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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인생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골프나 배드민턴, 야구 등의 스포츠에서 골프채, 라켓, 배트 등으로 공을 칠 때,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빠르게 날아가게 만드는 최적 지점을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라고 한다고 했다. 최적의 타격면이라는 뜻이라는데, 원래 스포츠 분야에서 나온 용어인 걸 검색해서 알았다. 야구선수는 배트에 공이 이 스위트 스팟에 딱 맞는 순간 공이 제대로 멀리 날아갈 것을 안다고 했다. 스포츠 용어인 ‘스위트 스팟’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로 좋은 시기나 부분, 한 마디로 최적화된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서의 스위트 스팟은 경제가 이례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시기를 의미하고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시점 혹은 그 느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어를 샘 리처드 교수(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과)가 쓴, 최근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으로 접했다. 유튜브의 숏츠나 채널로 종종 리처드 교수를 만났기에 그가 쓴 책이 궁금해서 사 읽었다. 리처드 교수의 강의실은 특별했다. 간편한 티셔츠나 청바지 차림의 교수는 계단식 큰 강의실에서 주제를 말한 후 여러 학생들을 앞자리로 불러 앉힌다. 자발적으로, 혹은 불려 나온 학생들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었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들이 답하는 형식의 그 강의는 ‘SOC 119’라는 유튜브 채널로 전 세계에 방송되며 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17년엔 ‘그런 말은 하면 안돼요’라는 제목으로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수업을 진행해 미국 에미상 교육·학교 프로그램 부문 최고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인종과 성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나 타인의 관점으로 사고하도록 지도하는 강의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혁신적인 방식인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5만 명이 넘었다고 했다. 리처드 교수는 한국문화와 한류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강의를 자주 해서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근한 대표적인 학자다. 리처드 교수는 인생에도 ‘스위트 스팟’과 같은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시점에 맞닥트리게 되고 그 중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바로 ‘스위트 스팟’이라는 것.‘스위트 스팟’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으며, 어쩌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 찾아내고 느끼는 것이라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위트 스팟’이라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를 ‘타이밍(timing)’ 혹은 ‘줄탁동시(5550啄同時)’ 정도로 치환했더니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었다.‘타이밍(timing)’은 어떤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적절한 좋은 시기를 뜻하는 것이고, ‘줄탁동시(5550啄同時)’는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순간 알에서 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역시 최고의 순간이라는 뜻 아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스위트 스팟’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매 순간일 수도 있다.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025-04-02

세계 시조의 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미국인 학생들이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30여 명 정도 되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도 있었다. 복도에는 한국인 여럿이 김밥, 잡채 등의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손님 대접에 분주했다. 2018년 2월 8일, 미국 유타주 프로보의 브링검영 대학교(BYU)에서 개최된 ‘제5회 유타주 시조 낭송대회’. 세미나실을 가득 채운 청중 중엔 한국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학교의 미국인 학생과 교수님들이었다. 대회의 주최자이신 마크 피터슨 교수님의 짧은 개회사와 심사위원 소개 후 학생들의 시조 낭송이 시작되었다. 준비된 PPT엔 한글로 쓴 시조가 뜨고 학생들은 화면을 보면서 낭송했다. 시조 아래엔 영문 시가 있었다. 아마도 한글을 모르는 청중을 배려한 듯했다. 두 시간 남짓 발표가 진행된 시조 대회에서 학생들은 시종 진지하고 긴장한 듯했지만 심사하는 나로서는 얼마나 재밌고 감동스러웠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한국인 청중들도 감격의 웃음이 동반된 큰 박수를 치며 즐기는 듯했다. 당시 BYU에 연구교수로 가 있었던 나는 피터슨 교수님의 초청으로 가서 연구실도 하나 얻었고, 이따금 한국문학 강의도 했다. 연구년이 끝나 귀국할 무렵 시조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조낭송대회는 유타의 한국 교포들께서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운영한다고 했다. 매년 4월 학기 말에 개최한다길래 참석 못해 안타깝다고 했더니, 피터슨 교수는 한국고전시가 전공교수가 심사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거라며 행사 일자를 나의 귀국일 전으로 앞당기겠다고 했고, 나는 귀국 하루 전에 이 행사의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유타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과 재미교포 소설가와 같이 심사하고, 심사평과 수상자 발표는 내가 하였다. 학생들의 시적 착상과 이미지는 발랄하고 참신하였고, 시조에 대한 지식도 꽤나 단단해 감동적이었으며, 한복을 갖춰 차려입는 성의도 고맙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시조의 율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을 가려 뽑아 수상자로 정했다. 그때 피터슨 교수의 개회사가 뜻깊었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가 미국에 알려져 창작 유행이 있다면서, 한국의 시조도 전통과 역사가 하이쿠에 밑질 것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시카고의 한인단체 세종문화회 중심으로 시조 창작이 매우 활발하며, 심지어 우주선에 시조를 실어 보냈다 했다. 피터슨 교수는 이 시조 대회를 시카고의 시조 유행과 접목시키고 싶다고도 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지난달 피터슨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 ‘우물 밖의 개구리’로 2월 7일, ‘세계 시조의 날(World Sijo Poetry Day)’ 선포식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이 기념식을 유튜브로 전 세계에 중계했다. 왜 2월 7일일까 궁금했는데 고려말 시조 시인 역동 우탁 선생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족보 연구의 대가이신 피터슨 교수님다운 발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2006년 8월 현대시조 100주년 기념식에서 ‘겨레 시 시조가 세계만방에 천둥처럼 울리게 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한 날이었다.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날이기도 했다.

2025-03-27

시험 치는 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주인공은 영화감독 데뷔를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면서도 잠만 잔다. 낮 12시가 넘어 일어나서 밥을 차려 먹은 후에도 노트북에 다가가기가 힘들다. 평소 잘하지 않던 방청소를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히 청소하고 하릴없이 선풍기를 분해해서 깨끗이 닦는다. 더 이상 할 일이 눈에 띄지 않으면 그제서야 노트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도 글자 폰트만 매만지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낮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밤이면 친구들과 술자리. 그러기를 며칠째 반복하고 나서야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극한직업’의 영화감독 이병헌이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첫 부분이다. 어쩜 나랑 저리도 똑같을까 공감하면서 피식 웃었다. 논문 마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 어질러진 연구실을 대청소하는 일이다. 책장에 마구 꽂힌 책들을 장르별로 가지런히 챙긴다. 누워있는 책들도 일으켜 세운 후 물걸레로 책장의 먼지를 깨끗이 닦는다. 심지어 책상의 방향을 다시 바꿀 때도 있다. 넓지도 않은 연구실에서 그것은 거의 대공사에 가깝지만 강행한다. 창문 쪽으로 놓인 책상을 입구 쪽으로 틀어 돌려놓거나, 혹은 좌우를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낑낑대며 책상을 옮기고 나면 컴퓨터며 프린터 등의 부속품들도 자리를 바꾸게 되고 전선을 뺐다 꽂는 등 꽤나 작업시간이 걸린다. 책장 가까이 한 켠으로 배치되었던 소파의 위치도 연구실 가운데로 옮겨 보는 등 지치지 않고 일을 키우고 벌인다. 바닥 청소까지 멀끔하게 하고 난 후 재정리된 연구실을 휙 둘러보면서 잠시 만족감을 느낀다. 아차 할 일이 있었지 그제야 깨닫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 컴퓨터를 켠다.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이제부터 논문을 쓰자며 또 밤샘이다. 자주 이런 일을 벌이니 영리한 조교는 잘도 알아챈다. 교수님 논문 쓰셔야 되죠? 작년 11월부터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위해 인터넷 수강을 한다. 매주 8과목씩 15주를 듣는다. 수강하기만도 벅찬데 쪽지시험과 과제 제출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두 번의 시험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욕심 내지 말고 설렁설렁해서 80% 정도 성적이면 된다며 마음먹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비록 오픈북 형식이지만 시험은 시험이다. 시험일이 다가오자 긴장되고, 들었던 강의를 다시 들으며 시험공부라는 걸 하게 된다. 시험일이 닥치자 예전의 습관이 도졌다. 시험 친다고 컴퓨터를 켜 놓고는 책상 주변을 청소한다. 둘러보니 책장 정리가 필요하다. 이 방 저 방 흩어져 함부로 섞여있는 책들을 옮긴다. 내 책과 남편 책, 손주들의 책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주방으로 가 그릇장을 활짝 열어젖혀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두 손 걷어붙이고 모두 꺼내 일을 벌인다. 화장실 바닥을 박박 문지른 후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까지 하고 나서야 젖은 손을 털면서 컴퓨터로 돌아온다. 아침에 켜 둔 컴퓨터 모니터엔 ‘장시간 사용하지 않아서 로그아웃되었습니다.’라는 사인이 떠 있다. 깊은 밤이다. 밤을 꼬박 새워 시험을 치고 나니 새벽 창밖이 푸르다. 예전 연구실의 창밖 풍경과 어쩜 저리도 똑같을까.

