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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인보다 고수인 후흑(厚黑)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치인들의 후안무치에 머리에 쥐가 난다. 공정과 상식, 도덕성은 오간데 없다. 나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책임과 의무엔 오리발이다. 위선의 극치다.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곤욕을 치렀다.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며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구명작업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벌떼처럼 덤벼 들었다. 자성 발언을 하고 김 의원을 비판한 의원들을 맹폭했다.파렴치의 전형이다. 국민을 무시한 발언과 행동에 다름아니다. 민주당의 한계다. 그래도 선거철이 닥치면 표를 구걸할 터이다. 유권자들은 또 억지춘향격 피해자 코스프레와 애걸에 속아 넘어간다.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1년동안 방탄과 입법 폭주로 일관했다. 186석 의석을 무기로 입법 횡포를 일삼았다. 그러다가 돈 봉투와 코인에 발목 잡혔다. 정쟁만 있었다. 견제와 균형은 실종됐다. 국민 피로감만 높였고 분열만 부추겼다. 민생은 뒷전이었다. ‘탈당’ 꼬리자르기는 단골행사가 됐다. 이후 슬그머니 복당시켰다. 파렴치와 위선의 절정이다. 한데 민주당 정치인 보다 더 센 고수가 등장했다. ‘개딸’이다. 이들은 여론 동향은 안중에도 없다. 지탄받는 정치인의 역성을 드는데 열중한다.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차별 폭격한다. 정의와 공정, 도덕성엔 귀막고 눈감았다. 김남국을 감싸고도는 ‘개딸’들의 행태다.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박지은은 “팬덤의 목소리가 곧 당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그게 투영되지 않았을 때 문자폭탄, 폭력을 저지르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팬덤정치의 폐해를 지적했다. 개딸들이 우리 사회 지고의 가치인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후흑학(厚黑學)은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가 쓴 책으로 중국 3대 기서(奇書) 중 하나다. 순자의 패도사상을 발전시킨 학문이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친 말로 ‘뻔뻔함’과 ‘음흉함’을 뜻한다. 후흑학은 심오한 함의를 지녔다. 이종오는 조조와 유비, 손권, 제갈량, 사마의,한신, 항우, 장량, 범증 등 제왕과 호걸을 후흑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재조명했다.영웅호걸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까발렸다. 속마음이 뻔뻔하고 음흉한 인물들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조조는 속마음이 시커맸다. 친구와 황후, 황자까지 죽이며 “내가 남에게 버림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겠다”고 했다. 유비는 조조와 여포,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빌붙어 양쪽을 오간 ‘비굴한 이중인격자’로 깎아내렸다. 결국 뻔뻔하고 음흉한 사기꾼 같은 인간들의 성공기다.낯 두껍고 마음이 검은(후흑) 이들이 출세하는 세상이다. 사회의 비난과 질시는 그냥 무시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된다. 착한 사람은 ‘가붕게’일 뿐이다. 어떻게 정치계에 후흑의 인물들이 판 치고 있는가. 국회의원을 손안의 구슬로 아는 ‘개딸들’은 또 어떠한가. 부도덕과 부정과 불법이 일상화된 후흑이 횡행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2023-05-18

여름철 자연재해 만반의 준비로 피해 줄여야

작년 9월 경북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는 포항 등지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주택 침수, 도로·교량 파괴 등 1만3천여 건의 각종 재산피해와 더불어 15명의 인명사고도 불렀다. 피해 복구에 든 비용이 무려 7천800억원이라 한다.역대급 태풍으로 미처 손 쓸 수 없는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자연재해는 철저한 대비만 된다면 그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고, 산지와 넓은 해안가를 끼고 있어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잦다. 이런 점을 감안, 경북도는 지난해 2023년 재해예방 개선사업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확보했고 도내 상습재난지역의 주민 안전을 위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연재해를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다.지구촌은 지금 이상기온 현상으로 돌발 자연재해가 해마다 늘고 있다. 역대급 태풍과 가뭄 등으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기상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올 여름은 작년보다 기온이 높을 확률이 50%라고 한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도 최고기온 기록 경신이 자주 나타나 이를 반증한다. 싱가포르가 40년 만에 폭염 기록을 세웠고, 베트남은 44.2도를 기록했다고 한다.올해는 엘리뇨 영향으로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잦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 예방에 각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경북도가 여름철 자연재해에 대비, 사전점검에 나섰다. 본격적인 우기가 오기 전에 공사 중인 현장의 안전점검과 예·경보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경북은 면적이 넓고 산지가 많아 사고발생 위험이 높다. 산불피해로 인한 산사태 우려지역, 관광지의 인명피해 우려지역, 저지대 침수지역, 배수펌프장의 안전성 등 살펴봐야 할 분야가 많다. 준비하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재해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고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내 각 지자체는 도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여름철 자연재해 차단에 만반의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2023-05-18

손자의 말말말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자는 종종 재미있는 어휘를 제 맘대로 사용하여 날 웃게 한다. 작년 어느 날 아침 유치원 등원 중이었다. 챙겨야 할 것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할머니가 깜빡 잊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손자가 묻는다. 왜 깜빡깜빡해요?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또 묻는다. 67살이라고 말하며 리얼미러로 뒷자리의 손자를 살폈다. 손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나는 7살인데 할머니 많이 컸네.” 파안대소했다. 그래그래 할머니 많이 컸지? 웃고 또 웃었다. 손자는 나의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누가 더 크냐고 묻는다. 그들은 왜 키를 묻느냐고 의아해한다. 키를 묻는 게 아니고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를 묻는 표현이라고 하면 재밌다고 껄껄 웃는다. 그 후 친구들과 만나면 어디 많이 컸나 보자라며 농을 하곤 한다.2년전 설연휴였다. 코로나19 중이어서 설날은 쇠는 둥 마는 둥했다. 설 다음날 아들네랑 손주들을 데리고 자연휴양림으로 놀러갔다. 눈발이 날렸고, 눈 구경 힘든 대구 아이들인지라 그것만으로도 신나했다. 얇게 깔린 눈을 긁어모아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며 재미있어했다.이튿날 가까운 절에 올라갔다. 하얗게 눈 쌓인 작은 절은 참 예뻤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절문 앞에 멈추더니 손주들은 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동차 사게 해주세요, 난 커다란 인형 사게 해주세요. 애들의 소리를 들으신 것인지 주지스님께서 나오셔서 애들 손을 잡고 종무실로 이끄셨다. 스님께 세배하면 세뱃돈 줄게 그러면 자동차도 인형도 살 수 있지. 스님께는 세 번 절하는 거라고 하자 삼배를 공손하게도 했다. 스님은 빳빳한 세뱃돈을 많이도 주셨다. 절 안마당에는 눈이 꽤 쌓여있었다. 눈밭에 아예 누워 뒹굴며 정신없이 노느라 땀에 눈에 온몸이 푹 젖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였다. 손자가 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느닷없는 질문에 며느리는 너희 낳았을 적에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놀러갔을 때라며 다시 묻는다. 며느리는 제주도 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 손자에게 되물었다. 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손자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지금, 지금이 제일 행복해.”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버이날 풍습이 달라졌다. 유치원 때는 카드나 종이꽃을 만들어 주더니 이젠 우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수신인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보내는 주소는 학교에서 일괄 쓴 것 같고, 받는 주소는 제 엄마가 쓴 듯했다. 보내는 이의 이름과 받는 이의 이름은 손자가 직접 썼다. 빨간 새(닭인가 했더니 앵무새라고 했다)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종이에 쓴 사연은 짧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의집에서 일을 같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랑해요. 이건 올림. 우리 부부는 편지를 사진으로 찍고, 액자에 넣어야지 부산 떨며 감동해했다. 이튿날 아들네 집에 갔더니 제 부모에게 보낸 편지 사연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엄마 아빠 평생 사랑해요. 평생 잘 사세요.”

