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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행자와 삶의 운명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운명은 정해진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고 살아가는 운명선이 그려진다. 95퍼센트의 인간은 타고난 운명 그대로 살아가며, 이들을 순리자라 부른다. 5퍼센트의 인간은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을 갖고 있고 이 능력으로 인생의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 타고난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의 틀에서 벗어난 자를 역행자로 부른다. 지구촌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원칙에 따라 한 번 살다가 한 번 죽는다. 한 번 살다가는 삶에 자신의 운명선을 개척해보고자 하는 사람만이 역행자가 될 수 있고 인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농장에 있는 닭을 보면, 이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 닭은 한정된 울타리에서 산다. 닭은 유전자 명령에 따라 모이를 먹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때로는 다른 닭들과 싸움도 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닭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닭의 활동 반경도 삶의 끝도 모두 정해져 있다.인간의 삶도 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에도 울타리가 있고 이 울타리는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으로 이뤄져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의지가 있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이는 모두 망상이다. 삶의 자유를 성취하려면 생각의 변화를 주어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단련한 닭은 ‘슈퍼 닭’이 되어 울타리를 끊고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될 것이다.삶에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돈, 시간, 정신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부호 빌게이츠는 이 3가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당신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빌게이츠의 운명선 변화는 하버드 대학 1학년 중퇴하면서 시작되지만 초년시절부터 학과 수업이 끝나면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 마을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한다.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 공부가 싱거워 지하 4평 사무실에 ‘집집마다 PC를 도입하여 인류의 삶의 질을 두 배 올리겠다’라는 비전을 걸었을 때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IBM 대형 컴퓨터에서 오늘날 작은 PC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고 스마트 폰으로 발전하면서 세상은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인류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개인은 물론 사회적 삶의 질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의식 해체의 3단계, 즉 탐색, 인정, 전환에서 왔다. 탐색을 통해서 나를 알고 주어진 삶의 요건을 인정하는 것에서 긍정의 에너지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적 나로 전환하는 것이다.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흙수저에서 출발했던 순리자 삶에서 역행자로 변신하고자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행동했는지 그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내 운명선인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두드린 만큼 열리는 것이다.삶의 운명선은 주어진 삶의 환경을 인지하고 그에 순응하는 순리자에서 전환하여 틀을 깨고 벗어나는 용기와 생각과 행동이 결정하는 것이다.

2023-08-27

‘오펜하이머’를 보는 하나의 시각

김규종 경북대 교수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인상과 미학적 인식, 그리고 감수성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호사가(好事家)는 그것을 취향(趣向)이라는 어휘 하나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그런 차이는 미학적 훈련의 결과에서 발원한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미학 훈련을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을 수용하는 기본자세부터 다르다. 대상을 읽고 보고 느끼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간파하는 능력 차이가 개인별로 크다.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영화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기저 텍스트로 삼은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평전이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영화도 세 시간을 꽉 채운다.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원자력 위원회 의장인 루이스 스트라우스(1896∼1974) 제독과 관련된 청문회 장면이었다. 한편으로는 메카시 광풍에 휩쓸린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관직에 내정된 스트라우스 제독의 공개적인 청문회가 진행된다. 전자는 오펜하이머의 수상쩍은 과거 행적을 추적하여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리는 것이 목적이다. 후자는 스트라우스 제독이 과연 상무장관직을 수행할 능력의 여부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오펜하이머도 스트라우스도 패배자로 기록된다.오펜하이머가 1953년 12월 기소되어 그 이듬해부터 보안 청문회에 소환된 최고의 원인 제공자를 평전 작가들과 놀란 감독은 스트라우스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오펜하이머의 정적(政敵)으로 등장하는 스트라우스의 내면세계를 인도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가 원자력 위원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스트라우스는 최대한 친절을 베풀지만, 자부심 넘치는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위원회 건물 바깥에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서 있다. 아인슈타인을 향해 오펜하이머가 다가가서 몇 마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를 뒤따라오는 스트라우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냉정하게 지나쳐 버린다.문제는 오펜하이머의 자유분방하고 공격적이며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정치적인 성향이 스트라우스와 지극히 대극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민주 선거로 집권한 에스파냐 좌파 정부를 전복하고자 1936년 7월 프랑코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에스파냐 내전이 발생한다. 3년에 걸친 내전으로 무려 60만의 안타까운 인명이 희생되기에 이른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을 통해서 내전으로 발생한 수많은 고아와 난민을 위해 거액을 송금한다. 스트라우스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행적까지 추적하여 그를 청문회에 세운 것이다. 오해에서 시작된 불씨가 원한으로 발전하여 복수에까지 이르는 지점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우리를 오해하고 이를 갈며 음해한다는 사실을.

2023-08-27

일주문(一柱門)

우정구 논설위원 산중의 사찰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 있다. 일주문(一柱門)이다. 불교의 철학을 담아 기둥을 한 줄로 세웠기 때문에 일주문이라 부른다.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얹는 것이 보통의 건축 양식이나 일주문은 일직선상에 있는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양식을 취한다.일주문의 백미로 부산 동래 범어사 일주문을 손꼽는다. 2006년 국내 최초로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이다. 높은 화강암의 주춧돌 위에 건물을 앉혀놓은 상체 비만형 건축물이다.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산과 계곡의 바람과 태풍에도 끄덕이 없다. 한국 불교건축이 가진 독특한 기술 덕분이다.사찰의 일주문이 모두 이처럼 특이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한줄로 기둥을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의미한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심으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이다.일주문부터는 부처님의 세계다. 비록 담벼락은 없으나 부처님 세계와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와 구분되는 문이다. 이곳을 통과한 모든 사람은 지금부터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불교 문화유산 지정이 그동안 사찰의 주요 불전 위주로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문화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주문이 무더기로 보물로 승격된다.문화재청은 올해 전국 50여 개 사찰 일주문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끝에 대구 달성 용연사, 합천 해인사 등 6곳의 일주문을 보물로 지정키로 했다. 작년 대구 동화사 등 전국 4개의 일주문이 보물로 지정된 데 이은 추가 지정이다. 일주문의 가치가 늦게나마 제대로 평가를 받아 다행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7

경제성 입증… TK신공항 이젠 속도전이다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TK(대구·경북) 신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결과, 경제성분석(B/C·비용 대비 편익 비율)에서 1.03이 나왔다. 공항건설에서 이례적으로 B/C 값이 1 이상이 도출돼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됐다. 지난해 발표된 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경제성분석 결과는 0.51~0.58이었다.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가 남아 있지만, TK신공항 건설의 당위성은 이번 용역결과에서 확실하게 드러나 누구든 시비를 걸 수 없게 됐다. TK신공항 건설 사업은 K2 군공항과 대구국제공항을 군위·의성군으로 동시에 옮기는 첫 민간·군 통합 이전 사업이다.국토부는 2026년 7월 착공하는 TK신공항이 2030년 연말에는 개항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용역조사결과, 항공 수요는 여객 1천226만~1천573만명(국제선 906만명)으로 예측됐다. 현 대구공항 여객수보다 3배 정도 많다. 민간공항 건설에는 2조6천억원가량의 사업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군공항을 포함한 총 사업비 약 11조4천억원의 22.6% 수준이다.공항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활주로 길이는 중대형 화물기를 포함해 전 기종 항공기 운항이 가능한 3.5㎞(현 대구공항 활주로는 2천755m)로 결정됐다. 여유부지 300m도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이 수준이면 대형여객기와 화물기 이착륙이 가능해 명실상부한 한반도 중남부권 여객·물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유사시에는 인천공항을 대체할 수 있다.이번 용역에는 신공항과 의성군 28번 국도를 연결하는 4.6km 도로 신설도 반영돼 경북도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경북도는 이 도로가 민간공항 건설계획에 포함될 수 있도록 국토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었다. 신공항과 의성 신도시를 연결하는 이 도로는 항공물류산업 중심도시를 꿈꾸는 경북도의 핵심 인프라다. TK신공항 건설이 정부의 용역 결과대로 빠르게 추진돼 대구·경북이 비수도권 중심지역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국토부와 국방부, 대구시·경북도가 원팀이 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2023-08-27

