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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느 젊은 여성의 가르침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오랜 세월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글 쓰고, 여러 사람과 토론한 것이 전부다. 나의 독서 범위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영역까지 다채롭다. 특정 분야에 제한된 독서와 작별한 지 오래다. 그것은 나의 지나친 지적(知的) 욕구에서 비롯되거나,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대단한 독서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40대 후반에 논어를 읽다가 ‘더 일찍 논어를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한 적이 있다. 만약 30대에 논어를 필두로 한 동양 고전과 만났더라면, 인생 항로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문학과 동서양 희곡 연구를 필생의 과제로 여기고 달려온 인생살이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해버렸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논어를 만났던 게다. 논어를 여러 차례 숙독하면서 경탄한 대목이 여럿 있지만, 나이 들수록 와닿는 구절 하나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모르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는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걸 감추려 드는 짓이 부끄러운 노릇임을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11일 부산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울려 퍼진 젊은 여성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자신을 노래방 도우미라고 소개한 그녀는 휴대전화에 기록해온 내용을 차분하되 열렬하게 읽어내려감으로써 수많은 청중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이가 조리 있게 전개한 논지의 핵심은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과 정치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20∼30대 남성들과 70대 이상 노인들이 탄핵 국면에서 어째서 내란 세력에 동조하는지를 물으면서, 그녀는 시민교육과 적절한 공동체의 부재를 원인으로 제시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젊은 남성 세대와 70대 이상 고령층의 동조(同調) 현상이 현저하다. 큰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와 조카나 손자의 동조 현상은 매우 이례적(異例的)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여성 우대정책과 남성의 군 가산점 폐지가 맞물리면서 양성 대결로 번진 기억이 새롭다. 껍데기만 남은 여성가족부의 심란한 현주소와 군 가산점 제도를 부활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시도로 양자의 대립 양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슬기롭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젊은 양성의 공존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날이면 날마다 청춘과 그 육신을 찬미하는 우리 사회의 상업적인 풍토 역시 고령층의 소외와 고립을 심화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평생교육이라는 국가과제는 뒷전이고, 가진 자들만을 위한 부자 감세와 각종 혜택으로 밀려난 도시빈민과 농어촌 거주 노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 공동체로 끌어들이려는 의지는 어디서고 찾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정치와 소외된 계층을 향한 관심을 아프도록 촉구한 것이다. 그녀의 경이로운 연설을 들으며 깨우치는 바 있었다. 나이 든 내가 생각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한 그녀에게 ‘불치하문’의 교훈을 얻은 게다. 고마운 인사 전한다.

2025-02-23

‘계엄의 바다’에 빠진 與…중도층 민심 비상

한국갤럽이 지난 21일 발표한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중도층의 민심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정당 지지도를 물어본 결과 국민의힘 34%, 민주당 40%로 집계됐지만, 중도층만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20%p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주 중도층 조사에서는 5%p(민주당 37%, 국민의힘 32%) 격차로 박빙이었다. 한 주 만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갤럽은 “지난해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통화 음성 녹음 파일 공개 후 지지도 격차가 커진 점에 비추어, 최근 창원지검의 수사 결과 등으로 다시 이목을 끈 ‘명태균 사건’이 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극우 행보’가 중도층 민심이탈을 부추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헌법재판소 비판과 윤 대통령 방어에 집중하면서 당 색채를 ‘탄핵반대 이미지’로 바꿔놓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층 민심은 강성 지지층의 극렬행동이 나타날 때 이탈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기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여야 간 판세는 중도층 민심이 좌우한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 “이 대표가 호적까지 파가면서 중도·보수에 침범하는 것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고 한 말에 일리가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중도층 민심 흐름을 외면하다가는 현재의 지지율 격차를 줄일 수 없게 된다. 여당 지도부도 윤 대통령 방어에 집중하면서 중도층 민심을 흡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를 비롯해 입장정리를 하지 않고는 중도층 민심을 잡기 어렵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 대부분은 비상계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내일(25일) 윤 대통령의 헌재 변론도 마무리되는 만큼, 국민의힘은 ‘계엄의 바다’를 건너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2025-02-23

희망은 있다

유영희 작가 학원 폭력은 그저 청소년기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드라마 ‘소년 시대’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에도 나오듯이, 맞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는 일도 아니거니와 피해자의 인격 전체를 부정당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같은 작품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사용된 데서 알 수 있듯이, 학원은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두 작품은 학교 폭력을 군사 독재에 비유했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 같은 작품에서 학원 폭력이 해결되는 과정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보다 17년 전에 나온 ‘아우를 위하여’는 화자 김수남은 군대 가는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안에는 자기가 어렸을 때 겪은 학교 폭력 이야기가 들어 있다. 수남은 피난지에서 교생 실습 온 병아리 여선생님에게서 나쁜 짓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반에서 군림하던 이영래를 굴복시킨다. 이영래가 아이들의 항의 몇 마디로 너무 쉽게 몰락하여 감흥은 크지 않지만, 폭력에 맞서는 아이들의 용기가 돋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교 폭력 주동자 엄석대의 2인자 노릇을 하던 한병태가 어른이 되어 엄석대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끝나서 뒷맛이 씁쓸한 작품이다. ‘소년 시대’ 역시 주인공이 학교 폭력 주동자 정경태에게 처참하게 맞다가 결국 물리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폭력 장면이 보기 싫었지만 어떻게 결말이 나나 궁금해져서 보게되었다. 예상대로 해피엔딩이지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이전의 학원물과 확실히 차별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를 몰락시키는 사람은 6학년 담임선생님이었고,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김수남의 뒤에 병아리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소년 시대’의 폭력 주범 정경태는 이영래나 엄석대와는 급이 다르고, 피해자 장병태에게는 담임선생님이나 병아리 선생님도 없었다. 장병태에게는 여자 친구의 응원만 있을 뿐 그는 오로지 자신의 꾀와 힘으로 정경태를 물리친다. 이것은 확실히 앞의 두 소설보다 진보한 방법이다. 찰진 사투리나 복고풍의 ost 등도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데 한몫 했다고 하지만 정병태의 이런 주체적인 활약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허구적 작품에 나오는 낙관적 결말이 현실의 희망이 되기는 어렵다. 이제 현실의 악은 교묘해져서 정경태처럼 직접 물리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물리력을 행사하고도 발뺌하기 일쑤다. 힘 있는 고위 공직자가 세금을 펑펑 써도, 가족이 뇌물을 받거나 불법을 저질러도, 전세 사기범이 거리를 활보해도, 주가 조작으로 피해가 극심해도, 이런 악을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응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교묘한 논리와 궤변으로 아무리 핍박해도 당당하게 오롯이 맞서는 증인들을 보면 희망이 있음을 믿게 된다. 한 명의 장병태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열 명 되고 열 명이 백 명 되는 희망이 매일 실현되고 있다.

2025-02-23

용서받을 시간이 없는데

김규인 수필가 배우 김새론이 16일 사망했다. 25살의 젊은 나이다. 집을 방문한 친구가 119로 연락해 쓰러진 김새론을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이미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사 결과 타살 흔적은 없다며 자살로 결론 내렸다. 재능 있는 한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김새론은 2022년 5월 18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 운전으로 가드레일과 가로수, 변압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전기가 끊겨 인근의 상점 등이 손해를 보았다.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가 손해배상금을 변제했고, 이어 전속계약 기간의 만료로 소속사를 잃었다. 음주 운전 혐의로 팬들의 신뢰를 잃었고 영화계 활동에 치명타를 입었다. 2001년 한 살 때 잡지 표지 모델로, 2009년 9살 나이에 ‘여행자’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10년에 영화 ‘아저씨’에서 주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도희야’로 다시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타고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의 실수는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시간이 흘러도 김새론을 향한 악플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김새론에 대한 악플은 계속 따라다녔다. 그가 무엇을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힘든데 그만들 좀 하면 안 돼요?”라는 김새론의 호소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사람이 죽어야만 악플을 멈추는 것인지. 당사자는 그 악플로 괴로워하는데 정작 가해자는 태연하다. 어쩌면 악플인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남의 일이라고 하여 함부로 말하는 것은 이제는 그쳐야 한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에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돈벌이에만 신경 쓰는 유튜버들에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연예인 기사는 좋은 먹잇감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통장에 꽂히는 돈의 액수에만 관심을 보인다. 개인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야 한다. 이는 큰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기사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만 신경 쓴다. 악플에도 이름을 바꾸어가며 재기를 노린 한 여배우의 노력이 애달프다.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도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영화에 출연해도 그들 눈에는 악플의 대상이고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김새론이 겪은 마음의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언제까지 이런 사태를 보고만 있어야 할까. 사람이 죽는 것이 일상인 양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또 지나간다. 유가족의 아픔은 치유 받을 길이 없는데, 무심한 하루는 그렇게 또 지나간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을까. 아무 죄책감 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젊은 한 사람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조금 더 차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까. 좋은 일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죄를 짓고 용서받을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2025-02-23

