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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시니어 존’ 등장이 사회에 던지는 충격

심충택 논설위원 여자주인이 노인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붙였다고는 하지만, 제주도 한 카페에 ‘노 시니어 존’스티커가 등장했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60세 이상은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오지 말라’는 스티커라고 한다. 마치 우리사회 전체의 노인을 대상으로 선언하는 ‘주홍글씨’ 같다. 요즘 노인들도 청장년층 못지않게 카페문화를 즐기기 때문에 노시니어존은 다른 ‘노000존’과는 달리 충격적이다.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미래는 2030세대의 무대다. 60대이상 70대는 투표안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떠오른다.정 의장은 당시 60대 이상 연령층을 향해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끔 대구시 중구 반월당역 지하쇼핑몰을 가보면 노인들이 지하공간 로비를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역 지하공간이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편리한데다 냉난방이 잘 되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노시니어존의 등장은 노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슬픈 노인들의 신세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나는 5월이 되면 옛날 대가족이 살았던 고향집이 그리워진다. 고향집은 ‘전원일기’ 드라마에 나오는 일용이네 집처럼 깊은 산골 초가삼간이었다. 이 작은 집에서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은 같이 살았다. 대가족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혈육의 소중함을 알았던 그때가 너무 행복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는 어른에게 효도하고 가족 간에는 포용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였다.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사정은 지극히 좋지 않다. 2021년 통계청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전 국민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율)은 37.6%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이 시대를 사는 노년층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한 세대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데다 대부분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 경우가 많다. 노년의 빈곤도 문제지만 외로움은 더 견디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노시니어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자영업자가 원하는 소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시장논리라는 것이다. 노시니어존이 많이 생겨날수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하는 카페도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지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이념적 편가르기 문화가 더 세분화된 분야로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노시니어존 카페의 등장은 SNS나 선거과정을 통해 노인증오를 선동하는 분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우리 국민의 유교정신은 외국학자들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가족제도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노인증오 풍조는 사회적갈등 심화 때문에 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합심해서 근절해야 한다.

2023-05-16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우정구 논설위원 파충류의 일종인 도마뱀은 현존하는 파충류 가운데 가장 많은 6천종이 넘는 종류를 가지고 있다. 산간 초원이나 사막 등지에 서식하며 천적을 만나면 꼬리를 자르고 미끼로 남기며 도망가는 동물이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천적을 만나는 절체절명 순간에 최후 수단으로 사용된다. 잘린 꼬리에 신경이 남아있어 일정시간 꿈틀대며 천적의 관심을 끄는 동안 본체는 멀리 달아난다.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를 생태학적으로 관찰하면 몇 가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다시 자라난 꼬리는 더이상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꼬리 자르기는 일생에 단 한번이다.또 자절 후 꼬리가 재생되더라도 처음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으로 재생된다는 점이다. 잘려나간 꼬리에는 뼈가 있지만 다시 생긴 꼬리에는 힘줄만 있고 뼈가 없다. 꼬리는 양분을 저장하는 곳이어서 재생된 꼬리로서는 힘을 제대로 쓰기가 힘들고, 또 몸의 균형이나 속도를 내는데도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도마뱀이 꼬리를 잘라 임기응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타고난 본래의 기능을 완전 회복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의 섭리라 한다.사람 사는 세상에도 꼬리 자르기가 있다. 진실을 숨기고 아랫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한 행위를 비유해 이렇게 부른다. 더불어민주당이 돈봉투 의혹이나 각종 비리에 연루된 소속 의원을 자진 탈당시키면서 탈당꼼수, 꼬리 자르기란 비난에 휩싸여 있다.특히 코인 투기의혹에 빠진 김남국 의원이 자진 탈당하면서 논란이 더 증폭되고 있다. 진실은 자른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도마뱀의 꼬리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3-05-16

세계적 항공사와 TK의 상생협력 환영한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의성지역 항공산업 기반구축과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의 활성화를 위한 의미깊은 행사가 그저께(15일) 포항시 남구 포항경주공항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에는 경북도가 포항경주공항에서 세계 최대 중소형 항공기 제작사인 엠브레어사와 항공산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마틴 홈즈 엠브레어 총괄부사장(CCO), 마시아 도너 주한 브라질 대사,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행사 참석자들은 MOU체결 후 엠브레어사가 제작한 소형 제트 항공기 E190-E2를 타고 공사가 30%정도 진행중인 울릉공항의 상공을 선회하는 시범비행도 했다. 시범비행은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E190-E2 항공기의 울릉공항 취항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오는 2026년 취항 목표로 공사중인 울릉공항은 국내 최초로 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공항인 만큼, 활주로 길이가 국내 다른 공항에 비해 짧다. 시범비행한 항공기는 울릉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을 정기운항하는 항공기와 같은 기종이다. 단거리 활주로(1천200m) 이착륙이 가능하고 우수한 항속거리(최대 6시간)를 유지할 수 있어 울릉공항 취항에는 최적의 항공기로 평가받고 있다.이철우 도지사는 이날 “엠브레어와의 협력을 계기로 글로벌 항공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새로운 항공산업을 육성해 대구경북신공항을 대한민국 항공물류의 허브로 성장시키고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을 세계적인 관광공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 집중된 항공산업(여객·물류·항공정비·기반시설·서비스)을 대구·경북으로 분산해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경북도가 MOU를 체결한 엠브레어사는 브라질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으로 세계 3대 항공기 제작사로 성장했다. 항공기 제작사나 항공정비 업체가 전혀 없는 대구·경북으로서는 항공산업 기반구축을 위해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이다. 강력한 파트너십이 계속 유지되길 기대한다.

2023-05-16

전기·가스료 인상, 물가관리에 선제 대응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16일부터 5.3%씩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kw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올라 4인가구 기준 각 가정이 매월 추가 지출해야 할 에너지 요금은 7천400원 가량 될 거라 한다.이번 에너지 요금 인상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적자보전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국민부담 추가와 물가불안이란 측면에서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다. 특히 자영업자와 산업계 등은 원자재값 상승에 더해 에너지 값까지 오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을 어떻게 꾸려갈지 벌써 걱정이다.정부의 에너지 가격 인상은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불가피하다. 원가보다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지속 공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상으로도 공기업의 경영난이 완전히 타개될 수가 없어 연내 전기·가스요금의 추가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물가 관리가 사실상 비상이다.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국내 소비자 물가는 지난달 3%대로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전기·가스료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선제적 대책이 따라야 한다. 전기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서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과 함께 우리사회에 만연된 에너지 과소비 풍토를 근절시키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량 OECD국가 평균보다 1.7배나 높다. 그러면서 효율성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겨울 가스료 인상으로 난방비 폭탄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 예상되면서 전기료 또한 난방비 못지않은 폭탄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정마다 에너지 절약의 지혜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 정부가 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공기업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에너지 시장가격이 왜곡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 정치적 판단으로 에너지 가격이 왜곡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업소, 기업들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정부는 시장기능에 의한 합리적 요금관리로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05-16

체통을 지키시라

얼마 전 실천문학사에서 시행한 설문조사가 화제다.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와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가 그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실천문학사측은 여론의 압력으로 인해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세태 속에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다소 억울한 듯 들리는 이 이야기는 고은 시인의 작품이 최근 계간지 실천문학에 실린 것과 그의 신작 시집 ‘무의 노래’가 마찬가지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실천문학사는 ‘이전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추문에 깊이 휩싸여 있었으며, 2017년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와 같은 추태가 폭로당한 고은 시인이 어떠한 인정이나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올해 초,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공식적인 사과문을 내놓고, 또 자숙의 의미로 계간지를 한 해 휴간하겠다고 밝혔던 실천문학사가 다시금 본인들을 향한 여론을 정면 반박하며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시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실천문학사의 공지사항에서는, 이러한 입장의 변화가 문학 전문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와 이승하 교수의 왜곡 기사가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들의 잘못된 기사가 자사의 이미지를 실추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타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왜곡이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인 출판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자신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어딘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2차로 시행된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의 문항을 예로 들자면, 여기에서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을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로 비유하며, 그러한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아울러, 그 “농부가 수확한 벼”를 도정한 “정미소에 대해 범죄인을 도와준 사악한 정미소라며 판매중단을 압박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어지는 설문에서는 위의 이야기를 “시만 쓰던 모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감금 당하듯 살았고”라고 바꿔 물으며 그 본의를 전달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의 마지막에서는 지록위마의 고사를 인용하며, 일부 언론 기관과 그에 관련된 인사들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가 옳은 것이냐고 묻기까지 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궁금한 건, 과연 실천문학사가 ‘설문조사’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문인, 일반 독자, 언론인들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적극적인 의견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상 그 문항들은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해 작성하고, 그걸로 모자라 고은 시인과 관련된 사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이 설문조사를 대체 무엇이라 생각해야 되는지. 자신들이 이미 ‘범죄를 저지른 농부’에 비유하고 있듯이, 그는 분명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어떠한 법적 처벌도,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도,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은 그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단 말인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잠적을 하고, 가짜가 자신을 사칭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일관해왔던 그가 치른 대가란 대체 무엇인가.과연 실천문학사의 이같은 설문조사를 정상적 행위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첫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이 존재한다. 고은 시인의 5년 만의 신간 시집 출간을 두고 언론사의 객관적이지 못한 보도 행태가 프레임을 조작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은이 저지른 어떠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시인도, 그의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지 않다. 과연 프레임을 조작하고, ‘지록위마’를 행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그들이 한국 문학에서 ‘실천문학’이라는 사명이 갖는 의미에 걸맞게 스스로의 권위를 더는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05-16

