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삼일야간학교, 검정고시 취득 학생에 졸업증서 수여 졸업생 대표 “검정고시 통해 배움의 길 다시 걷게 돼” 김대희 교장 "교무실·상담실 분리된 공간 필요"
“선생님요, 내 부끄러버가 앞에 못 나가겠어요. 잘한 것도 없는데 무슨 상을 주신다꼬…”
세계 문해의 날(8일)을 앞둔 지난 5일 대구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내 삼일야간학교에서는 만학도의 졸업식이 진행되며 교실에는 웃음과 박수가 가득했다. 현장에서는 흰머리가 성성한 60대 여성이 검정 학사모를 쓰고 두 볼을 붉히며 상장을 사양하자, 아직 앳된 얼굴의 20대 교사가 등을 떠밀며 격려했다. 나이가 많아도 학생은 학생이고, 나이가 어려도 교사는 교사였다.
교실 벽면에는 학생들이 직접 쓴 한글 문장과 그림이 빼곡했다. 노력의 흔적이자, 서로의 앞길을 위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이날 자리를 메운 학생들은 하나같이 긴장했지만, 동시에 벅찬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은 떨리는 손끝으로 상장을 꼭 움켜쥐었고, 흘러내리는 학사모를 손으로 조심스레 고쳐 쓰기도 했다. 발표 차례가 된 한 학생은 목이 메어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그러자 교사와 동료들이 함께 손을 잡아 무대에 세우며 “괜찮아요, 잘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는 만학도의 꿈을 이뤄주는 삼일야간학교의 얘기다.
삼일야간학교는 1972년 문을 열어 올해로 53년째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에는 중학교 과정을, 1980년대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했고, 2000년대에는 성인 문해교육까지 도입했다. 그 사이 검정고시를 통해 수많은 학생이 학급학교와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까지 100여 명의 대학 진학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 학생의 평균 나이는 60세. 교사들은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오히려 후원금을 보태가며 교단에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정고시 교육뿐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법과 공공서비스 이용법 등 생활교육도 함께 가르치며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올해 삼일야학에서는 한글반 4명, 초등 3명, 중등 6명, 고등 9명 등 총 22명이 졸업했다. 검정고시에서는 초등 1명, 중등 15명, 고등 7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냈다.
졸업생 대표는 “젊은 시절 여러 사정으로 학업을 하지 못한 아픔이 늘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검정고시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큰 축복"이라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나이에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김대희(72) 교장은 1972년 대학 신입생 시절 자원봉사를 시작한 뒤 53년간 삼일야간학교를 지켜왔다. 군 복무와 학업, 사업, IMF 외환위기, 코로나19의 시련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낸 인물이다.
김 교장은 “50년을 채우면 그만하려 했지만, 아직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일평생 근무한 내 생활의 일부”라며 “뒤늦게 다시 책을 잡은 학생들이 흘리는 눈물과, 포기하지 않고 배움의 길을 걸어온 세월의 무게를 보며 저 역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늦깎이 학생들이 만학도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환경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야학은 늘 형편이 어려워 웬만한 경제난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교무실과 상담실이 분리된 공간이 꼭 있었으면 한다”며 “멀리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대화하고 상담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의 야간학교는 삼일야간학교(달서구), 대구글사랑학교(중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동구) 등 3~4곳이 남았다. 이 중 성인을 대상으로 초등부터 고등까지 포괄적인 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삼일야간학교가 유일하다. 또 (사)전국야학협회 소속 39개 학교 중 대구에는 이곳 하나뿐이다.
글·사진/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