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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정의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한다. 유엔에서는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와 민간의 인식을 재고할 목적으로 매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도 1994년부터 같은 날에 ‘가정의 날’ 기념행사를 열어오다 2004년부터는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화했다.농경사회에서 가족과 가정은 삶의 근간이었다. 3, 4대가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대가족제도에서는 출산과 양육은 물론 교육,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이 대부분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우리나라는 수천 년 이어오던 농경사회가 반세기 전쯤에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돈독하던 가족제도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몇 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부부와 한두 자녀의 핵가족으로 분화된데 이어 자식이 없는 부부나 한부모와 자녀, 독거노인이나 혼자 사는 미혼 남녀의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전통적인 가족이나 가정의 개념도 따라서 변질될 수밖에 없다.2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자식이 아버지의 성(姓)을 따라야 한다는 경우는 22%에 불과하고 부모 중 어느 한 쪽의 성을 따라도 괜찮다가 47%, 굳이 부모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경우도 31%나 된다고 한다. 족보나 조상을 따지는 일 따위는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일본인 사유리가 결혼을 하지 않고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아서 화제와 논란이 되고 있다. 입양이나 미혼모들에 이어 또 다른 가족의 형태가 생겨난 셈이다.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녀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가족의 형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가정과 가족의 붕괴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가정의 달이 생겨난 이유일 것이다.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지만 사람은 출생해서 저 혼자 걷는데 일 년이 넘게 걸린다. 거기다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까지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만큼 가족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결혼한 부모로 인해 태어나고 양육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다수이고 그렇게 형성된 유대관계가 인간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다.아무튼 전통적인 가정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도 있지만 가치관의 변화도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인습에만 묶여 옛것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인적 편익이나 경제적 이해 때문에 가족이 불화하고 가정이 와해되는 것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된다.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의 고위층에 올랐던 사람들이 가족의 문제로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바꾸어 말하면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 따위로는 살 수 없는 더 근본적이고 소중한 것이 가정에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 건강한 가정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심성과 가치관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걸 되새기는 오월이다.

2021-05-06

백신 불신과 불안… 정부가 신뢰로 풀어야

정부가 5일부터 백신을 두 번 다 맞은 사람에게는 자가격리 조처를 일부 면제키로 했다. 올 상반기까지 1천300만명에 대한 1차 접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정부 인센티브다.정부는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계획된 대로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백신 접종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5월에 접종키로 계획한 2차 접종 대상자의 화이자 백신 물량을 4월로 앞당겨 사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바람에 전국적으로 화이자 백신 부족으로 인한 백신 접종 일시 중단사태가 발생했다.대구와 경북도 화이자 백신 접종 일정에 차질을 생기자 접종센터에는 접종을 기다려왔던 어르신들의 문의와 항의가 잇따랐다. 백신 접종을 목빠지게 기다려왔던 어른신들의 실망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경로당에 있는 노인들끼리도 누구는 맞고 누구는 안 맞아 백신공급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가 높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맞힐 화이자 백신 접종률은 3일 현재 대구와 경북은 겨우 절반에 근접하는 수준이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백신도입과 접종은 당초 계획 이상으로 잘 된다”고 밝혀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특별방역회의에서 “K방역은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고 상반기 접종계획은 1천200만명에서 1천300만명으로 상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침 청와대 방역점검 회의가 열리던 날 전국에서는 백신 접종 중단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잘못됐다는 반응도 나왔다.국민의 생명권을 다투는 백신 접종을 두고 정부가 신중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이다. 백신 물량 도입에 따른 일정과 계획을 투명하고 원칙에 따라 집행하는 정부의 정직한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백신 접종이 오락가락한다면 국가방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할 수 없다. 5일 화이자 백신 21만8천명분이 국내에 들어왔으나 이제 전체 계획물량의 3.6%에 불과하다. 앞으로 안정적 물량 확보가 있어야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으로 백신 전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진정성 있는 백신정책으로 신뢰를 찾아야 한다. 말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얻거나 접종률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21-05-05

디지털 광고

디지털 광고는 인터넷, 모바일 등 기존 전통매체 외에 온라인으로 소비되는 모든 광고를 일컫는다. 포털사이트 검색부터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영상까지 모든 종류의 광고가 여기에 포함된다.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스마트TV로 유튜브를 틀어 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에 따라 광고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야 한다. 이같은 광고 소비 패턴의 변화는 광고업체들에게는 큰 숙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포털사이트 등에 몰리는 소비자들의 성격은 어떻게 다른지, 또 그들의 소비유형은 어떤지, 어떤 광고가 잘 먹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다.국내 광고업체들의 경영전략도 ‘디지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일기획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국내 매체별 총광고비’에 따르면 광고시장은 크게 방송, 인쇄, 디지털로 구분된다. 디지털 시장 규모는 2015년 3조원에서 2020년 5조7천억원으로 커졌다. 2배에 가깝게 늘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9%에서 47.6%로 확대됐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전체 광고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인쇄와 방송 시장은 줄었다. TV·라디오 등 방송은 4조2천억원에서 3조5천억원으로 약 7천억원 줄었고, 신문·잡지 등 인쇄광고 시장은 1조9천억원에서 1조6천억원으로 약 3천억원 감소했다. 5년 동안 전체 시장규모가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신문과 방송의 몰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디지털광고 시장 확대로 요약되는 광고시장의 재편은 신문·라디오·방송 등 전통매체들에게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05

국민의힘은 왜 스스로 ‘영남당’ 낙인을 찍나

국민의힘이 6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또 영남당 논란이 일고 있다. 얼마전 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기현 의원(울산 남을)이 당선된 뒤 “대선을 앞두고 지지세 확산을 위해 지도부 투톱 중 한 사람은 비영남권에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당내 지역갈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은 “정권을 잡으려면 영남정당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여론이다. 특히 당원들이 그렇다”며 영남지역 배제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당내 일부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영남에 매몰된 이미지로는 외연 확장을 통한 차기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국민의힘은 4·7 재보궐선거 직후에도 대구·경북(TK) 정치권 ‘2선 후퇴론’이 나왔다. 당시 충남 출신 정진석 의원(공주·부여·청양)이 “우리 당이 영남 지역당의 모습, 기득권 정당의 모습, 꼰대당의 모습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이 계속 쳐다봐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내 초선 의원들도 그 당시 성명서를 내고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나가겠다”고 언급해 논란이 됐었다.국민의힘이 국회의원 공천만 받으면 거의 당선되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면서 영남당, 웰빙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당의 지역적 외연확대와 대구·경북 2선 후퇴를 연결시키는 주장에 대해 이 지역 국회의원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내부분열과 반목이다. 한창 외연확대를 위해 전력을 쏟아내야 할 시기에 당권 욕심 때문에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을 왕따시키는 발언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는 영남배제론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 자체를 외연확대의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다. 당의 주된 지지기반을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특정 지역출신 당대표 불가론은 ‘권력욕에서 나오는 헤게모니 싸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021-05-05

오월의 기억

장규열 한동대 교수4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5월은 포근한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도 있다. 하필 같은 달에 모여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우선 어린이날.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절에 소파 선생이 우리의 앞날은 어린이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 잘난 재주를 부린다 한들 미래는 어차피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 어린이를 정성으로 기르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내일이 없다. 어린이가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새로운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어른의 세계가 아무리 복잡하여도 어린이를 바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 없이는 내일도 없다. 청년세대가 출산을 꺼리는 세태도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어버이날. 모든 존재는 어버이로부터 시작됐다. 기쁨과 쓸쓸함, 즐거움과 외로움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어버이로부터 시작했다. 삶이 가능한 시작에 어버이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닌가. 내가 걸어갈 내일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어버이가 아닌가. 사노라면 애증이 섞이고 희비가 엇갈리지만 온갖 일들의 시작에 어버이가 계셨음을 새겨보아야 한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어린이는 누구일까. 아이들은 들은대로 자라기보다 본대로 자란다. 어린이가 따라 배우는 어버이가 있고, 어버이가 조심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 두 날을 잇달아 붙인 까닭이 아닐까. 조금 떨어져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일은 부부의 날. 저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만난 일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당신과 내가 이룬 집에서 피어난 이야기는 꿈인가 생시인가.5월은 ‘함께 하는 비밀’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이 홀로는 절대로 살지 못한다. 식탁에 올라온 고마운 반찬 한 자락에도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스며있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인연과 우연이 겹치며 날들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맨 처음 기적이 어버이와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만 해도 놀라울 판에, 살면서 만나는 도움의 손길과 의지했던 기억들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도 온전한 오늘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빼놓을 수 없는 도움은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배움이 아닌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물론이며 살면서 만났던 배움의 흔적은 잊을 수가 없다. 배우고 가르치며 부추기고 이끌어가며 삶의 수레는 오늘도 나아간다. 만난 것도 놀랍지만 배운 일은 기적이다.돌아보면 실수투성이에 흠결만 한가득이다. 어린이에게 따뜻하지 못했으며 어버이에게 무심했던 데다 배우자에게 퉁명스러웠으며 스승은 잊고 살지 않았는가. 5월은 미안한 마음을 일깨우고 감사한 생각을 일으킨다. 돌아가 돌이키려 하지 말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하라’는 어느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살면서 만날 사람들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꿈을 꾸어야 한다. 혼자는 못한다.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지어가야 한다.

