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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의 새로운 역할, 전세대 교육

장규열 고문 저출산이 한국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깊어진다. 여파가 대학에까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신입생 숫자가 급감하고, 일부 대학들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벚꽃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표현이 현실이 되어 간다. 위기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대학이 그 역할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학은 지난 세기 동안 산업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발전에 기여했고, 국민의 평균적인 교육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간다. 저출산과 디지털혁명은 대학이 과거의 방식대로 운영될 수 없게 만들었다. 디지털환경의 변화와 AI기술의 발전은 산업과 직업의 형태를 빠르게 바꾼다. 한번 습득한 지식과 기술만으로 생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4차산업혁명은 누구나 여러 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지속적인 학습과 재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대학이 여전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청년들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한다면, 대학의 역할은 점점 더 축소될 터이다. 대학은 ‘젊은이들의 배움터’에서 벗어나, 전 생애에 걸쳐 학습을 지원하는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모든 세대를 위한 평생교육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4년제 학위중심 학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산업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짧은 기간에 특정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모듈형 과정과 마이크로크레덴셜(소규모 인증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성인학습자들이 언제든지 돌아와 대학의 교육과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학습자에게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크다. 온라인과 대면교육을 결합한 유연한 학습방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협력해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장인들이 부담없이 학습할 수 있도록 야간·주말 과정과 단기집중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술변화로 인해 기존 직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다. 대학은 단순히 학위수여기관이 아니라 직장인과 경력전환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무중심의 재교육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AI, 데이터분석, 디지털마케팅,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대학이 산업과의 연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기업과 협력하여 현장실습,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인턴십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교육과 시장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학위 과정을 운영하거나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지 않으면,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전세대 학습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학위를 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과 전세대의 성장을 지원하는 마당이어야 한다. 대학의 위기가 현실이 되었지만, 새로운 역할을 찾아간다면 넓은 기회의 터전이 펼쳐질 것이다.

2025-02-26

“국정정상화 위해 이젠 헌재 결정에 승복을”

윤석열 대통령이 그저께(25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변론을 했다. 윤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솥 안 개구리처럼 벼랑 끝으로 가는 나라가 보였고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과거의 부정적인 계엄 트라우마를 악용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시간여에 걸친 변론 대부분을 ‘비상계엄은 범죄가 아닌 합법적 권한행사’라는 점과 국회 탄핵 소추의 부당성을 지적하는데 할애했다. 많은 국민은 이날 윤 대통령의 최종변론 메시지가 계엄 탄핵사태로 분열된 우리사회를 통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윤 대통령은 헌재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국회 측 정청래 탄핵소추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변론에 앞서 “윤 대통령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하려 했다. 파면돼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헌재는 재판관 평의를 통해 윤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할지 기각할지를 결정한다. 선고기일은 늦어도 2주 뒤인 3월 13일 전후에 잡힐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비상계엄 사태 후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가 망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으로 국민 삶과 직결되는 경제·외교 분야는 당장 응급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위기상황이다. 정상적인 국가시스템 작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은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국론분열이 격화돼 날마다 길거리에 살벌한 시위가 벌어지는 점이다. 헌재가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헌재는 이런 국민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면 철저한 헌법정신에 입각해 개인의 법관 양심에 따라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탄핵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국민도 국정정상화를 위해 탄핵결론이 어떻게 나든 그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

2025-02-26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한국인 삶의 질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당신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는가? 이처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또 있을까. 그러나, 존재하는 개별 인간은 누구나 거의 매일 스스로에 묻는다. “난 행복한 것일까? 내 삶의 질은 높은 걸까?” 이 물음에 관한 답변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최근 통계청은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의 의하면 202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4235만원. 전년 대비 2.1% 증가한 수치다. 가구별 순자산도 1년 전보다 300만원 증가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높은 소득과 증가한 자산이 있음에도 한국인은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삶의 만족도’가 4년 만에 하락한 것. 조사가 진행된 해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이전에 비해 0.1점 낮아졌다. 반면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높아져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삶의 만족도는 소득이 적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낮아지는 형태를 드러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란 쉽지 않고, 나이를 먹으면 누구 할 것 없이 생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희미해지는 법.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평균을 밑돈다. 순위로 말하면 38개 국가 중 33위. 함께 발표된 ‘가족 관계 만족도’와 ‘하루 평균 여가 시간’도 낮아지거나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행복을 느끼는 감각은 갈수록 무뎌지는 이 세태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이 가능할까? 누가 나서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26

대구농산물시장, 전국 최대 첨단물류 허브로

대구시 북구 매천동 대구농산물도매시장(일명 매천시장) 이전이 국토교통부 주관의 지역전략산업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대구농산물 도매시장이 이전할 예정지인 달성군 하빈면 일대에 대한 그린벨트 해제가 가능해지면서 대구농산물도매시장 이전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988년 설립된 대구농산물도매시장은 이전이냐 재건축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논란을 벌였던 지역 숙원 사업의 하나다.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후 이전으로 결론이 나면서 2023년 3월 달성군 하빈면 대평리 27만8000㎡ 부지를 예정지로 결정했다. 투기 방지를 위해 그 일대를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는 선제 조치까지 취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영도매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에 대구농산물도매시장 이전이 포함되고, 그해 10월 기획재정부 주관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도 선정됐다. 국토부가 전국 15곳의 그린벨트를 풀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지역의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부진한 지역의 경기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구시는 대구농산물도매시장의 이전이 지역전략산업에 선정된 것을 기회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농산물 선진유통시스템 도입이나 스마트 물류시설 구축 등 최첨단 유통시설 구축은 물론이거니와 이전 첨단 도매시장의 장점을 활용해 전국 농산물도매기능을 이곳에서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대구농산물도매시장은 거래 규모가 1조1000억원을 상회하고 전국에서 3번째로 농수산물의 유통 물량이 많은 시장이다. 이전에 따른 인력수급 문제나 전국 어디서나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교통 접근성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이전지 일대를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투기를 막고 주변지역 토지가격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키는 일도 대구시가 할 일이다. 4400억원이 투입되는 대구농산물도매시장 이전 사업이 지역경제에 선순환 효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한 시장 이전이 아니라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5-02-26

일에는 스토리가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일에는 스토리가 있다’는 말은 모든 일에는 그 자체의 맥락과 배경이 있으며,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과정과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일이 단순한 반복적인 노동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 목표, 감정, 가치 등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스토리가 없는 일이나 활동들은 물거품처럼 사람의 뇌리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사라진다. 모든 일에는 배경과 이유가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다. 그 일이 어디에 기여했는지 가치를 인증하게 되면 좋은 인식과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생각을 넣어 또 다른 발전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필요성과 효과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 팀워크 강화이다. 조직 내에서 공통의 스토리를 공유하면 협력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 유도이다.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더 나은 방식과 아이디어를 찾게 된다. 넷째, 브랜딩과 마케팅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에도 스토리가 있으면 고객이 더 공감하고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기업에서 컨설팅을 할 때 ‘1234 스토리 법칙’을 자주 얘기한다. 1은 하는 이유이고, 2는 일을 하는 시작과 과정을 말한다. 3은 성과를 말하고 4는 그 성과가 기업의 비전과 목표, 전략 등 어디에 기여하는가이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조직의 가치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가령,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와 철학이 명확하면 직원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스토리를 돌아보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방향성을 찾을 수도 있다.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데, 스토리가 있는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스토리를 잘 만드는 기업이 성공하는 사례는 많다. 애플(Apple)은 단순한 전자기기 회사가 아니라, ‘혁신과 창의성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비전이 제품과 기업문화에 반영되면서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판매가 아니라, 집과 직장 외에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제3의 공간 제공’이라는 스토리를 내세워 고객의 생활과 연결시킨 성공한 케이스다. 일론 머스크는 단순한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기 보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테슬라를 경영한다. 나이키(Nike)는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Just Do It’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고객들에게 도전과 열정의 의미를 전달하며 공감대를 높였다. 어떤 일이든 스토리를 부여하면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자신의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목적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더 큰 성취와 신뢰를 얻어 발전할 수 있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2025-02-26

