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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역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외교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들리지만 근년에는 언론뿐 아니라 학술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가치 외교는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자유주의적 가치의 결속으로 반자유주의적, 반인권적 가치를 견제 봉쇄한다는 개념이다. 가치 외교는 국가 간의 연합이나 동맹을 통해 자유주의적 가치의 공동 번영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가치 외교는 실리외교와는 다소 괴리가 있고 그 역설이 초래되기도 한다. 결국 가치 외교는 미소 냉전시대의 이념외교의 기본 틀을 크게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치 공유국가들의 결속을 통한 반자유주의적 국가를 배격하는 가치외교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개별국가의 외교적 손실이라는 역풍의 위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외교의 역설이며 부메랑이다.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서부터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그것을 가치외교의 토대로 삼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의 새 정부는 대체로 전임정권의 정책이나 폐습을 청산하려고 노력한다. 문재인 정권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 1년은 적폐청산과 사정정국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윤석열 정부의 지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외교 정책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나 북방외교의 기본 골격이었다. 그러나 그 화해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었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은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형해화 된 선언문으로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중간자적 화해 협력이라는 정책기조에서 탈피하여 한미 안보 동맹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가치 외교의 기조로 삼고 있다.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이념적 안보 동맹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의 대일 외교는 대통령의 소위 ‘통 큰 결단’을 통한 파격적 대일 관계개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 징용문제에 대한 제3자 배상 원칙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의 무릎을 끊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일본의 책임 있는 사과보다는 일본정부의 선의에 기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확장 억제 협의기구(NCG)를 설립하여 북핵 대응 공동대응 장치를 마련하였다. 당초 기대했던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선 감소 법(IRA)의 한국기업의 보호책은 마련치 못했지만 한미 안보동맹은 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서울의 한일 정상 회담은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모두가 적극적인 가치외교의 결과물이다.현 시점에서 가치 외교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명확히 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외교는 원래의 이상과는 달리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외교는 예상한대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중국은 한미일 안보 동맹 강화를 연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대만 해협 관련 발언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면서 ‘불장난을 좋아하면 불에 타죽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의 반대 입장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북한의 워싱턴 선언에 관한 노골적인 비난은 말할 필요도 없다.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역 삼각 동맹의 강화는 동북아의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미국 주축의 한미일 결속외교는 또 다른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역 적자가 날로 심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보복 등 경제적 손실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흔히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들 말한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의 기본 틀은 미국과 일본에 편향 의존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2차 대전 후의 냉전시대로의 회귀처럼 신냉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적 결속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실리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치나 이념을 앞세운 한미일 삼각 동맹이 초래하는 부메랑을 걷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 10위권의 국격에 걸 맞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과거의 강대국 의존의 저자세 외교, 종속외교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테프트 카츠라 조약의 비극적 역사를 결코 잊어서 안 된다. 당시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이 한반도의 지배를 인정한 야합의 조약문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한미일의 철저한 안보 동맹 뒤에 숨은 후폭풍을 막을 수 있을까. 가치외교의 역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2023-05-07

마늘밭에서 하루

마늘 고랑에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마늘잎 하나가 바람에 살랑대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여다본다. 벌써 알싸한 맛들이 아우성이다.마늘밭 고랑에 서니 손과 발이 빨라진다. 마늘잎 가운에 있는 줄기를 잡고 마늘 대를 뽑는다. 아랫부분을 잡아당기면 부드럽고 여린 줄기가 달려나오는데, 그 촉감이 매끄럽다. 땀이 눈에 닿아 따갑도록 한참을 솎아 바구니가 불룩하다.마늘종은 이맘때 솎아내야 한다. 제때 솎아내지 않으면 뿌리로 모아야 하는 영양을 줄기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때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 나처럼 어설픈 손도 보탠다. 막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마늘종을 하나씩 솎아 넓고 큰 바구니에 부려놓는다. 허리는 아프지만, 마늘밭이 일으킨 멀미는 오히려 즐겁다. 마늘종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 단단하게 여물어 갈 마늘 생각에 어지러운 멀미도 오히려 반갑다.마늘종장아찌는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에게 필수다. 간장과 설탕 식초를 일대일로 넣어 팔팔 끓인다. 이때 마늘종에 붓는다. 식히고 끓이고 붓기를 서너 번 한다. 그런 후에 냉장고에 넣어두면 일 년 내내 밥상에 올라 고기와 더불어 약방의 감초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우리가 먹는 음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도 마늘은 눈에 띄지 않게 버무려 김치가 맛깔스럽게 익도록 돕는다. 또한, 나물을 무칠 때도 나물의 성질에 맞게 마늘은 있는 듯 나붓이 엎드려 있다.마늘의 매운맛은 중독된다. 소개팅에 나가 퇴짜를 맞고 돌아와 씩씩대며 고추와 마늘을 생으로 먹고 터뜨리는 울음, 싱싱한 회 한 점을 깻잎 위에 놓고 마늘을 얹어 먹으면 입안에 화기가 가득 찬다. 거기에 초고추장의 매운맛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과일은 단맛을 내기 위해 여물지만, 마늘은 매운맛을 위해 여문다. 맵기로는 고추도 한몫을 하지만, 마늘은 마늘만의 매움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맛을 내랴. 마늘은 호기를 품고 익어간다. 입안에서 톡 쏘듯이 알싸하게 한쪽한쪽 여물어간다.오월, 지금부터 마늘의 여물기는 시작된다. 땅의 것을 받아들여 마늘은 매운맛을 품는다. 쓴맛, 아린 맛, 시쿰한 모든 맛을 땅속에서 누르고 발효시켜 매운맛을 만든다. 불의 기운을 뭉치고 물의 기운으로 즙을 내어 조제된 육 쪽, 천연 향기는 중독성이 강해 울면서도 씹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순혜 수필가 인생에 매운맛은 재채기처럼 온다. 눈물과 콧물을 쏙 빼면서 다가온다. 너무 매워 혀끝이 얼얼하고 입안에 감각이 사라진다. 동시에 식은땀이 난다. 이어서 정수리에서 땀방울이 생겨 이마를 타고 흐른다. 짠물이 흘러 눈에 들어가면 눈물이 난다. 울고 싶을 때 마늘 핑계를 대서라도 울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시원해진다.흑마늘 만들기는 매운맛이 숙성하며 단맛을 낸다. 매운맛으로 똘똘 뭉친 마늘은 밥솥에서 수분을 빼고 찰지고 담백한 단맛으로 변한다. 보름 정도 익어가며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흑마늘 약이 된다. 강렬했던 단맛의 기억만 있다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불끈 두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한 일이 넘쳐흐르고, 앞선 이의 그림자만 좇아가며 맛보는 쓴맛도 있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고, 어쩌다 날린 한방이 또 허방일지라도. 단맛은 짧고 강하다 하지만 매운맛은 더 강력하고 오래 간다여물어 익어 제맛을 내는 것은 사람이나 마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마늘은 마늘답게,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대로 익어간다. 사람 향기를 내기까지는 솎아내 지기도 하고 이제 괜찮다 싶으면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솎기고 가지 처지면서 튼실한 나만의 향기를 낸다. 마늘은 마늘대로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맛을 보며 사람의 맛으로 익어간다.

2023-05-07

경북도 안전체험관 상주가 최적지

강영석 상주시장 상주시가 지역 회생을 위해 경북도 안전체험관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기후변화 현상과 급속한 산업사회 전환에 따른 자연재해, 산업재해 각종 재해로 인한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농어촌 지역은 안전인프라시설의 취약성과 지역민들의 재난 대응 역량 부족으로 피해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의 구심체가 될 안전체험관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다.정부는 안전체험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지난 2017년부터 광역단체별로 1개씩의 안전체험관을 건립하고 있다.현재 전국 17개 시도(창원 제외) 14개소(서울 2, 그외 1개씩)에서 소방안전체험관이 운영 중이다. 경북과 전남, 대전, 세종 등 4개 지역은 아직 ‘안전체험관’이 없다.경북도는 이에 따라 도민 안전욕구 증가에 따라 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난·안전사고 발생에 대비해 위험 상황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안전체험시설 건립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경북도 안전체험관 건립사업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간, 33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부지 5만㎡ 이상, 건축 연면적 7천㎡ 규모로 재난체험 등 5개 분야, 30개 체험시설로 조성된다.경북도는 23개 시군을 상대로 안전체험관 유치 공모를 했다. 공모 신청은 지난 4월 3일부터 5월 2일까지 1개월간 진행됐다. 공모를 마감한 결과 구미, 영주, 상주, 경산, 영천, 청송, 포항, 안동시 등 8개 시군이 유치 신청서를 냈다. 신청 부지는 3개 부지를 신청한 청송을 제외하고, 지역별로 1개 부지를 신청했다.부지 선정은 인근 체험관과 거리, 인구 수, 교육 수요,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검토해 선정위원회를 거쳐 부지를 결정할 예정이다.경북도는 당해 시군의 인구 현황, 주요 체험 수요 인원, 도시 인접 시군의 인구, 지역 관광 자원과 확장 및 연계성, 지역 발전 일자리 창출 효과, 고속도로, 철도 교통수단의 다양성, 체험관 이용객(영유아, 초중고, 취약계층 단체 등) 계획부지 중심지까지 접근성, 이용객을 위한 주변 시설 등 편의성, 시군의 재정 지원계획 유무 및 규모, 민원 발생 가능성 및 지역민 관심도와 참여도 등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선정 기준도 제시해 놓고 있다.상주시는 지난 1일 ‘경상북도 안전체험관 부지 공모’신청서를 경상북도 소방본부에 제출하는 등 활발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상주시는 공고 이후, 공모신청을 위해 제2회 의용소방대의 날 기념식에서 안전체험관 유치 퍼포먼스 진행, 안전체험관 건립 유치를 위한 입지 타당성 분석 기본계획 용역 수립, 시민의 유치 염원을 담은 서명 활동 등 공모사업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상주시가 대구 군사시설과 안전체험관 등의 유치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상주시는 1960년대 후반에 인구 26만을 넘어섰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이농현상 등으로 현재는 10만벽이 무너져 소멸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다 경북도청과 혁신도시 유치전에서 두 차례 모두 차점 탈락한 뼈아픈 경험이 있어 이제는 경북도가 답해야 할 차례라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작용하고 있다.상주시는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충지로 낙동강 권역의 풍부한 관광자원과 연계한 ‘경북도 안전체험관’유치를 중점과제로 선정했다.사업대상지와 인접한 상주국제승마장, 상주박물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등 주변 관광·체험시설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안전체험관 이용객 증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또한, 기존 교통안전공단에서 운영하는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와 함께 2025년 상주 청소년해양교육원이 준공되면 상주에 자리잡는경상북도안전체험관은 대한민국 안전테마관광 명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상주는 경북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하기 좋은 교통 요충지로서 안전체험관 부지가 확보된 준비된 도시이다. 상주로 경상북도 안전체험관이 올 수 있도록 시민의 염원과 뜻을 모아 유치에 총력을 다할 각오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2023-05-07

