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과 낙동강 유역 일대는 예로부터 사람과 물산이 오가는 교통과 교역의 요충지다.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소가야는 가락국 수로왕의 동생 말로왕이 세운 나라다. 오늘날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중심으로 진주와 산청까지 세력을 넓혔다. 소가야는 중국과 백제, 왜를 잇는 해상 교역의 중개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사력이나 정치면에서는 아라가야나 가락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소했지만, 바다를 품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활발한 외교와 문화 교류를 펼칠 수 있었다.
209년, 소가야는 포상 8국의 연합군에 속해 가락국을 공격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같은 뿌리를 지닌 나라들끼리 피를 흘려야 했던 이 사건은 소가야의 독자적 자립 의지와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이후 광개토태왕의 남정으로 가야 전체가 크게 위축되자, 소가야는 아라가야와 함께 재기를 모색했으나 6세기 중반, 끝내 신라에 항복하고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
소가야의 흔적은 오늘날 경남 고성군 일대의 고분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회화면 봉동리에는 소가야 왕실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고분군이 있다.
시조 말로왕에서부터 9대 이형왕에 이르는 아홉 무덤이 줄지어 있다. 고성김씨 종친회에 따르면, 이 고분군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일 향사를 올린다고 한다. 인근 과수원 주민이 이곳에서 토기 조각과 철기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음을 전했다.
그러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도굴과 훼손으로 인해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송학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무덤들로,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가야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은 고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둥근 토기 형태로 설계되어 소가야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1층에는 전통 놀이 체험 공간과 북카페가 있고, 2층 전시실에는 송학동 고분군과 내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기마무사 모형이 인상 깊다. 투구와 갑옷을 갖춘 무사가 무장한 말을 타고 있는 모습에서 위풍당당한 기상이 전해진다. 실제로 발굴된 투구에서는 금동 장식이 확인되어 소가야의 정교한 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손잡이 달린 잔, 구멍 난 단지, ‘고(古)’자가 새겨진 굽다리 접시 등은 당시의 미감과 생활상을 생생히 전해준다.
박물관을 나서며 남쪽 바닷가의 남포항을 찾았다. 2008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이곳은 조용한 어촌이지만, 오래전 바다를 통해 소가야가 외부 세계와 활발히 교류했을 것을 떠올리면 감회가 남다르다.
비록 지금은 역사서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지만, 바다의 힘을 품고 문화를 꽃피운 소가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김성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