일본 오염수 방류에 직격탄 맞은 죽도시장

일본이 2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하루 460톤씩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연말까지 3만톤 이상 내보낼 계획이다. 앞으로 약 30년동안 후쿠시마 원전에 저장된 오염수 134만톤을 이런 방법으로 방류할 계획이라 하니 국민적 불안감도 자연 커진다.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알프스)로 처리한 오염수를 바닷물과 희석해 기준치보다 크게 낮췄다고 밝혔으나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서 불확실성에 기인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직원을 상시 배치해 안전점검에 나서고, 정부도 전문가의 후쿠시마 원전사무국 정기방문 등을 통해 시설에 이상이 생길 경우 즉각 대응한다고 밝혔다.그러나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첫날부터 경북 동해안 수산업계는 곧바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경북 동해안 대표 회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은 평소 때면 시끌벅적했던 시장 분위기가 찾아오는 고객이 거의 없어 썰렁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한다. 상인들은 지금 상태라면 장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위기감을 표시했다. 특히 추석명절을 한달 앞둔 수산업계는 추석 선물용 수산물 구매가 움츠러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10월이면 본격 출하될 포항 과메기시장의 타격도 벌써 걱정이다. 상인들은 정부 차원에서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캠페인을 지속 펼쳐 줄 것을 바라고 있으나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싸고 여야가 상반된 주장을 벌여 수산물 소비촉진이 쉽게 회복되진 않을 전망이다.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감시와 함께 일본 정부와 IAEA가 안전관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지속 촉구해야 한다. 또 정부와 달리 경북도 등 지자체도 수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대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한다. 전문가 다수가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다고 밝히나 소비자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지역수산업 종사자가 도산할지도 모를 이번 사태에 정부 못지않게 지자체의 역할과 강력한 대응책도 있어야 한다.

2023-08-27

노년기 건강 비결은 맞춤형 운동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신체활동이란 우리 몸에서 에너지소비를 발생시키는 모든 움직임을 말하는데, 운동과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 전체가 포함된다. 이러한 신체활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할 경우 생애주기 구분 없이 질병 예방 및 건강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 신체활동은 심혈관질환, 암, 당뇨병과 같은 비감염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체활동이 부족한 사람은 활동량이 충분한 사람에 비해 사망 위험이 20~30% 높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은 2025년까지 신체활동 부족 비율을 10%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신체활동의 중요성이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우리나라 국민 중 신체활동 실천율이 가장 낮은 생애주기는 노년이다. 노인은 시간적 여유와 신체활동 기회가 비교적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소·근력 신체활동 구분 없이 충분한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노인이 3명 중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최근에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의 유산소 신체활동 실천율, 즉 일주일에 중강도 신체활동 2시간 30분 이상이나 고강도 신체활동 1시간 15분 이상 또는 중강도와 고강도 신체활동을 섞어서 하는 노인의 수는 33.0%로 3명 중 1명만 권장 수준만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36.6%, 여성이 30.1%로 남성이 여성보다 6.5% 높은 실천율을 보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감소 추세다.게다가 우리나라 노인이 최근 1주일 동안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아령, 철봉 등의 근력운동을 2일 이상 하는 근력운동 실천율은 18.3%로 6명 중 1명만 권장 수준만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30.5% 여성이 8.7%로 남성이 여성보다 21.8p 높은 실천율을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증가 추세지만 아직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이 최근 1주일 동안 걷기를 1회 10분 이상, 1일 총 30분 이상, 주 5일 이상 하는 걷기 실천율은 39.9%이다. 성별의 차이에서는 남성이 44.3%, 여성이 36.5%로 남성이 여성보다 7.8%p 높다. 이 또한 전체적으로는 감소 추이를 나타내는 가운데 남성이 15.7%, 여성이 14.5% 줄어들었고, 같은 시기의 성별 차이도 9.0%p에서 7.8%p로 1.2% 감소했다.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변인은 다양하지만, 특히 고령화에 의한 건강 악화는 신체활동 부족과 체력 저하가 가장 큰 원인이다. 노화에 의한 체력 저하는 신체활동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로 인해 감소된 신체활동량은 또다시 체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여러 정책 및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노인의 건강 악화 예방과 건강 및 체력 증진을 위한 대안으로 여러 가지 운동 프로그램을 권장하고 있다.하지만 지역사회 노인 신체활동 지원기관은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체육회로 분화되어 분절적으로 운영 중이며, 기관별로 정책 목표 및 신체활동 주제만 다를 뿐 대상과 접근전략 및 접근생활터는 거의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업대상이 중첩되거나 탈락되는 등 서비스의 효율성이 떨어져 지속성 있고 효과적인 노인 체감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더욱이 노인의 건강수준을 허약과 일반으로만 구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노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는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이 부재하여 신체적 건강증진 효과가 다소 떨어지고 운동 상해 발생 등 부정적인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기존 체육시설에 대한 노인 활용도 제고 등 장비 관련 정책도 정부 부처에서 추진 중이나 노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신체활동 친화적 환경 관련 정책과 사업은 미흡하다 할 수 있다.이미 주지하듯이 노년기의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증진을 도모한다. 아울러 신체활동 부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고혈압,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에 의한 비용부담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노인의 신체 활동 실천율은 감소하고 있으며 실천 수준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우리 국민 누구나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정부는 분절적으로 추진 중인 노인 건강사업을 체계적이고 효율화하기 위한 중앙단위의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자체는 현재 지역사회에서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는 노인 대상 운동 프로그램의 효과성 및 안전성을 진단하고 개선하여 노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허약과 일반으로 단순 구분된 운동 프로그램을 더욱 세분하고 각 분류별로 표준화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주거지역으로 노인이 자연스럽게 신체활동을 실천할 수 있는 보행 및 활동 친화적인 환경조성도 풀어야 할 과제다.

2023-08-27

ESG경영과 노동

유성찬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피브리노겐(fibrinogen)은 혈액응고인자이다. 상하서열이 확실한 개코원숭이 집단에서 계급이 낮은 원숭이일수록 혈중 피브리노겐의 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낮은 계급의 원숭이는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피브리노겐의 혈중 농도가 증가한다고 한다.리처드 윌킨슨이라는 영국 노팅엄 의과대 사회역학 교수는 원숭이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심리적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로 혈중 피브리노겐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윌킨스 교수가 영국 공무원 3천300여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었는데, 공무원 직급이 낮을수록 피브리노겐 수치가 남녀차이를 떠나 모두 높게 나온다는 실험결과를 확인했다. 하위 공무원의 혈액은 낮은 계급의 개코원숭이처럼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 어딜까? 가족, 직장, 계모임, 동창회 등 사람이 만드는 조직들 중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계급의 높고 낮음이 있는 곳은 직장이다.기업에는 상하관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직장은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는 생존의 일터이다. 평화롭게 노동을 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이지만, 그렇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쟁도 있을 것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비위에도 거슬리는 일이 생길 것이다.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지만, 상하 수직적 관계에서 지시와 업무수행이 있을 뿐이라면 일상이 고통이 된다.이러한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수평적 관계, 즐거운 직장생활, 서로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터공동체, 직장인과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해주는 노동조합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중요하다.생산성도 올리고 일하기에 즐거운 노동현장, 이처럼 기업과 노동이 함께 공유하는 목표가 바로 노동현장에서 ESG경영이 될 것이다.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믿고서 노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사회에서 노동이 필요불가결한 것이기에 ‘신성한 것’이라고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이다.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家長)의 입장에서는 노동만이 생존의 제1 조건이기에 ‘착한 노동’은 맞다. 그리고 직장에서, 공장에서, 노동현장에서 ‘착한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행동’으로 가득한 분위기의 생산현장이라면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은 자연스러운 상상이다.필자는 짧은 삶의 경험이지만, 인간은 ‘착한 노동’의 방식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쟁투가 벌어져 파업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사회적 투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크게는 이 세상이 평화롭게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것은 ‘착한 노동’을 하는 가장들이다.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었을 때, 가장은 노동할 곳을 찾아 평생고용된 직장을 희망하였다. 실직만 하지 않는다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직장문화가 인권이 지켜지는 직장인가 아닌가가 중요하게 될 정도로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직장문화도 많이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그리고 중대재해법이 보여주듯이 노동현장의 안전과 환경이 더욱 중요해졌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고 가장과 그 가장의 가족들, 생존을 지켜주는 직장문화, 공장을 친환경일터로 만들어 노동자의 건강권, 환경권을 지켜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해진 것이다.또 여성동료에게 성적인 추행을 하는 것은 해고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도록 되어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 서로의 기분과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터 분위기로 변화해가고 있고 또 큰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당연히 피브리노겐의 혈중수치는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노동현장의 ESG경영이다.요즘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 극한호우는 산업혁명이후 인간이 뿜어낸 석탄, 석유. 화석연료의 이산화탄소로 인해 발생한 인류의 위기이다. ‘인류의 생존이냐, 파멸이냐’라는 기로에 선 현실에서, 노동자는 지역시민으로 변화한다.노동현장에서 퇴근하면 지역시민의 자격으로 쓰레기에서 플라스틱과 비닐, 종이를 분리하여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정성스럽게 음식물쓰레기통에다가 담게 된다. 이러한 쓰레기 분리수거 행동이 지역의 환경을 맑게 하고, 나라의 에너지산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플라스틱과 비닐, 음식물쓰레기에서 경유와 바이오가스 등 신재생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노동하는 인간에게 역사적 사명감이 있다면, 전세계의 노동자의 이름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슬로건과 목표를 세울 만하다. 실천하는 노동, 노동조합은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므로 노동조합내에서도 ESG교육을 실천하여, 이 세상의 ESG경영을 노동과 노동조합이 리드해가는 시대적 추세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2023-08-27