2025-03-19

무방수날 장담그기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장담그기는 김장 문화와 함께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작년 2024년 12월 3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장 제조법이기에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등재되었다. 장담그기는 콩을 주재료로 메주를 만든 뒤 이를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전통적인 과정을 이르는 것으로,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은 한국인의 일상음식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으며,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세대 간에 전승돼 왔다는 게 등재 사유였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거의 1년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슬로푸드의 끝판왕이다. 초여름에 콩을 심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두어 말린 뒤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쑨다. 콩을 불려 충분히 무르게 삶아 으깬다. 메주틀로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볏짚으로 묶어 두면 곰팡이균이 만들어지는데 겨우내 처마 끝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이월 좋은날을 가려 장담그기를 한다. 먼저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뒤 속에서 볏짚을 태워 살균소독한다. 메주를 씻어 말리고 소금물을 계량해 준비한다.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고, 말린 고추와, 말린 대추, 옻나무, 숯을 적당히 넣고 가늘게 자른 대나무를 항아리 안에 걸쳐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둔다. 볕 좋은 장독대에서 두세 달이 지나면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했다. 몇 백년 묵은 간장을 간직한 종가도 있다고 들었다. 작년 흰머리소녀 모임, 유복혜 선생님께서 ‘장은 무방수날에 담근다.’고 하셨다. 무방수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월의 ‘손없는 날’이었다. 귀신이 날마다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를 하는데, 9와 0으로 끝나는 날짜에는 하늘로 가서 어디에도 없다고 믿었고 그날이 바로 ‘손없는 날’이다. 따라서 ‘손이 없는 날‘은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어 꺼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고, 결혼, 이사, 개업 등 인간의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중 특히 이월의 초아흐레와 열흘을 무방수날이라고 하는 거였다. 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특히 무방수날에 담근 장은 맛이 좋다고 했다. 지난 주말이 무방수날이었고 내 생애 첫 장담근 날이었다. 청도의 유복혜 선생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들어, 잘 소독하신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붓는 참 짧은 공정만이었지만 첫 시도는 설레고 값졌다. 함께한 이솔희 선생님은 이 의미있는 행사를 유튜브에 올렸고, 같이 간 손녀는 일기에 적을 거라고 했다. 매일 햇볕을 가려 받는 유 선생님의 수고가 맛난 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석 달 뒤 장가르기를 위한 또 한 번의 청도나들이가 기대된다. 평생 여기저기서 된장을 얻어먹던 내가 어쩌면 올해부터는 된장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5-03-12

나이 드는 것은 성장하는 것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영화 감상이 취미인 나는 영화를 짧게 편집하며 소개하는 유튜브를 여러 개 구독하고 본다. 더러는 이미 봤던 영화를 회상할 때도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날 때도 있다. 유튜브에서 그렇게 봤던 영화를 TV로 다시 볼 때도 많다. 20년도 더 전에 책으로 봤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그 당시 워낙 베스트셀러였기에 사 봤던 책이었는데 거의 동시에 영화로 나온 줄은 몰랐다. 책의 저자인 미치 앨봄(Mitch Albom)처럼 나도 일에 미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가 보다. 미치 앨봄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인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교수의 제자다. 둘의 관계는 제자는 교수를 코치라고 부르고, 교수는 제자의 애칭을 부를 정도로 매우 돈독했다. 미치는 대학 졸업 후 성공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정신없이 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나 프로포즈도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사니 자신에 대한 성찰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때 우연히 본 유명 TV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에 나온 모리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모리가 루게릭 을 앓고 있으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치는 모리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모리를 찾아간다. 16년만에야 다시 만난 교수 모리는 미치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눈물로 환영한다. 그 후 화요일마다 인생에 대한 둘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미치는 직장으로부터 해고 위협을 받고, 애인의 결별 선언을 감수하면서도 이 수업을 위해 14주나 비행기를 탄다. 세상, 자기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 완벽한 하루, 작별 인사를 주제로 매주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 제자 미치가 모리 교수와의 그 수업을 책으로 옮겼고, 모리 교수가 죽은 후 출간되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책장에서 찾았다. 과연 읽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까마득하다. 오래전 책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40대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70살의 내게 공감되는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감동과 공감의 포인트가 나이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이라고 묻는 미치에게 말하는 모리의 완벽한 하루는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롤케이크와 홍차로 아침을 먹고, 수영하고, 친구들과 점심 먹고, 이야기하고 싶어. 그리고 산책하면서 자연을 느끼고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멋진 파트너와 춤을 출 거야. 그리고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지.” 죽음에 대한 성찰도 곱씹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죽음은 외투 속의 손수건처럼 아주 가까이 있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며 인생 최후의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든 모리 교수를 배우고 싶다. 가장 가슴에 와서 콱 박히는 말은 이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쇠락이 아니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좀 늙었으면 하는 사람은 왜 없는 거지?”

