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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년 최저임금 공방 스타트…솔로몬의 지혜를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5일 본격 가동돼 심의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가 또 한차례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자·사용자· 공익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는 지난 4월과 5월 한 차례씩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노사 양측이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예년과 마찬가지로 내년 최저임금 협상도 노사 양측의 견해차가 커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 개선을 위해선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민주노총은 다음 달 3일 서울에서 1만명 규모의 노동자대회 개최를 예고했다. 노동계에서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이상 인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사용자위원 간사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2018년과 2019년 2년간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오르며 시장에 가해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발생했다. 중소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이 누적된 충격의 여파에서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인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현 8천720원)으로 오를 경우 일자리가 최소 12만5천개, 최대 30만4천개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이날 회의에서 공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28일부터 6월3일까지 구직자 700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조사’를 한 결과, 구직자 10명 중 6명 이상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낮춰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직자 대부분(80.0%)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염려했다.최저임금은 400여만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한계 중소기업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적정 수준 이상이면 일자리가 위협받고, 그 이하면 노동자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생존권도 보장해야 하겠지만, 임금지급주체인 소상공인과 중소 영세기업의 수용능력, 구직자들의 의견 등을 모두 참작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2021-06-17

변화와 찬스의 차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여야 정치권이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정권탈환을 노리는 제1야당 국민의힘은 정당역사상 초유의 30대 당대표를 뽑아 변화의 새물결을 선도하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친문(親文)이 아닌 비문(非文)에 해당하는 송영길 대표를 뽑아 내로남불을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겠다고 나섰다.여야 정치권의 변화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자로 나서서 “무능한 개혁과 내로남불을 극복하고, 유능한 개혁과 언행일치의 민주당을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겠다”고 했다. 송 대표는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참패를 언급한 뒤 “집값 상승과 조세부담 증가, 정부와 여당 인사의 부동산 관련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지난 5월 2일 전당대회를 통해 변화를 선택했다”면서 “정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당심과 민심이 괴리된 결정적 이유는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의 부족 때문”이라면서 “특정 세력에 주눅 들거나 자기검열에 빠지는 순간, 민주당은 민심과 유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송 대표는 “내로남불 민주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도부는 가슴 아프지만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했다”면서 “수사기관의 조사도 없었고 혐의가 있어 기소가 된 것도 아니었으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넘어 12명 국회의원의 탈당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당 사상 초유의 결단이요, 부동산 부자가 많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국민권익위 조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만한, 결기어린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왔다.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역시 1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혁신의 바람을 몰아, 당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면서 민생과 공정을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먼저 30대 젊은 당대표의 탄생과 청년들의 입당신청 쇄도 등 최근 당내 변화를 설명한 뒤 “변화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라는 국민의 당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난 날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했고, 실력이 모자랐으며, 포용도 부족했다”고 반성과 성찰을 강조한 뒤 “그 바탕 위에 국민의힘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가치, 세대, 지역, 계층을 확장해 나아가겠다”면서 “자유, 책임, 헌신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되살려 가치를 확장하고, 민생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공존과 공정의 토대 위에 세우고, 산업화를 이룩한 세대, 민주화를 쟁취한 세대, 그리고 미래를 주도할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수구·꼴통으로 대변되던 정치권이 바야흐로 변화의 물결속에 몸을 던지는 모양새다. 변화의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된다고 했다.하루하루 변화에 깨어 있으면서 당당히 맞서는 여야 정치권의 변화가 내심 기꺼운 하루다.

2021-06-17

정치판의 새바람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치세의 경륜이란 나이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삼국지의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서 ‘함께 난세를 구하자’고 불러낸 제갈량도 당시 불과 27세였고,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한 것도 30세 이전이었다. 싯다르타는 서른다섯에 득도를 하였고,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경륜을 펼친 것도 삼십대 초반이었다. 중국 위나라의 왕필(王弼)이란 천재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가장 심오하고 난해하다는 ‘도덕경’과 ‘주역’의 주(注)와 약례를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와 덕성이 향상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분별이 흐려지고 완고해지는 사람도 적지가 않다.서른여섯 살의 정치인이 제일 야당의 대표로 선출되어 정치판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 나이에 국회의원 백 명이 넘는 당의 대표가 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고 다른 나라에도 없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도 한번 못 해본 젊은이가 당 대표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삼십대 중반이란 나이가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미심쩍은 것은 그의 나이가 아니라 과연 이 난국을 수월하게 헤쳐나갈 역량과 품성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원이 아닌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인 다수가 그를 지지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대다수 국민들이 당 대표의 경력이 있는 다선의 후보들보다 제일 나이가 어리고 낙선한 경력 밖에 없는 그에게 지지를 보냈는가를 알아야 앞으로 당 운영의 방향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이준석을 선택한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3류 정치에 식상하고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소위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새로움은커녕 구태의연에다 한 술을 더 떠서 오만불손, 파렴치, 무능에 사악하기까지 한 정권에 실망과 낙담을 한 국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당대표 수락연설에서도 밝혔듯이 그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권교체다. 야권을 규합하고 가장 역량 있는 후보를 선출하여 내년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 제일야당 대표로서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잡음과 균열을 어떻게 봉합하고 통일시키는가에 자신과 당의 정치적 성패는 물론 나라의 명운도 달려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당대표로서 이준석의 행보는 전철과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일단 젊은이답게 신선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인습이나 타성에 얽매이지 않는 발랄하고 당돌한 태도도 새로움의 한 요소가 될 것이다. 다만 경쾌함이 경박함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고, 당돌함이 치기나 무례에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다. 젊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열려있다는 것이고, 사람의 그릇은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과 생각을 열어놓고 편견이나 아집이 없이 얼마나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가는 이제부터 두고 볼 일이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기왕 젊은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여망을 동력으로 삼아 당을 쇄신하고 야권을 통합하여 새로운 정치로 불어가는 새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1-06-17

이주일씨의 눈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부산 한 소형아파트 담배 전투 중’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찍은 협조문을 올렸다. 입주자라고 밝힌 이는 “환풍구를 타고 화장실로 담배 냄새가 너무 많이 나고 있다”고 항의하면서 앞으로는 화장실에서 흡연하지 말아달라”고 적었다. 이 협조문 밑에는 반박글이 붙었다. “베란다 욕실은 어디까지나 개인공간이다. 좀 더 고가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라”층간소음과 더불어 아파트에서도 흡연문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크린 골프를 하러 갔다가 각 방에서 나는 담배냄새로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주인 말로는 흡연할 곳을 만들어 놓아도 소용없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데 건강을 망치는 흡연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왜 담배를 피우는가. 필자는 지난 2년간 3명의 친구들을 폐암으로 잃었다. 모두 흡연으로 인한 사망이다. 유명한 학계의 선도적 역할을 했던 친구들이었지만 모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가족들이 오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친구들도 일찍 담배를 끊었어야 한다. 흡연자는 돈을 주고 사망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울고 싶어라’로 히트를 친 이남이 씨도 폐암으로 숨지면서 흡연을 후회하면서 울고 싶었을 것이다. 유명한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금연캠페인에 앞장섰던 모습이 기억난다. TV에 나와서 제발 담배를 끊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주일은 생전 금연광고에 자주 출연하며 금연 캠페인을 펼치는데 앞장섰다. 2002년 월드컵 당시는 휠체어를 타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담배는 일산화탄소와 타르 니코틴과 수십여 가지의 해로운 화학물질로 인하여 몸을 공격한다. 만성저산소증을 일으켜 심장 조임을 느끼거나 걷거나 뛸 때 쉽게 호흡이 힘들어지게 된다. 결국 폐는 서서히 망가져 간다. 폐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암이나 각종 질병에는 흡연이 영향을 미쳐 악화 시킨다.어떤 친구는 담배를 안우피는 데도 최근 폐암 수술을 받았다. 과거 대학원 시절 담배를 엄청 피는 연구실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있으며 간접 흡연의 고통을 겪었고 결국 본인은 담배를 안피우는데도 폐암에 걸린 것이다.간접흡연은 사실상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해롭다. 수많은 간접 흡연의 기회에 우리는 시달리고 있다.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아파트에서. 흡연자들은 간접 흡연자들에겐 사실상 ‘살인자’에 가깝다.아직도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오열이 귀에 쟁쟁하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가족들은 흡연을 수십년 간 말렸을 것이다. 니코틴에서 느껴지는 쾌감만을 즐기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고통을 멀리한 흡연자들은 이제 담배를 끊어야 한다.TV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주일 씨의 눈물을 기억하자. 담배 당장 끊어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2021-06-17