포항 두무치 마을의 천제

동해안에는 아직도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가 전승되는 마을이 많다. 동제와 함께 하늘, 즉 천신(天神)께 제사를 지내는, 이른바 천제(天祭)를 지내는 곳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포항시 북구 두무치 마을이다. 두무치는 현 포항시 북구 두호동의 옛 이름이다. 1980년대 이후 영일대해수욕장, 환호공원, 설머리물회지구 등의 개발과 맞물려 관광지로 변한 곳인데, 이곳에는 천제당(天祭堂)이라 부르는 신당이 있고, 매년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있다. 대체 두무치의 천제당은 어떤 모습이고, 제의는 어떻게 전승되고 있을까? 두무치 천제당의 연원과 관련해서는 ‘포항시사’(1987)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예부터 두무치에는 천제당(天皇神位堂)을 비롯하여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이 있었다가 해방 전 일제 때 후자의 4당을 합쳐서 선황당(골목당 : 골매기당)으로 통합하여 천제당과 함께 두 제당을 형성하였다. 이후 종전과 같이 해마다 제관을 선임하고 봄과 가을 2회로 날을 받아서 풍어와 동의 안녕을 기원했는데, 동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흥해고을 원이 참여하여 지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동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자 급기야 작년에 천제당을 신축하여 선황당을 합당하면서 종래 1년에 두 차례 택일하여 제사 지내던 것을 가을에 택일하던 음력 9월 2일날을 아예 동제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원래 천제당인 천황신위당(天皇神位堂)과 함께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 등 4개의 신당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천제당을 제외한 4개의 신당을 하나로 통합, 선황당(仙皇堂)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다. 현재 스페이스 워크로 가는 길옆에 선황당 터가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86년에 천제당을 중건하면서 선황당을 이곳에 통합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천신을 상징하는 천황후토신위(天皇后土神位)와 옛 선황당에서 모시던 골매기신을 상징하는 원두호동후토신합위(元斗湖洞后土神合位)를 모시고 있다. 통합 후에는 매년 9월 2일(음)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두무치 천제당의 정식 명칭인 ‘천황신위당’은 ‘천황의 신위를 모신 당’이란 뜻이다. ‘천황신위’의 ‘천황’은 ‘하느님’이란 뜻이다. ‘후토(后土)’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별 의미 없이 ‘신’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그러기에 ‘천황후토신위’는 ‘하느님 신위’이란 뜻으로 봐야 한다. 골매기신의 위패인 원두호동후토신합위(元斗湖洞后土神合位)의 ‘후토’도 그냥 ‘신’이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원(元)’은 ‘원래’란 뜻이다. 합위(合位)는 4분의 신위를 통합한 위패란 뜻이다. 그러니 원두호동후토신합위는 지금의 두호동이 아닌 옛 두호동의 통합신위란 뜻으로 1994년 천제당으로 통합하기 전 옛 선황당에서 모셔온 4위의 신을 의미한다. 두무치 천제당은 두무치 마을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뒷산 언덕(두호동 산18-1)에 위치한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목조와가 형태의 당으로, 출입문이 따로 있으며, 이 문 처마에 天皇神位堂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천제당 내부 정면 벽에는 좌우에 감실이 있고, 감실 안에 신앙의 대상인 신격을 탱화와 위패로 모셔 놓았다. 옥황상제 형상을 하고 있는 천황은 흰 수염에 흰 눈썹을 한 노인 형상에 곤룡포를 입고 보관을 쓰고 있다. 천황 오른쪽에는 호랑이가 호위하고 있다. 탱화 앞에는 天皇后土神位라 적은 위패가 있다. 천황 탱화 바로 옆에는 같은 규격으로 그린 장수 형상을 한 탱화가 1점 걸려 있다. 장수 탱화는 가운데 화려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장수를 중심으로 5명의 호위무사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장수의 형상은 사찰의 신중탱화에 등장하는, 흔히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고도 부르는 위태천(韋駄天)의 모습에 가깝다. 이 장수 형상의 탱화는 천황을 호위하는 장수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천황 탱화 오른쪽에는 마을신인 선황 탱화도 걸려 있다. 현재의 두무치 천제당은 천신인 천황후토신과 동신인 원두호동의 골매기신을 함께 모시는 공간이지만, 원래는 이 마을에 천제당 외에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 등 4개의 신당이 따로 있었다. 4개의 신당이 별도로 있을 때 천제당은 이들 4개 신당의 상당(上堂)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무치 천제당은 포항 지역에서 천신의 위패와 탱화를 봉안한 유일한 사례다. 조선시대 천제당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흥해고을 원이 참여하여 지낸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흥해군수 주관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박창원 수필가 두무치 천제당 제의는 오랫동안 주민들이 직접 지내왔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와 제관 선정의 어려움 때문에 스님에게 위탁하면서 제의의 형식과 내용은 두무치 천제의 본래 모습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21세기 두무치 천제당 제의의 지속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제의는 9월 2일(음력) 새벽(0시)에 천제당에서 천황제와 선황제를 지낸 다음에 마을 축항으로 내려와 용왕제를 지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용왕제는 두호동 어민들의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인데, 이 역시 스님이 주제하고 있다. 따라서 두무치 천제단 제의는 천황제를 비롯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선황제,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등 3가지가 혼합된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2-23

다가오는 삼일절, 애국가를 다시 대한민국의 함성으로 만들자

칠곡군수로 취임한 후 한 행사장에서 애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입만 움직일 뿐,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광경은 비단 그 자리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의 체육대회, 기념식, 국가 행사에서도 애국가는 반주만 흐를 뿐, 정작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태극기가 걸리고, 국가가 연주되지만,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는 것에 점점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사라졌을까? 애국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민족의 숨결이며,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전쟁터에서, 월드컵 경기장에서,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리였다. 6·25전쟁 당시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도, 해외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 사이에서도 애국가는 우리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감옥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고, 군인들은 먼 타국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을 떠올렸다. 어려운 순간마다 애국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로 만드는 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애국가는 점점 형식적인 절차로만 남아가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바로. 애국가 제창….” 사회자의 안내가 들리면, 사람들은 입을 살짝 움직이며 따라 부른다. 애국가가 국가 행사에서도 명목상의 절차로만 남아 있는 현실은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엄숙한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애국가가 침묵 속에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부터 애국가를 힘껏 불렀다. 행사에 참석한 한 분이 “군수님 목소리는 다섯 명이 부르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칠곡군은 ‘애국가 크게 부르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할 때다. 애국가는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를 때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호국도시 칠곡군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애국가 합창단’을 결성해 젊은 공무원들이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선창하도록 했다. 공식 행사와 정례 조회에서 합창단이 애국가를 선창하면, 공무원과 주민들도 함께 따라 부르며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칠곡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애국가 부르기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온라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국민들이 애국가를 입만 방긋하며 소극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힘차게 제창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애국가는 알아야 하는 단순 의무가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SNS를 활용한 ‘애국가 힘차게 부르기 챌린지’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각자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면, 이를 공유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식이다. 참여자 중 우수한 영상을 선정해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영상 속에서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는 모습과 함께 칠곡군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으면 가산점이 부여된다. 젊은 세대가 이번 챌린지를 통해 애국가를 친숙하게 접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또 전국 지자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챌린지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애국가 부르기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닌, 국민이 함께하는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삼일절, 모두가 함께 애국가를 힘차게 불러 보자.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대한민국 전체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작은 실천이 모이면, 대한민국이 하나 되어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낼 때, 애국가는 더 이상 형식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이제 침묵을 깨고,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자. 삼일절, 온 국민이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의 하나 된 울림을 만들어 가자!