2021-05-05

봄편지

양태순수필가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나는 얼굴, 내 아버지였다.철이 들기 전, 아버지는 다른 세계로 떠났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는 핏줄 말고는 너무 미미했다. 그래서 떠나보낸 슬픔이 깊은 줄도 몰랐다. 늘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허전함에 문득문득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에 눈이 갔다. 그것이 다였다.기억 속 아버지는 남 같은 아버지였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지만 직접 소통이 없었다.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말이 전달되고 답이 돌아왔다. 내 잘못을 나무라는 일조차 어머니의 입을 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밖에서 놀다 집에 왔을 때 방에 아버지만 있으면 들어가기 어색해 도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어렵기만 한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은 밥 잡수세요와 다녀오셨어요, 정도였다.딱 하루,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중학생이었고 추석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한방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중개인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마음속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던 듯싶다. 소재가 바닥 날 때쯤 윗방에서 어머니가 장에서 사온 추석빔을 입어 보라고 불렀다. 얼마나 반갑던지 냉큼 일어섰다.중학생이었던 그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안 된다. 아버지와 나는 무릎걸음 세 번만큼 떨어져 앉았고, 나를 향해 맘껏 드러내지 않은 잔잔한 표정이며 내가 일어섰을 때 차마 잡지 못하는 아쉬운 눈빛은 생생하다. 그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으나 제법 길었던 시간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깜깜할 뿐이다. 잿더미를 헤집듯이 아버지의 갈피를 뒤적이고 뒤적여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살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는 날은 기일이나 어버이날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만났던 시간에는 추억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건지겠다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미해진 여줄가리를 촘촘히 엮었다. 가장 큰 소득은 서로를 오롯이 보았던 그 밤이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되살려놓은 장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란 이름으로 뜨거워졌다.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때로는 한 모금 물이 간절한 식물처럼 애가 타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는 새날이 있어서 힘을 내 하루하루를 이어 일생을 이룬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길 위에서 나름대로 부딪히고 견뎌오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내세울 것도 없고 빛나지도 않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니 소중하게 여긴다.지나온 굽이의 어느 날에는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은 오십을 넘기면서 종착역에 닿아 멈추었다. 나는 어렸고 사는 동안 살가운 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키웠던 애정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진 수십 년을 곱씹는 동안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와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작은 추억의 부스러기로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차지한 내 마음자리는 늘 축축하고 아리다.철쭉이 한창인 공원에서 낯선 부녀로 인해 아버지를 만난 날이다. 언젠가 마주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본다.“많은 날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숨을 삼켰다.“그날 밤의 눈빛을 이제는 놓을래요. 그러나 내 아버지였음은 잊지 않을게요” 소리맴이 길다. 내 안에 갇혀있던 울새를 날려 보낸다.

2021-05-05

은자동아 금자동아

남녀가 짝을 지으면 하늘에 기원한다, 하늘의 자식 잘 키울테니 참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할매는 이 간절한 약속을 믿고 아이를 점지해준다. 어미는 뱃속 아이를 위해 온갖 지성을 들였다. 음식을 가려 먹었으며 부정한 것은 피했다. 언행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나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 생명을 맞기 위해 어미의 마음가짐이었다.아이가 태어나면 하나 같이 ‘응애’라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 울음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첫 언어이다. 이 함성을 고고성(呱呱聲)이라고 한다. 가위로 탯줄을 끊어내는 순간부터 아이는 모태에서 독립해 하나의 개체가 된다. 이 독립기념일을 우리는 ‘귀빠진 날’이라고도 한다. 태아의 귀가 산도를 빠져나오면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갓난쟁이의 몸짓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이를 ‘배냇짓’이라고 한다. ‘배내’는 배 안이며 ‘배냇짓’은 배 안에서부터 한 몸짓이다. 갓난아이는 잠을 자면서 방실거리며 웃거나 눈코입을 찡긋거리는데, 이렇게 귀여운 몸짓이 바로 배냇짓이다. 배냇짓을 학자들은 마주보는 이의 공격성을 누그러트리게 하는 유화적 몸짓이라고 해석한다.배내옷- 갓난아이에게 입히는, 깃을 달지 않은 저고리.배냇니- 젖먹이 때 나서 아직 갈지 않은 이, 젖니.배내똥- 갓난아기가 먹은 것 없이 처음 싸는 똥.배냇머리- 태어난 뒤 한 번도 깎지 않은 갓난아이의 머리털.갓난아기가 풀무처럼 입으로 바람을 불어 대면 ‘풀무질’이다. 입술을 투르르 털며 내는 소리는 ‘투레질’이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 ‘죄암’ 또는 ‘쥐엄질’이다. 잠들기 전이나 깬 후에 부리는 투정은 ‘잠투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는 행위는 ‘쉬야질’이다.어린아이를 부모는 여러 가지 몸짓으로 얼러 댄다. 어린아이의 겨드랑이를 치켜들고 올렸다 내렸다 할 때, 아이가 다리를 오그렸다 폈다 하는 짓은 ‘가동질’이다. 어린아이를 세워 두 손을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짓은 ‘시장질’ 이다. 어린아이를 곧추세워 좌우로 흔들며 두 다리를 번갈아 오르내리게 하는 짓은 ‘부라질’이다.밉둥이- 미운 짓을 하는 어린아이.옹알이- 생후 백일쯤 되는 아기가 옹알대는 짓.나비잠- 만세라도 부르듯 두 팔을 벌리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배밀이- 배를 바닥에 문지르면서 기어가는 모습.얼뚱아기-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이쁘둥이- 이쁜 어린아이.당싯거리다- 어린아이가 누워서 춤을 추듯 팔다리를 춤을 잇따라 귀엽게 움직이다.아망거리다- 어린아이가 괜스레 트집을 잡아 오기를 부리다.조작거리다-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제 마음대로 귀엽게 자꾸 걷다.자칫거리다- 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서툰 걸음으로 몇 걸음씩 걷다.아칫거리다- 어린아이가 이리저리 위태위태하게 걸음을 떼어놓다.어린아이가 도담도담 자라 살이 포동포동해지면 ‘옴포동이’라고 하는데, 이맘때면 아이의 몸짓이 다채로워진다. 짝짝쿵 손뼉을 치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도리질’한다. 왼손 손바닥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댔다 떼며 ‘곤지곤지’하고, 두 손을 쥐었다 펴며 ‘죔죔’한다. 그러면 엄마는 어린아이를 따로 세우면서 ‘섬마섬마’ 또는 ‘따로따로따따로’라고 추임새를 넣는다.똥싸개라도 부모에게는 은자동아 금자동아이다. 귀여운 나머지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아이는 ‘응석받이’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행위에 적절한 경고를 울리는데, 만져서는 곤란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려 하면 ‘지지’라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에비’라며 말린다.칭얼거리며 엄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아이를 ‘쫄래동이’라고 한다. 이럴 때 엄마는 아이에게 겁을 주며 달래는데, 이 말을 ‘곽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대 쥐어 박는 일은 ‘먼지떨음’인데, 그저 엄포나 놓을 양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듯 살살 때린다는 뜻이다. 아우가 생긴 아이가 샘내느라 밥을 많이 먹으면 이를 ‘밥빼기’라고 한다.생의 원점에 이리도 아름답고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 행복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없을까 싶어서 신은 요람기의 기억은 지워지도록 두뇌를 설계했는지도 모른다.아이는 배밀이에서 걸음마를 거쳐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요람기에서 멀어질수록 험한 세상을 맞닥트리고 그 시련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간다. 늙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가 되다가 마침내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에 누는 똥도 배내똥이라고 하는데, 그 성분이 배내똥과 같다고 한다. 삶과 죽음, 극과 극은 맞닿은 모양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5-05

5월, 학교에는(上)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5월이다. 그래서인지 5월만 되면 설렌다. 이런 필자를 보고 지인들은 5월을 탄다고 놀린다. 다음은 필자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의 시다.“5월엔, 왠지 집 대문 열리듯/뭔가가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곳으로/희망이랄까 생명의 기운이랄까/아무튼 느낌 좋은 그 뭔가가/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5월엔, 하늘도 왕창 열려/겨울 함박눈처럼/만복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든다/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5월엔, 천지를 가득 채우는/따사로운 햇살에/오래 잠겼던 마음의 문 활짝 열고 집먼지진드기 같은 잡념을 태워보자 (….)” (안재동 ‘5월’)지면 관계상 시 전문을 인용하지 못함이 아쉽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특히 선생님께 꼭 작품의 전문을 읽어보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올해 5월에는 시인의 생각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5월, 이 좋은 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개 한 번 바로 들지 못하고, 그래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 숨어 있을 희망을 찾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희망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특히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는 희망의 문이 좀 더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불행한데 부모가 행복할 리 없다. 부모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자신의 힘듦 정도야 거뜬히 이겨낸다. 그게 바로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같은 부모 DNA다. 그 유산으로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어찌 되었든 부모님과 이 나라를 위해서 5월 한 달만이라도 학생들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그 웃음 속에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을 친구들과 나누고 나누어 학교 전체가 즐거움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학교만 생각해도 즐거운 웃음꽃이 피는 나라, 그 웃음꽃의 결실로 모두가 행복한 나라의 바탕이 올해 5월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 5월 학교를 학생들에게 돌려주자. 단순히 교육과정 채우기식 체험학습이나, 또 의미 없는 학생 동원 행사 따위는 제발 계획조차 하지 말자. 그리고 성적 따위로 학생들을 겁주는 비겁함에서 벗어나자. 교과 진도와 같은 교사 중심의 구시대적 핑계 따위는 생각지도 말자.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대학교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제발 잊지 말자.5월 한 달만은 모든 것을 철저히 학생들의 측면에서 생각하자. 학생들이 마음껏 자신의 5월 학교생활을 설계하도록 하자. 만약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서 이것이 어렵다면, 교과 수업에서만큼이라도 이것을 실천해보자. 또 5월 한 달이 어렵다면, 정말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학생들이 학교와 수업의 주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발 좀 주자.5월 학교에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핵심 역량인 “자기관리 역량, 심미적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중에서 단 하나라도 학생들이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05-05

