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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길거리로 나온 민심의 파도마냥 만리 이랑을 달려온 파도가 뭍에 가까워지면서 방파제며 갯바위, 자갈, 모래톱에 사정없이 부닥치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육지의 안부가 궁금해 늘 가볍게 찰랑거리던 몸짓으로 다가오던 파도가 최근에는 격정을 못이긴 듯 거칠게 밀려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하다. 파도와 물결은 바다의 숨결처럼 늘 살아있고 깨어 있는 가슴으로 출렁대다가, 때로는 무언의 신음 마냥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항변할 때가 있다. 어쩌면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는 바다환경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한 일종의 항거일까? 주위를 조금만 관심있게 살피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합리하게 왜곡되고, 심각할 정도의 문제와 모순 같은 현상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로, 특히 해양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는 과거 수십년 전부터 제기된 이슈로 전세계가 공감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편리함을 주는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장기간 분해되면서 물고기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인간의 건강마저 위협하게 되는 환경 저해물질이다.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의 대규모로 태평양에 떠돌아다닌다는 이른바 ‘플라스틱 섬’의 실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상아로 된 당구공의 ‘친환경’ 대체물질로 150여 년 전에 개발된 플라스틱이 현재는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밀접해지고 쓰임새가 많아진 플라스틱이 바다와 육상을 막론하고 오염문제와 환경문제를 유발하여 삶을 위협하고 있으니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지구환경을 되돌려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이상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가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과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협약 체결 및 강력한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 재사용, 포장재 줄이기, 리필재 사용 확대 등의 실천으로 플라스틱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여 오염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으로, 지난 11월 23일 한국 그린피스 주관으로 세계 16개 환경단체들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촉구 행진이 열렸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등 30여 명이 동참하여 ‘플라스틱 이제 그만(No More Plastic)’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캠페인에 합류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분해에 5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매년 4억t 이상의 플라스틱을 생산하는데 세계 정부와 기업이 나서 플라스틱 재질 개선과 생산량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내 플라스틱 산업 역시 생산 감축을 기반으로 다회용기·재사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다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이 아닐까 싶다.

2024-12-17

비운의 용두사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2024-12-10

매듭달의 비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벌써 끄트머리달로 접어 들었다. 늦더위와 늦은 단풍에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첫눈을 경계로 여지없이 겨울로 바톤터치하며 낙엽으로 사그라들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한 해의 자취를 마무리하는 이른바 ‘매듭달’로 이어져 그 어느때보다 바쁘고 일들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연초부터 이래저래 계획한 일들과 잡다하게 벌려 놓은 일이며 연말까지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보고·정산·결재·마감 등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계 등으로 누구라도 동분서주가 무색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그만큼 한 해의 매듭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구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해의 마무리와 결산, 모임 등으로 부산해지고 일손이 많아지는 때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터지게 된다면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와 손실을 초래하고 주체하기 힘든 변고에 빠지게 된다면?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이 쏟아지고 단체적인 움직임에 시달리게 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같은 일들은 현재 포항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안타까운 실제 상황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쇳물 생산공장에서 정상적인 조업 중 원인불명의 설비사고로 대형화재가 발생, SNS와 방송뉴스를 타고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긴급복구 비상조업 중 2차적인 폭발성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설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등 복원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바다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부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모 단체에서는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을 볼모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포스코노동조합이 임금협상 결렬로 12월 초 포항 본사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개최하자 창사 56년 만의 첫 파업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가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지역 경제계와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상생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3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시황 불황으로 최근 포항제철소 공장 두 곳을 폐쇄하고 공장 화재까지 잇따른 악재에, 노조의 쟁의행위권 확보로 파업 출정식까지 강행하는 등 극도의 불안과 심각한 위기가 지역경제 침체로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기만 하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것(患難相恤)이 지혜와 상생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상호존중과 상생협력으로 원만하게 협상하고 타결하여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매듭을 잘 맺고 풀어야 온전한 마디가 생겨나고, 더 큰 매듭과 마디로 더 큰 성장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미진하고 부족했던 일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따스한 온기 스미는 갑진년의 값진 매듭짓기를 기대해 본다.

2024-12-03

‘꿈틀로’ 테마전시의 새로운 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곱게 물든 잎새들이 소슬한 바람 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떨어져 길바닥이며 나무 둘레마다 ‘낙엽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하다. 미련 없이 나뭇가지를 떠나는 잎사귀나 시들고 메말라가는 풀잎이 공허하거나 초췌해보이지 않는 것은, 조락으로 동장(冬藏)을 대비하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심의 가로수나 쉼터 같은 소공원의 군데군데 심겨진 나무들이 회색빛 도시거리의 칙칙함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노란 은행잎이 일제히 손 흔들며 행인을 반기는 것 같고,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들이 계절감을 상기시켜며 자신을 일깨우는 듯하다.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거나 관점을 달리하면 보여지고 다가오는 것들이 색다르고 다양한 일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생활 속의 작은 발견이랄까, 사소함에 대한 관심이랄까, 눈여겨 주변을 살펴보면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이고 하찮은 것들도 대수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길거리 조형물이나 예술품, 작은 갤러리나 공방에 전시된 아기자기한 작품들 따위다. 무심코 지나치면서 눈길이 가는 간판의 디자인이 독특하게 여겨지고,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풀 한포기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줄 때가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익숙한 듯 낯선 풍경과 심미적인 감성을 부추기는 일들이 간혹 나타나게 됨은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 포항 육거리 일대 꿈틀로 예술거리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포구다방 프로젝트’ 전시회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통의 문제를 저마다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기에 충분한 테마 전시회로 여겨진다.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 ‘2024 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11월 20~30일까지 꿈틀로 일대 청포도다방, Space 298 등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경북도의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테마별 시화, 그림, 사진, 도예 등의 예술작품을 스토리와 곁들여 특색 있고 다채롭게 선보여 한층 눈길을 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처한 현실과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퇴색과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예술적인 접근으로, 잊혀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발견하고 이를 역사와 지역성을 살린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간다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즉, 예술적 실천의 무대를 위한 장소의 재생, 협력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문제해결, 지역민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체계화·담론화시켜서 문화예술활동의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담보하고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원도심의 낙후성 극복과 포항지역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구심점으로 2016년부터 자리잡은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 이와 같은 테마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은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고 활기를 더해주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뭇잎들의 채색으로 스산한 길거리가 조금은 아름다워지듯이, 가까이에서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예술의 향기가 곳곳에서 피어난다면 한결 품격 있고 아름다운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저력이자 선봉이다.

