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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창용의 넥타이와 진달래꽃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초겨울에 피었다. 절기상으로는 입동도 지났고 소설도 지났다. 그래서 연분홍색 봄꽃은 아니다. 검은색의 캘리그래피 디자인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던 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넥타이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넥타이는 메시지 전달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연한 녹색 넥타이를 맸다. 무난함과 차분함을 대변하는 색상이었다. 10월 12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때는 주황색 넥타이를 맸다. 한은 총재의 넥타이는 붉은 계통이면 금리 인상을, 푸른 계통이면 금리 동결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지난달 24일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검은 색깔의 시구가 적힌 넥타이를 선택했다. 이날 기준금리는 3.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상됐다. 이 총재의 검은색 글자 넥타이는 금리 인상의 시그널로 해석될 수도 있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진달래꽃이 붉은 계열의 분홍색이기 때문이다.‘진달래꽃’ 시가 쓰여진 넥타이가 이자 부담을 겪고 있는 대출자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이냐고 기자가 물었다. 이 총재는 “제가 좋아하는 넥타이를 매고 나왔는데, 그 해석이 더 좋아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경제적으로 위로를 주는 시로 읽히고 있다니 주제의 확장성이 놀랍다. 하긴 김소월의 또 다른 시 ‘엄마야 누나야’에 나오는 “강변 살자”란 표현이 서울 강변의 아파트 마케팅에 사용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문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위로를 줄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족뿐만 아니라 빚투를 안 하다가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도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금리 인상의 늪에 빠진 영끌족과 내 집 마련의 꿈을 상실한 벼락거지 사이에서 적정한 집값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진달래꽃 넥타이가 등장한 지 3일 만에 한국은행은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를 공개했다.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72명 중 53.8%가 1년 이내에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했다. 금융시스템 위기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위험 증가’(27.8%)였고,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과 상환부담 증가’(16.7%)가 그다음이었다.경제 위기는 블랙 스완이나 회색 코뿔소 등으로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을 끈 진달래꽃 넥타이 시그널에서는 위로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지금은 서민들이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 생존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때이다. 그러면서 위로를 전해야 참된 위안의 메시지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2022-11-30

이제는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겨울철을 맞아 우크라이나 전기시설을 노린 러시아의 미사일이 쏟아진다.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민간인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전기도 물도 공급받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로 만든다. 민간인의 삶을 통째로 구렁텅이로 밀어 넣겠다는 생각인지. 전쟁의 잔혹함을 행동으로 보여준다.전쟁으로 삶의 터전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점령지 주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음식물을 빼앗는다.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성폭행하고 죽이기도 한다. 전쟁이 쓸고 지나간 곳은 폐허로 변한다. 특히 이번처럼 민간인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는 경우는 드물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에 쫓기면서 복수라도 하듯이 민간인을 향한 화풀이가 도를 넘는다.역사를 돌아보면 이웃과 친한 나라는 없다. 힘이 강할 때는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힘이 약할 때는 침략당한다. 침략의 역사가 현재에 가까울수록 적대감은 더하다.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기를 쓰며 이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침략당한 나라는 모든 것을 잃는다. 영토도 문화도 국민마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가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마음은 절박하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한순간에 달려있다.전쟁이 군인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군인이 민간인을 향하여 무기를 겨눌 때 이는 범죄가 된다. 민간인을 향하여 쏘아대는 미사일이 언젠가는 쏜 곳을 향하여 돌아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언젠가는 전쟁은 끝날 것이고 누군가는 전쟁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누가 민간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지.전기와 난방을 위한 연료와 식수마저 끊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뒷걸음질을 치는 러시아 사이에 이번 겨울은 중요하다. 서로 전쟁을 종식해야 할 시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더는 피폐한 국민의 삶을 외면할 수가 없고 러시아는 더 이상 싸울 병사도 무기도 넉넉하지 않다. 서로를 위해 전쟁은 그만두어야 한다.전쟁을 지켜보는 지구인들의 마음도 편하지 못하다. 굳건한 지원을 하던 미국은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잃었고 유럽 연합국은 추위가 다가오는데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로 휘청거린다. 두 나라의 전쟁으로 세계인들은 높은 물가에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세상 사람들은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맞을 것 같다.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사람의 목숨보다 더한 이유는 없다. 지금 쌓은 죗값만 하더라도 남은 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의미 없는 싸움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싸움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추운 겨울날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을 이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평생 가슴에 박힌 전쟁의 파편으로 괴로운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많다.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누가 이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얼마나 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야만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는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2022-11-30

‘한국의 골드코스트’ 꿈꾸는 경북 동해안

경북도가 그저께(29일) 동해안 관내를 호주의 ‘골드코스트’와 같은 세계적 해양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내년에 ‘해양레저선박·장비 산업육성 계획’을 수립해 오는 2032년까지 6천억원을 투입,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회는 이를 위해 지난달 3일 ‘경북 해양산업 육성 지원 조례’를 개정했다.경북도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분야는 △레저선박·장비 산업기반 조성 △레저기업·전문인력 양성 △레저산업 활성화다. 이를 위해 레저선박과 장비기업 지원에 50억원, 실증과 인증체계 구축에 1천600억원, 교육과 전문인역 양성에 150억원, 해양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4천억원을 투입한다. 경북도는 동해안에 해양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되면 레저선박과 장비의 대여·유통·판매 등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신규 일자리도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는 동해안에 레저선박지원센터도 설립, 국제보트쇼 등을 개최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해양레저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해양레저선박과 장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도 이에 대한 산업적 가치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육성계획은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해안을 낀 경북도가 부가가치가 높은 해양레저선박·장비 산업에 뛰어든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동해안의 중심도시인 포항은 영일만을 가운데 두고 204㎞의 해안선을 따라 주로 수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도시다. 그동안 해수욕, 바다낚시 등으로 해양관광이 한정된 감이 있지만, 앞으로 포항만의 차별화된 해양관광 프로그램을 발굴하면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곧 해양관광의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마리나산업(크루즈, 요트, 윈드서핑, 패러세일링, 스쿠버다이빙, 잠수정)이 주목을 받을 날이 온다. 특히 해양레저분야 산업은 관련업체뿐 아니라 수리·부품업체,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쇼핑센터, 숙박시설까지 연계된 산업이어서 미래가 밝다.

2022-11-30

경북 반도체 육성위 가동에 거는 기대 크다

경북도가 구미지역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지난 29일 경북도는 ‘경북 반도체산업 초격차육성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구미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장호 구미시장, 백홍주 원익큐엔씨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반도체 특화단지 구미지역 유치와 함께 경북지역 반도체산업 육성에 총력을 쏟을 것을 선포했다. 정부는 다음 달 공모절차를 거쳐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 나선다. 경북 구미시를 비롯 인천, 광주 등 전국 많은 지자체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나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최고의 경제 아이템이다. 미국을 비롯 우리도 경제안보의 1순위로 반도체를 꼽고 있다. 반도체가 세계 경제패권을 주도할 것이라데 이의가 없다. 지역마다 장점을 내세워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나선 것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로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구미가 오랜 전통의 전자산업을 배경으로 반도체산업 육성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나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를 낙관할 입장은 아니다.구미가 가지고 있는 반도체 관련 인프라와 연관지어 정부가 목표하는 반도체산업 육성에 맞는 전략을 잘 구사해야 한다.정부는 첨단전략기술 보유 여부, 산업생태계 성숙도, 기반시설, 전문인력 확보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할 예정이다.구미시는 국내 전자산업 최대의 수출단지로 성장한 도시다. 첨단기술분야의 좋은 생태계도 보유하고 있다.대구, 포항, 울산 등과 삼각협력체제를 구축한다면 반도체산업 육성과 인력 양성에 최적의 입지가 될 수 있다. 인근에 신공항이 들어설 계획까지 있어 수출전진기지로서도 적합하다. “구슬도 잘 꿰어야 보배”라는 것을 교훈으로 좋은 환경과 입지를 묶어 이번에는 반드시 구미가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미지역이 특화단지로 지정된다면 윤석열 정부가 구상하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야 한다. 초격차육성위의 사활을 건 분발을 촉구한다.