봄과 다이어트 음식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왔다. 겨우내 두툼한 옷에 가려졌던 몸을 드러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다. 그동안 다이어트 관련 글에서 말했듯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채소와 고기를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먹는 순서까지 고려하면 다이어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체중의 10% 감량을 위해서 달려 보자. 첫 번째 원칙은 채소를 먼저 먹는 것이다. 식사를 시작하면 우선 채소를 충분히 먹는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는 위를 적당히 채워주고, 혈당 상승을 억제해 폭식을 방지한다. 상추, 깻잎, 브로콜리, 오이 같은 녹색 채소뿐만 아니라,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 같은 다양한 색의 채소를 곁들이면 영양 균형도 맞출 수 있다. 나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 형식으로 먹어도 좋다. 애피타이저 느낌으로 식사를 할 때 채소를 먼저 모아 먹는 것이 좋다. 티비를 보면서 우적우적 10~20분 가량 씹어 먹을 분량을 준비해서 먹자. 채소를 다 먹고 난 뒤 단백질을 섭취한다. 닭가슴살,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다양한 단백질원을 선택할 수 있다. 단백질은 근육을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단 조리법이 중요하다. 튀기거나 양념이 과한 고기는 피하고 구이, 삶기, 찜 등의 조리법을 선택해야 한다. 너무 퍽퍽하다면 올리브유를 살짝 곁들이거나 향신료를 활용하면 맛을 살릴 수 있다. 채소위주로 먹다가 고기를 반찬 식으로 곁들여 먹자. 마지막으로 탄수화물을 먹는다. 이때 탄수화물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해야 한다. 정제 탄수화물인 흰쌀밥, 빵, 국수보다는 비 정제 탄수화물이나 당지수가 낮은 현미, 고구마, 퀴노아 같은 복합 탄수화물이 적합하다. 탄수화물을 너무 극단적으로 제한하면 에너지가 부족해지고 폭식 위험이 커질 수 있으니, 활동량에 맞게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식사법에 한방 다이어트를 병행하면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한방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개선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데 집중한다. 한약을 활용하면 식욕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고, 몸속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지방 연소를 돕는다. 요즘은 먹기 좋게 환으로 만들어 처방을 하니 부담 없는 가격에 근처 한의원에서 처방 받을 수 있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한방 다이어트란 건 이미 검증된 바가 있다. 살을 빼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 한방의 도움을 받아보자. 봄은 다이어트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활동량이 늘어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굶거나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지속하기 어렵고, 요요 현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올바른 식단을 유지하면서 한방 다이어트 같은 방법을 활용하면,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 이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여름이 오기 전까지 탄탄하고 가벼운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살을 뺀 후 건강해지는 나의 육체와 정신은 덤이다.

2025-02-26

서로의 문장을 해독하는 중

정미영 수필가 딸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늘 소파 한쪽에 기대어 책을 읽었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글자를 삐뚤빼뚤 따라 적는 모습도 앙증맞았다. 아이가 자라서 이제는 두꺼운 책도 제법 막힘없이 읽는다. 나는 그런 딸을 보면 흐뭇했다. 딸은 책 속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잘 이해했기에, 학교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안심이 되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소통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학교가 아닌, 나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완전 짜증나는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인데?” “아, 말해도 몰라.” 딸의 대답은 짧았고, 표정은 쉽게 변했다. 웃다가도 갑자기 화를 냈고, 어떤 날은 하염없이 한숨을 쉬며 침묵을 지켰다. 엄마인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지만, 딸은 나를 밀어내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읽히기를 거부하는 책처럼. 나도 갱년기라는 변화무쌍한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게 나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전에는 딸의 마음이 또렷하게 읽혔다. 목소리를 듣거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딸은 사춘기가 되었고, 나는 갱년기가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딸의 말은 나에게 난해한 시처럼 다가와 해석되지 않았고, 나의 말은 딸에게 낡은 서체의 흐릿한 활자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엄마, 왜 이렇게 예민해?” 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인 나의 감정 문장이 고리타분한 글처럼 느껴졌는지 읽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한숨을 쉬어도 딸은 그저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마음을 딸이 읽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딸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서체를 사용하면 읽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명조체를 고딕체로 바꾸면 문장이 선명해진단다. 한 글자 안에서 초성-중성-종성의 간격과 줄 간격, 글자 간의 간격이 모두 넓으면 읽기가 수월하다. 나도 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먼저 딸의 말에 쉼표를 두기로 했다. “왜 그래?” 하고 다그치듯 묻는 대신에 “괜찮아?” 하고 기다려 보았다. 질문의 형태를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도 딸은 훨씬 덜 부담스러운 듯했다. 가끔 딸이 좋아하는 소설을 슬쩍 펼쳐 보았다. 어떤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살펴보며,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리기도 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하자 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몰라도 돼.”라고 말했던 아이가, “엄마, 내가 좀 예민한 거 같아.” 하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나는 그럴 때 가만히 듣기만 했다. 활자의 간격을 넓히듯 딸의 말을 서두르지 않고 읽어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딸의 마음을 완벽히 읽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딸의 마음을 읽고 싶어 노력한다는 점이다. 딸도 아직은 내 감정을 쉽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내 옆에 앉아 “엄마, 오늘은 괜히 피곤해 보여.” 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 속에서 딸이 나를 읽으려 애쓰는 모습을 엿본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의 글씨체는 평생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 말고 활자의 간격을 넓혀 문맥을 살피리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두 사람의 마음을 또렷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같은 문장을, 같은 속도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희망한다. 그때까지 서로의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것이다.

2025-02-26

검정고무신-오천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신새벽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안개를 뚫고 어제 씻어 놓은 찹쌀떡처럼 찰진 검정고무신을 신고 양철대문을 밀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여러 모로 미안스럽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많이 닳았지요 때는 덜 타지만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신작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미끄러지는 것이 약점이고 빗물에 강한 것이 장점이지만 어정쩡한 위상(位相)과 얕잡아 보는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지요 난들 왜 기차표 운동화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단지 질기다는 경제적 이유로 발바닥과 열을 낸 나날들 그렇게 소모되어도 따뜻한 것이 되고 싶었지요 가끔 송사리를 가두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아직 걷고 있음이 사양하고픈 축복이지만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열심히 달리면 공짜로 공책과 연필도 생기는 그 화려한 축제는 가을 하늘에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해요. 소풍과 더불어 운동회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알싸한 사이다는 왜 그리도 달콤한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꿈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26

대구 염색공단 무단 방류, 이대로 괜찮은가

황인무 대구본사 대구 서구에서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 유출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직선 거리로 약 1㎞ 거리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고로 불안에 떨고 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염색산단이 인접해 있는데다 그 주변에는 각종 환경기초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주민들이 가진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폐수방류 사고가 일어났으나 행정당국이 아직까지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 다른 구로 편입됐으면 좋겠다’, ‘구청의 방관으로 염색공단 업체들이 법을 어기며 계속 운영한다’, ‘당국이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환경청, 대구시, 서구청, 대구염색산단관리공단,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달서천 사업소가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속 시원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알다시피 지난번처럼 흘러나온 폐수가 하천으로 떠내려가 원인 규명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폐수가 흘러간 이후 뒷북 조사로 원인도 찾지 못하고 사실상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기관간 협조와 초동 대응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달서천사업소와 북구청이 시료채취나 간이검사, 현장상황 전달 등으로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일까. 사고발생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준비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제3의 폐수 방류사고가 또 다시 생긴다면 행정이 요란하게 움직이다가 원인 규명을 못한 채 끝나는 일이 반복될 지 우려된다. 이번에도 지난달처럼 원인 규명을 못한다면 주민들의 원성이 더 커질 것은 뻔한 일이고 관련기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질 것이다. 당국의 끈질긴 점검과 조사로 이번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행정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him7942@kbmaeil.com

