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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과감한 변화·혁신으로 경북 중심도시 자리매김할 것”

김학동 예천군수가 1일 민선7기 2주년을 맞았다.군민이 예천발전의 주체이고 군민들의 하나 된 마음 없이 발전은 이루기 힘들기에 화합과 소통으로 ‘잘사는 예천’ 만들기에 똘똘 뭉쳐 군민과 함께 군정을 풀어나는 군수가 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특히, ‘변화’는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할 과제이고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신념으로 행정수요에 맞춘 다양한 정책개발은 혁신을 바탕으로,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군민의 잣대로 군민의 만족과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선7기 후반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취임 2주년 성과예천군은 지난해 농촌진흥사업 우수기관, 지역의료보건계획수립 평가 최우수상, 행복한 마을만들기 콘테스트 금상, 농정업무평가 9년 연속 수상 등 38개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또, 한국공공자치연구원 평가 경쟁력 혁신 1위, 지방자치단체 예산효율화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도내 유일하게 5년 연속 2등급을 받은 자치단체로 이름을 올려 ‘청렴의 도시’라는 명성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키기도 했다.국·도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2018년 총 28건 197억원 사업비 확보, 2019년 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330억, 신활력플러스사업 70억, 새뜰마을사업 42억 원 등 총 39건 756억 원을 확보하는 등 열악한 재정확충에 든든한 마중물을 채웠다.괄목할 만한 것은 예천군이 ‘2022 아시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로 확정됐다는 낭보이다. 이 대회는 아시아 45개국이 22개 종목 1천500명 규모가 참가하는 대회로 전국 군 단위에서 최초로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예천군 브랜드 가치상승 기회와 스포츠도시 위상 제고는 물론 침체된 지역 경제활성화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추진계획민선7기 후반기에도 지역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과감한 ‘변화’와 ‘혁신’만이 예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신념으로 역동적 군정과 변화를 희망하며 군민이 꿈꾸는 새로운 예천, 군민 행복과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을 더욱 촘촘히 챙겨 나간다.△ 코로나19 철저한 대응·지역경기 활성화 집중코로나19는 2차 대유행을 예상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지역경제 살리기 또한 시기를 늦출 수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방역수칙실천 생활화, 치밀한 방역체계 유지는 물론 방역물품 비축 등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해 나간다.또, 코로나19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군민을 위한 재난지원금 및 소상공인 피해점포 지원 등 각종 지원책으로 침체된 경기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 활력을 높일 방침이다.지역경기 회복에 초점을 맞춘 중·장기 경기활성화 대책수립을 위해 세출구조 조정과 지방채 발행은 물론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하고 적극적인 기업유치와 지역 농산물 판로개척으로 군민들의 소득증진에 힘쓴다.△ 명품 도청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신도시민의 편의 증진을 위해 330억이 투입되는 복합커뮤니티센터 조성을 위해 10월 첫 삽을 뜨고 부족한 체육시설 충족을 위한 테니스장, 테마 숲 조성, 다함께 돌봄센터 5개소 등 점차 확대해 나간다.공동주택 입주민간 갈등해소와 건강한 주거공동체 문화조성을 위한 공동체활성화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주민들이 명품 신도시의 주체로 다양한 취미활동과 교육 등으로 활용 가능한 호명면주민자치센터를 하반기에 마련해 건전한 여가생활을 돕는다.△ 예천읍 원도심 활성화, 공영주차장 확보일방통행 구상원도심의 인구 감소와 맞물린 경기침체는 장기화 된 과제다.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원도심 활성화는 불가능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군민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통해 변화를 위한 과감한 도전을 추진한다.먼저, 공영주차장을 확보해 나간다. 만연한 불법주차로 인한 군민 불편 해소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중심가 주변 5개소를 선정해 55억 원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국비 16억 원을 포함한 사업비 30억 원으로 174면의 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다.또, 일방통행 교통체계 구축이다. 서본리 굴머리에서 백전리 한전앞까지 2.8㎞구간을 일방통행 교통체계로 바꾸면 310여 면의 주차장이 추가로 확보될 뿐 아니라 인도를 넓혀 보행도 편하게 되고 교통의 흐름도 원활하게 되는 1석3조의 효과로 사람중심의 도로를 만들면 보다 쾌적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농·축산업 현대화 및 유통구조 개선, 풍요로운 부자농촌농업분야 정책에 비중을 더해가고 농업소득 증진을 위한 시설원예 분야 전략품목 현대화사업, 농산물 유통 활성화, 친환경 농업 육성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농가소득 증진 사업도 적극 추진한다.농산물가공센터를 건립해 지역농산물을 이용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6차 산업화에 속도를 더하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온라인쇼핑몰 ‘예천장터’ 활성화는 물론 농산물 유통 및 수출확대 등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마케팅을 펼쳐 나간다.70억 원이 투입되는 신활력플러스 사업을 본격 추진해 경쟁력 있는 특화산업인 곤충의 고부가가치 상품개발로 농가소득을 올려 부자농촌, 희망농촌을 만드는데 역점을 둔다.△ 2022년 亞주니어 육상선수권대회 준비 착착‘스포츠마케팅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의 심장’이라는 각오로 공격적 스포츠마케팅에 행정력을 결집시켜 군민 자긍심 고취와 지역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강한 열정을 쏟은 결과 ‘2022년 U-20 아시아주니어 육상경기 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이 대회는 아시아 45개국이 22개 종목 1천500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군 단위 최초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며 예천군 브랜드 가치상승 기회와 스포츠도시 위상 제고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육상의 메카’로 불리는 예천은 국내 유일의 육상전용 돔 훈련장, 경사로훈련장, 모래사장 훈련장 등 동·하계 전천후 훈련이 가능한 시설을 보유해 육상대회 개최와 전지훈련으로 선수들이 찾아와 지역경기를 견인하고 있다.앞으로 국제대회개최를 위한 공설운동장 리모델링부터 국내 리허설 대회 개최, 대회준비 조직위원회 구성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해 성공적 대회개최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김학동 예천군수는 “군민들과 소통하고 화합을 바탕으로 도농이 상생하는 경북 중심도시로 자리매김을 위한 변화와 도전을 계속하겠다”면서 “군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해 군정 추진을 가속화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0-06-30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자연과 어우러진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던져주는 서원이 병산서원이다. 이 병산서원은 속세의 극락같이 저만큼 앞에는 병풍이 두른듯 병산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 강물은 소리 없이 흐느끼며 백사장을 적시고 흘러간다. 화산(花山), 이름하여 꽃의 산에 앉은 병산서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알맞은 규모로 당당하게 앉아있다. 많은 사연을 안고 기막힌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자연과 조화로운 이상적인 건축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드라마틱한 병산서원병산서원 가는 비포장 길 입구에 들어섰다. 산허리를 끼고 도는 비포장 길은 고맙기도 하면서 아련한 옛 사연을 던져준다. 저만큼 아래 강물은 흐르지 않고 정지되어 있는듯해 그리움도 멈추어버린다. 주차장 입구에서 병산서원 가는 길에 흙벽집이 아련한 삶의 흔적이 아련 거린다. 복례문을 지나자 만대루가 기다리고 있다. 왼쪽에 조그마한 연못 광영지가 옛 사람들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만들어놓았다. 병산서원은 평지가 아니라 산 언덕을 이용한 점층법으로 단을 쌓아 기하학적 구성원리로 자연 속에 있으면서 자연을 온통 끌어당기는 자연과 일체된 건축으로 한국 건축의 백미로 통한다. 서원의 주인공건물은 강당이다.강당 동쪽 명성재는 원장실, 서쪽 경의재는 부원장 겸 교무실인데, 아래 동쪽 동직재는 나이 많은 원생들의 기숙사이고, 서쪽 정허재는 나이 젊은 원생들의 기숙사다. 이 강당에서 과제를 받은 학생들이 보름에 한 번 열리는 강회 때 원장 앞에서 필기시험 아닌 구술시험을 친다. 여기서 합격해야 다음 과제를 받고, 유급되면 통과 못한 과제로 다시 공부해야 된다. 강당 뒷문을 열면 백일홍 여러 그루가 세월의 무게만큼 굵기가 사람을 압도한다. 장판각, 존덕사, 신문, 진사청 건물들 앞에서 호위하듯이 도열해 있다. 선비의 열정을 나타내는 백일홍은 스승 퇴계가 매화를 유독 사랑했듯이, 서애 류성룡(1542~1607)은 백일홍을 많이 좋아했던 모양이다.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보인다. 책이 귀한 시절 필사본으로 공부하지만 필사는 사람에 따라 오, 탈자가 많이 생겨 책으로 인쇄할 수 있는 목판은 대단히 중요한 출판 기능을 했다. 존덕사는 서원의 선현봉사와 교육의 2대 기능 중 하나인 서애 류성룡과 셋째아들 수암 류진(1582~1635)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강당과 동서재 그리고 제향공간으로 서원의 기능은 족하다. 그런데 병산서원의 압권은 이 중요한 기능도 아닌 휴식과 행사의 부수적인 공간인데 병산서원을 스타로 만든 것이 만대루다. 서원이나 궁궐 누각, 정자 등을 이름 붙일 때 사서삼경의 문구에서 많이 따오는데 조선 유학자들이 그토록 사모하던 주자(주희)의 무이정사(武夷精舍)에 만대정(晩對亭)이 있고, 삼국지의 유비가 최후를 맞이한 곳이 백제성이다. 당나라 시성 두보(712~770)는 그‘백제성루(白帝城樓)’의 시 /강도한산각(江度寒山閣) 강은 겨울 산의 누각을 건너고,/….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푸른 병풍 같은 산은 늦도록 마주 대할만하고./ 에서 따왔는데 여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름만으로 가슴 설레는 병산서원교회나 성당, 절 등은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라 사람을 유혹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화려하거나 권위적이다. 서원은 유교적 엘리트들을 교육시키고 선현을 배향하는 엄숙한 공간이라 검소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병산서원은 부분과 집합을 조화롭게 잘 배치하여 자연 속에 있으면서 자연을 끌어들여 자연과 하나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이 접목된다.이 병산서원의 모태인 풍악서당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복주(안동)로 가기 전에 풍산 산성에 머물 때 풍산현의 지방유림 자제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감동받아 서책과 땅(지금의 풍산중·고)을 주어 유생들이 더욱 학문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도 하고(서원총람·1978년), 영가지(1608년)에는 1551년 권경진 등에 의해 창건했다 한다. 세월이 흘러 서당 가까이 집들이 들어서 시끄러워지자 서당을 옮길 궁리를 하다가 서애가 부친상을 당해 하회에 와있을 때 유생들이 자문을 구하자 서애는 병산(지금의 자리)가 적당하다고 하여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07년에 중건하고, 1614년 서애와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존덕사 사우를 건립하면서 서원이 되었다. 1620년 여강서원(호계서원)에 서애의 위폐를 모셔 가면서 퇴계의 좌, 우 상석에 누구를 모시느냐의 병호시비가 시작된다.국가가 공인해주는 사액서원은 라이벌 학봉을 모신 임천서원이 1618년(광해군 10년), 호계서원이 1676(숙종 2년)에 사액 받았는데, 이 병산서원은 1863년(철종14년)에 받았으니 퇴계 적통싸움에서 제자군단 많은 학봉파에 밀린 것이다. 새옹지마라고 당쟁의 근원지인 임천서원, 호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헐렸지만, 병산서원은 소외된 약자의 입장이라 서원의 건강성을 유지하여 철폐되지 않았던 것이다.그 옛날 여기서 공부하던 원생들이 과거에 급제라도 하면 서원에 못 들어오는 광대들은 이 만대루 아래서 풍악을 울리고 유생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여흥을 즐겼다. 이 만대루가 신분의 경계선이 되었다. 지금의 복례문은 동쪽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텅 비어있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지금의 만대루가 좋지만 여기에 방도 넣었다가 없앤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나 건축이나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라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결되는 것이다.#. 만대루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코로나19 덕분에(?) 대낮에 혼자서 만대루에 한참을 앉아서 푸른 병산의 절벽을 마주 대하고 백사장을 옆에 끼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았다. 수백 명의 여러 답사객들을 데리고 나름대로 열변을 토했던 지난 일이 주마등같이 스친다. 나는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가? 필자가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초대 총무로 유홍준 대표와 환상의 콤비가 되어 전국을 기행 할 때 병산서원과 백사장 모래밭에서 가슴 벅찼던 밤, 어느 여름 보름날 진주 삼현여고 독서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이 만대루에서 병산과 강, 허공의 달을 대하면서 안동의 안상학 시인의 이육사 문학과 나의 병산서원 특강이 달빛에 익어 허공에 맴돌다 강물에 젖었던 그 밤이 새록새록 하다.이 병산서원의 강당이나 동, 서재 그리고 만대루의 청마루 바닥은 언제와도 반질반질하여 신발 벗고 오를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전국에 수많은 고택문화재, 특히 공간이 넒은 누정은 청소가 안 되어 신발을 벗을 수 없다. 여기 병산서원은 30년 넘게 서원 옆에 사시면서 매일 관리해온 류시주 님의 덕분이었다. 40~50명의 단체가 잠잘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을 때 하회식당 겸 민박집이 유일할 때 단체로 몇 번이나 숙식했던 인연으로 인사 드리러 갔는데 출타 중이라 못 뵙고 왔다. 70대 후반인 지금도 이틀은 청소하시고 4일은 하회마을 보존회서 청소하고 있어 생기 도는 병산서원이 되어 만대루에 하염없이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볼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난봄에 안동산불의 발원지가 저 건너 병산이라 탄 흔적이 보인다. 물은 간을 넘지 못해도 바람은 넘을 수 있는데 남동풍이 병산서원을 살렸다.사람들은 달빛이 강물에 부서지거나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저마다 생각을 하게 된다.유학자들이 흠모하던 공자도 흘러가는 물을 보고 생각에 잠기자 제자 자공이 “왜 물만 바라보십니까” 물었다. 공자는 “물의 이치만 생각하고 있다. 물은 참으로 위대하다. 물은 만 번 꺾여 흐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 이것은 사람이 사는 의지와 같다.” 공자가 한국에 살았다면 동이 아니라 남으로 흐른다 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이치는 자기가 사는 자연환경의 기준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우리의 동고서저(東高西低)가 아니고 서고동저(西高東低)라서 동으로 흐르기 때문에 공자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땅 덩어리 큰 중국의 산수는 기상천외한 것이 많다. 중국 사람이 그린 산수화는 실경이라도 그것을 흉내 낸 우리의 산수화는 관념화가 되는 것이다. 조선 후기 영, 정조시기에 조선의 문예부흥인 실학이 잠시 꽃을 피울 때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가 나오고 기름기 있는 중국서예가 아닌 원교 이광사(1705~1777)의 동국진채가 나왔다. 연이어 혜원 신윤복(1758~?)은 춘화도를 그려 궁중의 도화서에서는 쫓겨나지만 비디오 없는 시절에 양반들은 끽끽거리며 좋아했던 것이다. 양반들만 갖던 병풍을 거상들 중에 소금장수도 집에 소유했으니 그들의 눈높이로 맞춘 것이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씨름도 등등의 풍속화인 것이다. 그때 조선의 깨어 있는 유학자들은 실학을 들고 나왔지만,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모든 세계는 중국이었고 공자, 맹자의 자구 하나 가지고 티격태격 했던 것이다. 그 옛날 유생들은 여기 만대루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강은 산을 넘지 못해 병산 큰 바위에 부딪힌 강물은 하얀 그리움을 토하듯이 병산서원 앞에 은빛 고운 백사장을 쏟아내고 하회로 흘러가는데….만대루에서 내려와 백사장 강가에 닿으니 물이 정지한 것이 아니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멈추었던 그리움이 다시 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물은 흘러야 된다. /글·사진 = 기행작가 이재호

2020-06-30

공간은 장소가 되고 장소는 고유한 의미로 영존한다

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메타적 글쓰기,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 혁명 이후 세대의 자의식 등으로 2000년대 한국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1970년 김천에서 태어난 김연수는 한국문단의 김천 출신 삼인방(김연수, 김중혁, 문태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천에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삼인방은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친구 사이로 유명하다. 소설가 김중혁과는 ‘씨네21’에 일 년 동안 번갈아 가면서 영화관람기를 연재했다가 2010년에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라는 ‘대꾸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시인 문태준과는 상대방이 문학상을 받았을 때(문태준 2005년 미당문학상 수상, 2007년 김연수 황순원문학상 수상) 시상식에서 서로 축사를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였다.‘뉴욕제과점’(2002)은 김연수의 자전소설로서, 실제 작가의 이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김연수는 김천시 평화동에서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랐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뉴욕제과점은 김천역사에서 나오면 시청 방향이 될 왼쪽 편에 있었고, 살림집은 시내를 관통하는 3번국도 건너편 법원지청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역 근처에서 자라면서 어린 김연수는 포장도로와 자동차와 철로 역전을 놀이터로 삼았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14, 56-59면)경북 김천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김천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철도의 영향과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경상북도 서부권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여 1949년에는 일찌감치 시(市)로 승격되었다. 또한 한국근대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 명작으로 평가받는 염상섭의 ‘만세전(萬歲前)’(1924)에도 김천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동경 유학생 이인화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서울로 가는 길에 부산을 거쳐 김천에 들른다. 김천에는 큰 형이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 중이었던 것이다. 긴 칼을 차고 나타난 형은 “여기두 좀 있으면 일본 사람 거리가 될 테니까 이대로 붙들고 있다가 내년쯤 상당한 값에 팔아 버리랸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통해 일제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는 김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그러나 김연수의 ‘뉴욕제과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김천이 194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나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만세전’에 김천이 등장한다는 것과 같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이유는 ‘뉴욕제과점’이 “연필”로 쓴 작품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 작품은 “나는 이 소설만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연필로 쓴 글은 언제든지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연필로 쓴 글’은 돌에 새긴 비석이나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글처럼 모든 이에게 동의를 강요할 수 없는 가변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나’의 기억을 통해 그려지는 ‘뉴욕제과점’이 공식적인 기록과는 무관한 사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 작품에서 형상화 된 뉴욕제과점이 하나의 장소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인문지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공간(space)과 장소(place)를 구분해 왔다. 공간이 추상적이며 객관적이고 사회적이라면, 장소는 구체적이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공간에 개인만의 정서와 경험이 쌓이면, 이곳은 고유한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김천이 단순한 공간에 불과하다면, 김연수와 같이 김천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김천은 대체불가능한 장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자신이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던 ‘뉴욕제과점’과 같은 곳은 ‘장소 중의 장소’이자 ‘장소의 원형’에 해당한다. 고향의 집은 인간 정체성의 토대이자 실존의 중심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자전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뉴욕제과점’은 감히 김연수라는 한 작가의 고유한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뉴욕제과점은 작품 속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인간이 호명(呼名)을 통해 하나의 주체로 구성된다면, ‘내’가 “역전 뉴욕제과점 막내아들”로 불리워지며 성장했다는 것은 뉴욕제과점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는 뉴욕제과점이 있었던 “그 거리에서 배운 것들과 그 거리 밖에서 배운 것들로 이뤄진 어떤 것”이지만, “그 거리에서 배운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나’의 몸 안에는 “어려서 본 상인들의 세계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는 세상의 힘에 떠밀려 30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버텨온 뉴욕제과점은 결국 1995년 8월 문을 닫는다. 1960년대에 문을 연 뉴욕제과점의 전성기는 1980년대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다. 처음으로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찾아오면서, 빵이라면 고급 생과자만을 생각하던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빵을 사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한다. 5공화국이 끝나갈 때쯤 손님들은 최신식 인테리어를 갖춘 제과점과 바게트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하던 무렵, 김천에도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더 이상 새롭게 바뀔 능력이 없어서, 1980년대 풍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뉴욕제과점도 결국 문을 닫고 마는 것이다. 뉴욕제과점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 24시간 국밥집이 새로 문을 연다.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던 사람들이 자본의 공세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이야기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적당한 서사이다. 실제로 한국현대소설의 주류는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연수가 뉴욕제과점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제기가 아니다. 작가는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존재론적인 삶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아무리 견고한 것이거나 무거운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는 명제가 이 소설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이다.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인간에게 본원적인 정체성과 안정감을 제공하던 장소를 잃어버리는 것은 커다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은 엄청난 속도로 앞을 향해 돌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장소의 상실이 더욱 전면화 된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장소 내부에서 진정한 장소감을 경험했다가 이를 자의든 타의든 상실하는 장소상실(placelessness)을 너무도 흔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뉴욕제과점’의 ‘나’는 이러한 장소상실의 경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카스텔라를 만들 때 나오는 기레빠시(부스러기)나 최신형 케이크 진열대나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생하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뉴욕제과점은 이 작품에서 아름다운 불빛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뉴욕제과점이 잘 나가던 시절, 이 작품은 제과점과 역전 근처의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뉴욕제과점은 사라졌지만, 온 세상을 밝게 물들이던 그 불빛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반짝이며, ‘나’는 여전히 그 불빛의 힘으로 살아간다.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불빛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라질 수도 없으며 빛이 바랠 수도 없다. 심지어 역전 거리의 불빛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틋함과 슬픔으로 인해 “둥글게 아롱져” 보이기까지 한다.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뉴욕제과점’이 있을 것이다.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화의 대구 수성벌, 이육사의 안동 원촌, 한흑구의 포항 바다, 김동리와 박목월의 천년 고도 경주, 권정생의 안동 조탑동, 이문열의 영양 석보면 등도 작가들을 탄생시킨 문학적 자궁으로서의 장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라져 가는 장소들을 소중하게 되돌아보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만드는 길임에 분명하다.작가 김연수는…1970년 김천 출생. 전통과 새로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특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불분명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문장이 돋보인다. ‘작가세계’를 통해 데뷔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청춘의 문장들’ 등을 썼고, ‘대성당’ ‘달리기와 존재하기’ 등의 번역자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자이도 하다.끝/문학평론가 이경재

