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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계가 주목하는 로봇기업이 대구에 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베어로보틱스가 대구테크노폴리스에 입주하기로 하면서, 대구가 로봇산업 중심도시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최근 소프트뱅크 투자유치와 함께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주목받는 이 기업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서빙로봇을 개발한 업체다. 베어로보틱스는 올 하반기 테크노폴리스 내 2만2천424㎡(6천783평) 부지에 글로벌 거점 역할을 할 ‘테크센터(연구·제조시설)’를 착공해 내년말부터 본격 가동한다. 테크센터에서는 제품 개발과 품질 테스트, 플랫폼 기술개발 등의 업무를 한다. 베어로보틱스의 대표적 상품인 서빙로봇은 지금 일본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동남아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한인 스타트업 가운데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 대표가 지난 12일 대구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대구지역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한 말이 든든하게 들린다.지금 세계 로봇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이 구인난을 겪으면서 유행처럼 서빙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판된 서빙로봇 수는 2019년 50대 수준에서 지난해엔 5천대 규모로 늘었다. 대구시는 이런 추세에 맞춰 로봇산업을 5대 신산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베어로보틱스의 투자를 계기로 대구는 명실상부한 로봇산업 기지가 됐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구에는 현재 200곳이 훨씬 넘는 로봇제조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HD현대 계열의 현대로보틱스다. 현대로보틱스는 지난 2017년 달성군 유가읍에 공장을 지으면서 대구의 로봇 간판기업이 됐다. 삼익THK와 아진엑스텍도 대구를 대표하는 로봇기업군에 속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밝혔지만, 대구경북 신공항 개항과 함께 대구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연결된 로봇제조산업 허브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2023-06-14

경북대, 반도체 인재양성 요람으로 거듭나길

경북대가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추진하는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 대상에 최종 선정됐다. 2023학년도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사업에서 비수도권으로서는 경북대와 부산대. 고려대(세종) 등이 선정됐다.경북대는 이번 선정으로 앞으로 4년간 국비 271억원과 지방비 25억원, 대응자금 14억원을 포함하면 총 31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게 된다.경북대는 앞으로 전자공학부 주관으로 신소재공학부 및 물리학과가 참여하는 반도체 특성화사업단을 구성, 이를 운영해 나가며 반도체 특성화융합전공을 신설해 반도체 인재를 본격 양성해 나갈 계획이다.지금 지방의 대학들은 사활을 건 생존경쟁에 나서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는 학생들로 지방의 대학들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과가 수두룩하다. 교육부도 지방대학의 이런 문제점을 풀기 위해 올해 중 10개의 지방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육성하겠다고 밝혔다.지자체와 지방대학이 상호 협력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방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이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올 대학 정시모집에서 정원미달 대학의 86%가 지방 소재 대학이었던 것만으로 지방대학의 경쟁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경북대의 특성화대학 선정은 이런 위기 속에 맞은 호재다. 특히 경북대는 권역별 반도체공동연구소 사업에 이어 특성화대학까지 선정됨으로써 학교 발전의 중대 고비가 됐다. 반도체 관련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의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한때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으로 알려진 경북대가 많은 지방대학 중 하나로 전락한 위상을 다시 찾아야 한다.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시대적 흐름 때문에 불가항력적 측면도 있었으나 이제 이를 전기로 삼아 지역거점대학으로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반도체 인력 양성은 국가적 과제다. 경북대는 특성화대학 선정을 계기로 전국 최고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등 K-반도체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지역사회의 활로를 열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2023-06-14

세계 최고, 울릉도 리조트 코스모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울릉군 추산리에 있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개장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다. 호화 시설과 빼어난 건축미 때문이다. 2021년, 2022년 연속 ‘월드럭셔리 호텔 어워즈 럭셔리 허니문 리조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2017년 10월 문을 연 후 4년 만에 세계 최고의 호텔로 등극한 것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건물 20개 중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모스는 코오롱 그룹이 김찬중 건축가에게 맡겨 설계했다. 건축가는 버킷리스트를 꿈꾸며 현실로 만들었다.코스모스는 울릉도를 단숨에 세계적 여행 명소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직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적잖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곡선미와 인근 송곳 산의 경치가 어우러져 신비감마저 자아낸다.숙박비는 엄청나다. 특급 풀빌라(객실 5개)는 1박 숙박비가 1천만 원을 넘는다. 식사와 교통편, 관광 등 여행경비 일체가 포함돼 있다. 펜션 형태의 숙소(객실 8개)도 1박에 40만~70만 원대로 가격대가 만만찮다. 이마저 객실 수가 적어 예약이 쉽지 않다. 예약돼도 섬의 특성상 풍랑으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식사 때는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나물을 활용한 파스타, 호박 아이스크림 등 특선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코스모스는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고, 야간 레이저 쇼를 선보이는 등 울릉도 관광 면모를 확 바꿔놓았다.리조트 코스모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외교결례와 내정간섭 논란의 주인공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코오롱 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코스모스 이용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고급 호텔 이용권이 접대 수단이 되는 시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4

‘~답게’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지인의 어린 딸아이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을 주제로 글쓰기 과제를 학교에서 받아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해마다 쓰는 내용이 식상하기도 하고 도무지 쓸 거리도 없는데 매년 학교에서 그런 과제를 형식적으로 내니 애국은커녕 반감이 생겨 오히려 매국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웃픈 이야기를 듣고서,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사실 6월은 현충일을 비롯해 한국 전쟁, 제2연평해전 등이 모두 일어난 달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곳곳에서 온갖 행사가 행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지극히도 무심히 6월을 보내는 일상 풍경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여 각종 행사에 형식적으로 물적, 인적 투자를 해 온 그간의 관례 탓도 있고, 또, 일반 범부(凡夫)로서는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한 이들의 삶이 너무도 고결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적 거리감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국가를 위해 무언가 큰 희생을 하는 것이 꼭 호국보훈이요, 충(忠)은 아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중심이 바로 잡힌 마음 상태, 지극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국민의 국가를 향한 일방적인 희생, 의무를 강요하는 복종 개념이 아니라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바로 잡고 선 상태, 하려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논어에서도 충(忠)을 ‘진기(盡己)’라고 표현하였다.진기(盡己)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말로, ‘~답게’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모두 각자 처한 위치에서 이러한 ‘~답게’를 진정으로 잘 실천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君君臣臣 父父子子).‘~답게’가 잘 실천되는 사회, 곧 충(忠)이 제대로 실현된 사회일수록 ‘나’를 넘어 ‘너’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법이다.나폴레옹 점령 당시 총칼 대신 독일의 민족정신을 살리고자 독일어 사전 편찬 작업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민담을 수집해 책으로 엮어내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 놓은 그림 형제나 풍전등화 같은 국가적 위기 속 조선의 운명을 짊어지고 왜적과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독립투쟁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대전 교도소를 나오며 이제 뭘 하겠느냐는 일본 경찰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한 도산 안창호 등은 모두 학자, 장수, 독립투사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실천하다 간 인물들이었다.이처럼 충(忠)은, 호국(護國)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진실된 마음으로 올바르게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에 미치게 되어 마침내 충(忠)을 실현하고 애국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6월은,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 ‘~답게’ 살며 나만의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싶다.

2023-06-13

마당극으로 조명한 해녀의 삶과 미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스름이 내리는 도심 속의 정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열렸다. 꽹과리와 장구 등의 장단에 바람소리 같은 파도소리가 간간이 철썩이고, 갈매기 날갯짓따라 흰구름이 떠가는 구룡포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해녀이야기와 몸동작이 사뿐사뿐 이어졌다. 때로는 느긋하고 다급하다가도 때로는 긴장되고 애절하기까지한 연희(演戱)가 시종 재담과 해학으로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은 전통연희컴퍼니예심 단원들이 포항철길숲 오크정원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지역의 향토역사 구룡포 해녀이야기 ‘명랑바다-숨비소리’ 마당극이다.해녀라는 고단하면서도 숙명적인 물질을 통해 여인의 삶, 어머니의 삶, 고령화돼 가는 위기의 해녀를 오롯이 지켜가는 사람들의 질박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마당극 특유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춤사위,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간절한 듯 신명나게 부르거나 연주하고,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과 사물(四物)의 장단, 관객의 추임새까지 더해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즉석에서 샌드아트로 그려지는 평온한 바닷가의 풍경과 물질의 미래 이야기 등이 영상으로 비쳐지니 한결 이채롭기까지 했다.일찌감치 공연장 주위에 둘러 앉은 관객들은 이색적인 마당극에 젖어 들어 저절로 감흥이 일고, 철길숲을 오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삼삼오오 넌지시 마당극에 빠져드는 분위기였다. 연극 같으면서 창극(唱劇) 같고, 뮤지컬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마당극으로 펼쳐지는 해녀의 레퍼토리가 궁금해선지 지나가던 바람도 주변에 맴돌고 별빛마저 서둘러 내려앉는 듯했다.시민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인 포항철길숲에서 펼쳐진 ‘구룡포 해녀이야기’ 마당극이 작게나마 해녀들의 실태와 척박한 해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아 1천300여 명이 동해안 중심으로 나잠(裸潛) 어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북 최다의 해녀도시인 포항은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해녀문화의 정체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해녀는 연안어업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해양생태계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소득감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어촌의 소멸위험은 어촌 주민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기에 해녀들의 복지환경 개선과 실질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작 전 35년 동안 바닷속을 텃밭 삼아 온 구룡포리 어촌계장의 화두처럼 해녀의 존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젊은 해녀, 해남을 위한 ‘해녀 비즈니스타운’ 건립추진 등으로 보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구룡포 해녀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의 애환을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담아낸 걸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재조명된 해녀들의 실상과 처우가 보다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포항의 해녀문화가 차츰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3-06-13

