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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라진 시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석면 제거공사를 한다고 대학원동 건물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방학 기간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본부의 구상에 따라 연구실을 정리해야 했다. 이번 학기 시작 전부터 나는 연구실에 있는 책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러시아어, 영어, 도이치어, 한국어 그리고 기타 언어로 된 적잖은 분량의 책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 아닌가?!나의 의도는 선량한 의지 때문에 관철되지 못했다. 몇 년 전 명예퇴직한 동료 교수가 인문학 카페를 열겠다는 뜻을 표명했고, 그곳에 다채로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퇴직 이후 인문학 카페의 고객이자 운영자로 자신을 설정했기에 서책 정리는 자연히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의지는 의지로 멈췄고, 정리해야 할 책만 그대로 쌓였다.혼돈의 와중에 찾아온 대상포진과 종강, 학기말 시험과 작은아들의 결혼, 어머니 기일과 시민자유대학 강연 등으로 연구실 정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개의 책상 서랍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러다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과 마음이 동시에 멈춘다. 오래전에 찍은 색바랜 사진과 예상치 못한 편지나 엽서가 곳곳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어떤 글의 주인은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사진의 주인공은 아직도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연말에 받은 수많은 연하장과 단양 사인암 부근에서 찍은 사진을 모은 작은 사진첩이 인상적이다. 20년도 더 지난 사진 속의 나와 그들은 우리가 되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 거기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사건을 경험했던 것일까?!현재는 과거의 누적이고, 미래는 현재의 누적이다. ‘시간의 화살’이 말하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날아간다. 그것의 역행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미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현재는 과거로 쏜살같이 달아나기 때문에, 시간은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과거로 질주한다.시간이 미래로 날아가든, 과거로 질주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사라진 시간 속에서 망실(亡失)된 나의 지나간 사건과 인연과 관계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어쩌다가 나는 그 모든 사건과 인연과 관계를 잃어버리고 지금과 여기, 우두망찰 홀로 서 있는 것일까. 사라져버린 시간을 나는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젊은 날, 빛처럼 찬란하고, 색처럼 아름답고, 꿈처럼 빛났으며, 아침이슬처럼 영롱했던 눈망울과 힘차게 작동했을 심장 박동 소리를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100세 시대를 말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한 100세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100세를 채우는 현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장수하는 것이 자랑인가?!남들처럼 나 역시 인생 3막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 어떤 사건과 관계와 인연이 나와 함께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전처럼 궁금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달빛 비추는 대로 살아갈 모양이다. 오늘 밤엔 뻐꾸기 울음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2023-06-25

내년 총선 TK민심, ‘박근혜 정서’ 만만찮다

본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에브리씨앤알에 의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경산)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영주·영양·봉화·울진) 출마예상지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친박정서’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TK의석 석권을 노리는 여권으로선 총선공천에서 이러한 민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산지역 주요 출마예상자 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최 전 부총리가 37.9%, 현역인 윤두현 의원이 19.6%, 조지연 대통령실 행정관이 4.9%를 얻었다. 부동표가 30%를 넘어섰지만, 최 전 부총리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다. 윤 의원이 여당 공천을 받고, 최 전 부총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가상대결에서도 최 전 부총리 39.5%, 윤 의원 26%로 격차가 13.5%였다.영주가 고향인 우 전 수석은 영주·영양·봉화·울진 지역구 조사에서 30.3%의 지지율로 현역인 박형수 의원(23.9%)을 제쳤다. 우 전 수석은 무소속 출마를 가정해도 35.1%의 지지율을 기록, 박 의원(33.5%)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최 전 부총리나 우 전 수석 모두 내년 총선출마를 사실상 굳힌 상태다. 경산·청도권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최 전 부총리는 최근 자주 경산에 머물며 과거 인맥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전 수석도 TK 지역구를 염두에 두고, 검찰 재직 시절 가깝게 지냈던 언론인들과 접촉하며 정치적 보폭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이번 본지 여론조사 결과, 여권의 지지기반인 TK지역에서의 박 전 대통령 영향력은 만만찮은 것으로 드러났다.현재 대구 달성군 사저에 칩거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동화사를 공식 방문할 때처럼 외부 활동을 재개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판세를 흔들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힘으로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친박계 공천이 전국적으로 핫이슈가 되면 수도권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고, 그렇다고 TK지역 민심을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2023-06-25

대구경제 역대 최고… 대구굴기 신호탄 되길

대구시는 지난주 민선 8기 1년의 대구경제에 대한 브리핑을 가졌다. 브리핑의 요지는 홍준표 대구시장 체제 출범 후 1년동안 대구의 각종 경제지표가 전반적으로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침체 국면에 빠진 전국적 상황과는 대비되는 결과로, 대구경제의 변화를 감지하는 유의미한 수치로 풀이돼 주목된다.올 1분기 대구의 경제성장률은 3.8%다. 전국 경제성장률 0.9%보다 2.9% 포인트 높다. 자동차 부품과 2차전지 중심의 제조업 생산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고용분야도 많이 좋아졌다. 동북지방통계청에 의하면 15세 이상 고용률은 61.8%, 취업자 수도 128만명으로 모두 역대 최고다. 실업률은 2.9%로 전년 동월보다 0.5% 포인트가 감소했다. 대구 수출증가율은 작년 8월부터 연속 8개월 전국 1위다. 전국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했으나 대구는 2억달러 흑자를 냈다.또 지난 1년동안 대구시가 체결한 투지유치 규모는 총 21개 기업, 4조5천여억원으로 지난 10년간 규모와 맞먹는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차전지 소재 기업인 엘엔에프와 반도체 설계기업인 텔레칩, 미국의 보그워너 등 자율주행, 로봇 등 미래신산업 앵커기업의 지역투자가 활발했다는 점이다. 또 대구경제 성장을 이끄는 것도 과거 서비스업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대구는 30년동안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홍 시장은 취임 후 대구굴기를 외치며 전국 3대도시 명예를 되찾겠다고 했다. 첨단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조금씩 대구경제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1년 대구 경제성과가 호조세를 보인 것도 이런 산업구조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경제가 단시간에 좋아지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기업친화적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면 언젠가 놀랄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전국 3대도시 위상회복도 불가능 한 일이 아니다. 대구는 앞으로 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 스마트산단 조성과 같은 많은 호재가 기다리고 있다. 시는 심기일전해 대구굴기를 달성하길 바란다.

2023-06-25

구글의 목표관리 비밀, OKR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북부 아프라카에는 스프링벅이라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의 특징은 무리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하루에 서너 번씩 떼로 달리는 습관이 있고, 무작정 달리다가 몇 마리가 벼랑에 떨어져 죽으면 멈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풀을 뜯기 위해 앞으로 조금씩 달리다가 나중에는 목적을 잃고 무작정 뛰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이로 인해 처음에 어떤 목적이 있다가 목적을 잃어버리고 목적과 다른 행동으로 변질한 것을 스프링벅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연구결과는 지구상에서 스프링벅 다음으로 목적을 잃어버리고 행동하는 동물이 있는데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많은 리더가 처음에는 선명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프링벅 현상이 나타나 목적을 잃어버리고 직원들을 통솔하지 못하는 모습과 MZ세대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 방식을 고집하여 이들과 불통하는 사례가 많아 구글의 목표관리 비밀인 OKR 방식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OKR(Objectivekey Results)은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의 약자로, 측정 가능한 팀 목표를 설정하고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목표 설정 방법론이다.인텔 CEO 앤드루 그로브가 처음 도입하였고, 존 도어가 실리콘밸리 전파하여 현재는 구글, 홀푸드마켓,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에서 성공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OKR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연간 계획을 세우고 1년에 한두 번 점검하는 Top Down방식인 MBO(Management by Objectives)와는 달리 단순한 절차를 통해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단기간에 집중하면서 유연하게 운영하는 목표관리 방식이다.구글은 개인의 OKR을 사내에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서로가 피드백을 주어 건강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리자는 주나 월 단위로 진척상황을 피드백하므로 성과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이 방식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였다는 것이다. MZ세대와 OKR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첫째 MZ세대는 구체적인 목표를 원한다. OKR은 이들이 신나게 일하게 하려고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매일의 To-Do List를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둘째 MZ세대는 의미, 영향력을 중시한다. 이들은 자주, 또는 즉시 자기 일에 점검받고 그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OKR은 이들이 짧게는 주간 또는 최소 월 1회 달성도를 점검하고 피드백을 제시해 준다. 셋째 MZ세대는 성장감을 느껴야 한다. 이들은 이직이 능력의 증거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 역량 개발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OKR은 이들이 3개월만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제시해 준다. MZ세대에 적합한 구글의 목표관리 방법인 OKR을 자사에서 바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과 철학을 잘 이해하고 배워서 소통의 도구로, 성과 개발의 도구로, 조직문화 구축의 도구 등 자사 맞춤형으로 적용해 나아가길 바란다.

