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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무를 바르게 심자

윤영대수필가식목일은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동안 헐벗은 산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학창시절 호미와 삽을 들고 마을의 언덕과 낮은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다녔고 대학 재직 중에는 학생들과 캠퍼스 이곳저곳에 기념식수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선하다. 그러나 2006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인지 학교나 기관에서 공식적인 큰 식목행사는 없었고 포항시의 ‘나무 나누기’ 행사에 가서 몇 그루 분양받아와 시골집에 심은 꽃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요즈음 기후변화 탓인지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져서 개화 시기도 빨라지고 나무 심기 가능한 기온 6.5℃도 4월이면 늦다고 해서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늦으면 잎과 뿌리의 생장이 잘 안 되어 고사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묘목 업체들도 새싹이 나오는 시기에 맞추어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UN이 지정한 ‘세계산림의 날’도 3월 21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평균기온 1℃ 상승함에 따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는 시기가 5~7일간 앞당겨진다고 하고, 몇몇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는 3월 하순부터 식목행사를 하고 있다.내 어릴 적만 해도 국토는 거의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1962년부터 50년간 약 1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고 야산에 올라도 짙푸른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세계적인 조림 성공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다’라는 구호처럼 치산녹화사업은 참 잘한 일이다.지구의 온난화, 대기오염 등으로 생태계 복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산림녹화뿐만 아니라 주변 공터에도 감, 매실 등 유실수도 좋고 무궁화, 매화, 철쭉 등 꽃나무도 심어서 우리의 주위가 맑고 밝았으면 한다.식목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산림은 홍수와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를 방지하고 산소를 발생시켜 환경개선은 물론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목재와 연료를 공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태양광발전이랍시고 산림을 마구 파헤치는 현장을 보노라면 과연 어느 것이 자연 친화적일까를 마음속으로 되내어 보기도 한다.건강한 산림은 1ha당 이산화탄소를 연간 10여 t 이상 흡수하여 공기를 맑게 하는 지구의 허파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니 새잎이 트기 전에 뿌리가 먼저 내려 생장할 수 있는 절기에 맞추어 나무를 심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는 애림사상을 마음에 심는 것도 중요하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땅에 꽂아도 싹이 돋는다’는 속담도 있고하니, 청명(淸明) 한식(寒食)의 맑은 절기에 산불 조심하고 찬밥도 먹으며 나무를 심어보자.식목의 식(植)을 보면 나무(木)를 바르게(直) 심는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치 풍토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나무를 바르게 잘 심고 가꾸어야 푸르고 맑은 숲을 이룰 수 있듯이 사람도 뜻이 곧고 청렴하고 올바른 인재를 골라 심어야 나라가 튼튼해진다. 이번 식목일에는 집 안뜰에 나무 한 그루 바르게 심고, 나라의 뜰에는 옳은 사람을 심기 바란다. 이번 식목일의 염원이다.

2021-04-04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지구라는 별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매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발버둥 치고, 서로 잘난 체하며 싸우다가 쓰레기를 한가득 버리고, 불쌍하게 죽어간다.내가 젊었을 때 만났던 어떤 헤드헌터가 이런 말을 했다.“내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술을 마셔보니 알게 된 것이 있어.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는 거야.”영적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이 지구라는 별에 끊임없이 오는 것은, 완성되지 못한 존재가 몸이라는 옷을 빌려서 완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구에 온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 미완성이고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미워하고 의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상처를 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힌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에게 피해를 준 지인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내로남불’이란 대중용어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며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뇌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나의 이익과 쾌락 위주로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그래서 저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심리상담사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진실하게 대화하라.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라.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그만큼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며 인간에 관해 가치판단 없이 존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심리상담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 가지 태도는 심리상담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마음의 지침으로 삼으면, 인간관계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위대한 성인 예수도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려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가볍게 여기고, 타인의 허물만 단죄하려고 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이다.그럼 수만 명을 상담한 나의 인간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모두 행복과 성공을 원한다. 사람들은 모두 인정과 사랑을 원한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모두 남을 돕고 싶어한다.즉,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을 원하며, 그 와중에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곁의 화려한 옷 입고 좋은 차 타며 잘나 보이는 이들이든 그 반대이든 모두 불쌍하고, 그 불쌍한 이들의 마음에는 선한 본성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불쌍한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돕자, 미워하지 말고 부디 용서하자. 얼싸안고 이 지구라는 별에서 축제처럼 살다가, 쓰레기 덜 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자.

2021-04-04

코로나 전국 확산 양상… 대구경북 긴장감 높여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닷새째 500명대를 기록했다. 500명대 연속 기록은 지난 1월 13∼17일(561명-524명-512명-581명-520명) 이후 약 3개월만이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비수도권으로 크게 늘면서 전국적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4일 질병관리본부는 0시 현재 신규 확진자가 543명이라 밝혔다. 지난달 30일 이후 닷새째 500명대다.대구와 경북은 3일 10명과 17명이 각각 신규 발생한데 이어 4일에도 대구 15명, 경북 13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같이 코로나19의 불안 상황이 이어짐에 따라 4일 오후 4차 유행 가능성 경고와 함께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정부는 오는 11일까지 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 중이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부산과 경남 거제, 진주 등은 자체적으로 2단계 격상을 했다. 특히 유흥업소 발 하루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부산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 교육당국은 관내 학교의 밀집도를 기존 3분의 2에서 3분의 1 이하로 강화하기로 했다. 유흥업소와 식당 등의 영업시간이 제한되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불편이 또다시 커질 모양이다.그동안 70%이상 수도권에서 발생하던 코로나19가 수도권 비중이 낮아지고 비수도권의 발생 비중이 높아져 심상찮은 분위기다. 지난 주말에는 비수권지역에서 40% 이상이 발생했다. 주말인 3일과 4일 이틀동안 대구와 경북에서도 모두 55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불안불안한 상황이다.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백신접종률이 이제 겨우 1.83%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에까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의 대응 자세처럼 모두가 긴장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지만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등의 수칙을 지키는데 동참해야 한다.봄철을 맞아 사람의 이동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방역에 대한 긴장감은 예전같지가 않다. 4차 유행이 시작된다면 그나마 완화됐던 업소들의 어려움이 또다시 시작되고 일상의 불편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다시 긴장감으로 무장해야 할 때다.