남북 백두대간 종주한 로저 셰퍼드 씨와의 만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며칠 경북대도서관에서 백두대간 사진전 작가 로저 셰퍼드 씨를 만났다.그는 뉴질랜드 경찰관 출신이며 총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6년경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산에 매료되어 현재도 이 땅에 살고 있다. 딱 벌어진 어깨에 탄탄한 체구, 훤칠한 키는 전문 산악인의 요건을 갖춘 듯했다. 그의 사진 개막식에는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어진 사진 설명회에는 20여 명이 남아 그의 북한 백두대간 탐험 경험을 재미있게 경청했다. 북한 소식이 궁금한 현실에서 퍽 유익한 시간이 됐다.분단 이후 세계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는 한때 대구에도 살았고 지금은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에 살고 있다. 그는 2006년 남쪽의 지리산 산행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2년 북쪽 백두대간을 등반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개마고원을 거쳐 금강산까지 등정한 소중한 경험을 가졌다. 이번 사진전에서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50여 장을 공개했다. 그는 한반도의 산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인들에게 소개하는 하이크 코리아(HIKE KOREA)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나는 경북대 재직 중 통일관련 강의 시 그의 백두대간 종주 MBC 다큐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와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구면인 셈이다.로저 셰퍼드 씨는 평양소재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 초청으로 북쪽의 백두대간을 등행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그의 방북 신청을 거부했지만 순수하게 산을 등산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백두대간은 북쪽의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의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천700km의 방대한 거리이다.그의 이번 사진전에는 남쪽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쪽의 두류산, 백역산, 고대산, 옥련산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힘 있게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마저 끊어 버리고 말았다.그는 사진 설명회에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북한의 산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북쪽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도 생생하게 소개했다. 특히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의 깊은 산골의 주민들은 자연과 풍토 때문에 많이 다르다는 증언도 했다. 북한의 험준한 산에는 항일 빨치산의 요새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도 했다. 북한 산촌에는 수십 종의 수제 소주가 있고 산천어의 맛이 좋다고 소개했다. 감자를 주식으로 북한 산촌 사람들은 부족함도 만족함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설명회는 북한의 산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산하가 황폐화된 현황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야산은 황폐화 됐지만 백두대간의 산림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개마고원 부근의 어느 산은 바위덩이 밑으로 강이 흐르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그는 설명회를 마치면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한사람들이 잘 이해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뉴질랜드인 셰퍼드 씨의 입장이 몹시 부러운 오후가 되었다.

2021-05-05

은성수 금융위원장님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생각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문학평론을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30대 후반의 필부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발언이 아니었다면 위원장님을 알지도 못했을 무지렁이가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편지글을 띄웁니다. 삿되어 보일지라도 눈과 마음을 기울여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 글은 저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2030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쓰게 한 것이니 말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아닙니다.위원장님께서는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많은 사람이 투자한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은 걷겠다”고 하셨지요. 정부가 개입할 시장이 아니라면서 세금은 걷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투자자들은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손실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래소의 시세조작이라든가 입출금 시스템의 불안정성이라든가 하는 위험 요소들을 방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안정성 있는 거래가 되도록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시켜 불법 행위들을 감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투자자들은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할 생각이 없으면 세금을 걷지도 말아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 가상화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4년 전 당시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후 가상화폐 시장은 반토막 났습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사태를 ‘박상기의 난’이라 명명했는데, 4년 후 ‘은성수의 난’이 더 큰 패닉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위원장님께서는 아시는지요?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신 다음날 가상화폐 시장에는 대폭락이 왔습니다. 위원장님 말씀과 결부시키고 싶진 않지만, 가상화폐가 대폭락한 지난 24일, 강원도에서 코인 투자 실패를 비관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위원장님의 말씀에 정부가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봐도 될까요? 지난 4년간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제도화해서 투자자 보호 및 과세를 합리적으로 해나가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기조를 보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투자그룹인 그레이스케일을 비롯해 테슬라, 넥슨, 골드만삭스, 페이팔 등이 코인 시장에 뛰어드는 등 선진국들은 가상화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른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세계 경제 흐름을 역행하려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위원장님의 ‘꼰대’적 인식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는 위원장님의 이 한 마디는 가상화폐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2030세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 위원장님을 포함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외국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기술 등을 갖추고도 선배들이 채용의 문을 걸어 잠가 취업을 꿈꿀 수 없는 현실, 정작 4050세대는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부를 축적하고는 2030세대에겐 온갖 규제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 절망만을 안겨준 현실…. ‘잘못된 길’은 누가 만들었는지요? 위원장님은 가상화폐가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셨는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젊은이들이 돈을 버는 코인 시장이 영 아니꼬워 보인 건 아니신지요?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합니다. 급여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자취방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불공평한 사회 구조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락되지 않는 ‘여윳돈’이라는 걸 좀 가져보려고, 치킨 사 먹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애인에게 작은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 소액으로 코인 시장에 뛰어든 그 청년들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라 매도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길’로 청년들을 내몬 과오부터 반성하시길, 공직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깨달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05-03

근사한 할머니가 된다는 건

10대에서 30대까지 대표하는 MZ세대는 요즘 ‘할매니얼’에 푹 빠졌다. 할매니얼이란 할매와 밀레니얼을 합친 용어로 옛 할머니의 감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할매니얼에 열광하는 이들은 ‘그래니룩’ 을 즐겨 입는다. 그래니룩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을 붙인 합성어로, ‘할머니 같은 패션’을 의미한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 속에서 발견할 법한 화려한 무늬의 스웨터나 빛바랜 색감의 카디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나 몸빼 바지처럼 보이는 통 넓은 바지가 그 예다.실제로 10대 20대가 즐겨 구입하는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도 무릎을 덮는 롱스커트나 꽃무늬 제품이 오랜 기간 인기 순위에 머무르고 있다. 카디건 판매도 전년보다 164%나 늘었다고 한다.광고계에서도 할매니얼 열풍이 불었다. MZ세대가 즐겨 찾는 쇼핑몰 앱인 ‘지그재그’는 배우 윤여정 씨가 대표 모델로 등장한다. “옷 많이 산다고 무슨 법에 저촉되니? 괜찮아 인생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 마음대로 사세요.” 광고 속 윤여정 씨의 대사다.물건을 구매한다는 의미의 ‘사다(buy)’와 인생을 ‘산다(live)’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던지는 메시지와 강렬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단순히 카피가 좋아서가 아니다. 75세의 윤여정 배우가 내뱉는 대사는 그간 그녀가 지어 왔을 삶의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신뢰를 더했기 때문이다.햇반컵 광고에서는 81세의 나문희 씨가 등장한다. 핵심연구원 A씨의 실종사건을 다루며 추리게임을 펼치는 내용을 선보였다. 공식처럼 젊은 여배우들이 등장했던 화장품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모델로 등장한다. 버스 안에서 노래와 랩을 부르며 요즘의 ‘힙한 할머니’의 위세를 보여주었다.‘할매니얼’의 유행은 먹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식품업계에선 강릉초당두부케이크, 찰옥수수 케이크,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소위 할머니 입맛이라 불리는 음식들을 심심치 않게 쏟아냈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도 MZ세대의 입맛을 노려 양갱이나 약과 같은 간식을 새롭게 내어놓는다거나 쑥, 흑임자, 인절미맛 디저트를 앞다투어 출시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MZ세대가 이토록 할머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레트로 열풍도 한몫했다. MZ세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분위기에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해 놀이처럼 즐긴다.그렇지만 무엇보다 ‘할매니얼’의 중심은 할머니다. MZ세대를 매료시킨 그녀들은 자신보다 어린 세대와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동시에 우아하면서도 지적이다. MZ세대는 자신만의 삶과 철학을 지혜롭게 가꾼 여성을 롤모델로 쫓으며 그녀들의 올곧음과 당당함을 선망하는 것이다.유튜브의 영향력도 크다. 131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을 나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내 박자에 맞춰 살어.’ 라며 젊은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간 포기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늘 새로운 것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구독자 80만명을 보유한 옷 잘 입는 할머니 ‘밀라논나’의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논나의 아지트’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콘텐츠다.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깨어 있는 조언과 함께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시각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생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므로. 자신이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전부가 아니고,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화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맹신이 두렵다. 내가 겪은 고통만 고통이라 여기고, 타인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오만 또한 스스로를 과거에 고립시킬 뿐이다. 타인을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의 크기와 다정하고도 자유로움을 지닌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런 고민은 언제나 근사하고 신비롭다.