2023-06-25

삶의 격, 죽음의 격

유영희 작가 요즘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노화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나이만 들면 좋으련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병원 신세 질 일도 많아지고 치매도 증가 추세다. 하루에도 한두 건, 많을 때는 네 건씩 배회중인 어르신 찾는 문자가 오고, 엄마도 파킨슨 병 합병증으로 치매를 오래 앓다가 돌아가셔서 치매는 특히 신경 쓰인다.2022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897만 명 중 치매 환자가 90만 명으로 추정 치매 유병률이 10%이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700만 명이 되는데 이 계산대로 하면 170만 명이 치매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질환으로 장기요양 등급을 받게 될 인구 추정치는 300만 명이라고 한다. 2040년이면 내 나이도 80세이니 치매에 걸리지 않거나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다.이런 환자를 관리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치매 환자도 고통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엄마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삶이 고통스러워 15층에서 뛰어내리려고 베란다까지 나가셨던 적도 있다.아무리 생명 연장술을 연구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의 발달로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하기 어려운 상태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현대 의료 시스템은 환자가 아무리 고통 받아도 죽는 그 순간까지 치료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환자나 그 가족도 마찬가지다. ‘왜 나는 75세에 죽기를 바라는가’를 쓴 미국 의사 에스겔 임마누엘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노인 5분의 1가량이 죽음의 마지막 달에 외과 수술을 받는다고 하니,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이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케이티 잉겔하트의 ‘죽음의 격’은 노년은 물론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른 사람들이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지 취재한 기록이다.그가 어떤 죽음이 품격 있는 죽음인지에 대해서 직접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바로 괄약근 조절능력을 잃었을 때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전해준다.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죽음을 치료할 수는 없다. 죽음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순간에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면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탐색하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마음의 준비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한 달 전부터 몸 상태를 기록하는 ‘몸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2040년 80세를 맞는 어느 하루, 나의 몸을 상상하는 일기도 써봐야겠다.

2023-06-25

탄소 중립과 대한민국이 할 일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월드 그린 뉴딜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에서 “기후 위기는 인류가 사상 처음으로 스스로를 ‘멸종 위기의 생물종’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와 같은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 상황은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동의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기후 위기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1760년 석탄을 연료로 한 내연기관이 촉발한 산업혁명 이후 계속 탄소가 누적되어 생긴 문제다.전 세계는 지금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 누적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015년 12월 12일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2.0도 이상 기후가 상승하지 않도록 195개국이 탄소 배출량 단계적 감축안에 대해 협정을 체결했다.기후위기 대응은 탄소경제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 전환은 한 나라만이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전 인류가 함께 공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글로컬 그린 뉴딜과 스마트 디지털 3차 산업혁명이 부상하는 이유다.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IT제품 등 거의 모든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다투는 대한민국이 왜 스마트하고 디지털화한 3차 산업혁명에 낙오되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1·2차 산업혁명을 정상경로를 생략한 채 정부 주도로 압축적으로 돌파했다. 전쟁 치르듯 산업혁명을 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아직도 관주도형 경제에 익숙하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개발시대에 함몰돼 ‘하면 된다’ 는 추격자 정신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파리기후협약에 195개 국가가 협정을 맺을 때 우리나라도 당사국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행보를 보면 우리나라는 후진국, 개발도상국적 사고에 젖어 기후변화에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생각이 없다.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블랙아웃을 경험한 후 600만kw에 달하는 석탄발전소 건립 계획을 세워 최근 3기 준공되었고 4기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석탄발전소를 폐기하는 조류에 전적으로 역행하는 행위다. 당장 폐기되고 ‘좌초자산’이 될 것이 뻔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에 17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지금까지 투입하고 있다.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보완해야 할 송배전망 또한 미궁에 빠져 있다. 제주도를 시범지구로 해서 재생에너지 기반 스마트 마이크로 그리드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도에 재생에너지가 지난해 18%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132번 셧다운이 일어났다. 한전의 독점적 송배 전망이 분산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도를 보완하지도, 적합한 정책을 수립하지도, 예산을 투입하지도 않은 채 방치해온 결과다. 앞으로 육지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최근 볼보와 GE가 납품 기업들에게 2030년까지 RE100을 요구하면서, 확답을 못한 업체들에겐 장기 납품 계약을 파기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평택에서 구리 수도꼭지를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은 5년 전부터 공장을 이전 확장할 계획을 세웠는데, 부지 찾기도 힘들고 유럽에서 RE100까지 요구하고 있어 이참에 RE100이 가능한 헝가리공장으로 전부 이전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탈원전까지 감행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정책은 실패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관한 상위 법령을 정비하지 않아 전국 226개 시·군·구가 각자 조례를 통해 마을에서 300~500m, 도로에서 300~500m 등 태양광 설치 거리 제한을 둔 것이 대표적이다.구미시는 시 전체에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면적이 0.09% 뿐이라고 한다. 지난 정부의 제도적 방치 속에 태양광은 온갖 괴담에 시달리다가 이제 가장 대표적이 혐오시설, 기피시설이 되어버렸다.독일의 경우 주민 민원에 대해 해당 공무원과 환경단체가 적극 설득하여 태양광 설치가 6개월이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시민단체들이 주민들의 민원을 부추기고 공무원들조차도 사업자에게 민원해결을 떠맡기고 수수방관한다. 공무원, 시민사회, 국민 모두가 아직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인 것처럼 생각한다.며칠 전 한 언론에 ‘주요국 기후변화 손실과 피해 보상’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50년까지 1.5도 온도 상승 목표를 지키려면 앞서 과도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2050년까지 170조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탄소배출 13위인 우리나라는 2조7천억 달러(한화 3천105조 원)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후진국들의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나라에 배당된 청구금액이다. 유럽 선진국에 비해 20년 정도 뒤졌지만, 지금부터라도 모든 힘을 다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후진국들의 에너지 전환을 앞장서 돕는 것이 우리나라의 할 일이다.

2023-06-25

자연견습공

이원만 시인 국어어원사전을 보면 ‘삶’은 ‘불’의 뜻을 가졌다. 같은 어원을 가진 ‘사랑’에 불타는, 뜨거운 같은 불과 관련한 수식이 붙는 것도 그런 연유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물과 불과 공기와 흙 중에서 불을 가장 소중히 하는 불의 문명을 가꿔왔으니 쓰는 말들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너무 불을 강조하다보니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할 행성이 뜨거워 질 정도가 되었다. 유럽, 호주에 이어 캐나다가 불길에 휩싸였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불에 집중되어 있었고 삶도, 사랑도 뜨거워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지구가 과열된 것이다. 열이 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기침을 하는 것처럼 지구의 안정된 리듬이 깨졌다. 기후변화, 기후혼란은 그런 것이다.‘화염의 문명’이 실패했다면 물과 공기와 흙을 가지고 더워진 지구를 식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보다 물과 공기와 불과 흙을 잘 다루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 인간이외의 생명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우리는 자연을 이용하기에 바빴다. 철학자 마이클 마더는 ‘식물의 사유’(알렙 2015)에서 “21세기의 비극은 우리가 연소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연소될 수 있는 것들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됩니다.”고 했다.그리고 그 대안을 식물생명에서 찾는다. “식물생명은 식물의 영혼이 식물의 신체에 자신을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파괴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관입니다. 이 에너지는 다른 식물, 동물, 인간 존재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며 ‘더불어 번성하기’를 주장한다. “식재료, 건축재료, 광합성을 일으키는 식물기계, 자기 복제하는 녹색 물질”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식물과 자연의 ‘고요한 번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다시 ‘자연의 견습공’이 되자고 한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더더욱 빨리 성장하는 식물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견습공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안도현시인의 이런 시는 어떤가?초록 풀잎 하나가/ 옆에 있는 풀잎에게 말을 건다/ 뭐라 뭐라 말을 거니까/ 그 옆에 선 풀잎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풀잎이/ 또 앞에 선 풀잎의 몸을 건드리니까/ 또 그 앞에 선 풀잎의 몸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들끼리/ 한꺼번에 흔들린다/ 초록 풀잎 하나가 뭐라 뭐라 말 한 번 했을 뿐인데/한꺼번에 말이 번진다/ 들판의 풀잎들에게 말이 번져/ 들판은 모두/ 초록이 된다 (안도현 ‘초록풀잎 하나가’전문-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상상 동시집 2023)이 동시집에는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식물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동시통역하는 동시로 가득하다. ‘팽나무가 오 백년 동안 일해서 만든 그늘’을 펼쳐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인간이외의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비인간생명들과 공생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기를 자극’하는 이런 시들을 읽고 나면 나무도 바위도 풀도 뱀도 다람쥐도 사촌쯤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식물-되기, 동물-되기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더 좋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끄고 지구를 식힐 수 있지 않을까?평생 바다와 인간의 사이에서 살아오신 동해안 별신굿 보존회 선생님들과 쓰레기매립장에 버려진 고래가 너무 안타까워 고래진혼굿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할 때 누군가 그랬다. “오늘은 ‘지구식힘굿’을 해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합니다.” 그날의 그 사진엔 모두가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겼다. 모두가 불의 문명을 식히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평생 해 온 일을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게 ‘지구식힘굿’으로 말하는 ‘생태적 깨달음’은 예술가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느끼고 감수성의 변화로 이어져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지구식힘굿’으로도 변용하는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에 바다도 좋다는 듯 시원한 바람을 밀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자신의 입으로 인간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식물의 말, 동물의 말, 물의 말, 흙의 말, 바다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입을 빌려주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시인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 읽기는 인간중심주의 한계를 넘어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친척으로 만들어 주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모기약을 쓰지 않고 수건 한 장으로 방안의 모기들을 내쫒는 공생의 공력을 키우려면 생태적 감수성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야 할 것이다. 함께 자연의 견습공이 되어 풀잎들 옆에 같이 서서 뭐라 뭐라 말을 전달하는 것쯤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 온 뒤 운동장의 풀처럼 늘어났으면 좋겠다.

