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조용한 방 안에서 문득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대답은 없었지만 그 말은 오래 묵혀 있던 무언가를 흔들었다.
최근 들어 이유 없는 짜증이 잦아졌다. 가족의 사소한 말에도 날이 서고, 혼자만 있고 싶고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불안이 몰려왔다. 불면의 밤이 늘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율 신경이 망가졌다고 한다. 갱년기 증상과 겹쳐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라고.
그러자 억눌렀던 것들이 떠올랐다. 결혼 후 쉼 없이 달려온 시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 맞벌이를 시작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 노릇에 며느리 노릇에 딸 노릇까지. 나는 언제나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최고’라는 기준에 나를 밀어 넣었다. 누구보다 잘해야 했고 누구보다 헌신해야 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지쳐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삶, 한시도 멈출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리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멈춰 서서 ‘나는 괜찮은가’ 되묻지 못했다. 정작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무심했고 감정의 먼지를 털어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겉으론 살아내는 듯 보였지만 속은 점점 텅 비어갔다. 누구보다 나를 혹독하게 다그치고 몰아세운 사람도 결국 나였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실망 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내 안에서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한밤중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아픈 것도, 그동안 너무 참았기 때문이야.”
그 말이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건넨 말에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그 한 마디에.
살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배우자로서. 그러나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드물었던가.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해 마음이 다친 줄도 모르고 숨이 차도록 달리다 지쳐 쓰러져서야 아팠던 것을 깨닫는다. 나를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연민이며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몸이 아프면 쉬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잠시 멈춰야 한다. 그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숨 고르기다.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일, 그것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타인의 기대가 아무리 무거워도 결국 나를 지켜낼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는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하고 묻고, 밤에는 “수고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라면 나를 토닥인다. 내가 살아온 루틴과 다른 방향이지만, 너무 흔한 말인 것 같지만 나쁘지 않았다. 거울 속 주름이 깊어진 나의 얼굴에도 “그래도 잘 살아 왔어.” 라고 말을 건넨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살기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나의 내면이 고요히 정돈되어야 타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를 돌보는 만큼, 나는 타인에게도 따뜻한 존재로 설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하루가 아닌, 나를 위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책임감임을 깨달아 간다. 나는 이제야 삶의 중심에 나를 세워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던 과거의 나를 다독이고 이제 안간힘 대신 온기 어린 말로 나를 이끌어간다. 그 한마디는 내가 살아갈 다음 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김경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