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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공노 탈퇴 도미노, 정치 중립화하라는 것

안동시 공무원 노동조합이 민노총과 산하 전국공무원 노동조합을 탈퇴한데 이어 소방공무원의 전공노 탈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9일 안동시 노조는 임시총회를 열고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 노조 탈퇴를 묻는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85%의 압도적 찬성으로 상급 노동단체 탈퇴를 결정했다. 안동시 노조는 30일 고용노동부에 기업별 노동조합을 신고하는 등 독자적 노동조합 설립에 나섰다. 안동시 노조의 전공노 탈퇴는 창원시와 원주시에 이어 세 번째 민노총 전공노 탈퇴다. 안동시 노조는 “민노총과 전공노가 정권 퇴진 요구 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나는 투쟁을 벌여 탈퇴한다”고 밝혔다.민주노총 전공노 소방본부 경북소방지부도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조합원 500여 명이 상급단체 탈퇴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탈퇴 소식에 전공노 소방본부가 회원관리 프로그램인 엠파스 비밀번호를 변경해 추가 탈퇴를 막고 탈퇴를 원하는 조합원은 별도의 탈퇴원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차 탈퇴 후 29일까지 조합원 350명이 추가로 탈퇴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소방지부는 이른 시일 내 전공노 소방본부에 총 850명의 탈퇴원을 제출할 예정이라 했다. 탈퇴의사를 밝힌 경북소방지부 조합원도 탈퇴 이유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노총의 노동운동이 정치투쟁 일변도로 흐르는 것에 대한 산하단체의 반발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특히 2030세대 공무원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경북도내 전공노 탈퇴는 다른지역으로 확산될 조짐도 있다. 향후 민노총 전공노 탈퇴 도미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안동시노조 관계자는 “이번 결과는 일선 조합원이 생각하는 민노총과 전공노의 현실”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이제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달라지고 있는 노동운동의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으로는 시대 변화를 꺾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3-08-31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이 침수되는 사고가 났다. 원전건물 4채와 격납용기가 손상되어 근해일대가 방사능 오염이 되었다. 그런 천재지변이 아닌 경우 원전에서는 오염수가 발생하면 ALPS(다핵종제거설비) 등의 처리과정을 거쳐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같은 방사성 물질을 배출 제한치 이내로 걸러낸다. 이때 걸러지지 않은 삼중수소에 대해서도 국제사회가 방류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방사능을 측정하는 단위를 베크렐(㏃)이라 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리터당 1만 베크렐을 방류 상한 기준으로 삼는다.일본 환경성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후 주변 바닷물을 조사한 결과,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류 다음 날인 지난 25일 오전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40㎞ 이내 11개 지점에서 바닷물을 채취해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모든 지점에서 검출 하한치인 리터당 7∼8 베크렐을 밑돈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모든 지점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검출할 수 있는 하한치를 밑돌아 인간이나 환경에 영향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것이 일본 환경성의 발표다. 그와 별도로 진행된 도쿄전력과 일본 수산청, IAEA의 조사에서도 모두 삼중수소가 기준치 이하를 나타내고 있다.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에 정치적 사활을 걸었다. 온갖 험악한 괴담으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데 진력했다. 12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오염수가 무방비로 바다에 유입되었을 때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처리와 희석과정을 거치고 IAEA가 철저히 검증까지 한다면 전혀 우려할 일이 아닌 줄을 저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그런 과학적 사실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광우병이나 사드전자파 괴담 때도 그랬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괴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야당과 좌파들을 보노라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란 말이 떠오른다. 겉으로는 가장 인간다운 척하고 있으나 속내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는 것이 수산업자들의 생계와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처럼 포장을 하지만 내막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오히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수산업자들이 폭망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비등해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야 저들이 저지른 비리가 묻히고, 당대표의 태산 같은 사법리스크도 희석되고 정부여당이 곤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여세를 휘몰아 내년 총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인 것이다.그들은 결코 방사능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준치를 넘어서 나라가 혼란에 빠져야 윤석열 정권을 뒤엎을 빌미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광우병파동 때와는 달리 민심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거듭되는 괴담에 대한 학습효과로, 민생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에 더 이상 속지 않을 만큼 국민들이 현명해진 것이다.

2023-08-31

9월이 왔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9월이 왔다. 장마는 지나갔지만 남아있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오고 경북 북부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맑은 9월의 시작은 아니지만, 천천히 달려본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계절을 노래하고 골목길 흙담 너머로 노란 해바라기들이 벙긋벙긋 웃는다. 가을이 온 것이다.8일은 백로(白露), 하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과일이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인다. 황금 들판에는 키다리 허수아비가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고 빨간 고추밭에는 고추잠자리가 짝을 찾아 날아다니고 강둑과 산기슭에 핀 하얀 구절초는 붉은 부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먼바다에서는 10호 태풍 ‘담레이’는 소멸됐지만 9호 ‘사올라’는 또 동생 몇몇을 꼬드겨 올라올 것이라며 가을장마가 예보되기도 한다.지난 30일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이다.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편한 마음으로 농민들의 두레놀이가 열리곤 했는데, 100가지 곡식 씨앗을 늘어놓고 호미도 씻어 걸고 일 잘한 머슴들을 소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머슴날’이며 ‘풋굿’도 즐긴 중원(中元) 날이다. 남아있는 폭염과 가을장마 우려에 농민들의 얼굴은 밝지 않겠지만 그래도 황금빛 벼 물결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불교계에서는 1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날로서, 정성껏 백중기도 드리고 혼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5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백중에는 달과 해와 지구가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서로의 인력이 커서 해수면이 높아지는 ‘백중사리’ 현상이 발생한다지만 동해안 바닷가에는 영향이 적다. 그러나 이 백중사리보다 더 염려된다는 것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에 대한 분노이다. 해양 오염의 런던협약에 따라 삼중수소 농도를 허용치 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겠지만 벌써 해양수산물을 기피하고 거래도 격감하고 있어 정부는 오염수 유입감시와 방사능 검사를 대폭 확대하여 해양계 손상을 막을 계획이다. 그러나 ‘핵 오염수 방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위험한 일은 없다’는 태도로 여야 공방은 국민 마음을 두 동강 내고 있지만 과학적 자료와 전문가 견해도 참고해야 한다. 공기 중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적다는 처리수 농도는 더 오염된 정치문제로 이어질 듯하다.8월의 끝날, 지구에 가장 가까워진 보름달이 크고 밝게 웃으며 9월을 맞이했다. 8월 초 유둣날에 떴었고 또 월말에 떠서 한 달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이라 ‘블루문’이기도 하여 ‘슈퍼 블루문’이 된다. 저녁 7시 반경에 떠올라 3시간 후 최대 크기로 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끝난다. 다음엔 14년 후에야 볼 수 있고 토성도 달 바로 위에 나타나는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경주 첨성대와 여러 천문대에서는 ‘달 보기’ 행사도 열린다.9월에는 결실의 계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걱정거리도 추수하면 좋겠다. 나도 집 뒤 언덕의 대나무 숲도 정리해야겠다. 나팔꽃들이 푸른 가을을 연주하고 잎들은 하늘에 하트를 그리고 있다.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비발디의 ‘사계-가을’을 들으며 손편지를 써서 가족들에게 보내고 싶다.

2023-08-31

7박 9일 출장과 포항의 새로운 가능성

김은주 포항시의원 “지금 포항은 철강 중심도시에서 수소와 이차전지 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항은 지역의 중소 도시지만, 유럽의 많은 과학자께서 포항에 주목해 주십시오”지난 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EKC 2023(유럽 한국 과학컨퍼런스 2023)’ 개회식에서 본 의원이 전했던 이야기는 지난 8월 11일부터 7박 9일 일정의 프랑스·독일 출장에서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철강중심 도시 포항이 새로운 산업으로 재편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지난 50여 년 포항시가 철강산업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산업 구조 패러다임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이차전지 특화 단지 선정, 수소 클러스터 예타 통과 소식은 포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이번 유럽 출장은 모처럼 들려온 반가운 소식과 함께 포항시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를 벤치마킹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무엇보다 이번 출장 기간 중 세 곳의 연구소 방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관계자들의 환대는 국경을 뛰어넘는 따뜻함 그 자체였다. 첫 번째 방문한 독일 율리히 연구센터의 수소경제연구소인 헬름호르츠 클러스터에서는 탄광 지역이었던 율리히 지역이 수소 시범지역으로 변화된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헬름호르츠 클러스터 관계자는 포항시에서 조성중인 수소 클러스터 사업에서 “연구 중심에서 탈피해 기업의 의견을 많이 수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뮌헨에 있는 막스 플랑크 재단본부(MPG) 방문과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의 MOU 체결에서는 포항시 전지 보국의 든든한 파트너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기관의 총책임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막스 플랑크 재단 본부의 경우 여성 연구자의 경우 남편과 가족들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은 부러운 대목이었다. 포항시에서도 글로벌 첨단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 성평등한 기업문화를 놓치지 말고 벤치마킹하길 바라본다.이번 출장에서는 포스텍과 포항테크노파크의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만난 포항분들이라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그중 한 분이 전한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포항은 훌륭한 RD(연구개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립대학과 민간 연구소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왔다. 포항시가 글로벌 과학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국가나 경북도의 전폭적인 지원이 중요한 부분이라 충분히 공감되었다.7박 9일이라는 길지 않은 출장에서 꼭 새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바로 헬름호르츠 연구소 관계자가 수소 시범 사업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open information(정보공개)’과 ‘communication(소통)’을 강조한 점이다.포항시도 앞으로 지역민들에게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소통의 과정을 거치기 바란다.끝으로 독일 프라운호퍼 관계자들에게 “포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첨단도시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첨단과학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전한 말이 이뤄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좋은 예감이 틀리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수고에 긍정적 에너지를 한번 힘차게 불어 넣어본다.

