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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밀양 영산정사 성보박물관, 그리고 세계 최대의 와불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일등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모든 걸 순위의 결과를 놓고 등수로서 평가하려 한다. 존재의 가치와 참 의미보다도 최초, 최고, 일등이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한 명함으로는 고개를 내밀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밀양 영산정사는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벗어나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발행하는 진기한 세계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에 기재된 사찰로, 세계 최대의 와불과 동종, 성보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부지만 16만7000여 평이고, 전각은 2층으로 지어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성보박물관, 관음대불, 요사채, 석탑, 포대화상, 십이지신장, 연당, 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다.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밀양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영산정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번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군사들이 훈련했던 절골(불당골)로 불리던 삼적사 자리에, 불국사와 조계사 주지를 지냈던 경우 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밀양의 가장 서쪽인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 사명대사의 힘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의미로 무안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자가 많은 가례리 서가정마을을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농로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그 좌측에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황금색 와불이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영축산(靈鷲山) 영산정사(寧山精舍)’라는 표지석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사찰의 테두리 안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영산정사와 와불은 거리로 4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탐방을 떠나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와불 가까이 있는 주차장과 영산정사 주차장을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방문한다면 어느 곳에 주차하든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군데를 다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뿐더러,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외형적으로 영산정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의 황금색 와불상이다. 영산정사 사찰 못미처 높은 언덕 위에 조성되었는데, 와불과 가까운 주차장에서는 약 5분 정도의 오름 길이 이어진다. 흔히 누워있는 불상을 와불이라고 하는데, 불상을 받침 하는 좌대의 길이가 120m, 불상의 길이는 82m, 높이가 21m인 거대한 불상이다. 세계 최대의 와불상답게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가 철근 콘크리트로 된 기단 부분까지 만든 상태에서 2004년경부터 갑자기 방치되었다. 자금난으로 참여한 건설사 간에 소송이 벌어져 공사 진행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2016년 1월에 공사가 재개되어 발목 부분이 건축되었으며, 2018년 3월에 와불상으로 향하는 길이 정비되었다. 2019년 초 불상의 머리와 눈 부분이 추가로 부착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22년 7월에 준공이 되었다. 와불상을 여유롭게 천천히 한바퀴 돌아본다. 내부는 아직도 개발 중으로 미완성인 듯 보인다. 와불상 앞마당에서 북쪽을 응시해 보니 파란 하늘 아래 긴 능선들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738.8m인 영축산이다. 창녕과 밀양의 경계에 위치하며 일명 영취산으로도 불리는데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창녕에서는 바위산, 밀양에서는 순한 육산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 산 앞쪽 자락에 세워진 사찰이 영산정사다. 와불에서 영산정사까지는 느린 걸음걸이로 대략 15분 정도다. 사찰 입구 좌측의 범종루에는 세계평화호국기원대범종이라고 불리는 무게 27톤의 세계 최대 범종이 보이고, 전방으로 보이는 7층 형상의 건물에 가장 많은 눈길이 간다.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소장된 성보박물관으로, 2012년 9월에 정식으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이다. 입구에서 2000원을 내면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내부는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국사전에는 불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서른여섯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글 창제에 기여하고 ‘나랏말싸미’란 영화로 제작되어 역사 왜곡이란 논란에 휩싸인 ‘신미대사’를 필두로, 시계방향으로 원효, 의상, 사명대사 등의 영정이 액자로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영정은 죽음으로서 신라 땅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이차돈 존자의 영정이었다. 2층에는 세계 각국 2000여 점의 불상이, 3층에는 백만과의 진신사리가, 4층에는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인 패엽경이 각각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100만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의 원본인 ‘10만 패엽경(貝葉經)’은 세계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했다. 영산정사는 요즘 말로 가장 많이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최대, 희귀한 유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불교문화 체험과 확산의 중심지로 거듭 태어나고 있어서다. 200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국사전 은밀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한다. 풍만한 얼굴에 당당한 풍채로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다. 이만큼 다 돌아보았으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도 부족함이 생길 수 있다. 돌아오는 여정에 무안면 고라리를 방문하면 어떨까. 사명대사 생가터와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데, 영산정사에서는 차량으로 겨우 5분 이내의 거리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도록 연꽃 모양의 4층짜리 타워형 놀이시설을 만들어 호기심을 더했다. 정자와 포토존,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산책로를 정비해 놓았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21

비트코인과 지갑, 그리고 상속

얼마 전 오랜 지인의 부고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다. 고인은 몇 년 간 지속된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뜻밖의 소식에 슬픔도 잠시, 고인의 마지막 게시글에 시선이 멈췄다. 그동안 잘 버텼고 이제는 잘 정리하겠다는 말.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말이다. 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죽음 앞에 다른 무엇이 우선시 될 수 있겠냐마는 남겨진 가족이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없는 동안 가족에게 전하고픈 것들과 그러한 목록들을 실행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보유한 자산을 가족에게 잘 전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은행계좌를 비롯해 부동산, 주식, 보험 등 내 금융정보를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보통 고인의 금융계좌는 사망신고 후에 상속인이나 가족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온라인 거래가 보편화된 요즘 금융기관을 통해 조회되지 않는 디지털 자산들도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조회되지 않는 자산이다. 가상자산은 별도로 관련 정보를 남겨두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예치되어 있는 자산은 상속자산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 조치가 필요하다. 여러 곳의 거래소를 이용한 경우 이들에 대한 계정정보를 일일이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 개인지갑에 가상자산을 예치한 경우 관리가 더 까다롭다. 특히 개인지갑의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개인키(Private key)를 잊어버리면 보관된 자산을 영구히 찾을 수 없다. 개인지갑은 거래소와 달리 관리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키를 잃어버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소유자의 비트코인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개인키 분실로 유실된 비트코인이 수백만 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분산원장이라 불리는 비트코인은 개인 간 거래(Peer to Peer)를 목적으로 설계된 만큼 자산 관리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 개인지갑은 복잡한 암호키 생성을 통해 보안 위험을 줄였지만, 관리상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편의상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인 방책일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익숙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하지만 거래소를 이용한다는 것은 개인지갑을 대신해 거래소 지갑을 이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관리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보안 위험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이 보편화될수록 관리 측면의 이슈는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가상자산 또는 개인키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고인과 유족 모두에게 필요한 조처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분실한 비트코인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유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고는 가족 중 한 명이 올린 것이다. 고인께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가족에게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정보를 미리 알렸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후 조치들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잘 정리하겠다는 고인의 말은 산자들에 대한 배려에 다름아니다. 고인의 마음 씀씀이가 사뭇 경외롭게 느껴지는 하루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5-01-21

포스코 자원봉사의 웃음꽃

춥지 않은 소한(小寒)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大寒) 없다 했던가.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도 지구온난화에 밀려 북풍의 혀를 날름거리던 동장군이 여지없이 맥을 못 추고 있다지만, 동토의 비탈엔 아직 잔설이 꼿꼿하게 서려 있고 얼어붙은 강줄기는 수시로 얼음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있다. 그다지 강추위가 아닌데도 시국은 온갖 기현상(?)으로 볼썽사납게 얼어붙고 민심의 파고는 난파선을 집어삼킬 듯 격하게 요동치고 있으니, 설 대목의 경기와 민생은 걷잡을 수 없이 팍팍해지며 힘겨움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문병란의 시 ‘희망가’중)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추위 속에서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난전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 묶음을 다듬으며 누군가 사 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덤덤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누군가가 길거리의 휴지를 줍고 따스한 인정으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팀을 이뤄 해안가에 밀려나온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거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정원수의 전정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고, 경로당 시설을 방문하여 창문 방충망을 교체해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부품을 직접 조립하여 완성된 컴퓨터를 취약 가정의 학생들에게 기증하고, 새해를 맞아 연하장이나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적어 나누어 주는 등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연초부터 펼치는 ‘맞춤형 봉사활동’의 일부이다. 이는 임직원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특기, 기술을 활용하여 소외되거나 취약한 지역사회 에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공익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다. 즉, 포스코 임직원들이 급여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과 포스코1%나눔재단의 출연금을 경북공동모금회에 전액기부 후 포항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배정된 예산에 따라 45개 재능봉사단이 지역사회를 위해 저마다 특색 있고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펼치는 선순환 봉사활동인 셈이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여/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그 생명을 늘여/환한 내일을 열어 가리’ - 조병화 ‘난(蘭)’전문 어쩌면 추운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자원봉사의 꽃을 피워가는 포스코 봉사단원들의 따스한 손길은, 한겨울에도 묵묵히 어려움을 견디며 빛과 희망을 찾아 향기 짙은 꽃을 피워가는 난을 닮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주말이나 휴일을 반납하며 스스로 한결같이 활동에 임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보람의 꽃이 피어나듯이, 수혜자의 얼굴에는 만족과 기쁨의 웃음꽃이 청초한 난꽃 마냥 환하게 피어나리라.

