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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퓰리처상

우정구 논설위원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특종기사가 선정된 사례가 많다.6·25 전쟁 당시인 1951년 부서진 대동강 철교다리를 건너 탈출하는 피난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퓰리처상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을 대표하는 ‘소녀의 절규’ 사진도 197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비극의 현장이다.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또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전쟁이란 위험 속에서 이러한 비극적 장면을 취재하고 사진으로 담는 것은 전쟁이 던져주는 참상을 만방에 알리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다. 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모든 이에게 경각심을 주고 전쟁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 저널리즘과 문학적 업적 등에 가장 높은 기여자에게 주는 상이다. 미국의 언론인 조지 퓰리처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달러 기금으로 1917년 제정됐다. 미국 언론인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지만 언론인에게는 가장 영광스런 상으로 평가 받는다.소련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2월 전쟁 발발 1년을 맞았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이며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움을 준다. 이 전쟁으로 국제적 긴장감이 높아졌고, 글로벌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풀 등에서 전쟁 현장을 취재한 AP통신기자들에게 퓰리처상이 돌아갔다는 소식이다. AP 사진기자 등은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를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으로 공공보도 및 특종사진 부문 수상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언론의 본분은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11

경추통과 낙침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의원에 오는 가장 많은 환자군이 통증이다. 통증 중에도 제일 많은 환자가 염좌 환자이다. 흔히들 삐었다 혹은 담이 결렸다고 표현을 한다. 그 외에도 별일이 없었지만 갑자기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하면 담이 왔다 담이 결렸다고 표현을 한다.누가 담결렸다라고 하면 처음 떠오르는게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목이 너무 아프고 안돌아가는게 생각난다. 한의학에서는 베개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으로 낙침(落枕)이라고 한다. 목에 담이 결리면 우선 목을 돌리는게 너무 아프고 돌아가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위 아래로 움직일 수도 없고 목과 어깨 등까지 아파서 움직임 자체가 힘들다.환자가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목에 담결렸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환자 본인의 통증은 심하다. 물론 경중은 있어 목은 돌아가지만 뭉치고 아픈 경우, 목이 반만 돌아가는 경우, 목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경우 다양하다. 그러나 내 몸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 목에 담결린 환자 모두가 많이 아프고 괴롭고 힘들다.빨리 내원한다면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고 통증이 심한 것에 비해서 빨리 낫는다. 우선 아픈 곳을 정확히 파악한다. 대부분 오른쪽이나 왼쪽 한쪽의 경추 5번 위아래 부분을 누르면 심한 통증이 있다. 목의 통증과 그쪽 어깨와 날개뼈를 따라 통증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경추만 아프면 목만 돌리기 힘들고 날개뼈 따라 등까지 아프면 몸 전체를 돌리기 힘들다. 아픈 곳을 확인 후 그 부분에 부항으로 사혈을 하고 당겨서 피를 뽑고 나면 한결 시원해진다. 그리고 아픈 곳을 찾아 침과 약침을 놓아 근육을 풀어준다. 원한다면 각 한의원에 달여논 담약까지 먹으면 더 빨리 치료가 된다.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는 1~3회 치료로 거의 완치되고, 아주 심한 경우도 3~5회 정도로 거의 완치가 될 정도로 잘 낫는다. 급성통증이라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면 금방 낫고 별 후유증도 없다. 아픈 정도에 비해 잘 낫는다.빨리 오지 않아 병을 키웠거나 일부 심한 경우는 담이 결리면 목이 많이 뭉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두통이 발생 할 수도 있고 일부는 팔이 약간 저리다는 경우도 있다. 팔이 저린 경우는 디스크도 의심을 해봐야 하나 그전엔 그런 증상이 없었고 담이 결리면서 팔이 조금 저린 경우는 담이 풀리면 팔저림도 해결이 된다. 대부분의 담은 빨리 낫지만 몇 달 되어서 온 경우는 4~5회가 아닌 10회 정도가 되어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 담은 결리면 바로 내원 하는 것이 좋다.평소 목이 뭉치고 어깨가 굳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담이 오기 쉽다. 자세를 바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특히 사무직은 책상에서 작업 시 똑바로 앉는다. 의자의 바닥면과 나의 허벅지가 닿게 하고 허리는 죽 편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을 펴고 시선은 약간 아래로 한 다음 턱을 당긴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모니터와 같은 책상에 올려놓고 쓴다. 처음은 힘들겠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바른 자세를 취해주다 보면 어느새 바른 자세로 근무 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이 자세는 허리와 어깨 목을 통과하는 척추 건강을 한 번에 챙길 수 있는 가장 쉬운 자세다.

2023-05-10

형평운동 100주년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로 형평운동 100주년이 되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창립한 형평사는 12년 동안 ‘백정’에 대한 차별철폐와 자강을 위한 운동에 힘썼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주에서는 기념 학술대회 및 전시회가 개최되었지만, 형평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매우 낮은 편이다.‘3·1 운동’과 같은 민족해방 운동이나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민주화 운동과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민족독립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며 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면 형평운동이 내건 신분제 폐지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고 인식하기 쉽다.법적인 신분제 폐지가 일상에서의 차별까지 없애지 못하는 상황은 100년 전에도 유사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인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백정에 대한 실질적 차별은 지속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백정을 제도권으로 편입시켰지만, 백정들은 경제적 수탈로 받아들였다. 민간에서의 신분 차별이 이어져 왔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1923년 형평사 창립은 사회적 소수자인 백정이 자신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었다.형평운동을 인권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면,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제 양극화에 따른 새로운 신분제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2015년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된 ‘흙수저/금수저’와 같은 신조어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1920년대 반형평운동에 중심에 농민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양반에게 차별받아 온 농민이 백정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차별을 되돌려주는 상황은 일견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쉬를 겹쳐 읽으면 논리 구조가 일치한다.차별받아 온 존재들이 자신의 인권을 지키고자 일어날 때, 기존의 문화구조에 익숙한 주체들의 혐오와 차별의 움직임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100년을 초월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로 시작하는 조선형평사 주지문(主旨文)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비록 백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현실과 백래쉬 현상이 웅변하듯 한국 자본주의 100년 역사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그럼에도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면 진주를 전국에 알린 ‘어른 김장하’ 선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형평기념사업회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은 형평운동 70주년을 기념하며 ‘진정한 개혁과 민주화를 앞당겨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형평정신 곧 평등사상을 바탕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어른 김장하’에 대한 전국적 관심은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평등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5-10

곰소에서

배문경 수필가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강렬한 소금밭의 묘사로 시작되는 박범신 소설가의 ‘소금’을 떠올린다. 나는 3일간의 일정을 잡아 휴가 중이다. 태안반도의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는 꿈에서조차 나를 유혹한 곳이었다.나는 지금 곰소다. 곰소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전라북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어항(漁港)이었다.이미 소문난 슬지제빵소로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후배에게 찐빵과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하고 도로에서 벗어나 염전을 살핀다. 소금부족으로 염전에서 죽은 염부인 그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주인공. 소설처럼 나도 검은 타일이 박혀있는 염전의 바닥과 소금을 나르는 레일을 훑어본다. 그리고 소금창고를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염전의 휴일이다.한국의 중요 문화유산인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전통기술과 소금장인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바람과 햇볕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전통어업활동이다. 곰소의 소금은 국내 생산되는 소금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소금이 서로 붙지 않고 맛이 최고라며 시어머님께서는 가는 김에 소금을 꼭 사오라고 당부하셨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시인의 ‘소금’이란 시다.바닷물이 짜듯이 세상사 인생살이에 상처와 아픔과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래서 삶에 참맛이 있다는 뜻은 아닐는지. 혼자 비에 젖은 염전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양수는 바닷물과 같은 염도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나트륨이 있고 출혈이나 전해질의 발란스가 깨지면 생리식염수를 공급한다. 우리의 시조는 바다에서 왔으리라는 정황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다. 바다가 썩지 않고 버티는 것도 소금 때문이리라. 성경에서 조차 세상에 소금이 되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유다 앞에 소금그릇이 넘어져있는 상황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며 신뢰를 깨뜨릴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소금은 부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소금을 대접할 때 은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그릇을 내놓았다고 한다. 벤베누토 첼리니(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금으로 만든 그릇작품(16c 소금통 살리에라)이 600억을 호가했다고 한다.친정어머니는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두면 간수가 빠지고 단맛도 난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소금 독은 그 아래 네모진 나무를 두 개 놓아 보이지 않는 수분증발을 도왔다. 결국 김치며 찌개에 맛난 간이 되었다. 그 뿐이랴 된장위에 벌레가 혹여 들어가 상할까봐 소금을 가득 흩뿌려두고 촘촘한 흰 천으로 독의 목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두었다.햇빛이 맑고 좋은 날 항아리들의 뚜껑이 걷히고 흰 천들이 걷어지면 위가 꾸들꾸들 말라있었다. 늘 장맛이 좋아 된장찌개는 숟가락 전쟁이었다. 윗집에서는 간혹 된장을 얻어가곤 했다. 메주가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될 때 소금은 새로운 탄생을 돕는 착한 역할을 했다.시어머니는 현관 앞에 둔 달항아리에 소금을 한 가득 담아 두었다. 액운은 모두 사라지고 좋은 복만 들어오란 뜻이리라. 사람의 몸도 정신도 세월에 늙어가지만 정신만큼은 혈액에 담긴 소금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인류의 역사보다 장대한 채석강의 단층을 보며 세월의 단면에 감동한다. 바위사이로 파도가 치자 어린 소라와 고동, 조개가 생명을 지켜나간다. 산 것들은 늘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금이 오늘도 신비한 뭇 생명을 키우고 있다.