2024-11-26

수상(受賞)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몇 일새 뚝 떨어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로의 플라타너스 넓은 잎이 포도(鋪道)에 뒹굴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50여 일밖에 남질 않았으니, 찬바람이 불기 전에 겨울 채비를 하면서 지나온 날들과 주변을 살피고 챙기며 결산을 해야 하는 모종의 암시(?)를 내리는 듯하다.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려왔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와 자취를 더듬어 한 해의 활동과 공과를 정리하고 결산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연초에 계획하거나 목표로 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근사치나 달성치를 가늠해보는 것은 내심 관심거리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1년 동안의 삶의 궤적을 반추하고 확인해보는 일종의 체크 리스트나 자기진단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1년 농사’를 어떻게 지었느냐에 대한 작황을 생각해보는 성찰의 시간 같은 것이다. 이런 과정이나 절차를 거치면서 해마다 ‘삶의 농사’는 노력과 실천에 따른 공과(功過) 득실로 환산되어 자신의 삶이 풍부하고 윤택하게 가꿔지는 것이리라. 개인적인 삶이 이럴진대, 어떤 조직이나 단체, 기업이나 기관 등의 경우에는 보다 체계화되고 실질적·합리적인 장치에 의해 공적이나 유공을 파악, 추천하여 심사와 검증과정을 거쳐서 포상 또는 표창을 하게 된다. 즉 ‘상을 준다’는 것으로, 상(賞)이라는 것은 잘한 일을 격려, 칭찬하고 그 일을 장려하기 위하여 주는 물질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은 선행·공적·미기(美技)·실력·능력 등을 칭찬하고 사회에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모범적이고 사회공공적이며 교육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은 광범위한 정부의 포상제도에 따른 훈장과 포장을 비롯, 사회의 각 기관·단체들도 각종 상급규정을 마련, 시상을 하고 있다. 또한 문학·미술·음악·학술·체육·과학·언론·사회봉사·출판 등 각 분야에 걸쳐 포상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민속제와 민속대회 및 각종 공모·공연·경기에도 상을 걸어 수상자를 뽑고 있어 상의 분야와 종류 면에서 아주 다양하다. 이처럼 상이 극도로 다양화·다종화 되고 상금과 부상도 대규모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열정을 쏟아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점 등이 오늘날 우리나라 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달 여 전,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반가운 기별 마냥 도처에서 들려오는 이러저러한 수상 소식이 한해의 소중한 결실로 나타나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각종 문학상을 비롯 문화상이나 작품상, 봉사상, 선행상 등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정성과 노력을 다한 증표 마냥 빛나고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수상은 그만큼 대내외적인 의미가 크고 파급력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상금의 액수나 권위, 명예 등을 가늠해서 수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이 있기까지 수상자만의 남모를 인내와 땀방울, 숱한 고초가 쌓인 내공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4-11-20

마음의 숨결 같은 시 낭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이면서 초겨울인 11월. 가을의 끝자락이 비로소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이다. 어중간하다 해야 할까, 머뭇거린다고 해야 할까, 보내기 싫은 사람처럼 아직은 잡고 싶은 가을이고, 선뜻 맞이하기엔 이르고 낯선 계절이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하다. 산자락엔 아직도 초록의 잎새들이 진을 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산마루에서 하루가 다르게 번져오는 꽃불의 위세(?)에 잔뜩 긴장하는지도 모른다. 조락(凋落)의 초목이 무언의 곡조를 타며 장고(長考)에 들어가고, 새들은 비껴서 날아오르며 음표를 그리는 듯하니,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것들이 어쩌면 모두 시(詩)의 결이고 여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시인의 생각은 한이 없어라(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고 읊었던가. 시의 날(11월 1일)로 시작된 11월이 시의 향기 속에 나날이 깊이와 울림을 더해 가고 있다. 11월 들어서 시를 읽고 노래하며 시낭송을 즐기는 행사가 유난히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제37회 ‘시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시낭송과 무용, 시집·시 카드 배부 등 푸짐한 시 나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고, 부산에서는 이번 주말 전국 시낭송대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시낭송 콘서트가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시를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의 의미와 여운을 목소리의 음색과 영상·음향효과로 표현하는 시낭송이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포항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시낭송 콘서트와 보기 드문 시조창 발표회까지 열리게 돼서 한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대한시조협회 포항시지회가 주최·주관하는 제6회 시조창 발표회는 회원들이 평소 갈고 닦은 시조창 솜씨를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로, 20여명의 회원들이 장구와 대금의 반주에 맞춰 평시조·우시조·각시조·남창질음·여창질음·엮음질음·시창 등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를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르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을 구성지게 수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포항시낭송가협회와 맥시조문학회가 콜라보로 마련하는 ‘詩가 되어 밀려오는 삶의 바다’ 시낭송 콘서트는, 바다와 어촌 주제의 맥시조 회원의 창작시조를 시낭송과 시창, 시극으로 다양하게 각색, 연출될 것으로 보여져 시낭송의 매력을 더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번 시낭송 콘서트에는 맥시조 회원 3~4명도 출연하여 시낭송을 함께 하고, 또한 공연장 입구에서는 맥시조 회원들이 지난 여름날 손수 그리고 쓴 시화작품도 반짝 전시될 예정이라서 한결 이색적이고 푸짐한 시 나눔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활자로 된 시나 시조를 목소리의 예술로 표현하고 노래로 부르는 것은 시의 근원적 본질이자 전통인 노래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시조의 운율 속에 내재된 음악성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리듬과 고저강약의 장단을 맞춰서 유창하게 낭송하고 시조창으로 부를 때, 시적인 감흥과 생명력이 살아나 낭송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항상 열려 있고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귀를 통해 마음의 숨결 같은 시낭송으로 시의 묘미를 흠뻑 느껴보면 어떨까.

