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에 이백원 받던 밥집한그릇 먹든 두그릇 퍼 가든 똑같이 이백원세그릇째인 사람은 있어도 한그릇만 퍼 가는 사람은 없던,공짜 밥은 마음 다치게 한다고 따박따박 밥값 요구하던 곳백원짜리 동전 두개 손바닥 가운데 올리고자랑스레 내밀던 손들이 줄을 잇던,(….)들통에서 솟아나는 뿌연 김 따라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홈리스 슬리핑백이 쌓여 있던,예수라는 사나이보다 일찍 떠난 혜성이와 함께일주일에 한번 밥 나르러 가던 스물한살사장은 없고 젊은 가톨릭 수사들이 드나들던 곳빌딩 숨 사이 언뜻 얼비치는 용산역 뒤지금은 흔적도 없는 시장 골목 (부분)삶의 아름다움이 발현되는 장소는 대로 위의 큰 빌딩이 아니라 허름한 뒷골목이다. “용산역 뒤” ‘시장 골목’에 있던 ‘이백원 밥집’이 그런 곳. 그것은 예수의 삶처럼, 가난하고 힘든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 밥집엔 가난한 이들의 마음까지 배려하며 ‘이백원’이면 ‘한그릇’이든 ‘두그릇’이든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한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던 것, 하나 그곳은 현재 “흔적도 없”어졌다고…. 문학평론가
2023-12-21
아주 잠시, 한 세계가 구약처럼 밀려날 때그때 오직 우리가 바라고 바랐던 건,무너져 내린 어느 제국의 한 귀퉁이 구원 없이여전히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가기,아니면 쓸개즙 같은 근원의 물기를연신 핥는 혀들의 낯선 느낌을 지속하기,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우리가 내내 사랑하고 의지한 건일체의 희망 없이 희망의 전부를 꿈꾸기,(….)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찾아 헤매던 건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지평 같은 절대 고독,혹인 실상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다시 펼쳐 든 신약 같은 순간적인 사랑의 윤리.이 시를 읽으며 ‘희망은 희망 없는 이들을 위해 주어져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가늠하기 힘들지만, “일체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총칼이 삶을 지배해서, 시인이 “구원 없이”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야 했던 시절. 하나 그 시절엔 도리어, 희망이 없기에 사람들은 “희망의 전부를 꿈꾸”었다. 그들은 ‘절대 고독’을 살아내는 동시에 “순간적인 사랑의 윤리”를 품었던 것! 문학평론가
2023-12-20
고양이는 뚱뚱하게 자고 날씬하게 걷는다.고양이는 잘 때는 늘어지게 자지만잠에서 깨면 옆구리를 당겨 넣는다.불룩했던 데가 다시 찰싹 달라붙는다.고양이는 날씬하게 걷는다.고양이는 보따리처럼 기다리고번개처럼 뛰어오른다.고양이는 뛰어오를 때는 미끈하다.껍데기를 벗어버리는 포도알처럼….고양이에겐 기술이 있다.고양이는 삐걱대지 않는다.슬그머니 간다. (부분)위의 시를 읽고 ‘정말, 맞아!’라고 감탄했다. 필자의 집도 고양이를 키우기에, 고양이를 관찰할 기회가 많다. 고양이는 깨어 있을 땐 빈틈이 없으면서도 잠잘 땐 한 없이 느긋하고 게으르다. 고양이 같은 이가 있다. 일할 땐 날렵하게 잘 해내면서도 쉴 때는 세상 걱정 없는 것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쉴 때는 해야 할 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일할 땐 하기 싫어 게으름 피우는 필자와는 정반대의 사람. 문학평론가
2023-12-19
풀을 베다가 잃어 버린 낫을 찾았다.장마철에 한 달도 넘게 풀더미 속에 처박혀 있었는데온몸에 뻘겋게 녹이 슬었는데여전히 날이 닿기만 하면 억센 풀을 동강 냈다쇠가 좋기 때문이다좋은 쇠는 녹이 슬어도 날이 죽지 않는다단단하기만 하다고 좋은 쇠가 아니다너무 단단한 쇠는 깨지기 쉽다단단해서 날카롭게 날이 서면서도깨지지 않는 쇠라야 정말 좋은 쇠이다단단하면서도 무르고 무르고서도 단단한좋은 쇠를 만들려면펄펄 끓는 불에 달구고 차디찬 물에 식히기를수백, 수천 번 거듭해야 한다나 역시 위 시의 낫처럼 녹슬어 있을 테다. 하지만 저 낫과는 달리 날까지 죽어버린 것 같다…. 시에 따르면 “좋은 쇠는 녹이 슬어도 날이 죽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좋은 쇠 기준은 깨지지 않음인데, 이 성질은 단단함 자체보다는 “단단하면서도 무”를 수 있는 유연함과 관련 있다고. 수많은 달굼과 식힘을 반복해야 유연함을 얻을 수 있다. 날이 선 삶을 살기 위해선 이런 반복을 통해 마음을 단련해야 하리라. 문학평론가
