日紅), 금세 벚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손을 내밀고 잎새들의 잔치를 준비하며 생동하는 봄날의 기운이 왕성해지고 있다.봄꽃은 기후나 주변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필 수도, 한 해 또는 몇 해 건너 필 수도 있으니, 이번의 선거결과가 여야에 있어서 결코 현재나 미래 모습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陰地轉 陽地變) 세상에 영원한 것도,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다. 당락이나 성패, 행불행 따위는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 말이 가는데 소도 갈 수 있듯이(馬行處 牛亦去),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성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꽃자리를 내주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거나 잎새를 불려 나가는 나무들은, 꽃이 많이 피거나 열매를 적게 맺음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액을 길어 올리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성장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초록이나 담록, 진초록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이며 연이어 잎새를 드리우는 것은, 어쩌면 대지의 광활한 캔버스에 봄날의 신명난 붓질로 생명의 조화로움을 채색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대립하거나 반목, 질시하는 일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울리다가 온통 잎새들의 잔치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 올리고 있다.대화와 타협, 조정의 과정이 생명인 정치판에서도 이 같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무수한 잎새 같은 정치인들의 온갖 말이 공염불이거나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어불성설이라면 결코 초록동색의 순리적인 조화로움에 근접하지 못할 것이다.과반을 과신하여 횡포나 전횡을 일삼고 소수에 대한 안배와 양보가 없다면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상생과 협치의 지혜로움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통과 신뢰, 타협과 협력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다면 급기야 자가당착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많은 견해나 요구, 변수로 인해 돌연히 변화할 수 있기에 각종 현안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취사, 조율을 해나가기가 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견제와 균형의 열린 사고로 대화와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 공생과 공동선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의명분과 국익에 보탬이 되는 합일점을 도출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으로 편향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야 말로 주체적인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2024-04-16

내 삶을 바꾸는 선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천에 흐드러지게 봄꽃이 피어났다. 길거리의 꽃물결 마냥 벚꽃이 꽃터널을 이루며 장관을 이루고 있고, 산자락이나 들녘에서는 희끗희끗 불그스레한 꽃더미가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훈풍 결에 손짓하며 반기고 있다. 오랜 시간 다독이고 쟁여둔 응축된 에너지가 일제히 솟아나며 각양각색의 꽃으로 피어나니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듯하다. 막 돋아나는 움과 싹이며 풀잎도 앙증스럽게 환호하고, 벌 나비와 새들까지 합세해 봄날의 향연을 즐기는 듯하다.봄이면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옛 시인은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해마다 사람은 늙어 같은 사람이 아니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읊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마다 꽃이나 나무들도 조금씩 다르게 꽃이 피거나 잎차례를 하며 가지를 벌이게 된다. 기상이변이나 기후변화로 꽃덤불이 홍수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태풍에 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설해를 입어 가지가 부러지는 등의 수난을 당하기도 해서 해마다 피는 꽃자리가 약간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나무의 경우는 멀쩡하게 열매 맺던 가지가 어느 순간 끝부분이 조금 마르는가 싶더니 급기야 가지 째 나무의 수분공급이 중단돼 살아있는 나무에 죽은 가지로 남아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예컨대 감나무의 경우, 주변 나무들의 영향이나 나무 자체의 수형(樹形) 유지를 위해 해마다 새 움이 트는 이맘 때쯤이면 수 십 갈래의 나뭇가지가 다같이 물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가지는 물이 오르지 않고 마른 채 그대로 남게 된다. 어쩌면 나무의 생존법 같은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수종이나 꽃나무에게도 엇비슷하게 적용되는데, 하나의 생물체인 나무도 그냥 무덤덤하게 서있는 것 같지만 스스로의 생명과 영양, 생장, 증식을 위한 자구책으로 취사선택을 하며 살아난다는 것이다.한 그루 나무조차 생존을 위한 취사선택의 자구책이 이러할진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죽 선택이 많으랴. 어쩌면 사람들은 매순간, 매일처럼 발생되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서 나름의 순간적인 판단이나 직감의 결정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에 따라 무의식적이나 의도적으로 취사(取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자신의 생각이나 기준, 관점에 따라 선택하는 결정으로 삶의 향방이 달라지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일상적인 사소한 선택에서 학업이나 직업, 배우자 등의 중차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며, 선택의 결과 역시 자신에게로 귀결된다. 숲 속에 나타난 두 갈래 길은 운명처럼 다가오지만, 인간은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므로 그 가운데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인 한계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자신의 선택으로 삶이 바뀔 수 있듯이, 지역과 나라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뽑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역대 총선 사전투표율이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제22대 4·10 총선에 대한 관심과 심판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명한 선택으로 공생하는 삶이 되길 기대해 본다.