2023-05-17

발목을 삐끗했을 때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발목을 삐끗해서 즉 발목 염좌는 한의원을 찾는 분들의 주된 질환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발목을 삐끗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운 경우가 생기기도 하므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우선 발목을 삐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그냥 발목을 삔 것인지 골절이 동반된 것일지다. 내외측 발목의 압통이 심하지 않고 몸무게를 실어서 다섯 발자국 이상 걸을 수 있으면 골절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x-ray 등 영상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골절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아주 심한 골절이 아니면 영상검사에 앞서 초기 부종과 통증에 대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부종이 심하면 골절의 경우에도 캐스트를 바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골절의 유무를 막론하고 초기에 발목 염좌가 생기면 손상 부위 주위로 부종 및 압통이 생긴다. 부종이 있는 경우에는 온찜질을 하면 부종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다. 염좌가 발생하고 수 주일 뒤에 부종이 빠지고 난 뒤에는 온찜질을 해주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초기에 부종이 빠지고 난 뒤라도 많이 걷거나 서 있어서 부종이 다시 발생했을 때에는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다. 초기에 부종이 많이 있다가 냉찜질을 하여 부종이 가라앉으면서 피멍이 발쪽으로 깔아지게 되는데 환자들은 이것을 보고 몰랐던 출혈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부종이 빠지면서 생긴 것이니 놀라지 않아도 된다.염좌 초기에 냉찜질 외에 발목을 높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잠을 잘 때 다리 쪽으로 베개들을 받쳐서 심장보다 높게 해주면 부종이 빠지는데 도움이 된다. 같은 원리로 의자 등에 앉아있을 때도 조금 높여주는 것이 좋다.압박 붕대 등을 사용해서 압박을 해주는 것도 초기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 때 너무 강하게 붕대를 조이는 경우 오히려 순환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강한 압박보다는 고정에 의미를 두고 묶어주는 것이 좋고 수면 시에 불편감이 느껴질 정도로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잘 때는 테이핑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발목 염좌의 경우 손상 정도에 따라 생각보다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심하지 않은 손상의 경우에는 1∼2주에도 나아지지만 손상이 심한 경우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골절 환자의 경우에 캐스트를 풀고 난 뒤에도 주위 인대, 건 등의 손상이 남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염좌의 경우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다친 부위에 부담이 가는 일이나 운동 등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염좌로 인한 손상이 심해 회복 기간이 길어질 때 침이나 뜸, 약침 등을 시술하면 회복 기간을 줄일 수 있다.

2023-05-17

횡단보도 그늘막의 가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그늘이 반갑게 느껴지는 계절이 됐다. 때 이른 무더위에 사람들은 쫓기듯 그늘을 찾아든다. 대구·경북에 벌써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16일 낮 최고 기온이 경북 울진 34.9도, 포항 33.9도, 대구 33.6도, 안동 32.8도를 기록하는 등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 시민들이 헉헉댔다. 보행자들은 그늘막 아래서 땀을 훔치며 한숨을 돌린다. 그늘막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든 소중한 존재가 됐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얼마전 최고의 정부혁신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최초 및 최고로 선정한 ‘드라이브스루’ 등 18개 중에서 최고로 뽑혔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서울 서초구가 2015년 국내 최초로 설치한 후 전국으로 확산했다. 그 이듬해부터 대구에도 설치되기 시작, 현재 전국 각지에서 활용하고 있다. 전국 확산 과정에서 그늘막도 진화했다. 기능을 특화한 그늘막이 등장했다. 부산시 북구는 인공 안개비를 뿌려주는 그늘막을 선보였다. 천안시는 학교나 노인시설 등 설치장소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그늘막을 내놓았다. 파라솔 형태의 고정식 그늘막은 2017년 8월 도로법에 따른 도로부속물로 인정받았다.최근에는 그늘막에 스마트 기능을 추가해 주변 온도와 일조량 등을 감지해 자동 개폐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횡단보도와 교통섬 인근에 설치된 그늘막은 보행자들에겐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신호대기 동안 자외선과 열사병을 막아주고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한다. 온열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 네거리 등 도로변에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 됐다. 그늘막의 고마움을 알고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7

특화단지지정에 정치논리 개입돼선 안돼

다음 달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차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 지정을 앞두고 정부가 어제(17일)부터 공모신청서를 낸 지자체를 대상으로 발표회를 갖는 등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오늘까지 이틀간 열리는 발표회는 2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해당 지자체로부터 추진전략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화단지 평가지표 중 가장 핵심은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45점)다. 그리고 인프라와 인력 등 첨단전략산업 성장기반확보 가능성(25점), 첨단전략산업 및 지역산업 동반성장 가능성(30점)도 주요지표다. 포항시가 신청한 이차전지 특화단지 공모에는 울산시와 충북(오창), 전북(새만금)이 신청서를 냈다. 최근 암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 이강덕 포항시장은 발표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 시장은 지난 2014년 취임한 이후 포항을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행정력을 집중시켜왔다. 이차전지산업 경쟁력이나 인프라·인력, 지역산업 동반성장 등 3가지 평가지표를 적용해 보면, 포항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구미시가 신청한 반도체 특화단지(개별형·단지형) 공모에는 14개 지자체가 도전장을 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첫 시작된 구미시에는 현재 SK실트론, LG이노텍을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 부품 기업 344개사가 몰려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집적지다. 인프라나 인력, 지역산업 동반성장 부분에서 수도권 지자체보다 훨씬 앞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구미산단과 불과 10㎞ 떨어져 있는 대구경북신공항이 건설되면 첨단산업 기업들의 물류비용 측면에서도 강점을 가진다. 정부가 이차전지와 반도체를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이유는 국제적인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당 대표가 특화단지 공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등의 잡음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 위주로 특화단지가 지정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만약 특화단지 지정이 수도권 위주로 되거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면 국가차원에서 타격을 받게 된다. 오직 경제논리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가 지정되길 바란다.

2023-05-17

안동대와 경북도립대 통합 추진을 주목한다

국립 안동대학과 경북도립대학이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선정을 목표로 두 대학의 통합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두 대학 관계자는 16일 모임을 갖고 대학통합시 운영 형태, 산학협력단 등 부설기관 운영 방안 등 통합과 관련한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향후 두 대학은 이와 관련한 논의를 지속 벌여 의견을 좁혀 갈 생각이라 한다.두 대학의 통합 논의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글로컬 대학 선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부는 올 초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 속에 앞으로 10∼15년이 대학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인식 아래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하는 글로컬 대학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10개 내외 대학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30개 대학을 글로컬 대학으로 지정하고 한 곳당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알다시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라는 난제 속에 학교 존립을 걱정해야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2023학년 정시모집에서 사실상 미달이 난 대학 중 87%가 지방소재 대학이다. 내년은 더 심각하다. 입시계는 올해 고3 학생 수가 사상 최저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 정원미달 인원이 5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의 국립대조차도 정원미달 쓰나미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의 97%가 지방에 있어 지방대학의 존폐는 시간문제다. 경북은 인구소멸 시군이 많은 대표적 도시다. 지역의 대학으로서는 특단의 결정이 필요한 시기며 정부가 제시한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는 것이 대학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된다.교육부의 글로컬 대학은 지방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역사회와 경제를 이끌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혁신의 당사자인 대학의 뼈 깎는 노력이 필수다. 전국의 많은 대학이 글로컬 대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어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대학은 각자의 이기심을 버리고 글로컬 대학 선정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두 대학의 통합이 성공할 수 있게 지역사회의 관심과 격려도 필요하다.

2023-05-17

유행은 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만 생각해도 신비로운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행복하기 위하여 산다’는 쉬운 답에도 개운치 않은 것은 인간에게 행복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누구에게도 그리 명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위험한 태도가 유행따라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고 하였다. 남들 따라 사는 일이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게 아닌가. 부러운 남들의 그 모습을 따라 사느라, 나를 찾으며 도전하고 새 것을 만들어내는 열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애플의 스티브잡스(Steve Jobs)는 고교 시절 어느 날, 세상에 보이는 저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누군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자각과 함께 남들을 흉내내며 살아오던 자세를 무엇인가 내 것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랬던 끝에 우리 손에 아이폰이 들려있는 게 아닐까.대한민국 청년들이 오늘 힘들다고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을 향한 기대나 열정이 식어있는 것은 혹 아닐까.어려운 가운데 돌파구를 열어내고 힘든 속에서 빛줄기를 찾아내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세상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각을 익히기 위하여 관찰해야 하지만 세상만 좇아가는 삶으로 마감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고 아깝다.유행과 모방 탓에 식어버린 감각은 무디어지고 나만의 세계를 드러낼 방법을 잃게 만든다. 소니(SONY)를 창업했던 이부카마사루(井深大)도 ‘비즈니스나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진짜 성공에 이르려면 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기업에도 브랜드 자산 외에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무엇이 있는가. 끊임없이 살피고 찾아내어 당신만의 무엇을 만들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지역에도 그곳에만 있는 그 무엇이 틀림없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지역문화와 예술이 지역마다 똑같은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다음 세대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미국 가수 리앤워맥(Lee Anne Womack)은 ‘세상을 정말로 놀랍게 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반드시 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곳에는 없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반복하면 절대로 안 된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이곳으로 사람을 끌어올 꿈을 가져야 한다.내게는 있으나 남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포항지역에는 이미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포항에만 있었던 포스코가 지역을 우뚝 일으켜 세웠고 오늘은 저 높은 곳에 스페이스워크가 상상과 가능의 지평을 일깨워 준다. 당신은 누구인가. 남들을 닮으려 애쓰기 보다 남들과 다른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유행은 가라, 나를 찾을 터이니.