2023-06-25

‘괴물’이 된 차별과 혐오

홍석봉 대구지사장 한때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살색’이 있었다. 사람의 피부색과 가까운 색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사용했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이라는 표현이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뒤 ‘살색’ 표현은 사라졌다. ‘살구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세계화와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살색은 자칫 인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살색 이름 폐기는 피부색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름과 차별을 인식하고 받아들인 첫 사례가 아닌가 싶다.대구 퀴어문화축제가 ‘불법 도로 점용’과 ‘정당한 집회의 자유’ 보장이라는 이해가 맞부딪혀 법적 다툼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 논란은 뒷전이 됐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무슬림 유학생과 지역 주민의 갈등이 종교 분쟁 양상을 띠며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보수 도시 대구가 성소수자 차별과 종교 혐오의 중심에 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퀴어축제와 도로 점용은 성다수자의 권익 보호에 배치된다며 반대했다. 이슬람 사원 건립에 대해선 “건립 반대는 종교의 자유 침해일 뿐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반한다”며 포용을 주문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라는 비판이 일었다.성소수자를 보는 시각은 아직 싸늘하다.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위험시한다. 이해와 현실은 달랐다. 이슬람 종교에 대해서도 여전히 배타적이다. 하지만 이슬람 사원의 주택가 건립 문제는 이슬람만 특별히 차별한 것이 아니다. 주택가 종교시설은 애시당초 기피시설이었다. 주민들은 집값 하락 등을 우려, 종교시설을 오래전부터 반대했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시설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퀴어문화와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기존의 가치관을 교란하고 낯익은 질서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 보이는 거부반응이다.표현과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내 자유가 중요한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지금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넘쳐난다. 군 입대를 거부하는 종교단체, 차별을 거부한 장애인 차별연대, 세월호 희생자 혐오와 이태원 참사 피해자 혐오, 여성 혐오 등 차별과 혐오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불신과 알력을 자양분삼아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괴물이 됐다. 미국 등지에선 혐오가 증오로 이어져 유색인종 테러 등 범죄로 표출되기도 한다. 유명인사도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EPL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은 ‘째진 눈’ 조롱을 받았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성과 인종차별의 상징이었다. 혐오와 차별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공자는 논어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태도, 가치관 등이 다름을 인정할 때 만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사라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2023-06-22

신공항 건설에 지역업체 참여 길 넓혀야

그저께 대구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2차사업 설명회는 100군데가 넘는 지역건설사가 참석해 신공항 사업에 대한 지역업계의 관심도를 반영했다. 단군이래 우리지역에서 이뤄지는 최대규모 공공사업이어서 지역업체의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하고 또 이런 점을 고려, 대구시도 지역업체만을 위한 별도의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문제는 11조5천억원이 드는 군공항 이전사업에 지역의 업체들이 얼마나 많이 참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건설사 관계자도 지역업체 참여 방법에 초점을 두고 많은 질문을 던졌다.직접 답변에 나선 홍준표 대구시장도 “신공항 사업은 대구경북의 100년 미래를 바라본 지역사업인 만큼 지역의 우수 기업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사업규모가 방대해 자본력이 앞선 대기업이 공동출자법인(SPC)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지역업체들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군공항 이전사업은 과거에는 없었던 지역에서 이뤄지는 대역사(大役事)다. 후적지 개발과 주변 공단조성 등 신공항 개발로 발생하는 사업의 규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이번 사업은 신공항 조성으로 지역의 산업구조를 혁신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만 신공항 건설과 연관된 사업의 발주로 지역 경제를 진작시키는 것도 사업 시행의 주요 이유다. 지역업체를 이 사업에 많이 참여시키는 것은 사업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대구시가 앞장서 지역업체의 참여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신공항 특별법에도 지역기업에 대한 우대 근거가 마련돼 있다. 대구시는 향후 시행령에서 지역업체가 참여할 좀더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홍 시장은 “원청업체의 갑질 행위를 적극 막겠다”고 밝혔으나 과거 관행으로 볼 때 하청구조의 지역업체의 불이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한편 지역업계도 지역의 산업구조를 바꿀 역대급 공사가 지역에서 발주되는 만큼 사명의식을 갖고 이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높은 기술력과 성실 시공으로 기업이 도약하는 기회로 삼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3-06-22

경북형 라이즈사업, 시군발전의 새 동력되길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사업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경북도가 지난 21일 도내 대학총장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라이즈 지역협업위원회 지역대학 분과위’를 열었다. 지방정부와 대학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라이즈는 지방정부 주도로 대학을 지원하는 체계이며, 2024년까지 시범지역 운영을 거쳐 2025년 전 지역에 도입된다.경북도는 분과위 회의에서 라이즈사업 시행과 관련한 다양한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대학들로선 가뭄에 단비와 같은 내용이었다. 경북도는 우선 지방정부 가용 재원의 10%를 대학에 투자하기로 했다. 단 대학이 지역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경북도는 특히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된 대학들에 대해서는 지방비 1천억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했다. 일단 예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된 안동·경북도립대(통합추진)와 포항공대, 한동대가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 인재양성 시스템은 도내 22개 시·군 모두를 대상으로 가동된다. 각 시·군마다 특화산업이 있는 만큼, 대학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관련인재를 육성한다는 생각이다. 경북도는 이와 관련, 지난주(15일) 지자체와 대학, 공공기관, 기업 간 협업체계 구축을 위해 라이즈 지역협업위원회 업무협약을 체결했었다.정부는 지난 3월 대학지원에 관심이 있고 관련 조직을 운영해 온 광역자치단체 7곳을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이들 시범지역이 글로컬대학 선정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나돌아 시끄럽기도 했다. 경북도는 연내에 라이즈 전담조직(대학협력관)을 만들고, 시범사업이 끝나는 2025년 이후에는 이 조직을 확대해 교육정책국 직제를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라이즈사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지방정부의 대학지원 역량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를 시범시행하고 있는 각 지방정부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대학들과 긴밀히 협력해 라이즈사업이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3-06-22

두 자녀가 다자녀인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자녀 출산과 관련한 표어를 시대별로 나열해 보면 그 시대의 출산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표어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이다. 이때 유행한 ‘3.3.35 운동’은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운동이다.1970년대 와서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다. 두 자녀만 갖자는 캠페인이다. 2000년대 들어서 등장한 가족 캠페인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한 자녀보다 둘, 둘보다 셋이 더 행복합니다”는 것이다.출산 캠페인에서 시대적 흐름의 격세감을 느낄 수 있다.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 결혼한 부부가 한 자녀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구 감소의 절대적 이유다. 합계출산율은 OECD국가 중 꼴찌며 OECD 평균의 절반도 못 따른다.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로서 위기감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넓게 확산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개선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출산율은 해마다 되레 낮아지고 있다.구미의 어느 목사 부부가 12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다섯 쌍둥이를 낳은 어느 군인 부부의 육아 이야기가 젊은 세대들한테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올들어 다 출산 장려책으로 각 지자체가 다자녀 기준을 3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있다. 대구시도 현재 3자녀 이상 기준을 2자녀 이상으로 낮추는 것을 두고 고민 중이라 한다. 기준을 완화하면 각종 혜택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두 자녀를 다자녀라 부르는 어색함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22

유월 한가운데

강길수 수필가 유월 한가운데다. 정수리에 내려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예전엔, 지금쯤 한창 필 장미꽃은 다 졌다. 늦둥이로 피어난 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외로울 뿐이다.올 유월을 맞으며 든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였다. 우리나라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도 안 될 역사가 숨 쉬는 달이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6·25 동족상잔이 벌어진 유월’이다. 하여, 1963년 ‘호국보훈의 달’로 유월이 지정되었을 터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달이며, 1987년 6월 항쟁을 품은 달이기도 하다.자유와 민주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목숨 바쳤던 선열들과 함께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호 열차가, 유월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문득 바라본 차창 밖 마음의 모니터엔 홀연, ‘한국적 민주주의’란 글이 나부낀다. 웬일일까. 내 무의식은 왜, 유월 한가운데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소환했을까.‘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이 많이 쓰인 것은, 1972년 제4공화국 유신체제 출범 전후였다. 유신의 당위성을 함축한 이 말이, 올 호국보훈의 달에 가슴을 물들인다. 작금의 우리 사회상이, 10월 유신 같은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잠재의식의 외침인가. 입으론 국민을 팔며, 제 속 채우기에 급급한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 행태가 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잘못 커닝이라도 한 것일까.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일찍이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 주권자가 국민이고, 국민이 뽑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제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이하 선출, 비선출직 모든 공직자는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할 천부적 사명이 주어진다. 만일 공직자가 사적인 것과 반국가적 일을 탐한다면, 그 자체가 죄다.나는 유신체제 때 취업, 결혼하여 셋방살이 새 가정을 꾸렸다. 제철소 기능직 사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주경야독하면서도 즐겁고 희망찼다. 기간직 앞에서 가끔 주눅 들기도 했지만, 급여나 분위기가 그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도, 귀족노조도 없었다. 솔직히, 산업 근로자와 서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 가장의 홑벌이로 아이 둘 키우며, 살림 살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독재니, 비민주니 떠드는 것은 정치꾼들의 선동이었다.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 정보화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온 산업 근로자 소시민으로서, 유월은 명경대(明鏡臺) 앞에 선 마음이다. 기꺼이 젊음을 바쳤던 유신 시대와 80년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진실한 민주화 시대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때 정치인들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으니까.‘정치인의 자유가 곧, 민주화’라는 정치권의 괴상한 등식…. 하지만, 그 안엔 국민이 없다. 정치꾼들은 언론, 법조, 교육, 종교, 선관위, 여론조사 등 많은 부문과 야합했다. 이를 선동, 조작, 억지 주장의 도구로 삼아 국민을 호도, 지배하고 나라를 구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저들의 속셈을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다 안다. ‘주권자 국민이 눈 부릅뜨고, 망보아야 할 세태’가 유월 한가운데가 주는 계시다.