포항과 포스코 갈등, TK의 위기일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스코그룹이 포항에 본사를 둔 것은 한국 근대화를 견인한 TK(대구경북)의 자존심이다. 대기업 중 본사 소재지가 비수도권에 있는 기업은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울산), 카카오(제주), 대우조선해양(경남) 등 한손으로 꼽을 정도다. 실질적인 본사기능이 서울에 있다고는 하지만, 포스코가 포항을 산실로 해서 다국적 기업으로 커 나가는 것은 TK로선 큰 자랑이다.포스코가 요즘 포항시민들과 현안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는 모습은 안타깝고 위험한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중소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는 타 도시가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갈등의 주요 요인인 포항제철소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의 경우 포스코로선 생존이 걸린 현안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부터 일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사업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돼야 수소기반의 생산체계 기술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포스코는 현재 고로 8기(포항제철소 3기, 광양제철소 5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유럽연합(EU)과 미국에서는 탄소배출 규제안을 강화하고 있어 포스코가 고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결국은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지금 포스코의 라이벌인 해외 철강기업들은 정부지원을 받아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의 사브(SSAB)와 독일의 잘츠기터(Salzgitter)는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최근 철강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10년간 3조엔(약 2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포항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부분은 전남도가 현재 ‘광양홀대론’을 제기하며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내 수소저탄소 에너지연구소를 광양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지어야 한다는 소리로도 해석된다.포항은 지금 내일(15일)로 예정된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의 집회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포스코 지주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 최정우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다. 이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본사기능의 포항이전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들어 주요 대기업들은 수소·인공지능(AI)·이차전지 등 미래 신산업 주도권 선점을 위해 박사급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RD 연구소를 수도권에 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있다. 포스코라고 예외일 수 없지 않은가.경북도가 서둘러 대규모 TF를 구성해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사업 인·허가를 돕기로 한 것은 아마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만약 포스코가 일부 포항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수소환원제철 사업부지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제철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고로를 통해 철강을 생산하는 시대는 곧 마감되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시간에 쫓겨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면 포항은 물론 TK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2023-06-13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울진군의 경사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공사가 곧 재개됨으로써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복구’가 피부로 느껴진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백지화됐었다. 그 후 현 정부는 출범직후인 지난해 7월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결정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1천400㎿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이며, 여기서 생산하는 전기로 4인가족 500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정부는 그저께(12일) 세종시에서 전원개발사업추진위를 열고 ‘신한울원자력 3·4호기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안’을 의결했다.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은 대규모 전력공급원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종 인·허가 사항을 일괄 승인받기 위한 제도다.이날 의결로 사업자인 한수원은 도로점용, 하천점용, 공유수면 사용, 농지전용, 산지전용 허가 등 관계 법령에 따른 20개 인·허가를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를 얻었다. 또 같은 법에 따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수용·사용과 이주대책 수립 등의 근거도 확보됐다. 현 정부가 원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한수원은 우선 발전소 부지부터 다지기 시작하고, 마지막 관문인 원자력안전법상의 건설허가가 완료되면 원자로 시설공사에 들어간다. 원전 부지 공사와 별도로 원자로, 발전기 등 원전의 핵심 기기인 ‘주기기’는 이미 수주사인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에서 제작하고 있다.문재인 정부 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0년 3월 완공된 신한울 1호기에 대해 11차례 회의를 열며 무려 15개월간 가동을 막아 울진지역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다행스럽게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조기에 이루어져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신한울 3·4호기가 울진 지역에 2조3천600억원의 경제적 효과와 2천200여 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에는 약 11조7천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다. 울진군이 다시 한국원전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 것을 실감한다.

2023-06-13

다부동전적기념관 호국 성지화, 바람직하다

경북도가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주변을 국가적인 호국 및 보훈 성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3년간 450억원을 들여 6·25전쟁 영웅인 고 백선엽 장군의 기념관을 증축하고 다부동전투 스포츠센터, 피난 땅굴, 휴게광장 등이 구비된 호국 메모리얼파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또 민간단체가 만들어 설치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주역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만 미국 전 대통령의 동상도 다음달 27일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 한다.그리고 칠곡군과 칠곡군 한미친선위원회가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장군의 흉상도 제작해 이곳에 세울 것으로 알려져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명실상부한 6·25전쟁을 기념하는 국내 최대 호국 성지가 될 전망이다.특히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치는 전과를 올린 전쟁영웅으로 다부동전적기념관의 가치를 더 높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북 구미시 해평면과 의성군 단밀면,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걸쳐 벌어진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다. 대구에 이어 부산 점령으로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낙동강 전선에서 막아낸 전투다. 또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로도 유명하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2만여명, 국군은 1만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경북도의 다부동전적기념관 일대에 대한 호국 성지화 계획은 6·25전쟁 발발 73주년을 맞는 호국보훈의 달을 더욱 뜻깊게 한다. 북한의 핵개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으로 국가 안위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한 시기여서 더 바람직하다.6·25 전쟁의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서 교육적으로 의미가 크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의 폐해를 알리기도 하지만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부동전쟁기념관이 세계적인 호국 성지로 거듭나 많은 이가 찾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

2023-06-13

경찰도 극한직업?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단속반 형사들이 수사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터치한 수사물이다. 불철주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범인 검거실적이 오르지 않아 애태우는 모습이나 잠복근무 모습 등 비록 영화 속이지만 경찰관의 고된 업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경찰은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회의 공공질서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옛날부터 이름은 달라도 국가에서 관장하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는 상존해왔다. 조선시대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포도청이라 불렀다. 포도청 산하의 포졸들은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도둑을 잡는 등 서민의 보호자였다.그러나 말이 좋아 ‘민중의 지팡이’지 하는 일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사건이 터지는 현장마다 쫓아 나가지만 위험 부담도 적지 않다. 범인을 잡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리거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동료 경찰관도 많다”고 전한다.멕시코의 한 NGO단체가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에선 하루 1.65명꼴로 순직하는 경찰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근무 중 피살된 경우로 멕시코 경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군으로 손꼽힌다.멕시코 경찰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는 아니지만 국내서도 해마다 퇴직하는 경찰관이 크게 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행안위에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한해동안 3천500여명의 경찰이 옷을 벗었다. 4년 전 2천421명보다 46.3%가 증가한 숫자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열악한 처우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한다.민중의 지팡이는 온데간데없고 극한직업에 시달리는 경찰 이미지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3