2022-11-30

중부선 철도 허리 잇기

홍석봉 정치에디터 경북도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중부선 문경~상주~김천 연결철도 건설이 지난 28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통과했다.당초 비용대비편익(B/C)이 낮아 예타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철우 도지사가 발로 뛰었다. 기재부 재정사업을 평가하는 SOC분과위원회에 참석, 문경~상주~김천 구간의 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중부선 내륙철도는 반쪽짜리 철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지방시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철도건설이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함으로써 예타를 통과할 수 있었다.그동안 많은 SOC사업이 경제성 부족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문경~상주~김천 연결철도는 낮은 경제성 예측치에도 불구하고 이철우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 및 단체장과 주민 등이 똘똘 뭉쳐 탄원서를 제출하고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사업추진의 당위성을 호소한 결과 중앙부처와 관계기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결국 정성을 다한 지역민들의 염원이 반쪽자리 철도를 온전하게 만들었다. 국토 대동맥 철도SOC는 국토균형발전의 주축으로 사람과 물자를 대량수송할 수 있어 물류비용을 절감시키고 지역간 활발한 교류는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철도 단절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철도단절로 인해 내륙 속의 섬 형태로 남았던 곳이 바로 중부선 문경~상주~김천 미연결구간이었다.중부선은 문재인 정부때 김천~거제 구간이 예타를 통과한데 이어 이제 서울~김천~거제까지 국토 중심부를 관통하는 기간망 철도로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됐다. 상주·문경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경북도와 지역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30

대입제도, 어찌해야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의 교육은 대학입시가 망친다.’ 공교육이 유치원, 초등과 중등교육을 잘하고 싶어도 대학입시가 버티고 있어 힘들다고 한다. 학교는 치열한 경쟁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지만, 대학입시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선생님은 친구들 사이에 화목하길 원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점수싸움의 늪으로 빠져만 든다. 아름다운 공동체적 가치를 가르치고 싶어도 수능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의 벽 앞에서 경쟁적일 수 밖에 없다.수능이 방금 지나갔지만 학원가에서는 벌써 특정대학 어느 학과에 들어가려면 수능점수 몇 점이 필요하다는 둥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경쟁과 눈치싸움으로 몰아세운다. 대학숫자가 많이 늘고 인구절벽으로 학생숫자가 대폭 줄었지만 대입의 현장은 수십 년 전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공교육과 대입현장의 부조화를 교육당국은 인지하고 있는지.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까.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버젓이 있으면서 대학입시가 빚어내는 사회, 문화, 교육적인 문제와 현상에 대하여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회적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데는 교육계의 반성과 함께 국가적인 숙고가 있어야 한다.대입제도와 시스템이 국가 공교육의 지향점에 도움이 되기보다 다소라도 방해가 된다면 이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히 조정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장래와 교육의 앞날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가 제안하고 시민과 학생이 폭넓게 참여하는 국민토론이 일어나야 한다.나라 안에 ‘교육을 위한 담론’이 태부족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구호일 뿐 누구도 교육이 세워 올릴 백년을 고심하지 않는다.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가 많아서라는 핑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나라의 미래를 담보해야 할 교육을 등한시하는 사회는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국민을 길러낼 뿐이다. 따뜻하고 풍성한 교육담론을 공교육이 수다히 만들어 열심히 운영하면서도 거대한 장벽 ‘대학입시’와 함께 만사가 물거품이 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두고 볼 터인가. 선구자 한 사람이 제창하여 해결할 문제도 아닌 바에야, 국가적인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회적인 담론을 일으켜야 한다. 나라가 풀어야 할 필수과제임을 인식하고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우선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대학은 어떤가.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면서 온라인과 비대면교육을 경험하였다. 대학 강의실의 존재이유와 연구개발과 지식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터이다. 대학으로 들어오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나라의 교육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도 공적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하기 어렵다.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대학입시 제도개선에 임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1-30

‘아들’이 아닌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2022 한국프로야구 MVP에 등극했다. 타격 5관왕에 오르면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으니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이정후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만 잘한 게 아니라서 더 경악스럽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더니 6년 연속 3할, 최소경기 1천 안타 등 놀라운 기록을 여럿 달성했다.실력만 좋은 게 아니다. 치열한 승부욕과 근성, 철저한 자기관리, 겸손한 성품, 잘생긴 외모까지 갖췄다. 이정후만큼 팬서비스를 잘하는 선수도 없다.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 팻말을 든 관중에게 정확하게 홈런 공을 날린 ‘홈런 배달’은 만화에서나 볼 법한, 가슴 설레는 낭만이었다. 행운을 차지한 두 여성팬에게 사인은 물론 좌석 업그레이드에 야구 배트까지 선물했는데, 그 팬서비스로 인해 야구팬이 적어도 10만 명은 늘었을 것이다.이정후가 MVP에 오른 건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이어 부자(父子)가 MVP를 수상한 유일한 사례로 세계 야구사에 기록됐다. 아버지는 데뷔 2년차인 1994년, 한국야구의 영원한 전율로 감각될 신화를 썼는데, 4할 200안타 100도루 20홈런에 도전하면서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8년이 지난 후 아들 역시 25세 시즌에 신화를 썼다.“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다. 이름이 곧 ‘야구’인 전설적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아버지는 야구만큼은 절대 시키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몰래 엄마 손을 잡고 초등 야구부에 등록한 날부터 이정후의 야구는 ‘홀로서기’이자 ‘아버지 넘기’라는 험난한 여정이 됐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평생 ‘이종범 아들’로 남을 것을 알기에, 아버지는 그 어떤 기술적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야구부 감독에게 전화 한 통도 안 했다. 그런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겠지만, 어린 소년은 ‘이종범’이라는 짙은 그림자를 혼자 힘으로 벗어나서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됐다. 시를 빌리자면, 이정후의 야구 인생은 “나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가 되겠다”(이경교, ‘에게해’)는 대서사시를 지나온 셈이다. 가난 극복이라는 뚜렷한 동기가 있던 이종범보다 세상의 주목과 기대를 넘어서야 했던 이정후의 싸움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지젝은 오늘날 부성적 권위의 쇠락에 대해 “아버지는 더 이상 자아 이상으로서 지각되지 않으며, 그 결과 주체는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근대의 수직적 가부장제, 거대담론, 근대적 제도들이 힘을 잃어버린 오늘날엔 ‘아버지’라는 대상 자체가 상징적 위엄을 가지지 못하므로, 깨뜨리고 넘어서야 하는 기성의 체제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근대적 자아 이상을 지각할 수 없는 주체들은 ‘아버지 극복’을 통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지젝의 견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 아들이 교수가 됐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제 도움으로 의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만31살에 조교수가 된 셈입니다. 이제 집안에서 O교수라고 부르면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모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자랑하려다가 혹 붙였는데, 아버지의 논문 다수에 아들이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알려지며 특혜를 의심받았다. 오늘날 아버지다운 아버지, 아들다운 아들이 있긴 한가? 아버지들은 아들을 하룻강아지로 키운다. 아버지를 넘지 않아도 아버지가 가진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세습과 상속의 시대다. 고슴도치 아버지들, 또 아빠 찬스에 기대는 정신적 젖먹이들은 이정후의 성장서사를 학습해야 한다.글을 맺으며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정후가 거둔 성공은 스스로 알을 깨려는 부단한 노력과 아버지의 무심한 듯 세심한 훈육이 줄탁동시(5550啄同時)를 이룬 결과이지만, 이 놀라운 신화에는 ‘바람의 며느리’ 정연희 씨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아들과 아버지만 주목할 때, 정연희 씨는 소유격 조사 ‘의’에 스스로를 질끈 동여매고 ‘이정후의 어머니’로, ‘이종범의 아내’로 살았다. 그 덕분에 아들은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될 수 있었다. 부모는 결국 자녀에 의해 완성된다면, 정연희 씨는 위대한 어머니다. ‘아들’을 벗고 마침내 진정한 자기 이름을 얻은 이정후가 이제는 ‘정연희의 아들’로 불려도 된다.

