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린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끓는 동안 원두를 간다. 분쇄되는 소리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향이 잠을 서서히 밀어낸다. 물이 다 끓으면 종이 필터를 적셔 특유의 냄새를 씻어내고, 동시에 드리퍼를 데워 온도를 맞춘다.
그 다음은 분쇄된 가루 위에 조심스럽게 첫 물을 붓는다. 약 30~40초 동안 커피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며 기다린다. 이후에는 너무 빠르지도, 지나치게 머뭇거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리듯 물줄기를 붓는다. 한 잔이 완성되기까지는 대략 5분 남짓.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5분여간은 커피에 시선을 떼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바쁜 아침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마음의 작은 여유를 가져다준다. 물론 평일의 대부분 아침은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신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기다리는 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사마시는 커피만으로도 하루의 카페인은 충분히 채워진다.
하지만 쉽게 구매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혀끝에 남는 맛도, 깊이 있는 향의 결도 없이 금세 사라진다. 마신 뒤에는 단지 카페인이 몸을 깨웠다는 사실뿐. 커피가 카페인을 채우기 위한 음료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붙잡지는 않는다.
드립커피는 조금 다르다. 맛이 각기 다른 원두를 구비해놓으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 산뜻한 산미가 필요한 날에는 꽃이나 과일 같은 밝은 향의 원두를, 마음이 가라앉은 날에는 초콜릿이나 견과류 맛이 나는 묵직한 풍미의 원두를 선택한다. 원두 봉투를 여는 순간 퍼지는 향, 손에 잡히는 원두의 촉감, 분쇄되는 소리, 혀에 층층이 감기는 맛까지도 그날의 컨디션과 맞물린다.
그리고 내가 고른 원두에 맞춰 분쇄도를 조정하고, 물의 온도와 붓는 속도를 가늠한다. 같은 커피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준다는 것도 드립의 큰 매력이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약간 번거롭지만, 그만큼 날씨와 나의 기분과 그날의 온도에 맞춰진 정성스런 한 잔이 된다.
드립의 기본은 단순하다. 물을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커피 가루 전체를 골고루 적셔주면 된다. 한 부분에만 물이 오래 머물면 과하게 추출되고, 닿지 못한 부분은 충분히 맛을 내지 못하게 된다. 균일함이 균형을 만들기에,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선 너무 빠르거나 또는 너무 느리게 물을 붓는 것이 아닌, 고르게 스며든 적당한 시간에서 나온다.
또 중요한 점은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는 것이다. 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이며 전체를 살핀다. 커피가루 하나하나에 고르게 물을 머금게 해주어야 원두 본질의 향이 살아난다. 균형은 어떤 한곳에만 치우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고른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립의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날씨와 습도, 물의 온도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추출해도 오늘은 또 다른 맛의 결과가 나온다. 그날의 원두와 공기, 나의 감각에 맞춰 균형을 찾아야 하고 완벽한 레시피가 있다기보다, 매번 다른 답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 역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떠올리며 마음이 앞서 달려갈 때가 많다. 충분히 했음에도 조금 더 하려다 스스로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드립 커피를 내리며 생각한다.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듯, 하루의 힘도 한 방향에만 쏟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균형은 급함이 아니라 고른 분배에서 생긴다.
요즘의 나는 아침의 몇 분을 드립 커피를 내리는 방식으로 보낸다. 단순히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천천히 물을 붓는 동안만큼은 하루의 속도를 내가 정하고 싶어서다. 향이 피어오르고, 잔에 커피가 차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의 균형을 점검한다.
한 잔의 커피가 하루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지만 시작의 온도는 바꿀 수 있다. 내가 고른 원두와 내가 조절한 물줄기로 완성된 한 잔은, 누군가의 손을 거친 완성품과는 다른 의미를 남긴다.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아침, 나를 돌보려는 작은 시선에서 비롯될 뿐. 천천히, 그리고 고르게. 원두 드립을 내리는 아침의 몇 분이 하루를 더 건강히 지탱하게 한다.
/윤여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