2023-12-18
전기밥솥이 없던 내 학창 시절의 간식은 주로 누룽지 튀김이었다 밥때와 밥대 사이에 궁금한 입들 벌어지고 엄마는 밥만 하면 눌어붙은 누룽지를 말려 튀겨서 설탕을 뿌려주었다누룽지야 더 두껍게 살을 붙여라 까만 얼굴 말고 노릇하게 예쁘게, 발 잘 듣는 동생처럼 건너오너라 나는 아직 둥지도 안 튼 누룽지 얼굴 위에 주문을 뿌려댔다어린 소녀는 엄마의 간식으로 더 파릇해지고 더 통통해지고밥때와 밥때 사이에 낀 어른은 추억의 엄마 간식 불러내 아껴 아껴서 속이 허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나이 좀 든 이라면 누룽지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테다.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늘어붙은 누룽지를 말려 튀겨서 설탕을 뿌려” 놓은, 가난한 아이들의 최고 간식. 위의 시를 읽으면서, 전혀 본 적 없는 시인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니, 우리 세대를 엮어주는 공통적인 추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은 간식을 먹고 같은 행복을 느꼈다는 공통 체험이 서로의 인생을 말없이도 이해해주게 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2-17
현관과 현관을 건너도 방이 나오지 않았다강철 같은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이 금액대로 집 구하기 힘듭니다(중략)은행나무에서 조롱하듯 은행이 구린내를 흩뿌렸다여기서 엎어져도 은행의 문턱은 높다미래가 일찍 늙어간다투명 의자에 앉은 거처럼엉거주춤한 자세로부동산 문을 연다깊고 깊은 악몽 속으로내가 쏟아져 들어간다다른 많은 이들처럼, 위의 시의 화자도 집값 또는 전세값이 올라 집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동산 문을 들어갈 때 이들은 “강철 같은 마음을” 남몰래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려야 한다. 하나 절망적인 대답이 날아오고, 은행나무처럼 “구린내를 흩뿌리는” “은행의 문턱은 높”을 뿐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악몽”과 같은 현실. 이 현실에서 미래의 삶을 찾기 힘들다. “일찍 늙어”가는 미래이니. 문학평론가
2023-12-14
거리는 수백 개의 두개골로 부서진다속마음을 가늠하는 시간길 건너편에서 뛰어오는 두개골과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두개골원과 원 사이에도 집을 지을 수 있다마른 잇몸을 핥을수록 드러나는 뿌리 한 가닥 뽑아그곳에 심는다지구의 체액을 빨아먹고 하반신 대신 기둥이 자라나는 것이다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러들 때까지바닥에 뒹구는 인류에게역사상 가장 많은 두개골이 달라붙고 있다 (부분)서울에 대한 시는 많지만, 위의 시처럼 그로테스크한 서울 묘사는 보기 힘들다. “수백 개의 두개골로 부서”지는 서울 거리는 마치 저승 같다. 서울 땅 위로 솟아나는 아파트-집-는 “지구의 체액을 빨아먹고 하반신 대신 기둥이 자라나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 기둥엔 “역사상 가장 많은 두개골이 달라붙고 있”다고 표현된다. 이러한 과격한 표현이 아니라면, 서울의 실상을 드러낼 수 없다고 시인은 생각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3-12-13
더러워진 속세의 거친 바람에 나 분노하여,외딴 집, 거친 바닷가의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네.(….)물가 닿지 못한 나날들,정처 없이 생명 구하는 뱃길에, 어느 곳으로내 영혼의 배 한 척 노 저어 향해야 하는가, 하고.저녁 파도 울적하게, 바닥 없는 가슴속 고동,그 음색, 소리 모두 불후의 조화로움으로,휘말렸다가 부서지는 해 지는 이 짧은 순간….가라앉은 해 나를, 나 또한 가라앉는 해를응시하며 외치노라, 시작도 없는 어둠, 아니면끝도 없는 빛이여, 모든 혼돈을 묻어 버려라, 라고.속세를 등지고 “바닷가의 침묵으로 빠져 들어”간 시인. 그는 자신이 어디로 “노 저어 향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바다 위를 표랑하는 고독한 배처럼 살아왔다고 서글퍼한다. 하나 “해 지는 짧은 순간”이 오자 시인은, 수평선 위 “가라앉는 해”를 응시하고는, “시작도 없는 어둠, 아니면/끝도 없는 빛”일 저 해에게 “모든 혼돈을 묻어 버”리라고 명령하듯 외친다. 그것은 자신의 음울해진 마음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2023-12-12