영남루와 위양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마른 가뭄 아니련만 강우량이 미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다. 7년 대한(大旱)에 비 아니 오는 날 없고, 7년 홍수에 해 아니 드는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노는 사람이야 흥겨울 터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풍족하게 비 내린다.지난달 중순에 큰아들과 약속한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우리 집에 모여서 일박(一泊)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 하루 전날에 나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문학자가 바라보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대중강연을 한다. 광주와 전남대가 자랑하는 1980년대 대표 저항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강연하는 일은 가슴 벅찬 노릇이다.2019년 옹근 1년을 전남대 교환교수로 있던 때부터 ‘김남주 기념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2019년 5월 3일 오후 5시에 열린 개관행사에 나는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여러 상념에 젖어 들었다. 대학원 시절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시집을 읽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런 남주를 길러낸 전남대 인문대학에 들어선 추모공간!어린이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오시더니 오후에 접어들어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이다. 서울에서 9시 무렵 출발한 아들의 승용차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화양(華陽)에 도착한다. 장성한 남녀 4인을 태운 소형 승용차에 동승(同乘)하여 고깃집으로 간다. 은성(殷盛)한 불빛 아래 따사로운 정담(情談)이 오가고 환한 웃음과 대화가 꽃을 피운다.자리를 옮겨 ‘파안재(破顔齋)’에서 생선회로 함께하는 훈훈한 술자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다. 내일은 청춘들과 함께 우포늪에 가서 ‘따오기’ 비상하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한다.하지만 이튿날 기상하여 채비를 마치고 나니 창녕 오가는 길이 너무 멀다. 행선지(行先地)를 밀양의 영남루와 위양지로 바꿔 우중(雨中)에 출발한다.밀양의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이라고 큰아들은 힘주어 말한다. 내리는 빗발 속에서 영남루 누각에는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펴볼 따름이다. 사명대사 동상과 무봉사(舞鳳寺)의 석조여래좌상을 뵙고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흉상과 생가를 구경하고 위양지로 옮아간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대구에서는 끝물인 이팝나무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달릴 것이라 기대한 나는 ‘어이쿠’ 한다. 몇몇 작은 나무에만 꽃이 흐드러졌을 뿐, 거목에는 이제야 대궁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터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대화를 잇다가 길이 물에 잠긴 곳에 이른다. 황토물이 거리를 막아서는 바람에 다수가 걸음을 돌린다.이런 작은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밀양시청의 둔감함을 생각한다. 노자는 이것을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여행을 마감한다. 남산 자락에 구름이 자꾸만 올라간다.

2023-05-07

TK 민심은 여전히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국적으로는 30%대 지지율에 갇혀 있지만, 대구·경북(TK)에서는 여전히 견고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TK지역 현역의원들에 대한 민심은 싸늘했다. 본지가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에브리씨엔알에 의뢰)를 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52.5%를 기록했다.한국갤럽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조사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33%)보다 20% 가까이 높은 수치다. 윤 대통령에 대한 TK지역 민심이 타지역에 비해 여전히 우호적임을 반영한 조사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서는 역시 국민의힘이 55.1%를 차지해 압도적이었다. 민주당은 27.1%, 무소속은 3.2%로 집계됐다.22대총선 공천과 관련, 현역의원 교체여론도 주목을 받았다.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51.2%)을 넘어섰지만, ‘재출마 해야 한다’는 응답률은 23.2%에 불과했다. 보수정당의 경우 과거에도 가장 안정적인 지지 기반인 TK지역에서 당무감사 형식을 빌어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했었다.21대총선에서는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의원이 당무감사결과 50%이상의 교체여론이 나오자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라는 구실을 내세워 TK현역의원을 64% 교체했다.당시에도 ‘막장공천’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올 새해초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무기력한 동네 국회의원들은 모두 시의원, 구의원으로 보내자”며 재선이상 TK국회의원 전원 물갈이를 주장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본지 여론조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대한 민심의 척도였다. 조사결과, 박 전 대통령의 정치개입에 대한 부정적 응답자(47.9%)가 긍정적 응답자(30.5%)보다 훨씬 많았다. 혼탁한 정치에 다시 휘말리지 말고 존경받는 국가 원로로 지내길 바라는 민심을 박 전 대통령이 잘 파악하길 바란다.

2023-05-07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未知의 변이 대비해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해제했다. WHO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 위중증 환자 감소와 높은 수준의 인구면역 보유 등으로 글로벌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더라도 예상치 못할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해제 배경을 설명했다. 2020년 1월 30일 국제 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선포한 지 3년 4개월만이다. 코로나 비상상황이 사실상 공식 종료된 셈이다. 미국은 오는 11일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할 예정이다. 국내 코로나 정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질병관리청은 지난 3월 “WHO와 해외 주요국의 비상사태 해제 등을 고려, 단계 하향 여부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내 코로나 위기단계는 ‘심각’이다. 한단계 낮은 ‘경계’로 가면 남아 있는 방역조치 대부분이 풀리게 된다. 코로나 확진자 격리기간이 7일에서 5일로 줄고 임시선별검사소 운영도 중단된다. 코로나 기간 중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도 근거가 없어 사라지게 된다. WHO는 공중보건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며 해제 이후에도 유효한 권고안을 제안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전염병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향후 2년동안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필적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2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국내서도 코로나19는 하루에도 1만5천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10명 안팎에 이르고 있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자의 치명률은 1.91%에 이른다.코로나19로 전세계적으로 7억4천여 만명의 사람이 숨졌다. 국내서도 3만4천여 명의 인명이 희생돼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다시 올 것을 예상한다. 지난 3년의 과정을 되돌아 보고 위협적인 미지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체제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2023-05-07

아! 천마도여

우정구 논설위원 경주 천마총 발굴은 박정희 전 대통령 특명에 의해 시작됐다. 천년고도 경주를 관광수도로 만들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이 발굴로 이어진 것인데, 경주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1973년 국민적 관심 속에 시작한 천마총 발굴은 우리 발굴 사상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될 만큼 귀중한 유물을 찾아낸다. 1만여 점의 유물 속에 발견된 신라금관은 당시 국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발굴 100여 일 만에 수습된 금관은 금관을 보고 싶어한다는 대통령의 말에 따라 다음날 청와대로 잠시 옮겨진 일화도 있다.천마총 금관은 지금껏 발견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지증왕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고 한다.천마총 발굴의 하이라이트는 천마도(天馬圖)다. 보통 사람의 시선이 금관에 모두 쏠렸지만 천마도 발굴은 나라를 발칵 뒤집을 만한 큰 사건이다. 고구려나 백제처럼 신라에는 무덤벽화가 없어 천마도가 가지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천마도는 말의 안장 장식의 일종인 장니에 그려진 그림이다. 연약한 자작나무 껍질에 1천500년을 견디어 온 것 자체가 신비다.발굴 당시 김정기 단장은 그의 회고에서 천마도를 무사히 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심한 공포감에 빠졌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머리에 뿔 비슷한 게 달려 한때 천마가 아닌 기린이란 논쟁도 있었으나 천마로 결론이 났다.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나는 듯한 흰색 천마가 9년만에 실물 공개됐다. 빛에 약해 지금까지 단 세차례 밖에 공개되지 않았던 천마도를 7월 16일까지 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하니 가 보길 권한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신라 유일의 회화 천마도 감상의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나. /우정구(논설위원)