자연의 시간표

양태순수필가 소록소록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숲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숲일지라도 어느 것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식물이 자랐을 높이를 눈대중으로 짐작하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숲은 고요히 키를 키우고 품을 넓힌 탓에 어느 순간에 나무가, 꽃이, 풀이 자랐음이 확 다가온다.사람들이 숲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쉬고 싶어서 오거나 맑은 공기 마시고 건강해지려고 오고, 추억을 쌓기 위해서도 찾는다. 숲을 걸으며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흙탕물이 아니라 밑바닥에 고인 앙금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숲이 주는 푸르름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잡다한 생각들의 뿌리가 오롯이 자신을 향한 채 촉각을 세우는 순간이다.형제들과 제주도 비자림을 찾았다. 먼저 새소리가 반기고 이어 습하고 눅눅한 흙냄새, 뒤를 이어 상큼한 나무 향기가 반겼다. 가슴을 활짝 열고 저 밑바닥까지 숨을 들였다. 잠시 눈을 감고 몸속을 흐르는 기운을 느껴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설렘에 세포들의 기지개가 팽팽했다.안내판에 송이길이 있다. 송이, 송이가 뭘까? 무엇이든 궁금하면 찾아보는 네이버 검색기능을 사용했다. 화산 폭발 시 점토가 고열에 탄 화산석인 돌숯이라고 나왔다. 그냥 흙길 같은데 어디에 송이가 있다는 것인지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발바닥이 우레탄을 밟은 듯 푹신하고 약간 꿀렁거리는 듯했다. 맨발로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 새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눈을 들어 새를 찾아보니 포르르 날아다니는 모양새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눈 가는 곳마다 넓게 펼쳐진 융단에 오월의 싱그러운 색이 물을 들여 놓았다. 좋다, 참 좋다는 감탄사 외에 달리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숲을 찾아온 햇살은 인심이 후한가 보다. 잎과 잎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로 숲에서 숨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고루 빛을 나누어 주었다. 얼개미에 내린 가루처럼 보드라운 기운이 지나간 자리에는 잎들이 반짝이며 짙어가고 바람이 흔드는 소리는 더욱 맑아졌다. 천 년의 비자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숲을 채운 종이 가지가지였다. 나무와 식물에 무지한 나로서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몇 개 없었고 일일이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소리는 단절되어 숲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세울 수 있었다. 서로의 이파리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속삭임과 몸과 몸이 꼬여서 바람이 스며드는 소리, 낮은 키끼리 맞춰보는 화음이 시시각각으로 고막을 적셨다. 그것은 서늘한 청량함으로 마음에 쌓였다.숲에서 만난 비자나무는 생명력이 으뜸이었다. 나무가 부러진 채 누웠는데도 가지에 잎이 달렸다. 금년에 새로 돋은 연한 잎들이 팔랑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끈질기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벼락 맞은 나무란 표지석을 읽고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둘러보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숲길을 걷는 동안 제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들에게 장하다고 박수를 보냈다.숲에서 자라는 것은 다름을 곁눈질하지 않는다. 산 너머에서 자라는 동종의 터전을 기웃거리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웃 종들에게 질투도 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물을 먹고 빛이 부족하면 고개를 약간 틀 뿐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야무지게 하고 자연에 맞서지 않고 꿋꿋하게 내면의 힘을 키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시간표대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깊어간다.자연의 시간표는 순리다. 비자림은 거슬러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욕심을 돌아보게 만든다. 계절을 무시하는 하우스 안의 나물과 과일들이 식탁으로 배달되는 현재를 아무런 저항이 없이 받아들여도 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하여 쓸데없는 일이란 이름으로 묶인 일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작업이 옳은 것인지 물어본다.천 년의 시간을 견뎌 온 숲, 비자림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물어본다. 스스로 풀어야 할 질문지를 받아든 손이 떨린다.

2021-06-16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사람은 살면서 통과의례를 여럿 치른다. 관례, 혼례, 상례, 제례 그리고 각종 의식 등인데, 의례마다 나름의 절차가 있다. 절차는 의식에 의미를 더하거나 참가자의 마음을 담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행위는 상징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치르는 의복과 도구를 보면 인간의 기원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상례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이다. 다른 의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주가 되는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는 점이다. 망자는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노래할 수도 없다. 춤을 출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다. 자신을 위한 의식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례는 남은 자들의 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상여는 상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망자를 장지까지 모시는 도구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에 타고 가는 가마이다. 저승으로 가는 길만큼은 대궐 같은 집에 꽃가마를 태워주겠다는, 남은 자가 못다한 슬픈 의지의 표현이다. 이렇듯 상여에는 많은 장식물이 달린다.상주는 형편에 따라 상여를 2, 3층으로 올려 누각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상여 맨 꼭대기에는 청룡, 황룡으로 용마루를 올렸다. 용마루 중앙에 해태를 탄 인물상을 만들어 장식했는데, 이는 삼천 년을 산다는 삼천갑자 동방삭이다. 동방삭은 저승사자로 망자를 좋은 곳으로 모시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용마루 위에는 꼭두, 동자 동녀, 시종, 시녀 등을 올렸다. 극락조, 봉황새, 도깨비 등도 그려 넣었다. 이들은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고 망자가 가는 길을 보필한다.인물꼭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과 재주를 부리는 관대꼭두가 있다. 악공은 대금, 괭과리, 소고, 나발, 바라를 들고 있는 모형이다. 관대꼭두는 재인으로 재주를 넘거나 익살스러운 동작으로 사람을 웃기며 풍악을 맡거나 가창을 하는 사람 모형이다. 인물 외에 동물꼭두도 있다. 새나 짐승인데, 닭은 새벽을 알려주기 때문에 음귀를 쫓는 역할이며, 닭볏은 벼슬을 상징한다.상여는 일련의 행렬이 있다. 방상씨(方相氏)가 맨 앞에서 귀신을 쫓고 영구를 인도한다. 다음에는 명정(銘旌)으로, 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관직·성씨를 기록한 깃발이다. 이어서 혼을 모시는 가마인 영여가 따르고, 그 뒤를 축문을 읽는 축관(祝官)이 공포(功布)를 들고 따른다. 공포는 관(棺)을 묻을 때, 관을 닦는 삼베 헝겊이다. 뒤를 이어 상여가 가고 좌우에 삽(7FE3)이 나란히 간다. 삽은 사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염원을 담은, 나무로 만든 부채이다, 맨 뒤에 상주와 빈객이 길게 따른다.“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랏차 ~ 어호우북망산천 가는 길에 미련일랑 다 놓고 가소, 어허야 ~ 데헤야”상여소리는 요령잡이가 선창하면(메김소리) 상여꾼이 후렴으로 응답한다(뒷소리). 가사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망자에 따라 즉흥으로 지어 불렀다.상여는 가다가 서기를 반복한다. 다리를 만나면 또 멈추고, 보내는 사람은 차마 못 보내, 떠나는 망자는 차마 못 떠나, 장지까지 그렇게 가다사 서면서 서로 이별의 시간을 가진다.용마루 - 상여 맨 꼭대기에서 앞뒤를 가로지르는 나무.용수판 - 용마루 앞과 뒤를 받치는 판.병아리못 - 머리가 병아리 모양의 나무 못.상여꽂이새 - 상여에 꽂는 새 모양의 장식.앞소리꾼 - 선소리에서 메김소리를 메기는 사람. 주로 요령잡이가 맡는다.요령잡이 - 상여가 나갈 때 요령을 들고 가는 사람.메김소리 - 노래를 주고받을 때 한 편이 먼저 부르는 소리.뒷소리 - 메김소리를 받아 부르는 소리.자진상여소리 - 장지에 거의 다 와서 산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소리.달구소리 - 하관 뒤에 무덤을 다지면서 부르는 소리.달구질(회다지) - 무덤 위에 흙을 쌓고 발로 밟아 다지는 일.상주가 취토하면 석회를 섞은 흙을 한 자쯤 채우고는 다진다. 보통 3번 내지 5번 정도 행한다. 상두꾼들이 상여 맬 때 썼던 연추대나 대나무를 가지고 선소리꾼의 소리에 발을 맞추며 돌면서 봉토를 다진다. 다지는 발의 박자에 맞춰 달구소리를 불렀다. 달구질은 봉분에 나무뿌리나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다지는 행위지만, 삶의 애증도 미련도 다 내려놓고 가라는 기원도 들어있다.요즘 장례식장 분위기를 보면 슬픔을 억누르고 할 말을 참는다. 곡소리도 듣기 어렵다. 하지만 전통 장례는 반대이다. 슬픔을 표출하고 할 말을 한다. 못다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가슴도 친다. 문상객도 상주와 가족의 슬픔을 부추겨 마음껏 울게 한다. 그래야 남은 자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린다. 그러고 보면 전통 상례가 더 인간적이다.전통 상례는 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망자의 다음세상을 축원하는 종합예술이었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6-16

대한민국, 국가브랜딩이 필요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카리브해의 작은 섬,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령이다. 멋진 풍광과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주변에는 플로리다, 쿠바, 아이티와 자메이카,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수두룩하였다. 홍보 책임을 떠맡은 광고인 데이비드오길비(David Ogilvy)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 그가 도출해낸 푸에르토리코의 강점은 의외로 문화였다. 세기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zals)가 그곳에 살았던 기억을 찾아내었다. 광고슬로건 ‘푸에르토리코, 그냥 멋진 해변만이 아닌(Puerto Rico, Not Just a Beautiful Beach.)’을 도출한 것이다.필자의 프로젝트과목에 클라이언트로 참여한 ‘주한콜롬비아대사관’은 한국인들에게 콜롬비아를 어떻게 알려야 하겠는지 도와달라는 주문을 학생들에게 과감하게 하였다.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나라, 콜롬비아를 한국인들의 마음에 심기 위하여 학생들이 학기를 열심히 달렸다. 상황을 분석하고 메시지를 고안하며 슬로건을 도출하고 실행계획을 다듬으면서 디지털과 온라인은 물론 전통미디어를 활용할 기획아이디어를 만들고 있다. 한동대를 방문하였던 카이자 로세로(Juan Carlos Caiza Rosero) 주한콜롬비아 대사는 본국 홍보를 위한 학생들의 결과물을 기대하고 있다. 나라를 알리는 일에도 브랜딩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대한민국은 어떤가. 세상을 얼어붙게 했던 팬데믹은 백신 접종과 함께 서서히 물러갈 모양이다. G7 회담을 비롯한 세계무대에서 나라는 선진국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세상은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기업이 좋은 물건을 팔아도 업체가 하는 일과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특별한 경영수단을 필요로 한다. 브랜딩(Branding). 대한민국이 좋은 모습을 여러 가닥으로 가지고 있지만,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은 또 다른 수준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나라 간 통행과 교류가 활발해 지면 관광과 여행은 국가경영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산업영역이 될 터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인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마음을 사로잡을 ‘국가브랜딩’이 긴요하게 요청되는 바이다.국가경쟁력과는 별도로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일을 전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사이몬앤홀트(Simon Anholt)가 개발한 ‘좋은나라지표(Good Country Index)’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을 위하여 끼친 기여도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겼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은 28위, 미국 38위, 중국 60위 등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순위는 아마도 조정되지 않을까 싶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공존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의 모습이 세계인의 인식 가운데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브랜딩에 착수해야 한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하여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많은 것을 이룬 대한민국이 국가이미지브랜딩에 나서야 한다.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알리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2021-06-16