2025-02-25

고군산군도 핫플레이스, 말도·보농도·명도를 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이름하여 ‘고군산군도’다. 63개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16개가 유인도다. 경관이 빼어난 유명 관광지로,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하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섬 하나하나를 다 소개하기에는 벅차다. 그래서 선별한 섬이 말도, 보농도, 명도다. 지난해 고군산군도 섬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3개의 섬으로, 2025년에도 그 여세를 몰아 가장 뜨겁게 부상되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차를 타고 장자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도 화려하다. 새만금 방조대와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를 거친다. 배에서 조망하는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峯)’은 또 어떤가.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고군산 8경이라 부르는데, 방축도, 명도, 말도의 12개 봉우리가 마치 무사들이 도열 한 것처럼 보여 붙여진 명칭이다. 세계 최초로 다섯 개 섬을, 4개의 순수 인도교로만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1교는 말도~보농도, 제2교는 보농도~명도, 제3교는 명도~광대섬, 제4교는 광대섬~방축도로 총연장 1,278m이다. 이와는 별도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이들 도서에서, 힐링·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도 조성 중이다. 현재 미연결 구간은 제3교인 명도와 광대섬을 잇는 477m 뿐이다. 나머지 구간은 다 연결되었지만,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보농도와 명도를 연결한 다리가 준공검사가 끝난 상황에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통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와 수많은 후기를 올렸다. 그곳에는 과연 어떤 경치가 펼쳐지는지,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오전 10시 40분, 장자도항에서 명도와 말도로 가는 1항차 고군산카훼리호를 탔다. 배는 출발하면서부터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선박 우측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펼쳐지는 지척의 대장도 대장봉과 그 뒤쪽의 선유도 망주봉이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선상에서 만끽하는 전망치고는 극치에 가깝다고나 할까. 배는 10분이면 ‘관리도’에 닿는다. 해안에 곶이 많아 곶지도(串芝島)였는데, 화살을 꽂아댄다고 ‘꽃지섬’이 되었다가 한자를 음으로 읽어 다시 ‘관리도’가 되었다고 한다. 깃대봉과 투구봉을 연결하는 등산로 주변에는 바다에서 융기한 듯 솟아오른 바위벽과 기암들이 금강산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두 번째 기착지는 방축도, 관리도에서는 배로 10분 정도 걸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방축도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말도와 보농도, 명도와 광대도가 도열하고, 우측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횡경도가 바다 위에서 뱀처럼 꿈틀거린다. 파도가 강한 섬으로 독립문바위와 시루떡바위 등 기암괴석을 구경할 수 있다. 배에서 조망하는 볼거리는 방축도의 랜드마크인 독립문바위다. 장자도 항을 출발한 지 약 30 여분이면 명도다. 말도와 방축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는데, 마치 달과 해가 합해져 있는 것같이 물의 맑기가 깨끗하다 하여 명도라 부른다. 선착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화장실 건물과 안내도가 보이고, 마을 안쪽으로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구렁이 전설 전망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더 오르면 철탑과 더불어 데크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보농도와 말도, 그리고 주탑 두 개가 세워져 있는 인도교가 그림처럼 다가와 펼쳐진다. 인도교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해벽들도 절경이다. 다리가 정식으로 개통되지 않았음인지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제외하면 부족함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0여 년 가까이 지체되고 있는 인도교의 전면 개통도 시급하지만, 용역 결과에 따라 케이블 등의 대대적인 정비나 전면 재시공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인도인 보농도는 암릉과 숲길로 이루어졌다.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도 있지만 오름길과 내림 길의 대부분은 가파른 데크계단이다.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말도로 연결된 제1 인도교는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다리로 내려설 때와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말도로 올라서면서 뒤돌아보는 경치는 이번 탐방 최고의 절경이다. 독수리 모양의 달섬과 천연기념물인 주변의 습곡구조로 이루어진 책갈피 바위도 볼만하지만, 한꺼번에 펼쳐지는 보농도와 명도, 대장도와 선유도의 비경은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가 없다. 말도는 고군산군도의 끝에 위치해 ‘끝섬’으로도 불린다. 30여 가구가 거주하는 섬으로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등대가 들어서 있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1909년에 세워진 것으로, 등대 불빛을 발하는 등명기는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도와 등대 사이의 도끼섬은 갈매기의 서식처로, 천년송이 자라고 있어 꼭 한번 가까이에서 살펴볼 만하다. 지홍석 수필가 말도와 명도로 가기 위해서는 배편 예약이 필수다.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배 시간 때문이다.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178명, 이 중에 온라인으로 150명, 현장 발권은 28명에 불과하다. 섬 탐방에 주어지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1항차로 들어가 명도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하거나, 말도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 2항차의 말도 배시간(14:20)에 맞춰 여유 있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명도에서 시작하는 총 트레킹 거리는 약 3.11km로, 2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꼭 섬에 내려서 탐방하지 않더라도 정기 여객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워낙 비경이 펼쳐지는지라 충분히 그 가치를 하고도 남는다. 제2 인도교인 명도~보농도 구간은, 케이블 절단 및 뒤틀림 문제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다리의 통행이 불가하다. 2024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다녀오기도 했지만, 사전에 꼭 확인해 보고 다녀오길 권한다. 말도,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를 연결하는 연도교와 트레일은 2025년 6월에 완성될 예정이다. 방축도에서 시작해 다섯 개 섬을 연계한다면 서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될 것은 자명하다. 명품 트레킹 코스를 겸비한 K-관광 섬 육성사업의 주요 관광자원이 되어, 고군산군도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의심치 않으며 몇 달 후를 기다린다. /수필가 지홍석

2025-02-25

무해력(無害力)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손자가 얼굴에 잔뜩 불만과 울분을 담은 채로 내 방으로 왔다. 왜 그러냐고 깜짝 놀라 물었더니 우왕 울음보 먼저 터뜨렸다. 뒤따라 온 제 사촌누나가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가지고 온 토토로인형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더 크게 울기에 일단 말없이 등만 토닥이며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지난 달 1월 나의 칠순 기념으로 베트남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 때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저희 방 뱃전의 테라스에서 가지고 놀던 인형이 바다로 떨어진가 보았다. 울음이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다. 배를 돌려 그 자리에 가서 인형을 건져올려야 한다길래 그건 불가능하다며, 다시 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울음은 잦아들었으나 여전히 흐느끼면서 꼭 같은 걸 사려면 일본에 가야한다고 했다. 아마 지난여름 일본 가족 여행 갔다가 사온 인형이었나 보았다. 잘됐다. 한 달 후에 할머니가 일본엘 가니 꼭 같은 걸 반드시 사다 주겠다고 약속하고서야 진정되었다. 그 후에도 베트남 얘기만 하면 잃어버린 토토로가 생각난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8살 사내아이가 로봇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아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집에 와서 잘 때면 안고 자는 인형 몇 개를 꼭 갖고 왔다.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자지 않거나 저희 아빠가 밤중에라도 기어이 가져다 줘야 잠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멀리까지 인형을 가지고 갈 줄은 몰랐다. 여동생에 사촌도 모두 여형제라 동화되었나 사내답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서울 손녀들도 대구에 올 땐 저희 가방에 몇 개의 애착인형을 반드시 가지고 오곤 했으며 대구 손녀는 보드라운 질감의 작은 인형이나 말랑말랑한 촉감의 작은 캐릭터 한둘은 항상 손에 들고 다닌다. 집집마다 동물인형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음에도 장난감가게에 가면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추는 곳이 봉제인형 코너여서 빨리 커서 인형을 찾지 않을 날이 왔으면 바라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2025년 대한민국소비트렌드를 전망하는 ‘트렌드코리아2025’(김난도 외, 미래의 창)에서 손주들이 애착인형을 품에 안고 손에서 조물거리고 놓지 않으려는 심리를 알게 되었다. 무해력(無害力)이란다. 작고 귀엽고 순수해서 해롭지 않은 것이 가지는 힘. 사방에서 온통 공격해 올 것만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작고 연약하고 귀여운 것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으니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단다.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해악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힘이 있단다. ‘앙증깜찍 무해력’은 작아서, ‘귀염뽀짝 무해력’은 귀여워서, ‘순수대충 무해력’은 서툴러서 무해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책가방에, 아니 어른들도 백팩에 작은 동물 키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바로 무해력 때문이란다. 지난 주 일본여행에서 손자의 잃어버린 무해력을 되찾아 주려 동행한 어른들이 힘을 모았다. 몇 개의 쇼핑몰에서 인형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었고 어찌저찌 비슷한 토토로인형을 구해 주었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손자가 실망할까 마음 졸였더니 인형을 두 손으로 받으며 활짝 웃는다. 아이고 할머니가 색깔을 착각했구나. 작아서 더 이쁘네….

2025-02-25

靜中動의 봄 채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고요와 침잠으로 이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함부로 물러서지 않는 동장군이 벽창호 같은 몸짓으로 막바지 추위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매화의 등걸에서는 이미 망울이 맺히고 섣부른 가지에서는 벌써 한, 두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설과 북풍의 회오리에 꿈적도 않을 것 같은 대지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동토의 장막을 밀어내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나 작용을 하게 되는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이 일어나고 있다. 겨울은 어쩌면 정중동의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청청하던 나무의 잎새가 떨어져 땅을 감싸며 뿌리의 활착과 번성을 조용히 돕고, 거세게 흐르던 폭포수도 온몸으로 얼어붙어 물보라의 비산을 막으며 나지막한 음조로 낙수의 흐름을 챙기고 있다. 움직이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듯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가 더없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없이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도 고요함이 스며들어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나며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준다./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 스님 ‘산중 한담’중 혹한의 계절에 동면이나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것은 결코 움츠림이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숨가빴던 호흡을 가누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나름의 생존법이나 수양을 일삼으며 더 단단하고 단호해지기 위해 내밀한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로운 안도일 수도 있고, 한중망(閑中忙)의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쁜 가운데도 잠깐 틈을 얻어내 여유를 부릴 수 있고, 한가함 속에서도 열심으로 움직이며 뭔가를 준비하고 추구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안목과 의지, 처세술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바쁘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일수록 정중동과 망중한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 온갖 정보와 광고가 난무하고 디지털, 스마트사회를 넘어 AI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차분하고 침착하게 본연의 평정심으로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루틴을 세워 ‘바쁜 듯이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대하고, 주변이나 이웃들에게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바쁜 듯이’ 넉넉하게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수와 경칩 사이, 아직은 바람이 여전히 차갑지만 남도 매화의 꽃 소식에 따스해지는 마음이다. 긴 겨울 깊은 적요에 들었던 만물이 정중동의 일깨움으로 차츰 봄 채비를 하듯이, 망중한의 여유로움으로 기지개를 켜며 조붓한 오솔길로 찾아오는 봄을 마중해야 하지 않을까? 봄은 출생이며 새로운 희망이다.