2023-05-07

문지방

윤명희 수필가 도마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아침밥을 준비하는 소리를 듣는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언니들의 말소리에 이불을 당긴다. 어젯밤에 불렀던, 기타와 어우러진 나직한 노랫가락이 꿈결인 듯하다.문지방(文知房). 글이 좋아 글을 제대로 알자고 모인 사람들이다. 이른 봄과 늦은 가을이면 한 이불 속에 발을 묻고 밤을 하얗게 보냈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이어져 23년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휴전선 아랫동네에 사는 나보다 한 살 적은 남동생은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온다. 수녀님과 생활하는 김포언니는 여전히 멋쟁이고, 오빠들을 휘어잡는 대전동생은 나이가 들어도 해맑다.직업병으로 조사(助辭) 하나 차이의 무서움에 글을 쓰지 못한다는 김해오라버니는 더 젊어지고, 바람이 되고픈 부산오라버니는 이제 군인에서 벗어나 시급제 알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대구오라버니는 오늘도 향긋한 커피 향을 내놓고, 공주꽃집 마산언니는 보라수국을 닮았다. 팔공 산자락에 사는 언니, 이젠 말하지 않아도 그냥 편하다.몇 년 만에 평창막둥이가 나타났다. 그동안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냐고 채근하자 폐지 줍는다는 말로 일축한다. 더 묻고 답하지 않아도 생의 신산함을 헤아린다. 이십대였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쾡 하니 눈만 보이던 얼굴에 나잇살이라도 있어 보는 마음이 편하다. 넉살도 따라붙어 나이 많은 형, 누나들에게 엉겨 붙기도 한다. 12남매 속에 자랐으면서 세대 차이 나는 우리를 찾아 먼 거리를 오는 이유가 다시 궁금해졌다. 23년 전에 왜 왔냐는 말을 던지자 그냥이라며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고 한다.보이는 얼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찾는다. 생업에 발이 묶여 마음만 와 있는 거제언니, 아들의 사고로 병원에 있는 대전동생이 가슴에 얹힌다. 별명이 네이버 검색대인 서울오라버니는 병마에 시력이 약해져 이제 길이 멀다. 경주오라버니까지 아프다는 소식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더 나이 들면 얼굴이나 보겠냐는 언니들의 푸념에 부산오라버니는 캠핑카에 태우고 한 바퀴 돌 테니 걱정마라고 했다.방문을 열자 거실 가운데 밥상이 차려졌다. 익숙한 풍경이다. 한 언니가 밥을, 또 한 언니가 쑥국을 뜬다. 숭늉 끓이는 냄새까지 곁들여진 상이 걸다. ‘명절 아침 같네.’ 한 오라버니의 말에 모두의 마음이 쑥국 향에 젖는다. 빙 둘러 앉아 누나들이, 언니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들이 뜨겁다.칠순을 눈앞에 둔 포항언니는 늘 그랬다. 23년 전 서울의 그날, 그녀의 양 손에는 대게 박스가 들려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 환승까지 하며 왔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고 했다. 벚꽃이 떨어지던 날,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 언니는 그날부터 마음을 우리에게 주었나 보다. 자식을 맞이하는 엄마처럼 만나는 날이 다가오면 밑반찬을 만들고 새벽에 죽도시장에 나가 해물을 준비했다.그 동안 앉아먹은 입이 미안해 사 먹으면 되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하지만, 만날 때마다 눈이 먼저 언니 손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23년 만나게 한 힘이라는 것을 안다. 피보다 진한 것이 진심이라는 것도 안다.문지방(文知房) 식구들은 전국을 돌아가며 매번 다른 문지방(門地枋)을 넘어 만난다. 글을 알자고 모인 우리는 마음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사는 이야기로 밤을 보낸다.친정에 다녀가는 것처럼 큰언니가 싸준 음식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집 앞에 주차할 즈음이면, 이 봄에 새겨진 시간들이 아련해 질 때 쯤 다시 만나자는 언니의 마음이 문자로 뜬다.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밤, 우리는 휴전선 아랫동네에 사는 동생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받고서야 잠이 든다.

2023-05-03

무술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다섯 번째는 무술(戊戌)이다. 천간(天干)의 무토(戊土)는 태산을 의미하고, 지지(地支)의 술토(戌土)는 계절로 늦가을의 기운이다. 천간과 지지가 모두 양(陽)기운이므로 활동력이 강하다. 동물로는 누렁이 개다.무술일주는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며, 검소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에게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반면 융통성이 없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고, 순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많다. 직장상사나 윗사람에게 아부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독립적이다. 또한 일처리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대범하고 과감한 유형이다.무술일주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명예지향적인 자존심이다. 물상으로 보면 하늘을 치솟는 산 위의 산이기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지갑에 돈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낙심한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고난을 돌파 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 또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많다.무술일주는 12운성으로 묘(墓)다. 묘(墓)는 고독을 의미하고, 홀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고독하게 살아가는 일주다. 부모나 형제 덕이 부족하여 인생을 혼자서 헤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깊고 혁신적이며 세속과 떨어진 정신세계인 종교와 철학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많다.르네상스 시대 토마소 캄파넬라(1568∼1639)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였다. 총명했으나 가난했기 때문에 공부하기 위해 열세 살 때 도미니크수도원에 들어갔다. 스페인 지배 하에서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에 참여했다.1599년 폭동 음모가 발각되어서 일곱 차례 고문을 받은 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태양의 도시’(1602년)를 썼다. 이 작품에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층과 하층 지식인들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이 투영되어 있다.그의 책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므로 노동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져 각자 하루 4시간씩만 일하면 된다. 게으름은 경멸의 대상이며, 고상한 척 무위도식하는 것은 무능력과 악덕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성직자로서 그의 유토피아 사상이 배척되어 이교도로 박해를 받았다. 그는 1629년 석방되어 수도원에서 조용한 만년을 보냈다. 사유재산제와 일부일처제가 철폐된 태양의 도시를 상상했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무술의 특징은 마음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넓어 설사 내가 조금 힘들어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친족이 힘들고 괴로울 때 괜히 같이 슬퍼하고 미안해지며, 말없이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인생의 굴곡이나 흥망성쇠에 마주쳐가면서 내면의 힘을 쌓아간다.무술일주는 이름하여 ‘보배의 산’이다. 무술은 천간에도, 지지에도 창 과(戈)의 기운이 있다. 기본적으로 사납다. 천간은 아주 무성한 나무처럼 하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지지의 담당자는 늑대인 개 술(戌)이다. 야생의 늑대가 인간과 친숙한 개로 바뀌었지만 주인을 잘 만나서 길들어지면 명견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똥개가 되어 돈과 먹을 것, 좋아하는 것을 보면 덤벼드는 황당한 늑대 같은 잡견이 될 수 있다.무술의 개는 장사수완이 좋아 영업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구분이 확실하다. 그러한 기질이 촉이 되어 실력이 없어도 각종 찍기나 복권 당첨 등에 재주가 있으며, 투자와 투기에 남다른 강세를 타고난 덕분에 재물도 많이 가지며 명예도 얻게 된다. 근본적으로 야생기질이 있어 인생살이가 큰 파도 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가며 살게 된다. 좋은 일주 중 하나다.무술은 늑대의 속성이 있어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의심도 많다. 보수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거칠고 직설적이며 화도 잘 내고, 말솜씨가 좋다. 그래서 스님, 신부, 목사 혹은 교사가 되면 본인의 영적 능력이 보석처럼 빛을 낼 수 있다.자신이 기르는 개가 집을 아주 잘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개를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개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우물에다가 오줌을 싸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았다. 이웃 사람이 개 주인에게 항의하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집 문 앞을 버티고 있던 개는 으르렁거리며 이웃 사람을 물려고 쫓아 나왔다. 끝내 이웃 사람은 개가 자기를 물까봐 주인에게 개가 저지른 잘못을 알리지 못하고 말았다. 중국 ‘전국책’ 초책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인의 위엄을 빌려 힘을 자랑하는 개의 포악성에 물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초책 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가 어느 날 여우를 잡았다. 여우는 날 잡아먹으면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믿지 못하겠거든 너는 나의 뒤를 따라와 봐라. 짐승들이 나를 보고 달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는 여우의 말에 따라 함께 갔다. 정말로 짐승들은 이들이 보이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인지 모르고, 여우가 두려워 달아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가 나왔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인간사회에서도 호가호위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권력자를 이용하여 힘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일을 알고도 눈감고 있다거나 본래부터 알지 못했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배경만 믿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정화된다.우리는 언제 말해야 하는가? 더는 침묵이 용인되지 않는 바로 그때 말해야 한다. 사람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 자신이 이미 극복한 일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해야 한다. 거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2023-05-03

인공지능, 위기인가 기회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이 눈부시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여 새로운 예측자료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향후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 23%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 것도 사실이지만, 새롭게 만들어질 일거리도 무시할 수는 없다. 많은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 없어진다고만 하지 않았다. 관련 전문가들도 일자리의 변동률이 유례없이 높을 것이라고 한다. 가파른 변동률은 일자리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는 것일 뿐, 없어진다고만 하지는 않았다.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자리의 변화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시장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날 터이다. 일부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노동집적도의 수준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의 단위 갯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지만, 그런 류의 변화는 산업혁명 이래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전통적인 관리와 경비기능, 공장과 상업 부문에서 대폭적인 일자리의 감소가 예측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교육, 보건, 농업 등에서는 오히려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노동력이 더욱 필요해질 전망이다. 자동화와 전산화로 단순반복적인 업무기능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지만, 기술의 집적과 함께 인간의 응용 및 적응능력을 확장해야 하는 부문에는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터이다.인공지능의 도래와 관련하여 인류에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은 일자리의 갯수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초래할 직업윤리적인 영향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던 구글의 제프리 힌튼(Jeffrey Hinton)이나 히브리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멈출 수 없는 인공지능경쟁에 글로벌규제가 필요하다’든가 ‘강력한 기술도구의 안전을 점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개발을 중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보다 건강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인공지능의 도래와 함께 과학기술은 물론 인간사회에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모양이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존재하지만, 변화하는 일거리의 모습에 유연하게 준비하고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윤리적 위험성에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문명의 산물을 인류에게 이롭게 쓴다는 다짐이 있는 한 긍정적인 발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산업혁명 이래 인류에게 기술은 언제나 위기의식을 동반한 필요악이었다. 사라졌던 일자리는 새롭게 일어난 생산성으로 극복되었으며, 인류의 위기는 세상의 기회로 슬기롭게 바뀌어왔다. 인공지능이 던지는 그림자에도 인류는 지혜를 모아 참신한 빛줄기를 불러올 터이다. 사그라들 무엇을 아쉬워하기 보다 찾아올 약속에 집중해야 한다.