2023-05-10

기해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여섯 번째는 기해(己亥)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화초나 묘목을 심은 작은 정원이나 논밭이며, 지지(地支)의 해수(亥水)는 큰 강이다. 그러니까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초원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황금돼지다.기해일주는 기토(己土)라는 작은 땅이 해수(亥水)라는 물을 만나 ‘물기 촉촉한 땅’을 이룬다. 사람이 반듯하고 깔끔하고 섬세하고 흐트러짐을 싫어한다. 작은 것, 세세한 것까지 챙기므로 주변사람에게 신뢰감과 믿음을 준다. 너무 실수하지 않고 규칙을 잘 따르는 성향으로 인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해서 단점이 되기도 한다.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다. 허나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의 기운도 품고 있어 삶의 불예측성이 높은 일주이기도 하다. 바다처럼 넓다가도 세숫대야처럼 좁기도 하다. 굉장한 처세술을 부리다가도 어느 날 만사 싫증을 느껴 뜬금없이 반전을 꾀하기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여기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주변 상황에 맞게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난 탓도 있다. 본인 스스로도 모순을 느껴 간혹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힘도 길러야 한다.또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보증을 서거나 사기당하기가 쉬워서 돈이 많이 모이다가도 한 번에 재물을 잃을 수 있다. 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좋으나 재물의 관리가 허술해 주의가 요망된다. 개인사업보다는 조직생활이 더 나으며 가족 간의 돈거래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부모 유산으로 인해 분쟁의 소지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물상으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같다. 사회와 떨어져 있어 소외된 생활로 외로움이 수반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 ‘펨페스트(폭풍)’가 있다. 밀라노 군주인 프로스페로는 마술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동생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나무 상자에 넣어져 바다에 버려진다. 기적적으로 외딴 섬에 당도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다만 섬에는 마녀가 죽으면서 나무에 가둔 많은 선량한 정령들이 있었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사용해 그들을 풀어준다. 우두머리 이름은 에어리얼이다. 그는 작은 요정 에어리얼을 하인처럼 부린다. 동생을 도와 자신을 추방한 나폴리 군주가 자신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뱃길에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켜 배를 난파시킨다. 이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서다.미란다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마법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딸에게 12년 전에 동생에게 추방당한 일을 이야기해준다. 요정 에어리얼은 나폴리 군주의 아들 페르디난드를 외진 곳으로 피신시키고, 미란다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처음으로 남자를 본 미란다는 잘생긴 청년 페르디난드와 사랑에 빠진다. 프로스페로는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을 통해 보복 대신에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와 관용을 통해 새 삶을 누린다는 내용이다.그는 섬을 떠나면서 마법에 사용한 지팡이를 섬에 버리고, 요정 에어리얼도 자유롭게 풀어준다. 여기서 마술이 권선징악으로 이용된다. 마술과 마법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해(亥)는 동물로 돼지다. 돼지꿈을 꾸면 로또에 당첨된다는 속설이 있다. 또는 저금통을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좋은 이미지로 사용한다. 우리는 고사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사용한다. 여러 가지 이설이 있지만 돼지 돈(豚)과 돈의 발음이 비슷해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돼지를 뜻하는 다른 한자어로는 저(猪)가 있다.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猪八戒)의 원래 이름은 오능(悟能)이다. 오능의 뜻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부처요, 이미 깨달음의 상태가 부처라는 소리다. 문제는 돈이나 이성 또는 재물을 보면 그만 술 취한 무리가 되어 헤까닥 중생으로 변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덟 가지 계율만 지키라는 뜻에서 이름이 팔계(八戒)로 불린다.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마지막 부분에 ‘어느 쪽이 돼지인지, 어느 쪽이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은 작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돼지처럼 지나친 욕심을 낸다면 경을 칠 일이 생기고 신랄하게 비판당할 일이 생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각인된 돼지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돼지’는 인간에게 효용성의 측면에서 유익한 동물이다.기해일주는 기본적으로 재물의 기운을 깔고 있어 꼼꼼하고 부지런하긴 하지만 스케일이 좁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마음속에 큰 산을 품고 있어 삶은 안정성이 있지만 나를 얽매는 규제를 깨버리고 싶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즉 특별한 재능을 숨기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기운으로 볼 수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충실하다. 남자는 현명한 아내를 만나 해로할 가능성이 높다. 노래를 잘하거나 목소리가 좋은 경우가 많다. 선견지명과 탁월한 감각, 유머 위트에도 뛰어나다. 다정다감한 면이 있고 순박하며 재주도 많아 팔방미인이다. 영감, 직감, 예감이 좋아 모든 감각이 살아있다고 하겠다.반면 부드러우며 여성적인 성향이 있어 말과 행동이 소극적이고 우울, 근심, 걱정, 애수가 있다. 귀가 얇아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의심과 이기심이 있어 이해타산적이고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이다. 역마성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여행이나 무역과 같이 해외에서의 생활이 유리하겠다.우리는 누군가가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다르게 느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다리다.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단점이나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면을 포용하고자 하는 힘이 자기애(自己愛)다. 이것이 ‘너’와 ‘나’를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2023-05-10

대구시는 미래차 전환사업에 속도 내야

대구는 자동차 부품산업이 강한 도시다. 산업에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그러나 전기차로 글로벌 시장이 재편되면서 지역 차 부품업체의 미래차로의 변신이 큰 숙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대구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선 미래 첨단 분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하는데, 그 중 차 부품업체의 미래차로의 전환은 핵심 사업이다.대구시는 작년 1월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을 대구미래차전환종합지원센터로 지정하고 산학연 18개 기관이 참여하는 대구미래차 전환지원협의체를 발족했다. 200개가 넘는 지역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전기차는 반도체에 이어 향후 10년 이상 세계 먹거리시장을 주도할 핵심사업이다. 작년까지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10% 정도에 그쳤으나 2035년에는 90%까지 올라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30년의 시장규모가 2조7천억달러(약 3천500조원)로 추정된다니 성장세가 가히 폭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30년까지 우리나라를 글로벌 미래전기차 3강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 차 부품업체도 이에 맞춰 발빠른 변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누가 얼마나 빠르게 미래차로 전환하느냐에 기업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지역경제 성장 역시 부품업체의 미래차로의 전환 여부에 크게 좌우될 운명이다. 대구시도 이런 점에 착안, 미래차 전환사업 참여기업을 모집하는 등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기업간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환을 촉진하는 미래차 전환 상생 패키지 사업이나 미래차 역량 스케일업 사업 등 다양한 형태로 미래차 전환을 돕고 있다. 많은 지역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기업 입장에선 미래차로의 전환은 쉽지않은 과제다. 과도기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설비와 기술력을 확보한다 해도 이익을 내기까지는 상당기간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대구시의 미래차 전환 지원사업은 원천기술 확보와 더불어 과도기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대구와 가까운 포항은 전기차에 소요되는 이차전지산업의 전진기지다. 대구와 경북이 지혜를 모으는 것도 미래차 전환의 시너지를 얻는 방법이 될 것이다.