무림 고수가 되고 싶다면

어떤 세계든 ‘고수’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그리하여 그것에 통달해 버린 몸짓을 보여주는 이들을 보면 우리는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게 된다.고수는 멀리 있지 않다. 무거운 짐을 얹고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하체에서, 빛의 속도로 김밥을 말아내는 손에서, 눈을 감고도 라면의 종류를 척척 맞추는 미각에서, 우리는 고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무협 소설의 무림은 고수 중에서도 고수가 되고 싶은 자들로 넘쳐나는 세계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무릇 강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 주변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일이다.키오스크가 점원을 대신하고 AI 챗봇이 친구가 되어주는 21세기에 갑자기 무림은 또 무슨 말인가 싶지만, 꿈꾸는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인류의 눈부신 발전은 멈추지 않는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으니. 현실은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상상 속의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군자가 되고 싶은가? 천하를 호령하는 가문의 가주를 원하는가? 명망 높은 문주가 되어 세간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무림인들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구경꾼을 꿈꾸는 자는 없을 것이다. 무림 고수의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라고 못 할 것 있겠는가. 이곳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강자를 꿈꾸는 세계다.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한 훈련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둔 고수를 찾아갔더니 청소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부터 제대로 해내라고 다그칠 수도 있다. 다 뜻이 있겠거니 여기며 마루를 반짝반짝 닦아도 돌아오는 건 불호령뿐. 새벽같이 일어나 온갖 잡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의 근육이 골고루 발달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제야 스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당신에게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을 알릴 테다.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옆 문파의 누구는 벌써 무형검을 익혀 강호를 주름잡았다고 하고 어느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고 한다. 거기에 수많은 악의 조직은 뭘 먹고 그렇게 강한 것인지. 오직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엄마 친구 아들’은 21세기뿐만 아니라 무림에도 존재한다. 주변에 휘둘리면 끝이 없는 법. 자신만의 도(道)를 지키면서 정진, 또 정진해야 한다.자, 이제 그간의 노력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왔다. 훌륭한 정권 찌르기를 연마했더라도 방구석에서 홀로 고수가 될 순 없다. 그간 익힌 기술로 마교의 천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못된 아이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려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니까.세상에 힘차게 발을 디딘 당신, 반드시 실패하리라. 내가 왔노라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무관심뿐일 수 있다. 자신보다 곱절은 강한 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기도 하고 오만에 빠져 우스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끔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할 테다. 세상이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마음이 소란한 까닭이라고 생각하며 은둔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방구석에서 정권 찌르기를 연습했을 때는 느낄 수 없던 패배감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칼을 빼어들었으니 무라도 썰어보겠다며 기합을 넣는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거기에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다.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고수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작다고 여겨지는 일부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한 뼘 자라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수험생의 문제집 독파 일수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가사 노동 일수도, 회사원의 출퇴근일 수도 있다.소설은 끝나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넘치는 무공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가 못 되어도 괜찮다.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하다 새우 등 터진 구경꾼의 하루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으리라. 툴툴 털고 일어나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것. 치킨에 맥주, 싸움 이야기까지 곁들이며 친구들과 낄낄대는 밤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무림의,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고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3-05-16

마약 없는 사회를 꿈꾸며

김규인 수필가 학생들에게 마약을 뿌리는 사회.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매스컴에서 계주하듯이 마약 관련 사건이 터진다. 그만큼 마약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파고든다. 시간과 장소를 묻지 않고 우리 사회로 퍼진다.2017년 한 해 마약류의 압수량이 154.6㎏이었다. 올해 들어 두 달 만에 마약류 압수량은 176.9㎏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급속하게 퍼져버렸다. 그 엄청난 수치 앞에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왜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그 대상도 일반 성인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와 어린 학생들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까지 마약으로 휘청거린다. 관리가 엄격해야 할 군대마저 이 지경이니 다른 곳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군대는 총과 수류탄 등 살상 무기를 다루는 곳이 아닌가. 마약에 취해 동료를 향해 총이라도 난사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미국의 마약 거리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좀비처럼 걷는다. 마약 복용으로 근육이 강직되고 우리 몸의 도파민의 분비체계가 교란되어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똑바로 설 수도 걷지도 못하며 마치 화상을 입어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을 없애려 다시 마약을 찾는다.마약 파는 사람들이 나쁜 줄을 알면서도 마약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가간다. 한 번 복용한 마약은 다시 마약을 부른다.이에 따라 일상의 행복은 찾기 힘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고통을 받는다. 죽을 결심으로 마약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남는 것은 늘어난 빚과 망가진 몸뚱어리뿐이다.학교에서는 학교대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친근한 김밥, 족발, 떡볶이 앞에 마약을 붙인다. 그렇게 마약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다가오는 분위기다. 사업체는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고, 언론은 마약의 위험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약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올해 초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에 검찰만 나서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나의 주위에서 마약을 퇴치할 때 우리는 누군가가 선의로 건네는 음료수를 기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다. 일상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는 날이 빨리 오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다.마약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지만, 우리는 힘을 한곳에 모으는 놀라운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이, IMF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이,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응원의 함성이 그러하다.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 국민의 유전자가 힘을 발휘할 시기이다.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어려움이 곳곳에 널려 있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 반도체를 다시 꽃 피우고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마약 없는 건전한 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대한민국의 힘을 모으자.

2023-05-15

재테크와 인문학의 라이벌 관계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유튜브를 즐겨 본다. 구독한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에 몸과 마음을 맡길 때가 많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재테크 관련 영상들을 자주 추천한다. 아마도 내 검색어와 사이트 방문 기록 등을 종합하여 이 40대 남성은 재테크 관련 영상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재테크에 투자할 자금도 없지만, 소위 경제 유튜버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되어 한참을 보게 된다. 저축, 보험, 주식, 부동산, 펀드, 코인(가상화폐) 등 콘텐츠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필자야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하지만, 실제로 재테크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들을 보며 공부에 열중할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종자돈을 투자해야 하니 얼마나 불안하고 애가 탈까. 그 절박함은 대학 입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경제 유튜버들은 이런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용해 돈을 번다. 서점에도 재테크 서적이 수두룩하다. 재테크로 돈을 버는 것보다 재테크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노동가치가 추락한 사회의 자화상이다.서울 동작도서관은 5월부터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의 구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구입 희망도서 중 재테크 관련 서적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장서불균형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유행을 타서 한두 번 대출된 뒤에는 서가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를 모두 구입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은 구입할 수 없기도 하다. 특히 공공 도서관에서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독서, 교육, 조사, 연구 활동에 기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작도서관의 혁신적 시도에 박수를 보내며, 전국의 도서관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것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책 대신 영상을 즐겨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등산과 예배당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일요일에 등산을 가고 교회에 나가면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되지만, 다른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면 영화계 전체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탁월한 통찰이다. 사람들이 문화와 여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그 효과는 문화계 전반에 미치게 된다.반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재테크를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사회. 노동의 가치, 근로소득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 건물주가 ‘갓물주(GOD+물주)’가 되고, 불로소득이 찬양받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문학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문학의 라이벌은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아니다. 재테크를 강요하는 사회가 인문학의 적이다.