2022-11-29

시지프스의 돌 그리기

최근 각종 취미개발 플랫폼에서 오일파스텔을 활용한 수업들이 많이 보인다. 미술 재료 도구 중 하나인 오일파스텔은 파스텔의 한 종류로, 크레용과 파스텔의 중간 정도 질감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파스텔에 왁스나 기름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기존 파스텔보단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그려지며 특유의 촉촉하면서도 매끄러운 질감 표현 덕분에 그리는 재미가 크다. 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크게 필요치 않고, 물이나 팔레트 등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장소든 간편하게 그릴 수 있단 장점이 있다. 덕분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미술 입문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재료기도 하다.오일파스텔은 기존 파스텔보다 단단하고 가루가 없으며, 입자가 두껍기 때문에 굵거나 두터운 굵기 표현이 가능하다. 오일파스텔에서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색 위에 색을 얹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장 손쉬운 재료인 손가락부터 압지나 얇은 가죽으로 말아 만든 찰필 또는 티슈나 스틱, 면봉 등의 재료로 세밀한 색 섞기가 가능하다.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를 자연스럽게 줄 수 있을뿐더러, 치즈나 빵 등의 덩어리지는 느낌이나 쌀의 고슬거리는 질감 같은 섬세한 그리기 또한 가능하다.오일파스텔이 생소해서 다소 역사가 짧은 듯싶지만 사실 오래 전 입체파를 대표하는 화가인 피카소도 즐겨 쓴 재료 중 하나다. 오일파스텔은 평면상에 여러 선이나 색채로 형상을 그려내는 회화의 표현이 충분히 가능하면서도, 명암 위주로 그림을 그리는 소묘의 성격까지 모두 가졌다. 목탄에서 시작하여 파스텔, 그리고 오일파스텔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 흥미로운 미술 도구다.오일파스텔은 단순히 흰 도화지에 색을 가득 채워 넣는다거나 스케치 안에 색을 칠하는 방법도 있지만 긁어내기, 찍기, 덮어씌우기, 혼합하기 등 다채로운 기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표현할 때에 재미가 더해진다.오일파스텔은 무른 성질 때문에 종이 위로 미끄러지듯 그려진다. 힘을 얼마나 주는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생각했던 색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때가 있다. 색을 많이 써보고 힘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더 나은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나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기까지 하다.나는 주로 러닝을 한 뒤에 그 날 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을 그린다. 가만히 배경을 들여다보면 자연은 정확한 틀이나 일정한 규칙을 가진 모양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각기 다른 본질이 섞여 있고 그것이 모두 일정치 않고 다양한 선과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에 더욱 자연스럽고 경이롭다는 걸 알게 된다.구름은 단순히 흰색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하늘색, 분홍색, 보라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이 자연스레 섞여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색상이 겹쳐 서로를 물들이고 있을 때에 대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보인다. 색과 색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섞일 때의 즐거움은 배가 되고 그리기의 행위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스케치를 한 뒤에 작은 디테일을 잡아가는 과정을 유유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가득 채워진 색을 마주하면 걱정이 조금씩 녹아 물러지는 기분이 든다. 명암이나 색감, 형태 등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여러 색이 겹쳐 하나의 존재로 다가올 때면 종이 위로 생명력이 느껴지며 활기가 돈다. 마음이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날카롭게 깎곤 했던 다짐이 조금씩 누그러져선 끝내 안정이 찾아온다.근래 들어선 돌을 자주 그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가장 맨 아래서부터 올린 바위는 산꼭대기에 다다르자마자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무한으로 돌을 굴러야 하는 시지프스의 벌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에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니체는 이를 두고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이 허무주의를 받아들이되, 오히려 나 스스로 중심을 정하여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원한 허무 속에서의 초인의 모습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무언가 덧없다거나 중심이 흔들리는 날엔 크고 작은 바위를 그린다. 신기하게도 그릴 때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을 지닌 각각의 돌이 탄생한다. 그렇게 나의 중심은 부드럽게 그려지고 수많은 색을 띠고 있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면 퍽 안심이 된다.

2022-11-29

위기 가구

우정구 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위기의 가구란 말이 생겨났다.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상 문제, 사회적 고립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일컫는 용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실직이나 휴·폐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 중대한 질병, 장애 등으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 그리고 학대나 가정 폭력 등으로 긴급하게 위기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특히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가족이나 친척 등 주변의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이 또한 위기 가구다. 일본서는 오래전부터 노령층의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고독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2014년 생활고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의 충격으로 정부가 복지시스템을 한층 강화하고 나섰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지난 8월 수원 세모녀 사건에 이어 최근 서울 신촌에서도 생활고를 비관한 모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의 집 앞에는 전기료 독촉장이 나붙어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복지국가란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나라다. 국민 생활의 최저 보장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경제대국이라 말하지만 사회보장적 측면에서는 많이 미흡하다.행정기관이 분류한 위기 가구가 대구경북에서만 수 만가구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그들의 수가 더 늘어났다고 한다.연말을 맞아 우리 주변에 위기의 가정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온정의 마음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29

대구은행장 선임, 지역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DGB대구은행이 차기 은행장 선임을 앞두고 있다. 은행장은 12월 중 주주총회를 거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DGB금융그룹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임성훈 현 행장과 DGB금융지주사 전무급 2명, 부행장보 4명을 예비후보군에 포함시켰다. 후보군 중 현 행장과 전무급인 최종호 그룹감사총괄, 황병우 그룹지속가능경영총괄이 본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룹추천위는 7명 중 2~3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한 뒤 최종 후보를 선정해 대구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통보한다. 대구은행 임원후보추천위는 자격검증 절차를 거쳐 연내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차기 은행장을 선임한다.지난 2020년 행장이 된 임성훈 행장은 다음 달 2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임 행장이 연임에 성공하면 자체 규정에 따라 임기는 1년 추가된다.이 지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인 대구은행은 지난해 불미스런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고객신뢰도가 많이 추락했다. 직원 채용 비리와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해외 사기사건에 연루돼 캄보디아 현지 직원들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여기에다 경영효율화 차원이긴 하지만 대구시내 주요점포도 대거 줄여나가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다.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대구은행의 경우 아마 전국 지방은행 중에서 지역고객 비중이 선두권에 들 것이다. 그만큼 이 지역민들의 대구은행에 대한 애정이 깊다. 주변 직장인들을 보면 대구은행 동일계좌를 수십년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민의 이같은 충성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대구은행은 새로운 은행장 선임을 계기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시중은행들처럼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로 발생하는 수익)을 이용해 손쉽게 돈을 벌거나, 임원들의 고액연봉잔치로 물의를 빚어서는 안 된다.물론 차기 은행장은 금융사 경영에 밝은 인물이 임명돼야 하겠지만, 도덕성과 정의감, 고객에 대한 애정도 은행장 선임의 주요지표가 돼야 한다. 대구은행을 한 식구처럼 생각하는 지역민들이 은행장 선임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2022-11-29

여당 원내대표, ‘솔로몬’이 와도 힘들다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주변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대구 수성갑)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 내부 비토세력이 있는 상태에서 법률제정이든 예산심사든 마음먹은 대로 밀어붙이는 민주당을 최일선에서 맞상대하는 모습이 고독해 보이기 때문이다.정치부 데스크를 맡고 있던 지난 2003년 주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였던 그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겸손하고 논리정연한 언행에 상당한 호감을 느낀 기억이 있다. 그 후에도 그를 이따금 만나면서 느낀 점은 전형적인 원칙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판사 시절 “죄인 10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 1명을 만들지 말자”라는 소신을 가진 법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주 대표는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수성을 선거구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후, 수성구에서 내리 5선을 했지만 정치적 행로가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박근혜)계가 ‘공천학살’에 나섰을 때 그도 대상이 돼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수성갑으로 옮겨 현직 의원이었던 김부겸과 맞붙어야 했다.지난해 대선캠프에 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을 계기로 그는 ‘범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윤핵관’들과는 거리감을 두고 있다. 자연적 대통령실과도 사이가 좋지않다. 며칠 전 민주당과 국정조사에 합의했을 때, 장제원·윤한홍 의원이 떠들썩하게 비판한 것이 그의 당내 입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사실 주 대표로선 야당과 예산협의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국정조사 합의를 피할 수 없었다.현 상황에선 여당에서 누가 원내대표를 하더라도 욕을 먹게 돼 있다. 민주당은 지금 정상적인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 김어준, 더탐사 같은 장외정치세력에 끌려다니는 황당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회 원내대표단끼리 만나 절충점을 찾거나 합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돼 있는 것이다. 요즘 민주당을 보면 마치 신흥종교집단 같다. 민주당 일부의원들은 심지어 취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최근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간의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주 대표를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대하며 ‘원내대표를 디스한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일을 잘 하기위한 첫 번째 조건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이다. 대통령의 신임이 있어야 원내대표가 야당을 상대해 합의와 승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원내대표가 야당과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대통령 측근이 꼬투리를 잡는 식의 현실 속에서는 누가 원내대표가 되든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주 대표는 지금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겪고 있지만,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항상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이 ‘책임정치’를 하도록 설득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주 대표뿐이다.‘머리 깎지 않은 스님’이란 별명처럼 주 대표가 부처님같이 야당을 대하면 나라가 평온해질 날이 올 것이다.

