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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 영화의 이면

등록일 2026-03-12 16:16 게재일 2026-03-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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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한동대 교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연예계 마당발로 소문난 장항준 감독의 작품이라 그런지 500만 관객 돌파 시점부터 매일 같이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유명인들의 SNS는 물론이고, 각종 유튜브 채널과 언론들이 한국 영화의 저력이라 치켜세운다. 영화업계는 극장가 회복의 신호탄이라 반기는 분위기다. 좋은 영화의 흥행 자체는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천만 관객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지나치기 어렵다. 과연 천만 관객이라는 지표는 한국 영화 산업의 희망을 담보하는가. 과거 천만 영화는 한국 영화 생태계 전체의 활력을 상징했다.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총 스물다섯 편의 작품이 천만고지를 넘으며 산업적 활력을 과시했다. 당시 관객들은 극장을 찾아야만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이는 제작·배급·상영이 균형을 이루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천만 관객 돌파는 영화 산업의 번영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이면의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내는 신호에 가깝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스크린 독과점이다. 대형 상업영화가 개봉하면 멀티플렉스는 순식간에 상영관을 그 영화에 집중시킨다. 이는 관객의 자율적 선택이 반영된 결과라기보다, 애초에 선택지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구조다. 한 작품이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이 반복되면,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 산업은 몇몇 초대형 흥행작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렇게 영화의 다양성은 고사된다. 
 

여기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미디어 플랫폼의 급성장은 영화 산업의 제작과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안정적 투자처이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관객들도 많다. 많은 작품의 극장 상영 기간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아예 극장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개봉하는 작품들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장은 관객 감소와 유지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방 중소 도시의 극장은 이미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몇 년 새 문을 닫은 극장도 적지 않다. 살아남은 곳도 운영 여건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지난 연휴,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간 지역 극장은 언론 보도와 달리 한산했다. 직원 2명이 검표와 청소, 팝콘을 판매하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상영관 내부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관객이 외투를 벗지 못한 채 영화를 봐야 했다. 한겨울에 외투를 입은 채 두세 시간을 버텨야 하는 극장, 수익 구조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후다.

한편에서는 또 하나의 천만 영화 달성을 한국 영화계의 성과인 양 자축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 생태계의 기반인 지방의 극장들이 무너지고 있다. 몇 편의 흥행 영화만 살아남고, 중간 규모 영화는 사라지며, 지방 관객은 점점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구조라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산업이라 할 수 없다. 영화 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다양한 영화가 공존하고 전국 어디서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작품들과 만날 수 있는 생태계에 있다. 천만 영화 이면에는 사람이 있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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