2021-04-04

청년농부들에게서 ‘고향르네상스’ 기대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취임 이후 농촌에 뿌리를 내리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고향소멸’을 막아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민선 7기가 출범한 2018년부터 현재까지 경북도에서 ‘후계 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1천848명으로 민선 6기 4년간 선정된 1천288명 보다 43.5% 늘었다. 40년 전인 1981년부터 정부차원에서 진행된 이 사업이 최근 들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경북도에서 올해 뽑은 후계 농업경영인은 493명으로 이 중 39세 이하 청년들이 303명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경북도는 후계 농업경영인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양한 지원사업도 마련해 준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지금 추세대로 꾸준히 농촌 청년들이 뿌리를 내려주기만 한다면 농촌붕괴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이 “농촌에서 다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하겠다”고 한 말이 감동적으로 들린다.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농촌소멸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농촌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고령화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80년 1천82만명이던 농가 인구는 2005년 343만명을 거쳐 이제 200만명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다. 우리나라는 농민들이 허리가 휘도록 농사짓고, 소 팔고 논 팔아서 자식을 교육시켰다. 지금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그 원동력은 농민들의 피와 땀이다. 지금처럼 농촌 빈집이 늘고 전답이 황폐화하면 그동안 다져놓은 농업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농촌 주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후계 농업경영인사업은 모든 자원의 수도권 독식과 농산물 산업 위축, 농가인구 감소, 고령화 등을 막아 농촌의 르네상스를 꿈꾸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으로 보인다.경북도가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지해 대한민국 농촌부활의 모델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정부는 농업분야의 청년 취업자가 앞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1-04-04

가덕도신공항과 공무원의 법적 의무

심충택논설위원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수립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하고 가덕도신공항 사전타당성조사에 신속 착수한다는 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긴급입찰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을 다음 달에 착수하고 내년 3월까지 조사를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할 때 1년 4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속전속결이다. 10여년 넘게 말로만 무성하던 가덕도 신공항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내년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가덕도신공항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PK(부산·경남) 민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광경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진다. 가덕도 신공항과 항공노선, 여객, 화물 유치를 위해 사사건건 경쟁해야 할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사석(捨石)으로 삼아 선거에서 이길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강원도가 지역구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부산에 가서 “대구경제는 전국 꼴찌다. 왜 그럴까”라고 조롱했듯이, 내년 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안주로 삼을 것이다.현 정부 구상대로 과연 내년 3월이 되면 가덕도 신공항은 착공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우선 사전타당성조사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올지 의문이다. 설령 용역발주처(국토부) 의도대로 공항건설에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가덕도 신공항 입지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국토부의 결재라인에서 정권말 항명사태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국토부는 지난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공무원의 법적 의무’를 거론했다. ‘절차상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가덕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형법 122조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2016년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해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인지한 상황에서 특별법 수용시 공무원으로서의 성실 의무 위반(국가공무원법 56조) 우려가 있다’고 한 것이다.국토부는 국회보고서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과 환경, 경제성 등 7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류와 파도 영향으로 공사가 어렵다’, ‘해상 매립 공사만 6년 이상 예상되고 태풍 피해도 우려된다’, ‘부등침하(不等沈下) 발생 가능성이 높다’ 며 난공사와 안전성 문제를 적시했다. 진해군비행장과 가까워 항공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됐다. 가덕도 주민들도 “여기에 1년만 살아보면 공항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변창흠 국토부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를 찾아 “가슴이 뛴다”며 신공항 추진에 부정적인 국토부를 질책하자, “송구하다”며 특별법을 받아들였다.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결재라인 공무원들의 의사를 들어봤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사전타당성 조사를 초스피드로 진행하겠다는 것은 안전성 검증까지 적당하게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담당자들도 언젠가는 법과 상식, 도덕이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021-04-04

위선(僞善)

학식이 높기로 소문난 양반 북곽 선생은 과부와 밀회를 즐기다 들통이 나자 줄행랑을 친다. 그러다 들판에 파놓은 똥구덩이에 그만 빠져 겨우 기어나오는 순간 눈앞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북곽 선생 앞에 선 호랑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마디 한다. “양반은 구린내가 심하게 나는구나.” 놀란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며 침이 마르게 범을 칭송하며 아첨을 떤다. 조선후기 실학자며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소설 ‘호질(虎叱)’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박지원은 소설 ‘호질’ 외에도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부도덕함과 타락, 무능함 등을 고발한 ‘양반전’과 ‘허생전’을 쓴 작가다. 자유롭고 재치 있는 문체로 당시 사회상을 잘 포착한 그의 소설은 서민계층에게 당연히 인기가 있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뼈대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이 이런 부류의 소설을 썼으니 아마 평민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양반계층의 무능과 비굴함을 비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다.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위선은 특정 종교에서는 최악의 중죄로 다뤄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위선자는 겉은 금이지만 속은 납으로 된 무거운 옷을 입고 영원히 행진하는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사람 가운데 어진자가 적다고 했다.정치를 하고 국가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위정자일수록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들이 국민의 환심을 싸기 위해 그럴싸하게 말을 꾸며놓고는 뒷전에서 딴 짓을 했다면 국민이 받을 배신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김상조, 박주민 등 여당 실세들의 부동산 내로남불은 바로 소설속의 양반의 위선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04

신(新) 기후체제 원년을 맞아

엄태항봉화군수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변화는 이제는 ‘기후위기’라 불릴 정도로 훨씬 더 심각해진 모습이다. 올해는 2005년 발표된 교토의정서가 2020년으로 종료되고 파리기후 변화협약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해로, 본격적인 신(新) 기후체제의 원년을 맞이했다.지난 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앞으로 5년간 65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그린뉴딜 정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으며, 올해 1월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식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행정명령에 가장 먼저 서명하며 ‘바이든 시대’의 첫발을 내디뎠다.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지방자치단체, 기업, 개인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이러한 대내외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지역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봉화군은 민선 7기 시작과 동시에 일찍부터 다양한 녹색에너지 사업들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왔다.봉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는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의 위기에도 처해 있다. 봉화는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산업 투자 유치가 어렵고, 귀촌귀농인들이 봉화에 오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이 없다보니 몇 년 안에 떠나는 경우가 많다.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주민이 직접 경쟁력이 있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발전수익을 주민 소득과 연계하는 민·관이 상생하는 녹색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기존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외지 사업자 위주의 수익구조와 봉화의 낮은 지가로 인한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소 건립으로 주민갈등이 많았다.먼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발전시설 입지 제한을 완화하는 조례 개정을 시작으로, 경북에서는 최초로 ‘에너지 기본조례’와 ‘에너지기금 운용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외지인들의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녹색에너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전체 사업량의 60%를 100kw 단위로 주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분양하는 분양형 태양광 발전사업을 전국 최초로 시행했으며, 지난해 3월, 지역주민들이 직접 봉화국민 녹색에너지 협동조합을 설립해 지역주민이라면 소규모 자본으로도 누구나 쉽게 참여 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사업도 추진 하고 있다.지난해부터 각 마을마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해 발전수익을 마을기금으로 활용하는 마을단위 태양광 발전사업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봉화군 157개 마을 전체로 확대해 지역 주민 복지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태양광 이외에도 풍력발전, 수소연료전지, 산림바이오매스 등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사업들도 추진하고 있다.오미산 풍력발전사업은 봉화군과, 지역주민, 기업체의 유기적 협력과 참여를 통해 서로 상생하는 주민참여형 사업모델의 대표적 모범사례로 들 수 있다. 석포면 일원에 1천600여억 원 전액 민자로 출자해 추진되는 오미산 풍력발전사업은, 석포면 전체 주민 2천여 명이 지분 참여할 예정으로, 앞으로 석포면 주민 1인당 연간 70만 원 정도의 배당이 예상돼, 지역주민의 실질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러한 다양한 녹색에너지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에너지 전환정책 지방정부협의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9년 에너지 전환 포럼에서 ‘지방자치 부분 에너지 전환상’을 수상하며 봉화군 녹색에너지 사업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다.청와대 초청 재생에너지 사례발표를 비롯해 산학연과의 MOU체결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친 결과, 봉화군 녹색에너지 사업유형이 하나씩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고 있다.환경과 발전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한 환경 토대 위에서만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2021년 신(新) 기후체제 원년을 맞아, 봉화군에서 추진 중인 녹색에너지 사업들이 봉화군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돼 민선7기 취임 때부터 꿈궈왔던 ‘더불어 풍요로운 봉화’의 모습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2021-04-04