2025-03-05

무해력(無害力)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손자가 얼굴에 잔뜩 불만과 울분을 담은 채로 내 방으로 왔다. 왜 그러냐고 깜짝 놀라 물었더니 우왕 울음보 먼저 터뜨렸다. 뒤따라 온 제 사촌누나가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가지고 온 토토로인형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더 크게 울기에 일단 말없이 등만 토닥이며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지난 달 1월 나의 칠순 기념으로 베트남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 때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저희 방 뱃전의 테라스에서 가지고 놀던 인형이 바다로 떨어진가 보았다. 울음이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다. 배를 돌려 그 자리에 가서 인형을 건져올려야 한다길래 그건 불가능하다며, 다시 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울음은 잦아들었으나 여전히 흐느끼면서 꼭 같은 걸 사려면 일본에 가야한다고 했다. 아마 지난여름 일본 가족 여행 갔다가 사온 인형이었나 보았다. 잘됐다. 한 달 후에 할머니가 일본엘 가니 꼭 같은 걸 반드시 사다 주겠다고 약속하고서야 진정되었다. 그 후에도 베트남 얘기만 하면 잃어버린 토토로가 생각난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8살 사내아이가 로봇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아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집에 와서 잘 때면 안고 자는 인형 몇 개를 꼭 갖고 왔다.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자지 않거나 저희 아빠가 밤중에라도 기어이 가져다 줘야 잠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멀리까지 인형을 가지고 갈 줄은 몰랐다. 여동생에 사촌도 모두 여형제라 동화되었나 사내답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서울 손녀들도 대구에 올 땐 저희 가방에 몇 개의 애착인형을 반드시 가지고 오곤 했으며 대구 손녀는 보드라운 질감의 작은 인형이나 말랑말랑한 촉감의 작은 캐릭터 한둘은 항상 손에 들고 다닌다. 집집마다 동물인형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음에도 장난감가게에 가면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추는 곳이 봉제인형 코너여서 빨리 커서 인형을 찾지 않을 날이 왔으면 바라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2025년 대한민국소비트렌드를 전망하는 ‘트렌드코리아2025’(김난도 외, 미래의 창)에서 손주들이 애착인형을 품에 안고 손에서 조물거리고 놓지 않으려는 심리를 알게 되었다. 무해력(無害力)이란다. 작고 귀엽고 순수해서 해롭지 않은 것이 가지는 힘. 사방에서 온통 공격해 올 것만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작고 연약하고 귀여운 것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으니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단다.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해악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힘이 있단다. ‘앙증깜찍 무해력’은 작아서, ‘귀염뽀짝 무해력’은 귀여워서, ‘순수대충 무해력’은 서툴러서 무해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책가방에, 아니 어른들도 백팩에 작은 동물 키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바로 무해력 때문이란다. 지난 주 일본여행에서 손자의 잃어버린 무해력을 되찾아 주려 동행한 어른들이 힘을 모았다. 몇 개의 쇼핑몰에서 인형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었고 어찌저찌 비슷한 토토로인형을 구해 주었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손자가 실망할까 마음 졸였더니 인형을 두 손으로 받으며 활짝 웃는다. 아이고 할머니가 색깔을 착각했구나. 작아서 더 이쁘네….

2025-02-25

여행 준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행 짐 싸기가 어려운 게 아니다. 미리미리 메모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챙겨 바구니에 던져두면 된다. 갈아입을 옷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가 챙겨 넣어둔다. 떠나기 전날 종류별로 파우치에 넣어 큰 가방에 넣는 일쯤이야 뭐 그리 힘들 일도 없다. 여행 준비보다 나의 부재에 대비한 준비가 더 많다. 곰탕 끓이는 정도는 아니다. 여행 일수 만큼 남편의 아침식사로 야채샐러드, 두유, 찐계란을 밀프랩해서 냉장고에 가지런히 넣어 두면 된다. 원래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혼자서도 잘 사 먹는 좋은 습관이 있는 남편이다. 평소에도 하루 한 끼의 아침 준비로 참 수월하긴 한 편이니, 구태여 신경 쓰는 것은 내 최소한의 정성을 표하는 셈이긴 하다. 집안 청소도 중요한 여행 준비 중의 하나다. 나의 빈자리에서 발견될 허술한 구석이 걱정되기도 해서 남편의 행동반경 외의 안방과 주방, 앞뒤 베란다 등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꼼꼼히 쓸고 닦는다. 청소를 미리 당겨서 한다는 심정으로 정리하니 이게 여행 준비가 맞나 갸우뚱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여행이든 최종정착지는 집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요, 가출일 거다. 내가 돌아왔을 때 말쑥한 집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 사이 남편이 많이 어질러도 어쩌랴마는…. 여행 준비의 오랜 습관 중 하나는 손톱 정리다. 손톱에 이런저런 색으로 입히는 것을 매니큐어-잘못된 영어라고 했다-라고 했다. 요즘은 네일 케어라고 하던데, 뭐 둘 다 영어식 표현이라 좋은 우리말로 순화하면 좋겠다 싶긴 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 때 손톱에 빨간 봉숭아꽃물을 들인 채로 개학해서 학교 갔다가 그 도발적인 빨간색에 지레 부끄러워 손가락을 오므려 못 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엔 매니큐어를 미용실에서 했다. 미용실 바구니엔 오만가지 색의 매니큐어가 그득하니 넘쳤다. 장난 같이 발라보기도 하다가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플라스틱 대야에 비눗물을 따끈하게 데워줬다. 그 물에 손가락을 담가 손톱을 불린 뒤에 큐티클을 제거하곤 했다. 빨간 손톱칠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가끔씩 일면 방학을 기다렸다. 수업이 없으니 어떠랴 싶었다. 한 해 여름, 빨갛고 뾰족한 긴 손톱으로 학교엘 갔다가 정교님을 만나 교수답지 않다며 힐책을 들은 적이 있어, 다시는 하지 않았다. 다만 퇴직하고 나면 내 맘대로 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마냥 하지는 않았다. 며느리가 어버이날 선물로 네일아트를 예약해 주어 으리번쩍한 손톱으로 호사를 한 기억 정도. 다만 여행 계획이 잡히면 왠지 손톱 정리를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여행이 많은 해는 제법 오랫동안 손톱이 화려했다. 지난 달 베트남여행 때는 며느리가 권해 쨍하게 붉은 와인색으로 도발했다. 한 달 남짓 되었고, 와인색 손톱이 반 이상 남아있지만 또 다른 여행이니까 다시 손질해야지. 이번엔 점잖은 색으로 골랐다. 올리브색이라고 하는데, 손녀는 아보카도 같다고 한다. 여행이 일상의 일탈이듯 손톱을 꾸미는 게 내겐 가벼운 일탈인 듯하다. 손톱정리가 나의 여행 준비요 시작이다.

2025-02-19

정월보름날에 대한 기억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경주 남산 통일전 옆에 작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바로 서출지다. 여름이면 연못을 둘러싼 오래된 나무 백일홍이 아름답고 연꽃 명소로도 이름이 높아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찾는 곳이다. 이 못의 유래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섰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므로 왕은 신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신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글 쓴 봉투를 들고 나타난 왕께 전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봉투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어 한 사람이 죽는 게 더 낫다며 왕이 보지 않으려 했으나 일관이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니 열어보라고 조언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쐈더니 사통하는 사람 둘이 숨어있었고, 왕을 해치려던 사람들이었다. 봉투에 적힌 대로 둘은 죽었고, 왕은 살았다.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후 왕은 매년 첫 쥐, 돼지의 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며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노인이 나타나 건네 준 글이 적힌 봉투로 왕이 살게 되었으므로 못의 이름을 서출지로 부르게 되었다. 내겐 설날보다 정월 보름날의 기억이 더 많다. 엄마는 유독 정월보름을 챙겼다. 초등학교 졸업 후 우리 삼남매는 모두 대처로 공부하러 가 있었고, 정월보름날은 휴일이 아니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엄마가 밤새 장만한 오곡밥과 온갖 나물을 챙겨 싸 주시고 아버지는 새벽기차를 타고 오셨다. 기차역에서 우리 자취집까지는 걸으면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였지만 그날만은 택시를 타셨다. 등교 전에 먹여야 한다면 엄마가 당부당부했다며 바리바리 싸오신 보따리를 내려놓고 아직 자고 있는 우리를 보고 큰 숨을 몰아쉬셨다. 세 개의 찬합이 있었다. 첫 번째 찬합엔 부럼용 생밤과 설날 먹고 남은 강정 등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부럼부터 먼저 깨라고 하셨다. 자다가 일어나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강정 하나를 입에 넣었던 까끌한 기억. 두 번째 찬합엔 굵은 콩, 노란 조와 붉은 수수 등이 섞인 질척한 밥이 가득했다. 찬합에서 온기를 느끼며 아침밥을 짓지 않고 도시락까지 챙겨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나물로 그득한 마지막 찬합을 열면 입이 절로 벌어졌다. 보름 음식 중에 엄 마가 가장 신경썼던 것이 나물이었다. 가짓수가 생각나진 않지만 ‘땅에서 나는 세 가지, 바다에서 나는 세 가지, 산에서 나는 세 가지’가 기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콩나물, 무나물, 시금치에 호박과 가지말랭이는 땅의 나물일까. 물미역 무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름도 모르는 시커먼 묵나물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당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하셨다. 첫 입은 피마자잎에 크게 싸 먹으래. 평소 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그날 하루 공식적으로 허락된 귀밝이술도 안 드시고 우리를 위한 새벽기차를 타셨다.