2025-02-23

산수이발관

이발관. /네이버 제공 가끔씩 그리운 곳이 있었다. 고교 시절 살던 집으로 여러 번 꿈에서도 나타났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언덕길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구멍가게 하나와 낮은 높이의 집 몇 채, 왼쪽으로는 이발관이, 언덕길 끝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 옆으로 난 세 갈래의 길 중에서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가다보면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꽤 넓은 마당이 있던 집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던 강아지를 키웠다. 하교 길에 사온 병아리도 가끔씩 삐약거리고 있었다. 화단에는 나팔꽃과 분꽃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잘 꾸며진 잔디가 있거나 조경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정감 가는 곳이었다. 밤에 마루에 누우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눈길을 사로잡던 곳. 별을 보며 막연히 목성을 여행하는 꿈도 꾸고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전설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글도 쓰곤 했다. 많은 것을 상상하며 꿈꾸던 시절이었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나 싶어 동생에게 물었다. 역시 그 집이 그립다고 했다. 우리 자매는 틈을 내어 그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왜 진작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서로를 탓하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서 기억 속의 그 언덕길을 올라갈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같이. 언덕길 중간 왼쪽 편에 이발관이 보였다. 어린 시절에 봤던 그 이름 그대로이다. 산수이발관. 몇 십 년의 시간이 훅 되돌려 감아졌다. 기대감이 들었다.오른쪽 편에 있던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그 자취도 남기지 않고 다 없어져버렸다. 언덕 위에 예전에 있었던 교회가 보였다. 기억 속의 모습이다. 비 오는 날 분홍색 우산을 들고 교회를 다니던 어린 소녀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우리가 살던 집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에서 눈을 돌린 순간 우리는 ‘아’하는 소리만 냈을 뿐이다. 기억 속의 골목은 사라지고 쭉 뻗은 길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갈 때는 둘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갔었다. 키우던 강아지 얘기, 피어있던 꽃들,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들을 주고 받으며 킥킥거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서로 얼굴만 가끔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 날 살던 곳을 갔다 온 다음부터 그 집에 대한 꿈을 다시는 꾸지 않는다. 재건축되어 정비된 깨끗한 아파트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나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이 몽땅 옮겨져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인들이 배워 익숙하게 쓰는 한국어 중에는 빨리빨리가 있다. 가전 AS도 빠르고 인터넷 설치나 배달이 세계적으로 알아 줄 정도의 빠름을 한국은 자랑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지금의 발전을 이루는데 작은 원동력도 되었다. 그만큼의 적극성과 부지런함, 추진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사동과 종로의 오래 된 곳을 찾아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방영되었다. 인사동의 백 년이 넘은 최초의 필방에서는 옛 선조들이 쓰던 대나무 벼루, 옥으로 된 이동용 벼루를 소개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오래 된 설렁탕집이 마지막으로 3대째 이어온 한의원이 소개되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옛것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한 시대의 작은 역사가 그 가게 안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문득 산수이발관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이용했었고, 많은 서민들이 이용하며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고여 있을 그곳. 대부분의 가게가 영어와 외국어를 섞어 쓰고 있는 요즘에 몇 십 년의 이름을 그대로 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발관의 뚝심을 배우고 싶다. 발전을 위한 빠른 변화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대를 넘어가며 그 자리를 지켜가는 그런 가게들에서 연륜과 지혜와 역사를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조만간 그 이발관을 다시 가보고 싶다. 어쩌면 아름다운 추억 한 토막이 다시 떠오를 것도 같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2-23

이철우 지사 ‘TK 적장자’ 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권 대선 주자들의 경쟁 구도가 드러나는 가운데,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긴급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며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보수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그는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회견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기자들은 사실상 대선주자로서 ‘보수적자’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자회견 후 각 여론조사기관에서도 이번 주말부터 실시되는 향후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이 지사를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의 기자회견문은 △사상누각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연성(軟性) 사상전 △시대과제 △국민의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 던져야 등의 소제목으로 구성됐지만, 핵심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가 반국가세력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현 탄핵정국을 대한민국 수호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충돌로 봤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은 계엄행위에 대한 적법성 판단이 아니라 반국가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힘이 조기대선이나 중도 확장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고 탄핵 심판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지론이다. 그는 반국가 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효순이·미선이 사건, 광우병, 사드 괴담, 제주해군기지 사건 등 이 모든 세력이 일치된 세력”이라고 했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민주당이 집회에 참석한 이 지사를 고발하겠다고 하자 온라인에는 다양한 SNS 계정(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이 개설되면서 ‘나도 고발해주세요(애국가)’라는 이름의 영상이 경쟁적으로 올라왔다. 이 지사가 집회에서 부른 고음(高音)의 애국가는 그 자체로도 화제가 됐다. 이 지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대선주자 반열에 이름이 올랐다. 이 지사가 대선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시각은 정치권에서 일찍이 있어 왔다. 도백으로 있으면서 한 행보도 자주 그런 쪽에 맞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미 대선을 사실상 출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여서 TK 두 수장이 동시에 뜻을 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 등으로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재선 경북도지사를 지낸 그는 누구보다 정치를 잘 알고 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도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보란 듯 뛰어들어 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온 그이기도 하다. 지금 국민의힘 유력주자들은 ‘명태균’이라는 덫에 걸려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이 지사의 19일 국회에서의 긴급기자회견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주 통화하며 소통했다. 용산 참모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사가 긴급기자회견을 한 배경에 용산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에 하나 대선이 치러진다면, 중도층 흡수 없이 보수만으로는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용산이 그 인물로 이 지사를 밀고 있다는 것이다. 올 가을 경주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도 이 지사에겐 기회다. 최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의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며 미국 측 대리인을 통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APEC 회의 참석을 희망하는 친서를 보내는 등 APEC를 발판삼아 역량을 발휘하며 인지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이 지사는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있으면서 굵직굵직한 많은 시책들이 내놓았고 상당 부분은 국가 의제에도 채택시켰다. 돌아보면 그 또한 큰 자산이고 힘이다. 국민의힘 텃밭은 대구 경북이다. 이 지사는 그곳에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광역단체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넓혀온 이 지사가 앞으로 대선정국이 펼쳐질 경우, 어떤 묘수를 낼지, 또 대구경북의 ‘적장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정치에디터겸 논설위원

2025-02-20

여행찬가

노병철수필가 다리 떨리는 나이엔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니 가슴 떨릴 때 길을 나서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명당 찾지 말고 살아서 좋은 곳을 다녀라.’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사람이 먼저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젊었을 땐 허락을 받는 척이라도 하더니 지금은 현지에서 문자 한 통으로 끝낸다. 어디 있으니 그리 알아라. 언제 들어갈지는 모른다는 내용이다. 집구석 엉망으로 돌아간다고 욕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난 이게 더 좋다. 나도 언제든지 여행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피차 서로 구속하면서 살 나이는 지났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중국과 수교도 되기 전에 여행을 갔다. 북경반점을 보고 짜장면집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반점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국해서 중국을 다 아는 체했다. 총무를 비서장이라고 하고 사장을 총경리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중국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중국 여자들이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 먹기 위해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찬부터 먹고 밥 먹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 것도 여행을 통해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기에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끝없는 평야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란 것을 설명할 수 없듯이 말이다. 글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하면 사고가 틀에 매이게 되고 연산하는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태라 했던 말만 계속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수필 작가이자 교수이고 외국물도 먹은 박사로 평생 교단에서 존경받고 살다가 퇴직 후 나름 자신의 지식을 통한 수준 있는 작품을 내놓으려 하다 식겁하고 자중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는 글,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전문 지식이 그것을 막는다고 한다. 장자 추수 편에 보면 시골 훈장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나온다. 자신이 배운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평생 한 우물을 팠다고 전문가 소리는 들을 지은 정 밖으로 나가면 개구리라는 소리를 피하지 못하게 되는 원리렷다. 여행을 통한 폭 넓은 경험만이 좋은 글을 내어놓을 수 있다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마사지라는 것을 거의 강제로 받는다. 그리고 장사치 앞에 앉아 물건 사기를 강요받는다. 싸게 여행 가려면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옵션을 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돈을 각출해 낸다. 이런 것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기 싫다는 사람을 봤다. 먹는 것이 입에 맞지 않고 향신료 때문이라면 어찌 말은 된다고 하지만, 가기 싫다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국 여행이 싫으면 국내 여행도 괜찮지 않은가. 여행을 구차한 핑계를 대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가 일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올해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2025-02-20

국제사회에서의 패싱 우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춘이 지난 지도 스무날이 되어가는데 날씨는 여전히 봄날이 되지못하고 있다. 봄날이 올까를 기다리지 말고 두툼한 옷 입고 감기도 조심해야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이면 3년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자기들의 땅 돈바스를 보호한다는 변명 아래 자신있게 밀어부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대 전쟁이 되어 이미 양측의 전사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우크라이나 주민 4만명도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미국은 약 5천억 불을 지원했고 유럽연합도 약 1400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러시아는 북한군의 지원을 받아 전투를 계속하고 있어서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은데 미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평화조약을 권고하며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구적 중립을 바라며 NATO 가입을 반대하고, 침공으로 장악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려는 의사를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그동안 원조를 아끼지 않은 EU를 배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안전이 보장되면 영토협정 등에도 긍정적이라 하지만 협정에서의 패싱은 아쉽다. 러시아는 그동안 국제 외톨이가 되었던 무대에서 복귀하는 듯하지만 유럽은 정상회담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미·러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전협정에 전쟁 당사국이 제외되는 것은 우리도 경험했었다. 7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38선을 3번이나 넘어다녔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이때도 유엔을 대표한 미국과 중국 북한 등 3개 국가만 서명했고 정작 피해국인 남한은 빠졌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권을 미국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한 탓이라고 하지만 약 120만명의 사상자를 낸 당사국으로 참여하지 못한 슬픔도 있다. 정전이냐 휴전이냐 논란도 있지만 약소국의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유엔군의 막강한 전투력에 힘이 빠져버린 중공군이 휴전선 긋기에 동의한 것이다. 나라는 강해야 한다. 트럼프의 고집으로 무역전쟁도 예고되고 있다. 관세 폭탄부터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에도 관세가 부과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전략에 속수무책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계엄과 탄핵으로 국가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듯 헐떡이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수감되어있고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은 궐석이고 육군참모총장도 없고 경찰청장도 탄핵 대상이며 감사원장도 없다. 나라가 이 꼴인데 국회는 야당 천지가 되어있고 얼어붙어 있던 미국과 러시아는 정상화되는 듯 리셋되고 있다. 바야흐로 관세전쟁이 시작되고 있어 철강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까지 몰아붙이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가 공백 상태이니 누가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 미국은 현지 투자를 유치하려는 전술이니 우리 기업들이 관세 폭탄에 몰려 그곳으로 가버리면 국내 산업은 어찌될 것인가?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인데 미·중·러 강국의 사이에서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코리아 패싱이 되지 않도록….