2023-05-10

박근혜 사저정치, 내년 총선에서 變數가 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사저정치’를 재개할지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사면 직후인 지난해 3월 달성군으로 귀향한 후 외출을 하지 않던 그가 지난달 11일 대구 동화사를 공개적으로 방문한 것이 정치활동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은둔생활을 끝내고 옛 친박계의 세력 결집을 위해 내년 총선에 개입한다면 여야 선거 판세에 어떤 변수가 될지도 관심이 쏠린다.대구·경북(TK)지역만을 놓고 보면, 현재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본지가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에브리씨엔알에 의뢰)를 한 결과, 박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 재개에 대해 30.5%의 응답자가 지지의사를 밝혔다. 거부반응을 보인 응답자(47.9%)가 많긴 했지만, 30%대의 민심장악은 총선에서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여당으로선 박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내년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과 중도층에서 그의 정치적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활동을 막을 뾰족한 방안도 없어 여당 입장에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김기현 대표가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국민의힘 대처방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현재 TK정가에서는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유영하 변호사의 총선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경산·청도 지역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 전 부총리의 경우, 올 들어 과거 인맥들을 챙기는 것으로 전해져 출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가 이들의 정치행보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지난해 4월 지방선거 때 후원회장을 맡으며 지지의사를 표명했던 유영하 변호사가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3위에 그친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당시 TK지역에서는 그의 영향력에 대해 ‘찻잔속 태풍’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2023-05-10

팔거산성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팔거산성은 금호강 북쪽에 위치한 함지산 정상에 축조된 산성 유적이다. 산 모양이 함지같다고 해 ‘함지산성’, ‘반티산성’이라고도 부른다. 팔거산성은 7세기 초 신라의 지방 거점이자 군사요충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당시 신라 서쪽 지역에서 왕경인 경주시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늘날 낙동강을 통해 칠곡-대구-경산-영천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길목에서 가장 서쪽에 있던 팔거산성은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통제하는 중요 거점이었다. 남쪽으로 대구 분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금호강과 과거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가 교차하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주변 지역을 감시하기에 적합했다.학계에서는 입지 특성으로 미뤄 삼국시대 신라 왕경(王京) 서쪽의 가로축 방어 체계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외곽 방어하는 산성이었던 것이다.팔거산성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현문(縣門)식 구조와 둥근 돌출부 형태의 곡성(曲城) 등이 확인됐다. 신라 산성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다.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 방식 등이 확인돼 역사적 가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2021년 팔거산성의 집수지(集水池) 유적에서 7세기 초 신라시대의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 16점이 발견됐다. 산성 축조 시기와 산성의 운영 방식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팔거산성은 6세기 신라산성 목조집수지가 보존된 유일한 유적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대구 팔거산성’을 사적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사적 지정을 계기로 팔거산성을 원형 복원해 새로운 명소로 가꿔나가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0

대학개혁, 진심이라면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부가 3대 개혁을 내걸었다. 노동, 연금, 교육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 세간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다.마침, 교육부장관이 교육개혁을 위한 3대정책을 제시하고 연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세 가닥 가운데 ‘대학개혁’이 솔깃하지만, 대학교육의 ‘내용’을 바꾸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겼다기보다 대학교육지원을 위한 ‘돈’관리체계에 집중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해묵은 과제들이 많지만 대학입시제도를 한번 생각해보자.수능,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이름으로 시행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학력고사, 예비고사 등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제도까지 생각한다면 무려 반세기를 넘는 동안 연례행사처럼 치러온 시험제도가 아닌가. 교육계에서는 취지와 내용 등에 변화가 있어왔다 하겠지만, 수험생들과 사회일반에게는 그냥 같은 제도가 수십 년째 시행되고 있는 터이다.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대폭 줄고 고교학점제가 곧 시행될 것이며 대학교육의 기능과 실체도 여러 각도에서 도전을 받는 가운데,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관문격 제도로서 수능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바꿀 가닥이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이 바로 ‘입시제도’이며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수능’이다. 본질과 취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며,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수능 다음날이면 입학가능 점수가 예측되는 걸로 보아 수능의 기능은 점수로 학생의 실력을 가늠하여 줄을 세우는 격이었다. 대학 공부를 앞둔 학생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이전보다 다양해진 현실을 보더라도 수능점수로만 실력을 평가하는 일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수능의 역할을 실력평가가 아닌 학력인준이나 적성평가도 바꾸어 대학입학을 위한 최소기준을 확인하거나 수험생 개인의 적성을 가늠하는 도구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수능의 형식도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보인다. 대학생활을 기대하는 수험생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표현될 서술형, 논술형, 또는 단답형 주관식 시험을 시도할 때가 아닐까 싶다. 수능이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일 년에 딱 하루만으로 정하여 그 한 날의 시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도박형 시험제도도 수명을 다하였다. 몇 번도 응시가 가능하게 하여 학생들이 불필요한 긴장과 극도의 압박에서 벗어나도록 배려해야 한다.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학의 이름에 따라 서열을 정하던 사회적인 평가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대학명을 간판삼던 세태에서 실제 역량을 기대하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대학이 스스로 변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대학 재정을 정부에 기대던 체질이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던 정부의 태도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돈이 아니라 교육이 살아나도록 살펴야 하고 대학은 스스로 일어서는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10

우리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보통 역사를 ‘인간 활동의 기록’ 또는 ‘인간사’라고 많이 얘길하지만,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기술의 역할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게 작동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당시의 핵심 기술을 발명한 사람보다는 기술 그 자체를 떠올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발명가 없는 발명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기술을 발명하는 인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산업혁명을 통해 발생한 여러 산업적 또는 사회적 변화들이 새로운 기술의 활용과 확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적어도 산업혁명만큼은 이를 인간사 보다는 기술사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산업혁명을 기술과 그 활용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각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 가진 긍정적 기대 효과와는 별개로 그것이 실제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었던 내연 기관은 기대처럼 대량 생산을 통한 경제 성장 및 도시화를 촉진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소득 불평등이나 환경 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디지털화가 본격화된 3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ICT 기술은 디지털화나 자동화를 통해 정보 차원에서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시켰지만, 동시에 디지털 격차, 사회적 고립, 개인정보 및 보안 문제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했다.결국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들은 실제로 해당 기술을 접한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고 또 이로부터 야기되는 일련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내연 기관의 등장으로 전보다 노동의 수고는 줄었지만 팽배해진 인간의 이기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악화시키고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ICT 기술의 활성화는 인간이 서로 더 잘 소통하며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온라인 상에서의 익명성은 사회를 단절시키는 개인주의 문제를 일으켰다.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고 고도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우리는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경계가 없어지는 세상에서 이전보다 더 고도화된 ICT 중심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활용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두 기술의 수준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종합해서 생각해보았을 때 적어도 하나 분명한 것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산업과 사회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변화라는 것은 결국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또 이로 인해 발생되는 변화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변화들은 바로 우리 손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23-05-09

선물 같은 하루, 축제 같은 나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주 연휴 내내 휘몰아친 비바람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강풍으로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면서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쳤고, 축대가 무너져 집이 붕괴되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등 남부지역에 집중된 예기치 못한 풍수해로 시름이 깊어졌다. 입하의 문턱에 쏟아진 단비가 해갈에는 도움이 됐다지만, 순식간에 돌풍과 함께 들이닥친 폭우가 적잖은 상흔을 남긴 ‘눈물비’가 돼버린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듯 ‘밤새 안녕’이 무색하리만치 변덕스런 날씨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루를 무탈하고 온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이 조바심 태우며 보냈던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세계보건기구(WHO)가 3년 4개월만에 해제했다. 그에 맞춰 국내의 일상회복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국민들의 삶과 일상이 코로나 이전처럼 조금씩 꺼리낌없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의 집요한 발목잡기에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정말 얼마나 위태하고 소중한지 절실히 느낀 나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제약되고 억눌린 상황에서의 생활은 무엇 하나 아쉽고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랴만,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이 완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너나 없이 안도하며 반기는 모습들이다.그래서일까?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나들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많아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4년만에 열리는 축제나 체육대회 따위의 야외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렸거나 열리고 있어서 실로 전국 곳곳에는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고 생동감이 감돌고 있다. 경북만 하더라도 문경찻사발축제가 흥행 ‘대박’으로 마무리됐고, ‘신바람난 선비의 화려한 외출’을 테마로 한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나 안동민속축제를 봄축제로 확대 개편한 차전장군 노국공주축제 등이 성황리에 열렸는가 하면, 이 달 말경엔 전국 3대 불꽃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환상적인 불빛 판타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별 특색이나 역사적인 배경에 걸맞는 테마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하듯이 신명나는 축제나 행사로 이어지니,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러고 보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와 완상(玩賞)이던가. 당연할 것 같은 일상의 움직임이나 현상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대처가 어렵고 걸림돌이 생긴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하루를 평온하게 보낸다는 것이 무심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필자는 불의의 춘사(椿事)로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나니 새삼 선물 같은 하루가 그리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무덤덤하고 예사스러운 일상 같지만, 일단 무엇인가에 얽매이거나 불편이 뒤따르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이 그리 간절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황사 같은 코로나의 시름도 남풍 결에 사라져가는 봄날, 선물 같은 하루하루가 자신의 평안함 속에서 삶의 맛과 멋을 더하는 축제 같은 나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상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즐겨보자!