고향의 봄

‘겉바속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그런 사자성어가 어딨냐고 따지고 덤비는 이가 없길). 튀김이나 마카롱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뜻인데, 봄은 겉촉속촉이다. 가지 끝에 물을 올리는 버드나무도 말랑해졌고, 따스한 기온에 몸을 부풀어 올린 꽃들도 한껏 물을 머금었다. 거기다 몇 주째 주말마다 봄비가 내려 더 촉촉해졌다.비가 부슬거리는 지난 주말에는 의성 산수유 마을에 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노오란 길을 우리도 거닐어 보기로 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마을의 사계절이 보는 내내 탄성을 지르게 했고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마을 한참 전부터 산수유가 길 안내를 한다. 집집마다 뒷마당에 한 그루씩 품었고 길가 가로수도 노랗게 불을 켠듯한 자태로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듯 몸피가 제법 굵다. 산수유 마을답다.영화 속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바싹 마른 채 고향으로 내려온다. 늦은 밤 산짐승 소리에 무서워 전화 목록을 펼치는데 한 페이지가 다 차지 않는 주소록조차 바스락 소리를 낸다. 무섭다 외롭다 말하지 않아도 고향 친구 재하는 다 안다는 듯이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겨준다. 퉁퉁 싫은 소리 하는 고모도 밥상을 차려서 허기를 달래주는 고향 마을이다.봄엔 노는 손이 없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고사리와 재피 순을 따러 가는 길은 산수유 산책로이다. 3km 넘게 길게 이어진 노란 길이다. 초록 마늘밭을 옆에 두고 마을의 수호신처럼 키워서 내 키의 세 배 높이다. 올려다보니 가을에 익은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인 가지도 있다. 빨강과 노랑의 협주다. 비가 내려 더 좋다. 우산을 받치고 걸으니 빗소리가 산수유 숲에 들이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된다. 아 좋다~. 비가 와서 더 좋다. 비 오니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래서 우리들만의 산책이라 산수유 골짜기가 다 우리 것이다. 노란 꽃잎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열린다.고향은 모든 게 달다. 먼저 내려와 이미 고향 공기에 촉촉해진 친구가 농사지은 토마토도 마트에서 산 것보다 달고,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담근 막걸리가 익길 기다리는 시간도 달다. 그 장면은 목월 시인의 술 익는 마을이 떠올라 더 노골노골해진다. 살구꽃 핀 마을은 다 고향 같다는데 산수유 핀 곳도 다 고향이다. 영화의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구여친을 배웅하는 곳은 의성 가까이 화본역이다. 그 외에도 고운사, 빙계 계곡 등 의성의 곳곳이 나온다. 담장 밑에서 꾸벅거리는 동네 할머니와 닭 한 마리 던져주시는 아저씨, 도망간 엄마 이야기를 무심하게 내뱉는 동네 아줌마 역할까지 의성 가까이 안동에서 연극 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의성은 내 고향 안동 옆 동네다. 우리 차가 내가 나온 초등학교 언저리를 지날 때는 마음이 몸 어디에 붙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풍 갔던 암산 보트장, 학교 앞을 흐르던 강과 철길, 40년 사이 큰 길이 몇 개나 생겨서 산천은 변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목 뒤부터 뒤꿈치까지 더듬이를 세웠다.뭐니 뭐니해도 촉촉하게 만드는 것의 최고봉은 맛난 걸 먹는 거다. 혜원은 배추로 전을 부쳐서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다. 내 친정엄마가 비 오는 날이면 해 주던 음식이다. 안동을 오래전에 떠난 나도 겨울이면 달큰한 배추전으로 속을 달랜다. 산수유로 눈을 적신 우리 일행은 안동 갈비 골목으로 달려갔다. 마블링이 선명한 고기를 굽노라면 시래기 된장국과 갈비찜이 서비스로 나온다. 된장국에서 냉이 향이 그윽하다. 서비스로 나온 음식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영화 속 엄마는 딸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었다. 도시에서 바싹 마른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고향을. 사계절을 의성 사곡면에서 보낸 혜원은 겉도 속도 촉촉해지자 다시 공부할 용기를 얻는다. 함께 놀러 간 경숙 언니는 오늘 산수유를 보아 촉촉해졌으니 다음 주는 아이들에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향은 봄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04-04

헌신짝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오래 신어서 낡아빠진 신발 한 짝을 헌신짝이라 한다. 요즘은 재활용도 안 되는 골칫거리 쓰레기가 헌신짝이지만, 한때는 낡고 떨어져 못 신게 된 고무신도 엿을 바꾸어 먹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달콤한 엿 맛의 유혹을 못 이겨 아직 덜 떨어진 신발을 일부러 돌에 문질러 못 신게 만들어서 엿을 바꾸어 먹는 덜떨어진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속담은 아마도 그런 고무신을 두고 한 말은 아닐 터이다.고무신이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선거철마다 시골사람들에게 고무신을 한 켤레씩 나누어 주고 표를 부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고마워서 찍어주었다. 당시엔 무얼 받고도 모른 척 한다는 건 양심상 도리도 아니고 시골인심도 아니었다. 그런 인심이 요즘이라고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걸 지난번 총선에서 보여 주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푼 것이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더 고약한 것은 옛날에는 후보자가 사비를 털어 고무신을 돌렸는데 요즘은 국민의 혈세를 퍼주고 저들이 생색을 낸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나라 부채가 천조를 넘을 거라고 하니 더 이상 정권을 연장하게 했다가는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며칠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단연 해외토픽 깜이다. 한 나라의 수도와 제2 도시의 시장들이 나란히 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보궐선거를 하게 된 것이 어느 나라에 또 있는 일인가. 거기다가 전 서울시장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으니 세계의 이목을 끌 쇼킹한 뉴스거리로 손색이 없을 터이다. 그들이 속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당헌에 넣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였던 시절에 만든 거였다. 그 당헌에 따르면 이번 보궐선거에는 당연히 두 곳 다 후보를 낼 수가 없었다. 두 시장이 모두 자기네 당 소속인데다 수백억 원의 국고까지 축내게 됐으니 백배 사죄를 하고 후보를 내지 말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당헌 따위 헌신짝을 팽개치듯 바꿔버리고 뻔뻔스럽게 후보를 내었으니 누구더러 표를 달라는 것인가. 정당의 당헌이란 국민을 향한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은 국민을 헌신짝 취급한다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또 그 당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사람들은 자청해서 헌신짝이 되겠다는 것이니 누가 말리겠는가.대통령을 향해 신발 한 짝을 던진 국민은 감옥살이를 시키면서, 이 정권과 여당은 수도 없이 헌신짝을 국민들 앞에 던지고 있다. 선거공약과 대통령 취임사로 거듭 다짐한 모든 약속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들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짓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해온 정권이다. 여태껏 정권과 여당이 국민을 헌신짝 취급했으니, 이번 선거에는 국민이 그들을 헌신짝 취급할 차례다.

