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첫날, 푸른달의 시작이다. 연록의 새순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잎새들의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 산야가 온통 신록으로 넘실대며 푸르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봄 향기 그윽한 꽃이 진 자리마다 잎사귀를 드리우며 차츰 신록이 짙어지니, 벌써 여름날로 향하는 춘하의 경계인 셈이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며 색깔로 오던 봄날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개구리의 울음이 지천에서 들리며 소리로 오는 여름날을 맞이하고 있다.소리로 다가오는 오월은 정겹기만 하다. 자명종마냥 새벽을 깨워주던 새소리가 정겹고, 잦아지는 비가 처마 끝에서 낙숫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다가온다.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이랑에서는 이삭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가 하면, 논배미 무논의 군데군데서 왕왕거리는 개구리들의 혼성 합창이 싫증나지 않게 들린다.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새들이 초록의 외침으로 나부끼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갑갑한 가슴 속을 밝히는데,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경(風磬)의 여운으로 남기는 고운 소리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이렇듯 도처에서 들리고 울리는 소리들로 오월이 열리고 있다. 어찌보면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일상이듯이, 5월에는 유난히 생각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선지 기념일에서 시작하여 기념일로 매듭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을 지나 바다의날, 세계 금연의 날로 마무리되니, 과연 푸르름으로 빛나는 계절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 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그러한 기념일에 으레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소리나 노래, 외침 또는 함성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들의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이는 노동현장의 외침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위한 밝고 맑은 기상의 동요, 은혜를 생각하고 기리는 차분하고 평온한 곡조, 세상의 자비와 광명을 위한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민주화를 부르짖은 절규의 함성 등이 기념일의 곳곳에 잠잠히 배여있거나 묻어나고 있다. 그만큼 소리나 노래, 말씀과 울림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리나 울림이 잦아드는 때, 최근 포항지역의 가인(歌人)들이 시조창의 울림으로 맹활약을 펼쳐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대한시조협회 칠곡군지회가 주최·주관한 ‘구상선생 추모 제8회 칠곡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포항의 시조인들이 2개 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시조창은 우리의 전통 아악(雅樂)인 12율려(律呂)를 바탕으로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를 구르고 감거나 흔드는 동법(動法)을 더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소리의 고저장단이 매끄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울림과 떨림 속에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 고유의 전통 대중음악이다.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과 화법을 가다듬으며 바르면서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는(光而不耀) 삶을 가꿔가면 어떨까?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