2025-02-25

與, 자칫 ‘중도 확장’ 타이밍 놓칠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이 심상찮다. 최근 보수층 결집도가 느슨해지면서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도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말(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TK지역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50%, 민주당 22%로 나타났다. 여당 지지율이 우세하긴 하지만 갤럽의 그 전주 조사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25%(75%→50%) 하락했고, 민주당은 8%(14%→22%) 상승했다. 보수안방의 ‘집토끼’가 부동층 또는 민주당 쪽으로 대거 이탈한 것이다. 이번 갤럽조사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변화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정당별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민주당 40%로 집계됐지만, 중도층만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20%p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중도층 민심은 변동성이 크다고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중도층은 비상계엄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만약 지금 대선이 치러진다면, 여당 후보의 승산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 여당을 극우정당으로 몰아붙이며 중도보수를 겨냥해 펜스를 넓히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상속세 감면 정책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과세표준 18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웬만한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을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상속세에 민감한 청장년층을 비롯해 중도·보수표를 충분히 잠식할 수 있는 정책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에서 공약으로 내건 ‘감세 의제’를 통해 중도층 공략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몸은 좌파이면서 입으로만 보수를 외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 이에 맞설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을 붙잡는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 일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강성 지지층만으론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소수다. 지난주 본격적인 대선 출마 행보를 시작한 안철수 의원이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어 이들과 단결하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수적으로는 30% 정도”라고 한 발언에 일리가 있다. 탄핵심판 최종 선고가 임박하자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지지세력을 규합하는데 올인하고 있는 당내 친윤계와 다수의 TK의원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국민의힘은 하루빨리 조기 대선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 중도층 민심을 잡을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계엄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외연확장에 한계가 있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은 침묵하면서도 국민의힘 행보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 지도부는 중도층을 공략할 구체적인 민생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꼭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야당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줘선 안 된다.

2025-02-25

한달만에 또 폐수 방류, 당국 대책 겉도나

지난달 보라색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가 흘러나온 대구염색산업단지 하수관로에서 이번에는 붉은색의 폐수가 흘러나와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붉은색의 무단 방류 폐수는 24일 오후 2시 20분쯤 대구 서구 대구염색산단 하수관로에서 붉은색의 폐수가 방류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알려졌다. 현장을 목격한 주민은 “악취는 나지 않으나 진한 분홍빛 폐수가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현장에 나온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달서천사업소가 실시간 간이검사에서 PH 11이 나왔다. PH 11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 장소는 지난달 8일에도 보라색의 폐수가 무단으로 방류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당국이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폐수가 하천으로 모두 흘러가버려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당국의 늦은 대처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음에 따라 지역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구염색산단에는 자체 공동폐수처리 시설이 있어 입주업체들은 폐수를 해당시설로 보내야 한다. 이번에 발견된 붉은색 폐수는 누군가가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하수관로로 폐수를 흘러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당국의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점검이 있어야 한다. 폐수분석을 통한 유입경로 확인 등 과학적 점검이 있어야 재발 방지 효과도 있는 법이다. 대구염색산단은 지난해 시민건강과 쾌적한 환경조성을 이유로 대구시가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곳은 공단조성 이후 수많은 공해 관련 민원이 제기된 산업단지다. 주민들이 환경공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1980년 공단이 처음 조성될 무렵에는 대구 외곽지에 위치했으나 지금은 도시가 팽창되면서 주변에 많은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공단 이전문제까지 심도 있게 논의될 정도이다. 하지만 공단이 존속하는 한 공해 문제는 철저한 관리가 꼭 필요하다. 이주환 서구의원은 “폐수 방류가 반복된다는 것은 고의성이 의심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사고가 발생 때마다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지 말고 실효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2025-02-25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무더기 무투표당선’

오는 3월 5일 치러지는 제1회 전국동시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인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입후보 자격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경쟁률이 낮은 게 주원인이다. 이번 선거는 평균 자산 2000억원 이상(2023년 기준)인 금고에 한해 처음으로 조합원 직선제로 치러진다. 다만, 자산기준에 미달하는 금고는 직선제와 대의원 간선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선거관리도 처음으로 선관위가 맡아서 한다. 직선제 대상 금고는 대구 86곳 중 41곳, 경북 104곳 중 20곳이다. 문제는 첫 직선제를 도입했지만 경쟁률이 지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이사장 선거에 나오려면 금고에서 4년 이상 일하거나 다른 금융 관련 기관에서 1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금고에 따라서는 이사 등 별도의 추가 자격 조건도 있다. 상당수 금고는 현 이사장에 유리한 조건을 달아 놓았다. 이러니 ‘이사장이 3선연임으로 출마하지 못하는 금고만 후보들이 나선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대구는 53곳, 경북은 74곳이 무투표 당선 금고다. 전체 금고 중 67%정도가 무투표 당선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대구에서는 후보자가 없어 재선거가 치러지는 곳도 있다. 경쟁률이 낮다보니 지난 24일 현재, 선관위에 신고된 선거법 위반 사례가 한 건도 없다.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에 직선제를 도입한 것은 금고경영의 투명성을 위해서다. 그러나 출마조건 장벽이 지금처럼 높을 경우, 앞으로도 전·현직 이사장 위주의 무투표 당선 금고가 속출할 게 뻔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사장 선거제도가 부실경영자를 가리지 못하면 금고의 내부통제 시스템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횡령이나 부당대출 등의 사고예방을 위해 현재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고 있는 금고 금융파트를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새마을금고가 원래 취지대로 서민을 위한 금융이 되려면 상시적인 감시활동을 할 공권력이 있어야 한다.

2025-02-25

대구마라톤의 신기록 도전

우정구 논설위원 마라톤과 육상 100m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표적 종목이다. “이 세상에 깨지지 않은 기록은 없다”는 말이 과연 맞을까. 육상 100m의 10초 벽이 깨진 것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개최 이후 약 70년만이다. 미국의 짐 하인스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세운 9초95 기록이 그것이다. 지금은 2009년 우사인 볼트가 세운 9.58이 세계 공인 신기록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은 역대 100m를 10초대 이내에 돌파한 선수 125명 가운데 흑인이 120명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마라톤의 신기록을 살펴보면 100년만에 50분 정도 단축됐다. 2009년 에티오피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가 세운 2시간 3분 50초 기록은 1908년 영국런던올림픽의 우승 기록인 2시간 55분 18초와 비교할 때 50분 정도 줄어든 기록이다. 현재까지 최고 신기록은 2023년 케냐의 켈빈 쿱툼선수가 시카고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0분 35초다. 쿱툼 선수의 기록을 100m로 환산하면 평균 17.1초. 평균 스피드는 시속 20.9km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당시 그는 인간의 한계로 보는 2시간 벽을 돌파할 가장 유력한 선수로 손꼽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다음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전문가들은 기후와 선수 컨디션, 도로사정 등이 최적 조건으로 맞춰질 경우 1시간 57분까지 돌파도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2025 대구마라톤’의 최고 기록이 2시간 5분 20초로 나타났다. 2시간 벽을 넘어서기에는 더 많은 도전이 있어야 한다. 세계 명품 마라톤을 꿈꾸는 대구마라톤의 신기록 도전에 기대를 걸어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5

조기대선 출마 선언 홍준표 “TK현안 해결”