오보(誤報)의 사회적 비용

5월 31일 아침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명 같은 위급 재난 문자 알림음과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이라는 섬뜩한 문자 내용, 그리고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습관처럼 네이버에 접속하려는 데 접속이 되질 않자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재난 영화 속 한 장면에 내가 던져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헌데, 무엇을?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같은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는 행정안전부의 문자가 올 때까지.비록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에 느낀 공포를 말로 형용하긴 어려울 것 같다. 공포라는 말도 왠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아마 무력감에 더 가까웠지 싶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무력감 말이다. 그렇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킨 채로 아침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인사처럼 참 특별한 아침인 것 같다고, ‘수령님의 모닝콜’ 덕분에 지각생이 없는 것 같다는 비틀린 농담을 던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이 모든 감정의 폭풍이 ‘오보’로 인해 초래되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문자는 허술한 점이 참 많았다. ‘대피하라’라는 술어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무엇으로 인해 대피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쓰인 ‘대피하라’는 말은 꼭 영화 ‘미스트’ 같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답이나 혹은 습관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수없이 많은 참사와 재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난에 취약하다. 그게 전쟁이든, 혹은 자연재해든, 우리는 어떤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불어 문자에서는 어떤 상황인지조차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고.사실 많은 사람들이 느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단지 대피하라는 말 뿐, ‘왜’와 ‘어떻게’를 생략해버린 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부추길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가 접속자 초과로 인해 먹통이 되어버린 건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습관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사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고, 그건 우리의 삶에 있어서 특정 사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문제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정부를 불신하고, 그와 같은 불신을 사기업의 정보망을 통해 보충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있었다. 4월 28일 종로에서 있었던 지진 경보 오발송이다. 그때 나는 종로3가의 한 술집에 있었는데, 그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4월 28일 21:05 지진발생/추가 지진 발생상황에 유의 바람-종로구’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부터 찾기 시작했다.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그 광경이 꼭 만화 ‘일본 침몰’의 한 장면 같아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 닥친 위기가 현실임을 인지하지 못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재난에 휘말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게 정말 그 사람들만의 탓일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보’가 갖는 위험성이 바로 이것이다. ‘오보’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치명적인 효과를 미친다.‘오보’는 우리가 가진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잘못된 대처를 하도록 만든다. 그때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낙관주의가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초래하는 효과가 정정문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까닭이다.더불어 이번의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은 북한과 엮여 있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복잡하다. 북한의 위성 발사실험이 사전 고지된 사항이었음에도 이것을 이례적인 것처럼 이슈화시키고, 정보를 왜곡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고전적인 북풍 공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건 지레짐작에 불과할 것이다. 오보는 오보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오보가 단지 오보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어쩌면 이런 잘못된 정치적 상상도 오보에 대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인 것일까? 여전히 많은 의문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2023-06-13

산책하면서 보는 것

강아지와 산책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를테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얼마나 많은지. 씹다 뱉은 껌이나 음식물 쓰레기가 잔디와 얽히면 얼마만큼 끔찍한 일을 야기하는지. 죽은 새나 몸통이 훼손된 쥐 같은 것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나의 반려견 보리는 목적지까지 우아하게 걸어가는 법을 모르고,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 온갖 곳을 향해 코를 킁킁댄다. 덕분에 나도 거리의 무수한 주변부를 탐색 중이다.그렇게 걷다 보면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와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처럼 좋은 날씨엔 더욱 그렇다. 시간과 동선이 겹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만나는 강아지도 있다. 그러면 강아지의 이름이나 나이, 취향까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 멀리서 아는 강아지가 다가오면 묘한 내적 친밀감이 든다. 강아지들이 인사할 동안 반려인들은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새로운 형태의 우정이 새록새록 싹트는 것만 같다.최근 새롭게 알게 된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초코.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초코는 너무나 순하고 사람을 잘 따랐다. 초코야, 안녕? 인사하면 벌러덩 누워 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강아지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도 초코야, 초코야,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보리와 산책하던 중이었다. 초코의 견주인 할머니가 혼자 벤치에 앉아 계셨다. 초코가 안 보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 할머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선 초코가 죽었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초코가요? 갑자기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묻자, 차에 치였다고 했다. 아, 그때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할머니는 오프리쉬, 그러니까 강아지의 목줄을 차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최근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강아지의 리드줄 미착용에 관한 규제가 생겨났다. 줄을 차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그러나 동네를 산책하면 여전히 줄을 착용하지 않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머니와 초코 역시 그랬다.초코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에게 “그러게, 목줄을 하셨어야죠.” 하면서 쏘아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할머니의 무책임함으로 목숨을 잃은 강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슬픈 것은 그녀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내게는 책임이 없는가? 나는 반려견의 리드줄 착용이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할머니에게 리드줄 착용의 중요성에 관해 알리고 당장 내 것이라도 건넸어야 했다.이럴 때 나는 완전히 비겁해진다. 이를테면 개집에 묶여있는 강아지들을 볼 때. 행동반경이 이미터도 되지 않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배변하는 생명과 내 품에 안긴 반려견을 번갈아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꾹 감는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았다. 할머니와 나도. 초코와 보리도. 나는 다른 국가처럼 모든 반려인이 반려견에 관한 의무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입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면 동시에 할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어깨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초코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초코는 할머니에게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 어떤 강아지 못지않게 행복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주었던 사랑과 서로의 유대감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니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면서도 주변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섣부른 감정만으로 세상은 작동되지 않고 법의 잣대만으로 모든 이를 판단할 순 없다. 이것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한 번이라도 더 살피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오늘도 나의 반려견 보리는 자기만의 보폭으로 산책한다. 전봇대 앞에 멈춰 냄새를 맡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구른다. 보리의 배변을 치우려고 하니 개똥들이 보인다. 무책임한 개 주인을 원망하다가 한숨을 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치운다. 고개를 드니 다른 분이 자발적으로 공원을 청소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천천히, 차근차근.

2023-06-13

여성은 약하지 않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세이렌(Sire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인간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는 이 괴물은 여성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혐오했던 남성 중심 문화의 상상물이다. 오늘날 ‘위험을 경고하는 장치 또는 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이렌(siren)이라는 단어 또한 여기서 유래했다.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 불의 섬’은 이 괴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따왔다. 이 프로그램은 경찰,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맨, 운동선수 등 높은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외딴 섬에 모여 펼치는 생존 경쟁을 다룬다. 각 직업군들은 네 명씩 팀을 이뤄 다른 팀의 기지를 점령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전략전술과 연합과 적대의 구도가 무척 흥미로우며, 일일 소비 칼로리를 화폐로 사용하여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무엇보다도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정신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그리스 신화의 세이렌과는 달리 ‘사이렌’의 참가자들은 유혹할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 생존하고 경쟁한다. 이 프로그램은 세이렌이 갖는 ‘위험한 여성’의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남성에게 숭배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여성들 사이의 대결과 우정이라는 취지를 잘 부각시켰다.참가자들이 고통을 무릅쓰며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무한걸스’,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여성이 활약하는 예능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이처럼 ‘강인한 여성의 몸’,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신체적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없었다. 기존 여성 예능이 여성 멤버들의 화합을 강조했다면, ‘사이렌’은 화합과 경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보여준다. 팀원 간의 협력과 단합이 매력의 한 축이라면, 다른 팀을 상대할 때 드러나는 경쟁의식과 승부욕은 또 다른 측면의 매력이다. 승리에 대한 참가자들의 집념은 ‘남성 못지 않다’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 정도로 강렬하다.연출자인 이은경PD는 ‘우정’, ‘무력’, ‘승리’라는 스포츠 만화의 매력을 여성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경기가 끝나면 친구가 된다’는 스포츠 만화의 가치관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학 진학, 취업과 창업, 경제적 우월감 획득을 위해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삶은 경기가 끝나지 않는 스포츠 만화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상대와 우정을 쌓을 여유가 필요하다. 후회 없이 경쟁하고 뒤끝 없이 서로를 인정한 ‘사이렌’의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여성은 약하지 않다. 진짜 약한 것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요구하고, 거기 기대지 않으면 존속되지 못하는 사회구조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세이렌으로 낙인찍으며 그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억압해 왔는가. ‘사이렌’이 보여준 강하고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스크린 밖, 일상 세계에서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3-06-12

K-양심을 보면서

김규인수필가 러시아 관광객의 300만 원이 든 지갑을 시민과 러시아어 특채 경찰관에 의하여, 500만 원이 든 중국 관광객의 샤넬 가방이 시민의 도움으로 주인을 되찾았다. 어쩌면 한류 문화의 진앙인 대한민국을 보고자 찾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뻔했는데, 그들의 여행에 한국인들의 마음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기쁘다.외국인 여행객이 두고 내린 최신 맥북, 아이패드와 돈이 든 가방이 지하철 안에서 18시간을 실려 다니다가 지하철역에 보관됐다는 소식도 인터넷에 떠돈다. SNS를 통해 더 많은 한국인의 양심과 정직함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K-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간다.K-양심은 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여러 날을 집 앞에 둔 택배물이 안전하고 1천만 원의 돈을 찾아준 택시 기사 이야기를 본다. 택시에 두고 내린 2억이 넘는 아파트 판매 대금이 든 가방을 찾아준 시민의 미담은 우리 사회가 믿을 만하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은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공정 탓인지 아니면 어디를 가나 만나는 CCTV의 학습효과 탓인지 일상생활에 정착한 느낌이다.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사회 지도층이나 공직자들의 성추행, 음주운전, 금품수수는 지금 한창 떠오르는 이슈다. 단기로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만 보다가 전체를 보아도 K-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머무르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들, 이민자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정직하지 못하고 앞과 뒤가 다르거나, 도덕으로 무장한 진보라 말하면서 양심을 저버린 일부 정치인들, 끝이 없는 지도층의 성추행, 음주운전은 K-양심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양심을 지키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운 것인지. 일그러진 모습 뒤에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바쁜 그들이 ‘K-양심’을 듣기나 한 것인지.‘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헌법은 말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양심이 중요하다는 대한민국의 기본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공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SNS에 떠도는 K-양심과 공직사회의 사익을 추구하는 비양심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들이 비난받는 것도 양심 사회로 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이 인정하는 K-양심의 나라가 아닌가. 공직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점점 양심 국가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사익에 빠진 사람들이 있지만.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순위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뒤처진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 총합의 결과이지만 외국인들이 찾고 싶은 나라, 찾아와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은 나라가 되면 우리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K-양심의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3-06-12