2023-05-03

‘봉이 김선달’과 관람료 폐지

홍석봉 대구지사장 구례 화엄사의 말사인 천은사는 지리산 3대 사찰로 꼽힌다. 천은사는 노고단 길목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았다. ‘산적 통행료’ 비난이 일었다. 등산객들의 집단소송과 국민청원이 잇따랐다. TV드라마 소재가 됐다.조계종과 문화재청이 지난 1일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조계종 산하 사찰 입장시 징수하던 문화재관람료를 4일부터 폐지했다. 지역의 불국사와 석굴암, 동화사 등 전국 65개 사찰이 대상이다.문화재관람료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징수를 시작했다. 사찰이 국가를 대신해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보호·관리하고 있는 점이 고려됐다.1967년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통합 징수했고,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만 폐지했다. 이후 문화재 보호·관리비용을 받겠다는 사찰 측과 못내겠다는 등산객들의 관람료 갈등이 불거졌다.문화재관람료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을 계기로 폐지됐다. 정 의원은 지난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 사찰을 ‘봉이 김선달’로 비유해 조계종의 거센 반발을 샀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불교계 달래기에 나섰다. 문화재보호법을 개정,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감면 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올해 419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앞서 영천 은해사는 지난해 4월부터 무료 개방했다. 액수도 크지 않은데다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경주시도 4일부터 대릉원 관람료를 전면 폐지했다. 사찰과 왕릉 등 문화재 무료개방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누이줗고 매부 좋은 격이다. 금액은 미미하지만 의미는 크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03

한방문화축제, 약령시 활성화로 이어져야

대구 대표 축제 중의 하나인 한방문화축제가 5일 대구 중구 약령시 일원에서 열린다. 대구 약령시 한방문화축제는 1658년 처음 개장된 국내 최고(最古)의 한약재시장의 전통과 문화를 잇고 있는 행사다. 대규모 약재상이 밀집한 대구 약령시는 365년이란 오랜 전통을 지녔을뿐 아니라 우리나라 한방산업의 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한방산업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한방축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하겠다.2001년 한국 기네스위원회는 대구 약령시를 국내 최고의 약령시로 인증했고, 2014년 이곳은 한방관련 분야 최초로 한방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약령시의 전통에도 한방산업 쇠퇴 등의 여파로 대구 약령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대구약령시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 작년 12월 10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2014년 52억원을 들여 문을 열었으나 찾는 사람이 없어서다. 대구 약령시를 방문하는 사람도 5년 전 보다 반토막이 났다. 300군데가 넘던 한방관련 점포도 지금은 14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 인근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먹거리 상권이 형성되자 주로 임대로 있던 한방관련 점포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또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특구법을 개정하면서 대구 약령시 한방특구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한방산업의 지속적 발전은 물론 대구가 가진 한방관련 문화의 전승과 도심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대구 약령시를 살리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특히 약령시는 대구 중심부에 위치해 당국의 육성 의지에 따라서 문화와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를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방특구 지정 이후 한방문화축제 이외 별다른 관련사업이 추진되지 않은 것은 약령시 활성화에 대한 당국의 무관심 때문이라 볼 수 밖에 없다.역사와 문화, 예술은 그 맥이 끊어지면 다시 살리기가 쉽지 않다. 5일부터 열리는 한방문화축제가 대구 약령시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신호가 되길 기대한다. 일회성 행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약령시의 문화적 가치를 일깨우는 축제로 키워가고,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대표 한방축제가 되게 당국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2023-05-03

국회는 지방시대 열 특별법제정, 왜 미적대나

이철우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경북도지사)이 그저께(2일)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거듭 촉구했다. 이 특별법은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의결을 거쳤지만, 지난달 26일 열린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 연말 열린 정기총회에서도 신속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었다.시도지사협의회가 특별법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게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교육자유특구는 학생선발·교과과정 개편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다양한 명문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법사위가 문제 삼는 부분은 교육 자치와 지방자치 통합에 대한 조문이다. 1991년 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아직 시행되고 있는데 현행 법률과 원리를 무시한 채 교육 자치와 일반 자치의 통합을 명시한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통합은 시·도와 시·도 교육청 간의 협력강화를 의미한다. 해당 조항은 이미 2010년 ‘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신설돼 13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교육자유특구가 학교 서열화와 입시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야당의원들의 비판과 관련해서는, “교육자유특구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긴급한 대응정책이다. 특구의 상세내용은 교육부가 별도의 법률로 정하는 만큼 그 때 가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면 된다”고 밝혔다. 누가 들어도 공감이 가는 설명이다.지방시대위원회 신설내용도 명시한 이 특별법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 시도지사협의회가 중심이 돼 특별법이 이달 중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야당의원들을 설득하길 바란다.

2023-05-03

원인불명 두통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의원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오는 질환이 두통이다. 보통은 양방의원이나 양방병원에 가서 검사도 하고 약도 먹고 하다가 안되서 오는 경우가 많아 한의원에 두통으로 왔다면 제법 아프다는 소리다. 그중 일부는 너무 아파 죽겠다고 한다. 당연히 원인은 알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한의원에 방문한다.나도 개원 초기엔 배운 대로 침을 놓고 약도 주고 하면 증상의 개선이 이뤄지니 배운 대로 해도 충분 했지만 극히 일부는 침을 놓고 약을 써도 잘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보통 뒷골도 너무 아프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아 목 뒤쪽과 뒷골 부위 어깨 부위에 부항으로 피를 뽑는 사혈을 한번 씩 해줬는데 다음날에 너무 좋아져서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 받고 나서야 두통에 뒷목과 어깨의 사혈이 아주 효과가 좋은 것을 알았다.후에 더 알아보니 두통과 흔히 말하는 뒷골 즉 뒷목과 어깨 부위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을 알았다. 스트레스나 과다 사용 등으로 목과 어깨 근육이 뭉치면 머리로 가는 혈액 순환이 안좋아지고 이에 뒷골과 머리쪽 근육들이 뭉치면 복합적으로 두통이 발생한다. 원인을 뭐라 하나로 단정 지을순 없지만 뇌의 질환이 아닌 두통들은 거의 대부분이 목과 어깨의 뭉침을 크건 작건 동반을 하는 것이다.이에 어느 순간부턴 두통이 있다고 하면 신경학적 검사로 뇌 쪽 문제는 없는지 살피고 혹은 검사를 하고 온 걸 확인 후 뒷목과 어깨 쪽 사혈을 하고 침으로 목과 어깨 쪽 근육을 풀어주고 근육을 풀어주거나 원인에 맞는 한약 처방을 며칠 분씩 투여하면 5회~10회 정도의 치료만으로 대부분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가 나왔다. 가끔씩 체해서 오거나 감기 몸살 등으로 오는 두통은 목과 어깨를 풀고 침은 손과 발 배 쪽으로 놓아 체한 것을 풀어주고 몸살이 개선되면 두통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하니 한의원에 오는 두통은 대부분이 치료가 가능했다.그러나 침으로 해결 안되는 경우가 일부 있는데 어지럼증이 기본으로 동반된 두통이나 검사 상 이상은 없지만 두통시 구역질을 하거나 배가 심하게 아픈 경우 두통이 깨어질 듯이 아픈 경우는 목 어깨의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꼭 무조건 한약 처방이 동반 되어야 한다. 어지럼이 기본으로 동반된 경우는 어지럼증을 치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약 처방을 해야 한다. 오령산이나 택사탕 영계미감탕 등 어지럼에 특효가 있는 처방을 환자 상태에 따라 면역력을 높이는 약재들과 함께 투여하면 보통 한 달 안에 탁효를 보게 된다. 두통시마다 구역질을 하거나 깨어질 듯한 통증 특히 여자들 생리 전후로 두통이 심하면서 배가 찬 경우도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한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자궁의 기능을 보해주는 오수유탕이나 당사오탕을 투여하면 수년 혹은 수십년 괴롭혔던 극심한 두통이 몇달안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두통한자 대부분은 적절하지 않은 치료와 진통제 위주로 일시적으로 두통만 누르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처 한의원에 가서 침과 부항 치료 한약 치료를 받아 보면 훨씬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3-05-03

녹색 스웨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며칠 전 옷장 정리를 했다. 작년까지는 철지난 겨울옷을 넣고 봄옷을 꺼내는 수준이었지만 올핸 과감한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라이프까진 아니더라도 안 입는 옷은 눈 딱 감고 버려야겠다고 굳게 마음 다졌다. 작년 안 입었던 옷, 작아 못 입는 옷을 추리고 분류하다가 문득 든 생각. 평소 회색, 감색, 검은색의 무채색 옷을 많이 입는 나였다. 그런데 진초록 블라우스와 면 블라우스, 초록색 긴 치마, 큰 체크무늬 녹색 셔츠, 잔 체크무늬 연록색 셔츠, 쑥색 원피스, 연두색 니트, 녹색 가죽자켓, 검푸른 롱패팅까지 녹색의 옷 참 많다. 내가 이렇게 녹색 계열의 옷을 많이 입었었나 갸웃거리다가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초봄, 수학여행 때 엄마가 사준 녹색 스웨터.집안 형편이 유족했던 3학년 때까지는 옷도 많았다. 철철이 옷 해 입힐 형편이 안 될 정도로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 탓에 나는 3학년 때의 옷을 6학년 때까지 입었다. 6학년 어느 날 아침 전교 조회 시간이었다. 천 명이 훨씬 넘는 전교생이 넓은 운동장에 길게 줄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6학년 6반 이정옥을 부르는 확성기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이 너라며 눈짓하길래 엉겁결에 뛰어나갔다. 조회대 위에 올랐다. 무슨 표창장을 받았다. 그때의 내 심경은 영예로운 상장을 받는 기쁨도 자랑도 아니었다. 오로지 내 옷, 소매 짧은 보라색 옷의 팔 뒤꿈치를 넓적한 갈색 천으로 볼품없이 기운 옷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전교생이 모두 내 팔꿈치만 보는 것 같아 수치심만 가득했다. 전교생의 박수 소리도 비웃음으로 들렸다. 내려와 제자리로 와서도, 교실에서도 내내 부끄러워 슬펐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3년 내내 그렇게 기운 옷을 입거나 소매 짧아 내복이 삐죽 나온 옷을 입은 나를, 최근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도 기억할 정도로 난 가난한 아이였다.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날 저녁, 엄마가 시장의 옷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수학여행비도 어렵게 마련해 줬을 엄마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나는 엄마의 과감한 결심에 다소 의아해했지만 새 옷 입을 생각에 그저 신났다. 당시 유행하는 옷이 내 눈에 띄었다. 친구들이 많이 입고 있는 세련된 패턴의 스웨터였다. 엄마가 그걸 사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암말도 하지 않았다. 새 옷이면 됐지 유행은 언감생심이었다. 엄마가 신중에 신중을 기한 끝에 사준 옷은 녹색 스웨터였다. 목 부분이 흰색 레이스 처리된, 다소 심심한 패턴이지만 엄마가 골라 준 눈물겨운 옷이었다. 엄마는 내친김에 바지까지 골라 주었다. 3년을 입어 구멍이 크게 난 무릎에 더 크게 덧댄 천으로 기운 바지를 입고도 군말없는 딸을 보며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자꾸 눈가가 스멀거린다. 엄마가 옷을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딸에게 어울리는 색깔? 옷의 가격? 옷장의 녹색 옷들을 보니, 아, 난 지금껏 녹색 스웨터를 골라 입힌 엄마의 안목과 선택을 무한정 신뢰하고 있었나 보다. 내일은 초록의 긴치마에 연록색 잔체크셔츠를 입어볼까 싶다.