2024-04-09

유채꽃 물결따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확연한 봄의 당도다. 시샘하던 비바람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길가의 벚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앙상하던 가지에 하얀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 꽃터널이 생기고, 연이은 등불마냥 송이송이 피어난 꽃송이가 밤조차 환하게 밝히며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듯하다. 다시 돌아온 새봄이 파릇한 풀빛과 함께 갖가지 꽃빛으로 어우러지니 정녕 봄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길가나 언덕배기에 벚꽃이 한창이라면 강가나 들판에는 유채꽃이 꽃물결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록의 잎과 줄기 위에 샛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은 황록(黃綠)의 어우러짐으로, 멀리서 보면 풀빛 위에 펼쳐진 노란색 양탄자마냥 싱싱함과 산뜻함을 자아내게 한다. 추위를 이기며 지내온 겨울초답게 유채밭의 노란색 꽃물결은, 싱그럽고 선명한 빛깔로 명랑의 안부를 전하며 따뜻한 감성의 노란 물결을 일으키는 듯하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꽃소식으로 유채꽃이 만개하자 전국 곳곳의 유채꽃 명소에는 유채를 느끼고 즐기는 유채꽃 축제로 분주해지고 있다. 벚꽃과 유채꽃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는 ‘서귀포 유채꽃 축제’를 비롯, 전국 최대규모인 창녕군 남지읍의 ‘창녕 낙동강 유채 축제’ 등이 열리면서 상춘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포항지역의 호미곶 바닷가 유채밭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파도가 환하게 일렁이는 이색적인 풍경 속에 풍덩 빠질 수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쉴 새 없이 다가오는/파도의 하얀 안부//드넓게 맞이하며/꽃물결로 화답하는//호미곶//유채밭에는/설렘이 넘실대네//동토의 시간을 쟁여/기대인 듯 희망인 듯//일제히 솟아올라/손짓하며 반기는//노란색//감성의 바다/가슴 속에 어리네’ -拙시조 ‘호미곶 일우-유채밭’ 전문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일원 15만평 규모의 유채밭은 포항농업을 먹거리 생산에서 축제·관광·경관농업으로 다변화시켜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조성됐다. 계절별 특색 있는 작물이나 화초를 심어 경관과 체험을 곁들인 축제형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는데, 봄에는 유채꽃과 여름의 유색보리·해바라기를 비롯 가을에는 메밀꽃과 해바라기 등의 경관이 두드러진 명소로 자리매김해서 철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또한 호미곶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과 대보등대박물관, 한흑구 문학관, 청포도 시비 등과 연계된 스토리 테마파크를 구성해 관광산업육성에도 크게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과연 휴일의 이른 아침에 둘러본 호미곶 유채꽃은 소리없는 외침으로 탐방객을 반기는 듯했다. 초록의 캔버스에 점점이 아롱지는 노란색의 현란한 유희 너머 짙푸른 바다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수평선의 절묘한 안배는, 한 폭의 그림 그 이상의 감동이 여울지는 듯했다. 유채꽃물결의 둘레마다 수 갈래 밭두렁이 감성의 오솔길로 열리고, 너른 들판의 주인인양 고고하게 서있는 노송의 자태에서는 한 편의 시가 그림처럼 어리고 있었다. 탐방로 군데군데 포항에서 걸출한 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흑구 한세광 선생의 수필과 시를 발췌해놓은 작은 명판도 한결 어울려 눈길을 끌고 있었다. 노란색의 안부가 물결치는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는 농촌과 탐방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2024-04-03