2022-11-29

중부선 경북구간 완성, 균형발전 중심축 되길

경북지역 최대 현안이자 도민의 오랜 숙원사업인 중부선 문경-상주-김천구간 연결철도 사업이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총 사업비 1조3천31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내년부터 사업설계에 들어가 2030년 완공된다. 특히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선정됐지만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미뤄지다 3년6개월 만에 심사를 통과하는 쾌거를 거뒀다는 점에서 도민의 기대가 크다. 문경에서 김천을 잇는 철도 건설사업은 서울 수서와 경남 거제를 잇는 중부선의 중간지점으로 앞으로 경부선과 함께 국가 철도망의 양대축을 이룰 중부선의 마지막 남은 구간이다. 그동안 중부선 내륙철도망은 전체구간 중 문경-상주-김천 구간이 단절된 구간으로 남아 있어 철도교통망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이제 이 구간에 고속화 전철(시속 260km)이 놓이면 경부선에 집중된 수송체계를 분산하는 효과를 거둘 뿐아니라 새로운 철도망 완성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짐작이 된다. 서울 수서에서 김천까지 90분대 통과가 가능해 승용차보다 100분이나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경북은 경부선과 함께 중부선의 완성으로 전국과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하게 됨으로써 경북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기재부는 “문경-김천 철도망 완성으로 경북 및 수도권 주요 도시와의 이동시간을 대폭 단축해 인적·물적 교류활성화를 통한 지역소멸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도 사통팔달의 교통망 구축으로 관광산업 활성화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부선이 앞으로 한반도 중심축 철도망으로 자리를 잡으면 경북 군위.의성지역에 건설된 통합신공항과의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해 볼만하다.기재부는 이 사업으로 가져올 생산유발효과를 2조7천여억원, 고용효과 1만9천여명 등으로 예상했다. 이제는 사업의 조기 착공과 완성을 통해 경북도민들이 실질적 혜택을 받게 해주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2022-11-29

사진 봉사문화를 선도하는 포스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사진에는 많은 사연과 추억이 배어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시대적인 풍물이 고스란히 사진이나 그림 속에서 묻어난다. 또한 삶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점철되고, 사회의 각양각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도 사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만큼 사진의 기록성과 영향력, 파급성은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력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사람의 기억이나 생각은 날이 갈수록 흐릿해지지만, 사진은 어렴풋하고 아스라해진 지난날도 단번에 소환하며 또렷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했던가.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현대사회는 사진이 필수품 못지않은 범용성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필수품으로 통용된지 한참이 된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진화되어 실로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사진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찍고 나눌 수 있다. 그만큼 사진은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뜻있고 소중한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낼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며, 순간 포착의 기술 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종합예술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하는 사진은 모종의 희열과 감동을 주기에 사람들이 즐겨 찍고 많이 남기는지도 모른다.삶의 길목마다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하기에 사진의 갈래도 많다. 이를테면 백일이나 돐사진, 가족사진, 결혼사진, 여행사진, 보도사진, 환갑사진, 장수사진, 영정사진 등 파란만장한 순간들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듯하지만, 그때그때의 사진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누구나가 파노라마 같은 진한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기쁘거나 슬픔 속에서 무수한 옛적의 종적을 아련한 회상과 함께 빛 바랜 사진 속의 자취들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뿌듯함과 아울러 묘한(?) 느낌 속에 빠져들기도 할 것이다.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에서는 이러한 사진의 효용성을 적극 살려 다양한 사진촬영 재능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어서 고무적이다.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의 어르신들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을 촬영해서 액자로 만들어 주고,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사랑의 가족사진 촬영,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포항의 랜드마크 스페이스워크에서 방문객들에게 스냅사진을 찍어주거나 사계절 조형물의 풍경사진을 남기는 등 실로 다양하면서도 내실있는 활동으로 지역사회의 사진봉사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장수사진은 2019년 7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최근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서 1천명째 어르신께 축하선물과 함께 백세만세 멋진 장수사진을 전달해서 의의를 더했다.촬영 당시의 모습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사진’은 추억 소환의 매력뿐만이 아니라, 따스한 일상의 매개체로서 삶의 위안과 기쁨을 더해주는 활력소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듯, 사진 속의 숱한 스토리가 가슴 속으로 전해져 자신의 풍족한 삶으로 이어지는 소소한 행복의 갈피가 되었으면 한다.

2022-11-29

열정과 신념의 세계로 초대! QSS개선리더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유명한 베스트 셀러인 책 중에서 ‘시크릿,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이 있다. 4세기경 유명한 성직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신념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그 신념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많은 단어가 상형문자가 발전하여 한문이 되었는데, 신념과 개선이 바로 그러하다.신념(信念)이란 한문을 풀어보면 사람인(人) 변에 말씀 언(言)이 믿을 신(信)자이며, 이제 금(今)에 마음 심(心)이 더해져서 생각 념(念)이란 글자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풀이해보면 “사람이 지금 자기 마음에 끊임없이 하는 말”로 풀이가 된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하면 된다”고 굳게 믿는 마음이다.P사에서 추진하는 인재양성 프로그램 중 스스로를 희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며 “할 수 있다”라고 열정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QSS(Quick Six Sigma·낭비제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활동을 위해 쉽고 빠르게 하는 혁신방법론) 개선리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개선(改善)이란 ‘잘못된 것을 고쳐서 더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여기서의 리더(leader)란 조직 전체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개선팀을 운영하여 팀 리더로서 팀원과 함께 개선을 주도하는 개선 전문가이다.따라서 P사는 개선 리더에게 팀 리더의 역할과 책임을 배우게 하고,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이로서 인재양성은 물론 강건하고 활기찬 현장을 구현한다. P사는 직원수가 100수준의 공장 당 3명 정도를 빠짐없이 Off Job으로 하고, 4개월 주기로 팀을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Off Job으로 7천여 명의 개선리더를 양성 배출하였다. 이 수치는 670만의 Off Job 시간이며, 일일 급여를 20만원으로 책정했을 때 1천700억원의 투자 비용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교육은 물론 국내 및 해외 우수기업 연수기회를 부여하는 것까지 더한다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다.필자는 개선리더를 양성할 때 3감을 배우도록 유도한다. 3감(感)은 바로 자신감, 책임감, 성취감이다. 변화관리 교육과 해외 벤치마킹 등을 통하여 자신감을 체득하도록 하며, 고질적이고 어려운 도전과제를 부여하여 책임감을 갖게하며,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도록 지원하여 성취감을 갖도록 한다. 그래서 4개월의 기간이 주어진다. 이렇게 탄생한 개선리더는 이후 본연의 업무로 복귀하여 매일개선 매일 실천하는 개선 전문가로서 활동한다.이렇게 개선이 반복됨으로 자연스럽게 개선문화가 싹트게 되며, 직원들과 공유하는 신념이 되고, 회사의 일하는 ‘방식(Way)’이 되는 것이다.필자는 많은 기업에서 이 개선리더 양성 프로그램 방법을 적용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성을 주어 밭을 갈고, 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 가꾸어야만 결실을 맺듯 경영자는 초기투자가 필요하다.강력한 리더십으로 개선리더 인재양성에 꾸준히 투자하여 고유의 혁신DNA를 구축한 P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22-11-29

김강 작가의 연재소설 ‘Grasp reflex’ 읽고

신문 연재소설이 전작소설의 창작보다 어려운 건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지.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스타일과 집필 패턴을 조절하며 쓰는 게 가능한 전작소설(여러 회로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발표하는 작품)과 달리 연재소설은 ‘매일, 혹은 매주 같은 시간에 신문 구독자들이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마지막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창작될 수밖에 없다.그러기에 이전 신문 연재소설은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1974년 시작돼 10년을 ‘한국일보’에 게재된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연재 ‘장길산’.지금처럼 이메일이나 SNS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황석영은 원고지에 급하게 쓴 1주일, 혹은 2주일 분량의 작품을 자신이 기거하던 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맡기며 “이걸 늦지 않게 한국일보 편집국에 전달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소설가 김강(50)은 2년 전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났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서 본 것은 문학을 향한 진정성과 성실함이었다.향후 김 작가의 문장이 동시대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그러나, 한 가지.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작품을 써내는 문학을 향한 그의 열정은 작품 마감 일자, 그러니까 자신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과의 약속 지키기로 이어질 게 분명한 듯했다.대부분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기에 자신을 중심축에 놓고 사는 소설가와 시인들. 김강의 성실성은 보편 예술가들 사이에선 쉽게 발견하기 힘든 미덕으로 다가왔다.그것이었다. “소설을 연재하고 싶다”는 김 작가의 제의를 본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연재 펑크’가 없을 것이라 믿었던 것.예측은 엇나가지 않았다. 김 작가는 연재가 계속된 11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올 1월 첫 주 시작된 연재소설 ‘Grasp reflex’는 11월까지 지속됐고, 적지 않은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는 김강의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공유한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텍스트는 텍스트로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게 현대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다.그러니, “나는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썼다”라는 작가의 부연이나 “이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잣대는 어떤 문학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고, 소설가가 이걸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구구절절한 비평도 여기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긴 기간 연재된 김강의 소설 ‘Grasp reflex’를 따라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다종다양한 지향을 가지고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버릴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명명백백한 욕망을 서술·묘사하고 있다.돈과 권력을 독점한 이들의 ‘불사(不死) 욕망’, 거기에 얹혀 자신의 삶을 우화등선(羽化登仙)시키고 싶은 이들의 ‘신분상승 욕망’,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연관된다면 혈친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21세기 현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와 그 속을 유령처럼 헤매 다니는 등장인물들이 가득한 김강의 소설 ‘Grasp reflex’는 어둡고 음습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이다.그럼에도 이 연재소설이 마냥 절망적인 디스토피아(Dystopia)의 문학적 재현에 그치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존재해온 희미한 빛으로 은유되는 ‘희망’의 한 조각을 보여줄 수 있는 건 김 작가의 태생적 ‘낙관성’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낙관(樂觀)이란 미래에 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걸 가진 이들만이 낙관을 이룰 수 없게 만드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적 조건과 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나.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소설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모두가 낙관 속에서 사는 웃음 가득한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터.어쨌건 이로써 본지에서의 연재는 끝났다. 머지않아 김강의 첫 경장편 ‘Grasp reflex’는 책으로 모습을 바꿔 또 다른 독자들과 만날 것이다.작품의 제목이 어떻게 바뀌건 2022년 경북매일에 연재된 소설 ‘Grasp reflex’와 소설가 김강의 문학적 미래를 축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11-28