2025-02-12

호(號), 또 하나의 이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경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같이 활동하시던 소당(素堂) 조철제 선생님께서 누군가에게 호를 지어주고 다같이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도 호를 지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다.그때도, 한참 후까지도 답이 없어 ‘네가 무슨 호가 가당키나 한가’ 생각하시는가 보다며 내심 서운했다. 내 위인됨이 변변찮다고 생각하시는가도 여겨 나도 입을 다물었다. 몇 년 후였다. 아마도 향토문화연구소의 정기모임이었을 것이다.조 선생님께서 마치 오다가 주웠다는 듯이 무심하게 종이 하나를 건네주셨다. 펼쳐보니 ‘의당(宜堂)’ 두 글자가 반듯하게 한자로 적혀있었다. ‘의(宜)’는 마땅하다, 화목하다. 온화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시경의 시 ‘도지요요(桃之夭夭)’에서 따왔다고 하셨다. 몇 년 동안 지켜봤는데, 언제 어디서나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 또 그곳을 화목하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으로 보였다고도 하셨다.앞으로도 항상 이 교수가 있는 곳이 어디든, 마땅히 그 자리를 복되고 빛내도록 하라는 뜻으로 정한 호라며 분에 넘치는 말씀도 함께 주셨다. 호는 많이 알려서 자꾸 불려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공표하고 축하연도 조촐하게 열어주셨다. 그 후부터 경주문화원엘 가면 나는 의당 선생이라 불렸으나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50살도 안된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버거운 이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드러내놓기엔 쑥스러워 SNS의 닉네임으로 숨겨 쓰곤 했다. 몇 년 후 2005년으로 기억한다. 지역신문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연구실에서 기자와 장시간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그만 호를 말해버렸다. 며칠 후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 경주에선 문화전문가, 포항에선 여성단체장, 안동에선 내방가사 전문가….” 참 기자님은 어찌 그렇게도 호를 적절하게 사용했나 놀라면서도 부끄러웠다. 대신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내 직분을 다하리라. 어디서든 필요하다 부르면 달려갔고, 소용 닿는다고 역할을 주면 마다않았다. ‘마땅한’ 소명이라 여기며 정말 치열하게도 살아냈다. 한글서예공부를 한 지 햇수로 1년이 훨씬 넘었다. 핑계가 많아 썩 열심히 하지 못했고 여러 모로 모자라 수연(秀硏) 최민경 선생님을 애태웠다. 같이 공부하는 다른 분들이 글씨를 완성해 호와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는 것이 못내 부러웠다. 최근에야 모자란 글씨인데도 격려해 주시려는지 한 장씩 연습한 글씨 아래 호와 이름자를 쓰기를 허락하셨다.이미 호가 있지만 새로운 호를 직접 지어주시면 고맙겠다고 간청 드렸더니 한참 후에야 답을 주셨다. 글을 연구하고 글씨를 연마한다는 뜻의 ‘서연(書硏)’. 더구나 선생님의 아호에서 한 자를 나눠주시니 황감하기 이를 데 없다. 좋은 글을 연구하고 글씨도 열심히 쓰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과분한 말씀에 은근한 독려도 곁들이셨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얼마나 여러 날 심사숙려해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인가. 내 나이 칠십, 남은 생 다하도록, 이름값하면서 사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2025-02-05

양춘포덕(陽春布德)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바뀌고 새 날이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하기가 못내 부끄러웠던 새해맞이였다. 서로 낯빛을 숨기며 인사하고 안부하기조차 주저했던 날선 나날도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지나자 아픔도 슬픔도 차츰 무뎌졌다. 한숨이 배긴 했지만 그럭저럭 인사도 오가곤 했다. 그래 잊히기 마련이고 또 잊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또 하나의 새해맞이. 설날이 다가오자 먼 옛날의 제자에게서,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도 새해 인사를 받는다. 보고 싶습니다. 부디 올해는 무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안부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 중 최민경 회장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카드 하나가 뭉클하다. ‘봄볕 같은 덕을 펼치다.’ 금빛반짝이는 빳빳한 카드에 정갈한 글씨, 그 아래 둥글고 단호하게 새긴 양춘포덕(陽春布德). 이 매서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는 시간의 순리를 새기며 느끼자 몸이 벌써 따뜻해진다. 그래 곧 봄이 올 거야…. 겨울 속의 봄이라 하면 판자벽에 검고 끈적끈적한 페인트를 칠한 교사(校舍)에 기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해바라기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조개탄 몇 덩이 넣어 간신히 추위를 면하다 금방 식어버린 교실보다 겨울 볕이라도 쬘 수 있는 바깥이 차라리 더 나았다. 바람기만 없으면 교실 밖이 덜 추웠다. 쨍하게 시린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부셔서 보이지도 않는 해가 보낸 온기가 변변찮게 입은 겨울옷 속까지 스며들어 따뜻해진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조차 꺼내 볕을 쬐며 햇살을 잡아본다. 말없이 해바라기를 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기가 돌고, 곁의 친구와 서로 얘기를 나눈다. 활기 넘치는 남자 아이들은 더워진 몸을 주체 못해 기댔던 판자벽을 떠나 뛰며 장난치기를 시작한다. 추위에 지치고 떠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이 햇살이 바로 덕(德)이 아닐까. 비록 봄볕 아니더라도. 덕(德)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것에 머무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이 문구는 주로 정치에 빗대어 풀이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큰 배움은 바로 정치라 할 수 있으니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밝은 덕을 베푸는 것이라는 조언이요, 주문이다. 국민만을 생각하는 정쟁보다는 상생이다. 어디 정치에서뿐이랴. 어떤 작은 조직에서도 덕은 리더의 덕목이다. 작은 이익보다 큰 포용이다. 이웃 간에도 덕은 서로 베풀며 살아야 할 규율이자 인정이고, 가정에서도 어른이 어른다우려면 모름지기 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도덕적·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능력으로서의 덕(德)은 품격이다. 나라의 국격이요, 인격이다. 다음 달 3일이 절기상으로는 입춘이다. 바야흐로 봄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올해는 나라가, 사회가, 이웃이 그리고 가정이 따뜻한 봄볕 같은 덕이 넘쳐나도록 펼쳐지면 좋겠다.