2021-04-01

공대 여학생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 직을 사퇴한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1971년 서울공대에 입학한 3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공대에 여학생이 입학하는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신문에 기사화 되던 시절이다. 공대 캠퍼스에 여학생이 걸어가면 남학생들이 한참을 쳐다보곤 하였다. 여자 교수도 없던 시절이니까 공대 건물에 여자 화장실이 없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다.1946년 개교한 서울대의 공대생은 30년이 지난 1970년 중반까지 졸업한 여학생은 50명이 되지 않아 연 1∼2명 정도가 고작이었다.1973년 첫 입학생을 모집한 카이스트 대학원에도 여학생은 한해 2∼3명 정도였다. 그것도 생명공학 같은 특정 전공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학생 비율은 1%가 안되던 시절이다.1989년 필자가 포스텍에 부임했을 때 여학생의 비율이 10% 가까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보다 2년 앞서 포스텍 첫 입학생의 수석합격자도 여학생이었다.한국 전체로도 공대 여학생의 비율은 계속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 10%를 넘어서고 최근 통계에 의하면 여자 공대생이 20%를 넘었다고 한다. 재학생 기준이니까 신입생의 여학생 비율은 지금 25%에 육박한다고 한다.여자 공대생이 증가한 주요 계기는 1996년 이화여대가 여대로는 처음으로 공대를 신설한 것도 한몫을 했다. 한국의 대표적 여자대학인 이대가 공대를 만들리라고는 상상도 안가던 시절이었다. 그후 숙명여대 등도 공대를 만들었고 포스텍 교수님이 공대학장으로 임명 되기도 했다.최근 들어 대학 졸업자 중 인문계열 및 예체능계열 취업난에 따른 여파로 여학생들이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학계열, 사회계열 입학이 대체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작년 대학 졸업자의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의약계열이 80% 정도로 가장 높았고, 공학계열 70% 정도로 2위라고 한다. 사회계열, 인문계열, 교육계열 보다 높다고 한다.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취업률이 좋은 공대의 상황이 여성을 공대로 끌어들이고 있다.사실 여학생 비율의 폭발적 증가는 법학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나 법학전문대 여성 비율도 거의 50%에 육박할 정도이다.70∼80년대까지는 법대에 다니는 여학생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시절이고 여자대학 법대는 인문사회 계열에 비하여 인기가 떨어지던 시절이다.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미국의 명문공대 MIT는 여학생 비율이 40%라고 한다. 이제 캠퍼스에 넘치는 공대 여학생은 선진화의 상징이고 여성의 사회진출의 상징이다.오늘도 공대 여학생은 코로나로 실험 등 일부만 대면 수업이 진행되는 캠퍼스 사이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고 있다.

2021-04-01

화가 최복호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루이 비뱅’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어린 시절 화가가 꿈이었던 비뱅은 생업 때문에 우체부가 되었고, 47년의 우체부 생활을 끝낸 61세 되는 날부터 화가의 꿈을 키워갔다.미술에 대해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홀로 공부를 했지만 그의 그림은 늦게 시작했기에 더 간절했고 더 가슴 뜨거웠다고 한다. 그가 떠난 지 70년 지났으나 프랑스인들은 그의 작품을 지금도 즐겨 찾으며 그를 행복한 화가로 기억하고 있다.패션 디자이너 최복호씨의 화가로의 변신이 지역사회의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는 대구에 본사를 둔 패션업체 씨앤보코(C BOKO)의 대표며 1세대 패션 디자이너다. 우리 지역에서 48년을 패션 디자이너로 맹활약해 명성도 자자하다.할리우드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그의 옷을 입고 토크쇼를 할 정도니 그의 패션은 국제적 수준이다. 대구패션협회 회장,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등 어느 모로 보나 그는 패션 디자이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패션연구소를 청도 산골짜기에 세울 정도로 엉뚱한 면도 있다.펀앤락(fun 樂)이란 문화공간에서 공연도 열고, 자연과 패션과 문화를 아우르는 일을 했다. 개그맨 전유성과 함께 시도한 ‘개나 소나 콘서트’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공연이다. 한적한 전원주택지 청도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심는 데 그의 공로도 크다.어떤 이는 그를 문화독립군, 문화지킴이라 한다. 그런 그가 지난 30일 화가 데뷔 전시회를 열었다.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그의 작품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매일 붐빈다고 한다. 7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화가로 변신한 그의 모습에 신선함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년퇴임한 소박한 우체부가 꿈을 키워가는 이야기와 닮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01

대구가 꼴찌인 이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7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대구를 정치적 판단이 미숙한 도시로 몰아가며 지역 비하 발언을 내놨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40년간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지금 대구 경제는 전국 꼴찌다. 왜 그럴까”라고 물은 뒤“사람을 보고 뽑은 게 아니고 당을 보고 뽑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구 유권자의 선택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즉각 “망국적 지역감정까지 동원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사실 대구시민들 가운데서도 대구 경제가 꼴찌인 이유를 진실로 궁금해 하는 이가 적지않다. 대통령을 5명이나 내고도 왜 경제가 꼴찌일까. 대구경북 출신 대통령들은 아무리 자신의 고향이라 해도 사전타당성평가가 크게 낮은 경우 특혜시비를 우려해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 고향 앞바다에 다리를 놓는 포항 영일만대교 예산을 승인해줄 법 했건만 이 대통령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과 대구,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놓은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경북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을까.대구에 고용을 창출할 원청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며 삼성자동차 유치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남 거제가 고향인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삼성그룹에 자동차산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대구가 아닌 부산에 자동차를 설립토록 했다. 삼성그룹은 1년 뒤인 1996년 8월 삼성상용차를 대구에 설립했지만 IMF직후인 2000년에 파산하고 말았다. 대구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기회를 놓친 것은 이뿐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첨단의료복합도시를 조성할 때 얘기다. 약령시가 있는 대구직할시와 대구한의대와 약재가 많이 나는 경북 지역 땅을 아울러 한방바이오산업을 키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전국에 한방바이오를 하겠다는 도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말았다. 그 결과 정부는 2009년‘대구·경북 신서혁신도시’와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각각 조성하기로 했다. 문제는 수도권에서 훨씬 가까운 입지인 충북 오송이 평당 65만원에 조성됐고, 대구는 땅값이 100만원이 넘게 책정됐다. 이러니 기업이 어떻게 할 것인지는 자명했다. 수도권에서 더 먼 곳에 더 비싼 땅값을 지불하고 공장이나 기업을 세울 기업이 많을리 없다. 매사 이런 식이다. 그 당시 30년 무상임대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해 더 많은 의료기업을 유치하면 어땠을까. 고용이 창출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인구수도 늘고, 돈이 돌기 시작한다. 도시가 활기를 되찾게 된다. 지금 대구는 어떤가. 경제는 살려야 한다면서도 대구시가 특정 기업 유치를 위해 특혜를 주겠다면 이유불문 물어뜯는 분위기다. 대구시민들 마음속에 기업가에 대한 이유모를 반감이 도사려 있지는 않나 의심스럽다.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모쪼록 대구경제를 꼴찌에서 탈출시켜줄 리더십을 가진 시장을 뽑았으면 좋겠다.