생동하는 봄날처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색채로 다가오던 봄날이 비의 리듬까지 더해져 생동감을 부추기고 있다. 남도의 매화꽃을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꽃의 샛노란 반김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희끗희끗 조금씩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의 망울을 일제히 일깨우듯 봄비가 내리니, 멀지 않아 촉촉해진 대지에서는 한바탕 자연만물의 춤판이나 소리판이 어지간하게 열릴 것만 같은 모양새다. 흐르는 꽃향기 따라 벌, 나비가 날아들고 수시로 지즐대는 새소리에 산골의 여울물 소리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뭔가 심상찮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지 않을까 싶다.그렇게 오는 봄날은 왈츠풍의 리듬으로 만물을 깨우면서 서서히 생동의 향연을 펼치게 될 것이다. 생동하는 리듬감은 음악의 악보처럼 매끄럽고 활기차며 탄력과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흐르는 물은 개울의 얕고 깊음이나 좁고 넓음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다가 마치 연주하거나 노래하듯이 엷거나 또렷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게 된다. 그러한 흐름과 작용을 자연에서 터득하거나 모방하고 변용하여 새로운 선율과 리듬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일종의 예술이나 창작의 행위도 그러한 관점의 배경이나 응축의 과정을 거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닐까?‘먹과 벼루의 부대낌/음률처럼 들리더니//이윽고 신명나게 붓의 춤판 거침없다/크고 작다가 강하면서 약하고 느린 듯 빠르고 성글다가 빽빽하게/길거나 짧고 가벼운 듯 무겁고 얇다가 깊고 살찌거나 앙상하게/…./휘어질 듯 곧추서고 날아갈 듯 멈칫하며 끊어질 듯 이어져/석간수로 노래하다 폭포수로 쏟아지고 장류수(長流水)로 흐르는데….//먹빛이 가락을 타고/지축을 뒤흔드네’ - 拙사설시조 ‘붓의 춤’ 전문봄은 어쩌면 춤을 닮았기에 용수철처럼 톡톡 튀어 오르는 탄성이 있어서 스프링(Spring)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새싹들이 메마른 대지 여기저기서 음표마냥 쏙쏙 솟아오르고, 새 움이며 봄꽃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며 봄의 생동을 축복하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생기발랄하게 움직이는 봄의 춤사위 같기도 하고, 기운생동하는 서예작품의 거침없는 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리저리 활개치며 신명나게 춤판을 벌이는 몸동작 마냥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筆歌墨舞) 듯한 현란하고 활달한 붓질로 일필휘지 자연의 명작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그렇듯이 자연과 교감하는 예술은 상호작용으로 일맥상통하기에 공감과 울림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적인 교집합을 인식, 조명하여 상생의 아이템으로 확장, 융합시켜 나간다면 예술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예컨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예가가 빗자루붓을 들고 특유의 춤동작을 곁들이며 진중한 휘호 퍼포먼스를 펼친다거나, 춤꾼이 몸짓 언어로 외치는 이색적인 춤사위에 어울리는 시낭송이나 기타의 요소를 가미하게 되면 스토리와 운치가 한결 품격 있고 유장해지지 않을까 싶다.희망의 색과 환희의 빛으로 세상이 생동하는 때, 저마다의 습성과 기대로 새봄을 맞이하자. 움직이고 활동하며 봄을 즐기는 만큼 선물 같은 하루가 열리고, 애써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생동감 있는 리듬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2024-03-26

