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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靜中動의 봄 채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고요와 침잠으로 이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함부로 물러서지 않는 동장군이 벽창호 같은 몸짓으로 막바지 추위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매화의 등걸에서는 이미 망울이 맺히고 섣부른 가지에서는 벌써 한, 두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설과 북풍의 회오리에 꿈적도 않을 것 같은 대지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동토의 장막을 밀어내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나 작용을 하게 되는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이 일어나고 있다. 겨울은 어쩌면 정중동의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청청하던 나무의 잎새가 떨어져 땅을 감싸며 뿌리의 활착과 번성을 조용히 돕고, 거세게 흐르던 폭포수도 온몸으로 얼어붙어 물보라의 비산을 막으며 나지막한 음조로 낙수의 흐름을 챙기고 있다. 움직이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듯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가 더없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없이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도 고요함이 스며들어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나며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준다./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 스님 ‘산중 한담’중 혹한의 계절에 동면이나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것은 결코 움츠림이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숨가빴던 호흡을 가누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나름의 생존법이나 수양을 일삼으며 더 단단하고 단호해지기 위해 내밀한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로운 안도일 수도 있고, 한중망(閑中忙)의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쁜 가운데도 잠깐 틈을 얻어내 여유를 부릴 수 있고, 한가함 속에서도 열심으로 움직이며 뭔가를 준비하고 추구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안목과 의지, 처세술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바쁘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일수록 정중동과 망중한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 온갖 정보와 광고가 난무하고 디지털, 스마트사회를 넘어 AI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차분하고 침착하게 본연의 평정심으로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루틴을 세워 ‘바쁜 듯이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대하고, 주변이나 이웃들에게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바쁜 듯이’ 넉넉하게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수와 경칩 사이, 아직은 바람이 여전히 차갑지만 남도 매화의 꽃 소식에 따스해지는 마음이다. 긴 겨울 깊은 적요에 들었던 만물이 정중동의 일깨움으로 차츰 봄 채비를 하듯이, 망중한의 여유로움으로 기지개를 켜며 조붓한 오솔길로 찾아오는 봄을 마중해야 하지 않을까? 봄은 출생이며 새로운 희망이다.

2025-02-25

월포 龍山을 오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맞이라도 하듯 야트막한 산엘 올랐다. 청하면 월포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나즈막한 용산으로 비교적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산중턱과 정상 부근에 군데군데 너럭바위가 있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산인 고인돌(지석묘)이 동쪽 등산로 초입에 있으며, 큰 암반 위에 솥모양으로 움푹 팬 솥바위 2개가 있을 정도로 신기하고 유서가 깊어 예로부터 청하 고을에서 신성시된 산이기도 하다. 용의 머리 형국을 하고 있다는 용산(龍山)은 용산으로 불러지게 된 슬픈 전설이 있는 산이다. 즉, 아주 오래 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월포리의 한 부부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아들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예사롭지 않아 장차 장수가 될 아이이나 큰일을 저질러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집안 어른들의 우려와 결정에 따라 더 자라기 전에 죽는 순간 그 산에 살던 용이 아들의 한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믿기지 않은 주술적인 전설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액운타파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숨고르기 하듯이 천천히 등산로로 진입하는데 용을 연상케 하는 큰 소나무 뿌리가 투박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드러나 꿈틀대는 듯하니, 불현듯 전설 속의 승천한 용의 화신이 현상계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한 솔숲 주변에 2기의 고인돌을 지나서 크고 작은 소나무가 빽빽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오르니 이내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두암에 이르렀다. 활처럼 휘어진 월포리 해변과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작년말에 개통된 동해중부선 철도가 너른 들판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힘차게 뻗어 있다. 그 옆으로는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인데, 올해 말 개통되면 동해안을 잇는 교통망·관광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꿈에 부풀어 있는 듯하다. 북서쪽으로는 멀리 정상 부근에 잔설이 희끗한 내연산~천령산~삿갓봉의 연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청하읍내가 손에 잡힐 듯 정겹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또한 동쪽으로는 지척의 이가리 해안선 너머 호미곶 반도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용산 정상에서는 결코 조망할 수 없는 탁 트인 전경이 발 아래에 그림처럼 펼쳐지니, 과연 전설이 깃든 용산에서 용 한 마리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해발 200여 미터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는 너럭바위 등이 자리잡아 승천을 준비하는 교룡(蛟龍)의 억센 근육처럼 여겨졌다. 순탄한 둘레길 언저리에는 멸종 위기 종인 망개나무 덤불이 빨간 열매로 산객을 반기고, 진달래는 멀지 않은 날의 개화를 준비하는 듯 작은 망울을 내밀며 부풀고 있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던가. 몸을 움직여 걷고 뛰거나 함께 어울리다보면 저절로 생기가 나고 활력이 감돌 것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산보하듯이 산길을 걸으면 이것저것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바가 많아져서 산행 그 자체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25-02-18