2023-08-30

대구·경북 국비 확보 선방했으나 최선 다해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초긴축 편성된 가운데 대구와 경북은 전년보다 모두 증가한 국비 사업비를 확보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대구시 내년도 국비 사업비는 3조8천20억원으로 전년보다 839억원, 경북도 4조4천540억원으로 전년보다 180억원이 각각 증가했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최대 현안사업인 신공항 건설에 필요한 기본설계 실시비용 100억원이 반영됨으로써 신공항 사업이 내년부터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또 경북도민의 숙원인 포항 영일만횡단대교 사업비가 국비에 반영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정부도 내년도 지출 증가율을 올해보다 크게 낮췄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원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이런 긴축기조 가운데 대구시와 경북도가 지역의 주요 현안사업을 중심으로 국비 사업비가 집중 반영되고 올해보다 규모가 늘어난 것은 국비 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공무원과 지역정치권 등의 노력 덕분이다.대구시는 홍준표 시장 체제 출범 후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로봇, ABB(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모빌리티 분야에 대거 국비가 투자되며 경북도는 영일만대교 등 62개 SOC 분야에만 2조5천억원의 국비가 투입된다. 특히 경북도가 새로이 발굴한 13개 신규사업에도 국비가 반영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가적으로 경제가 어렵다. 최근 중국경제가 비상이 걸리면서 그 여파가 어떻게 미칠지도 걱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구와 경북 서민경제도 좋지가 않다. 새롭게 확보되는 국비를 통해 지역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자체는 재정 운용의 묘미를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국회의 승인이 나는 연말까지 추가적인 국비 확보를 위해서도 지속 신경을 써야 한다. 국회와 중앙부처를 설득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국비를 지역에 돌아올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3-08-30

대구치맥페스티벌의 진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30일부터 9월 3일까지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리는 ‘2023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대구를 치맥열풍 속에 몰아넣고 있다. 매년 7월 중순, 무더위 속에 열리던 축제가 두류운동장 공사 때문에 올해는 40일 가량 늦춰졌다.대구치맥페스티벌은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치킨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2013년 처음 열렸다. 햇수로 11년째다. 2020년과 2021년엔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열리고 있다.대구치맥페스티벌은 첫해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무더위로 소문난 대구에서 치맥페스티벌을 연다는 소식에 치킨과 맥주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27만 명이 현장을 찾았다.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어느덧 외국인 등 관람객 100만 명이 넘는 한국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 때마침 일기 시작한 치맥 열풍에 편승, 단박에 전국 축제로 등극했다.대구는 ‘치킨 성지’로 불린다. 교촌치킨, 땅땅치킨, 별별치킨, 종국이두마리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 대구에서 출발한 유명 브랜드가 많다. 치킨 문화의 산실이자 원조다. 여기에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등 치킨 관련 외식산업과 폭염이 축제 성공을 이끌었다. 여름밤 치킨과 함께 마시는 맥주는 궁합이 절묘하게 맞았다. 2015년부터는 대구치맥산업협회를 발족, 전문화를 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현장 생맥주 판매, 축제 캐릭터 개발, 이색 식음공간, 치맥비치존 운영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마련됐다. 올해는 체험·몰입형 킬러 콘텐츠가 곳곳에 배치, 세련미를 더했다. 치맥은 단순한 음주문화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문화의 중심이 됐다. 대구가 선도하는 치킨 문화의 진화는 계속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30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난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처서(處暑). 여름을 지나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예년에는 늘 그랬다. 처서를 지나 백로가 코앞인데 기온은 아직 고공행진이다. 2차 장마 소리도 들린다.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한 달이었다.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가을은 더디 오는가 싶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 부르더니 이제는 기후재난이라 적는다고 한다.폭염과 홍수, 폭우와 가뭄, 폭풍과 한파, 산불과 허리케인 등 기후가 초래하는 이상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올해 7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국립공원에서 섭씨 53도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란은 8월 초에 50도를 넘으면서 임시휴일을 선포하였다. 한겨울이어야 할 남반구 아르헨티나도 여름처럼 더웠다는 게 아닌가.기후가 재난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항공우주국 NASA는 인간이 주도한 지구온난화가 오래 지속된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가 자연현상 같지만, 실은 사람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탄소방출에 따른 대기오염, 에너지 과다사용에 따른 환경훼손 등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기후위기의 여파는 날씨와 기온에 머물지 않는다. 식품가격 상승이 불러오는 인플레이션을 푸드플레이션(Food flation)이라 부르는데 그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기후변화라는 게 아닌가.식량농업기구(FAO) 쌀가격지수는 7월에 전월대비 2.8% 올라 129.7을 기록하여 2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쌀 세계수출량 40%를 맡았던 인도가 최악의 가뭄으로 수출제한 조치에 들어갔다.극심한 고온 기후는 인류에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열질환의 가능성은 잼버리야영장에서 이미 목격하였다. 실제로 더워서 사망에 이르는 숫자가 홍수나 산불에서보다 많다고 한다. 일사병과 말라리아 등 심각한 질환에 인류는 다시 노출될 판이다.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하와이의 마우이섬은 올여름 엄청난 산불로 관광, 여행, 레저산업은 생각도 못했다. 오랜 가뭄과 고온다습한 대기에 지나가던 허리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빚은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그런 규모의 복합적인 기후재난이 다른 장소에서 재발할 확률은 점점 높아져 간다고 한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재난에도 국가와 지방자치제 차원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살피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미 발생한 자연재해를 맞아 대처하는 수준의 경각심으로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기후재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울 터이다.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해야 하고 자연재해를 맞아도 안전한 제반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건축관련 규정과 치수관련 시스템 등을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기후관련 재난에 국민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는 없다. 주변에 산재한 위험에 경계를 늦출 수 없으며 물과 공기 등 자연자원의 이용과 소비에 예민한 시민의식을 발동해야 한다.가을은 오고야 말겠지만, 걱정은 깊어만 간다.

2023-08-30

포항미래 걸린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도입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인근 바다를 매립해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일부 포항지역 시민단체가 찬성 입장을 밝히며 “속도를 내야한다”고 밝혔다. 포항지역 전체 환경·시민단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바다매립을 반대해 왔던 시민단체의 이러한 입장 발표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와 ‘탄소중립실천 포항시민연대’는 그저께(29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의 경제와 환경, 시민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포항시장을 중심으로 지역국회의원과 리더들이 함께 힘을 보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시민단체도 밝혔지만, 고로에서 석탄을 태워 철을 녹이는 현 철강생산 시스템으로는 탄소중립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포스코는 현재 고로 8기(포항제철소 3기, 광양제철소 5기)를 가동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유럽연합(EU)뿐아니라 우리나라 핵심 수출국인 미국도 탄소배출 규제안을 강화하고 있어 포스코가 고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결국은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포스코의 라이벌인 해외 철강기업들은 정부지원을 받아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포스코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 모두는 ‘2050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기업생존을 위한 조치다. 특히 철강산업의 경우 탄소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 도입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포스코가 하루라도 빨리 이 프로젝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용지확보가 관건이다. 포스코는 최근 포항제철소 동쪽 앞바다를 매립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는 절차를 밟고 있지만, 일부 어민들과 환경단체 반발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로서는 고로를 통해 철강을 생산하는 시대는 곧 마감되기 때문에 포항에서 수소환원제철 사업부지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제철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2023-08-30

녹슨 가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나이가 드니까 뭐든 편한 게 좋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까탈스러운 것이 없어지고 유연해졌다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생각하면 매사 좀 귀찮아졌을 수도 있겠다. 사람과의 사이도 그렇다. 무던해졌다. 한창 혈기왕성할 땐 규칙어기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내 기준의 상식에서 조금이라도 거슬린다 싶으면 가차없이 따지던 성깔도 엔간했다. 그 때문에 바른 말이랍시고 해서 고초를 겪은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젠 느긋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만다. 어머 내가 웬일이지? 스스로 느끼며 놀라기도 한다. 물론 절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지금도 있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어쩌랴 싶어할 뿐이다.옷입음새도 그렇다. 키도 작고 균형 없는 몸매에 어울리는 옷이 있으랴만 편한 옷을 좋아하는 내 취향까지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한 TPO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나름 노력해왔다. 목적에 맞게 색상과 모양까지 신경써 입었다. 애쓰고 돈도 들였다.그러나 이젠 더 이상 옷에 대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신세가 되자 내 취향껏 편안함을 추구하고 즐긴다. 집에서는 더하다. 언젠가부터 목덜미에 뭔가 거치적거리는 옷이 불편했다. 되도록 목 주위가 휑하니 드러나는 옷만 찾았다. 꺼내입는 옷들이 맨날 그 옷이 그 옷이다. 티셔츠들이 많아 아무거나 꺼내 입다가도 목이 좀 죈다 싶으면 곧장 다시 벗게 된다. 이 많은 티셔츠를 입지도 않고 버려야 하나. 새로 사지 않아도 입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궁리했다. 목덜미 부분을 가위로 오려내어 넓힐까. 박음질하지 않은 것을 멋으로 만든 옷도 있지 않은가. 정 안되면 감침질을 해서라도 입을 수 없을까 생각했다. 하고많은 시간도 있겠다. 한 번 시도해보자. 즐겨입었던 면티셔츠를 몇 개 꺼냈다. 둥근 목테두리를 전부 오려내어서 손바느질로 감치기엔 좀 힘들려나 싶었다. 만지작거린 끝에 앞섶 부분을 세모 모양으로 깊게 오려내고 그 부분만 감침질하면 수월하겠다는 궁리가 섰다.까짓 하다가 안되면 말 일. 뭐 시도해보자 싶어 반짇고리를 찾았다. 예전에 애들이 어릴 땐 늘 썼고, 또 남편의 흰 셔츠 단추를 달거나 바짓단을 공그르기하면서 자주 사용하던 반짇고리였다. 그러나 최근엔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열어보니 색색가지 실, 아이들 돌이며 백일날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흰 실꾸리 두 개, 올망졸망 여러 가지 단추통도 뚜껑이 열린 채로 있었다.크고작은 바늘이 꽂힌 동그란 바늘꽂이. 그 가운데 유난히 커다랗고 녹슨 가위가 자리잡고 있다. 여러 자질구레한 바느질공구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큰 무쇠가위는 엄마, 돌아가신 엄마의 가위였다. 요즘엔 스테인리스 가위에 손잡이 부분도 플라스틱으로 예쁘고도 사용하기 편한 가위들이 얼마나 흔한가. 그와는 달리 무겁고 불그스레 녹까지 슬어 볼품없는 엄마의 가위. 언제부터 나의 반짇고리에 들어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엄마의 가위. 내 열 살 무렵부터 기울어진 가세 탓에 삯바느질로 가정을 지탱했던 엄마가 무겁게 무겁게 썼을 가위였다. 엄마의 온기가 밴 가위는 녹슬어도 썩 잘 들었다. 나는 이 가위만큼이라도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딸이었을까.