2020-06-29

전통한옥의 고즈넉한 멋… 고대와 현대가 숨쉬는 곳

경주 나들목을 지날 즈음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가 교촌마을 기와를 적시고 있었다.오래 전 멋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런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경주향교 처마 아래서 가늘게 흩뿌리는 비를 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어디선가 학자들의 웅성거림과 학동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1천 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 온 왕조. 신라는 우리들 기억 속에서 여전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제국’이다. 곳곳마다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적과 유물이 가득한 경주. 수십 번을 다시 찾아도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던지는 공간.교촌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자그마치 1천300여 년 전 나라의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 서라벌의 지도자들은 최고의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국학(國學)이었다. 경주 교촌은 바로 그 국학이 자리했던 곳이다.기자가 교촌마을 찾은 건 이번이 3번째. 지지난해 늦여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땐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깨달았기에 땀 흘리며 마을을 돌아본 보람이 있었고, 다음 번 가을에 찾아갔을 땐 고대와 현대가 불화하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교촌마을은 말끔하게 정비된 주차장이 있고, 첨성대, 동궁, 월지 등 경주의 다른 명소와 가까운 까닭에 적지 않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근처엔 이른바 ‘경주의 맛집’도 적지 않다.◆ 교촌마을의 중심 ‘경주향교’에 얽힌 이야기궂은 날씨 탓인지 여행자가 많지 않았던 초여름 평일 오후. 한참을 국학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경주향교 아래서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고 있자니, 교촌마을의 자랑이자 신라의 보물이기도 한 이곳이 어떤 이유로 세워진 것인지 궁금했다. 이 의문에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편찬한 책 ‘신라의 학문과 교육·과학·기술’이 친절한 답을 들려준다.“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제도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신문왕 2년(682)에 국가 최고 교육기관이며 국립대학이라 할 국학을 확충하고 크게 정비하였다. 국학은 이후 약 1세기 동안 적지 않게 발전을 하였다. 왕들이 역대로 국학에 나아가 박사(博士)들에게 경의(經義)를 강론케 하는 등 명실상부한 유교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지금이나 옛날이나 통치자들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국학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지금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다.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내신문 등이 세월의 이끼를 끌어안고 존재하는 곳.이곳은 신라시대 국학이 설치된 위치고, 고려 때는 향학(鄕學)이 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학문을 탐구해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청년과 선비들의 열정은 신라, 고려,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고 있었다.얼핏 보아도 수많은 ‘흥미로운 스토리’를 간직한 교촌마을과 경주향교. 그래서일까? 이화여대 김민정의 논문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문화적 장소 브랜드 디자인 연구’는 교촌마을의 변화·발전 방향을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오늘날은 문화적 역량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문화는 국민의 삶의 질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전통문화는 한 국가와 민족의 문화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했다. 가히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인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며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다.”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재와 유적은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특히 경주처럼 한국 어느 지방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국보·보물급 유적과 유물을 다수 가졌다면 이것들의 향후 보존·개선 방안을 수립할 때 위에 인용된 김민정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진 자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던 경주 최부자집경주향교를 지나 우산 아래 다정하게 걸어가는 중년 부부의 뒤를 따라 교촌마을 곳곳을 돌아봤다. 곳곳에 세워진 관광안내판이 친절하게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국인도 두어 명 만났다. 비교적 간략하게 경주의 유명 관광지를 요약·설명하고 있는 경주시 문화관광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니 교촌마을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중요민속자료 경주 최씨 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 경주 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최부자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은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후략).”예나 지금이나 양심적인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물질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유산이건 인간이 그걸 포기하거나 나누는 건 양보의 태도와 너른 마음씨 없이는 행해질 수 없기에.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앙가주망(Engagement·지식인의 사회 참여)이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짧지 않은 기간 동안 최상급의 부를 누리면서, 재산을 아낌없이 주위와 나누고자 했다는 지향만으로도 최부자 가문은 ‘높은 도덕성’을 지녔으리라 짐작된다.여기에 이 문중 사람인 최준(1884~1970)은 일제강점기에 가혹한 수난을 겪으면서도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니, 경주 최씨 집안은 그저 돈이 많은 가문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최준에 관한 보다 많은 정보는 교촌마을 안내판에서 얻을 수 있었다.“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대한광복회 재무를 맡아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심한 옥고를 겪었다. 이와 함께 최준은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문화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0년 경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하고, 1932년 정인보 등과 ‘동경통지(東京通志)’를 편찬하는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였다.”존재하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의 경주 최씨 고택은 17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영남 지방 주요 건축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췄고, 사용된 재목들도 일반 가옥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고급품이다. 한때는 부지 2천 평의 99칸 대저택이었으나, 1969년 화재로 사랑채과 행랑 등이 소실됐다. 여러 개이던 쌀 보관창고도 하나를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기자가 찾은 날도 문화재청의 주도로 보수가 진행 중이었다.경주 최씨 고택은 빼놓을 수 없는 ‘서라벌의 보물’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빨리 제 모습을 복원해 그 위상을 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 활짝 갠 ‘빛나는 날’이 다시 오기를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폭풍이 한국을 휩쓸기 전 교촌마을은 예스런 전통가옥 안에서 이에 어울리는 각종 체험관광을 즐기는 여행자들로 붐볐다. 그런 흥겨운 시끌벅적함이 일상이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딸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부렸고, 어린 아들은 엄마를 따라 서툰 솜씨로 색깔 예쁜 국수를 밀었다. 국악을 들으며 신나게 떡메를 치는 관광객들의 웃음이 가득했다. 최근 찾은 교촌마을은 지난해에 비해 눈에 띄게 한산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루이제 린저(Luise Rinser·1911~2002)의 말처럼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은 없고,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주는 고통과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일 터.교촌마을을 나와 인근 식당에서 더위를 식혀줄 냉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바로 앞에선 내물왕릉이 비를 맞고 있었다.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돌올한 풍경을 보며 활짝 갠 교촌마을의 빛나는 날이 어서 다시 오기를 기원했다. 그건 비단 기자만의 바람은 아니었을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 이용선기자

2020-06-25

‘산소카페’ 브랜드로 ‘힐링 여행지로의 도약’ 초석 다졌다

한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가장 큰 역할은 주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도록 지원하는 것. 여기에 지역 경제 발전을 통해 삶의 안락함을 더해준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터.청송군의 지향과 목표도 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020년 초여름. 벌써 민선 7기의 절반이 지났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청송은 어떤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를 점검해본다.◆ 공약 평가 최우수 등급,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등 실질적 성과21세기 새로운 관광의 트렌드를 주도하며, ‘힐링 여행지로의 도약’이란 비전을 세운 청송은 ‘군민과 함께하는 행복 청송’이라는 슬로건의 실현을 위해 ‘미래가 밝은 농촌’ ‘따뜻함이 함께 하는 복지’ ‘꽃 피는 문화 속에 발전하는 경제’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코로나19 사태라는 시련과 예측 불가능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민선 7기 공약사항 평가 2년 연속 최우수 등급 달성’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2관왕’ ‘청송사과축제 대한민국대표축제 선정’ ‘전국 농어촌자치단체 평가 종합 2위’ 등의 눈에 띄는 성과를 선물 받았다.청송군이 이뤄낸 성과는 윤경희 군수의 취임 당시 약속이던 지역 발전과 군민 삶의 질 향상이 제대로 된 길을 걸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농산물 택배비 지원, 천원목욕탕 사업, 친환경 키즈카페·정신건강복지센터·골프장 조성, 청송사과축제의 도약, 청송사랑화폐 유통 등은 그 실질적 사례로 기록됐다.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위한 청송군의 노력도 돋보였다. 지역농산물 소비 촉진과 유통망 확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농산물 택배비를 지원했고, 전국 최고 수준의 농민수당도 지급했다.이와 함께 명품 청송사과의 재도약과 사과 산업 발전을 위한 유통센터 운영 체제도 과감하게 개선했다. 농산물 공판장 개장은 농민들의 웃음을 불렀다. 높아진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는 청송의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줬고, 새로운 브랜드인 ‘황금진’의 개발로 한발 앞선 농업 선진화를 맞이하기도 했다. 청송의 대표적 특산품인 사과의 지속적인 홍보·마케팅 활동이 병행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각종 복지 정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 전개오늘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저출산’ 극복을 위한 청송군의 발걸음도 주목받았다. 군은 출산장려금을 대폭 인상해 지급했고, 진보면에 최상급 시설을 완비한 키즈카페를 만들었다. 돌 사진 촬영비도 지원하고 있다. 공립 어린이집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이는 ‘아이 키우기 좋은 청송군’을 위한 출산 장려정책의 일환이었다.더불어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인재육성장학회의 기금으로 ‘다둥이 장학금’을 주고 있고, 지난해부턴 중고교 신입생들에게 교복 구입비도 지원 중이다.복지의 혜택은 노소가 다를 수 없다. 청송군은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고, 목욕비를 지원하는 등 노년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치매안심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건립·운영도 진행됐다. 이는 정신적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어르신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안겨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참전유공자들과 국가보훈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인상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고령 유공자들의 명예와 품위를 높이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다.260억 원 규모로 발행된 청송사랑화폐는 농민수당, 농산물 택배비 지원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청송군 공직자들은 앞장서 청송사랑화폐를 사용함으로써 지역 상권 부활에 힘을 보탰다. 그런 이유로 일부의 우려와 달리 청송사랑화폐는 안정적으로 지역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 실효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지역화폐’로 인정받고 있는 청송사랑화폐는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지원금으로도 활용됐다. 이는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대규모 체육대회의 지속적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청송군은 ‘산악스포츠의 성지’로 불린다. 연간 15개 이상의 각종 산악스포츠 대회가 개최된 곳이기에 붙은 별칭이다. 청송은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을 5년간 유치해 아이스 클라이밍 저변 확대와 지역 경기 진작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은 바 있다.◆달콤한 청송사과를 맛볼 수 있는 ‘산소카페 청송’으로‘산소카페’라는 브랜드로 관광객을 매혹하는 청송군의 사과축제는 단일 농산물 축제로는 독보적 존재감을 선보여 왔다.경상북도 대표축제로 7년 연속 지정됐고, 작년엔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대표축제에 선정됐다.청송사과축제의 위상 강화엔 윤경희 군수의 노력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항상 “축제란 지역민이 먼저 흥에 취해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멀리서 찾아온 분들도 어우러져 즐길 수 있다”고 말해온 윤 군수는 축제 현장을 용전천변으로 옮기고, 기간 또한 연장했다. 주변 경관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작업도 쉼 없이 전개했다. 그랬기에 ‘산소카페 청송군, 황금사과의 유혹’이란 축제의 주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고 주변에선 입을 모은다.고민 끝에 나온 도시 브랜드 ‘산소카페 청송’은 청송 고유의 정체성에 특유의 색채를 결합한 이미지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이에 어울릴 수 있도록 청송IC 주변과 시가지에 ‘산소카페’와 ‘황금사과’를 테마로 조성한 경관 시설도 관광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청송의 인구는 약 2만6천여 명. 이들의 안전 보장을 위한 군민안전보험공제 가입은 불의의 사고와 재난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정책이다.화재를 예방하고, 진화하는 역할을 하는 소방서 역시 안전한 청송을 위해 필요한 시설. 내년엔 청송소방서가 새롭게 준공돼 주민과 관광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게 된다. 청송군 지방상수도 현대화 사업 역시 250억 원이 투입돼 ‘물복지 실현’을 한 걸음 앞당길 예정이다.‘공약사업 군민배심원단 구성’ ‘휴대전화를 통한 스마트 마을방송 시스템 도입’ ‘청송군 최초 민간 위주 지역발전협의회 구성’ ‘청송군 지역발전협의회의 내실 있는 운영’ 등도 민선 7기가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올해 초 한국을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청송군은 선제적 대처로 최악의 비극을 막아냈다. 치밀한 초동방역과 빈틈없는 방역시스템 구축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또 노인들과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제공하고, 시장 사용료를 감면하며, 임대농기계 수수료를 깎아 준 것도 효과적인 코로나19 대응책으로 평가된다.◆‘희망차고 역동적인 청송’을 위한 앞으로의 노력은…‘2020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시상식’에 참석한 윤경희 군수.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지나온 시간보다는 앞으로의 시간이 중요하다. 청송군 역시 지금까지 얻은 성과와 열매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산소카페 청송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 있는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어울리는 브랜드 제품도 개발해 ‘건강도시’로서의 이미지도 확고히 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계획. 스마트팜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농업의 미래 방향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다.‘청송사과 품질보증제’ 시행으로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는 청송사과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대비해 의료진 숙소 개축 등 보다 질 높은 의료 서비스 확충에도 노력한다는 게 청송군의 의지다.산남 지역엔 응급의료 전용 헬기장도 설치할 예정이다. 넓은 대지 위에 조성될 ‘백일홍 단지’는 청송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고, 인근에 조성 중인 산림레포츠 휴양단지와 연계돼 주민과 관광객들의 안락한 쉼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유치와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한 산림경영시범단지 조성에도 박차를 가한다. 진보·청송 도시재생 뉴딜사업, 청송읍 중앙로 전선지중화, 남북6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도 청송에 활력을 더해줄 것으로 예측된다.이처럼 꼼꼼한 민선 7기 하반기 계획을 세우고 있는 청송군의 앞날은 어떠할까? 궁금증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이에 답하듯 윤경희 군수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고장으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발로 뛰는 소통행정을 통해 하루하루 새롭게 변화하는 청송의 미래를 그려가겠다”고 약속했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0-06-24

비 내리는 날, 의지할 곳 없는 낯선 여행… 아름다운 풍경에 젖다

◇ 오슬로에서 마주친 난민들오슬로 시내에 나갔다가 온가족이(난민인 듯했다)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어디서나 여성과 아이들은 가난이나 차별 앞에 가장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그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 내 극우정당들은 국민들의 난민 혐오 정서에 기대 세를 불리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유럽도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고향을 떠나는 난민뿐만 아니라 미래로 갈수록 기후 문제로 인한 난민도 늘 수밖에 없을 테니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불황이라도 찾아온다면 극우 정당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오슬로 시내는 주말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노르웨이 궁전에서 시청 광장으로 이어지는 거리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공원에서 반라로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겨울이 길고 맑은 날이 드문 북구에선 저렇게라도 햇볕을 쬐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숙소 근처 공원을 지나다 해수욕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P선생님께서 손수 밥과 수육까지 하셨다. 현지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으셔서 여행하는 동안 대부분 직접 요리해서 드셨단다. 얼마 만에 먹는 밥인지 모르겠다. 대부분 빵과 치즈와 우유와 커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점심과 저녁까지 선생님과 함께 식사했다. 선생님께 쌀과 된장을 조금만 얻어 가기로 했다. 선생님과 렌터카 회사에 다녀왔다. 유럽에서만 판매되는 현대 i20을 빌려 운전하고 왔다. 하루 렌트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10만원. 수동 기어를 다뤄본 적이 오래고 네비게이션 보는 것이 익숙지 않다며 회사에서 숙소까지만 운전을 부탁하셨다. 함께 여행하던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동안 혼자 운전해서 다녀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다. 노르웨이에서 여행을 끝내고 아이슬란드까지 가실 모양이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선생님께 쌀과 된장을 얻고 오슬로를 떠나 스톡홀름으로 출발했다.◇ 오슬로를 떠나 스톡홀름으로 향하다스톡홀름에 들어올 때까지 내내 비가 왔다.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비까지 내리니 비옷을 입고 있는데도 한기가 스몄다.어제 날씨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분명 흐리다고만 했는데 50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내내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스톡홀름에 도착할 땐 온몸이 젖은 상태였다. 10시간 넘는 주행에는 비옷도 무용지물. 비를 맞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에 취했다. 비를 맞는 것쯤은 별 것 아니었다. 숲에서 숲으로 달리는 동안 거울 같은 호수와 강을 만났다. 내가 보았던 호수와 강은 모두 베네른 호의 자식들이었겠지. 오가는 차들이 거의 없는 고요한 스칸디나비아 숲길을 헬멧 쉴드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홀로 달리는 경험은 무엇으로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이틀 묵고, 이제 곧 헬싱키를 지나 다시 러시아로 넘어갈 예정.홀로 떠나야 아프고 약한 곳이 어딘지 확실히 드러난다. 의지할 곳이 있거나 관계가 이어져 있을 때 숨어 있던 감정이나 욕망이 온전히 혼자일 때 날 것으로 또렷이 보인다. 그걸 다스리는 것은 나중 문제고 우선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가끔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 필요하다.관계라는 그물에 갇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써야 하고 나중에는 다시 채울 기회조차 놓치고 만다. 물론 관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다. 그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듯하다.스톡홀름에 도착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숙소 주변을 빙빙 돌았다. 눈치껏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이 있으면 같이 두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길에 오토바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건물 뒤쪽에다 세워두었다. 무료 주차장이 있는 숙소는 시외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내에 있는 숙소는 주차비를 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으니 ‘공짜’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동네 골목길을 도는경우가 종종 있다.덕분에 이곳 분위기가 어떤지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말뫼도 오슬로도 이곳 스톡홀름도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저녁 6시 이후론 가게 문을 닫은 곳도 많고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북유럽 사람들은 다들 집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걸까, 아니면 저녁과 밤의 시간대를 우리와는 다르게 대하는 태도와 문화가 있는 걸까 궁금했다. 만약 우리에게 밤 10시까지도 태양 빛이 어스름하게 남아 있다면 ‘열심히’ 일하거나 즐기는 사람이 많을 텐데. 오늘도 어제처럼 결국 비를 맞고 말았다.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스톡홀름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어제 비를 맞은 휴대폰이 혼자 꺼지고 켜지고 반복하더니 배터리를 모두 쓰고 다시 충전하고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북유럽의 고요한 숲과 호수를 가로질러 발트해로휴대폰 인증 문제 때문에 페리를 예약할 수 없어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대신 예약해 달라 부탁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까지 오토바이를 실어가는 최저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125,000원. 일찍 예약하거나 시즌에 따라 가격이 다른 모양이다.스톡홀름에서 헬싱키까진 뱃길로 약 500킬로미터. 페리로 투르쿠로 가서 내륙으로 약 200킬로미터 달리는 방법도 있다. 오후 4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 30분에 도착한다. 차량으로 페리를 이용할 때는 터미널이 아니라 차량 게이트가 따로 있다. 터미널에 가서 예약했다고 티켓을 받으려고 하니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직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출력해서 길을 알려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사람 뿐이었고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았다. 한 자전거 여행자의 짐 꾸림이 내가 보기엔 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이 둘을 캐리어에 태우고 전기 자전거로 달리는 엄마도 봤다. 생활 자전거에 배낭만 질끈 묶고 일상복으로 배를 타는 이도 있었다. 그는 헬싱키가 집일 수도.온갖 종류의 자전거에 짐을 꾸려 싣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다음 장거리 여행은 자전거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당분간은 불가능한 일인 듯싶다.3년쯤 있다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땐 정말 집에서 쫓겨날 수도. 발트해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헬싱키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시 페리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갈 생각이다.헬싱키로 페리로 넘어오며 소파에서 쪽잠을 잤더니 온몸이 뻣뻣.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객실, 식사 옵션을 모두 뺀 덕분이다. 객실을 예약하지 않은 노련한 여행자들은 미리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를 선점하고 나처럼 뭘 잘 모르는 여행자들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곳으로. 원형 소파라 잔뜩 웅크려야만 자야만 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오는 중에 마리에함 섬에 잠시 기항했다. 항구로 들어가는 걸 갑판에 나가 구경했는데 이렇게 큰 배가 바위섬들을 아슬하게 스쳐가며 항해하는 것이 놀라웠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한 작은 섬에도 집이나 건물이 있었다. 별장 같은 곳일까, 아니면 어부들이 사용하는 임시 거주지일까 궁금했다. 오는 동안 요트나 보트, 여러 작은 배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걸 보았고 저들은 저 작은 섬에도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을 테니 음식과 연료만 충분하다면 저런 곳에서 한철 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듯하다. 작게라도 숲이 있고 낚시 실력만 있다면 더 오래 있을 수도.헬싱키에 도착하니 많은 경찰이 도로에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무슨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 듯했다. 희한하게 축제나 행사를 잘 피해서(?) 다니고 있다. 축제 기간이면 잠잘 곳을 구하기도 힘들고 오토바이를 주차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나로선 피하는 게 오히려 득이다. 체크인 날짜를 어제로 예약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같은 침대 앞에서 나와 다른 여행자가 짐을 내려놓고 멀뚱하게 있었는데 숙소에서 보낸 메일을 확인하니 내 잘못이었다. 직원이 나를 원래 예약했던 방보다 더 나은 곳으로 배정해주었다.그 친구보다 아마 내가 훨씬 나이가 들어 보여 배려해준 것이리라. 아니면 청소가 끝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준 덕분일 수도. 숙소 뒤편 숲길을 걷다 축구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한참 구경하고 들어왔다. 헬싱키는 정말 점만 찍고 간다. 시내 구경은 내일 여객선 터미널에 주차해놓고 다녀오기로. 내일 오후 페리를 타고 탈린으로 간다. 북유럽에선 모든 것이 비싸니 지출을 줄이는 데만 신경 쓰고 있다. 이제 곧 러시아로 넘어가니 비용 걱정은 한시름 놓을 듯하다. /조경국