2023-05-09

모럴 헤저드

우정구 논설위원 모럴 헤저드는 19세기말 영국의 보험회사들이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르키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자동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안전운전을 할 텐데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비용은 보험회사가 물어준다는 생각에 운전을 소홀히 한다는 뜻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지금은 법적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니 집단이기주의적 행위를 가르키는 행동 등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우리 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이나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도 모럴 헤저드의 범주에 든다.미국 등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의 힘’으로 표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르키는 용어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사회 지도층일수록 지위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예시로 프랑스 칼레시 지도층의 행동이 자주 인용된다. 영국과의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6명의 대표시민 목숨을 요구받은 칼레시는 당시 도시의 최고 부호와 고위층이 스스로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서면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건진다.사회지도층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책임은 이처럼 매우 엄중하고 엄숙하다. 특히 가진 자의 도덕심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진다.한국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덕목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궁핍 마케팅으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화폐 보유 논란을 보면서 한국 정치의 모럴 수준을 걱정해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09

당무감사 앞둔 與현역, ‘물갈이론’에 떤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야가 최근 내년 총선 공천준비작업에 들어감으로써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 국민의힘은 총선후보자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곧 당무감사에 착수하고, 민주당은 그저께(8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공천룰’을 확정했다.내년 총선에 패배할 경우, 정부 여당은 조기 레임덕으로 인해 식물상태가 되고, 야당은 수권정당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여야 모두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현재로선 다양한 변수가 잠복해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진영논리에 갇힌 양대정당의 극한 대립으로 무당층이 급증하는가 하면, ‘제3지대론’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현역의원 물갈이 공천’이 최대 관심사다. 경북매일신문이 지난주 발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중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끈 부분도 현역의원들에 대한 평가였다.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각각 52.5%와 55.1%의 지지를 받으며 여전히 민심을 얻고 있지만, TK 현역의원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대로 뚝 떨어졌다.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51.2%)을 넘어섰다. 총선 때마다 ‘공천 개혁’이란 타이틀로 가장 먼저 TK 현역의원을 칼질했던 보수정당의 관행이 내년 총선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TK 지역구 의원 25명 중 9명만 공천을 받아, 현역 교체율이 64%에 달했다.실제 대통령실이나 법조인 출신 인사들의 TK 낙하산설이 그럴듯하게 흘러나오고 있어 현역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공천만 받으면 손쉽게 당선되기 때문에, 대통령 주변 유력인사들이 출마욕심을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국민의힘의 역대총선 공천과정을 보면, 내년 총선에서도 당무감사위원회가 현역교체 근거자료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TK지역에서 당무감사 형식을 빌어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했었다. 감사 결과를 등급(A∼E)으로 매겨 평균 등급(D,E) 이하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국민의힘은 지난달 신의진 위원장을 포함한 당무감사위원 7명을 선임했다. 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했다. 당무감사위원회는 여름휴가와 정기국회 일정 등을 고려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정치부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무감사를 앞두고 공천탈락을 염두에 둔 일부 의원들이 벌써 무소속 출마설을 흘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예를들어 ‘TK지역도 이제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지 말고, 일을 잘하면 공천을 받지 않더라도 당선시키는 케이스가 많아져야 한다’는 등의 논리다.공감이 가는 말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보수의 본산’이라는 이름에 비해 중견정치인들이 많지 않다. 공천 때마다 현역을 대거 날린 결과다. 집권당이 우선 역량 있는 인물을 공천해야겠지만, 유권자들도 ‘공천=당선’이라는 TK 선거풍토를 바꾸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2023-05-09

경북도 신도시, 인구 10만 도시는 희망사항?

경북 안동시와 예천군 일원에 들어선 경북도청을 중심으로 조성키로 한 경북도청 신도시 사업이 영 지지부진하다. 이 바람에 경북도의 장밋빛 계획을 믿고 땅과 상가 등을 매입한 수요자들이 은행이자 등 늘어나는 금융비용 부담에 등골이 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경북도가 당초 계획한 10만명 자족도시가 실현될지 불투명해 경북도를 믿고 부동산을 매입한 상당수 지주들의 파산도 우려된다고 한다.경북도는 2016년 안동과 예천 일원으로 도청을 이전하면서 경북도청을 중심으로 신도시 건설을 계획했다. 2027년까지 3단계에 걸쳐 1만966㎢에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인구 10만명의 자족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1단계로 2015년까지 인구 2만5천명이 거주하는 행정기능 중심도시를 먼저 조성하고, 2단계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인구 7만5천명을 수용하는 주거 기능과 함께 문화, 체육, 호텔, 공원, 학교 등 주민편의시설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그러나 신도시 조성계획은 당초 예상을 빗나가 올해로 도청이전 8년째이나 겨우 인구 2만2천여 명이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도청 신도시 개발이 부진하자 많은 지주와 상가주인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경북도의 개발 계획을 믿고 투자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빈상가와 은행 이자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으로 국내 은행의 금리까지 크게 올라 이들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신도시 조성이 단번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충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나 세종신도시 등에서 보듯이 신도시는 정주 여건의 부족으로 도시형성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경북도청 신도시는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당초 목표에 비해 크게 미달한다. 수도권 지향과 국내 인구감소 추이 등 국내적 여건도 신도시 조성에 유리하지 않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특히 최첨단 산업단지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외지 인구유입 효과를 찾는데 묘안을 짜내야 한다. 지금 상태로 둔다면 10만 자급도시 조성은 그저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2023-05-09

국제적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부상하는 포항

철강도시 이미지가 강한 포항이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빠르게 변신하는 모습이 놀랍다. 다른 도시에 비해 지난 2014년부터 일찌감치 관련산업 지원에 행정력을 집중해 온 결과다.포항시는 그저께(8일) “올 상반기에만 이차전지기업 투자유치 금액이 5조원에 이를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 4일에는 포항시청에서 중국 절강화유코발트사와 1조7천억원 대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절강화유코발트사는 중국 최대 코발트 생산기업이자 세계 3위의 전구체 생산기업이다. 포항에는 세계 전구체 생산 1위 기업인 중국 CNGR의 투자도 한창 이뤄지고 있다.포항에 뿌리를 내린 다국적 배터리 업체들도 현재 국내외적으로 공격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포스코케미칼)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5년까지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 4만6천t 규모의 하이니켈 NCMA 양극재(리튬·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을 원료로 제조)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올 하반기에 착공해 2025년 공장을 준공한다. 영일만산단에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조성해둔 에코프로도 국내 양극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지난달 21일 헝가리 현지에 생산 공장을 구축해 2차전지 양극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포항시는 “이미 확정된 이차전지 기업의 투자유치 금액이 12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이들 기업들이 입주할 부지(200만㎡)를 마련하는 등 인프라 조성에 총력을 쏟겠다”고 밝혔다.포항시는 정부에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원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기반시설과 인허가 신속처리, 각종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을 받아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정부의 특화단지 지정 기준대로라면, 포항은 단연 최적지다. 이차전지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포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정부는 포항이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될 경우, 대구·경북 뿐만 아니라 울산, 부산을 아우르는 동남권 전기자동차 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2023-05-09

이상한 평론가 김갑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박은빈씨. /연합뉴스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배우 박은빈의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저격했다. “울고불고 눈물 콧물 흘렸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자신만의 생각과 작품을 하면서 겪은 고뇌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스피치가 딸리니 ‘감사합니다’만 남발한다고 혹평했다. “18살도 아니고 30살이나 먹었으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송혜교에게 배우라”는 훈수까지 빼먹지 않았다.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렸고 다 구리다. 첫째, ‘무절제한 감정의 격발’은 오히려 그 자신이 범하고 있다. “울고불고” 운운은 저열한 인상비평이다. 소감을 다 들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들었다면 박은빈이 ‘자기 생각과 작품에서의 고뇌’를 충실히 밝혔음을 모를 리 없다. 그냥 “울고불고” 하는 게 눈꼴 시렸던 것 같은데, 과잉된 자의식 격발이야말로 꼴 보기 싫다.“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우리 사회가) 각자의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했습니다. 제가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자폐인에 대한 생각들이 편견에서 기인한 건 아닌지 매 순간마다 검증해야 했습니다”라던 박은빈의 수상 소감과 김갑수의 발언을 두고 보면 누구 스피치가 더 딸리는지는 자명하다. 정신적 성숙도 딸린다. 다양성에의 존중,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말한 박은빈의 품격에 비하자면 평론가의 교조적 태도는 치기나 다름없다.둘째, “아끼는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오만한 위계의식이 틀려먹었다. 수직적 꼰대이즘은 무엇이든 구별 짓고 등급을 매겨 규격화, 영토화한다. “송혜교와 탕웨이 정도가 교과서”라니, 감정마저도 표준화하려는 그가 설마 들뢰즈도 안 읽은 걸까? 셋째, “세계가 지켜본다는 걸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는 해명은 전형적인 사대주의 열등감이자 스노비즘이다. 결국 “남 보기 부끄럽다”는 것 아닌가? 그가 추앙하는 아카데미였다면 박은빈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모든 이들이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 수상 소감은 오직 그녀의 시간이고,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근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내로남불’이다. 그는 2015년 한 방송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육성이 나오자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그 눈물은 맞고 이 눈물은 틀리다면 과한 자기확신이다. 다섯째, 사회 보편인식과 괴리되었다. 박은빈의 눈물은 비판하면서 학교 폭력으로 타인의 생을 망가뜨린 황영웅의 비열한 미소는 옹호했다. “애들끼리 때리면서 크는 거지”라는 건데, 그는 2015년, 작품 활동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들의 소설책 출간을 팔 걷고 도왔다. 아들과 함께 잡지사 인터뷰에 나가기도 했다. 자기 아들이 학폭의 피해자였더라도 가해자를 옹호했을까? 박은빈은 아역 배우 시절을 거쳐 부모 찬스 없이 혼자 힘으로 성장했다.여섯째, 자기경험을 절대화하고 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영광을 경험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북받쳐 저절로 토해지는 환희를 알지 못한다. 일곱째, 시대 모드와 동떨어졌다. 이제는 감정을 절제하고 점잔 빼야 했던 유교적 옛날이 아니다. 그의 강퍅함에서는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도사가 보인다. 여덟째, 대중을 폄하하고 있다. 지식인 특유의 우월의식인데, 김수영 시인은 대중의 위대함을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러하다. 아홉째, 귀걸이 코걸이다. 만약 박은빈이 제임스 카메론처럼 “I’m king of the world!”라고 외쳤다면? 오만방자하다고, 겸손을 알라고, 세계가 보고 있다고, 여자는 ‘킹’이 아니라 ‘퀸’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열째, ‘관심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이정진에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있어 보이냐?”고.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처음 들어가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이성복,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시가 떠오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를 옮기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꼰대 지식인의 너절하고 애처로운 관심 끌기에도 아랑곳없이 박은빈의 광채는 더욱 찬란하기만 하다.