2023-06-22

하지 지나고 맞은 단오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하지(夏至)가 지났다. 초하(初夏)의 계절이 온 것이다. 더위는 지금부터라 기온이 벌써 30도를 넘나들고, 모내기가 끝나면 장마철 시작이니 곧 장마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그다음 날이 음력 5월5일 단옷날,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다. 수릿날(戌衣日), 천중절이라고도 하며 설, 추석과 함께 3대 명절이며 각종 전통문화 놀이가 열리게 된다. 단(端)은 첫째, 오(午)는 낮이라는 뜻 외에도 다섯(五)의 뜻도 있다 하여 단오는 ‘초닷새’를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6월 초·중순에 드는데 올해는 하지가 지나서 있는 것은 윤2월이 있었기 때문이다.지역에 따라 더운 날씨에 밤새 비가 내렸고 중부 지방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와 함께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단오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재상 굴원(屈原)이 모함을 당하여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자살한 날이라 그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풍습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고 한다.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고운 머리칼에 창포 뿌리로 만든 창포잠(菖蒲簪)을 꽂고 창포잎 이슬로 화장한 고운 얼굴에 녹의홍상(綠衣紅裳) 꾸며 입으면 봄의 여인이 된다. 쑥과 익모초, 그리고 산나물의 왕이라는 수리취 잎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고, 여자는 그네뛰기 하며 담 밖을 내다보고 남자는 활 쏘며 씨름하며 힘을 과시했다. 그래서 이날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씨름의 날’이기도 하다. 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큼지막한 돌을 끼워 넣어 ‘시집보내기’를 하며 대추 풍년도 기원했고 약쑥 한 다발 묶어 대문 옆에 세워두어 재액을 물리치려는 벽사(8F9F邪)도 하였던 단옷날 풍습도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어저께 시골집에 가서 담장 안쪽에 무리 지어 자란 인진쑥을 한 아름 뜯어 묶어 처마기둥에 걸어두고 왔다. 포항문화원이 올해 ‘제27회 포항단오절 민속축제’를 준비했다. 23일 오전 10시 종합운동장 옆 만인당 잔디밭에서 29개 읍면동과 문화원 산하 4개 문화반 등 33개 팀, 시민 1천여 명이 참여한 다양한 전통문화 축제를 펼친다. 흥해 농요팀, 월월이청청 보존회 등이 개막식을 흥겹게 하고 이어 줄싸움, 한복맵시 자랑대회, 노래자랑이 열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숨죽였던 시민에게 새 활력을 주며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전파하려고 한다.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포항시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니 ‘포항소식-행사·축제’ 항목에는 행사명과 장소만 적혀있을 뿐 구체적 사항은 비어있어 알 수가 없다. 포항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지만 포항시에서도 지원하는 행사이니만큼 자세한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국내 각 지역에 고유한 단오제가 많다. 강릉단오제, 안동 풍년기원제 등이 유명하고 경산 자인단오제는 여원무(女圓舞)를 우아하게 추는 ‘한장군(韓將軍)놀이’와 대학 장사 씨름대회가 문화행사로서 눈길을 끈다. 어제까지 흩뿌린 빗방울이 장맛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지만 뜨거움을 날려달라고 단오굿 하듯, 나쁜 기운 몰아낼 단오축제를 즐기며 풍성한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갔으면 한다.

2023-06-22

수능, 대학,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교육이 위태롭다. 수능이 불안하다. 겨우 150일 남은 올해 수능을 앞두고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헤아리느라 모두들 혼돈스럽다.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과 적당히 어려워야 변별력이 있다는 의견이 부딛힌다.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고 학부모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책의 논의와 조율과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쉬움과 함께 하루 하루 다가오는 수능날짜는 버겁기만 하다. 백년대계 교육을 조삼모사 당국에 맡겨놓은 꼴이라 온 나라가 조마조마하다. 논란의 가닥이 여럿이지만, 필자는 ‘언어영역 비문학 문제나 과목융합형 문제를 배제하겠다’는 교육부의 지침에 주목한다.비문학이나 융합형 문제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미래 인성을 기르는 일이다. 수험생의 언어능력을 시험하면서 평가대상 영역을 ‘문학’으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 세대가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발휘해야 할 언어능력을 어떻게 문학 지문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비문학 소재를 다루어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도 문학작품들만 실려있는 게 아니다. 문학작품 읽기와 쓰기가 물론 주요 관심사이지만, 언어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가닥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역사 이야기, 진로탐색 스토리, 매체습관 훈련 등 사회와 문화, 과학과 기술 관련 지문들이 여럿 보인다. 학생들의 언어소양을 문학 소재로만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과목융합형 문제도 제외하겠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이미 융합형 통합형 인성을 기다린다. 교과과정 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학생들의 인성을 인위적 틀에 가두는 편협한 사고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학습의 편이를 위하여 학교교육은 과목을 구분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에 도로를 개설할 때에 길 주변 마을공동체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살펴야 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할 적에 성별세대별 인식수준을 관찰해야 한다. 수능의 언어영역 문제로 과학적 글쓰기소양을 살펴야 하고 수리영역 문제에서 사회적 책읽기가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포괄적인 사고능력을 발휘하는 통합형 미래인성을 길러야 한다.수능은 12년간 초중고 교육을 통하여 길러진 수험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여 앞으로 대학교육을 받아낼 소양을 살피는 제도이다. 수험생들 간 차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문항들 사이에서 적정한 난이도 배분은 불가피하다.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치밀한 분석력을 발휘하여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지 가늠할 필요도 있다. 어렵고 쉬운 문제가 고루 등장하여 수험생의 주의력과 분석력이 적절하게 평가되어야 한다.프랑스의 학생평가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00E9at)에 올해 등장한 문제는‘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와 사뭇 다른 경우다, 하지만, 학생들의 통합적 융합적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2023-06-21

포항 송도해수욕장 개장 또 연기… 실망이다

올해는 반드시 개장될 것으로 기대했던 포항 송도해수욕장 재개장이 또다시 연기됐다. 작년에 이어 또다시 연기됨으로써 송도해수욕장 재개장으로 기대했던 주변 일대 경제 활성화 기대는 물론 포항의 명물 탄생을 학수고대했던 시민들의 실망감도 크다.포항시와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송도해수욕장 복원을 목표로 2008년 설계에 들어가 2012년 294억원의 예산을 들여 각종 공사를 시작했다,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수중방파제(잠제) 3기를 설치했고, 2021년에는 돌제(모래가 바다로 쓸려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바다 방향으로 직각으로 설치한 해안 구조물)를 철거했으며 모래 15만루베를 채우는 양빈공사도 지난해 마쳤다. 또 백사장에 채워진 모래 성분이나 기울기, 수심 등이 해수욕장 운용에 적합하다는 판정도 받았다. 올해는 반드시 재개장될 것으로 보였던 송도해수욕장이 바다시청 등 기반시설 미비로 또다시 연기 발표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수년 전부터 재개장을 목표로 준비를 해왔음에도 주민과의 갈등으로 기반시설이 미비하다는 것은 연기 이유가 될 수 없다. 행정의 미숙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차례 연기를 경험한 바 있어 재개장에 따른 행정 준비가 충분했어야 했다. 많은 시민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포항이 읍으로 승격한 그해에 정식 개장한 해수욕장으로 역사와 유서 있는 우리고장 자랑이다. 백사송림(白沙松林)의 휴양지로 전국적 명성을 날린 곳이다. 1970∼1980년대는 동해안 최고 해수욕장으로 전성기에는 한철 12만명의 피서객이 다녀가기도 했다.나이 든 대구와 경북도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이곳을 다녀간 기억이 있는 추억의 장소다. 포항시민도 언제나 쉽게 찾아와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어서 송도해수욕장 재개장이 주는 의미는 크다.특히 해수욕장 재개장으로 관광객 유입 등 지역 경제활성화와 지역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가졌던 기대가 무산된 것도 실망이다. 행정의 집행은 시민과의 약속이다.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2023-06-21

글로컬대 계기, 지방대학들 혁신에 속도내라

정부가 지난 20일 글로컬대학 15곳을 예비선정했다. 대구·경북에서는 20개 학교가 응모했지만 안동대·경북도립대, 포항공대(포스텍), 한동대 등 3곳만 예비 지정됐다. 이번 글로컬대학 공모에는 총 108개 대학이 신청서를 제출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예비선정 대학들은 9월까지 혁신과제를 구체화하는 실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며, 정부는 이중 10개 내외 대학을 최종적인 글로컬대로 지정한다. 글로컬 대학은 말 그대로 로컬대학을 국제적인 일류대학으로 육성해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다. 글로컬 대학이 되면 5년간 1천억원이 지원되며, 경북도는 추가로 대학 당 1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예비선정된 경북지역 4개 대학은 모두 파격적인 혁신안을 내놓았다. 안동대-경북도립대는 입학정원을 대폭 감축하고, 인문학 중심의 공공형 대학으로의 대전환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포항공대는 학과 간, 지·산·학 간,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3無 교육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한동대는 경계를 허무는 교육혁신을 위해 100% 학생맞춤형 전공 선택, 미국 미네르바대학, 애리조나대학과 연계한 원 칼리지 공동학습 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예비선정에서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등 대구권 ‘빅3’대학이 모두 탈락한 것은 충격적이다.정부가 글로컬 대학이라는 정책을 내놓은 취지는 지방대학을 국제적인 대학 흐름에 합류시켜 생존력을 높여보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계속 추락하는데다, 대부분 지방대학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대학들이 독자생존하려면 깜짝 놀랄만한 변신을 해야 한다. 이번에 예비선정된 대학들도 그동안 혁신장애물로 여겨졌던 학문·학과간 칸막이, 대학간 경계, 대학·산업계간의 협력부재 등을 개혁하는데 초점을 맞췄다.예비선정된 대학들은 최종문턱을 넘을 때까지 구체적인 혁신실행계획서를 준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탈락한 대학들도 2차선정에 대비해 혁신적인 개혁모델을 연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2023-06-21