2020-06-23

‘친환경 성장·4차산업 혁신’ 새로운 경제 생태계 목표로

포항시가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한 대응과 경제회복을 핵심으로 하는 ‘포스트(post) 코로나’ 정책을 마련하고, 감염병으로 미뤘던 현장 행정을 다시 시작하는 등 포항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시는 우선 포스트 코로나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으로, 그 바탕에는 시민과 함께하는 포항 만들기를 우선 과제로 둔다는 계획이다. 포항시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살펴보고, ‘포항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본다.□ 국가전략특구 지정을 통해 활력 모색포항시는 최근 미래형 신산업 생태계의 기반을 확충하고 민생경제의 활력을 드높여 시민체감형의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왔다.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지역의 산·학·연 자원을 활용해 주력산업인 철강을 혁신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성장 산업에 지속적인 투자와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지역산업 육성체계를 꾸준히 만들어 온 것. 그 결과, ‘강소연구개발특구’, ‘배터리 규제자유특구’, ‘영일만관광특구’ 등 3대 국가전략특구 지정의 쾌거를 거두며 4차 산업혁명시대의 신성장엔진 확보는 물론 창업과 기업유치, 관광활성화 등 산업구조 다변화의 기반을 마련했다.지난해 6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정된 ‘강소연구개발특구’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역의 혁신성장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연계해 올해 완공 예정인 ‘바이오 오픈 이노베이션센터’ 등을 통해 바이오신약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관련기업 창업과 기업유치로 포항의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강소연구개발특구’에 이어 바로 지정된 ‘배터리 규제자유특구’는 우리나라 배터리산업을 선도하는 도시로서 주도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하면서, 최근에는 에코프로와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 관련업계의 빅(Big)3로 불리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포항에 인프라 투자를 결정하면서 관련기업들의 활발한 투자와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제2의 반도체라 불리고 있는 배터리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 전기차 수요증가 등으로 포항은 배터리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이와 함께 ‘영일만관광특구’ 지정에 따른 핵심 관광지 육성과 산림복지단지, 둘레길, 케이블카 등 산림과 바다가 어우러진 차별화된 체험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 친환경 포항의 기반이강덕 포항시장이 민선6기부터 줄곧 강조하고 역점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친환경녹색 인프라를 대표하는 모델로 정착해가고 있고, ‘3대 도시재생사업’은 도시기능의 효율적인 재배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지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린웨이 프로젝트’는 포항이 친환경녹색도시로 변모하는데 큰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폐철도 부지를 활용한 도시철길숲 공원은 시민들이 다채로운 여가활동과 휴식을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주요 도로변과 교통섬 등에 장미와 수목을 식재하는 도시녹화사업은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시철길숲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경관부문 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균형발전사업평가’에서 최우수상, 산림청의 ‘2019 녹색도시 우수사례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2019년도 친환경 녹색생태도시 부분의 대외평가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대외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특히 2018년 11월에 전국 최초로 착공한 ‘3대 도시재생사업’은 약 2조원 규모의 예산 투입을 통해 주거와 일자리, 사회통합, 도시경쟁력 회복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강덕 시장은 중앙동의 경우 청년창업허브공간과 문화플랫폼을 조성하고, 신흥동에는 우리동네살리기형 도시재생을, 포항구항을 중심으로 한 송도동에는 ICT기반의 해양산업 플랫폼 구축을 통하여 도시의 기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문화도시로서의 포항포항시는 지난해 말 오랜 기간 숙원사업으로 준비해 온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면서 앞으로 5년간 최대 200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통하여 도시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문화생태 구축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의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전국 지자체 중 문화도시의 선두그룹에 서게 됐다.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 온 문화특화사업과 원도심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문화적 재생사업 추진과정에서 축적한 다양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공간의 확장과 함께 주체적인 문화시민 및 워킹그룹 양성, 민·관간의 협업을 통한 시민중심의 문화도시 사업 등의 성과들이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이다. 이와 함께 ‘포항지진의 진상조사와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은 빠질 수 없는 성과이다.이강덕 시장은 “무엇보다 지진의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 온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지진피해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의 길이 열리고, 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이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혁신을 통해 강화되는 주력산업 철강포항시는 경북도와 함께 위기에 직면한 철강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포항시·경북도가 정부에 건의한 ‘철강산업 재도약 기술개발사업’이 과기정통부 제4회 ‘소재·부품·장비 기술특별위원회’의 예비타당성 조사 우대 사업 선정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철강산업 재도약 기술개발사업’과 ‘나노·소재융합 2030사업’과 예비타당성 조사 우대 사업으로 선정했다. 이 사업은 예타 기술 타당성 심의를 통과해 이달말께 예타우선 사업으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예타를 통과하면 ‘철강산업 재도약 기술개발사업’은 2021년부터 연구개발 및 산업공유자산 체계구축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고부가 R&D, 실증지원 및 성과확산 등 업계 지원 수요가 높은 분야들을 중심으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총 2천898억원(국비 2천27억원, 지방비 124억원, 민자 747억원)의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경북도는 철강구조고도화사업이 추진되면 70여개 이상의 철강강소기업이 육성돼 8천억원 이상의 경제효과 및 4천여개 이상의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포항시 역시 ‘철강산업 재도약 기술개발사업’ 예타 통과를 대비해 포항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철강 사업 구조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 중심도시 포항포항이 바이오 산업에 투자하는 노력도 눈여겨 볼만 하다. 대표적인 예가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인데, 이곳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련리, 이인리 일원 146만㎡(약 45만평) 규모에 조성되는 차세대 프리미엄급 복합자족신도시다. 여기는 특히 경북도 제2청사인 환동해지역본부가 착공을 앞두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는다. 아울러 신약개발 산업 활성화를 위한 국가급 연구기관인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국내 최초 식물기반 백신분야 기업지원시설인 ‘식물백신기업지원센터’, 미래선도형 창의 공간 구축 및 청년 창업기회 제공을 위한 ‘포항지식산업센터’ 등이 유치돼 있다. 또 세계 최초로 식물백신 제조품목허가를 취득한 (주)바이오앱을 비롯해 포항세명기독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법인 한성재단, 기술혁신 벤처기업인 (주)HMT과 각각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자체가 차세대 바이오산업의 전진기지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20-06-23

400년 간 ‘병호시비’ 논란 종지부안동시, 국비·도비 등 들여 호계서원 복원

#. 여강서원에서 호계서원으로1575년(선조8년) 여산촌(안동댐으로 면자체가 없어진 월곡면 도곡동) 오로봉 아래 백련사 절터에 지방 유림들의 공론으로 퇴계의 위폐를 봉안하고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여강서원을 건립한다. 그러다가 1605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1606년 북쪽 100보 위에 다시 지었다. 1620년(광해군12년) 추가로 위폐가 봉안된 학봉 김성일(1538~1593)과 서애 유성룡(1542~1607)의 좌 배향 자리다툼이 시작된다. 즉 누가 상석인 퇴계의 좌 배향에 영의정(국무총리) 지낸 서애를 두느냐, 관찰사(도지사)로 4살 많은 학봉을 두느냐로 첨예하게 다툰다. 당시 서애의 제자이며 대학자였던 상주에 은거중인 우복 정경세에게 자문을 구한다. 우복은 5살 이상 차이가 나면 연장자로 대접하여 나란히 걷지 않는다는 견수(肩隨)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고위직은 어디 가더라도 전용석에 앉는다는 절석(絶席)의 예를 들어 영의정과 관찰사가 같이 앉을 수 없다는 것으로 서애가 좌 배향이 된다. 당시 학봉의 후학들은 스승은 서애보다 4살 많고 학식이 뛰어나다며 반발했지만 세력이 약해 마지못해 따라야했다.여강서원은 1676년(숙종2년) 임금으로부터 ‘호계’라는 이름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명실공히 사액서원이 되어 국비로 운영하는 경제적 기반을 다진다.잠재적 불씨는 안고 있다가 1805년 영남의 4현으로 불리는 서애, 학봉,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의 신주를 문묘에 배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서애와 학봉 간 서열문제가 불거진다. 4명의 자손들이 서울에 모여 학봉, 서애, 한강, 여헌 나이순으로 상소를 조정에 올린다. 서애 쪽에서는 서열이 잘못됐다고 독자적으로 상소를 올렸고, 조정에서는 두 상소 모두 기각해 버린다. 이렇게 되자 한강, 여헌의 사림들이 대구 이강서원에 모여 독자적으로 상소할 것을 결정하고 영남 유림에 통보하자 안동의 유림들은 서애, 학봉 양파의 싸움을 중단하고 한강, 여헌 양파를 규탄하는 통문을 띄우기로 결정하고, 전주 류씨 무실파 호고와 류희문에게 통문을 작성케 했는데 학봉, 서애 순으로 작성했다. 이에 서애 파는 순서가 잘못 됐다며 학봉파와 다툼이 재촉발 되었고, 1812년 학봉의 후학들이 호계서원에 대산 이상정의 위폐를 추가로 모시자고 주장하자 서애 후학들의 반발로 호계서원과 절연을 선언해 버린다. 이로 인하여 안동 유림들은 호계서원과 병산서원으로 갈라서고, 퇴계는 제자 싸움에 도산서원으로 학봉은 임천서원으로 서애는 병산서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적통의 자리다툼과 병호시비왕조나 기업, 가문들이 1대에는 서로 도우며 창업에 힘쓰다 2대가 되면 이해관계에 따라 형제를 죽이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학통도 마찬가지로 스승의 제자일때는 동문수학으로 동창, 동기가 되기에 장점은 치켜세워주고 단점은 보완해주다가 스승이 죽은 뒤는 달라진다. 퇴계가 죽고 도산서당을 도산서원으로 사액 받고 퇴계의 모든 글을 망라한 문집을 발간하게 된다. 이때 15살에 퇴계 문하에 들어온 월천 조목은 그림자처럼 퇴계를 수발하면서 학문을 익혔다. 사후에도 극진히 사모하여 죽을 때까지 퇴계를 흠모하면서 추앙했다. 죽어서는 퇴계 제자 368명(편지 한 두통 등의 인연되는 모든 사람) 중에 유일하게 도산서당에 배향되고, 예안(지금은 안동) 인근의 조목, 금난수, 이덕홍, 김부륜, 김택룡, 금응협, 금응훈 등이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학맥을 이어간다. 퇴계의 팔고제자(八高弟子) 중에 중앙정계에 입신양명한 서애와 학봉이 합심하여 안동에 퇴계를 모시는 여강서원(1575년)을 만든다. 일종의 도산서원 분원 역할 격이다.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애는 전란의 영의정으로 임금을 호종하면서 전쟁과 외교를 총괄한다. 학봉은 일본 침략을 잘못 보고한 죄로 선조가 죽이려하자 서애가 기회를 주자고 하여 경상도 초유사, 관찰사로 의병을 모집하고 1차 진주성을 지켰지만, 2차전을 앞두고 진주관사에서 병사했다. 월천은 학문하는 청빈한 선비의 삶으로 동생과 두 아들을 데리고 곽제우 의병장 휘하에서 의병활동 했다. 1594년 서애의 일본과의 화친을 격렬히 반대하며 후배 서애와 갈라서게 된다. 그리고 퇴계의 문집을 발간할 때 월천은 퇴계의 전체 글을, 서애는 선택하여 만들자는 2차 충돌이 일어난다.학봉은 1593년, 월천은 1606년, 서애는1607년 세상을 떠나고 위에서 말한 대로 1620년 퇴계 좌, 우에 학봉과 서애 중 누구의 위폐를 모시느냐의 병호시비가 시작된다. 서로 도와주던 학봉과 서애가 이제 위폐문제로 집안 문중의 자존심에다 학맥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치열한 논쟁으로 죽기 살기로 싸운 것이다. 흔히 영남학파의 종장으로 점필제 김종직→회재 이언적→퇴계 이황으로 이어졌지만, 퇴계에서 봉우리가 우뚝 솟아 퇴계 학통의 적통싸움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도산서원에 유일하게 배향되었지만 집안의 재력받침과 우뚝한 제자가 없었던 예안파의 월천(月川)은 시냇물의 달처럼 사라졌고, 달마는 인도에서 선종을 뿌리내리지 못해 동쪽 중국으로 가서 1대조가 되듯이, 퇴계의 학맥 적통은 안동서쪽 서후 금계의 학봉과 풍산 하회의 서애로 이동했다. 학봉파와 서애파의 합심으로 월천의 예안파를 따돌린 두 파는 깊은 계곡의 외나무다리의 무림(武林)이 아니라 낙동강가의 백사장에서 서로 통혼도 없이 원수같이 지냈지만, 죽이지는 않는 무강(武江)의 혈투를 192년(위패모신1620~신주 갖고 간 1812년) 동안 퇴계 적통서열 싸움이 병호시비다.#. 흥선 대원군과 되살아난 신묵패 호계서원 복원세도정치에 이골이 난 흥선대원군은 상갓집 개 형세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서원이 학풍은 사라지고 도적의 소굴이 된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병호시비와 인조반정 이후 300년 집권한 노론에 소외된 영남 남인의 아픔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둘째아들 개통이(이재면)를 왕(고종)으로 등극시키고 첫 해에 서원에 경고문을 보낸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의지가 확고해지자 유생들은 정치적인 감각으로 흥선대원군의 직계 인평대군을 모시는 서원도 세운다. 대원군은 이것마저 철폐해버린다. 대원군이 당시 영의정 김병학에게 “서원이 온통 백성만 더럽게 괴롭히니 이게 웬 꼴이냐? 집집마다 서원을 만들고 한 사람을 대여섯 곳에서 모시는게 서원이냐? 제현을 존중한다면서 온통 지네 조상 모시는 게 서원이냐? 정말 책을 읽고 싶다면 향교 가서 읽어라. 향교는 장식이냐? 고종도 “너넨 서원이 없으면 성현을 존중할 줄 모르니?”했다.대원군은 조선의 3대 악으로 첫째가 평안도 기생, 둘째가 전라도 아전, 셋째가 충청도 양반이라 했는데 충청도 양반은 서원의 패악을 일컬음이다. 서원은 고려 말 사찰의 부패를 극복하고자 유교국가 이념을 실천할 엘리트 양성소였는데 꼭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병호시비도 양측 간 깊어진 갈등을 해소 하려고 대원군이 힘을 쏟았지만 실패하자 전국에 덜 타락한 47개만 남기고 모조리 훼철해 버릴 때 안동은 40개의 서원 중 도산서원과 병산서원만 남았다. 병파, 호파로 갈라선 블랙홀에 빠진 영남의 유림들은 어느 한쪽으로 붙어야했다. 비병비호(非屛非虎)했던 퇴계 후손들도 비양비상(非兩非商)으로 양반도 상놈도 아닌 것이 되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퇴계도 학봉도 서애도 말이 없는데 못난 제자, 문중들이 죽은 사람 시체 가지고 싸우는 격이다.학봉이 태어난 내앞 마을과 송림을 거처 임하댐으로 갔다. 대원군이 실각하자 헐어진 7년 뒤(1878년) 호계서원은 모실 신주도 없으니 강당만 세웠고, 1973년 안동댐 수몰로 임하댐 코밑으로 옮겼다. 호계서원 터는 잡초만 무성했다. 2013년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안동시장의 중재로 서애, 학봉 문중과 40여 문중 합의 하에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에서 좌 배향에 서애, 우 배향에 학봉과 추가로 대산 이상정을 배향하기로 했다. 임하댐 여수로 물보라 습기에 견디지 못하고 국비, 도비 65억여 원 들여 국학진흥원 옆산 중턱에 옮겨 놓은 곳을 두 번째 갔다. 예전에 서원의 묵패가 관과 백성들에게 재산 갈취였다면, 지금은 국민세금(국비, 도비)을 뺏는 신묵패다. 이미 신주 없어 서원기능도 잃었고, 교육기능이 사라졌고 국가에서도 철거했는데, 예전의 90여 칸으로 “유교문화 및 인성교육의 장으로 교육생과 관광객유치로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는 안동시라면 ‘정신문화수도’가 아니라 ‘정신문화부패수도’를 표방하는 것이다. 의미도 없지만 꼭 세우려면 문중 돈으로 해야지 국비, 도비로 한다는 것은 문중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퇴계, 서애, 학봉이 하늘에서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글·사진 = 기행작가 이재호