2021-05-03

디지털 시대의 미술작품과 사라진 원본

대체불가능한 토큰 이른바 NFT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미술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의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자산을 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작품들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물질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NFT에서 거래되는 작품들은 디지털로 존재한다. 디지털 미술작품 혹은 디지털화된 미술작품 거래가 논의의 대상이 되면 진본성과 복제 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된다.미술품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본성(originality)과 희소성(scarcity)인데 디지털로 존재하는 작품에서는 진본과 복제본의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본과 복제본이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에 자연히 희소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활용한 NFT에서는 이런 문제가 극복된 듯 보인다. 디지털 작품에 고유 인식값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NFT가 어떤 작품의 원본성을 담보해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고유성과 유일성은 보장이 된다.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 소변기를 작품으로 제시한 이후 미술은 줄곧 새롭게 규정돼 왔다. 공업적으로 생산된 기성품을 미술품으로 제시한 뒤샹의 레디메이드로 인해 진본의 가치는 희석됐다. 팝 아트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앤디 워홀의 작품들 역시 판화기법 실크스크린을 통해 제작됐다. 판화의 특성상 작품을 찍어내는 원판은 존재하지만 유일한 원본은 있을 수 없다. 인화를 통해 동일한 작품을 기술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복수의 진본이 만들어지면서 물리적으로 동일한 작품들에는 진본성과 희소성의 시장적 가치를 보존해 주기 위해 에디션(edition)이라는 장치가 마련됐다. 일종의 한정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워홀의 팝아트는 대중적 이미지를 재생산해 작품의 형식으로 보여준 것으로 미술 창작의 개념과 방식을 바꿔 놓았고 노동을 통한 직접 제작이라는 고전적 창작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술작품에는 작가의 손길 혹은 흔적이라는 일종의 신비감과 신화적 요소가 제거됐다.1960년대 이후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술은 더욱 더 개념화되고 관념화되고 비(非)물질화 된다.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나 행위가 미술이 되고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연현상이 미술이 되기도 한다. 고정된 형식을 취하지 않고, 보존할 수 없으며, 물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해 진본성을 묻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성격의 작품들은 기록과 재현의 방식을 빌려 전시되고 보존되고 소유된다.일찍이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년)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미술작품의 미래를 예견한 바 있다. 벤야민의 견해에 따르자면 진본에서는 복제본과 달리 아우라(aura)가 발산된다. 그리고 그 아우라는 감상자들에게 시각적 경험을 초월한 전혀 다른 차원의 미학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작품에서는 진본과 복제본은 질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미술에서 진본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본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작품창작의 과정을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순간에서부터 제작과 완성까지의 단계로 본다면 진본성이 발생하는 시점은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미술가가 직접 창작한 작품을 진본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미술품들은 직접 창작이라는 고전적 잣대로 판단될 수 없다. 그리고 미학적 관점에서는 보았을 때 진본성 자체가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진본성의 문제는 오로지 미술품 소유와 소유권의 증명이라는 범주에서만 주요한 담론으로 여겨질 뿐이며 이러한 담론을 응축해 보여주는 것이 NFT를 기반으로 한 미술품의 디지털 자산화 현상이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05-03

왕궁 안에 남겨진 신라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 사방을 망라한다.(德業日新 網羅四方)”신라는 그 나라 이름에 담긴 소망처럼 월성을 중심으로 성장해 주변 나라를 통일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한 축으로 번영했다. 실크로드로부터, 그리고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문화 교류의 중심에 서 있었다.이곳이 서라벌로 불리던 때, 월성은 신라의 수도에 위치한 왕궁이었으며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지였다. 약 800년 동안 왕과 왕족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많은 외국 사신들이 오가며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우러졌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월성에는 연주하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바다의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피리인 만파식적이 왕실 보물창고인 천존고에 보관되어있었다고 전해진다. 월성은 신라의 국보(國寶)를 보관하던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안타깝게도 현재 월성에는 드문드문 신라시대 건물을 지탱했던 돌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 긴 역사의 시간이 온전히 땅 속에 남겨져 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월성 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 착수 이전, 2007~2008년 월성 전체에 대한 지하레이더탐사(GPR)를 실시하였다. 마치 우리 몸을 컴퓨터단층(CT)촬영을 통해 투시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지하레이더탐사를 통해 땅 속의 남겨진 건축물의 흔적을 찾아,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월성 내부 3만4천42평의 면적에 2.8m 깊이로 지하레이더탐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흔적을 집중적으로 확인하였다. 문(門)의 흔적은 최소 3개소 이상, 건물지는 최소 20개동 이상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월성 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현재 조사 중인 약 6천400㎡ 범위에서는 17개의 크고 작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가 밀집되어 확인됐고, 1만1천여점이 넘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출토유물과 연대분석 검토를 통해, 약 240년 동안 이어진 통일신라시대 전 시기에 걸쳐 건물지가 지어지고 수리되고, 또 다시 새롭게 지어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월성에서는 정전(正殿)이라고 불릴 수 있는 중심건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가로축이 긴 회랑형(복도식 건물) 건물들과 그 주변의 벼루 등 유물의 출토 상황을 통해 현재 조사 지역에는 관청(官廳)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발굴조사의 결과는 늘 새로운 발견과 또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조사 결과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그때’의 풍경이 궁금해지곤 한다.월성 조사를 통해 확인된 월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수백 년의 시간이 깃든 월성의 전모를 확인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확인된 몇 가지 힌트들이 우리에게 월성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최문정학예연구사먼저 6천여점이 넘게 확인된 기와이다. 기와는 고대 건축물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목조건물의 지붕에 올라가며 비와 화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가진 재료이기도 하다. 더불어 건물의 경관과 장식, 위용을 돋보이기 위해 쓴 막새(瓦當)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와는 규격화된 형태의 대량생산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공인(工人)집단의 안정적인 생산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술을 익히고 운영하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 기와를 제공했을 신라의 솜씨 좋은 기와 공인들이 떠오른다. 왕궁을 짓고, 또 새로 고쳐 쓰는 동안 그들은 가장 좋은 기와들을 월성으로 보냈을 것이다. 또 월성에는 기와를 쌓아 지붕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월성 내부에서는 흙으로 빚은 그릇, 토기도 다수 출토됐는데 그 중 도부(嶋夫)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도부’가 토기를 만든 사람 혹은 이 과정을 감독한 사람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통해 본다면, 토기를 만드는 ‘도부’라는 이름의 사람이 자신이 만든 토기에 이름을 새기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우리는 월성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이용되어온 다양한 단면을 찾고자 한다. 더불어, 그 곳을 호령하던 왕의 발자취 뿐 아니라 묵묵히 월성을 쌓고 가꾸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월성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기간을 생각해본다면 조사·연구의 깊이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차곡히 쌓여가는 충실한 조사와 연구 성과들이 모여, 우리는 신라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길 기대한다.월성, 왕궁 안에 남겨진 신라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해 줄 것이다.

2021-05-03

청년들의 취업을 보장하라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국어사전에 캥거루가 미숙한 상태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다른 짐승에게는 없는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어 젖을 먹이고 보호한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할 나이가 됐어도 취직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취직을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 한다.우리나라가 IMF 때 대학가에서 신조어로 유행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젊은 미혼 30대가 50% 이상이 캥거루족으로 부모와 함께 산다. 이들은 직장이 없는 미취업자다. 당연히 집을 구입 할 돈이 없어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2021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30대 미혼 인구 중 부모와 동거하는 사람의 비율은 54.8%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개발원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20%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20∼44세 미혼 인구의 세대 유형을 조사한 결과다. 연령집단별로 보면 30∼34세 중 부모와 동거하는 사람이 57.4%, 35∼39세는 50.3%로 각각 집계됐다. 40∼44세의 경우 미혼 인구의 44.1%가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인구 중 42.1%는 취업을 못한 상태다.코로나19 1일 확진자 수가 600명을 넘는 상황에서 젊은 청년들의 올해 취업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구직급여 수급자는 75만9천명으로 집계됐다. 기존 역대 최대 기록인 2020년 7월의 73만1천명을 뛰어넘었다.2021년과 같은 상황이라면 취업의 기회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구직자가 넘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캥거루족의 부모님 탈출은 언제 될까? 우리 모두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싶다. 함께 힘을 합하여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울 한복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술과 춤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사고 있다. 남의 자식이 아닌 내 자식의 일이다. 우리의 일이다.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해야 청년들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자. 내로남불 나의 일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자.통계청 조사대상 미혼인구(20∼44세)를 통틀어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의 비율은 62.3%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 미혼 인구의 경우 42.1%가 미취업 상태이다. 취업자 비율은 57.9%에 해당된다. 우린나라 경제적 자립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청년들의 취업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미혼의 인구가 62.3%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캥거루족에서 벗어나 취업하고, 결혼해야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주택문제와 취업이 핵심이다. 청년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의 외침을 듣자. 언제까지 코로나19 탓만 할 것인가. 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들의 손에 달려 있다. 청년들에게 취업을 보장해야 한다. 나, 너,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2021-05-03