2025-01-21

조직문화는 경영의 승부처다

‘조직문화는 경영의 승부처 중의 하나가 아니라 승부 그 자체이다’ IBM의 루 거스너 전 회장의 말이다.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해준다.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경영자의 과제 중 하나이다. 최근 기업에서 수평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직급과 호칭을 단순화 하는 등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궁리를 한다. 변화된 시대에 맞는 조직문화가 경쟁력이고 좋은 기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는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사뭇 궁금해진다. 조직문화는 조직 내에서 공유되는 가치, 믿음, 규범, 행동 양식 등을 의미한다. 조직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 상호 작용, 의사결정 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구성원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업무 수행,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조직문화의 구성 요소로 첫째, 가치와 신념이다. 조직의 핵심가치와 믿음 체계는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고객중심, 혁신, 책임감 등이 해당된다. 둘째, 규범과 행동양식이다.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따르는 규칙, 절차, 행동 기준 등을 의미한다. 정해진 프로세스나 공식적인 규정을 포함할 수 있다. 셋째, 의사소통 방식이다. 정보가 어떻게 흐르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지에 관한 방식이다.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문화도 있고 수직적인 소통 구조를 가진 문화도 있다. 넷째, 조직의 상징, 언어, 전통, 의식 등이다. 조직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직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보여준다. 다섯째, 작업환경이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분위기나 업무의 진행 방식도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직문화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가지가 있다. 긍정적인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협업을 촉진하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며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 조직 문화가 시대의 흐름에 잘 맞을 때 만족도가 높고 이직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조직문화가 시대 흐름에 불일치할 경우 불만이 커지고 이직이 증가할 수 있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는데 유리하다. 리더십 스타일과 의사결정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평적인 문화는 리더들이 협력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또한 기업의 외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좋은 조직문화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며 경쟁력을 높여 나갈 수 있다. 기업의 CEO가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려 할 때 현재 주어진 이슈에만 집중하면 조직운영에 불균형이 일어나고 부정적인 조직문화를 초래하여 경영에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안전관리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비효율성과 부정적인 문화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조직문화는 기업의 전략적 목표와 방향성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조직의 성장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5-01-21

여전히 ‘권고’로 지방의회 길들이는 정부

지방의회가 출범한지 올해로 34년(1991년 개원)이 됐지만, 중앙정부는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다. 법률이 아니라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지방의원들을 길들이려 하는 태도는 개원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시비를 거는 단골메뉴는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 비용문제다. 언론에서 지방의원 해외연수와 관련해 혈세 낭비 또는 ‘셀프 출장심사’ 등의 부정사례를 보도하면,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최근 지방의원들의 해외출장 비용제한과 사전·사후관리를 위해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을 개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지방의회가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말이 권고지 지키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이 다쳐 강제성이 다분하다. 주요 내용은 해외 출장 심사 및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지금은 심사위원회(광역의회 9명 이상, 기초의회 7명 이상) 의결을 거친 출장계획서를 심사 후 3일 이내에 누리집에 게시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출국 45일 이전에 출장계획서를 누리집에 올려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출장 후에도 심사위원회가 출장결과의 적법·적정성을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항공과 숙박대행, 차량임차, 통역을 제외한 예산 지출은 전면금지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보는 “교육을 통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삐딱한 생각’과는 달리, 지금 지방의원들은 해외연수가 필수적이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를 예로들면 지역 현안 해결과 입법, 정책대안을 발굴하는 수많은 의원연구단체가 있다. 연구성과를 위해서는 해외주요 도시 벤치마킹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사회문제해결연구회, 대구 희망포럼, 미래 발전 포럼, ED 포럼, 지역 혁신·성장 포럼, 희망정책 연구 포럼 등에 의원 대부분이 중복 가입해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경북도의회도 마찬가지다. 해수담수화시설 발전연구회, 저출생 대책연구회, 학교폭력 정책연구회 등 16개의 의원연구단체가 결성돼 수시로 세미나와 간담회를 연다. 현안에 대한 용역을 발주해 조례제정에 참고하기도 한다. 기초의원들의 공부의욕도 광역의원 못지 않다. 대구 수성구의회를 예로들면 미래지향적 도시숲 만들기 연구회, 책 읽는 의원 모임, 둘레길 연구회 등의 연구단체에 의원 모두가 참여해 도시발전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예산낭비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일은 아니지만,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월권이다. 엄연히 지방자치법과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압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침이나 권고는 상급기관이 업무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하급기관에 내려 보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하급기관으로 여기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지방자치정신에도 어긋난다.

2025-01-21

MAGA 시대 개막

어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전 세계인의 관심사였다. 트럼프 공포증이라 불릴만큼 강력한 그의 정책들 때문에 전 세계가 긴장된 모습으로 그의 연설을 지켜보았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역시 예상한대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rica Great America·MAGA)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취임 연설 30분 동안 미국을 뜻하는 ‘아메리카’ 단어가 41번 등장하고 “미국은 이전보다 더 위대하고 강해진다”고 외쳤다. “미국의 황금시기가 이제 시작됐다”고도 말했다. MAGA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상징이다. 그가 내세웠던 선거공약인 MAGA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미국 기존의 많은 정책들이 일거에 달라진다. 세계시장 질서가 바뀌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될 것으로 예측이 된다. 세계 각국이 긴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가장 큰 이유로 강력한 경제정책을 손꼽는다. 일부는 “미국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순한 맛보다 매운 맛을 필요로 했다”는 말로 트럼프의 강력한 리더십을 꼬집기도 한다. 미국 경제를 살려야 하는 데는 미지근한 정책보다 화끈한 정책을 제시한 트럼프가 논란이 있는 인물인데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을 지금보다 10배 가까이 올리는 것 등이 대표적인 트럼프식 발상이다. 동맹국 관계를 떠나 미국을 최우선 하는 MAGA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아직은 크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다시 위대하게” 할 한국의 리더십은 언제 쯤 등장할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1-21

‘재경포항인 신년회’, 포항경제 걱정 많았다

그저께 (20일) 본지 주최로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재경포항인 신년인사회’에서는 포항지역을 비롯한 국내 경제위축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신년인사회에는 포항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강덕 포항시장, 국민의힘 김정재(포항북)·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 각 분야 내빈과 재경 출향인 400여 명이 참석했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온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관련해 “참 안타깝다”면서 “이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나라 경제가 한 번 흔들리면 다시 일어서기 쉽지 않다. IMF 외환위기 때는 규모가 적어서 복구하기 쉬웠지만 지금 우리 경제가 기우뚱하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날 신년회장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환율이 높아졌고 여러 가지 걱정되는 문제들이 경제 분야에서 많지만, 서울시가 잘 챙겨서 나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 김정재·이상휘 의원과 본지 최윤채 대표도 인사말에서 언급했듯이, 포항지역은 지난해부터 주력산업인 철강과 2차전지 업종의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강산업의 경우, 지금도 중국의 저가공세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있는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중국산 제품이 더 많이 유입될 것으로 보여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포항 철강업계는 대미 수출량이 감소하면서 애를 먹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탄소규제 완화 정책이 실제 시행되면, 전기차의 핵심소재인 2차전지 업계도 타격을 받게 된다. 포항에는 2차전지 업계를 이끄는 포스코퓨처엠 본사와 에코프로비엠 주사업장이 있다. 계엄사태 이후 국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포항뿐 아니라 국내경제 전망이 매우 어둡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조기대선’에 눈이 멀어 국정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하루빨리 국정협의체를 가동해 미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에 대처하고, 국내경제를 안정시킬 해법을 내놔야 한다.