2025-02-20

탄핵선고 임박…與대선준비 ‘시간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면서 정치권이 조기 대선 분위기로 급변하고 있다. 여야 모두 ‘역풍’을 의식해 탄핵 선고가 나오기 전까지 본격적인 대선준비를 자제하고 있지만, 예비주자들은 사실상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탄핵심판 선고 후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기 때문에 예비후보 모두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저께(19일) 서울 여의도와 국회를 각각 찾았다. 홍 시장은 여의도에서 당 출입 기자들과 오찬을 한 후 SBS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방송인터뷰에서 “내일 당장 선거를 해도 준비가 다 돼 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지사는 국회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기 대선이 아닌 대통령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지난 8일 동대구역 탄핵반대 집회에서 부른 애국가는 SNS를 통해 ‘애국가 챌린지’ 바람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여권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천 출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선행보 모습을 보인다. 그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개혁 대토론회’에 참석해 “약자를 보살피는 것이 공직자 첫 번째 직분”이라며 출마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토론회에는 여당 의원 60여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옥죄는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헌재의 탄핵심판 일정으로 봐선, 윤 대통령 파면 인용시 조기대선은 4~5월 중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여권 대선 예비후보의 경우, 당내 경선을 고려하면 선거준비 시간이 지금 시작해도 빠듯하다. 민주당은 설 직후부터 이재명 최측근들로 구성된 ‘7인회’가 중심이 돼 이미 조기대선에 대비하고 있다. 사실상의 대선캠프다. 국민의힘이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 조기대선 언급조차 꺼린다면, 탄핵선고 이후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외연확장을 위한 경선룰 개정 준비작업 등을 할 필요가 있다.

2025-02-20

대구국제마라톤의 굴기

우정구 논설위원 뉴욕,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코, 도쿄 등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를 세계 6대 빅 대회로 손꼽는다. 그중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역사가 가장 깊어 마니아들이 많이 가고 싶어하는 대회다. 보스턴대회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다음해인 1897년 시작했다. 올헤가 128년째 되는 해다. 상금, 참가선수 규모 등에서도 최상급이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이 대회에는 국내외서 3만여 명의 마라토너가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서윤복, 함기웅, 이봉주 선수가 이 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한 바 있어 인연이 깊은 대회다. 영국 런던대회는 명품 코스로 유명하다. 템스강 주변과 웨스트민스터, 버킹엄 궁전 등 세계적 명소를 보고 달리는 코스다. 뉴욕 마라톤은 세계 각국에서 많이 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체험할 수 있는 대회로 정평 나 있다. “마라톤을 왜 하냐?”고 물으면 많은 이가 “자신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라톤 현장에는 “나를 위해 달린다”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대구국제마라톤이 23일 개최된다. 4만명이 넘는 마라토너가 신청해 역대급 대회가 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대구국제마라톤을 세계 7대 명품 마라톤 자리에 올리겠다고 한다. 우승 상금도 세계 최고로 걸었다. 기록만 잘 나오면 세계 최고 대회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최근 열리는 마라톤대회는 단순한 건강 대회가 아니다. 수많은 마니아가 만나 즐기고 의기를 투합하는 축제장이다. 대구마라톤이 세계 최고가 된다면 그것이 대구가 굴기하는 것이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0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가?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간이 아픈 분들이 꼭 진료를 받고 싶은 김정룡 의학박사가 계셨다. 오랜 연구 끝에 B형 간염백신을 개발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를 인증할 기준이 없어 보건복지부에서 인증 신청을 반려했다. 이후 1981년 프랑스와 미국이 B형 간염 백신을 인증하면서 한국은 세 번째로 B형 간염백신 개발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남들이 만든 기준을 따라하는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에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기준을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큰 바다를 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장자’ 천도 편에 수레바퀴 깎는 사람이야기가 나온다. 왕은 책을 읽고 윤 편은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 편은 당돌하게 왕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옛 성현들의 책을 읽고 있다.”“왕께서 읽고 있는 책은 조백(糟7CA8·술 찌꺼기) 일 뿐입니다.”“네, 이 놈, 무엄하도다.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면 큰 벌을 받을 줄 알아라.” “저는 평생을 수레바퀴만 깎고 살아왔습니다. 조금만 느슨하게 깎으면 헐렁해서 쓸 수가 없고, 조금만 빡빡하게 깎으면 들어가지 않아 쓸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제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기에, 어떻게 설명해줄 방법이 없어 아들에게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은 윤 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노여움을 풀었다. 우리는 종종 이념이나 이론에 얽매여 살아가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건들이다. 보편적 이념에 구속되지 않으면 주체적 사고를 할 수 있고, 독립성과 생명력을 갖게 된다. 또한, 단순히 다른 사람이 공부해 놓은 것을 읽기만 하는 것은 죽은 공부이며, 실제로는 읽고 쓰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배웠던 것을 습득하는 데만 길들여지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잊게 된다. 우리는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 배우기와 표현하기의 경계에 서야 한다. 기준의 수행자보다는 조그만 기준이라도 창조자가 되어야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야 눈빛에 야성이 돈다. 고정되면 죽는다. 죽은 나뭇잎 새는 흔들리지 않는다. 경계에 서서, 이 추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살아있다. 경북농정에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논에는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벼만 심어야 하는가? 콩도 심고 사과·포도도 심을 수 있다. 인생도 2모작에서 4모작까지 가능하다. 청송은 ‘산소 자치단체’로 불리며, 울진·영양과 함께 ‘반딧불 도시’로 ‘항 노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공공임대주택 대신 ‘산소 스마트’ 주택을 청년들이 살면서 갚을 수 있도록 공급하며,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빌리지를 조성하고 있다. 육아환경은 육아왕국인 일본 돗토리현 수준을 능가하며, 모든 분야에서 기준을 창조하겠다는 생각으로 할 일이 넘쳐난다. 동해안의 바다연안에 물고기들이 접근을 못하게 하는 시멘트 콘크리트 해벽을 포스코 철강 생산 부산물을 이용한 에코 콘크리트로 바꾸니 어민과 물고기, 고래가 모두 기뻐하고,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수입 요청이 쇄도하여 포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2025-02-20

지방 미분양 부양책…언 발 오줌누기 아닌가

정부가 지방의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LH를 통한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 매입 등의 지방건설 경기 보완책을 발표했으나 지방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당초 지역업계가 강력히 요구했던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 규제 완화가 빠지고, 양도세와 취득세 등과 같은 수요를 촉진할 정책들이 보이지 않아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할 거라는 반응이다. 물론 LH를 통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후 미분양 물량을 매입함으로써 자금난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있다. 하지만 지방의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모두 1만7000 가구에 이르고 있어 3000가구 규모의 매입으로 시장경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또 LH가 3000가구 중 대구와 경북에서 얼마 만큼의 물량을 매입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 지방의 사정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수요촉진을 위한 직접적 대책이 나와야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양도세·취득세 완화나 금융대출 지원이 바로 그것이다. 디딤돌 대출의 우대금리가 신설됐으나 이것 역시 간접적인 지원에 불과하다. 대구시는 그동안 지방 맞춤형 부동산 경기 진작책을 정부 측에 줄기차게 요구했다. 미분양 주택 매입과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한시적 세제완화 등을 요구했지만 미분양 주택 매입만이 이번 정책에 반영됐다. 그나마 지방만을 위한 정부정책이 나온 것은 다행스런 변화라 할 수 있다. 수년간 침체에 빠져있는 대구와 경북지방의 부동산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측면에서 시급한 문제다. 정부는 이번 조치 후 지방의 건설경기 변화를 잘 살펴보고 시의적절한 추가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지역 정치권에서도 논의가 됐던 DSR 규제 완화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미분양 증가 등 지금 지방은 오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역경제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비수도권에 대한 중앙정부의 과감한 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

2025-02-20

거짓말 사회

장규열 고문 법정은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곳이다. 판사는 증거와 법리를 바탕으로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며, 드러난 거짓과 진실을 토대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오늘날 법정에서 거짓말이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피고인과 증인뿐 아니라, 심지어 법정에 선 공직자들이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공직사회에 대한 믿음을 훼손하고 급기야는 국민들 사이의 관계마저 흔들리게 한다. ‘나쁜 사람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통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밝혀지는 것은 범죄자의 진실이어야 한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일삼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무기력감마저 느낀다.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지면, 사회 전체는 도덕적 타락과 윤리적 일탈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거짓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바로 ‘다음세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실과 정직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현실에서 거짓말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본다면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까. 최고위 공직자들조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을 일삼고,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사람은 들은대로 배우기보다 보는대로 배운다. 결국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는 왜곡된 사회적 타락을 배우고 말 터이다. 사회적 진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려면, 우리는 거짓말 문제에 대해 사회적 각성에 이르러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 구조적으로 용인되는 문화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정직한 사람이 보호받으며 거짓말이 철저하게 배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공직자들에게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어야 한다. 공직사회의 거짓말을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해악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만연하고 진실이 손해보는 현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고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적 관심과 집단지성에 기초한 행동이다. 거짓말이 성공의 수단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질서와 사회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철저하게 징벌하며 진실의 가치를 되새기는 사회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는 탈진실의 허위를 각성하고 거짓말을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진실과 성실의 힘을 새롭게 강조하여 대한민국이 더이상 부끄러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 공직사회에는 거짓말이 절대로 통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진실에 기초한 행정행위가 공직자윤리의 기초임을 확인해야 한다. 나라의 기반이 거짓말로 흔들리는 일을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지경이다.