2023-08-30

자연의 합주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동동거리면서 ‘동동팔월’이 지나가고 있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에 태풍까지 들이닥치면서 많은 피해와 상처를 남겼었는데, 가을의 초입에 적잖은 비와 노염이 이어지니 여전히 동동거리는 가슴을 재울 수 없는 듯하다. 거기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여야의 대립과 업계의 불안이 가중되어 갈수록 긴장과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언제까지 답답하고 동동거리는 가슴으로 8월을 보내고 가을 마중을 해야 하는 걸까.복잡한 곡절의 세상사와는 아랑곳없이 이 맘 때가 되면 풀숲이나 수풀에는 가을의 전령사들이 앞다투어 목청을 돋우고 있다. 해뜨기 전부터 이른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한낮의 들판을 지나 저녁답의 들길과 밤중의 산기슭 언저리에까지, 단조롭거나 오묘한 화음으로 소리의 여울처첨 쩌렁쩌렁 흐르고 있다. 필설로 표현하기도 음계를 분간하기조차도 쉽질 않지만, 풀벌레 특유의 투명한 발성으로 자분자분 스며드는 음조는 어쩌면 지난 여름날의 습기를 말려내고 우수를 떨쳐내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처서 무렵 풀숲에는/왁자한 소리잔치//찌르륵 찌륵찌륵 또르르 또륵또륵 철썩 처얼썩 쪼르륵 쪼륵쪼륵 돌돌돌 도르르륵 차랑차랑 낭창낭창 괄괄하고 걸걸하니, 귀뚜리인가 여치인가 철써기인가 방울벌레인가 풀종다리인가 질라래비인가, 풀피리 소리 같고 양금을 두드리는 듯 만도린을 켜는 듯 파람을 부는 듯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일제히 울리고 퍼지고 튀어나고 번뜩이고 스쳐가고 파고들고 젖어 들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햇볕을 머금고 바람이 쓰다듬어 달빛과 주고받고 별빛이 내려앉은 맑고 또렷하고 구슬프고 처량한 듯 흐느끼다가 와글와글 자지러지는 풀벌레들의 목청~//악보도 지휘자도 없는/귀맛 좋은 합주곡’ -拙시조 ‘자연의 합주곡’전문이처럼 자연의 선율은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꾸밈없이 투박한 듯 순수하며 느닷없이 들쑥날쑥하기고 하지만,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대부분 별 것 아닌 것 같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조차 특유의 가락과 소리가 어울림조의 안단테 멜로디로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치유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하고 즐겨 찾게 되는 걸까?최근 공중파 TV프로그램에 풀잎, 나뭇잎이 악기가 되는 ‘풀피리’를 평생의 악기로 여기며 연주와 보급활동을 펼치는 ‘풀깨비’ 선생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일명 ‘풀피리 부는 도깨비-풀깨비’로 알려진 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요즘, 풀피리로 자연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12년 전 연습을 시작하여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풀피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풀피리를 통해 자연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이기도 한 풀피리(草笛)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수풀이나 언덕에서 풀피리를 불고 들으면서 풀벌레들의 합창과 하모니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환상적인 ‘자연의 합주’가 되지 않을까?

2023-08-30

콘크리트 굴

윤명희 수필가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비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찾아본다. 매번 대는 곳보다 먼 곳에 주차할 때면 벽에 새겨진 번호를 찍어두는데 오늘은 그마저 없다.짐은 놔두고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차 키의 버튼을 눌러본다. 삑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잠잠하다. 내 차가 근처에 없는 게 분명하다. 다시 소리를 찾아 빠른 걸음을 걷는다. 지하가 이렇게도 넓었던가. 이젠 나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멈춰진 시간 앞에 섰다. 나는 길 잃은 개미가 되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옥죄어 온다.다시 한 층을 올라오다보니 차가 오르내리는 출입구가 보인다. 한 낮의 햇살이 입구를 막고 있다. 나는 지하 전등 불빛 아래 서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경사도를 따라 금방이라도 햇살너머에서 물이 흘러들어올 것만 같다. 주전자로 개미굴에 물을 붓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덮쳤다. 어지럽다.어릴 적, 동네 가운데 배꼽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치마를 폴싹이며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야 할 사내아이들이 웬일인지 조용했다. 그들은 담벼락 아래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고무줄을 끊는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놀이가 시들해졌다. 막대기로 숭숭 솟아난 구멍을 헤집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디밀었다.개미들이 튀밥 터져 나오듯이 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하얀 알을 안고 나왔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막대기로 개미굴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고 우리의 눈도 따라 들어갔다. 땅 속에 있는 사거리가 부서지고 내리막길이 무너졌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개미들이 허겁지겁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한 아이가 물주전자를 들고 왔다. 도망가는 개미들의 머리 위로 폭포수를 퍼부었다. 허우적거리는 개미의 모습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굴속으로 빠르게 물길이 쏠렸다. 물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 어느 순간 고이기 시작했다. 물은 우리의 발아래를 향해 질펀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도망가는 개미를 주시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도망가면 될 텐데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싶더니 또 저쪽으로 헤매고 있었다. 나라면 물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 달아날 텐데,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는 개미의 아둔함에 친구들과 함께 웃었다.나는 나무막대를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갈 것 같은 그 개미 가까이에 댔다. 개미가 황급히 나무막대를 타고 올라갔다. 뒤따라 또 한 마리가 올라갔다. 나무막대를 조심스레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목숨을 손아귀에 쥔 위대한 조물주와 같았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보지 못하듯이 개미 또한 우리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아이들이 주전자로 물을 부어 홍수가 났던 개미굴처럼 지난해 장마에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난리가 난 일이 있다. 개미가 허우적거렸던 것처럼 나는 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에 갇힌 이들을 기억한다. 물이 출렁거리는 지하주차장의 뉴스를 우리는 자연재난에 이어 인재라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은 철부지 아이들처럼 장난을 칠 리가 없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 일이 자연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콘크리트 굴을 벗어나 햇살 아래로 나온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2023-08-30

병진일주(丙辰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세 번째는 병진(丙辰)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불길이 맹렬하게 타는 모습이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는 물을 머금은 옥토(沃土)다. 동물로는 붉은 용이다.병진일주는 물상으로 비옥한 대지 위에 떠있는 태양이 밝게 빛나는 모습이다. 거기에는 물이 있어 풀과 꽃들이 피는 생명력이 넘치는 땅이다. 마치 봄철 모내기하는 풍경이다. 만물을 생육하는 역할을 하고, 길러내고 치유하는 부성애나 모성애를 가지고 양육을 잘하는 일주다.예의와 신의가 잘 조화되어 있다. 예의를 중요시하며, 남을 존경하면서도 자기를 잘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다. 명랑쾌할하고 낙천적이며 불같은 성정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도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데 투명하고 성실 근면한 모습을 보이며 자상하고 친절하다. 타고난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 그것을 잘 단련시킬 수 있으므로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의 직업에도 강점을 보인다.병진일주의 태양은 식물이 잘 자라는 땅을 만나 아낌없이 키우는 것이 제 역할이다. 또한 묵묵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어 잘 베풀고, 어려운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대체적으로 주변의 평이 좋은 편이다.이런 인물로는 춘추시대 초나라에 손숙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쌍두사(雙頭蛇)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손숙오는 쌍두사를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밥도 먹지 않고 근심하자,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손숙오가 울면서 대답했다. “오늘 제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예부터 이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했으니 저는 곧 죽을 겁니다.”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물었다. “그 뱀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러자 손숙오가 대답했다. “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이 말은 들은 어머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내가 듣기로 남모르게 덕을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고,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한다.”여기서 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고사가 나왔다. 훗날 손숙오는 초장왕의 책사가 되었다. 용기와 지혜로 깊은 사려를 지녔던 인물이었다. 둑을 쌓고 많은 저수지와 개간지를 만들어 쌀 생산력을 증가시켜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힘썼다. 그는 맡은 일에 부지런했으며, 항상 청빈한 삶을 살았다.병진일주 여성은 기품이 있고, 외모가 수려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태어나면 남편과는 인연이 약해질 수 있다. 몸도 병약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남자는 자존심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잔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믿어줄 배우자를 선호하며,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편이다. 다른 이성에 눈을 돌리는 단점이 있다.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으니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편안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병진일주의 진(辰)은 동물로는 용이다. 변화무쌍한 용(龍)의 특성상 변덕이 심할 수도 있다. 용은 안다. 자신이 이제는 승천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해 왔다. 지금은 태양이 있으므로 비가 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병진은 아주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고독하기도 하다. 스스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승천할 기회는 온다는 것을.영국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1719년에 발표한 해양모험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고독과 기다림의 상징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체류한 기간이 무려 28년 2개월 19일이다.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탈출하는 날까지의 기간이다.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생존하면서 때가 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그 당시 1688년에는 영국이 군주제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들을 폐지시킨 명예혁명 정신은 계몽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다. 유럽인들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바다로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이며 모험이지만, 곧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대니얼 디포는 찰스 2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가 가톨릭을 신봉하자, 그를 폐위하자는 몬머스의 반란(1685)에 참가했으나 참패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추방되어 3년 간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윌리엄 3세가 이끄는 개신교 세력이 제임스 2세를 몰아내는데 성공을 하는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자, 디포는 영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했으나,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된다. 그러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다.알렉산더 셀커크라는 영국인 선원이 지금 칠레의 영으로 되어 있는 마사티에라는 태평양의 한 섬에 조난 되어 4년 간 생존한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자기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집필했다. 출간되자 크게 성공을 거둔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 자기 일을 만들어 거기에 몰두하면서 외로움과 싸우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모습은 캘빈주의를 따르는 철두철미한 장로교 신자의 입장에서 묘사된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시각이다.작가는 ‘우리가 소유하지 못해 느끼는 불평은 모두 우리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한다. 무인도에서는 오직 생존에 몰두하기에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항상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바쁜 와중에도 그런 시선을 피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인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력을 방해하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딴 곳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알고,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해볼 만한 시도이다.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를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3-08-30