2020-06-23

전통문화자원·도심 인프라 연계 ‘관광 세계화’ 역량 충분

경북도와 대구시는 ‘2020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맞아 서로 의기투합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생(相生)관광’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힘차게 출발했다. 당시 경북과 대구가 공동으로 정한 목표는 4천만 명으로 경북이 3천만 명, 대구가 1천만 명이다.하지만, 올해들어 불과 두 달여 만에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 상황에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전국의 관광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특히, 지난 2월 말부터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지역 경제는 물론이고 관광 산업은 초토화됐다.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현재, 전국적으로는 확진자가 지속해서 나오는 가운데 그나마 대구·경북 지역의 확진자 수는 눈에 띄게 줄면서 경북도는 대구시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 상생 관광에 속도를 내고 있다.게다가 최근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 회복세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사업장과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벌인 매출액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매출액 감소율은 22.2%로 전주보다 무려 21.1% 낮아졌다. 업종별로는 관광·여가·숙박업의 회복세가 단연 두드러졌다.이런 흐름에 맞춰 경북도와 대구시는 앞서 설정한 ‘상생 관광’이란 어젠다(agenda) 아래 △가장 한국적인 거점관광 △세계로 열린 글로벌 관광 △일자리가 있는 경제관광 △지속가능한 관광시스템 구축 등의 4대 전략과 16개의 공동 과제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은 민선 7기 출범 직후 ‘대구·경북 한 뿌리 공동 선언문’을 채택, 가장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관광을 상생협력 1호로 삼은 바 있다.관광산업이 제조업보다 일자리 창출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조사 결과(2014년 한국은행/산업연구원 취업유발계수: 10억 원당 취업자 수-제조업 8.8명, 관광산업 18.9명) 등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에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여기엔 대구·경북의 관광 자원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작용했다.이들은 경북의 선비·유교·불교 등 전통문화 관광 자원과 대구의 공연·문화·숙박·쇼핑 등 도심 자원을 연계한 관광산업 활성화에 주목했다. 특히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문화지구, 양동과 하회마을, 부석사와 봉정사에 이어 때마침 도동서원·옥산서원·소수서원·병산서원·도산서원까지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힘도 실렸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 직전 안동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거점도시에서 선정돼 분위기가 한껏 올랐다.대구·경북은 지난해 대구·경북은 공동과제로 공동 슬로건, 엠블럼 제작, 추진협의체 구성, 베트남·태국 공동 현지마케팅, 관광의 해 공동선포식 및 국제관광특별전 공동개최, 해외관광객 유치 특별판촉단 운영, 태국 TV방송 공동드라마 제작 등도 진행했다.□ 가장 한국적인 거점관광 개발대구·경북엔 오감을 자극하는 축제와 역사성을 간직한 다양한 문화유산이 많다. 지난해 경북에서 열린 축제는 81개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다. 이에 대구를 비롯한 경북 도내 시·군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축제 개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이와 별도로 대구·경북은 우선 가장 한국적인 거점 관광을 위해 지역의 대표 여행상품을 개발에 나선다. 지역의 대표 관광콘텐츠를 활용해 체험·체류형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국내 5대 여행사와 시·도별 대표 여행사의 연계 마케팅도 지원한다.구체적으론 대구·경북 여행상품 개발, 홍보 마케팅 인센티브 지원, 경북의 역사문화, 백두대간 자연생태, 동해안, 농어촌 체험과 대구의 서문시장, 의료뷰티, 근대 골목 등 강점 관광콘텐츠를 결합한다.시·도민의 품앗이도 활성화한다. 대구·경북 축제와 전통시장 방문 단체 여행객을 위한 특별 지원책을 마련하고,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및 상권 활성화를 도모한다. 수도권, 영호남, 자매도시 등 광역투어 버스를 지원하고 문화관광 시장 활성화 프로그램 연계 투어 버스도 운행한다.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와 인문 가치를 간직한 지역 정체성과 여행 트렌드를 연계한 릴레이 힐링 콘서트를 추진하는 등 인문코리아 힐링 캠프를 연다.대구와 경북에 산재해 있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 투어를 진행한다. 투어 코스는 달구벌 미래유산 코스, 낙동강 인문코스, 동해안 황금 코스, 백두대간 힐링 코스 등으로 나눠 운영한다.□ 세계로 열린 글로벌 관광세계로 열린 글로벌 관광을 위해 대구·경북은 맞춤형 공동 관광 마케팅 추진한다.구체적으로 △한류 콘서트·TV드라마 공동제작 및 마케팅 △공항·항만 연계 특화 관광 상품 개발 △대표축제 집중 마케팅 및 판매 등이다.우선 공동 관광 마케팅을 위해 중화권, 일본, 베트남, 태국 등 국가별 전략을 수립한다. 또 대구·경북 해외 현지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현지 관광 네트워킹도 강화한다.주요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제작을 적극 유치하고 국내 거주 외국인 연예인의 해와 관광객 유치활동에 투입한다.경주 벚꽃 한류, 포항 해변달빛 한류, 안동인문하류 등 릴레이 한류 콘서트를 연다. 외국인이 선호하는 문화관광 축제를 대상으로 공동 홍보 마케팅을 전개하고, 관광사업체 연계로 특화 관광 상품을 판매한다.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한 여러 축제 가운데 향후 열리는 축제와도 연계할 계획이다.□ 일자리가 있는 경제 관광대구·경북은 관광을 통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관광에 집중한다.우선 관광객 집중 유치를 위해 대구·경북 관광 그랜드 세일을 추진한다. 아울러 찾아가는 휴가 여행 설명회, 관광기업 및 단체 대상 여행콘텐츠 운영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개별여행객 대상 유치 특별프로그램으로서 쿠팡, 티몬 등 모바일 소셜커머스, 네이버, 다음 등 검색포털과 연계해 여행객의 방문 동기를 유발하는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불특정다수가 아닌 기업, 협회, 단체, 학회, 학교 등을 대상으로 한 관광정보 제공 및 홍보로 잠재 관광객 유치에 집중한다.대구·경북 통합형 관광 인력을 양성하고 관광벤처, 체험관광 사업자 공동양성, 대구·경북 통합 가이드를 육성해 일자리 창출을 확대한다.□ 지속 가능한 관광시스템 구축대구·경북은 지속 가능한 관광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대구·경북 하나로 투어 패스를 비롯해 통합 여행지원센터와 원포인트 친절 안내소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대구ㆍ경북 통합 관광ㆍ 교통 책자도 제작한다.개별 여행객을 위해 대구ㆍ경북 주요 관광지순회투어 패스를 개발하고 교통, 관광지, 숙박, 음식 등 원스톱 통합이용권도 판매한다.공항, 동대구역, 경주, 안동 등 대규모 관광객 명소나 터미널, 역 등에 대구ㆍ경북 통합 여행지원센터를 운영해 관광객들을 안내한다.대중교통, 자전거 대여, 시티투어 버스, 철도, 항공, 버스 승차 시간이 연계된 교통안내 관광지도를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포스트 코로나19 관광객 유치 전략 수정 필요대구·경북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상생(相生)관광’ 정책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설정한 만큼 ‘포스트 코로나19’에 따른 관광객 유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애초 대구·경북의 경우 대규모 축제와 연계한 관광객 유치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행 트렌드가 ‘소규모’, ‘힐링’, ‘비접촉’ 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많은 사람이 찾는 호텔, 리조트 등은 이용객이 감소했지만, 캠핑과 단독펜션 등에는 오히려 이용객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이 때문에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포스트 코로나’시대 관광객 유치 전략을 짜느라 벌써 분주하다.대구시는 코로나19 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이미지 회복을 위해 안정적인 코로나19 방역, 안전한 도시 이미지를 부각해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대구에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경북도는 ‘포스트 코로나 지역경제 활성화 아이디어 공모전’ 등을 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다시 뛰는 경북을 만들어간다는 방침이다./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20-06-22

맑고 정직한 신문 경북매일 탐구생활

경북매일신문은 1990년 2월 10일 일간지로서는 경상북도 1호로 신문등록증을 교부받아 준비과정을 거쳐 그해 9월 23일 창간호를 발간했다. ‘맑고 정직한 신문’을 모토로 30년 역사 동안 단 한 번의 결호(缺號)없이 독자와 애환을 함께하며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정권에 순응하는 언론구조를 만들기 위해 ‘언론통폐합’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 64개 언론사 가운데 신문 14개, 방송 27개, 통신 7개사를 통폐합하고 언론인 1천여명을 강제 해고했다. 지방신문에는 ‘1도(道) 1사(社)’원칙이 적용돼 1개 언론사만이 살아남았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언론통폐합의 근거가 됐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경북에도 지역 만의 언론문화 창달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당시 KBS포항, 포항MBC 등 경북 포항을 본사로 둔 방송국은 2곳이 존재했으나 지역일간지는 전무했다. 매일신문, 영남일보 등 대구지역 일간지가 포항에 주재기자를 두고 지역소식을 전해왔으나 보다 심층적인 취재를 위해서는 경북 최대 도시인 포항에 본사를 둔 지역일간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989 신문사 모체인 (주)동경의 설립 등기를 마치고 언론불모지인 경북에 지역일간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1990 ‘인간회복의 당위성 지닌 참신문 제작’이라는 머리기사로 20면 분량의 창간호(지령 2호부터는 8면)를 발간했다. 경북지역 첫 일간신문이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2004 대구∼포항고속도로 개통에 앞서 경북매일이 주최한 전국 인라인 마라톤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대구∼포항고속도로 개통은 ‘교통오지’였던 포항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줬다.▶ 2007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전신인 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며 정부가 진행하는 각종 언론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2011 제호를 다시 한 번 경북매일신문에서 경북매일로 변경한 뒤 신문사를 상징하는 CI도 현재의 모습으로 바꿨다. 사세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사옥의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신사옥 착공준비에 돌입했다.▶ 2012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됐다. 이후 2016년까지 5년 연속으로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며 기획취재와 시민기자의 필진 활용 등 각종 사업을 지원받았다.경북매일은 창간 이후 30년간 경북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지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공정하고 신속, 정확한 보도를 통해 독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에 힘쓰고 있다.▶ 1997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포항과메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 제1회 포항과메기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소식을 전했다. 과메기 축제는 이제 포항 외에 서울 등 전국 주요도시와 외국에서도 열리고 있다.▶ 2000 남북 정상이 만나는 소식을 특집으로 꾸몄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으로 인해 전세계 시선이 한반도로 집중됐고 양측은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2004 인터넷 경북매일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같은해 11월 1일 제호를 경북매일에서 경북매일신문으로 변경했다. 2005년 2월과 9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ABC협회에 잇따라 가입하며 지역일간지로서 입지를 다졌다.▶ 2009 땅속에 묻혀있던 ‘포항 흥해읍 중성리 신라비’ 발견 소식을 최초로 보도했다. 이후 중성리 신라비는 국보 제318로 지정돼 문화창달에 일익을 담당했다.▶ 2013 안동지역 공무원들이 도선운항에 사용될 연료를 상습적으로 빼돌린다는 내용의 보도를 심층 취재를 통해 단독 보도했다. 이 보도로 10여명의 공무원들이 입건되며 지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17 1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의 원인 규명에도 앞장섰다. 경북매일은 첫 지진이 발생했던 11월부터 여진이 지속됐던 이듬해 2월까지 관련소식을 연속성있게 다루며 지역민들의 애환을 함께 나눴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20-06-22

화가 꿈꾸던 소년, 대구 예술계의 ‘키다리아저씨’로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의 집으로 찾아간 날,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분홍빛 차양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강렬한 여름 햇살을 거르기 위해 쳐진 차양 사이로 키 큰 은행나무 이파리가 흔들렸고, 마당은 한바탕 잔치를 벌일 듯 흥겨워 보였다. 저렇게 분홍빛으로 차양을 드리우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미적 감각이 탁월한 그의 안목이 돋보였다. 그 차양 아래 앉아 집을 둘러보니 한옥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에 눈길이 갔다. 글씨는 마치 춤을 추듯 한옥의 기둥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구의 중심인 종로에 품격을 더하며 날아갈 듯한 처마를 올린 한옥인 ‘한국의 집’을 지은 이는 대구 예술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는 신홍식씨였다. 그에게 주련에 대해서 물어보았다.“추사의 글씨지요. 글씨를 모방하기는 쉽지만 저 글씨 한번 보세요. 저건 추사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는 거예요. 추사는 세 번이나 유배를 갔는데 그때마다 글씨가 많이 달라졌어요. 저 주련은 여덟자 병풍으로 된 한시를 가지고 만든 거예요. 이 종로 골목에 전각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각자를 했어요.”한국의 집에는 주련 말고도 소소하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 근대골목투어 제2길인 진골목은 대구의 거부였던 정병국의 집이었던 정소아과를 비롯하여 달성 서씨들이 세거(世居)하던 곳이다. 정병국의 사촌인 서재균이 약 100여 년 전에 지은 한국의 집 안채는 살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살려서 리모델링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귀하던 실내 화장실과 굵은 대들보, 아궁이, 마당의 우물 등은 그대로 두었다. 진골목을 낀 담장에는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화성(수원)현륭원으로 장엄한 행차를 하는 모습을 그린 ‘정조대왕 화성반차도’가 있다. 퇴색을 막기 위해 1300도의 고열에 두 번씩 구워 67장의 도자기에 전사(轉寫)한 이 그림에는 약 1천500여 명의 사람과 570마리의 말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모습이 전부 달라 가치를 더한다. 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해서 골목 담에 전시한 내력을 그에게 물었다.“우리 역사에서 문화가 가장 융숭했던 게 영·정조 시대잖아요. 이 그림은 그때의 화려한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은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 있으니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가 무척 어렵죠. 전 세계적으로 돌아봐도 이 그림처럼 화려한 그림이 없어요. 이런 대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죠.”한참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작은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박스를 열자 동그란 접시에 화성반차도 그림 한 부분이 그려져 있었다. 화성반차도가 그려진 컵과 함께 기념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갑자기 그림이 내 안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었다.사업을 잘 하던 그가 갑자기 예술 쪽으로 인생을 바꾼 것은 평생 돈벌이에 매이기 싫어서였다. 마침 그가 납품하던 금성사와 오리온 전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무렵 그도 하던 사업을 정리했다. 뭘 할까 궁리하던 그에게 공장이 있던 대구 달서구의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선 매달 20kg짜리 쌀 10포를 사서 이웃돕기에 나섰다. IMF 때라서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질 때였다. 그렇게 시작한 쌀 기부는 현재 매달 80포까지 늘어나며 그에게 ‘쌀 배달 아저씨’라는 별명을 선사했고, 그 공로로 2017년 대한민국 자원봉사상 대상인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그는 어릴 때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다른 길로 가서 가지 못한 길을 그리워하며 산다. 그도 사업을 그만두고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하면서 어릴 적의 꿈으로 눈을 돌렸다. 새롭게 화가의 길을 걷기는 어려웠고, 화가들을 돕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작업실이 필요했지만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더 이상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공장을 비워줬다. 그러나 공장을 작업실로 쓰기에는 환경이 녹록치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성안오피스텔의 한 층을 통째로 구입하게 되었고 그곳을 화가들을 위해서 무료로 내놓았다. 20개의 방이 있는 560평의 공간이었다. 작업실이 필요했던 화가들이 그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대구 예술계의 후원자가 되어가고 있었다.그러면서 그는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화가의 꿈은 후원자와 컬렉터로 변형되어 이루어가고 있었다. 현재 그가 소장한 그림은 이응노의 작품을 비롯하여 장욱진, 김창열, 이대원 등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가 100년이 넘은 한옥을 구입했을 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한옥미술관을 지을 구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건축을 시작하자 예상치도 못했던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건물 지하에 넓은 미술관을 짓고자 했던 그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언젠가는 한옥에서 상설전시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예술작품은 그늘에 있을 것이 아니라 밝은 바깥으로 나와야 가치를 더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동시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구의 대표적인 아동문학회인 혜암아동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19년에 동시 전문 계간지 ‘동시발전소’를 발행했다. 전국에서 동시 전문지는 ‘동시마중’과 ‘동시먹는 달팽이’, ‘동시발전소’ 3개뿐으로 대구라는 지방 도시에서 동시 전문지를 발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동시에 대한 애정이 이 일을 이루게 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 작가이기도 한 그는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동시가 활성화된 대구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그도 그랬지만 지금 어른 세대들은 어릴 때 변변한 공연 문화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고작해야 영화를 보는 것이 문화생활의 전부였고, 그마저도 도시에 살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접하고 자란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역에서 조금만 후원해 주면 문화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는데 신씨는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평생 업으로 알고 힘닿는 데까지 후원할 생각입니다.”100년은 넘었을 듯한 은행나무 아래에서 동시를 말하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대구는 우리나라 동시의 태동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시가 발전해 왔죠.”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후원도 하고 자리도 맡게 되었지만 그는 역시 동시 작가였다. 문화예술계의 후원을 업으로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잘 살기에만 골몰하는 세태임에도 신씨는 그런 욕망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는 듯이 보였다.은행나무가 한옥의 처마와 어울려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허공의 분홍 차양이 한들한들 바람을 만들어내는 동안 마당에는 시민들이 차츰 들어와 앉았다. 카페를 하는 안채의 손길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안채 옆에는 전통혼례 때 사용하는 가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아궁이가 있는 처마 아래에는 목조건물의 화재를 막기 위한 드무가 녹이 슨 채 놓여 있었다. 현재와 과거가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 그가 만들고 싶은 삶인지도 모른다.천영애시인“이제 우리나라도 잘 살잖아요. 나도 나이가 들고, 언제까지 쌀 봉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청소년들에게 문화로 봉사하는 길을 찾아보고 싶어요. 문화는 지금 심각해져 가는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문화적 환경을 조성할 여건을 만들어가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의 인성도 좋아질 거고, 사회적 갈등도 해소될 거라고 생각해요.”은행나무 아래에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공예작품이 놓여 있었다. ‘I LOVE’를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아버지가 석물 공장을 했는데 나도 아버지 솜씨를 이어받았는지 저 정도는 만들 줄 알아요.” 수줍게 웃는 그의 눈가에 자잘하게 주름이 잡히면서 천진스러운 아이의 표정 같은 웃음이 묻어났다. 예술가로 살지는 못했지만 예술컬렉터로, 예술후원자로, 대구의 기부자로 살아가는 삶이 그를 만족스럽게 하는듯했다.본지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새롭게 연재할 ‘시인 천영애의 대구·경북人’은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와 예술, 사회와 경제를 밀도 있게 들여다보고자 기획됐다. 필자인 천영애 시인은 대구문학상 수상자로 ‘무간을 건너다’ ‘나무는 기다린다’ 등의 시집을 냈고, 다양한 매체에 문화예술과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06-22

희망의 손길을 전하며 지역민들의 힘이 되어주는 경북매일신문을 응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경북매일신문 창간 30주년을 축하합니다.경북매일신문은 ‘맑고 정직한 신문’의 깃발을 내걸고 창간하여 지난 30년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에 힘써왔습니다. ‘경북지역 제1호 등록 일간신문’으로 향토언론의 첫 씨앗을 뿌렸고, 다양한 문화사업으로 지역민의 삶을 풍성하게 해온 경북매일신문 기자들과 임직원들께 감사드립니다.창간 이후 지역의 자부심을 높여준 경북매일신문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경북 사람’ ‘경북 문학기행’ ‘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과 같은 기획기사를 통해 도민들은 경북의 역사와 가치,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경북의 명품사과와 우수 농산물의 해외홍보, 영일만항 수중환경 정화활동과 치어 방류사업 등을 통해 지역발전과 환경보호에도 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경북매일신문은 이제 ‘혁신’으로 새로운 30년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한손 뉴스’를 만들어 스마트 폰으로 경북도민은 물론 세계와 만나고 있으며, SNS상에서 기사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사진과 동영상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독자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경북매일신문을 응원합니다.경북매일신문은 코로나로 큰 어려움을 겪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눴고, 연대와 희망의 손길을 곳곳에 전하며 지역민들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지역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려는 여러분의 사명감이 오늘의 경북매일신문을 있게 한 힘입니다. 도민들께서도 경북매일신문의 ‘맑고 정직한’ 마음을 항상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지역에서 더 큰 자긍심을 만들어주시고, 존경받는 언론으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2020-06-22