오월의 햇살처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비 내린 뒤의 신록이 한결 싱그럽다. 연하던 이파리들이 차츰 짙어져 초록세상을 수놓고 파릇한 보리는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처럼 여울지고 있다.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오월은 푸르구나’의 가사처럼 5월은 아동들의 꿈이 자라고 마음이 푸른 모든 이의 푸른달이라고도 한다. 오월의 바람과 빛깔, 소리와 향기는 부신 햇살 속에 쏟아지는 자연의 멜로디처럼 들리고 보이고 흐르는 듯하다. 꽃은 피어 절로 지고 잎은 돋아 청록의 몸짓으로 마음의 자극을 주는 계절, 설렘과 희망을 파종하는 봄날이 깊어 가고 있다.나날이 짙어 가는 풀빛과 번져가는 녹엽을 보니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란 말이 떠오른다. 풀빛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란 뜻으로,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같은 처지나 기풍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동류를 찾아 모인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유유상종과 비슷한 말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취향이나 생각, 관점이나 신념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같은 동류의식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맺게 하고 친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마치 꽃이나 나무, 풀들이 신록 일색으로 물결치는 것처럼.그러나 아무리 초록이 동색이고 끼리끼리 어울린다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방과의 초점을 맞추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이해와 노력이 있어야 최소한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부류의 구성원이라도 시각의 차이와 주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말 한마디라도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방향으로 주고받으면 한결 부담 없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즉, 원활한 소통으로 서로가 공감하고 배려와 절제로 상호 존중의 미덕을 지켜나갈 때, 진정한 어울림과 향긋한 초록동색의 넉넉한 초원이 펼쳐질 것이다. 십 수년째 작은 정원이 딸린 집에 살면서 자연의 섬세한 움직임과 미묘한 변화를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 예컨대 나무나 풀들이 자리잡고 생겨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잎이 돋고 자라는 것 같지만, 옆가지가 서로 부딪치면 적절히 한쪽으로 성장을 멈춘다거나 수분 공급을 중지해 마른 가지로 남겨두는 걸 몇 번씩 지켜봤다. 또한 앞집 담장을 넘어간 담쟁이를 앞집 주인이 매몰차게 다 걷어버리자 몇 년 후에 새롭게 돋아나는 담쟁이가 아무런 유도를 하질 않았는데도 방향을 아예 옆으로만 틀어 올해도 계속 덩굴을 뻗어가고 있다. 수목과 식물들도 이렇게 양보와 절제가 있고 경계와 견제 속에 동류상구(同類相救)로 서로를 지켜가는 듯하다. 해와 달은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비춘다(日月無私照) 해도 자연만물은 저마다의 생김새에 따른 생장과 기능, 번성의 정도가 다르다. 인간의 생리적인 활동과정이나 동·식물의 생태계는 복잡미묘하지만 공통의 요소와 차별화된 부분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해 상생과 공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오월의 햇살은 푸른 숲 잎사귀에 샘물 같은 새뜻함을 적시고 강물 위에 금가루 같은 윤슬을 뿌려주고 있다. 비슷하면 좋아지듯이 초록으로 어우러지는 오월숲처럼 풋풋하고 사랑스럽고 숭고한 나날이 됐으면 좋겠다.

2021-05-03

네이버 웨일

네이버 웨일은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웹브라우저로, 네이버가 3년 안에 국내 브라우저 시장을 석권해 구글 ‘크롬’의 아성을 깨겠다고 선언할 만큼 공을 들인 프로그램이다.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는 Mac OS는 물론 Androids, iOS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모든 사용자가 함께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2017년 처음 나온 웨일은 하나의 창을 두 개로 나눠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듀얼 탭’, 처음 보는 단어도 드래그하면 바로 뜻을 알려주는 ‘퀵서치’, 다양한 편의 도구를 한데 모아볼 수 있는 ‘사이드바’ 등 새로운 기능이 깔렸다. 웨일이 처음 선보인 ‘사이드바’는 웨일 브라우저 창을 띄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도록 단독모드 위젯을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즉, 한글 파일을 보고 있거나 다른 브라우저를 열어뒀을 때도, 우측으로 마우스를 이동시키면 숨어 있던 사이드바 위젯이 나온다. 사이드바는 북마크·스크랩북·네이버메모 등 여러 편의도구를 비롯해 네이버웹툰·바이브 등 다양한 확장앱을 우측 바 형태에 모아두는 기능이다.네이버 웨일은 PC에서도 모바일 서비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뒀다. 웨일은 PC 웨일에서 검색한 업체에 전화걸기 버튼을 누르면, 바로 핸드폰으로 번호를 전달하는 ‘PC전화’ 기능을, 지난 2월에는 세계 최초로 브라우저 내 화상회의 솔루션인 ‘웨일온’을 출시했다.화상회의를 무료로 시간제한없이 500명까지 시작하고자 한다면 아이콘 클릭 후 회의시작을 눌러 ROOM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회의, 친구모임 등 원하는 회의명을 설정하고, 회의인원을 모집할 수 있다. ZOOM 화상회의 서비스를 위협할 서비스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03

2022 대선의 필승 키워드 ‘혁신’과 ‘중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던가? 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었다. 4연승 후 서울·부산 보선에 참패한 여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한 야당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2022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어서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革新)’과 ‘중도(中道)’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는 중도정신으로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서 중도의 마음을 얻는 정당이 승리한다. 공정과 통합을 위한 혁신과 중도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혁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를 내려놓고, 보수는 보수를 내려놓아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내로남불’은 진영정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념에 갇힌 좌우 꼴통들의 수구적 행태로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혁신하지 못했으니 참패한 것이다. 권력도 술처럼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중간(中間)이 아니라 근본(根本)바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며, 극단적 견해를 삼가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이다. 정치적 중도층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정의·실용을 지향하는 심판관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권자들의 성향은 대체로 중도 48%, 보수 25%, 진보 27% 내외로 분석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제3지대 인물들도 일제히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나? 혁신과 중도다. 이 두 개념은 제3지대 인물, 예를 들어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1위인 윤석열과의 연대도 가능하게 해주는 필승의 키워드이다. 어느 진영이든 혁신을 부정하면 중도가 이탈함으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다.나라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치인(statesman)들의 정당은 제대로 혁신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라를 이용하려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정당은 속임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중도를 우습게보고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합리적인 중도는 ‘누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실정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임을 깨달아서 과감히 혁신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중도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2021-05-03

하루 12만원 줘도 일손구하기 어렵다는 농촌

농민들이 “5월 본격적인 농번기가 찾아왔지만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데다 농자재 가격까지 급등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공공근로 파견 등으로 농가 인력 구인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외국인 계절 근로자마저 귀해 일손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연히 인건비도 급등해 농사를 접어야겠다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내의 경우 지난해 농번기 일당이 8만원선이었지만 올해는 12만원까지 대폭 올랐다. 인건비가 이렇게 올라가자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자 손해’라는 것이 농민들 말이다. 농자재 가격 상승도 연례행사처럼 진행되고 있다. 경북 안동의 한 농자재판매점을 취재했더니 비닐하우스용 파이프의 경우 30%가량 올랐고, 수요가 많은 농사용 필름값도 10%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한 농민이 “봄이 일찍 찾아와 고추를 일찍 심어야 하는데 탄저병 등 병해충 때문에 노지재배가 점점 어렵다. 그래서 비닐하우스를 신축하는 농민들이 많은데 농자재 값이 올라 올해는 대부분의 농촌에서 하우스 신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매점매석이나 다름없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정부와 경북도가 농번기 일손 부족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지만, 농촌현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올 들어 농업 분야 긴급인력 파견근로 지원제도를 도입했다. 각 지자체가 농가 파견사업주를 선정한 후 근로조건을 협의해 인력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경북도는 이와함께 도본청과 시·군 공무원, 산하공공기관 직원, 농협직원, 향우회, 동호인모임 등이 참여하는 농촌 일손돕기 추진단을 구성해 농가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농가마다 일할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그저께(2일) 강원도에 처음으로 계절근로자 63명을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농촌 일손은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외국인 근로자라도 적기에 입국해 농번기 일손 부족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21-05-03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총력 경주해야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팔공산 관할 5개 기초단체(대구 동구, 영천시, 경산시, 군위군, 칠곡군)는 팔공산 승격을 위한 상생업무협약을 맺고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10여 년 전에도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문제가 지역의 논제로 떠올랐으나 대구시와 경북도의 인식 차이와 인근주민 반대 등으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킨다면 우리 지역 최고의 명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데다 팔공산의 가치상승을 통해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10여 년만에 다시 논의되는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문제는 이런 점에서 대구·경북의 매우 중요한 의제다. 또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할 일이기도 하다. 같은 논제로 광주는 2012년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고 국가 예산 투입 등을 통해 공원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팔공산은 우수한 자연생태와 더불어 국보 2점, 보물 28점 등 모두 91점의 지정문화재를 지닌 역사와 문화의 보고다. 총 5천295종의 생물종이 분포해 있어 전국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산 중 명산이다.국립공원 지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주민반대 문제가 아직 남아 있으나 시도민 전체 의견은 70% 이상이 국립화에 찬성하는 쪽에 있다. 그리고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더라도 사유권 행사에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하니 반대할 명분도 없다. 팔공산은 국립공원 승격이 미뤄지면서 그동안 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의 문제가 잦은 시비를 낳았다. 행정구역이 여러 군데 나누어져 있어 이런저런 핑계로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체계적인 통합관리를 위해서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구·경북 7개 단체장이 이 문제에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결정이다. 이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다룰 협의체를 구성해 신속하고 적법한 절차 등을 통해 팔공산의 가치 보존에 적극 나서야 한다.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론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때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공동의제로 삼아 대응하는 과정은 보기도 좋다. 대구와 경북이 힘을 합쳐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고, 또 나아가 대구·경북 상승과제를 푼다면 행정통합의 문제도 좋은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2021-05-03