상식 무너지는 사회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달랐다. 사흘 전만 해도 종일토록 그늘인 곳인데, 8월 첫 월요일 낮에 그늘이 없어졌다. 저절로 하늘을 살폈다.그랬다. 지난 금요일과 주말 사이 당국에서 공원 남쪽의 나뭇가지들을 쳐낸 것이다. 내 상식이 무너졌다. 뙤약볕 땅 달구는 삼복더위 한여름에 사람들과 새들, 곤충들에게 쉼터를 내주던 고마운 괴목(槐木) 가지를 무참히 잘라낸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기왕이면 여러 생명이 나무 그늘에서 무더운 여름을 쉬게 하고 난 뒤, 늦가을쯤 가지치기하면 어디가 덧이라도 날까.물론, 민원 등 당국은 어떤 연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처사는 상식(常識)에 어긋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공시설 설치, 유지보수, 거리 청소 같은 현장에서 비상식적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좋게 본다면 일반인과 전문가 혹은 당국의 관점 차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보는 시민의 눈엔 상식 무너지는 일들이다.이곳에선 가로수 가지치기를 4~5월에 많이 해왔다. 새 봄빛에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 가지들을 무참히 잘라냈다. 입던 새 초록 옷을 모두 벗김 당하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좋은 봄날을 신음으로 지새는 가로수의 고통을 눈 있는 시민들은 다 보았으리라. 자연에 가하는 폭력적 광경들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자연은 단순해 보여도, 안엔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는 상식의 실존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와 가해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 자연은 묵묵히 자기 치유를 해낸다. 때문에, 몸통만 흉물스레 남은 가로수는 다시 새 가지를 뻗어 낸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을 땐, 어김없이 반응하는 상식적 존재 또한 자연이다.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멸적 자연현상이 그 증거다.‘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 파행에다 태풍 카눈의 내습 예보에 엉망일 때, 군사작전 같은 발 빠른 대처로 잘 마무리된 평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지만, 티브이 화면에 비친 상암 월드컵 경기장 K-팝 공연에 참석한 각국 잼버리 대원들의 해맑은 웃음은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었다.이번 잼버리 파행 원인은 지자체의 동상이몽, 공무원의 무책임 등 여럿을 꼽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속엔 상식을 버린 당국자들이 있다 싶다. 상식이 무엇인가. 만인이 같게 보는 양식 곧, 기본과 같은 일일 게다. 삼복염천에 공원 나뭇가지를 치는 몰상식처럼, 자연의 상식을 버린 결과가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으로 나타난 것이리라.근래 우리 사회는 일부 세력이, ‘민주화’란 탈을 쓰고 상식 무너트리기를 암약해 왔다고 본다. 상식 무너진 곳은 전체주의 체제다. 법, 질서, 선거, 여론, 안보, 경제가 민주화란 미명으로 선동, 기만, 술수, 훼손, 조작의 도구가 된 현실 곧, 상식 무너지는 삶을 국민은 겪었다. 전체주의 망령이 어른거렸다. 민주화를 가장한 전체주의 추구 세력의 겉발림에 다시는 속지 않도록, 국민이 늘 깨어 행동하며 살아내야 할 때다.

2023-08-29

다시,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학기 ‘젠더문화론’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목적은 ‘페미니즘’을 남성·여성의 이항 대립에서 해석하지 않고, 일상에 퍼져 있는 혐오와 위계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이론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전장연)’시위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학생은 시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으며, 수업 중간에 수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자체 휴강을 한 학생도 있었다. 익숙한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수 학생은 끝까지 수업을 들으며 ‘일상의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에 학생들이 실제로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지난 대선의 쟁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정면에 내세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반페미니즘은 2021년 ‘국민의 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의 당선에서 시작되었다.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건 이준석 후보의 반페미니즘 전략에 이른바 ‘이대남’이 결집하며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나 공유되던 시각이 공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 이준석 전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비판하며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는 여성 혹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이 특권(?)을 갖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한다.정치권의 반페미니즘 기조를 환기한 이유는 최근 서울 시내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맥락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 좁히고 인권 보호를 단지 법의 권위에 기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은 법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인권 보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두 번째는 신림동 성폭행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3년 신림역 성폭행 사건은 대표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이다.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정신병을 문제 삼지만 문제의 핵심은 여성을 특정해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잠재적 가해자’로 남성을 지목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앞선 칼럼에도 썼듯 장갑차를 시내에 배치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공권력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20∼30대 남성 청년들이 가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타인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3-08-29

배달했던 시인

산문집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를 낸 지 1년이 됐다. 책과 관련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크고 작은 서점들에서 낭독회를 했다. 책은 우수출판콘텐츠, 문학나눔 도서, 오디오북 지원 사업에 잇따라 선정됐다.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제목 그대로 대학교 시간강사가 배달 라이더로 ‘투잡’ 하는 얘기다. 자기연민이나 과도한 페이소스 대신 유쾌함과 활달함, 성실한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군불 냄새 같은 걸 담고 싶었다. 다행히 독자들이 그걸 읽어주셨다. 감동적이라고, 위로 받았다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다고 말해주는 분들 덕분에 힘을 얻었다.“이 일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책에 썼다. 생활에 위기가 닥친 2021년, 글을 더 쓰거나 강의를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땐 몸으로 하는 정직한 노동이 필요했다. 인생에 그런 시기가 있다. 복잡함보다 단순함으로 기울어야 하는 때, 머리 쓰기보다 몸을 써야 하는 때, 아무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때. 그때 내가 선택한 게 배달 라이더였다.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그 일로 나는 나를 지켰다. 문학도, 대학 강의도, 낚시와 여행, 음악회 관람 같은 취미도, 당당한 자존감도 다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살이를 배우고, 길 위에서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보람도 맛봤다. 큰돈은 아니지만 경제적 소득은 물론이고, 소득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들을 보너스로 챙겼다. 그렇게 캄캄한 한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다.사람들이 묻는다. “요즘도 배달하세요?”라고. 안 한다. 책을 내고 나서 조금씩 빈도가 줄더니 이제는 완전히 그만 뒀다. 스쿠터는 장보러 갈 때나 탄다. 글 쓰는 지면이 더 생기고, 강의 시수가 늘고, 도서관과 서점에서 강연하는 등 배달을 대체할 돈벌이가 마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달 라이더의 삶을 충분히 살아냈고, 책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시절을 단정하게 정리한 까닭이다. ‘나’를 지켜 다시 ‘나’로 돌아온 것이다.사람들은 나를 ‘배달하는 시인’으로 부른다. ‘배달’에 찍힌 방점을 ‘시인’으로 옮겨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배달이 아니라 시여야 한다. 나는 시인이다. 배달을 하면 배달하는 시인이고, 운동을 하면 운동하는 시인이다. 때로는 요리하는 시인, 노래하는 시인이다. 나중엔 밸리댄스 추는 시인, 낙타 타고 사막을 건너는 시인, 화성 탐사하는 시인일 수도 있다. 무얼 하느냐가 아니라 무얼 쓰느냐가 중요한 게 나란 사람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되고 싶지 않다. 최대한 많은 삶을 살고 싶다. 내게 세상은 다채로운 경험들로 가득한 무한우주다.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배달하는 시인’ 얘기를 들려달라고 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제는 삶의 다음 혹은 다른 단계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배달 라이더는 누구나 하는 부업으로 유행하지만 보편적 인식에선 아직도 혀를 차며 연민하는 데가 있다. 가난 때문에 문학을 내려두고 육체노동을 하는 시인이라는 서사는 책을 쓰면서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전직이 아닌 현직 시인이고, 얼마나 벌어야 가난이 아닌지는 모르지만, 가난하지도 않다.중고 스쿠터를 장만해서 배달통을 달아야 했던 2년 전에 비해 지금 형편은 많이 낫다. 그럼에도 힘든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힘든 내색은 하지 않는다. 배달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일을 계속 하면 사람들은 내 시보다 생활을, 생활을 위한 노동을, 노동현장에서의 땀을 먼저 읽기 때문이다. 시에서도 구체적 현실의 핍진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시는 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을 그린다. 현실 너머에서 현실을 꿈꾸듯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린다. 내 시는 세계보다 아름답다.여름방학 동안 꽤 여러 편의 시를 썼다. 학술논문도 한 편 썼다. 도서관과 책방에서 대중 강연도 했다. 그러면서 잘 먹고 잘 놀았다. 전세사기 당한 것도 현명하게 대처해 잘 해결되는 중이고, 차를 바꿨고, 2학기에는 대학교 한 곳에 더 강의를 나간다. 나는 나를 지켰다. 배달 스쿠터 덕분에. 고맙다! 배달했던 시인의 뜨거운 작별 인사다.