문경 도자기, 흙으로 빚어온 시간

오래전부터 도자기는 사랑받아왔다. 도자기에는 역사·예술·삶이 어우러져 녹아있다.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맑고 투명한 빛깔과 그 위를 수놓은 그림과 이를 완성 시키려는 전문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는 예술품으로서 그 가치가 일품으로 인정받는다.그러나 현재 도자 제작 기술은 옛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일제강점기에 왜사기가 대량 생산되고 개인 공방이 금지되면서 백자 전승의 맥이 많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60년 중반 일본과 교류하면서 문경에 남아있던 도자 제작 기술이 현재까지 잊히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태토와 소성용 목재를 구하기 쉬운 문경은 예로부터 관요가 아님에도 도자기로 생업을 잇는 경우가 많았다. 16~19세기 문경읍의 옛 가마터에서는 주로 서민들이 애용하던 백자나 청화백자 식기류가 발굴되었다.한때는 ‘막사발’로 불리던 그 도자기를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 등짐장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백색도가 낮고 두꺼워서 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유용하게 애용되었다.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면서 도자기의 인기는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로는 도자기를 대체할 편리한 그릇이 인기를 끌면서 문경의 가마터에서도 식기류보다 요강과 화분·칠기를 주로 생산한다. 수요가 없는 만큼 도자 제작을 생업으로 삼기에 힘들었다.가마터를 떠나 탄광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1960년대 이후 문경에서 성황을 이루던 석탄산업의 역사는 ‘문경석탄박물관’에 가면 그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다.거의 명맥만을 이어가던 문경 도자 제작 기술은 1960년대 중반 일본의 애호가들과 미술상들이 찾아오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다기의 수요가 높았던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찻사발)을 최고라 여겼고, 최대한 똑같은 찻사발을 갖고 싶어 했다. 찻사발은 식기용 대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대접보다 굽이 높고 좁아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낼 때 사용하기에 적당하다.일본 다도에서는 자주 활용되는 편이나 찻잎을 우려 마시는 한국 다도에서는 생소한 물품이기도 하다. ‘막사발’이라 불렸던 문경 도자기는 찻사발을 만들면서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찻사발의 다채로운 색조는 예술적 가치로 여겨졌고, 백색만을 추구하던 시선도 점점 사라져 갔다.현재 문경은 전통적인 백자가 아니라 일본에 수출한 ‘찻사발’을 문경 도자기의 대표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문경 도자기 역사에 있어서 일본과의 교류는 중요했고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1990년대에 들어 전통 기술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김정옥이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그의 가문은 7대째 도자 제작 기술을 이어왔고, 간결하고 절제된 포도 넝쿨 문양을 고유의 문양으로 삼고 있었다. 그를 기점으로 4명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발굴하고, 1999년 ‘문경찻사발축제’를 열어 널리 문경 도자기 문화를 알린다.매년 문경새재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명장들의 뛰어난 작품뿐만 아니라 신예들의 창조적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망댕이 가마’에서 제작된 것만 출품할 수 있다고 한다.망댕이 가마는 문경 도자 제작 문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가마로, 약 20~25cm 정도 높이의 원통 모양 흙덩어리(망댕이)를 돔 형태로 쌓아 올려 만든다. 관음리에 남아있는 옛 가마터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망댕이 가마는 만드는 시간이 짧고 저렴하며, 내구성이 높고, 단열효과가 좋아서 적은 장작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문경도자기협동조합에서는 망댕이 가마로 도자 제작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가는 전통 기술의 보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그러나 망댕이 가마는 현대의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처럼 아주 정확한 온도의 불꽃을 유지하기 어려워 일정한 품질의 도자 제작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도자 제작의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흙으로 빚어온 시간’을 슬기롭게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문경의 도자기는 서민과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며, 변화하였고, 현재는 예술품이 되었다. 시대적 취향이나 기호와 같은 문화가 녹아있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시간이 깃들어 있으며, 대대로 이어온 도공의 삶도 숨겨져 있다.도자기를 빚어온 시간 안에는 역사와 예술과 삶이 녹아있다. 다도와 차에 관심이 있다면 문경에 들러, 푸르른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낸 찻사발에 담긴 시간의 온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6-12

작은 섬에서 펼쳐진 관계의 비유와 상징

아일랜드의 가상의 섬 이니셰린에서 막역했던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다. 절교를 선언한 사람과 느닷없이 절교를 당한 사람. 농담이거나, 알지 못하는 말실수이거나, 기분 탓이려니 이유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없고 그 사실이 와닿지 않는다. 이제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추측이 난무하고 어정쩡한 주변의 조언이 이어지지만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어 간다.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첨예한 가치관의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없어. 그냥 자네가 싫어진 것뿐이야”라고 시작했던 절교. 남은 삶을 사색하고, 작곡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절교를 당한 사람에게 와닿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절교를 당한 상대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던 사이에 그러한 결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며 왜 그러해야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절교를 당한 쪽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었던 ‘현재’를 이야기하고, 절교를 선언한 쪽은 지금까지 변화없었던 삶이 싫다며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 ‘미래’를 이야기 한다.‘현재와 미래’라는 갈등에 “다정함은 역사적으로 기억되지 않지만 예술(음악)은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다정함과 예술’이라는 전선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본토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고 아름다운 섬 이니셰린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갈등은 일상을 흔들고 물러설 수 없는 각오와 결기로 치닫는다.영화 속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23년 4월 1일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여러 차례에 걸친 독립운동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6년 4월 부활절을 맞아 봉기한 아일랜드의 독립전쟁은 1921년까지 이어졌고, 그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서 아일랜드의 자치’를 인정하는 휴전조약이 체결되게 된다.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갈리게 되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굳어지게 된다. 영국이라는 공통된 적과 싸웠던 아일랜드는 조약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이것이 1922년 6월부터 시작해 1923년 5월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내전’이다.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본토와 가까웠던 이니셰린에서는 간간히 전쟁의 포성이 들려온다. ‘다정함’을 무기로 친했던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예술’과 ‘미래(남은 여생)’의 방향성을 달리하면서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가치관의 전쟁이 점점 수위를 더해간다.우리는 절교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영화는 절교의 이유를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서운함과 분노, 거부와 결기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며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자와 그를 쫓는 자와의 일상이 강도를 더해간다. ‘다정함’과 ‘예술’이 각자의 신념이 되고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쟁의 양태와 닮았으며, 역사적 사실이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내전의 은유가 된다.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던 친구가 이해를 달리하면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한쪽을 파멸로 몰고가는 내전에 이르러서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 갔듯이, 절교를 선언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신념은 상대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해와 양보를 구하지 않으며 결기로 대처한다. 결기는 비극을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신탁이 내려진다. 모호한 신탁은 갈등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구체화되고, 역사적 은유와 흥미로운 상징들이 작고 아름다운 섬에 가득 펼쳐진다. 1923년 4월 1일. 이 모든 것들이 만우절 농담처럼 시작된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6-12