대구시 금고 낮은 이자율, 독점 때문 아닌가

내년부터 2027년까지 4년간 대구시 1·2금고를 맡을 금융기관이 대구은행과 농협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시금고 독점 폐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1일 대구은행을 1금고, 농협은행을 2금고로 지정했다. 1금고(일반회계)는 10조8천억 원, 2금고(특별회계)는 8천500억 원 규모다. 대구은행은 지난 1975년부터 대구시 금고를 맡고 있어 50년 이상 1금고 독점체제를 이어가게 됐다. 대구은행의 시금고 독점으로 인한 단적인 부작용은 낮은 이자율이다. 대구시 금고의 낮은 이자율은 시의회에서도 문제시되고 있다. 지난 6월 ‘대구시 2022회계연도 환경수자원국 소관 결산 승인의 건’ 심사에서 조경구 의원은 하수도 회전기금(2천700억 원) 이자수입이 연간 1.25%라는 집행부 설명에 대해 “특별회계의 경우 다음 예산 때까지 1년 정도 적금을 시켜놓는 거니까 정기예금으로 하면 이자가 좀 더 비쌀 건데 예금수입이 왜 이렇게 낮나”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집행부 측은 “대구시조례에서 예산을 금고에만 넣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자수입이 최대한 높은 곳, 아니면 금고가 아니더라도 가능한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이에대해 조 의원은 “금고라도 농협(2금고)과 대구은행(1금고) 간에 비교를 해서 이자가 높은 곳에 예금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대구시와 마찬가지로 대구은행과 농협이 각각 1·2 금고인 구미시의 경우, 이자율이 낮은 공금예금을 최소화하고 정기예금 비중을 늘려 연간 100억원대의 이자수익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대규모 세입·세출 흐름을 사전에 파악해 여유자금을 최대한 확보한 후 수익률이 높은 정기예금에 예치했기 때문이다. 이자율이 공금예금은 1% 미만이지만, 정기예금은 대부분 3%대다.대구시 금고 이자율이 낮다는 것은 예산운영 역량과 협상력의 문제로도 볼 수 있지만, 특정금융기관 독점체제가 원인일 수 있다. 부산시처럼 대구에서도 시중은행이 시금고 유치전에 합류해 금고운영의 투명성이 제고되길 기대한다.

2023-08-24

주목받는 김천고의 실험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내 거주 외국인 250만 명 시대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공장은 물론 농어촌에도 영농과 어로 활동에 큰 몫을 차지한다. 매년 수만 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까지 수입해오는 마당이다. 대학들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골몰한다.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12개 대학이 몰려 있는 경북 경산의 일부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학교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재정상황이 나쁘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구멍 난 재정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현재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대략 16만 명으로 추산된다. 교육부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세계 10대 유학강국 도약’이 목표다. 어느 순간 대학들이(대부분 전문대학들이긴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정상 운영이 어려운 재정상황에 몰렸다. 매년 재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이 자리를 전문대생들이 메우는 연쇄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빈자리와 재정난 타개를 위해 대학들이 유학생들에게 눈을 돌렸다. 유학생 중 상당수는 학교에서 나가 산업체 등으로 간다. 비록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어도 필요한 산업인력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유학생들의 이탈 단속도 손 놓았다. 아예 발상을 바꿨다.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전문 교육을 해 지역 기업에 취업시키고 사회 정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대학에 이어 고교까지 유학생 유치에 뛰어들었다.경북 김천고가 내년 3월부터 16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받기로 했다. 경제 사정에 따라 장학금도 지급한다. 자립형 사립고로 명문 고교 반열에 오른 김천고는 신입생이 미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머잖은 장래에 닥칠 학생 부족 사태에 대비했다. 김천고를 따라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학교 측은 유학생 학부모의 동반 입국도 추진한다. 부모가 함께 학생의 교육 환경을 돕고 부족한 지역 일손을 메우는 방안도 세웠다.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2만6천788명이 국내에 들어왔다. 영농철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수확과 작물관리에 귀중한 손이 됐다. 지금 농어촌에는 이들이 없으면 농사지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산업현장도 당장 멈춰 설 판이다. 인력난의 한국에 한줄기 단비다. 마침 경북도도 ‘외국인 광역비자’제도를 도입, 외국인 유치에 물꼬를 텄다. 비자 발급 권한 일부를 도지사가 갖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지방정부가 지역에 필요한 인력을 주도적으로 선정해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게 됐다.세계는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인구절벽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 됐다. 무려 2천200년을 지탱해온 로마제국과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외국인을 중용해 부강한 나라가 됐다. 개방과 포용의 산물이었다.김천고가 외국인 유학생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교육에 미칠 파문과 효과가 주목된다.

2023-08-24

옛명성 찾아 나선 동성로

우정구 논설위원 1960년대부터 대구 동성로는 서울의 명동처럼 젊은이가 몰려드는 거리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곳이다.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 관광객들도 쇼핑코스로 반드시 동성로를 찾을 정도였다.40년 이상 명실공히 대구의 일등 상권으로 군림했고, 대구시민에게는 ‘시내’로 통하던 최대 번화가다. 남쪽으로는 반월당, 서쪽은 중앙대로와 종로, 북쪽은 대구역, 동쪽은 공평동일대까지 상권이 뻗혀 있어 규모면에서도 이만한 번화가는 전국적으로 드물다. 주말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활기와 젊음이 넘쳐나던 대구의 명물이다.그러나 2000년 이후 부도심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동성로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빈 점포가 늘어나는 등 눈에 띄게 상권이 위축됐다. 동성로 상권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대구백화점도 그 사이 문을 닫고 말았다.대구시가 침체된 동성로 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관광특구 지정과 청년문화 부흥, 도심공간 구조개편 등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동성로의 옛 명성을 찾아 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성로를 직접 방문하고 “동성로 상권이 살아야 대구 전체가 산다”고 말하고 “동성로를 서울 홍대거리처럼 활기 넘치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시의 후속조치로 보여진다.동성로는 대구를 상징하는 오랜 전통의 중심 번화가다. 홍 시장의 말처럼 동성로의 부흥은 곧 대구 상권의 부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동성로 명예 회복을 위한 대구시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한다면 대구시민들도 크게 환영할 것이다. 대구시의 분발을 촉구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4