종이 같은 마음종이는 무엇으로 만드나나무와 물과 빛으로그리고잉크로물감으로피로침으로땀으로나의 뼈가 종이 같다는 말을 듣고나는 종이가 견디는말을 느꼈다종이가 접혀 말을 감추는 소리를알아챘다뼈에 살이 달라붙는 집요함을 느꼈다종이가 마음 같다는 비유는 종이는 마음의 표현인 글쓰기나 그리기가 이루어지는 판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종이는 “잉크로/물감으로” 만들며, 나아가 “피로/침으로/땀으로”까지 만든다는 말이 이해된다. 그러면 “뼈가 종이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이가 견디거나 감추어야 할 정도까지, “뼈에 살이 달라붙”듯이 집요하게 종이에 달라붙는 말을 의미한다. 아마 시의 말이 될 집요한 말. 문학평론가
2023-12-11
아직 살아 있구나 늦지 않았어 너덜거리는 자루 가득 장작을 메고 오가는 밤의 노역은 불을 지키는 시간 (….) 나는 불을 지키는 자, (….) 나는 이름 없이 늙어 가는 가난한 노파 불을 살피느라 언 몸을 녹일 수 없다 꺼져 가는 불씨를 살려내고 문 밖으로 나서면 얼굴을 찢는 바람뿐 어떤 날은 별도 뜨지 않아 캄캄한 숲을 비틀거리며 걷는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이생의 일인지도 잘도 자는구나 장작이 타는 소리 꿈속에서도 들리는지 재가 되어 가는 소리다 담요를 걷어차고 잠든 걸 보니 오늘도 나의 불길은 뜨거웠구나‘테를지’는 몽골의 국립공원이다. 이곳의 어떤 노파는 “바람에 넘어진”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고 관리하는 “불을 지키는 자”다. 그녀의 노역을 통해 숙소의 방은 따듯해져, 방안 사람들은 “담요를 걷어차고 잠”들 수 있다. 하나 정작 자신은 “불을 살피느라 언 몸을 녹”이지 못한다. 저 노파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만큼 중요한 일을 한다. 불을 꺼트리지 않고 “불씨를 살려내”는 일을 하니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3-12-10
눈이 퇴화한 개미들은 더듬이로 산다보지 못해도 큰 불편 없다쉬지 않고 움직이는 더듬이쉬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개미들개미들을 생각하면 몸이 가렵다더듬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눈을 빼버릴 놈!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눈은 멀어진다오로지 돈에 눈먼 세상에서욕심으로만 빛나는 눈을 감아본다홀로 눈 떠 길을 더듬는개미 한 마리 따라간다살날이 가깝고도 멀다살아가라, 단지 뜨거운 것은 그뿐이다 (부분)“돈에 눈먼 세상에서” 밝혀 있는 눈은 “욕심으로만 빛”날 뿐이다. 그 세상에서는 돈밖에 보이지 않을 터, 하여 돈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한다. 시인이 “눈이 퇴화”해도 더듬이를 통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개미들을 생각하고는, “길을 더듬는/개미 한 마리 따라”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눈먼 세상에서 그 개미는 “홀로 눈 떠”있는 이로, 오직 “살아가라”는 명을 뜨겁게 실행하고 있기에. 문학평론가
2023-12-07
첫 일터 메리야스 공장 재단기에 한 가락 해 먹고재활용 분리수거 컨베이어에 한 가락 해 먹고부품 공장 검사반에 왔다는하얀 장갑 규석 씨한 가락 없어도메리야스 재봉 일 할 수 있지만한 가락 없어도 재활용 컨베이어 분리수거 영락없지만손끝에 눈금자가 새겨지도록 손끝에 저울추가 박히도록뼈가 곧아버린 시간을살이 해어지는 시간을마음이 굳어지는 시간을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 왔다는하얀 장갑 규석 씨 손가락은 세 가락 (부분)‘공장 재단기와’ ‘분리수거 컨베이어’에 손가락이 잘려 손가락이 세 가락 남은 어떤 노동자의 삶. “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 여기까지 왔다는 그는 “손끝에 저울추가 박히도록/뼈가 곧아버”리고 “살이 해어지는” 노동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마음도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에 노동 시간이 박혀버린 삶, 한국사회가 그가 해온 노동처럼 자르고 분리수거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삶이 여기 있다. 문학평론가
2023-12-06