혼돈의 시대 지식인의 책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오웰(G. Orwell)은 1949년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을 우려했지만, 우리는 지금 ‘탈진실(post-truth)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혼탁한 세상이다. 노회(老獪)한 권력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거짓을 일삼고, 진리와 가치의 객관성을 포기한 정치적 광신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나라의 사정이 이러한데 ‘진리의 최후보루인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고민과 대안을 담은 지적 담론을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민주화시대의 ‘지사적 지식인’과 지식정보시대의 ‘전문적 지식인’은 그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그래서 사르트르(J. P. Chartres)는 ‘지식인’과 ‘지식전문가’를 구별하고, 후자는 전자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지식인은 지식전문가에 더해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의와 진리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촘스키(N. Chomsky)의 지적처럼 “지식인은 진실을 밝히고 대중이 늘 깨어있도록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생명인 ‘합리적 비판정신’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며, 공정성·균형감·자기성찰은 지식인의 필요조건이다. 지식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정 이념과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경계인(境界人)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지식인은 반드시 ‘권력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권력과 야합한 지식인들, 즉 어용교수·어용언론인·어용법조인 등은 권력의 주구(走狗)가 된 위선자들이다.지식인이 사익(私益)을 위해 정의와 진리를 배반하면 위선자가 된다. 그 위선과 배반은 인격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뱅다(J. Benda)는 “지식인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영원불변의 진리와 이상을 추구하는 성직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이익에 따라 합리적 이성을 포기하고 현실과 야합하는 배신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지식인의 배반은 탈진실사회의 주범이다. 권력과 야합하여 ‘정치적 기생충’으로 전락하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배반은 비판받아 마땅하다.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지식인들의 양심과 인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의 부패는 곧 지식인의 부패를 의미하며, 지식인이 병든 나라는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여 매국행위를 한 이완용, 망국의 소식을 접하고 “난세에 지식인 노릇하기 정말로 어렵구나”라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黃玹)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오직 양심과 인격의 차이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했을 뿐이다.우리사회의 혼돈은 ‘지식전문가’는 많지만 ‘참 지식인’이 적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직시하고 불의와 거짓에 맞서는 것은 지식인의 책무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엄중히 묻고 있다. 돈과 권력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를.

2023-06-12

경북도, 수소환원제철사업에 행정력 집중

경북도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총대를 멨다. 포항제철소 앞바다 132만2천300여㎡를 매립해 조성할 계획인 수소환원제철소가 인허가절차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환경문제와 수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힌데다, 인허가 과정이 복잡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포항시와 포스코만의 인력으로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와 연관산업이 향후 포항뿐 아니라 경북전체의 주요 경제축이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북도는 우선 이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국장급이 팀장을 맡을 TF는 앞으로 정부 관련부처(15~16개)와 1대1 매칭을 통해 행정절차를 밟아 나간다는 계획이다. 경북도는 TF가 관련부처와의 협의나 주민공람 콘텐츠 보강 등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경우, 주민설명회를 8월중에 다시 개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대해 포항지역 여론은 찬반으로 갈라진 상태다. 찬성하는 측은 포항제철소가 철강생산을 하루빨리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탄소중립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반면 포항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송도상가번영회, 영일대해수욕장상가번영회, 경북사회연대포럼 등은 ‘포항제철소 5투기장(수소환원제철소 예정용지의 옛이름) 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조직적인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 바다매립이 영일만 환경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포스코로선 수소환원제철사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수출시장이 막힌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지난 9일 철의 날 기념식에서 “철강산업에서 탄소 중립 도전은 매우 빠르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밝혔다. 경북도가 조만간 가동할 수소환원제철 관련 TF가 정부부처, 포항시, 포스코와 긴밀히 협조해서 인허가 절차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2023-06-12

연내 대구 미래 밑그림 완성, 대구굴기 보여야

홍준표 대구시장은 “올 연말까지 대구경북 신공항건설과 달빛내륙철도 특별법 제정, 3대 특구 지정 등 대구 미래 50년을 향한 핵심정책에 대한 준비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시장·구청장·군수회의에 참석한 홍 시장은 이같이 밝히고 일선 시군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30년 가까이 GRDP 전국 꼴찌 등 대구의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거머쥔 홍 시장은 일찌감치 대구굴기(大邱5D1B起)를 선언한 바 있다. 올 신년 인사로 “올해를 250만 대구시민이 힘차게 일어서는 대구굴기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고, 대구시 청사에 그의 의지를 담은 ‘대구굴기’ 현판을 달기도 했다.“굴기란 벌떡 일어선다”는 뜻이다. 중국이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이다. 홍 시장 출범 후 대구굴기는 이제 대구의 혁명적 변화를 알리는 키워드가 됐다. 대구시민도 홍 시장이 밝힌 대구굴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등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보유한 홍 시장의 안목과 추진력이 대구굴기를 이끌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이날 회의에서 그가 밝힌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은 공구별 동시 착공을 통해 당초 계획보다 빠른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것. 그리고 K-2 후적지는 금호강을 활용해 싱가로포르 마리나베이와 같은 글로벌 수변도시로 개발해 금융·관광·산업 중심도시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또 경북도청 후적지 일대를 도심융합특구로 만들고 대구와 광주를 1시간대로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는 신공항 개항에 맞춰 개통하기 위해 특별법도 연내 제정할 것이라 했다.대구굴기를 위한 핵심 사업들이 대략적인 방향을 잡았으나 실제 목표대로 추진하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협조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홍 시장의 대구굴기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지역 정치권의 협조와 지역사회의 일치단결된 힘은 정책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홍 시장이 내건 대구굴기 정책이 대구가 일어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역량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2023-06-12

바가지 상술

홍석봉 대구지사장 ‘바가지 쓰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요금이나 물건 값을 치르는 데 있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다’는 뜻과 ‘어떤 일에 대해 억울하게 책임을 지게 되다’는 뜻이다.‘바가지 쓰다’는 말은 개화기 시절, 일본의 화투와 함께 유행한 도박 중 하나인 중국의 ‘십인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노름은 패를 돌리는 사람이 1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돌리다 엎어놓은 후 숫자를 호명하면, 도박꾼들은 숫자에 해당된다고 믿는 바가지에 돈을 거는 것이다. 도박꾼들은 대개 돈을 잃었다. 당시 노름에서 돈이 털린 것을 ‘바가지 썼다’고 했다. 이후 ‘터무니없이 손해 보는 경우’를 빗댄 말이 됐다. ‘바가지요금’도 여기서 비롯됐다.최근 경북 영양군 산나물축제장에서 옛날과자 1봉지를 7만 원이라고 한 뒤 3봉지를 14만 원에 파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방송 후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영양군이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경북 안동과 경주 축제에서도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는 등 지역축제와 전통시장의 바가지 상술로 지자체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축제음식의 바가지 원인은 ‘자릿값’이다. 짧은 기간 본전을 뽑으려다보니 상인들이 엉터리로 비싼 음식을 제공, 말썽을 빚는 것이다. ‘장터’ 운영권을 입찰로 외부 업체에 맡기면서 벌어지는 일이다.축제 장터의 음식 차별화와 함께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그 부가가치가 높다. 지자체마다 축제 홍보에 안간힘을 쓴다. 잔칫집에 재를 뿌려서야 되겠는가. 모처럼 떠난 여행에서 상처받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야 한다. 외국에도 없진 않지만 바가지 악덕 상혼은 경제대국 10위 국격에도 맞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2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천명해놓은 미국도 이런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를 제한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는 때다.전형적인 예로 ‘극장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친다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아수라장이 된다. 심각한 재난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친 행동을 장난으로 넘길 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이란 이유로 용납해야 할까. 1차대전 당시 전쟁과 징병을 반대하는 문서 배포가 문제가 됐다. 언론과 출판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거나 타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려고 하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의 판례다.복잡한 법리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겨놓자. 상식적으로 말하면 공동체와 이웃을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우리 손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한 법질서이고, 정부다.기존의 질서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야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정부는 교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외부에 있는 세력,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키려는 집단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이적행위다. 낙랑공주가 같은 민족이라도 자명고를 찢도록 묵인할 수 없다.민주노총과 소속 산별노조 간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그의 지령에 따라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으로 활약한 혐의다. 공소장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을 차단할 수 있는 자료, 경기도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와 평택 화력발전소·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 자료를 수집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ID 및 비밀번호 등도 북한에 보고했다고 한다.이런 간첩 사건은 이전에도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걱정인 것은 국내 정치와 시민단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민주노총을 북한이 의도대로 움직이려 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인 이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 등을 조장하며 민주노총을 정치투쟁으로 치닫게 했다고 적시했다.더구나 이들이 북한에 보냈다는 충성 맹세문은 기가 막힌다. 북한 선전 자료에서나 보던 유치한 표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니.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가 될 수 있는지 불안하다.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공식 입장 발표가 없다. ‘개인적 일탈’로 정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도 개인 의견인지, 지도부의 의견인지, 아리송하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 수색할 때 완강하게 저항한 것을 봐도, 이들을 민주노총과 떼어서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때 민주노총은 자신들에 대한 탄압,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주장했다.간첩 몇 사람 적발한 것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이란 거대한 조직에 북한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민주노총과 관계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도, 간첩 혐의자가 이 조직을 이용하고자 침투해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의 일탈에 대해 자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돌아보면 알 일이다.민주노총이 스스로 이들의 혐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지면서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은 지켜야 한다.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은 보여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1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와 공리주의