2023-05-15

기록 바깥에 존재했던 기억

20년이 지난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는가. 31살의 아빠와 11살의 딸이 함께했던 튀르키예 여행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는가. 그날의 온도와 날씨, 대화와 음식, 사건과 풍경들은 잊혀진 것인가 감춰진 것인가.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은 다시 회상하는 기억(추억)의 의미를 더듬는다.다시 회상하는 기억의 동기가 되며, 기억의 보조 장치로 등장하는 캠코더. 11살의 여름, 아빠와 함께했던 며칠 간의 여행은 딸의 시선과 아빠의 시선으로 파편적으로 캠코더에 담겨있다. 흐릿한 기억과 파편적으로 담겨 있는 기록. 기억과 기록의 행간을 오가며 20년전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그리고 되살아난 기억은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이해와 감정을 몰고 온다.캠코더에 기록된 사실은 캠코더 밖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기억의 이해를 돕는다. 영화는 아빠와 딸의 시선 속에 머물며 풍경의 모든 것은 그 둘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 이 이야기를 되살리고 있는 것은 누구의 기억이며 기록이냐가 모호하다. 물론 영화의 시작과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성장한 딸의 순간적인 모습 속에서 딸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아빠가 소환되고 있다는 것은 유추해 볼 수 있다.표현이 다소 복잡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빠와 함께 했던 여행의 며칠간이 특정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없이 이어진다. 기억과 기록이 뒤섞이고 재편집된다. 시간은 휴가지에서 보내는 날들과 같이 순차적으로 흘러가고, 몇 개의 선명했던 일상이 펼쳐질 뿐이다. 그 틈 사이로 불안한 기운들이 스며든다. 시간순으로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개의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은 던져지지만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않는다. ‘왜?’라는 의문은 끝까지 풀리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과 불확실한 기억, 분명하지만 단편적인 기록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기억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재해석되고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로 남는다. 이제 거대한 덩어리가 해체되어 나열되고 이야기로 편집되어진다. 흐렸던 기억은 분명한 캠코더의 기록에 의해 그 당시를 감싸고 있었던 감정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캠코더의 기록보다 강력한 기록인 사진과 아빠의 엽서가 등장하고 아름다운 ‘노란색(영화의 중간중간 노란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노란색 카메라, 노란 잠수복, 노란 자유이용권, 노란색방)’으로 자리잡는다.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확인할 길이 없는(영화 속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는 딸을 떠나보내고 난 이후 혼자 남은 튀르키예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떤 감정과 추측을 어떻게 구현하여 영화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하겠다. 단순한 내용은 독창적인 형식으로 사실과 추측 사이를 오간다. 봤어야 할 것을 보지 못하거나 봤어도 무심코 넘겨버린 것들이 20년이 지난 딸에게 무겁게 다가온다.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영화는 플래시백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31살이 된 딸의 기억이며, 새롭게 깨닫게 되는 아빠와 나의 추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서도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불안함과 아득함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혹은 영화를 보고 난 그 이후 밀려오는 감정은 묵직하다.그 힘은 영화의 이야기보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것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던 감독의 영화적 형식에서 기인한다.무언가 아버지를 휘감고 있었던 고민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열거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20년 전의 기억에 기대어 추측만 해볼 뿐이다. 기억의 모호함과 기록의 정확함이 낳은 결과다. 기록이 있기까지, 혹은 기록이 되지 않은 기록 바깥에 대한 이해와 추측이 영화를 이끈다. 과거에 대한 영화지만 좀처럼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았던 영화, 사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플래시백이었던 기막힌 형식의 영화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05-15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한글편지 50통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나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이제 성년의 날을 지나 부부의 날까지 이르면 5월이 거의 끝날 것이다. 의식적이고 의례적일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 여기며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기념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 그리고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중 혼인을 통해 맺어지는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데, 이때 각 배우자의 직계혈족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이가 된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부모님이기에 시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지내야하지만, 갑자기 형성된 가족인데다가 혈연도 아니기에 잘 지내기 위해서는 더욱 마음을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할 때 관계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불화와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것이다.내방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는 ‘쌍벽가’는 작자가 분명하고 창작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는데, 바로 이 작품의 작자인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한글편지 50통을 받은 주인공이다.(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쌍벽가를 포함해 내방가사 347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목록으로 등재한 바 있다.) 연안이씨가 받은 이 편지들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류운(柳澐·1701~1786)이 1759년(영조35)부터 1767년(영조43)까지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지가 1759년 6월부터 이듬 해 5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1년 동안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가 무려 43통이나 된다. 거의 일주일마다 1통씩 보낸 격이다. 인편이 아니면 편지를 주고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시아버지 류운은 어떤 배경과 사연으로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류운은 이 당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어 서울 살이 중이었다. 그는 서애 류성룡의 6세손으로 안동 하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류운의 차남 류사춘(柳師春·1741~1814)이 서울 출신 연안이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들의 혼인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아들인 류이좌(柳台佐·1763~1837)의 출생 연도로 볼 때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다. 연안이씨는 성헌(醒軒) 이지억(李之億·1699~1770)의 차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지억은 1751년(영조27) 문과에 급제했고, 이때에는 정3품인 도승지(都承旨)와 양주목사(楊州牧使)로 활동했다. 연안이씨가 시아버지와 한창 편지를 주고받았던 1년, 그녀는 서울 친정에 기거하며 시아버지의 관직 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시아버지의 편지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 보내준 음식에 고맙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고, 혹시 어디 아프고 불편한 데는 없는지 늘 궁금해 했다. 행여나 며느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만저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류운은 1759년 6월 26일에 쓴 편지에서 “들으니 흉복통과 여름 감기로 날포 세게 앓는다고 하니 더위는 심하고 오죽 괴로우며, 사령(사돈 이지억을 가리킴)께서도 안 계신데 병이 그러하니 병중에 네 마음이 오죽하랴. 가 보지도 못하고 답답하며 염려가 일시도 가라앉지 않는다. 수일간 가감(加減)이 어떠한고. 사령이 내일 가신다 하니 약이나 먹고 쉬이 나으면 오죽 좋으랴.”라며 며느리의 병을 걱정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날의 편지에서 “네가 본디 흉복통이 있다고 하는데 얼음을 자주 먹더라고 하니 어이 병이 아니 나랴. 잠시 병이 나았으나 병이 없는 사람도 병나기 쉬운 것이니 지금부터는 부디 먹지 마라. 가 보지도 못하고 섭섭함이 끝이 없다.”라며 안도감과 걱정스런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병이 나았다고 하니 안심이지만 얼음 때문에 병이 난 것으로 보이니 지금부터는 먹지 말라며 당부한 것이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류운은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서울 어느 곳 누군가의 집에 임시로 기거하며 빨래와 옷 수선 및 옷 짓기 등을 며느리에게 부탁했다. 1759년 11월 28일의 편지에서 “지난번 도포는 조금 긴 듯하고 버선은 작은 듯한데, (그냥) 입고 신겠다. 옷 빨 길이 없으니 어렵지 않으면 (빨래감을) 보내고 싶으니 기별하여라.”라고 한 것이나. 1760년 5월 어느 날에 쓴 편지에서 “네가 오래지 않아 갈 것을, 관아 일의 여가가 적어 자주 못 보니 섭섭함이 끝이 있으랴. 관대 따로 짓기 어려우면 마른 후 그 관대 두고 보면서 짓게 하여라. 다른 관대 보내고 싶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이라 본떠 따를 것이 아니다. 그 관대 깃이 검어졌으니 마르고 남는 것 있거든 떼고 고치면 좋겠으니 보아라. 당직을 마치고 나온 후 다시 가면 보겠다.”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어조가 참 부드럽다. 며느리가 지어준 도포의 길이와 버선의 크기가 딱 맞지는 않지만 그대로 입고 신겠단다. 빨래감도 바로 보내지 않고 혹 형편이 되는지 확인하고 기별하라고 한다. 관직의 업무가 바빠서 자주 못 보는 것도 섭섭하다고 한다.시아버지 류운이 며느리 연안이씨에게 보낸 이 편지들은 가족일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2023-05-15

양수발전소의 부상(浮上)

홍석봉 대구지사장 양수발전은 평상시 전력 공급이 충분할 때 하부댐 물을 상부댐으로 퍼올렸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상부댐 물을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3분이면 전력 생산이 가능해 원자력, 화력 같은 주력 발전이 멈추거나 출력을 낮춰야 하는 긴급 상황에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안정적인 장시간 운전을 할 수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양수발전소 건설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확대 추세다.유용한 시설이긴 하지만 댐 건설로 인한 주민 이주와 환경 훼손 등 때문에 기피 시설로 꼽힌다.국내에선 1980년 청평양수발전소가 첫 건설됐다. 이후 삼랑진, 무주, 산청, 양양 등에 잇따라 건설됐다. 대구·경북에는 청송 양수발전소가 2006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2년엔 예천 양수발전소가 건설됐다. 현재 7기가 국내 가동 중이다. 2019년 지자체 공모를 통해 영동, 홍천, 포천 3개 지역을 추가 선정, 2024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30년부터 2034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할 예정이다.정부는 2036년까지 현 설비의 75%에 해당하는 3.55GW 규모의 양수발전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1단계로 1.75GW 규모 신규 양수발전소 2~3곳을 오는 6월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경북 영양군과 봉화군이 양수발전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기피시설을 유치해서라도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려보려는 의도다. 양수발전소 유치시 인구 증가,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영양군과 봉화군이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구성, 결의대회를 갖는 등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경북 지자체의 처절한 몸부림이 너무 애절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5