2023-08-29

방 한 칸의 고독

월급날 오전, 월급 명세서가 이메일로 날아오면 곧장 계산기를 두드린다. 월급에서 가장 큰 부분은 월세로 나가고 다음은 고정 생활비와 지난달의 각종 경조사비 또는 기타 비용이 빠져 나간다. 마지막으론 월에 정해둔 일정 금액을 저축에 넣는다. 이 모든 게 단 이십 분 만에 빠르게 이어진다. 남은 금액으로 또 한 달을 살아가야 한다니, 조금 허무하다.전에 살던 방의 계약이 만료되고 나는 모아둔 돈으로 조금 더 큰 집이나 조금 더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도 7평 남짓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달라지는 것이라곤 방의 컨디션이 깨끗한지 또는 창문이 있는지 없는지, 햇빛은 얼마만큼 드는지 정도의 차이일 뿐. 아직까지도 머나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생활해야 한다.최근 유튜브에서 청년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통계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청년 고독사는 약 1100명, 한 해 평균 200명 정도다. 계속 되는 취업난과 경제적 빈곤이 원인으로 관계 단절과 사회적인 죄책감이 고립감으로 이어져 고독사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독사를 택한 청년들은 노력해도 희망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고 어떠한 기대도 없이 현실을 포기하고 만다. 도와줄 곳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다는 한 청년의 말은 머리를 멍하게 했다.희망조차 꿈꿀 수 없게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현실적인 벽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0원으로 하루를 사는 ‘무지출 챌린지’ 또는 오픈 채팅방을 통해 서로의 절약을 독촉하는 ‘거지방’의 유행이 돌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소비자 물가 탓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의 생활이 급격히 위태로워진 탓이다.졸업 이후에도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는 126만명.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동향’의 자료를 보면,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는 2020만7000개로 1년 전보다 45만7000개 증가했으나 20대 연령층의 일자리는 6만1000개가 감소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이 제시한 20대 고용률 또한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취업을 하면 금전적인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온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5년 동안 약 9개월 정도 일을 쉬었을 뿐 아르바이트, 취업사관학교, 인턴 등 여러 군데를 거치며 현재 작은 중소기업에서 원하던 직무의 정직원이 되었다. 젊은 날의 노력과 시간을 담아 지금의 내가 되었건만 나는 아직도 방 한 칸을 못 벗어나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실에서 타협해야 하는 게 아직까지도 많기 때문이다. 넓고 큰 집, 여유롭게 갖추고 사는 살림살이, 여러 값진 경험과 물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이후의 삶 등을 위해 청춘의 시절에서 계속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곧 원룸의 문을 열어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방 한 칸짜리의 크기에서 강요되는 고립과 고독의 벽은 너무나 높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에 괴로운데 아무도 그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오늘도 출근 버스를 급히 오른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 30분이 넘는 거리를 서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함과 운이 따라 의자에 앉아갈 수 있다면 모자란 잠을 자거나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만원 버스의 광경을 모른 척 눈감을 수도 있다.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달라질 정도로 출근길 버스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면서도, 또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쉽게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원하는 직종의 업무를 시작 하게 되어 좋은 성과가 나면 기쁘고 뿌듯하지만, 때론 집에 들어와 방 한 칸에 앉아 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밤이 저물고 또다시 아침, 입을 앙다물고 힘없이 버스에 실려 가는 이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위해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이 버스 안에서 나만 이렇게 고립된 것일까? 생각하며 창가에 비친 나를 마주해 본다. 불투명한 유리창 탓에 이목구비가 잘 보이진 않아 나의 눈은 젊음으로 빛나고 있는지 생각하다보면 정말이지 더 미궁에 빠지고 만다.

2023-08-29

윤경희 청송군수의 ‘발상의 전환’

심충택 논설위원 올 추석에는 소비자들이 ‘꼭지달린 청송사과’를 맛볼 수 있게 됐다.청송군은 최근 국내 사과계통출하 조직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올가을부터는 꼭지를 자르지 않고 청송사과를 출하하기로 했다.청송사과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도 최고 명품으로 대접받으며, 이제 국내외 농산품 중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다.가락동 시장에 사과를 직접 출하하는 한 농민(청송군 부남면 대전동)은 “매년 첫 경매에서 청송사과 가격이 가장 높으니까 사과가격도 청송사과를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청송사과의 맛과 품질이 전국적으로 뛰어나다는 방증이다.대부분 사과농가들은 ‘꼭지없는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인다. 사과를 따서 상자에 바로 담지 못하고 과수원에 언덕처럼 쌓아둔 후, 많은 일손을 동원해 꼭지를 하나하나 따야 한다. 청송군에서만 사과 꼭지를 자르는데 들어가는 인건비가 한해 86억원에 이른다. 사과꼭지를 그대로 둘 경우 신선도도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생산자·구매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그동안 농가에서는 관행적으로 사과꼭지를 따는 힘든 작업을 반복했던 것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지난 21일 경북매일신문에 쓴 칼럼에서 “꼭지달린 청송사과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과 공판장, 대형유통업체에도 협조를 구했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볼 참이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친숙했던 꼭지없는 사과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단체장의 고민이 읽혀지는 글이다.윤 군수는 “첫걸음은 가장 어렵지만, 반대로 제일 용감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꼭지달린 청송사과의 긍정적 영향력을 전국의 사과유통시장 흐름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청송군 3선 단체장인 윤 군수의 ‘발상의 전환’은 여러 차례 주목을 받아왔다.윤 군수는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청송교도소(경북북부 제2교도소)를 방문한 법무부장관에게 여성교도소 청송유치를 제안했다. 법무연수원 청송캠퍼스와 교정아파트 건립이 전제된 제안이었다.청송군은 그전에 전국 어느 교도소도 거부했던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 코로나 확진자’들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물론 주민의사를 반영한 조치였다.윤 군수는 올 1월부터는 조례를 제정해 주왕산 등 관광지를 비롯해 군내 8개 읍면을 정기적으로 다니는 농어촌버스를 전면 무료 운행하는 놀라운 조치를 발표했다. 청송군 버스는 연령이나 소득수준, 주소지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인구소멸을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이지만,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단체장의 역량이 돋보인다.해외여행을 가보면 대부분 사과가 꼭지 달린 채로 유통된다. 일본은 사과꼭지를 솜으로 보호하며, 수박이나 멜론처럼 꼭지가 없으면 불량품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만 유독 꼭지없는 사과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민선단체장에겐 위기일 수도 있는 새로운 길을 뚝심 있게 개척하는 청송군수의 모험적인 혁신이 청송사과의 국내·외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9

K-디아스포라 청소년에게 정체성 교육을

경북도가 28일 ‘K-디아스포라 재외동포 청소년-리더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경북을 찾은 재외동포 청소년 44명은 이철우 도지사를 예방하고 한국 전통문화체험의 일환으로 성례식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번에 방문한 청소년 6개국 44명은 9월 초까지 열흘간 경북 정체성 함양교육에도 참여한다. 경북 명승지를 여행하고 한옥, 한복, 한식, 한글, 한지 등 5한(韓)과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 등 경북의 4대 정신도 배운다고 한다.디아스포라는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율과 생활관습을 이어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각국마다 고국을 떠나 사는 이민이 늘면서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사는 민족집단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K-디아스포라는 한국인의 재외동포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 해외동포는 193개국 75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리고 그들의 2.3세대 청소년이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비록 부모님의 고향이지만 이미 한국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세대다.이스라엘은 공공과 민간차원에서 유대인이라면 일생에 한번은 이스라엘을 방문할 수 있도록 ‘버스라이트 이스라엘(Birthright Israel)’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국에 대한 정체성을 심어주고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애국 활동의 일환이다.K-디아스포라가 연대를 강화하고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으로 뭉쳐진다면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새로운 동력을 갖게 된다. 특히 K-디아스포라 청소년들은 한국의 청소년들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 갈 훌륭한 자산이다. 이번 K-디아스포라 청소년의 고국 방문은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행사다. 경북도가 이번 행사에 적극 참여한 것도 잘한 일이다. 경북도는 시·도 최초로 K-디아스포라 청소년 정체성 함양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이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경북을 해외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K-디아스포라 청소년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2023-08-29

“팔공산 관통 도로는 신공항의 핵심인프라”

대구 동·수성구와 대구경북신공항을 바로 연결하는 ‘팔공산 관통 고속도로’가 건설된다.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분기점에서 팔공산을 관통해 상주영천 고속도로 동군위분기점을 잇는 총 연장 25.3㎞의 도로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신공항 여객과 물동량 사전타당성 용역결과를 보면, 이 도로 경제성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구시는 이 도로를 정부 재정 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2030년 신공항 개항 시기에 맞춰 개통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민간투자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올 연말까지 최적 노선과 경제성 분석을 한 후 민간 사업자를 선정한다. 그 후 민간 사업자가 정부에 민자사업 제안 신청을 하면, 국토부가 사업 적격성 조사와 함께 실시계획 승인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 총 사업비는 1조7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도로를 국비로 건설하려면 ‘제3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2026~2030년)’에 반영돼야 하고, 사전·예비 타당성 조사도 거쳐야 된다.이 도로가 개통되면 기존 구간보다 거리가 20㎞가량 단축되고, 동대구분기점에서 신공항까지 30분 이내에 접근 가능하다. 현재 도로상황에선 신공항 이용자가 동·수성구에서 공항까지 가려면 상습 정체 구간인 경부고속도로 북대구나들목~금호분기점과 중앙고속도로 동명동호분기점~다부나들목 구간을 거쳐야해 큰 불편이 예상된다.대구부산고속도로와 상주영천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이 도로에는 팔공산·군위 나들목이 설치돼 수도권과 부산권의 교통량도 대거 흡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팔공산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되며, 특히 지난 7월 1일 대구시에 편입된 군위군의 발전에 핵심축 역할을 하게 된다.대구시가 공사 구간에 대해 환경부와 사전협의를 끝내긴 했지만, 25.3㎞ 도로 중 17㎞가 터널 구간이기 때문에 국립공원 환경파괴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공항 접근성을 위해 이 도로는 꼭 필요한 인프라인 만큼 대구시는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서 신공항 개항 이전에 도로가 개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3-08-29