2023-05-03

어떤 청년들의 시대

이서수 작가의 소설 ‘미조의 시대’는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미조가 어머니와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는 이야기이다. ‘미조’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5천만 원이 있다. 하지만 5천만 원은 2020년대 서울에서 그리 크지 않은 돈이다. 더군다나 괜찮은 집을 구하기엔 더더욱 더. 때문에 ‘미조’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의 낙후된 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그나마 나은 환경을 찾아다닌다.자신들의 터전을 찾아 세계를 헤매는 민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낯익은 것이다. 아마 그 기원을 찾자면 이집트인들의 핍박으로부터 히브리인들을 탈출시키고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맨 모세의 이야기가 시초에 가깝지 않을까. 시초로부터 무한히 반복되어 온 ‘터전 찾기’의 서사. 이러한 서사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나’를 포함한 공동체를 억압하고 핍박하는 타자로부터 해방을 ‘원하고’, 그리하여 모진 수난 끝에 그것을 ‘얻는다’.무언가를 ‘원하고’, 또 그것을 결국에는 ‘얻어낸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서사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얻어낼 것에 대한 필요성과 갈망이다. 얻어내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갈망이 크면 클수록, 서사는 당위를 획득한다. 모세의 민족 서사가 그러한 당위를 획득하는 것은 바로 이집트인들의 도저한 핍박과 수탈이다. 그것이 잔인하게 묘사될수록, 인물의 갈망과 그에 따른 행위는 설득력을 얻는다.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플롯을 드라마나 영화 따위의 미디어물로 만들 때에는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최대한 악랄하게 묘사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이에 대한 가장 정교한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악당들은 자신의 악랄한 의도를 숨기지 않고 말과 표정으로 드러내며, 주인공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행위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과한다. 예컨대 그와 같은 악당의 얼굴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권리인 ‘자유’를 억압하는 타자의 형상이다.하지만 ‘미조의 시대’에서 악당은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인공 ‘미조’는 재개발이라는 수난을 피해 자신과 어머니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떠나지만, 소설은 결코 악당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세의 서사가 이집트인이라는 명확한 타자를 제시함으로써 탈출의 당위성과 목표를 확고하게 드러내주었다면, ‘미조의 시대’는 그러한 타자를 감춤으로써 이 서사를 더욱 도저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소설의 구체적인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도저함은 더욱 구체적이게 되는데, 가령 이들은 모세의 민족과 같이 현실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이들이다. 아버지는 이들에게 5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물려주었지만, 그 돈은 서울에서 이들이 원하는 것을 현실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때문에 둘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낙후된 곳으로 계속해서 흘러간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듯, 그 흘러듦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세상의 속도 속에서 5천만 원이라는 돈이 그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이들은 더 낙후된 곳으로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다. 구체적인 악당이 제시되지 않는 서사 속에서, 이들을 향한 핍박과 수난, 폭력의 역사는 훨씬 교묘하고 저열하게 제시된다. 이집트인의 구체적인 폭력이 자리하던 곳에는 ‘문제는 충분한 돈을 마련하지 못한 자신’이라는 불투명한 폭력과 죄의식이 분출된다. 때문에 핍박과 수난은 이들에게 동기의식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자책감과 무기력함을 불어넣는다. 문제의 원인을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교묘한 폭력이 만연하는 곳.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무대인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최근 어떤 조사에서 30대의 평균 소득이 월 500만원이라는 조사결과를 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월 500만원을 버는 사람이 과연 그토록 흔할까? 그럼에도 이와 같은 조사 결과는 ‘나’에게 닥친 경제적 불행과 그로인한 수난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에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금 ‘네’가 불행한 것은, 네가 평균에도 못 미치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통계와 평균의 마법이 커져가는 빈부격차를 눈속임하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집트인’은 차라리 인간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악행을 자행할 때에도 인간의 얼굴과 표정을 고수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들은 이 모든 불행이 오직 너의 탓이라고 속삭이지는 않았으니까.

2023-05-02

감자수프를 먹는 오전 열 시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능력은 중요하다. /언스플래쉬 “최근 심하게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셨어요?”의사의 말에 고개를 저으려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간 얼마나 무수한 질문에 괜찮다고 답했던가. 특히 직장에서 그랬다. 상사의 무례한 언사를 웃어넘겼고 부당한 요구를 묵묵하게 받아냈다.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응당 피곤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만 입 다물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되뇌었다. 다 이렇게 산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건 유난이라고.“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좋아요.”나는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며 흐흐 웃었다. 몸 여기저기가 망가졌다는 진단을 들으면서도 생판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경련으로 응급실을 들락거리고 염증 때문에 수술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유난인가 하며 스스로를 탓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타고난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원망스럽게만 느껴졌고 내가 어떤 면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문학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오랜 시간 학생으로 머물렀고 세상과 직접 부딪히며 관계 맺는 일보단 책상 앞에 앉아 읽고 끼적이는 시간이 더 길었다. 현실을 살아내려고 하니 몸이 아픈 것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엄살 부리는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가 어려워 보였다.“그런 생각이 병을 깊어지게 하는 주범이에요.”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었다. 다른 생각은 불필요했다. ‘몸이 아프다. 그러니 푹 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사실이었다. 이유를 덧붙이게 되면 그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왜곡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교묘하게 본질에서 벗어나기 마련이었다.특히 어떠한 결과에 따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건강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했다. 능력 이상의 것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막연하게 외치는 것보다 눈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하되 그것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가뿐하게 털어내는 것. 어렵지만 평생에 걸쳐 훈련해야 할 인생의 과제였다.긍정과 낙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많은 것이 술술 풀릴 것이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소설 쓰기의 시작이라고 외쳤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괴로웠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고 스스로가 위선자처럼 여겨졌다. 항상 그랬다. 나를 가장 열심히 괴롭히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올해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겠다고 결심했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아팠던 시간, 나는 나의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을 경험했고 그러한 선의가 늘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평소였다면 침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을 오전 열 시에 노트북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자주 가는 카페에 들러 감자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는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한눈에 봐도 오랜 시간 정성으로 끓인 것이었다. 숟가락으로 떠서 꿀꺽 삼키자 뱃속 깊은 곳까지 따끈따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그리고 기사를 통해 아이돌 가수의 비보를 접했다. 전날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했다. 알 것 같다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 헤매는 감각. 그건 최근의 내 상태와 비슷했다. 두 눈을 감고 그의 얼굴을 그렸다. 상실감은 뱃속을 데워주는 수프의 온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였다. 동시에 햇볕을 머금고 반짝이는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고 초여름이 가까워져 온다는 실감이 들었다.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는 빛과 파도처럼 일렁이는 나무 그늘을 바라봤다.나는 앞으로 몇 번의 계절을 지날 것이며 그때마다 무수히 아프고 슬플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오전 열 시의 찬란함과 온 몸에 퍼지던 감자수프의 온기를 떠올리겠다. 이토록 사소한 하루가 생을 버티게 하는 달콤한 위안이 된다는 것을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2023-05-02

윤 대통령에게 급한 건 ‘통합의 리더십’

심충택 논설위원 극심한 진영대결과 정치양극화가 우리나라 국격과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은 역대급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방외교가에서도 성공적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민주당만은 윤 대통령이 미국으로 출국하는 순간부터 혐오스런 단어들을 동원해가며 꼬투리를 잡고 있다. 출국 당일 “불안과 공포의 한 주가 시작됐다”고 했다가, 대통령이 귀국하자 “텅 빈 쇼핑백만 들고왔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글로벌 호갱외교’라는 신조어를 써 가며 대통령을 조롱했다. 외교성과가 상당히 불쾌한 모양이다. 국가 명운이 걸린 대통령의 외교·안보행위를 민주당은 ‘사기극’으로 규정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미국으로부터 빈껍데기 선언을 배려받고도 감지덕지하는 못난 인간”이라고 비난한 말과 뉘앙스가 비슷하다.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다수결을 이용한 입법폭주도 멈추지 않았다. 간호법과 방송법을 단독 처리하며 연일 사회적 갈등을 조장했다. 간호법의 경우 의사·간호사 간 직역 갈등이 첨예한 만큼 견해차를 좁힐 공론화작업이 긴요(緊要)한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자칫 국가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위기가 예고돼 있는데도 ‘내 알 바 아니다’는 무책임한 태도다.우리나라는 지금 북한의 핵 폭주로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 언제 어디서 교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미·일 동맹관계가 확고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전쟁이 나도 우리를 지원해줄 국가가 별로 없다. 이런 위기속에서도 정국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주당은 오로지 진영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다.각종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많아지는 것은 국민적 피로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위기를 해소할 마지막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방미외교 성과를 국민통합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야당과의 대립을 피하지만 말고, 본인이 적극적으로 대화창구를 찾아야 한다.‘편 가르기 리더십’으로 나라를 망친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사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광온 의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친(親)이낙연계로 분류되는 박 원내대표는 당선 후 이 대표를 지지하는‘개딸(개혁의 딸)’들로부터 비토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함께 민주당 원내 지도부를 만나 국정운영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자연스런 통치행위다.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랫동안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곧 총선공천 시즌이 온다. 지지율을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여당 내에서도 정적(政敵)들이 생긴다. 그전에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외교성과를 거둔 지금이 야당과 만나고 국정난맥을 풀 절호의 찬스다. 민주당도 더이상 국민을 양극단으로 분열시켜 국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민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2023-05-02