2021-04-01

75세 이상 접종 시작… 대구경북 접종률 높여야

4월부터 7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나이와 상관없이 노인시설 입소·이용자와 종사자도 이달 1일부터 백신 접종을 맞는다. 75세 이상 고령자는 전국적으로 350여만명이며 대구가 15만8천여명, 경북은 24만9천여명이다. 지난 2월 26일부터 요양시설 입소자와 의료진 등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했으나 일반인에 대한 백신 접종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도 이날 백신 접종을 맞고 백신 접종만이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홍보했다. 대구와 경북지역은 지난 1차 백신 접종에서 전국에서 가장 낮은 백신 접종 동의율을 보였다. 아스트라제네카(AZ)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한 결과라고 하지만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인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70% 이상이 접종을 받아야 집단면역이 생긴다고 하니 백신 접종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정부도 AZ백신에 대해 안전성에 문제없다고 수차례 밝혔으며 1일에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AZ 백신을 맞는 등 대국민 불안감 해소에 나서고 있다. 서울의 경우 75세 이상 백신 접종 동의율이 80%에 이르고 있다. 우리지역에서도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지역의 집단면역을 높이는 관건이 된다. 이제부터 일반인의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는 만큼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에 적극 응해야 한다.지금 세계 각국은 백신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 세계의 백신공장이라 불리는 인도가 자국민 우선을 앞세워 백신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파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백신 물량 확보 시기가 늦어지는 질 것 같다니 걱정이다. 정부가 예상한 11월 집단면역 형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지금 국내 코로나 신규 환자는 매일 400∼500명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3차 유행이 시작한지 벌써 다섯 달째 접어들었으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없다. 1일에는 551명의 신규 환자가 나오면서 이틀째 500명대를 기록했다. 41일만에 최고다. 부산지역은 이날 53명의 신규 환자가 나오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구와 경북도 연일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백신접종이 유일한 대안이란 점 잊지 말고 백신 접종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21-04-01

구미의 핵심 반도체 기업을 중국에 넘기다니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반도체 업체 매그나칩이 중국자본에 매각돼 반도체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매그나칩 노조는 오는 월요일(5일) 구미공장에서 중국자본 매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뉴욕거래소에 상장된 매그나칩은 지난달 “미국 본사 주식전량을 중국계 사모펀드인 와이즈로드캐피털과 관련 유한책임 출자자들에게 매각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각거래 규모는 14억달러(약 1조6천억원)다. 매그나칩의 사무실은 서울과 청주에 있으나 사업장은 구미산단에 있다. 현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DDI 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화소를 조절해 영상을 구현하는 반도체)와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매그나칩의 DDI 반도체 점유율은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 2위 수준이다.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 시점에서 매그나칩반도체를 중국에 매각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구미갑이 지역구인 구자근 의원(국민의힘)은 “매그나칩반도체가 중국에 매각되면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핵심기술의 유출이 우려된다. 중국이 매그나칩을 인수하면 첨단 OLED 구동IC와 전력 반도체 사업의 기술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 의원은 최근 6년간 국외로 유출된 국내 산업기술이 121건이고 이 중 29건은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뜻한다.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안 그래도 한국이 장악하고 있는 OLED 시장을 잠식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헤드헌팅 사이트엔 ‘한국 기업의 OLED 관련 반도체·디스플레이 엔지니어를 구한다’는 중국 기업의 채용 공고가 수시로 올라온다. 국가핵심기술을 수출하거나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려는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게 돼 있다. 정부가 허가하지 않으면 매각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한국의 핵심적인 산업 자산을 굳이 중국 같은 경쟁국에 넘길 필요가 있겠느냐’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가볍게 듣지 말고 ‘국가핵심기술’ 보유에 대해 철저히 심사해서 매각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2021-04-01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비극을 막으려면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동산 투기 비리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공기업 직원이 업무상 취득한 정보로 개발예정지 땅을 구매해 이득을 챙긴 범죄이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친인척, 지인들의 투기 규모까지 드러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그 토지 개발 공사의 사장이 다시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번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직원은 농사를 짓거나 퇴임 후를 대비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고 국민적 분기만 탱천하고 있다.국가 수사본부는 부동산 범죄의 수사 범위를 LH뿐아니라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 하기 위해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국회의원 여러 명이 개발예정지의 토지, 임야를 매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시장, 군수와 지방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정도 드러나고 있다.국수본에 따르면 수사 대상이 536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을 받았지만 이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곧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전모가 발표되겠지만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가히 돈만 벌겠다는 투기 공화국의 참상이다. 이러한 투기광풍은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초래한다. 그 일차적 책임은 문재인 정부가 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취임 후 최악인 3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도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부동산 투기만큼은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도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거품이 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정부하의 부동산 과열은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져 버렸다.이러한 부동산 투기 현상은 일반 국민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게 했다. 진보적이던 20∼30대가 반정부적 성난 세대가 됐다. 취업도 결혼도 못하고 집값만 오른 상황에서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가령 어느 청년이 취직해 매월 100만원씩 저축한다 해도 서울의 5억원 짜리 전세를 구하려면 50년이 걸린다. 그러니 3포 세대가 늘어나고 놀고 있는 니트(Neet) 족이 늘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슴에도 불을 지폈다. 평등, 공정, 정의를 앞세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인 분노가 정부와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물론 부동산 투기를 막지 못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권의 누적된 과제이지만 현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에서 부동산 투기방지를 위한 전 공무원 재산등록, 부당이익 환수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방책은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보장하는 것이다. 토지는 개인이 소유하되 그 개발 이익은 국민 복지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식 토지 국유화와는 다르며 이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 등에서 이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03-31

사주를 찾는 아이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요즘은 학생, 특히 중학생이 사주를 보러 많이 와요! 주말이면 학생 손님들이 줄을 서요.”역술 공부를 하는 지인의 말이다. 사주를 보기 위해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상상해보았다. 학생들의 용기가 놀라웠다. 필자는 학생들이 왜 가는지를 물었다.“많은 학생이 연애운에 관해 물어봐요. 남자 친구와 잘 되는지, 여자 친구는 언제 만날 수 있는지, 헤어진 친구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내용이에요.”필자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지인은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 주었다.“학생 중에는 연애운(戀愛運) 못지않게 자신의 미래운(未來運)과 미래 직업에 관해 묻는 학생들도 많아요. 이 선생, 요즘 우리 아이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정말 많이 불안해해요. 오죽했으면 자신의 미래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한테 묻겠어요, 그것도 진지하게!”의아함은 놀람으로 놀람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지인의 말 중에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에 필자는 지인을 볼 수 없었다. 지인은 학생들을 대신해서 필자에게 따져 묻는 듯하였다.‘도대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필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자유학년제도 그렇고, 고교 학점제도 그렇고 모두가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기 위한 교육제도들이다. 다음은 두 제도의 정의다.“중학교 과정 중 1학년 1, 2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토론·실습 위주의 참여형 수업과 직장 체험 활동 같은 진로 탐색 교육을 받도록 하는 제도.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대한민국 교육제도가 그렇듯이 이 두 제도를 위해 정부는 교육계의 운명을 걸었다. 물론 짧지만 시범 학교도 운영하였다. 학생과 교사가 만족한다는 보고서용 결과도 내놓았다. 그리고는 계엄사령관이 되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늘 정부가 정해 놓은 결과였다.교육 이론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이론이라는 것은 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교육 이론은 언제까지나 어른의,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이론에 불과하다. 교육 정책가, 정확히 말해서는 교육 몽상가들은 말한다, 어떻게 이런 좋은 교육제도를 이해 못 하느냐고! 이처럼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교사를 포함해 이 나라 교육인들은 역술인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역술인에게 있어 제일 우선은 바로 내담자, 교육계로 말하면 학생이다. 그들은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자신들을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한다.필자는 이 나라 교육운(敎育運)을 짧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亡(망할 망)”이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으면,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에 가위눌린 학생의 모습을 보라! 교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학생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2021-03-31