홍준표 대구시장 홍준표 대구시장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최종 탄핵재판을 하루 앞둔 24일 “조기 대선이 열리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잠룡’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 중 가장 빠른 출마선언이다. 조기대선이 현실화될 경우, 공직자는 선거일 30일 전까지 사퇴하면 된다. 홍 시장의 이날 출마선언은 자신의 온라인 소통채널 ‘청년의꿈’ 청문홍답(청년의 고민에 홍준표가 답하다)에서, 한 지지자의 게시물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발표됐다. 홍 시장은 그동안 SNS나 방송출연 등을 통해 지지층을 넓혀왔다. 정장수 대구시 경제부시장도 이날 대구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홍 시장의 조기대선에 대한 입장은 초지일관이다. 시장직을 유지하고 경선에 나가는 안일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시장은 자신을 포함해 대구시에 근무하는 정무직 15명의 거취에 대해서도 “시장이 사퇴하면 정무직은 당연히 사퇴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 기각으로 윤통(윤석열 대통령)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지만,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릴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결코 윤통의 탄핵 인용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걸 당원과 국민께서 혜량해달라”고 했었다. 홍 시장은 이날 출마선언과 함께 “집권하면 TK현안은 모두 해결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그의 출마로 인한 대구시정 공백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차원에서 나왔지만, 당내 경선에 대비한 공약으로도 해석된다. 지난해 국민의힘 당 대표를 뽑는 7ㆍ23 전당대회에서 TK선거인단(책임당원)은 20.6%로 서울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현재 TK를 이끄는 대표주자는 홍 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지역민들 입장에선 둘 다 대선에 뜻이 있다는데 고민이 있다. 중학교 선후배인 홍 시장과 이 지사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간의 사전 조율 여부가 큰 관심사다. 홍 시장은 그동안 수 없는 도전과 격랑의 정치판을 헤치며 걸어왔다. 시장직까지 사임하고 당내 경선에 나서는 이 길이 어쩌면 정치에서는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홍 시장은 그 여정에 TK 지역민들이 함께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집권하면 TK현안은 모두 해결된다”는 그 말 속에 대구경북을 향한 애정과 바람이 다 담겨 있는 것이다. /정치에디터겸 논설위원 심충택

2025-02-24

위독한 프란치스코 교황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행보로 가톨릭 신도만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멀리 바티칸에서 들려왔다. 최근 교황청은 “교황은 오랜 시간 천식과 호흡기 문제를 겪었으며, 호흡이 불안정해 산소 치료를 받았다. 혈액 검사 결과 혈소판 감소증이 발견돼 수혈도 받았다. 현재 의식은 있지만, 예후는 조심스럽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태를 설명했다. 20대에 늑막염을 앓으며 폐의 일부를 절제한 교황은 매번 겨울이 되면 세균과 바이러스에 복합적으로 감염된 만성 호흡기질환에 고통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코로나19 사태’ 이후론 이런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교황의 담당 의사가 “가장 큰 위협은 호흡기에 있는 세균이 혈류로 침투해 패혈증을 유발하는 것”이란 우려를 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교황청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자진 사임설에 대해선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덧붙여 “현재는 교황의 건강과 회복, 바티칸으로의 복귀에만 집중하고 있는 중”이라 부연했다. 가톨릭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걱정이 크다. 불치병을 안고 사는 이들의 이마에 기꺼이 입을 맞추고, 누구보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며, 서민들의 아픔에 공감을 드러내곤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교황이 곧 불어올 봄바람에 힘입어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24

기다려지는 삼일절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삼일절, 3월 1일, 그날, 경성의학전문, 중앙고보 같은 대학생, 고등학생들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행진을 벌였다. 삼일운동은 시민운동이면서 동시에 학생운동이었다. 그러면서 삼일운동은 삼일혁명인 것이었다. 바로 이 삼일 항거의 여파로써 중국 상해와 각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 곧 황제가 유일 주권자인 나라에서 대한민국, 온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로. 삼일운동은 그래서 삼일혁명이라 불리어 마땅하다. 며칠 전 대전 서구 보라매공원 광장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전국의 시청 광장들 중에 가장 넓다는 그곳이 발디딜 틈 없었다. 느리다는 충청도 사람들이 광장에 빽빽히들 모여들었다. 방송사 뉴스들은 이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리 왜곡을 일삼아도 한번 방향을 잡은 불길, 물길을 막을 수는 없다. 드론이 유튜브로 송출해 보여준 광장은 탄핵 반대의 큰 물결이 바야흐로 거세게 북상 중임을 알려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계엄과 탄핵의 한 달 반은 오로지 서울 광화문에만 의지했던 것이었다. 서울 세종로 동화 면세점 앞 광화문 탄핵 반대의 인파는 주말마다 급속도로 불어났던 것이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꽉꽉 채우고 모자라 서울역 쪽으로 더 길게 자리를 잡은 때도 있었던 것이었다. 불법으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대통령을 체포하겠노라고, 공수처가 한남동 관저에 들이닥칠 때에는 그 인파가 한남동에까지 몰려갔던 것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물결은 그러다 마침내 부산역 광장에 똬리를 튼 것이었다. 부산, 대구, 그리고 광주, 울산에 이어 대전으로 탄핵 반대의 물결이 지금 바야흐로 북상 중에 있다. 일주일 후, 3월 1일, 삼일절 날에는 이 사람들이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 진을 친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고대, 부산대 등 전국의 대학생들이 지금 탄핵 반대의 선언문들을 릴레이식으로 낭독해 가고 있다. ‘태극기 부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쓴 탄핵반대 집회는 이제 2030 청년들이 함께 하는 젊은 집회로 탈바꿈을 했다. 반면, 탄핵 찬성 집회는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하는 노래 가사처럼, 지금 숱한 깃발들만 높이 들려 있는 형국이다. 과연 탄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방송사 뉴스는 ‘8대 0’이라고들 한다. KBS는 한술 더 떠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들을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이 추적 아닌 추적 방송을 보고 누가 내게 해준 말. 도둑놈 보고 도둑질 했느냐 물어보고 안 했다고 하니 거 봐 안 했다잖아,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왜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졌는가. 그것은 극우 유튜버에 현혹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선거의 증거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기다려지는 올해의 삼일절. 이날은 부정선거라는 국민주권 유린 행위에 대한 전국민의 거부를 보여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 부정선거가 끔찍한 것은, 그것이, 현대사회의 기본 원리인 국민주권,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 표가, 제대로, 정당히 계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삼일절은 국민주권 원리를 다시 확인하는 삼일혁명의 날이어야 한다.

2025-02-24

尹 오늘 최종변론, 與野 이제 ‘국민통합’ 집중을

헌법재판소가 오늘(25일) 오후 2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을 열고, 소추위원(국회 법사위원장)인 정청래 의원과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에게 시간제한 없이 최후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준다. 윤 대통령 진술이 탄핵심판에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측은 ‘12·3 비상계엄’이 위헌·위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해 윤 대통령을 파면하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심사는 윤 대통령이 내놓을 최종 진술내용이다. 그의 진술은 헌재 판단과 국민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직무 복귀 후 국정 운영 비전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변론 종결 후 바로 평의를 통해 의견을 모은 뒤 선고 준비에 들어간다. 선고 결과는 평의에서 표결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표결에 영향을 미칠 핵심쟁점은 비상계엄의 국회활동 방해 여부, 계엄 선포의 절차적 적법성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선고시점은 변론 종결일부터 2주 안팎인 3월 중순이 될 것으로 보이며, 헌재가 이때쯤 탄핵안을 인용하면 5월 중순에 대선이 치러진다.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리면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재판과정의 불공정성 논란 때문이다. 윤 대통령 측은 그동안 헌재가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재판을 서두른다는 항변을 해왔다. 헌법재판관 개인을 둘러싼 정치편향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헌재의 최종 판단이 어떤 방향으로 내려지든 후폭풍이 만만찮게됐다. 전국적으로 열리는 대규모 탄핵반대 집회가 이를 말해준다. 헌재의 변론이 종결되면 여야는 더는 장외집회를 선동하거나 국민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를 존중하고 승복하는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선거전략상으로도 국민통합에 집중하는 정당이 유리하다. 여야 모두 강성 지지층만으론 대선을 치를 수 없지 않은가.

2025-02-24

TK 수출 연초부터 하락세 선제 대응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 발표 후 국내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대구경북지역 수출이 연초부터 크게 떨어지는 등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이하 무협)가 발표한 2025년 1월 대구경북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중 대구의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28.6%가 감소한 5억9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또 경북은 전년 동기보다 16.2%가 줄어 28억 달러로 집계됐다. 1월 중 전국 수출이 10.2%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대구와 경북의 수출 하락 폭이 훨씬 높게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대구는 전국 최하위, 경북은 전국 12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수출 품목별로 보면 대구는 자동차부품이 전년 동기대비 23.8%, 이차전지 소재인 정밀화학원료는 57%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은 이차전지소재가 26.7%, 자동차부품 20.5%, 평판 디스플레이가 31.1% 각각 떨어져 지역의 주력산업들이 연초부터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무협 관계자는 1월은 긴 연휴로 조업일수가 전년보다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을 하나 미국의 관세정책 발표 등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기업의 68%가 수출 피해를 예상한다고 대답했다. 이들 기업들은 관세부과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고도 응답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뜻이다. 1월 한달 실적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으나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정부가 무역금융 지원과 수출시장 다변화, 수출기업 애로 해소 등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 뾰쪽한 대응책이 안 보인다. 미국과 중국 등 대형시장에 크게 의존해온 지역기업으로선 대체시장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기업이 발벗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겠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선제적 조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관세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25-02-24