구원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여정

제임스 게일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번역한 ‘텬로력뎡’의 삽화. 기산 김준근이 그렸다. 고뇌에 빠진 기독교도가 전도사를 만나 가르침을 얻는 대목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의 구원을 찾아 순례를 떠났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종교적 대상이 탄생한 이른바 신성한 영역에 발을 들여보고자 그토록 먼 길을, 심지어 죽을 위기까지도 넘겨 가며 찾아가 마침내 보고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어떤 필연적인 이끌림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라 단지 신앙의 유무나 종교의 형태를 넘어서는 울림을 준다.사실, 순례(巡禮)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어떤 대상을 돌아보는 행위 속에는 이미 그 대상에 대한 예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신적인 대상이 남긴 흔적을 따라 선교사들이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가 이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순례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순례의 대상은 바뀔지언정, 순례라는 여정이 이끄는 대상에 대한 경건한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좁은 인간의 머릿속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뇌는 결국 신의 영역에서만 해결될 수 있고, 해결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가 존재해왔던 모든 순간들 속에서 이처럼 신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순례를 떠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것이 신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바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크고 넓게 울린다.신적 대상이 남겨둔 흔적을 따라 실제의 길을 걷는 순례의 여정뿐만 아니라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통해 신적 대상에 이끌린 순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기록들은 훨씬 더 많다. 특별한 종교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특히 문학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이끌림과 관계되어 있으니, 신의 구원이나 기적을 향한, 인간의 아스라한 마음을 향한 모든 예술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어떤 대상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나고 있는 과정이 아니겠는가.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은 포교를 위해 해가 뜨는 조용한 나라, 조선으로 이끌리듯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선교사인 제임스 게일(James S.Gale·1863~1937)이 번역했던 것은 존 번연(John Bunyan·1628~1688)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이었다. 기독교적인 순례의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 성경일 것이며, 단테의 ‘신곡’ 역시 인간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다녀오는 순례일 것이나,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순례 문학은 바로 ‘천로역정’이었다. 게일은 당시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1894년에 순한글로 ‘텬로력뎡’을 번역했다. 당시 선교사 게일은 성서를 번역하고, 한영사전을 내고 있던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이 책을 번역했고, 부산 초량에서 활동하고 있던 화가 기산 김준근과 함께 상의하여 상하 권을 통틀어 마흔 점 가까운 삽화를 싣기도 했다.이 책에서 지옥의 불길 속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기독교도는 구원을 찾아 집을 나와 순례를 떠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가르침을 얻기도 하며 자신을 유혹하려는 대상과 맞서기도 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답을 찾아내고 결국 천국으로 들어간다. 죽음 뒤에 존재하는 암흑의 세계에서 천국이라는 신적인 대상을 향해 찾아가는 순례가 바로 이 ‘천로역정’의 여정인 것이다. 게일이 번역한 이 ‘천로역정’은 한국 개화기 독립협회의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갖게 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자신이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풀 수 없던 물음들이 풀려가면서 결국 천국으로 가게 되는 과정들이, 암흑에 가까워 바로 앞도 보이지 않던 당시의 현실과 겹쳐져 그 기독교도의 순례에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이어, 이 ‘천로역정’은 이후 여러 번 다시 번역되었지만, 제임스 게일의 이 번역이 가진 가치가 여전히 대단한 것은 그 번역 자체가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순례의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11-28

KTX구미정차 운운하기 전에 동구미역 확정부터

김락현경북부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만나 민선8기 달빛동맹 협약을 맺으면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이 탄력을 받고 있다. 대구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이 연내 제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특별법이 제정되면 신공항과 관련된 여러 사업들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게 되기에 통합신공항 최대 수혜 지역으로 꼽히는 구미지역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동구미역 신설사업도 그 중 하나이다.하지만, 실제 동구미역 신설사업이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태에다가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최근 김영식 국회의원(구미을·국민의힘)이 ‘대구경북선 KTX동구미역 유치 활동 나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긴 했지만, 이는 신설 예정인 대구경북선(통합신공항 철도노선)을 고속화 설계해 고속열차인 ‘KTX-이음’을 투입해 서대구-동구미-신공항-의성을 오가도록 해야한다고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국토부에 요청한 내용이다.국회의원으로서 요청은 할 수 있으나,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년~2030년)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동구미역 신설사업인데, 어떻게 동구미역에 ‘KTX-이음’을 정차시킬 것인지 의문이 든다.물론, 김 의원 주장대로만 이뤄진다면 구미시가 그토록 염원하던 KTX정차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통합신공항 철도의 선로가 서대구역에서 칠곡군 지천면을 지나 북쪽인 의성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구미지역에 역을 신설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구미지역에서는 매우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허나, 냉정하게 따지고 들면 통합신공항 철도의 주 이용고객은 구미시민이 아니라 대구시민이다. 대구입장에서 철도를 굳이 구미지역으로 약간 치우쳐 갈 이유가 필요하다.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동구미역 신설사업부터 확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실시설계까지 들어가도록 해야한다.민선8기 들어서면서 취수원 이전 문제로 대구와 구미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취수원 이전 반대에 앞장섰던 구미지역 두 국회의원이 정치생명을 걸고 동구미역 신설을 확정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kimrh@kbmaeil.com

2022-11-28

영주시, 시장 사법처리 앞두고 어수선

김세동경북부·영주 영주시가 6.1지방선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지난 6·1지방선거 당시 당내 경선때 금품선거 위반 혐의를 수사중인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박남서 영주시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해둔 상태다.영장실질 심사는 29일 오후 2시 열릴 예정이다. 만약 법원에서 구속이 필요하다고 인정돼 영장이 발부되면 영주시는 시장 공석 사태를 맞게 된다.박시장선거 캠프에 있던 관계자 2명도 다수의 지역 청년을 선거에 동원하고 유권자에게 수천만원의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이외에도 선거캠프 회계담당자 등 10여명이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정가와 시민들은 어수선한 분위기다.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다음 날인 지난 18일 전격적으로 영주시장실과 박 시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시장실의 압수수색 이후 시청 내부는 어수선한 분위기다.공직자 A씨는 “시가 현재 추진중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계획대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며 “시민들의 불편과 행정 공백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특히 박 시장과 관련된 질문과 대화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지역 정가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평가나 현재 상황에 대해 조심스런 반응들이다.선거 후유증에 시달리는 지역 분위기와는 달리 벌써 보궐선거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일부 시민들은 선거에 대한 염증을 드러내기도 했다.김모(62·자영업)씨는 “과거와 같이 관선 시대가 오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민선시대는 선거 때마다 지역민간 갈등, 선거 관련 후유증만 증폭 시키고 있다”며“영주시가 선거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보궐선거를 운운하는 일부 지역민들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박 시장이 이달 16일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중인 시점에서도 구속설 등 각종 루머들이 나돌정도로 지역민들은 박 시장의 사법처리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실정이다.영장실질 심사 결과에 따라 지역에 미치는 선거 후유증은 더욱 커질 전망이어서 걱정된다./kimsdyj@kbmaeil.com

2022-11-28

예산국회 진통…지방정부 속 탄다

정부 예산안(639조원 규모) 심사가 여야의 극한 대결로 파행을 빚고 있다. 정치권에선 “법정 시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원회는 당초 이번 주초까지 감액·증액 심사를 모두 마치고 오는 30일에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수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예산에 대한 민주당의 대대적인 삭감 시도로 여야는 첫 단계인 감액 심사조차 끝내지 못하고 있다.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힘겨루기는 매년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심하다. 169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전횡 때문이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심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 예산을 대거 삭감하면서 전임 문재인 정부 때의 정책 예산들을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까지 되살리고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를 비롯한 각 지방정부는 국회 예산전쟁을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방정부 예산까지 정쟁의 볼모로 잡혔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내년도 예산안으로 10조7천419억원, 경북도는 12조821억원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예산안 중에는 이 지역이 앞으로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될 미래신산업 분야 사업비와 각종 SOC 건설사업비 등이 포함돼 있다.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원안대로 통과돼야 할 예산들이어서 국회 예산심사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그러나 지금처럼 여야의 극단적 정쟁이 계속되면 지방정부 예산안도 졸속처리될 소지가 다분하다. 경북도가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예산이 민주당에 의해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한 것이 좋은 사례다.국회가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지만, 그 권한을 이용해 지방정부 예산까지 발목을 잡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예산안 심사가 지연되자 여야가 또다시 밀실에서 깜깜이 예산처리를 할 움직임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장사꾼의 담합행위와 다를 바 없다. 여야 모두 조정과 타협을 모색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22-11-28

유네스코 기록물 ‘내방가사’