2025-01-30

이름의 무게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급에 70명이 넘었다. 초록색 천으로 싸인 출석부가 좁고 길쭉했다. 펼치면 한자로 된 이름이 빼곡했다. 이따금 선생님께서 내게 출석을 부르는 일을 맡기셨다. 모르는 한자가 있어도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모두 다 여학생이어선지 비슷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끝자가 거의 자(子), 순(順), 숙(淑), 희(姬), 옥(玉)이었다. 정을 첫 자로 쓴 이름들도 많았는데, 내 이름과 한자를 달리 쓰는 애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곧을 정(貞), 맑을 정(淨), 고요할 정(靜)의 한자였고 정(正)자는 없었다. 남들과 다른 뜻의 이름자를 가진 나는 까닭 없이 뿌듯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신문엔 내가 모르는 한자가 더 많았지만 함께 읽는 척하다가 정(正)자를 찾아내고는 아버지께 내 이름자의 내력을 여쭸다. 집에선 내 이름을 옥(玉)이라고만 부른다. 니가 났을 때 워낙 동글동글하다며 할머니께서 그렇게 지으셨지라고 하셨다. 옥(玉)자 말고요, 정(正)자요…. 아 차라리 여쭙지 말 걸 싶은 대답을 들었다. 니가 정월에 났거든…. 난 이월이나 삼월에 나지 않았음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이옥이 삼옥이보다는 정옥이 더 낫지 않은가.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야지 무슨 결기 같은 것이 생긴 건, 그 몇 년 후였다. 무슨 연유에선지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세상 가장 공손한 자세로 앉은 어머니가 뭔가를 묻고 점쟁이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긴 대답을 한다. 어머닌 좋아하는 기색이기도 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더 바짝 점쟁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셨다. 옆에서 그저 심상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점쟁이가 대뜸 이름을 물었다. 바를 정(正) 구슬 옥(玉)이라고 대답했더니 이름자를 크게 쓰면서 대통령 이름자하고 같네. 이름 풀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아주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의 정(正)자를 내 삶의 신조로 삼기로 결심했다. 불교 진각종단 위덕대에 다니게 되자 내게 또 하나의 이름, 불명(佛名)이 생겼다. 수계관정(受戒灌頂)으로 받은 불명은 ‘대자은(大慈恩)’이었다. 크게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라로 풀이하자 왠지 내겐 버겁다는 첫 생각이었다. 특히 대(大)가 그랬다. 정사님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인연 따라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엔 역량 부족이지만 두루 봉사하면서 살자. 최소한 폐 끼치면서 살지는 말자.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폐 끼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두렵다. 언젠가 중국 시안의 대자은사라는 절엘 갔다. 내 불명과 같아 반가워 감격했다.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이 수좌로 있으면서 역경사업을 했다는 절이다. 당 고종이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해 세워, 절 이름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큰 은혜’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역사깊은 내 불명에 사명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들었다. 절에 가면 불명을 조심스럽게 쓴다.

2025-01-22

달력 미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에서 보내온 달력을 받아본다. 집안 어딘가의 빈 벽에 붙여둔다. 달력으로서의 효용성보다 그림이나 사진에 눈길을 줄 때가 더 많아 달이 바뀌어도 미처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작년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청계사의 절 달력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달력을 얻었다.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발행처별로 달력에 기재돼 있는 날들이 다르기도 하려니와 흥미로워 나란히 걸어두고 비교해 봤다. 절의 달력에서 을사년, 서기 2025년인 올해가 불기로는 2569년, 단기 4358년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의 날짜 아래 육십갑자가 띠 동물 그림 옆에 쓰여 있다. 제삿날에 제문 쓰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성도일’, ‘관음재일’, ‘지장재일’, ‘약사재일’과 같은 날을 연꽃그림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들 재일은 매월 재를 올리는 날인가 보았다. 불교의 기념일은 가톨릭교의 기념일에 비하면 크게 많지 않은 편이다. 예를 들면 1월 한 달 중에서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념일이어서 솔직히 놀랐다.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일은 ‘성 대 비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3일부터 12일까지는 5일의 ‘주님 공현 대축일’ 전후에 치르는 의식의 날인 듯 보였다. 다른 달에도 기념일들이 빼곡했는데 가톨릭 역사의 그 수많은 성인들을 모두 섬기는 듯했다. 그 모든 날을 기억하려면 달력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두 달력을 유심히 관찰하고 읽으면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종종 오늘은 무슨 날이지? 들여다 보곤 한다. 며칠 전, 휴대폰에서 “달력 구하러 오픈런”이란 기사에 눈길이 가서 읽었다. 은행 달력을 얻으러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은행 달력을 사겠다는 글이 올라온다는 기사였다. 스마트폰이 달력과 시계의 기능을 다하는 21세기에 웬 레트로 감성인가 했는데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헛웃음이 난다. 달력미신이란다. 은행 달력은 돈을 부르고, 병원이나 약국, 제약사의 달력은 건강하게 한다며, 소방서 달력은 화재를 예방하고 보험사 달력을 걸어 두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 만들어지고 미신이 되어 이와 같은 달력 품귀라는 사회적 현상이 생겼단다.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의 달력을 얻어 걸어두면 행운과 먹을 복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 우리 집에 있는 저 달력은 어떤 복을 줄까? 절의 달력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니 좋다. 가톨릭달력은 병원 달력이니 건강은 확보되었다 치고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의 달력은 공부를 잘하게 한다고 소문내 볼까? 재물복까지 욕심이 났다. 서울에서 하나은행지점장으로 있는 이질녀에게 메시지를 넣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기사 얘기를 했더니 이모 달력 필요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 며칠 후 도착했다. 오픈런으로도 못 구한다던 바로 그 은행 달력이었다. 한 장에 3달이 펼쳐진 달력, 절이나 성당의 기념일이 없는 대신 24절기와 음력이 공손하게 새겨진 유난히 희고 깨끗한 달력에 나의 이벤트를 빼곡하게 채워 넣어 우리 집만의 달력을 만들어 볼까 한다. 이질녀 덕에 재물복까지 확보했으니 든든하다.

2025-01-15

일상의 고마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아침 7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인터넷 강의를 듣느라 새벽에야 눈을 붙였다. 몸이 찌뿌둥해 좀더 잘까 하다가 일단 일어난다. 두유라도 만들어놓고 눈을 더 붙여볼 수도 있다. 흰콩과 검은콩을 섞어 둔 통에서 계량컵 3개 분량을 담아 살짝 물에 씻어 두유기에 넣는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을 동안에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다. 전원을 켜 두유를 선택하여 누른다. 32분이 지나면 두유가 완성될 것이다. 그동안 다시 침대로 가 몸을 누일까. 생각해 보니 찐달걀이 없다. 냉장고에서 달걀 6개를 꺼내 물에 씻어 달걀찜기에 올려 전원을 켠다. 13분 뒤면 다 익을 것이다. 냉동실에서 통밀빵 한 조각을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는다. 며칠전 만들어 둔 양배추 당근라페와 그릭요거트도 꺼내 식탁 위에 올린다. 그 사이 몸은 그런 대로 괜찮아진다. 30분 뒤 남편을 부른다. 강아지도 남편의 무릎 위에 앞다리를 얹는다. 오후 2시 30분. 범어초등학교. 돌봄교실 인터폰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오신 선생님께 손을 가지런히 배꼽 위에 얹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공수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나도 선생님께 답례를 하고는 달려오는 아이들을 맞는다. 팔을 크게 벌리고 있으면 손자가 먼저 폭 안긴다. 땀냄새가 짙다. 농구했구나. 응 할머니 오늘은 우리 편이 이겼어. 나도 한 골 넣었어. 우와 잘했네. 그 사이 다가온 손녀의 손엔 과학시간에 만든 뭔가가 들려있다. 할머니 오늘은 냄새 없애는 거 만들었어. 발에 뿌리면 냄새가 없어져. 향기도 나. 아빠에게 주려고 해. 할머니도 뿌려 줄까? 손에도 닿아도 괜찮대. 글리세린을 넣었어. 근데 만들 때 좀 쏟았어. 나만 아니고 다른 애들도 다 조금씩 쏟아서 선생님이 닦아주셨어. 아이들 등의 가방을 빼 든다. 꽤나 무겁다. 이 깊은 겨울까지도 몇 개씩 달려있던 플라타너스나뭇잎이 떨어져 인도에 나뒹군다. 아이들은 제 발보다 더 큰 나뭇잎을 찾아 밟는다. 워석버석 소리를 내면서 바스러진다. 그것도 놀이다. 내가 밟은 나뭇잎이 더 커. 아니야, 내 나뭇잎이 더 크고 소리도 컸어.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을씨년스럽다. 내 생각을 읽었나 손자가 한 마디 한다. 할머니 밤에 나오면 참 아름다워. 우리집에 있는 것보다 크고 더 많이 반짝거리거든. 밤 10시. 또 울리는 알람. 붓글씨 쓰는 시간. 한 장을 다 쓰면 등줄기에 땀이 느껴진다. 몸쓰는 일보다 더 힘든가 보다. 이 루틴을 올해는 지키려 애쓴다. 토요일 아침 10시. 스포츠센터 수영장. 손녀와 매주 같이 다닌 지 석 달째다. 내가 수영 다녀 보니 부자나 모녀가 같이 오는 게 좋아 보여 며느리에게 권유했다. 바쁜 며느리 대신 내가 손녀를 데리고 다닌다. 대충 씻겨 수영복으로 갈아입히면 제 먼저 들어간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레인에서 수영하면서 힐끔힐끔 손녀를 찾아본다. 발차기도 하고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다. 우리가 수영장에 있는 시간에 남편은 손자를 데리고 축구교실에 가 있다. 힘들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데 천만의 말씀. 이 즐거움과 고마움을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애들이 더 크기 전에.