유성찬(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민족의 독립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선열들을 추모하고 배우며, 희생을 제대로 보은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항고 재학 중 6·25한국전쟁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상이용사로 돌아온 외숙부님이 계셨기에 필자에게는 보훈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그 혼이 이 나라를 지탱해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족과 이웃이 확장되는 공동체라는 말이 그렇게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그런 생활양식을 가진 친구들이나 이웃들, 직장동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높이 사게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포스코가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하고자 수소환원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부지 확보에 나섰다.포스코는 포항시 송정동과 송내동, 동촌동, 제철동에 걸쳐있는 공유수면 일원에 약 40만평의 용지를 조성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코의 계획은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다지난 1일 남구 호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포스코의 자료제공이 미흡하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로 인해 설명회는 정상적으로 시작도 못하고 파행을 겪었다.이날 설명회는 수소환원제철소 용지조성사업에 대한 산업단지 계획변경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에 대한 주민 등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포스코홀딩스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본사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변경,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기에는 포항제철소 내 부지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시민 정서 극복이 쉽잖다며 부지가 그런대로 2배인 광양제철소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수소문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코는 포항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수소에너지산업과 관련하여서는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지역과 무관할 수 없다. 울산은 국가산업지도에서 수소에너지특구다. ‘수소’라는 가스를 만들기에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등에서 수소(H2)를 분리해내어야 한다.탄소제로사회, 탄소중립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포스코가 현재의 코크스제철법에서 수소환원제철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환경분야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수소환원제철법은 석탄이 소비되지 않는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또 그래야만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2026년부터는 이산화탄소(C02)가 대량발생하는 철강제품은 탄소국경세가 붙어서 수출할 수 없게 된다.세계에서 으뜸가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법을 현실에서 성공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지도적 국가로 우뚝선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그렇게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코크스 제철소가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도록 했다면, 앞으로는 수소환원제철소가 그 선진국을 밀고 갈 것이다.수소환원제철소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이미 포항지역공동체가 소란스럽다. 포스코와 포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뿜어 낼 분진과 미세먼지, 환경오염물질 등으로 고통받을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존재한다. 희생에는 보은이 있어야 하듯이 피해에는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이다.주민설명회에서 보다시피 환경시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포스코가 환경영향평가업무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보여줬다고 수소환원제철소 부지확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필자는 여기서 공리주의를 떠올린다. 공리주의는 19세기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이지만, 현대에서 공리주의는 공직사회에서부터 시민사회에까지 업무와 목표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도덕철학이 되었다고 본다.인간은 살아생전에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행복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하는 것이 법과 제도이다. 또 그 법과 제도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 특별히 재난과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모토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진리에 가깝다.필자는 탄소중립사회를 선도하고자 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찬동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도덕철학이 포항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경제생활에 근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함은 필수이다.

2023-06-11

화진포 대통령 별장들의 유감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지난달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사실 50주년은 이미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연기됐고, 그래서 뒤늦게 친구들과 함께 기념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100여 명이 참여한 2박3일의 여행은 남해안으로 그리고 해외에서 온 동문 부부들이 함께한 부부여행은 1박2일 동해안으로, 그렇게 여행은 두 번에 나누어져 이뤄졌다.“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이 서양에도 있듯이 틴에이저 시절 사귀고 같이 공부한 고교친구는 가장 친밀감을 느끼고 평생을 가는 친구인 것 같다. 여행은 지난 50여 년의 진한 우정을 다시 음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부부여행 첫날은 월정사 숲길 산책과 길가의 여러 박물관 관람 등이 주문진으로 이동하면서 이뤄졌다.문제는 둘째날 일어났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람한 후 화진포로 이동하면서 한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별장을 관람하고, 그리고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관람하게 되면서 일어났다.이승만 별장을 구경 하면서 생각보다 낡은 모습의 별장이 유지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 관리 자체가 부실해 보였다. 옛 역사를 구현하려면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면서 이상하게 바뀌어 갔다. 그곳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남북한 교류의 사진들과 홍보로 가득하고 이승만 별장보다는 훨씬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과거 역사의 건물이라기보다는 홍보관 같은 느낌이었다.왜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이 구현되지도 않았고 구현할 필요도 없는 건물이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돼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부에 의해서 이런 건물이 세워지고 이렇게 명명 됐을까?원래 그곳은 셔우드 홀의 예배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890년경 ‘로제타 홀의 일기’를 남긴 로제타 여사의 아들 셔우드 홀은 서울 출생이며 우리 나라에 대한결핵협회를 설립시킨 주인공이다.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결핵을 퇴치시키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판매하기 시작한 2대에 걸친 캐나다 선교사 가족이었다. 이 예배당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 베버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본래 셔우드 홀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는데 공산치하에서 잠시 김일성 일가가 휴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김일성 별장이라 명명했다고 한다.참으로 그러한 명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캐나다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명명하는 게 맞지 어떻게 김일성 별장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김일성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건 정치적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듯했다. 실제로 당시 모습도 구현되지 않았고 남북교류의 홍보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진보정권 시절인 2005년 새단장을 하고 그 예배당을 김일성의 별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였다.6세 꼬마 김정일이 계단에 앉은 사진이 뭐가 중요하다고 전시까지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이승만 별장은 호흡이 곤란한 정도로 습한 냄새 나는 건물로 남겨두고, 김일성 별장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설로, 두 별장은 운영조차 차별이 뚜렷하게 느껴졌다.김진태 강원지사가 2022년 취임하면서 이제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청산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러한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6·25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였다.같이 간 친구 한 명은 공산당의 흔적조차 보기도 싫다고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화진포 해변으로 혼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구는 모습을 보았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대강 훑어 보았지만, 자세히 본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시설과 운영은 먼저 찾았던 이승만 별장과는 확연히 달라서 해외에서 30여 년 살다가 귀국한 동기생 부부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만 앞섰다. 대통령실이든 강원도지사든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든 누군가 이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김일성 이름을 지우는 게 좋겠다. 그곳은 김일성의 별장이 아닌 선교사 셔우드 홀로 명명되고 다만 김일성이 잠시 지냈다는 역사만 기록하면 될 것 같다.일반인들이 별칭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식 명칭을 그렇게 부르는 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 김일성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이의 상황을 알기 전에는 독일 건축가가 지었다니 동독의 공산주의 건축가가 김일성에게 아부하며 지어진 건물로 오인까지 했었다.지금도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누워있는 셔우드 홀 가족 6명의 영혼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 또한 모든 곳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반하는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버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2023-06-11

영양군 양수발전소 유치에 온 군민이 발 벗고 나서다!

오도창 영양군수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지방소멸위기에 직면한 영양군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해결 대안으로 양수발전소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지난 4월 말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영양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숨죽이던 군민들은 유치활동에 본격 뛰어들었다.영양군은 86%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적정한 고저차와 지역 균형발전 기여도 등 모든 면에서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이다. 발전소 건립 이후에도 주변 여건의 불확실성이 적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그리고 주민수용성이 탁월하다는 점이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임을 증명해준다. 양수발전소 유치에 따르는 지역갈등에 의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군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발전소를 유치를 원하고 있다. 사업 준비 단계부터 주민수용성을 적극 고려해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했다는 점도 발전소 유치의 최적지임을 뒷받침한다.또한 영양군은 전국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를 가지고 있고 인근지역인 울진에 한울원전, 청송, 예천의 양수발전소가 있어 관련 산업에 따른 에너지단지 구축으로 신재생에너지 시너지효과에도 유리한 지역이다.영양군이 유치하고자 하는 양수발전소는 1천MW규모에 총사업비 2조원, 건립기간 14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군은 2020년 7월에 양수발전소 유치계획을 수립했고 2023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3월부터 읍면, 관내 기관단체 등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 개최 시 홍보활동을 실시했다. 관련 부서인 경제일자리과에서는 무주 양수발전소를 견학하기도 하였으며 4월에는 양수발전소 유치 건의를 위한 경북도지사와의 면담을 가졌다.또 양수발전소 유치 자문간담회 개최하고 국회 방문, 범군민 유치위원회 사전모임, 영양양수발전소 유치추진단 구성 등 적극적으로 발전소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영양군민들도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미 국도 31호선 선형개량 예비타당성 통과 때 ‘통곡위원회’를 구성해 영양군민들의 단합된 마음으로 성공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양수발전소 유치에도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유치에 노력할 계획이다.먼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진 각계각층의 대표자 250여명으로 구성된 ‘양수발전소 영양군 유치를 위한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범군민 유치위원회는 유치 홍보활동, 서명운동, 지역 여론형성, 대정부 건의 등의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며 읍면 및 범군민 결의대회 또한 추진하고 있다. 양수발전소 유치 신청서 제출까지 군민의 75%인 1만2천명 이상을 목표로 대대적인 범군민 서명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영양군에 양수발전소가 유치되면 특별지원사업비, 기본지원사업비, 사업자지원사업비 등을 포함한 약 936억원 이상의 지역발전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연간 14억원의 재산세, 지방소득세 등 세원을 장기적으로 확보가 가능하다.또 양수발전소 건설 이후에는 한수원 및 협력사 관계자 이주, 그리고 시설 운영 과정에서의 지역민 채용으로 15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지역맞춤형 관광자원 확보로 동해권 방문객을 유인 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실제로 양양, 무주, 청평 등 발전소 홍보관의 방문객은 약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수변공원, 카페, 전망대 조성 등의 연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기대효과로는 발전소 유치로 인해 영양군의 생활인구 유입으로 지역 소멸위기 극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발전소 건립으로 도로망 확충,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지역발전 기반 구축, 주민 복지 및 문화생활, 마을기업 설립지원, 발전소 주변 주민숙원사업의 지속적인 실시로 지역과 상생 협력하는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지역 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양수발전소 유치에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양수발전소 유치는 그야말로 친환경 성장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 증가, 인프라 확장, 관광객 증가의 1석 4조의 기회이기 때문에 영양최대 국책사업인 만큼 영양군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성사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2023-06-11