로봇테스트필드 안은 대구, 이젠 로봇도시다

대구 로봇업계의 숙원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차 도전에서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실패했던 대구시가 재심 끝에 예타 문턱을 넘어섬으로써 대구는 이제 국내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도시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하게 됐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은 로봇제품 서비스의 실증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실증 인프라다. 물류, 상업,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제 환경과 비슷하게 만든 공간에서 로봇의 서비스 품질, 안전성, 신뢰성 등을 평가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서비스 로봇사업을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 위해 로봇데스트필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대구시의 이번 예타통과는 의미가 상당하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 구축에는 총사업비 1천997억원이 투입되며 2028년까지 5년간 진행된다. 대구에서는 달성군 테크노폴리스가 로봇데스트필드가 입지할 장소다.로봇산업은 대구시가 구상하는 5대 미래 신산업의 하나다. 로봇테스트필드가 들어설 인근에 올해 새롭게 지정된 제2국가산업단지는 미래모빌리티와 로봇 등의 전용공단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로봇테스트필드 유치로 대구가 국가로봇산업 육성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대구 유치를 계기로 대구시 등이 지금부터 얼마나 정성을 들여 노력하느냐에 따라 대구의 미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번 예타 통과로 “대구가 본격적인 로봇허브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로봇산업 중심도시 피츠버그는 지역대학과 구글, 애플 등의 연구소가 집적되면서 첨단로봇 도시로 성장했다. 대구가 벤치마킹해 볼만한 곳이다.대구도 대학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 충분한 연구 인프라와 현대로보틱스 등 탄탄한 로봇산업 제조기반도 갖추고 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잘 갖춰진 로봇산업 생태계를 이끌 대구시의 전략과 지역기업들의 투자와 노력이 잇따라야 한다. 대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로봇산업 진작에 총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2023-08-24

가을은 오는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처서 지난 들녘에 가을빛이 어린다. 일제히 벼가 패고 빨갛게 고추가 익어간다. 호박도 누런 배를 드러내고 이따금 메뚜기가 날기도 한다. 한낮은 여전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는 자연현상이 우리 삶을 한결 수월케 한다. 엄동설한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삼복더위도 때가 되면 지나가는 자연의 섭리가 내면화 되어, 고난과 역경에도 쉽사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내성을 갖게 된다.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그것이 가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엔 겨울을, 겨울엔 봄을, 봄에는 여름을 설레는 기대로 맞게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여름의 불볕더위가 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춘하추동은 얼마나 생동적인 순환인가. 이 여름의 막바지에서 누군들 황금빛 들판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손짓하는 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지 않을 것인가.유감스럽게도 인간사회의 계절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지난 정권 동안 줄곧 불어대던 북서풍이 아직도 다 가시지를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심의 풍향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계절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직 계절의 변화를 막고 있고, 방송계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 가는 추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소강상태이나 머지않아 바람의 방향도 북서풍에서 남동풍으로 바뀔 것이다.공산사회를 흔히들 동토(凍土)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얼어붙은 땅이라는 말이다. 그 종주국 소련과 중국에는 해빙의 바람이 불어 어느 정도 눈이 녹고 얼음이 갈라지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 북한만이 유일하게 동토를 유지하고 있다. 그 냉동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돈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불어오는 북풍에 남한의 일부까지 냉해를 입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 북한에도 다양한 경로로 바람이 새어들고 있다고 한다. 냉동고에 구멍이 뚫리면 얼음이 녹을 수밖에 없듯이 머지않아 김정은 일당이 쌓아놓은 빙벽도 결국은 녹아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북서풍은 멎을 것이고 남한에도 온전한 계절이 올 것이다. 북서풍이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고 반대로 남동풍이란 자유진영의 바람을 일컫는 것이다. 최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도 바로 그 남동풍이 될 것이다.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듯 좌파들의 몰락도 머지않은 것 같다. 좌파정당 대표가 열 가지도 넘는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좌파정권 때 임명한 대법원장의 임기도 끝나가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공영방송국 이사진까지 개편되면 명실상부 다른 계절이 될 것이다. 아니 하나가 더 남았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과반수를 확보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얻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북서풍이 겨울을 몰아오고 남동풍이 봄을 데려오듯 민심의 향방에 국운이 달렸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불어가는 바람인가.

2023-08-24

한여름 산행을 즐기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동문산악회가 “경북수목원 둘레길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산행 계획을 알려왔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에어컨으로도 견디기 답답하던 터라 간단히 배낭을 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따라나섰다.청하를 지나 유계리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데 산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를 않아 전조등을 켜고 조심스레 달려 경북수목원에 도착했더니 등산객이 많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조용한 수목원 길을 걸어 능선에 섰다. 간단히 몸 풀고 가슴 가득 숨 쉬어 숲의 정기를 채웠다.안내판을 보며 산행 경로를 짰다. 매봉(833m) 아랫길, 임도(林道)가 아닌 오붓한 산길로 삼거리까지 갔다가 삿갓봉길로 올라오며 한 바퀴 돌아오기로 했다. 다섯 시간쯤 걸어야 한다. 옆길로 내려가니 흐릿하던 숲이 뚫리며 물기 젖은 풀잎들이 다리에 스치고 한 구비 돌 즈음에 벌써 어깨 등어리는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라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예쁜 버섯들이 비에 젖은 갈색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 사진을 찍다 보니 길섶에 붉은 보라색 작은 꽃이 애잔스럽다. 꽃며느리밥풀, 꽃말은 ‘여인의 한’이다.이따금 만나는 통나무 계단 길은 흙이 모두 쓸려나가 앙상해져 걷기가 힘이 든다. 밑둥치가 썩어버린 고목을 어루만지며 내려가다 만난 무덤은 봉우리 흙이 무너져 내려 묘의 상석이 덥혀 잡초만 무성하고, 오르막길에서 만난 돌무지에 돌 한 개 쌓고 산신령에게 가족의 평안을 빌어 보았다.단풍나무 상수리나무가 둘러싼 쉼터에 앉아 막걸리 한 잔 벌컥 마시니 마른 목과 속이 뻥 뚫린 기분에 순간 안개도 싹 걷힌다. 한여름 산행의 땀은 이제 감각도 없다. 1시간쯤 내려오니 졸졸 물소리가 들리고 둥근 나무다리 아래에 흐르는 개울이 보인다. 삼거리다. 개울 건너 물가 자갈밭에 배낭을 벗어두고 발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발등이 간질거려 물속을 보니 버들치들이 모여들어 발가락을 콕콕 문다. 닥터 피쉬의 모습이다. 물은 무릎까지 차고, 어릴 적 발가벗고 풍덩 뛰어 들어가 물장구치던 기억, 그 ‘알탕’을 하고 싶었으나 웃통만 벗고 땀을 씻었다.둘러앉아 김밥 맛있게 먹고 한잔하고 푹 쉬었다가 일어나 삿갓봉 쪽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길 몇 걸음에 또 땀이 흥건하다. 옛 화전민들이 참나무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 터를 지나 오르노라면 갖가지 나무에 이름표가 붙어있다. 참나무 여섯 종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와는 잎의 매끈함이,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또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잎 뒷면의 갈색 털로 구분한단다.멧돼지, 고라니,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곁 눈짓하며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외솔배기에 왔다. 옛날 가래골 사람들이 청하장에 다니던 길목의 정자나무 쉼터에 250년 된 소나무가 아직도 잘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좋다.마지막 영춘정 전망대 입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곧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들 단풍 숲을 그려 본다. 숲과 둘레길, 계곡물과 바위, 꽃과 버섯을 눈에 담으며 걸어본 약12km 1만8천 보…. 훌륭한 8월의 힐링 산행길이었다.