홍석봉정치에디터 안동지역의 ‘내방가사’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내방가사는 주로 규방의 여성들에 의해 창작되고 전해져 왔다. 규방가사라고도 부른다. ‘내방가사’는 경북 안동 지역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짓고 낭송하면서 기록한 여성들만의 문학 장르다.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교훈적인 내용부터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비애와 노동의 고단함, 기행(紀行) 등 여성들의 의식과 생활 체험에서 겪는 모든 것이 소재가 됐다. 두루마리나 책 등의 형태로 필사하고 여성들의 모임에서 낭송함으로써 전승, 전파돼 왔다.이번에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내방가사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사회적 인식을 담은 기록이자 한글이 공식 문자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최종 등재가 결정됐다.내방가사는 여성들의 한글을 익히기 위한 용도로 활용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교적 이념과 남성 중심주의가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류층 여성일지라도 교육과 사회참여는 거의 불가능했다. 여성들은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삶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글을 배우는 것도 어려웠다.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가 만들었다. ‘내방가사’는 동아시아의 남성중심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녹아 있다.유네스코 기록물 등재는 안동지역 여성들의 곡진한 삶과 문학정신의 가치를 세계인에게서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변화로 내방가사의 전승이 중단되고 맥이 끊어질 위기다. 이에 안동시가 내방가사전승보존회를 발족해 내방가사 경창대회를 열고 가사모음집을 발간,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후손의 도리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8

포항도 물류 차질 시작, 파업만능주의 안 돼

민노총 화물연대의 운송거부가 닷새째 접어들면서 포항철강공단 등 지역서도 물류 차질이 시작되고 있다. 특히 힌남노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철강공단은 피해 복구에도 벅찬 가운데 수송난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맞을까 전전긍긍이라 한다.전국적으로 기간산업의 물류마비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대구지역 산업계도 원자재 수급과 수출 차질이 빚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피해를 경험한 업체들이 원자재 등을 미리 구매해 당분간 큰 피해는 없겠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피해는 불가피하다.파업 현장인 포항을 찾은 원희룡 국토부장관에게 업계는 “파업이 장기화하면 큰 타격을 입는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 문을 닫는 업체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의 경제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고물가, 고금리 등 3고 현상과 내수 부진 등으로 생사기로에 놓인 중소업체가 적지 않다.내년 경제전망도 매우 어둡다. 노사가 힘을 합쳐 경제난 극복에 나서야 할 시국이다. 이 시기에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경제를 더 힘들게 할뿐더러 국민적 지지도 얻기 어렵다.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 사태를 촉발한 측면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때 정부가 약속한 안전운임제에 대한 후속 논의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 말 완료 예정인 화물차주의 최저 임금인 안전운임제의 정교한 분석과 추후 논의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없었던 탓이다. 일이 생기면 미봉으로 막는 안이한 태도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안전운임제의 3년 연장을 약속했으나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노조와의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줄 파업이 예고되면서 국민적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지금은 탈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국가적 경제 위기다. 모든 문제를 파업으로 해결하겠다는 파업 만능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한 때다. 정부와 노조가 합리적 대안으로 서로 마주해 사태를 조속 수습해 나가길 바란다.

2022-11-28

권력과 책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헌법에는 국가의 최고의무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하지만 이태원에서 10·29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민은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 달라”고 절규했는데, 국가는 응답이 없었다. 무책임한 국가를 믿었던 순진한 청춘들의 비극이었다.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개탄스럽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행안부장관), “국정상황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대통령 비서실장),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라 현상”(용산구청장)이라는 등 모두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또한 참사가 일어났던 그 시간, 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은 비상연락이 되지 않았고, 용산구청장은 참사 전후의 대책회의에 모두 불참했다. 게다가 책임을 추궁 받는 국감장에서 홍보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은 “웃기고 있네”라고 필담을 하다가 들켜서 같은 당 주호영 위원장에 의해 퇴장 당했다. 이처럼 공직자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총체적이니 문제가 심각하다.철학자 베른하르트 그림(Bernhard A. Grimm)은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민주정치는 책임정치다. 국민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권은 교체된다. 책임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고위직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책임은 법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까지 포함된다. 고위공직자는 형사책임이 없다고 해서 정치적 책임도 없는 것은 아니다. 10·29 참사와 관련하여 “장관과 경찰청장에 대한 경질요구는 후진적”이라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식이야말로 후진적이다. 비서실장의 책임의식이 이러하니 공직사회의 책임윤리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충돌할 때 책임윤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정치는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고, 선의(善意)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신념윤리가 강할수록 정치는 이념화되고 실용성은 떨어진다. 책임윤리는 없고 권력의지만 강한 정치인은 국민에게 재앙이다. 고위공직자는 법적 책임을 묻기 이전에 스스로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윤리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대통령이 법적 책임만 따진다면 분노한 민심을 더욱 격앙시킬 뿐이다. 법적 책임은 향후 법원이 판단할 것이니 대통령은 먼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10·29 참사의 책임을 야당에 돌릴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측근의 보호가 아니라 국민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다.책임윤리가 실종된 고위공직자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들에게 권력에 따른 올바른 책임의식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대통령의 책임이다.

2022-11-28

정치가 국운을 가로막지 않게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관심 사업 예산을 모두 없애고 있다. 국회에서 169석이라는 절대다수를 장악한 힘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새 정부가 일을 못 하게 하라는 ‘정부완박’ 횡포”라고 분개했다. 그렇지만 속수무책이다.영빈관 신축 예산 497억4천600만 원 등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예산을 없애버렸다. 새 정부가 만든 법무부 내 경찰국의 기본경비와 인건비,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기본경비도 잘라버렸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민정수석을 부활하고,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업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이런 식으로 윤 대통령의 관심 사업만 골라 칼을 들이대 1조2천억 원을 삭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약했던 사업은 8조6천억 원가량 예산을 늘렸다.물론 아직은 예비심사단계다. 민주당이 원하는 사업비를 받아내기 위해 협상카드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답답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82개 법안은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는 입법 발목잡기에 이은 예산 발목잡기는 대선 불복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 선거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 정부다.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 나왔어도, 돈과 관련 법률은 민주당이 휘두르고, 정부와 공기업 곳곳에 민주당 사람이 알박기해 있다. 국정은 안 움직이고, 책임은 서로 떠넘긴다.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이런 무책임한 정치가 어디 있나.여소야대(與小野大)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그러나 그때 가장 많은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안 처리도, 청문회도,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정국을 슬기롭게 풀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많이 참고, 많이 양보했다. 야당 지도자 3김씨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다. 첫 야대(野大)였지만 요즘 정치인과 달리 절제할 줄 알았다. 지금은 정치력도 없고, 대화도 없다. 쓰레기 같은 천박한 말을 쏟아내며 이기려고만 한다. 국정이 안중에 없다.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정치가 실종된 상태에서 여소야대는 자칫 재앙일 수 있다. 언제든 국정이 마비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여대야소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국회가 거수기로 전락할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정부·여당이 한패가 되어 국정을 몰아가고,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정치인에게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강제해야 한다. 극단적인 진영 대결과 국정 마비의 위험은 줄일 장치를 찾아야 한다. 그동안에도 이런 위험이 수없이 지적됐다. 특히 내각제론자들의 지적이다. 내각제라면 의회의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해, 정부와 국회가 극한 대립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립정권을 구성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과 관용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소수 정당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국정 운영을 맡게 되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대규모 감세로 파운드화가 폭락하자 취임한 지 45일 만에 사임했다. 신뢰만 얻는다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처럼 대통령 이상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나라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그렇지만 국민 여론은 내각제에 부정적이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행태를 보면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유권자들도 좋아하는 스타 정치인에게 연예인을 향한 팬덤 같은 지지를, 경쟁자에게는 비난을 보낸다. 새로운 정치문화다. 권력을 분산한 국회의원보다 한 명의 ‘정도령’을 원한다.대통령제에서도 임기나 권한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4년 중임제도 거론된다. 정치권의 부패를 감시할 독립적인 사법제도도 중요하다.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선거에서 무슨 짓을 해도 당선만 되면 끝이라는 낡은 생각을 부술 수 있다. 지금 정치를 보면 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본사 고문