황소의 반란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몇 년 전에 멕시코의 투우장에 이런 일이 있었다. 투우경기를 하는 도중 황소 한 마리가 관중석으로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치는 등 대 혼란이 일어났다. 언론은 이 사건에 ‘황소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모든 경기에는 공정한 룰이 있어야 하는데 투우는 그 룰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투우에 사용되는 황소는 송아지 때부터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오직 붉은 천만 공격하도록 길들인다. 그리고 경기 전에 ‘삐까도르’라는 무사들이 창으로 소의 목 부위 운동신경을 절단하여 방향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결국 황소는 경기 내내 붉은 천만 공격하다가 힘을 다 소진하고 투우사의 칼을 맞고 숨을 거둔다. 알고 보면 투우는 비겁하고, 비열한 불공정한 경기이다. 황소의 반란은 바로 이 불공정에 대한 항의였다는 것이다.최근에 인간의 삶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의 대반란이다. 지구가 존속하고 지구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으려면 지구 온도가 지금의 온도에서 최대 1.5도 이상은 상승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IPP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보고에 의하면 2040년이 되면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다고 한다. 생태학자 리프킨은 이러한 자연의 대 반란은 ‘엔클로저운동’ 즉 인간이 자연을 사유화하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엔클로저’란 인간이 목축이나 농사 등 기타 영리의 목적으로 동물들과 공존하던 땅을 울타리를 치고 통제하여 사유화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모든 생명체가 공유해야 할 땅을 조각내고 울타리를 쳐서 통제하고 사유화함으로 지구가 엔클로저화 되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생명체들이 인간을 향해 대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된 자연을 공유하고 공존하는 땅으로 잘 관리하라는 사명을 인간에게 주었는데 인간은 관리자가 아니라 통제자가 되어 엔클로저화 했다. 스웨덴의 어린소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와 그 일행은 엔클로저화 된 기성세대를 향하여 이런 말을 했다. “지구는 당신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우리의 땅입니다.”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공을 깊이 들여다보면 엔클로저화 된 인간을 향한 자연의 반란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코로나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화학백신과 행동백신에 의존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중요한 백신이 있어야 한다. 그 백신이 생태백신이다. 생태계에 주어진 창조질서를 회복하여 생태계를 복원하는 길만이 모든 반란을 막고 모든 생명체가 공존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2021-03-31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장규열한동대 교수일 년 365일 가운데 그래도 해학과 위트가 느껴지는 하루가 있다. 바로 오늘 만우절.악의와 술수를 품은 기만이 아니라 재치와 웃음을 담은 거짓말로 유쾌하게 주고받는 한 날. 만우절이 있어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한순간이지만 파안대소로 통쾌하다. 나이와 격식도 잠시 잊고 시름과 걱정을 날려 보내는 상쾌함이 있다. 영어로 April Fool’s Day라니 바보가 되어 오히려 신선하다. 꽉 조여서 여유라고는 한 치도 없는 현대인의 일상 가운데 그래도 이 한 날이 있어 긴장과 경계를 풀어놓는다. 만우절이 지나면 다시 싸움터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모두의 운명이지만, 이 하루를 지어낸 사람들의 지혜가 가상하고 고맙다. 오늘 당신은 어떤 신박한 거짓말로 웃을 것인가.거짓말은 나쁘다. 특히 정치인과 공직자의 거짓말은 그 폐해의 공적인 범위가 상상을 넘기도 하여 심각하기 일쑤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공약과 선언에 신뢰로 다가서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늘상 당하면서도 순박하게 표를 던지는 국민이 결국 그들의 대표를 그렇게 선출하고 만다. 믿지 못하면서도 뽑아 세우는 시민은 책임이 없을까. 믿지 못하겠으니 아예 투표에도 나서지 않는 국민은 또 누구인가. 누가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자조는 정당한가 아닌가. 거짓과 기만을 워낙 거듭 경험한 국민은 지칠대로 지쳤다. 법과 제도, 윤리와 도덕은 후보들의 술수과 거짓을 막아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미디어로 둘러쌓인 오늘의 선거전에서 후보들의 면면을 세세히 살필 기회는 이전보다 늘어났다. 시민 각자가 팩트와 거짓을 구분해야 한다.정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삶을 위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도 유권자의 몫이 아닌가. 가짜뉴스와 편향보도의 숲에서도 옥석을 가리는 당신의 표심과 혜안은 살아있어야 한다.여론조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표심의 향배를 들먹이지만 마지막 결정은 나의 손끝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작 이번 선거가 우리 지역에는 없다. 그럼에도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일은 삶이 그만큼 힘들고 지쳐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다가올 나라의 모습과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아닐까. 나라가 잘 되었으면 하고 하루하루가 나아졌으면 하는 민심은 오늘도 정치의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정치인 당신들의 언사와 약속에 진정성이 얼마나 실렸는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얕은 거짓과 약은 술수가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만우절이 선사하는 유쾌함이 정치의 거짓과 기만에 덮이지 않아야 한다.시민이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 언론이 공적인 책무를 적절하게 수행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확인된 팩트에 근거한 기사와 평론으로 승부해야 한다. 공연히 바람을 일으키는 데 몰두하는 언론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정치도구일 뿐이다. 잠시 즐기자는 하얀 거짓말을 넘어 정치술수에 물든 거짓말 잔치는 사라져야 한다.진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3-31

줌바밍(Zoombombing)

줌바밍은 언택트 시대 화상강의 플랫폼으로 쓰이는 ‘줌(Zoom)’과 폭격을 뜻하는 영어단어 ‘바밍(bombing)’을 붙인 신조어로, 코로나 사태로 늘고있는 화상회의에 허락없이 침입해 온라인 회의나 수업을 방해하는 일을 가리킨다.줌은 클라우드 기반의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중국 산둥성 출신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가 2011년 창업했다. 회원 가입 없이 링크만으로 접속이 가능하며, 100명까지 동시 접속할 수 있어 온라인 강의, 웹 세미나 등에 활용된다. 줌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이 증가하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그러나 줌은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페이스북으로 전달되는 오류가 발견됐으며, 원격 강의 중 음란물 사진이 화면에 나타나고 인종차별 내용이 채팅창에 도배되는 공격을 받는 등 취약한 보안성으로 문제가 됐다.특히 대학의 경우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 수업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줌바밍 피해가 끊이지 않고있다. 최근 모 대학 교수의 비대면 화상수업 중 신원미상 인물이 갑자기 들어와 욕설과 혐오표현을 무차별로 쏟아놔 담당교수가 모욕,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미 연방수사국(FBI)은 줌의 화상회의 기능 이용 시 회의실을 비공개로 설정하거나 암호를 걸어놓고 절대 전체공개로 설정하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구글·스페이스X 등 IT 기업들은 직원들의 줌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과학문명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잘못 운용하면 큰 피해를 입히는 ‘양날의 칼’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31