2025-02-19

벼랑 끝 몰린 철강산업…정부 특단대책 나와야

포항지역 주력산업인 철강이 벼랑 끝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국정부의 철강제품에 대한 25% 관세부과로 수출 전망이 어두워진 가운데 국내적으로 저가의 중국산 철강이 대량으로 밀려와 사실상 사면초가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릴만큼 산업분야의 핵심 소재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앞다퉈 기간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공급물량이 과잉이다. 더욱이 트럼프 정부처럼 보호주의 장벽이 글로벌 시장에서 확산된다면 국내 철강산업의 장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저가의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시장 침투는 국내 철강업 생존에 치명적이다. 본사가 무역협회 수출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중국산 철강의 수입 의존도는 날로 커지고 있다. 작년 처음으로 전체 수입물량의 절반을 넘었다. 1990년 국내 철강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던 비중은 겨우 4.6%였다. 그러나 작년에는 51.5%로 늘었다. 이는 중국이 철강 생산을 늘리면서 저가로 국내 시장에 파고든 때문인데, 수입단가도 수입국 중 가장 낮다. 문제는 미국이 철강에 관세를 매기면서 수출 길이 막힌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으로 더 낮은 가격으로 밀려올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경우 국내 철강업계의 가격 경쟁력은 더 떨어지고 시장은 교란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포항의 경제는 포스코 중심의 철강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철강산업 의존도가 큰 광양과 당진도 비슷한 처지다. 포항 등 3개 도시 단체장이 철강산업 위기에 공동대응키로 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현재로선 뾰쪽한 대책도 없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김정재 국회의원이 산업부 등 정부 부처에 포항을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국내적으로 기업을 보호하는 조치가 서둘러 마련돼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정부가 무역 협상력을 잘 발휘해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국내 철강산업은 앞으로 세계적 과잉생산과 보호무역주의, 탄소중립전환 요구 등 큰 도전에 직면한다. 중국 저가 공세를 포함한 모든 난제를 푸는데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 해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2025-02-19

갈수록 일본에 밀리는 한국 관광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서울과 제주도는 분명 매력적인 관광지다. 하지만, 재방문 의사를 묻는다면 글쎄...”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말끝을 흐린다. 치안이 좋고 거리는 깨끗하지만,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음식 가격과 높은 숙박비가 부담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 최근 ‘계엄 사태’에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이 관광업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 제주관광협회는 2월 1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2%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서울 여행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의 평가도 박하다. 한 숙박 플랫폼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여행자들의 숙소 평점은 서울이 4.31점, 일본 도쿄는 4.48점이었다. 서비스, 시설, 위생 분야에서 일본에 밀린 것. 관광업계가 원하는 건 여행자의 재방문이다. 한 도시를 다시 찾는다는 건 거기서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듯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은 2019년 58.3%에서 2023년엔 56.1%로 감소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비슷한 비용이라면 한국보다 일본 여행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걸 증명하듯 해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재방문도 잦다. 최근 일본관광청은 지난 12월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 수가 86만7400명으로 이전 역대 최고치를 뛰어넘었다고 전했다. 작년 한 해에만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이 882만명에 이른다. 일본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4에 달하는 숫자다. 갈수록 일본에 밀리는 한국 관광.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 시급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9

망가지는 의료시스템…이게 의료개혁인가

의정갈등이 1년간 지속되면서 대구권 상급종합병원(수련병원) 의사수가 급격하게 줄고, 적자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대구권 수련병원 5곳(경북대·계명대동산·영남대·대가대·칠곡 경대)의 의사 수는 2023년 12월 1843명이었지만, 지난해 연말에는 1102명으로 40.2% 감소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사직이 주요 원인이다. 전공의 공백으로 진료가 줄어들면서, 수련병원의 적자도 심각하다.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최근 전국 11개 국립대병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손실액은 5663억여 원으로 의정갈등 전인 2023년보다 2배(98.9%)가량 증가했다. 손실액이 가장 큰 병원은 서울대병원(약 1106억원)이었고, 다음이 경북대병원(약 1040억원) 이었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이탈 후 수술규모와 병상가동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개학이 임박한 이달말까지 의정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병원경영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증원 규모를 각 대학이 자율결정하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의정갈등에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다. 대학입장에서 보면 의대정원 규모는 학교위상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집정원을 늘리려 할 것이고, 이게 현실화하면 앞으로 의대교수까지 전공의와 함께 집단대응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요즘 정부태도를 보면, 의료위기 사태가 1년이 됐지만 모든 의료시스템이 정상가동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의료시스템은 현재 내부적으로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 지금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대교수들은 밤새 당직을 서면서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수술하거나 외래진료를 해야 해 지쳐 있다. 최근에는 의대교수들도 대거 사직하면서, 대부분 수련병원은 부분적으로 돌아가는 진료행위 외엔 모두 파행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올해도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을 경우, 의료공백사태가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5-02-19

여행 준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행 짐 싸기가 어려운 게 아니다. 미리미리 메모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챙겨 바구니에 던져두면 된다. 갈아입을 옷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가 챙겨 넣어둔다. 떠나기 전날 종류별로 파우치에 넣어 큰 가방에 넣는 일쯤이야 뭐 그리 힘들 일도 없다. 여행 준비보다 나의 부재에 대비한 준비가 더 많다. 곰탕 끓이는 정도는 아니다. 여행 일수 만큼 남편의 아침식사로 야채샐러드, 두유, 찐계란을 밀프랩해서 냉장고에 가지런히 넣어 두면 된다. 원래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혼자서도 잘 사 먹는 좋은 습관이 있는 남편이다. 평소에도 하루 한 끼의 아침 준비로 참 수월하긴 한 편이니, 구태여 신경 쓰는 것은 내 최소한의 정성을 표하는 셈이긴 하다. 집안 청소도 중요한 여행 준비 중의 하나다. 나의 빈자리에서 발견될 허술한 구석이 걱정되기도 해서 남편의 행동반경 외의 안방과 주방, 앞뒤 베란다 등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꼼꼼히 쓸고 닦는다. 청소를 미리 당겨서 한다는 심정으로 정리하니 이게 여행 준비가 맞나 갸우뚱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여행이든 최종정착지는 집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요, 가출일 거다. 내가 돌아왔을 때 말쑥한 집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 사이 남편이 많이 어질러도 어쩌랴마는…. 여행 준비의 오랜 습관 중 하나는 손톱 정리다. 손톱에 이런저런 색으로 입히는 것을 매니큐어-잘못된 영어라고 했다-라고 했다. 요즘은 네일 케어라고 하던데, 뭐 둘 다 영어식 표현이라 좋은 우리말로 순화하면 좋겠다 싶긴 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 때 손톱에 빨간 봉숭아꽃물을 들인 채로 개학해서 학교 갔다가 그 도발적인 빨간색에 지레 부끄러워 손가락을 오므려 못 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엔 매니큐어를 미용실에서 했다. 미용실 바구니엔 오만가지 색의 매니큐어가 그득하니 넘쳤다. 장난 같이 발라보기도 하다가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플라스틱 대야에 비눗물을 따끈하게 데워줬다. 그 물에 손가락을 담가 손톱을 불린 뒤에 큐티클을 제거하곤 했다. 빨간 손톱칠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가끔씩 일면 방학을 기다렸다. 수업이 없으니 어떠랴 싶었다. 한 해 여름, 빨갛고 뾰족한 긴 손톱으로 학교엘 갔다가 정교님을 만나 교수답지 않다며 힐책을 들은 적이 있어, 다시는 하지 않았다. 다만 퇴직하고 나면 내 맘대로 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마냥 하지는 않았다. 며느리가 어버이날 선물로 네일아트를 예약해 주어 으리번쩍한 손톱으로 호사를 한 기억 정도. 다만 여행 계획이 잡히면 왠지 손톱 정리를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여행이 많은 해는 제법 오랫동안 손톱이 화려했다. 지난 달 베트남여행 때는 며느리가 권해 쨍하게 붉은 와인색으로 도발했다. 한 달 남짓 되었고, 와인색 손톱이 반 이상 남아있지만 또 다른 여행이니까 다시 손질해야지. 이번엔 점잖은 색으로 골랐다. 올리브색이라고 하는데, 손녀는 아보카도 같다고 한다. 여행이 일상의 일탈이듯 손톱을 꾸미는 게 내겐 가벼운 일탈인 듯하다. 손톱정리가 나의 여행 준비요 시작이다.