대구-포항·경주-안동·예천, 3개 거점 경제권으로 구분

대구·경북지역의 이어지는 경제침체와 코로나19 확산 사태 등으로 위기를 맞으며 지역 통합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있다.현재 대구·경북 통합론은 행정통합 위주로 전개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는 경제통합의 선행을 제안하고 있다.특히 대구·경북은 한 뿌리에서 생성된 하나의 생활권임에도 지난 1981년 행정 분리 이후 각종 인프라 계획을 비롯한 종합계획을 따로 수립하면서 예산낭비 및 인프라 연계성 결여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또 대구 인근의 경북 남부권과 구미·포항권 등에 비해 안동, 상주, 영주 등 경북 북부권은 상대적으로 경제격차가 심화해 경제 불균등으로 인한 갈등 양상마저도 보이는 실정이다.□ 경제 통합의 필요성대구·경북지역 경제는 매년 GRDP가 발표될 때마다 정부의 무관심이나 지역 홀대론이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성장동력 부재, 생활기반의 상실 등 3대 위기에 더욱 심화했다.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대구·경북지역은 과거 한국의 공업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지역에서 희망과 미래가 없는 곳으로 전략할 가능성 큰 것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프랑스는 지난 2016년 우리의 광역단체 개념인 22개 리전을 13개 리전으로 통합하고 같은 권내 기관의 중복설치 등 비효율적 문제를 개선하며 경쟁력 강화에 주력했다. 일본도 오사카시와 오사카부를 하나의 오사카부로 통합했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대구·경북도 이같은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우리나라 행정통합의 경우 유례가 없는 ‘대구·경북 특별자치도’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특별법이 추진돼야 한다.이럴 경우 행정적 통합시기는 중앙정부와 다른 지역과의 상관관계로 인해 상당히 늦어질 수밖에 없고 빠른 시일내 마무리 짓는다 해도 가장 간단한 교통카드 공동사용을 비롯한 각종 경제적인 통합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경제통합에도 특별법을 적용하면 중앙정부로부터 재원 분산과 정책 추진에 있어 장시간 소요되며 정부의 구속력이 높아 독자적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이는 경남의 마산·창원·진해 등이 합쳐져 ‘창원 특례시’가 된 후 교부세 감소 등에 따른 통합 주민간의 불협화음에서도 경제통합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다.□ 경제 통합의 성과‘대구·경북 특별자치도’로 합쳐지면 인구 5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3대 도시로 부상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잇점이다.통합을 통해 남한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거대 지방자치단체로서 지역내총생산(GRDP) 165조7천억원으로 전국의 8.7%를 차지, 대구의 수십년간 계속된 전국 하위권을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심지어 면적 1위라는 강점을 통해 인구·GRDP·지방세 규모는 경기과 서울에 이어 3위 수준에 도달한다. 수출액 규모도 경기, 충남, 울산, 서울에 이어 5위로 발돋움할 수 있는 등 한동안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통합 이후 대구·경북은 3개의 거점 경제권으로 구분해 경제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혁신성장·해양에너지·청장자원 등 거점 경제권별 도시권을 형성하며 각 경제권은 스마트 인프로라 연결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통합신공항과 포항 영일만 신항 등 2개 포트 체제 글로벌 게이트웨이를 구축할 전망이다.지역 사업적 특징은 대구는 서비스업, 경북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그러나 대구와 경북지역이 지정 육성하는 산업은 같거나 유사한 산업을 전략산업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시너지 효과를 올리지 못했다.경제통합을 염두에 두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구·경북의 전략산업 클러스터를 연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먼저 도출하는 등 경제산업, 도시계획 및 교통, 문화관광, 균형발전 등 전 부문에도 이같은 방법으로 시너지효과를 올리도록 해야 한다.특히, 대구는 제직·염색을 위주로 한 섬유산업의 단순 산업구조였으나, 민선 출범 후 획기적인 SOC 확충과 구조조정으로 자동차·기계·금속 등 고부가치의 첨단산업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해 그 비중이 섬유보다 높아졌다.지난 2017년 부가가치 기준으로 대구의 제조업은 기계금속이 45.4%로 가장 높고 자동차 17.0%, 섬유산업 12.2%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경북은 낙동강·백두대간·동해 등 천혜 자연조건과 공항(통합신공항)·항만(영일만항) 등 글로벌 인프라를 보유해 대구의 최대 약점인 내륙도시라는 점을 불식시키는 토양이 될 수 있다.이같은 사항을 바탕으로 특별자치도 경제권은 통합공항과 항만을 기반으로 대구는 혁신성장, 포항·경주는 해양에너지, 안동·예천은 청정자원 등 3대 거점 중심으로 권역화를 기할 수 있다.대구경북연구원의 연구단은 경제·교통 인프라가 구축되면 ‘대구·경북 특별자치도’는 일본∼북한∼러시아를 연결하는 ‘동북아시아 핵심 벨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통합의 과제중앙정부에 예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경제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추진 사업에 대한 각종 심의 역할을 담당할 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이론적, 제도적인 지원을 할 수있는 연구단 및 사회적 여론수렴의 장으로 포럼 등이 필요하다.재원은 양 지자체의 자체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재원발굴 및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행정통합에 앞서 시급히 실행돼야할 과제이다.중앙정부로부터 균형발전을 위한 기금 등을 통해 지역 협력기금을 조성하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경제통합 추진사업을 위한 기금 및 낙후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펀드 조성 등도 시도해야 한다.중앙정부의 여러가지 원인으로 시기가 늦어질 경우에는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특별구형식의 교통행정 MPO(Metropolitan Planning Organization)나 RTA(Regional Transportation Authority) 등을 벤치마킹해 시도하는 것도 경제통합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경제통합에 앞서 시급해 해결해야 할 교통과 학군, 상하수도 및 지역 이기주의에 막힌 대구·경북지역의 최대 이슈인 통합공항 부지선정과 취수원이전, 광역철도 등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영남대 윤대식(도시공학과) 교수는 “대구·경북 통합은 우선 경제통합을 먼저실시하고 행정통합으로 이어지는 방안이 시간과 행정적인 절차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현재 대구·경북의 교통체제의 경우 60년 전에 마련된 것으로 미국의 교통행정 MPO처럼 특별구를 지정해야 지역간 이해관계에 따른 불만과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20-06-22

포스트코로나 시대, 통합 의료시스템 구축은 생존과 직결

거대한 질병에 갇혀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다. 국적도 국경도 감염병 앞에선 소용이 없다. 전쟁을 제외하고 이렇게 여러 국가에서 장기간 일상생활이 중단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화에도 제동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교류와 이동이 유례없는 수준으로 제한됐지만,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국제공조 시스템마저 부재한 상황이다. 자유무역 질서에서 이탈한 일부 국가는 보호주의를 택하거나 국수주의 길로 향하고 있다. 세계화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단절의 시간’이다.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국면에 모범대응 사례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앞장서서 의료공조체계를 설계하고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것인가. 이 가운데 대구·경북은 지방의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그동안 경쟁 관계를 중심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온 지방의료계는 “더 늦기 전에 분열이 아닌 연대를 통한 의료공동체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다. 패러다임 교체에 앞서 시대정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경북, 의료인프라 열악 “연대만이 살길”대구·경북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 세계가 방역으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방연대가 힘을 발휘했다. 국가 차원의 대응을 넘어 지역사회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줬다. 위기 속에서 의료공동체의 힘을 확인했다.경북 의료계는 지방의료의 특수성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역 의료공동체를 형성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본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신종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대구를 중심으로 의료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북만으로는 감염병 대응은 물론 의료체계 전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의료인력만 해도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역에서 활동 중인 감염내과 전문의는 포항성모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1명뿐이다. 도내 공공의료기관인 김천과 안동, 포항의료원에는 심지어 감염내과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 의료인프라를 개선할 만한 기회가 찾아와도 놓치기 일쑤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추진한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참여희망기관 공모에 경북지역에서 지원한 의료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현실적으로 영남권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하면 인력이나 장비 등 규모적인 측면만 따져 봐도 크게 뒤처진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앞서 대구시는 지난 5월말 칠곡경북대병원이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음압병실 확충 사업에 신규 선정돼 기존 음압병실 5개와 함께 병실 5개를 추가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같은 공모사업에 지원한 안동의료원은 의료여건상 기준에 미치지 못해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다.경북도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경북지역이 3개 권역으로 나뉘면서 환자 전원에 어려움을 겪는 등 우리지역 의료계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며 “지역 의료현실을 개선할만한 여러 방안이 그동안 꾸준히 논의됐지만, 대학병원 유치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예상돼 코로나 사태를 계기 삼아 대구를 중심으로 지방 의료인프라를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또 “신종 감염병에 맞서기 위해라도 대구·경북 의료시스템이 통합돼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힘을 모아야 만약 위기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의료연대가 지역사회 확산을 막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로만 “위기 공감”, 출혈경쟁에 혈안예기치 못한 위기는 늘 찾아오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공동체 의지에 달렸다. 지역 의료계에서 “경북만으론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는 단순히 의료인프라 부족 때문만도 아니다. 도내 소재한 의료기관들도 의료진이나 장비 등에 관해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출혈경쟁이다. 환자 유출을 막고 수도권 병원들과 경쟁하기 위해 유능한 의사와 첨단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공감하면서도, 정작 그 목표가 상생이 아닌 생존이 되면서 출혈경쟁으로 번지는 탓이다.‘메디컬 거리(medical Street)’ 조성만 봐도 그렇다. 포항시는 지난 2016년 ‘세계적 첨단 척추치료 기술 및 의료상품 브랜드 활성화 사업’을 주제로 경북도와 포항우리들병원, 구미강동병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역선도 의료기술 육성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의료특화상품 개발과 함께 지역 우수병원과 연계해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메디컬 거리’ 를 조성하겠단 뜻을 밝혔지만, 인적·물적 의료자원 부족에 주변 의료기관의 참여 저조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결국 흐지부지됐다.경북의사협회 관계자는 “병원 경쟁구도는 경북지역 의료계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며 “포항은 특히 실력 있는 의사와 우수한 장비를 갖춘 병원들이 많지만 수익 창출에 집중한 결과 지역 의료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동반성장하는데 함께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공동체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진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조건”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전문 진료분야 특화와 의료인력 교류, 의료기기 공동구매 등을 통해 연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 의료공동체 ‘윈윈’전략사실 의료계가 하나로 뭉치는 일은 드물다. 보건의료계는 융합이 쉽지 않은 분야로 협의기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례적인 사례가 대구시에서 나왔다. 의과대학 등 교육기관만 6개, 의료인력으로 2만7천여명을 둔 대구시는 지난 2008년 ‘메디시티 대구’를 공식 선포하고 ‘대한민국 의료특별시’를 목표로 의료산업 발전에 앞장섰다.메디시티 대구의 출발은 지역 의료공동체였다. 대구지역 7개 의과대학은 연간 7천여명의 의료인력을 배출한다. 이처럼 엄청난 수의 의료인력을 양성하더라도 개별 대학과 의료인프라로는 수도권 병원과 경쟁하기 힘든 구조다. 대구시는 이들을 묶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지역 병원들이 모여 대형 규모를 이뤘고, 의료진들 역시 출혈경쟁이 아니라 상생을 위해 힘을 모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의료도시 구축’을 위해 2010년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한 데 이어 통합의료센터를 구축하고 IT 융복합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는데 힘썼다. 메디시티 대구로 이전한 의료관련 기업도 덩달아 늘었다. 대구지역에 소재한 의약품 기업은 2019년 기준 33개로 2010년(6개)보다 4.5배 증가했다. 의료기기 기업(174개)은 서울, 경기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국민보건의료실태 조사 결과에서 대구시의 ‘수술 및 전문질환에 대한 자체충족률’은 89.6%를 기록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시민들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단 뜻이다. 대구시가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이른바 ‘환자 유출’이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대구·경북 의료공동체의 미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몇 가지 대안은 이미 추진 중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이 발표한 ‘대구경북 상생협력 그랜드플랜’에 따르면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와 포항가속기연구소가 혁신 인프라를 활용해 신약 개발 등 미래유망 제약산업 발전을 도모한다. 아울러 대구시와 경북도,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오는 2024년까지 지역의 우수한 한방 및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된 의료관광 특화모델을 개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경북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근 국내 한의학계가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한의학 분야에도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며 “대구·경북이 의료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방진료 부문에서 선점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한국 의료발전이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탄생했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위기는 변화의 신호탄이다. 지금이 대구·경북 통합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2020-06-22

채동구는 ‘숭명대의(崇明大義)’를 위해 목숨을 건 가출을 감행한다

성석제의 ‘인간의 힘’은 처음 ‘문학과 사회’에 연재(2002)되었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2003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 양반 채동구(蔡東求)의 출세기이다. 그는 1627년의 정묘호란이나 1636년의 병자호란과 같은 국가의 위기마다 가출함으로써 이름 없는 지방의 유생에서 사후(死後)에 문경공(文景公)이라는 시호를 받는 존귀한 자로 격상된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6년에 태어나 7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채이항이라는 실존인물을 기록한 ‘오봉선생실기’(채광식 역편, 인천 채씨 경헌공파 종문 1989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 ‘오봉선생실기’를 찾아보면, 대체적인 내용이 ‘인간의 힘’과 부합하며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가 바뀐 것(채이항이 채동구로, 몽선이 명선으로, 이후갑이 이원겸으로)을 확인할 수 있다.‘인간의 힘’은 채동구가 조상 대대로 경북 고령에 살아온 것으로 되어 있으며, 고령 지역에 대한 설명도 비교적 상세하다. 그러나 채동구의 모델이 된 채이항(蔡以恒)은 성석제와 마찬가지로 경북 상주에서 평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성석제는 자신의 집안이 노론에 속했으며, 같은 당색을 가진 집안인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의 인천 채씨 집안과 계속 통혼을 해왔다면서, 그 인연으로 집필한 소설이 ‘인간의 힘’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인간의 힘’의 주인공이 살던 곳은 상주시 이아면이라고 분명하게 덧붙이고 있다. (영남일보, 2010.5.31.)나라에 변이 있을 때마다 분연히 집을 나서는 시골 양반 채동구는 칸트(1724-1804)가 말한 윤리를 완벽하게 실천한 인물이다. 성석제 식으로 능청을 떨자면, 아마도 칸트는 ‘실천이성비판’과 ‘윤리형이상학 정초’ 등에서 목 놓아 주장한 윤리를 완벽하게 실천한 인물이 자기보다 100여 전에 조선에서 살다 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칸트는 보편적인 윤리는 ‘자유로워라’라는 정언명령(定言命令,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것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에 충실할 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행복주의나 공동체의 규범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란 본래 다른 데에 원인이 없고 순수하게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만을 우선시한다면 ‘자기 안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 본능, 욕망, 감정 등에 ‘나’를 맡기는 것이 되어서 ‘자유로워지라’는 정언명령과는 거리가 멀어지며, 공동체의 규범에 순종한다면 그것은 타율적이어서 자유롭지 않게 되는 것이다.채동구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창공의 별처럼 빛나는 ‘충성과 숭명대의(崇明大義)’라는 가치에 너무나 충실하여, 권하는 이 아무도 없고, 그래야 할 능력도 이유도 없지만, 나라의 변이 있을 때마다 칼집에서 뽑히지도 않는 칼을 차고 집을 나선다. 이괄의 난에는 임금이 피난한 공주까지, 정묘호란에는 강화도까지, 병자호란에는 남한산성까지, 나중에는 청의 수도인 심양까지 가는 것이다. 채동구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벌이는 이 네 번의 소동은 모두 칸트의 ‘자유로워라’라는 정언명령에 충실한 결과이다.성석제 소설 ‘인간의 힘’.먼저 그는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주의를 극복하였다. 채동구의 가출은 자기 안의 자연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삶에의 본능을 이겨낸 행동이기 때문이다. 채동구의 모든 출도가 목숨을 건 행동이지만, 특히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까지 간 행위는 그야말로 삶을 깨끗이 단념했을 때만 가능하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선봉대가 압록강을 건넌 지 6일 만에 서울에 도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군의 무력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거란족들은 입버릇처럼 “여진 군사가 만약 1만 명을 채운다면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여진족 기병의 전투력은 대단했는데, 1126년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기병 17명이 송나라 군사 2천 명을 간단히 격파했다는 기록도 있다. 정묘호란 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는데, 평안도에서 전쟁이 끝난 것을 미처 알지 못하던 조선군 1천여 명이 여진족 기병을 가로막자 겨우 10여 명의 기병이 조선의 관원 4명과 병사 50명을 죽이고 100필의 말을 빼앗았다고 한다.(구범진,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까치, 2019, 126-127면) 이러한 사실을 채동구라고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병자호란을 맞이하여 출도할 때, “동구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도 하기 싫고 가기 싫고 죽기 싫다는 마음”이 존재했다. 그러나 채동구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충성, 숭명대의’라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가출을 감행한다.동시에 채동구의 행위는 공동체의 규범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충성과 숭명대의는 17세기 양반 사대부의 공통된 신념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허태구,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 소명출판, 2019, 345-362면) 그렇지만 채동구가 직접 뽑히지도 않는 칼을 차고 전장으로 향하는 실천은 결코 공동체의 규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채동구는 조상의 음덕으로 군정(軍丁)을 면제받는 양반임은 분명하나 후취의 아들로서 별다른 학문도 없으며, 과거(科擧)는 처음부터 체질에 맞지 않아 벼슬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양반으로 갖춰야 할 혈통, 학문, 관직 중의 어느 하나도 온전하게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인간의 힘’의 상당 부분은 채동구의 가출이 얼마나 엉뚱한 것인지를 보여주는데 바쳐져 있다. 동구의 형인 동정은 가출을 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을 위기로 몰아넣는 동구와 의절을 할 지경이고, 문중과 향토 사족들은 모두 동구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이것은 숭명배청(崇明排淸)의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가게 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조선을 대표하던 사대부인 전 예조판서 김상헌, 전 지평 조한영과 함께 이전이나 지금이나 늘 학생(學生)일 뿐인 채동구가 심양으로 가게 되었을 때, 임금은 채동구에게 한글로 “너는 조한영처럼 직임을 맡아 벼슬을 한 것도 아니고 김상헌과도 처지가 다르니, 반드시 죽으려고 오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여 채동구의 심양행이 조선이라는 사회의 규범과는 거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청나라 통역조차도 동구에게 “너는 벼슬도 살지 않았으면서 무슨 마음으로 감히 대국의 처사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을 늘어놓았는가?”라고 의아해할 정도이다.이처럼 동구의 가출은 행복주의나 공동체의 규범을 부정한, 그야말로 ‘자유로워라’는 정언명령에 충실한 윤리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동구가 “맨주먹과 가슴의 붉은 피” 하나만 가지고 행하는 가출이란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따르는 의지의 표상”이였던 것이다. 동구 역시 자신의 출도가 “남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해야 할 바를 찾아서 할 일을 했을 뿐이네.”라며, “나를 두고 미친놈이라고 하던 놈이 한둘이던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인간의 힘’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장면은 심양에서 용맹으로 명성이 높은 용골대(잉굴다이)의 심문을 받으며, “나는 내 뜻을 내가 지키고, 내 머리를 내 목 위에 두고 산다. 내가 내 입으로 내 말을 하는데 너희가 무엇이관대 이래라저래라 한단 말이냐!”라고 동네 개를 꾸짖듯 일갈할 때이다. “오재오두(吾載吾頭, 내 머리를 내가 이고 있다)”라는 표현은 “자신이 정한 방식에 따라 스스로를 남김없이 불태울 줄 아는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이며, 동시에 칸트적 윤리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채동구의 삶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태도도 작품의 진행과 함께 점차 변한다. 처음 서술자는 전지적인 입장에서 행장 등의 기록이 채동구의 삶을 어떻게 미화했는지를 밝히는데 열을 올린다. 일테면 ‘국가의 위기시마다 가보인 칼을 뽑는데 그때마다 칼집에서 칼이 나오지 않는다’든가, ‘처음 보는 이에게 피끓는 우국충정을 토로하고 있는데 눈을 떠보니 상대가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출로 채동구가 변모함에 따라, 서술자의 어조는 냉소에서 관찰로, 관찰에서 찬양으로 변해간다.이러한 서술자의 변모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독자 역시도 돈키호테적인 기인으로만 여기던 채동구를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진정한 힘을 보여준 인간’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목숨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으며, 남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으며, 초지일관해서 자신의 길을 간 채동구는 어쩌면 가장 전근대적인 외양을 하고서 가장 근대적인 윤리를 실천한 최초의 인류인지도 모른다./문학평론가 이경재

