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기대고 때로는 등을 돌리며 우리는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차가운 물처럼 등을 타고 흐르고, 어떤 인연은 마주 앉은 밥상처럼 온기를 나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많은 사람과 얽혔다. 시댁 식구, 남편,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 그 많은 얽힘 속에서도 나를 위한 밥상 하나는 늘 부재였다.
결혼 후 생일이 되면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에 초를 붙여 불었던 적은 있으나 생일상을 받은 적은 없다. 젊은 날 고생한 엄마는 치매 초기로 이제 막내딸 생일조차 가물가물 기억해 내지 못했고, 무심한 시어머니는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편은 늘 맛있는 걸 사 준다고 밖에서 먹자고 했고 나도 대개 그러자고 했다. 나도 바빴으니까.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도 잘못한 일도 없지만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은 늘 내 마음속에 허기를 느끼게 했다.
며칠 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가까이 지내던 언니가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생일도 아닌데 밥상을 차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언니는 “그건 네가 받는 밥상이 아니잖아”라며 웃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들어선 그날, 나는 밥상이라는 것이 품을 들여 차려지는 관계의 온기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식탁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나를 위한 생일상 같았다. 갈비찜이 메인 요리로 놓였고 잡채, 김치, 나물 몇 가지 고추와 장아찌, 그리고 김이 바삭하게 얹힌 밥 한 공기. 하나하나 정성이 담겨 있었다. “너 요즘 스트레스 많잖아.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며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 무심함 속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밥은 배만 채우는 도구가 아니었다. 마음의 허기, 관계 속의 고독, 그리고 나조차 외면하던 나를 위로하던 한 끼였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에 내 안의 오래도록 말라 있던 감정의 샘이 스르르 풀렸다. 말없이 전해진 온기가 말로는 닿지 못했던 속마음을 어루만졌다. 온기는 마음 깊은 곳의 메마름을 적시며 오래된 틈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생일은 달력에 적히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은 예정 없이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꼭 기념일이나 큰 사건이 있어야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날의 뜻밖의 배려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무 약속도 없던 하루였기에 그 밥상은 더 특별했고, 아무 말도 없이 건넨 마음이었기에 더 진하게 스며들었다.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느꼈다.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언니는 손맛으로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따뜻한 마음을 씹고 또 삼켰다. 한 그릇의 국, 한 젓가락의 나물이 단지 음식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로 다가왔다. 진심은 늘 크고 분명한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틈새에 스며든다. 그날의 밥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장을 품고 있었다. ‘네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의 문장들이 반찬 사이사이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용히 받아먹으며 일상을 다시 불러올 감각을 되찾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마음을 데워주는 밥상은 몇번이나 있었던가. 인간관계는 결국 밥상처럼 차려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국 하나 없이도 나를 배부르게 하고, 누군가는 온갖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내 마음을 비워놓는다.
언니의 밥상은 내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말없이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언어 없는 시, 몸으로 읽는 위로였다. 온기를 나누는 밥상은 사람을 살린다. 오늘도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그 밥에 마음을 얹는다. 나도 누군가의 밥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온기 있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고 싶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