2022-11-27

‘봉화형 농업’과 ‘체류형 관광산업’으로 지역 살리겠다

박현국 봉화군수 민선 8기 출범 이후 지난 4개월간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지역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역의 미래를 논의하며 군정 운영의 기초를 다지고 지역발전을 위한 세부전략을 마련했다.2023년은 민선 8기 군정의 실질적 원년으로 본격적인 군정비전 실현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해다. 내년부터는 공약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 성과를 내야 한다.지난 7월 1일 취임식 때 군민들 앞에서 “군민이 주인인 희망찬 봉화를 비전으로 1조 원 소득의 봉화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봉화형 농업과 체류형 관광산업으로 농촌과 상경기를 살리고 인구가 늘어나는 봉화를 군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특히 농업의 비중이 지역 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농업육성에 집중하려고 한다. 창의적인 농정혁신을 통해 부자 농업인을 육성하고 소득 증가를 꾀하겠다.이를 위해선 고추냉이 재배 시범 사업과 고랭지 멜론 재배 시범 사업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작목 발굴에 관심을 가지고 청년농업인 육성을 위한 창업보육 사업을 추진해 지속가능한 농업생태 구축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안정적 소득기반을 갖춘 정예 청년농업인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청년농업인 영농정착 지원사업과 청년농부 육성 지원사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농업 분야 진출을 촉진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면서 농업 인적 구조를 개선하겠다.또 복합환경 제어 및 ICT기술연계 시설 등을 포함한 임대형 수직농장 등 봉화형 스마트팜 기반 조성사업을 추진해 첨단농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적정한 임대료로 창농해 재배역량을 향상시키고 농업경영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이밖에도 한국임업진흥원분원을 유치해 임산물의 체계적인 품질관리 및 연구를 통한 임업인 소득 향상에 힘쓰며 문화·관광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베트남 국민의 존경의 대상인 리(Ly)왕조 후손 유적지인 봉화 충효당을 관광명소화하는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해 관광산업을 혁신할 계획이다.소로리, 삼계리에 신규마을 조성을 위한 65호 규모의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 북지리 작은정원 조성사업과 연계한 15호 규모의 도시민 체류형 농촌체험주택단지를 조성해 매력있는 도시민 인구유치 기반을 만들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봉화형 정주여건 조성에도 힘쓸 계획이다.전문가 및 지역대표, 시민단체, 주민 등으로 구성된 군민참여 군정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군정 주요 현안에 군민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군민이 주인인 행정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주민 의견 수렴 창구 운영으로 주민의 정책 참여 통로도 넓히고자 한다.지난 4개월간 지역 현장을 다니며 봉화군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봤다. 이 가능성을 토대로 군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사업들을 하나하나 완성해나가겠다. 민선 8기 공약으로 봉화군 전역 확대를 약속한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은 3년 연속 공모선정으로 공약이행의 안정적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됐으며 경북도의 ‘경북형 소규모마을 활성화’ 시범사업공모에 명호 양삼마을의 청량산 유학센터가 선정돼 인구활력화 사업비 4억 원을 확보하게 됐다.지난 9월에는 재산면 평기지구가 행정안전부의 ‘2023 풍수해 생활권 정비사업’에 선정돼 국비 228억 원을 포함한 총사업비 456억 원을 확보하는 쾌거를 거뒀으며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은어축제’와 ‘송이축제’도 성공적으로 개최해 각각 약 100억 원과 65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무엇보다 군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공감행정을 실현을 위해 청사 내 민원인 주차 공간 확보 및 안내 명패 설치 등 군민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민원서비스 변화를 추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25년 전 39세의 나이로 지방정치에 입문한 뒤 늘 지역의 발전을 최우선시해왔다. 주민소득 1조 원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가 아닌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군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군민과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군민들에게 혜택이 크게 돌아간다.당장의 성과에 조급하지 않고 신중한 결단과 현명한 선택으로 공약사업들을 진행해 ‘주민소득 1조원 시대’ 약속을 현실화하겠다.

2022-11-27

유머 넘치는 신화 염소자리

물병자리 남쪽과 궁수자리 동쪽 사이 큰 별과 자잘한 별이 뒤집어진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염소자리다. 황도12궁 중에서 10궁에 속하며 이 별자리 β별인 다비흐(Dabih)가 견우별(牽牛星)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들은 염소자리를 ‘신들의 문’이라 부르면서, 그 문을 통해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그리스 신화 대부분이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내용이지만, 이 염소자리에는 거의 유일하게도 우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판(Pan)은 목축의 신이다. 판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아이러니하게도 오이칼리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판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털이 숭숭 나 있어 어머니조차도 징그럽다며 젖을 물리지 않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희한하게 생긴 아들을 좋아했다. 다른 신들도 늘 명랑한 판을 좋아해서 ‘모든 것’이란 의미인 ‘판’으로 이름 붙여주었다.판이 짝사랑하던 님프 시링크스를 따라갔는데 놀란 시링크스가 급하게 도망치다가 풀로 변했다. 판은 잔혹하게도 그 풀을 꺾어 풀피리를 만들어 불며 들판이나 숲에서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 피리로 다양한 소리를 내 숲속 님프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잠든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만드는 다소 짓궂은 면도 있었으며, 때때로는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공황(恐慌)을 뜻하는 ‘패닉’ 어원이 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다소 덜렁대기도 해서 신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어느 가을날,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제우스를 비롯해 헤라, 아르테미스, 아폴론 등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티폰이 공격해왔다. 티폰은 양팔을 벌리면 그 손이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닿는 데다, 머리는 은하수에 다다를 정도로 큰 괴물이었다. 상체는 백 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하체는 거대한 뱀이 꿈틀거렸다. 타이폰, 즉 태풍의 어원이 티폰에서 유래되었다.당황한 제우스는 물론 신들이 동물로 변신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판이 나일강변에 이르렀다. 그는 물고기로 변해야 했지만, 허둥대다가 주문을 덜 외운 채 물에 뛰어든 탓에 하반신은 물고기로 변했지만 상반신은 염소 모습 그대로 남았다. 정작 이 사실을 몰랐던 판은 마치 자신이 완벽한 물고기인 양 헤엄쳤다. 그 모습을 본 신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신들은 이를 기념하겠다면서 판이 싫다는데도 막무가내로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던 것이다.유쾌하면서도 엉뚱한, 그러나 남을 놀래거나 괴롭히는 신이라니 다양한 신성을 지녔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는 스마트폰 천국이다. 그렇지만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범죄에 더 많이 이용되는 현실이다. 선한 사람이 만들면 선한 인공지능이 되고, 악한 사람이 만들면 악한 인공지능이 된다고 한다. 본성 중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장점만 활용해 살아가거나 단점에 지배당하는 삶이 결정된다. 장점만 살려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나 건전한 사색이 필요하다.신들의 잔치에 나타나 공격했던 괴물 티폰은 어찌 되었을까? 사전에 의하면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잡아, 시칠리아 동쪽 해안 에트나산 아래에 가둬놓았다. 이 산은 지중해 섬들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자연은 간혹 인간에게 경고로써 말을 건네곤 한다. 에트나화산은 2007년 9월에도 분출했다. 티폰이 살아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환경은 실천의 문제라고 말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1-27

이솝 우화를 고쳐 쓰다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이솝의 우화를 읽다 보면, 세상 물정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얻는 때가 많다. 답답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어서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우화는 답답하면서도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다.한번은 늑대들과 개들이 서로 적대했다. 개들은 그리스 개를 자신들의 장군으로 뽑았다. 그리스 개는 늑대들이 심하게 위협해 오는 데도 전투를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너희는 내가 왜 망설이는지 알겠나? 늑대들은 종족도 같고 색깔도 같지만, 우리 군사는 관습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조화롭지 못하니, 이렇게 모든 점에서 다른 자들을 내가 어떻게 싸움터로 인도할 수 있겠나?”이것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정본 이솝 우화’의 ‘늑대와 개들의 싸움’ 이야기를 약간 줄인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이솝 우화’는 본문과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교훈은 이솝의 작품이 아니고, 이솝이 살았던 시대보다 최소 200년이 지난 헬레니즘 시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우화의 의미를 이해할 때 교훈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교훈이 다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지와 생각의 통일이라는 것이다’라는 이 우화의 교훈 역시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진다.개들이 그리스 개를 장군으로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의견이 통일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개들의 출신과 크기와 털 색깔이 늑대와의 싸움에 불리하다는 증거도 없고, 설사 불리하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싸움터에 나가기를 망설인다는 것은 장군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장군이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머뭇거리면 개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 덧붙여서 이 우화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들은 늑대한테 다 잡아먹혔다’고.이제 이 우화의 교훈은 확실하게 ‘장군 한번 잘못 뽑으면 개들이 다 죽는다.’가 되어 버린다. 장군 하나 잘못 뽑은 대가가 너무 큰가? 그러나 지도자가 잘못해서 국민이 도탄에 빠진 일은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그렇다면 좀 더 낙관적으로 고쳐 써 보면 어떨까? ‘개들은 그리스 개를 무리에서 영원히 추방하고 새 장군을 뽑았다. 새 장군은 개들의 출신, 크기, 털 색깔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개전투 방식으로 늑대를 혼란에 빠트려 완벽하게 물리쳤다’고. 이솝이 아폴론 신전 사제의 탐욕을 고발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이솝의 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렇게 ‘늑대와 개들의 싸움’을 읽으며 고쳐 쓰기를 하노라니, 슬그머니 요즘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사실을 보도한, 또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보도하지 않은 한 방송국을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도 배제하고 도어스테핑까지 중단한 대통령실의 태도는 마치 개들 크기와 털 색깔이 다르다고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겠다는 그리스 개와 오묘하게 닮은 듯하다. 현실 고치기는 우화 고쳐 쓰듯 할 수 없으니, 맥없이 우화만 고쳐 쓰면서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2022-11-27

