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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세탁소

등록일 2025-08-05 19:40 게재일 2025-08-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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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빨래터. 마을 사람들이 잘 가꿔서 누구나 놀러 오는 곳이다.

경주시 안강읍 산대 11리에는 빨래터가 남아 있다. 중복에 가족들과 옥산서원 근처에 낙지볶음을 먹고 복달임하려고 들렀다. 동네 어디쯤이라고 대충 듣고 찾아가니 못 찾아 길가 텃밭에서 빨간 고추를 한 소쿠리 딴 아주머니께 여쭈었다. 오던 길로 되돌아 가면 공원에 소나무 있고 운동기구 있는 곳이 나오니 거기가 빨래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공영주차장 벽에 빨래하는 그림이 환하게 우릴 반겼다.

주차장 바로 앞이 화전소공원이었다. 공원 둘레에 색색의 백일홍을 심어서 소담스러운 풍경이었다. 팔각정이 보여 다가가니 어르신들이 모여 윷놀이로 더위를 잊고 계셨다. 어디서 왔냐며 올라앉으라며 권하셨다. 포항에서 빨래터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 시원한 냇물에 발도 담궈 보라며 웃으셨다. 바로 옆에 맑은 물이 흐르고 운동기구가 잔디를 따라 놓였다. 돌계단을 따라 빨래터에 내려가 발을 담궜다. 시원한 물이 종아리까지 적셨다.

물고기들이 바닥을 헤엄치고 다녔다. 칠평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빨래터를 지나 공원 밑으로 흘렀다. 이름만 빨래터인 건 아니다. 실제로 주민들은 집에서 빨기 어려운 커다란 돗자리 같은 것들을 이곳에 갖고 와서 씻는다. 환경보호를 위해 화학 세제는 금지다.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도 빨래터가 그림의 소재였다. 그림 속 아낙네 몇이 개울가에서 빨래한다. 그림 왼쪽의 어린아이가 딸린 여성은 머리를 풀어 헤쳐 감은 뒤 다시 땋는다. 그 아래의 여성은 긴 빨래를 비틀어 짜면서 건져낸다. 그 오른쪽에 방망이질하는 여성 둘이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 이야기 삼매경이다. 그림 오른쪽 위의 갓을 쓰고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양반이 보인다. 신윤복의 그림 ‘빨래터의 사내’를 보자. 개울가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 흰 천을 펼치는 할미, 그리고 목욕을 마쳤는지 젖은 어여머리를 땋고 있는 젊은 여성이 보인다. 왼쪽의 젊고 늘씬한 몸매의 사내는 활과 화살을 들고 눈길은 젊은 여성에게 꽂혔다.

오래전부터 빨래터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18살에 병부교 다리 밑에서 빨래하다 양반을 만나 황진이를 낳았고, 고려 태조 왕건은 빨래터에서 만난 여성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고려의 두 번째 왕이 된다. 빨래터는 여성들 고유의 일터이자, 수다 떠는 곳이다. 여성의 합법적 집을 나오는 탈출로였고, 동네 소식을 듣고 빨래를 두드리며 스트레스도 해소했다. 여름철엔 밤에 나와 아낙네들이 멱을 감으며 더위를 쫓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화전 빨래터를 ‘마음 세탁소’라고 부른다. 빨래를 핑계로 모여 앉아 수다도 떨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물멍을 하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했다. 낮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주변 주간보호센터의 어르신들이 꽃구경하러 찾아오고 오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저녁에는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운동기구도 이용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니 사람 사는 공간이었다.

도시화로 집마다 세탁기를 들이며 빨래터 풍경은 사라졌다. 안강읍 산대 11리의 빨래터에도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났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2021년 부녀회와 청년회가 주축이 된 ‘화전마을 꽃두레’가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주관한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부터 공원 만들기에 속도가 붙었다. 철마다 피는 꽃을 심고 마을주민이 화합해 성과를 보이니 3년 연속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안강읍 산대11리 화전마을은 여전히 냇가에 모여 정을 나누는 빨래터를 가진 마을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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