꿈을 쏘다

달그락달그락, 콩콩거리는 소리가 난다. 숨소리를 낮추며 소리 나는 쪽으로 깨금발로 걷는다. 까치였다.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지, 까치는 연통을 계속 쪼아댄다. 까치, 참 오랜만에 본다.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왔나, 잔뜩 기대하며 까치의 몸놀림에 눈을 떼지 않는다. 숨까지 참고 지켜보는데 까치는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지난달 25일, 첫 한국형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해 날아갔다. 누리호의 3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을 발사해 서비스할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에 11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18시 24분, 굉음을 내며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갈 때, 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태극기를 흔드는 아이 어른 모두 환한 표정이다.이 기쁨을 같이 나눌까 싶어, 하루 늦은 다음 날 전남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길에서 만난 노랗게 핀 금계국은 삼백 킬로가 넘는 길을 환하게 이끌어 주었다. 고속도로 옆에서 노란 꽃물결을 펼쳐주며 ‘어여’ 가보라고 꽃등으로 길 밝혔다. 확 지나가는 꽃등을 오래 담고 싶어 산을 향하면 거기에도 군데군데 꽃물결로 환했다. 기분 좋은 소식을 듣고 고흥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가, 그 길에는 꽃마저 등 밝히고 있었다.수백 킬로를 달려왔는데, 고흥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밀려온 물이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 듯하다. 우주센터 주변은 우주로 가는 길목이라 아직도 들썩일 줄 알았다. 그런데 학부모 서너 팀, 젊은 연인 한 쌍, 그리고 나뿐이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하느라 분주했다. 매표소 앞에서 큰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주민등록증은 준비하라고, 그래야만 할인받을 수 있다고 소리 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모이는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전부였다. 광장을 휘돌아 보아도 손으로 꼽을 만한 사람뿐이었다.나로우주센터는 우리나라에 한 곳밖에 없는 우주센터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인공위성 발사장이기도 하다. 우주로 향한 꿈과 희망이 시작된 곳이다. 나도 예매하고 우주과학관에 들어갔다.우선, 애니메이션 상영하는 시간에 맞춰 관람했다. 유치원,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영화를 봤다.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우주로 향하는 꿈과 희망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 아이들이 우주로 향하는 길에서 꿈을 키우게 해 달라는 소망을 빌었다. 우주과학전시관에는 인공위성과 우주공간이 테마로 구분되어 쉽게 즐길 수 있다. 기본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곳, 로켓 존, 인공위성 존, 우주탐사 존이 있어 관심 있는 곳이 있다면 시간을 넉넉히 두고 구경하는 게 좋다. 우주탐사 존이 발길을 붙잡았다. 우주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할까, 무엇을 먹을까,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평소에 궁금했는데 이곳에는 알기 쉬운 설명과 실제 물건들이 놓여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순혜 수필가 차를 돌려 우주 발사전망대로 향했다. 도착하니 5시다. 한 시간 남짓 관람할 수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매표하고 7층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는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360도 회전하는 전망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도해를 바라보는 느낌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한 바퀴 회전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때쯤이면 찻잔이 커피를 훤하게 드러낼 때다. 풍광에 빠져 잠시 잊은 게 있다. 저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나로우주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해상으로 17km 직선거리다. 망원경으로 발사대를 조명했다. 보슬비가 내려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한 곳에 눈을 고정했다. 어제 저곳에서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갔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춘 그 언저리에 보슬비인지 눈물인지 눈가가 촉촉하다.다도해 섬들과 나로우주센터에도 어둠이 막 내려앉는다. 못다 이룬 내 꿈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사이,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떠오른다.

2023-06-11

변화는 지속 성장의 힘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변화가 끝나면 인생도 끝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동안은 성장 동력이 멈추지 않으나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개인은 기억의 뒤편으로 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네티즌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귀멸의 칼날’ 도공 마을 편에서 무잔은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는 원칙을 벗어난다는 것이고, 그건 본성을 어긴다는 것이지”라며 변화의 속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본성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꾸준히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변화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 스며드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인력거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마차라는 동물을 이용하는 수송수단이 자리잡고 있던 서양에는 보편화되지 못했지만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보편화 되었는데 가마라는 인력을 이용하는 수단이 이전부터 존재했기에 정착하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탓이다. 더구나 가마는 웬만하면 4명, 아무리 적어도 2명이 필요했는데 인력거는 혼자서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흔들림까지 적어 승차감까지 탁월했으니 빠른 대체가 가능했다. 이제는 인력거를 넘어 디지털 혁신이 밀려들고 있다. 아직은 택시업계가 피해를 보니 타다도 우버도 안된다고 하지만 피해가 없는 혁신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창조적 파괴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영영 아무런 혁신도 할 수 없을 것이다.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며 침공을 감행하여 양국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쟁의 양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전쟁의 게임 체인저는 탱크도 백병전도 아니고 미사일과 드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500km 영토 깊숙하게 드론으로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시대인데 군인이 행군하고 유격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군대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마치 백병전에 뛰어들 것처럼 모두 체력 훈련을 다 함께 하는 대신에 드론을 조작하는 군인, 탱크를 조작하는 군인 등 아주 세분화된 전문성으로 나누고 군인들도 자신에게만 필요한 훈련을 받고, 온라인과 메타버스 속에서 게임하듯 Digital Twin으로 사전에 시뮬레이션 하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인구 소멸과 복무 기간이 짧아지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이든 군대든 변화를 하려면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변화는 기존의 선입견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 조직의 이해가 아니라 전투력을 유지하고 향상하는 일이 무엇인가가 본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기업의 수명은 짧아지고 인간은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기업이 한 백 년은 끄떡없겠다는 믿음을 줘야 직원들의 충성심을 견인할 것이다. 그 충성심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고 기업은 성장으로 보답할 것이다.

2023-06-11

ChatGPT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유영희 작가 두어 달 전 어느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 구성원은 다섯 명이었는데, 명상 안내자와 상담 전문가도 있고, 책을 한두 권 이상 출간한 작가도 두세 명이다. 그런데 그중 작가 두 사람이 ChatGPT를 활용한다면서, 한 사람은 아예 유료로 결재해서 이용한다고 한다. 그동안 ChatGPT 관련 뉴스를 많이 보았어도 인문 분야에서 활용하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고, 게다가 인문학의 최첨단이라고 할 만한 명상 전문가들이 글을 쓰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고 하니 낯설었다.마침 6월3일 한국사고와표현학회의 춘계 정기 학술대회 주제가 ‘인공지능 시대, 사고와 표현 교육의 방향과 과제’여서 참여했다. 인문학 교수와 게임학 교수의 입장 차이가 아주 볼만했다. 인문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학습하거나 사고하거나 추론하거나 성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코딩도 배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자로 나선 게임학 교수는 국가의 정책 목표가 전 국민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학술대회가 종료될 때까지 참여하지 못해서 어느 쪽이 우세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런 논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사실 인문학자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역시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 미국의 정치인 앤드류 양 등과 함께 미래생명연구소 명의로 AI 시스템 개발을 멈추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인공지능 열풍을 보면서 정말 이런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던 터라 인공지능에 반대하는 입장이 솔깃해진다.그러나 AI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도 하는 일론 머스크의 이런 주장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영국의 기계 파괴 운동이었던 러다이트 운동도 실패로 끝났으니 말이다. 1876년 영국이 중국에 놓은 오송 철도를 철거했던 청나라도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철도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유럽 각국도 앞다퉈 철도를 깔았으니,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고대의 노자는 철기 문명의 문제를 비판하며 문자 없던 시대로 돌아가자 외쳤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쓰지 않겠다는 미국 시인 웬델 베리의 선택은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지만, 그것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기는 어렵다.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신중한 입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술 발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역사를 보아도 실현 불가능하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우려가 많았고 부작용도 해결되기 어렵지만,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AI 사용 능력 격차와 그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문 정신의 존재 이유는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루고 인간성을 보호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데 있다. 두어 달 전 모임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ChatGPT를 잘 활용하여 명상을 보급하고 저술 활동 하는 데 도움 받기를 바란다.

