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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집 더안미술관

등록일 2025-07-01 19:17 게재일 2025-07-0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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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집 더안미술관은 한옥이지만 고딕양식의 성당같은 분위기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팔우정 해장국거리에서 좌회전하려고 대기 중이었다. 오른쪽에 대추밭백한의원 건물에 대형 포스터가 붙었다. 커다란 능과 임산부의 불룩한 배를 비교했다. 또 어느 날 본 포스터는 도자기의 곡선과 만삭의 몸매를 나란히 보여준다. 천년 경주의 과거와 천년 미래를 책임질 탄생이 중요하다 말하고 있었다.

대추밭백한의원은 경주 외곽으로 이전하기 전에 황오동에 있었다. 천마총 가까이에서 천년고도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어 전국에서 난임 부부들이 찾아오게 했다. 50여 년 만에 병원을 새로 짓고 경주 시내에서 사정동으로 이전했다.

10여 년 전에 건물을 증축하려다 일이 커졌다. 공사를 위해 문화재 발굴 조사했는데 황오동 터에서 신라·고려·조선시대 문화재 1800점이 쏟아져 결국 한의원을 이전 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부지로 매입 한 땅은 고분이 사방에 있는 경주답게 인근에 문화재가 있는 역사문화보존지구여서 한옥만 지을 수 있었다. 김재경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에게 새 한의원은 한옥을 재해석한, 오늘날의 목조건축으로 만들어보자고 의뢰했다. 디자인 연구부터 시작해 2016년부터 설계만 7년가량 했다. 오릉 근처 시골길로 들어서니 멀리 세 동(棟)짜리 한옥이 보였다.

일반적인 한옥이 아니다. 구조가 모두 다르고, 전통 목구조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세 채 모두 한옥의 주요 부재(副材)인 대들보가 없다. ‘치유의 집’이라는 콘셉트로 진료실·미술관·복합문화공간으로 나눴다. 전통 한옥은 지붕이 무거운 가분수 건축물이다. 기와와 기와를 고정하는 진흙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대들보나 기둥 같은 나무 부재가 두꺼워지고 많이 필요하다. 한옥 건축비가 비싼 이유다. 부잣집일수록 대들보 크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대추밭백한의원은 진흙을 쓰지 않는 건식공법으로 지붕을 만들어 무게를 줄였다. 진료실로 쓰는 한옥은 대들보 대신 강철 케이블로 구조를 보강해 전통 한옥보다 30~40%가량 목재를 덜 썼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한의원이 목적이 아니라 미술관을 관람하러 왔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하루 딱 한 시간만 열리는 신기한 곳이다. 매월 1일 오전 10시 인터넷으로 예약한 10명만 입장 가능하다. 무더운 날씨라 얼른 카페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쓰는 이곳은 한옥 공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파도가 겹겹이 쌓인 듯,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 고개 들어 높은 층고의 천장을 올려다보니 감동이다. 그 아래 툇마루를 두어 편안히 앉아 창밖의 푸른 경치를 즐겼다. 전통 문살에 창호지가 아닌 유리라 가능한 풍경이다.

오후 2시가 되자 도슨트가 우리를 미술관으로 데려갔다. 더안미술관은 카페와 달리 거대한 아치 기둥이 압권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숲에 들어온 느낌이다. 덕분에 한옥인데 고딕 성당 내부 같아 더 경건해졌다. 벽에는 배병우 작가의 사진이 걸렸다. ‘영기해송’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관 개관 전시다. 경주의 소나무를 오래 가까이 두고 눈에, 카메라에 담아서 수묵화 느낌이 났다. 지난해 경주 플레이스C에 전시된 문봉선 작가의 소나무 그림이 떠올랐다. 명상의 집이라는 이름답게 사진을 보는 내내 새벽 삼릉의 소나무 향이 났다.

대추밭백한의원은 1890년께 경주시 건천읍 조전리(棗田里), 대추밭 동네 약방으로 출발했다. 그 당시 백 원장의 고조부가 자손이 생기지 않자 스스로 처방한 약을 먹고 임신에 성공해 입소문이 나면서 ‘대추밭 백약방’은 난임 치료의 명소(名所)가 됐다. 이후 1970년쯤 경주 시내 황오동에 한의원 건물을 지어 진료하기 시작했다. 이젠 한옥미술관을 지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니 우리의 마음까지 치료해 주는 곳이 되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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