‘지역역량강화 사업비’집행에 구멍

본지가 지난 8일과 10일 단독보도한 영덕군 영해면 지역역량강화사업(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의 비리의혹 행위가 경북도내 타 시·군에서도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영해면 사업을 맡은 위탁업체가 포항시 흥해읍과 경주시 안강읍, 청송군에서도 같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지역역량 강화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지역 주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하루하루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영해면도 정부공모에 선정돼 지난 2020년부터 내년까지 5개년 사업으로 국비 105억원과 군비 45억원을 들여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문제는 영해면 지역역량 강화사업의 투명성을 감시하기 위해 구성된 사업추진위원(31명) 중 일부가 국가 보조금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지역사회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이다. 허위 강의기록표를 제출하고 강사료를 부당 청구하는 수법으로 보조금 수백만 원을 부정 수급해 왔다는 내용이 주류다. 단순 뜨개질 시간에 참여한 사람에게 회당 14만여원을 강의비로 지급했다는 의혹도 있다. 최근에는 이번 의혹에 연루된 추진위원들이 문제가 불거지자 위탁업체로부터 받은 강사비를 반납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지난 2022년 7월 해당 위탁업체에 용역비 14억원 중 7억원을 선급금으로 지급한 영덕군은 최근 본지보도 후 사업을 중지시켰으며, 경찰도 강사비 부정수급 의혹 부분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역량 강화사업은 인구소멸 위기를 겪는 읍·면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주민들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농촌지역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이 사업비가 취지에 맞게 사용되지 않고, 엉뚱한 데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많다. 비리행위에 가담한 당사자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영덕군 외에도 해당 위탁업체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주시와 청송군에서도 예산이 투명하고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2023-05-15

폭염 적응능력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지난달부터 45℃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는 이례적인 괴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올해 적도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하강하는 현상인 ‘라니냐’가 수그러들고 다시 그 반대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한다.이러한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폭염은 중국을 거쳐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과거 2015년에도 ‘슈퍼 엘리뇨’ 현상이 발생하여 인도는 당시 5월 기온이 50℃ 가까이 치솟으면서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2016년은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고 우리나라도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다.지난 50년간(1971~2021년) 기상청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구광역시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18년(7월 27일)은 최고기온이 39.2℃를 기록하여 39.5℃를 기록한 1977년 이후 최고기온이었다. 또한 폭염일수 40일, 열대야 지속일수 16일로 50년의 기상청 관측 기록 중에서 각각 5위와 2위로 역대급 수준이었다. 그리고 5위 이내 최상위 폭염 기록은 2000년대 이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온도와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도구인 RCP(대표농도경로) 모델의 8.5 시나리오(현재 배출추세 적용)로 대구광역시 미래 기후변화를 전망해 보았다.폭염일수가 2100년에는 현재(21.9일) 대비 무려 56.8일 증가하여 78.7일로 전망되었다. 특히 서구와 중구 지역은 각각 94.4일과 94.0일로 폭염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됐다.열대야 일수는 현재(6.1일) 대비 2100년에는 50.2일 증가하여 56.3일로 전망되었고, 역시 중구(70.8일)와 서구(70.7)가 폭염일수와 같이 열대야 일수도 가장 길었다.시나리오와 같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특단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온상승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감당할 수 없는 암울한 수준으로 나빠질 것이다. 여기에다 대구광역시내 폭염에 취약한 계층인 65세이상 노인인구 증가율이 1995년에 6.1%에서 2018년에는 14.8%로 급격히 증가하였다.그 결과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 등 기후재난 대응정책에 활용하는 기후변화 취약성 지표는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받기 쉬운 정도로 정의하는데, 대구시 폭염 취약성은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지 않으면 계속 나빠지게 된다.대구시는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응급의료 생활화, 주거환경 개선, 취약계층 건강관리, 공동편익시설, 녹지네트워크 구축, 지역에 도움되는 폭염활용, 멀리 내다보는 폭염준비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이번주 5월 17~19일은 ‘2023 대한민국 국제쿨산업전’이, 7월 13~15일은 ‘2023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 이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고자 대구에서 개최되는 전국 최초, 최고 권위의 행사로 지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023-05-15

현안 많은 포항시, 시정 공백없게 만전 기해야

포항시는 이강덕 시장이 최근 수술한 지병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후속 치료를 앞두고 “흔들림 없는 시정업무 추진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이 시장은 전립선암 후속 치료를 위해 15일부터 약 한달간 자리를 다시 비울 것으로 전해졌다.포항시는 지역 산업구조 개편 등을 위해 그동안 총력전을 펼쳐왔던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대한 포항시의 유치계획 전략발표회를 17일 서울서 한다. 그리고 상반기 중에 그 결과를 정부가 발표할 예정이어서 지금은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위한 포항시의 업무는 초긴장 상태다.게다가 최근 포항에 이차전지 관련 생산시설을 집중 투자한 에코프로 회장의 법정구속이란 돌발변수가 생겨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포항으로서는 이 시장의 업무 공백이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물론 17일 서울서 열리는 지자체 유치전략 발표회는 이 시장이 직접 참석, 설명한다. 포항시가 이차전지 특화단지의 최적지임을 강조할 예정이나 정부의 심사평가 등 후속적으로 챙겨봐야 할 업무도 만만치 않다. 이 시장은 치료기간 동안에도 중요 사안은 직접 챙기는 등 “한치의 행정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시장의 뜻에 맞추게 시 간부들의 업무 긴장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포항시의 이차전지 기반시설은 전국 최고다. 세계 1위의 이차전지 대기업인 에코프로가 전주기 생산시설을 완비해 있고 포스코 퓨처엠의 투자도 지속 이뤄지고 있다. 중국 등 다국적기업의 이차전지 투자도 상반기 중에만 5조원 규모에 이른다.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이 포항에 자리를 틀었고 산학연 연계의 RD기반 등 이차전지 인프라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단체장의 공백이 특화단지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특화단지 유치라는 비상 상황인 점을 고려해 행여 빈틈이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이밖에도 이 시장은 올 여름 많은 기상이변이 예상됨으로 재난방재 시설 준비에도 만전을 기해달라 주문했고, 기업유치 활동도 지속해 줄 것을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지금은 포항시 직원들의 합심 노력이 더 필요한 때다.

2023-05-15

국민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김진국 고문 참 실망이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가 논란이다. 그동안 김 의원의 언행과 보도 내용은 너무 딴판이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김의원은 그게 아니다. 김 의원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연일 돈 문제가 터지고 있다. 수천억 원을 만든 ‘대장동 게이트’부터 입에 오르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돼,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뿌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제 대표적 소장파인 김의원의 코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 도둑놈이다)란 말이 생각난다.‘공직자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직자에게는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그걸 자기 치부(致富)에 이용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김 의원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핵심 의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보도한 언론 탓만 한다. 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도로 윤리감찰도 시작했다.김 의원은 상임위에 참석하면서 코인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의원 자격이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과 1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하면서 9차례나 코인 거래를 했다. 청문회 전과 점심시간까지 합치면 31번이다. 그러니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핼러윈 참사를 논의한 상임위에서도 코인을 거래했다. 그래 놓고 변명이라는 게 “화장실·휴게실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이해 충돌 가능성도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보유한 코인에 과세를 1년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해 통과시켰다.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규정하는 법안을 공동발의, 처리했고, 민주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데도 역할을 한 의혹도 있다.‘도둑맞은 가난’(박완서)이란 소설이 있다. 가난한 경험까지 탐내는 부자의 염치없는 허영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모텔 한 방에서 보좌진과 셋이 잤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3만7천원 주고 산 운동화에 구멍이 났다’라며 가난을 호소해 지난해 의원 중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았다. 그를 믿고 응원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난 코스프레’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더구나 코인에는 청년세대의 한이 맺혀 있다. 부동산값이 폭등해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코인에 투자해 그나마 모은 돈을 털린 청년이 많다. 그런데 돈과 정보와 인맥으로 무장한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을 쓸어갔다니, 가장 청년을 위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훔쳐 간 꼴이다. 김 의원은 무슨 돈으로 투자했는지, 어떻게 사고팔았는지 감추고 있다. 주식을 판 돈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명할 때마다 뒤집힌다. 양파처럼 새 의혹이 불거진다. 김 의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조사팀도 종잣돈이 불법 로비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한다. 아무리 ‘공정’을 떠들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특권을 누리려 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공정이 시대적 화두다. 지난 대선의 최대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내년 총선에서 조 전 장관이나 그의 딸 출마설이 나온다. 비위 사건이 터지면 잠시 무마하고, 곧바로 뒤집는 행태가 반복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가 나온다.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키고, 위안부 후원금을 유용한 윤미향 의원,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은 민주당 소속처럼 움직인다.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면 개인 비리가 아니라 당의 비리가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14