2023-05-17

변기뚜껑

윤명희 수필가 이제 그의 흙 묻은 작업복이 어색하지 않다. 대충 쓸어 넘긴 흰 머리카락도 여유롭다. 이사 하는 소감을 말 하라고 재촉하자 소주 두어 잔을 연거푸 비운 그가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변기뚜껑?”뜬금없는 말에 우리는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도로 탁자에 놓았다.처음 그를 만난 건 5년 전 쯤이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시골 살이 해보겠다는 포부로, 늦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하는 일마다 서툴고, 연장 또한 호미 두어 자루가 전부였다.농업기술센터에서 사귄 새 친구에게 농기구를 빌리러 갔을 때였다. 친구 대신 그녀의 남편이 농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열쇠를 들고 서있는 그의 양복차림이 반듯하다. 나는 흙먼지가 묻은 남편의 낡은 운동화와 그의 까만 구두를 번갈아 보며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고 물었다. 집에서 오는 길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의아한 눈빛을 감추기 위해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대기업 간부였다는 그가 경주에 온건 사업을 위해서라 했다. 갑자기 이사해야 했던 탓도 있었지만, 아파트 생활에 신물이 난 마누라의 소망이 더해 낡은 한옥 마을에 집을 구했다. 사업기간이 끝나면 다시 도시에 두고 온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건 두 말 할 나위가 없었다.그가 마지막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주먹만 한 하얀 강아지를 안은 여자가 마당에 들어섰다.그녀는 채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훑어보며 구시렁거렸다. 집 주인인 것을 눈치 채고는 초면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강아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 뾰족 슬리퍼를 신은 그녀가 집을 둘러보는 일이 잦았다. 집의 여기 저기 둘러보며 던지는 소리에 그는 은근히 치솟는 부아를 꾹꾹 눌렀다. 침을 두어 번 넘긴 후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이 보쇼, 내 집이 없어서 이러고 있으면 서러워서 살겠나. 우리 집 변기뚜껑 하나만 팔아도 살 수 있는 이런 집을 가지고 무슨 유세를 그렇게 합니까, 하기를?”순간, 강아지 등을 만지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몇 번이나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달싹거리더니 휑하니 돌아서 나갔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추진했던 그의 사업이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농촌 생활에 몸을 익히는 친구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양복쟁이 그의 구둣발은 도시를 향해 있었다. 친구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 혼자 가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그녀는 화물차에 과일상자를 싣고, 그녀의 남편인 그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게 까만 승용차를 닦았다.시골 살이 하러 온 연배가 비슷한 몇몇이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를 불러댔다. 낚시 하는 이가 물고기를 잡아오고 누군가 텃밭에서 상추를 뽑아오면 또 누구는 막걸리를 들고 왔다. 점차 서로 일을 거들어 주는 날이 많아졌고 해가 산 뒤로 내려앉으면 슬리퍼를 끌고 비닐하우스에 모이는 일이 잦았다.대문만 열면 예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갈 것만 같던 그가 우리 집 근처에 집을 계약했다.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집주인에게 이제 이사할 거라고 기별을 했다.술 한 잔 하자며 손을 끄는 집주인 남자를 따라나섰다. 축하 인사에 이어 남자가 변기뚜껑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그는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처음 이사 왔던 그날, 그는 구겨진 자존심을 변기 물과 함께 내려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모두들 그 집 똥통은 황금으로 만들었냐며 놀렸다. 왁자한 웃음소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썩거린다. 우리는 자기만의 변기뚜껑은 과거 속에 묻고, 이제는 남은 시간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만남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은 바삐 달려가지만 우리는 숨고르기를 하며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2023-05-17

경자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일곱 번째는 경자(庚子)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단단한 바위며 가공되지 않는 원석이다.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산속의 계곡물처럼 차고 깨끗하다. 동물로는 흰쥐다.경자일주는 큰 바위 밑의 쥐의 형상으로 혼자 은둔하며, 무슨 일을 하든 몰두하는 습성으로 고독수가 있다. 성격은 바위처럼 단단하며 주관이 있고 의리가 있다. 스스로 은둔하는 습성으로 남의 간섭이나 참견을 싫어하고 자존심은 세다. 타인과는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지만 믿음이 생기면 쉽게 배신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특히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수재형이다.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한 말을 굉장히 잘해 화술이 뛰어나다. 암반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그렇지만 성격은 차갑고 냉혹한 면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여리고 잔정이 많다. 결벽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경자일주 여자는 아름답고 총명하여 남자를 보는 눈이 높다. 부족한 배우자를 만나면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성향이 있다. 본능적으로 남편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여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남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자를 만나기 쉽고, 여자를 다정하게 대하지만 외도로 인해 악처로 만들 수 있으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녀 모두 미남 미녀로 이성에 관심이 많다.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 ‘월야밀회’가 있다.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저녁에 골목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다. 세 남녀의 복잡한 심리묘사에서 드러나듯 삼각관계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던 사람들은 대개 각 영문의 군교나 무예청의 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이다. 불륜의 시작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마지막은 늘 추하게 끝이 난다.경자일주는 쥐 중에서도 힘이 강한 흰쥐를 상징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주변의 갈등으로 스스로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깊이 숨기는 사람이 많다. 마치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피할 때 ‘너 쥐새끼처럼 어딜 도망가’라는 말을 듣는 거나 같다. 많고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처럼 말이다. 해저 깊은 곳의 보물선을 찾기만 하면 대박인데.우리나라 1940~50년대는 여성 이름으로 경자, 영자, 순자, 말자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소설가 조선작(84)은 1973년에 ‘영자의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60~70년대 최하층민의 생활에 대한 애증과 관심 그리고 산업화에 다른 부작용을 작품화했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변두리로 떠도는 남녀의 사랑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다.주인공 영식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식모 영자를 만난다. 입영영장이 나와 헤어지고 월남전에도 참전한다. 제대 후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서 영자를 찾던 중 우연히 윤락촌에서 만났다. 영자는 버스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인해 외팔이가 되었다. 그것을 안 영식은 의수를 만들어 준다.원피스 속에 적당히 감추어진 의수를 달고 영자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창녀로서 영자에게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은 윤락촌에서 화재로 죽는다. 영화로 개봉되어 성공을 했고,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걸로 끝이 난다.1970년대의 도시의 하층민 여성들은 구체적으로 식모, 여공, 버스차장, 호스티스, 창녀 등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들은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들이었고,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타자였다. 대체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윤락행위는 최하층민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제성장으로 향락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이 와중에‘호스티스’라는 신조어가 창출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표면적으로 퇴폐풍조의 일소나 풍기정화를 표방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부패한 성윤리가 고스란히 노출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또 다른 시대 상황으로 예부터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린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자년에 보리농사가 큰 흉년이 들어 어려운 시기였던 모양이다. 흉년은 이때 말고 여러 번 있었을 텐데 하필 경자년일까. 그 당시 경제 사정이 몹시 힘들었던 의미가 아닐까. 어떤 좋은 기운이 생겨도 마무리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세상 일을 도모하고 만들어주는 것은 하늘이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늘 탓 만 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자일주는 하늘이 아무리 경을 친다고 해도 그것을 잘 피해가는 것이 바로 ‘쥐의 현명함’이다. 생활이 무탈하고 미래에 다가올 인연들을 특히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잘 성사되기를 힘써야한다. 자기 일에 충실하여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남편 아들로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살아가면서 고통만이 존재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 쾌락만 넘쳐흐른다면 어느 사이엔가 쾌락에 무감각해진다. 그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랑하는 것이다. 평원을 지나 험준한 산길을 수없이 넘어야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거치고 계곡물에 발을 적시고 차가운 별빛 아래를 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할 것이며, 많은 것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뿐이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2023-05-17

빅데이터 시대의 공학교육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최근 대한민국의 많은 공학과 연관된 기업들이 빅데이터(Big Data) 관련 다학제간(Multi-disciplinary) 융합 및 실제 문제(Real-world problem)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일부 국내의 대학교에서는 공학 및 빅데이터 관련 산업체에 속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산업체 설문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설문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학부 과정을 마치고 바로 회사로 합류하게 된 대부분 학생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대한민국의 기존 주입식 교육방식 혹은 정답만을 요구하는 교육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문제에 접근하는 능력,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의 부족으로 나타난 결과라 생각한다. 미국 대학교의 경우, 이러한 잠재적인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프로젝트(Project-based) 기반 수업을 제공함에 따라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 및 이론들을 강의실 밖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회들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예를 들어, 미국 앤아버(Ann Arbor)에 있는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는 6학점으로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설계하고 있으며, 학기 초에 기업체를 통한 실제 프로젝트들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하도록 해당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또한, 미국 애틀랜타(Atlanta)에 있는 조지아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도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와 같은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산업체의 전문가들과 학생들을 연결하여 학생들에게 문제를 설계하는 방법,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 청중에게 발표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 그리고 산업체 전문가와 소통하는 방법 등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빅데이터의 출현과 함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국내의 대다수 기업 또한 새로운 인재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해당 기업들은 졸업 이후 회사의 추가적인 교육 없이 곧바로 실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을 희망할지도 모르겠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교육 방법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 보이며 더 나아가 주입식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을 강의실 안에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들을 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믿는다. 더 나아가 빅데이터 시대의 적절한 공학교육을 위해서는 학교가 현재 산업체가 요구하는 역량을 파악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존의 교과목 및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2023-05-16