스파이더 부츠

우정구 논설위원 지뢰는 일정구역 땅에 파묻어 놓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나 대상물을 살상 또는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폭발하는 지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중국에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때 보편화됐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대전차 무기로까지 활용도가 더 커졌다.지금의 지뢰처럼 폭발력이 강하지는 않으나 적군이 밟으면 피해를 입는 무기는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로마시대에 사용된 릴리아는 땅에 깔대기 모양의 구멍을 파고 그 가운데 날카로운 말뚝 하나를 박아둔 무기였다. 중국 전국시대에도 마름쇠, 귀전이란 이름으로 유사한 무기가 개발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파진포라는 지뢰가 있었다. 가마솥 크기만한 대형지뢰로 땅에 묻어두고 적이 건드리면 폭발하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위력의 무기였다.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 곤혹스런 문제로 지뢰를 손꼽는다. 전쟁 후 러시아가 매설한 지뢰밭 규모가 25만㎢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뢰지대로 생긴 것이다.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작년 러시아 침공 후 지뢰로 팔다리가 절단된 우크라이나군 수가 최대 5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뢰 제거작업에 풍부한 경험과 기술 등을 가진 한국의 지원을 수차례 요청한 바도 있다.스파이더 부츠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뢰 폭발로부터 자국군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신발이다. 신발 밑창에 다리 4개를 달아 군인의 발이 지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했다. 이 신발을 착용하면 발이나 다리가 절단되는 치명상은 피할 수 있다. 다만 한 켤레 비용(한화 53만원)이 너무 비싸 모금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전쟁의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29

경북도의 고교 유학생 유치, 아직 장애물 많아

경북도교육청이 내년도 8개 직업계 고교 입학 전형에 6개국 출신 외국인 유학생 72명(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몽골 국적)을 선발하기로 했다. 입학정원을 채우고, 지방 소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경북은 23개 시·군 중 18곳(78%)이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다. 대상 학교 중 의성유니텍고, 한국국제조리고, 한국철도고는 배정받은 유학생 정원을 이미 다 채웠다. 한국해양마이스터고, 명인고, 신라공업고, 경주정보고, 경주여자정보고 등 5개교는 다음 달 8일까지 현지 자문업체·학교와 협의를 거친 후 학생을 선발한다. 외국인 유학생 입학 기준은 중학교 성적 중위권 이상,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 이상이다. 최근 일반계인 김천고도 내년도 입학전형에서 중국·캄보디아·베트남 국적 유학생 16명을 뽑아 주목을 받았다.경북도교육청의 과제는 이들 외국인 유학생을 지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주시키는 작업이다. 도교육청은 이를위해 유학생들에게 어학과 직업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키고 장학금을 지원한다. 2024학년도부터는 직업계고교가 유학생을 정원 내 30%까지 유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개정한다. 교육부도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직업계 고교 유학생을 유치하는 사업에 대해 적극 지원하는 입장이다. 현재 법무부는 소멸 위기에 처한 일부 지역에 대해 ‘지역 특화형 비자’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문대 학사자격 이상을 갖춘 외국인이 해당 지역에서 5년 이상 일하는 조건으로 가족 초청과 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고교에 입학한 외국인 학생들의 경우 현행제도상 가족과 함께 입국할 수 없고, 졸업 후 취업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북도는 지역특화형 비자 대상에 고교 유학생도 포함시켜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해 둔 상태다.지역특화형 비자의 목표는 특정지역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유학생 개인뿐 아니라 가족단위로 비자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맞다.

2023-08-28

무너진 교권, 위기의 교육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의 교육현실이 참담하다. 2년차 신규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사면초가(四面楚歌)의 환경 속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티던 교사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가 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교단을 떠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추모집회에서 동료교사들은 “교권침해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이 현실이 정상이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선생님들이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학생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교권도 중요하다. 수업하는 교사 옆에서 학생이 드러누워 휴대폰을 사용해도 이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니 기가 막힌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성희롱·욕설을 하는가 하면,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니 교육 백년대계는 공염불이다.학부모들의 갑질과 악성 민원은 또 어떤가?자녀가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면서 담임교사에게 ‘황당한 갑질’을 한 학부모가 ‘교육부 사무관’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학부모들의 폭언·폭행·협박이 점입가경이며, 최근 5년간 교사를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이 무려 1188건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교사들은 ‘왜 아동학대를 무릅쓰고 생활지도를 해야 하느냐’, ‘참 교사는 단명 한다’는 등 자조적인 한탄이다. ‘폭탄 학부모’나 ‘폭탄 학생’을 ‘명퇴도우미’라고 부른다는 교단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는 “교육은 반드시 가르침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이 세계 속에서 진정한 한 인간 존재로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교육은 죽었다. 공동체의식, 남에 대한 배려, 사회화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교육은 무의미하다. 교권이 무너졌으니 교육이 무너진 것이다.교권 회복을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교권을 약화시키는 ‘학교폭력법’과 ‘아동학대법’은 개정되고, 유명무실한 교권보호위원회의 실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학생의 수업방해를 제재할 수 있는 교사의 권한과 수단이 있어야 하고, 교사의 정당한 학생지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면책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사가 송사를 당했을 때 신경 쓰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절실하다.갑질 학부모들의 성찰과 반성도 중요하다. ‘생물학적 탄생은 부모의 몫’이지만 ‘사회적 재탄생은 교육의 몫’이다.잘못된 자식사랑은 자녀에게 독이 된다. 교권이 무너지면 그 피해가 자녀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걸핏하면 경찰·검찰·법원에 호소하는 ‘교육의 사법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사법적 승패는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승자가 없는 싸움일 뿐이다.교육정상화는 교육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상호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각 주체들은 권리에 앞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풍토 속에서 참 교육은 불가능하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해하고 소통해서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교육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2023-08-28

대구의료원, 공공기능 강화를 기대한다

대구의료원이 추진 중인 총 900억원 규모의 통합외래진료센터 건립 사업이 행안부의 심사를 통과해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이다. 국비 240억, 시비 460억원, 의료원 자부담 200억원 등이 투자될 이 사업은 빠르면 내년에 착공, 2026년에는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대구의료원이 추진하는 통합외래진료센터는 응급의료센터, 뇌혈관센터, 외래진료실, 수술실, 외과계 중환자실 등을 한곳에 모아 놓은 이른바 원스톱진료 시스템을 이른다. 진료체계를 시스템화함으로써 지금보다 신속하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일반 종합병원 수준으로 의료서비스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뜻이다.대구의료원은 대구 유일의 공공의료기관이지만 시설과 인력 그리고 재정 등으로 그동안 의료의 공공기능 수행이 쉽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 예방을 위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됐으나 취약한 시설과 재정 사정 등으로 공공의료의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했다.이와 관련해 지난해 제2대구의료원 추진이 논의도 됐으나 홍준표 대구시장은 제2의료원 추진보다 기존의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경북대병원과 손을 잡고 경북대병원 전문의의 파견근무 등으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대구의료원의 부족한 진료과목도 메꾸어 나가기로 했다.통합외래진료센터 건립은 대구의료원의 공공의료 기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센터 건립이 홍 시장이 약속한 공공의료 기능 강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차제에 민간병원 수준급으로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민간병원은 병원운영과 확장을 위해 수익을 내야 하지만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의료기관은 지역사회의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에 포커스를 두어야 한다.특히 공공의료기관을 찾는 다수가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인 점 등을 생각하면 공공의료의 기능강화는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할 과제다. 대구의료원 통합외래진료센터 건립이 대구의료원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서 위상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8

‘김영란 법’과 경기(景氣)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추석(9월 29일)을 앞두고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등 선물 가액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의 속칭 ‘김영란 법(청탁금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물 상한액 인상이 목적이다.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농·축·수산업계와 문화·예술계 등의 피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개정안에 따라 농수산물과 가공품의 선물 상한액을 평상시 10만원(설날·추석 20만원)을 15만원(설날·추석 30만원)으로 상향했다. 선물기간은 설날과 추석 전 24일부터 설날과 추석 후 5일까지다. 다음 달 5일부터 10월 4일까지 추석 선물 상한액 적용이 가능하다.올해 시행 7년 차인 ‘김영란 법’은 그간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금품수수와 같은 불공정 관행을 대폭 개선했다. 청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농축수산업계 등 관련 단체들은 농촌에서 농업 생산비 증가와 자연재해에 따른 작황 부진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돼 왔다며 상한액 인상을 주장해왔다.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에 선물 가액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식사가액 3만 원은 그대로 두었다. 이처럼 김영란 법은 긍정적인 측면 외에도 사회·경제 현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덕분에 민생 활력을 저하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잖다. 축산 분야 생산자들은 인상 폭이 물가 상승률 등을 따르지 못해 기대 밖이라는 반응이다. 실효성에 의문표를 단다.현실과 맞지 않는 가액 기준과 인상 폭, 적용 대상 등을 이유로 해당 법률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정치권은 역풍을 우려, 묵묵부답이다. 부정부패 척결과 경기의 상관관계에 고개가 갸웃한다. 법은 현실과 부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8