팔공산 국립공원, 자랑스러운 유산돼야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이 드디어 이뤄진다. 환경부는 환경의 날인 다음 달 5일에 맞춰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립공원 지정에 앞서 2일 팔공산과 접한 대구시, 경북도 지자체와 국립공원공단 등 9개 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팔공산의 체계적인 보전과 지역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한다. 업무협약에는 팔공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지속 가능한 탐방서비스 제공,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협력사업 발굴 등의 내용을 담고, 팔공산 국립공원 조기 정착을 위한 승격준비단도 출범시킨다.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는 팔공산은 규모(12만6천58㎢)면에서 전국 국립공원 중 14번째로 크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5종을 포함 야생생물 5천296종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다. 자연경관자원 77곳과 국보 2점, 보물 25점 등 문화자원 91점도 보유하고 있다. 갓바위와 팔공산, 파계사 등 전국적 명소를 많이 간직한 산이다.2012년부터 지역 시도의회와 민간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립공원 승격을 제기했으나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는 지주의 반대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 개발이 엄격히 규제되는 반면 국가로부터 인력과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 팔공산의 자연적 가치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된다.우리 지역 최고 명산인 팔공산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문화자산이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구시 지형재 환경수자원국장의 말대로 “자랑스러워 할 유산이 되게 해야”할 것이다.또 국립공원 승격이 알려지면 관광객의 발길도 훨씬 잦아질 것이 전망된다. 현재 연간 방문객 358만명이 486만명으로 증가할 거라 한다. 국립공원 승격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다 하니 자연과 경제가 함께 사는 일석이조 성과다. 오랜 숙원이었지만 늦게나마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것은 다행스럽다. 국립공원 승격을 계기로 팔공산의 가치를 더 다듬고 알려서 전국 최고의 명산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시도민과 각 기관의 애정 어린 관심이 절대 필요하다.

2023-05-02

마약사범과 사형제도

우정구 논설위원 유엔은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이 수치를 넘어서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지가 벌써 7년이 됐다.특히 청소년층의 마약사범 증가율이 폭증하고 있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마약류가 이미 깊숙이 침투해 마약류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여느 때 보다 높아져 있다.검찰이 청소년을 상대로 마약류를 공급하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을 구형하겠다”는 특단 대책을 내놨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 음료 사건이 터진 것을 계기로 사법당국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사법당국의 이런 엄단 의지에 비해 실제적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동안 사법당국이 마약사범은 느는 데 반해 처벌은 솜방망이 정도로 가볍게 처리해왔기 때문이다.마약범죄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는 나라로는 아편전쟁을 경험한 중국과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은 2014년 6월 한국인 마약사범 2명을 자국법에 따라 사형을 집행했다. 우리 정부의 인도적 선처 요청에도 중국 정부는 “마약사범엔 예외가 없다”는 식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싱가포르는 마약을 밀수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는 무관용의 정책을 펴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의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사형을 집행한다. 작년만 마약 밀매범 11명을 사형했고 올해 또다시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사형제 폐지라는 국제적 흐름에도 이들 국가는 마약사범에 대해선 사형제도를 존속을 고집한다. 마약사범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마약청정국으로 가는 길임을 보여준 사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5-02

경북안전체험관이 뭐길래…유치열기 과열

어제(2일) 신청을 마감한 경북종합안전체험관 공모에 경북도내 23개 시·군 중 상당수가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공모신청을 한 시·군들은 주민 수만명의 유치 염원을 담은 서명부를 제출하거나 유치 출정식을 개최하는 등 과열 양상도 빚고 있다. 그만큼 인구 소멸위기를 겪는 경북도내 시·군들이 관광 인프라 유치에 목말라 있다는 반증이다. 종합안전체험관은 재난 종합 안전 체험시설이며, 전국적으로 소방본부 안전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아 체험관 유치 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경북도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330억원을 들여 7천㎡ 규모의 체험관을 지을 방침이다. 공모 신청을 한 각 시·군은 편리한 교통망과 주변 관광자원을 내세우며 유치당위성을 호소하고 있다. 영주시는 유치추진위원단이 지난 1일 경북도청을 찾아 5만명의 시민서명부를 제출할 정도로 유치 염원이 강하다. 포항시는 “체험관은 애초에 포항에 짓기로 했다. 당연히 지진피해지역에 입지하는 것이 맞다”, 경산시는 “경북은 물론 대구와 경남까지 아우르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안동시는 “북부권 인구소멸위기 타개차원에서 도청신도시에 체험관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미시는 산동읍 에코랜드 인근을 사업부지로 정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했으며, 상주시는 편리한 교통과 다양한 관광자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경북도가 체험관 공모를 서두르는 것은 올 하반기에 진행될 행정안전부 공모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경북도는 이달 안에 부지 선정을 끝내고 행안부 공모에 신청서를 접수할 예정이다. 부지는 선정위원회가 구성돼 인구수, 교육수요, 미래가치 등을 지표로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결정한다. 정부에서는 모든 시·도에 종합안전체험관이 1곳씩 있어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정부 공모 선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북과 전남, 대전, 세종시에만 체험관이 없다. 체험관 건설은 국비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북도와 소방본부는 체험관 유치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부지선정 절차가 투명하고 철저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2023-05-02

성취하려면 바꾸지 말아야 한다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영국의 이야기다. 이전 직장동료 부부가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의 관찰과 경험을 기반으로 쓴 책의 제목이다. 수백 년 전통을 가진 대영제국의 나라, 영국은 과거 영광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지만, 아직도 건재한 나라다. 빨리 바꾸는 것이 미덕인 한국인의 눈에는 참 신기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불안해할까 해서 경찰도 뛰지 않는다고 했던가.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출현하는 요즘, 10년 이후의 사업의 지형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하다. 이 급변하는 환경의 와중에도 국가의 미래는 설계되고 또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변화하려면 혁신하려면, 그 지향점을 변경하지 말아야 한다.1999년 봄 새로 과학기술부 장관에 취임한 서정욱 장관이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했다. 취임 이후 출연연구기관들을 방문하고 기관장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시 연구단지 담당 기자 한 분이 출연연구기관의 신진 과학자들과 장관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기획했고, 필자도 그 자리에 초청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 계룡산 자락 도예촌의 한적한 찻집에서 장관과 청년 과학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모임의 모든 대화는 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는데, 오래 잊히지 않는 장관의 말이 있다. “장관이 바뀌었다고 정부 정책이 바뀌면 어떻게 과학기술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내가 장관으로 취임했지만, 전임 장관이 세운 계획은 바꾸지 않고 지속해서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2차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 동서냉전의 시기만 해도 누가 독일의 통일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서독의 통일 과정에서도 바꾸지 않는 것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후 서독에서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권을 바꾸며 수상이 되었지만, 그 기간 동독을 향한 서독의 정책은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서독 정부는 서독의 주민들은 물론 상대방인 동독의 주민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인 주변국들로부터 견고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분단의 상징 베를린장벽은 하룻밤에 무너졌지만, 실제로 통일은 서독 정치인들의 불변함을 통해 수십 년간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정책은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바뀐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5년마다 정책과 목표를 변경하니, 5년짜리 계획만 무성하다. 단거리 스프린트는 잘 뛰는데 장거리 마라톤은 꼴찌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의 명암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동시에 OECD 최고 자살률 국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 동시에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의 국가. 이제 우리 다음 세대에도 자랑스러울 나라의 모습을 꿈꾸고 싶다. 그리고 그 꿈 이룰 긴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고 바꾸지 않아야 한다.바꾸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굳게 방향타 흔들리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바뀌는 환경과 상황에도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힘 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노력이 소중하다.이제 길게 계획하고 바꾸지 말자.