밈 이코노미

밈(Meme)은 원래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한 용어로,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2차 창작물이나 패러디물 또는 특정 요인에 따른 유행을 통칭하는 개념이다.밈 이코노미는 주식과 암호화폐시장, 유통업계에서 일어나는 밈 현상을 가리킨다. 밈 주식 열풍의 주역은 영화 체인 업체 AMC엔터테인먼트다. 지난 6월 2일 AMC 주가는 하루 만에 95.22% 폭등해 주당 62.55달러까치 치솟았다. 6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주가가 무려 30배 넘게 상승했다. 생활용품 업체 베드베스비욘드,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 블랙베리, 패스트푸드 체인점 웬디스 등도 밈 주식으로 떠올랐다. 밈 주식의 가장 큰 특징은 주가 급등을 설명할 수 있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밈 주식은 개인투자자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느냐가 주가 급등 여부를 결정한다. 암호화폐 시장에선 ‘밈 코인’ 투자 열풍이다. 밈 코인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밈이나 이슈를 반영해 암호화폐로 발행한 것이다. 밈 코인은 ‘도지코인(DOGE)’이 대표적이다. 도지코인은 애초에 별다른 기능 없이 ‘재미’만을 위해 탄생한 코인으로 개발자 스스로도 ‘농담 화폐(joke currency)’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지난 5월 연초대비 140배 이상 급등했다.유통업계에서도 밈 제품이 인기다. 농심이 지난해 가수 비의 노래 ‘깡’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자 비를 CF모델로 새우깡 광고를 내보냈다. 결과는 대성공. 농심은 지난해 깡 스낵 5종의 연간 매출만 1천억원을 넘겼다. 무언가에 거대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밈이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밈 이코노미는 ‘관심은 상품’이란 말로 귀결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16

신공항 연계 국제도시화 전략 경북 미래 달렸다

경북도가 대구경북 신공항 연계 글로벌 뉴플랜 기본구상 및 국제화·국제도시화·국제도시계획수립 연구용역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도는 연구 용역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 종합프로젝트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통합신공항 시대에 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4차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동과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현재 대구경북이 추진 중인 신공항의 글로벌 역할이 커질 것이란 판단에 따른 구상이다. 또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독자적인 영역도 확대된다고 보고 글로벌 게이트인 국제공항 건설을 경북 발전의 호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경북도는 이와 관련, 15일 신공항 연계 글로벌 뉴플랜 자문회의도 도청에서 개최했다. 국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산업연구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 이 자리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도 신공항 건립은 경북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는데 의견의 같이하고, 이에 맞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했다.전문가들은 “교통물류 관광의 대표도시로 발전할 기회니 잘 활용해야 한다” “지리적 여건과 경북이 보유한 경제적.문화적 자원을 연계해 신공항 국제화 전략을 수립하라”고 주문했다.4차산업 혁명시대가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인 4차산업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무인항공기, 무인자동차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를 불러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게이트인 국제공항은 지방정부의 경쟁력을 강화할 핵심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대구와 경북은 통합 신공항으로 국제화 기반과 인프라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역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발생할 도심항공교통(UAM) 산업 같은 것은 지역에서 일어날 부차 산업의 효과를 말해 준다. 경북도가 구상하는 신공항 중심의 국제도시화 전략은 준비에 따라 지역의 미래운명을 바꿀 만큼의 폭발력 있는 구상이다. 어떻게 구상하느냐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용역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추이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국내 공항 간 경쟁에서도 반드시 앞서는 기획이 나와야 한다. 지역의 미래는 신공항의 전략적 추구에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2021-06-16

공직사회 ‘워라밸 문화’ 부작용 많다니 걱정

공직사회의 ‘워라밸(일가정 양립)’ 문화가 일선 시·군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일반화되고 있어 자치단체 인재양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가 공직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포항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박희정 의원은 지난 15일 집행부를 상대로 한 사무감사에서 공직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워라밸 문화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박 의원은 “젊은 공무원들이 ‘저녁있는 삶’을 추구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삶이 윤택해질지 몰라도 포항시 조직으로 봤을 때는 좋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다”고 전제하며, “공무원들이 일 많은 부서를 기피하고 승진도 외면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결국 포항시 인재풀이 빈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MZ세대 공무원들 사이에서 성과나 승진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일 많은 부서를 기피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으니, 집행부에서 인재양성을 위해서라도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라는 주문이다. 집행부 측은 “능력이 뛰어나거나 조직에 헌신하는 직원의 수가 적다보니 회전문 인사가 불가피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직원에 대해서는 역량을 더욱 계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음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찾아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점진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답변했다.젊은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성공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공직 사회 분위기다. 조직 논리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오랜 관료문화인 권위주의와 서열 문화가 흔들리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워라밸 문화가 일 안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선 곤란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인사제도를 잘 활용해서 워라밸 문화가 조직운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정년이 보장된다는 점을 이용해 나태한 생각을 하는 것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2021-06-16

젊은 교육 리더가 온다면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이 선생,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지인이 한 말이다. 늘 긍정적인 지인은 필자와 알고 지낸 20년 동안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노기(怒氣) 띤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아니, 아이가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갔는데 말입니다. 아이가 집에 와서 하는 말이….!”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적이 흘렀다. 학교라는 말에 필자의 긴장감은 급상승했다. 정적이 좀 더 흐르고, 뭔가를 결심한 듯한 심호흡 소리가 지나고 지인이 말을 이었다.“늦은 시간에 다짜고짜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정말 요즘 학교가 하는 일이 뭡니까?”저녁 교육활동을 모두 끝내고 학생들이 기숙사로 간 다음이라 교무실에서 조금은 편한 자세로 업무를 마무리하던 필자는 전화 받는 자세부터 바로 했다.“이 선생, 아직도 학교는 옛날 시간에 머물러 있는 모양입니다. 사회는 참 빠르게 변하는데 말입니다. 21세기에 아직도 교문에서 교복 단속합니까? 코로나가 좀 나아졌나 봐요! 물론 학생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지 않을까요?”지인은 필자보다 교육계에 훨씬 더 호의적인 사람이다. 필자가 교육청이나 교육부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면 좀 더 생각해보라고 필자를 늘 다독이는 지인이었다.“아이가 3주 만에 학교에 갔는데, 학교에서는 교복 단속부터 했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건강보다 교복 규정이 더 중요한가 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로 등교한 학생들을 교문에서부터 범인 검문하듯 하면 안 되지요.”지인의 말을 듣는 순간 1980년대 교문 등교지도 모습이 그려졌다. 살벌한 모습, 이치에는 전혀 맞지 않은 모습! 하지만 그때 학생들은 그것을 이해했다. 왜냐면 학교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 당시 학교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희망 공간이었으니까!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생에게 학교는 더이상 어떤 가치도 없는 곳이다. 그냥 가라고 하니까 부모 눈치 보면서 겨우 다녀 주는 것이 학교다. 그런 학교가 학생을 오로지 통제만 하려고 하니, 학생의 분노만 높이고 있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학교와 기성세대다.제 버릇 남 못 준다는 관용적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아직도 권위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갈수록 학교는 그 몹쓸 권위를 절대 권력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니 가장 젊어져야 할 학교가 가장 늙어 갈 수밖에 없다. 박물관에나 가야 할 교육이 아직도 자기가 최고라고 행세하고 있으니 문제도 이런 문제가 어디 있을까!“이 선생, 헌정사상 첫 30대 당 대표가 선출되었다고 정치권은 변화와 변혁의 기대로 가득합니다. 교육계도 젊은 교육 리더가 나오면 좀 나아질까요?” “….!”