바람, 불다

강길수 수필가 그제가 우수였는데도 소소리바람이 분다. 꽃샘바람이 더 센 친구를 데려왔나 보다. 출근길, 건물 사이를 지나는데 차고 매서운 바람(風)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하지만, 하늘이 비취처럼 푸르고 공기도 맑아, 정신이 번쩍 든다. 마음과 몸도 새털같이 가볍다. 추워 한겨울 옷을 입었기에 사무실까지 걷기엔 지장 없다. “윙!…”. 동네 공원 나뭇가지를 훑고 내려오는 소소리바람 소리가 발걸음을 다그친다. 센 바람도 이맘때 부니 꽃샘바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리 기상이변 시대이지만, 지구 별이 태양을 돌고 꽃샘바람이 봄을 시샘하는 이상 오는 봄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북극 냉기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하얀 머리를 내밀다 멈춘 매화 꽃봉오리가 다시 솟아 피어나고 말리라. 뒤따라 홍매화,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 모두 꽃을 피워내며 오는 봄을 노래할 것이다. 꽃샘바람은 비단 명지바람에 반해 자리를 비켜주리라. 이어 벚꽃, 살구꽃, 복사꽃, 사과꽃, 배꽃과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터. 고향의 봄, 우리의 봄, 깨어난 국민의 봄은 이 땅에 다시 찾아와 꽃바람 불 것이다. 산 너머 남촌에서 초록 바람이 불어와, 하얀 이팝꽃에 배고픔 달래던 추억을 되새기면, 장미꽃들이 거리를 밝히는 봄, 감꽃 목걸이를 만들던 봄은 무르익어 온 누리에 푸른 생명 넘실대리라. 나는 어떤 바람들을 겪으며 살아왔을까. 유년기부터 소년기, 청장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사는 동안 참 많은 바람을 맞이하고, 겪고, 참고, 누리며 살아냈다. 겨울의 높바람, 고추바람, 칼바람. 봄의 소소리바람, 꽃샘바람, 명지바람, 꽃바람. 여름의 마파람. 가을의 하늬바람, 갈바람. 모든 바람 다 불어왔고, 불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태풍, 폭풍, 황사 바람, 미세먼지 바람도 겪었다. 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타력으로 해방된 후 미 군정, 제헌, 대한민국건국, 6·25 동란, 4·19학생 의거, 5·16군사정변(1987년 6월항쟁 이전엔 혁명), 산업화 시기를 망라하는 바람을 겪었다. 이어,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에 3년에 걸친 군 복무, 우리나라 첫 일관제철소 취업, 첫 석탄화학업체 이직, 첫 한국 진출 수처리 업체 이직도 거쳤다. 나라 경제가 후진국에서 중진국,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바람, 민주화 바람, 산업 일선에서 피땀 흘리는 바람을 겪고, 체험했다. 요즈음, 나라에 미증유의 바람이 분다. 2020년 4·15총선 직후 시작한 ‘부정선거 척결’ 바람은 이제, 태풍이 되었다. 헌재 대통령 탄핵심리, 선관위 수원연수원 외국인숙소에 미 ‘블랙옵스(black ops)팀’ 투입,‘한·미 공조 중국인 간첩단 검거 작전’ 보도,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Association of World Election Bodies)의 부정선거 관련 보도 등이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주목적이 ‘부정선거’를 밝히는 데 있었다. 젊은 세대가 이 문제를 파고들어 진실을 밝히며, 국민 계몽령 태풍이 되어 대학가까지 분다. 나라에 부는 이 미증유의 태풍이 남촌에서 불어오는 초록 바람으로 되어, 국민이 자유 민주주의의 푸른 생명을 만끽하는 나라로 거듭나기 빈다.

2025-02-24

활동적 이동과 지속가능한 도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따스한 봄바람이 도심을 감싸는 3월을 앞두며, 시민들은 어떤 이동 방식을 선호하게 될지 궁금하다. 최근 ‘활동적 이동(active travel)’이라는 용어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자동차나 대중교통처럼 동력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걷기, 자전거 타기, 스케이트보드 등 신체 활동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는 수단을 넘어서 건강증진, 스트레스 해소, 대기오염 완화 및 온실가스 감축에도 큰 효과를 보인다. 대구시는 오랜 기간 자동차 중심의 문화와 폭염, 한파 같은 기후 제약으로 ‘활동적 이동’이 연중 활성화되기 어려웠지만, 이제 시민의 건강과 도시 지속가능성을 위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의 관리권한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약 1,160만 톤이며, 이 중 지역내에서 배출되는 직접 배출량은 543만 톤으로 집계된다. 특히, 수송 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약 379만 톤으로 직접 배출량의 70%나 되어 자동차 의존도가 매우 높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대구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동 수단의 전환이 절실함을 시사한다. 최근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9)에서도 ‘활동적 이동’의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과 시민 건강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걷기와 자전거 같은 친환경 이동수단을 적극 도입하면, 대기질 개선과 함께 에너지 소비를 줄여 도시 전체의 환경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부산, 인천 등 다른 대도시들은 이미 자전거 전용도로, 보행자 우선 인프라, 대중교통 연계 시스템을 통해 ‘활동적 이동’이라는 친환경 이동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해외에서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호주 멜버른은 자전거와 도보를 일상화하여 도시 내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모범 도시로 손꼽힌다. 이들 도시는 인구 규모나 도시 특성이 대구와 유사하면서도,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인프라를 구축해 ‘활동적 이동’ 생활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대구도 이러한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지역 특성에 맞춘 맞춤형 인프라와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기존의 자동차 중심 이동 체계를 ‘활동적 이동’으로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시는 기후변화와 자동차 중심 문화라는 기존의 제약을 극복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활동적 이동’을 전도시 규모로 확산시켜야 한다. 도심 내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전용 구역, 대중교통 연계 인프라를 강화하고,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시민 건강 증진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2050년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는 대구의 미래는 ‘활동적 이동’으로 전환하는 우리 모두의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활동적 이동’의 활성화에 시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지속가능한 대구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2025-02-24

이륜차도 차다

나는 이륜차를 탄다. 이륜차는 흔히 오토바이, 바이크, 모터사이클이라고 칭하는 두 바퀴 달린 자동차를 칭하는 도로교통법상의 용어다. 내가 타는 것은 배달 오토바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25cc 스쿠터이다. 그렇다고 배달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레저를 목적으로 타는 것도 아니다. 외부 일정이 있을 때 단순히 이동수단으로 타고 다닌다. 이륜차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동차는 이와 구분지어 사륜차라고 써야 옳겠으나, 편의상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오토바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운송수단이다. 우선 내가 타는 것은 배기량이 적기도 하고 차체도 무겁지 않은 편이어서 이동할 때 연료를 적게 소모한다. 자동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적이고 환경을 덜 파괴한다는 이야기다. 작은 부피를 가진 만큼 좁은 길을 통과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모세혈관처럼 좁은 골목들이 구석구석 퍼져 있는 도심을 주행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차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잠시 길가에 정차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이들의 통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오토바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기후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날씨가 춥거나 눈,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는 운행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소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위험성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오토바이는 왜 위험한가.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타는 사람이 위험하게 타기 때문이다. 헬멧이나 장갑 등 보호 장비를 잘 갖추지 않은 채로 운전을 하는 경우, 그리고 운전 자체를 난폭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오토바이의 헬멧은 당연히 얼굴을 많이 가릴수록 안전하다. 그런데 일부 라이더들은 번거로운 착용과 답답한 기분 때문에 대충 바가지 같은 패션헬멧이나 심지어 자전거 헬멧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단속을 피하기 위함이지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난폭운전에 있어서만큼은 라이더들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다. 차 사이를 이리저리 통과하며 달리는 경우, 갓길이나 인도로 주행하는 경우, 과속방지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속하는 경우, 각종 곡예주행을 하는 경우 등. 상당수가 생업을 위해 배달이나 퀵서비스 용도로 오토바이를 타기 때문에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있더라도 난폭운전을 하는 것은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이 글을 쓴다. 수많은 자동차들로부터의 위협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한 난폭운전자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자동차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오토바이만 발견하면 기분이 나빠지곤 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내가 모는 오토바이 역시 한 대의 차량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린다. 125cc 저배기량 스쿠터이지만 나름 시속 10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므로 도심을 달릴 시 도로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자동차는 연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대거나, 심지어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며 거의 스칠 기세로 동차선 추월을 감행하기도 한다. 차선을 차지하지 않고 차량 사이로 운행하면 무개념 라이더가 된다. 그런데 차선을 차지하고 달리면 또 그게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상대를 위협한다. 차체가 작다는 이유로 앞뒤로 함부로 끼어드는 일은 너무 익숙해서 별로 화도 안 난다. 주차에 있어서도 난감한 점이 있다. 오토바이는 이륜차. 명백히 자동차에 속한다. 그런데 주차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주차를 하면 반드시 항의를 받게 된다. 아까운 주차 자리에 감히 오토바이가 주차를 했다는 이유로. 그렇다고 주차장 칸 바깥에 주차를 하면 또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주차를 했다고 항의를 받는다. 오토바이는 어디에 주차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인가. 마음 같아서는 배낭에 넣어서 짊어지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왜 오토바이를 타냐고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인종차별의 이유를 차별받는 이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당한 차별은 차별하는 이의 잘못이지 차별당하는 이의 잘못이 아니다. 날이 풀리고 다시 두 바퀴로 달리기 적당한 계절이 오고 있다. 이륜차 역시 다른 자동차들처럼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바퀴 수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길 바란다.