2025-02-19

마음이 튼튼한 아이 키우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신체적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인 발달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 정서적 안정을 돕는 첫걸음이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아이가 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애착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부모가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감정 표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따뜻한 스킨십과 눈맞춤 칭찬은 자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 조절 능력은 아이가 좌절감을 줄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이름 붙여 주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속상했구나’라고 말해 주면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 그리기나 역할 놀이를 통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충동을 조절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기다리는 연습을 하도록 유도하고 규칙을 정해 지키게 함으로써 자기조절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자기조절을 잘했을 때 칭찬하면 긍정적인 행동이 강화된다. 사회성 발달은 또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협력과 배려 타협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와의 갈등 해결법을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친구가 속상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결과보다는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는 행동은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놀이 시간과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기회를 제공하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스트레스 지수도 감소시키니 시간이 나면 야외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 부모가 완벽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실수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빨리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하면 아이도 심리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애착 관계 형성과 감정 조절, 스트레스 관리, 부모의 양육 태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면 더욱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아이는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2025-02-19

민주교사 정영상

민주교사 정영상은 잠결에 웃으며 심장마비로 죽었다 모든 죽음이 마찬가지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내려 단양으로 총알택시를 갈아타고 정영상의 죽음을 확인하러 갈 때 어둠은 아늑하게 우리의 삶을 확인해 주었다 젠장,산다는 것이 눈물 한 방울로 정점을 찍어 살아갈 목표를 확인시킨다는 것 그 무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관(棺)을 부여잡고 운들 무엇하리 살아 죄 한 점 없었던 사람이 어린 아들 딸 남겨 놓고, 마누라만 남겨 놓고 그렇게 간 죄가 많은 사람이 되어 떠났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유도 없이 분노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나는 멀쩡히 소주를 마시며 먼 월악산을 보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마음이 저승에 닿아 강물로 흐르면서, 그가 굵은 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 그러나 그 감촉은 가을비보다 혹독했다 상(賞)보다 벌(罰)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정영상은 결코 죽지 않았다. 정영상은 연일읍 출신으로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안동 복주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투쟁 중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했다. 내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임용대기 중이던 형은 자전거 뒤에 도시락을 묶어 화실로 출근하여 나와 자주 놀았다. 도시락과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큰 자양분이 되었다. 털털거리는 그 자전거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19

어머님의 막걸리

윤명희 수필가 구순의 어머님이 차례 준비로 비좁은 주방을 이리 저리 뒤지신다. 혼잣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뭘 찾으시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형님이 다용도실에서 막걸리를 들고 나온다. 어제 어머님이 직접 사오셨다고 한다. 당신 걸음으로는 한참 가야 할 거리다. 빈 쟁반을 들고 들어오던 조카와 떡국의 꾸미를 챙기던 나는 아침부터 술을 찾는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설한 차례 상은 떡국만 올리면 된다. 제주로 올릴 청주병도 상 앞에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막걸리를 들고 나오시는 통에 식구들의 눈이 그곳에 모였다. 한복을 곱게 입은 터라 행여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질까 불안한 눈치들이다. ‘음복주 마실 텐데 막걸리는 왜 들고 오시지?’ 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어머님은 조상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엉거주춤 바닥에 앉아, 손수 청주를 비우고 막걸리를 붓는다.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하시는 것을 아는 손자가 곁에 섰다. 침대에서 소파로 식탁의자로 옮겨 앉는 일이 전부인 어머님이 손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절을 두 번 하고 일어섰다. “어매 아배요, 우리 장손 장가 좀 보내주소. 영감은 거기서 뭐 하니껴” 참았던 소원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조상님께 올리는 막걸리가 효험이 있을 거라 믿으시는 듯 했다. 차례 상 앞이 조용해졌다. 나는 곁눈질로 장본인인 조카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같은 처지인 우리 아들을 끌어넣는다. 사촌형이 던진 장가라는 공을 얼떨결에 받은 아들이 넙죽 엎드렸다. “아이고 조상님, 할매가 부탁까지 했는데 손자들이 장가 못가면 조상님 탓입니데이” 아들의 너스레에 한바탕 웃음으로 계면쩍은 순간을 넘겼다. 차례 상을 물리고 세배를 한다. 절을 한 손자들이 할머니께 증손자 대신 얇은 봉투를 내민다. 떡국을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이제는 두 집 식구 모여 봐야 예전 큰댁 식구보다 적다. 시집간 딸네들의 빈자리는 떡국 먹는 소리만이 채우고 있다. 그때의 설날은 집안이 아이들로 왁자했다. 가래떡을 썰고, 강정을 만들었다. 조카들의 손까지 빌려 한 광주리나 되는 콩나물을 다듬고, 몇 시간동안 전을 부쳤다. 친척들을 맞이하는 인사가 연이었고, 방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만큼 주방은 상차리기에 바빴다. 차례상 앞은 흰 두루마기 차림의 어른들과 양복차림의 젊은이들로 그득했다. 맨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은 잠시 후에 받을 세뱃돈 생각에 마냥 신났다. 거실에 빙 둘러 앉아 윷놀이 판을 벌렸다. 바닥에 발을 구르며 도야, 도야 호부랑 도야를 외치며 흥을 돋우는 팀과, 모가 나오기를 두 손 모아 염원하는 팀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공중을 휘돌아 치며 바닥에 떨어지는 윷가락이 판세를 뒤집으면, 와아 함성 소리와 함께 시아버님의 어깨가 들썩였고 큰며느리인 형님도 춤을 추었다. 서른 명도 넘는 친척들과 함께 했던 그날들이 꿈결인 듯 아스라하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 식구는 설날 아침에 큰댁에 간다. 간단히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는다. 상을 마주하고 앉아 하는 이야기가 길지 않다. 설거지를 끝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소파에 앉는다. 차를 마시며 멀거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몇 번이나 재방송한 드라마의 대사까지 외우다시피 하는 어머님은 장면마다 설명을 덧붙인다. 사촌형과 몇 마디 나누던 아들은 할머니 방에서 자고, 남편은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 형님이 윷가락을 가지고 나온다. 해 지난 달력의 뒷면에 윷판을 그리지만, 아무도 다가앉는 이가 없다. 나는 슬그머니 그 앞에 앉아 윷가락을 만져본다. 아버님이 만드신 싸리 윷이 손안에 착 붙는다. 어깨위로 높이 던져본다. 바닥에 먼저 떨어진 세 가락이 엎어지고, 뒤늦게 떨어진 한 개가 흰 배를 내 보인다. 한 귀퉁이가 배꼽마냥 까맣게 칠해져 있다. 왔던 길로 뒤돌아 가라는 뒷도다. 오래 묵은 윷가락도 어머님의 화양연화였던 그때가 그리운가 보다. 졸던 남편이 집에 가자며 옷을 주섬주섬 걸친다. 나는 형님이 챙겨 주는 음식들을 받아들고 마지못한 듯이 뒤를 따라 나선다. 설날 하루가 길다. 우리는 남은 시간 앞에서 잠시 허둥거린다.

2025-02-19

국립경국대학교 출범 즈음하여-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신학기 3월이면 예천에 자리 잡고 있는 경북도립대학교가 국립경국대학교로 새롭게 출범한다. 국가의 글로컬 30 정책에 따른 국립안동대학교와 통합을 추진한 결과이다. 2023년 3월에 통합논의가 시작되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통합 승인을 받아 만 2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이러한 성과는 그간 경북도립대학교의 혁신과 변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대학을 비롯한 지방소재 대학은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의 감소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소멸의 여파로 대학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맞춰 대학교육체제 전반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왔다. 이에 따라 우리 경북도립대학교는 선제적 대응의 방안으로 정부의 ‘글로컬 대학 30 정책’에 따라 국립 안동대학교와 전국 최초 국·공립대학 통합을 통해 지방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양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여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양 대학의 통합을 추진하였으며, 2023년 11월 ‘글로컬대학 30’사업에 선정되었다. 이후 세부적인 통합 방안을 마련하여 새롭게 새출발하는 것이다. 국립경국대학교는 지역정책, 산업적 특성 및 수요를 반영한 캠퍼스별 특성화 분야를 도출해 안동캠퍼스는 인문·ICT, 그린바이오, 백신분야를 예천캠퍼스는 공공수요분야를 특성화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예천캠퍼스에는 공공수요인재대학과 행정경영대학원을 중심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원, 지역이 필요로 하는 해외 인력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경북글로벌 한글학교, 경북도 소속 연구기관 협업을 통해 지역의 발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게 될 K-ER센터, 그리고 도서관 등을 공공부총장과 행정지원본부를 두고 운영하게 된다. 공공수요인재대학에는 동물생명공학과(기존 축산학과), 모빌리티디자인공학과(기존 자동차과), 응급구조학, 소방방재학과의 4개 학과가 지역의 공공수요에 기반하여 인재를 양성하게 될 것이다. 예천캠퍼스는 경북도립대 총장이 공공부총장을 맡아 책임 운영을 하여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통합취지에 맞는 특성화를 추진한다. 경북도립대학교라는 명칭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경북도립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은 국립경국대학교 예천캠퍼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간 경북도립대학교는 농촌지역 교육양극화 해소를 위해 1997년 개교이래 약 1만여 명의 동문 들이 있다.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랑스럽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북도립대학교는 그간 저렴한 등록금과 풍부한 장학혜택을 통해 공교육을 실현하고, 또한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지역의 명문대학으로 자리해 왔다.  그간 경북도립대학교 예천, 안동, 영주 등 경북북부지역 중심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여 왔다고 자부한다.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제공과 평생교육 실시, 대학시설의 개방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호발전해 왔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 주민들이 참여하는 평생교육 중심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경국대학교에서도 지속하도록 지켜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특히 예천의 발전을 견인하는 지역대학으로서의 새로운 역할도 만들어 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다양한 아젠다를 창출하여 토론하고 논의하는 협력 거버넌스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또한, 대학이 가진 다양한 재능기부, 시설개방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는 대학을 아껴주고 대학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지역대학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제 큰 꿈을 가지고 통합 국립경국대학교가 첫 발걸음을 디디려 한다. 예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천 출신의 경북도립대 총장으로서 예천의 경북도립대학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새로운 탄생이라는 것을 예천군민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국립경국대학교는 경북도립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갈 것이며, 예천군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한편으로 국립경국대학교가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 예천군민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사랑이 꼭 필요하니 많이 도와달라는 말씀도 함께 드린다. 경국대학교는 예천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그래서 예천군민과 함께하고 예천군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2025-02-19