2023-06-11

마지막 수업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존재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과 마지막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첫사랑이나 첫인상 혹은 마지막 잎새나 마지막 수업 같은 말이 생겨난다. 1871년 알퐁스 도데가 남긴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과 1907년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기억에 남아있다.내게도 그런 일이 있다. 지난 목요일 오전 9시, 10시 반 그리고 오후 3시에 마지막 수업을 한 것이다. ‘동서 고전의 만남’, ‘러시아 어문학의 세계’, ‘명저 읽기와 토론’ 세 과목을 종강한다. 대상포진으로 인해 한 주일을 순연(順延)한 결과다. 시간이 여유 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단한 안타까움 같은 건 없었다.사람들의 질문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정년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한결같이 “시원섭섭하시죠!”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시원합니다!”. 섭섭한 것은 전연 없다. 섭섭할 것이 조금도 없는 종강이기 때문이다. 내가 냉정한 인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수업을 향한 학생들의 자세가 뜨뜻미지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9년 전 선배 교수가 마지막 수업을 한다길래, 교수 휴게실에서 오후 6시 무렵 만나기로 했다. 그분은 오후 6시 반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리 늦었냐?!”는 나의 지청구에 “마지막 수업이잖아!”하고 응수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업 이후 학생들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교수의 일방적인 판단이다. 정년을 앞둔 교수의 마지막 열정을 이해하는 학생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45분을 넘겨 진행한 종강이 어떤 인상을 불러왔을지, 모를 일이다.지난 세기 86년 가을 학기에 ‘19세기 러시아 소설’ 강의가 나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강의를 주면서 학과장 교수는 “자네 선배들은 전부 교양 수업을 했는데, 전공 수업은 자네가 처음이야!”하는 말씀을 하셨다. 박사과정생으로 처음 맡은 강의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소설 ‘이발사’를 통독한 기억이 생생하다.1987년 봄 학기에는 학부 4학년 전공과목인 ‘러시아 희곡’을 맡아서 열강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대학과 인연을 마감할 시기가 온 것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인연과 관계 속에서 생애를 이어가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사람의 보살핌과 조바심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릴 것인지 궁금하다.한 가지 저어되는 사실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현저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수동성이다. 강의실에 들어갈라치면 군데군데 어둡다. 세 군데의 조명 가운데 두 군데의 조명이 꺼져 있기 일쑤다. 그런 어둠 속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강의가 끝난 강의실이 환하고 에어컨이 돌아간다. 요즘 학생들은 자기 이익과 관심 대상이 아니면, 눈감고 지나간다.학생들의 사회적 수동성을 지적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은 지금 마구 흔들리고 있다. 지적-정신적 수준보다 중요한 사회적-윤리적 책무가 사라진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23-06-11

“포항과 포스코, 한마음 돼 현안 극복하자”

지난 9일은 포스코가 첫 쇳물을 뽑아낸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이날을 ‘철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포스코는 이날 포항에서 포항제철소 역대소장과 퇴직 직원들을 초청해 다양한 행사를 했다. 포스텍 체육관에서 열린 홈커밍데이 행사에는 포스코 성장 신화의 주역인 퇴직 직원과 가족 등 2천700여명이 모여 달라진 제철소 모습을 둘러보면서 회포를 풀었다. 포항제철소 창립멤버인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1994년 포항제철소장 재임)은 이날 “첫 쇳물이 나왔을 때 저절로 만세가 외쳐지고 눈물이 났다”고 회고하면서, 포스코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970년 4월 1일 공사를 시작한 포항제철소는 1973년 6월 9일 1고로(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했다.포스코가 출선(出銑) 50년을 맞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대 현안은 ‘탄소배출 제로(0)’ 시대를 열기 위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활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일이다. 포스코는 자체 개발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2030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의 로드맵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와 포항시민의 전폭적인 협조가 전제돼야 하는데,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조성을 위해 지난 1일 개최한 주민설명회부터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제동이 걸린 상태다.오는 15일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원회가 포항에서 열 계획인 ‘포스코홀딩스 및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과 최정우 회장 퇴진요구’ 집회도 포항지역사회를 극도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포항상공회의소는 지난주 “포항의 미래가 달린 이차전지 특화단지 선정을 앞두고 지역사회가 분열돼 안타깝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포항상의도 밝혔듯이, 포항은 지금 현안 극복을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할 때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지역사회가 첨예한 갈등을 겪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북도와 포항시, 포스코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민사회가 미래동력 확보를 위해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23-06-11

대구 최초 시집전문 독립서점

우정구 논설위원 독립영화나 독립음악 등 특정 장르에 독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의 대표적 특징의 하나가 외부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독립영화가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상업영화와의 차이점은 자금과 배급망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를 살린 영화를 만들어 가는 창작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독립서적도 대형화 추세를 보이는 서점가의 흐름 속에 외부자본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문고의 100의 1도 안 되는 작은 면적과 책을 보유하지만 책방 주인의 취향과 안목으로 채워진 책들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특히 접근성이 용이한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면서 수익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그 숫자가 점차 늘어간다.한 조사에 의하면 작년 기준으로 전국에 운영되는 독립서점은 모두 815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년보다 70곳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국내 독서인구가 매년 줄어드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온갖 것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독립서점도 전체 수의 약 6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나머지가 전국지방 곳곳에 분산돼 있어 실제로 대구에서는 아주 드물게 독립서점을 만날 수 있다.최근 대구 앞산 카페골목 입구에 시집전문 독립서점이 생겨 화제다. ‘산아래 詩’(대구시 남구 현충로 7길 6)는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매하는 서점이다. 시집을 출간하더라도 판로가 없어 애를 태우던 지역작가의 작품을 독자와 연결해 주는 역할에 기대가 모아진다. 대구시인협회도 시집전문 서점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지금, 독립서점이 많이 나와 독서 진작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1

대구경북도 전세사기·깡통전세 위험성 높다

정부가 지난 열달간 전세사기에 대한 특별단속을 벌여 전국적으로 3천명 가까운 전세 사기범을 검거하고 그중 280여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대구와 경북에서도 183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15명(대구 8명, 경북 7명)을 구속했다.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피해규모가 4천억원을 넘어섰다. 연령별로는 사회초년생인 20대와 30대 피해가 가장 많았고, 주택 유형별로는 다세대주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범죄 유형별로는 금융기관 전세자금 대출 등 공적자금을 소진하는 허위 보증·보험, 조직적으로 보증금 또는 리베이트를 편취한 무자본 갭투자, 불법 중개행위 등으로 다양했다.특히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전세 사기 가담의심자 중 43%가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 관련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LH가 매입, 피해자에게 임대해 주도록 했으나 피해에 대한 근본적 해결은 될 수가 없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데다 하반기 신규 입주물량까지 몰려 역전세난 등 전세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 야기가 우려된다. 주택금융연구원은 올 하반기 경북은 공동주택의 40%, 대구는 30% 이상이 역전세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집값과 전셋값 하락으로 나타난 역전세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대책이 꼭 필요하다.지난 8일 대구서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에 대한 피해가 사회적으로 미칠 여파가 심각함을 알리는 신호다. 정부차원의 특별한 대책이 당연히 나와야겠지만 지역단위 행정도 사회문제 될 부분을 먼저 살피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전세사기나 깡통전세 문제는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이 실패한 때문으로 나타난 것으로 현 정부는 전 정부의 실패 정책을 탓하기 전 실패한 정책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특히 대구경북은 전세사기나 깡통전세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된 만큼 대구시와 경북도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202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