2025-02-24

하나의 점으로도

이것은 지난 칼럼을 마감하며 벌어진 슬픈 일화다. 글 쓰는 사람이 텅 빈 눈으로 모니터 커서를 응시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의 상황에 해당한다. 마감 시간이 임박했는데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거나, 애써 쓴 글을 날려 버렸거나. 멍청한 행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문서를 강박적으로 저장하던 시절의 결의 따윈 내다 버린 것일까. 백업 시스템을 철저히 믿은 것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완성된 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원고지 3매 분량의 초안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이란!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하늘을 원망하고 나의 아둔함에 혀를 차고…. 인터넷을 뒤져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보았으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애석하군요. 아이클라우드를 믿다니….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파일 관리에 신중을 기하길 바랍니다.’ 정녕 방법이 없단 말인가. 절망에 절망이 더해지면 눈물보단 실소가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허파에 구멍 난 것처럼 웃다 보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엉킨 마음이 느슨해진다는 것도. 어차피 모든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 똑같이 구성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신년운세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성공운이 따른다고. 만일 원고지 1천 매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이 사라졌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련의 사건이 굉장한 행운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능숙한 연주자처럼 키보드에서 줄기차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몇몇 문장은 어렴풋이 떠올라 나름대로 비슷하게 구성할 수 있었지만,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는 불가능했다. 미로를 헤매다가 다른 길에 들어서기를 반복, 결국 제목부터 결론까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글이 탄생하고야 말았다. 신기한 일이다. 쓰는 사람도, 쓰려고 하는 내용도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일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변화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언어는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단 하나의 마침표, 쉼표만으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눈 밑에 점 하나를 찍으면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막장 드라마처럼. 하나의 점으로도 한 세계가 뒤바뀐다. 정말이다. 온점과 반점을 고민하는 일, 단어를 교체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넣고 빼는 일, 백스페이스와 스페이스를 누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애초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기우뚱대다가 엉뚱하게 완결짓기도 한다. 마침표를 찍은 문장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반드시 유의미할 수 없다. 새롭게 적은 문장이 이전의 것보다 훌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글은 늘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지난번처럼 불운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분히 자의적으로 내 글을 휴지통에 버리기도 한다. 소설의 경우 쓰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훨씬 더 많다. 편안하게 적는 문장 하나하나에 자기 철학이 눅진하게 담겨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내겐 아직 그러한 능력이 없다. 뭔가에 관해 닿아보고 싶다면 일단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쓰고 버리고, 다시 쓰고 버리고. 이 무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메일함에 들어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보라. 체력적 한계 따윈 없다. 만족할 때까지 새로운 문장을 끊임없이 내어준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도 정신도 너무 빨리 지쳐버린다. 미숙한 판단으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오류로 점철된 기능을 가진 존재에 불과하면서 어째서 이러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에 일말의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글이 사라져도 즐겁게 다시 쓰면 될 걸, 왜 이렇게 길게 한탄을 늘어놓고 있느냐는 어퍼컷이 날아올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주먹을 가뿐히 피하며 답한다. 이미 끝낸 노동을 처음으로 돌아가 또 하고 싶은 노동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활자 노동자의 푸념을 받아 주시죠?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 파일이 날아가도 다시 쓰고, 문장이 엉망이어도 다시 쓰고, 하나의 점을 잘못 찍어도 다시 쓴다. 그렇게 매일매일 앉아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나저나 글을 날려 먹은 일화로 새로운 글을 쓰다니. 다시 생각해도 글쓰기란 참 재미있지 않은가.

2025-02-24

소통의 풍경

채팅방 내게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있다. 시험을 끝낸 아이들의 표정이 안쓰러워 밥을 사 주겠다고 했다. 식당에 6명이 모였다. 메뉴를 정하려고 하는데 음성적 언어가 무음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는 고요하고 손가락이 바빠졌다. 나의 휴대 전화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고 그 방에는 주문할 메뉴가 나열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낯선 메뉴 선택을 선택한 아이들의 소통 방식이 당황스러웠다. 눈앞에 메뉴판이 있는데, 서로 마주 보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모두가 한 공간에 붙어 앉아 있는데, 굳이 채팅으로 주문해야 할까. 잠시 멈칫하는 사이 아이들은 마치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아이들만 했을 때의 풍경을 소환해 보면 예전엔 메뉴가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갑도 늘 얇아서 메뉴판이 굳이 필요 없기도 했다. 혹이라도 누군가 좋아하는 메뉴를 말하면 또 다른 아이들이 반응하며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밥상머리에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깔깔거림과 맞장구가 곁들여져 풍경이 완성되곤 했다. 지금은 화면 속에서만 이야기하고 소리는 없고 이모티콘만이 엉덩이를 흔들며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이 변했고 문화가 변했으니 어쩌면 이들에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꼰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만의 소통방식인 것을. 우리 세대는 대화 속에서 눈빛과 표정을 읽었지만 아이들은 채팅 속에서 미묘한 텍스트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것이 신비로웠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단절이라 하겠으나 이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일 수 있을테니 우리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했다. 화면 속 말풍선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무엇인지. 그저 조용한 주문 목록을 공유하고 있을 뿐인지.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서로를 보며 주문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다른 문화를 접하는 듯 어색해했다.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피식 웃으며 메뉴판을 집어들고 말했다. “우리 하나씩 말해 보자. 난 떡볶이” 다른 아이들도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나는 김밥” “우와 이렇게 주문하니 진짜 주문하는 기분이 나요.” 아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메뉴를 정하는 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었고 작은 농담도 오갔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대화의 리듬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김경아 작가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갔다. 학교 이야기, 좋아하는 가수, 주말에 있었던 소소한 일상, 휴대전화 화면이 아닌 우리 앞의 식탁 위에서 서로가 서로의 화면이 되어 소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면 한 주문이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의 수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음성으로 주고받는 말 속에만 감정이 존재할까. 채팅방 속 이모티콘의 열열한 움직임 속에도 감정의 무게가 존재하는 걸까. 아이들이 나눈 눈빛처럼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틈에서 옛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잊은듯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와 노을 예쁘다.” 모두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로의 얼굴과 같은 하늘을 공유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화면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 같은 자리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였다. 아이들이 저녁노을처럼 따뜻한 오늘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을 걸으며 뒤를 돌아본다. 아이들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저녁 공기 속에서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아이들 마음속 깊이 스며들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2-24