이국에서 맞는 봄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 마중이 한창이다. 산수유와 매화나무는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남도에선 목련꽃의 하얀 자태가 이른 봄의 전령(傳令)인 듯 서서히 피어나며 멀지 않은 봄날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만물이 다가오는 봄날을 채비하고 있는데, 아직도 겨울잠에서 못 깨어난 듯 동토의 계절엔 하얀 눈이 날리고 수십 차례 내린 눈의 층계가 만년설 마냥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면? 남극·북극이면 극지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그러한 곳이 있다면 의아심과 함께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것이다.그렇게 떠난 곳이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마름모꼴의 섬으로 대한민국 면적의 약 80%에 달할 정도로 크고 위도 상으로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비슷하며, 동쪽과 북동쪽에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인접해 있다. 홋카이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과 문화 등이 각각 달라서 오키나와 지역과 더불어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관광과 거주하고 싶은 지역 1위를 나타나는 이국적인 특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또한 고위도(북위 41~45°)에 위치해 섬 전역이 한랭하고 냉대 습윤기후가 나타나 겨울철에는 추위가 매우 심한 폭설지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3월의 눈구경은 드물고 강원도 등 일부 산악지대에 눈이 짧게 내렸다가 금세 녹기도 하지만, 홋카이도의 겨울철에 내려서 쌓인 눈은 이듬해 4월까지 가는 등 강설이 잦고 설경이 아름다워 우리나라를 비롯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떠났었는데, 과연 북해도에 당도한 첫날부터 함박눈이 펄펄 내리니 이방인의 심경이 오죽했으랴.‘따사로운 삼월엔/가지마다 물올라//망울이 부풀고/잎새가 도드라지는데//여태껏//동면 꾸러기//옴짝달싹 못하는 곳//설마하고 떠난 걸음/듬성듬성 손내밀다//저녁답 때를 맞춰/수만 꽃잎 나부낌//수 천리//이방객을 반기며//갈채로 내려앉네’-拙시조 ‘이국에서 맞는 봄눈·Ⅰ’ 전문정말 설국(雪國)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눈길 머물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백색의 세상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희끗희끗한 잔설의 여운이 아쉬운 듯싶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펑펑 쏟아지는 눈발은 유객(遊客)의 심사를 한결 설레게 하고 동심에 빠져들게 했었다. 실로 몇 십년만에 눈 다운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거닐어 보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은 설경에 젖어 들어 눈밭을 뒹굴거나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온갖 포즈를 취하며 눈의 환희를 만끽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이렇듯 일상을 벗어나면 도처에는 뜻밖의 행운이나 우연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畵中之餠)일 뿐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여행의 즐거움도 어디론가 떠남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행복’이 여행이라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즐기는 자유여행은 단순관광 그 이상의 매력과 묘미를 안겨다 줄 것이다.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저녁의 설렘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2024-03-19