서울 톺아보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신록이 싱그럽기만 하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 지더니 산과 들로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하다. 푸르디푸른 초목의 향연에 희끗희끗 꽃들이 꿈결처럼 피어나 푸른달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입하목(立夏木)이라고도 불리우는 이팝나무 잎새 위로 흰눈이 내려앉듯 이밥같은 꽃이 피고, 군데군데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며 상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렇게 차창 밖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을 접하며 길을 나선 곳은 서울이었다.일전에 어떤 문인과 나눈 대화 마냥 새삼 ‘촌스럽게(?) 무슨 서울 구경’하러 애써 상경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주마간산격으로 단순하게 훑어보고자 함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애환과 부침의 현장을 답사하며 격변의 시대상을 가늠해 보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국민 품으로 돌아온지 1년을 맞은 청와대를 탐방하는 것도 내심 기대되기도 했었다.조선왕조 500여 년의 역사가 점철된 경복궁(景福宮)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개국 4년째인 태조 4년(1395년)에 세운 으뜸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을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하면서 조선왕실의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켜 부분적인 변화를 가미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를 철거 후 흥례문과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회복 중에 있다. 또한 광화문 남쪽으로 나랏일을 맡아서 처리하던 중앙관청인 육조거리의 윤곽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과정에서 드러남에 따라 발굴된 관청 터 일부를 그대로 노출시켜 전시하고, 해치마당 조성과 미디어월을 설치하는 등 광화문 일대의 역사성과 광장 연계 활성화 측면에서의 의미있는 개선사업을 대대적으로 마치기도 했었다.그리고 74년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온전히 국민의 공간이 된 청와대는, 광화문에서부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에서 때로는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휴식하고 때로는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역사적인 청와대 개방을 기념하고 새시대를 여는 희망과 기쁨을 함께할 다양한 공연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테마별로 곁들여져 한결 흥미와 관심을 더해 준다. 역사 속에서 문화를 살리고 볼거리와 느낄 거리로 감흥을 줄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문화역사관광의 인프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한옥과 골목길, 문화와 예술이 만나고 삶이 어우러지는 세종마을과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조선시대 중인과 일반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근현대에는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한옥체험을 할 수 있고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등이 자리잡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그야말로 꿈결 같은 시간이리라.‘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색적인 명소가 많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모처럼만의 서울 톺아보기는 부담없이 유쾌한 행복여정이었다.

2023-05-16

‘노시니어 존’ 등장이 사회에 던지는 충격

심충택 논설위원 여자주인이 노인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붙였다고는 하지만, 제주도 한 카페에 ‘노 시니어 존’스티커가 등장했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60세 이상은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오지 말라’는 스티커라고 한다. 마치 우리사회 전체의 노인을 대상으로 선언하는 ‘주홍글씨’ 같다. 요즘 노인들도 청장년층 못지않게 카페문화를 즐기기 때문에 노시니어존은 다른 ‘노000존’과는 달리 충격적이다.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미래는 2030세대의 무대다. 60대이상 70대는 투표안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떠오른다.정 의장은 당시 60대 이상 연령층을 향해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끔 대구시 중구 반월당역 지하쇼핑몰을 가보면 노인들이 지하공간 로비를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역 지하공간이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편리한데다 냉난방이 잘 되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노시니어존의 등장은 노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슬픈 노인들의 신세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나는 5월이 되면 옛날 대가족이 살았던 고향집이 그리워진다. 고향집은 ‘전원일기’ 드라마에 나오는 일용이네 집처럼 깊은 산골 초가삼간이었다. 이 작은 집에서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은 같이 살았다. 대가족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혈육의 소중함을 알았던 그때가 너무 행복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는 어른에게 효도하고 가족 간에는 포용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였다.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사정은 지극히 좋지 않다. 2021년 통계청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전 국민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율)은 37.6%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이 시대를 사는 노년층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한 세대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데다 대부분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 경우가 많다. 노년의 빈곤도 문제지만 외로움은 더 견디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노시니어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자영업자가 원하는 소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시장논리라는 것이다. 노시니어존이 많이 생겨날수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하는 카페도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지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이념적 편가르기 문화가 더 세분화된 분야로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노시니어존 카페의 등장은 SNS나 선거과정을 통해 노인증오를 선동하는 분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우리 국민의 유교정신은 외국학자들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가족제도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노인증오 풍조는 사회적갈등 심화 때문에 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합심해서 근절해야 한다.

2023-05-16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우정구 논설위원 파충류의 일종인 도마뱀은 현존하는 파충류 가운데 가장 많은 6천종이 넘는 종류를 가지고 있다. 산간 초원이나 사막 등지에 서식하며 천적을 만나면 꼬리를 자르고 미끼로 남기며 도망가는 동물이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천적을 만나는 절체절명 순간에 최후 수단으로 사용된다. 잘린 꼬리에 신경이 남아있어 일정시간 꿈틀대며 천적의 관심을 끄는 동안 본체는 멀리 달아난다.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를 생태학적으로 관찰하면 몇 가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다시 자라난 꼬리는 더이상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꼬리 자르기는 일생에 단 한번이다.또 자절 후 꼬리가 재생되더라도 처음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으로 재생된다는 점이다. 잘려나간 꼬리에는 뼈가 있지만 다시 생긴 꼬리에는 힘줄만 있고 뼈가 없다. 꼬리는 양분을 저장하는 곳이어서 재생된 꼬리로서는 힘을 제대로 쓰기가 힘들고, 또 몸의 균형이나 속도를 내는데도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도마뱀이 꼬리를 잘라 임기응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타고난 본래의 기능을 완전 회복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의 섭리라 한다.사람 사는 세상에도 꼬리 자르기가 있다. 진실을 숨기고 아랫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한 행위를 비유해 이렇게 부른다. 더불어민주당이 돈봉투 의혹이나 각종 비리에 연루된 소속 의원을 자진 탈당시키면서 탈당꼼수, 꼬리 자르기란 비난에 휩싸여 있다.특히 코인 투기의혹에 빠진 김남국 의원이 자진 탈당하면서 논란이 더 증폭되고 있다. 진실은 자른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도마뱀의 꼬리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3-05-16

세계적 항공사와 TK의 상생협력 환영한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의성지역 항공산업 기반구축과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의 활성화를 위한 의미깊은 행사가 그저께(15일) 포항시 남구 포항경주공항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에는 경북도가 포항경주공항에서 세계 최대 중소형 항공기 제작사인 엠브레어사와 항공산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마틴 홈즈 엠브레어 총괄부사장(CCO), 마시아 도너 주한 브라질 대사,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행사 참석자들은 MOU체결 후 엠브레어사가 제작한 소형 제트 항공기 E190-E2를 타고 공사가 30%정도 진행중인 울릉공항의 상공을 선회하는 시범비행도 했다. 시범비행은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E190-E2 항공기의 울릉공항 취항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오는 2026년 취항 목표로 공사중인 울릉공항은 국내 최초로 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공항인 만큼, 활주로 길이가 국내 다른 공항에 비해 짧다. 시범비행한 항공기는 울릉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을 정기운항하는 항공기와 같은 기종이다. 단거리 활주로(1천200m) 이착륙이 가능하고 우수한 항속거리(최대 6시간)를 유지할 수 있어 울릉공항 취항에는 최적의 항공기로 평가받고 있다.이철우 도지사는 이날 “엠브레어와의 협력을 계기로 글로벌 항공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새로운 항공산업을 육성해 대구경북신공항을 대한민국 항공물류의 허브로 성장시키고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을 세계적인 관광공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 집중된 항공산업(여객·물류·항공정비·기반시설·서비스)을 대구·경북으로 분산해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경북도가 MOU를 체결한 엠브레어사는 브라질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으로 세계 3대 항공기 제작사로 성장했다. 항공기 제작사나 항공정비 업체가 전혀 없는 대구·경북으로서는 항공산업 기반구축을 위해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이다. 강력한 파트너십이 계속 유지되길 기대한다.