2020-06-22

새 활력 불어넣을 행정통합, 분권형 국토균형발전 실현

대구는 2000년까지 국내 최대 섬유생산지로서 한국형 산업혁명을 주도했고, 경북은 전자철강산업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수출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오늘날 세계를 평정한 IT산업과 철강산업의 중심지로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이었다.그러나 2002년 (주)LG필립스의 파주 이전, 2007년 삼성 및 LG전자 수원 및 평택, 베트남 이전 등 2000년 이후 지역 대기업의 수도권 및 해외(베트남 등) 투자 증가에 따른 역외 유출 심화로 지역 내 생산, 수출, 일자리 감소가 이어지며 갈수록 대구·경북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대구·경북이 침체의 늪에 빠진 사이 영국은 39개 LEPs, 프랑스 13개 메트로폴, 중국 20개 도시군, 일본 8개 광역지방계획, 미국 11개 거대 지방계획을 추진하는 등 세계는 지역 협력을 통한 국제 경쟁력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인구 500만∼2천만 규모의 지역 경제권 형성, 교통·환경·사회 인프라 공유, 공간적 분업과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경제산업 위기와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활력 저하를 극복하고 세계와의 생존경쟁에 나서는 등 국가 단위 경쟁에서 광역권 단위의 생존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이에 글로벌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상생협력을 토대로 지역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대구·경북은 국가 단위 경쟁에서 광역권 단위 경쟁구도로 변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광역단위 상생협력 이슈를 선점하고 대구경북통합에 시동을 걸고 있다.대구경북통합은 2001년 이의근 당시 경북도지사가 주장했지만, 당시 경북도의 일방적인 발표로 오히려 대구시민들의 반발을 사며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수도권이 비대해지고 대구·경북이 쇠락을 거듭하는 지역경제와 청년 유출로 침체하면서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최근 대구경북통합에 힘을 실리고 있다.이에 2014년 대구경북한뿌리상생위원회 출범에 이어 2006년 대구경북경제통합추진위원회을 발족하며 통합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데다 시·도의 추진의지도 기대에 못미치며 한계에 직면하는 등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이런 가운데 최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수도권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은 오히려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위기감에 공감했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을 통해 지역발전의 새로운 도약은 물론 국가혁신성장과 분권형 국토균형발전을 실현을 선도해야 한다고 뜻을 합쳤다.대구와 경북은 1981년 행정분리 이후 인구와 생산이 크게 하락했다. 인구는 당시 679만여명(경북 495만2천여명, 대구 183만8천여명)이었으나 2018년 기준 511만7천여명(경북 267만3천여명, 대구 244만4천여명)으로 총 167만3천여명이 줄었다.GRDP도 수도권은 1985년 43.9%에서 2017년 50.3%로 7.0%p가 증가했지만, 지역은 1985년 전국대비 4,3%(대구 3조9천억원), 7.5%(경북 6조3천억원)에서 2017년 2.9%(대구 50조8천억원), 5.9%(경북 103조원)로 오히려 하락했다.또 행정분리로 정부 공모사업과 기업 유치를 위한 출혈경쟁으로 행정비용과 경제적 손실이 증가하고 대구·경북을 연계하는 인프라 건설도 지연되면서 사회적 손실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게다가 갈수록 기업은 물론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방은 갈수록 피폐해져 지방소멸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근 대구시와 경북도는 수도권 블랙홀에 맞설 거점을 구축하고 지방소멸 극복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거대 광역자치단체가 필요하다며 대구경북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대구경북연구원 소속 대구경북행정통합연구단은 지난 3월 26일 대구시와 경북도 행정통합의 비전을 ‘대한민국 동쪽 수도 대구·경북’으로 정하고, 제주특별자치도와 유사한 형태의 대구경북특별자치도를 2022년까지 출범시킬 것을 제시했다.이 연구는 광역권 단위의 상생 발전을 위한 구체적 법적 검토와 현실적인 경제성장 방안을 담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이 통합되면 인구 511만7천여명, GRDP 165조7천억원으로 경기도·서울시에 이은 제3의 도시가 된다. 면적은 1만9천916㎢로 서울의 32.9배, 수도권(서울·경기)의 1.7배가 된다. 이는 남한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모의 경제’에서 확실한 우위를 갖게 된다.중앙정부와의 협상력을 강화해 지역발전을 주도할 강력한 권한을 확보하게 되고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과정으로서 강력한 분권국가로 나가는 추동력을 얻게 된다. 특례법을 통해 각종 중앙정부 권한을 이양받아 규제완화가 가능해지고 대구·경북 산학연관의 지원기회 확대로 지역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된다.대구시와 경북도 등 광역행정기구는 물론 소방본부·공무원교육원·도시공사·교육청·보건환경연구원 등 유사 업무의 통폐합으로 주민편의를 고려한 광역행정서비스가 가능하고 유사·중복 사업 축소로 인한 지출감소는 물론 세수 증가로 인한 지방재정 확충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또 대구시와 구미시 간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취수원 이전문제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군위군과 의성군의 갈등 등 지자체가 안고 있는 갈등 해결은 물론 대구~포항, 대구~구미, 대구~신공항 등 도시철도의 광역화가 가능해지는 등 대구·경북 모두 획기적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대구경북행정통합방식을 두고 △대구경북특별자치도+대구특례시+시·군 체제 △대구경북특별자치도+시·군·구 체제 등 통합행정을 총괄할 ‘대구경북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대구시에 자치권을 주는 ‘대구특례시’방안과 그렇지 않은 방안이 제시되면서 대구시민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반발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는 두 방식 모두 광역시인 대구시는 없어지거나 오히려 특례시로 격하되고 기초자체만 남게 된다면서 이는 윈-윈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쪽을 희생시켜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구지역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지역에서는 행정통합 보다는 경제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은 자치단체장의 합의, 지방의회의 의견제시 및 주민투표, 국회 특별법 제정이라는 순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절차 보다 중요한 것이 시·도민들의 의사다. 대구·경북 통합에 대한 시·도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지역민들이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통합대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며, 통합 대안에 대한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구·경북이 서로 윈-윈하는 최적의 행정통합방식이 나와야 시·도민은 동의할 것이다.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경북통합이라는 화두는 인근에 있는 도시, 자치단체와의 좁은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대도시들이 지향하는 메가시티로 가자는 것이다”며 “모든 권한이 중앙에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별로 힘을 가지는, 그러한 흐름을 대구·경북이 선도하기 위해서 통합이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대구·경북이 처해진 현실이 너무나도 절박하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며 “이 일은 많은 시·도민들의 공감대가 모여지지 않으면 해쳐나가기 힘들다. 대구·경북 이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의 논의 토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시·도민들의 공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철우 도지사는 “대구·경북이 분리된지 40년, 인구가 40% 늘었는데 대구·경북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이런식으로 나가면 대구·경북은 존재가치가 없어진다”며 “장 단점을 잘 파악하고 장점을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대구·경북이 합쳐야한다. 500만이 함께 하면 (수도권과) 싸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20-06-22

대구 따로 경북 따로 정책 어불성설… 동일 생활권 묶어야

지난해 대구에서는 한 해 동안 33만6천92명이 떠났다. 경북에서도 31만1천82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을 빠져나갔다. 그나마 20년 전보다 많이 나아진 수치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지난 2000년 기준 대구의 한 해 전출인구는 48만947명, 경북의 전출인구는 40만6천344명이다.대구·경북에서 인구는 계속해서 유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인구 유출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구·경북 기준 20∼29세에서 가장 많은 인구 순이동(전입인구-전출인구) 마이너스가 나타나고 있다. 공교육이 끝나는 시점과 맞물려 대입 또는 취업시장에 발을 들인 20대가 지역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다. 객관적인 자료나 수치가 굳이 제시되지 않더라도, 당장 주변에서 2030세대를 새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청년 유출과 미스매치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당연히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취업 유랑’을 한다.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지역인재 유출현상은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임금에 직장환경도 좋은 해외로까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향한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15년 2천903명이던 해외취업 청년의 수는 매년 늘어 지난 2018년에는 5천783명을 기록했다.청년 문제를 양분하는 또 하나의 난제는 바로 ‘미스매치(Mismatch)’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전문대학 졸업 이상 25∼34세 임금근로자 중 50%는 전공과 직업이 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대학을 졸업해 취업에 성공한 10명 중 5명은 대학교 4년동안 공부했던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게 직업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미스매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OECD 회원국의 전공-직업 미스매치 비율은 평균 39.1%다. 충분히 대한민국은 비정상적이다.특히나, ‘미스매치’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임이 분명하다. 우선 대학생 1명의 1년 평균등록금이 약 670만원인데, 단순 계산해보면 4년간 대학에 낸 2천600여만원의 등록금이 결과적으로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70%에 육박한다. 경제적 논리를 떠나 시간과 노력 등 부수적인 부분까지 계산하면 손해를 값으로 매길 수 없다. 청년들은 이러한 불일치사회에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이 겪는 문제다.□ 산학관공과 산학연해묵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새로 수립할 시기다. 이전까지 대구 따로 경북 따로 청년 정책을 펼쳤던 데 반해, 새로운 출발은 대구·경북을 하나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대구와 구미, 청도, 경산, 영천 등이 사실상 하나의 동일생활권으로 묶여 있고,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구·경북을 따로 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다. ‘지역’이라는 단어의 경계를 대구 또는 경북이 아니라 대구·경북으로 재정립해야만 지역 청년들이 겪는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당연하게도 지역 인재 유출이 현재로서는 지역에서 가장 큰 청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인재들이 지역 내에서 선순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더욱이 청년들이 지역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어야 타 시·도로, 해외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있다.시작은 청년들의 ‘니즈(Needs)’ 파악에 있다. 일자리를 고르는 청년들의 1순위는 연봉이었고, 후순위에 직업 환경 등이 뒤따랐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청년들의 가치관은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대기업보다는 공기업, 공공기관에 취직하길 선호하기 시작한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사회보다 정년이 보장된, 미래가 어느정도 확실한 안정적인 직장을 원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만큼이나 8·9급 지방직 공무원 경쟁률이 높은 까닭 역시 안정지향적인 성향이 청년들에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이미 지역 내 소수의 대학들은 인재 유출 문제의 해결방안에 근접했다. 경북대학교와 영남대학교, 금오공과대학교는 각각 지자체-공공기관-산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방 공공기관과 관련 사업체 수요에 맞는 지역인재를 육성하고,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산(産)학(學)관(官)공(公)’쯤 된다.예를 들어 금오공대가 타 대학들과 협력해 지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면,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등 18개 기관과 60여 곳의 산업체가 앞장서서 채용을 돕는 식이다. 관련해서 지자체들은 특색에 맞는 특화 분야 사업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추가로 기업들과 학생들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영남대와 경북대도 같은 방식으로 지역 내 기관, 산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연계사업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직을 선호하는 청년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어 지역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해법으로 꼽힌다. 다만, 아직은 취업의 범위가 각 시·도에 한정돼 있다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에 먼저 대구경북권 공공기관 및 산업체 전체로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는 ‘산·학·연 융합대학’은 대구·경북의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목받는다. 단순하게는 산업단지와 대학, 연구시설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의미지만, 깊이 들어가면 산학연 융합대학을 통해 지역 산업계와 연동되는 미래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 지역사회의 미래 신산업을 이끌어갈 핵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산학연 융합대학 설립은 지역 특성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구·경북에 산재해있는 산업단지(대구사이언스파크, 포항블루밸리, 구미하이테크 등)들과 지역대학·전문대학들이 연결된다.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일선 생산 현장에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동시에 연구시설에서는 산단의 중심 산업을 확대, 발전시킨다.산단끼리 연계해 새로운 산업을 구상하거나 개발할 수도 있다. 지역 내 중소, 중견기업과의 인력양성 교류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서 현실적으로는 기업과 지역, 청년이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제시된다.특히, 산학연 융합대학 내에 설립될 ‘대경권기업대학공동업종전환및전직지원센터(가칭)’는 앞으로 지역 일자리의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대학, 기업 모두가 참여한 센터는 기업에게는 업종 전환에 대한 지원을, 재직자들에게는 새로운 직장, 직업으로의 이적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공감대 형성 등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센터가 제 역할을 다 해줄 경우 청년 문제 중 심각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스매치’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직이나 재취업 부분에서도 센터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 외에도 대구·경북을 동서남북 4개 권역으로 나눈 권역별 특성화사업도 일자리 창출의 한 방안으로 제시된다. 북부권은 농림업, 서부권은 IT, 동해안권은 소재 및 철강에너지, 남부권은 자동차부품산업으로 각각 육성·발전시켜 지역 경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관련 산업들이 권역에 집중되면서 발달, 추가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크다.□ 생존에 합심해야지난 2012년부터 대구·경북의 실업률과 고용률은 높은 변동폭과 불안정성을 보였다. 지역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인구 유출 심화에 출생률 등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고령사회로의 이동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 소멸이란 말이 생소하지 않을 만큼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시점까지 왔다.역시나 해답은 청년이다. 사회를 이끌어나갈 동력인 청년에 대구·경북이 집중하고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경북만의 문제도, 대구만의 문제도 아니다. 같은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청년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공감대의 형성이 필수적이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20-06-22

국회의원·광역의원 한목소리 “지역 최대 현안은 경제”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대구와 경북을 넘어 우리나라는 물론 모든 인간이 사는 곳을 지난하게 만들었다. 세계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대구와 경북의 경제 사정은 오래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동력조차 빼앗을 태세다. 이 상황에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신조어는 모두의 머릿 속에 각인됐다.경북매일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21대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을 대상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6월 1일부터 열흘 동안 직접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은 지역 국회의원 25명과 대구시의원 30명, 경북도의원 60명이었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 24명과 대구시의원 28명, 경북도의원 58명이 설문조사에 응했다.설문의 문항은 모두 4문항으로 경제 및 정치, 대구·경북 통합 문제 등을 다뤘다. 구체적은 설문과 하부 문항은 경북매일신문 독자와 인터넷 등을 통해 검수를 거쳤으며, 응답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모든 설문조사는 실명 비공개로 실시됐다.지역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의 64.5%(61명)는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경북매일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110명 가운데 20%(22명)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 통합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으며, “찬성한다”는 의견은 44.5%(49명)였다.반면, “반대한다”는 응답과 “적극 반대한다”는 응답은 각각 22.7%(25명), 4.5%(5명)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기타 의견은 8.9%(9명)로 조사됐다.다만, 각각 70% 이상의 찬성률을 보인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에 비해 경북도의원들은 “찬성한다”는 응답이 56.0%(33명)에 그쳤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대구·경북의 행정 통합에 적극적인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경북도의회 구성원 가운데 안동 등 북부지역 도의원들은 지역구 사정을 살펴볼 때, 통합에 유보적인 행보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지역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의 대다수인 72.7%(80명)는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대구와 경북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어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 보건의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25.5%(28명)에 그쳤으며 “저소득층, 취약계층 등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1.8%(2명)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국회의원과 지역 광역의원의 생각 차이는 존재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지역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 모두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경제 문제 해결’을 첫 과제로 선정했지만, 그 비중은 달랐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국회의원·대구시의원·경북도의원 가운데 ‘경제 문제 해결’을 첫 과제로 응답한 비율은 91.7%·68%·67.2%로 조사됐다.지역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린 부분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물론 응답에 참여한 110명의 47.2%(52명)는 “기업 유치와 신성장동력 개발로 미래먹거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대구와 경북의 행정 및 경제 통합으로 미래지향적 지방분권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26.4%(29명)로 나타났으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및 각종 SOC 확보로 지역거점체제 구축”이라는 답변도 26.4%(29명)로 조사됐다.다만, 지역 국회의원의 70.8%가 ‘기업 유치’를 선택한 반면, 대구시의원과 경북도의원의 ‘기업 유치’ 비율은 39%와 41.4%에 그쳤다.또 국회의원은 12.5%만이 ‘TK 행정 통합’을 선택했지만, 대구시의원과 경북도의원은 각각 36%와 27,6%가 ‘TK 행정 통합’을 첫 과제로 꼽았다.그런가 하면, 지역 국회의원과 대구시의원, 경북도의원은 상당수는 ‘대기업 부재’가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들은 ‘2020년 현재 대구와 경북 발전의 저해가 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0%의 응답자가 “유력 대기업 및 중소기업 등의 부재로 나타나는 경제 문제”라고 꼽았다. 이어 “보수 정당 중심의 1당 체제”라고 답한 응답자는 13.6%(15명)였으며, “구심점 없는 정치력”과 “자치단체의 행정력 부족”이라고 답한 비율도 각각 8.2%(9명)씩으로 조사됐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그래픽 정현옥