2025-01-08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도쿄 변두리의 허름한 이층집. 이른 새벽 노인의 빗질 소리에 깬 주인공은 어슴프레 푸른 창문을 보고 벌떡 일어난다. 이부자리를 개고 양치와 면도를 한 뒤 보랏빛 조명의 테라스에서 키우는 분재에 정성스레 물을 준다. 의식처럼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입구에 가지런히 둔 자동차 열쇠와 카메라를 챙기고, 동전을 몇 개 집어 문을 나서면서 바로 쳐다보는 하늘에 엷은 미소를 짓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자동차에 올라 카세트에 올드팝 테이프를 넣고 출근길에 오른다. 중년의 남자, 그는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과묵한 성격의 주인공은 화장실 청소부란 직분에 더없이 충실하다. 수많은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정성껏 청소하고 점심땐 공원이나 신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을 때우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빡빡 씻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고 돌아와 책을 읽다 잠든다. 일주일에 하루는 코인세탁소에서 청소복을 빨고,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거나,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인화된 사진을 찾고, 또 하나의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는다. 철없는 동료청소부와 그의 애인,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나 외국인 여성이나 취객, 단골식당 주인이나 또 다른 단골술집의 여사장, 단골 헌책방 여주인, 점심때 공원의 옆 벤치에 앉아 역시 샌드위치를 먹는 여성은 모두 그의 일상의 오브제이며, 그의 하루 루틴은 완벽하다 못해 단단하다. 영화는 그의 이런 일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어느날 퇴근하니 외삼촌을 찾아온 조카가 계단에 앉아있다. 이제 무슨 사건이 나나보다. 드디어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생기나 보다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조카에게 침실을 내주고 좁은 창고방에서 자는 것 외엔 바뀌는 게 없다. 오히려 조카가 그의 일상에 스며든다. 함께 화장실 청소에 나선 조카는 그와 같이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목욕탕에도 같이 가고, 삼촌의 책을 읽으며 잠든다. 여동생이 조카를 데려가자 끝. 사춘기 소녀 조카의 가출도 그의 일상을 흔들지 못했다. 단 하루 동료청소부가 일을 관두자 두 배 늘어난 일로 피곤한 하루,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지만 신입이 오자 그의 루틴은 다시 탄성을 찾는다. 이정희 교수가 꼭 보라고 추천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저 사건 하나 없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심심한 스토리지만 오히려 울림이 크다. 무겁고 험하고 슬픈 사건들로 넘쳐나는 뉴스를 외면한 지 달포가 다 돼간다. TV에서 뉴스를 피하려니 자연 영화를 찾게 되었고, 지난여름부터 별렀던 영화를 하필 지금 봤다. 주인공의 심심하고 충실한 나날은 그가 정성껏 닦아놓은 화장실의 거울만큼 빛나고 변기만큼 정갈하다. 그의 흑백 사진 속 나뭇잎 같은 무채색의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가를 깨닫게 된다. 비행기 추락 속보가 일요일 아침을 삼켜버린 후 TV에는 슬픔이 넘치니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가 송구하다. 소소하되 행복하고 충만하되 무탈한 일상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2025-01-01

나답게 살자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나이 들면 무엇보다도 외롭고 쓸쓸함이 가장 무섭다고들 했다. 고독력도 힘이라지만 그건 정신력이 강한 자의 얘기일 뿐 평범한 사람에겐 외로움이 가장 힘들 거라고 했다. 반드시 정기적인 만남으로 누구라도 만나 인간관계를 두텁게 해야 즐거운 노후가 될 것이라는 충고들이 많았다. 난 절대로 외로운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고자 애썼고 마음 통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손주들 영어학원에서 매일 만나 정든 ‘할매’들과 매월 둘째 화요일-그래서 모임 이름도 ‘이화회’다-마다 만난 지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점심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수다는 늘 즐겁고 유쾌하다. ‘도보문화산책’은 처음 경주산책에서 시작했다. 몇 년 넘자, 공간은 경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문화적 범위와 관심사도 미술, 카페 등으로 확장되었다. 전공이 다양한 5명의 구성원들로 대화의 주제는 크고 넓고 수준은 높다. 내방가사를 중심에 두고 만나는 모임도 몇 있다. 안동의 ‘내방가사전승보존회’는 출입한 지 벌써 30년이 가깝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만 한결같이 예절바른 어르신들의 손은 잡을 때마다 애틋하고 정답다. 역시 내방가사를 인연으로 만나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며 제자 관계로 얽힌 세 명의 ‘흰머리소녀’도 햇수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검은 머리의 40~50대에 만나 모두 흰머리의 60대를 훌쩍 넘었다. ‘내방가사 세자매’는 내방가사가 주된 관심사였고 서예에서 가사에서 논문까지 오직 내방가사에 대한 얘기지만 그 사이 자매애까지 생겼다. ‘선덕여왕경모회’는 경주의 내로라하는 여성 리더들이 선덕여왕을 중심으로 모인 제법 큰 여성단체인데, 격월의 정기모임은 품격이 높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사촌언니를 따라 ‘108기도순례’에 참가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 노후 준비 아닌가. 벌써 한해가 저문다. 이 나이쯤 되면 그날이 그날이고, 그 달이 그달 같고, 그해가 그해 같다. 별 큰 일 없이 그저 그런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이 고맙고, 나날이 맞는 새 날이 행복할 따름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저 그런 날에다 방점을 찍고 싶고, 별난 이벤트로 새롭고 특별한 날을 만들기를 즐기는 나였다. 그러니 이즈음을 그냥 슴슴하게 지내는 건, 가고 오는 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침 모임마다 송년회를 하자는 뜻을 비치니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 달 중순부터 슬슬 송년모임을 하나씩 치렀다. 평소와는 좀 멋진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이벤트도 하면서 작은 선물이라도 교환했다. 지난 주 있었던 ‘선덕여왕경모회’송년모임에서였다. 한 회원이 고맙게도 나무트레이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셨다. 작은 종이를 나누어주면서 각자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읽으라 했다. 모두들 자신을 사랑한다고, 덕분에 행복했다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적고 읽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나다움이 뭐지? 자신감? 격려? 긍정?’ 이제 생각해 보니 이는 내가 나에게 던진 커다란 화두 같다. 내년엔 이 숙제 같은 화두 ‘나다운 나’에 집중해 보아야겠다.

