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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 ‘고운사’ 사찰림, 인공조림 대신 ‘자연 복원’ 선택

등록일 2025-08-21 18:31 게재일 2025-08-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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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불탄 나무들 틈새로 
초록 풀무더기들 솟아 올라
죽음의 땅서 새 생명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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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종각이 무너지며 깨진 종 너머로 화마가 지나간 산의 모습이 보인다.

한여름 무더위 기세가 입추를 넘기며 조금은 꺾인 듯하다. 한낮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조석의 기온 차로 새벽녘 이슬이 내리고 풀벌레도 찌르찌르 가을을 알린다. 자연은 말없이 움직이며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사계의 순환에 한 치 어김이 없다. 지난 3월 전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 의성 산불이 영덕으로까지 번지며, 불길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한 천년고찰 고운사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불탄 숲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자연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한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인공조림 대신 ‘자연복원’을 선택한다.

지난해 템플스테이로 인연을 맺었던 고운사. 산불이 진압된 지 5개월이 지났다. 극심했다던 피해 이후 소식이 궁금해, 고속도로 대신 28번 국도를 따라 의성으로 향한다. 어느 순간, 차 창밖으로 불탄 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까맣게 타버린 능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능선은 녹음이 짙어진 사이를 가로지르며 당시 성난 화마가 내달렸던 궤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 궤적이 영덕 따개비 마을까지 이어졌다 생각하니 당시의 공포가 살아나는 듯하다.

천년 고찰 고운사. 직접 보니 더 처참하다. 5개월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깊은 상처 그대로다. 고운사 들어서기 전 최치원문학관의 참혹한 모습에 먼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고운(孤雲) 최치원이 머물며 지었다던 가운루와 우화루 그리고 조선시대 국왕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던 황실 건축 연수전은 흔적조차 없다. 연수전의 솟을삼문이 주던 위엄도 사라졌다. 화마가 지난 자리 그나마 남아있는 보물들을 하나라도 더 수습하고자 애쓰는 국가유산청 연구원들을 지켜보던 주지 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인 무상(無常)을 언급하며 “자연재해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상황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주지 스님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사라진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과거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겠다며 “소나무가 싹이 트면 소나무대로, 참나무가 싹이 트면 참나무대로 자연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그대로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믿음은 ‘사찰림 자연 복원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환경단체와 전문가가 불교계와 힘을 모아 인공 식재가 아닌 자연 스스로 숲을 재생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사찰림 복원에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국내 산림정책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나마 온전한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천년 고찰(古刹)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불타고 깨진 잔해더미를 시름없이 바라보다 먼 산을 보니 까맣게 불탄 나무들 틈새로 초록 풀무더기들이 얼핏 설핏 눈에 들어온다. 죽음의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발현시키는 자연의 힘 그대로의 광경이다. 고운사 사찰림에서 자연 복원 가능성을 본다. 서울환경연합 추적조사에 따르면 소실된 침엽수 대신 참나무류가 빠르게 싹을 틔웠고 너구리, 박쥐와 각종 조류가 숲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비록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불탄 땅에서도 새 생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주지 스님이 화두처럼 던진 ‘무상(無常)’. ‘세상 모든 것이 덧없다’지만 그 덧없음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산과 숲 그리고 재해로 다친 마음까지도 자연치유에 희망을 가지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기와불사에 동참하며 고운사를 나섰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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