2020-06-22

국회의원 75% “대구·경북 행정 통합에 찬성”… 반대 8.3%

경북매일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1대 국회의원의 70% 이상은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번 설문조사에는 대구와 경북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 25명 가운데 24명이 참여했다. 참여율은 96%로 지역 국회의원들이 경북매일의 설문조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 대구와 경북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의 정당은 미래통합당이 24명, 무소속이 1명이다.설문에 참여한 지역 국회의원들은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 통합’을 묻는 질문에 75%가 “찬성한다(18명)”고 응답했다. 이 중에서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은 20.8%(5명)이었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54.2%(13명)에 달했다.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8.3%(2명)에 불과했다.기타 의견도 16.7%(4명)나 됐다. 기타 의견으로는 “통합이라는 거시적인 정책보다 도청 신도시의 행정 통합이 우선되어 경북 북부지역 발전과 경북 시·군간 행정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행정 통합 전에 도민과 시민들의 여론 통합이 먼저”라는 응답과 “지역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국회의원들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한 로드맵으로 ‘경제’를 꼽았다.설문에 참여한 지역 국회의원들은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대구와 경북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려 91.7%(22명)가 “기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 문제 해결(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포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 보건의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8.3%(2명)에 불과했다.이는 4·15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경제가 어렵다”는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역 국회의원들은 “선거 과정에서 대다수의 지역민들이 ‘경제가 어렵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고 말했다.마찬가지로 지역 국회의원들은 ‘10년, 20년 후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업 유치’를 선택했다. 무려 70.8%(17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이어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 12.5%(3명), SOC 확충이 16.7%(4명)를 기록했다.□ 경북도의원, ‘대구·경북 행정 통합은 신중해야’… 경제문제는 심각23일 현재, 경상북도의회는 모두 60명의 광역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미래통합당 소속 도의원이 48명으로 가장 많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의원은 9명이다. 여기에 민생당 소속 도의원 1명과 무소속 2명이 도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조사에는 60명의 경북도의원 가운데 모두 58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설문조사 참여율은 96.7%였다.경북도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찬성’과 ‘반대’가 비등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설문에 참여한 경북도의원은 ‘대구·경북 행정 통합 찬반’을 묻는 질문에 56.9%(33명)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적극 찬성한다”는 응답이 19%(11명)였으며 ‘찬성한다’는 응답이 37.9%(22명)로 나타났다. 반면, ‘반대’ 의견도 36.2%(21명)로 조사됐다. “적극 반대한다”는 의견은 3.4%(2명)로 적었으나 “반대한다”는 응답은 32.8%(19명)로 “찬성한다”는 의견과 큰 차이가 없었다.이외에도 기타(6.9%, 4명) 의견으로는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경북도의원의 대다수인 67.2%(39명)는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대구와 경북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기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경북도의원들은 구미시발 기업 탈출과 포스코의 위축 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어 경북도의원들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에 29.3%(17명)가 답했으며, “저소득층, 취약계층 등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3.5%(2명)가 답했다.그렇다면 ‘2020년 현재 대구와 경북 발전의 저해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경북도의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과반수가 넘는 62.1%(36명)의 경북도의원은 “유력 대기업 및 중소기업 등의 부재로 나타나는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 지속되어온 경제 위기를 반영한 의견으로 분석된다.또 경북도의원의 19%(11명)는 “보수 정당 중심의 1당 체제가 문제”라고 답했으며, 10%(6명)의 경북도의원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구심점 없는 정치력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8.6%(5명)의 경북도의원은 “대구와 경북도는 물론 기초자치단체의 행정력 부족으로 인한 공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그런가 하면, 경북도의원들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한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기업 유치와 신성장동력 개발로 미래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41.4%(24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및 각종 SOC를 확보해야 한다”는 응답이 31%(18명), “대구와 경북의 행정 및 경제 통합으로 미래지향적 지방분권체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27.6%(16명)로 조사됐다.□ 대구시의원,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우선”대구시의원들은 향후 지역의 가장 큰 문제를 ‘먹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번 조사에는 30명의 대구시의원 중에서 28명이 참여했다. 현재 대구시의회는 미래통합당 소속 23명, 더불어민주당 소속 5명, 무소속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93.3%의 대구시의원들이 경북매일신문의 3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 참여한 셈이다.우선 대구시의원의 68%(19명)는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대구와 경북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포함하는 기업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대구의 경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구는 △소상공인 소득 부재 △일자리 부족 등으로 17개 시·도 가운데 지역내총생산(GRDP)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로 취임 6주년을 맞은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일자리 창출과 기업유치’를 첫 번째 시정과제로 꼽고 있는 상황이다.이어 32%(9명)의 대구시의원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 보건의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대구시는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기록했다. 물론 신천지 교회의 집단감염이 지역 내 광범위한 확산으로 이어졌지만, “코로나19 이전, 대규모 감염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구시의원들의 설명이다.특이한 것은 “저소득층, 취약계층 등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성장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점과 대구시의회에 5명의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있다는 점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수치다.그런가 하면, ‘10년, 20년 후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구시의원의 39%(10명)는 “기업 유치와 신성장동력 개발로 미래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대구와 경북의 행정 및 경제 통합으로 미래지향적 지방분권 체제 구축”이 36%(10명)였으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및 각종 SOC 확보로 지역거점체계 구축”이 25%(7명)으로 나타났다.결과적으로 대구시의원의 상당수는 기업유치와 미래먹거리 창출 등 대구시민들의 ‘주머니 사정’에 민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한 대구시의원은 “지역구에 가면 유권자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결국, 선출직인 대구시의원의 가장 큰 관심은 경제 부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렇다면 대구시의원들은 ‘2020년 현재 대구와 경북 발전의 저해가 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역시 대구시의원의 72%(20명)는 “유력 대기업 및 중소기업 등의 부재로 나타나는 경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14%(4명)의 대구시의원은 “보수 정당 중심의 1당 체제가 문제”라고 응답했다. 또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구심점 없는 정치력”과 “대구시, 경북도는 물론 기초자치단체의 행정력 부족으로 인한 공백”이라는 이야기도 각각 7%(2명)씩으로 나타났다.마지막으로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구시의원 20명은 적극 찬성(21%), 찬성(50%)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반대와 적극 반대 의견도 각각 14%(4명), 11%(3명)로 나타나 국회의원 및 경북도의원과는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의견으로는 “경제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박순원·박형남기자 god02@kbmaeil.com

2020-06-22

사회를 비추는 등대 역할 기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경북지역 언론을 선도하는 경북매일신문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그동안 경북매일신문은 ‘맑고 정직한 신문’이라는 모토를 꾸준히 실천하며, 지역 발전에 이바지해왔습니다. 경북매일신문이 경북 지역의 정론지로 자리매김하도록 헌신적으로 애써오신 경북매일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언론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대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입니다. 언론이 이러한 역할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특히 지역 언론은 지역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역민들의 삶을 챙기고 깨끗한 지방정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이끌어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최근 연일 강도를 높여가는 북한의 도발에 안보상황이 불안은 커지고 경제위기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은 심각한 시국입니다. 잘못된 국정과 권력의 일방적 독주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지역 언론인이 더 큰 자부심으로 힘내서 일하실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경북매일신문 더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다시 한 번 뜻 깊은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임직원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06-22

지역언론 선도하는 신문 ‘우뚝’

박병석 국회의장대구·경북 시민의 곁에서 아름다운 지역사회를 만들어 온 경북매일신문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경북매일신문은 1990년 창간 이후 언론 본연의 임무와 시대적 소명을 다하며 지역민과 함께해 왔습니다. 급변하는 언론 변화 속에서도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 일간지로 성장했습니다. 지방 문화 정착에도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이런 성장의 결과는 ‘맑고 정직한 신문’이라는 경북매일신문의 사시와 부합합니다. 이를 실천해오고자 노력한 구성원들의 성과입니다.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지난 30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 다양한 소식으로 살아 숨 쉬는 신문을 만들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더불어 우리 사회를 비추는 언론의 모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언론으로서 우뚝 서십시오.저도 새롭게 문을 연 제21대 국회의장으로서 ‘일하는 국회’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창간 30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진실하고 공정한 소식들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경북매일신문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6-22

공정한 보도 통한 지역대표 정론지

이철우 경북도지사‘경북매일신문’창간 30주년을 300만 도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지난 30년간 경북매일신문은 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내며, 지역발전과 언론문화 창달을 선도해 왔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민의 알권리 충족과 공정한 보도를 통해 지역 대표 정론지로 만들어 오신 최윤채 사장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와 성원의 박수를 보냅니다.지방신문은 지역 주민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으며,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이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본적 토대입니다. 지방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지역 언론이 지닌 가치는 더욱 남다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북매일신문에 거는 시대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할 수 있습니다.경상북도는 지금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힘차게 도움닫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발판이 바로 통합신공항, 대구·경북 행정통합입니다. 지방소멸의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는 지금,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지역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통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 역사상 가장 큰 사업입니다. 지역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통합신공항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또 하나의 큰 과제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입니다. 지금 세계는 국가 간의 경쟁에서 도시 간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 뿌리인 대구와 경북이 힘을 합쳐 하나의 나라처럼 운영되어야 세계와 경쟁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더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데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직 논의의 수준이고 갈 길이 멀지만, 이 길이 대구·경북의 미래라 믿고 시·도민의 동의를 구해갈 것입니다.저는 이러한 주요 시책과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은 물론 지역의 여러 문제와 현안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론을 형성하고 민의를 모으는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경북매일신문이 선도적인 역할을 다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20-06-22

새 가치 창조 올곧은 신문 자리매김

권영진 대구시장‘맑고 정직한 신문’의 기치를 내걸고,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와 창의적이고 개척적인 논편으로 언론 본연의 임무와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경북매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250만 대구시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경북매일신문은 1990년 창간 이래, 단순한 정보를 선별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신문, 혜안과 통찰력으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올곧은 신문으로 자리매김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주신 최윤채 사장님과 관계 임·직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대구시는 지난 6년 간 시민과 함께 변화와 혁신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도시공간을 혁신하고, 세계로 열린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스마트시티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등 대구의 근본 틀을 새롭게 짜고 착실하게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민선 7기의 남은 기간은 그 바탕 위에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자 합니다. 혁신의 성과 위에 시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기회의 도시, 따뜻한 도시, 쾌적한 도시, 즐거운 도시, 참여의 도시’라는 시정목표 아래 생활밀착형 정책을 적극 펼쳐 나갈 계획입니다.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선언(세계적 대유행) 등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지자체 간, 시민사회에서의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공동체를 지켜내겠다는 위대한 시민정신으로 엄청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2차 대유행이 오게 될 경우를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코로나19 극복 이후 포스트 코로나 국면을 내다보며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여 펼쳐나갈 계획입니다.다시 한 번 경북매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지역민들께 사랑받고, 꿈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언론사로 성장하시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행복공동체 대구 건설을 위한 노력에 경북매일신문이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역의 리더가 되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2020-06-22

지역문화 창달·경제발전 노력 감사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맑고 정직한 신문을 목표로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는 진실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북매일신문’ 창간 30주년을 300만 도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경북매일신문이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30세의 청장년으로 우뚝선데 대해서도 재삼 축하 드립니다.또한, 정론직필의 소임을 다하여 지역문화 창달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신 최윤채 대표님을 비롯한 경북매일신문 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대구·경북 지역 현장 곳곳을 발로 뛰며 신속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역민들이 건전한 비판 정신과 혜안을 가지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올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습니다.이런 때일수록 지역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현재까지 역할해 주신 것처럼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 지역을 대변하는 언론사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또한, 진정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공정한 보도와 건전한 비판에 기초해 지역사회 발전을 선도하여 주시길 당부드립니다.현재의 상황은 지역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형편입니다. 언론에서 도민을 격려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기사를 많이 발굴해 지역민이 다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바랍니다.더불어, 지역의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비판할 것은 따끔히 충고하는 직필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해 사회에서 언론본연의 역할인 ‘빛과 소금’이 돼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아울러 300만 경북도민을 위한 경상북도의회 의정활동이 도민들의 관심과 성원 속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다시 한 번 경북매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독자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사회통합과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언론매체로 더욱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2020-06-22

올바른 여론·바른정보 전달에 솔선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경북매일신문 창간 30주년을 우리 대구·경북 지역민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그동안 경북매일신문은 지역민과 적극 소통하고 변화와 혁신을 위한 올바른 여론 형성과 바른 정보 전달에 솔선해 왔습니다.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다해 오신 최윤채 대표님과 임직원 여러분들의 헌신과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코로나19가 극심하던 시기에는 대구시의회의 대정부 호소문 발표, 악의적인 지역명 사용 자제 촉구 등 의정 활동을 지지해 주셨고,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환기시키는데 힘써 주셨습니다. 착한 소비자운동의 범시민 운동 추진, 역학조사관 확보 의무화와 처우개선 등 코로나19 확산과 예방에 필요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주심으로써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큰 기여를 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지금 국내외는 물론 지역민들이 이전엔 경험치 못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구·경북이 이 위기에 절망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 삼아 더 큰 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슬기를 모아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지역민에게 희망을 불어 넣고, 신뢰와 사랑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성장해 가는 경북매일신문의 역할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됩니다.제8대 대구광역시의회는 전반기 2년 동안 ‘시민 속으로 한 걸음, 소통하는 민생의회’라는 슬로건 아래 통합 신공항 건설, 맑은 물 공급 추진 등 지역의 중대한 현안 해결을 위한 대구시의회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6월 정례회에는 2019년도 결산심의와 대구시 조직개편, 후반기 원구성 등 중요한 일정이 예정돼 있습니다. 지역민들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하여 7월 임시회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추경안 편성 등 하루속히 지역경기가 되살아 날 수 있도록 의회가 가진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지원해 나가겠습니다.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와 힘을 합쳐 전반기에 이루지 못한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과 지방분권 강화에도 노력하겠습니다. 창간 30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지방자치와 지방분권화 노력에도 경북매일신문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20-06-22

기와집 골목골목 걸으며… 옛 정취와 낭만을 머금다

‘길은 길 위에서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길’은 ‘집’과 더불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가장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길은 또한 변화의 장소다. 수백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내는 길은 없거나 매우 드물다. 시대와 세상의 흐름에 따라 길은 형상을 달리하며 시시각각 변한다. 그게 길의 타고난 운명이다.한때는 호화찬란한 건축물이 가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 막막한 폐허가 되기도 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산새만이 조용히 지저귀던 오솔길이 거대한 도읍(都邑)의 광대한 길로 바뀌기도 했던 게 우리가 지나온 역사였다. 그래서 길을 살핀다는 건 축적된 인류의 문화를 탐구하는 것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요긴한 수단이 되고 있다. 여기 명멸해온 ‘길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 있으니 바로 경주의 ‘황리단길’이다. 경상북도의 청년들은 물론 인근 대구와 부산, 멀리는 서울과 경기도의 젊은이들까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길’로 떠오르고 있는 서라벌의 핫 스폿(Hot spot).한바탕 시원스런 빗줄기가 지나간 후 다시 맑게 갠 하늘이 푸르던 6월의 둘째 주. 경주 관광의 핵심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는 황리단길을 찾아갔다.◆ 2020년 오늘, 경주의 자랑으로 부상한 새로운 ‘길’지금으로부터 10~15세기 전.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고, 궁궐과 석탑, 불상과 금관 등 매혹적 조형물을 만들어냈던 신라. 그 문화재와 유적들은 고스란히 경주의 매력적인 관광 자산이 됐다.하지만 무엇이건 과거에 멈춰있거나, 지난날의 영화에만 의지해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역사의 손때 묻은 각종 국보와 보물이 신라의 옛 자랑이라면 황리단길은 2020년 현재 경주의 자랑이다.이를 감안한 듯 경주시가 운영하는 인터넷 문화관광 홈페이지엔 아래와 같은 말로 황리단길이 지닌 위상이 설명되고 있다.“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길이다.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 사정동 일대의 지역을 일컫는다.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분위기 좋은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점,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들이 생겨났다. 초기에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섰는데 황리단길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골목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 길은 ‘핫’하다 못해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가 됐다. 검색해뒀던 카페를 찾아 가거나, 거닐다 눈에 들어오는 식당 문을 두드려 보거나, 경주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 찾아가 경주를 기념하는 기념품을 찾거나…. 황리단길에서 먹고 마시며, 즐겨 보자.”실제로 찾아본 결과 경주시가 가진 황리단길에 대한 자긍은 과장이 아니었다. 기자가 황리단길을 방문한 건 평일 한낮. 한국의 어느 관광지에도 사람이 드문 시기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 창졸간에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폭풍은 5개월 가까이 한국을 공황 상태로 몰아갔다.지금도 대부분의 여행지와 관광지가 예전처럼 찾아주지 않는 방문객들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그럼에도 그날 황리단길엔 많진 않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손을 맞잡은 20~30대 연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구입하는 것들은 바로 현장에서 경주의 지역경제 재활성화에 그대로 직결될 터였다.황리단길은 타 지역에서 거길 찾는 이들이 편하게 접근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적한 거리를 걸어 겨우 15분이면 황리단길과 만날 수 있는 것.터미널 주변엔 자전거와 스쿠터, 전동 킥보드를 대여해주는 상점들도 있다. 몇천원에서 1~2만원 정도면 황리단길을 포함한 ‘서라벌의 보물’로 불리는 유적지를 연인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황리단길의 연인들 “한적하고 세련된 카페가 좋아요”황리단길로 들어가는 내남사거리에서 대학원생과 대학생, 한 쌍의 연인이 타고 가던 분홍색 스쿠터를 세우고 물었다.“두 분은 경주가 처음인가요? 여기 어때요?”대구에서 왔다는 커플은 이미 경주를 여러 차례 찾았다고 했다. ‘조용하고 독특한 데이트 장소’로 대릉원과 교촌마을을 치켜세운 남학생은 “지난해부턴 세련된 카페와 특색 있는 맛집이 하나씩 늘어가는 황리단길에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이라며 빙긋 웃었다.그들의 말처럼 이탈리아 파스타에서 베트남식 스프링 롤, 푸짐한 한식에서 깔끔한 일본 요리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황리단길의 메뉴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황리단길 곳곳엔 낡은 가옥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현장이 적지 않았다. 그곳들의 대부분은 분명 색다른 레스토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로 변신을 시도하지 않을까?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탓인지 30분쯤 걸어 다니다 보니 갈증이 찾아왔다. 시원하고 쾌적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천년왕국 경주가 아니라면 쉽게 지을 수 없었을 ‘능(陵·임금이나 왕비의 무덤)’이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신라 여왕의 유택처럼 서늘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얼음 섞인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누리는 재충전의 시간이 더없이 좋았다. 곧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식당 역시 저렴한 가격에 갈비탕과 도가니탕, 해장국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의 맛도 맛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까지 쓰여 있는 친절한 메뉴판이 더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상당수의 황리단길 식당이 이런 메뉴판을 갖췄다고 한다. 이는 ‘글로벌 관광지 경주’를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게 분명해 보였다.몇 해 전이다. 비엔나(Vienna), 오흐리드(Ohrid), 티라나(Tirana) 등 동유럽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이곳들 역시 경주처럼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곳. 경험에 따르면 거기에도 고풍스런 성당과 원형 경기장 등 중세의 향기를 간직한 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젊은이들의 즐겨 찾는 ‘새로운 길’이 병존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유사(類似) 황리단길’은 동유럽에도 존재하는 셈이다.독일 속담 가운데 “집에선 좋은 식구와 이웃이 필요하고, 길에서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게 있다. 지금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아니면 걸어서 황리단길을 돌아보는 청춘들은 앞으로 살아날 기나긴 날을 함께 동행할 ‘친구’를 만들고 있는 줄도 모른다. 아쉽게도 찰나처럼 짧았던 청춘의 시간을 통과해버린 중년과 노년들에겐 부러운 풍경이었다.◆ ‘젊은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고분(古墳)들“경주 황리단길은 새롭고 젊은 공간”이라는 것에 이론(異論)을 재기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새롭게 모습을 바꾼 고옥(古屋) 속에 채워지고 있는 21세기형 문화·관광 콘텐츠들.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맛집과 찻집, 신세대 감각에 적절하게 부응하는 사진관과 액세서리 가게, 여기에 옛 가옥을 예쁘게 단장한 독특한 숙소들까지.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요구를 다양한 측면에서 만족시키는 황리단길. 여기에 보너스 같은 아름다움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고분들.황리단길 끝자락에 서면 쌍상총, 서봉총, 금령총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척엔 천마총과 황남대총도 있다. 고분 앞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천 년 전 신라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으면 아쉽다.세상보다 한 걸음 앞서 걸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은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 문제 해결에 노력했을 뿐”이란 말을 남겼다.서라벌의 ‘오래된 보물’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유적과 ‘새로운 보물’로 떠오르고 있는 황리단길. 이 두 가지를 어떤 방식으로 조화롭고 균형 있게 보존·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경주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최고의 여행지 경주’를 만들기 위해 남겨진 문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0-06-18

달성군 어디까지 가봤니?