봄의 이끌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약간 움츠렸던 봄이 다시 기지개를 켜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생동의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 양지 바른 언덕엔 새파란 풀잎들이 바람에 하느작거리고, 남도에선 홍매, 청매의 꽃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산수유 꽃망울이 샛노랗게 피어나며 오는 봄을 반기고, 물오른 가지마다 봉긋한 움과 싹이 도드라져 새봄의 향연에 망울을 터트릴 태세다. 무덤덤하던 무채색의 대지에 노랑이며 빨강, 초록색의 봄빛이 조금씩 아른거리며 이른바 계절의 붓질이 시작되고 있다.산과 들의 채색으로 오는 봄과 함께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이 맘 때가 되면 빳빳한 새 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넘기면서 책 속에서 배어나는 잉크 가득한 냄새를 맡으며 마냥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새롭게 배울 책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한 학년 더 올라간다는 희열감(?)에 사로잡혀 맡는 특유의 책냄새는 꽃내음보다 향기롭고 진했던 것 같다. 한 살 더 먹으며 새로운 책으로 공부하고 형이나 누님들처럼 어서 빨리 자라 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동화 같은 초등시절이었다고나 할까?“입김으로 호호호/유리창을 흐려놓고/썼다가는 지우고/또 써 보는 글자들/봄 꽃 나비//봄아 봄아 오너라/어서 오너라/봄이 되면 나는 나는/새로 사학년/내 마음엔 벌써/봄이 와 있다//봄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가자/노랑 봄을 찾아서 산으로 가자/파랑 봄을 찾아서 들로 나가자” -양해광의 수필 중 작자 미상의 동시 ‘봄 꽃 나비’ 전문벌써 50년도 더 지난 듯하지만,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말 무렵이었던가?국어시간 교과서의 맨 마지막 단원에 실린 동시(童詩)가 요즘 같은 봄날이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됨은 어인 일일까?큰 고갯길를 넘나들며 10여리의 등, 하굣길에 뻔질나게 외우고 외치며 즐겨 읊었던지 요즘도 술술 나올 정도다. 외운 것에 지나지 않고 큰 네 모 칸이 그려진 공책에 연필로 삐뚤삐뚤 즐겨 쓰곤 하면서 밤낮없이 ‘봄 꽃 나비’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그러고보니 그 당시엔 필자도 모르게 어린 마음에 무엇인가에 이끌려 외우고 종이에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었나 보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책에 처음으로 나오는 시조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를 비롯 교과서에 실린 시조를 십리 길 학교에 오가는 길에 거의 다 외우고는 또래들과 시조 외우기를 재미삼아 했는가 하면, 다보탑 그림이 초록색 판화로 찍혀진 듯한 ‘오늘의 일기’ 일기장을 학교 내 문방구에서 사서 거의 매일 일기를 쓰거나 그날 외운 시조를 적을 정도였으니, 과연 딱히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과 즐김이 그때부터 싹튼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그러한 습성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강산이 몇 번씩 바뀐 현재까지도 줄곧 이어지는 듯하니 막연하게 좋아하던 것에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움과 싹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스프링(Spring)처럼 약동하는 봄날, 자신의 즐길 거리로 희망찬 새봄을 맞이하자.

2024-03-12

봄 마중 섬 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 마중을 하듯이 새벽같이 남도로 향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이라 이런저런 봄 채비로 바빠도, 통영에서 불어오는 봄빛 바람을 쐬니 부드럽고 여유롭기만 했다. 기온이 살짝 올라가는 틈을 타 미세먼지가 복병처럼 도사려 안경에 서린 김 마냥 시야를 희뿌옇게 하는가 싶었었는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갈수록 해풍의 희석 때문인지 수평선과 섬들의 전망은 대체로 선명한 편이었다.갈매기들의 어설픈 외침이 환호처럼 들리고 바다의 흰 포말이 배웅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달려 접안한 곳은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연화도(蓮花島)였다. 경남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 해상에 위치한 연화도는 말 그대로 연꽃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북쪽 바다에서 바라보는 연화도의 모습은 꽃잎이 하나하나 겹겹이 봉오리 진 연꽃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 섬 중앙에 연화봉(212m)이 솟아 있고 동남쪽 해안에는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여 연화포구를 둘러싼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용이 대양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습의 용머리 바위가 통영8경의 하나일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연꽃 고이 접어/물 위에 띄어 놓고//자비로운 부처님/품 안에 안고//망망대해/흘러흘러 와 자리잡고//오늘도/누구를 기다리나//물 위에 떠 있는/연꽃잎’ - 최용순 시 ‘연화도’ 전문연화도항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연꽃잎 속으로 스며들듯 서서히 등산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길이 만만찮았지만, 이내 연화도항과 북쪽의 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서 숨결을 고르며 조망하는 경관은 섬산행의 설렘을 부추겼다. 울산과 마산 등지에서 왔다는 등산객들로 한적한 등산로가 붐비고,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대화하며 오르다 보니 금세 정상에 이르렀다. 넓직한 연화봉 정상에는 보기 드물게 아미타대불이 연화사를 향해 우뚝 서있고, 그 뒤로는 활달한 행서체의 주련이 걸린 팔각정이 망망대해의 운치를 더해주는 듯했다.정상에서 동남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용머리 해안은 연화도 절경의 압권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하얀 파도의 포말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고, 올망졸망 이어지는 연화열도는 마치 승천하려는 용의 용틀임같이 힘찬 기세를 모으는 듯했다. 반대쪽인 용두마을의 해변은 밋밋하고 고요의 바다에서 파도 한 점 일지 않아 길쭉한 용머리 능선을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의 양면성은 이렇듯 보채거나 서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 품고 보듬으며 제각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사회에서는 매양 매시 바람 잘 날 없이 아웅대고 티격거리며 갈등양상이 멈추지 않으니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는 도(道法自然)’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수년 전 주마간산 격으로 다녀온 연화도를 다시 찾아 산행과 아울러 싸목싸목 걸어가며 주위를 살피니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았음에라! 산이나 강, 섬이나 뭍을 찾는 곳 어디에나 늘 반기며 기댈 수 있는 심신의 안식처, 자연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병원과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망중한의 여유로 자연을 즐겨 찾자.