정월대보름의 소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설날을 전후해 눈이 살짝 내리는가 싶더니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는데도 눈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해안을 비롯 전라·충청·강원권 등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눈은 수시로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풍경을 백설 가루로 덧칠하는 듯하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국을 눈으로라도 덮어보려는 속내일까? 겨울의 끝자락에 혹한과 강설로 동장군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춘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나 우수가 가까워지면 눈이나 비가 잦아들게 된다. 산간 내륙이나 도서지방 등에서는 기압골의 차이로 눈도 내리게 되는데,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라 무엇보다 날씨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정월대보름은 유일하게 대(大)자를 붙여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이라 해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풍어제를 지내거나 근신하면서 세시풍속을 즐기고 길흉화복을 예견하기도 했다. 즉 설날이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새해맞이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예로부터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바라며 함께 모여서 즐기고 어울리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윷놀이나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횃불싸움, 고싸움놀이, 놋다리밟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한 단체활동이나 힘겨루기 등으로 승패를 갈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며,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遠禍召福) 전통놀이를 통해 마을에 행복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또한 부럼 깨기와 오곡밥, 귀밝이술, 약밥, 진채(陳菜)를 먹으며 개인적인 건강과 농사의 풍년을 바라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에 먹는 부럼 깨기는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 예방과 건치의 염원을 담았고, 귀밝이술을 한잔하면서 남의 말과 어른 말씀을 잘 들으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곡식을 섞어 풍요를 기원하며 짓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인 진채를 먹으며‘9’가 지닌 단수 최고, 충만의 의미와 풍족의 누림을 부여하기도 했었다. 빈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서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 철사로 연결된 끈을 돌리면서 주위를 밝히는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밤의 진풍경이었다. 휘영청 달빛 아래 논밭에서 삼삼오오로 저마다 불이 붙은 깡통을 빙빙 돌리면서 그려지는 크고 작은 원형의 불빛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불빛쇼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리다가 관솔이 거의 다 타게 되면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불이 붙은 깡통을 공중으로 일제히 던지게 되는데, 수직으로 솟구치는 불기둥에 불티가 눈처럼 날리면서 그려지는 불꽃 포물선은 쥐불놀이의 압권이었다. 어쩌다가 눈까지 내리는 달밤의 숨바꼭질이나 쥐불놀이가 끝나면 또래들과 큰 양푼을 들고 몇 집을 찾아가서 찰밥이나 식혜를 얻어와 살얼음이 뜬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꿈결 같은 정월대보름 밤이 켜켜이 동화처럼 각인되는 오늘이다.

2025-02-11

가족의 소통과 가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긴 설연휴 끝에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마냥 기다려지고 설레기만 하던 설날의 감흥이나 명절의 풍속도도 어언간에 많이 바뀌고 달라진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떠나는 것은 예사이고, 모바일 생활환경의 변화로 사이버 세배나 영상통화, 보드게임 등의 형태로 가족과 만나지 않고도 명절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전통적인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며 전래놀이를 하는 풍습이 유지되는 곳도 많아서, 요즘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명절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설이나 추석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가족이나 친지들의 만남이 뜸하거나 아예 없다보니 덕담이나 근황을 나누고 소통하는 마음도 서먹하고 성글어질 수밖에 없어지게 된다. 가족과의 소통과 만남은 단순히 말을 나누고 그냥 얼굴 보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아껴주고 챙겨주며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소통이나 대화의 시간이 줄어들고 단절되면 그만큼 가족 구성원 간의 도타운 정을 느끼기도 어렵고 가족애도 갈수록 식어지게 될 것이다. 그 이면에는 희대의 총아같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적잖이 한몫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족의 의미와 가훈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 이상으로 다소 희석되고 퇴색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가족의 친밀함과 따스한 정은 서로 부대끼며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배어나듯이, 가훈 역시 가족 구성원들의 한결 같은 마음과 따스한 인식으로 수긍하고 되새기면서 지켜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간의 원만한 소통과 대화, 융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가훈(家訓)이란, 한 집안의 어른이 그 자손에게 대대로 전해주는 가르침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 도리를 짧게 또는 설명을 곁들인 문장으로 전하는 훈화라 할 수 있다. 즉, 가훈의 내용은 주로 훈계, 자녀교육, 마음가짐, 몸가짐, 건강관리, 대인관계, 재산관리, 관혼상제, 관직생활 등의 내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가훈은 우리들의 가정을 화목·단란하고 건실하게 하기 위한 전통적인 집안 교훈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 자손들의 장래, 행복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고 정성스레 가훈을 지어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핵가족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훈이 뭔지도, 아예 없는 가정이 많아 자녀 훈육과 관련된 전통의 소중한 가치가 점차 사라지는 듯해 아쉽기만 하다. 그러한 차제에 애써 가훈을 보급이라도 하듯이 설날부터 가훈을 붓글씨로 써주며 두루 알리고 나눔을 실천한 곳이 있다. 지난 설날 낮부터 포항문화원 주관의 ‘2025 설맞이 포항전통문화한마당’ 행사장에서 포항서예가협회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이 합동으로 포항의 명소 영일대 누각 주변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새해 소망과 가훈 써주기 재능기부활동을 펼친 것이다. 묵향 머금은 가훈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받아들며 흡족해하는 가족이 가훈을 통해 가족애를 느끼고 자녀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어, 가정에 온화함과 희망의 가풍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2025-02-04

포스코 자원봉사의 웃음꽃

춥지 않은 소한(小寒)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大寒) 없다 했던가.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도 지구온난화에 밀려 북풍의 혀를 날름거리던 동장군이 여지없이 맥을 못 추고 있다지만, 동토의 비탈엔 아직 잔설이 꼿꼿하게 서려 있고 얼어붙은 강줄기는 수시로 얼음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있다. 그다지 강추위가 아닌데도 시국은 온갖 기현상(?)으로 볼썽사납게 얼어붙고 민심의 파고는 난파선을 집어삼킬 듯 격하게 요동치고 있으니, 설 대목의 경기와 민생은 걷잡을 수 없이 팍팍해지며 힘겨움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문병란의 시 ‘희망가’중)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추위 속에서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난전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 묶음을 다듬으며 누군가 사 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덤덤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누군가가 길거리의 휴지를 줍고 따스한 인정으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팀을 이뤄 해안가에 밀려나온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거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정원수의 전정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고, 경로당 시설을 방문하여 창문 방충망을 교체해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부품을 직접 조립하여 완성된 컴퓨터를 취약 가정의 학생들에게 기증하고, 새해를 맞아 연하장이나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적어 나누어 주는 등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연초부터 펼치는 ‘맞춤형 봉사활동’의 일부이다. 이는 임직원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특기, 기술을 활용하여 소외되거나 취약한 지역사회 에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공익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다. 즉, 포스코 임직원들이 급여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과 포스코1%나눔재단의 출연금을 경북공동모금회에 전액기부 후 포항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배정된 예산에 따라 45개 재능봉사단이 지역사회를 위해 저마다 특색 있고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펼치는 선순환 봉사활동인 셈이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여/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그 생명을 늘여/환한 내일을 열어 가리’ - 조병화 ‘난(蘭)’전문 어쩌면 추운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자원봉사의 꽃을 피워가는 포스코 봉사단원들의 따스한 손길은, 한겨울에도 묵묵히 어려움을 견디며 빛과 희망을 찾아 향기 짙은 꽃을 피워가는 난을 닮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주말이나 휴일을 반납하며 스스로 한결같이 활동에 임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보람의 꽃이 피어나듯이, 수혜자의 얼굴에는 만족과 기쁨의 웃음꽃이 청초한 난꽃 마냥 환하게 피어나리라.