만남, 20221124

강길수 수필가 눈길이 저절로 멈추었다. 늦가을, 그것도 11월 하순에 이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평소 출근보다 1시간 빠른 출장길이다. 북향 7번 국도가 제법 붐빈다. 벌어먹으려고 직장가는 차들이 꼬리를 문다. 알게 모르게 이 근교에도 일자리들이 생긴 결과이리라. 송라를 벗어나자 차량이 줄었다. 저지난밤 100mm 안팎의 많은 가을비가 내렸던 흔적이 도롯가나 들녘에 드러나도 생각만큼 심해 보이지 않는다.일찍 집을 나선 덕인가, 경고인가, 깨우침인가. 눈길 멈춘 곳 앞 도로 가드레일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원자력 발전소의 한 건물 녹지 곁 도로다. 찬찬히 살펴본다. 저쪽 크지 않은 앙상한 모과나무 밑에, 노란 모과 한 개가 낙엽과 섞인 푸른 풀들을 베고 누워있다. 그 오른편에 낮은 관목 두 그루가 마지막 잎새 몇 개를 달고 떤다.나무 앞 제법 넓은 면적에 어린 클로버가 밭을 이뤘다. 6월의 클로버만큼이나 많은 흰 꽃을 피워냈다. 그 밭 가장자리엔 노란 민들레꽃 하나 해님이다. 곁에 서 있는 민들레 관모 서너 송이는 작은 솜사탕이다. 솜사탕 뒤로 나지막한 옥향나무들이 가드레일을 따라 줄지어 섰다. 용케도 무시무시한 예초기 날을 피했을 개망초 한 포기가, 두 옥향나무 사이에서 계란프라이 모양 꽃 일고여덟을 달고 늦가을을 노래한다.6일만 지나면 12월인데, 꽃 피운 클로버와 민들레와 개망초 그리고 푸른 풀들, 낙엽과 앙상한 나무들은 어떤 메시지를 사람에게 보내고 있을까. ‘당신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봄이라고 착각한 채 살고 있어요’라고 할까. ‘우리는 속이지 못해요. 이 발전소 근로자들처럼 정직하게 살아낼 뿐입니다’라 말할까. 또는 ‘지구촌 아니, 우주 공동운명체 안에서 우리는 설계된 디엔에이대로 살잖아요’라고 할까.땅거미 내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돌아오는 차창 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올 11월 24일 만난 클로버꽃과 민들레꽃, 개망초꽃, 누운 모과, 앙상한 가지, 팔랑이는 마지막 잎새는 정직하고, 진실했던 거다. 기후변화에 따라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주어진 삶을 그대로 주위에 보여주고 있다. 마지 발전소 현장 근로자들처럼’….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어떤 성직자들은 대통령이 죽기를 바랐다. 제1야당 대표는 개발사업 비리 의혹에 사업 시행 지자체 최종결재자이면서도 ‘모르쇠’가 되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오만으로 일관한다. 어떤 정치권은 자기편의 일방적 안을 ‘정의’라고 우기며 왜곡을 일삼는 언론을 무기로 선동하고 강요한다. 북핵이 국민을 위협해도 정치권은 걱정이 없다. 일군의 선각자들이, 부정선거 문제를 복음처럼 외쳐도 응답하는 정치권은 없다.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정직을 버린 맛이 간 사회다. 국민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국민 목소리를 찾아 듣고, 그 해결의 길에 나서야만 한다. 정치권이 변화에 정직한 식물과 자기 일에 정직한 근로자들의 숨은 진실을 본받는 길…. 그 길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살리고 더 꽃피워 열매 맺을 테니까.

2022-11-27

‘이차전지’하면 포항이 떠오르길 기대한다

‘이차전지 산·학·연·관 거버넌스’를 출범시킨 경북도와 포항시가 지난 25일에는 포항시청에서 ‘이차전지 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공모에 대비하기 위해 연구용역 보고회를 열었다. 용역기관에 제시한 주요과제는 △이차전지 지역산업 환경 및 여건 분석 △포항 이차전지 특화단지 조성 필요성 △이차전지 특화단지 조성계획 수립이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용역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가 주관하는 특화단지 지정 공모에 도전한다.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산업단지 활성화의 핵심인 도로 확충과 오·폐수 처리 비용을 국비로 충당할 수 있다.포항시는 지난 24일에는 포스코국제관에서 국내외 이차전지 관련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배터리 선도도시 포항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경북도와 포항시, 산·학·연·관 기관단체장 30여명은 ‘경북 이차전지 산학연관 혁신 거버넌스’를 출범시켰다.지난 2019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포항에는 그동안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칼과 같은 세계적 기업이 입지하면서 이차전지 원료, 소재, 리사이클링 분야에 4조원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영일만 산단과 블루밸리 산단에는 이차전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입주하고 있다. 포항시가 특히 국내 다른 도시들보다 경쟁력이 있는 부분은 태평양으로 바로 물동량을 수출입할 수 있는 영일만 신항이 있다는 점, 그리고 우수한 연구기관(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포항과학산업연구원, 포항가속기연구소)·연구개발 인프라(포스텍, 한동대)를 갖췄다는 점이다. 포항시는 현재 입주기업 직원들의 교육·사회·문화·환경적 정주여건을 최고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경북도가 포항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동해안 일대를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중 특화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산학연관 혁신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준비해 포항이 특화단지의 최적지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2022-11-27

면책특권

우정구 논설위원 국회의원에게는 두가지 특권이 있다. 하나는 면책특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체포특권이다. 특권이라는 용어에 강한 거부감이 있지만 국회의원에게 이를 부여한 것은 민의를 대표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헌법 제45조에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절대권력이나 집권자의 부당한 압력 또는 탄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다.국회가 정부의 정책통제기관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라는 뜻이다. 이 제도는 의회의 나라 영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세계 각국이 도입하고 있다.그러나 국민을 위해 쓰도록 한 권리가 국민이 아닌 정당이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제한하자는 비판 여론도 없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발언 내용이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시해 타인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시도 한 적이 있다. 면책특권 범위의 모호성이 문제의 논란이다.최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나 면책특권이 또다시 비판 대상으로 떠올랐다. 제도의 잘못보다 주어진 권리를 남용하는 국회의원 개인의 양식이나 도덕성 그리고 자질 부족이 제도의 취지를 못 살린다는 비판이 많다.뻔히 알면서 면책특권의 가면을 쓰고 이를 악용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국회 스스로가 강한 척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다.논란을 일으킨 김 의원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니 그 결과를 주목하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 전기 삼는 중의가 모아져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27

‘자칭(自稱)’ 선진국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선진과 후진을 규정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반갑고 가슴 벅찬 일이다. 어린 시절엔 후진국 소리를 들어야 했고, 청소년 시기엔 개발도상국 소리를 지겨울 정도로 들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실로 경천동지할 일 아닌가?!닷새 전인 11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다세대주택에서 모녀 사망 사고가 보고된다. 그들이 살던 방 앞에는 미납된 5개월분 전기요금과 월세를 독촉하는 주인의 편지가 있었다고 한다. 언론은 숨진 60대와 30대 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전한다. 지난 8월에는 수원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겪다가 숨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들의 행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이번에 일어난 두 사건을 보면서 2014년에 일어난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떠올린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사건은 한국 사회를 크게 동요시켰다. 그들은 전 재산 70만 원을 짤막한 유서와 함께 남기고 지옥 같은 이 나라를 영원히 떠나갔다.“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보다 더 절절하게 인간의 영혼을 후벼파는 글이 있었던가?!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에게 마지막 70만 원이 남았다면, 그걸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겠나, 아니면 탕진하고 생을 마감하겠는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돈을 다 쓰고 죽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60대 모친과 30대 두 딸에게 그토록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추동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순정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나라의 정체는 무엇이고, 권력자와 정치가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났다.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생매장되었다. 이 사건을 책임지는 정부 고위직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쳤다. 지금까지 이 사건으로 옷을 벗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뭉개고들 있을 뿐이다. 혹여 책임의 파편이 날아올까 전전긍긍하면서!삶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참혹한 나라, 사람이 죽어 나가도 돈만 외치는 인간 장사꾼들의 나라, 누가 죽든 나와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귀들의 나라, 오직 아파트 가격 하락만 걱정하는 경제 동물들의 나라, 세상이 어찌 되든 월드컵에 정신 놓은 인간들의 나라, 국민의 삶과 죽음에 무관심한 자칭 권력자들의 나라, 정치는 사라지고 권력욕만 판을 치는 하이에나들의 나라, 대한민국!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근저에는 인간적인 정과 유대가 있는 법이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정리(情理)가 사라지면 그 사회와 국가는 소멸하는 법이다. 이것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