자인단오제의 진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22일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단오(음력 5월 5일)다. 우리 지역에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에 신라시대부터 전승돼 온 ‘경산자인단오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단위 민속축제다. 축제 내용이 비교적 온전하게 전수돼 지역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무형문화재 44호로 지정됐다. 강릉단오제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 단오제 축제 반열에 올랐다.신라말에 왜적이 침범하자 한(韓)장군이 누이동생과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며 왜구를 유인, 섬멸해 지역을 지켜냈다. 한 장군은 이 때부터 자인면의 수호신이 됐다. 한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단오절에 제사를 지냈다. 성대한 놀이와 함께 지역 축제로 현재의 자인단오제로 이어졌다. 자인단오제가 22일부터 24일까지 자인면 계정숲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는 자인단오제의 전통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젊은 층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문화축제로 열린다고 한다.첫날은 자인단오 다섯마당 공연과 개막식이 개최된다. 둘째 날은 어린이 인형극, 동래학춤, 팝 오케스트라 공연, 고택음악회 등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지는 행사가 펼쳐진다. 마지막 날엔 강릉농악·은율탈춤·전통무예시연 등 공연과 대학장사 씨름대회가 열린다. 다양한 체험마당과 퍼포먼스도 준비돼 있다.사라져가는 전통놀이를 마냥 아쉬워 할 때만이 아니다. 잘 보존되고 있는 전통을 찾아 맥을 잇고 더욱 발전시켜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인단오제는 귀한 전통놀이로서 지역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BTS의 감성을 더하면 세계에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또 다른 K컬처가 될 수 있을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21

적게 먹고 간결히 먹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위장병으로 고생을 한다. 급체로 오는 경우도 있고 먹고나면 더부룩해서 혹은 음식만 먹으면 답답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한의원에 내원한다.위장병은 간단하게 말해서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안 먹으면 위장병으로 괴로워 할 이유는 없다. 즉 안 먹으면 좋아지는 병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영양소를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 안먹을 수도 없다. 어떻게 먹어야 내 위장을 다시 회복하고 나의 건강도 회복하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음식은 적게 먹는게 좋다. 소식을 연습하고 생활화 하자. 음식이 많이 들어오면 결국 인체는 음식을 소화 시키고 영양분을 보내고 그 찌꺼기를 소변과 대변으로 내 보내야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우리 몸의 장기와 신체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위장이 일을 한다는 자체가 위장의 피로와 장기의 피로를 유발할 수 밖에 없으니 적게 먹는 것이 좋다.간결히 먹는게 좋다. 고기나 생선 등 단백질 조금, 야채 두세 종류, 고춧가루 없는 국 약간, 밥은 반 공기 혹은 그 이하로 간결히 먹는게 좋다. 적게 먹고 반찬 가지 수를 줄이면 소화가 빨리 되고 속이 편하다. 우리나라 식문화는 다양한 반찬에 국과 찌개 고기와 생선 등 많이 올려놓고 먹는 방식인데 너무 많은 종류의 음식이 들어오고 많이 먹게 된다. 또 밥 위주의 식단이라 영양 밸런스 측면에서 좋지 않다. 고기나 생선, 야채, 밥의 순서로 배를 채우는 것이 좋다.간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식간에 심심하다고 간식을 먹으면 위장이 쉬질 못한다. 위장뿐 아니라 모든 장기와 나의 신체가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 하려고 일을 한다. 위장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굳이 안먹어도 되는데 스트레스로 혹은 입이 심심해서 버릇으로 간단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먹지말자. 특히 대부분의 간식은 과자나 음료인데 탄수화물과 당류라서 특히 몸에 안 좋다. 간식으로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중간에 먹는 탄수화물과 당류는 체중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니 절대 간식은 먹지 않는다.맵고 자극적인 것을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 음식은 맵고 짜다. 특히 매운맛이 위장에 좋지 않다. 매운맛은 통각으로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에 염증과 통증을 잃으키고 위장이 붓게 된다. 소화기 저하 뿐만아니라 체끼 등 불편함이 생기고 고춧가루가 대변으로 나올 때까지 위장뿐만 아니라 내장 전체를 불편하게 만드니 절대 매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족발은 먹어도 불족발은 먹지 말고 위장을 괴롭히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은 최대한 피하자. 내 머리를 벽에 일부러 박는 사람은 없는 법, 매운 것을 줄이고 먹지 말자.식사는 고기 먼저 야채 다음 밥은 아주 조금 국은 거의 없는 정도로 먹는 게 좋다. 꼭꼭 씹어서 먹고 적게 먹고 순서를 지켜서 먹자.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지말자. 대부분의 병은 나의 생활에서 온다. 그중에서 특히 위장의 장애는 내가 만드는 병이다. 원인이 뭐냐고 물어 보는데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많이 먹고 매운 거 먹고 간식 먹는 내가 나의 위장을 병들게 한다. 이제 위장에게 휴식을 주자.

2023-06-21

사교육과 마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사교육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는 오후 2시에 학교를 마친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의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초점은 ‘교육’에 맞춰지게 되었다. 영어는 기본으로 배워야 하고 활동적인 아이 특성을 고려해서 체육 활동도 넣어주고, 아이들의 감수성 발달에 좋은 피아노나 미술 같은 예술 계열 교육도 빠질 수 없다. 대충 이렇게 일주일 사교육 일정을 짜게 되면 월 80여만 원 정도가 된다.당연히 아내와 나는 이게 올바른 방향인지 질문한다. 초등학교 사교육비가 이렇다면, 중·고등학교는 어떤 상황일지. 그렇지만 사교육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사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게 할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이 사교육을 끊지 못하게 한다. 수도권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특목고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따로 존재하고, 부모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끌려가게 된다고 한다.지난 3월 발표된 통계청의 ‘2022년 초중고교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사교육비는 26조로 역대 최고액을 돌파했다. 흥미로운 점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 2년 동안 전년도 대비 34%나 급격히 증가한 사실이다.아이를 낳지 않아서 학생 수는 감소하는데 사교육비는 증가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결과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는 현실을 반영한다. 뒤집어 말해서 젊은 세대가 아이를 2명 이상 낳기 위해서는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최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시 사교육비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에서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지시한 대통령의 말을 교육부 장관이 쉬운 수능으로 이해해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 늦게나마 사교육비 문제를 대통령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발언이 문제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대한민국은 1970년대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했고 이후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팽창해서 지금에 도착했다.정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폈음에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분석이나 했을까?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말이나 정책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누적되고 얽힌 문제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마 우리 집도 사교육을 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선 서울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 상대적 자유를 느끼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수도권에서 더 큰 사교육 시장의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냐이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우리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2023-06-21