2025-01-21

군 공항 이전 국방부 승인, 신공항 속도 낼 때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사업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공항 이전 사업계획이 국방부로부터 승인이 났다. 이로써 대구시는 K2 군공항 이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고, 이와 관련한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사업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구시는 지난해 3월 국방부에 신청한 대구 군공항 이전사업에 대해 국방부의 사업계획 승인이 나 관보에 고시됐다고 20일 밝혔다. 국방부의 사업계획 승인은 대구시가 사업시행자로서 사업구역 내 토지, 건축물 등의 보상을 시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군사시설인 대구 군공항 이전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됨을 의미한다. 대구시는 국방부 승인을 시작으로 앞으로 이주단지조성 타당성 조사, 기본구상 용역, 신공항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 평가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 신공항 예정지 내 지상물 기본조사 용역도 재개해 보상을 위한 절차에도 들어갈 예정이라 한다. 군공항 이전을 통해 시도하는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은 오랜 시간 진통에 끝에 결론 난 대구경북을 위한 대역사이다. 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되고 신공항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국토부 TK신공항 추진단 출범 등 신공항 건설을 위한 법적 요건 대부분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사업계획 수립과 집행의 단계만 남겨 놓고 있는 셈이다. K2 군공항 이전과 TK 신공항 건설은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자되는 지역에서는 전례없는 역사적 사업이다. 오랜 시간 진통도 겪었지만 이젠 대구시가 역사적 사명감으로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수도권으로 끊임없이 쏠리는 기형적 산업구조를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다목적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대구시의 역할은 더욱 중차대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탄핵정국에 휘말려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군공항 이전과 신공항 건설사업은 대구경북 100년을 내다본 역사적 사업이라는 소명감으로 흔들림없이 추진하고 가능하면 예정보다 빠른 시기에 개항을 하도록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2025-01-21

행정은 대구염색단지에 관대한 것일까

황인무 대구본사 최근 대구염색단지 내 하수관로로 보랏빛 염료로 추정되는 물질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단속할 관계당국이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원인 규명과 진원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 하는 반응이다. 누가 밤사이 몰래 염료 등을 흘러보내도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염색산단에 대해 행정당국이 유독 관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대구염색산단은 1981년 설립 이후 대구경북의 경제 성장을 이끈 산업역군으로 누구도 부정 못한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응원한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만 산단의 중요성이 변할리가 없다. 다만 환경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해 중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주민들은 기업도 환경기준에 맞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후 대기방지시설 교체를 진행했다. 73%는 염색산단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서구청은 2019년보다 지난해 9월까지 주요 악취 물질인 암모니아 수치와 황화수소 수치가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후시설 개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구염색산단은 환경문제 유발로 2030년까지 군위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목표대로 이전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큰 부담도 안고 있다. 하수관로 이물질 유출 사건이 비록 미제로 남았으나 산단 주변 주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 소지가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1-20

오징어 게임과 민주주의의 원칙

허민 문학연구자 민주주의는 지난한 과정을 동반한다. 국정운영이나 정책 결정은 물론 사사로운 의사진행조차 그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의 설득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마주하기도 거북한 정치적 라이벌 혹은 적(適)을 종용해야 할 때도 있다. 그 회유의 단계가 아무리 비루하거나 지루해도 감정적으로 기피만 해서는 어떤 결실도 이뤄낼 수 없다. 현실정치에서 대화와 타협, 토론과 숙의가 필수적이라는 건 일종의 상식으로 통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실제 수행되기 위해서는 공감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공공의 관점에서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2·3 비상계엄은 민주주의의 지난한 과정을 감당하지 못한 대통령의 무력(無力)한 무력(武力)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에 대한 징벌 역시 지난해 보이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란 저절로 성숙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인내와 양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 특유의 지난한 의사결정 과정을 합리적으로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와 투표는 민중의 의사를 대의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는 불완전한 제도이기도 하다. 선거라는 제도는 언제나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유권자의 30~40%정도는 투표를 포기하며, 그중에는 아예 선거권이 박탈된 계층도 있다. 더구나 어느 선거에서든 당선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과반 정도의 민의를 마주해야만 한다. 정치인에게 ‘겸허할 의무’가 주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차등적으로 구분케 하는 정치 참여의 원리다. 이때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결과를 받게 된 적지 않은 민의는 어떻게 사회적으로 처리돼야 할까? 바로 이 선거제도의 난점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이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체제의 ‘순수한’ 생존 법칙을 아이들의 놀이 형식으로 융해하여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즌2에서는 참여자들의 목숨값을 대가로 한 게임의 지속 여부를 투표행위를 통해 결정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한쪽에는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가능한 많은 액수를 차지하면 된다는 자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어떻게든 게임을 멈추고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간의 갈등은 투표를 통해 강제로 봉합되는데, ‘51:49’의 구도 속에서 승리하지 못한 ‘49’의 의사는 사지(死地)로 내몰리게 된다. 패자에겐 다음 투표까지가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인 것이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승자 독식이라는 그 형식적 결과의 관철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는 투표를 통해 대의되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을 정치적·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를 아울러 고민케 하는 장치라는 데서 연유하는 것 아닐까? 민주주의란 나 혹은 내가 속한 세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지난하지만 꾸준히 모색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내란 정국에서 다시금 새겨야 할 원칙이라 하겠다.

2025-01-20

제조업에 힘을 모아야

김규인 수필가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2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440만1000명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9만7000명 감소한 수치다. 12월 전체 취업자 수도 5만2000명이 줄어든 2804만1000명이다. 취업자 수는 -7.2%를 나타낸 건설업의 감소가 가장 컸다. 그러나 규모가 큰 제조업에서의 감소는 걱정스럽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고용은 줄어든다.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의 비중은 2011년 30%에 달하던 것이, 2023년에는 25.6%로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체가 줄어들고 사라지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제조업의 위축은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는 줄어들고 산업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진다. 2025년도 트럼프 등장으로 고율 관세 부담으로 세계 경제 전망은 불투명하고 환율은 치솟는다. 관세를 무기로 자국 경제를 살리려다가 세계 경제를 어둡게 한다. 자국 우선주의 앞에 동맹도 우방도 없고, 우리의 수출 주역인 제조업은 거센 풍랑을 맞아 위태로운데 흔들리는 정치는 경제에 부담만 준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판매처를 잃고 세계시장에 제품을 싼값으로 내놓아 우리 제조업을 더 힘들게 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 제품은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휴대전화, 조선과 철강, 전기차와 이차전지, 석유화학 제품과 기계제품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으로 매년 한국 제품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60%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여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마저 이루어진다면 한국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국내 기업도 자구책 마련에 바쁘다.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보다 값싼 재료를 찾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옮긴다. 그러나 동남아 이전은 산업체의 생명을 잠시 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전하면서도 근심 어린 표정이 가득하다. 대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하는 첨단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디고 기존 제품 시장은 자꾸 줄어든다. 이러한 어려움을 헤치고 확립한 기술은 생명이 짧고 경쟁업체로의 기술 유출도 심각하다. 돌아보면 제조업체가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을 확대하며 종사자들에게 월급을 주며 유지하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제조업이 살길은 무엇일까.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인 호세 무뇨스는 미국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투자로 시장에서 입지 강화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미국과의 투자와 경제 협력에 적극 참여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제조업의 위기에 국가의 총력 지원이 필요하다. 때를 놓치면 제조업은 고사 위기에 몰려 무너지고 만다. 기업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살려야 한다.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하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살피는데 이념도 사사로운 감정도 버리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2025-01-20