2023-05-16

전기·가스료 인상, 물가관리에 선제 대응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16일부터 5.3%씩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kw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올라 4인가구 기준 각 가정이 매월 추가 지출해야 할 에너지 요금은 7천400원 가량 될 거라 한다.이번 에너지 요금 인상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적자보전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국민부담 추가와 물가불안이란 측면에서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다. 특히 자영업자와 산업계 등은 원자재값 상승에 더해 에너지 값까지 오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을 어떻게 꾸려갈지 벌써 걱정이다.정부의 에너지 가격 인상은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불가피하다. 원가보다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지속 공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상으로도 공기업의 경영난이 완전히 타개될 수가 없어 연내 전기·가스요금의 추가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물가 관리가 사실상 비상이다.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국내 소비자 물가는 지난달 3%대로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전기·가스료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선제적 대책이 따라야 한다. 전기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서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과 함께 우리사회에 만연된 에너지 과소비 풍토를 근절시키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량 OECD국가 평균보다 1.7배나 높다. 그러면서 효율성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겨울 가스료 인상으로 난방비 폭탄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 예상되면서 전기료 또한 난방비 못지않은 폭탄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정마다 에너지 절약의 지혜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 정부가 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공기업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에너지 시장가격이 왜곡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 정치적 판단으로 에너지 가격이 왜곡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업소, 기업들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정부는 시장기능에 의한 합리적 요금관리로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05-16

체통을 지키시라

얼마 전 실천문학사에서 시행한 설문조사가 화제다.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와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가 그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실천문학사측은 여론의 압력으로 인해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세태 속에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다소 억울한 듯 들리는 이 이야기는 고은 시인의 작품이 최근 계간지 실천문학에 실린 것과 그의 신작 시집 ‘무의 노래’가 마찬가지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실천문학사는 ‘이전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추문에 깊이 휩싸여 있었으며, 2017년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와 같은 추태가 폭로당한 고은 시인이 어떠한 인정이나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올해 초,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공식적인 사과문을 내놓고, 또 자숙의 의미로 계간지를 한 해 휴간하겠다고 밝혔던 실천문학사가 다시금 본인들을 향한 여론을 정면 반박하며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시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실천문학사의 공지사항에서는, 이러한 입장의 변화가 문학 전문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와 이승하 교수의 왜곡 기사가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들의 잘못된 기사가 자사의 이미지를 실추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타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왜곡이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인 출판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자신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어딘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2차로 시행된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의 문항을 예로 들자면, 여기에서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을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로 비유하며, 그러한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아울러, 그 “농부가 수확한 벼”를 도정한 “정미소에 대해 범죄인을 도와준 사악한 정미소라며 판매중단을 압박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어지는 설문에서는 위의 이야기를 “시만 쓰던 모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감금 당하듯 살았고”라고 바꿔 물으며 그 본의를 전달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의 마지막에서는 지록위마의 고사를 인용하며, 일부 언론 기관과 그에 관련된 인사들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가 옳은 것이냐고 묻기까지 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궁금한 건, 과연 실천문학사가 ‘설문조사’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문인, 일반 독자, 언론인들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적극적인 의견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상 그 문항들은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해 작성하고, 그걸로 모자라 고은 시인과 관련된 사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이 설문조사를 대체 무엇이라 생각해야 되는지. 자신들이 이미 ‘범죄를 저지른 농부’에 비유하고 있듯이, 그는 분명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어떠한 법적 처벌도,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도,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은 그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단 말인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잠적을 하고, 가짜가 자신을 사칭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일관해왔던 그가 치른 대가란 대체 무엇인가.과연 실천문학사의 이같은 설문조사를 정상적 행위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첫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이 존재한다. 고은 시인의 5년 만의 신간 시집 출간을 두고 언론사의 객관적이지 못한 보도 행태가 프레임을 조작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은이 저지른 어떠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시인도, 그의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지 않다. 과연 프레임을 조작하고, ‘지록위마’를 행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그들이 한국 문학에서 ‘실천문학’이라는 사명이 갖는 의미에 걸맞게 스스로의 권위를 더는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05-16

무림 고수가 되고 싶다면

어떤 세계든 ‘고수’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그리하여 그것에 통달해 버린 몸짓을 보여주는 이들을 보면 우리는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게 된다.고수는 멀리 있지 않다. 무거운 짐을 얹고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하체에서, 빛의 속도로 김밥을 말아내는 손에서, 눈을 감고도 라면의 종류를 척척 맞추는 미각에서, 우리는 고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무협 소설의 무림은 고수 중에서도 고수가 되고 싶은 자들로 넘쳐나는 세계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무릇 강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 주변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일이다.키오스크가 점원을 대신하고 AI 챗봇이 친구가 되어주는 21세기에 갑자기 무림은 또 무슨 말인가 싶지만, 꿈꾸는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인류의 눈부신 발전은 멈추지 않는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으니. 현실은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상상 속의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군자가 되고 싶은가? 천하를 호령하는 가문의 가주를 원하는가? 명망 높은 문주가 되어 세간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무림인들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구경꾼을 꿈꾸는 자는 없을 것이다. 무림 고수의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라고 못 할 것 있겠는가. 이곳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강자를 꿈꾸는 세계다.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한 훈련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둔 고수를 찾아갔더니 청소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부터 제대로 해내라고 다그칠 수도 있다. 다 뜻이 있겠거니 여기며 마루를 반짝반짝 닦아도 돌아오는 건 불호령뿐. 새벽같이 일어나 온갖 잡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의 근육이 골고루 발달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제야 스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당신에게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을 알릴 테다.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옆 문파의 누구는 벌써 무형검을 익혀 강호를 주름잡았다고 하고 어느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고 한다. 거기에 수많은 악의 조직은 뭘 먹고 그렇게 강한 것인지. 오직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엄마 친구 아들’은 21세기뿐만 아니라 무림에도 존재한다. 주변에 휘둘리면 끝이 없는 법. 자신만의 도(道)를 지키면서 정진, 또 정진해야 한다.자, 이제 그간의 노력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왔다. 훌륭한 정권 찌르기를 연마했더라도 방구석에서 홀로 고수가 될 순 없다. 그간 익힌 기술로 마교의 천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못된 아이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려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니까.세상에 힘차게 발을 디딘 당신, 반드시 실패하리라. 내가 왔노라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무관심뿐일 수 있다. 자신보다 곱절은 강한 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기도 하고 오만에 빠져 우스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끔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할 테다. 세상이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마음이 소란한 까닭이라고 생각하며 은둔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방구석에서 정권 찌르기를 연습했을 때는 느낄 수 없던 패배감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칼을 빼어들었으니 무라도 썰어보겠다며 기합을 넣는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거기에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다.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고수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작다고 여겨지는 일부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한 뼘 자라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수험생의 문제집 독파 일수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가사 노동 일수도, 회사원의 출퇴근일 수도 있다.소설은 끝나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넘치는 무공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가 못 되어도 괜찮다.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하다 새우 등 터진 구경꾼의 하루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으리라. 툴툴 털고 일어나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것. 치킨에 맥주, 싸움 이야기까지 곁들이며 친구들과 낄낄대는 밤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무림의,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고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3-05-16

마약 없는 사회를 꿈꾸며

김규인 수필가 학생들에게 마약을 뿌리는 사회.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매스컴에서 계주하듯이 마약 관련 사건이 터진다. 그만큼 마약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파고든다. 시간과 장소를 묻지 않고 우리 사회로 퍼진다.2017년 한 해 마약류의 압수량이 154.6㎏이었다. 올해 들어 두 달 만에 마약류 압수량은 176.9㎏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급속하게 퍼져버렸다. 그 엄청난 수치 앞에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왜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그 대상도 일반 성인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와 어린 학생들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까지 마약으로 휘청거린다. 관리가 엄격해야 할 군대마저 이 지경이니 다른 곳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군대는 총과 수류탄 등 살상 무기를 다루는 곳이 아닌가. 마약에 취해 동료를 향해 총이라도 난사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미국의 마약 거리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좀비처럼 걷는다. 마약 복용으로 근육이 강직되고 우리 몸의 도파민의 분비체계가 교란되어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똑바로 설 수도 걷지도 못하며 마치 화상을 입어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을 없애려 다시 마약을 찾는다.마약 파는 사람들이 나쁜 줄을 알면서도 마약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가간다. 한 번 복용한 마약은 다시 마약을 부른다.이에 따라 일상의 행복은 찾기 힘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고통을 받는다. 죽을 결심으로 마약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남는 것은 늘어난 빚과 망가진 몸뚱어리뿐이다.학교에서는 학교대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친근한 김밥, 족발, 떡볶이 앞에 마약을 붙인다. 그렇게 마약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다가오는 분위기다. 사업체는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고, 언론은 마약의 위험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약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올해 초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에 검찰만 나서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나의 주위에서 마약을 퇴치할 때 우리는 누군가가 선의로 건네는 음료수를 기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다. 일상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는 날이 빨리 오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다.마약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지만, 우리는 힘을 한곳에 모으는 놀라운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이, IMF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이,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응원의 함성이 그러하다.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 국민의 유전자가 힘을 발휘할 시기이다.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어려움이 곳곳에 널려 있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 반도체를 다시 꽃 피우고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마약 없는 건전한 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대한민국의 힘을 모으자.