2025-01-21

겨울 삽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북풍한설에 개울과 무논은 하얗게 얼어붙고 한낮에도 처마 끝에 고드름이 자라며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오싹 시리게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면서 쇠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는 등 혹독한 추위가 있어야 겨울 맛이 나는 듯했다. 변변찮은 방한장구도 없이 구멍 난 양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무논의 얼음판에서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 지금 되새겨보면 동화 같은 겨울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어렵고 빈한하던 시절, 겨울철의 강추위가 찾아오면 먹고 입는 것조차 모자라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또래들과 곧잘 어울려 얼음을 지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다가 배고파지면 간식으로 먹는 것이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어 온 땅콩이나 생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친구들에게 좀 얻어먹거나 즉석에서 닭싸움이나 구슬치기 내기판(?)을 벌여 어쩌다가 이기게 되면 쾌재를 부르며 맛있게 배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덕 위에 올라 매운 바람 속에 연날리기를 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에 작은 꿈을 실어 보내기도 했었다. 맹추위에 놀이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동절기가 되면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일이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거나, 또래들과 함께 지게를 지고 마을 주변의 산비탈로 나무하러 숱하게 다니곤 했었다. 키 높이 두배 이상의 검불을 지게에 수북하게 지고 오거나 베어낸 나무 밑동 장작을 한가득 바지게에 지고 오면, 어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렇게 산과 들에서 해온 나무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밤이면 둘러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울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함께 듣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귀신 이야기며, 어느 마을의 처녀총각 연애담을 시시덕거리며 듣다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며 짓궂은 장난질을 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설설 끓는 온돌방에서 정담과 재미로 한겨울을 보내며 차츰 성장했던 것 같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온돌방’ 중 추위에 떨며 손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겨울놀이를 즐기던 동네 꼬마들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또래들과 어울려 끈기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찬바람과 혹한 속에 내성(耐性)을 길러 풍파의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5-01-14

파행의 소용돌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다사다난이 무색할 정도로 연말연시의 난국이 연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연말에 예기치 못한 비행기 사고까지 겹쳐서 온 나라가 침통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묵은 해를 정리하고 보내야 하는 차분함도,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극한대치와 긴장이 불안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파행의 터널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정국과 민생이 여지없이 요동치고 있어서 안타깝고 암울하기만 하다. 갈수록 태산(去益泰山)이라더니, 정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고 점입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평지풍파도 유분수지,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파탄일로에 절체절명의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는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기후변화, 경기침체와 북한의 위협 등 모든 것이 녹록찮고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화와 타협으로 협치와 상생을 도모해도 모자랄 판국에 걷잡을 수 없는 내분과 내홍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참으로 개탄스럽고 알다가도 모를 불가해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무엇이며 법치와 평등은 어디로 갔는지, 헌정사상 유례가 없고 세계적으로도 극히 이례적인 일 앞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외신에서조차 한국의 정세가 드라마보다 더한 이변과 초조감이고, 모종의 음모론(?) 같은 걸 연상시키는 기상천외한 현실이라고 꼬집었을까?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세상사 잠시 접어두고, 난마 같은 탄핵정국에 이골이 난 눈과 귀를 씻기 위해 산행에 나섰다. 산은 늘 그 자리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반기지만 자주 찾을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마침 그날은 포항의 모산악회 새해 첫 산행으로 시산제를 겸한 산행이고 안동의 숨은 보석 같은 산이라 선뜻 동행하게 됐다. 이육사의 고향인 원촌리와 이육사문학관이 손에 잡힐 듯하고 안동댐을 내려다보며 우뚝 솟아있는 왕모산(王母山)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 산에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행 초입에 자리한 월란정사(月瀾精舍)는 퇴계선생이 제자들과 즐겨 찾아 강학하고 시문을 읊었던 곳으로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안동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음에도 퇴락한 곳이 많아 관리가 잘 안돼 보였다. 인생 아리랑 열두 고개마냥 야트막한 봉우리 12개를 넘어야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왕모산은 삶의 축소판 같은 인내와 고난, 고비와 안도의 여유를 안겨주며 어머니의 품처럼 산객을 맞이하는 듯했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일망무제 조망은, 마치 푸른 뱀같이 구불구불한 강줄기가 희끗희끗 얼어붙어 안동호로 이어지는 물굽이 그 위로는 올망졸망 능선들이 겹겹이 에워싸며 추운 겨울을 푸르게 지키는 듯하고, 맨 뒤로는 안동의 최고봉 학가산의 위용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어쩌면 산행내내 난세의 이 시국이 왕모산의 주변 형세와 낙동강의 물돌이와 비슷하게 여겨짐은 나만의 억측일까? 꽁꽁 얼어붙은 파행의 강바닥 민생이며 이육사의 ‘절정’ 시판이 설치된 칼선대의 일침, 너럭바위와 군데군데 고사목이 뼈저리게 무언의 항변을 하는 듯했다.