2024-11-12

공공시설을 아름답게 가꾸는 손길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서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심을 가로 지르는 포항철길숲 길가로 줄지어 선 나무들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저어가니, 붉거나 누런빛을 띈 잎새가 간간이 떨어지며 반기는 듯하다. 한결 선들해진 날씨에 여행을 떠나거나 활동하기에 편한 계절, 아침 일찍 자전거 두 바퀴를 한 시간여 굴려서 당도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 끝 해안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환호공원 내 물의공원 입구다. 챙이 넓은 파란 모자를 쓰고 연청색 조끼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물의공원 벤치에 모여들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 쪽 도로변에는 삽과 곡괭이, 호미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관목류의 묘목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걸 봐서는 묘목을 심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여겨졌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단장인 듯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오늘의 작업내용과 일정 등에 대해 안내하고, 초청한 조경전문가가 관목류 식재방법과 요령, 주의점 등에 대해 실습을 곁들인 현장교육을 진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의 ‘제80차 환호공원 가꾸기’ 자원봉사활동의 시작 모습이다. 이어 30여명의 봉사자들은 각각 삽이나 곡괭이, 호미 등을 들고 흩어져 익숙한 듯 재발리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심게 되는 나무는 하얀꽃·분홍꽃 진한 향기가 은은히 피어나는 원예종 ‘꽃댕강나무’이다. 수종이 다소 생소한 것 같지만 ‘평안함’이라는 꽃말로 학교나 공원, 공공건물 등지의 진입로 유도식재로 많이 심게 되는 덤불형 관목이다. 봉사단원들은 3~4개팀으로 나눠서 땅파기와 골 타기, 나무 심기, 흙 북돋우기 등의 과정을 분담해서 손발을 맞춰가며 순조롭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가던 많은 관광객들은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에 감사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프랑스에서 왔다는 3명의 여성들은 ‘볼런티어 원더풀(Volunteer Wonderful)’을 연거푸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은, 지난 2021년 11월 포스코에서 사회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전국적인 핫플레이스 ‘스페이스워크’ 개장과 함께 출범, 초창기에는 스페이스워크 방문객들의 조형물 이용 안내와 안전유지, 주변 환경정화 등의 활동을 실시했었다. 그러다가 봉사단의 의미와 활동범위를 확장시켜 환호공원 전역과 포항운하 시설물까지 포함하여 곳곳의 미관개선과 편의성 증대를 위한 보행로 주변 화단조성 및 녹지대 명패관리 등 필요한 개소에 맞춤형 활동을 펼침으로써 공공시설물의 가치와 실질적인 유지보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와 여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포항 최대 규모의 공원을 더 깨끗하고 편리하게 가꿔 나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아름답기만 하다. 스페이스워크로 가는 길목에 지난 봄날 400여 그루의 형형색색 수국을 심은데 이어, 이번에는 900여 그루의 꽃댕강나무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꽃향기와 환한 꽃망울로 환호공원을 찾는 이들을 반겨 맞을 것이다. 식재작업을 마치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부터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가 포스코의 따스한 지역사랑 마냥 촉촉하고 흡족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2024-11-05

감빛 회상에 젖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 여유로운 휴일 오후, 한가로이 고무신을 끌며 뒤뜰과 텃밭 주변을 거닐다가 문득 들려오고 눈길 가는 곳을 응시하게 됐다. 새들의 밀어 같은 재잘거림이 사방에서 들리고, 아직은 푸릇한 감나무 잎새 사이로 조금씩 익어가는 주홍빛 감이 보일 듯 말 듯한 곳에서 몇 마리의 새들이 포르릉 날갯짓하다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홍시가 된 감들을 쪼아대고 있었다. 수년 전부터 그렇게 찾아온 새들이 올해도 용케 찾아와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 기특하게만(?) 여겨졌다. 넌지시 그러한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폰카메라에 담기도 하는 등 내심 회상에 젖어 들기도 했었다. 새들이 날아들며 감홍시를 쪼아대고 들판에서 모이를 찾는 걸 보니 정녕 가을이 깊어 가는가 보다. 불과 한 달 전쯤만 해도 청청하기만 하던 산야의 초목이 누렇게 바래고 들판에서는 황금물결이 일렁이니, 농사력(農事曆)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를 마무리하고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즉,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로 접어들어, 낮으로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의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무렵이다. 유년시절의 가을은 언제나 감나무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고향집과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할아버지 집 뒤로는 아름드리 감나무 10여 그루가 키재기 하듯 우람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불그스레하게 감나무 잎이 물들어 떨어지면 뒤란에 수북하게 쌓여서 마치 ‘낙엽 이불’처럼 푹신하고 매끄럽기도 했었다. 땔감이 넉넉하지 않으면 감잎을 쓸어 모아 불쏘시개로 쓰기도 하고, 부러진 감나무 가지는 한데 모아 쇠죽을 끓일 때 지피기도 했었다.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는 일은 거의 다 필자가 도맡아 했었는데, 10여미터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거의 새들만 쪼아먹던 말랑말랑한 주홍빛 홍시를 통째로 입에 삼키는 그 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별처럼 뜬 감꽃이 뒤란에 떨어지면/실에 꿴 감꽃 목걸이 걸고 으쓱이며 들썩이다/어느새 배고파지면 입에 넣던 꽃잎들//암록(暗綠)의 잎새 바람 간간이 불어와도/감꽃은 푸르탱탱 땡감으로 자라나/떫어도 움켜잡으며 비바람을 견뎠지//청록의 감잎들의 불그스레 수런대고/하늘빛 닮아가며 별빛 꿈을 꾸다가/마침내 가지마다 켜지는 주홍빛 선물인가’ ㅡ拙시조 ‘감빛 서정’ 전문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퍼 야단 맞고 초조해하며 떨떠름하던 땡감 같은 시절이 지나면, 비바람 모진 서리 맞으며 잉태해온 주홍빛 속살이 말랑해져서 연시가 되거나 더욱 단단해져서 건시(곶감)가 되어 특유의 단맛과 빛깔을 띄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땡감마냥 푸르탱탱한 패기와 의욕으로 청년시절을 보내고, 하나씩 털고 버릴 것은 거두고 내면을 채워 숙성의 농밀함으로 익어가는 중장년의 여울에서 감빛 마냥 은은하게 빛나며 먼 하늘을 응시하지 않을까 싶다. 연신 홍시를 쪼아대며 사이좋게 나눠 먹는 새들이 정겹기만 하다.