원룸에 사는 친구가 벼를 키운다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작년에 자라지 않던 벼가 올해는 쑥쑥 자라낱알이 열렸다고 초록이 가득한 벼를 찍어 보냈습니다.(….)말갈기를 부여잡고 사막을 달리는 사람을챙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쭉정이 뽑는 사람을자라지 않은 벼와 자란 벼를 비교하며 지나간 함성을생각할 것입니다.솜털처럼 가벼운 벼들의 흔들림과흔들리지 않으려는 친구의 흔들림을원룸 작은 창문을 뚫고구름의 한쪽 귀퉁이를 자르고달아나는 상상을 해봅니다.볕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한 뼘의 벼들과 함께친구의 슬픔이 느리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분)“사막을 달리는” 삶을 꿈꾸었을 ‘친구’는 현재 “볕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 그가 키우는 “한 뼘의 벼들”처럼 흔들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 자라지 않던 벼가 올해는 쑥쑥” 자라났다는 것! 친구가 그 벼 사진을 시인에게 보낸 것은 자라는 벼들로부터 어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그렇게 희망을 품음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려는 것, 시인은 이로부터 “느리게 올라오”는 슬픔을 읽고 있지만. 문학평론가
2023-12-05
아침에 일어나 사립 쪽으로 걷는데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어제저녁에 나는 닭가슴살 한 팩을 사다가구워서 맥주 안주로 먹었는데너에게 몇 점 먹였으면그 어린 나이에 죽이 않았을 텐데밤하늘에 슈퍼문이 뜬다고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리던데그 배고픈 저녁에밤하늘의 슈퍼문이네 눈을 감겨준 거니우리는 보통 슬픈 일과 마주치고는 그 일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잊지 않고 시로 간직한다. 위의 시가 보여주듯이. “맥주 안주로 먹”은 ‘닭가슴살’을 조금만 주어도 살 수 있었을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 시인은 자신이 조그만 배려심을 가졌다면 저 고양이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자책한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슈퍼문’과 그 달 아래 죽은 고양이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슬픔이 새겨지는 시. 문학평론가
2023-12-04
초등학고 일학년 첫 방학 숙제 중 하나는 태극기 그리기였다자꾸만 일그러지는 원이 암만해도 속이 차질 않아끙끙대고 있는 아들놈이 보기 딱했던지공장 일을 마치고 오신 아버지 대뜸밥그릇을 들고 오시더니밥그릇 둘레 따라 원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아마도 그날 이후부터였나 보다뜨건 공깃밥과 국기를 떼어놓고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은,노동자들 분신 뉴스가 지나갈 때마다멀쩡한 밥그릇으로도 자꾸 일그러져만 가는방학 숙제를 여태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분)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공깃밥’이 국가 기반인 국민의 삶을 지탱하기 때문에. 그래서 “공깃밥과 국기를 떼어놓고/생각할 수 없”다. 시인에게 이를 가르쳐준 이는 “공장 일을” 다니는 그의 아버지다. 하나 “노동자들 분신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밥그릇을 도화지에 대고 국기를 그리는 초등학교 일학년 “방학 숙제를 여태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3-12-03
마음속으로 점점 뿌리가 깊이 내리면서뿌리 깊은 나무세월의 바람에 한 치도 흔들림 없이자신을 비워갔다(중략)울림으로 가득 찬,당신의 저 뿌리 깊은 빈방에물수제비뜨듯 돌멩이를 던지자파문처럼 번져오는꽃 좋고 열매 많던 시절들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처럼겹겹의 나이테들을 하나로 아우르며메마른 나의 꿈속에까지 고여 오는샘이 깊은 당신의 빈방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 그것은 사랑하는 당신에 대한 기억 아닐까. 그 기억의 나무는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동시에, 특이하게도 자신을 비워간다. 하여 그 비워지는 나무-당신-는 “샘이 깊은 물처럼” “울림으로 가득 찬” ‘빈방’이 되고, 이 “빈방에/물수제비뜨듯 돌멩이를 던”지면 “꽃 좇고 열매 많던 시절들”이 “메마른 나의 꿈속에까지 고여 오”는 것, 마음속 뿌리내린 사랑은 이렇게 존재한다. 문학평론가