2025-01-07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길거리로 나온 민심의 파도마냥 만리 이랑을 달려온 파도가 뭍에 가까워지면서 방파제며 갯바위, 자갈, 모래톱에 사정없이 부닥치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육지의 안부가 궁금해 늘 가볍게 찰랑거리던 몸짓으로 다가오던 파도가 최근에는 격정을 못이긴 듯 거칠게 밀려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하다. 파도와 물결은 바다의 숨결처럼 늘 살아있고 깨어 있는 가슴으로 출렁대다가, 때로는 무언의 신음 마냥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항변할 때가 있다. 어쩌면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는 바다환경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한 일종의 항거일까? 주위를 조금만 관심있게 살피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합리하게 왜곡되고, 심각할 정도의 문제와 모순 같은 현상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로, 특히 해양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는 과거 수십년 전부터 제기된 이슈로 전세계가 공감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편리함을 주는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장기간 분해되면서 물고기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인간의 건강마저 위협하게 되는 환경 저해물질이다.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의 대규모로 태평양에 떠돌아다닌다는 이른바 ‘플라스틱 섬’의 실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상아로 된 당구공의 ‘친환경’ 대체물질로 150여 년 전에 개발된 플라스틱이 현재는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밀접해지고 쓰임새가 많아진 플라스틱이 바다와 육상을 막론하고 오염문제와 환경문제를 유발하여 삶을 위협하고 있으니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지구환경을 되돌려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이상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가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과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협약 체결 및 강력한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 재사용, 포장재 줄이기, 리필재 사용 확대 등의 실천으로 플라스틱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여 오염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으로, 지난 11월 23일 한국 그린피스 주관으로 세계 16개 환경단체들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촉구 행진이 열렸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등 30여 명이 동참하여 ‘플라스틱 이제 그만(No More Plastic)’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캠페인에 합류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분해에 5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매년 4억t 이상의 플라스틱을 생산하는데 세계 정부와 기업이 나서 플라스틱 재질 개선과 생산량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내 플라스틱 산업 역시 생산 감축을 기반으로 다회용기·재사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다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이 아닐까 싶다.

2024-12-17

비운의 용두사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2024-12-10

매듭달의 비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벌써 끄트머리달로 접어 들었다. 늦더위와 늦은 단풍에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첫눈을 경계로 여지없이 겨울로 바톤터치하며 낙엽으로 사그라들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한 해의 자취를 마무리하는 이른바 ‘매듭달’로 이어져 그 어느때보다 바쁘고 일들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연초부터 이래저래 계획한 일들과 잡다하게 벌려 놓은 일이며 연말까지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보고·정산·결재·마감 등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계 등으로 누구라도 동분서주가 무색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그만큼 한 해의 매듭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구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해의 마무리와 결산, 모임 등으로 부산해지고 일손이 많아지는 때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터지게 된다면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와 손실을 초래하고 주체하기 힘든 변고에 빠지게 된다면?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이 쏟아지고 단체적인 움직임에 시달리게 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같은 일들은 현재 포항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안타까운 실제 상황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쇳물 생산공장에서 정상적인 조업 중 원인불명의 설비사고로 대형화재가 발생, SNS와 방송뉴스를 타고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긴급복구 비상조업 중 2차적인 폭발성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설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등 복원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바다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부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모 단체에서는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을 볼모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포스코노동조합이 임금협상 결렬로 12월 초 포항 본사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개최하자 창사 56년 만의 첫 파업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가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지역 경제계와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상생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3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시황 불황으로 최근 포항제철소 공장 두 곳을 폐쇄하고 공장 화재까지 잇따른 악재에, 노조의 쟁의행위권 확보로 파업 출정식까지 강행하는 등 극도의 불안과 심각한 위기가 지역경제 침체로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기만 하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것(患難相恤)이 지혜와 상생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상호존중과 상생협력으로 원만하게 협상하고 타결하여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매듭을 잘 맺고 풀어야 온전한 마디가 생겨나고, 더 큰 매듭과 마디로 더 큰 성장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미진하고 부족했던 일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따스한 온기 스미는 갑진년의 값진 매듭짓기를 기대해 본다.

2024-12-03

‘꿈틀로’ 테마전시의 새로운 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곱게 물든 잎새들이 소슬한 바람 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떨어져 길바닥이며 나무 둘레마다 ‘낙엽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하다. 미련 없이 나뭇가지를 떠나는 잎사귀나 시들고 메말라가는 풀잎이 공허하거나 초췌해보이지 않는 것은, 조락으로 동장(冬藏)을 대비하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심의 가로수나 쉼터 같은 소공원의 군데군데 심겨진 나무들이 회색빛 도시거리의 칙칙함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노란 은행잎이 일제히 손 흔들며 행인을 반기는 것 같고,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들이 계절감을 상기시켜며 자신을 일깨우는 듯하다.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거나 관점을 달리하면 보여지고 다가오는 것들이 색다르고 다양한 일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생활 속의 작은 발견이랄까, 사소함에 대한 관심이랄까, 눈여겨 주변을 살펴보면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이고 하찮은 것들도 대수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길거리 조형물이나 예술품, 작은 갤러리나 공방에 전시된 아기자기한 작품들 따위다. 무심코 지나치면서 눈길이 가는 간판의 디자인이 독특하게 여겨지고,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풀 한포기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줄 때가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익숙한 듯 낯선 풍경과 심미적인 감성을 부추기는 일들이 간혹 나타나게 됨은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 포항 육거리 일대 꿈틀로 예술거리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포구다방 프로젝트’ 전시회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통의 문제를 저마다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기에 충분한 테마 전시회로 여겨진다.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 ‘2024 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11월 20~30일까지 꿈틀로 일대 청포도다방, Space 298 등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경북도의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테마별 시화, 그림, 사진, 도예 등의 예술작품을 스토리와 곁들여 특색 있고 다채롭게 선보여 한층 눈길을 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처한 현실과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퇴색과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예술적인 접근으로, 잊혀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발견하고 이를 역사와 지역성을 살린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간다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즉, 예술적 실천의 무대를 위한 장소의 재생, 협력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문제해결, 지역민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체계화·담론화시켜서 문화예술활동의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담보하고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원도심의 낙후성 극복과 포항지역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구심점으로 2016년부터 자리잡은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 이와 같은 테마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은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고 활기를 더해주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뭇잎들의 채색으로 스산한 길거리가 조금은 아름다워지듯이, 가까이에서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예술의 향기가 곳곳에서 피어난다면 한결 품격 있고 아름다운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저력이자 선봉이다.