2021-06-16

민주당은 ‘조국의 시간’과 결별해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해 조국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검찰이 조국 장관의 자택을 압색하는 희대의 장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결국 검찰 개혁을 선도했던 조국 장관은 자녀입시와 주변 비리 의혹으로 사퇴하였다. 후임 추미애 법무장관의 기용과 윤 총장의 불편한 동거는 또 다시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윤석열 총장도 임기 몇 개월을 앞두고 ‘정의와 상식’이 사라진 정권을 비판하면서 사퇴하고 말았다. 박범계 법무장관 취임 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검찰과 개혁을 서두르는 정권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지난 주 조국 교수는 ‘조국의 시간’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가족의 피에 펜으로 써 내려간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소개했다. 이 책은 조국의 공직시절, 자신과 관련된 억울했던 사연을 소상히 담고 있다. 이 책에 대해 야당은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전 법무장관이 자신의 입장을 변명만 한다고 비판적이다. 특히 자신과 가족의 재판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저서 출간은 매우 적절치 않는 처사라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조국의 책은 ‘악성 자아도취’형 고백서이며,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조국의 입장만 확대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집권 여당의 입장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송영길 대표는 지난주 ‘조국 문제’에 관하여 고민 끝에 사과했다. 이 나라의 권력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스펙 쌓기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상처로 남음을 사과했다. 일부 여권 대선 주자 중에는 친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조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다. 송 대표는 회견에서 조국 가족의 수사와 똑같은 잣대로 윤석열 가족을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권의 비문 측에서는 조국문제를 재론치 않고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 당이 전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결국 조국의 저서가 집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치 않고 오히려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된 시점에서 그의 저서 출간은 당내의 친문과 비문의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친문 강경세력은 조국에 대한 비판은 반개혁적이라는 프레임에 젖어 있다. 그에 비해 비문 측은 조국과 결별해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작심한 조국 비판은 경고장 수령 후 사라져 버렸다.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살려면 조국과는 결별해야 한다.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조국은 민주당이 자신을 밟고 전진하라고 요구하지만 당이 그와 연계할수록 대선구도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조국은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면서도 이제는 정권의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조국의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욕구는 그 가족관련 비리로 여지없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친문 핵심 양정철 원장까지 ‘조국을 털어내고, 문 대통령을 넘어야 재집권 할 수 있다’고 까지 했겠는가. 아무래도 조국은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 출간보다 ‘인내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을 것이다.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든 학자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2021-06-16

개선으로 거듭나는 기업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의 일생은 배움과 고침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며 걸음마를 배우고, 자라나면서 학습과 교육을 통해 예절과 도덕을 익히며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침이다. 고침은 잘못된 것이나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실수한 것을 일깨우고 고쳐주는 것이다. 육아기나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의 잔소리 같은 말씀은 그만큼 자식이 잘 되고 바르기를 원해서일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충고와 훈계를 통해 고쳐지고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난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쳐 올바르고 착하게 됨을 이르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잘못된 언행이나 습관을 바로잡아 자신의 인격과 행동에 도움을 주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고침은 분명 필요하고 당연하며 성장의 중요한 맥락이 될 것이다. 개인과 사회적인 적용이 이러할진대, 기업체에서의 개선은 성장동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기업(企業)은 영리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로, 어원적인 의미로는 ‘사람(人)이 일(業)로 머무른다(止)’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이 기업에 계속적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회사가 이익을 창출하여 일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경제적인 부분과 일을 통한 자신의 성취가 결부되는 것 등일 것이다. 그에 이르기 위해서 기업체는 이윤창출을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과 비전이 있어야 하며, 개인은 회사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역할과 사명을 다해 나갈 때 공동의 발전과 미래를 추구해 나갈 수 있다. 그 밑바탕에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개선’이 있다.그러나 필자가 17여년간 수많은 기업의 지도, 컨설팅한 경험으로 비춰볼 때 개선의 의미와 목표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꾸준하게 지속하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쉼없이 개선하고 혁신한다는 기업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기적이나 형식적인 활동으로 전락하기 일쑤이다. 기업은 재료를 투입하여 여러 공정을 거쳐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만드는 ‘제품’이 대상이고 주체는 ‘사람’이며 설비가 도구인데, 이 대상과 주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는지가 방법이다.생산현장의 주체인 사람이 최우선시 되는 개선이 관건이다. 개선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간편하게’이며 안전 확보와 피로의 경감이 중요하다. 그리고 ‘좋게’이며 생산대상에 대한 품질의 향상이다. 또한 ‘빠르게’이며 생산시간의 단축이다. 아울러 ‘싸게’이며 원가절감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개선목표는 시간단축을 위해 ‘피로’나 ‘품질’이 간과되어서도 안되고 또 ‘원가절감’을 위해 노동을 강화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사람을 중심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작업현장 구축’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개선활동을 추진한다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기약할 수가 있다. 간편하게, 좋게, 빠르게, 싸게라는 4대 목표로 현장의 개선활동을 정착시켜 나갈 때, 기업운영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가 만족하는 영속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2021-06-15

버림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애초 보름 예정으로 시작한 집수리 공사가 한 달을 넘기게 되었다. 2층 베란다에 창유리 끼우고, 들뜬 외벽 보강 정도 생각했는데, 7년 넘긴 목조주택은 곳곳에서 사람의 손을 부르고 있었다. 하기야 시간과 더불어 쇠락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잠시 생각한다.공사를 지휘하는 박 대목(大木)은 마당의 조경도 손보았으면 한다. 주밀(綢密)하게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가 분위기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 나는 왕벚나무를 전지한다. 벌써 몇 차례 가지를 쳐냈으나, 왕성한 번식욕과 과시욕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이다.대문 좌우에 번성한 황매와 장미 그리고 조팝나무에도 전지가위가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쓰지 않는 닭장이 눈에 거슬린다. 닭장 거주자였던 청계 9마리는 재작년 전남대 교환교수로 나가기 전에 이웃에게 넘겨주었다. 빈 닭장은 창고로 사용해왔던 터다. 그것이 거슬려 철거하기로 한다. 여분의 공간이 생겨난 마당이 한결 널찍하고 시원하다.내부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오랜 세월 입지도 쓰지도 않는 물건이 지천으로 넘쳐났다.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들여다보고 버리기로 한다. 아쉬울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 그렇게 버리자고 마음먹고 정리하기 시작하니 일곱 부대가 쉽게 나온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었으나, 따로 살았던 사물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퇴락한 추억과 완전하게 작별한 기분이다.물건을 정리하다 든 생각은 채움보다 버림이 어렵고 쓸모 있다는 게다. 이 물건이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누가 주었는지, 언제 받았는지, 무슨 쓸모가 있는지 가물가물한 사물의 연이은 행렬. 다용도실과 옷장, 책상과 장식장, 주방에서 나온 물건들에 담긴 나의 다채로운 욕망은 찬란하되 누추한 것이었다. 처연한 인간의 탐욕이여!덕분에 오래 묵은 과실주와 안 쓰던 물품이 본연의 자리를 꿰차고 의젓하게 앉았다. 더러는 돌아보고, 더러는 살펴서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옛것이 오래도록 자리를 차지하면 새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버려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자리 잡고 활동을 개시할 수 있을 터다.우리 내면의 오래되고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도 오래된 물건과 매한가지다. 반성과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행동과 사유는 인간의 생기와 미래기획을 좀먹는다. 어제와 그제처럼 영위되는 오늘과 내일의 삶은 짙게 낀 이끼처럼 눅눅하고 축축하기 마련이다. 버리지 않은 혹은 버리지 못한 물건은 우리의 견고한 자기방어와 관련이 있다.시간과 더불어 축적된 자신만의 생활방식은 안전하고 아늑하며 편리하다. 그것을 매너리즘이라 한다. 매너리즘은 낡고 둔탁하지만, 익숙한 옷이나 물건처럼 우리를 아늑하게 인도한다. 그런 평안함과 익숙함이 우리를 타성과 습관의 눅눅한 늪지대로 인도한다. 거기서 우리는 환경과 습속의 수인(囚人)이 되어 사멸의 길에 접어든다. 버릴 것은 버릴 일이다!

2021-06-15

영호남 지방정부 간 협력의 길 더 넓혀라

영호남 8개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협력회의가 14일 경북도청에서 열렸다. 이날 시도지사들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10대 분야 공동대응 성명서를 채택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영호남 지방정부가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결의했다.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지역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지원 △국세와 지방세 구조개선 △관광개발 사업 국가계획 반영 △지방소멸 위기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광역철도 8개 노선과 광역도로망 3개 노선의 구축 등을 중앙 정부에 촉구했다. 또 수도권 중심체제와 지방소멸위기 극복방안으로 권역별로 추진하고 있는 메가시티 구상이 국가균형발전 과제로 진행되도록 공동 대응하고 이와 관련한 특별법의 개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수도권은 인구가 몰려갈수록 과밀화 되고 있는 반면 지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멸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아주 비정상적인 국토 불균형의 현실이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럼에도 지방정부 단체장이 만나 이처럼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말로는 국가 균형발전을 외치지만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문재인 정부 와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수도권 인구는 더 늘었다. 수도권 규제에도 SK 하이닉스 같은 대형 프로젝트 사업은 수도권에만 집중된다. 지금대로라면 지방은 예측대로 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뻔하다.영호남 지역 간 유대와 상생협력을 위해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가 만들어진 것이 1998년도다. 이번이 벌써 16번째 회의다. 당초 상호협력을 목적으로 했던 모임이 지금은 협력보다 공동대응 쪽으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이번 성명에서 보듯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내용들이 시도지사 협력회의의 주된 결론이다. 그만큼 지방정부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뜻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할 정도로 긴박해진 것이다.이번에 의제로 올라온 대구-광주 간 달빛내륙철도 건설은 벌써 여러 번 영호남 단체장들이 정부에 건의한 내용이다. 이번에 채택된 과제 가운데 국토균형발전과 관련되지 않은 내용은 없다. 지방의 심각한 현실을 알리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는 더 활성화돼야 한다.