2023-08-24

을묘일주(乙卯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두 번째는 을묘(乙卯)이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과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같은 목(木)기운으로 봄에 솟아나는 푸른 새싹의 모양이다. 동물로는 토끼다.을묘일주는 풀밭과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초원의 물상이다. 매우 명랑하고 인정이 많은 편이다. 풀과 같이 연약한 화초이고 넝쿨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외유내강형으로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향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티를 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잘 받는 여린 심성이다.내면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소녀의 마음이다. 천진난만하고 밝고 생글생글하지만 마냥 애 같지는 않다. 안으로는 은근한 끈기가 있고,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 주관을 잘 바꾸지 않으며, 좌절이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상당한 고집의 소유자다. 을묘는 3대(을묘, 임자, 신유) 고집 중 하나다.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활력이 있으며, 환경적응 능력도 뛰어나다. 겉으로는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성격이 강직하여 누구도 고집을 꺾을 수 없다. 뿌리가 강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강인함은 아니다.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문제 해결에서 탁월한 역할도 한다.19세기 영국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제인 에어’를 썼던 샬롯 브론테(1816∼1855)는 직접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고아 여자아이고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템플 선생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성이었다. 반면에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장은 브로클허스트 목사였다. 템플 선생과 이사장의 대화 한 장면이다.브로클허스트 목사가 화난 듯이 말했다. “템플 선생! 점심식사에 빵과 치즈가 함께 배급된 사실을 발견했소. 이게 어찌 된 거죠? 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동안 점심으로 이런 식사가 배급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소. 이런 개혁을 누가 시작한 거요? 무슨 권한으로?”템플 선생이 대답했다. “그 상황은 제 책임입니다. 아침식사가 형편없어서 학생들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식사 때까지 아이들을 계속 굶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 탄 음식 대신 빵과 치즈를 아이들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비천한 그들의 몸을 살찌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불멸의 영혼을 얼마나 굶겼는지에 대해서는 선생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브로클허스트 목사가 말을 멈추자 템플 선생은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학교의 지출을 줄이게 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템플 선생은 아픈 아이들과 함께 질병에 맞섰지만,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전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19세기 영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중산층 자녀들은 소녀전용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덕목, 즉 남성의 조력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기숙사 학생에 대한 템플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은 성장기 소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샬롯 브론테는 소설에서 여성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 의해 결정되고, 남성에게 헌신함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주성을 유지한다. 을묘일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많이 사랑받고 있는 책이다.을묘일주 남성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다. 여러 여자와 사귄 후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바람을 피우면 잘 걸리지 않는다고 고전에서 말한다. 여성은 연하의 남자와 사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남자를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녀 공히 배우자 운이 약한 편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성관계가 복잡할 우려가 있고, 유혹에 잘 넘어가기 때문에 냉정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을묘일주는 하늘에서 봄비가 내려 초목이 성장한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가 연상된다. 풀밭의 토끼는 근심이 없다. 얌전하고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주 일찍 일어나 토끼 굴에서 나온다. 토끼는 어려움이 닥쳐도 아주 냉정하게 잘 처리한다. 폴짝하고 뛰어 넘으며, 아주 큰 난관에 부딪쳐도 냉정하다.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으니 어려운 인생살이에 산을 만나도 잘도 넘어간다. 단, 남들 같으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쉬운 길을 토끼는 부들부들 떤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소심하고 겁먹는 기질이 있다.우리나라 고전 가운데 ‘별주부전’이 있다. 바닷속 용왕이 위독한 병이 걸렸다. 유일한 약이 토끼간이다. 충직한 신하 별주부는 용왕을 위해 토끼를 데려오지만, 위험에 처한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앙큼한 말로 용왕을 속이고 도망간다. 병에 걸린 용왕을 통해 조선후기 정치권력의 탐욕과 거짓을 풍자한 이야기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백성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매순간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어깨의 뻐근함이 가중될 뿐이다.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만을 고집한다면 만사가 힘겹고 점점 버티기조차 버거워질 것이다.사람들이 동물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과 어린아이는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살아간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근심도 권태도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의 행복을 선망하기 때문이다.

2023-08-23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정미영 수필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2023-08-23

산후풍과 산후조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최고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 행복의 순간을 가져가기 위해선 출산후 몸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현대는 뛰어난 의료 기술과 충분한 산후 관리와 영양 섭취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산후풍으로 고생 받는 산모는 존재한다.보통은 힘들게 출산후 충분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입맛이 없어 영양공급을 제대로 못해준 후 여름엔 에어컨을 많이 쐬거나 겨울엔 찬바람을 많이 맞아 산후풍에 걸려 고생한다. 증상은 몸살 감기 초기 증상이랑 아주 비슷해 감기인줄 알고 방치하거나 감기약을 먹다가 안되어 한의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 관절이 아프고 뻐근하며 몸이 시리고 심한 경우는 바람이 몸에 닿거나 물에 손이 닿는 것 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 특히 무릎 이하 하지쪽이 시린 경우가 많고 손목 무릎 손가락 관절이 다 아프다. 관절쪽의 증상 때문에 류머티스 검사까지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한의원에서의 치료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몸살을 풀어 주는 약 위주로 증상의 경중에 따라서 처방을 한다. 산후풍의 증상이 심하지 않는 경우는 몸을 보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약 위주에 황기를 겸해서 처방을 하면 서서히 개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를 보고 치료를 한다. 증상이 너무 심하면 관절과 몸살을 강하게 풀어주는 약을 쓴다. 이런 경우는 모유수유를 중지 시키고 처방을 한다. 약에 따라서 모유수유가 가능할 수도 있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출산 후 몸이 크게 아프지 않아도 어혈을 제거하고 몸을 보하는 약을 먹어주는 게 산후풍의 예방에 효과적이다. 처음엔 괜찮다가 몇 달 후 아파서 오는 경우도 있다.예방으로는 출산을 하고 나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덥다고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거나 직사로 바람을 쐬면 안 된다. 그리고 찬물에 샤워를 해도 안 되고 샤워 시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욕실에서 물기를 전부 다 닦은 뒤 나와야 한다. 몸이 조금이라도 으슬하거나 추위를 느끼면 긴옷을 입고 한기가 사라질 때까지 방을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좋다. 음식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고루 영양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너무 매운 음식이나 강한 음식 보단 간이 덜된 담백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속이 좋지 않으면 안그래도 좋지 않은 몸의 회복이 더뎌진다.산모의 몸이 좋지 않으면 아이 돌봄에 조금이라도 소홀해질 수 있고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도 건강한 산모보다 모유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또 산모의 몸이 그만큼 축이 난다. 너무 아픈 경우는 분유를 먹이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남편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몸은 아프다고 하니 잘 믿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산후풍은 생각보다 더 많이 아프니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 출산 후 몇 달간은 최대한 몸조리를 하고 가족들도 산모의 몸 회복을 우선시 하여 산모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산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큰다. 건강한 산모의 모유와 아이돌봄은 아이의 건강을 더욱 좋게 한다.

2023-08-23

효전(孝電)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으면 그냥요~라고 말한다. 나는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 인사를 대신하며 대화를 잇는다. 화젯거리가 있으면 길게 수다를 떨 때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로 지극히 일상적 안부를 묻고 대답하면서 짧은 통화를 끝낸다. 오히려 말할 거리가 없어 어색할 때도 많은 이런 전화, 꽤나 오래된 루틴이다.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갈 때쯤 해준 이야기다. 효문(孝蚊)이라는 말이 있단다. 조문효도(蚤蚊孝道)를 줄여서 하는 말이란다. 예전 어떤 사람이 효도하는 방법에서 나온 얘기였던 것 같다. 그는 여름밤 잠잘 때 파리와 모기를 쫓지 않았단다. 자기가 쫓은 모기가 부모를 물까 걱정해서 그랬단다. 또 어떤 이는 여름에 부모의 곁에서 굳이 윗옷을 벗고 잤단다. 그러면 모기가 젊은 자기의 피를 빠는 대신 부모를 물지 않을 것이라 부모가 더 편히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단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스갯소리 같긴 하지만 이 예화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효전(孝電), 효도전화다.이제 넌 집을 떠나 우린 자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난 매우 자주 널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 안부는 주기적으로 하자. 네가 공부하거나 친구랑 있거나 어쨌든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면 내가 하는 전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전화는 네가 하는 걸로 정하자. 난 너보다는 자유로우니 받는 게 더 쉽겠지. 그 전화를 나는 효전(孝電)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아주 짧은 안부 인사라도 좋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안부 전화가 햇수로 벌써 23년이 되었다. 대부분의 전화는 금요일 저녁참에 왔고, 아들임을 확인하면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라고 말하면서 받았다. 군생활을 하는 2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끊임없었던 일상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후, 결혼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효전은 계속되었다. 결혼 이후엔 이만 끊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아니어도 가족들의 SNS로 아들의 무사한 일상을 접할 다양한 방법이 많아졌기도 하다. 더 바빠진 일상 탓에 부담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그냥, 말 그대로 그냥 하는 전화일 뿐이라고 생각해선지 여전히 금요일 저녁엔 전화가 온다. 뭐 유난하고 알뜰살뜰하고 자상한 모자지간이어서도 아니다.금요일 저녁의 루틴 말고도 아들의 전화가 간혹 있다. 한글맞춤법이나 한자뜻풀이를 묻거나 손녀들의 깜찍스러운 언행을 자랑하듯 알려줄 때도 있다.-며느리를 통해서, 또는 SNS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대부분이긴 하다-그중 아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화가 하나 더 있다. 그날엔 평소보다 좀 진중한 목소리다. 나는 눈치채지 못한 채 어? 금요일도 아닌데 웬일?이라며 반갑게 받고 아들은 그냥요~ 라고 한다. 일상의 대화를 잠시 잇다 보면 아차 내가 네 생일을 잊었구나. 또 네가 먼저 전화를 하네. 내가 축하 전화를 먼저 해야 했는데, 난 아들 생일도 자꾸 잊어버리네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늦었다. 아들의 그냥요~라는 목소리엔 제 생일이면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웅숭깊은 속정이 다 녹아 있다. 참 무심한 엄마다.