2023-05-09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며

봄에서 여름 사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폭식을 끝낸 것처럼 공허함이 자리한다. 소화시키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인데, 가슴팍을 두드려보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몸을 움직여 보아도 목까지 차오른 더부룩함은 사라지지 않는다.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집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도 해치워야 할 집안일이 차례대로 떠올라 괴롭다. 이번 주말엔 겨울 내내 가장 많이 붙어 있었던 전기장판을 정리해야 하고, 겨울 이불도 빨래해서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야 한다. 7월 말엔 4년 간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그간 창고 속에 쌓아 둔 쓸모를 잃은 짐들은 버리거나 나누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와중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달력이 넘어가고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낮과 밤이 바뀌어 있다. 이 길이 출근하는 길인지 퇴근하는 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매일 꿈결 같은 몽롱한 삶을 살고 있다.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대체로 6시.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잔다. 다시금 눈을 뜨면 오후 9시. 식사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빵 한 조각이나 요거트를 대충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엇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재미와 자극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함과 피로를 소화시키고 있는데 재채기가 나와 쉼을 방해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가 싶어 인터넷에 날씨 검색을 했더니, 5월 6일자로 입하에 들어섰다고 한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후다.봄과 여름 사이, 환절기는 꼭 미열을 앓고 있는 것만 같이 달뜨고 불편한 감정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여름의 냄새가 훅 퍼질 때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몇 가지가 있다.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수영장에 놀러 가곤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곳은 얕은 물과 깊은 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키가 작아 깊은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늘 얕은 물속에서 깊은 물에서 놀고 있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튜브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깊은 물가를 서성였는데, 하필 어떤 대학생 무리의 손에 잡혀 예고도 없이 깊은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 네 번 머리가 수면 바깥과 안을 드나들었을 때 쯤 그들은 단순히 장난이었다며 해명했지만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무리 중에 한 명이 겁에 질린 나를 알아채고선 물 밖으로 꺼냈고, 내팽겨치듯 홀로 물 밖에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맵고 뜨거운 목구멍 속 일렁이는 분노와 나약함으로 산산조각 부서지던 그때의 여름. 처음으로 크게 겁을 먹은 때였고, 이후로 겁을 먹을 때면 누군가 밀어 버리기 전에 스스로 깊은 물로 뛰어들어 버리곤 했다. 물론 본질적으로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여름이 깊게 남긴 쓸쓸함은 가라앉아 있다가도 계절이 찾아오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에게 여름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몸처럼 억눌린 통증이 시작되는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실은 몇몇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여름은 정말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무더위는 걸어 다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에 맺히는 땀 때문에 애써 드라이한 앞머리는 볼품없어 진다. 자외선에 자극받아 올라오는 빨간 두드러기들은 얼마나 가렵고 신경 쓰이는지. 장마철 엄청난 비를 퍼부었다가도 다음날 뜨거운 태양빛을 쏟아 붓는, 시시때때로 날씨를 바꾸는 심술궂은 변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무력하게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여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름날 쓸쓸했던 여럿 기억들은,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까지 그 쨍하고 눈부신 빛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눈부심을 마주해야 한다는 듯이.상처는 아물 때 가렵다. 쓸쓸함을 긁다보면 애틋함으로 번진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툴고 쓸쓸한 기억들이 여름이 지나 가는 동안 다시금 내면 깊이 가라 앉아 나를 이룬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변화할 때마다 쓸쓸함을 간직하는 내면의 깊이가 미묘히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봄과 여름 사이에서 그저 유유히 흔들리는 수밖에.

2023-05-09

동물 없는 동물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어린이날을 맞아 동물원 나들이를 다녀온 가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 기린, 하마, 사자, 얼룩말 등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의 단골 코스다. 어린 시절의 필자 또한 동물원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철이 들어서,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이상행동의 원인은 너무 좁거나 관람객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간 때문에 발생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다. 만약 당신이 기후도 식생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납치되어 우리에 갇힌다면? 더구나 낯선 이들이 갇혀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웃고 떠든다면? 우리는 이를 ‘폭력’이라고 부를 것이다.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에서 포획한 ‘이국적인’ 동물들을 본국으로 보내 전시한 것이 동물원의 시초다. 희귀종의 보존이나 생태 학습 등의 기능은 한참 뒤에나 덧붙여진 것이고, 그나마도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동물들을 본연의 서식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이탈시켜 관람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동물원의 본질이다. 초기의 동물원에서는 ‘인간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이는 원시 부족민을 동물들과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처럼 동물원이라는 제도는 시초부터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지난 3월, 서울 광진구의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도심지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어야 할 얼룩말이 대도시 한복판을 활보하는 이색적인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비했다. 문제는 동물원과 인간의 도시 모두가 세로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닭발집과 중화요리점 앞을 지나가는 세로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세로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러한 동물원의 폭력적 속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주동물원에는 코끼리 같이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외래동물이 거의 없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동물은 사육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다. 외래동물이 차지하던 넓은 공간에서는 늑대, 수달, 오소리 같은 고유종들이 사육된다. 고유종의 종 보존과 번식, 생태 연구도 이루어진다. 다쳐서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본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전시는 청주동물원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동물원은 관람객들에게 동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물원일 것이다.에버랜드 동물원의 아기판다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이 화제다. 필자 또한 온라인으로 푸바오의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여러 번 지었다. 하지만 푸바오를 직접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1년 뒤면 중국으로 돌아갈 푸바오가 또 다른 동물원이 아닌 야생의 대나무숲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푸바오가 그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2023-05-08

다문화 정책, 이대로 좋은가

김규인 수필가 우리가 꺼리는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일터를 지키는 이주민들. 그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멈추어 선다. 농업도 뿌리산업도 줄기 산업도 모두가 외국인들의 손을 빌린다. 외국 이주민들이 일시에 다 떠난다면 농사를 짓는 일도 중소기업도 문을 닫아야 한다. 다문화 이주민들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산업의 동력을 잃는다.다문화 이주민 200만 명의 시대다. 학생이 모자라는 학교도, 산업 인력이 모자라는 산업체도,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도, 신부가 모자라는 개인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그들이 자리한다. 우리의 선배와 아버지들이 독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듯이 그들도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찾는다.가정의 미래를 위하여 홀로 떨어져 악착같이 돈을 벌어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남긴 채 가족들에게 보내는 가장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움을 억누른 채 가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도한다.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괜히 미안하고 기분마저 우울해진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문제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겪는 정착단계에서 어려움이 가장 크다.범죄에 연루되거나 소통 부재에 따른 이해 부족으로 괜한 오해를 받거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화재로 금쪽같은 자녀를 잃어버린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 사회나 사소한 사건이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과 안내가 부족하여 일어난 측면도 있다.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19개 정부 중앙행정기관, 17개 지방자치단체, 6개 이민 관련 위원회에서 외국인과 다문화와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교육 지원과 같은 초보적인 단계의 지원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다문화사업 중 중복되거나 유사한 예산은 521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업을 총괄할 중앙부처가 필요함에도 각 부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예산 집행도 교육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의 답답함은 크게 줄지 않는다.이민과 다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부처를 설치하여 외국의 우수한 젊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을 추진함에는 대만 같은 외국의 기관처럼 출입국 정책 수립에서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일이 원스톱 체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이주민들에게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다.고용허가제 시행 19년에 불법체류자 40만 명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026년 기준 이주민 유입 경제 효과는 100조를 넘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이민자가 없으면 경제 활력의 동력과 성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이민자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설립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2023-05-08

국회의원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를 원한다.