2024-11-26

수상(受賞)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몇 일새 뚝 떨어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로의 플라타너스 넓은 잎이 포도(鋪道)에 뒹굴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50여 일밖에 남질 않았으니, 찬바람이 불기 전에 겨울 채비를 하면서 지나온 날들과 주변을 살피고 챙기며 결산을 해야 하는 모종의 암시(?)를 내리는 듯하다.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려왔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와 자취를 더듬어 한 해의 활동과 공과를 정리하고 결산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연초에 계획하거나 목표로 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근사치나 달성치를 가늠해보는 것은 내심 관심거리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1년 동안의 삶의 궤적을 반추하고 확인해보는 일종의 체크 리스트나 자기진단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1년 농사’를 어떻게 지었느냐에 대한 작황을 생각해보는 성찰의 시간 같은 것이다. 이런 과정이나 절차를 거치면서 해마다 ‘삶의 농사’는 노력과 실천에 따른 공과(功過) 득실로 환산되어 자신의 삶이 풍부하고 윤택하게 가꿔지는 것이리라. 개인적인 삶이 이럴진대, 어떤 조직이나 단체, 기업이나 기관 등의 경우에는 보다 체계화되고 실질적·합리적인 장치에 의해 공적이나 유공을 파악, 추천하여 심사와 검증과정을 거쳐서 포상 또는 표창을 하게 된다. 즉 ‘상을 준다’는 것으로, 상(賞)이라는 것은 잘한 일을 격려, 칭찬하고 그 일을 장려하기 위하여 주는 물질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은 선행·공적·미기(美技)·실력·능력 등을 칭찬하고 사회에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모범적이고 사회공공적이며 교육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은 광범위한 정부의 포상제도에 따른 훈장과 포장을 비롯, 사회의 각 기관·단체들도 각종 상급규정을 마련, 시상을 하고 있다. 또한 문학·미술·음악·학술·체육·과학·언론·사회봉사·출판 등 각 분야에 걸쳐 포상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민속제와 민속대회 및 각종 공모·공연·경기에도 상을 걸어 수상자를 뽑고 있어 상의 분야와 종류 면에서 아주 다양하다. 이처럼 상이 극도로 다양화·다종화 되고 상금과 부상도 대규모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열정을 쏟아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점 등이 오늘날 우리나라 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달 여 전,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반가운 기별 마냥 도처에서 들려오는 이러저러한 수상 소식이 한해의 소중한 결실로 나타나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각종 문학상을 비롯 문화상이나 작품상, 봉사상, 선행상 등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정성과 노력을 다한 증표 마냥 빛나고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수상은 그만큼 대내외적인 의미가 크고 파급력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상금의 액수나 권위, 명예 등을 가늠해서 수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이 있기까지 수상자만의 남모를 인내와 땀방울, 숱한 고초가 쌓인 내공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4-11-20

마음의 숨결 같은 시 낭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이면서 초겨울인 11월. 가을의 끝자락이 비로소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이다. 어중간하다 해야 할까, 머뭇거린다고 해야 할까, 보내기 싫은 사람처럼 아직은 잡고 싶은 가을이고, 선뜻 맞이하기엔 이르고 낯선 계절이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하다. 산자락엔 아직도 초록의 잎새들이 진을 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산마루에서 하루가 다르게 번져오는 꽃불의 위세(?)에 잔뜩 긴장하는지도 모른다. 조락(凋落)의 초목이 무언의 곡조를 타며 장고(長考)에 들어가고, 새들은 비껴서 날아오르며 음표를 그리는 듯하니,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것들이 어쩌면 모두 시(詩)의 결이고 여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시인의 생각은 한이 없어라(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고 읊었던가. 시의 날(11월 1일)로 시작된 11월이 시의 향기 속에 나날이 깊이와 울림을 더해 가고 있다. 11월 들어서 시를 읽고 노래하며 시낭송을 즐기는 행사가 유난히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제37회 ‘시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시낭송과 무용, 시집·시 카드 배부 등 푸짐한 시 나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고, 부산에서는 이번 주말 전국 시낭송대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시낭송 콘서트가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시를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의 의미와 여운을 목소리의 음색과 영상·음향효과로 표현하는 시낭송이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포항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시낭송 콘서트와 보기 드문 시조창 발표회까지 열리게 돼서 한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대한시조협회 포항시지회가 주최·주관하는 제6회 시조창 발표회는 회원들이 평소 갈고 닦은 시조창 솜씨를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로, 20여명의 회원들이 장구와 대금의 반주에 맞춰 평시조·우시조·각시조·남창질음·여창질음·엮음질음·시창 등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를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르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을 구성지게 수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포항시낭송가협회와 맥시조문학회가 콜라보로 마련하는 ‘詩가 되어 밀려오는 삶의 바다’ 시낭송 콘서트는, 바다와 어촌 주제의 맥시조 회원의 창작시조를 시낭송과 시창, 시극으로 다양하게 각색, 연출될 것으로 보여져 시낭송의 매력을 더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번 시낭송 콘서트에는 맥시조 회원 3~4명도 출연하여 시낭송을 함께 하고, 또한 공연장 입구에서는 맥시조 회원들이 지난 여름날 손수 그리고 쓴 시화작품도 반짝 전시될 예정이라서 한결 이색적이고 푸짐한 시 나눔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활자로 된 시나 시조를 목소리의 예술로 표현하고 노래로 부르는 것은 시의 근원적 본질이자 전통인 노래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시조의 운율 속에 내재된 음악성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리듬과 고저강약의 장단을 맞춰서 유창하게 낭송하고 시조창으로 부를 때, 시적인 감흥과 생명력이 살아나 낭송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항상 열려 있고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귀를 통해 마음의 숨결 같은 시낭송으로 시의 묘미를 흠뻑 느껴보면 어떨까.