인생, 아무도 모른다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 레슨을 받으러 간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레슨 시간을 합하면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그동안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평소 둘이 함께 하는 육아가 한 사람의 몫이 되면 체감적으로 서너 배 정도 힘이 드는 느낌이 들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쉽지 않았던 날이었다. 잘 자던 아기가 배가 고파 깨서 분유를 먹였고, 먹자마자 아기는 큰 볼일을 봤고, 아기를 씻기고 바닥에 잠시 눕히고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아기는 거실 바닥에 작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다시 아기를 씻겨야 했고, 이번에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또 분유를 먹이는 길고 긴 과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아이를 안아 재우고 있을 때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두 눈이 퀭해진 나를 보고 아내가 힘이 들었는지 물었고, 나는 세상 가장 초췌한 표정으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했다. 별 것 아닌 이 장면이 우스웠는지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이것을 살짝 편집해서 SNS에 숏폼 영상으로 올려 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휘뚜루마뚜루 편집을 해서 대충 나의 SNS계정에 올려두었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이 영상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무섭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을 업로드한지 48시간 정도가 지난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14만을 돌파했고 지금 현재도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반갑다. 내 본업으로 얼굴을 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SNS가 노출되는 것은 내 창작물들을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하반기, 나는 내가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과 시편들을 갖고 수십 편의 숏폼 영상을 제작했다. 작품을 고르고, 자막을 달고, 그와 어울리는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 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매일 반복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피땀 흘려 노래와 시를 창작한 시간까지 더하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것인 셈인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쉬웠던 참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일상 영상이 빵 하고 터져버리다니.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이틀만에 14만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수치이다. 유튜브에 올려둔 내 뮤직비디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이다. 이 영상의 현재 조회수는 39만. 그러나 그것은 업로드 한 지 5년 만에 달성한 결과이다. 그냥 육아가 힘들었다고 아내에게 푸념하는 영상이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니, 실소를 참기가 어려운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내 삶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앞서 말한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 역시 아무런 기대감 없이 내어 놓은 곡이다.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사정이 아주 뜬금없었다. 야근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노래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현역 장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생활관에는 스마트 스피커가 하나씩 있다는데, 장병들이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면 스피커가 내 노래를 재생해주곤 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가 쓴 일곱 권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것은 ‘사축일기’라는 책이었다. 이 역시 출판사의 제안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앞서 야심차게 내어 놓았던 나의 첫 산문집이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터라 받았던 계약금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팔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출판사에서 요청한 것은 가벼운 글이었는데, 나는 그 요청에 맞는 글을 쓰면서도 속으로 ‘이런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가 쓴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증쇄를 찍으며 유명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결과를 내어 주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고,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똑같은 야심과 기대감으로 프로젝트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가볍게 툭툭 해냈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행한 일 앞에서 우쭐해져서도 안되고 함부로 의기소침해져서도 안 된다.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매번 담담하게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5-01-20

거짓말은 이불처럼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 훨씬 능한 아이였다. 현실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장면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무시무시한 괴물이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든지 방에 난 창으로 요정이 찾아왔다고 떠드는 것. 어떤 면에서 그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형상을 믿는 것에 가까웠다. 간밤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이질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자라면서 나는 거짓말의 무시무시함을 체득하게 되었다. 특히 악의를 가지고 내뱉는 거짓말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깨달았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꺼낸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도 경험했다. 나를 둘러싼 오해가 커지는 과정, 사실이 아닌 것들이 나의 영혼에 덕지덕지 붙는 순간도 있었다. 거짓말은 짓궂은 악마처럼 나를 괴롭혔으나 동시에 나 자신도 거짓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타인을 향해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짓말의 세계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경우도 존재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 그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일, 누추한 현실을 외면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일이 그러했다. 그럴 때의 거짓말은 한 줌으로 남은 희망이자 미지의 세계를 긍정하는 힘이었다. 거짓말이 있기에 현실을 버틸 수 있었고 헛된 상상의 영역으로 인해 삶의 부피가 한껏 풍부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필연적인 거짓말이니까. 얼마나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거짓말을 믿기로 합의한 모종의 협력 관계다. 잘 구축된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이러한 지점을 유려하게 풀어 놓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소설 속 선생님이 고안한 자기소개 게임이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는데 그중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안에 감추고 있는,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거짓말의 형태로 발화할 수 있다. 거짓말이라는 형식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이다. 세상의 모든 인물이 그렇듯 그들 역시 각자의 상황에서 감내해야만 할 것들이 존재한다. 가정 환경이나 좌절된 꿈과 같은. 그들의 시간은 어떤 것보다 뜨겁고 생생하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무궁무진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무언가 발설하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린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 같아서 모두 웃어넘길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삶은 거짓말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법을 상상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캄캄한 어둠 안에서 숨을 죽이다 보면 고통이 모두 지나가게 될까. 상황이 끔찍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우리는 이불 밖으로 나와야만 하고 꼿꼿이 서서 차가운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이 종국에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는 문장을 떠올린 이유기도 하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힘이 생긴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더 나은 쪽으로 발을 디디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김애란 작가가 ‘작가의 말’에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마치 이불 같은 것. 추운 날 다정하게 덮어주면서 마음이 약해지면 꼼짝없이 붙들리는 것. 바람이 차갑게 불수록,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속절없이 흔들릴수록 절실히 생각나는 것.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것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위로로 작동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불도 거짓말도.

2025-01-20

폐지

김경아 작가 태풍경보가 내렸다. 비바람이 다짜고짜 해송의 멱살을 흔들어 댄다. 해송은 흔들리면서 힘겹게 버틴다. 수평선 너머에서 시커먼 너울들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오늘 밤이면 방파제를 훌쩍 뛰어넘은 파도가 배들을 다 삼켜버리겠다. 바닷가로 이사 온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다. 포구는 전쟁 전야처럼 긴장감이 가득하다. 밀려올 파도에 대비하는 뱃사람들의 몸짓이 분주하다. 배를 계류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고 배마다 육상 비트에 홋줄을 건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배와 배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밧줄로 팽팽히 묶어 스크럼을 짠다. 풍랑이 몰아치면 줄은 배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홋줄은 굵은 밧줄이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큼 두껍고 길이도 길다. 작은 배는 혼자서도 줄을 걸 수 있지만 큰 배는 어림도 없다. 그러므로 윈치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홋줄을 당긴다. 홋줄에 묶이면 배는 고정이 된다. 누군가가 풀어주지 않으면 배는 아무리 요동쳐도 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더 넓은 바다로 떠나야 할 엄마는 집에 묶여버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계는 외할머니가 떠맡았고 외할머니가 생선을 팔러 나가면 집안일은 모두 엄마가 떠맡았다. 밤이 이슥해지면 잠투정하는 동생들을 다독거리느라 토막잠을 잤다.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시집보냈다. 시집은 친정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서 춘궁기에도 배는 곯지 않았고 가끔 웃을 일도 생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면서 엄마의 삶은 또 발목이 잡혀 버렸다. 아버지의 병은 외할머니에게 쓰나미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일만 시키다 어렵사리 시집보냈는데, 또 병 치다꺼리라니, 딸에게 당신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주었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깊은 시름에 들었다.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지 할머니는 정신줄까지 모조리 놓아 버렸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삶은 항해가 아니라 표류였다. 할머니는 밤이면 귀신이 보인다고 울었다. 자다 말고 쫓아간 엄마에게 할머니는 매질을 했다. 심한 욕설도 내뱉었다. 가족의 생계도 고스란히 엄마에게 맡겨졌다. 종일 생선과 씨름하느라 몸에는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안 곳곳에 일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으로 부엌으로 빨래터로 분주히 몸을 놀리다 보면 밤이 이슥해졌다. 서른도 안 된 엄마의 고운 손은 점점 지문이 닳고 닳아 거칠고 투박해졌다. 엄마를 옭아매는 줄은 하나가 아니었다. 깜깜한 골목길을 들어서면 울고 있는 자식들, 뼈만 앙상히 남은 채 피를 토하며 기침만 해대는 남편, 벽이며 바닥이며 마루며 온 집안을 배설물로 칠하는 할머니, 발목, 허리, 손목에 줄이 매어져 있었다. 엄마도 꽃이 피는 봄날이면 치맛자락 펄럭이며 꽃구경도 가고 싶었고 지천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가을이면 생선 좌판 걷고 단풍을 보러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하루 놀고 나면 내일 끼니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이어지는 줄은 동아줄보다 질겼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줄이었다.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줄을 끊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인연의 줄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며느리라는 줄은 경우에 따라 끊을 수 있지만 자식과 연결된 줄은 누구도 끊을 수 없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먼 길로 떠나셨다. 엄마를 옭아맨 홋줄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엄마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찾았다. 그러나 꽃다운 나날이 이울어버린 뒤였다. 게다가 자식들을 더 보듬어야 했다. 엄마는 더 넓은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항구가 되었다. 제 마음대로 움직였던 몸의 지체 하나하나가 또 발을 묶었다. 자식들이 성장해 하나씩 항구를 떠났다. 그렇다고 엄마는 쉬지 않는다. 집을 떠난 자식들이 가끔 돌아와 쉬었다 갈 때 바리바리 내어준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밥 먹을래’하고 묻는다. 인연의 끈이 손주까지 이어져 챙길 입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것을 천륜의 줄이라 여기고 늘 몸을 놀리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탯줄로 이어졌다.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끊어지면서 핏줄이 되고 그때부터 생긴 인연의 줄이 엄마와 나를 잇고 있다. 엄마라는 항구를 떠난 지 오래지만, 엄마는 이제 휴대폰을 통해 문자를 보내온다. 밥 묵었나, 아픈 데 없나. 엄마는 스스로 자식과 홋줄을 묶는다. / 작가