2021-06-15

무영당 백화점

현재 대구 중부경찰서에서 서성로로 이어지는 대구 중구 서문로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만 해도 대구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경북도청이 있고 헌병대, 조선식산은행, 대구우체국 등이 밀집해 있었으며 서성로 쪽으로는 상업 기능이 발달한 건물들이 즐비했다.1937년 이곳에 세워진 무영당(茂英堂)은 조선인이 지은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다. 건물주 이근무는 개성에서 대구로 내려와 문구 등을 팔아 돈을 번 거상이다. 무영당은 자신의 이름 가운데 무성할 무(茂)자를 따와 나무처럼 번창하라는 기원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1932년 건립된 이비시야 백화점과 1934년 건립된 미나까이 백화점과 더불어 무영당은 당시 대구지역 3대 백화점의 하나였다.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져 조선사람들이 많이 애용했다. 특히 조선의 지식인과 예술가 등이 모여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많이 활용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 점주 이근무는 조선의 청년들이 원하는 책들을 구입해 전달하고 그들의 정신적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5층 규모의 무영당은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식 빌딩 개념이 도입된 건물이다. 당시 건물로서는 대형화된 것과 콘크리트식 건축, 흰색 타일 마감, 원형창 등 시대적 상황이 잘 반영된 건물로 현재 평가되고 있다. 근대기 지역의 대표적 상업시설로 평가받고 있었으나 철거 직전까지 갔던 것을 대구시가 가까스로 매입해 보존하게 된 건물이다.대구도시공사가 근대건축물 무영당을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시민공간으로 되돌려주는 프로젝트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대구의 역사성을 부각시키고 시민들이 역사 속 공간에서 문화와 관광을 즐길 수 있게끔 할 계획이라하니 기대를 한번 해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21-06-15

동해안시대 열 경북 동부청사 기공식 환영한다

경북도가 어제(15일) 포항시 흥해읍 이인리 경제자유구역청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현지에서 경북도 동부청사 기공식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기공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계속돼 지금까지 행사가 연기됐다. 경북도 동남권 시·군에서는 그동안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가 ‘제2의 경북도청’ 역할을 하려면 이에 걸맞는 청사와 조직·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총 31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건설되는 경북도 동부청사는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내 3만3천㎡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2023년 1월 준공될 예정이다. 환동해지역본부 청사는 지난 2018년 1월 포항테크노파크 2벤처동(남구 지곡동)에서 출발했다. 2019년 5월부터는 도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옛 포항용흥중학교에 임시로 이전해 있는 상태다. 현재 본부장 아래 2국 1실 6과 체제로 113명이 근무하고 있다. 환동해지역본부는 지금도 경북도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경북도 동부청사 입주와 함께 기능이 확대되면 해양수산산업, 해양신산업, 원자력 산업과 같은 기존 산업을 잘 확장시키면서,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총력을 쏟을 것을 기대한다. 사실 지금까지 동해안은 남·서해안과 비교해 다양한 국책사업에서 소외돼 왔다. 예를들어 남·서해안은 수도권과 고속도로·고속전철을 통해 연결돼 동해안과 비교되지 않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반면 동해안의 경우 부산에서 속초를 잇는 총연장 389㎞ 동해고속도로가 포항시가지에서 끊겨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동해고속도로를 완성시킬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 사업은 동해안지역 지자체의 오랜 숙원이지만 정부에서 외면하고 있다.앞으로 경북도는 강원도와 협의체를 잘 가동해서 국토개발을 L자형에서 U자형으로 끌어와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서해안과 남해안을 비교하면서 동해안의 낙후 정도를 호소하는 전략으로서는 정부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경북도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가능성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그 중심에 어제 기공식을 가진 경북도 동부청사가 있어야 한다.

2021-06-15

조급한 빨리빨리, 역동적인 빨리빨리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슴슴한 겨울무 깎아 먹다가 / 느닷없이 장다리꽃 그리며 / 또다시 마음 바꾸는 마음이여 // 지친 꽃묶음 한 구비마다 내던지고 / 비척비척 일어서는 마음의, / 비천한 관성이여 /비천한 빠름이여.”한영옥 시인의 시 ‘비천한 빠름이여’(문학동네, 2001)의 3연과 4연이다. 시인은 양귀비꽃의 피고 짐(1연)보다 계절의 바뀜(2연)보다 빠른, 사랑 또는 마음의 바뀜을 ‘비천한 관성, 비천한 빠름’이라고 자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사랑이, 마음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흔히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성급함을 꼽는다.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낸 ‘한국인코드’라는 책에서 10가지 한국인의 속성 또는 코드 중 하나로 ‘빨리빨리’를 들면서 이 속성은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빨리빨리 정신은 현란하게 드러난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설치된 건물에서는 일단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죄다 누르고 기다렸다가 가장 빨리 온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힘버튼을 먼저 누르는 것이 보통의 우리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둘러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주는 여유나 배려는 보기 쉽지 않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빨리 접하고 익히는 단어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하니 외국인들에게도 빨리빨리는 전염력이 큰, 우리의 속성인가 보다.‘장밋빛 인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빠담빠담’을 패러디해서 버스커버스커가 노래한 2012년의 KT 기업광고노래 ‘빠름빠름빠름’ 역시 인터넷 속도의 빠름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 싶은 로켓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는 택배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가운데 택배기사들의 과로로 인한 죽음에 우리들의 조급함은 책임이 없을까? 18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의 붕괴 사고 또한 싼 값에 빨리 철거를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니 이 또한 ’비천한 빠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작년 한 해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음으로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은 한껏 올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는 백신 접종률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조하다고 방역당국이 정치권과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빨리빨리는 백신 접종의 속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게 시작된 접종이었지만 6월 15일 낮 2시30분 현재 1차 접종자의 수가 누적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체 인구(작년 12월 기준 5천134만9천116명) 대비 25.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월 26일 시작된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은 넉 달도 채 되지 않아 정부의 상반기 접종 목표를 15일 앞당겨 달성했다.짧은 기간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백신접종에서도 역동적인 빨리빨리의 나라임에 분명하다.그래도, 조금 여유 있게 가면 어떨까?

2021-06-15

왕궁 건물지를 장식한 신라 기와의 정수

기와란 목조건물 지붕의 누수와 부식을 방지하고 건물의 치장을 위해 점토를 틀에 넣어 형태를 만들고 가마에 구워 만든 건축 재료입니다. 지붕은 수키와와 암키와를 이어 덮고 처마에는 수키와와 암키와 끝에 연꽃, 당초, 보상화, 귀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을 부착한 수막새와 암막새를 장식합니다. 마루는 마루를 쌓아올리는 적새기와, 마루 밑의 기와골을 막는 착고기와, 서까래를 덮는 서까래기와, 추녀 밑 네모난 서까래에 사용한 사래기와, 마루 끝에 귀면기와와 용마루 양쪽 끝에는 치미를 배치하여 지붕을 치장합니다.삼국시대 기와건물은 왕궁, 관청, 사찰 등 국가적인 용도의 건물이나 특수계층의 주거건물 등 국가의 주도하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수막새나 치미 등 특수 용도의 기와 사용을 통해 건물 권위의 높고 낮음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의 왕궁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정궁인 월성, 동서 200m 남북 180m 규모의 대형 석축연못의 정원시설과 동궁과 관련된 복합시설이 조성되며 월지(月池)명 유물, 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세택(洗宅)명 목간, 용왕신심(龍王辛審)명 토기 등 동궁과 관련된 유물이 다량 출토되는 동궁과 월지, 우물 내부에서 ‘남궁지인(南宮之印)’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남궁으로 비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의 정북방향에 위치하고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전각과 회랑의 건물 배치로 보아 북궁으로 비정되는 성동동 전랑지가 있습니다.또한 삼국시대에는 월성을 정궁으로 사용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과 첨성대 사이 공간에 위치한 회랑식 건물지군 일대까지 왕궁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월성은 신라의 최고지배계층이 사용한 왕궁입니다. 왕궁 축조와 관련된 문헌기록으로는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라는 기사가 확인되며, 실제로 월성에서 ‘在城’명 기와가 수습되기도 합니다.월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대에 왕궁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 전반부터 신라가 폐망하는 10세기 전반까지 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여러 차례에 걸쳐 건립·중건된 것으로 확인되고, 수키와·암키와, 수막새·암막새, 귀면와, 특수기와, 문자기와, 전돌 등 다양한 종류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습니다.월성에서 출토되는 기와의 특징으로는 와통을 사용하지 않고 토기제작기법을 응용하여 회전하는 물레에서 제작한 신라의 초기기와가 다량 확인됩니다. 백제의 대통사지 창건와와 동일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와 접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거나 기와 측면에 내림새가 부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기도 한다. 신라 초기기와는 손곡동·물천리요지와 화곡리요지에서 생산되며, 소비지유적에서 출토되는 분포양상을 살펴보면 월성을 중심으로 500m 이내 근거리에 위치한 유적에서만 확인됩니다. 월성을 제외한 각각의 유적에서는 10점 이내 소량만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존재하였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나 월성에서는 다량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장식하여 신라의 정궁으로 사용한 건물의 존재 확인이 기대됩니다. 박정재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월성 출토 삼국시대 수막새는 문양에 따라 백제계·고구려계·신라식으로 구분됩니다. 백제계는 백제 웅진기와 사비기에 유행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되고, 고구려계는 삼각형의 꽃잎에 양감이 강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됩니다. 신라식 수막새는 백제계와 고구려계의 영향을 융합하여 개발되며 넓고 부드럽게 융기된 꽃잎 끝을 반전시키거나 잎 가운데 능선을 배치한 문양이 유행합니다. 통일신라 수막새는 꽃잎을 중첩하여 배치한 형태와 보상화문, 가릉빈가, 사자문 등 다양한 문양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의 필요로 제작기법도 정형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월성 출토 문자기와는 연호명이 나타내는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 신라 6부 가운데 북천이북의 소금강산 일대에 위치한 한지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한(漢)’·‘한지(漢只)’, 보문동과 낭산 부근 지역에 위치한 습비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습부정정(習部井井)’·‘습부정정(習府井井)’, 기와 제조와 관련된 관청인 와기전(瓦器典)과 관련성이 보이는 ‘전인(典人)’ 그 외 ‘생(生)’, ‘주(主)’, ‘정도(井桃)’, ‘주(朱)’, ‘본(本)’, 만(‘卍)’, ‘정(井)’이 있습니다.월성에서 출토된 문자기와 중에 특징적인 유물로는 ‘儀鳳四年皆土’명 기와가 있습니다. ‘儀鳳四年皆土’명 기와에 새겨진 儀鳳四年은 679년에 해당하는 연호이며 월성,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부지 등 신라 왕궁과 관련된 유적에서 다량 출토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후반 이후 월성 주변 일대에 관청건물을 건립하여 왕궁의 영역이 확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2021-06-14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미술