2023-05-15

재테크와 인문학의 라이벌 관계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유튜브를 즐겨 본다. 구독한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에 몸과 마음을 맡길 때가 많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재테크 관련 영상들을 자주 추천한다. 아마도 내 검색어와 사이트 방문 기록 등을 종합하여 이 40대 남성은 재테크 관련 영상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재테크에 투자할 자금도 없지만, 소위 경제 유튜버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되어 한참을 보게 된다. 저축, 보험, 주식, 부동산, 펀드, 코인(가상화폐) 등 콘텐츠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필자야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하지만, 실제로 재테크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들을 보며 공부에 열중할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종자돈을 투자해야 하니 얼마나 불안하고 애가 탈까. 그 절박함은 대학 입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경제 유튜버들은 이런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용해 돈을 번다. 서점에도 재테크 서적이 수두룩하다. 재테크로 돈을 버는 것보다 재테크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노동가치가 추락한 사회의 자화상이다.서울 동작도서관은 5월부터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의 구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구입 희망도서 중 재테크 관련 서적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장서불균형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유행을 타서 한두 번 대출된 뒤에는 서가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를 모두 구입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은 구입할 수 없기도 하다. 특히 공공 도서관에서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독서, 교육, 조사, 연구 활동에 기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작도서관의 혁신적 시도에 박수를 보내며, 전국의 도서관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것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책 대신 영상을 즐겨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등산과 예배당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일요일에 등산을 가고 교회에 나가면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되지만, 다른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면 영화계 전체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탁월한 통찰이다. 사람들이 문화와 여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그 효과는 문화계 전반에 미치게 된다.반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재테크를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사회. 노동의 가치, 근로소득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 건물주가 ‘갓물주(GOD+물주)’가 되고, 불로소득이 찬양받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문학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문학의 라이벌은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아니다. 재테크를 강요하는 사회가 인문학의 적이다.

2023-05-15

기록 바깥에 존재했던 기억

20년이 지난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는가. 31살의 아빠와 11살의 딸이 함께했던 튀르키예 여행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는가. 그날의 온도와 날씨, 대화와 음식, 사건과 풍경들은 잊혀진 것인가 감춰진 것인가.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은 다시 회상하는 기억(추억)의 의미를 더듬는다.다시 회상하는 기억의 동기가 되며, 기억의 보조 장치로 등장하는 캠코더. 11살의 여름, 아빠와 함께했던 며칠 간의 여행은 딸의 시선과 아빠의 시선으로 파편적으로 캠코더에 담겨있다. 흐릿한 기억과 파편적으로 담겨 있는 기록. 기억과 기록의 행간을 오가며 20년전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그리고 되살아난 기억은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이해와 감정을 몰고 온다.캠코더에 기록된 사실은 캠코더 밖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기억의 이해를 돕는다. 영화는 아빠와 딸의 시선 속에 머물며 풍경의 모든 것은 그 둘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 이 이야기를 되살리고 있는 것은 누구의 기억이며 기록이냐가 모호하다. 물론 영화의 시작과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성장한 딸의 순간적인 모습 속에서 딸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아빠가 소환되고 있다는 것은 유추해 볼 수 있다.표현이 다소 복잡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빠와 함께 했던 여행의 며칠간이 특정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없이 이어진다. 기억과 기록이 뒤섞이고 재편집된다. 시간은 휴가지에서 보내는 날들과 같이 순차적으로 흘러가고, 몇 개의 선명했던 일상이 펼쳐질 뿐이다. 그 틈 사이로 불안한 기운들이 스며든다. 시간순으로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개의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은 던져지지만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않는다. ‘왜?’라는 의문은 끝까지 풀리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과 불확실한 기억, 분명하지만 단편적인 기록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기억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재해석되고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로 남는다. 이제 거대한 덩어리가 해체되어 나열되고 이야기로 편집되어진다. 흐렸던 기억은 분명한 캠코더의 기록에 의해 그 당시를 감싸고 있었던 감정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캠코더의 기록보다 강력한 기록인 사진과 아빠의 엽서가 등장하고 아름다운 ‘노란색(영화의 중간중간 노란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노란색 카메라, 노란 잠수복, 노란 자유이용권, 노란색방)’으로 자리잡는다.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확인할 길이 없는(영화 속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는 딸을 떠나보내고 난 이후 혼자 남은 튀르키예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떤 감정과 추측을 어떻게 구현하여 영화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하겠다. 단순한 내용은 독창적인 형식으로 사실과 추측 사이를 오간다. 봤어야 할 것을 보지 못하거나 봤어도 무심코 넘겨버린 것들이 20년이 지난 딸에게 무겁게 다가온다.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영화는 플래시백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31살이 된 딸의 기억이며, 새롭게 깨닫게 되는 아빠와 나의 추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서도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불안함과 아득함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혹은 영화를 보고 난 그 이후 밀려오는 감정은 묵직하다.그 힘은 영화의 이야기보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것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던 감독의 영화적 형식에서 기인한다.무언가 아버지를 휘감고 있었던 고민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열거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20년 전의 기억에 기대어 추측만 해볼 뿐이다. 기억의 모호함과 기록의 정확함이 낳은 결과다. 기록이 있기까지, 혹은 기록이 되지 않은 기록 바깥에 대한 이해와 추측이 영화를 이끈다. 과거에 대한 영화지만 좀처럼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았던 영화, 사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플래시백이었던 기막힌 형식의 영화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05-15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한글편지 50통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나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이제 성년의 날을 지나 부부의 날까지 이르면 5월이 거의 끝날 것이다. 의식적이고 의례적일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 여기며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기념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 그리고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중 혼인을 통해 맺어지는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데, 이때 각 배우자의 직계혈족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이가 된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부모님이기에 시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지내야하지만, 갑자기 형성된 가족인데다가 혈연도 아니기에 잘 지내기 위해서는 더욱 마음을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할 때 관계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불화와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것이다.내방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는 ‘쌍벽가’는 작자가 분명하고 창작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는데, 바로 이 작품의 작자인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한글편지 50통을 받은 주인공이다.(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쌍벽가를 포함해 내방가사 347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목록으로 등재한 바 있다.) 연안이씨가 받은 이 편지들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류운(柳澐·1701~1786)이 1759년(영조35)부터 1767년(영조43)까지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지가 1759년 6월부터 이듬 해 5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1년 동안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가 무려 43통이나 된다. 거의 일주일마다 1통씩 보낸 격이다. 인편이 아니면 편지를 주고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시아버지 류운은 어떤 배경과 사연으로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류운은 이 당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어 서울 살이 중이었다. 그는 서애 류성룡의 6세손으로 안동 하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류운의 차남 류사춘(柳師春·1741~1814)이 서울 출신 연안이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들의 혼인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아들인 류이좌(柳台佐·1763~1837)의 출생 연도로 볼 때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다. 연안이씨는 성헌(醒軒) 이지억(李之億·1699~1770)의 차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지억은 1751년(영조27) 문과에 급제했고, 이때에는 정3품인 도승지(都承旨)와 양주목사(楊州牧使)로 활동했다. 연안이씨가 시아버지와 한창 편지를 주고받았던 1년, 그녀는 서울 친정에 기거하며 시아버지의 관직 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시아버지의 편지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 보내준 음식에 고맙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고, 혹시 어디 아프고 불편한 데는 없는지 늘 궁금해 했다. 행여나 며느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만저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류운은 1759년 6월 26일에 쓴 편지에서 “들으니 흉복통과 여름 감기로 날포 세게 앓는다고 하니 더위는 심하고 오죽 괴로우며, 사령(사돈 이지억을 가리킴)께서도 안 계신데 병이 그러하니 병중에 네 마음이 오죽하랴. 가 보지도 못하고 답답하며 염려가 일시도 가라앉지 않는다. 수일간 가감(加減)이 어떠한고. 사령이 내일 가신다 하니 약이나 먹고 쉬이 나으면 오죽 좋으랴.”라며 며느리의 병을 걱정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날의 편지에서 “네가 본디 흉복통이 있다고 하는데 얼음을 자주 먹더라고 하니 어이 병이 아니 나랴. 잠시 병이 나았으나 병이 없는 사람도 병나기 쉬운 것이니 지금부터는 부디 먹지 마라. 가 보지도 못하고 섭섭함이 끝이 없다.”라며 안도감과 걱정스런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병이 나았다고 하니 안심이지만 얼음 때문에 병이 난 것으로 보이니 지금부터는 먹지 말라며 당부한 것이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류운은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서울 어느 곳 누군가의 집에 임시로 기거하며 빨래와 옷 수선 및 옷 짓기 등을 며느리에게 부탁했다. 1759년 11월 28일의 편지에서 “지난번 도포는 조금 긴 듯하고 버선은 작은 듯한데, (그냥) 입고 신겠다. 옷 빨 길이 없으니 어렵지 않으면 (빨래감을) 보내고 싶으니 기별하여라.”라고 한 것이나. 1760년 5월 어느 날에 쓴 편지에서 “네가 오래지 않아 갈 것을, 관아 일의 여가가 적어 자주 못 보니 섭섭함이 끝이 있으랴. 관대 따로 짓기 어려우면 마른 후 그 관대 두고 보면서 짓게 하여라. 다른 관대 보내고 싶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이라 본떠 따를 것이 아니다. 그 관대 깃이 검어졌으니 마르고 남는 것 있거든 떼고 고치면 좋겠으니 보아라. 당직을 마치고 나온 후 다시 가면 보겠다.”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어조가 참 부드럽다. 며느리가 지어준 도포의 길이와 버선의 크기가 딱 맞지는 않지만 그대로 입고 신겠단다. 빨래감도 바로 보내지 않고 혹 형편이 되는지 확인하고 기별하라고 한다. 관직의 업무가 바빠서 자주 못 보는 것도 섭섭하다고 한다.시아버지 류운이 며느리 연안이씨에게 보낸 이 편지들은 가족일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2023-05-15