2025-01-20

화장실 청소하는 선승, 히라야마

2024년에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는 도쿄의 지역성이 매우 풍부하게 드러나 있는데요.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크게 나뉘는 서울과 달리, 도쿄는 에도 시대부터 교코(쇼군이 살던 곳)를 중심으로 무사들이 주로 살던 서쪽과 서민들이 주로 살던 동쪽이 나뉘고는 했습니다. 히라야마는 도쿄의 동쪽에 살면서, 도쿄 서쪽의 시부야구로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지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쿄라는 도시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게 됩니다. 히라야마가 사는 곳은 비교적 서민들이 사는 동네로, 저렴한 이자카야나 목욕탕, 낡은 아파트(우리식으로 하자면 연립주택) 등이 남아 있는데요. 이에 반해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시부야구는 부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특히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더럽고 칙칙한 느낌의 공중화장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곳은 비영리 단체인 일본재단과 시부야구가 깨끗하고 접근하기 좋은 공중화장실을 목표로 만든 열일곱 개의 화장실이니까요. ‘THE TOKYO TOILET’이란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에는 안도 다다오나 구마 겐고 등의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참여했는데요. ‘퍼펙트 데이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현재 도쿄에서는 이 열일곱 개의 화장실 투어를 하는 여행 상품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는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고 정밀하게 히라야마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그는 아침에 동네 노인의 비질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간단한 세면을 한 후에,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청소용 미니 봉고차에 올라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갑니다. 점심에는 일터 근처에 있는 신사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를 필름카메라에 담고, 퇴근 후에는 노인들이 다니는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며, 아사쿠사 지하에 있는 역시나 오래된 이자카야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는 100엔을 주고 산 헌 소설책을 읽으며 잠드는 일상을 보내는데요.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히라야마의 일상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그 평범의 지극함에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우리가 별다른 의식도 없이 행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에,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동전 하나 열쇠 하나 놓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정해져 있을 정도인데요. 그렇기에 히라야마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신성함마저 느껴집니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할 때, 히라야마의 정성과 집중은 최고조에 이르는데요. 그 결과 관객들은 히라야마가 닦는 것이 공중 화장실의 변기가 아니라, 사당의 제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저는 히라야마가 혼신을 다하여 닦는 것이 다름 아닌 변기라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여겨집니다. 히라야마가 너무나 열심히 닦고 빛내는 변기란. 후배 타카시의 말처럼 “어차피 더러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히라야마의 화장실 청소란 그야말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에 해당할 텐데요. 이러한 순간에의 몰입은 그가 날마다 코모레비를 카메라에 담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코모레비는 바람과 햇빛에 의해 늘 변하는 순간의 연속이며, 히라야마는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소중히 하는 겁니다. 가출한 조카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순간’에 대한 강조는 드러납니다. 히라야마는 조카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요. 나중에는 조카까지 노래를 부르듯 이 말을 따라 합니다. 이 말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가치부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토록 순간에 집중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는, 일본 사회의 심층을 형성하고 있는 불교 특히 선(禅)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6세기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일본인의 종교적 심성 한복판에는 늘 불교가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일본인들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사후에는 불교식 이름(戒名)을 받으며, 일본 가정 대부분에는 지금도 불단(仏壇)이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일본의 지배계급이던 무사들은 선(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선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일상을 하나의 수행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작은 것에서 위대함을 보고, 속된 것에서 성스러운 것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차 한 잔 마시는 것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에도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바로 이러한 선의 정신이 놓여 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어쩌면 청소부로 변신한 우리 시대의 선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1-20

사라진 설대목… 여야정은 民生대책 세워라

설 대목인데도 전통시장에 활기가 없다고 한다. 내수침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일요일인 지난 19일 본지 기자가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을 취재했더니 “설 대목이란 말이 사라진 것 같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한강이남 최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서문시장은 해마다 명절 대목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붐비는 곳이다. 서문시장에서 43년간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예전 설 대목에는 제수용품을 사려는 손님들이 길게 줄지어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최근 나라가 뒤숭숭해져서 사람들이 더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물가가 올라 장보기가 무섭다는 손님도 많았다. 한 60대 시민은 “제수에 꼭 필요한 채소와 고기, 과일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라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물가정보(가격조사 전문기관) 발표에 따르면, 올 설 차례상 비용이 전통시장은 30만2500원, 대형마트는 40만9510원으로 나타났다. 서문시장 취재에서도 드러났듯이, 지금 서민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11월말 집계) 소매판매 실적이 2003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소매판매는 경기흐름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내수지표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계엄 사태 이후 단 한 달간 소비자 심리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3개월간보다 더 위축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정부는 지난주 내수진작을 위해 설 연휴 전날인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예산 상반기 조기집행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고물가 탓에 시민들의 소비심리는 한겨울 추위처럼 얼어붙고 있다. 어제 ‘관세폭탄’을 선언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원화가치가 달러당 1500원선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곧 국정협의회를 가동한다고 하니, 하루빨리 협상테이블에 앉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민생안정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2025-01-20

팔레스타인 학살은 멈출 것인가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종교와 민족적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자그마치 15개월 이상 이어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갈등을 거듭했던 두 나라의 다툼은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를 낳았다. 가자 지구를 향해 수시로 날아드는 이스라엘 군대의 폭탄에 공포에 질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영상을 통해 가감 없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반전과 휴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각처에서 터져 나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선 지난 1년3개월 동안 15만7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개전 이후 지난주까지 팔레스타인인 4만6899명이 사망했고, 11만72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부정할 수 없는 ‘학살’ 수준이다. 평화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19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휴전 협정이 발효됐다. 전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 3명을 돌려보냈고, 이스라엘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잡혀온 수감자 90명을 감옥에서 내보냈다. 이른바 ‘포로 맞교환’이다. 이것이 두 나라 간 공존의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향후 6주 동안 교전을 멈춘 후 노약자를 위주로 인질을 석방하고, 감옥 문을 열어 수감자를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이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 종전(終戰)으로 가는 길이 속히 열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20

대구 동성로, 글로벌 관광지로 우뚝 서길

대구 중구청이 대구 최대 번화가이자 대구의 랜드마크격인 동성로를 글로벌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올해 총력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관광콘텐츠 개발과 관광홍보 마케팅 강화, 관광편의 서비스 확대 등에 116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류규하 중구청장은 “동성로의 변화와 도약에 주목을 해달라”며 “동성로의 과거 명성을 되찾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밝혔다. 대구 동성로는 대구시민들에게는 시내로 통하는 대구 전통의 번화가다. 서울 명동이나 부산 서면에 견줄 정도의 대구 대표 중심가로 시민들에게는 많은 추억도 서린 장소다.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대구 명소다. 대구 부심권 형성의 영향도 받았겠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불경기 여파로 이곳 상권이 침체일로에 빠져있다. 빈 점포가 늘고 찾는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대구의 대표 상권인 동성로가 활기를 잃게 되면서 대구 전체 이미지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대구시와 중구청이 동성로 상권 활성화에 적극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작년 대구시와 중구청은 동성로 상권 활성화를 위해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대구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때마침 작년 7월, 대구 동성로가 정부의 관광특구로 지정돼 대구시와 중구청이 추진하는 동성로 활성화 사업이 큰 힘을 얻게 된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관광진흥기금 우대금리 지원, 국비지원, 옥외광고물 허가 기준 완화,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개설도 가능해진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곳은 동성로와 약령시 주변이며 특구 지정은 대구에서는 처음이다. 관광특구 지정의 특혜를 잘 활용하면서 대구시와 중구청이 계획한 구상을 조화롭게 추진한다면 동성로의 옛 명성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최근 구미와 경산을 오가는 대경선이 마침 개통되면서 대구역에 내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구역에서 가까운 동성로로선 호재를 맞은 셈이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과 근대골목길 등 동성로와 연계한 콘텐츠를 개발하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올해는 류 중구청장의 약속대로 동성로가 글로벌 관광지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2025-01-20