유난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것도 ‘병’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不安)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불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다.누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이렇듯 불안은 매우 고마운 감정이다. 즉, 불안(不安)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그러나 병(病)적 불안(pathological anxiety)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그 결과를 재앙(災殃)적으로 예측한다. 재앙적으로 예측하는 불안은 오히려 미래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게 해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병(病)적 불안으로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한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진단명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그러나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범 불안장애(汎不安障碍, 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인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범불안장애 진단기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일상생활을 할 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범 불안장애의 핵심은 걱정이다. 걱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더 큰 걱정을 가져오고 불안을 증폭한다.앞서 언급한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인데,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 정도로 알려졌다. 범 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로 범 불안장애의 걱정은 남이 느끼기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이기에,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 치부된다.따라서 걱정이 많은 것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이지 병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은 범불안장애 일 수 있다.또 범불안장애 불안의 특징은 ‘부동성(浮動性)’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불안이 너무나 만연해있기에, 일상 상황이나 활동에서 막연하게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에서 ‘부동성 불안’이라고 한다.갑자기 짧은 기간 극심하게 삽화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장애에 비해 서서히 덜 극심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성격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두 번째로 범 불안장애는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과잉 각성 증상으로 인해 신체적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특히 우리나라는 불안의 감정 표현이나 걱정의 인지적 표현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예를 들면 두통, 근육통, 피로감,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숨이 참, 빈맥, 빈뇨, 급박뇨, 땀이 남, 목안의 이물감, 안검경련, 손발 떨림, 손발 저림, 어지러움,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림 등의 신체적 증상이다. 따라서 신체 불편감이 우세하므로 신체장애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며 정신건강의학과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세 번째로 범불안장애 환자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는 불면증이 나타나지만, 그냥 ‘불면증’으로 만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한 것을, 그냥 ‘만성 피로’라고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그냥 ‘주의력 저하’라고 호소한다.따라서 범 불안장애의 진단이 가려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질환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범 불안장애는 대개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 초기에 많이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진단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상기 열거한 이유 등으로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이상 경과 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범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2023-05-14

전염병을 향한 인간의 도전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에게 평소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빌 게이츠는 탁월한 기업가라는 이미지 외에도 통 큰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인간적인 면모와는 별도로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진단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CEO들에게 주문한 변화의 필연성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키아의 몰락으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훌륭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중해가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한 발언 중에 주목할 것은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식량 기근이나 핵 전쟁 같은 재앙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파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이어서 새삼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아닐 정도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을 받아 왔고 더불어 전염병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한 국가나 사회의 존망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흔히들 우리는 절망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전쟁을 떠올리지만 기실 질병이 인간에게 안긴 고통에 비하면 이내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BC 431년 도시국가 아테네는 콜레라로 인해 190만 명이 사망하였고 서기 165년에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천연두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541년부터 한 세기 동안 페스트가 65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347년부터 유럽 대륙을 다시 찾아온 페스트(흑사병)는 6년여 동안 7천500만 명에서 2억여 명의 인명을 집어 삼켰고 이때 사망한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3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을 괴롭혔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머신에 의존하게 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일반 민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페스트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난 온 젊은 남녀 10명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이후 19세기 인도와 중국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1천500만 명의 생명이 쓰러졌고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21세기가 도래한 최근의 코로나 19까지 질병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보여주었고 15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덮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삼킨 대재앙은 실제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한 학자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었다.또한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와 아즈테카의 강대한 제국을 덮쳐 신대륙 원주민의 90% 절멸시켰다. 거대 제국들은 전염병 앞에 바람 앞에 촛불처럼 쓰러져 갔다. 20세기 들어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라진 생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4배를 넘고 있다.한 대륙의 제국을 초토화 시킨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회복되어도 얼굴에 흉한 상처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1873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인 의사이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은 이상하게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소와 천연두 면역력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최초의 효과적인 우두 종두법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케 되었다.‘하나님의 천벌로 내린 전염병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다’는 종교계의 주장도 천연두 퇴치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꺽지 못했다1979년 WHO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선언 하였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엄혹한 조건의 극한 상황 앞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때마침 지난주에는 대통령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 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이후 장장 3년 4개월 만이다.기나긴 팬데믹 기간에서 정상으로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도 전염병은 탐욕스러운 인간을 향해 소리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이거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3-05-14

공자와 법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어버이날이 지났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지만, 귀가하는 사람들 손마다 카네이션과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보면서 꼭 그럴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유교 문화의 뿌리가 참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는 사상을 넘어 생활문화로 깊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제는 애증이 교차하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사실은 두어 달 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주주금석 논어생각’을 매일 한 편씩 올리고 있다. 김도련의 저서 ‘주주금석 논어’를 내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주주금석’에서 주주는 주자의 해석이고, 금석은 정약용의 해석을 중심으로 저자가 풀이한 것인데,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두 해석을 비교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학창 시절 때 ‘논어’를 읽으며 느낀 감흥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그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새롭게 보여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효에 대한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공감하기 힘들다.‘논어’에 나오는 효에 관한 유명한 구절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뜻을 살펴보고,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실을 살필 것이니,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침이 없어야 효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 대해 금석이 주주와는 풀이가 약간 다르지만, 자식이 부모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그러나 이런 공자의 이야기를 현대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는 부모 자식간의 갈등은 자녀에게 부모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 선택에 부모가 강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했거나 집 떠난 자녀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요구하거나 주말마다 찾아오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방청객의 고민을 즉석에서 풀어주어 인기가 많다. 방청객 사연 중에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 문제도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자식에게 서운한 부모나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진 자녀의 이야기다. 법륜 스님의 답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의무이므로 착한 행동은 아니다. 대신 자녀가 스무 살이 되면 독립시켜라. 이제 부모와 자식은 모두 성인이므로 자신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므로 착한 행동이다. 착한 행동은 하면 좋지만 안 한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의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해라.’유교 사상에 비추어보면 말도 안 되는 답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생활환경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유교가 지배하던 농경사회에서는 경험 많은 부모의 뜻이 옳은 경우도 많았고, 부모가 죽기 전까지 재산은 모두 부모의 것이었다. 반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의 경험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인데다, 자녀 또한 부모와 독립하여 재산을 가질 수 있어서 온전히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다. 유교의 ‘중용’은 때에 맞게 한다는 ‘시중’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논어’는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지만, 가족 윤리에서는 ‘시중’의 의미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3-05-14

원리의 규명과 개선 역량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결과는 현상 즉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가 된다. 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원리가 있고 그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규정을 원칙이라 한다.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결과에 대해서도 원인이 있으며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는 대부분 학교에서 물리 화학 등을 통해 배운 것들이며 이 원리가 일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는 분기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선활동을 함에 있어서도 이 원리를 규명하여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 중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의 하나가 결로이다. 결로는 수분을 포함한 대기의 온도가 일정한 압력상태에서 변화될 경우 대기가 포화할 수 있는 수분량 이하로 떨어져 대기가 함유하고 있던 수분을 물체 표면에 물방울로 맺히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겨울철 기온이 내려가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가 커지게 되면 아파트 거실 창문 안쪽 면에 맺히는 물방울과 주전자에 뜨거운 물이 외기와 접촉시 표면에 생기는 물방울이다.즉 결로의 발생 원리는 대기 온도의 변화에 따른 포화 수분량의 변화이다. 20℃ 온도 1㎥의 공기는 최대 17.3g(0℃는 4.8g)의 수분을 가질 수 있으며 같은 공기는 따뜻해 질수록 포화 수분량이 증가하며 더이상 포화 못하는 상태를 포화점이라 하고 상대습도 100%라 한다. 예를 들어 20℃에서 0℃로 공기의 온도가 변화할 경우 20℃의 포화 수분량 17.3g에서 0℃ 포화 수분량 4.8을 빼면 12.5g의 수분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0℃에서 20℃로 온도가 올라가면 12.5g의 수분을 포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일례로 제철소 생산라인 중 밀폐형구조로 된 공정집진기는 고온의 열과 분진을 흡입 블로워(Blower)로 빨아들여 먼지(Dust)와 분진은 집진 장치로 거르고 깨끗한 공기를 굴뚝을 통해 대기로 방출한다. 가끔 상부 집진 장치로 빠져나가야 할 뜨거운 공기가 공정의 불균형이나 설계 미스 등으로 인해 집진기 하부의 분진 배출 덕트로 흡입되어 대기 온도와 접촉하게 되면 고온에 포함된 다량의 수분이 저온의 대기 온도와 만나 배관 내부에 결로를 유발시키고 분진과 혼합되어 배출구를 막는 트러블을 일으킨다.트러블이 발생하면 직원들은 생산라인을 정상화하여야 하기 때문에 재해발생 위험을 감수하면서 배출구의 막힌 부분을 제거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개선방안은 상부의 뜨거운 온도와 하부 대기 온도가 바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완충지대를 두거나 온도 차가 생기지 않도록 가열 설비를 설치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이렇게 설비의 트러블이 생기는 원리를 규명하여 개선방안을 마련하면 근본 원인을 제거하게 되므로 재발을 방지하게 된다. 이를 반복하면 단순히 지식습득을 넘어 지식을 활용해 성과도 얻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기에 개선의 수준과 역량이 지속 향상되게 된다.