심한식 경북부 제22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선거구 획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인구수 변동으로 내년 총선에서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가 30곳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경북에서도 군위가 대구시로 편입되며 선거구의 조정이 불가피하다.이 때문에 “어디가 어디와 합쳐져 2인 선거구가 된다”는 등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오르고 있다.특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했지만, KBS와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를 개최하고 나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이를 통해 선거구제 개편과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장단점을 살피고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책임성, 비례성을 강화한다 해도 국회의원을 위한 선거구가 도입되어서는 곤란하다.자치단체마다 정당과 관련된 현수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타 정당을 비방하고자 시정잡배나 사용하는 단어들이 고스란히 옮겨진 현수막을 비롯해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날이 새면 새롭게 게시되는 등 공익을 가장하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현수막들이 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지역민들은 현수막 정치가 아닌 소통과 가까운 거리를 원한다.끼리끼리 뭉친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을 원한다.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다급하게, 상냥함을 가장한 정치인이 아닌 평소에도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앙당에 예속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공천권이 지역민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일부 정치인들은 정당에서 차지한 위치를 자랑하며 지역민을 현혹한다. 국민의힘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경북권에서 당직으로 권력을 자랑하기도 한다.하지만, 지역과 선거구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과 배경을 위한 당직은 부메랑이 될 것이다.앞으로 어떻게든 결론이 날 선거구 획정이 국회의원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로 결정되기를 바란다. 또 국회의원 배지보다는 지역민의 아픔과 발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 선출되는 총선도 기대해 본다.shs1127@kbmaeil.com

2023-05-08

동맹, 도청 그리고 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동맹국을 도청한 나라의 ‘국빈 자격’ 방문외교라는 ‘이 웃픈 현상’은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동맹·도청·외교’의 공통점은 모두가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동맹’과 ‘외교’는 합법적이고 ‘도청’은 불법적이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외교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실효적 대응, 중국 및 러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한 한미공조, 반도체법과 인플레감축법(IRA)의 해결, 도청의 재발방지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 중대현안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국익이 충돌하고 힘의 우열이 존재하는 외교협상에서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오직 동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이다.물론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핵협의그룹(NCG)’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인 것은 평가할만하다.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반도체법과 IRA는 해결하지 못했고, 미국에 밀착됨으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전략적 문제점 및 협상결과에서 비롯되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그 대책을 면밀히 강구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도청을 ‘외교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NBC 앵커의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철통같은 신뢰를 흔들지 못한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도청에 항의하는 대신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도청으로 민감한 국가기밀이 노출되었고 한·러 관계도 악화됐다. 그럼에도 주권국가로서 재발방지는 요구하지 않고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했다.국익은 동맹국이 선의로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으로 내가 지키는 것이다.한편 신설되는 NCG의 실효성 확보 역시 중요한 외교과제다. NCG 설립 자체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NCG 출범으로 핵전력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의 차관보급 ‘확장억제협의체’보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핵사용 결정권은 전적으로 미국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발언권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향후 NCG의 구체적 운영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 제고에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지막으로 ‘동맹의 강화 및 확장에 따른 양면성’ 인식이 절실하다. 한미동맹은 강화되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장됐다.미국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우리외교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중국·러시아와의 이해관계 충돌은 한국외교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고난도 외교환경’이 ‘고난도 외교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와 보혁을 초월한 국가적 차원의 외교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3-05-08

후쿠시마 오염수, ‘현미경 검증’ 반드시 필요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처리수의 안전성과 관련, 한일 양 정상이 지난 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는 별도로 한국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에서 우려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번 달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외교부·해양수산부·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국내 관련 기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 시찰단을 오는 23일쯤 후쿠시마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IAEA는 이미 지난 2021년 7월부터 한국을 포함한 11개국 전문가로 모니터링TF를 구성해 오염 처리수와 물고기·해조류·해저 퇴적물 등 시료를 분석해 왔으며, 최종 보고서는 다음 달 정리된다. 방사능 오염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니만큼, 오염수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작업은 한 점 의혹없이 진행돼야 한다.지난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2023년부터 약 30년 동안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우리 수산업계는 불안감에 떨었다. 당시 경북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의 경우 소비자 발길이 뚝 끊어져 타격을 입었다. 막연한 공포분위기로 인해 소금사재기 특수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일본이 조만간 오염수를 방류할 경우, 과학적인 검증결과에 관계없이 수산업계와 어시장 상인들은 큰 피해를 당할 것이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리스크는 ‘객관적인 팩트’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양국이 IAEA와는 별도 트랙으로 공동검증 작업을 다시 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현미경 검증’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경북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국민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해 선동이나 괴담을 퍼뜨리는 행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

2023-05-08

‘안동 구시장’의 부활

홍석봉 대구지사장 ‘안동찜닭’은 안동 구시장의 대표 상품이다. 안동찜닭 골목은 2011년 경북 유일의 테마 골목으로 지정됐다. 안동을 찾는 관광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찜닭 골목을 찾는다. 안동찜닭은 한 번 맛보면 풍미에 매료된다. 당면과 어우러져 칼칼하면서도 단맛이 일품이다. 어느덧 안동찜닭을 빼고는 안동을 말할 수 없는 명물이 됐다.구시장엔 안동찜닭 골목만 있는 게 아니다. 인근의 갈비골목, 떡볶이골목 등 음식특화거리가 형성돼 있어 다양한 먹거리 체험을 할 수 있다. 거기에 별점을 하나 더했다. 안동 구시장 연합(안동구시장, 남서상가, 중앙문화의거리, 음식의거리)이 최근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K-관광 마켓’10선에 선정된 것이다.‘K-관광 마켓’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고 대한민국 전통시장의 매력을 키워 대한민국 대표 관광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안동은 먹거리 뿐만아니라 볼거리, 즐길거리도 푸짐하다.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5월), 썸머페스티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9월), 눈빛축제 등 사계절 축제가 펼쳐진다. 토요 풍물시장, 하회별신굿탈놀이 야간공연 등 다양한 체험과 문화공연 등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인근의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월영교 등 안동 대표 관광 명소를 오가는 식도락 여행에도 제격이다.이번 ‘K-관광 마켓’선정에 따라 안동시는 특화콘텐츠 발굴, 지역 관광지를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 등 국·내외 관광객 유치 마케팅에 주력할 예정이다. 원도심 쇠퇴로 찬바람이 불던 안동 구시장에 사람이 모일 전망이다. 안동 구시장의 맛과 멋을 널리 알려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시장의 재탄생이 기대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08

지방 최초 설립될 대구시 농수축산유통공사

대구시가 농수산물과 축산물, 한약재 등 3개 도매시장을 총괄 관리할 가칭 대구농수축산물 유통관리공사(이하 관리공사) 설립을 추진한다. 대구시는 이와 관련, 지난 2월 행정안전부와 1차 협의를 마쳤으며 관리공사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을 9월까지 지방공기업평가원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구 관리공사가 맡게 될 도매시장은 대구시 북구 매천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과 중구 남성로 한약재도매시장, 북구 검단동 축산물도매시장 등이다. 이 중 매천동 농산물도매시장은 전국 33개 공영시장 중 세 번째로 거래규모가 큰 도매시장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1조1천억원 상당의 물량이 거래됐다. 특히 매천동 도매시장은 시설노후 등으로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키로 지난 3월 공식 발표된 바 있다. 2031년까지 하빈면에 4천억원을 투자해 경매와 가공, 선별 등 첨단도매 유통시설을 갖춘 도매시장으로 변모시킬 예정이다.대구시는 유통관리공사 설립의 배경으로 규모의 대형화로 전문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고, 상가와 주차장 관리 등이 따로 돼 있어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소비자의 소비 성향의 변화와 정보기술 발달에 따른 유통환경 변화에 신속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가락동도매시장과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등을 총괄 관리하는 유통공사를 둔 것에 견줘볼 때 전문화된 관리공사를 두는 것이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그동안 대구시가 지도와 단속 위주로 관리해 왔던 것과 비교해 볼 때 효율성 제고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특히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하빈면 이전에 맞춰 관리공사가 설립된다면 전문적이고 체계적 관리로 영남권의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더욱 시너지를 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관리공사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농수축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가격 안정 유지로 시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관리공사 설립이 우리지역의 주요 도매기능을 맡고 있는 각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유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5-08