4·19와 6·10, 그리고 1·19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1월 19일,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공덕동 서부지방법원에서 재동의 헌법재판소까지 긴 행진을 했다. 전날인 18일 오후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20~30대 청년들이 중심이 된 시민들이 이렇다할 사전 연락도 없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토요일, 원래 광화문에서 전광훈 목사 교회 쪽이 주최하는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예정과 달리 대통령이 영장 실질 심사에 직접 참석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서부지방법원으로 달려갔고, 그러자 광화문 세력도 서부지방법원으로 합세하기로 한다. 이날 오후부터 한밤까지, 그리고 19일의 새벽까지 날이 아주 길었다. 시민들은 불법적으로 영장을 발부한 이순형, 신한미 전담판사와는 다른 주말 당직판사가 심사를 맡는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걸었다. 차은경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지간히 찾아들 보고 화제에도 올렸다. 이런 저런 판결 이력들을 살펴 이 사람은 혹여 다를지도 모른다고들 했다. 자정을 훨씬 넘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법원을 둘러싼 사람들이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빛깔의 것이었다. 청년들은 나이든 사람들과도 다르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부지방법원은 그동안 억눌려온 분노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서부지방 법원 유리창들, 외벽들, 그밖의 시설물들이 파손되고 경찰 바리케이트도 부서졌다. 경찰이 법원 진입을 유도했다고도 하고, JTBC 기자가 유리창을 깨고 조작뉴스를 방영했다고도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든 폭력과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날이 새자 한밤의 시위대가 해산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하기로 한 시민들이 새로 모여 들었다. 거리 행진은 길었고,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강압적인 심판 진행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 1월 19일의 상황은 필자로 하여금 지나쳐 온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학생 시위대의 한 사람인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촉발된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가 오늘 사월혁명이라 부르는 4·19의 새벽이 밝아오게 된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가 사월혁명으로 일어났다면,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6월항쟁은 1월 14일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다.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시민들은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쳤다.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국민주권 박탈상태에 국민저항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번 1·19 사태는 지난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포고가 직접적 배경이라 하겠다. 지금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은 계엄령 포고가 2024년 4월 15일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포고 당시에 대다수 국민은 계엄령 포고가 21세기의 번영을 구가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황당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대통령이 다수파 야당의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고 체포, 구속까지 당하게 되면서 국민들 생각과 감정이 아주 달라진 것 같다. 필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과연 22대 국회는 가짜였던 것이 아니냐. 이것이 지금 국민들이 의혹을 품고 대통령을 심정적으로 동정하는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2025-01-20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자유,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선택

김소현 의원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을 맞이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둘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이다. □ 자유민주주의 : 대한민국의 핵심 토대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과정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에 두고,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룬 국가이다. 법치주의 토대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반면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이를 대체하려는 좌파적 담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좌파진영은 대중영합주의라 일컫는 감성정치와 집단 선동으로 진보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히 정책을 넘어 정체성과 가치를 둘러싼 담론 자체를 지배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파진영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충분히 강화하지 못했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 우파진영 지도자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깊은 숙고(熟考)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는 우파의 책임 정당정치가 부실하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도 흔들리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며, 우파정당은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 강화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담론을 적극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첫째, 철학적 기초의 강화, 둘째,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호, 셋째,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미래지향적 비전 제시. 우파진영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임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 철학적 기초임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자유주의의 철학적 깊이를 대중과 소통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우파진영의 또 다른 과제이다. 좌파진영은 간결하고 매력적인 구호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연결짓는 담론으로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 냈다. 반면 우파는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데 그쳤고, 결국 보수정당정치의 사상과 철학의 빈곤함을 드러나게 했다. 이는 단지 우파진영의 사명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지키는 길이기에 좌파의 도전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유일한 선택임을 설득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기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체계이고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반이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한 길이며,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본질이며, 이 체제를 지키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정치적 지도자나 제도만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원동력인 깨어있는 국민만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김소현 경주시의원

2025-01-20

남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에 자만하지 마라

김진국 고문 여론조사가 이상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오차 범위 안이니까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당장 망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한 건 의외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9%, 민주당은 36%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 국민의힘이 24%로 바닥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48%였던 민주당은 12%포인트가 떨어졌다.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는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주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35%, 민주당은 33%였다.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가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실수는 순식간에 저지른다. 선거는 그 한번의 실수가 결정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거부감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은 유권자도 많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비호감을 피하려고 떠도는 표다.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찍은 사람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유권자가 많다. 비상계엄의 중심은 윤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비상계엄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뚱딴지같이 터졌다. 법리 다툼을 벌이고는 있지만, 국민 마음속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이 내려졌다.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민주화 성과를 한꺼번에 허물었다. 한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뒤 윤석열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 대상이 옮겨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압도적 1위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조급한 언행, 절제하지 않는 발언, 집권당이 다 된 것 같은 오만함이 그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이 대표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계엄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느냐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좋으냐 싫으냐로 여론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열성 지지자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어느쪽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상황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을 호감도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탄핵의 강’을 건너느라 고생했다. 민주당은‘조국의 강’을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리’, ‘배신’ 논란도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성공해 조국의 강이 옳은 길인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결집은 강력하지만, 강성 지지자만으로는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반성과 혁신보다 ‘의리’를 선택했다. 책임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몫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여야가 협력해 가능했다. 보수·진보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쓰겠다”고 선전했지만, 가장 폐쇄적으로 인선했다. 함께 촛불혁명에 성공했는데, 보수 세력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리품을 독식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대 세력은 몰아냈다. 대법원장까지 ‘적폐’로 몰았지만 모두 무죄였다. 진영정치의 골을 깊이 팠다.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았다. 검찰총장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동이 이번 탄핵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저하게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후보 때보다 더 크다. 남의 실수로 얻은 표는 내 표가 아니다. 여도 야도 돌아보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남의 실수로 얻은 득점에 자만할 때가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9

尹 구속이 정당지지율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구속이 여야 정당 지지율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근 반등추세에 있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6~7월쯤 예상되는 ‘조기 대선’ 결과에도 주요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궤멸위기에 처했던 여당 지지율은 지난주부터 민주당에 앞서는 ‘골든크로스’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100%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9%로 민주당 지지율(36%)을 3%p차로 앞섰다. 갤럽의 지난 7~9일 조사에선 민주당(36%)이 국민의힘(34%)을 2%p 앞섰다. TK(대구·경북)지역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58%로 민주당(15%)을 압도했다. 역시 지난주(13~15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율이 35%로 33%인 민주당을 2%p차로 앞섰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주류들은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추세가 “강성 지지층의 과표집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새해들어 여야 정당에 대한 여론추이 변화는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민심변화의 원인은 우선 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이 총결집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입법권력에다 헌법재판소, 공수처, 경찰 등 공권력까지 장악한 듯한 민주당의 폭주가 보수정당의 외연을 중도층으로까지 넓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연이은 강공드라이브로 기존의 강성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했지만, 중도층 신뢰는 오히려 잃었다는 전문가 지적이 많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30% 초반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도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주 CBS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대표의 지지율이 현재 30%가 채 넘지 못한다. 지금처럼 탄핵·계엄 국면에서 이 정도면 높다고 볼 수 없다. 야당의 과도한 입법권력과 탄핵 남발로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론추이로 볼 때 윤 대통령 구속이 여당엔 호재, 민주당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 수사를 둘러싼 절차적 정당성 논란, 그리고 ‘내란특검법’을 강행한 민주당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화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경우 여론이 급속도로 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1-19

‘철강·이차전지산업 위기 극복에 모두 힘 모아야’