2023-11-30
저녁에 우리는 들판을 지나갔네,다 익은 곡식 이삭을 따며 갔네,우리는 싸웠네, 나와 내 아내는,오, 우리는 싸웠다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그리고 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했다네.사랑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나서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할 때,사랑을 더해 주는 사랑싸움은축복할 만한 것!왜냐하면 오래전에 잃은우리 아이가 누워 있는 곳에 왔을 때,거기 작은 무덤 위에서,오, 거기 작은 무덤 위에서,우리는 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했기에.여느 부부처럼 위의 시에 등장하는 부부도 이유 모르는 싸움을 하고는 눈물로 화해하고 키스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되지만, 시의 후반부를 읽으면 가슴 아픈 슬픔을 느끼게 된다. 부부가 “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하게 된 것은 둘의 아이가 묻혀 있는 ‘작은 무덤’ 앞에 왔기 때문임을 알게 되니까. 부부의 사랑은 아이의 죽음을 겪으며 더 깊고 강해졌을 터, 이들에게 사랑싸움은 사랑을 더해줄 뿐이다. 문학평론가
2023-11-29
화창한 날에 꽃눈이 내린다사월 초이튿날,한 시절 아름다운 꽃이 지고 나면그뿐인 것을한바탕 비라도 내리는 날에청춘이 지고내 삶이 지고미칠 정도로 날이 좋았다가눈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좋았다가이렇게 좋은 날, 눈물 나도록 내 사랑하는 님이 먼 길을 떠났다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오는 날,하늘에서 벚꽃눈이 펑펑 내렸다꽃눈이 펑펑 울고 있었다떨어지는 눈처럼 지는 벚꽃은 “미칠 정도로” 화창한 봄빛과 대비되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아름다움은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슬픔을 동반하니까. 게다가 “이렇게 좋은 날”에 “내 사랑하는 님이 먼 길을 떠났”다고. 하여 벚꽃은 꽃눈이 되어 눈물 흘리듯 ‘펑펑’ 떨어진다. 우리는 이 감당하기 슬픔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살아간다. 눈 같은 벚꽃의 아름다움은 그 운명에 대한 신의 작은 보상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3-11-28
처서 지났으니시간이 훨훨 날아가겠지아침저녁으로 율량동공원에 뒹구는찬바람도 발 끝에 채이겠지어떻게 살아 낼까 베일 듯 버틴 시간도녹슨 칼끝 같아여전히 월요일의 가중치는감기기운처럼 떨어지지 않아도또 한 주일은 지나가겠지두려움은 발아래 슬쩍 눌러두고서눈인사를 해야지안녕 ‘월요일’용기 내 마주할 테니순하게 지나가거라‘처서’ 지나 가을이 오고, 시인은 이제 더위를 벗은 시간이 “훨훨 날아가”리라고 기대한다. 사실 ‘월요병’에 시달리며 밥벌이에 지친 이들에게 경쾌한 시간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애써 그러한 기대를 품고 “감기기운처럼 떨어지지 않”는 월요일을 맞이한다. ‘한 주일’이 바람처럼 ‘지나가’리라 기대하면서, 그렇게 시인은 월요일을 “용기 내 마주”하는 것이다. 주말만 오기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 문학평론가
2023-11-27
누우면 멈추는 시간직립을 고집하는 시간이 있지하룻저녁에 바람이 산을 옮기고좌표를 잃어버린 낙타들은고개를 숙이며 걷는다안구에 바람이 들어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이곳에서 유일하게살아남을 것은 거짓말뿐‘당신이 있어 사막이 아름답다’는그 거짓말이 수많은 혀가 되어유성처럼 떨어지는적막한 직립의 시간사막에서 “고개를 숙이며 걷는” “좌표를 잃어버린 낙타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 아닌가.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사방은 모래뿐이요, “안구에 바람이 들어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리들. 하나 이곳의 시간은 “누우면 멈추”기에, 직립하여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이때 유성이 하늘을 가르며 사막을 빛낸다. 그 유성은 ‘당신이 있어 사막이 아름답다’는 거짓말, 이 거짓말이 그래도 사막의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