2024-10-22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과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 높푸르고 흰구름 둥실 떠가니 억새가 손짓하며 반긴다. 정갈한 햇살에 마음의 습기마저 말려지는 듯한 10월, 과연 문화의 달 답게 시월은 연일 행사가 한창이다. 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시·공연·음악회·백일장·기념·체험·버스킹·축제 등의 온갖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음악이나 함성소리가 들리고 문화시설마다 온갖 행사로 광고나 홍보물이 빼곡하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니 밝고 활기차 보인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묵향이 피어나는 학생들의 서예작품이다. 삐뚤삐뚤 서툴고 미숙한 듯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점획들이 정겹기만 하다. 마치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쳐왔듯이 자신들이 아득한 학생시절로 되돌아가 티없는 순박함으로 무작정 붓 가는 데로 쓰고 그린 붓질처럼 여겨져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시간의 단면 같은 아득함이랄까, 박제된 그리움마냥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먹내음이 진하고 무던하기만 하다. 이러한 전시회는 최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충효학생서예대전’의 입상 작품전이다.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주관한 충효학생서예대전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타 시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예 꿈나무들의 발굴과 육성, 장려를 위해 지난 1992년부터 한번도 거른 적 없이 매년 개최해온 학생 서예 공모전이다. 갈수록 응모작품과 참가학생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예학원과 학교 출강 지도강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33회째 명맥을 이으며 성황리에 열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첨단기기의 정보화 사회에서 옛 선인들의 정신과 기예를 되살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올바른 교육문화 형성에 보탬을 주는 서예 꿈나무 발굴·육성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갈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등한시돼 버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이와 같은 서예대회를 통해 명맥을 잇고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통의 가치제고와 정신문화 고양에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예술적 감성을 북돋우는 학생서예대회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글로벌 정신과 다양한 콘텐츠 창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를 평소 갈고 닦음으로써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실을 습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족한 예산과 출품 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충효학생서예대전은, 지역 서예계 꿈나무들의 발표 기회와 희망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후진양성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공부와 학원 수업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갈고 닦으며 서예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입상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갈수록 인구와 학생수가 감소하지만,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계승을 일깨우고 예술적 탐색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 나가는 충효학생서예대회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과 지자체의 육성·지원으로 활성화되고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10-15

풍요로운 10월, 문화축제의 명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푸른 기운이 결실과 단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가을태풍의 북상 예보가 있긴 해도, 하늘은 점차 높푸르게 가을빛을 더해가고, 들판에서는 정갈한 햇살을 받아 오곡백과가 넘실넘실 익어가고 있다. 하늘 맑고 공기가 상쾌해(天朗氣淸)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라 실내외 활동하기에 편하고 좋은 계절, 사람사는 세상에는 요즘 온갖 축제나 체육대회·전시·공연·체험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른바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이런저런 문화축제가 즐비하다. 이미 9월 중·하순부터 크고 작은 행사가 시작돼 잔치 분위기가 나는가 싶더니, 10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축제시즌이라 할 정도로 전국의 도처에 특색 있고 다양한 축제·문화제·대회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유난히 무덥고 길게 이어진 여름날의 인내와 시달림을 축제로 풀기라고 하듯 축제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고 즐거워 보인다. 축제는 이렇듯 격식을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큰 잔치이기에, 음악적 퍼포먼스나 상연, 음식, 의식, 테마, 전통, 자연 등과 결부되는 조직화된 일련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제나 대회 등의 행사는 모두 일정 부분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이뤄지게 된다. 민간 주도의 예산 지원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각 지역별로 지역상권 활성화와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행사를 급조한다거나 선심성(?) 예산지원으로 세금을 축내는 경우가 있어서 다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전국적으로 전시성 축제의 난립과 국비·지방비의 세금을 지원받는 일종의 ‘정책카드’로 변질돼 축제 자체의 전통성과 상징성이 퇴색되고 문화적 교류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사는 사례도 있다. 또한 축제장의 장사꾼 난입과 바가지 요금, 무질서, 비위생적인 환경 등도 문제지만, 특히 축제운영 담당인력의 전문성과 경험 부족으로 옥의 티처럼 비춰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최근 포항지역에서 ‘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 열리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었는데,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독서 서평 대결이 당일 우천으로 인해 대회 시작 5분 전에 돌연 취소(연기)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대회 출연진과 시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3개월 전부터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올라온 초등부·청소년·일반부의 각 팀에서는 의상과 소품, 장비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선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강우 대비를 사전에 했음에도 느닷없이 전국적인 대회를 시작 직전에 보류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졸속으로 여겨져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몇가지 문제와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고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결정으로 한치의 허술함 없이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운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몇 개월 전부터 입안하고 기획·추진하는 축제가 준비와 운영의 부실이나 실책으로 파행된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날씨 좋고 먹거리가 풍부해지는 10월의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길 기대해 본다.