2024-12-25

안민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임금은 아버지요/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신다면/백성들이 임금의 사랑을 알 것입니다./열심히 사는 백성들을/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라고 백성들이 말한다면/나라가 유지될 줄 아실 것입니다./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향가 중의 하나인 ‘안민가(安民歌)’다. 제목처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비책을 노래하고 있다. 경덕왕 24년(745년) 3월 3일에 왕이 신하들과 함께 월성 남쪽에 행차서 훌륭한 고승을 찾으라 했다. 그가 바로 충담사(忠談師)였다. 충성스러운 말을 하는 스승이라는 이름이다. 충담사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왕은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탁했고 충담사는 즉석에서 ‘안민가’를 지어올렸다. ‘안민가’는 왕과 신하와 백성의 관계는 혈연관계와 같다고 비유했다. 왕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자녀와 같다.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기 본분을 다하면 가정이 잘 유지된다. 나라도 이와 같으니 왕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가 맡은 바 책무를 제대로만 다한다면 나라가 태평해질 것이요, 백성이 배부르면 나라를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왕에 대한 따끔한 정치적 충언(忠言)이다. 이 노래는 현재 임금과 신하와 백성 각자가 제 역할을 못하여, 상호간 사랑과 신뢰가 무너졌고, 악정에 시달린 백성이 나라를 떠나려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가 태평하지 못함을 반증한다. 따라서 임금에게 그 책임을 묻고, 올바른 정치를 권고하는 뼈아픈 충간(忠諫)이다. 임금이 원한 임금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임금이 해야 할 일을 주문하는 눈물어린 충담(忠談)이다. 경덕왕이 죽기 1년 전이었다. 경덕왕 말년은 귀족들이 두 파로 대립된 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시대였다. 왕은 당시 정치상의 비리를 과감하게 청산하지 못했고, 의욕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은 귀족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다.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 경덕왕과 충담사의 만남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고승 충담사를 왕이 불러서 ‘안민가’를 짓게 했고 이를 통해서 귀족세력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안민가’가 질타하는 대상은 귀족세력이 아니라 경덕왕이라는 것이다.‘안민가’는 왕에게 올리는 충언이고 그 핵심은 마지막 구절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이니라.”에 있다고 본다. 이는 경덕왕의 치세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답지 못하고, 백성답지 못해서 나라가 태평하지 못하다”라는 현실의 역설적 증언이며, 결국 경덕왕의 치세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라는 해석이다. ‘안민가’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오늘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노래라는 점에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정쟁에만 몰두한 국회에 넌덜머리가 난 국민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우울감에 빠진 혼란의 이 시점에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해 줄 이, 이 시대의 충담사는 어디에 있는가.

2024-12-18

삶과 길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나의 버킷리스트 중 일순위인 한국어해외봉사를 하려면 한국어교원 자격증 취득이 필요했다. 국어교사자격증도 있고, 국문과 대학교수 25년 경력이 있어도 외국인 대상 한국어교수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예전엔 국어교사 경력으로 대체인정해주었는데 법이 더 엄격해졌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찾아 검색했다. 원격평생학습 학점은행제가 가장 적당해 진흥원격평생교육원에 상담했다. 대부분의 사이버대학에서는 2년이 꼬박 소요된다는데 1년 반만에 가능하다기에 2026년 취득 목적으로 2주째 열공 중이다. 매주 개설되는 과목을 15주 동안 수강하고 쪽지시험,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치고, 과제 제출도 해야 한다. 강의 신청하면 먼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상담사의 말이 있었다. 뭐 어려우랴 쓰면 되지 들어갔더니 좌우명, 취미, 각오를 적으라 했다. 좌우명이라…. 여태껏 좌우명을 따로 정해 둔 적이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문득 20대부터 평생을 가르치는 직업에 있다가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또 공부하려고 컴퓨터 앞에 있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 넣었다. ‘삶은 영원한 배움의 연속이다.’ 지난 일요일 손주 둘을 데리고 영화관엘 갔다. 직장에 육아에 늘 잠이 모자란 아들과 며느리가 주말에 몰아서라도 잠자게 하고 싶었다. 나도 그러지 않았던가. 바깥놀이를 하기엔 추운 날씨라 생각하다 떠오른 게 영화였다. 마침 애들이 볼 만한 영화 ‘모아나2’가 상영 중이었다. 작년만 해도 혼자서 둘을 데리고 극장 가는 게 힘에 부쳤는데, 이젠 아니다. 영화관 입구 도착하자 나는 아들이 예매해 준 표를 키오스크에서 출력했다. 손주들은 또 다른 키오스크에 다가가 각자 원하는 팝콘과 음료를 능숙하게 선택했고 나는 카드만 넣어주면 되었다. 번호표를 뽑고는 기다렸다가 자기 번호를 부르면 찾아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자리를 찾아 앉고, 앉자마자 좌우 팔걸이에 음료와 팝콘을 세팅하고는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간식을 먹고, 가운데 앉은 내 양쪽에서 팝콘을 번갈아 내 입에 넣어주는 것까지 뭐 하나 나무랄 일이 없다.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2’는 여주인공 모아나가 리더가 되어 온갖 저주와 시련을 견디고 헤쳐 모험하는 무용담이다. 손주들은 금방 영화에 몰입했다. 우스운 장면에서는 유달리 크게 웃고,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을 도와주려고 간섭하고 실패하면 탄식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영화 얘기를 나눴다. 의외로 세세한 장면들을 기억하고 복선으로 장치된 그림이나 벽화 따위를 말하는데 놀라웠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어떤 장면들은 설명해 주기도 했다. 특히 작중 인물들의 대사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게 신기했다. 손자는 ‘길을 헤매도 괜찮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 마녀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손녀는 마우이도 ‘언제나 길은 있어’라고 말했다며 우겼다. 둘 다 옳은 말이다. 난 3000년 나이의 마우이가 ‘인생은 실패하고 배우고 죽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며칠 전 내가 썼던 좌우명과 유사해 살짝 소름 돋았다. 그래 우리의 삶은 길의 연속이지. 배움이라는 길.