교도소 갈 각오를 해야 하는 기업인

심충택논설위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22일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출석시켜 ‘산업재해 청문회’를 연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그날 위안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사기·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TV에 방영됐다. 윤 의원이 요통으로 인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나온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향해 “증인은 포스코에서 노동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야단치는 장면은 핫 이슈가 됐다. 관련 기사에는 ‘어이가 없다’,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등등 윤 의원을 비꼬거나 비난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최 회장은 취임 후 기업경영에 사회적·환경적 책임과 수평적 거버넌스 개념을 도입해 포스코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있는 인물이다.윤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에도 관여해왔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 씨 사고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발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조만간 시행령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법률효력이 발생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의 입법취지, 실행가능성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시행령을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중대재해법은 하청 업체를 포함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게는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상시근로자 5인이상 50인미만 기업은 3년유예) 시행되면 산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尙存)하는 조선·철강·화학·건설업종 CEO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 반응이다. 법률 내용 중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의도를 가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대구경영자총협회도 최근 대구지역 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법률의 ‘보완입법’에 대해 논의했다. 금형·주물업 등 대구시내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기업인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라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중대재해법의 바탕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장했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근로자 안전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고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일리(一理)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산재사고의 모든 책임을 기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유지하더라도 개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예방이 불가능한 사업장도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무거운 처벌보다는 기업이 안전시스템 점검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21-05-02

대구 롯데몰 착공, 지역경제 기대감 높인다

대구 수성의료지구에 건립될 대구서는 최대 규모가 될 롯데쇼핑타운이 토지매입 7년만에 착공에 들어간다. 롯데는 당초 2014년 수성알파시티의 유통상업시설 용지를 분양받았으나 그룹 내 환경변화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착공을 미뤄오다 최근 5월 중 착공계획을 대구시 측에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이달 중 착공에 들어가면 2025년에는 준공 및 개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에 착공할 롯데몰은 수성의료지구 내 기업유치 활성화뿐 아니라 대구 유통시장의 전반에 걸친 판도 변화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여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다. 롯데몰의 연면적은 25만314㎡ 규모로 대구신세계(21만4천635㎡)보다 매장 면적이 17% 정도가 더 넓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급변하는 쇼핑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신개념 복합쇼핑물로 건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와 롯데몰이 코로나 이후 시대 쇼핑문화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도 관심이다.경제적 측면에서 롯데몰은 대구지역 경제계에 긍·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다.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청은 롯데 쇼핑몰 건립으로 8천여 명의 고용효과가 일어나고 연간 2천만명 이상의 집객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했다. 고용 창출과 유동인구의 증가가 대구산업 전반에 걸쳐 경제적 시너지를 만들어 낼 것이란 예측이다.무엇보다 용지분양이 지지부진한 수성알파시티 내의 의료시설 등에 대한 기업유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또 그 옆에 조성될 법조타운과 함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주변지역의 도시발전 속도가 크게 빨라질 것으로도 짐작이 된다. 도시개발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집객 효과가 큰 대형 쇼핑몰의 등장으로 지역백화점 업계와 재래시장 등 골목상권에 미칠 악영향도 생각할 수 있다. 과거 서울지역 백화점의 지역진출로 지역 유통업계의 몰락이 현실화 된 경험이 있다. 지금도 대구백화점이 프라점을 사수하고 있지만 롯데몰의 등장은 위협이다.자본력과 기술력이 앞선 대형업체의 지역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 외지업체의 지역진출이 지역과 상생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면 이는 얼마든지 지역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롯데몰의 등장이 지역경제 활력의 한 요소로 자리를 잡는다면 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2021-05-02

대구경북행정통합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지난달 29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시·도민 공론 결과에 대한 보고회를 열고 “행정통합 추진시기는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통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 후 중장기 과제로 이어나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공론화위는 행정통합 제약요소로 행정통합 관련 제도적 기반 부재, 시·도민 공감대 형성 부족, 중앙정부 관심 부재와 뒤늦은 대응 등을 꼽았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논의기간을 2개월 연장하기도 했으나 관심을 높이지 못했다는 점도 제약요인으로 들었다. 김태일 공론화위 공동위원장은 “행정통합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통합 의제를 민간주도로 다뤘고, 중앙집권에 대항하는 자치분권 운동으로 전개하면서 지역의 민주주의도 한층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최종결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공론화위 의견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은 시·도민 여론조사에서도 63.7%가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중장기 과제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만큼 ‘속도 조절’이 이 지역 주민들의 주된 여론으로 보면 된다.대구경북행정통합이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공론화위의 지금까지 활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론화위의 축적된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행정통합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에 서 있다”고 밝힌 것은 같은 맥락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행정통합 속도를 늦추는 대신 추진동력을 다시 확보해 보다 안정적으로 시·도민 공론을 형성시켜야 한다.국가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현 상태처럼 수도권으로 집중되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점점 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고 국회 의석이 수도권 위주로 형성되면서 권력이 중앙집중화 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 여실히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더 시급한 것은 대구와 경북이 더 이상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경쟁하거나 싸움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두 지방자치단체는 항상 행정통합을 염두에 두고, 한 몸이 돼서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래야 대구·경북이 수도권 블랙홀에 빠지지 않는다.

2021-05-02

묘비명(墓碑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인물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묘비명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를 묘비에 새긴 글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덤 앞 묘비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 공덕이 많이 새겨진다. 특히 서양의 경우 묘비명이라 해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미리 써놓거나 준비를 하는 관습이 있다. 촌철살인하는 내용도 많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전하는 인생 철학이나 교훈이다.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인 모파상은 남부럽지 않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글을 남겼다.“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번역된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내용이다.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평소 생각을 묘비에 담았다.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말로 괴짜스님다운 글을 남겼다. 누구의 말이든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 생각하면 심오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장례를 마친 정진석 추기경의 무덤 앞에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라는 묘비명이 새겨졌다.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을 사목 목표로 삼았던 정 추기경의 뜻을 기린 글이다. 바지 한 벌로 18년 입을 정도로 검소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장기와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났다. 독선과 분열,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그가 남긴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02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김병수 울릉군수코로나19시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국가적으로 관광사업과 소비가 위축되었고, 울릉군도 예외 없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울릉군은 여러 가지 비전을 품고 있고, 그중 핵심비전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조성’이다. ‘꿈이 있는 친환경섬 건설’이라는 군정 목표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관광자원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대표적으로 ‘해담 길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담길은 울릉도 둘레 길의 이름으로 동해의 맑고 깨끗한 해안과 아름다운 내륙을 동시 감상할 수 있는 울릉도만의 독특한 길이다.해담길 조성사업은 2022년까지 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해 길이 약 40km, 총 8가지 코스로 구성된 걸으면서 힐링하는 ‘걷는 길 개발’ 사업이다.육지의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내륙 및 해안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생태관광 섬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울릉군은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및 홍보 진행 중이다.단체관광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 모습과 달리 커플·신혼부부를 비롯한 가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관광객 위주의 관광상품과 함께, 울릉의 숨겨진 자연관광을 활용한 울릉 힐링로드 등 시대 흐름에 맞는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다.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울릉군은 올 3월 23일 울릉도 특산물에 대해 협업 네트워크 구축 업무협약을 구리농수산물공사와 체결했고,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 및 출하를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여 울릉군 농어가소득 증대에 크게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4월 20일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판매 업체인 현대홈쇼핑과 울릉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현대홈쇼핑 본사에서 체결했고, 현대홈쇼핑이 보유한 다양한 방송채널을 통해 울릉군의 청정 농·수특산물 판매확대 및 홍보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 홈쇼핑은 앞으로 울릉도 1DAY 특집전 기획 생방송 판매·홍보, TV홈쇼핑 상생 프로그램 LIVE 방송 진행, 라이브커머스 쇼핑라이브를 통한 LIVE방송 진행, 각종 매체를 통한 상호 홍보 등을 할 계획이다.특히 서울의 유명 농수산물 시장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을 통해 울릉도의 우수한 특산물을 서울시민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울릉도 농수특산물의 안전적인 팔로를 개척 농어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토록 하겠다.울릉도의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위해 울릉농협과 협력하여 사업비 8천만원으로 ‘울릉산채 선도유지 현장실증 시범사업’을 진행, 산채의 선도유지 저온유통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귀농인을 위한 빈집수리 및 소득지원사업과 축산농가를 위한 축산물 생산·유통기반 조성과 방역지원, 산채재배농가를 위한 인력·농기계보급지원과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통해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농업인 삶의 질을 향상해가고 있다.생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업비 1억원으로 3월~5월 기간 중 생채 수매분에 한해 육·해상 유통물류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지갱이, 명이나물, 우산고로쇠 수액 등 우수한 품질의 울릉 특산품 소비를 증대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겠다.저출산·고령화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울릉군 인구가 감소 추세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구 정책 홍보와 맞춤형 인구교육 등으로 인식 개선을 꾀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하겠다. 정주여건 개선, 출산·양육 지원, 교육·환경 지원을 다양한 사업들로 진행하여 인구 이탈을 방지하고, 내부 인구 증가와 외부 인구 유입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특히, 전입을 장려하기 위해서 ‘귀농인 정착지원 사업’을 진행, 울릉도를 방문한 도시민들에게 울릉군을 삶의 터전으로 홍보, 이를 통해 귀농을 목적으로 전입온 분들께는 농기계 구입 지원, 저장고·모노레일 설치지원, 주택 리모델링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인구 1 만명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1-05-02