2023-05-02

한시(漢詩)의 매력, 시낭송의 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록의 기지개를 켜던 잎새들이 푸른달 5월이 되면서 연신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산자락이나 청보리 물결 일렁이는 들판엔 온통 푸르름으로 짙어가며 초록의 서사시를 쓰고 있는 듯하다. 종다리도 높이 떠 온종일 지저귀며 봄날을 노래하고, 흐르는 시냇물의 속삭임이나 수양버들 긴머리의 하늘거림도 어쩌면 저마다 봄날을 구가하는 초록 시편이 아닐까싶다. 그에 어울리듯 낭랑한 음색으로 시를 읊고 대금의 연주 속에 시창(詩唱)을 하며 봄날의 흥취를 한껏 누린 시낭송 마당이 간간이 흩뿌리는 빗소리와 함께 낭만과 운치를 더했다.잎새달 4월의 끝자락에 포항시낭송회가 마련한 여덟 번째 ‘시(詩)가 흐르는 뜨락(시뜨락)’은 이색적으로 열렸다. 한시(漢詩)와 자유시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음풍농월과 생활한시를 창작하며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한시인(漢詩人)을 초대해 한시 이야기를 나누고, 한시와 한역시, 자유시 등을 낭송하며 시창으로도 부른 다양한 시 나눔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하고 어려운 한시를 쉽고 친근하게 각색하여 흥미와 감동을 더한 시낭송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한시가 이토록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누릴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래(古來)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지어지고 한글 창제 이후로도 조정이나 민간에서 두루 창작, 통용되었던 한시는 한국시가에서 뗄 수 없는 뿌리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다. 한시는 근체시(近體詩)는 물론 고체시(古體詩)라 하더라도 정형시(定型詩)에 가깝지만, 형식의 묵수(默守)가 아니라 엄격한 정형률이 요구되는 율격과 함축성으로 인하여 자유시에서 구현된 ‘자유’를 정형적인 틀 안에 충분히 들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다고 본다. 한시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 있다고 본다.그러한 한시를 자유시처럼 능숙하게 구사하고, 또 한국 현대시를 율격에 맞게 한시로 옮긴다는 것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좋은 시가 영시(英詩)로 옮겨지듯이 한역시(漢譯詩)로도 출판된다면, 한자를 아는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시를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그만큼 학문의 영역은 두루 통하고 우리 시와 한시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초록빛 담쟁이에 빗방울이 어리고 알록달록 우산 속에서 목소리가 피어나는 뜨락에서의 시낭송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에 봄날과 어울리는 동요 메들리 아코디언 연주와 그윽한 곡조를 타고 흐르는 대금 가락은 시와 음악의 경계가 없는 절묘한 하모니로 여울지는 듯했다.강호는 넓고 좋은 시는 많다(江湖廣大好詩多)고 언급한 초대시인의 말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는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 아닐까 싶다. 아무쪼륵 시뜨락 같은 시 나눔 문화행사가 활성화되어 현실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시와 낭송이 따스한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2023-05-02

아낌없이 주는 아까시나무

홍석봉 대구지사장 아까시의 계절이다. 시골 길 차창 밖으로 아까시나무 흰 꽃이 산등성이를 감싸며 펼쳐졌다. 창을 열자 진한 꽃향기가 온 몸을 스친다.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알고 있는 나무는 사실은 아까시나무다. 아까시나무의 꽃은 5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 6월까지 향기를 뿜어낸다. 아까시나무 꽃이 피는 시기는 본격적으로 비가 오는 시기다. 산불 발생이 줄어드는 시작을 알려 산림 공무원들이 가장 반긴다.미국이 고향인 아까시나무는 19세기 말 국내에 들어왔다. 일제 강점기 때 산림녹화와 목재 및 땔감용으로 심었다. 번식력이 강해 묘지 주변에 뿌리내리면 제거가 어려워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한 산림을 복원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전형적인 콩과 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시켜 준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아까시나무 꿀은 양이 많아 대표적인 밀원수(蜜源樹)다. 한 때 우리나라 나무의 10%를 차지했다. 국내 꿀 생산의 70%를 담당했다. 화력이 강하며 연기가 적어 땔감으로 적합하다.목재로도 쓸 만하다. 내구성이 좋아 공사장 방벽이나 받침목 등의 자재로 사용된다.아까시나무 꽃과 뿌리껍질은 약재로 사용된다. 이뇨, 소염과 항염증 성분이 함유돼 있다. 붉은 꽃이 피는 원예종은 관상용으로 인기다.30년생 아까시나무는 1㏊당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연간 약 13.8t으로 국내 나무 중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상수리나무(14t)와 비슷하다. 꿀벌의 고장 칠곡군은 아까시나무로 친환경 상패를 제작, 보급하고 있다.아까시나무는 이렇듯 환경친화적이다. 꿀과 향기, 각종 자재까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사람에게 준다. 고맙기 짝이 없는 나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01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가정의 달

가정과 관련한 행사가 많아 5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일은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이자 성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또 27일 부처님 오신 날까지 끼어있어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도 다른 달보다 많다.가정의 달 5월은 계절적으로도 온화해 지역마다 각종 축제가 풍성하게 열린다. 각 가정은 가정의 달 기념행사를 하랴, 가족과 함께 축제 구경도 가야 하는 등 돈 들 일이 많아 가계비 지출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의 달이 있기에 떨어져 지내는 부모님과 형제도 만나볼 수 있고, 가족 간의 끈끈한 정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값진 의미가 가정의 달에는 있다.가족은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가정이 건전해야 사회가 옳게 발전하고 국가도 부강할 수 있는 것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미는 모든 것이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다.하지만 우리는 바쁜 현대사회에 산다는 이유로 가족과 가정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특히 현대 사회가 낳은 핵가족화 현상이나 일인가구 증가 등 가족형태의 변화와 개인주의의 발달로 가정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자주 등장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증가하는 가정 폭력이 그렇고, 빈발하게 발생하는 아동학대나 노인학대 등도 우리의 가정이 튼튼하지 못해 빚어진 사회문제다.가정의 달은 현대사회에 투영된 오늘날 우리 가정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약해진 가족간의 유대를 다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존중하고, 부부간에는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들도 이런 기회에 돌아보고 관심과 배려를 하는 시간이다.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가족 간에는 물론이요 이웃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가족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행복 공동체라는 가정을 위해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욱 분발 노력하는 달이 되어야겠다.

2023-05-01

시·군버스 보조금 집행내역, 철저하게 점검을

경북도내 시·군에서 시내버스회사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어 ‘돈 먹는 하마’취급을 받고 있다. 포항시를 예로 들면, 시내버스 재정지원금이 2018년 134억7천800만원에서 2022년 358억5천300만원으로 5년 만에 무려 166% 증가했다. 경주시도 비슷하다. 2018년 77억원이던 시내버스 재정지원금이 2022년 184억8천만원으로 5년새 110억가량 늘었다. 매년 22억원 정도 증가하는 추세다. 구미시는 시내버스 회사 2곳에 대해 2021년 31억4천400만원, 2022년 33억9천300만원을 지급했다. 1년새 보조금이 2억5천만원 더 늘어났다. 경북도가 도내 시·군지역 등을 운행하는 시외버스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도 2019년 171억3천만원에서 2022년 200억원으로 증가했다. 경북도와 일선 시·군에서 시외버스나 시내버스 회사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은 대부분 비수익노선 적자보조금이다. 농어촌지역의 경우 승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읍면지역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필요하기 때문에 버스회사에 적자 보전을 해 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2020년부터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승객수가 대폭 줄어 적자폭이 더 커졌다.농어촌지역 시외버스나 시내버스 비수익노선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민세금이 투입되는 보조금이 투명하게 지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행내역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최근 감사원이 포항시를 대상으로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시내버스 보조금 지원 실태를 감사한 결과, 시가 버스회사에 유리하게 차량 감가상각비를 중복 계상하도록 해 4년간 47억6천만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시내버스 회사가 임의로 감차 운행했음에도 실제 운행가동률을 가감하지 않아 14억8천만원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타 시·군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리사례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도와 각 시·군은 시외·시내버스 재정지원금 지급과정에서 불법·특혜 행위가 없었는지 철저하게 확인해 보길 바란다.

2023-05-01

클뤼니 수도원교회와 로마네스크 건축의 발달

10세기에서 11세기로 넘어갈 무렵 중세 유럽 사회에는 봉건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봉건제도는 토지를 매개로 주군과 봉신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토대로 형성된 사회제도이다. 봉건제는 넓은 땅을 소유했던 대지주들의 권력을 강화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토지를 소유했던 교회와 수도원의 세속적 영향력 또한 강화시켰다. 중세의 성직자들에게는 많은 사회적 특혜가 주어졌다. 이들은 지식을 독점했고 세금이나 노역을 면제 받았다. 교회에 대한 이 같은 특권은 종교적 기강 약화를 비롯해 여러 부작용들을 야기했다. 결정적으로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겼다. 수도원 건립을 위해 토지를 제공해 준 영주들이 수도원 운영에 지나친 간섭을 행사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 졌다. 모든 권력은 권력의 속성상 부패하게 되어 있다. 이때도 그랬다. 부패한 종교권력과 부패한 세속권력이 온갖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싸고 충돌했다.종교의 본질이 오염되어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수도원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그 불씨를 당긴 사람은 아키텐느의 공작 기욤이다. 그는 세속권력의 개입 없는 수도원 설립을 위해 자기가 소유했던 땅을 수도사들에게 내주었고 이렇게 지어진 것이 클뤼니 수도원이다. 910년 문을 연 클뤼니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율을 엄격하게 지켜 진실된 예배와 경건한 삶과 구제의 실천을 강조했다. 클뤼니의 신앙회복 움직임은 불길처럼 번졌다. 가장 번창했을 때에는 이곳에 속한 수도원이 무려 천 이백여개, 수도사들의 수가 이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많은 수의 수도사들이 클뤼니로 몰리면서 수도원 교회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어 981년 첫 번째 확장 공사가 시작된다. 엄밀히 말해 확장공사라기 보다는 보다 큰 규모로 신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렇게 두 번째 지어진 클뤼니 수도원 교회를 미술사에서는 편의상 클뤼니 II라고 부른다. 클뤼니 II는 장방형의 라틴십자가 구조를 가진 3랑식 바실리카로 지어졌고 회중석과 내진(內陣) 사이에는 익랑(翼廊)이 마련되었다.신축을 통해 넓은 공간이 확보되었지만 그 역시 충분하지 않아 다시 한 번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1089년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지어진 세 번째 교회를 클뤼니 III라고 부른다. 클뤼니 III에서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크기가 커짐에 따라 건축의 세부 구조에도 큰 변화를 보이는데, 우선 3랑식 이었던 클뤼니 II에 두 개의 측랑이 추가되어 5랑식이 바실리카가 되었다. 천장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다. 원래는 신랑과 측랑 모두 평평한 나무 패널이 천장을 덮고 있었는데 세 번째 클뤼니 교회의 측랑에는 교차형 궁륭(Cross Vault)이 나타난다.또한 클뤼니 II는 하나의 익랑을 가졌으나 클뤼니 III에서는 익랑 하나가 더 설치되었다. 두 개의 교차랑 상단부 그리고 아래쪽 익랑의 바깥부분 상단에 각각 팔각형의 첨탑이 올라갔다. 건축 구조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후진의 외벽에 다섯 개의 소예배당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진과 후진사이에 지나다닐 수 있는 주보랑(周步廊)이 생겼다.클뤼니의 수도원 개혁운동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유럽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클뤼니 III에서 보여주는 건축적 구조는 프랑스 지역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건축 그리고 더 나아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일 드 프랑스(le-de-France)지역에서 고딕 건축이 발달하는데 중요한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클뤼니 교회는 1790년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확산되는 가운데 완전히 파괴되었다. 한때 가톨릭 세계에서 가장 웅장함을 뽐냈던 클뤼니 수도원 교회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폐허로 변한 옛 흔적들이 을씨년스럽게 과거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미술사학자

