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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해의 날 만학도의 특별한 졸업식⋯“배움에는 때가 없어"

장은희 기자
등록일 2025-09-07 15:32 게재일 2025-09-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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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일야간학교, 검정고시 취득 학생에 졸업증서 수여
졸업생 대표 “검정고시 통해 배움의 길 다시 걷게 돼”
김대희 교장 "교무실·상담실 분리된 공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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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구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내 삼일야간학교에서 만학도 학생들이 학사모를 쓰고 졸업 증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선생님요, 내 부끄러버가 앞에 못 나가겠어요. 잘한 것도 없는데 무슨 상을 주신다꼬…”

세계 문해의 날(8일)을 앞둔 지난 5일 대구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내 삼일야간학교에서는 만학도의 졸업식이 진행되며 교실에는 웃음과 박수가 가득했다. 현장에서는 흰머리가 성성한 60대 여성이 검정 학사모를 쓰고 두 볼을 붉히며 상장을 사양하자, 아직 앳된 얼굴의 20대 교사가 등을 떠밀며 격려했다. 나이가 많아도 학생은 학생이고, 나이가 어려도 교사는 교사였다. 

교실 벽면에는 학생들이 직접 쓴 한글 문장과 그림이 빼곡했다. 노력의 흔적이자, 서로의 앞길을 위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이날 자리를 메운 학생들은 하나같이 긴장했지만, 동시에 벅찬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은 떨리는 손끝으로 상장을 꼭 움켜쥐었고, 흘러내리는 학사모를 손으로 조심스레 고쳐 쓰기도 했다. 발표 차례가 된 한 학생은 목이 메어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그러자 교사와 동료들이 함께 손을 잡아 무대에 세우며 “괜찮아요, 잘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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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구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내 삼일야간학교에서 김대희 교장이 검정고시를 취득하고 졸업하는 학생에게 졸업증서와 축하 상품을 수여하고 있다.

이는 만학도의 꿈을 이뤄주는 삼일야간학교의 얘기다.

삼일야간학교는 1972년 문을 열어 올해로 53년째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에는 중학교 과정을, 1980년대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했고, 2000년대에는 성인 문해교육까지 도입했다. 그 사이 검정고시를 통해 수많은 학생이 학급학교와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까지 100여 명의 대학 진학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 학생의 평균 나이는 60세. 교사들은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오히려 후원금을 보태가며 교단에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정고시 교육뿐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법과 공공서비스 이용법 등 생활교육도 함께 가르치며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올해 삼일야학에서는 한글반 4명, 초등 3명, 중등 6명, 고등 9명 등 총 22명이 졸업했다. 검정고시에서는 초등 1명, 중등 15명, 고등 7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냈다.

졸업생 대표는 “젊은 시절 여러 사정으로 학업을 하지 못한 아픔이 늘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검정고시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큰 축복"이라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나이에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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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졸업식 이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특히 김대희(72) 교장은 1972년 대학 신입생 시절 자원봉사를 시작한 뒤 53년간 삼일야간학교를 지켜왔다. 군 복무와 학업, 사업, IMF 외환위기, 코로나19의 시련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낸 인물이다.

김 교장은 “50년을 채우면 그만하려 했지만, 아직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일평생 근무한 내 생활의 일부”라며 “뒤늦게 다시 책을 잡은 학생들이 흘리는 눈물과, 포기하지 않고 배움의 길을 걸어온 세월의 무게를 보며 저 역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늦깎이 학생들이 만학도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환경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야학은 늘 형편이 어려워 웬만한 경제난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교무실과 상담실이 분리된 공간이 꼭 있었으면 한다”며 “멀리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대화하고 상담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의 야간학교는 삼일야간학교(달서구), 대구글사랑학교(중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동구) 등 3~4곳이 남았다. 이 중 성인을 대상으로 초등부터 고등까지 포괄적인 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삼일야간학교가 유일하다. 또 (사)전국야학협회 소속 39개 학교 중 대구에는 이곳 하나뿐이다.

글·사진/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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