고방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다.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 멀리 사는 할머니를 불러오고, 과묵한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자신을 향하게 해 놓고 옹알옹알 시를 뱉어낸다.아이들의 몸은 이야기 가득한 언어의 창고다. 수많은 낱말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한 저장고에서 매주 한 편의 시를 끄집어내 주는 일이 내 몫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도착하기 십 분 전에 미리 칠판에 초성 찾기 할 자음 두 개를 적어준다.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 2학년과 힘이 넘쳐나는 3학년 친구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중력을 발휘한다.낱말을 찾아내는 친구들에게는 ☆을 주는데, 그것을 모아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아이들은 눈과 손에 불을 켠다. 선물이라고 해야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우개, 공깃돌, 퍼즐 같은 천 원이 넘지 않는 가격의 소품이다. 다만 여러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을 받은 세 명이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 받는 영광을 쟁취하려고 온몸을 쓴다. 자신의 몸 속 여러 방에서 낱말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무진장 노력한다.어릴 적 우리 집에는 방이 많았다. 부모님이 쓰시는 안방, 마루를 사이에 두고 갓 시집온 숙모와 삼촌 사이에 남동생이 끼어서 자고 싶어 했던 건넛방. 건넛방과 벽을 사이에 둔 뒷방까지가 안채에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랑채에 기거하셨고 나와 언니는 사랑채 윗방에 지냈다. 식구들이 잠자는 방 말고도 디딜방아가 차지한 방과 소들이 허연 하품을 하는 외양간, 그 옆에는 짚이며 땔감이 가득 쌓인 헛간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기에 우리 집이 최고의 장소였다.그중에 내가 자주 숨어든 곳은 고방이라 불리던 창고였다. 문을 열면 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곡식을 담는 그릇들이다. 내 키보다 높은 시렁에는 채반에 갖가지 나물 말린 것과 계절 과일이 숨겨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 하나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 단지가 둥글둥글 앉았고, 그 위 광주리에는 이름은 분명 있지만 내가 모를 뿐인 나물 말린 것들도 수북이 담겨 있다. 한쪽에는 콩이며 팥이 든 자루가 서로 기대고 있어서 내가 한 귀퉁이에 숨으면 감쪽같아서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그곳은 할머니의 보물창고였다. 손님들 손에 들려온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우리가 한꺼번에 다 먹어치울까 봐 높이 올려두고는 어르고 달랠 때 하나씩 선을 보여주셨다. 내가 몰래 들어가 맛난 걸 찾아내려고 해도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무서운 도깨비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 언니와 같이 들어가 뒤져봐도 어느 단지에 또 어느 상자에 달콤한 과자가 들어있는지 찾아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하지만 고방 주인인 할머니는 들어가자마자 금방 곶감이나 유과를 손에 들고나오셨다. 보기에 엉망으로 뒤섞인 내용물들이 할머니 눈엔 훤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어지러워 보이는 그곳에 할머니는 나름의 법칙으로 곡식과 과일과 달콤이들을 숨겨놓으셨다.아이들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잘도 시를 꺼내놓았다. 그 시들을 수업시간만 음미하고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한 편 한 편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고 싶었다. 교실에서 연필로 쓴 시를 집으로 보내면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휴대폰에 써서 내게로 다시 보내진다. 모은 시를 한 권으로 만드는 게 내 몫이다.아이들의 시집을 편집하느라 한 달을 고스란히 집중했다. 강의가 끝나는 날 하얀 표지의 ‘보물창고’를 받아든 아이들에게 자기 시 한 편씩 낭송하게 했다. 공책이 아닌 시집에 인쇄된 자신의 시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랑또랑했다. 책을 받아본 부모님들이 문자로 전화로 감동을 전해왔다. 아이들의 시가 시인의 시 같다고 까르르 웃어넘기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귀에 와 닿았다. 그 순간 할머니가 고방에서 꺼내주던 과자의 달콤한 향 같은 것이 온몸에 퍼져갔다. 아이들이 나를 그리운 어린 시절로 데려다준다. /김순희(수필가)

2021-05-02

죽비소리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이른 봄꽃이 필 무렵부터 시작하여 산천에 녹음이 짙어진 지금까지 주말마다 대구에 다녀오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일로 가는 먼 길이지만 고속도로 주변은 넘쳐나는 연초록의 물결로 ‘신록예찬’이 절로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이라 이를 매주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다. 돌아오는 길, 무심히 차창 밖을 보다 깜짝 놀랐다. 온통 누렇게 색이 변한 대나무 숲을 만났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도 변함없이 푸름을 자랑함으로써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여 사군자의 하나로 불리는 대나무가 이 초록의 계절에 어찌 저리 되었는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백년에 한 번 핀다는 ‘대 꽃’이 핀 것일까?대나무는 평생에 한 번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여느 식물들과 달리 꽃가루 번식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한다. 더 이상 뿌리로 번식할 수 없을 때 꽃을 피우는데, 그러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 의식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대나무의 죽음이 특별히 장엄한 까닭은 죽음을 무릅쓰고 꽃을 피워 종족보존의 본분을 다하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죽음공부’를 하는 지인이 있다. 죽음이란 것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피해 다니다가 어느 날 막다르고 후미진 곳에서 강도에게 급습 당하듯 맞닥뜨려야 하는 험악한 얼굴이 아니라 가능한 한 ‘살아서’ 죽음의 순간을 실감하고 싶어서라 한다. 그의 지인 중에는 죽음이 완전 소멸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한다.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죽는 걸로 끝이라면 구태여 착하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람답게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고작 몇 십 년 사는 거, 나 위주로 살면 그 뿐이다. 그렇지 않고 잘 죽을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죽음공부다.‘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묘비명을 남기며 모든 이로부터 추앙받던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였다. 각막기증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주고 떠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 미사가 치러진 명동성당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별다른 조각 장식이 없는 삼나무로 짠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만 놓여 있는 소박하여 더욱 엄숙한 장례 미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추모사,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알려주셨다.”처럼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층아파트 불빛을 등지고 한 구비만 돌아들면 산골마을로 변하는 우리 마을의 초입에는 길 좌우로 키 큰 왕대나무들이 즐비한 구간이 있다. 마치 대나무 열병식이나 대나무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이곳을 통과하며 이웃에 사는 선배는 여기가 마치 인간계와 자연계의 경계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그 말이 아니더라도 필자 역시 그곳을 지날 때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전생과 현생, 혹은 현생과 내생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을 느끼곤 한다.군더더기 없이 살기 위해 속을 비운 대나무, 하늘 향해 곧게 자란 성깔 있는 존재, 대쪽 같은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죽비소리 ‘타닥!’, 굽은 등줄기를 내리친다.

2021-05-02

이팝나무 하얀 꽃잔치

윤영대수필가이제 계절의 여왕, 오월이 왔다.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거리두기’라는 사슬에 묶여있는데 계절은 자연의 왕성한 힘을 부추기면서 찬란하게 피었던 벚꽃이랑 봄꽃들을 떨구어내고 봄비에 씻겨 아름답게 단장한 새 얼굴들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있다.길을 지나다 보면 하얀 꽃나무가 아름다운 가로수가 되어 줄지어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이팝나무다. 언제부터인가 가로수로 심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로변이나 마을 길에도 5월이면 하얀 꽃들의 잔치를 즐길 수가 있다. 푸른 연록색 잎 가지에 하얀 꽃송이가 소복소복 쌓여있어서 늦봄에 흰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배고팠던 옛 시절 밥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쌀밥처럼 보여서 ‘이밥’ 나무라 했고 또 입하(立夏)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입하목, 입하나무로 불렀다가 다시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영어로도 하얀 눈꽃(snow flower)이다.입하는 ‘여름에 든다’는 절기이며 보리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의미로 맥량(麥6DBC), 초여름이라는 맹하(孟夏)라고도 하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계절이며, 고추 오이 가지 등 열매채소를 심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흰 쌀밥 꽃, 그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경관을 보고 싶어 흥해향교 숲을 찾는다. 하마비가 서 있는 언덕바지에 주차하고 오르면 태화루의 시원스러운 팔벌림 옆에는 백 년은 넘었을 이팝나무 거목들이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다. 아니, 오월의 여왕이 하얀 비단옷을 입고 환하게 맞이하는 듯하다. 닫혀있는 문을 살포시 밀고 들어서면 명륜당도 고요하고 돌계단을 올라 대성전 뜰에 서니 막 송홧가루 날리기 시작하는 소나무가 묵상하듯 단정하다. 검은 기와지붕 위로 드리운 하얀 이팝나무꽃의 흑과 백, 파란 하늘 아래 울창한 푸른 숲의 청과 녹-이 자연의 어울림은 봄의 여왕이 주는 선물이다.옆에 있는 임허사 절의 독경 소리에 이끌려 좁은 길을 지나 올라서니 상수리나무와 어울려 많은 이팝나무의 흰 꽃들이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 옥성리 이팝나무군락지는 큰나무 26그루가 있어 작년 12월 천연기념물 제56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제일의 군락지다. 그런데 표지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21호, 아직 바뀌지 않았네…. 운동시설과 쉼터 등 깨끗하게 꾸며진 언덕을 이리저리 천천히 걷다가 큰 이팝나무 둥치를 가슴에 안고 귀를 데어보니 조용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어젯밤 사이에 내린 빗방울로 하얀 꽃들은 더욱 얼굴이 곱고,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이팝나무 모습의 미련에 시내 ‘철길숲’공원으로 달려갔다. 철도의 흔적을 따라 길게 조성된 Forail 산책길은 코로나에 지친 시민의 힐링 공간이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쌀밥 꽃들의 하늘거림 아래로 마스크를 쓴 채 가족 나들이하는 모습은 희망이다.5월은 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몸매 고운 오월의 여왕이 하얀 모시옷 입고 너울너울 살풀이춤을 추는 이팝나무 숲길을 걸으며 바이러스의 횡포를 날려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껴보자.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이다. 오월을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자.