2024-10-01

가을의 서가(書架)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늦도록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세찬 비바람에 쫓겨 가고 이제는 쾌청하고 삽상한 가을 날씨다.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다가 문득 등화가친이란 말이 떠올라 서가에 꽂힌 책들을 훑어본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의 중앙 하단에는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세계대백과사전이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의 검색이 가능한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망라한 엄청난 보고(寶庫)였다. 그 밖에도 월부로 산 전집으로는 세계고전문학, 세계현대문학, 한국현대문학, 한국고전문학, 세계사상전집, 한국사상전집, 세계역사, 한국사대계 등이고 문학·종교·과학·예술 관련 단행본들은 수시로 서점에 가서 구입한 것들이다. 내가 산 책들은 버리지를 못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그야말로 안 먹고 안 입고 구입한 것들이라 살과 피를 나눈 분신과 같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책 짐이 너무 많아 큰 맘 먹고 몇 십 년 쌓인 문예지들은 버리기로 했다. 따로 내놓다가 무심코 그 중 한 권을 펼쳐보는데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오십 년도 넘은 세월에 누렇게 변색이 된 책장의 군데군데 그어진 밑줄을 보노라니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는 것 같은 감회가 밀려온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문예지를 사러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가곤 했다. 물론 간 김에 두어 시간 서점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책은 선 채로 대충이라도 훑어보았다. ‘현대문학’과 ‘문학사상’ 같은 문예지는 거르지 않고 구입을 했지만, 시전문지와 계간지들은 내용과 형편에 따라 선택을 했다. 결국 나는 그 문예지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로 가져와서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내 인생 여정의 길라잡이였다.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지 못한 붙박이지만, 동서고금을 두루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마음의 행로는 그 책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도달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빈손을 내 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서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듯이 독서는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지식과 사상의 체계를 한 번 섭렵해보자는 것이 독서의 목표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무수한 문호·철학자·예술인 중 단 한사람의 연구에 평생을 보내는 학자들도 허다한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모두를 섭렵한단 말인가. 주마간산으로 일별하는 것만도 사뭇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독서로 얻은 것이 있다면 섣불리 편견이나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이 기울어졌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균형감각을 갖게 된 것이랄까. 남은 여정도 이 서가의 책들이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2024-09-26

세계유산 활용사업 ‘소수서원 필리아’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길고도 지루하던 더위를 깡그리 밀어내기라도 하듯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간간이 산허리까지 안개가 내려와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더하고, 흠뻑 젖은 솔숲에서는 빗줄기와 어우러진 솔내음이 차분하게 깔리는 듯했다. 송림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서원(書院) 기와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마냥 또렷하고 정겨운 해설사의 설명을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고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게만 보였다. 이와 같은 장면은 국가유산청의 2024년 세계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소수서원 필리아’의 한 부분이다. ‘세계유산 활용사업’은 국가대표 브랜드로서의 세계유산 가치의 보존 및 전승, 융복합적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기획된 사업으로, 영주시에서는 국가유산청의 2024년 공모사업에 ‘소수서원 필리아’ 등 2건이 선정됐다. 동양대학교 한국선비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소수서원 필리아’는 일상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심신을 힐링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소수서원 탐방을 시작으로 내 몸을 행복하게 하는 치유음식 특강과 청국장 영양식단이 나오고, 꿈결같이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소수서원의 솔숲에서 해금과 거문고의 그윽한 선율이 흐르면 지나가던 바람조차 멈추고 풀벌레들의 청아한 합창이 추임새를 더하며 여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여명 속에서 서광을 맞이하는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아침에 다향을 맡으며 차훈(茶熏)명상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심신의 평온함과 안정감이 얼굴에 쓰여 질 정도로 개운하고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리아(Philia)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나 증세’ 등을 뜻하는 영어 접미어로 우애 또는 형제애로 옮겨진다. 즉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이 쌍방적으로 상호 간에 인지하고 있는 품성상태’를 말한다. 예부터 강학과 제향기능이 있었던 서원이 현대교육의 도입으로 대중과 멀어지고 향사기능 위주로 축소되자, 정부에서는 2013년부터 ‘서원향교활용사업’을 기획, 지원하여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서원문화행사를 열어 왔다. 소수서원은 동양대 한국선비연구원의 협력으로 서원스테이, 사마(司馬)선비과정, 소수서원 필리아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서원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해왔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소수서원에서 옛 숨결을 느끼며 자연과 인문학으로 서원의 학맥을 계승하는 문화사업을 펼친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법고창신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통해 전국에 소재한 문화·자연·무형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다양한 아이템과 연계사업 추진으로 지역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고유한 문화전통으로 존속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지역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기획, 추진되는 문화사업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24

책과 독서의 요람 ‘2024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서늘해진 기온에 풀벌레 소리가 정겹다. 한낮으로는 늦여름의 꼬리를 잡는 노염의 심술이 가시질 않지만, 산과 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결에 그리던 가을이 차츰 오려나 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코스모스는 방실방실 피어 반기고, 온갖 풀벌레들은 청아한 합창으로 결실의 계절을 환호하는 듯하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은 책 읽기 좋은 ‘독서의 달’이다. 중국 당나라 문호 한유의 ‘이제 등불을 점점 가까이할 수 있으니(燈火梢可親) 책을 한번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簡編可卷舒)’ 시구를 굳이 들춰내지 않더라도, 덥고 습한 여름날의 시달림을 떨치며 산뜻한 날씨와 서늘한 바람 결에 책을 읽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더라도 즐겁고 가뿐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나 자연의 현상에 동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읽기 좋은 가을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의 독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문체부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2013년 72.6%에서 2023년 43.0%로 약 30% 급감했다. 그만큼 국민의 여가 중 독서 비중이 감소한 탓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활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아진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또한 독서의 계절 가을에 비해 여름철의 독서량이 15% 정도 더 높다 하니, 어찌 보면 책 읽는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틈 나는대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고(手不釋卷) 글을 읽는 자세나 습관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차제에 국민들의 독서 권장과 책 읽는 문화 확산을 위한 전국 최대 규모의 독서문화축제가 9월 말경 포항지역에서 열리게 돼 전국적인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 포항시가 문체부로부터 ‘2024년 대한민국 책의 도시’로 선정, 선포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포항시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9월 27~29일) 영일대 누각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대구·경북권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2024년 독서문화축제는 ‘책으로의 항해’라는 슬로건과 ‘동해바다, 책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책과 연관된 강연·공연·전시·체험·학술포럼 등 다채롭고 차별화된 독서축제를 선보일 전망이다. 이를 통해 책과 독서문화의 활성화로 기존 철강도시로 알려진 포항이 문화와 지식의 바다임을 알리며 책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 끝없는 모험과 지혜의 보물이 존재한다. 책은 우리 삶의 유익한 동반자이자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이다. 독서는 사람의 재능을 밝혀주고 지혜를 더해 주듯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열어갈 예지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일에서부터 사회적인 문제까지 지식과 정보, 감성과 상상력 등 다양한 통찰과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참여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독서문화의 향연이 성황리에 열리길 염원해본다.