전시 공간에 놓여 있는 동일한 모양의 큐브들. 누구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손 쉬운 물건들이 미술작품이라니.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던 미술과 지금 눈앞에서 경험하고 있는 상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심지어 미술가들이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것이 어떻게 미술일 수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봐야할지 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미니멀리즘은 1960년대에 나타난 미술형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시기에 곡선이 배제된 주로 각이진 모서리의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술 평론가들은 기하학적 형식의 미술작품들이 처음 소개됐을 때 ABC 아트, 오젝트 아트,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쿨 아트 혹은 리터럴 아트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미니멀리즘이다.미니멀리즘은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 현대미술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미학적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유럽에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일어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사조로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 등과 같은 미술가들이 여기에 속한다.1940년대와 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표현이라는 요소를 작품에서 완전히 제거한 새로운 미술을 선보인 미술가들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적 역할을 한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라는 말은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미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추상표현주의와는 달리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미술작품에서 모든 감정을 제거하고 작품의 고유한 특징들을 비워내고 창작자의 흔적을 지워버리기 위해 각진 모서리의 기본적인 모양과 형태를 선택했다. 이로써 유럽의 전통미술은 물론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명백히 읽혀지는 착시나 상징, 은유 등과 같은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된다.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몇몇 형식적인 공통점들이 관찰된다. 첫째 동일한 형태가 반복적이면서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둘째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기계적으로 생산된 것이거나 공장에서 제작된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창작의 주체인 미술가 개인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비인격적이다. 칼 안드레가 자주 사용한 벽돌이나 철판 댄 플래빈의 형광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감상자들이 작품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재료를 다루는 실력에 경외심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감각적이나 정신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기념비적으로 웅장하거나, 비장미, 역사적인 이야기, 고귀한 재료, 이지적인 구조 혹은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한 경험을 철저하게 거부했다.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것은 완전히 새롭고 명백한 실제(realness)였다. 미술작품과 감상자 사이를 심리적으로 분리시키는 장벽을 허물어 버리기 위해 조각 작품을 설치할 때 사용하는 좌대를 없애 버렸다. 심지어 칼 안드레의 경우 납작한 철판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놓고 감상자들이 그 위를 걸으면서 작품과의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을 하도록 유도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조각을 선보였다.미니멀리즘의 이론적 체계 확립에 큰 역할을 했던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품을 회화나 조각이 아닌 3차원의 실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특정한 대상(Specific Object)이라고 규정했다. 저드는 미술의 조형적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모든 환영(illusion)을 제거해야한다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입장에 동의했고,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리키거나, 상징하지 않는다./미술사학자

2021-06-14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왜?

권윤구 포항 중앙고 교사 행복 지수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지수이다. 행복 지수는 유럽 국가가 아시아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이 아시아보다 국토 자원이 많고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행복 지수는 주거, 고용, 소득, 교육, 환경, 공동생활, 보건, 삶의 만족도 등 11개 항목을 평가했다. 회원국 36개 회원국 중 1위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차지했고, 노르웨이와 미국, 스웨덴 순서이고 대한민국은 24위이다.또한 유엔 산하에서는 2년마다 약 150여 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 통계를 내는데 삶의 만족도, 기대 수명, 교육의 질, GDP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2021년 153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 지수 통계를 보면 핀란드가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다. 핀란드가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는 국가에서 제공하지 않는 많은 혜택이 있다. 그중 깨끗한 자연이 하나의 큰 이유로 선택된다.핀란드는 복지 혜택이 가장 높고 부정부패가 낮은 청렴결백한 국가이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평등을 교육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충격적으로 행복 지수가 153개국 중 61위이다.영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EIU가 최근 조사한 결과 140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삶의 질, 행복 지수가 80위로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GDP 상승률이 세계 4위로 40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세계 최고 두뇌를 가지고 있으나 표현의 자유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삶의 질과 암 환자나 노인들의 죽음을 맞는 환경은 나쁜 것으로 발표됐다.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국민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룬디는 인구 5% 미만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행복 지수는 150개국 중 140위이다.경제력과 행복 지수는 다르다. 교육환경, 구매력, 안전, 보건, 물가, 집값, 출근 시간, 오염, 기후 등의 항목의 종합적 평가다. 대한민국은 위선과 오만과 그리고 독선이 난무해 국민들의 삶의 질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세계 경기는 멈추었다.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이 매우 높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했고, 야외 활동을 제한했다. 또한 외국 여행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년은 직장을 잃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 상황은 전 세계적 상황이었다. 집값은 무주택 서민이나 젊은층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됐다.국민의 행복 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채무가 개선되고,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도의가 중시되고,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또한 삶의 복지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재해로부터 안전한 삶, 사회적 약자의 편리한 삶을 구현해야 한다. 정치인도 국민에게 달콤한 말로 화려한 미래를 약속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국민에게 더 잘 살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2021-06-14

장기읍성의 文士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뻐꾸기 울음소리 이슬비에 젖어 드는 장기읍성을 거닐었다.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밤꽃향이 그윽하게 피어나는 산성 둘레는 청록일색의 싱그러운 파노라마였다. 멀리 보이는 현내 들판에는 판서(板書)하듯이 온갖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동악산 자락 대숲에는 산성을 호위하듯 창 같은 죽순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엷은 안개의 마중 속에 주변으로 천천히 눈길을 돌리면서 마름모꼴 읍성의 내력을 생각하며 옮기는 발걸음이 느긋하기만 했다. 포항문인협회 주관의 2021년 포항문학 하계세미나로 열린 ‘제35회 보리 문학제’에 동참한 것이다. ‘보리누름 문학제’는 지난 1986년 고 손춘익 아동문학가를 비롯한 지역 문인들이 대보 구만리 보리밭으로 떠났던 소풍에서 비롯됐다. ‘동해산문’에 실린 한흑구의 명수필 ‘보리’의 문학성을 기리며,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때 지역의 문인들이 회동하여 탁주 한사발에 글을 논하고 시를 읊조리던 것이 현재는 ‘보리 문학제’로 이어져 문인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색있는 문학행사로 자리매김했다.문학의 자취를 둘러보며 시민과 문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개성있는 예술적 감각과 문학적인 소양을 키우는 취지로 올해 35회째 맞이한 보리 문학제는 지난 12일 ‘벼랑 끝에서 길을 찾다’는 테마로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 일원에서 열렸다. 첩첩산중, 바다에 둘러싸인 장기면은 예부터 사대부 유배지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단일 현에서 가장 많이 정배된 곳이지만, 당시의 석학이나 정객들이 형벌의 땅에 머물면서 학문연구와 문풍이 되살아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녹음은/서슬 푸른 정배(定配) 마냥 에워싸도/보리물결 의연히 원숙으로 익어가는/변방의 적거지(謫居址)에는/이끼 새삼 푸른데//혹독함이 키운 뿌리 튼실함을 더해가고/비운의 귀양살이 충정 외려 드높아/정념(情念)의 웅숭깊음이/초연하게 자라네//처연함에도/문기와 인지(人智)가 솟아/우암(尤菴)이 어리고 다산(茶山)이 배인 둘레/맥추(麥秋)의 바람결 따라/학덕이 넘실대네-拙시조 ‘장기유배지 소견’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펼친 강학과 남긴 시문들은 학문을 숭상하는 문화적인 풍토가 됐다. 외지고 궁벽한 귀양지에서 유배의 좌절을 서책 탐구와 저서 집필, 유생 교육 등의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지역의 소객(騷客)들이 1.4km 정도의 성곽을 둘러보고 녹음 속의 ‘우암과 다산의 사색의 길’을 걸으면서, 문필의 현대적인 계승과 문학의 새로운 지향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회적인 양상과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은, 코로나의 고역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문사(文士)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걸까?돌아오는 길, 신창리 해변의 몽환적인 해무 속에서 몇 편의 자작시와 수필을 낭독하고 경청하는 내내 파도도 흥겨운지 철썩대는 음률로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문학지망생인 포항문예아카데미 23기 수강생들도 그렇게 함께 어울리고 나눈 시간들이 정겹고 넉넉하게 맥랑치는 듯했다.