초여름의 책 읽기, 서늘한 납량의 맛

에이브럼 ‘브램’ 스토커(Abraham ‘Bram’ Stoker·1847~1912).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짤막했던 봄은 어디론가 길가에 수북히 떨어진 꽃들과 함께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잠깐씩 느껴지던 냉기조차 사라져 후덥지근한 땀이 느껴질 때쯤이 되었다. 계절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인간됨을 확인하는 의례인 것만 같아 가끔은 노력을 기울여 계절의 변화를 느끼려 애쓴다. 계절이 바뀌면 기후도 바뀌고 그속에서 숨쉬는 인간도 바뀌는 것이다.지금까지 인간이 발전시켜온 기술들은 계절을 거슬러 여전하고 항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당연히 에어컨디셔너나 냉장고가 없는 여름을 생각하기 어렵고, 또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이 실물 세계가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의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계절의 변화에는 점점 더 둔감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계절의 감각은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의 기술적 변화를 거스른다.낡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고, 겨울은 겨울이다. 여름이라면 티셔츠 안 쪽에 남는 후텁지근한 땀내가 좋고, 겨울이라면 꼭 닫은 문을 열었을 때 어는 듯한 추위와 함께 밀려 들어오는 겨울의 냄새가 좋다. 여름밤에는 차오르는 땀을 씻어주는 밤의 바람이 좋고, 겨울밤이라면 두터운 이불이 몸을 감싸 들어오는 느낌이 좋은 것이다. 더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절에 담긴 의미를 만들어내고 기억 속에 각인된다.그렇게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는 피서나 납량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하곤 한다.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가는 것도, 시원한 것이나 보양을 위한 것을 먹는 것도 그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낡은 신문이나 잡지의 납량 특집 역시 더위를 피하기 위한 노력에 해당한다.물론, 초여름 더위를 피해 무언가를 읽거나 보면서 더위를 피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공포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오싹함이란 대상에 대한 무서움으로 인해 긴장하는 것일 뿐, 실제로 추위를 느끼거나 더위를 가시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늘하고 차가운 생각이 더위로 달궈진 신체를 시원하게 만든다는 납량의 상상력은 순진한 착각이지만 낭만적이다. 한낮의 열기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면, 귀신이나 유령, 그밖의 불가사의한 존재에 의해 위협받는 공포가 잠시 멈춘 머릿속 관심을 딴 데로 돌려주기도 하지만 말이다.그런 까닭에, 살짝 더위가 찾아온 초여름에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공포소설을 골라서 읽곤 한다.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도 좋고, 스티븐 킹의 소설도 좋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위험이 일으키는 서스펜스는 독자의 마음을 죄어, 순간이나마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초여름에는 흡혈귀가 등장하는 브램 스토커의‘드라큘라’(1897)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이미 흡혈귀의 대명사처럼 자리매김한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조너선 하커라는 변호사가 드라큘라의 의뢰를 받아 그의 성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그의 성에 오자마자 자신이 그 성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성에 가둬둔 드라큘라 백작은 400년 전에 죽은 아내가 환생한 존재인 조너선의 약혼녀 미나를 찾아 런던으로 오게 되고 미나의 친구인 루시의 목을 물어 흡혈귀로 만든다. 이 소설은 조너선의 일기와 미나의 편지 등의 형식을 띠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고 공포의 순간까지 들어가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번 드라큘라의 존재가 각인되고 피를 향한 그의 욕망에 걸린 인간들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순간, 초여름의 밤은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여름밤은 지나갈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5-08

청도읍성, 공간을 넘나드는 어울림

청도군 화양읍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색하기 좋은 읍성이 하나 있다. 조선시대에 개축된 이 읍성은 나지막한 성곽을 기준으로 성안으로는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마을 주민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군데군데 옛 공간들이 함께 현존해 있다. 성밖으로는 태극 문양의 연못과 정자, 형옥·향교나 석빙고 등과 같은 옛 역사적 장소들이 포진해 있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복원된 청도읍성은 역사적 시공간과 현재의 생활 공간이 서로 잘 어우러져 독특한 마을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성이라 하면 들어가는 관문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높은 성벽으로 인해 공간과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며, 전시를 대비해서 행정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집약적인 전통 도시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성은 산성이든 읍성이든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대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성종은 삼포왜란(1510년) 이후에 왜인의 침투에 격강심을 가졌고,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13개의 읍에 축성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제 축조된 것은 80년이 지난 임진왜란 직전이 대부분이었다. 호남과 영남지역은 왜와의 전쟁을 대비해야 했으며 그 중 청도읍성도 이때 기존의 성곽을 바탕으로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청도읍성은 아마도 고려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의 성곽은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든 토담과 석담의 중간 형태였는데, 선조 23~25년(1590~1592년) 군수 김은휘가 이 성곽을 석축형으로 축조한다. 청도읍성은 완만한 구릉(대략 100~120m) 위에 세워졌으며, 남북보다 동서 간의 길이가 긴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남쪽이 주산이며, 정문은 서문이다. 성곽의 둘레가 약 1.6km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타 읍성에 비해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반면 성곽의 높이는 타 읍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 약 1.65m로 아담하다. 높지 않은 성곽은 전란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백성을 수용하는 것에만 신경 써서 노동력을 낭비한” 성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왜인들은 청도읍성에 무혈입성하여 자신들의 작은 성을 쌓고 본거지로 삼았다. 당시에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일부 성벽이 파괴되었으며, 화재로 소실된 부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17세기 중반에 부서진 문과 관아시설, 성벽, 문루 등을 여러 차례 재건하였다. 고종 7년(1870년)에는 남문을 건립하여 4대문을 처음으로 갖추기도 했다.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정책으로 폐성이 된 후 1916년 군청을 이전하고 민가가 건립되며, 1920년 신작로가 개설되고 1954년 화강지가 축조되면서 읍성의 기능은 거의 상실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토지의 사유화로 민가가 생기고, 마을길이 확장되고 경작지가 조성되면서 성벽 및 성내 시설의 파괴는 가속화되었다.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군기고 및 3개의 누각 등이 성 내부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객사, 동헌, 척화비, 석빙고, 성내지, 향교 등은 현재까지 남아있다.조선시대에는 시기별로 많이 활용되던 축성법이 있었다. 청도읍성은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탐색할 수 있는 장소로서, 조선 전기의 끝자락에 유행하던 축성법(내외협축식)과 명종 16년 이후에 사용된 축성법(외축내탁식) 그리고 조선 후기에 개축한 부분에 적용한 축성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적이 성문을 공격할 때 방어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옹성이라 하는데, 서문과 북문의 옹성은 반시계방향 반원형으로 생겨서 서문과 북문을 겉에서 드러나지 않게 보호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축조된 서문의 옹성은 지대석이 없고 작은 돌을 위주로 만들어져서 시기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행정과 군사 시설은 물론 민가까지 읍성 안에 어우러졌던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성안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현재 청도읍성은 역사적 공간과 현재의 마을 공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주차장이 있는 동문지에는 과거 선행을 한 선비들의 비석이 한 줄로 놓여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연못이, 왼쪽으로 길을 건너가면 석빙고를 볼 수 있다. 성안에 들어서면 골목길과 마을 주민들의 집, 성내지와 같은 복원된 공간과 벽화가 그려진 집들도 눈에 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위로 버스와 경운기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과거에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던 낮은 성곽은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다. 성곽 위를 따라 세워진 삼각 깃발들의 펄럭임과 어쩐지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의 구름마저도 길게 늘어선 성곽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5-08

만나는데 청탁을 가리지 마라

김진국 고문 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다. 그 시간에 비해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무엇이라고 꼭 짚지 않아도 그 이전과 그 이후가 매우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가 참 다르다. 그렇지만 여론 추이의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진영에 따라 이미 판단을 내려놓고, 고수하기 때문이다.한국갤럽의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조사를 보면 ‘잘하고 있다’가 취임 두 달 만에 30%로 내려온 이후 계속 그 주변에 머물러 있다. ‘잘못하고 있다’는 60% 전후에서 오르내린다. 정치적 사건들은 계속 벌어졌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뚜렷하게 평가가 갈라지는 부분은 외교·안보다. 조사 시점인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이 논쟁거리가 된 탓도 있다. 중요한 국가 과제인 외교·안보 문제에서 여야의 의견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외교·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국내 정치와 맞물려 증폭되면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 친북(親北), 혹은 반북(反北)으로 정책 방향이 유연성을 잃고, 어리석어진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또 방어하기 위해 논리를 단순화하면서 제풀에 넘어진다.지난 정부의 정책을 조정할 필요는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거의 마무리하고, 실전에 배치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신냉전이 큰 흐름을 형성하는 등 국제 환경이 크게 변했다. 싫든 좋든, 우리는 그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나라다. 다만 그 과정에 여야 협의, 대국민 설득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국내 갈등을 증폭했다. 이념 지향적인 정책들에 대한 조정도 불가피했다. 급격한 탈원전, 징벌적인 부동산 규제 정책 등이다.성역으로 여겨졌던 부분에 손을 대는 것도 꼭 해야 하는 문제다. ‘건폭’(건설 현장 폭력행위)을 비롯한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의 권력형 비리 수사도 필요한 부분이다. 정치 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정치 불신이다. 정치적 보복만 피할 수 있다면 정치인의 비리 축재는 엄벌해주기를 바라는 게 민심이다. 더군다나 공정과 정의가 시대적 화두다.과감한 결단력, 신속한 추진력도 윤 대통령이 평가받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처럼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취임 1년이 되도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건 문제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잘 알 수는 없다. 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가벼운 한마디가 참모나 공직자들에게는 엄청난 무게로 전해진다. 마구 쏟아내면 정책의 혼선과 설화(舌禍)를 피할 수 없다. 노동시간 혼선이나 ‘날리면…’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야당을 외면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도어스테핑 중단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하지만 연두 기자회견이나 수시로 국민 앞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야당과의 대화도 그렇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만나지 않고 있다. 새로 당선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부터 만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후보 시절 “범죄자와는 토론할 수 없다”고 말했던 기조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렇게 대화를 회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옛날부터 정치인은 그리 깨끗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독재자조차 반대자들을 만나왔다.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범죄자든 아니든 그 개인이 아니라 한 정당의 대표다. 우리를 침략한 북한, 중국의 정상도 만난다. 야당 대표를 만난다고 범죄 혐의까지 사면하는 건 아니다. 수령 숭배에 철저한 북한조차 그 정책을 버렸다. 만나지 않는 건 범죄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해당 정당에 대한 무시다.국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생이다. 그 총체적 중간 평가가 내년 총선에서 드러난다. 총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남은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가슴을 열고, 소통에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07