고딕건축 발상지-파리 북부의 생 드니 성당

서양미술사에서 통용되는 몇몇 용어들은 특정 미술을 낮추어 부르기 위해 악의적으로 고안되었다. 르네상스 끝 무렵 잠깐 등장한 매너리즘,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준 인상주의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세에 나타난 고딕의 경우도 그렇다. 고딕(Gothic)이라는 단어 안에는 벌써 고트족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야만족의 미술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이것은 미술사적으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이다. 고대를 모범으로 한 자신들의 업적에 가치를 더할 의도로 앞선 시대를 ‘암흑’으로 규정하고 그 때 유행한 건축 양식을 고딕이라 불렀다. 하지만 르네상스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이 야만스럽다고 평가했던, 그래서 고딕이라고 불렀던 건축은 실제로는 고트족의 유산도 아닐뿐더러 야만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신비로운 빛을 직접 경험했거나 끝없이 솟아 오른 쾰른 대성당의 장엄함 앞에서 압도당한 경험이 있다면 중세를 감히 암흑이라거나 야만적이라 섣불리 폄하하거나 폄훼하지 못할 것이다.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대략 1150년 무렵으로 한 세기 이상의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로마네스크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전 유럽에 확산되고 있을 때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건축은 높고 웅장한 몸집을 완성하기 위해 두꺼운 벽체와 육중한 기둥을 필요로 했다. 고딕역시 높이를 지향했다. 신을 향한 충성심일까? 종교권력의 욕망일까? 구원에 대한 끓어 넘치는 간절함일까? 무엇이 중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높은 교회를 짓게 했는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고딕으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더 높아졌고 더 화려해졌다. 더 높아졌지만 무게를 덜어낸 듯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장식성 풍부한 창틀 트레이서리(tracery)가 파사드 벽면 빈 공간을 수놓듯 채우면서 시각적 무게가 더욱 줄어 들었다. 고딕이 지닌 수직 상승적 외형은 건물 외부를 장식한 첨탑을 통해 보다 강조된다. 고딕은 어떻게 무게를 극복하고 높이를 추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화려함을 통해 고딕은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고딕이 처음으로 발달한 곳은 프랑스 수도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 드 프랑스지역이다. 특히 파리 북부에 위치한 생 드니(Saint Denis) 성당 주보랑 부분에서 처음으로 고딕의 건축형식이 등장했다. 생 드니 성당은 프랑스 왕가의 무덤으로 기능하던 곳으로 파리의 수호성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에게 봉헌된 교회이다.성인 디오니시우스, 프랑스식 발음으로 생 드니는 3세기 중엽 갈리아 지역 복음화를 위해 교황 성 파비아누스가 파견한 일곱 명의 성직자 중 한 사람이었다. 파리의 초대 주교로 임명된 디오니시우스는 기독교를 전파하다 체포되어 로마의 신 메르쿠리우스를 경배하던 언덕에서 참수를 당했다. 그 언덕을 지금은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몽마르트르(Montmartre)라고 부른다.전설에 따르자면 참수당한 디오니시우스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으로 몇 킬로 미터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자신의 무덤 자리에 이르러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4세기 후반 그곳에 처음으로 지어진 교회가 생 드니이다. 생 드니 성당에 고딕의 건축원리를 적용한 사람은 1122년 생 드니 수도원장으로 임명된 쉬제르(Suger)이다. 이미 일 드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로마네스크를 대체하는 새로운 건축 양식으로 대성당들이 건축되는 것을 목격한 수도원장은 생 드니 수도원 교회를 개축하면서 보다 치밀한 방식으로 고딕의 건축 언어를 적용했다. 교회 건축에서 주제단이 위치하고 성직자들의 자리가 마련된 곳을 내진(Choir)이라고 한다. 내진을 밖에서 돌아가며 감싸는 통로를 주보랑(Ambulatory)라고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미술사 처음으로 고딕의 건축 구조를 만날 수 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08-28

용이 된 신라 문무왕, 경주 문무대왕암

청명한 하늘과 드넓은 바다, 넘실거리는 파도 사이로 거대한 암초가 눈에 들어온다. 감포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에 웅장하게 솟아오른 자연 암초다. 동해의 거센 파도가 바닷가로 들이치는 것을 막는 이 거대한 암초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을 몰아내어 통일 신라를 이뤘던 문무왕(文武王·재위 661~681)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문무왕은 신라의 일반적인 장례가 아니라 화장하여 바다에 산골(散骨)하는 장례 의식을 유언으로 남겼다. 문무왕의 유언은 비교적 세세하게 남아있다. 경주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문무왕릉비를 발견했는데, 비의 뒷면에 유언이 새겨져 있었다. 문무왕의 업적을 세세히 나열하고, 태자의 왕위 계승을 왕의 관 앞에서 하길 바란다. 이는 왕권을 높이고 태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간소한 장례와 화장을 당부하였고, 통합된 삼국 사회에 대한 의견도 제시한다. 문무왕이 죽자 평소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대왕암에서 뼈를 뿌렸다고 한다.신라는 동해안에 인접하여 바다를 통한 교류가 많고, 3~5월에 왜의 침입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특히 신라 인근의 바다는 대기가 불안정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용오름 현상이 잘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물이 있는 곳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라에도 당연히 오래된 용신앙이 있었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으며, 석탈해의 설화에서도 세상을 통치하는 용왕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라의 용신 숭배는 문무왕 시기에 불교와 융합하면서 호국신앙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나당전쟁이 일어나자 문무왕은 불교 법사 명랑(明朗)에게 승리할 수 있는 비법을 물었고, 명랑은 용궁에서 배워왔다는 비법을 전수한다. 문무왕은 사천왕사라는 절을 세워 당나라 배를 두 차례 침몰시켰다. 문무왕은 사후 자신의 유언대로 불교를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는 동해의 용이 되었다. 그 후 아들 신문왕에게 김유신과 함께 나타나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건넨다. 당시 사람들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영험하게 여겼고 아직도 용신앙은 이 지역에 남아있다. 기우제는 지낸 것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때는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지금도 1년 내내 무속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문무대왕암의 중앙에는 수면에서 깊이 1.2m의 십자형의 수로가 있고 그 중앙에는 거북이 모양처럼 보이는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수로는 입수구와 출수구의 높이를 달리하여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정하고 수로의 벽을 정비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중심부의 큰 암석을 석실의 덮개돌로 여겨 그 아래 부장품이나 봉인된 항아리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암초 위의 물을 빼고 조사한 결과 석실도 부장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을 문무대왕이 잠든 곳으로 여기는 것은 감은사와 이견대, 문무왕릉비, 사천왕사 등과 같은 문무왕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 여러 기록에서 문무대왕암의 위치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감은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불교의 힘으로 왜구를 격퇴하고자 짓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에 완공된 절이다. 현재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절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큰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통일신라 초만해도 해수면이 지금보다 1m 이상 높아 감은사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왔으며, 실제로 감은사지 터 인근에 나루터도 발견되었다. 감은사 주춧돌 아래는 다른 사찰들과 다르게 틈이 있다. 사찰이 땅에서 살짝 떠 있을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금당의 오른쪽 아래쪽에는 기록과 일치하는 용혈도 발견되었다. 이 용혈은 강으로 이어졌다가 문무대왕암이 있는 바다로 연결된다. 신문왕이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이 대왕암에서 지내다 강을 타고 용혈을 통해 감은사에 드나들 수 있도록 마련된 통로로 알려져 있다. 감은사는 고려 몽고침입 때의 화재로 주춧돌과 탑 두 개만 남아있다.이견대는 문무대왕암이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지어졌다. 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이 상봉한 곳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노래한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의 부자상봉을 기뻐하며 대를 만들었다고도 하며, 만파식적을 얻고 기뻐하여 만들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문무왕에 대한 제례를 지내던 장소이자 왕권을 강화하기에 좋은 곳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왜의 침공을 경계하기에도 좋은 지리적 거점이었다.문무왕을 화장하여 동해에 산골했고, 사람들은 그가 동해의 용이 되었다고 믿었다. 현재 문무대왕릉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남아있고, 대대로 영험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염원처럼 굳건히 버티며 동해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거대한 자연 암초, 문무대왕릉의 전경이 저 멀리 바다 위에 펼쳐진다. 청명한 하늘이 몹시도 선명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8-28

쪼잔해 보이면 큰 정치 못한다

김진국 고문 오늘(28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취임 1주년이다. 1년 전 그는 대선 패배 5개월 만에 77.77%를 얻어 당 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 사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전하고 있다. 이 대표의 ‘리스크’가 그대로 민주당에 부담을 주고 있다.대선에 패배하자마자 대표로 복귀한 건 이례적이다. 경쟁자들은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갑옷’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수사의 진척이 더 빨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 방패’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를 네 번 받았다. 곧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도 소환될 예정이다. 구속 영장 청구가 임박했다. 내년 4월 총선이라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에서도 논란이다.검찰이 정치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가 사법의 치외법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에는 부패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불만도, 걱정도 거기 있다. 분명한 증거만 있다면 정치 부패는 엄단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희망이다.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다운 당당함보다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려는 안간힘 같은 인상을 준다. 어떤 탤런트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했다. 국민의 믿음을 먹고, 희망을 대변하는 지도자라면 쪼잔한 행보는 피해야 한다.검찰이 30일 소환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이번 주에는)“일정상 도저히 제가 시간을 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일(24일) 오전에 바로 조사받으러 가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거부해 24일 출석은 무산됐다. 또 8월 31일까지 소집해놓은 임시국회 회기를 ‘25일까지’로 단축했다. 비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이다.검찰도 소환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내일 오전 가겠다”라는 통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해보라는 뜻이다. 이 대표 조사에 반영해야 할 이화영 전경기도 부지사의 재판이 이 대표 지지자들의 방해로 지체되고 있다. 이 대표는‘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본회의에서 투표해야 한다. 민주당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찬성하라고 말하면 된다.당당하면 소환 날짜가 무슨 상관인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서 조사받겠다고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쪼잔해 보인다. 불체포 특권을 던지기로 했으면 부를 때 나가면 된다. 한 사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피하려고 국회의 회기를 줄이고, 날짜로 씨름하는 것 역시 좀스럽다.이 대표는 변호사다. 재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체질일 수 있다. 그럴수록 국민 눈에는 혐의가 짙어진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범죄 혐의의 사실 여부다. 대장동 개발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삼킨 민간 업자들로부터 특혜의 대가가 없었나. 백현동 특혜의 대가는 없었나.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이용해 방북하려 한 것은 아닌가.이런 의혹들에 정면으로 답변해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증거를 대라’,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라며 ‘법비’(法匪)나 쓰는 법 기술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무죄 가능성이 1%만 있어도 일반 국민은 보호받는다. 일반 국민은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무죄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다르다.검찰이 어떻게 하든, 국민이 무죄라고 믿어야 한다. 더구나 출석 시기나 국회투표의 유불리를 따지는 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방어는 ‘진실’이다.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가 모두 쌍방울 대납을 인정했다. 김 전 회장이 조폭 출신이라고 공격한다고 뒤집을 수 없다. 더구나 경기도 법인카드로 음식을 사 먹고, 생활용품을 사들인 것을 모른다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다. 공무원을 머슴이나 하녀처럼 부리고도 모른다고 해서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 해외여행, 골프를 함께 한 부하직원을 모른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설령 그렇게 재판은 넘길 수 있어도, 국민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나. 공직자의 가장 큰 악덕은 거짓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7