달성군이 대구시에 편입된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까지도 달성군이 대구에 속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대구시청사 부지 선정 과정을 통해 달성군과 군민이 한마음으로 홍보했고 비록 최종 결정지로 선택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홍보활동 덕분에 이제는 달성군이 ‘대구의 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달성군이 대구의 문화산업 융성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천혜의 자연과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도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입소문을 탄 달성군의 문화자원은 마비정 벽화마을을 비롯한 비슬산, 사문진 역사공원, 송해공원 등으로 매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본지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풍성하게 보유하고 있는 달성군의 관광명소를 대구시민들에게 자세히 알리고 달성군 관광 미래에 대한 준비를 위해 대표적인 관광자원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농촌 정취 가득한 마비정 벽화마을마비정 벽화마을은 옛 농촌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담장에 토속적인 각종 벽화들로 꾸며졌다. 농촌체험관 및 농산물판매장을 설치해 어른들에게는 농촌생활의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관광지 중 한곳이다.이곳은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새로운 농촌체험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2012년 마을조성된 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온오프라인에서 인기관광광지에 선정될 정도로 호응을 이끌고 있다.매년 4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마을은 관광명소 외에도 주민소득 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직첩 생산한 농산물(채소, 콩, 참깨, 마늘, 감자 등)을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해 향토음식인 두부, 국수, 술빵, 파전 등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이에 그치지 않고 농촌체험전시장 건립을 통해 두부 만들기, 떡 만들기, 향낭주머니, 솟대 만들기 등 10여 종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관광객들에게 농촌 삶으로의 회귀를 이끈다.또 도심속 오지마을의 특징상 청정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돌담, 흙담으로 이뤄진 골목길에 추억 어린 벽화를 입혀 마을둘레길, 등산로, 농로, 외각소로 등을 한꺼번에 연결한 아름다운 누리길도 자랑거리다.◇ 한국 최초 피아노 유입지 사문진 역사공원달성군은 과거 영남 물류의 중심지이자 한국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 사문진나루터 일원에 역사공원을 조성했다.이를 통해 가족 단위 이용객 및 관광객에게 휴식공간으로 피아노 광장을 조성하고, 전통 주막촌 3동을 복원했다.또 한국 최초 피아노 유입을 기념하는 피아노기념비와 영화 촬영지 기념비 설치 등으로 사문진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나루터가 지닌 역사성에 걸맞는 옷을 입혔다.2014년에는 낙동강 최초 유람선인 달성호를 취항해 달성보∼강정보에 이르는 약 22㎞구간의 아름다운 낙동강변의 정취에 젖어 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2015년에는 26인승 규모의 최고시속 70㎞ 쾌속정을 운항해 수상체험의 장을 열었다.도심근교의 휴양 관광지로 확고히 인식되면서 주말이면 입장객들의 줄이 장사진을 칠 정도다.대구시에서 2020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중인 3대문화권 개발사업(낙동가람 수변역사 누림길 조성사업)을 통해 가야문화체험관, 다목적공연장, 이벤트관 등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중심도시로서 위상을 제고함은 물론이고 화원동산과 함께 도심근교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축제, 관광이 어우러진 명소를 가꾸어 나갈 계획이다.◇ 대표 관광지로 부상중인 송해공원봄이면 만개하는 벚꽃길로 유명한 옥연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송해공원은 달성군 명예군민인 방송인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이곳은 둘레길 데크, 백년수중다리, 바람개비 쉼터, 전망대, 금동구, 얼음빙벽 등 다양한 볼거리로 주말이면 버스주차장이 만원사례를 기록할 정도다. 또 삼림욕장조성, 전국노래자랑 무대 조성, 송해 조형물 설치 등이 마련된 달성군의 대표 관광지로 부상중이다.많은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은 공원과 함께 조성된 ‘옥연지 송해공원 둘레길’이다. 이곳은 옥연지 일대의 자연을 가까이 살펴볼 수 있는 생태탐방로 조성돼 힐링의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옥연지를 한 바퀴를 돌다보면 대형 물레방아, 전망 쉼터, 백세정과 백세교 등 많은 볼거리를 보며 운동과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옥연지 위를 태극 모양으로 가로지르는 백세교를 건너면 둘레길이 시작되고 백세교는 이름 그대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다리다. 다리 중앙에는 옥연지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세청이 자리하고 있다.정자 2층으로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면 마치 배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옥연지를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은 총 3.5㎞ 거리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달성군 관광의 완성은 ‘비슬산 케이블카’달성군은 미래 관광 먹거리의 완성이라는 대전제하에 ‘비슬산 케이블카’ 설치로 마무리하려 한다. 현재 비슬산에는 ‘비슬산 참꽃 문화제’와 ‘대견사 중창’등의 다양한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달성군은 자연친화적 관광수요 증가에 맞춰 자연경관을 보다 수월하게 조망 및 체험할 수 있는 케이블카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새로운 수송수단 확충 및 관광인프라를 구축해 비슬산권 관광문화를 융·복합하기 위함으로 새로운 경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를 위해 지난달 비슬산 참꽃 케이블카 설치사업 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가졌다.내년 5월부터 1년간 총사업비 310억원을 들여 비슬산자연휴양림 주차장∼대견봉 구간(1천831m)에 이번 조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케이블카가 완공되면 관광객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자연훼손을 막고,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또다른 비슬산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여기에 비슬산이 품고 있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구성돼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암괴류와 참꽃군락지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눈으로 만끽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눈의 호사를 제공한다.김문오 달성군수는 달성군이 전통과 현대를 바탕으로 미래를 여는 도시이라고 자부한다.달성군은 1천만 관광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을 비롯해 천년고찰 ‘대견사’ 등 우수한 관광문화자원들을 보존, 개발 중에 있다.김 군수는 “현재 달성군은 이런 전통문화 유산의 관광자원화 일환으로 도동서원 일원을 ‘낙동가람수변역사누림길(도동지구)’로 조성 중에 있다”며 “대견사가 있는 대구시 1호 관광지인 비슬산에도 비슬관광지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은 호텔 아젤리아, 치유의 숲, 숲속캠핑장, 출렁다리 등 지역 내 관광지와 연계한 ‘체류형 관광사업’의 형태로 꾸며지고 있다.김 군수는 “이런 전통을 살린 문화유산과 더불어 송해공원 및 사문진 나루터, 화원 동산, 마비정 벽화마을 등 달성의 특색을 한껏 살린 현대적인 관광자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달성 관광의 미래를 꽃피울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사문진주막촌, 생태탐방로 등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화원유원지 일대는 지난 2019년 5월 대구시 2호 관광지로 지정돼 관광지 조성사업이 1, 2차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또 “2018년 ‘올해의 대한민국 명소’로 지정된 송해공원에는 옥연지 생태공원 조성사업, 금굴 조성, 야간 경관시설 조성, 조명분수 설치 등으로 군민이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힐링 관광을 제공함과 동시에 송해선생 기념관 조성으로 다양한 볼거리까지 제공할 계획”이라며 “이제 민선7기 반환점을 지나는 우리 달성은 지역의 관광브랜드 가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김문오 군수는 “달성 관광의 세계화를 한 단계 더 올려줄 ‘비슬산 참꽃 케이블카’설치사업이 지난달 계획수립 4년 만에 닻을 올렸다”면서 “케이블카 설치사업이 2022년 6월 준공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대구시 지정 1호 관광지인 비슬산이 품은 멋진 자연을 다 함께 만끽할 수 있을 것이며, 달성을 1천만 관광객의 시대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0-06-18

“심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글을 쓰고, 길이 주어지면 그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한문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면 길게 기른 수염에 하얀색 모시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노인이 떠오른다. 더불어 ‘서당’과 ‘훈장’이란 단어가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다.그런데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고려대 한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재욱(49) 강사는 글에서 보이는 감각과 말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재기발랄한 20대 청년 같다.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심지어 모던하다. 그에겐 대중의 선입견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바로 그 자유로운 에너지와 모던한 힘으로 김재욱 씨는 현재까지 적지 않은 책을 썼고, 페이스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인터넷 세상을 종횡무진 중이다. 물론 본업이라 할 강의에도 소홀하지 않는다.몇 해 전엔 중국 고전 ‘삼국지’ 속 등장인물과 21세기 한국의 정치인·언론인·작가 등을 매치해 분석한 글을 페이스북에 연재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는 ‘삼국지 인물전’ 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거침없는 태도와 명쾌한 논리, 여기에 위트가 담긴 김재욱 씨의 글과 말은 적지 않은 독자와 네티즌을 매료시킨다.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겸양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낮출 줄 안다. 인터뷰 내내 이것이 ‘통념을 깨는 한문학자’ 김재욱의 매력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삶과 일, 기억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고향과 현재 하는 일은.△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서울로 이사했다. 부모님 고향은 봉화다.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강사고, 강의가 없을 땐 글을 쓰고, 인문학 강연을 다니고 있다.-어릴 때부터 한문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네 살 때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운 기억이 있다. 아버지도 ‘명심보감’을 가르쳤다. 그러나 한문에 별 관심이 없었고, 한문학과 진학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대입 시험 점수를 맞추다보니 한문학과를 선택하게 됐다.(웃음)-유년과 청년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는지.△중고교 시절은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성적이 바닥이었고,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다만 글을 잘 쓰고 싶어 문예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대학에선 노래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생자치기구와 학생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좀 바꿔보고 싶었다. 그런데 성격은 잘 안 바뀌더라.-당신이 생각하는 한문과 고전의 매력은 뭔지.△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한 건 스물다섯 살 때다. 한문학과를 나왔으니 최소한 ‘논어’ ‘맹자’는 알아야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개설한 ‘논어’와 ‘맹자’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그게 재미가 있었다. 그때 불이 붙어 이쪽으로 진로를 잡게 됐다. ‘한문’을 고리타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측면에선 현대의 글과 비교해도 센스 면에서 더 나은 글도 많다. 한문 고전 안에서 삶의 지혜나 교훈을 찾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글이 넘쳐난다.-‘삼국지’ 등장인물과 현대 정치인을 비교·분석하는 글로 SNS에서 주목받았는데.△2013년 말 논문 두 편의 마감 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페이스북에 삼국지 인물과 현대 인물을 매칭해 짧은 인물평을 썼다. 그런데 다음날 깨보니 페이스북이 난리가 났다. 친구 신청이 쇄도하고, 계속 연재해 달라는 댓글이 올라오고…. 그런 이유로 논문을 서둘러 마무리 한 후 ‘삼국지인물전’의 초고를 연재하기 시작했다.-페이스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대중 소통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사람들이 내 글이나 방송을 좋게 봐준 것이다. 페이스북, 팟캐스트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만날 수 있다는 거라고 본다. 이는 이전 시대의 매체와 구별이 되는 것이고,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기 맘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면서 한계가 아닐까? 내 경우는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하지만, 모자란 소통은 오프라인을 통해 메우고 있다.-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어떤 건가.△올해 출간 예정인 것까지 합하면 모두 10권이다. 학술서, 인문교양서, 소설 등인데, 2015년 나온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가 애착이 간다. 내 전공이 ‘한국 한시’다. 독자에게 한시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고, 한시를 통해 인생, 사회,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 영역에 속하는 거의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선 사람의 삶과 세상의 일은 단순히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한자와 한문 공부 노하우를 알려준다면.△먼저 ‘한자’와 ‘한문’을 구별해야 할 것 같다. 한자는 말 그대로 ‘낱글자’고, 한국어의 단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을 뜻한다. 공부의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한자는 많이 보고 쓰고 입으로 말하면서 외우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조금씩 공부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좋다. 마음먹고 잘 하고 싶다면 하루에 10분이라도 투자해서 읽고 쓰면 의외로 얻는 게 많을 것이다. ‘한문’도 비슷한데, 다만 익히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공부가 그렇겠지만 속성으로 익히기는 어렵다.-유년을 보낸 경북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은.△영주남부초등학교 운동장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파란 하늘, 밝은 햇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속에 친구들과 걸어가는 내 뒷모습이 있다. 정말 밝기 그지없는데 마음 한 구석엔 슬픈 마음이 일어나고, 조금씩 눈물도 나고 그렇다. 어릴 때 서울로 이사를 왔고, 이후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조금은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 것 같다. 영주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영동선 철길에 핀 코스모스도 떠오른다. 고향에 가도 늘 고향이 그립다.-학생들에겐 어떤 스승이 되고 싶은가.△‘스승’은 지식 뿐 아니라 지혜를 전달해 학생들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난 스승이 될 자질은 부족하다. 학생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내가 맡고 있는 과목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강사’가 되려고 한다. 강의 준비 잘 하고, 강의실에서 먼저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웃음)-학자로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꿈은.△‘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만큼 살기는 어렵다고 본다면 적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졌다. 학자로서든 인간으로서든 개인적인 미래를 생각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꿈이나 목표를 두고 살지는 않았다. 그때그때 길이 주어지면 그 길을 따라서 살아왔다. 물론 그 길을 갈지 말지 선택은 내가 했지만, 인생을 계획적으로 살진 못했다.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꿈은 없다. 꿈이 있다고 해서 그 삶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심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글을 쓰고 싶다. 쓸 말이나 쓰는 데 필요한 지식이 바닥나면 그만둘 각오도 돼 있다. 무언가를 억지로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게 꿈이라면 꿈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0-06-17

노르웨이의 깨끗한 공기… 긴 여행의 선명한 기억으로 한 컷

◇ 페리 예약에 실패하다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말뫼로 넘어가는 페리를 예약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페리 예약 사이트에서 카드 결제를 하려니 국내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한다. 로밍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인증을 받을 수가 없다. 항구까지 가서 해결하는 수밖에.북유럽에서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려면 두어 번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예약할 수가 없으니 한참 기다리거나 아예 타지 못할 상황도 염두에 둬야한다.아주 작은 문제가 가끔 이렇게 다음 여정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함부르크에서 2박 3일, 이제 나머지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만약 페리를 이용할 수 없다면 스톡홀름에서 오울루를 거쳐 헬싱키로 가야할 수도 있다.그렇게 육로로 돌아간다면 2000킬로미터, 최소 4일은 더 잡아야 한다. 함부르크 숙소는 겉은 너저분한데 안은 깔끔 그 자체다. 주차도 무료로 할 수 있고 부엌도 있고 큰 마트도 바로 옆 건물이라 편리하다. 거기다 4인실 방을 혼자 쓴다. 암스테르담과 비교하면 여긴 5성급 호텔이었다.오전에 빨래하고 계란 삶고(간식 겸 비상식량) 바느질하고… 오후 늦게 시내 구경이나 할까 나갔다가 휴대폰을 챙겨가지 않아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숙소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은 줄도 모르고 잃어버렸나 망연자실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다시 나가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삶은 계란 까먹고 그냥 가만히 눈감고 있었다. 눈이 쉬이 시린 증상은 오래 되었는데 햇빛을 보고 달리니 더욱 심해졌다. 선글라스를 껴도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쉴 때 눈을 감고 있는 게 최선이다. 독일의 생필품 물가가 싸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어제 오늘 숙소 옆 알디 마트에서 우유, 계란, 샴푸, 식빵 등을 샀는데 확실히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듯하다. 우유 1리터 0.73유로, 샴푸 0.65유로, 계란 6개 1.25유로, 식빵 0.95유로. 우리보다 훨씬 소득 수준이 높은데도 식료품이나 생필품 물가가 저렴한 이유가 뭘까. 정부가 생필품에 대해서 보조를 하거나 가격 상한선을 정해둔 걸까. 알디 마트가 가격 경쟁력으로 유명하다지만 이 정도면 놀랍다.잠시 동네를 둘러본 것이 다지만 밖은 꾸미지 않으나 안은 꽉 차 있는 느낌이랄까.지금 묵고 있는 숙소도 그렇고. 내실이 튼튼하기 때문에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었겠지. 어쨌거나 장을 보면서 독일에선 적게 벌고 가난해도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비가 내리다말다 하더니 날이 어두워지니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출발하는 내일 아침에는 그쳐야 할 텐데.◇ 드디어 북유럽으로… 스웨덴 말뫼에 도착10시쯤 비가 그쳤지만 함부르크를 벗어나자 비구름과 함께 달렸다. 셀란 섬에 들어서서야 겨우 해가 나기 시작했다. 푸트가르덴에서 페리 타는 걸 포기하고 셀란 섬을 거쳐 말뫼로 왔다.페리를 탔으면 200킬로미터 남짓 거리도 단축시키고 비용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예약하지 않고 가기엔 불안해 둘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셀란 섬을 거쳐 말뫼로 가려면 바다 위 다리를 세 곳이나 통과(톨게이트가 있는 다리는 두 곳이었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우리 돈으로 6만원(130+233 덴마크 크로네)이 넘는다. 덴마크를 지나가는 비용치고는 꽤나 비싼 셈. 함부르크에서 말뫼까진 약 510킬로미터.페리를 이용해도 오토바이 선적비가 49유로니 이러나 저러나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말뫼에선 하루만 묵고 바로 오슬로로.뒷바퀴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오슬로에 가서 점검해야 할 듯. 아무리 살펴봐도 걸릴만한 것이 없는데 툭툭거리는 소리가 난다. 체인 유격은 조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휠베어링 문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뒷바퀴 쪽에서 계속 소리가 나서 말뫼를 벗어나자마자 휴게소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혹시 풀린 나사가 없나 일일이 조이고 체인 장력도 다시 조절했다. 매뉴얼에 나오는 값으로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으니 눈대중 손대중으로 조절하는데 하다 보니 이것도 감이 잡힌다. 소음의 원인은 머플러 연결 나사였던 모양이다. 심하게 풀린 곳은 거기 밖에 없었고 작업을 하고난 이후에 소음은 사라졌다.혹시나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난감했을 텐데 다행. 소음이 나면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소음이 나면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될 가능성 높다.◇ 오슬로에서 P선생님을 만나다말뫼에서 오슬로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바다, 강, 호수, 들, 숲이 탁 트인 도로 양 옆으로 가는 내내 이어졌다.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니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캠핑카는 물론이고 트레일러나 지붕 위에 자전거, 카약, 캠핑 장비를 이고지고 가는 차들이 많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까지 갖추었으니 이곳 사람들이 솔직히 부럽다.그중 가장 부러운 것은 공기였다. 들숨에 폐가 깨끗한 공기로 부풀어 오를 때 그것만으로도 온몸이 상쾌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도 이 기분은 잊지 못할 듯하다.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은 더더욱 그렇겠지. 깨끗한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니….오슬로에서 P선생님을 뵈었다. 말뫼에서 하루만 묵고 급하게 오슬로에 온 이유도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다. 선생님은 나와 같은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쿠터를 타고 출발했다.함께 출발했던 6명중 세 분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다. 우리보다 한 주 앞서 출발했던 팀들도 모두 한국으로 복귀했다. 선생님의 스쿠터도 문제가 생겨 결국 이곳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려보낸 상태.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계속하실 생각이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님의 마지막 목적지는 아이슬란드. 처음 계획은 스쿠터를 가지고 배로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이었다.이렇게 다시 오긴 힘들 테니 렌터카를 빌려서라도 돌아보고 가시겠다고. 오슬로까지 온 이유는 선생님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오슬로에 있는 동안 렌트카 빌리는 걸 도와드리고 잠시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긴 여행을 떠나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런저런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오토바이 여행은 여러 장점도 있지만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습하기 힘들고 몸도 마음도 허물어지기 쉬운 듯.생각지 못했던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 집으로 돌아가신 분들이나 P선생님, 나까지도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었고 나는 운 좋게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선생님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두 달 넘게 달려왔는데 선명하게 기억 남는 건 몇 장면뿐이다.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라 해도 그늘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재 묵고 있는 앤커 아파트는 오슬로에서 숙박비가 가장 저렴한 곳이고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거대한 합숙소 같은 곳인데 나 같은 여행자보다 오슬로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더 많은 듯하다.어느 국가나 사회든 음지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곳을 이주 노동자나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채운다. 내가 묵는 방엔 13개의 2층 침대가 있고 대부분 새벽이나 밤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묵는다.한 층에 이런 방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커다란 빌딩 전체가 이런 방들이다.(물론 비싼 방도 있다.)거의 기업형 숙박업소. 일자리라도 있다면 이런 곳에서 묵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잠잘 곳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묵고 있는 걸까.

2020-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