광주에서 연출된 ‘이데올로기 양극화’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지난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는 우리나라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전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5·18 현장인 금남로에서는 지난 15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경찰은 기동대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양측의 충돌을 막았다.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보수·진보 집회가 동시에 열린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 집회는 큰 사고없이 끝났지만, 정치인들의 무차별적인 언어공격은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마디마디가 살벌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탄핵반대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전두환의 불법 계엄으로 계엄군 총칼에 수천 명이 죽고 다친 광주로 찾아가 불법 계엄 옹호 시위를 벌이는 그들이 사람인가”라며 탄핵반대 군중을 싸잡아 공격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계엄을 옹호한 극우 집회는 주력이 광주시민이 아닌 외지인 집회, 떴다방 버스 동원 집회”라고 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그저께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5·18을 왜곡, 폄훼하는 극우 사이비 세력에 대해 당 차원에서 법적(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위반혐의)인 조치를 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탄핵 찬·반집회에 참석한 국민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나라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군중을 싸잡아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극단적인 비난을 하거나, 법적조치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이념을 대표하는 도시인 대구와 광주는 해마다 GRDP(지역내 총생산)를 발표할 때면 나란히 꼴찌 성적표를 받으며 경제적인 소외의식을 공유해왔다. 이 때문에 행정기관끼리는 ‘달빛 동맹’을 맺어 우의도 다지고 수도권에 대해 투쟁도 하고 있다. 대구시장은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 광주시장은 2·28민주운동 행사에 매년 꼭꼭 참석하면서 양 도시의 정체성을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거친 언어를 남발하며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정국이 점점 극단화로 치달으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일상화되는 추세다.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는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현수막으로 얼룩져 있다. 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정치권이 사생결단식의 이념대결을 펼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견디기 어려운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권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은 자기와 이데올로기가 다른 상대까지도 감싸 안는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한다.

2025-02-18

美 대통령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 날짜로 이달 17일은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날이다. 미국의 대통령 날은 매년 2월의 세 번째 월요일이다. 대통령 날을 정해 놓고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미국에서는 이날을 휴일로 정하고 학교 등 대부분의 기관들은 쉰다. 원래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2월 22일을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 날을 제정했으나 1968년부터 모든 대통령을 기리는 날로 바꾸었다. 이날은 대통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학교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워싱턴, 링컨과 같은 훌륭한 대통령에 대한 역사 공부도 진행한다. 또 사람들은 워싱턴 D.C 국립대통령 기념비를 방문하기도 하고 주에 따라서는 역대 대통령 퍼레이드도 펼친다. 미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있어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가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될지는 세계적 관심거리다. 미국 의회가 대통령의 날을 정한 것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추모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정해 놓고 보니 그 이상의 가치가 생겨나고 있다. 국민이 미국의 역사를 익히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가적 성찰 기회도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이가 국민적 존경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미국 국민이 40여 명의 역대 대통령을 함께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의 날을 가진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에게도 대통령의 날을 가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18

경북 지방정부협력체, 분권협력 새모델 되길

경북도지사와 경북도내 시장 군수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정책 최고 협의체인 경북 지방정부협력회의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족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도내 22개 시군 단체장은 17일 모임을 갖고 경북 지방정부협력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협약서에 서명하고, 제1회 경상북도 지방정부 협력회의를 개최했다. 지방정부 협력회의는 기존의 시도지사협의회나 시장군수협의회 등과는 다르다. 광역과 기초가 수평적 관계 속에 지방의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성과도 공유하는 모임이다. 이를테면 균형발전, 국책사업, 국제행사, 지방소멸 등 지방과 관련한 주요 정책을 경북도와 시군이 입안단계에서 설정 및 후속 조치에 이르기까지 협의하고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도지사와 시장군수협의회장은 공동의장을 맡는다. 이와 관련,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시장군수협의회와 공동 구성한 지방정부협력회의는 지방정책 최고 심의.합의체 기구”라고 밝히고 “새로운 지방분권 협력모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한 지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전국 자치단체들이 수많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중앙의 예속을 못 벗어나고 있다. 지방정책의 대부분이 중앙정부에서 결정되고 예산도 중앙정부가 주는 대로 받아 쓰는 게 현실이다. 지방자치란 지방 사정에 밝은 지방정부가 지역실정에 맞게 세금을 거두고 이를 재원으로 적재적소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권한과 예산이 중앙에 집중된 지금과 같은 구조 아래서는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지방분권을 위한 입법조치를 수도 없이 요구했지만 중앙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실현되지 못했다. 중앙정부는 오히려 협의, 조정, 심사 등의 명목으로 자치권 행사를 막고 있다. 경북의 지방정부협력체는 도와 시군이 수평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지역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행사하는 새로운 분권협력의 틀을 지향하고 있다. 온전한 지방자치와 분권을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꿈과 의지가 담긴 협의체다. 이번 협의회 출발이 지방분권을 앞당기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5-02-18

여야협치로 에너지3법 처리…경북 ‘대환영’

국회가 지난 17일 산자위 소위를 열고 ‘에너지 3법’(해상풍력특별법·전력망확충법·고준위방폐장법)을 합의처리했다. 경북지역의 오랜 현안이기도 했던 에너지 3법은 빠르면 이달 중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해상풍력특별법은 정부가 입지를 선정해 주고 인허가를 단축해 주는 내용이다. 현재 포항시는 산자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2026년 말까지 75억8500만원을 투입해 남구 구룡포읍·장기면, 북구 흥해읍·청하면·송라면 앞바다에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한 민간사업자도 영일만항 인근에 96M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복잡한 인허가와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금융·세제혜택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전력망 확충법은 정부가 송배전망 확충을 지원해 전력 생산을 돕는 게 핵심이다. 많은 양의 전력을 사용하는 AI산업을 뒷받침하자는 취지다.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산업이 몰려있는 포항으로선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고준위방폐장법은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저장·관리하는 시설을 만드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가동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최근까지 약 1만9000t의 해당 폐기물을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울진 한울원전은 2031년, 경주 월성원전은 2037년, 신월성원전은 2042년에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법안처리를 한 것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이번에 상임위 소위에서 통과된 법안들은 모두 산업현장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계엄정국에 묻혀 있던 국회가 잠시나마 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꽉 막혔던 민생 물꼬가 조금이나마 트이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국회가 민생을 위한 ‘협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여야 모두 노력해야 한다.