2024-09-10

가을 마중, 영일만시인학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람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불과 몇 일 사이에 8월이 지나고 9월이 시작됐을 뿐인데, 계절의 시계는 기온이며 햇살이며 구름이며 하늘빛까지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그에 맞춰 풀벌레들의 합창은 기다렸다는 듯이 맑고 또렷한 음조로 봇물 터지듯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소리와 빛깔로 보여주는 계절의 세리머니가 가슴을 한결 넉넉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치열했던 여름날과 선선해지는 가을날이 마주하는 자리에 문학을 사랑하고 영일만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한데 모여 소담스런 잔치를 벌였다. 풀벌레 소리가 반겨 맞고 간간이 파도소리가 추임새를 넣는 구룡포의 언덕배기 한 켠에서, 바다를 노래하고 시 얘기를 나누며 감칠맛나는 시낭송과 열띤 강연, 문인과 시민들의 스스럼없는 만남, 기념사진 즉석인화 이벤트, 축하 공연, 문화재 탐방 등으로 이어지는 어울림의 시간, 이른바 ‘영일만 시인학교’ 가 펼쳐진 것이다. 영일만 일대에서 1박2일로 열린 일련의 문학축제는 포항문인협회의 부설기관인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가 주최·주관했다. 포항지역의 문학과 문화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인 삶을 공유, 확산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는 멀리 제주도 등지에서까지 달려오고 예상을 넘는 참가자, 알차고 다양한 프로그램 등으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축제를 통해 바다라는 풍부한 어족자원과 다양한 해양문화를 지닌 포항지역의 역사적·지리적인 문학적 토대 위에 다채로운 해양문화를 접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하고 이색적인 디카시 콘텐츠를 창출하는데 많은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포항지역의 문학인구 저변확대와 문예발전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꿈꿔 봤을 문학소녀·소년들이 가슴 한 켠에 묻어둔 문학의 불씨를 지피며 포항문예아카데미를 통해 문학수업을 받은 중년의 문학지망생들이 ‘영일만 시인학교’에서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계기와 수업과정은 포항문예아카데미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에 관심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시조·수필·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강좌를 운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1999년에 발족해 건전한 시민문화를 육성하고 바른 글쓰기와 독서 풍토를 조성하고자 문학을 사랑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교육, 배출해온 포항문예아카데미는 올해 26기생 50여 명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졸업한 700여 명의 회원이 ‘포항문예아카데미 총동창회’를 결성, 유대감 조성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의지를 돈독히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학행사를 기획, 개최하는 등 포항의 문학발전과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 문학을 읽고 쓴다는 것은 인내와 지구력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외롭지만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문학과 창작을 통해 삶을 변혁하는 작은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열린 영일만 시인학교가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하는 문학적인 감성계발과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삼아 나가며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03

붓으로 다듬는 먹빛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더위를 마감한다는 처서(處暑) 지난 지도 한참이고 태풍도 한 두 차례 올라왔지만, 여전히 한낮으로는 노염(老炎)의 기세가 만만찮은 것 같다. 여름날의 끝자락을 잡고 매미는 막바지 울음을 여기저기서 스테레오로 울리는데, 이에 뒤질세라 가을을 마중하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옥양목을 자르는 가위질 소리마냥 나날이 또렷해지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변곡점도 갈수록 모호해지는 것 같다.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날이 무색하리만치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며 집념과 몰입으로 자신의 기량을 꾸준히 가꿔온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청순한 대학생에서부터 80대 노익장의 작가지망생까지 남녀노소 실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붓끝에서 쓰여지고 그려진 한판 작품 겨루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들은 지난 봄, 아니 어쩌면 연초부터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워 숱한 나날 먹을 갈고 붓을 다듬어 습작과 교정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당당히 내보이며 경쟁과 평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즉, 지역에서 펼쳐진 서예작품 공모전에 출품하여 자신의 노력과 기예를 시험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포항지역의 서예가들이 두루 참여하여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도모하는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한 ‘제32회 전국공모 포항시서예대전’의 작품접수와 심사가 관심과 기대 속에 지난 주 열렸다. 신진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서예 공모전은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붓글씨 솜씨 발휘와 작품 인정을 받으며 조금씩 서예작가의 면모를 갖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예대회를 통해 한글·한문·문인화·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부문의 서예작가가 배출되고 아울러 서예문화의 확산과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 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잡힐 듯 멀어지는/보일 듯 사라지는/불가해(不可解)의 숨결인가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인가/또 한 겹 껍질 벗기며/먹빛 순수 솎는다’ -拙시조 ‘먹빛 솎기’전문모든 예술과 창작행위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신의 고단함과 마음의 척박함에도 애써 붓을 잡아 먹물을 찍어 획을 긋고 점을 찍는 이유는 좀더 순수와 궁극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곡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한 발짝 파고들수록 벽에 부딪치고 타성에 사로잡혀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먹빛의 번뜩임을 향해 외롭고도 쉼없는 걸음을 옮겨 나갈 때, 필묵의 메아리가 비로소 기운생동으로 굽이치리라. 눈물을 이겨낸 자만이 인생의 눈부신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뜨거운 여름날에 후끈한 열정으로 서예삼매(?)에 빠져 무수한 붓질과 숱한 파지(破紙)를 쌓으며 전심전력한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예농사라는 것이 어찌 일희일비에 그치랴. 필묵의 밭을 일구는데는 부지런함이 지름길이요,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기에 배를 노저어 가듯이 인내하고 극복하며 꾸준히 나아가야 하리라.