병오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세 번째는 병오(丙午)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와 지지(地支)의 오화(午火)는 양 중의 양이며, 태양같이 밝고 뜨거운 기운을 모두 가졌다. 동물로는 붉은 말(馬)이다.병오일주는 해가 온 세상을 비추듯이 굉장히 공평하고 밝고 명랑하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숨김이 없고 진취적이므로 적극성을 띤다. 솔직한 성격이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다. 상대방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가정사는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기에 조심해야 한다.또한 칭찬과 정에 약하다. 칭찬을 하면서 부탁하면 거의 들어준다. 친구를 좋아해 친구한테 돈을 빌려주고도 자존심 때문에 돌려달라는 말을 못한다. 병오일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둘 중 하나는 죽자고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같다. 마치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어설픈 충고를 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격앙되는 단점이 있다.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으로 타인을 자기에게 끌어들이고 동화시키는데 능력을 잘 발휘한다. 리더십이 있다는 얘기다. 전문성의 기운 즉, 프로 기질이 있어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극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매우 정렬적인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밀어 붙이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성격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자유롭고 자기 신념이 있으며, 낙천적인 삶을 산다. 그와 같은 인물로는 ‘돈키호테’가 있다.16세기 스페인의 세르반테스(1547∼1616)가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사람들은 정상 궤도에서 어긋나 괴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부정적인 의미로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돈키호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돕는 정의로운 편력기사였다. 따뜻한 인간성과 절대적인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풍차를 거인으로 본 돈키호테는 부하 산초한테 풍차를 거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산초는 거인이라뇨? 그건 풍차입니다. 팔로 보신 것은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맷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런 종류의 모험을 알지 못하는 너에겐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건 거인이라고 일축했다. 돈키호테가 보는 풍차는 약자를 괴롭히며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악의 상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약자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가는 정의의 상징이다.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진정한 기사였다.그는 “편력기사의 임무는 괴로워하는 자나, 사슬에 묶여 있는 자나,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에 눈을 돌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다”라고 산초에게 말한다. 그의 비문에는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서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자기의 운명을 택해야 한다. 돈키호테는 편력기사의 삶을 선택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삶의 의미와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도전이 없이는 성공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펙과 돈에 목을 매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키호테는 괴짜로 보일 수 있다.병오일주 여성은 시원시원하고 항상 밝게 웃는 인상이 많다. 애교가 많아 보이지만 무뚝뚝하다. 밖에서 활동하면 성공할 수 있으나, 남성의 유혹에는 약하다. 남성은 호탕하고 박력 있게 일처리를 하며 스케일과 포부가 크다. 그러나 독선적으로 자기중심적 성향이 있어 지탄을 받아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예의 없는 태도를 싫어한다. 특히 뜨거운 기운 때문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과음은 금물이다.병오일주의 적토마는 붉은 말을 상징한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기에 힘과 속도에서 탁월한 특성을 나타낸다. 삼국지의 관우와 여포가 타는 말이 적토마다. “여포는 늘 좋은 말을 몰았는데, 이 말은 적토(赤83DF)라 불리며 능히 성으로 달려가서 해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했다”고 ‘정사 삼국지’ 여포전에 나온다.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헤르메스 로고에도 말이 등장한다. 마부가 빈 마차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명예를 소중히 하고 품격 있는 고객을 모시겠다는 표현이다. 1837년 티에리 헤르메스가 창립하여 현재까지 내려오는 브랜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이며, 부를 가져오는 신이다. 헤르메스는 탁월한 제품력과 창의적인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으며, 스타마케팅이나 신선한 감각의 광고를 통한 이슈화로 성공했다.중국 명초에 유기가 지은 ‘욱리자’ 천리마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욱리자의 말이 훌륭한 망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이웃 사람들이 그에게 “이놈은 틀림없는 천리마일세. 이놈을 꼭 임금 마구간으로 보내게”라고 일러주었다. 욱리자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류대창명리연구자 그는 수도로 망아지를 데리고 간 뒤, 임금에게 바치는 절차를 밟아서 임금 말을 관리하는 관청에 들여보내 놓았다. 얼마 후 임금은 자기의 말을 관리하는 책임자에게 각 지방에서 바친 특산물을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책임자가 특산물 대장을 열어서 조사해 본 뒤, 욱리자가 보내준 망아지에 대하여 임금에게 “이 놈은 확실히 훌륭한 말입니다만, 기주(冀州)에서 태어난 말이 아니라서 임금님의 말 대장에 올릴 수 없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리고는 그 말을 궁궐 밖에다 두고 길렀다.‘욱리자’라는 책은 원나라 말년 변혁기의 시대상황을 담고 있다. 사회현실에 대한 폭로와 통치자에 대한 질책, 그리고 백성의 고통에 대한 동정 등을 잘 나타낸다. 재능과 포부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었던 정치적 실의에 따른 분함과 원망의 정서를 나타낸다. 인사등용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 지역 출신이나 학교가 아니기에 천대를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인간의 삶이란 가문이나 전통이나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로 만들어가는 각자의 창조물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을 새롭게 만들고 변화를 유발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경멸하는가.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감정을 품는가. 이러한 일상의 행동이 삶의 방식이 나를 만들고 끊임없이 개조한다. 마음과 인간성뿐만 아니라, 육체마저도 변화시킨다. 현재 나는 그 결과이며, 내일의 나는 지금부터 행하는 하나하나의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2023-06-21

붉은 눈(目)

윤명희 수필가 모처럼만에 들린 당숙 댁이다.골목에 들어서자 지붕 밑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마당에도 낯선 불빛이 여기저기서 노려보고 있다.두 노인네가 사는 시골 농가주택에 CCTV를? 요즘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부모의 상황을 살피려 설치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 댁에 아직은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과상 앞에 앉았던 당숙과 집안 시동생들이 반색을 한다. 종조모의 제사를 핑계로 모였다.늦게 도착한 나는 싱크대 앞으로 먼저 갔다. 반백이신 당숙모가 제사 준비 다 됐으니 그냥 앉아서 떡이라도 먹으라며 등을 민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밖에 왠 CCTV냐고 물었다.아이고, 말도 마라. 우리 동네에 잡범이 있데이. 비닐하우스 안에 고추 말리는 것도 가져가고, 감 말린다고 걸어 둔 것도 한 줄 없어지고, 연장은 물론이고 뭐가 자꾸 없어지는 거라. 가져가면 한 자루를 가져가지 한 됫박씩, 몇 개씩 없어지는 거 보이 동네 사람 같어. 잃어버리고 남 의심하는 내가 죄인이지 누구를 탓하겠나 싶어서 갈무리를 잘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제 딴에는 표시 안 나게 하느라고 조금씩 훔쳐가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는 건데 그걸 모르겠나. 촌 살림살이가 아파트처럼 자물쇠를 채울 수가 있나 말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데 뭐라 하겠노. 한 번은 노인정에 가서 들으라는 듯이 우리 동네에 도둑년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지. 그랬더니만 여기저기서 잃어버린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 집만 그런 게 아이라. 누구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까지 없어졌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재.더 어이가 없는 건 된장 담아 놓은 장 단지까지 손을 대네. 매 해마다 농사지은 콩으로 내 손으로 메주 만들어서 장담아 놨는데 메주 몇 장인지 모르겠나. 장 뜨려고 단지 뚜껑 열어보이 쑥 들어간 기라.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꺼내보이 딱 2장이 비더라고. 가져간 메주야 어쩌겠나 만서도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물기 없이 잘 닦고 건져갔겠나 싶은 게 찝찝해서 장을 못 먹겠더라고.속이 상해서 친구한테 하소연을 했더만 CCTV 달아라하데. 가짜 달면 안 된다, 누굴 바보로 아나. 빨간 불 봤재? CCTV가 낮에는 가짠지 진짠지 모르는데 밤에 보마 다 안다 아이가. 하나는 장독대 비추고 하나는 비닐하우스, 현관, 마당, 창고 집 구석구석 다 보이라고 달아 놨디라. 밭일 끝내고 들어오면 먼저 누가 왔다 갔는지 확인하는기 일이라. 이상하재 우째 알고 그 다음부터는 한 번도 안 없어지더라고. 심증 가는 그 사람이 한 번은 올 줄 알았거든.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당숙모가 박장대소를 한다.아이고, 그게 말이다. 도둑을 잡는 게 아이라 나를 잡는다 잡아. 밭에 일하고 오다보마 소변이 급할 때가 있재. 요실금기도 있는데 언제 장화 벗고 수돗가에서 발 씻고 잠가 놓은 현관문 열고 화장실까지 가노 말이다. 마당에 호미 던져놓고 퍼뜩 저기 텃밭 옆에 궁디 까고 앉았재. 오줌 누다 돌아보이 저 눈이 내를 보고 있는 기라. 엄머야 싶어 엉거주춤 바지 끌어올리고 일어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돌아봐도 숨을 데라고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더라고. 뻘건 눈이 내를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아 얼른 문을 닫았지.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 마당이 자유롭지가 않네.사촌동서가 CCTV 확인은 아재와 아지매가 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물었다.그게 두 아들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으이 문제 아이라. 우리가 몇 시에 밭에 나가서 언제 집에 오는지 다 보고 있다는 걸 아는데.우리는 육촌시동생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 궁디 봤냐고 개구지게 물었다. 확인을 매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당숙모의 작은 아들이 폰을 귀에 대고 바깥으로 나가고, 큰 아들은 TV 볼륨을 높인다.

2023-06-21

공교육 내 수능출제로 ‘사교육 지옥’ 해소 기대

정부가 그저께(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킬러문항은 그동안 사교육 주범으로 꼽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킬러문항에 대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킬러문항 출제배제에 대해서는 교육계와 학부모 대부분이 환영하고 있다. 본지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보면 킬러문항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다. 한 학부모는 “킬러문제로 낙심하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최상위 ‘그들만의 리그전’이 사라져야 한다. 교과서내에서 변별력있게 문제를 내준다면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그들만의 리그전’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일타강사들이 몰려있는 대형입시학원에 일찍부터 다니며 킬러문항에 대비해온 학생들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번 수능부터 공교육 교과과정내 출제 방침을 밝히자 가장 반발하는 측도 대형입시학원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포항지역 한 현직 교사는 “수능 변별력을 높인다는 핑계로 교과서에 없는 비문학 문항이나 융복합형 문제를 낸다면 사교육 받을 여건이 안 되는 농어촌 학생들은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서울지역 부유층 자녀는 대형입시학원들이 제공하는 킬러문항을 반복적으로 공부하며 수능에 대비할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 학생들은 아예 킬러문항을 접할 기회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수험생들 사이에선 “수능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데, 오는 9월에 치러지는 모의고사 때 ‘공교육 과정 내 준킬러문항’ 유형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고교 교사들은 교육 과정 내에서 통합형 유형으로 문제를 내면 얼마든지 난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부담은 치명적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청년들의 결혼기피나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이 사교육비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현 정부의 ‘공교육 내 수능출제’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돼 학생들이 ‘사교육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6-20