2024-12-11

손자의 도시락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요즘 초등학교에선 소풍이나 운동회라는 행사가 없어진 것 같다. 학년별로 과학관이나 테마파크로 가는 체험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신하는가 보다. 손주들이 학교 가면 소풍도 따라가고 운동회도 꼭 가봐야지 기대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체험활동 가는 손자에게 도시락이라도 싸주고 싶었다.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며느리를 설득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내가 바빠 손수 만든 김밥을 싸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밤늦게야 집에 오니 다음날이 소풍이라는 거였다. 미안한 마음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새벽에 문 여는 김밥집이 있다는 이웃의 정보를 얻어 김밥을 사 도시락으로 넣어준 적이 있다. 아직도 그날이 생각날 정도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손자에게라도 갚고 싶다. SNS에서 예쁜 도시락을 폭풍 검색해서 하나 골랐다. 문어유부초밥 만들기. 유부초밥에 토핑으로 비엔나소시지를 문어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거였다. 이거다. 김밥 만들기보다 오히려 간단하고 예쁘고 귀여워 손자가 좋아할 것 같았다. 필요한 재료를 메모해서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보러 갔다. 소시지, 유부초밥세트, 검은깨, 치즈 등과 작고 동그란 구멍을 낼만한 도구도 샀다. 소풍날 늦지 않게 가져다주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겠다 싶어 장봐온 재료로 미리 연습을 했다.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웬걸, 만만치 않았다. 소시지가 커서인지 문어 다리 모양은 너무 뭉툭해서 볼품없었다. 문어 눈이 될 검은깨 박기가 제일 어려웠다. 파스타면에 올리고당을 묻히면 쉽다는데, 면은 부러지고 깨는 튀어나온다. 입 모양으로는 치즈에 빨대로 도넛 모양 구멍을 내는데 자꾸 갈라진다. 아무리 연습해도 모양이 나질 않았다. 더 작은 소시지와 도구가 필요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식자재마트에 달려갔다. 다시 사온 소시지는 좀 나았다. 영상 속의 문어와 근사한 모양이 나온다. 소시지 두 봉지 중 연습용으로 한 봉지를 다 쓸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밥을 미리 안쳐두고 잠시 눈을 부쳤다. 서너 시간 잤나, 새벽 5시 알람에 눈을 떴다. 간밤의 연습대로 문어유부초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문어 다리 모양은 얼추 나왔는데, 눈이 될 검은 깨박기는 여전히 어려워 잘 박히지 않았다. 구멍이 작으면 들어가지 않고 더 크게 뚫으면 연방 튀어나오고야 만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손톱으로 껍질을 뜯어 손가락으로 깨를 쑤셔박는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영 진도가 나질 않는다. 초조한 맘에 손은 더 무디고 더뎌진다. 문어유부초밥만으로 도시락을 다 채우기엔 시간이 모자라겠다 싶었다. 집 부근 김밥집에 전화해 달걀꼬마김밥을 주문했다. 등교 시간 전에 맞춰 겨우 가져다줄 수 있었다. 며칠 후 만난 손자에게 도시락 맛있었냐고 물었다. 응 맛있었어. 그런데 도시락을 열었더니 문어 눈은 없어지고 입도 떨어지고 까만 김띠도 풀어졌어. 그래도 딱 한 개는 괜찮았어. 애들이 모두 보고 와~~ 했어. 헛수고는 아니었겠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2024-11-27

사계절 모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아들이 서당에 갔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괴물이 어머니를 해코지했다고 알려줬다. 아들은 복수를 결심하고 괴물을 찾아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힘든 일을 해주는 대가로 괴물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낸다. 괴물의 집에 숨어 있다가 부엌으로 유인하여 솥 안에 가두고 불을 때어 태워 죽인다. 이 괴물이 죽은 재가 변해 주둥이가 길고 꼬리도 긴 모기가 되었다는 모기의 유래담이다. 베트남의 ‘모기의 기원담’은 또 다르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배신한 부인이 결국 벌을 받아 모기가 된다는 얘기다. 저승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부부가 결혼 후 오래지 않아 부인이 죽자 망연자실한 남편이 매일 세 번씩 아내의 시체를 안으며 환생을 기원한다. 갸륵한 남편을 위해 부처님은 죽은 아내의 입술에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아내를 소생시킨다. 그러나 소생한 아내는 재물에 눈이 멀어 남편을 배신하고 세 방울의 피를 돌려준 뒤 남편을 떨쳐낼 요량이었지만 피를 뽑아낸 후 깨어나지 못한다. 부처님은 아내를 모기로 변신시켜 살게 했다. 또 어떤 나라에는 사냥꾼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을 해치우고 불로 태우자 괴물의 재가 모기로 변해 사냥꾼을 괴롭혔다는 우화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어느 때부터 모기는 인간을 괴롭혀온 괴물 같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이 전쟁은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되면 한시름 놓게 된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지금이 11월, 절기상으로는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소설(小雪)이 내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기는 윙윙대며 기승이다. 한여름에나 피우던 모기향을 아직도 켠다. 손주들이 온다고 하면 미리 방안에 모기약을 쳐야 한다. 유난히 모기에 취약한 나는 이 가을과 겨울의 사이, 매일 밤 모기에 물린 손과 발, 팔과 다리, 목과 등, 심지어 얼굴에까지 약을 바르며 긁어대고 산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엔 오히려 모기가 없었던 듯싶다. 더위를 피한 저녁과 새벽녘에 풀을 뽑을 때만 영락없이 독한 풀모기에 물렸을지언정 정작 방안에선 모기에 그다지 물리지 않았다. 폭염이 유난히 길었던 올 여름이었으나 정작 30도 이상의 폭염엔 모기도 너무 더워서 날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 따뜻한 가을이 길어지면서 모기 활동기가 늘어났단다. 낮 기온이 13도 이상 되면 모기들이 흡혈활동을 하는데, 11월의 지난주까지도 낮 기온이 20도 가까웠다. 해마다 11월에 치러지는 수능일, 이젠 ‘수능한파’가 아니라 ‘수능모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앞으로는 1월 기온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연중 모기가 활동할 수 있고, 이는 한여름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모기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이 또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 탓이라고 하니 옛이야기 속의 괴물모기 뿐 아니라 지금의 이 모기도 인간이 자초한 것이긴 하다.

2024-11-20

내방가사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세계기록유산(MoW)은 유물이 진품으로서 해당 기록물의 소멸이나 약화가 전 인류 유산을 빈곤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하며 대체 불가능한 기록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세계사적 중요성이다. 세계적 가치는 시간, 장소, 사람, 대상과 주제, 형태와 양식 측면의 가치를 입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 조건 외에 추가적으로 희귀성, 완전성, 위협요소의 유무 및 보존 관리 계획의 기재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내방가사는 위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고 그 기록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1월 16일,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에 등재되었다. 내방가사는 종이에 기록된 필사류 원본으로, 개별 문서, 두루마리 또는 선장본(codex)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두루마리본의 경우 10m가 넘는 기록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m가 넘는 형태의 기록물도 있다. 통일된 유형이 없는 유일본들로, 직접 붓으로 필사한 원본들이다. 내방가사는 179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여성들이 공동으로 창작하고 낭송하여 기록한 여성들만의 문학 장르이다. 내방가사는 개인에서 집단 창작의 형태로 넘어갈 때 남길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적 전형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낭송과 필사 등의 재창작 과정을 통해 내용상 유사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 역시 내방가사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내방가사는 18세기에서 20세기, 남성 중심주의가 주류였던 시대, 여성들이 그들의 주요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여 여성들만의 생각과 삶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여성 집단 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압축적인 역사변혁기에 대한 여성들만의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더불어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문자인 한글로 기록된 문학 장르이다. 한글로만 창작된 내방가사는 창제된 문자가 한국어의 특징에 맞는 문자로 창작되는 문학 장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방가사를 통해 우리는 창제된 문자가 어떠한 활용 단계를 거쳐 한 사회의 공식 문자가 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내방가사는 여성 개개인의 주체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적 문학 활동’을 통해 여성들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승의 필요에 따라 입으로 낭송하고, 또 필요에 따라 함께 베끼고 기록하며, 새롭게 내용을 만들어갔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다. 어떤 내방가사는 사회와 국가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역할과 시대적 사명까지 함께 공유하는 노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방가사는 한글 서체 미학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낭송, 받아쓰고 베껴 쓰는 과정 등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필사되었다. 이러한 필사는 여성들의 서체 훈련 과정이기도 했고, 서예사 측면에서 다양한 한글 서체로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여러 종류의 민간 서체 발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동시에, 현재 한글의 사용 폭을 넓히기 위한 폰트 개발이나 새로운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는 원형 콘텐츠로서 가능성도 높다.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