2024-08-27

어쩌다 보니 내몽고 여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사상 초유로 두 쪽 난 광복절 행사에 아랑곳없이 징검다리 연휴에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건국절 논란의 염증(?)을 떨치기라도 하듯 저마다의 목적지로 부담없이 떠났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니 하찮은(?) 일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홀가분한 여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정해진다. 아무리 지루하거나 빠듯한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즐겁고 설렘이 가득할 것이다. 여행도 쉼의 일종이듯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의 풍경이 정겨움으로 다가올 것이다.반면 빨리 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보고 혼자 즐기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주마간산격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대부분 어떤 모임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마련이다.하지만 그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느 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여차저차 만나 우연의 일치로 떠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어떤 계기가 되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게 되는 것이다.그러고보니 지난 주 광복절을 전후해 다녀온 해외여행은 정말 즉석에서 던진 말에 우연찮게 동조하면서 어쩌다가(?) 다녀오게 된 것 같다. 길거리나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반가움을 더해 주듯이, 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정이 아닌 즉흥적인 발상과 추진이 한결 흥미와 설렘을 부추겨주지 않았을까 싶다.그렇게 떠난 곳이 내몽고이다. 중국의 다섯 개 자치구 중 첫번째로 지정된 내몽고자치구는 몽골,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17세기 무렵 당시 차르 러시아와 청나라의 이익 다툼으로 외몽고(몽골)와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는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정복을 이룬 불세출의 영웅 징기즈칸은 몽골에서는 영웅으로, 중국에서는 위인으로 추앙받기에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징기즈칸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르도스(궁전) 초원 한 켠에 유택(幽宅)을 마련하는 등 대대로 정복왕에 대한 존숭과 예우를 다하고 있다.광활한 초원에 말과 양이 풀을 뜯고 군데군데 전통가옥인 몽골포(게르)가 놓여진 목가적인 풍경은 더없이 낭만과 평온함이 느껴지지만, 유목민 몽골족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평균 해발고도 1300미터의 고지대로 밤하늘의 별들이 더없이 크고 초롱초롱 빛나며,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데 불현듯 빗금을 치고 사라지는 유성은 찰나의 삶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온순한 낙타를 타고 야트막한 사막을 둘러보다가, 그 옛날 아득한 고비사막을 건너며 삶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을 유목민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애잔함이 묻어나기까지 했다.그리고 푸른 초원에서 말타기를 해보니 척박한 땅에서 기마민족으로서 세계정복을 꿈꾸며 평원을 우렁차게 달렸을 몽골인들의 기개와 용맹함이 지평선 끝의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듯했다.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살고 말 위에서 바람처럼 사라져간다는 몽골인들의 애환과 운명이 곳곳에 펄럭이는 깃발로 아우성치는 듯했다.

2024-08-20

쉼, 재충전의 여정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말복에 즈음하여 바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츰 선선함을 더하는 것 같고,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한결 또렷하고 명징하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한낮의 노염(老炎)은 아직도 맹렬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매미들의 열창(熱唱)을 부추기는 듯하다. 만고불변의 청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햇살과 바람과 물소리 매미소리가 스며들면서 차츰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하늘에선 해가 땅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 8월은, 그야말로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추구하며 깊어지기에 타오름달이라고도 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열기와 눈부신 햇살로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고,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으로 집중하고 몰입하여 열정을 사르면서 목표를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가슴이 탈 정도로 뜨겁고 목마르게 갈망하고 혼신을 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동동거리는 것 같아 ‘동동팔월’이라고도 하는 걸까?하지만 8월은 잠시 쉬어가는 달이다. 연중 가장 무덥고 뜨거우며 또한 습하고 꿉꿉하며 비도 많이 내리기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게 보전하며 보신(補身)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도록 알려주는 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나 산으로 피서를 떠난다거나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보양식으로 기력을 채우기도 하는 등 여름날의 다채로운 풍속도에 젖어들고 있다.‘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오는 것/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 오세영 ‘8월의 시’ 전문사람도 기계도 계속 일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바쁘고 숨차게 달려가기만 한다면 이내 지치고 기력이 쇠잔해질 것이다. 일터에서의 휴식이 중요하듯이 삶터에서는 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쉼이란 하던 일이나 동작, 집중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느슨하고 편안하게 몸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멍때린다거나 곤한 잠을 자는 등의 방식으로 몸 속에 쌓인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일 못지 않게 쉼이 중요함은, 여가시간이 있어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게 된다. 쉼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당연하고도 자명한 휴식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늘 일에 쫓기고 시간에 발목 잡힌 현대인들이 제 때 쉬거나 여유로운 휴가를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보니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이 강조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8월이다.