대통령 공격에 올인하는 이준석 실체는?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15일) KBS 시사토론 프로그램 ‘더 라이브’를 시청하면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이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는 취임 후 국민의힘을 디지털정당으로 변신시켜 기업처럼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했으며, 이에 호응해 각 시·도당에서는 온라인 입당신청자가 쇄도했다. 나는 당시 이준석이 권위주의와 부패에 찌든 낡은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험한 정치적 굴곡을 거치긴 했지만, 시사토론회에서 본 그는 2년여만에 너무 변해 있었다. 최근 시청료 분리징수 문제로 윤석열 정부에 각을 세우는 KBS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같이 출연한 것도 실망스러웠지만, 모든 의제를 ‘윤석열 비판 버전’으로 맞추는 그의 발언 태도에 놀랐다.예를들면, 윤석열 대통령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두고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 데 대한 그의 코멘트다. 그는 “싱하이밍이 위안스카이라면 대통령은 뭐냐, 구한말 혼란 속에서 외교적으로 갈팡질팡한 고종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고종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나는 싱 대사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일행을 대사관저에 초청해놓고 한 언행이 조선 말 청나라 총독으로 행세한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싱 대사는 이 대표를 앉혀 놓고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위협성 발언이다.이에대해 이 대표가 한마디 반박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오히려 일행 중에는 싱 대사의 발언을 받아 적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누가 고종인가? 윤석열인가. 이재명인가.조선왕조실록에는 1886년(고종 23) 7월29일 원세개가 의정부에 보낸 ‘조선 정세를 논함’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싱 대사가 이재명 대표에게 훈계조로 한 말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조선은 역량을 타산해보면 약점만 나타나서 자주 국가로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국의 보호도 받는 데가 없기 때문에 결코 자기 스스로 보존하기 어려운 것은 천하가 다 아는 것이다.조선은 본래 중국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 중국을 버리고 다른 데로 향하려 한다면 이것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져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조선을 중국이 돌보는 아이에 비유한 것이다.고종은 이 글을 읽고 ‘공의 말은 참으로 눈을 틔워 주고 귀를 열어주었으니 약도 침도 이만은 못하다’며 아부를 했다.그 후 세월이 140여년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바뀐 게 없다.지난 문재인 정권과는 달리 중국을 상대로 당당한 외교를 실천하고 있는 윤 대통령을 나라를 망하게 한 고종에 비유하는 이준석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2023-06-20

경북 농업대전환, 내친김에 지방소멸도 막자

경북도가 농업소득 두 배를 목표로 지난해부터 준비해 왔던 기계화와 규모화 등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대전환 사업이 본격화됐다. 도는 지난 19일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혁신농업타운 들녘에서 23개 시군과 함께 농업대전환 성공을 염원하는 콩파종 행사를 가졌다. 경북도의 농업대전환은 농민도 도시민처럼 잘사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이철우 경북지사의 꿈이 담긴 정책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한 경북도 농업대전환추진위를 발족하고, 9월에는 농업연수단을 이끌고 스마트팜 강국인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네덜란드는 과학영농과 규모화 영농으로 농가소득이 8만달러로 도시근로자보다 높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의 64%다. 경북도가 마련한 농업대전환 정책의 핵심은 농업에 첨단과학을 접목시키는 것과 기계화가 가능하도록 규모화하는 것이다. 콩파종 행사를 벌인 영순 들녘은 지난해 도가 실시한 혁신농업타운 공모에 선정된 우수 공동영농사업지구다.늘봄영농조합법인을 중심으로 110ha에 마을 80농가가 이곳에서 공동영농을 한다. 1년동안 벼농사 한 번만 하던 이 들녘은 이제 하절기에는 벼 대신 콩을, 동절기에는 양파와 감자를 심는 2모작으로 전환했다. 경북도는 이곳에서 종래 연간 13억원을 올리던 총생산액이 공동영농으로 바뀌면서 45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농가소득도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는 이날 현장에서 국내 최대 식자재유통 회사인 CJ프레시웨이와 시군이 함께 협약을 맺고 농산물 판로 확보의 길도 넓혔다. 또 도는 현재 육성 중인 혁신농업타운 3곳과 함께 노지작물 2모작 영농특구 4곳도 육성할 계획이다. 소득이 있으면 인구의 유입도 쉽기 마련이다. 특히 첨단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계화 영농시스템이 도입되면 청년농의 유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국의 사례처럼 농업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청년들의 농촌 진입이 늘어나는 것이다. 경북도의 농업대전환이 첨단과학과 접목해 농가소득을 배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면 지방소멸의 문제도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6-20

“외식물가가 문제야”

우정구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영향을 받아 큰 폭으로 오르던 국내 소비자 물가가 조금씩 안정세를 잡아가는 모양새다.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와 관련, “6∼7월 쯤에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이와 함께 라면값 인상 문제를 거론하며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국제 밀가격 상승을 이유로 라면값을 크게 인상했는데, 최근 밀가격이 절반 정도 떨어졌으니 가격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제 밀가격이 떨어진 만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 달라는 뜻이다.관련업계도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으나 추 부총리의 언급이 부담스러워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가 물가와 관련해 굳이 라면값을 언급한 것은 라면이 대표 서민음식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그러나 물가가 안정세에 들어갈 것 같다는 추 총리의 전망에도 국내 외식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3.3% 올랐는데 반해 외식물가는 7% 가까이 뛰었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냉면, 자장면, 김밥 등은 지난 5년동안 40%가 올랐다.라면 한그릇 4천500원, 김밥은 한줄에 5천원을 육박한다. 여름철 대중음식인 냉면은 1만원을 훌쩍 넘었다. 1만원이하 식사가 사라졌다는 말과 점심값이 급등했다는 뜻의 런치플레이션이 유행하는 시대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면 2∼3만원의 금액이 사라질 판이니 직장인에게 점심은 매우 부담스런 일이 됐다.따지고 보면 외식물가 상승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다. 정부의 압박으로 라면값이 내리면 외식물가도 잡힐까. 그렇지 않다. 외식물가를 잡을 정부의 특단 대책도 나와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20

전세 사기 전성시대

올해 초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해봤다. 아연실색했다. 집은 가압류된 상태고, 임대인 앞으로 무려 48억9천만 원의 채권이 있었다. 임차인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대신 변제한 금액이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물었다. 소유 주택이 170여 채나 된다고 했다. 전세계약이 만료되어도 보증금을 반환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이 계약돼 자꾸 늘어났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업자’인 듯했다. 뒤에 전문 사기 세력이 있는, 전형적인 전세 사기 수법이었다.계약 만료까지 1년도 더 남았지만 보증금을 다 날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대처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친구에게 전세금 반환 소송을 위임했다. 소송 과정에서 임대인은 연락이 두절됐는데, 아마 구속 수감되었거나 잠적해버린 것 같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부디 그건 아니길 바란다. 어찌 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적게는 수십 채, 많게는 수백 채의 빌라를 보유한 악성 임대인들 중에는 경제력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나 노숙자, 무직자가 많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명의를 빌려줬다가 사기범이 된 것이다. 탐욕도 죄고, 무지도 죄라지만 그 사람들 처지도 참 안됐다.1월부터 진행된 소송은 다섯 달 걸려 지난주에 승소 판결이 났다. 이제 이 집을 강제경매에 넘긴 후 내가 직접 낙찰 받으려 한다. 경매 낙찰까지 또 몇 달이 걸릴 것이고, 낙찰 받은 후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기존의 전세대출을 갚아야 한다. 아직 복잡한 절차들이 많이 남아 있고,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을 테지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가져 본다. 내 경우는 그래도 좀 낫다. 집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많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2년만 살 생각이었던 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낙찰 받는다.얼마 전 전세 사기 특별법도 시행이 돼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겉으로는 활달한 척했지만 사실 이 일로 상반기 내내 골치 아팠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논문을 쓰는 것도, 시와 평론을 발표하는 것도 다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간신히 여름까지 잘 왔다. 다시금 ‘존버’(끝까지 버티는 정신을 뜻하는 신조어)의 위대함을 본다. 어떻게든 버티고 발버둥 쳤더니 살아날 구멍이 생겼다.나에겐 ‘불행 중 다행’이 작용했지만, ‘불행 중 비극’으로, 전세 사기를 당해 스스로 삶을 저버린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화가 난다. 손쓸 새도 없이 집이 이미 경매에 넘어가고, 낙찰자가 나와도 보증금에서 국세, 지방세, 은행 등 선순위 채권을 떼고 나면 피해자가 돌려받는 건 푼돈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건지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채 거리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들의 경우가 대개 그러하다. 그러니 전세 사기 특별법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임차인들의 전세금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진작 마련됐어야 한다. 특별법이 시행돼 이제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최우선순위로 변제되고, 피해자가 원한다면 주택의 경매를 유예하거나 우선 낙찰 받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생계 지원이나 저금리대출 등 여러 피해 보상 대책이 마련이 되었지만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임대인은 돈을 받고 임차인에게 집을 빌려준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임차인은 집을 비우고 임대인은 돈을 돌려준다. 이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이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을 만큼 대한민국이 후진적인 나라인가? 전세 사기가 판을 치게 된 것은 제도가 미비한 탓이다. 제도에는 허점이 많고, 부동산 업자나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내용이나 용어가 어려워 사기꾼들이 악용하기 좋다. 처벌도 가볍다. 타인의 재산을 갈취해 삶을 망가뜨린 자들이다. 중형에 처하는 게 마땅하다.며칠 전,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가 전세사기피해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고 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상담 창구에 긴 줄이 서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센터를 찾는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우스갯말이 있다. “이게 나라냐?”