2024-11-12

공공시설을 아름답게 가꾸는 손길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서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심을 가로 지르는 포항철길숲 길가로 줄지어 선 나무들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저어가니, 붉거나 누런빛을 띈 잎새가 간간이 떨어지며 반기는 듯하다. 한결 선들해진 날씨에 여행을 떠나거나 활동하기에 편한 계절, 아침 일찍 자전거 두 바퀴를 한 시간여 굴려서 당도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 끝 해안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환호공원 내 물의공원 입구다. 챙이 넓은 파란 모자를 쓰고 연청색 조끼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물의공원 벤치에 모여들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 쪽 도로변에는 삽과 곡괭이, 호미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관목류의 묘목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걸 봐서는 묘목을 심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여겨졌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단장인 듯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오늘의 작업내용과 일정 등에 대해 안내하고, 초청한 조경전문가가 관목류 식재방법과 요령, 주의점 등에 대해 실습을 곁들인 현장교육을 진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의 ‘제80차 환호공원 가꾸기’ 자원봉사활동의 시작 모습이다. 이어 30여명의 봉사자들은 각각 삽이나 곡괭이, 호미 등을 들고 흩어져 익숙한 듯 재발리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심게 되는 나무는 하얀꽃·분홍꽃 진한 향기가 은은히 피어나는 원예종 ‘꽃댕강나무’이다. 수종이 다소 생소한 것 같지만 ‘평안함’이라는 꽃말로 학교나 공원, 공공건물 등지의 진입로 유도식재로 많이 심게 되는 덤불형 관목이다. 봉사단원들은 3~4개팀으로 나눠서 땅파기와 골 타기, 나무 심기, 흙 북돋우기 등의 과정을 분담해서 손발을 맞춰가며 순조롭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가던 많은 관광객들은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에 감사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프랑스에서 왔다는 3명의 여성들은 ‘볼런티어 원더풀(Volunteer Wonderful)’을 연거푸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은, 지난 2021년 11월 포스코에서 사회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전국적인 핫플레이스 ‘스페이스워크’ 개장과 함께 출범, 초창기에는 스페이스워크 방문객들의 조형물 이용 안내와 안전유지, 주변 환경정화 등의 활동을 실시했었다. 그러다가 봉사단의 의미와 활동범위를 확장시켜 환호공원 전역과 포항운하 시설물까지 포함하여 곳곳의 미관개선과 편의성 증대를 위한 보행로 주변 화단조성 및 녹지대 명패관리 등 필요한 개소에 맞춤형 활동을 펼침으로써 공공시설물의 가치와 실질적인 유지보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와 여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포항 최대 규모의 공원을 더 깨끗하고 편리하게 가꿔 나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아름답기만 하다. 스페이스워크로 가는 길목에 지난 봄날 400여 그루의 형형색색 수국을 심은데 이어, 이번에는 900여 그루의 꽃댕강나무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꽃향기와 환한 꽃망울로 환호공원을 찾는 이들을 반겨 맞을 것이다. 식재작업을 마치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부터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가 포스코의 따스한 지역사랑 마냥 촉촉하고 흡족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2024-11-05

감빛 회상에 젖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 여유로운 휴일 오후, 한가로이 고무신을 끌며 뒤뜰과 텃밭 주변을 거닐다가 문득 들려오고 눈길 가는 곳을 응시하게 됐다. 새들의 밀어 같은 재잘거림이 사방에서 들리고, 아직은 푸릇한 감나무 잎새 사이로 조금씩 익어가는 주홍빛 감이 보일 듯 말 듯한 곳에서 몇 마리의 새들이 포르릉 날갯짓하다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홍시가 된 감들을 쪼아대고 있었다. 수년 전부터 그렇게 찾아온 새들이 올해도 용케 찾아와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 기특하게만(?) 여겨졌다. 넌지시 그러한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폰카메라에 담기도 하는 등 내심 회상에 젖어 들기도 했었다. 새들이 날아들며 감홍시를 쪼아대고 들판에서 모이를 찾는 걸 보니 정녕 가을이 깊어 가는가 보다. 불과 한 달 전쯤만 해도 청청하기만 하던 산야의 초목이 누렇게 바래고 들판에서는 황금물결이 일렁이니, 농사력(農事曆)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를 마무리하고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즉,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로 접어들어, 낮으로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의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무렵이다. 유년시절의 가을은 언제나 감나무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고향집과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할아버지 집 뒤로는 아름드리 감나무 10여 그루가 키재기 하듯 우람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불그스레하게 감나무 잎이 물들어 떨어지면 뒤란에 수북하게 쌓여서 마치 ‘낙엽 이불’처럼 푹신하고 매끄럽기도 했었다. 땔감이 넉넉하지 않으면 감잎을 쓸어 모아 불쏘시개로 쓰기도 하고, 부러진 감나무 가지는 한데 모아 쇠죽을 끓일 때 지피기도 했었다.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는 일은 거의 다 필자가 도맡아 했었는데, 10여미터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거의 새들만 쪼아먹던 말랑말랑한 주홍빛 홍시를 통째로 입에 삼키는 그 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별처럼 뜬 감꽃이 뒤란에 떨어지면/실에 꿴 감꽃 목걸이 걸고 으쓱이며 들썩이다/어느새 배고파지면 입에 넣던 꽃잎들//암록(暗綠)의 잎새 바람 간간이 불어와도/감꽃은 푸르탱탱 땡감으로 자라나/떫어도 움켜잡으며 비바람을 견뎠지//청록의 감잎들의 불그스레 수런대고/하늘빛 닮아가며 별빛 꿈을 꾸다가/마침내 가지마다 켜지는 주홍빛 선물인가’ ㅡ拙시조 ‘감빛 서정’ 전문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퍼 야단 맞고 초조해하며 떨떠름하던 땡감 같은 시절이 지나면, 비바람 모진 서리 맞으며 잉태해온 주홍빛 속살이 말랑해져서 연시가 되거나 더욱 단단해져서 건시(곶감)가 되어 특유의 단맛과 빛깔을 띄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땡감마냥 푸르탱탱한 패기와 의욕으로 청년시절을 보내고, 하나씩 털고 버릴 것은 거두고 내면을 채워 숙성의 농밀함으로 익어가는 중장년의 여울에서 감빛 마냥 은은하게 빛나며 먼 하늘을 응시하지 않을까 싶다. 연신 홍시를 쪼아대며 사이좋게 나눠 먹는 새들이 정겹기만 하다.