2023-08-23

국회의원 261명이 서명한 달빛철도 특별법

국회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발의에 헌정사상 가장 많은 여야의원이 동참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여야 국회의원 261명은 22일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발의에 서명해 이 법의 연내 국회 통과에 청신호가 켜졌다.대구와 광주의 숙원 사업인 달빛고속철이 개통되면 대구와 경북 고령, 경남 합천, 거창, 함양, 전북 장수, 남원, 순창, 전남 담양, 광주 등 6개 광역지자체와 10개 기초지자체 1천700만명의 주민이 혜택을 입게 된다.특히 이 법 발의에 국민의힘 109명, 더불어민주당 148명, 정의당 1명, 무소속 3명 등이 참여해 국회가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마음으로 영호남 지역화합과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데 힘을 모아주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달빛고속철은 그간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국가 정책에서 고배를 마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정부가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고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소중한 가치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대구와 광주가 같이 만들었다는 성취감과 근린의식까지 갖게 되는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국회가 극한 정쟁으로 치달으면서 달빛철도 특별법 발의에 재적의원의 90% 가까운 여야의원이 동참한 것은 이례적이고 놀랄만한 일이다. 이제 조속한 법 통과로 이 법이 담고 있는 영호남 교류 확대와 국토균형발전, 남부 경제권 활성화 등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4조5천억원이 투입되는 달빛철도가 완공되면 영호남은 1시간대로 가까워지고 대구 신공항과 연계돼 관광산업 진작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2038년 대구광주 하계아시안게임 공동유치에도 긍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번 고속철도가 남북이 아닌 처음 생기는 동서간 철도란 점에서도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특별법 연내 통과에 차질이 없도록 지역 정치권은 긴장감을 놓지 말길 바란다.

2023-08-23

심각한 ‘안동호 녹조현상’… 근본대책 세우라

안동시 도산·예안·와룡·임동·임하면 등 5개 면에 걸쳐 있는 안동호가 심각한 녹조현상으로 수질이 역대 최악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는 우울한 뉴스가 나온다. 본지가 23일 보도한 안동호의 모습은 마치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호수전체가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 게다가 악취까지 풍긴다니 호수주변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는 짐작이 간다.안동호 녹조현상은 여름철마다 발생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지난 1976년 댐 축조 이래 호수 52k㎡ 전역에서 녹조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기준 안동호 상류인 예안교 부근 유해 남조류수 세포수는 9만4천95cells/㎖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녹조현상이 발생했을 때의 유해 남조류수 세포수(3만3천376개) 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안동댐까지 녹조로 뒤덮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안동호 수질악화 소식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곳은 대구시다. 식수문제가 최대현안인 대구시는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를 낙동강 대신 식수로 활용하려는 구상(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사업비 문제로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동호 녹조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며 수질이 악화되고 있으니, 정부로서는 반대명분이 더 생긴 셈이다.안동호 녹조현상은 가축분뇨와 비료, 쓰레기 등 다양한 오염원이 호수로 유입된 이후 폭염이 지속되자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독성이 있는 남조류는 물속 산소 농도를 떨어뜨려 어패류를 폐사시키고, 정수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식수로 공급되면 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한국수자원공사는 어제(23일)부터 대형녹조제거선으로 녹조제거 작업에 나섰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일시적 효과를 거둘 뿐이지, 항구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녹조 발생의 주원인이 호수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니만큼,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3-08-23

보신탕의 종언(終焉)

홍석봉 대구지사장 개를 먹는 민족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중국이나 마야의 기록에도 남아있다. 프랑스도 1910년대 개고기집 사진으로 미뤄 개를 식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지 탐험가들도 극한 상황에선 썰매를 끄는 개를 잡아먹었다. 홍콩, 대만,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은 얼마 전 개 식용을 금지했다. 현재 식용 목적으로 개를 집단 사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개고기는 조선시대 평민들이 즐겨 먹던 고기다. 푸줏간에서 개고기를 함께 팔았다. 정조 대왕도 보신탕을 즐겼다. 먹을 것이 귀했던 전쟁 때는 중요한 양식이 됐다. 여름철 더위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기도 했다. 특히 복날에는 삼계탕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몸을 보신해 준다고 해서 ‘보신탕’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여름철 보양 음식의 상징이 됐다.우리의 오랜 보신탕 문화가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외국에도 우리네 보신탕 문화를 미개인 취급하며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대구 칠성시장에는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시장이 있다. 얼마 전 동물보호단체 ‘캣치독팀’이 칠성시장 개시장과 함께 전국 약 2천개 보신탕 업소를 고발하겠다며 행동에 나서 주목받았다.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도축과정이 동물학대와 동물권리 유린행위로 낙인찍혔다. 폐쇄를 촉구했다.국회도 개 식용문화 종식에 동참했다. 여야 국회의원 44명은 22일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연내 관련 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반려동물 인구 증가와 함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변화로 보신탕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보신탕 애호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세태변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3

힘든 청년, 병든 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병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까닭도 없이 죽이고 해치는 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책은 또 어떤가. 문제의 근본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엄정한 처벌’에 머물고 있다. 장갑차가 등장했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한다. 벌어진 폭력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엄정하게 대처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두고 형벌로 다루겠다는 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각 가운데 하수(下手)다. 하필 이 여름에 이런 일들이 줄을 이어 발생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날이 덥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해친다고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바보가 있을까.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미움과 욕설’로 가득한 세상이다. 국회가 들려주는 언어의 패턴은 혐오와 조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편가르기와 등돌리기가 정치행위의 상식이 되었다. 멋진 정치에서 경청과 타협, 토론과 양보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제 누구를 만나도 ‘어느 편’인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한 끝에 인간은 결국 홀로 남지 않을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존재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투표와 다수결이 소중한 까닭이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나라 안에 가득한 혐오분위기와 차별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전염되었다. 인정하고 포용하기보다 밀어내고 미워하는 기운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늑대’로 내몰리고 만다. 기회가 보이지 않고 기대할 것도 사라진 세상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듯 여겨질 터이다. 출처가 어딘지 분명치 않은 미움을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퍼붓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신의 힘든 처지를 그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사회적 병리현상은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 일탈현상으로 여겨 처벌로만 대처하다가는 사회적 골든타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하고 문화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편가르기의 폐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하여 사회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병든 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묻지마범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오늘, 사회적으로 차분히 문제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미래세대가 중요하지만, 오늘의 청년세대가 든든한 허리로 받쳐주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20대와 30대에 건강한 사회환경을 실현해 주어야 하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닦아낼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년에게 기대와 소망을 안기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8-23

농축산물 선물가액 또 상향, 법 취지는 지켜야

국민권익위가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설, 추석 명절 농축산물 선물가격 상한을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김영란법 적용대상 선물범위에 온라인·모바일 상품권과 문화관광권을 포함했다.권익위 전원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으로 올 추석부터는 공직자라도 30만원까지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시행 시기는 다음달 5일부터 10월 4일까지가 된다.이에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농수축산업계 지원과 문화예술 소비 활성화를 위해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했다. 그 결과 집중호우와 태풍피해, 물가상승 등으로 고통을 받는 관련업계 피해보상을 위해 시행령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업계가 고통을 받는다면 시행령이 아니라 법이라도 고쳐 지원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야금야금 시행령을 고쳐 선물가액을 높여간다면 법 취지가 지켜질지 의문이란 비판도 있다.2016년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자 만들어졌다. 법 제정 후 공직사회에 상당한 긴장감을 주고 부정부패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그러나 농수축산물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업계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정부는 이를 수용해 작년 설부터는 명절선물 가격을 기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했다. 이번 조치로 명절선물 가격은 1년6개월여만에 또다시 상향 조정하게 된 것이다.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개정 취지에 공감은 하나 이런 식으로 간다면 입법 취지에 역행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시행령 개정이 아닌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은 없는지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공직자 청렴 유지를 위해 꼭 이런 방법이 동원돼야 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직 비리척결을 위해 농수축산 종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앞으로 물가는 또 오른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정부가 선물가격 기준을 변경한다면 법을 왜 만들었느냐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2023-08-22