어린이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

유영희 작가 바야흐로 5월이다. 기후 변화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4월에 내준 것 같지만, 기념일이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5월은 일 년 중 가장 활기찬 것 같다. 5월 기념일의 시작은 ‘근로자의 날’이지만,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첫 기념일은 아무래도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아동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활약하는 ‘칠칠단의 비밀’ 같은 소설을 쓰면서 어린이의 인격을 높였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지난 100년 동안 어린이의 인권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때와 양상은 다르지만 아직도 어린이를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 자기 아이를 때리거나 굶겨서 죽게 하는 사례는 너무 극단적이니 예외로 하더라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학대 아닌 학대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언젠가 동네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엄마와 아들이 앞에 올라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그 아들이 엄마에게 자기 희망을 이야기했더니, 그 엄마가 느닷없이 ‘너한테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 너 성적을 봐라, 네 주제에 무슨…’ 하면서 야단을 쳤다. 그 엄마 말에 하도 놀라서 그 아이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며칠 전 지하철에서 만난 아기 엄마도 생각난다. 그 엄마는 한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앉혀놓고 태블릿을 세워놓고 만화 영화를 보여주며 아이는 쳐다보지 않고 자기는 일행과 대화하며 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하는지 그 엄마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지난주 어린이날 방영된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145화에서도 오은영은 상담하는 6살 아이에게 엄마가 오랫동안 영상을 틀어준 것을 지적하면서 24개월 미만의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면 ADHD 발병률이 높아지고 자폐 증상처럼 상호작용을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나무랐다. 실제로 그 아이는 사회성 발달에 문제를 보였고 알파벳에만 집착했다.자녀가 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정상적인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을 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설픈 육아 지식으로, 부모의 고정관념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무리하거나 잘못된 자극을 주는 경우가 많다. 때리거나 굶겨야만 학대는 아니다. 존중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학대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무지 때문에 또는 탐욕 때문에 아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오은영은 잘못된 양육으로 가장 피해보는 사람은 아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 역시 고통받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그 아이가 커서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없다. 지난 주 방영된 아이의 부모 역시 고통 받다가 방송에 출연한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데 거창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국 고전 ‘시경’에 ‘아이를 키울 때 정성을 다하면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슴으로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2023-05-07

보이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경영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학문으로 정립하고 경영관리의 방법을 체계화 시켜 현대 경영학을 창시하고 체계적으로 수립했다고 평가받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경영의 관점으로 보면 측정된 성과의 유형에 따라 구체적이고 시간제한적이며 단계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고 목표 달성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측정하는 수단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라 해석할 수 있다.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그 목표를 향한 과정을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으며 목표 달성 여부는 측정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최근 나온 스탠퍼드 대학의 소셜임팩트 리뷰(SSIR) 2023년도 봄호를 보면 ‘측정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ESG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논문이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과 호주의 두 대학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기오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베이징 소재 미국 대사관은 2008년부터 베이징의 대기오염 수준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트위터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곱미터당 미세먼지 농도 수준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2~4㎎ 감소했다는 것이다.왜 측정만으로도 결과가 제어되고 성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일까? 물론 측정 수단을 개발하여 측정으로 얻어진 현상을 정량화하고 확보된 객관성으로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본질이겠지만 측정이 되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여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시각으로 모든 정보의 70~80%를 파악한다고 한다. 정수기의 파란색 밸브를 열면 냉수가 나온다는 사실이나 고속도로 나들목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나 교차로에서 신호등의 지시 컬러에 따라야 차량의 흐름이 엉키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것을 다양한 인식의 수단을 활용하여 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눈으로 보는 관리’는 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휴먼에러의 대부분은 인식을 하지 못하는데 기인하여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오감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거나 크거나 아주 작은 것, 그리고 가려져 있거나 너무 멀리 있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 생산현장의 특성에 따라 인간의 오감이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제조 현장의 관리 항목들을 시각화하여 인지하게 하고, 가려져 있어 식별이 어려운 부분은 투명화하거나 관리한계를 표시하여 언제든지 정상과 이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나 소개되는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 있다면 작업환경에 적합한 센서나 초고속 카메라가 대신하게 해야 한다.이제는 ‘보이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로 피트 드러커의 명언을 고쳐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23-05-07

‘에너지 전환’ 대응은 대한민국 혁신의 기회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연일 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은 2023년 4월 15일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완전히 멈췄다. EU에서는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22%였는데, 2030년 목표를 32%에서 42.5%로 대폭 높였다는 뉴스도 있다. 미국은 204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했다.우리나라는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이를 21.6%로 대폭 낮췄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지난 3월 21일 우리나라 탄소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의 2030년 탄소감축목표를 문 정부 때의 14.5%에서 11.4%로 후퇴시켰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탄소중립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현재 글로벌 아젠다의 첫 번째가 지속가능성 즉 탄소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기후 재앙을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지구 온도상승을 1850~1900년을 기준해서 1.5℃에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 1.09℃가 올라, 불가피하게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생태계를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생태계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 전 인류적 과제로 부상해 있다.그럼 우리나라가 현 국가 위상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은 현재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문화적 지위 3위 이내에 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 중 하나이다. 전 세계로부터도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변경했다.하지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중 하나다. 특히 관료와 정치인들의 의식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2015년 12월 파리 기구협약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한 후, 각국이 목표달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조차도 탄소중립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 차원에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고 또, 달성 가능하다.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의 의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특히 집행기관인 중앙·지방 정부 역할과 자세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국회는 당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 입법을 해야하고, 지방 정부는 태양광 입지규제(도로에서 500m, 민가에서 500m)를 중앙정부의 이격거리 완화 방침에 맞춰 신속히 해제해야 한다.우리나라는 GDP 대비 세계 2위 수준의 제조업 강국이다. 에너지의 주류인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바탕의 에너지 10대 소비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성도 얻고 있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 100만 톤이 넘는 73개 기업이 국가탄소총배출량(6억 7천960만t)의 75%(5억 974만t)를 배출하는 나라다.이런 상황 속에서 산업계가 탄소배출 목표를 덜 줄이려고 아우성을 치고, 대정부 로비를 통해 관철시켜 2030년까지 산업계부문 탄소절감량을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다. 산업계는 11.4%가 아니라 오히려 2030년까지 평균 절감량인 ‘40%’까지는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오염자 부담원칙’에도 맞다. 그래야 에너지 전환시대에도 우리나라 산업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지속가능성 목표이행’은 위기로 인식될 수 있지만, 우리 경제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주변이나 공단 주변 농지에 태양광·소형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활성화할 경우, 버려지고 묵혀진 땅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소멸되어가는 농촌이 신선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것이다.우리나라의 논·밭은 수로와 농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수백 년 이상 영농현장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발전 사업을 하기에는 가장 잘 정리된 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수익을 따져 보면, 농지 300평당 100kWh의 전력생산이 가능해서 현재 쌀농사와 비교할 경우 20배 이상의 소득이 창출된다.일자리 또한 원자력과 비교할 때 같은 양의 전력생산(100만 kWh)에서 20배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농촌 소멸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후발국들에게 새로운 개발모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혁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조업 글로벌 10위, 탄소배출 글로벌 10위인 한국이 앞장서서 탄소배출에 책임이 큰 선진산업 국가들의 탄소중립달성 목표시한을 2050년이 아니라 2040년으로 앞당길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한국이 세계적인 변화와 혁신을 선도함으로써 글로벌 선도국가가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