양수발전소의 부상(浮上)

홍석봉 대구지사장 양수발전은 평상시 전력 공급이 충분할 때 하부댐 물을 상부댐으로 퍼올렸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상부댐 물을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3분이면 전력 생산이 가능해 원자력, 화력 같은 주력 발전이 멈추거나 출력을 낮춰야 하는 긴급 상황에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안정적인 장시간 운전을 할 수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양수발전소 건설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확대 추세다.유용한 시설이긴 하지만 댐 건설로 인한 주민 이주와 환경 훼손 등 때문에 기피 시설로 꼽힌다.국내에선 1980년 청평양수발전소가 첫 건설됐다. 이후 삼랑진, 무주, 산청, 양양 등에 잇따라 건설됐다. 대구·경북에는 청송 양수발전소가 2006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2년엔 예천 양수발전소가 건설됐다. 현재 7기가 국내 가동 중이다. 2019년 지자체 공모를 통해 영동, 홍천, 포천 3개 지역을 추가 선정, 2024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30년부터 2034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할 예정이다.정부는 2036년까지 현 설비의 75%에 해당하는 3.55GW 규모의 양수발전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1단계로 1.75GW 규모 신규 양수발전소 2~3곳을 오는 6월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경북 영양군과 봉화군이 양수발전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기피시설을 유치해서라도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려보려는 의도다. 양수발전소 유치시 인구 증가,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영양군과 봉화군이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구성, 결의대회를 갖는 등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경북 지자체의 처절한 몸부림이 너무 애절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5

‘지역역량강화 사업비’집행에 구멍

본지가 지난 8일과 10일 단독보도한 영덕군 영해면 지역역량강화사업(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의 비리의혹 행위가 경북도내 타 시·군에서도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영해면 사업을 맡은 위탁업체가 포항시 흥해읍과 경주시 안강읍, 청송군에서도 같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지역역량 강화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지역 주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하루하루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영해면도 정부공모에 선정돼 지난 2020년부터 내년까지 5개년 사업으로 국비 105억원과 군비 45억원을 들여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문제는 영해면 지역역량 강화사업의 투명성을 감시하기 위해 구성된 사업추진위원(31명) 중 일부가 국가 보조금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지역사회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이다. 허위 강의기록표를 제출하고 강사료를 부당 청구하는 수법으로 보조금 수백만 원을 부정 수급해 왔다는 내용이 주류다. 단순 뜨개질 시간에 참여한 사람에게 회당 14만여원을 강의비로 지급했다는 의혹도 있다. 최근에는 이번 의혹에 연루된 추진위원들이 문제가 불거지자 위탁업체로부터 받은 강사비를 반납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지난 2022년 7월 해당 위탁업체에 용역비 14억원 중 7억원을 선급금으로 지급한 영덕군은 최근 본지보도 후 사업을 중지시켰으며, 경찰도 강사비 부정수급 의혹 부분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역량 강화사업은 인구소멸 위기를 겪는 읍·면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주민들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농촌지역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이 사업비가 취지에 맞게 사용되지 않고, 엉뚱한 데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많다. 비리행위에 가담한 당사자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영덕군 외에도 해당 위탁업체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주시와 청송군에서도 예산이 투명하고 적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2023-05-15

폭염 적응능력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지난달부터 45℃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는 이례적인 괴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올해 적도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하강하는 현상인 ‘라니냐’가 수그러들고 다시 그 반대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한다.이러한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폭염은 중국을 거쳐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과거 2015년에도 ‘슈퍼 엘리뇨’ 현상이 발생하여 인도는 당시 5월 기온이 50℃ 가까이 치솟으면서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2016년은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고 우리나라도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다.지난 50년간(1971~2021년) 기상청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구광역시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18년(7월 27일)은 최고기온이 39.2℃를 기록하여 39.5℃를 기록한 1977년 이후 최고기온이었다. 또한 폭염일수 40일, 열대야 지속일수 16일로 50년의 기상청 관측 기록 중에서 각각 5위와 2위로 역대급 수준이었다. 그리고 5위 이내 최상위 폭염 기록은 2000년대 이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온도와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도구인 RCP(대표농도경로) 모델의 8.5 시나리오(현재 배출추세 적용)로 대구광역시 미래 기후변화를 전망해 보았다.폭염일수가 2100년에는 현재(21.9일) 대비 무려 56.8일 증가하여 78.7일로 전망되었다. 특히 서구와 중구 지역은 각각 94.4일과 94.0일로 폭염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됐다.열대야 일수는 현재(6.1일) 대비 2100년에는 50.2일 증가하여 56.3일로 전망되었고, 역시 중구(70.8일)와 서구(70.7)가 폭염일수와 같이 열대야 일수도 가장 길었다.시나리오와 같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특단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온상승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감당할 수 없는 암울한 수준으로 나빠질 것이다. 여기에다 대구광역시내 폭염에 취약한 계층인 65세이상 노인인구 증가율이 1995년에 6.1%에서 2018년에는 14.8%로 급격히 증가하였다.그 결과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 등 기후재난 대응정책에 활용하는 기후변화 취약성 지표는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받기 쉬운 정도로 정의하는데, 대구시 폭염 취약성은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지 않으면 계속 나빠지게 된다.대구시는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응급의료 생활화, 주거환경 개선, 취약계층 건강관리, 공동편익시설, 녹지네트워크 구축, 지역에 도움되는 폭염활용, 멀리 내다보는 폭염준비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이번주 5월 17~19일은 ‘2023 대한민국 국제쿨산업전’이, 7월 13~15일은 ‘2023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 이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고자 대구에서 개최되는 전국 최초, 최고 권위의 행사로 지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023-05-15

현안 많은 포항시, 시정 공백없게 만전 기해야

포항시는 이강덕 시장이 최근 수술한 지병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후속 치료를 앞두고 “흔들림 없는 시정업무 추진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이 시장은 전립선암 후속 치료를 위해 15일부터 약 한달간 자리를 다시 비울 것으로 전해졌다.포항시는 지역 산업구조 개편 등을 위해 그동안 총력전을 펼쳐왔던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대한 포항시의 유치계획 전략발표회를 17일 서울서 한다. 그리고 상반기 중에 그 결과를 정부가 발표할 예정이어서 지금은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위한 포항시의 업무는 초긴장 상태다.게다가 최근 포항에 이차전지 관련 생산시설을 집중 투자한 에코프로 회장의 법정구속이란 돌발변수가 생겨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포항으로서는 이 시장의 업무 공백이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물론 17일 서울서 열리는 지자체 유치전략 발표회는 이 시장이 직접 참석, 설명한다. 포항시가 이차전지 특화단지의 최적지임을 강조할 예정이나 정부의 심사평가 등 후속적으로 챙겨봐야 할 업무도 만만치 않다. 이 시장은 치료기간 동안에도 중요 사안은 직접 챙기는 등 “한치의 행정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시장의 뜻에 맞추게 시 간부들의 업무 긴장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포항시의 이차전지 기반시설은 전국 최고다. 세계 1위의 이차전지 대기업인 에코프로가 전주기 생산시설을 완비해 있고 포스코 퓨처엠의 투자도 지속 이뤄지고 있다. 중국 등 다국적기업의 이차전지 투자도 상반기 중에만 5조원 규모에 이른다.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이 포항에 자리를 틀었고 산학연 연계의 RD기반 등 이차전지 인프라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단체장의 공백이 특화단지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특화단지 유치라는 비상 상황인 점을 고려해 행여 빈틈이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이밖에도 이 시장은 올 여름 많은 기상이변이 예상됨으로 재난방재 시설 준비에도 만전을 기해달라 주문했고, 기업유치 활동도 지속해 줄 것을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지금은 포항시 직원들의 합심 노력이 더 필요한 때다.