2023-05-14

서울행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한 여정(旅程)이 자정 넘어서야 끝난다. 학회의 정례 학술논문 발표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학회 활동에 열렬한 연구자가 아니다. 공부를 혼자 해 버릇한 이유로 독야청청 독불장군의 길을 허위단신 달려온 세월이 30년 가까우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청해서 발표를 결정하여 서울에 다녀왔다.정년을 불과 석 달 앞둔 백발의 연구자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희곡 ‘시골에서 한 달’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19세기 90년대 안톤 체호프의 극문학 성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극작가 투르게네프의 장막극을 여러 각도에서 천착하고 러시아 최초의 심리 드라마로 언급되는 ‘시골에서 한 달’을 곡진하게 들여다보았다.청도역에서 동대구역으로, 동대구역에서 다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그리고 다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도보로 학술논문 발표회장에 도착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봄날의 환희가 약동하는 토요일 한나절을 거리에서 거리로 떠돈 셈이다. 세대교체가 완연하게 느껴지는 자리에서 뭔가 아쉬움과 쓸쓸함 같은 게 감촉된다.불꽃처럼 뜨겁고 여름 햇살처럼 찬연(燦然)하게 빛났던 아름다운 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구나, 하는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추석이고 설이고 연말연시고 다 팽개치고 연구실에 처박혀 논문과 작품을 읽으며 깊은 한숨과 탄식으로 늦도록 끙끙댔던 시절이 어느새 자취도 없이 스러져 버렸구나, 하는 깨달음에 문득 주변이 쓸쓸한 것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곁을 영원히 사라져간 그 시공간은 학문 후속세대의 눈과 영혼과 가슴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들은, 낯선 모습의 청년들은 각자에게 허여된 문학과 언어학과 연극학과 역사와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러시아 곳곳에서!4시간의 긴 발표를 마치고 몰려간 뒤풀이 자리는 실로 은성(殷盛)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기실 나의 서울행은 그들에게 따스한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연구자들에게 맛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참이다.대략 20여 명의 러시아 어문학 연구자들의 뒤풀이 자리에서 오가는 정담(情談)과 웃음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약동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회장의 권고에 따라 짧고 간명하게 인사말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불운했지만, 불멸의 이름을 간직한 피렌체의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가 남긴 말을 전했다.“사람들이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길을 가라. 그리하면 그대는 영광의 항구에 다다를 것이니!”학문하는 자의 배포와 당당함을 촉구하고 싶었던 게다.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빛난다.

2023-05-14

포항 후폭풍 우려되는 ‘에코프로 오너리스크’

에코프로그룹 이동채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포항지역에서도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포항에 대규모 생산기지가 있는 에코프로의 ‘오너리스크’가 포항지역 투자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충북 청주시에 본사가 있지만, 생산시설은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라고 불릴 정도로 대부분 포항에 접적돼 있다. 포항캠퍼스에는 그룹의 계속적인 투자가 이어져 2026년이 되면 면적만 약 50만㎡에 이르게 된다. 캠퍼스에는 삼성SDI와 합작해서 설립한 에코프로EM을 비롯해 에코프로BM, 에코프로 이노베이션, 에코프로 머티리얼즈, 에코프로CNG, 에코프로AP 등 대부분 계열사 공장이 조업중이다. 에코프로는 국내 양극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지난달 21일 헝가리 현지에 생산 공장을 구축해 2차전지 양극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힌 상태다.포항시는 에코프로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데다 투자협약도 명문화돼 있어 당장 지역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단지 정부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앞두고 오너리스크가 발생해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주민들은 에코프로가 면내 입암리에 추진중인 ‘해파랑 골프장’ 건설이 무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에코프로 계열사인 ‘해파랑우리’는 지난해 초부터 입암리 일원 253만㎡(약 77만평) 부지에 36홀 규모의 대규모 골프장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포항지역은 현재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를 중심으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져 세계적인 이차전지 도시로 급속하게 변신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중국기업을 비롯해 다국적 이차전지기업 투자유치 금액이 5조원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정부의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을 앞두고 하필 에코프로 오너리스크가 발생해 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에코프로 임직원들이 일차적으로 오너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총력을 쏟아야겠지만, 경북도와 포항시, 정치권도 그룹 계열사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경로를 통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2023-05-14

“아이들은 가라”

우정구 논설위원 노키즈존의 한국식 표현은 No Kids Zone이나 영미권에서는 Kids-Free Zone으로 쓴다. 얼핏 아이의 자유로운 공간으로 보이지만 본뜻은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의미한다.2010년대 중반쯤 등장한 우리나라 노키즈존은 어린아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음식점, 카페 등을 일컫는 말이다. 출입 어린이의 과도한 행동으로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어린이 안전사고를 미연에 막자는 것이 설치 이유다.그러나 업소 측의 주관적 기준과 가치 판단으로 다수의 손님이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로 노키즈존 반대 여론도 많다. 최근 제주도의회가 전국 최초로 노키즈존 금지 조례를 추진하다 유보했다. 법률적 근거가 없고 영업 자유권 침해로 또다른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서다.작년 전북 완주군의 어린이 의회에서는 어린이들이 아동권리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노키즈존을 꼽기도 했다.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에 500개의 노키즈존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이는 한국에서 이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공공장소에서 어린이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강조하고 아이 갖는 것을 한층 꺼리게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최근 한 카페가 노시니어존을 만든 것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조그마한 동네에 테이블 두 개 있는 작은 카페라 불가피했다는 해명에도 특정 계층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반대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차별과 권리의 주장 사이에 합일점 찾기가 쉽지 않다.다행히 아이를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예스키즈존도 늘고 있다니 이를 장려하는 것이 논란에서 벗어날 해법이 아닐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14

대구의 슈퍼 이노베이션, 착실한 준비부터

대구정책연구원은 2030년 대구경북 신공항 개항과 더불어 지역경제가 고속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선 대구 성장을 이끌 ‘슈퍼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양호 대구정책연구원장은 지난주 열린 연구원 개원 기념 심포지엄서 대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슈퍼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로 5대 혁신안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신공항 경제권 개발 △5대 미래신산업 구조로 개혁 △군위군 편입과 도심 후적지 개발 △청년층 대구 정주촉진 △자족형 스마트 동네생활권 구축 등이다.그는 “특히 신공항 개발은 신경제권 형성과 앵커기업 유치, 신산업 클러스터 발달, 국토균형발전을 이끌 핵심 시설”이라며 “신공항 일원과 후적지 개발로 20년 동안 100조원대 건설경제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이 자리에 참석한 홍준표 대구시장도 “대구경북 신공항 개발을 건국 이래 지역 최대규모 사업”이라 지적하고 “후적지 개발과 신사업 육성 등으로 한반도 3대 도시 대구의 위상을 되찾고 세계로 나아가는 글로벌 도시를 만들 것”이라 말했다.지난달 13일 국회를 통과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바꿀 사업에 대해 국가가 보증을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특별법에는 기부 대 양여 차액 국비지원, 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종전부지에 대한 특별구역 지정 등이 반영돼 있다. 국가가 보증함으로써 사업을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어 신공항 건설에 따른 시도민의 기대감 또한 크다.중장거리 국제선이 오가는 국가 제2 중추공항으로 건설하고 신공항 주변의 신도시 및 신산업 유치 등 지금부터 대구와 경북이 머리를 맞대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대구시는 계획한 사업이 차질없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대구정책연구원이 비전 제시한 30년째 1인당 GRDP 전국 꼴찌 대구를 3위권에 진입하도록 실제적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하다. 신공항 사업을 계기로 공직사회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지역발전에 몰두해 나가야 한다.