2023-05-01

유배길에서 스스로에게 되새긴 ‘중꺾마’

요즘 유행하는 대부분의 신조어와 줄임말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 뜻과 유래를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추측조차도 어려운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중꺾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는데, 힘들거나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때 이 말을 많이 쓴다고 한다. 순간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아갈 때 어울리는 말이지만, 삶의 전반을 두고 보더라도 이 말은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다.경북 의성 출신의 고송(孤松) 신홍망(申弘望·1600~1673)은 1639년(인조 17) 40세 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1652년(효종 3) 7월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어 부임했는데, 당시 이시매라는 인물이 올린 상소를 두고 취했던 행동이 발단이 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다. 사건의 정황은 다소 길고 복잡하다. 그러나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이시매의 상소 내용에 선현(先賢)을 모욕한 표현이 있어 논란이 일었고, 이에 대해 신홍망이 분개하면서 일반적인 상소 처리 규정을 따르지 않고 독단으로 임금에게 논계(論啟)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신홍망은 사간원의 논박을 받고 파면당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중앙에서는 이 논란이 종식되지 않고 지속되면서 결국 유배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 곧 ‘장사일록(長沙日錄)’이다. 일기는 압송이 시작되는 1652년 10월 9일부터 시작해서 해배되어 집으로 돌아온 12월 21일에 끝이 난다. 일기 앞부분에 본인의 유배 경위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신홍망은 당시 사건을 스스로 이렇게 기록했다.“나는 평생에 다른 재능은 없고 다만 ‘삼가고 조심함(愼重)’을 첫 번째 공부로 삼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언관(言官)의 직책을 맡게 되어 이시매의 상소문에서 선현을 욕보이는 도리에 어긋난 말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리치고 나서서 독단으로 논계했고, 위로 성상의 위엄을 범해 끝내 먼 변방으로 귀양 가는 화를 당하였다.”- 신홍망의 ‘장사일록’ 중에서신홍망은 자신이 독단으로 계문을 올리려고 할 때 동료가 성급함을 지적하며 만류했던 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동료가 이시매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굳게 만류하면서 ‘그대는 이미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라 있소. 듣자니, 이조(吏曹)에서 내일 정사(政事)를 열어 그대를 교리(校理) 제1후보로 추천하려고 한다는데, 어찌 성급하게 처신하려 하시오? 이 계문(啓文)이 한 번 나가고 나면, 벼슬길은 여기서 막힐 것이오.’라고 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세상의 영욕(榮辱)은 정해진 몫이 있는데, 내 어찌 얽매여서 끌채 밑의 망아지같이 행동하겠소?’라고 하고, 피사(避辭)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를 청하는 것를 먼저 제출한 후 잇달아 탄핵 상소를 올렸다. 독단으로 계문(啓文)을 올리는 것이 규정을 벗어나는 일임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부득이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신홍망의 ‘장사일록’ 중에서신홍망은 유배형이 떨어져 유배길에 올랐지만 한성으로 압송되는 도중 감등부처(유배지의 등급을 낮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대신들이 부처환수(유배형을 거두어들이는 것)를 지속적으로 요청하였으나 효종이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 등 조정에서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홍제원에서 명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평해로 유배지가 결정되었고, 신홍망은 서둘러 한성에서 평해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이 몸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아득히 먼 하늘 끝, 땅 모퉁이에 떨어졌는가. 답답한 마음 누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먼 변방 벽동(碧潼)으로 귀양가는 것에 비하면, 비록 남방 외진 고을의 음습한 바닷가라도 목숨은 보전할 수 있을테니 다행이다. 불행한 고비가 닥치면 사람이 피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군자는 거처함에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편안하게 여길 것이니 어찌 귀양살이의 괴로움이 나의 마음을 얽어맬 수 있겠는가.”-신홍망의 ‘장사일록’의 일기 중에서신홍망은 스스로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이 사건에 휘말려 유배까지 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곧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 미래를 알 수 없었기에 신홍망은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 괴롭고 복잡한 마음을 표출했다. 식구들이 슬퍼할 때, 유배형이 확정되었을 때, 유배지를 향해 이동할 때 마음이 울적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외부의 시련에 자신의 신념이 꺾이지 않길 바라면서.

2023-05-01

삶의 주위에 책이 있어야

김규인 수필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와 경쟁하듯 빠름을 추구하는 인터넷은 가뜩이나 낮은 독서율을 더 끌어내린다. 그렇지 않아도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만 듣는 책 읽지 않는 자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독서율이 낮아도 너무 낮다는 데에 있다.책을 읽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텔레비전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우리의 시간을 너무나 쉽게 빼앗는다. 넷플릭스나 각종 OTT 플랫폼은 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잠시도 쉴 틈이 없을 만큼 다양한 게임과 볼거리, 흥밋거리를 제공한다.하루에도 쏟아지는 정보가 얼마인가. 날아드는 수많은 정보를 감당하기도 힘이 드는데 책까지 읽으라고 하면 무리인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책만을 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상황을 챗GPT에 물어보면 무어라고 답할까.과학기술의 발달은 너무나 속도가 빨라 따라가기도 버겁고 잠시만 한 눈을 팔면 뒤처지고 만다. 이것을 만회하려면 ‘빨리’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쁜데 베짱이처럼 책을 읽으라면 무리가 될까. 돌아보면 노을을 언제 보았는지 까마득한데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사치처럼 들릴지도 모른다.그러면 책을 읽지 않고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챗GPT가 활개를 치는 세상에 책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우리는 챗GPT의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든 문명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기본적인 삶의 진리는 깨달아야 한다.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좋은 점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냥 책을 펼쳐놓으면 저절로 읽히지 않는다. 글을 읽으며 생각하고 손은 책장을 넘겨야 한다. 삶은 늘 그렇지만 능동적인 행동을 통하여 얻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논리보다 감각적인 디지털 자료는 순간순간 쉽게 읽히고 그냥 지나친다. 나타내는 방법이나 표현은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개인이 무분별하게 자료를 올림으로써 틀리거나 해를 끼치는 자료도 많다. 언제나 수동적인 생활을 강요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책은 액면적인 가치만을 탐하거나 순간적인 생각에만 머무는 것을 막는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연속된 삶 속에 우리를 둔다. 책은 필요한 것만 가져다주는 디지털이 아니라 삶의 기본을 보여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한다.일회적인 물질문명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쳇GPT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될지라도 이를 조정하는 자는 늘 사람이기를 바란다. 인류의 지식을 간직한 책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잘 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삶의 주위에 책이 있어야 한다.

2023-05-01

AI는 글쓰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최근 챗GPT(ChatGPT)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흥미로운 사용 경험들이 공유되고 있다. 길고 복잡한 내용도 기가 막히게 요약해준다거나 매우 편리한 검색엔진처럼 활용했다는 식의 짧은 감상부터 그럴듯한 소설을 써냈다는 후기, 율격을 갖춘 한시(漢詩)를 짓더라는 후기까지. 작업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사용 경험도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졌던 일들을 인공지능이 해내고 있다는 놀라움이다.사실 이러한 놀라움은 알파고-이세돌 대국이 불러일으켰던 충격의 연장선상에 있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세계 최정상급 기사인 이세돌 9단과 총 5판을 대결하여 4번 승리하였다. ‘바둑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종목’이라는 전제가 깨진 것이다. 이제 바둑과 같이 복잡한 사고와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교육 현장에서는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대중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글쓰기 과제물의 경우 학생이 직접 쓴 것인지, 아니면 대화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생성한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과제물 작성에 챗GPT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윤리서약을 받기도 한다. 만약 대화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생성한 응모작이 문학 공모전에서 입상한다면?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이 쓴 소설과 사람이 쓴 소설을 완벽하게 구별하는 것이 가능할까?물론 아직까지 대화형 인공지능에는 허점이 많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학습과정 자체가 사회문화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주제에 대해 질문할 경우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마치 ‘답변 강박’에 걸린 사람처럼 보유한 데이터를 조합해서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글을 만든 정조대왕의 업적에 대해 말해줘”라고 명령하면 챗GPT는 “한글을 만든 정조대왕은 조선시대 22대 군주입니다. 그는 국가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이라는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라고 답한다.반면 대화형 인공지능이 새롭게 발명된 유용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긴 글을 요약하는 것처럼 비교적 단순한 작업은 대화형 인공지능의 주특기이다. 나아가 어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화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모든 글쓰기는 ‘메타적 글쓰기(meta writing·글쓰기 자체에 대한 글쓰기)’이자 비평이라고 볼 수 있다.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해당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한 언어로 제시하는 과정, 완성된 결과물을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대화형 인공지능은 ‘피노키오’의 말하는 귀뚜라미처럼 우리의 ‘외장형 양심’이자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