마침내 초대받은 연주회

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처럼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 의자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공기를 정비하듯 잔기침들 다듬는 사이독주의 예열이듯 소름 돋는 다리 사이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전율을 견디느라 다리가 다 녹아나도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없이 사라질 뿐―정수자,‘무반주첼로 의자’전문 (파도의 일과, 2021)정수자 시인이 선곡한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감상해 보려고 한다. 실은 시인이 주목한 대상은 첼로도 연주자도 아닌 첼로 연주자가 앉은 의자이다. 말하자면 철저히 의자의 입장으로 듣는 첼로 연주라고 해야 할 것 같다.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지만 바흐 시대에는 첼로가 매우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 독주곡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악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수 세기 동안 이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독주 작품이 아니라 연습용 음악 정도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첼리스트가 앉는 의자에 입각하여 “우주정거장 멀리서 반짝이는 위성”이라고 클래식의 바운더리에서 외따로 떨구어 놓고 있다. “홀로 떨고 있는 무대 위 작은”이라고 말이다. 음악은 영혼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정수자 시인이 그려내는 첼로 연주는 마치 클래식 음악의 세계가 초대받지 못한 파티 같은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진다.기실 이 작품은 저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바흐의 ‘첼로 모음곡 2번 d 단조’의 연주 영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즉석 연주회의 영상 속 로스트로포비치는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의자에 앉아 연주한다. 그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후 모든 감정을 담은 그의 얼굴에는 아낌없이 쏟아부은 연주자의 온 영혼이 담겨있다.하여 시인은 바흐의 첼로 연주곡에 감상자인 자신을 곡에 삽입하여 마치 의자에 체감되는 첼로의 전율하는 현을 의자 자신이 온몸으로 감내하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의자는 “둔부를 껴안는 즉시 타오를 듯 팽팽”하다. 연주장의 “공기 중에” 조심스럽게 퍼지는 현을 “정비하듯”“잔기침들 다듬으며” 연주 전 한껏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주가 무르익을수록 의자의 다리에“소름”이 돋는다. 이제 의자는 첼로 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고조된“마지막 현을 조이는” “긴 고독의 전희처럼” 장벽도 연주도 탈주를 감행한다. 마침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를 작은 의자는 “다리가 다 녹아나도”견디며 그 경이로운 현의 전율을 체득한다. 이희정시인 우리가 정수자 시인의 시를 현대시조나 정형시라고 부를 때 발견하게 되는 언어의 형상은 무반주 첼로의 현으로 대입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슴을 손끝으로 누르고 떨리는 혀끝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뒤, 가지런히 고르는 고독한 마음의 현이다.마찬가지로 시인이 매번 마음이 약동하는 순간이 아니라, 감정이 잦아드는 마지막 순간에 대해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주의 절정에서 고조되는 감동의 격정이 아닌 감정이 고요해지는 순간에 대한 이 명연주는 혼이고 영혼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연주한 의자는 첼로의 음역만큼 깊이 파고든다. 어떤 연주든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 연주의 의미가 된다. 이 숭고한 의자의 연주는 삶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완전한 고요와 아름다움의 순간이 될 것이기에.“드디어 탈주하는 무반주 활의 광휘, 의자는 커튼콜이 없다 열 없이 사라질 뿐”

2023-08-27

시민과 함께 열어 갈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이강덕 포항시장 지난 7월 20일 포항의 미래를 새롭게 쓸 역사적인 겹경사를 맞이했다. 바로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예비타당성 조사 최종 통과를 한꺼번에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국가 경제 안보와 탄소 중립을 선도할 미래 신산업 혁신도시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뜻깊은 경사였다. 무엇보다도 이들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50만 시민의 응집된 뜨거운 열망과 단합된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아울러 경북도와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도·시의원과 기업, 시민·사회·경제단체와 교육기관 등 지역 사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돼 지혜와 역량을 모은 것 역시 큰 원동력이 됐다.그동안 우리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차전지와 수소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자 노력했고, 차별화된 RD 인프라와 기업 투자 환경을 마련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방사광가속기 등 풍부한 산학연 RD 기관 및 우수한 인재, 광역 교통망 보유 등 강점을 바탕으로 2019년 배터리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받아 전국 유일 4년 연속 우수 특구로 선정되었으며,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및 국제공인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 등 신산업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또한 시의회와의 협력을 통해 이차전지·수소 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조례를 선제적으로 제정한 것을 비롯해 전담 조직(배터리첨단산업과·수소에너지산업과)을 신설하면서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 근거, 추진 동력 또한 마련했다.이러한 선제적 노력의 결실로 포항은 2027년까지 이차전지 관련 기업으로부터 14조원에 이르는 투자가 약속되어 있고, (주)한수원의 연료전지 발전소가 준공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연료전지 전문기업 FCI 생산공장도 곧 착공할 예정이다.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예타통과는 그동안 축적된 역량과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로 포항이 제철보국에 이은 전지보국(電池報國)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혁신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따라서 이제는 특화단지와 클러스터를 더욱 고도화 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맞춤형 후속 전략의 본격 추진을 통해 기업 상생 산업 생태계 조성과 도시와 기업 동반 성장의 핵심인 혁신 인재양성 등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경북도 등 유관기관과 함께 이차전지 특화단지 및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추진단을 출범하고 기업 협의체를 구성해 특화단지·클러스터의 조속한 구축과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기업이 원하는 상생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또한 배터리 글로벌 혁신특구, 수소특화단지, 기회발전특구 등 규제 특례·세제 혜택 등으로 기업의 지방 이전과 혁신 성장을 촉진할 투자유치 인프라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국제 규모의 컨퍼런스, 포럼 등을 지속 개최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포항이 가진 미래 비전과 성과를 대내외에 알릴 계획이다.이러한 노력을 통해 글로벌 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신산업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첨단산업 생태계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갈 계획이다. 세계 1위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도시로 도약할 비전과 세부 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해 오는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 생산, 양극재 매출액 70조원, 고용 창출 1만5천명을 달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소 분야도 2030년까지 기업 70개사 유치와 3천600여명의 고용을 이끌어 내는 등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 인구가 들어와 살기 좋은 정주 여건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계속해가겠다.포항시민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위대한 저력을 갖고 있다. 또한 포항은 제철산업을 통해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특별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50만 시민과 함께 전지보국(電池報國)의 일념으로 포항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대한민국 신산업 혁신과 지역균형 발전을 주도해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8-27

사실과 믿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처리수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미 2021년에 방류를 결정했고, 올해 1월에 구체적인 방류시기를 예고한 터라 그 동안 이 문제로 찬반양론이 분분했는데, 방류가 시작되고 나니 인터넷이 더 뜨거워졌다.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쌓이게 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일과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 시스템이 파괴되어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면서 시설 내 용수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로 오염되었다. 이 원자로 연료봉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투입하고 있어서 원전에서 매일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올림픽 수영장을 500개 넘게 채울 수 있는 양이 1000여 개 탱크에 저장되어 있는데 한계에 다다라 2021년에 방류를 결정하고 이번에 첫 방류를 시작했다. 하루 약 460톤씩 17일간 7,800톤을 방류하고, 내년 3월까지 같은 방식으로 세 번 더 방류한다고 한다. 현재 저장된 오염수를 모두 방류하는 데 30년을 잡고 있다.문제는 이 오염처리수에 삼중수소라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기준에 맞게 희석시켰다고는 하지만, 이 위험물질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지는 않는 실정이라 많은 시민이 반대하고 있다. 내 지인들은 대부분 반대 의견이라 반대에 기울다가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에 반박할 거리가 마땅치 않다. 반대하는 입장의 논거는, 일본이 한국과 가까우니까 위험하지 않겠느냐거나 막연히 안전하지 않다고만 할 뿐인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는 논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삼중 수소가 자연에도 있다는 사실, 방류기준이 리터당 1만 베크렐(삼중수소 등 핵물질의 방사능 측정 단위)인데, 현재 방류하는 물의 삼중 수소 농도는 그보다 6배 낮은 1500베크렐이라는 사실, 해류의 흐름으로 보면, 방류된 물이 한국으로 바로 오는 것이 아니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캐나다 쪽으로 갔다가 한국 근해에 오는 데는 3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방류를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게다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과 해일로 ALPS처리 되지 않은 방사능 물질이 많이 방류되었는데, 그 후 10여 년간 태평양의 방사능 물질 농도와 수산물을 조사 결과 위험한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다 알아도 불안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가장 근원적인 불안의 실체는 원자력에 대한 불안이다. 그러나 원자력을 반대하는 것과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국면에서 시급히 해결할 과제는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비호감과 불신이다. 믿음에는 사실뿐 아니라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고 싶고, 미워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가 여러 실책으로 비호감을 쌓아온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국민의 오염처리수 불안을 해소하는 지름길은 국민을 위해 정부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202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