2021-06-14

Brava! 클라라 주미 강!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으로 5월을 닫고 6월을 열었다. 롯데콘서트홀과 경기아트센터에서 연이틀 공연을 보고 황홀했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연주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은 연주시간만 140분에 달한다. 극심한 난이도와 체력 부담,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연주자의 심리적 압박까지,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최고의 도전이자 거장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비견되곤 한다. 나는 주미 강의 연주에서 종교적 광휘를 느꼈는데, 봉쇄수도원에서 고행하는 수도자가 보이기도 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필사하는 새벽 신도가 보이기도 하고, “얇은 사 하이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의 여승이 보이기도 했다.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주미 강이 등장할 때, 1년 반 동안 잘려나간 삶의 절단면이 복구되는 걸 느꼈다. 코로나 이전, 객석에서 주미 강의 연주를 감상하는 일은 일상의 특별한 행복이었는데, 그게 중단되자 낭만도 몽상도 시들어 나는 가뭄이고 폐허였다. 그녀가 다시 1708년산 ‘엑스 스트라우스’를 들고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봄비 삼아 오뉴월 초록이 마음으로 번질 때, g minor 코드의 고혹적인 보잉과 함께 주미 강의 바흐가 시작됐다.주미 강은 바흐가 꿈꾼 오직 바이올린만의 광활 우주를 이상적으로 재현해냈다. 그녀의 아우라는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관객의 집중이 새나갈 틈 없이 완벽한 밀도를 이뤘다.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제일 두꺼운 소리부터 가느다란 소리까지, 짧은 소리부터 긴 소리, 어두운 소리부터 환한 소리, 속주부터 비브라토까지 자유롭게 오갔다.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프랑크 소나타나 브루흐의 스코티시 판타지 등 장조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내겐 익숙한데, 단조 위주인 바흐 무반주의 짙고 무거운 격랑 속에서 주미 강은 ‘밤의 여왕’이었다. 그녀의 연주에선 35년의 한 생애 전체가, 지나온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이, 삶과 죽음이, 바흐의 300년과 엑스 스트라우스의 300년이 휘몰아쳤다. 밤바다에서 죽고 태어나는 파도의 하얀 뼈와 사막의 지평선으로 자맥질하는 별들과 황금처럼 빛나는 무거운 안개들을 보았다. 가장 캄캄한 밤부터 환한 아침까지, 깊은 물속의 소리부터 구름 위 하늘의 소리까지, 작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떨림부터 숲 전체가 일어서서 걸어오는 지진까지를 들으며 나는 말러 2번 ‘부활’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한 장중함과 숭고미에 두 손을 모았다.경기아트센터 1부에선 에어컨 기계음에 여린 소리와 잔향이 먹혔는데, 소매를 걷어붙인 주미 강의 바이올린은 공연장을 금세 장악했다. 공간도 시간도 무화되어 여기가 서울인지 수원인지 상관없었다. 에어컨 소리도 기침소리도 핸드폰 소리도 다 집어삼켜버렸다. 오직 바이올린만 있었다. 바이올린을 자유롭게 하는 주미 강만 있었다. 그녀는 3시간 내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행복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길 늘 바란다. 바흐의 음악은 매우 엄격하고, 수많은 규칙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주미 강은 오히려 엄격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규칙들 가운데서 균형과 조화를, 교리에 충실함으로써 신에 닿는 날개를 얻은 듯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인 파르티타 2번 d단조 5악장 ‘샤콘느’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녀가 연주자로서 새로운 한 차원을 열었음을,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회색의 간달프가 죽음ㅡ부활 후 백색의 마법사로 거듭난 것처럼 젊은 마스터에서 거장으로 도약했음을 관객들에게 선언했다. 롯데콘서트홀 1층 C구역 15열쯤에서 정경화 선생이 “Brava!”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친 순간도, 박수에 다소 인색하던 경기아트센터 객석이 무려 세 번이나 커튼콜을 요청한 순간도 다 샤콘느의 비장한 마지막 보잉이 멈춘 그때였다.선덕여왕은 잠든 지귀에게 다가가 황금팔찌를 그의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잠에서 깬 지귀는 금팔찌를 품에 안고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이 불꽃으로 타더니 급기야 온몸을 활활 사르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주미 강의 샤콘느는 여왕의 팔찌처럼 나를 사로잡아, 나는 무반주 바이올린 선율에 갇힌 2021년 여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지도 모르겠다. 타는 줄도 모르고. 아니 타는 걸 기뻐하며.

2021-06-14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

비건의 삶은 지구와 생명체를 위한 일이 아닐까. 2주 전 주말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무거워진 몸이 버겁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서인지 폭식은 또다시 습관이 되어 있었고, 어느샌 음식을 배가 고파서가 아닌 기분이 좋지 않단 이유로 의무적으로 먹기 시작 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옷 태가 달라졌고,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피부와 비염도 극심해져 몸 전체가 망가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열패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다시 굶기 시작하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을거란 믿음을 스스로 주입하며 되뇌곤 했다.난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오가는 편이다.스스로를 프로다이어터라고 칭하는 만큼 폭식과 절식을 극단적으로 행하는데 수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18살엔 일 년 사이에 몸무게가 13킬로그램 정도 증가하기도 했다. 갑자기 살이 찌면 피부가 늘어나서 빨간 자국이 몸 곳곳에 새겨진 다는 걸 그 때 알았다. 22살이 되던 해에는 운동 없이 절식만으로 17킬로그램을 뺐다. 딱히 다이어트를 해야겠단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의 공허한 기분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갑자기 살이 빠지니 변화된 몸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인물이 산다거나, 드디어 얼굴에 꽃이 폈단 말을 부모님이나 친구들, 선생님들, 주변 어르신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굶을수록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우월감이나 성취감에 빠졌단 거였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탄력 없이 축 늘어진 피부와 원인 모를 알레르기가 찾아 왔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무엇보다 자주 무기력해졌다. 외출 후 한 시간만 지나도 극심한 피로가 찾아와서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니까.어쨌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단 생각이 들자, 먹는 것에 대한 강박을 내려 놨다. 몸무게는 나날이 증가했지만, 그렇게 몇 년간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내왔다.그런데 이주 전 침대 위에서, 이젠 도저히 맘 놓고 먹어선 안 된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 세 잔씩 커피를 달고 사는 데다 아홉 시간 반씩 사무실 의자에 앉아 퀭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의 운동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마침 늘 관심사로 두고 있던 비건이 생각나자 그 자리서 바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비건은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섭취 방법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등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름의 비건은 고기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생선이나 계란, 우유, 버터 같은 동물의 희생으로 발생되는 식품까지 포함하여 섭취하지 않는다. 프루테리언은 비건보다 한 차원 높은 채식을 지향하는데 이들은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겨 과일이나 견과류 종류만 먹는다. 폴로 베지테리언은 유제품과 계란, 어패류, 날개 달린 고기까지 먹는 단계로 상황과 때에 맞춰 자신이 선택하여 먹을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은 평소 채식을 하다 가끔 고기를 먹는다. 비교적 선택지의 폭이 넓어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그런데 무조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완벽한 채식을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내 몸에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좋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채울 수 있는 식단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도 지식 없인 난감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처음부터 고기를 끊긴 어려워서 상황에 따라 채소와 육류를 선택하며 먹었고, 되도록 채소 섭취를 우선으로 했다. 중요한 건 내 체질에 맞게 식재료를 선택할 줄 알아야 했는데, 필수 영양소에 대한 공부뿐만 아닌 내 몸과 마음의 균형에도 시간을 들이게 됐다.비건에 눈을 돌리니 동네 마트만 가도 비건을 위한 식품이나 간식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우유를 아몬드 두유로 교체할 수 있는 카페도 많았고,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비건을 위한 메뉴가 꾸준히 출시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이제 겨우 이 주 정도 지났지만 속이 편해졌고 몸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생활의 질이 높아진 건 물론,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은 궁극적으로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신념을 유지한다는 건 이토록 수고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2021-06-14

문재인 정권,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촛불의 이름으로 공정과 정의를 역설했고, 통합과 협치를 선언했으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고,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났으며, 국민은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다.이처럼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이 ‘집단사고(groupthink)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다양한 의견들을 억압하여 획일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현 정권은 ‘코드인사’로 일관했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관급만 33명이나 임명을 강행했다.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는 필연적으로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한다.여당 내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즉시 ‘문빠’와 ‘대깨문’의 집중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공천에서 탈락시킨다. ‘민주 없는 민주당’에서 당내민주주의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예스맨(yes man)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집단사고의 오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정책결정과정에서 집단사고의 응집력은 ‘양날의 칼’이다. 응집력이 강하면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먼저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권력을 통제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책결정과정에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는 것이다. 그는 항상 반대편에 서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비판자 역할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집단사고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형해화(形骸化)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권력의 집중과 집단사고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원천’이었음을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가 증명하고 있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는 순간, 대통령은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그 길의 끝에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집단의 도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한편, 집단 밖의 의미 있는 비판들을 경청하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확증편향과 진영논리에 갇히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21-06-14

이준석의 역량, 국민의힘 외연확장에 사용을

36세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으로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이 우리 정치의 태풍의 핵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절대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경북매일신문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 20~30대 젊은 작가 4명을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패널들은 “2030세대가 젊은 당대표를 선택한 이유는 이준석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정치권의 구태에 대한 반감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 정책에 있어 뜬구름 잡듯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반면, 이준석 대표가 청년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 점이 어필했다는 것이다. 택시 업계 문제를 체감해보기 위해 면허를 취득해 2개월간 택시기사로 일한 것이나 블록체인 산업과 2030세대의 절망감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한 것 등이 청년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일요일인 지난 13일에는 당 대표에게 제공되는 승용차 대신 서울시 공유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첫 출근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좌담회에서는 보수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단순히 청년 세대의 열망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바꿔야 한다’는 불안감이 이준석이라는 젊은 대표를 내세우는 요인으로 작동했다고 봤다. 대구·경북 정치권도 세대교체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가 정치인 자격시험 제도를 언급하자 벌써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받으려는 젊은 예비후보들이 엑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 등이 세대교체를 기치로 대거 도전장을 던질 가능성이 크다.이준석 바람이 당의 개혁과 화합에 기여하는 순풍이 되지 못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역풍이 된다면 국민의힘으로선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대표의 거침없는 리더십과 인사스타일이 당의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내년 대통령선거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그의 모든 역량을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써야 한다.

