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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간에 마을 집어 삼켜… 죽기 살기로 방파제로 뛰었니더”

박윤식 기자 · 이시라 기자
등록일 2025-03-26 20:28 게재일 2025-03-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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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화마 덮친 영덕- 축산면 경정리 현장<br/>집이 불타는 아비규환 속 살아남기 위해 무작정 바다로 뜀박질<br/>대부분 70세 이상, 위급했던 순간 젊은 축 50대들이 피신 시켜<br/>“체계없는 영덕군 대응·해경도 신고 2시간 지나서야 도착” 분통
박춘옥씨
박춘옥씨

“살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방파제로 뛰었니더”

26일 오전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에서 만난 박춘옥(88·여)씨는 산불이 급습했던 긴박한 상황을 얘기하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박씨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불이 마을 전체를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다”면서 “1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는 100m 남짓한 방파제 위 뿐이었다”고 했다.

지난 25일 밤 영덕에는 시속 50km 안팎의 강풍이 불었다. 지품면 황장제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지품면과 창수면, 영해면, 축산면 일대를 뒤덮었다. 축산면 경정리 일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다수의 집이 전소됐고, 마을에 500년된 당산나무인 향나무도 이번 불에 소실됐다.

한 고령의 마을 주민은 “이런 재난은 내가 태어난 뒤 80년 만에 처음이었다”면서 “6·25때의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날 만난 마을주민들은 영덕군의 체계없는 재난문자와 허술한 재난 대응 매뉴얼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산불 대피 관련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에서 몸만 겨우 빠져나와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뜀박질을 하는게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했다.

이 마을 인구 80% 이상은 70세 이상 노인들이다.

불이 번지고 있던 위급한 순간에 마을에 살고 있던 몇 안되는 50대 남성들이 차량을 총동원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태우고 마을 방파제에 도착했고, 행정당국의 구조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그 도움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지난 25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박춘옥씨의 집.
지난 25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박춘옥씨의 집.

주민 김모(80·여)씨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마을 방송을 하지 않으면 불이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여러 주민들은 해경이 경정3리 주민 61명을 구조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은 “마을 주민이 신고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해경이 도착했고, 그 중 일부 주민만 배에 태웠다”면서 “인원 체크를 한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대피를 늦추자 애가 탄 마을 주민들이 위험한 불길 속을 뜷고 자력으로 마을 밖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조직상부에 보내는 보고내용 보다는 사람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임필경 경정3리 이장은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발 빠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간절한 주민들의 희망을 외면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영덕군 관계자는 “유례없는 재난 상황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서도 “주민을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박윤식·이시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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