2024-08-13

이열치열 삼매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날의 절정이다. 절기상 입추라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는 여전히 기세등등해 몇 차례의 소나기가 지나가도 숙지지 않는 염천(炎天)이다. 거기에 파리올림픽의 열기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지구촌의 온나라가 뜨거운 용광로 속에 있는 듯한(萬國如在紅爐中) 형국이다. 밤에도 기온이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초열대야 현상이 강원도의 해변도시에서 나타나고, 94년만에 최장 열대야가 이어지니 과연 이상기후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그러나 아무리 무더워도 올림픽의 치열하고 불꽃 튀는 열기마저 꺾을 수 있으랴. 제33회 파리 올림픽의 개막과 더불어 세계 206개국의 선수들이 저마다의 기량과 특기로 각축을 벌이느라 세계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선수들이 10회 연속 양궁 여자단체부 금메달을 차지하고, 사격부문에서는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나오는 등 초, 중반까지 쾌조를 보이고 있으니 또 다른 기대와 설렘으로 더위 따위는 무색할 정도다. 그만큼 집중과 몰입은 새로운 내면과 흥미를 낳기도 한다.어떤 대상에 마음을 모으고 한 가지 일에 힘을 쏟으며 깊이 파고 들거나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이나 대상을 아끼며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올림픽 같은 세계무대에 서기까지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은 선수들 자신만이 알고 있으며, 그 누구라도 무한한 땀의 가치와 혼신의 노력을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자신의 특장을 살려 심신을 가다듬고 훈련과 단련을 거듭한 끝에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맘껏 기량을 펼쳐 나갈 때, 관중의 환호와 이목이 집중되며 갈채가 이어질 것이다.‘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남모르게 흘리는 땀이/비범을 낳으리라/처절한/몸부림만이/경이를 보이리라//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활시위의 긴장과/눈물 같은 땀방울로/무진장/뒤척거리는 고독/기적의 꽃이 피리라’ -拙시조 ‘꿈-기적의 꽃’ 전문어떤 학문이나 운동, 음악이나 예술활동에 깊이 몰입하고 집중한다는 것은 삼매경(三昧境)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티끌을 없애고 잡념을 떨쳐 오롯이 대상에만 정신을 쏟으며 노력과 혼신을 다해 나가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독서삼매경은 다른 일이나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책 읽기에만 사뭇 빠져드는 것이고, 운동삼매경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몸동작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대상에 골몰하고 심취하여 반복연습으로 갈고 닦으며 자신의 임계점을 향해 끝없이 추구하게 되면, 운동선수는 기적 같은 명승부를 펼치고 예술가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며 차츰 내공이 깊어질 것이다.한여름의 무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이렇듯 제 나름의 이열치열 같은 삼매경의 비법(?)으로 더위를 이기며 자신을 다스리면 어떨까? 예컨대 자신이 좋아한다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때로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때로는 끼니를 잊기까지 할 정도로 몰두하고 파고들다 보면 수시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조차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만의 비장의 루틴으로 건강한 여름날을 나면서, 태극전사들의 선전과 낭보가 청량감을 더해주기를 기대해본다.

2024-08-06

정겹고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적하던 어촌의 한 켠이 분주해졌다. 야트막한 처마 밑에 제비집이 지어진 어느 작은 다방 안팎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칸막이와 현수막을 설치하며 작품을 내거는 등 각자의 역할분담으로 어떤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바른 몸짓과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옮기고 작품을 배치하며 조정하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뤄져, 다방의 실내는 금세 멋진 미니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이름하여 ‘포구(浦口) 다방-모두의 어촌여행’이란 주제로 항구 주변에서 열리는 시화전의 준비작업이다.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아닌 다방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발길 뜸하고 비좁은 ‘옛날식 다방’에서 빼곡하게 쓰여 지고 그림까지 그려진 시화전이라니? 모종의 우려와 설마 속에 진행되는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은,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소소한 볼거리와 숨겨진 스토리를 낳으며 잔잔하면서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다담(茶談)을 나누고 휴식하는 가운데, 눈 앞에 보이는 작품을 부담없이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색다르고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지역의 자연경관을 노래하고 짭조름한 삶의 얘기나 처해진 현실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한결 구미가(?) 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사람들이 동네다방으로 모여들어 다향(茶香) 속에 살아가는 얘기나 신세타령을 듣고 나누다가 바로 곁의 시화작품을 눈요기로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정겹고 이색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컨셉으로 어촌다방 시화전이 기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출어(出漁)의 감소, 삭막해져가는 어촌마을의 현실과 공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의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의 주제가 담긴 시와 시조를 시화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쇠퇴해가는 어촌마을에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포구다방’ 시화전은 경상북도 권역 별 특색있는 공연·전시 및 네트워크 형성을 기획·운영·지원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참여형 단체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재단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거점단체에서 전시프로그램을 총괄기획·추진하게 되며, 2권역에 속하는 포항·영덕·울진에서는 이번에 두번째로 ‘포구다방’을 테마로 시화전을 열게 된 것이다.이러한 취지에서 2권역의 3개 단체(한국문협 영덕지부·맥시조문학회·진심문학회)가 7월 20~30일까지 천혜의 아름다운 축산항 한 켠의 ‘그야말로 옛날식’ 고려다방에서 합동으로 출품한 시와 시조를 서예·캘리그라피·디자인을 곁들여 족자·부채·판넬·실사출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든 작품 40여 점을 아기자기하게 선보이고 있다. 축산항 개항 100주년의 또 다른 세리머니(?)로 여겨진다.

2024-07-23

‘북한 이탈주민의 날’ 제정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장마의 영향으로 중남부 곳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시름을 겪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주말쯤 다시 비를 뿌릴 예보라니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또는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아도,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순탄하고 무난한 삶이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슬픔과 어려움은 그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에서는 풍파나 시련의 엄습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가급적이면 피해를 막고 아픔을 줄이는 지혜와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의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 智)는 가르침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하며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는 가운데 또 다른 지혜와 슬기로움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주야장천 흐르면 삶의 자취며 생각의 잔상까지도 시간의 모래밭에 묻히고 스러지며 점차 잊혀지게 되겠지만,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뇌리에 채워 놓으면 쉽사리 소멸되거나 잊혀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두고 기억을 하며 마음 속에 내내 간직하게 된다. 그것을 달리 말해 기념(紀念)이라고도 할 수 있다.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생일이나 졸업, 입사를 기념하고 결혼이나 성공, 퇴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뜻있고 소중하며 가슴에 되새겨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연을 인지하고 축원하며 기억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친밀해지고 깊어지며, 표현이나 기록을 통해 감동과 감사의 정을 격의없이 나누기도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식과 다양한 부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환영할 일로 여겨진다. 철천지원수 같은 북녘땅에서의 질곡을 벗어나 꿈에서나마 그리던 자유의 땅을 밟았지만, 새로운 터전에서의 정착생활이 녹록지 않고 제도적인 지원책 등의 미흡함으로 처우가 미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포용과 정착지원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주문함에 따라 관련규정의 제정 추진으로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다.따라서 매년 7월 14일은 통일부 주관으로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며, 남북 주민 간 통합문화를 형성해 통일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날로 기념할 계획이라 한다. 이날을 통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북한이탈주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의 조성과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