2024-03-05

올 듯 말듯, 필 듯 말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을 맞으며 설경 속을 거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고향 근처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수십년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이 어릴 적의 추억을 소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언어의 몸짓으로, 무언의 함성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근래 봄비가 잦아들어 벌써 봄인가 싶었었는데 마치 겨울을 환송이라도 하듯 춘설이 나부끼니, 마음은 솜털 마냥 포근했었다고나 할까?짧게나마 내린 눈과 잎샘추위가 잰걸음으로 오던 봄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벌써 산골짝에서는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뒤뜰의 청매가 진한 향기를 내뿜기 시작해도 아직 봄이 오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순탄하고 순조롭게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은 봄은, 새침데기 아가씨마냥 이리저리 망설이며 시치미를 떼고 올 듯 말듯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그만큼 겨울은 끈덕지고 봄날은 인고를 거쳐야 오는 것이리라.‘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춘설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조선시대 평양 기생 매화(梅花) 시조얼핏 읽어보면 옛날에 피었던 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따스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지만, 때아닌 봄눈으로 봄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시조는 평양 기생 매화가 연적(戀敵) 동료 기생 춘설(春雪)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원망하며 지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자신의 늙어진 몸으로 비유되는 고목에 매화가 다시 피어나길 바라면서 자기 이름과 꽃의 이름을 이중의 뜻이 되게 한 중의법(重義法)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조는, 고목 등걸에도 꽃이 다시 피어나듯이 옛적에 교유했었던 정든 이들이 다시 올 듯도 하지만, 때아닌 봄눈이 어지럽게 흩날려 세상이 복잡해졌으니 못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적인 의미로도 풀이된다.바야흐로 40여 일 앞둔 총선으로 정국이 때아닌 봄눈 마냥 어지럽고 뒤숭숭한 모양새다. 연일 끊이질 않는 공천경쟁에 온갖 파문이 일고, 제3지대 신당의 이합집산으로 향방이 주목되는가 하면, 악의적인 딥페이크 콘텐츠 등장과 선심성 정책발표 등 하루하루 점입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각각의 정당과 출마자들에게는 아직 올 듯 말 듯한 봄이지만, 저마다 벅차게 맞이할 봄날을 믿고 준비하며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듯하다. 정당정치의 관건인 공천을 위해 타협하고 양보하며 새로운 줄을 서고 온갖 기를 써보지만 여전히 관문은 낙타구멍이니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공천의 꽃망울이 어렵사리 맺혔다 해도 당선이라는 꽃은 끝끝내 조마조마 필 듯 말 듯할 것이다. 여와 야가 격돌하고 보수와 진보, 관록과 신예가 대항하여 소신과 비전을 관철시켜야 봄꽃으로 일어설 것이다. 냉혹함이 난무하는 올 듯 말 듯한 봄날에 필 듯 말 듯한 망울이지만, 진실과 정의, 공정과 희망의 꽃은 투표로 환하게 피어날 것이다.