이강덕 포항시장 지난해 말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 후 이어진 어수선한 탄핵정국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나라 경제 전반이 더욱 얼어붙었다. 주요국 간의 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보호무역주의 또한 강화되는 와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재취임하면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외적 정세가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가운데 국가 기간산업 철강과 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도시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포항시 역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철강산업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건설 등 내수부진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특히 저가의 중국·일본산 제품이 국내로 물밀듯이 유입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9.7% 인상된 산업용 전기료도 기업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차전지 역시 전기차 캐즘(수요정체)이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2기는 관세 장벽과 전기차 보조금 지원 축소 등을 예고하고 있어 시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그 여파는 포항 지역에 혹독한 한파로 다가왔다. 철강업계의 경우 공장 가동률이 해마다 하락해 일부 공정에선 60%대에 그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포항 제1제강공장에 이어 11월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현대제철도 축소 가동을 논의하고 있다. 이차전지 역시 기업 가동률이 크게 줄면서 지난해 8월 기준 포항 지역의 이차전지(화학)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지역 주력산업인 철강과 이차전지의 위기는 일자리 감소 등 시민 삶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 안보 및 생존과도 직결된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 기업 등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우리시는 산업 위기 극복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에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국내 기업 제품에 대한 의무할당제, 중소기업 정부지원금 확대, 산업용 전기료 인하 등 ‘특별 대책마련’을 지속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산업위기 대응특별지역’ 지정 역시 적극 건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극심한 조선업 침체를 겪은 울산 동구 등이 지정돼 근로자·실직자 지원,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으로 위기 극복에 탄력을 받은 사례가 있는 만큼 조속한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상황을 떠나 민생을 위해 ‘철강·이차전지 특별지원법’ 제정에 대해 여야가 함께 고민해 줄 것도 호소하고 있다. 우리시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 15일 중기부가 ‘중소기업 특별지원 지역 지정’을 2년 연장한데 이어 최근 정부가 이차전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데 대해 적극 환영하며 향후 더욱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어지길 고대한다. 한편 우리시는 지역 주력산업 위기와 혼란한 정국으로 얼어붙은 민생경제와 골목상권에 온기를 불어 넣고 시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연초 600억 원 규모의 포항사랑상품권을 10% 할인된 가격에 조기 발행해 연말연시 위축된 소비를 진작시키고 소상공인을 위한 특례보증 재원을 2000억 원 규모로 확대 조성해 소상공인의 경영안정을 도모할 방침이다. 또 교육발전특구와 글로컬대학을 중심으로 청년의 정책 참여와 맞춤형 청년 정책을 강화하고, 교육기관과 협업해 이차전지 인재를 2030년까지 1만 명을 육성해 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시 전체 세출 예산의 70%인 2조 여 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건설업체 수주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 하고있다. 또한 지역경제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관공서, 사회단체 등에 ‘착한 소비’ 활동에 동참해 줄 것을 적극 당부하고 있다.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인 철강과 이차전지 두 주력산업이 하루빨리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총화전진(總和前進)하는 2025년을 만들어 가겠다.

2025-01-19

행주

어디선가 탄내가 난다. 누가 뭘 태우고 있나보다. 베란다 창을 타고 넘어오나 보다 생각한 나는 보고 있던 TV에 눈을 고정시켰다. 냄새가 점점 더 심해졌다. 퍼뜩 머릿속에 경보기가 울렸다. 벌떡 일어나 싱크대로 뛰어가서 가스렌지를 껐다. “어휴, 또 태웠다.” 빨래 삶는 솥에 행주를 넣고 삶고 있었다. 5~6개의 하얀 행주는 절반이 바닥에 심하게 눌어붙어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폭폭 삶아서 햇볕 아래 말리면 느껴지던 그 뽀송뽀송함이 너무 좋은데. 베란다와 부엌의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래도 매캐한 냄새는 빠지지 않은 채 마음 깊이 가라앉는다. 몇 달 사이 벌써 여러 번 행주를 태워버렸다. 사용해서 닳은 행주보다 태워버린 행주의 수가 훨씬 많다. 오후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오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입들이 분주하다. 경험담이 쏟아져 나온다. 한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폰 봤냐고 물었단다. 아이들이 쓰러질 듯이 웃으면서 엄마가 지금 폰들고 전화하고 있잖아 하더란다. 그런 것도 문제지만 가스불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며 입을 모았다. 가스 밸브에 타이머를 부착하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쓰니까 세상 걱정없다고 하면서. 다른 친구는 천행주를 쓰지 말란다. 어느 회사 제품이 좋다며 일회용 행주 쓸 것을 권한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천행주 대신 일회용 행주를 쓰면 편하긴 하겠지만 환경오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날 모임 화제는 치매, 경도인지 장애, 건망증 등에서 떠돌았다.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든가, 아직 치매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자위 섞인 목소리. 서로 아마 건망증일 거야로 결론짓고 돌아서는 뒷모습들이 코끝을 찡하게 눌러왔다. 정말 건망증인가보다. 건망증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기억하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일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장애의 한 증상이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거나, 해야 할 일의 종류가 많은 상황처럼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저하될 때에는 더 잘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나이가 드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도 늘어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퇴행성 질환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감별을 위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날 저녁 퇴근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집에서 탄내가 나지?” 그때까지 환기를 시켰음에도 탄내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타이머를 가스렌지에 부착하자고 한다. 전에도 몇 번 타이머 얘기를 하는데 픽 하고 웃고 말았었다. 이 날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전영숙 시조시인 밤에 침대에 누워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같이 나오던 길이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하는 친구는 나오기 전 노트 하나를 꺼내더니 집안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적혀 있는 것이 궁금해 보았더니 집안 점검 목록이었다. 가스밸브, 전등, 멀티탭, 커피 머신 전원 등등. 집안 곳곳에 놓인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일종의 자가점검표였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지방에 가다가 불안해서 다시 돌아온 적이 너무 많아 생각해 낸 것이라 한다. 굳이 천행주를 고집하는 내 마음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 싫은 마음이 아닐까. 낯섦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익숙한 것은 다루기 쉽고 편하니까. 건망증 또한 익숙함과의 이별 연습 아닐까. 잘 저장되었던 냉장고에서 재료를 하나씩 꺼내면 언젠간 저장된 것이 얼마 남지 않아 느낄 두려움.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익숙함만을 고집하는 건 아닌지. 다들 나름으로 건망증을 이겨나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자가점검표로, 또 다른 누군가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모든 것을 메모하는 방법으로. 타이머를 달까 ? 아니면 일회용 행주를 조금 써 볼까?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겠단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시조시인 전영숙

2025-01-19

민주당의 폭주·언어공격, 민심이반 가져온다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민주당을 앞섰다. 민주당의 폭주와 소속의원들의 도를 넘는 거친언어가 중도층 이탈의 주요원인으로 분석된다. 한국갤럽이 지난주(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39%)이 민주당 지지율(36%)을 3%p차로 앞섰다. 지역별로 인천·경기와 대전·세종·충청, 광주·전라를 제외하고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은 앞섰다. TK(대구·경북)지역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58%로 민주당(15%)을 압도했다. 지난주 TK지역 정당지지율은 국민의힘 52%, 민주당 19%였다. 갤럽의 지난주(7~9일) 조사에선 민주당(36%)이 국민의힘(34%)을 2%p 앞섰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선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러한 여론추이에 대해 ‘보수층 과표집에 의한 착시’ 현상으로 보는 게 주류다. 그렇지만,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가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일례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CBS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민주당의 거칠고, 조롱하는 과정이 보수의 결집을 더 가속화하고 중도층을 이동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한 광주지역 라디오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모두 감옥가면, 반려견 ‘토리’를 내가 입양해 키우겠다”며 조롱섞인 발언을 한 후, “김건희 여사는 무조건 감옥에 가야 한다”고 했다. 추미애 의원은 “윤 대통령이 체포당하는 모습을 보고 추한 괴물의 본모습을 세상은 4년 만에 알아봤다. 찌질하고 옹색했다”고 했다. 야당 중견 정치인들이 이처럼 저급하고 거친 언어를 내뱉는 것은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진영간의 갈등을 최대한 부추겨 자신의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는 이러한 정치인들로 인해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5-01-19

독감 공포와 비타민 C

우정구 논설위원 비타민C 부족으로 발병하는 괴혈병은 인류가 역사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사람을 괴롭혀온 질병이다. 괴혈병이라 이름을 붙인 것처럼 원인도 모르고 치료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16∼18C 대항해 시절, 선원들의 최대 고민은 오랜 항해 중 발병하는 괴혈병에 대한 공포다.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 무렵 배에 탄 선원 160명 중 100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항해 중 선원들은 피부가 탄력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지며 입에서 피가 나는 증상을 보였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비타민C는 인체의 환원제로서 콜라젠의 합성효소 활성화 등에 있어 필수적인 성분이다. 귤이나 사과 등 과일과 여러 채소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성분이다. 일부 동물은 비타민C를 체내에서 스스로 합성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1753년 영국 해군이 식사 환경이 비교적 양호한 고급 선원한테는 괴혈병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괴혈병과 비타민C와의 관계가 정확히 규명된 것은 1900년대에 들어서다. 1937년 비타민 C를 발견한 헝가리 출신의 알베르트 스젠트죄르지는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비타민C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 특히 우리 몸의 대사활동이나 면역체계, 세포분열 등에 영향을 준다. 면역체계를 강화해줌으로써 독감과 같은 질병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독감이 대유행하고 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해 독감 공포에서 벗어나 보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9