지방공공기관의 ‘착한적자’ 한계 넘었다

상·하수도와 도시철도공사 등 지방공공기관의 영업 적자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원가에 비해 낮은 요금과 무임승차 등이 주원인이다. 전국 지방공공기관 중 적자가 가장 심한 5개 기관 중 대구·경북에서 3개기관(대구 상수도, 포항 하수도, 대구교통공사)이나 포함됐다. 공공재정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시는 상수도의 영업적자가 2022년에만 295억800만원에 달했다. 적자규모가 전국 최상위권에 랭크됐다. 포항시 하수도는 영업적자가 2022년 627억8천300만원으로, 인구수가 6배 이상 많은 부산시(330만명) 적자 517억원보다 더 많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대구교통공사 역시 지난해 3천11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도시철도 평균원가가 3천615원인데 비해 평균요금은 688원으로 요금현실화율이 1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이들 3개 공공기관이 모두 큰 적자를 낸 것은 기본적으로 평균원가에 대비해 요금이 턱없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평균요금을 평균원가로 나눈 요금현실화율이 3개 기관 모두 최하위권이어서, 흑자를 낸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지방공공기관의 존재 이유가 질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효과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맞다는 데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착한 적자’라는 논리로 공공기관의 과도한 적자를 정당화해선 곤란하다. 이런 논리라면 공공기관 적자와 부채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정부공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지방공공기관의 경우, 만성적 적자경영 원인을 낮은 요금현실화율 탓으로만 돌리며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요금 현실화가 당면과제이긴 하지만, 방만한 경영이나 도덕적 해이 등의 요인도 함께 진단해 봐야 한다. 아마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하면 적자규모를 줄일 방안이 나올 것이다. 도시철도 적자 문제는 지방정부에서 일단 구간별 요금조정 등의 경영개선책을 마련해야 하고, 노인복지 차원에서 국비지원방안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

2023-08-22

국민의힘 당무감사, 黨勢확장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이 강도 높은 당무감사를 예고하면서 총선 공천작업이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다. 당무감사에서는 공천에 직결되는 정보가 체크되기 때문에,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총선 공천 부적격자’라는 출처 불명의 살생부가 당 내부 자료인 것처럼 떠돌고 있어 현역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총선때만 되면 물갈이 타깃이 됐던 TK(대구·경북) 현역들의 고심은 더 깊다. 역대 총선때마다 TK는 보수당의 텃밭인 탓에 오히려 물갈이 수준이 혹독했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TK현역 교체율은 64%에 달했다.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현재 전국 당협 실사를 앞두고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부산출신이며 의사인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은 “질의서를 논문처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을 꼼꼼하게 질의서에 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질의서에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의 당원 관리, 사고 여부, 평판, 도덕성, 인지도, SNS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현역 의원들의 경우, 점수화가 가능한 공천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의정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법안 실적, 출석률 등 정량적 평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과 국정과제 등에 부합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느냐 여부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텃밭인 TK지역에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경쟁력이 센 친박(친박근혜)계와 지명도 높은 무소속 인사들의 출마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TK 지역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 출마를 선언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TK지역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경산 출마가 유력시되는 데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영주·영양·봉화·울진 출마설이 있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선 “무소속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총선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함께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일부 TK 다선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설도 있어 여당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반윤·비윤계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거꾸로 노를 젓는다든가, 배에 구멍을 낸다든가 해서 침몰하게 한다면 그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없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배경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는 사실상 공천심사와 다름없다. 당무감사가 내부분열이 아니라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2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 중국경제

우정구 논설위원 덩샤오핑은 오늘날 중국 경제가 세계 2위 대국으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이 된 인물이다. 1978년 그가 펼친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40여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덩샤오핑의 어록 중 하나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지만 파리, 모기도 들어오는 법”이라 했다. 중국이 심천 등을 경제특구로 개방하자 곳곳에서 음란퇴폐 문화가 동시에 번져나갔다. 이에 일부 비판론자들이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자본주의의 쓰레기 문화가 유입된 탓이라고 비난하자 이에 그가 응답한 대답이다.1979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흑묘백묘론을 주장했다.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사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그의 개방 경제정책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로 유명하다.중국경제가 40여 년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덩샤오핑 이후 줄곧 성장하던 중국경제가 올들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부동산발 신용위기까지 겹치자 경기침체를 넘어 위기론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의 최대 부동산개발 회사인 비구이위안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부동산업계의 도미노 부도위기가 확산되고, 금융권으로 부실이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중국의 경제위기에는 시진핑의 장기 집권의 부작용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나 중국과 거래가 많은 한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이 우려된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한국 관광이 허용됐지만 경제위기 속에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유커들의 소비가 움츠러들 가능성도 높다. 실사구시를 추구한 덩샤오핑이 생각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2

광복절 기념史

광복.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빛(光)을 되찾다’의 의미에로 해석하곤 하는데, 실제 ‘광복(光復)’에서의 ‘광’은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예롭게’라는 뜻의 부사이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되찾다’라는 의미. 여기에는 2017년 김영민 교수가 칼럼을 통해 지목한 바와 같이 무엇을 회복하는가를 알려주는 목적어가 빠져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자결권, 자신에 대해 결정한 권리이다.우리가 지닌 정체성과 자결권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타자에 의해 위협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체성과 자결권이다.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의를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20세기의 관습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의 여러 국가와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헌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단군의 자식이라는 단일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정체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을까. 2010년을 전후하여 사학계에서 제기된 단일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면, 한반도는 상고시대 이래로 무수한 이방인의 방문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왜’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에서부터 북방 유목민족,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심지어는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종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국가 성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기획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는 의미이다.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단일 민족과 같은 허구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란 타자에 의한 위협 속에서 스스로의 결정권을 지켜내 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이다. 그러니 ‘광복’이란 단지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으로부터 국가적 역량의 문제와 전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는 사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에 뿌리 깊게 새겨진 상처로서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8월 15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다소 의아한 충격을 받았다.이날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언급을 반복하며, 광복절의 의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연설을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광복절이라는 것이 외부세력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되찾았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이 전혀 이해 못할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광복이라는 단어에 있어 그 대상이 일본 제국이었으며,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는 역사적 비극을 상기하자면, 이러한 대통령의 연설은 지나친 감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우리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광복하였는가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더욱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러한 대통령의 이어진 연사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명확한 대상 없이 이루어진 이와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해 활동해온 사람들을 순식간에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단지 반국가세력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무엇을 통해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가치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광복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결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말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 세우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자결권과 정체성의 의의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고,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23-08-22

풍요와 빈곤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건 사소한 일상이 아닐까. /언스플래쉬 요즘 나의 일상은 단출하다.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 대부분은 소설을 쓴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 식사를 마치면 강아지와 함께 작업실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저녁을 만들고 영화나 만화책을 보며 빈둥거린다.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나는 이런 일상을 간절히 원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 마감을 위해 새벽 5시에 책상 앞에 앉았고 개인적인 작업보다 그쪽에서 원하는 일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은 매일같이 쏟아졌으나 그것을 누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호교환, 그러니까 저쪽에선 월급을 주고 이쪽에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행위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꼈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면서 생각했다. 글만 쓰고 싶어.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아.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의 모양이 이제야 완성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누벼야 옳았다. 안온한 공간에서 오롯이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더없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매달 통장에 일정하게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모아둔 돈을 차곡차곡 까먹는 날이 늘어난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모든 직장인이 부르짖는 ‘자유’는 결국 ‘경제적 자유’임을. 통장에 찍힌 숫자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을.오랜만의 외식비가 과하지 않았나 안절부절못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결제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을 만나면 보풀이 일어난 속주머니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누구는 강남에 몇 평짜리 집을 샀고 누구는 보통의 연봉을 몇 주간의 여행에 썼다는 소식.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와 명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만 같다. 내 삶의 규모가 남들보다 터무니없이 작다는 게 실감 나는 날에는 누구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귀가하게 된다.우리 사회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나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의 지리멸렬한 가난을 겪었다. 이러한 과거를 딛고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그러나 여전히 청년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실제적 가난을 견디는 무수한 이들도 있으나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세상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어느 동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아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삶이 화려할수록 나 자신의 초라한 삶이 도드라져 보인다. 더 잘 살고 싶어서 힘차게 발을 굴러도 늘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그렇지만 풍요와 빈곤의 뜻을 자본의 논리에서 찾는 순간 많은 것이 무너지게 된다. ‘잘 산다’라는 개념의 동의어를 ‘돈이 많다’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고, 손에 쥔 것이 없더라도 그 안에서의 풍요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다. 무엇을 추구하고 또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작업실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팔월의 빛과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높고 푸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을 목격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낚지 않는 그물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름, 내 옆을 지키는 작가들의 문장과 부모님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만든 도시락 반찬, 반려견의 고요한 낮잠과 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는 낯선 이야기. 이 모든 게 나를 풍요롭게 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상이다. 불투명한 내일에 관한 불안도 끌어안아야 한다. 풍요도 빈곤도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23-08-22