‘김해 신공항 백지화’ 너무 성급하지 않나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해공항 확장사업을 폐기하고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를 5월 중에 시작하겠다”고 보고했다. 정부가 김해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내린 이번 결정은 누가 봐도 ‘선거용’으로 생각된다.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김해공항 확장사업에는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기본계획 수립에 34억3천만원이 들어갔고, 환경영향평가 용역비에 7억3천만원이 쓰였다. 그 외 부수적인 경비도 많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해신공항 백지화로 지난 5년간 최소 40억원의 예산이 낭비된 셈이다.국토부는 가덕도 신공항의 조기 착공을 위해 내년 3월까지는 사전타당성조사를 마친 뒤 사업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임박해서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구체적인 건설방안을 내놓겠다는 의도로 비친다.사전타당성조사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국토부가 2월 초 국회에 제출한 자체보고서를 어떻게 번복하느냐는 것이다. 국토부는 당시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과 환경, 경제성 등 7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은 외해(外海)에 직접 노출돼 조류와 파도 등의 영향으로 공사가 어렵다’, ‘해상 매립 공사만 6년 이상 예상되고 태풍 피해도 우려된다’, ‘부등침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며 난공사와 안전성을 특히 걱정했다. 진해군비행장과 가까워 항공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됐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난제를 내년 3월까지 어떻게 검증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국제공항을 건설하려면 우선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의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안전성을 검증한 후 김해공항 확장사업을 폐기하는 절차가 정상적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생략된 마당에 사전타당성 조사를 초스피드로 진행하겠다는 것은 안전성검증까지 적당하게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아닌지 걱정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국토부 담당자들은 사전타당성 조사만이라도 철저하게 해서 나중에 직무유기를 했다거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2021-03-31

토종기업의 쇠퇴… 지역경제 활력소 찾아야

대구와 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토종기업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토종기업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토종기업의 퇴출이 취약한 지역 경제를 반영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안타깝다.특히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소재한 대구백화점 본점의 영업 중단 소식은 충격적이다. 1944년 출발해 70여년 시민과 함께 애환을 같이해온 향토 유통업체의 위기를 목격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대구백화점 본점은 건립 당시 대구 최초의 10층짜리 고층건물로 지역사회의 많은 화제를 뿌렸으며, 줄곧 대구 동성로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 대구 중심 상권의 상징이기도 했다.대구는 전국 지방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백화점 산업이 잘 발달 된 곳이다.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이 양대 산맥을 이뤄 서울업체의 지역시장 공략에도 향토기업으로서 유통산업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그러나 2010년 롯데 등 서울업체의 집요한 지역시장 공략으로 동아백화점이 이랜드로 넘어가고 이어서 신세계 백화점의 대구 진출로 지역 유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대백 본점의 영업 중단은 대구 상권이 분산되고 코로나19 장기화 등에 따른 요인도 있으나 신세계, 현대 등 대기업의 대구시장 진출이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신세계의 대구진출은 유통시장의 파이를 키운 측면은 있으나 지역에 본사를 둔 지역유통업에는 위기로 다가왔다.대구백화점측은 본점의 폐점으로 적자를 줄이고 프라자점으로 역량을 집중해 새로운 전기로 삼겠다고 하니 향후 변신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대구에는 1980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청구, 보성 등 굵직한 주택건설회사들이 전국적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경영난을 겪고 기업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은 크고 작은 많은 향토기업이 지역민 속에 남아 선전을 하고 있다.향토에 뿌리를 둔 토종기업은 지역경제의 뿌리산업이다. 대기업과는 달리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지역의 오랜 특성을 대변한 산업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일수록 향토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절실한 이유다. 대구백화점의 분발을 촉구한다.

2021-03-31

떡 만드는 여자

배문경수필가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

2021-03-31

마음 어귀에 음나무를 심고

이순혜수필가봄꽃이 다투어 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고향마을 곳곳에도 이미 복숭아나무가 발그레한 꽃눈을 내민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음나무도 가지 끝에 봄을 머금었다. 하나도 꾸밈이 없는 봄 햇살이 음나무를 비추고 그 가지에 뭉게구름 한 점 걸려있다. 나무가 있는 한 편의 수채화이다.4월은 꽃들이 그 아름다움을 폭로하는 때다. 그런데 꽃도 아닌 나무에 눈독을 들이는 이가 있다. 한 철, 한 끼의 밥상에 오를 음나무의 새순을 기다리는 옆집 뒷집 아낙들이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활짝 피는 새순을 기다렸다가 한 소쿠리 푸짐하게 따서 데친다. 푸른 냄새가 뒷집 담장을 넘어가고 두레 밥상에 올랐던 새순은 두고두고 우리 집을 대표하는 맛으로 불리었다.쌉싸래한 맛은 잃어버린 입맛을 살린다. 음나무, 오갈피, 두릅나무 새순은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데 으뜸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음나무의 새순을 유난히 좋아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몸이 푸른 기운이 아주 고팠나 보다.음나무 새순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쌉싸래한 그 맛은 중독성이 강해 두고두고 먹고 싶지만, 일 년 내내 푸른 새순을 데쳐 먹기는 어렵다. 짧은 봄날에 도둑눈처럼 왔다가 사라져 들뜬 입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음나무의 가지도 귀하게 대접받는다. 거칠고 투박한 나뭇가지 한 줌을 꺼내 대추 서너 개를 넣고 달인다.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면 피가 맑아진다. 또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정혈작용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이로운 나무인가. 무엇보다 마늘, 양파, 된장과 음나무를 넣어 푹 삶은 돼지고기는 보양식의 으뜸이다.음나무는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새순은 쌉싸래한 맛을 내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래서 잎을 보호하기 위해 굵고 험상 맞은 가시를 촘촘히 달고 있다. 또한, 음나무의 가시는 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8F9F邪)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사나운 가시가 빼곡한 음나무의 가지를 문설주에 두기도 하고 마당 대문 곁에도 심었다.음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긴 곳도 있다.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나무는 무려 1천 년을 한자리에서 살아왔다. 고려의 멸망사를 지켜본 나무로. 공양왕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고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켰다.고향 집을 지키는 나무도 음나무다. 예쁜 꽃을 피우지 않고 나비 불러들이는 향기는 뿜지 않지만, 나무로서 단단히 한몫한다. 담장 옆에서 뾰족한 가시를 세운 채 악한 것들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늠름한 모습으로 지키고 섰다. 달이 이울고 별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숱한 날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몇 해 지나 아버지의 죽음까지 지켰다.생명 있는 존재는 사람의 호흡과 함께해야 한다. 붙박이로 있는 물건도 매한가지다. 비어 있는 고향 집을 매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에 미안했다.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 집을 처분해야 한다는 것을 합리화시켰다. 그런데 딱 하나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이 바로 대문 곁 음나무였다. 한 집안을 지키던 수호신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서운함보다는 나를 누가 지켜줄까 하는 허전함이었다.몇 해 전, 나무 시장에서 음나무 두 주를 샀다. 햇볕을 좋아하고 잘 자라는 나무이기에 텃밭 입구에 심었다. 한 계절이 지나고 나무는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며 연둣빛의 새순을 달고 내게로 왔다. 경이롭다는 말이 이런 건가 보다. 그냥 며칠 동안 음나무 곁에서 서성거렸다. 솜털 같은 잎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음나무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나무를 부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가진 추억의 모양이 다르기에 기억의 색깔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남쪽의 꽃소식보다 먼저 찾아올 쌉싸래한 음나무의 새순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한 그리운 맛이다. 이제 겨우 한두 개의 새순을 피워 올린 텃밭의 음나무는 내가 피워야 할 내일의 맛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오늘을 채우면서.봄이 오면 텃밭으로 달려간다. 언제나처럼 음나무의 가지들이 기지개를 켜며 쑥쑥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훔쳐본다. 나무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이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그래, 내가 두 발로 서 있는 나무 곁으로 가면 되는구나.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까.알고 보니, 나는 마음 어귀에 음나무를 심었다. 내 안으로 나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2021-03-31

