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의 발견·발굴에 얽힌 사연<br/>터치스크린을 통해 영상과 설명<br/>왕릉서 즐기는 밤산책의 낭만도
경주는 폭염 속에서도 붐볐다. 신라고분정보센터에 주차장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니 꽉 찼다. 다행히 직원이 나와서 금관총 보러 왔느냐고 물어보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밖은 용암이 끓어 넘칠 것 같지만 금관총에 입장하니 서늘하다. 해설사가 설명해주던 것을 요즘엔 터치스크린을 통해 영상과 설명이 함께 흘러나와 앉아서 즐기기에 좋았다. 금관총의 발견과 발굴에 얽힌 사연을 찬찬히 들려준다.
1921년 9월 어느 날 경주의 중심가였던 노서동에서 집을 짓고 있었다. 집주인은 집터의 낮은 곳을 고르기 위해 주변 언덕에서 흙을 파내어 썼다. 그런데 이 흙 속에서 아이들이 구슬을 발견해 갖고 놀았다. 일경이 이를 우연히 보았고 흙을 파냈던 언덕에서 유물들이 드러난 것을 확인했다. 그 언덕은 바로 무덤이었다.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신라 금관이 처음으로 출토되어 ‘금관총’이라 이름 붙였다. 묻힌 이는 머리에 금관을 쓰고, 금귀걸이, 목걸이, 금제허리띠, 금팔찌, 금반지 등을 차고 있었다. 머리 위쪽의 부장궤 속에는 여러 그릇, 장식품, 무기 등 많은 보물을 넣었다.
금관총 출토품은 연구를 위해 서울의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1923년 경주에 금관 등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금관고’라는 건물을 짓게 됨에 따라 경주박물관으로 돌아왔다. 금관총의 축조 연도는 500년 전후로 추정한다. 2013년 발견된 검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이 확인되었고, 또 2년 후인 2015년에는 금관총 재발굴에서 ‘이사지왕도’라고 새겨진 칼집 부속구가 추가로 더 확인되었다. 이 발견으로 금관총의 주인은 이사지왕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사지왕이 신라 56대 왕 중의 한 분인지는 여러 주장이 있어 분명하지 않다.
보물에만 욕심이었던 일제는 3일 만에 발굴을 끝내버려 여러 정보를 놓치고 말았다. 최초 발굴 이후 2015년 3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재발굴조사를 했고,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졸속한 발굴의 한계 및 오류를 바로잡고, 돌무지덧널무덤의 원형을 복원했다. 여기서 무덤의 주인에 대한 단서인 이사지왕 명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 과정에서 목조가구를 세우고 냇돌을 채웠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사 이후 천마총처럼 무덤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보존전시공간을 건립했다. 금관총 너른 창으로 봉황대에 솟은 나무와 파란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져 금관총을 들여다본다. 밤이 되면 조명을 밝혀둬서 이 창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왕릉에서 즐기는 밤산책의 낭만이다.
맞은편에는 몇 걸음만 가면 신라고분정보센터다. 금관총 입장권으로 입장 가능하다. 실감영상을 보러 커튼 안으로 들어섰다. 쏴아아~, 문무대왕릉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발이 젖는 느낌이다. 감은사지 위를 휘돌아 천마총을 슬쩍 뛰어넘고 대릉원을 높은 하늘에서 조감한다. 고분 사이로 금관총을 쌓는 신라인들의 노고가 보인다. 커다란 달 속에 능의 주인이 눕는다. 능, 묘, 총, 분의 차이를 눈에 쏙 들어오게 만든다. 정보센터 옥상에 오르면 금관총 부근의 고분군이 다 내려다보인다. 경주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고분모형놀이방과 인터렉티브체험방에서 유물을 터치하며 참여하는 느낌으로 신라 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쉽게 알 수 있다. 무더운 여름방학과 휴가 기간에 딱 맞는 장소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