2024-10-22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과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 높푸르고 흰구름 둥실 떠가니 억새가 손짓하며 반긴다. 정갈한 햇살에 마음의 습기마저 말려지는 듯한 10월, 과연 문화의 달 답게 시월은 연일 행사가 한창이다. 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시·공연·음악회·백일장·기념·체험·버스킹·축제 등의 온갖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음악이나 함성소리가 들리고 문화시설마다 온갖 행사로 광고나 홍보물이 빼곡하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니 밝고 활기차 보인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묵향이 피어나는 학생들의 서예작품이다. 삐뚤삐뚤 서툴고 미숙한 듯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점획들이 정겹기만 하다. 마치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쳐왔듯이 자신들이 아득한 학생시절로 되돌아가 티없는 순박함으로 무작정 붓 가는 데로 쓰고 그린 붓질처럼 여겨져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시간의 단면 같은 아득함이랄까, 박제된 그리움마냥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먹내음이 진하고 무던하기만 하다. 이러한 전시회는 최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충효학생서예대전’의 입상 작품전이다.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주관한 충효학생서예대전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타 시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예 꿈나무들의 발굴과 육성, 장려를 위해 지난 1992년부터 한번도 거른 적 없이 매년 개최해온 학생 서예 공모전이다. 갈수록 응모작품과 참가학생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예학원과 학교 출강 지도강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33회째 명맥을 이으며 성황리에 열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첨단기기의 정보화 사회에서 옛 선인들의 정신과 기예를 되살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올바른 교육문화 형성에 보탬을 주는 서예 꿈나무 발굴·육성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갈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등한시돼 버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이와 같은 서예대회를 통해 명맥을 잇고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통의 가치제고와 정신문화 고양에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예술적 감성을 북돋우는 학생서예대회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글로벌 정신과 다양한 콘텐츠 창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를 평소 갈고 닦음으로써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실을 습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족한 예산과 출품 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충효학생서예대전은, 지역 서예계 꿈나무들의 발표 기회와 희망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후진양성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공부와 학원 수업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갈고 닦으며 서예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입상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갈수록 인구와 학생수가 감소하지만,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계승을 일깨우고 예술적 탐색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 나가는 충효학생서예대회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과 지자체의 육성·지원으로 활성화되고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10-15

풍요로운 10월, 문화축제의 명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푸른 기운이 결실과 단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가을태풍의 북상 예보가 있긴 해도, 하늘은 점차 높푸르게 가을빛을 더해가고, 들판에서는 정갈한 햇살을 받아 오곡백과가 넘실넘실 익어가고 있다. 하늘 맑고 공기가 상쾌해(天朗氣淸)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라 실내외 활동하기에 편하고 좋은 계절, 사람사는 세상에는 요즘 온갖 축제나 체육대회·전시·공연·체험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른바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이런저런 문화축제가 즐비하다. 이미 9월 중·하순부터 크고 작은 행사가 시작돼 잔치 분위기가 나는가 싶더니, 10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축제시즌이라 할 정도로 전국의 도처에 특색 있고 다양한 축제·문화제·대회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유난히 무덥고 길게 이어진 여름날의 인내와 시달림을 축제로 풀기라고 하듯 축제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고 즐거워 보인다. 축제는 이렇듯 격식을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큰 잔치이기에, 음악적 퍼포먼스나 상연, 음식, 의식, 테마, 전통, 자연 등과 결부되는 조직화된 일련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제나 대회 등의 행사는 모두 일정 부분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이뤄지게 된다. 민간 주도의 예산 지원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각 지역별로 지역상권 활성화와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행사를 급조한다거나 선심성(?) 예산지원으로 세금을 축내는 경우가 있어서 다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전국적으로 전시성 축제의 난립과 국비·지방비의 세금을 지원받는 일종의 ‘정책카드’로 변질돼 축제 자체의 전통성과 상징성이 퇴색되고 문화적 교류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사는 사례도 있다. 또한 축제장의 장사꾼 난입과 바가지 요금, 무질서, 비위생적인 환경 등도 문제지만, 특히 축제운영 담당인력의 전문성과 경험 부족으로 옥의 티처럼 비춰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최근 포항지역에서 ‘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 열리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었는데,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독서 서평 대결이 당일 우천으로 인해 대회 시작 5분 전에 돌연 취소(연기)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대회 출연진과 시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3개월 전부터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올라온 초등부·청소년·일반부의 각 팀에서는 의상과 소품, 장비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선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강우 대비를 사전에 했음에도 느닷없이 전국적인 대회를 시작 직전에 보류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졸속으로 여겨져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몇가지 문제와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고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결정으로 한치의 허술함 없이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운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몇 개월 전부터 입안하고 기획·추진하는 축제가 준비와 운영의 부실이나 실책으로 파행된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날씨 좋고 먹거리가 풍부해지는 10월의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길 기대해 본다.