2023-05-15

국민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김진국 고문 참 실망이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가 논란이다. 그동안 김 의원의 언행과 보도 내용은 너무 딴판이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김의원은 그게 아니다. 김 의원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연일 돈 문제가 터지고 있다. 수천억 원을 만든 ‘대장동 게이트’부터 입에 오르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돼,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뿌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제 대표적 소장파인 김의원의 코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 도둑놈이다)란 말이 생각난다.‘공직자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직자에게는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그걸 자기 치부(致富)에 이용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김 의원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핵심 의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보도한 언론 탓만 한다. 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도로 윤리감찰도 시작했다.김 의원은 상임위에 참석하면서 코인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의원 자격이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과 1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하면서 9차례나 코인 거래를 했다. 청문회 전과 점심시간까지 합치면 31번이다. 그러니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핼러윈 참사를 논의한 상임위에서도 코인을 거래했다. 그래 놓고 변명이라는 게 “화장실·휴게실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이해 충돌 가능성도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보유한 코인에 과세를 1년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해 통과시켰다.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규정하는 법안을 공동발의, 처리했고, 민주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데도 역할을 한 의혹도 있다.‘도둑맞은 가난’(박완서)이란 소설이 있다. 가난한 경험까지 탐내는 부자의 염치없는 허영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모텔 한 방에서 보좌진과 셋이 잤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3만7천원 주고 산 운동화에 구멍이 났다’라며 가난을 호소해 지난해 의원 중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았다. 그를 믿고 응원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난 코스프레’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더구나 코인에는 청년세대의 한이 맺혀 있다. 부동산값이 폭등해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코인에 투자해 그나마 모은 돈을 털린 청년이 많다. 그런데 돈과 정보와 인맥으로 무장한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을 쓸어갔다니, 가장 청년을 위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훔쳐 간 꼴이다. 김 의원은 무슨 돈으로 투자했는지, 어떻게 사고팔았는지 감추고 있다. 주식을 판 돈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명할 때마다 뒤집힌다. 양파처럼 새 의혹이 불거진다. 김 의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조사팀도 종잣돈이 불법 로비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한다. 아무리 ‘공정’을 떠들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특권을 누리려 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공정이 시대적 화두다. 지난 대선의 최대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내년 총선에서 조 전 장관이나 그의 딸 출마설이 나온다. 비위 사건이 터지면 잠시 무마하고, 곧바로 뒤집는 행태가 반복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가 나온다.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키고, 위안부 후원금을 유용한 윤미향 의원,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은 민주당 소속처럼 움직인다.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면 개인 비리가 아니라 당의 비리가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14

유난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것도 ‘병’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不安)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불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다.누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이렇듯 불안은 매우 고마운 감정이다. 즉, 불안(不安)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그러나 병(病)적 불안(pathological anxiety)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그 결과를 재앙(災殃)적으로 예측한다. 재앙적으로 예측하는 불안은 오히려 미래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게 해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병(病)적 불안으로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한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진단명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그러나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범 불안장애(汎不安障碍, 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인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범불안장애 진단기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일상생활을 할 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범 불안장애의 핵심은 걱정이다. 걱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더 큰 걱정을 가져오고 불안을 증폭한다.앞서 언급한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인데,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 정도로 알려졌다. 범 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로 범 불안장애의 걱정은 남이 느끼기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이기에,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 치부된다.따라서 걱정이 많은 것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이지 병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은 범불안장애 일 수 있다.또 범불안장애 불안의 특징은 ‘부동성(浮動性)’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불안이 너무나 만연해있기에, 일상 상황이나 활동에서 막연하게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에서 ‘부동성 불안’이라고 한다.갑자기 짧은 기간 극심하게 삽화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장애에 비해 서서히 덜 극심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성격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두 번째로 범 불안장애는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과잉 각성 증상으로 인해 신체적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특히 우리나라는 불안의 감정 표현이나 걱정의 인지적 표현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예를 들면 두통, 근육통, 피로감,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숨이 참, 빈맥, 빈뇨, 급박뇨, 땀이 남, 목안의 이물감, 안검경련, 손발 떨림, 손발 저림, 어지러움,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림 등의 신체적 증상이다. 따라서 신체 불편감이 우세하므로 신체장애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며 정신건강의학과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세 번째로 범불안장애 환자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는 불면증이 나타나지만, 그냥 ‘불면증’으로 만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한 것을, 그냥 ‘만성 피로’라고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그냥 ‘주의력 저하’라고 호소한다.따라서 범 불안장애의 진단이 가려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질환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범 불안장애는 대개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 초기에 많이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진단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상기 열거한 이유 등으로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이상 경과 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범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2023-05-14

전염병을 향한 인간의 도전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에게 평소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빌 게이츠는 탁월한 기업가라는 이미지 외에도 통 큰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인간적인 면모와는 별도로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진단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CEO들에게 주문한 변화의 필연성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키아의 몰락으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훌륭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중해가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한 발언 중에 주목할 것은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식량 기근이나 핵 전쟁 같은 재앙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파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이어서 새삼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아닐 정도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을 받아 왔고 더불어 전염병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한 국가나 사회의 존망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흔히들 우리는 절망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전쟁을 떠올리지만 기실 질병이 인간에게 안긴 고통에 비하면 이내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BC 431년 도시국가 아테네는 콜레라로 인해 190만 명이 사망하였고 서기 165년에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천연두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541년부터 한 세기 동안 페스트가 65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347년부터 유럽 대륙을 다시 찾아온 페스트(흑사병)는 6년여 동안 7천500만 명에서 2억여 명의 인명을 집어 삼켰고 이때 사망한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3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을 괴롭혔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머신에 의존하게 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일반 민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페스트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난 온 젊은 남녀 10명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이후 19세기 인도와 중국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1천500만 명의 생명이 쓰러졌고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21세기가 도래한 최근의 코로나 19까지 질병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보여주었고 15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덮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삼킨 대재앙은 실제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한 학자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었다.또한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와 아즈테카의 강대한 제국을 덮쳐 신대륙 원주민의 90% 절멸시켰다. 거대 제국들은 전염병 앞에 바람 앞에 촛불처럼 쓰러져 갔다. 20세기 들어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라진 생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4배를 넘고 있다.한 대륙의 제국을 초토화 시킨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회복되어도 얼굴에 흉한 상처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1873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인 의사이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은 이상하게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소와 천연두 면역력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최초의 효과적인 우두 종두법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케 되었다.‘하나님의 천벌로 내린 전염병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다’는 종교계의 주장도 천연두 퇴치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꺽지 못했다1979년 WHO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선언 하였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엄혹한 조건의 극한 상황 앞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때마침 지난주에는 대통령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 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이후 장장 3년 4개월 만이다.기나긴 팬데믹 기간에서 정상으로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도 전염병은 탐욕스러운 인간을 향해 소리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이거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3-05-14

공자와 법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어버이날이 지났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지만, 귀가하는 사람들 손마다 카네이션과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보면서 꼭 그럴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유교 문화의 뿌리가 참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는 사상을 넘어 생활문화로 깊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제는 애증이 교차하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사실은 두어 달 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주주금석 논어생각’을 매일 한 편씩 올리고 있다. 김도련의 저서 ‘주주금석 논어’를 내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주주금석’에서 주주는 주자의 해석이고, 금석은 정약용의 해석을 중심으로 저자가 풀이한 것인데,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두 해석을 비교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학창 시절 때 ‘논어’를 읽으며 느낀 감흥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그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새롭게 보여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효에 대한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공감하기 힘들다.‘논어’에 나오는 효에 관한 유명한 구절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뜻을 살펴보고,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실을 살필 것이니,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침이 없어야 효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 대해 금석이 주주와는 풀이가 약간 다르지만, 자식이 부모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그러나 이런 공자의 이야기를 현대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는 부모 자식간의 갈등은 자녀에게 부모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 선택에 부모가 강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했거나 집 떠난 자녀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요구하거나 주말마다 찾아오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방청객의 고민을 즉석에서 풀어주어 인기가 많다. 방청객 사연 중에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 문제도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자식에게 서운한 부모나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진 자녀의 이야기다. 법륜 스님의 답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의무이므로 착한 행동은 아니다. 대신 자녀가 스무 살이 되면 독립시켜라. 이제 부모와 자식은 모두 성인이므로 자신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므로 착한 행동이다. 착한 행동은 하면 좋지만 안 한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의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해라.’유교 사상에 비추어보면 말도 안 되는 답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생활환경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유교가 지배하던 농경사회에서는 경험 많은 부모의 뜻이 옳은 경우도 많았고, 부모가 죽기 전까지 재산은 모두 부모의 것이었다. 반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의 경험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인데다, 자녀 또한 부모와 독립하여 재산을 가질 수 있어서 온전히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다. 유교의 ‘중용’은 때에 맞게 한다는 ‘시중’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논어’는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지만, 가족 윤리에서는 ‘시중’의 의미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