2024-02-27

기룡산 봄맞이 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산골 어디메쯤 매화향기 날리는 마을을 지나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가서 고지대에 자리잡은 묘각사(妙覺寺)에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14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와 동해 용왕의 설화가 서린 묘각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곳으로, 의상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한다. 그러고 보니 산 아래는 용화동·삼매동·정각동 등 불국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이 많아선지 산골 전체를 절골이라 부르기도 한다.영천시 자양면과 화북면 경계에 있는 기룡산 중턱의 묘각사를 창건할 당시 의상에게 법문을 듣기 위해 동해의 용왕이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던가?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일행은 차를 타고 달려와 용의 잔등을 타듯이 서서히 산을 올랐다.초입부터 약간 가파른 길이라 완급을 조절하며 숨 고르기 하듯 쉬엄쉬엄 올라 이내 능선에 당도했다. 한겨울을 지낸 산인가 싶을 정도로 능선엔 발목 높이 이상으로 낙엽이 수북했고, 간간이 주변에 설해목이나 고사목이 나타나 범상찮은 산세임을 보여주는 듯했다.북향의 능선으로 좀 더 오르니 등산로는 동쪽으로 꺾어지면서 주변의 탁 트인 조망이 들어왔다.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한 쾌청한 날씨에 비교적 순탄한 능선을 걸으며 좌우로 펼쳐진 전경을 눈에 담는다는 것은,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서북쪽으로는 보현산 천문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그 옆으로는 포항시에서 가장 높은 면봉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베틀봉, 수석봉 등이 연이어져 있었다. 또한 남서쪽으로는 대구 팔공산까지 선명하게 보이는가 하면, 멀리 영남알프스가 희뿌연 운해 위의 섬처럼 코발트빛 실루엣으로 겹겹이 드리워진 장관을 연출했다.그 뿐만이 아니었다. 능선 북쪽의 응달진 곳의 잔설을 밟으며 올겨울 처음으로 눈구경도 하고, 이끼 위의 잔설이 녹아내려 수정 같은 고드름이 밤낮으로 자라 빙벽으로 이어지는 그림같은 능선길에서 산객의 발걸음은 한참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요즘 보기 드물게 파릇한 이끼를 덮은 얼음과 끝자락에서 마치 용의 뒷덜미 마냥 날카롭게 돋아난 고드름을 대하니 불현듯 스쳐가는 시상이 떠오르기도 했으니….“말처럼 달려온 용왕/의상의 묘한 법문에//홀연 깨달음 얻어/승천하여 살피더니//온 들녘 메마른 염원/단비 뿌려 적셨다네//잔설이 머물러서/외려 파릇한 이끼//거울 같은 고드름/용왕의 숨결 마냥//기룡산 마루터기에/감로수로 어리네” -拙시조 ‘기룡산 이끼 고드름’ 전문이윽고 다다른 정상에는 온 사방 능선과 연봉들이 기룡산을 위시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망졸망 울퉁불퉁 용의 등같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망무제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원근감의 수묵화에 젖어 들어 쾌재를 부르고 찬탄하다 보니, 어느새 용의 기운(?)이 몸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모종의 희열감이랄까? 쾌청한 날 봄맞이 산행으로 올해 다짐한 ‘매월 1산행’의 약속이 지켜져서 다행스럽고, 설렘과 호기(豪氣)로 이어질 다음 산행이 은근히 기대된다.

202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