2023-06-20

일상을 잘 가꾸기

5박 6일의 짧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첫 해외여행이라 얼마나 새롭고 설레던 게 많았는지 모른다. 일본 오사카 지역은 인천 공항에서 2시간 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사실 한국과 많이 다를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예상대로 크게 한국과 다른 점은 없었으나 그래도 처음 가는 낯선 도시이기에 호기심으로 부푼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여행을 하는 내내 스스로가 정말 작은 사람임을 느꼈다. 수많은 인파 속 다양한 인종 사이의 나는 너무나 작고 사소한 존재였고, 그 사실이 굉장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일상을 억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내려와 낯선 도시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관광객의 거취란 얼마나 자유롭던지. 당장 해치워야 할 업무도, 크고 작은 사소한 집안일에서부터 멀리 벗어나 마음대로 먹고 원하는 곳으로 느긋이 걷는 하루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으며 지역의 유명 관광 스팟이나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거리를 걸어다니며,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켰을 터와 그곳에서 일상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 또는 깊은 숲속의 절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빽빽이 들어찬 푸른 숲속을 자유로이 만끽했던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좋은 기억이 되고 있다.같이 여행을 떠난 이와도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 거대한 자연 풍경 앞에서 우리는 정말 작아졌고, 그래서 서로를 놓지 않기 위해 손을 꼭 잡았다. 수많은 대화 보다 마음 깊이 자리하는 눈빛과 말들로 말을 대신했고 가장 좋은 것은 서로에게 건네며 관계에 더 많은 신뢰를 차곡차곡 쌓았다.예상했던대로, 과거의 후회에 머무르지 않는 여행이 아닌 계속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여행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선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이 귀중한 경험을, 일상에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갖고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다가도 중간 중간 여행지에서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들여다본다거나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자꾸만 열어보거나 아직도 여행지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꿈으로 꾸고 있다.더군다나 배달 음식을 잘못 먹고선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고생을 하고 있다. 마치 감기 기운을 앓고 있는 것처럼 일주일 내내 아픈 몸을 겨우 이끌고 있다. 그러니 더더욱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가볍게 걷던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수밖에.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삶에서 다시금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꿈결 같던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움을 벗어나기란 참 어렵다. 내팽겨 쳤던 모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있으니 부담감이 배로 크다. 각종 공과금 납부, 쓰레기 버리기, 밀린 빨래 등등. 자유를 외쳤던 것에서 다시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건 피로감이 상당하다.일상은 많은 공을 필요로 한다.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그 안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노력이 녹아 있다. 자그마한 것 하나 놓쳐도 흐트러지기 쉬운 일상이니까, 이젠 여행의 낭만에서 빠져 나와 다시금 일상을 보살펴야 한다.수납함에 잘 개어 있는 수건들, 반듯이 정리된 각 종 생활용품들, 깨끗하게 잘 말려 있는 식기, 햇빛에 잘 말려 둔 여름 이불 까지. 아무리 고단할지라도 집안을 쓸고 닦으며 정리하다보면 어느덧 다시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깔끔히 정돈된다.가볍게 떠나 새로움으로 가득한 여행을 하기 전까진 나의 삶을, 하루의 일과를 방치하고 홀대해선 안 된다. 나를 먹이고 나를 잘 재우며 평범한 일상을 가꾸고 보살펴야한다. 또 훌쩍 떠날 수 있는 현실적인 소비와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그러니 내일부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원래 일하던 일을 열심히 해내고 성과를 보이고 좋은 글을 읽고 또 쓰면서 더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조만간 또 떠날 것이고, 다음 여행은 조금 더 현지인의 삶으로 녹아들어 그 나라와 문화를 조금 더 여유롭게 여러 방면으로 깊이 느낄 것이니까.

2023-06-20

無信不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재잘재잘 새들은 노래하고 뭉게뭉게 구름꽃이 피어나며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연중 낮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오늘이고 보면 벌써 반년이 마감되는 시점이다. 때이른 더위 탓인지 후끈한 대지의 열기 못지 않게 비지땀을 흘리며 지역사회를 위한 도움의 손길로 분주하고 하루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다. 포스코의 연중 봉사활동에 집중하며 다양한 나눔활동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다.이른바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는 국내외 포스코그룹 임직원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이다. 지난 9일~16일까지 8일간 진행된 ‘2023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는 포스코 직원 3천여명과 31개 협력사 1천여명 등이 포항시 전역 124곳을 방문해 다문화가정 사진촬영, 독거어르신 나들이, 자매마을 취약지역 개선 등의 활동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이 같은 특별봉사활동은 포스코봉사단의 창단일에 즈음해 그룹 임직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나눔·돌봄 활동과 지역생태 보전활동 등을 펼치는 특별봉사주간으로 20년째 매년 진행해 왔다. 지역상생과 협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이 기간뿐만 아니라 주말과 휴일을 활용해 일상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직원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 문제를 찾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실행하는 ‘체인지 마이 타운’ 사업 등과 연계해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맞춤형 봉사활동으로 꾸준한 나눔과 베풂의 온정을 전하고 있다.그런데 이와 같은 포스코의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 동반성장의 노력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근 포스코 본사 앞에서는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집회와 궐기대회가 열려 개탄스럽기만 하다. 포스코지주사 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경찰 추산 시민 1천500여 명이 참여해 포스코를 상징하는 파란 근무복의 대역 민간인의 볼기를 치고 망나니 칼을 휘두르며 인형의 코를 자르는 등의 과격한 시위 퍼포먼스는 황당하다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범대위와의 합의사항이 이행되고 있음에도 대낮에 버젓이 포항시민인 포스코 직원들의 자긍심을 짓밟는 행태는 묵과하기 어려울만큼 도를 넘은 것 같다.‘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정치나 사회,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신뢰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포스코와 포항시가 작년에 명시적으로 합의한 대의가 엄연히 있고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합의파기라도 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선동과 자극을 일삼는 처사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생명을 찬미하는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가 자연의 화음으로 들리는 것처럼, 성숙과 인내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미덕이 필요한 때다. 정성과 노력의 손길로 봉사의 꽃을 피워나가듯이, 합리적인 범주에서 믿음과 실행을 바탕으로 한 공존공생의 꽃이 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2023-06-20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교는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방식을 채택해 왔다.이러한 교육방식에서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학생들은 전달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필자가 경험한 대한민국에서의 학사, 석사 과정에서의 수업들도 대부분 교수가 수업 시간에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전달된 지식을 외우고 시험을 통해 성적을 얻는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해당 교육방식은 지식의 전달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대한민국에서 경험한 단기적인 정보의 습득과 암기에 초점을 둔 교육방식과는 다르게 필자가 경험한 미국 박사과정에서의 교육방식은 토론 위주의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처음에는 토론식 교육방식이 어색하여 수많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토론 위주의 수업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 의사소통 방법, 그리고 문제 해결 접근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방식에서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해당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학생들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다.빅데이터의 출현과 함께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육 분야 또한 상당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전통적인 교육방식과는 달리 이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양한 온라인(Online) 교육 및 강의 자료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령, 미국 보스턴(Boston)에 있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양질의 교육을 전 세계에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오픈 코스웨어(Open Course Ware)가 그러하다. 이는 곧 강의실 안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의 역할은 언제든 보다 좋은 교육 매체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은 무엇일까.우선, 현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수들은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흐름에 적합한 교육방식을 지속해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주입식 교육방식보다는 토론식 교육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들을 강의실 밖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프로젝트(Project) 기반의 수업을 설계함에 따라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데이터(Data) 사용의 윤리적인 책임을 가르치는 것 또한 빅데이터 시대 교수의 역할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2023-06-20

백 년 전의 사랑, 연애의 시대에 바침

지금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린 시절 사랑이란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의 상태이니, 그것이 지금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각각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저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의 급격한 움직임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누군가는 각자 생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한다. 학생들의 삶은 미래의 더 나은 생존을 준비하느라,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어찌 사랑 같은 가장 현재적인 감정에 빠질 것인가. 경쟁의 시대에, 생존을 고민하는 이들의 고민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귀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우리 모두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한국에서 근대 문학의 시작은 바로 사랑으로부터였다. 1920년대를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는 연구자가 여럿 존재할 정도로, 사랑과 연애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이었다. 유명인들의 연애가 입에 오르내리고, 연애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누구나 연애편지 모음집을 한 권 씩은 서가에 몰래 꽂아두고 보던 시대였다.19세기 말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제국주의의 광풍에 휘말려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그 시대 역시 경쟁의 시대였다.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한다는 진화론적 상상력의 공포가 사회를 덮쳤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배경도 바로 밑도 끝도 없는 경쟁과 소멸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겠는가.하지만,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을 생존과 경쟁의 시대였던 백 년 전 우리가 빠져 있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김동인이 ‘약한 자의 슬픔’에서 보여준 것은 삐뚤어진 사랑이었고, 현진건이 ‘희생화’에서 보여준 것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었고, 노자영이 ‘반항’에서 보여준 것은 가정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정적 혁명을 꾀하며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여성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1920년대는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김동인이 만든 최초의 근대문학잡지 ‘창조’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임노월이라는 작가는, 지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 즈음 가장 독특한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의 곡 ‘사의 찬미’가 나오기 전에, 같은 이름의 시를 쓴 것도 이 임노월이었다. ‘창조’가 폐간되고 발간된 ‘영대’에 그는 이 사랑의 시대에 강렬한 사랑의 욕망을 표현했던 ‘악마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다.이 ‘악마의 사랑’은 자신과 어릴 때 혼인한 정순이라는 여성과, 새롭게 알게 된 영희라는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에 대해 쓴 작품이다. 어쩌면 전형적이다못해 뻔하기까지 한 삼각관계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기를 덮쳐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당연했던 기존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든다.지금에 와서 백 년 전 사랑에 목매던 소설을 읽는 것은 조금 미묘하다. ‘악마’의 사랑이란 제목조차 과장처럼 여겨진다. 분명, 우리에게 사랑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아닌 시대에,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은 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