‘악마의 채찍’ 아틸라 ① 훈족 유럽을 유린하다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검이 아틸라에게 주어지다” 앞선 ‘도미노게임 민족의 대이동’에 대해 살짝 간만 보고 넘긴 탓에 미련이 남아 역사를 거슬러 잠시 돌아가기로 한다. 4세기 중반,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이들의 생김은 흉노족을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했다. 러시아에서 카스피해로 흐르는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으로 나뉜다. 유럽인들 눈에는 흉포하게 생긴 사람들이 말을 휘몰아 괴성을 지르며 불쑥불쑥 나타나자 그야말로 공포에 질렸다. 이들은 그 옛날 중국 한나라에 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한 후 종적이 묘연해진 흉노의 후예들이었다. 훈족이 카스피해 북쪽에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나라와 힘을 합친 남흉노에 패한 서흉노 잔존 세력은 고배의 쓴 잔을 삼키며 서진을 이어갔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넓은 평원이 펼쳐진 곳을 찾아 이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대략 2세기 동안 이동하면서 힘을 길렀다. 투르키스탄 서쪽 일대에 도착한 이들은 그동안 사라져가던 문화와 민족의 동질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서진 과정에 여러 잡다한 주변의 종족들과 합병하거나 정복하면서 힘을 키웠다. 특히 서아시아와 동유럽에 살던 게르만족과도 피가 섞인다. 그러다 기후변화와 목축 등 그 장애가 나타나자 재차 서쪽으로 이동해 카스피해 북쪽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훈족은 4세기 중반이 되면서 가장 먼저 볼가강과 돈강 유역에서 한가롭게 살아가던 ‘알란(Alan)’을 침략했다. 뒤이어 도나우강 동쪽, 즉 동유럽의 동고트를 정복한다. 서쪽으로 서진을 계속한 훈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몰도바 북부를 흐르는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서고트족마저 짓 뭉겨버린다. 이 소식은 바람처럼 전해지면서 전 유럽에 확산되고, 공포는 동쪽으로부터 밀려들고 있었다. 게르만민족 대이동의 서막이 열리며 로마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훈족은 장장 80여 년간 유럽의 판도를 뒤흔들며 역사를 주물렀다. 375년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해다. 즉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족, 색슨족, 부르군트족, 유트족 등 유럽에 이동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대 피바람이 불면서 폭력과 약탈의 역사가 이어진다. 훈족은 오늘날 발칸반도의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인 트란실바니아에 훈왕국을 세운다. 378년 봄, 훈 군대는 게르만족을 몰아내면서 서진을 이어갔다. 쫓겨난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의 영토로 몰려들었다. 헝가리 티사 강변에 살고 있던, 나름 야만족이면서 용맹하다고 소문난 반달족이었지만, 훈 군사에 의해 서쪽으로 쫓겨 가면서 멀고도 먼 이베리아반도까지 이동해 그곳에 반달왕국을 세워 훗날 서로마 유린에 앞장서기도 한다. 당시 로마는 사실상 동서로 분열되어 갈등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였다. 395년 무렵,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고 본격적으로 동·서 분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던 로마에 훈족의 침략이라는 악재가 닥쳤다. 400년경이 되어서도 훈족의 원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명실공히 훈왕국에 욕망의 상징 ‘제국’이란 이름을 붙인다. 트리키아 총독이 훈족과의 평화를 구걸하러 찾아왔을 때다. 훈제국의 황제 울드즈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뜨는 곳에서 태양이 지는 곳까지 우리의 영토로 만들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폭력의 자만이 가득 찬 인간의 본능이 이어졌다. 그랬던 야망 덩어리, 훈제국의 걸출한 인물 울드즈가 410년에 죽었다. 그렇지만 유럽의 패권은 여전히 훈제국의 손에 있었다. 아레스가 파괴와 살상을 일삼고, 피를 보기를 즐기는 전쟁의 신이라는 점에서 아틸라를 그에 대입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광폭한 존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433년, 28세에 왕위에 등극한 아틸라는 거침없었다. 아틸라는 어린 시절부터 숙부 루아를 따라다니며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각 도시의 지리와 통치방식까지 익혔다. 아틸라의 지도력 아래 이민족으로는 유럽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온 훈족을 사람들은 ‘신의 응징’으로 불렀다. 유럽 전역과 로마제국을 벌벌 떨게 만든 아틸라는 걸출한 지도력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 부족장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등 단기간에 세계를 장악한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밀려드는 게르만족으로부터 굳건하게 걸어 잠그는데 성공한 비잔티움제국과는 달리, 서로마는 도미노처럼 일어나는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서로마 영내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이민족은 약탈을 일삼으며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침략에 노출된 농민들은 급기야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로마의 명장이자 서로마 총사령관이었던 아에티우스는 급하게 훈제국의 아틸라에게 SOS를 타전했고, 아틸라는 불감청고소원이라, 이에 응하면서 농민반란을 진압하였다. 유럽은 이제 아틸라의 공포에 숨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비잔티움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는 달랐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2-24

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대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시내 중심가는 물론 대전, 인천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가까운 거리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대구에서는 동성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집회와 탄핵하라는 집회가 차례로 열렸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광장 민주주의가 득세하면 대한민국도 남미처럼 나락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윤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오시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좌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주문했다. 역사 강사 전한길 씨도 집회에서 “지역·세대·성별·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국민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동화면세점 앞 국민변호인단집회에 참석한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양 진영이 모두 국민 통합을 주장한다. 그럴수록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방향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5일을 마지막 변론기일로 잡았다.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도 시간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의 전례를 참고하면 내달 중순쯤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기각된다, 주장이 팽팽하다. 예단은 일단 접어두자. 탄핵을 인용하면 탄핵 반대파가 수용할까. 전국에서 규탄 집회가 벌어질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와 같은 난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이는 탄핵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다. 지금처럼 날을 세워서는 격분한 군중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탄핵이 기각되면 또 어떨까.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항의 집회, 하야 운동이 벌어진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상대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기각 결정을 수용할까. 윤 대통령에게 협조할까. 오히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국무위원 탄핵공세로 몰아붙이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도 나라가 두 쪽 날 판이라 걱정이다. 그래도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 선거가 정국을 압도하게 된다. 그 대선에서도 탄핵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겠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더 큰 숙제가 뒤따른다. 윤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비상계엄이 합법이라고 공인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카드를 다시 꺼내지 않을까.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대응수단으로 비상계엄 카드를 빼어 들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비상계엄이 국회를 통제하는 상시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때 비상계엄은 이번과는 다를 것이다. 예행연습을 해봤다. ‘재수(再修)’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할 수 있다. 리스트에 있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이는 데도 성공할 것이다. 그 뒤에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당 대통령도 비상계엄으로 국민의힘을 무력화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하지 않을까. 그때는 보수세력이 저항운동을 벌이겠지만, 계엄이 일상화하고, 나라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대표 사례로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오르내릴 것이다. 어느 쪽이건 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은 쉽지 않다. 탄핵 반대운동 세력을 세대별로 확산하는 건 진영 내 결속일뿐, 국민통합은 아니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떠나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국민의힘은 한 주 전보다 10% 떨어져 22%, 민주당은 5% 올라 42%였다. 거의 갑절차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 감싸기가 선을 넘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조국 사태 때 이미 경험했다. 지금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건 무엇일까. 홍 시장 주장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국민 통합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23

꽃샘추위

우정구 논설위원 1년 24절기 중 봄의 절기로 보는 시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곡우까지다. 입춘(5일)과 우수(18일)가 지났지만 여전히 겨울 추위가 우리 주변을 차갑게 맴돌고 있다. 지난 주말은 중국 북부지방에 발달한 찬 대륙성 기압으로 경북 북부와 경기, 강원, 충청 일부 지방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울릉도와 독도, 서해안 일대는 눈까지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 속담에 “꽃샘추위는 꾸어다 해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꽃이 필 초봄 무렵이 되면 추위가 한두 차례 반드시 찾아온다는 뜻이다. 기상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꽃샘추위도 2014년을 기점으로 한풀 꺾인 듯하다는 설명이다. 지구 온난화 탓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꽃샘추위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꽃샘추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다. 겨울철 내내 냉기를 불어넣던 시베리아 기단이 봄이 되어 서서히 물러나면서 한번씩 심술을 부려 나타나는데, 이를 우리는 꽃샘추위라 한다. 북한에서는 꽃 질투추위, 일본에서는 꽃추위를 뜻하는 하나비에, 중국에서는 춘한(春寒)이라고 부른다. 꽃샘추위가 오랫동안 머물며 기승을 부리는 해에는 농작물이 냉해를 입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기 등으로 고생을 할 때도 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곧 봄이다라는 뜻이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다. 이번 봄에는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 나쁜 기운이 싹 걷히고 좋은 소식만 들렸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3

일본의 끈질긴 독도 도발,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의 독도 역사왜곡과 침탈야욕이 또 한번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은 22일 한국정부의 반대에도 올해도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감행했다.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후 이번이 20번째다. 일본의 다케시마 날 행사와 관련, 이철우 경북지사는 22일 성명을 내고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 중단과 영토권 확립운동을 주장한 조례의 즉각 폐지를 촉구한다”며 독도에 대한 왜곡된 여론 도모를 전 도민의 이름으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열고 여기에 중앙정부 고위급 인사를 참석케 하는 등 일본이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대해 우리 정부가 강력히 항의한다”고 했다. 일본 혼슈 서부 시마네현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방적으로 행정구역에 편입한 공지를 발표하고 이것이 100주년 되는 해인 2005년에 이날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특히 올해는 20주년 기념으로 행사 규모를 키우고 책자발간과 케이블방송도 내보냈다. 우익 매체인 산케이신문은 사설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영토며 기념일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정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을 실었다. 일본이 독도를 두고 방위백서나 교과서 등에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한 사례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해양 영토임에도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독도를 영토분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전략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러나 독도는 이미 국제사회가 중요 기준으로 삼는 한국의 실효적 지배하에 있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은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일본의 독도 도발을 우리는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는 한국의 주권 침해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독도는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일본은 더 이상 독도를 터무니없는 이유를 달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신국제 질서가 형성되는 시대에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일본의 성찰을 촉구한다.

202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