2023-05-14

새벽 1시, 구미에는 365소아응급센터가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 2023년 4월 8일 새벽 1시. 생후 7개월 된 영아가 고열을 동반한 열성 경련으로 울산에서 구미를 찾았다.26일 밤에는 경북 의성에 거주하는 7살 남자아이가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 구미로 왔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증세가 호전돼 다음날 오전 귀가했다. 모두 소아 전담 전문의가 있는 구미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 덕이다.구미에는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가 있다.경북 중서부권의 유일한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이자 필수의료 지역 거점병원. 야간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이가 아파 당황한 부모에게는 더없이 간절한 병원이다.최근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하고 소아과 폐과를 선언하며 소아진료 대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우리 시의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에 이목이 쏠리면서 구미시는 주변 지자체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됐다.올 초 운영을 시작한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필자의 민선 8기 공약사업이다. 많은 이들이 한발 앞서 진료센터를 개소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온다. 답은 간단하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다. 취임 전후로 만난 시민들의 바람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구미시의 소아청소년은 7만8천200여 명. 전체 인구 대비 19.2%에 달한다.도내에서 소아청소년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우리 구미다. 그런 구미에 소아응급실이 없어 다른 도시를 헤매서야 되겠는가. 취임 직후 여러 차례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한편 시의 지원을 약속했다.모두들 소아응급실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선뜻 시와 손잡겠다는 병원이 없었다. 여러 차례 설득에 나섰지만 이해관계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다 올 초 순천향대 구미병원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구미시가 매년 시비 9억 2천만 원을 지원하는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소아청소년 전문의 4명과 소아응급 전담 간호사 8명으로 구성돼 있다.개소 첫 달인 1월에는 464명, 지난 4월에는 918명이 진료센터를 찾았다. 4개월 동안 2천2백여 명의 환자가 센터를 이용했으니 그 필요성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본다. 구미뿐 아니라 인근의 김천, 칠곡, 성주를 비롯해 영주와 의성에서도 센터를 찾아온다. 소아청소년 응급환자에 대한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의료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얼마 전 대구에서 십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찾아 떠돌다 구급차에서 숨진 일명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소아청소년과 및 응급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돌봄의 역할이 가정과 양육자 개인에만 주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지역사회가 손을 보태고 시가 정책적으로 노력해야 한다.올해 전국 대학병원에서 내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 대구·경북을 포함해 영남권 병원에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는 시민의 건강과 공공복리를 위한 의료 서비스에 구미시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저출생, 인구 소멸에 고민을 하지 않는 행정에 시민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구미시는 아이 키우기 좋은 구미를 위해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 외에도 자정까지 운영하는 야간연장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한편, 밤 12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마을돌봄터도 도내 최대 규모로 추가 조성한다. 가칭 ‘아픈 아이 돌봄 센터’ 도 하반기 개소할 예정이다. 부모를 대신해 돌봄사가 아동 픽업부터 병원 진료 전 과정을 동행하고, 아픈 아이의 간호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도내 최초의 돌봄 센터다. 맞벌이 가정의 걱정을 덜어주고 지역 사회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한 고육책이다.구미시에 이어 광주와 경주, 포항에서도 소아청소년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나오길 바라며, 구미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기대한다.

2023-05-14

그리움으로 읽는 책

이희정 시인 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 라는 책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거덜난 책들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박기섭, ‘달의 門下(작가, 2010)’ 중 ‘책’ 전문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책이 있다. 애잔하고 미안한 것들로는 에두를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라는 책이다. 가족 서사로 빼곡한 오월의 서가에서 시인은 가장 깊이 있고 끈질긴 질문의 책과 조우한다.박기섭 시인(1954~)이 기억하는 두 책은 외피부터 대조적이다. “아버지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는 비유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그들 ‘다움’의 모습을 품고 있다. 아버지는 ‘표지’이고, 어머니는 ‘갈피’라는 인식의 시어는 잔상을 드리운다. 시인은 “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며 이 모든 우주의 중심 서가에 두 책을 놓고 있다.시인이 읽는 책의 서사에 주목해 보자. “건성으로 읽었던가 //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생을 재독하고 있다. 이처럼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는 존재로서 집 밖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이에 반해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포용적인 어머니라는 책은 그것을 만지는 시인의 갈피에도 습기가 묻어난다. “면지가 찢긴” “목차마저 희미해진” “거덜난 책”이란 비유에서 보듯이 어머니라는 존재는 온통 눈물의 소금밭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은 “목숨의 때”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이라는 밑줄 아래 연민이 곡진하게 스민다. 이 대목은 어머니다움의 본질이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항상 궁금하고 모를 듯한 삶을 살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르는 궁극의 주제다. 어머니는 어떠한가. 현대사회의 확장된 어머니의 역할과는 다르게 과거 어머니의 삶이 있기나 했을까. 우리는 왜 뒤늦게 그리움과 영원의 주제로 항상 눈물과 가슴앓이를 했을 어머니와 주목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서사 도정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것인가.책은 역사와 서사의 저장고다. 시인은 퇴색한 과거에 미래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인 부모를 갸륵하게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의 진정성에 대한 의미 있는 탐색이기도 하다.은자의 미덕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럼에도 박기섭 시인은 비슬산 한 자락에서 수북하게 쌓인 철 지난 책이나 고미술품과 함께 있다. 그의 삶이 소중한 것은 사라져가는 옛것을 수집하고 지키는 일상 가운데 발견이 발명하는 한결같은 시인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거하기 때문이리라.오래전 인터넷 헌책방을 샅샅이 훑은 적이 있다. 당시 찾던 책은 ‘신학국문학전집, 세로쓰기, 어문각, 1974년판’이었다. 아버님께 빌려온 몇 권의 책을 남편이 분리배출을 해버렸는데 김동인 외 무슨 책 몇 권 인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오래된 책은 더군다나 세로쓰기 책은 가치 상실 도서라고 홀대했던 발언에 마음이 상하신 듯 반납을 명하셨다. 어렵던 시절 그분들의 할부 책의 역사를 간과(看過)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아버지라는 책을 그리움으로 다시 읽는다.오월의 목차에는, 실밥이 다 터진 애잔한 그리움의 책,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2023-05-14

다목적 스프레이제

강길수 수필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나름 거금 들여 산 건데 네댓 해 지났다고 괴상한 소리를 내다니 품질에 문제가 있다. 한 시간 정도 걷는 출퇴근 동안 어떤 의성어로도 표현 못 할 남모를 소음에 노출되어 뒤틀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참아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그런 거야.’ 속 불평이 폭죽처럼 터졌다.고치려고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비 오는 날 시작되어, 비 그치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 갈수록 소리는 커지고 시간도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틈이 늘어나 그 속에 스며든 물기 때문일 거다’ 하는 추론과 판단이 들었다. 당장 고치기 작업을 시작했다. 헤어드라이어로 이곳저곳 물 스몄을 자리를 말렸다. 그래도 소리는 그대로다.아니면, 공기주머니가 막혀서 그렇겠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서류용 클립 한 개를 펴 공기구멍이 있을법한 곳 몇 군데를 찔러 유입구를 키웠다. 조금 나아진 듯했으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데가 어딜까. 오랜 실험실과 연구소 경력도 별 수 없다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못 고치고 저절로 소리가 멈추기만을 바라며, 냉가슴 앓듯 분기를 또 참는다.그 후 어느 날, 긁어 부스럼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 아예 공기주머니를 본드로 때우면 소리가 발버둥 쳐도 별수 없이 멈출 거야’ 하는 결론이 머리에 불쑥 솟았다. 곧바로 본드를 가는 철사에다 찍어 공기구멍 있을 곳에 발라 말렸다. 한데, 결과는 더 괴상하고 큰 소리가 났다. 곁을 지나치는 사람도 들으면 불쾌할 정도로 커졌다. 고무 재질에 고무 본드를 붙여 굳혔으니 제거도 난감했다. 진퇴양난이 되었다.‘궁하면 통한다’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그래. 지푸라기 잡는 마음으로 이걸 한번 써보자’ 하는 아이디어가 번쩍했다. 다목적 스프레이제다. 불문곡직 스프레이 통을 꺼내 본드 붙였던 자리에 뿌렸다. 한데, 이게 웬일일까! 심기를 긁어대던 불쾌한 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야바위꾼에게 홀리면서도 기분 좋은 모양새다. 물에 젖은 길이나, 비 오는 날 걸어도 괜찮았다. 대성공이다.장미꽃 아름다운 출근길을 걷는다. 오가는 한 학교는 동, 서, 남 세 곳 담장에 장미가 산다 하여 장미의 계절엔 어느 길을 가든, 장미꽃의 웃음과 생기를 선물 받는다. 문득, 얼마 전까지 괴상한 소리로 귀청을 긁던 오른쪽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이어, ‘우리 정치권이 이 운동화 같이만이라도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 부인의 캄보디아 아동 심장병 환자 문병을 ‘빈곤 포르노’라며 폄훼하는 궤변에 이어, 방미 중인 대통령의 화동 볼 뽀뽀 인사를 ‘성적 학대’라 주장하는 황당한 망발을 저질렀다. 이런 자들의 마음엔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나라의 외교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지 않은가.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저들의 정치적 목적에만 눈이 멀어 궤변과 망발, 괴상한 소음만 내고 있다. 이런 망국적 처사를 일거에 없앨 수 있는, 다목적 스프레이제 같은 이가 우리 사회 어디에 없을까.