다름의 인정

최선희 경운대 교수 “매사 내 의견에 반응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법륜 스님 강의를 한 번 들어보세요.”목욕탕 찜질방에서 어떤 기혼 여성 두 분이 나눈 대화이다. 법륜 스님이 어떤 강의를 하는지 궁금해져서 유튜브 방송에서 스님의 강의를 들어보았다. 강의는 대부분 어렵고 힘든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이었는데, 스님이 설파한 주요 해결방안은 “다 달라서 그래요.”였다. 그렇다. 우리는 참 많이도 상대방의 다름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 그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 특성이 같지 않음은 당연한 사실인데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기준과 판단으로 평가하면서 타인의 성향이나 의견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학생들에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점을 물어보면,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라는 예를 들면서 두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는 분명한데, 우리는 특히 ‘다르다’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에 ‘틀리다’를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이 문제가 단순히 습관에 불과한 것일까.혹자는 사회가 각박해져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어감을 사용한다고 진단한다. ‘다르다’를 사용해야 할 곳에 ‘ㅌ’의 거센소리가 들어간 ‘틀리다’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단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이 좀 틀려.”라는 표현을 자주하곤 한다. 이것은 다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둘째 아이가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큰 아이하고 너무 틀려서 속상해요.”라는 부모의 하소연은 ‘다름’에 대한 수용과 인정의 부족이다. 우리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틀리다’고 생각 하는가.지금은 작고한 한 야구감독이 우수한 선수의 단 하나의 단점을 고쳐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일어난 실수를 방송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무수한 훈련과 채찍질로 자신이 지도했던 훌륭한 야구 선수의 단점을 고쳐주었더니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장점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한 것이다. 교각살우는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작은 흠이나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다르기 때문에 조화로울 수 있고 각양각색의 빛깔로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덤으로 ‘다르기’ 때문에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뿐인가. ‘다름의 인정’은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출발점이다. 지금 바로 표현해보자. 아내와 남편에게 “당신은 ~점에서 나와 다르게 특별해요.” 친구나 자녀에게 “~생각을, ~것을 다하다니 넌 정말 나와 달라. 그리고 특별해.”

2023-08-22

墨香 피는 인사동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조석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와 또렷해지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한낮으로는 아직 노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도, 여름을 마감한다는 처서(處暑)가 오늘이고 보면 늦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난히 심한 무더위와 폭우, 태풍의 상흔이 안타까운 생채기로만 남긴 채 계절은 가을채비를 하고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의 넌더리가 우려스럽기만 하다.더위가 숙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늦더위보다 후끈한 열기로 서예와 문인화의 향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전국의 유망 서예작가 12명이 ‘월간 서예문화’의 초대를 받아 오늘날의 시대성을 살리면서 작가의 개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작품을 부스개인전 형태로 선보인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는 할당된 공간에서 독창성을 살린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의 개인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필묵의 세계화展’의 취지로 한국서예의 단면을 보여주고 다양성의 조화 속에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그룹전으로 열린 것이다.문화와 예술, 트렌드의 원천(源泉)인 서울에서 전국의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아감이 더욱 어렵고 그 보이는 것도 기이한 서예의 세계에 흠뻑 빠져, 오랜 세월 외곬스럽게 일궈온 한묵(翰墨)의 정념을 거침없이 넓고 깊게 펼쳐 보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작가 특유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전통서예의 재해석과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탐색하는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들고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과연 인사동(仁寺洞)은 전통문화의 거리답게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가 서린 소중한 공간이었다. 길거리마다 대부분 외국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갤러리나 전통음식점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왕래부절이었다. 큰길 옆으로 사이사이 이어지는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곳에는 화랑이나 필방,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카페 등이 밀집돼 있어서 독특한 멋이 있고 교류와 소통, 체험과 만남의 장소로 이상적이었다.그렇게 근사한 곳에서 작품전을 열고 새로운 분위기에 젖어드는 기회를 갖는 것은 정말 선물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생면부지의 관람객이 작품전의 느낌을 방명록에 일필휘지하고, 화려한 차림의 어느 외국인이 서예작품에 매료된 듯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며 이색적으로 환호하는가 하면, 각별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몇 번씩 다시 찾거나 특히, 풀잎 하나로 즉석에서 축하연주를 해주신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선생 등의 분들이 새삼 고맙고 정겹게 느껴진다. 인사동을 묵향으로 뜨겁게 달군 ‘2023 KOCAF’는 의미있는 진전과 좋은 추억으로 처서와 함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

2023-08-22

연애의 시대, 전찻길에 두고 온 사랑

‘나도향(羅稻香)’이라고 하면,‘뽕’이나 ‘벙어리삼룡이’처럼 향토적인 색채 짙은 작품을 몇 편 썼던 작가로만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신문에 본격적인 연애소설을 최초로 연재했던 사랑의 작가였다. 나경손(羅慶孫)이라는 본명을 두고, 소설을 쓸 때는 주로 벼의 향기라는 의미의 ‘도향(稻香)’이라는 필명을, 번역이나 평론을 쓸 때는 주로 ‘나빈(羅彬)’이라는 필명을 썼다.생원집에 하인으로 있던 벙어리 ‘삼룡이’가 주인집에 시집온 아씨가 부당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참다못해 복수하는 이야기나, 누에 먹일 뽕나무잎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아귀들의 수라도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1922년에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던 ‘환희’는 당시 일제에 강점된 한국에서도 연애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애는 인간들 사이의 마음의 문제지만, 그 실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연애편지를 쓰고,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들은 단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집안끼리 날짜와 사주를 맞추는 옛날의 제도에서 벗어나, 1920년대에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연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게다가 이 작품에는 1930년대 신문 삽화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석영(夕影) 안석주(安碩柱)가 처음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해서, 여러 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래 그림을 그렸던 안석주는 매일 그려야 하는 삽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너무 완벽한 유화 스타일의 삽화를 그리려고 하다 나중엔 힘이 부쳤는지 중도에 그만두었다. 나도향(羅稻香·1902~ 1927). 이 소설 ‘환희’는 가난한 고학생인 김선용에게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은행원 이영철이 자신의 동생 이혜숙을 소개해주려고 하며 시작된다. 어린 이혜숙은 가난하고 잘 생기지 못한 김선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영철이 일하는 은행의 은행장 아들 백우영에게 끌린다. 하지만, 모처럼 오빠의 소개인 만큼 김선용과 덜컥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해 버리지만, 난봉꾼 백우영에게 속아 덜컥 그에게 겁탈을 당하고 그만 그와 결혼하게 되고 만다. 김선용과 백우영 사이에 있던 이혜숙, 백우영과 이영철 사이에 있던 기생 설화를 둘러싸고 결국 누군가 죽고, 누군가 영영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야만 끝날 청춘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이 나도향의 ‘환희’는 연애로맨스소설의 클리셰인 연애삼각관계의 정석을 보여준 창작 소설의 첫 번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나도향은 전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주인공 마음의 미세한 결을 세밀하게 읽어낸다. 이미 사랑에 빠진 김선용은 이혜숙에게 가볼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면서 그 기로에서 기다린다. 내심으로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가 있지만, 일말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로 하여금 반대편의 플랫폼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다.뻔하디 뻔하고,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연애로맨스 이야기가 그렇게 매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그 뻔한 플롯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가슴 아려오는 이야기가 된다. 백 년 전 전찻길에서 사랑하는 이를 먼 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반대편 전차를 힐끔거리는 못난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