2021-06-14

케모포비아

‘케모포비아(Chemophobia)’는‘화학적인’이라는 뜻의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잘못된 상식 때문에 소비자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를 느끼고 지나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제조·유통과정에서의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보관법이나 사용법 때문에 부작용을 경험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다. 최근 아이들이 사용하는 그림물감, 아동용 섬유제품 등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합성가죽 소파에서 불임 위험을 높이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성분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공산품으로 생산·유통되는 거의 모든 생활화학제품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2017년의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파동도 화학혐오증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조사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5%가 생활화학제품에 케모포비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케모포비아 때문에 특정 먹거리나 생활용품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불안을 키울 필요는 없다. 운동과 식습관으로 인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을 높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운동을 할 때는 땀을 배출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동작을 매일 15∼30분정도 해주는 것이 좋다. 음식에서는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면 대부분 지용성인 화학물질 배출이 잘되게 돕고, 수분도 몸속 자정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14

대구 제2수목원 조성, 시민의 힐링공간 되길

수목원과 식물원은 용도면에서 구분하기가 어렵다. 나무를 심어서 가꾸고 관상 가치가 높은 식물이나 희귀수목을 배치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수목원은 식물원보다 면적이 넓은 것으로 인식돼 있으나 외국의 사례를 보면 면적을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많은 식물종을 수집하여 재배하고 식물학상의 연구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면 조성 목적에 잘 부합한다 하겠다.대구시가 2018년부터 구상했던 제2수목원 조성 계획이 국토부 심의를 통과했다. 대구권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변경안이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함으로써 대구의 제2수목원 조성사업이 이제 가시권에 들어선 셈이다.대구시는 현재의 수목원이 연 170만명 이상 찾아 포화상태에 있어 제2수목원 건립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제2수목원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대구혁신도시 인근 동구 괴전동 일원에 조성키로 했다고 한다. 규모는 45만4천여㎡에 이른다. 특히 제2수목원은 쓰레기 매립장을 메워 조성한 기존의 수목원과는 달리 팔공산이라는 자연환경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친화형으로 조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팔공산 산림자원을 보전하고 자생식물을 활용함으로써 수목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또 기존의 수목원이 대구의 남서쪽에 치우쳐 있어 제2수목원을 동구 혁신도시 주변에 건립기로 해 도시균형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니 제2수목 건립이 여러모로 유용해 보인다. 수목원 수가 서울은 5군데 부산과 인천이 각각 2군데 조성돼 있는 데 비해 대구는 이제 1곳을 추가할 계획이니 늦은감은 있다. 그러나 늦은만큼 잘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최근 수목원은 도시민이 즐겨찾는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난해 대구 수목원에는 코로나 이전보다 방문객이 20%가 늘었다. 수목원이 시민의 힐링 공간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통계를 보면 선진국일수록 수목원 수가 많다. 물질문명 발달에 따라 자연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성했다는 것이다. 대구에 새로 건립될 제2수목원이 자연을 마음껏 즐길 공간으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2021-06-14

코로나시대를 건너는 법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사람과 만날 일이 없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의 영역을 무한정 침범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바이러스들은 말을 이동수단으로 이용하자 말에게서 사람에게 감기가 옮겨온 것처럼 사람을 선택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괴물이 되었다. 성장과 효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입은 마스크로 막혔다. 숙주와 숙주 사이를 떨어트리는 일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행동백신’이 되었고 ‘서로에게 백신이 되자’는 말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매뉴얼이 되었다.거리두기, 모이면 죽는다, 흩어져라. 소통을 강조하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단절이 권장사항이 되었다. 그렇게 어리둥절 혼란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사람대신 자연을 만나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도 아니면 집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을 괴롭혀서 생긴 고립과 우울을 자연에게서 위로받는다. 이래저래 참 고마운 자연이고 사람은 참 염치도 없는 것 같다.자연을 자주 접하는 것, 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나무를 읽을 줄 아는 ‘감수성의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서로 만나진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 꽃으로 놀자’라는 슬로건아래 건물 앞, 벽면, 옥상, 계단, 현관 지붕 위, 언더라인(다리 밑과 그 주변 유휴 공간)에 테마-색상이나 정서, 관계의 변화-가 주어진 주민참여 마을단위 생활형 정원 가꾸기로 발전한다면 코로나블루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무튼 더욱 더 사람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자세는 소중한 자산이다.코로나 초기, 미국에서는 노숙자들을 주차장의 주차선 한 칸을 띄워서 격리하다가 온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우리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자기 것이 없어서 신발과 방한복을 공동으로 사용하여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 된 일이 지탄을 받았다. 사회적 돌봄에서 제외 된 소수자들이 물류센터 뿐이었을까? 감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는 우리의 불평등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콜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좁은 곳이나 저소득층을 파고들었다. 아파트 출입문에 손을 빼기도 전에 닫아버려서 다친 택배기사들은 ‘사람이 온 게 아니고 음식이 온 것’으로 취급당했다.하지만 코로나는 ‘포스트 코로나? 어떤 세상일까?’에 대한 정확한 답도 가르쳐 주었다.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무거운 생수를 시킨 것이 미안해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출발을 한 택배기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써서 샌드위치, 우유와 함께 건넨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선물을 받은 택배 노동자는 자신이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에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며 인터뷰 끝에 ‘하하하’ 크게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코로나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전교육이 강조됐는데 너무 강조되다보니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졌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말이 안전교육을 하며 다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코로나,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벗기 전에 우리가 포스트코로나를 맞이하는 자세를 돌아보아야한다.돌봄이라는 개념은 일방향적 서비스가 아니라 모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역능, 즉 ‘자기배려와 타자배려’의 기술로 이해해야한다.돌봄을 저렴한 노동으로 치부하고 돌봄 노동자에게 하청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래사회를 우리가 직접 설계해야한다. (미래-공생교육/김환희/살림터 2020)포스트코로나를 살아가야할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공생’이다. 모든 기술도 매뉴얼도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 코로나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 공생의 범위는 사람을 넘어 지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한다. 공생이 보편적 윤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첨단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여야 하고 ‘세계를 다시 설계’하고 지금까지의 ‘사회를 다시 고쳐야한다’는 생각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야한다. 공생의 삶이 어떤 삶인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릴 적, 마당에 세수를 마친 뜨거운 물을 붓자 그 물길을 따라가며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벌레들의 눈을 걱정하던 할머니를 보고자라지 않았는가! 매일매일 장독대를 닦는 어머니에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웬 정성이냐’ 물으면 산속의 새도 보고 청설모도 보는데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른거리지 않는가!‘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생태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이 잉태되어 그 목숨을 다 할 때까지 가진바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다가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면 다시 되찾는 일상은 ‘공생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우리를 낳아야한다.’ 실패에서 배우는데 실패하지 말자는 각성의 백신을 계속 맞아야한다.

2021-06-13

다문화와 함께 하는 열린 대구의 희망

정영태대구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19년 기준 177만 명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4%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외국인의 비중이 낮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이주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결혼, 취업, 학업 등의 목적으로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결혼이민자의 한국국적 취득, 난민 인정,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사회적응과 교육, 취업 등 이주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와 함께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서로 다른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집단을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를 다문화수용성으로 정의하고, 정부에서 2012년부터 3년마다 국민의 다문화수용성을 발표하고 있다.지난 2019년 4월에 발표된 다문화수용성 결과, 우리 지역이 속한 영남권은 다문화수용성이 51.83점으로 전국 평균 52.81점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다. 2015년 대비 1점이 하락하였으며,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지수 간 격차 역시 5.4점이 더 넓어졌다.대구시의 외국인·이주민을 위한 정책 가운데 결혼이민자와 관련된 정책은 구·군별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어교실, 가족교육, 가족상담 등 가족관계는 물론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원되고 있다. 주목해 볼 사업으로 사각지대의 결혼이민자를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맺고, 소외되지 않고, 지역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지지망을 맺는‘다문화가족소통도우미사업’, 한국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초기 결혼이민자 또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한시적 ‘일상생활 통역지원’, 자녀의 학교 공지 사항 등 알림을 알기 쉽게 모국어로 번역하여 서비스하는 ‘다국어 자녀 학교 알림서비스’ 등 이주민을 위한 세심한 정책이 지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그런데도 우리 지역의 다문화수용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 않는 차별·배제·동화 등의 전통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초기 다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보다는 주로 우리 중심의 하나의 방식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결혼이민자의 경우 자녀에게 엄마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중언어의 필요성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에게 이중언어를 학습의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문화수용성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이처럼 다문화수용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주류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가 ‘상호문화주의’입장에서 다문화사회를 바라보기 위한 흐름으로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익숙했던 문화에서 크게 다름이 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된다.얼마 전 어떤 강의에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피자와 파스타가 있다면 베트남 대표요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쌀국수’를 외쳤다. 순간 “왜, 이탈리아 면 요리는 파스타인데. 베트남 면 요리는 쌀국수라고 하죠”라는 질문에 모두가 순간 다른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베트남의 면 요리의 퍼(ph1EDF)로 부르지 않고 쌀국수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그제야 인지했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러한 태도가 우리가 지닌 다문화에 대한 수용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바꾸기 위해 어린이집, 학교,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다문화수용성제고를 위한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 문화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별로 다문화수용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강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 역시 부처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앞서 성인과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의 세대 간 정도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타인에 대한 문화를 배려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수용성이 샐러드 볼이라고도 하고, 용광로라고도 한다. 샐러드 볼은 다양성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용광로는 그 다양성이 하나로 녹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강점이 있다.대구는 샐러드 볼이 될 수도, 용광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함께 뭉치고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열정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살아있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에 더 많은 이주민이 이방인이 아닌 우리의 공동체로, 그들과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열린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