2024-10-01

가을의 서가(書架)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늦도록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세찬 비바람에 쫓겨 가고 이제는 쾌청하고 삽상한 가을 날씨다.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다가 문득 등화가친이란 말이 떠올라 서가에 꽂힌 책들을 훑어본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의 중앙 하단에는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세계대백과사전이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휴대전화기로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의 검색이 가능한 지금은 별로 쓸모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망라한 엄청난 보고(寶庫)였다. 그 밖에도 월부로 산 전집으로는 세계고전문학, 세계현대문학, 한국현대문학, 한국고전문학, 세계사상전집, 한국사상전집, 세계역사, 한국사대계 등이고 문학·종교·과학·예술 관련 단행본들은 수시로 서점에 가서 구입한 것들이다. 내가 산 책들은 버리지를 못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그야말로 안 먹고 안 입고 구입한 것들이라 살과 피를 나눈 분신과 같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책 짐이 너무 많아 큰 맘 먹고 몇 십 년 쌓인 문예지들은 버리기로 했다. 따로 내놓다가 무심코 그 중 한 권을 펼쳐보는데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오십 년도 넘은 세월에 누렇게 변색이 된 책장의 군데군데 그어진 밑줄을 보노라니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는 것 같은 감회가 밀려온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문예지를 사러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가곤 했다. 물론 간 김에 두어 시간 서점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책은 선 채로 대충이라도 훑어보았다. ‘현대문학’과 ‘문학사상’ 같은 문예지는 거르지 않고 구입을 했지만, 시전문지와 계간지들은 내용과 형편에 따라 선택을 했다. 결국 나는 그 문예지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로 가져와서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내 인생 여정의 길라잡이였다.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지 못한 붙박이지만, 동서고금을 두루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마음의 행로는 그 책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도달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빈손을 내 보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서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듯이 독서는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지식과 사상의 체계를 한 번 섭렵해보자는 것이 독서의 목표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무수한 문호·철학자·예술인 중 단 한사람의 연구에 평생을 보내는 학자들도 허다한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모두를 섭렵한단 말인가. 주마간산으로 일별하는 것만도 사뭇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독서로 얻은 것이 있다면 섣불리 편견이나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이 기울어졌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균형감각을 갖게 된 것이랄까. 남은 여정도 이 서가의 책들이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2024-09-26

세계유산 활용사업 ‘소수서원 필리아’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길고도 지루하던 더위를 깡그리 밀어내기라도 하듯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간간이 산허리까지 안개가 내려와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더하고, 흠뻑 젖은 솔숲에서는 빗줄기와 어우러진 솔내음이 차분하게 깔리는 듯했다. 송림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서원(書院) 기와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마냥 또렷하고 정겨운 해설사의 설명을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고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게만 보였다. 이와 같은 장면은 국가유산청의 2024년 세계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소수서원 필리아’의 한 부분이다. ‘세계유산 활용사업’은 국가대표 브랜드로서의 세계유산 가치의 보존 및 전승, 융복합적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기획된 사업으로, 영주시에서는 국가유산청의 2024년 공모사업에 ‘소수서원 필리아’ 등 2건이 선정됐다. 동양대학교 한국선비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소수서원 필리아’는 일상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심신을 힐링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소수서원 탐방을 시작으로 내 몸을 행복하게 하는 치유음식 특강과 청국장 영양식단이 나오고, 꿈결같이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소수서원의 솔숲에서 해금과 거문고의 그윽한 선율이 흐르면 지나가던 바람조차 멈추고 풀벌레들의 청아한 합창이 추임새를 더하며 여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여명 속에서 서광을 맞이하는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아침에 다향을 맡으며 차훈(茶熏)명상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심신의 평온함과 안정감이 얼굴에 쓰여 질 정도로 개운하고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리아(Philia)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나 증세’ 등을 뜻하는 영어 접미어로 우애 또는 형제애로 옮겨진다. 즉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이 쌍방적으로 상호 간에 인지하고 있는 품성상태’를 말한다. 예부터 강학과 제향기능이 있었던 서원이 현대교육의 도입으로 대중과 멀어지고 향사기능 위주로 축소되자, 정부에서는 2013년부터 ‘서원향교활용사업’을 기획, 지원하여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서원문화행사를 열어 왔다. 소수서원은 동양대 한국선비연구원의 협력으로 서원스테이, 사마(司馬)선비과정, 소수서원 필리아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서원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해왔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소수서원에서 옛 숨결을 느끼며 자연과 인문학으로 서원의 학맥을 계승하는 문화사업을 펼친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법고창신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통해 전국에 소재한 문화·자연·무형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다양한 아이템과 연계사업 추진으로 지역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고유한 문화전통으로 존속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지역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기획, 추진되는 문화사업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24

책과 독서의 요람 ‘2024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서늘해진 기온에 풀벌레 소리가 정겹다. 한낮으로는 늦여름의 꼬리를 잡는 노염의 심술이 가시질 않지만, 산과 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결에 그리던 가을이 차츰 오려나 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코스모스는 방실방실 피어 반기고, 온갖 풀벌레들은 청아한 합창으로 결실의 계절을 환호하는 듯하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은 책 읽기 좋은 ‘독서의 달’이다. 중국 당나라 문호 한유의 ‘이제 등불을 점점 가까이할 수 있으니(燈火梢可親) 책을 한번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簡編可卷舒)’ 시구를 굳이 들춰내지 않더라도, 덥고 습한 여름날의 시달림을 떨치며 산뜻한 날씨와 서늘한 바람 결에 책을 읽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더라도 즐겁고 가뿐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나 자연의 현상에 동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읽기 좋은 가을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의 독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문체부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2013년 72.6%에서 2023년 43.0%로 약 30% 급감했다. 그만큼 국민의 여가 중 독서 비중이 감소한 탓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활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아진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또한 독서의 계절 가을에 비해 여름철의 독서량이 15% 정도 더 높다 하니, 어찌 보면 책 읽는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틈 나는대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고(手不釋卷) 글을 읽는 자세나 습관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차제에 국민들의 독서 권장과 책 읽는 문화 확산을 위한 전국 최대 규모의 독서문화축제가 9월 말경 포항지역에서 열리게 돼 전국적인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 포항시가 문체부로부터 ‘2024년 대한민국 책의 도시’로 선정, 선포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포항시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9월 27~29일) 영일대 누각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대구·경북권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2024년 독서문화축제는 ‘책으로의 항해’라는 슬로건과 ‘동해바다, 책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책과 연관된 강연·공연·전시·체험·학술포럼 등 다채롭고 차별화된 독서축제를 선보일 전망이다. 이를 통해 책과 독서문화의 활성화로 기존 철강도시로 알려진 포항이 문화와 지식의 바다임을 알리며 책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 끝없는 모험과 지혜의 보물이 존재한다. 책은 우리 삶의 유익한 동반자이자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이다. 독서는 사람의 재능을 밝혀주고 지혜를 더해 주듯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열어갈 예지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일에서부터 사회적인 문제까지 지식과 정보, 감성과 상상력 등 다양한 통찰과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참여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독서문화의 향연이 성황리에 열리길 염원해본다.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