시대의 도끼질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904년 1월 17일 초연된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장막극 ‘벚나무 동산’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86세 먹은 늙고 병든 하인 피르스가 벤치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리서 소리가, 끊어진 현(絃)의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 정적이 다가온다. 그리고 동산 먼 곳에서 도끼로 나무 패는 소리만 들려온다.’ 살아있지만, 물화(物化)돼 버린 늙은이는 미동도 없어서 무대는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인간이 사라진 무대를 채우는 것은 소리뿐이다.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 듯한 소리를 뒤이어 정적이 찾아들고, 정적을 이어서 나무를 베어내는 도끼질 소리가 들린다. 무대는 점차 어두워지고, 서서히 막이 내린다. 극작가 체호프의 최후 대작 ‘벚나무 동산’은 그렇게 끝난다. 백과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거대한 벚나무 동산을 장사꾼 로파힌에게 팔아넘긴 귀족 여성 류보피 안드레예브나는 도망치듯 파리로 떠난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지만, 그녀에게는 동산을 지킬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다.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 애인이 기다리는 파리로 가려는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충성스러운 하인 피르스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벚나무 동산은 다차로 만들어질 것이어서 속물적인 로파힌은 서둘러서 벚나무를 베어내고자 한다. 여기서 도끼질 소리는 귀족이 대표하는 토지 자본이 상인이 대표하는 상업자본으로 이동하는 상징적 기호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하고, 신흥 부르주아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의미도 도끼질 소리에 담겨 있다. 시대와 체제의 변화 양상을 체호프는 소리 하나로 단출하게 표현하는 놀라운 능력의 극작가다. 이 장면에서 연구자들은 부조리극의 단서를 찾아낸다. 인간과 인간의 언어가 소멸하고, 오직 사물의 소리가 지배하는 공간. 인간의 갈등과 대립이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무대의 본질이 소멸한 그곳에 도끼질 소리만 들리는 부조리한 상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시대는 생명을 다하고, 전혀 이질적인 시대가 다가온다. 해마다 겨울이면 나는 장작을 만들 요량으로 도끼질을 한다. 3∼40분 도끼질을 하노라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물성(物性)이 다른 까닭에 숱한 도끼질에도 끝까지 저항하는 끈질긴 나무도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우리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임을 확인한다. 공든 탑도 때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의 집념으로 묵직한 쇠도끼로 질긴 등걸을 내리친다. 어떤 나무는 끝까지 버티며 자신의 모양새를 끝내 유지한다. 이런 때에는 도끼질을 멈추고 나무에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래, 네가 이겼구나.’ 50일 가까이 진행되는 내란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도끼질이 어설픈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총력을 다해 저항하는 내란 수괴와 졸개들의 저급하고 추악한 행악질에 우리가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악의 본산과 잔당은 뿌리까지 뽑아 척결해야 하는데, 우리 도끼날이 무딘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맵고도 통렬한 도끼질을 염원한다.

2025-01-19

현직 대통령 구속… 陣營충돌 발생할까 걱정

서울서부지법이 19일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제 윤 대통령은 체포 기간을 포함해 최장 20일 동안 서울구치소에 머물며 공수처와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는 향후 헌법재판소 판결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 대통령 측은 법원의 영장 발부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반헌법, 반법치주의의 극치”라며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후 체포 전까지 직접 대국민담화와 자필 편지, 페이스북 메시지 등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수사기관의 모든 행위가 위법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 혐의 요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공모해 지난달 3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써 한국은 전·현직 대통령이 다섯 번째로 구속되는 부끄러운 ‘대통령 수난사’를 기록하게 됐다. 구속된 전직 대통령(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모두 2∼4년의 수형생활을 거친 뒤 특별사면 받았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자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영장발부 전날부터 서부지법을 둘러싸고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일부 강경 지지층은 법원 담벼락을 넘었고, 경찰과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이 체포된 데 대해 반발하며 분신을 시도하는 극단적 상황도 있었다. 정치진영 간의 날카로운 대립이 국민 간의 충돌과 소요로 확대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는 날도 여야 정치권은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법원판단이 안타깝다”고 했고, 야권은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니, 국민간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2025-01-19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힘, VE 활동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VE(Value Engineering) 활동을 통해 2023년 적자기업에서 2024년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한 포스코 베트남(POSCO Vietnam) 법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법인은 베트남 남부 붕따우에 있는 포스코의 대표적인 현지 생산기지이다. 지난 2006년 11월 15일 설립된 이 법인은 FH(풀하드) 50만톤(t), 냉연강판 70만톤(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2023년 저가의 중국산 냉연 제품이 베트남 시장에 유입되면서 이 기업도 경영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제품 판매가는 낮아졌는데, 원가 비중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어 팔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었다. 2024년 임원진은 고민 끝에 VE 기법을 도입하였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여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 VE는 1947년 미국 GE사의 로렌스 D. 마일즈가 창시했다. 당시 석면이 전면 금지되는 ‘석면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벨트 컨베이어의 석면 바닥재를 대체할 재료를 고민하던 중, ‘더 싸고 더 좋은 대체 재료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제품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원가가 저렴한 종이 불연 바닥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 성공을 계기로 VE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V(Value) = F(Function)/C(Cost)란 공식이 유명해졌다. VE는 가치(V)를 높이는 활동이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능(F)을 높이던지, 비용(C)을 낮추든지 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제품의 기능(F)은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비용(C)을 최소로 하는 원가혁신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법인은 VE 활동으로 제조 가공비 중 재료비, 경비, 외주비를 세분화한 후, 공장 운영에 큰 비용을 차지하는 전력비, 연료비, 운전 재료비, 포장 재료비 등 4가지 항목을 집중적으로 개선했다. 이를 위해 전력의 76%를 차지하는 유틸리티 비용, 연료의 80%를 차지하는 NG 사용량, 운전 재료비의 51%를 차지하는 압연유 사용량, 포장 재료비의 52%를 차지하는 보호판 사용량을 절감하기 위한 워크숍을 실시해 총 225개의 문제점을 발굴하고, 이 중 49건을 집중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톤(t)당 제조 가공비는 15.4% 개선되어 흑자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VE 활동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에는 첫째, 전원이 원가절감의 절박함을 공감하고, 제조원가를 세분화하여 고비용 항목에 집중, 둘째, 고비용 항목의 낭비를 발굴하고 과제화하여 직책자가 직접 과제를 수행, 셋째, 좋은 아이디어가 사양되지 않도록 임원의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 점이다. 원가절감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 고객은 물건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사는 것이라는 기업의 관점 전환이 필요하며, 값싸고(C), 좋은 기능(F)의 제품을 고객에게 공급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경영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VE 활동은 기업 경쟁력 확보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 활동을 통해 ‘하나를 팔아도 이익이 나는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25-01-19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우연찮게 두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한 모임에서 A가 말한다. “이번에 젊은 여자들이 너무 나서서 탄핵을 주장해서 민주당 지지를 끊었어요.” B가 묻는다. “20대 여자들이 광장에 나오는 것과 민주당 지지가 어떤 관계가 있어요?” “민주당이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내세워서 20대 남자들이 국힘으로 갔으니까요.” “탄핵을 반대하시나요?” “그건 아닌데 20대 여자들이 꼴 보기 싫어요.” 다른 모임에서 C가 말한다. “양쪽이 너무 극단적이에요. 상대에게도 일말의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좋겠어요.” 그러자 D가 반박한다. “그런 양비론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확한 좌표를 찍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 가장 약자의 입장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약자는 경호처 직원이라고 어느 문화 셀럽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경호처 직원 입장에서 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두 모임에서 이 대화는 한두 번 더 왔다 갔다 하고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원래 모임의 주제가 아니기도 했고, 두 모임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는 편이라 아마도 더 이야기하다가 불편해질까 봐 서로 조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관계일수록 논쟁을 통해서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책이 눈에 띄어 냉큼 손에 넣었다. 아리안 샤비시의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라는 책인데, 원제를 보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논쟁하기’이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몇 가지 이슈를 제시하고 그런 이슈가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논쟁 당사자의 입장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도 그 이슈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A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며느리 때문에 서운함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삭이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고 D는 야당 쪽 정치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한두 마디로 툭 나오는 어떤 정치적 견해라도 그 기저에는 오랜 세월 쌓인 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주제로 모인 경우, 갑자기 나온 몇 마디 말로 생각이 바뀔 수는 없다. 대립되는 두 입장이 논쟁을 통해서 반드시 의견의 일치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쟁을 하다 보면, 나의 주장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 주장의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 그 정도만 되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룰을 가지고 긴 시간 논쟁해야 한다. 며칠 전 어떤 정치인이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시간제한 없는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아리안 샤비시의 말처럼,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이 인격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기본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부터 진지하고 성숙하게 논쟁하는 기회를 피하지 말아야겠다.

202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