2021-05-02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면 몸을 지탱할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걱정남을 위로하는 친구 위로남이 있었다. 이 위로남이 걱정남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하늘에는 공기가 쌓여 있을 뿐이네. 공기가 무너질 리도 없고, 설사 무너진다 해도 다칠 이유가 없네. 우리는 이미 공기 가운데서 움직이며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왜 괜한 걱정을 하나?”“땅은 흙이 쌓여 이루어진 것일세. 사방에 꽉 차있는 흙이 어디로 꺼지겠는가? 저 수많은 사람과 무거운 집, 태산까지도 받쳐주는 대지가 아닌가? 괜한 걱정일랑 말게”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우(杞憂)라는 말이다. ‘기 나라 사람의 걱정’ 다시 말해 쓸데없는 걱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가 임상연구원으로 있었던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조지 월튼(George Walton)의 연구에 의하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한다.유난히 걱정이 많은 분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위의 기 나라 사람처럼 현실적 고통보다 부정적 상상 속의 고통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날 확률이 적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걱정을 많이 한다. 자동차하면 사고, 아이가 학교에서 약간 늦게 오면 유괴, 밤거리하면 강도, 내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 ‘내가 하면 되는 일이 없어’라는 식으로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바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경향이 높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이거 큰 일 났구나.”라고 생각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상상에 의한 공포로 호랑이가 잡아먹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스스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호랑이 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그러나 걱정이 많은 사람은 이런 부정적인 사고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첫째,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기 때문이다.1987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웨그너 (Daniel Wegner) 교수의 실험에서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거야, 걱정은 쓸데없는 거야.”라고 생각할수록 걱정들이 더 많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둘째,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10분만 걱정하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평소 걱정 때문에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고 걱정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걱정을 멈추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그저 걱정만 하자. 단, 걱정을 할 때는 지침이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걱정들을 하나씩 글로 적어보자. 걱정들이 글로 정리되어 옮겨지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쓴 후 차분히 읽어보자. 가능한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의 걱정을 살펴보자. 지금 걱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일들이 실제로 내게 닥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소한 일을 내가 걱정으로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차분히 걱정들을 적고 읽다보면,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걱정이 실제로는 그토록 괴로워해야 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셋째, 걱정 시간이 아닌데도 걱정이 된다면, 걱정의 초점을 다른 것으로 돌리면 된다. 특정한 대안을 떠올려서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초점 전환(focused distraction)’이라고 한다. 특히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에서 생각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감각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보자. 음악 소리에 집중해도 좋고, 아로마 향에 집중해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에 집중해도 좋고, 호흡에 집중해도 좋다. 신체 감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신체 활동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도 좋다. ‘단순 반복 행동’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설거지를 해도 좋고 청소를 해도 좋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해도 좋다.

2021-05-02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 울릉도·독도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애국가의 가사대로 동해물이 마른다면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어떤 모습일까? 독도는 자그마한 돌섬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보는 독도는 해저로부터 높이 약 2천300m에 달하는 거대한 화산체의 정상부일 뿐이다. 약 460만년전 해저 화산분출로 생성된 독도보다 훨씬 뒤늦게 약 250만년전 생성을 시작한 울릉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높이는 987m이지만, 그 실제 높이는 무려 약 3천100m에 다다른다.지난 2012년 12월, 환경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품은 지질학적 가치에 주목해 울릉도·독도와 주변 해역을 제주도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하였다. 2021년 현재, 경북도 2개소(울릉도·독도, 경북동해안)를 포함하여 전국에 13개소의 국가지질공원이 지정되어 있다.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는 이중분화구, 주상절리, 시스택,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과 함께 성인봉 원시림, 알봉, 용출소, 죽도, 관음도, 삼선암, 코끼리바위(공암), 태하해안산책로 및 대풍감, 황토굴, 도동해안산책로, 저동해안산책로, 죽암 몽돌해안, 학포해안, 거북바위 및 향나무자생지, 봉래폭포, 국수바위, 버섯바위, 노인봉, 송곳봉 등 울릉도의 지질명소와 함께 독도에는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등 지질명소가 있다. 그야말로 섬 전체가 지질명소이다.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산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섬 전체가 화산암과 화산쇄설성 퇴적암류로 구성된 독도는 폭발성 화산분출과 동해의 거센 파도에 깎이면서 다양한 화산암층,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이 존재한다.250만 년 전부터 생성을 시작해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분출이 일어난 울릉도는 성인봉, 나리분지(칼데라), 알봉으로 구성된 이중화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 지질학적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성인봉 원시림은 성인봉을 중심으로 나리분지 일대에 넓게 분포한다. 해발 약 360m에 위치한 나리분지는 동서방향으로 약 1.5㎞, 남북방향으로 약 2㎞에 이르는 울릉도의 가장 넓은 평지이다. 울릉도는 전체 면적의 약 67.7%가 해발 200m 이상일 정도로 지형이 매우 가파르다.성인봉 원시림에는 생성이후 육지와 격리된 탓에 섬말나리, 섬바디, 우산고로쇠, 섬백리향, 섬쑥부쟁이, 울릉산마늘(명이) 등 30여종의 울릉도 고유 식물들이 자생한다. 세계 섬 중에서 가장 많은 향상진화 특산식물 보유지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식물 진화 자연실험실이다.울릉도는 단단한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토양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워 식물이 살기에 힘든 땅이었다. 하지만 나리분지 알봉이 생성될 무렵인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화산폭발로 부석들이 울릉도 전 지역을 덮었고 많은 양의 화산쇄설물들이 퇴적되었다. 부석질의 화산쇄설물은 쉽게 풍화되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층을 만들어 오늘날의 원시림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과거 비옥한 산림과 함께 현재는 더덕밭으로 유명한 죽도 또한 마찬가지이다.나리분지의 특징적인 지질구조와 풍부한 적설량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겨울 강수량이 가장 많은 울릉도의 기상 특성은 물이 풍부한 섬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수로 발전하는 곳이 울릉도이기도 하다. 도동항과 저동항을 잇는 해안산책로는 울릉도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묵직한 지질교과서이다. 울릉도 북서쪽에 자리잡은 꼬끼리바위(공암)는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깍이면서 외딴 바위를 만들었으며, 또한 아치형 해식 동굴을 만들었다. 울릉도 북동쪽에 위치한 해안절경인 삼선암 또한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가 파도에 의해 침식되면서 현재의 시스택 구조가 되었다.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2019년 울릉도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울릉도의 관광만족도는 다소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울릉도의 생태자원 가치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 있었다.울릉도의 관광 만족도 개선을 위해서는 생태자원을 기반으로 한 울릉도 고유의 생태관광 프로그램의 적극적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관광객들은 해설사가 동행하여 울릉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관광형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울릉군에서는 20여명의 국가지질공원 해설사를 두고 있으며, 사전 예약제를 통하여 울릉도(독도)의 지질학적 가치와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삶을 알리고 있다.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섬 전체가 야외자연사박물관이요, Eco-Lab (자연생태실험실)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또한 울릉군의 부속섬 독도를 지키는 길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향한 긴 여정도 시작되고 있다.

2021-05-02

포항 ‘땅꺼짐 현상’ 발생한 곳 많아 충격

올들어 새해 첫날 포항시 남구 대송면 철강공단 3단지 내 중앙스틸(주) 공장에서 면적 1천600㎡에 달하는 지반이 2~2.5m 아래로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해 포항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7년 11월 15일 5.4 규모로 발생한 강진 여파로 포항 땅속에서 무슨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토안전관리원이 지난 1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포항전역에서 지반침하 취약지역으로 판단되는 27개 구간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였다. 그저께(28일) 발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27개 구간 중 17개 구간은 지반이 양호했고, 7개 구간은 지반표층만 침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개 구간(13곳)은 ‘공동(空洞·땅꺼짐)발생구간’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북구 장성동 1429-1번지∼양덕동 2234번지 구간에는 모두 10곳의 공동이 몰려있는 것으로 확인돼 포항시가 하수박스 등을 추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포항시는 공동발생구간에 대해서는 즉시 복구작업을 하기로 했다.포항시민들은 지반침하현상이 4년 전에 발생한 지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땅꺼짐 현상이 생기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지진이 나고부터 땅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공사라도 하지만, 없는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북구 장량동 일대에서는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도로가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포항시가 앞으로 지하시설물에 대한 지반탐사 및 안전관리를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땅꺼짐 현상이 발생한 곳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안전조치가 필요하다. 지진전문가들은 “공동화 현상이 지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무른 퇴적암층이 많은 포항 지역이 대규모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리며 이것이 잦은 지반 침하 현상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포항 지역은 깊이 3㎞까지 퇴적암이 쌓여있고, 퇴적암은 굉장히 약해서 지진이 한 번 나면 부서지기 쉽다는 것이다. 만약 땅꺼짐 현상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지진이라면 정부에서 피해주민에 대한 지원을 해 줘야 한다.

202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