2025-02-18

볼거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 남원 교룡산성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한때 88고속도로라 불렸다. 그 광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남원IC 인근에 있는 산으로 남원의 진산인 교룡산과 교룡산성이다. 두 개의 뿔로 형성된 산자락에는 교룡산성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안쪽은 상당히 아늑한 느낌이다. 그 한 가운데에 ‘선국사(善國寺)’라는 절이 위치한다. 교룡산성은 백제가 신라와 대적하려고 쌓았던 삼국시대의 성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고려 말에는 이성계가 왜구를 맞아 전열을 정비한 장소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 휴정대사의 제자이면서 호남의 승병을 이끌며 이치대첩, 독산성 전투, 행주대첩 때 맹활약한 뇌묵 처영(雷默 處英)이 교룡산성을 크게 수축(修築)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경주 용담정에서 도를 깨우치고 교룡산성으로 숨어들어 사찰의 방 하나에 8개월 동안 피신 수양하며 동학의 교리를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룡산성으로 올라선다. 길옆에는 동학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학성지 남원’이라 쓰인 조형물이 보인다. 가파른 길로 조금 올라서면 이내 교룡산성이다.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여러 개 감싸며 축성한 교룡산성은 그 길이가 무려 3킬로다. 산성이 번성하였을 때 우물이 99개였고, 무기고까지 있었다. 동서남북 4대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문이었던 홍예문만 남아 그 흔적을 대변하고 있다. 그 홍예문 입구 좌측에 ‘김개남 동학농민 주둔지’라는 하얀 나무말뚝이 서 있다. 동학농민군 2차 봉기 때 그는 공주로 진격하는 전봉준을 따르지 않고 청주를 향해 진격하다 패하여, 태인에서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체포되어 전주로 이송되었다. 대의를 잃어버린 그의 야욕이 빚은 오판 탓으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하여 2만여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위민’이란 백성을 위하는 일이다. 평소 사람들의 목숨을 아끼고 양반들과 관리자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랬던 전봉준과는 달리 김개남은 양반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받은 두려움의 대상자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영주, 동학의 후천개벽을 알게 되면서 남쪽 세상을 열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김개남(金開南)으로 고쳤다. 결단이 빠르고 과감한 추진력에, 활화산 같은 폭발성은 그의 가장 큰 매력이었으나 그것이 그의 한계이기도 했다. 권위에 대한 강한 애착과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질투와 시기심이 그 원인이었다. 고종의 지시로 내탕금을 전하러 내려온 선전관의 목을 베고, 2차 봉기 후 북상하는 도중에 남원 부사 이용헌과 그의 수행원 2명도 함께 참수했다. 고부군수 양성환은 그에게 붙잡혀 호되게 매질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열 손가락에 대못이 박히고, 소나무 서까래로 빙 둘러서 엮은 달구지 위에 태워졌다. 그러고도 불안했는지 짚둥우리를 서까래 위에 덮어씌웠다. 절대 탈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한 것이다. 재판 절차도 생략되었다. 붙잡힌 지 이틀 만에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목이 베어졌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에 대한 양반들과 관리자들의 원한과 두려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교룡산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홍예문은, 기역(ㄱ)자형의 옹성으로 둘러쌓았으며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이다. 외부에서 성문을 보면 외부에 쌓은 작은 옹성(甕城)으로 인해 그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측면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았고 그 위의 둥근 부분은 아홉 개의 돌을 쌓아 예술과 과학이 숨어 있는 아치형으로 맞추었다. 현재 전북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홍예문을 통과하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직도 교룡산성 안에는 민가가 몇 채가 남아 있다. 선국사로 바로 오르려다가 성의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교룡산성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교룡산의 두 봉우리인 남쪽의 복덕봉(福德峯)과 주봉인 밀덕봉(密德峯)을 오르기 위해서다. 복덕봉에 오르면 발아래로 대구와 광주를 이어주는 광대고속도로와 남원 시내가 발아래로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정령치와 바래봉, 덕두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고남산, 만행산 등도 시원한 조망으로 구분된다. 현재 통신 탑이 세워져 있는 주봉인 밀덕봉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칠백여 미터를 돌거나, 선국사에서 삼백여 미터를 뒤쪽으로 오르면 ‘은적암’ 터다. 일명 ‘덕밀암’ 터로 불리는데 동학에서는 은적암, 불교에서는 덕밀암이라고 한다. 최제우가 수도하면서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을 집필했던 곳으로,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스님이 출가했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장소의 의미는 어디로 가고,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작은 팻말 하나만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삼백여 미터를 더 내려서면 선국사다. 평상시는 불법을 수행하는 도량이지만 전시에는 방어진지 역할을 하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전략적 요충지다. 지홍석 수필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순조 2년에 다시 지었다는 대웅전에는 2017년 7월 13일 국가지정 보물 제1517호로 지정된 건칠아미타여래좌상(乾漆阿彌陀如來坐像)과 지방민속자료 5호로 지정된 큰 북이 보관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인장인 ‘교룡산성승장동인’은 이번 기행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선국사에서 이백여 미터를 내려서면 처음 탐방을 시작했던 홍예문과 동학공원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탐방을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복덕봉과 밀덕봉, 은적암터를 지나 선국사를 두루 돌아보는데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남원 교룡산성은 영남지방에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 1만여 명이 산화한 성지로, 최근 만인의총(萬人義塚)을 만들어 성역화 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을 찾아들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지홍석 수필가

2025-02-18

‘가치 더하기’ 열린 조직문화로 가는 길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열린 조직문화(Open Organization Culture)는 조직 내에서 수평적 소통과 협업이 강조되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여 혁신과 창의성이 장려되는 문화를 말한다. 조직 내 위계질서보다는 유연성과 투명성이 중시되며 직원들의 참여와 자율성이 강조된다. 열린 조직 변화는 거창한 이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공감하고 생각이 모아지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가령,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하는 ‘가치 더 하기’, 개인화가 특징인 MZ세대에 우리로 변화를 주는 ‘같이 한데이’, 한밤중 돌발이 걸리는 ‘정비인의 저녁이 있는 삶’ 등 현상에 대한 변화의 모티브를 주는 키워드(Key Word)이면 열린 조직문화로 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열린 조직문화로 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수평적 의사소통 강화이다. 직급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경영진이 직접 직원들과 소통하는 ‘타운홀 미팅’ 도입이다. 둘째, 투명한 정보 공유이다. 경영진이 회사의 비전, 목표, 주요 의사결정을 공유하고,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블로그, 학습동아리 등)를 활용하여 정보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셋째, 유연한 근무 환경 조성이다. 자율과 책임을 원칙으로 한 시간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자율 좌석제, 특정일 자율 드레스 코드 적용 등이다. 넷째, 피드백 문화 정착이다.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1대1 미팅, 다면 평가 시행과 성과 평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창의성과 혁신 장려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형성하고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등을 통해 직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이다. 선진기업 열린 조직문화 사례를 보면, 구글(Google)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20% 룰’(업무 시간의 20%를 창의적인 생각 갖기) 도입과 경영진과 직원이 직접 소통하는 ‘TGIF(Thank God It’s Friday)’ 미팅 운영이다. 넷플릭스(Netflix)는 유연한 근무 환경조성, 성과중심 문화 정착과 근속 연수가 아닌 기여도에 따른 보상체계 운영이다. 금년부터 컨설팅이 시작된 포스코스틸리온은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꿈을 가지고 열린 조직문화를 조성하려 한다. 직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주어 가치를 창출하고 보람과 행복을 주는 ‘가치 더하기’ 활동이 본격 시작된다. 예컨대 생산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장애가 없는 라인과 좋은 제품을 만들고, 기술개발팀은 창의적 사고로 생각을 더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꽃무늬 컬러 강판을 개발하고, CEO와 임원은 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꿈을 실현하는 데 지원을 더하는 것이다. 컬러 강판 국내 으뜸은 물론 품질과 기업문화 면에서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거듭난다면 직원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을 이루는 행복한 일터가 될 것이다. 조직 문화는 직원이 공감하는 새로운 꿈을 여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2025-02-18

월포 龍山을 오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맞이라도 하듯 야트막한 산엘 올랐다. 청하면 월포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나즈막한 용산으로 비교적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산중턱과 정상 부근에 군데군데 너럭바위가 있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산인 고인돌(지석묘)이 동쪽 등산로 초입에 있으며, 큰 암반 위에 솥모양으로 움푹 팬 솥바위 2개가 있을 정도로 신기하고 유서가 깊어 예로부터 청하 고을에서 신성시된 산이기도 하다. 용의 머리 형국을 하고 있다는 용산(龍山)은 용산으로 불러지게 된 슬픈 전설이 있는 산이다. 즉, 아주 오래 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월포리의 한 부부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아들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예사롭지 않아 장차 장수가 될 아이이나 큰일을 저질러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집안 어른들의 우려와 결정에 따라 더 자라기 전에 죽는 순간 그 산에 살던 용이 아들의 한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믿기지 않은 주술적인 전설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액운타파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숨고르기 하듯이 천천히 등산로로 진입하는데 용을 연상케 하는 큰 소나무 뿌리가 투박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드러나 꿈틀대는 듯하니, 불현듯 전설 속의 승천한 용의 화신이 현상계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한 솔숲 주변에 2기의 고인돌을 지나서 크고 작은 소나무가 빽빽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오르니 이내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두암에 이르렀다. 활처럼 휘어진 월포리 해변과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작년말에 개통된 동해중부선 철도가 너른 들판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힘차게 뻗어 있다. 그 옆으로는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인데, 올해 말 개통되면 동해안을 잇는 교통망·관광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꿈에 부풀어 있는 듯하다. 북서쪽으로는 멀리 정상 부근에 잔설이 희끗한 내연산~천령산~삿갓봉의 연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청하읍내가 손에 잡힐 듯 정겹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또한 동쪽으로는 지척의 이가리 해안선 너머 호미곶 반도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용산 정상에서는 결코 조망할 수 없는 탁 트인 전경이 발 아래에 그림처럼 펼쳐지니, 과연 전설이 깃든 용산에서 용 한 마리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해발 200여 미터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는 너럭바위 등이 자리잡아 승천을 준비하는 교룡(蛟龍)의 억센 근육처럼 여겨졌다. 순탄한 둘레길 언저리에는 멸종 위기 종인 망개나무 덤불이 빨간 열매로 산객을 반기고, 진달래는 멀지 않은 날의 개화를 준비하는 듯 작은 망울을 내밀며 부풀고 있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던가. 몸을 움직여 걷고 뛰거나 함께 어울리다보면 저절로 생기가 나고 활력이 감돌 것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산보하듯이 산길을 걸으면 이것저것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바가 많아져서 산행 그 자체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2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