2023-05-11

가정은 ‘행복의 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계절의 여왕’ 5월의 화사한 치마폭에 싸여 가정의 사랑을 부르고 있다. 요즘 점점 잃어버릴 것만 같은 가족의 사랑과 믿음을 다시금 품어주며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아야겠다.가정은 소중한 보물이지만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다 보면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소홀하기 쉽다. 또 가정은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기에 부모와 자식 모두가 올바른 인성과 규범으로 그 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가정과 집의 의미를 같이 쓰고 있지만, 집(house)은 가족이 살아가는 외형적 공간이고 가정(home)은 삶의 최고 가치, 즉 행복을 가꾸어 가는 내면적 관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런데 요즘 가정의 근간, 즉 구성원들인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가족들 간의 상호접촉이 소원해지고, 비혼과 만혼 등으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1.7 %이며 가정이 사라진다는 우려에 인간성 부족과 함께 여성의 사회생활 다변화에 따른 자기중심적 자유를 향유하려는 경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미혼모, 비혼모뿐만 아니라 이혼과 사별에 의한 한부모가족도 약 37만 가구라 하니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을 겪고 있는 이들 가정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가정이 불화하면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등이 일어나게 되고 그 신체적 정신적 피해로 인해 가정의 파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부부 2.5쌍 중 1쌍은 1년간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고 부부싸움 또한 1년에 1천300여 건이 119출동을 부르고 있다. 경북의 가정폭력 신고는 지난해 9천185건으로 전년 대비 5.3%나 증가했다고 하니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의 성찰이 필요하다. 이혼율은 작년에 인구 1천명당 1.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9위, 아시아 1위라는 슬픈 기록으로 혼인비 53%이고 출산율마저 0.7명이니 가정의 달에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고독사 문제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6%인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무연고 사망이 최근 5년 사이 2배로 증가하였고 청장년층도 증가추세라고 하니 사회적 관계망을 잘 유지하고 위험한 환경에 있는 노인들에게는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와 같은 사회 안전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고독사 통계를 보면 작년 3천378명 중 50대 남성이 약 30%로 1천명 정도이고 여성의 4배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사노동과 건강관리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젊은이들은 집 구하기 어려워 결혼을 미루고 노년층은 사회와 단절된 삶 속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생을 보내고 있으며 아이들은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마음은 아프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우고 관심을 가지며 사랑으로 보살펴서 ‘가정 소멸’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가정은 ‘행복의 샘’이다.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손길로 따뜻한 사랑의 샘물이 솟아나도록 하자.

2023-05-11

5·18의 강을 건너야

홍석봉 대구지사장 5월만 되면 우리 사회는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43년이 지났지만 우리 가슴 한켠엔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쓰라린 상처가 남아있다. 쉬이 아물지 못하는 생채기다.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지난 9일 광주 금남로에서 ‘호남총궐기대회’를 가졌다.지역 시민단체 등 참가자들은 민주당을 호남의 적폐이자 특권세력으로 규정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86을 학생운동 경력과 5·18팔이로 정치하는 세력이라고 질타했다. 5·18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려는 세력이라고 못박았다. 호남 시민의 뜻을 모아 이들을 척결하겠다고도 했다.이 단체는 당초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등의 특권과 특혜 폐지를 목적으로 결성됐다.강기정 광주시장은 같은 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요청하면서 의미있는 언급을 했다. 5·18이 특정 단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5·18의 숭고한 뜻이 왜곡되고 있다고 통렬하게 일갈했다.‘5·18 비판’의 금기(禁忌)가 깨지고 있다. 성역이 허물어졌다. 5·18의 고장에서 5·18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단단해졌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호남과 손 잡은 좌파 인사들이 조자룡 헌 칼 쓰듯 5·18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왔다. 좌파와 호남의 결합은 좌파 집권을 보장했다.호남의 심장인 광주가 과거의 덫에 빠져 있는 사이 5·18과 민주를 앞세운 운동권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익은 덤이었다. 광주와 호남에는 경제성 검토도 필요 없었다. 정치적 명분만 그럴듯하면 됐다.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기업을 끌어왔다. 43년을 그렇게 흘러왔다.5·18 국가유공자 선정도 인우보증(이웃과 친구가 보증)이라는 이름으로 허술하게 진행됐다. 보훈처 심사도 필요 없었다.43년이 지났는데도 5·18 유공자는 계속 늘었다. 5·18 국가유공자 명단을 전면 공개하라는 주장은 소리없는 외침이다. 5·18과 상관 없는 인사도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이제사 일각에서 바로잡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호남 지식인층 중에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광주가 추구하는 가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5·18과 관련된 국민적 의혹과 마음 한켠 찝찝함을 호남인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보수의 무턱댄 ‘호남 혐오’도 그쳐야 한다. 혐오가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리고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18을 대한민국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특별법도 폐지해야 한다. 사람 입에 자물쇠를 채운,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법을 만든 대단한 국회는 반성과 함께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5·18 정신에 대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호남인들은 호남의 위대한 정신이자 자산인 5·18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일은 더이상 않아야 할 것이다.일제침략, 4·3사건, 5·18 등 현대사의 비극이 된 과거사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2023-05-11

‘이차전지도시’ 포항, 전력망 확충에 총력전

포항을‘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만드는 작업에 경북도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경북도는 최근 포항에 이차전지 기업투자가 이어지면서 전력공급난이 예상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항산단 전력공급 대응TF’를 구성해 그저께(10일) 동부청사에서 첫 회의를 가졌다. 이차전지 관련 기업은 다른 제조업체에 비해 전기소모가 5배가량 많아 현 공급체계로는 한계가 있다. 포항에 있는 블루밸리국가산단이나 영일만일반산단 모두 기존 전기설비로는 전력공급 능력이 부족해 변전소 신설과 기업별 전용선로가 필요하다.영일만산단의 경우 내년까지는 현재 송전선로와 변전소로도 전력수요를 충당할 수 있지만, 2026년부터 추가로 필요한 이차전지 기업의 전력수요는 감당하기 어렵다. 블루밸리 국가산단도 변전소 용량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포항에 투자하기로 한 이차전지 기업들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전력 규모는 298㎿인데, 이를 충당하려면 송전선로와 변전소 신설을 앞당겨야 한다. 한전은 2028년 10월까지 240㎿ 규모 송전선로와 변전소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포항산단 전력공급 대응TF’는 경북도와 포항시, 한국전력, 포스코, 포스코퓨처엠 실무진이 주축이다. TF 실무팀은 수시로 모여 포항산단 송전설비 보완 및 증설규모 시기조정, 미래 전력수급 계획을 수립한다. TF는 앞으로 영일만 일반산단과 블루밸리 국가산단 투자의향 기업의 대규모 전력 수요를 조기에 파악하고 한전과 긴밀하게 협의해 전력 수요·공급 상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포항 북구)도 최근 한전 임원진을 만나 전력 인프라구축을 요청했다.경북 동해안지역은 원자력발전소가 집적돼 있어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입지하는데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송전선로 건설비용이 절감될 뿐만 아니라, 전력 생산·소비의 지역 불균형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포항은 최근 잇따른 이차전지 기업의 투자유치로 성장동력을 확보한 만큼, 필요한 전력이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TF가 중심이 돼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2023-05-11

대구시민축제, 상가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길

이번 주말부터 대구 전역에 걸쳐 각종 축제 행사가 펼쳐진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맞춰 열리는 이번 지역의 축제가 침체된 대구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시민들에게는 모처럼만에 가족과 함께 즐기는 힐링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 1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3일부터 14일까지 대구 중앙네거리와 공평네거리 일원에서 열리는 ‘2023년 파워풀 대구페스티벌’은 올해부터 민간주도형 축제로 바뀌면서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특히 행사의 하이라이트격인 ‘파워풀 대구퍼레이드’는 8개국 82개팀 2천600여 명이 참가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하니 한번쯤 구경 해볼만하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필리핀, 베트남 등 해외팀의 경우 시장과 주지사, 문화사절단 등이 함께 방문해 지자체간 교류의 장도 넓혀 축제의 의미를 더해준다. 또 같은 기간 동성로 축제가 대구 중심가 동성로 일원에서 열린다. 수성못 일대서는 수성못 뮤지컬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려 뮤지컬 갈라콘서트, 미니공연, 프리마켓 등으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는 청장년층이 즐길 수 있는 대구탑밴드 경연대회가 열리고, 16일부터는 대구국제음악제가 시작되며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도 19일 개막에 들어간다.가정의 달이자 축제의 달인 5월은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와 공연이 가득하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를 즐기고 문화적 여유를 향유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지금 우리의 경제는 매우 어렵다. 특히 자영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소상인들은 시장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문을 닫는 일도 빈번하다. 대구 대표 상권인 동성로는 코로나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상가 공실률이 약 20%에 이르러 대구 대표상권으로서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달에 열리는 각종 축제에 시민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의 행사 참여가 곧 상가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축제란 문화적 여유를 즐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가치를 살리는 역할도 한다.

202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