천지원전 10년 묵혀놓고 백지화, 보상도 안하나

경북 영덕군에 건립키로 했던 천지원자력발전소 사업이 결국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국가사업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고 피해 보상에 대한 후폭풍이 이제 본격화 할 것 같아 걱정이다.영덕군은 천지원전이 백지화되면서 발생하는 직간접적 피해 규모가 3조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장 정부 원전지원금 380억원의 사용을 정부측에 승인 요청했지만 정부 입장은 거부다. 정부측은 지원금은 사업을 전제로 한 돈이므로 백지화된 이상 지급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덕군은 사업 백지화의 귀책 사유가 군에 전혀없고 이미 군비 등으로 상당부분 사용돼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천지원전 사업은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영덕읍 석리, 매정리, 창포리 일대 324만㎡에 가압경수로형 원전을 건설키로 고시하면서 시작됐다. 10년동안 주민들은 정부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을 믿고 토지가 묶여 권리행사가 제한되더라도 인내해 왔다.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천지원전 사업은 백지화 수순에 들어갔고 사업자인 한수원은 2018년 천지원전 예정구역에 대해 지정 철회를 산자부에 신청했다. 이번에 산자부가 천지원전 발전소 예정구역의 지정 철회를 심의 의결한 것은 이에 대한 후속 조치다.경북도와 영덕군은 천지원전 백지화에 따른 보상을 이미 수차례 산자부 등에 건의했다. 특히 영덕군은 지원금의 사용 승인과 함께 특별법 제정을 통해 원전 예정구역내 주민과 인근주민에 대한 피해조사 및 충분한 보상을 요구했다. 또 원전 대안사업 및 미보상토지에 대한 대책도 요구했다.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측의 입장은 매우 미온적이다. 대안사업으로 신재생보급사업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주민이 이 정도 수준의 보상에 응할 리가 만무하다.정부의 적극적이고 성실한 보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권을 떠나 국가의 정책을 믿고 10년간 인내해 왔던 주민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책이 반드시 제시돼야 한다. 국책사업에 대한 국가의 신뢰며 정부에 대한 믿음이 된다. 천지원전 사업의 실행과 백지화의 주체는 정부다. 백지화에 대한 보상에 정부의 성의 있는 대책을 촉구한다.

2021-03-30

문무대왕면

문무대왕은 신라 30대 왕이다. 태종 무열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다. 김유신 장군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중국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명군이다.기록에 의하면 그는 사후에 있을지 모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신의 시신은 화장하고 동해의 큰 바위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지금 사적 제158호로 지정된 대왕암이 그가 묻힌 수중왕릉이다.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여 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 형태로 세워져 있다. 못 안에는 거북이 모양의 돌이 앉혀져 있으나 전해오는 이야기의 실체를 발굴조사에 의해 증명된 적은 없다.다만 외적의 침입에 맞서 사후에라도 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그의 대를 이은 신문왕이 아버지 왕의 뜻을 실현키 위해 세운 사찰이 감은사라는 것은 이런 역사적 전설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경주는 수많은 역사기록과 전설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다. 대왕암이 있는 양북면이 다음 달부터 문무대왕면으로 명칭이 바뀐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찬성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명칭을 행정명으로 바꾸는 것이다.올해 인각사가 있는 군위군 고로면이 삼국유사면으로 바뀐 것처럼 지역의 역사성을 근거로 명칭 변경 움직임은 나름 신선해 보인다. 그 지역의 특산물뿐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는 데도 한 몫 단단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문화재와 역사의 도시 경주가 이와같은 아이디어를 잘 개발한다면 경주의 브랜드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30

봄날

김규종 경북대 교수주말에 오신 봄비로 대지가 촉촉하고, 대기는 청명하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지만, 봄날의 정취를 완상하기에 모자람은 없다. 토평(土平) 들과 천변을 향하는 걸음걸이 가볍고, 콧노래 절로 나오는 봄날. ‘동심초’에서 시작하여 ‘4월의 노래’를 거쳐 ‘하얀 목련’을 지나 소월의 ‘못 잊어’로 마무리하는 홀로 ‘걷는’ 노래방. 창고 그늘 밑에 있던 젊은 농부가 슬며시 외면해주는 덕에 황망한 얼굴의 홍조는 겨우 모면한다.흡족하게 내린 비로 논과 밭이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마늘과 양파가 훌쩍 자라나고, 웃자란 청보리는 적잖게 넘어져 있다. 지난겨울 추위 견디고 시퍼렇게 자라난 보리가 바람에 넘실댄다. 어설픈 날갯짓으로 까마귀는 ‘서(西)으로’ 길 재촉하고, 풀숲의 장끼 푸드득, 소리 내며 밭고랑 사이로 숨어든다. 노란 나비 춤추듯 날고, 곤줄박이 하나 전선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발치에는 풀들의 경연이 한창이다. 노랗고 하얀 민들레와 키가 훌쩍 큰 냉이, 여린 몸에 노란 꽃을 단 꽃다지, 자주색 광대나물과 앙증맞은 제비꽃, 과수원 일부를 저희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큰개불알풀, 이제 막 세력을 확장하는 살갈퀴와 우슬(牛膝), 냉이를 닮았으되, 더 크고 거칠지만 둥근 지칭개, 먹을 수 있을까, 오해 부르는 개쑥갓까지 초록 융단이 깔렸다.길을 걷노라니 완만한 능선 선보이는 장중한 남산 홀로 우뚝하다. 산의 발치에는 진달래와 녹음이 제법 찾아들었고, 종아리 부근에는 자두꽃 자못 화사하다. 허리 부근엔 하얀 산벚꽃이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이파리 단 갈색 활엽수들이 아직 겨울에 잠겨 있다. 상록수들만 예나 지금이나 초록으로 대견하지만, 그리 환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가던 길 멈추고 상념에 든다. 산 아래는 봄날의 기쁨과 약동으로 넘쳐나는데,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겨울 아닌가?! 빛나는 꿈의 계절을 완상하지 못하고 침묵에 잠긴 산꼭대기. 봄은 산 아래서 시작하여 등성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다. 하지만 단풍의 가을과 삭풍의 겨울은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등성이 거쳐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서 좋은 것은 아래에 있고, 고단하고 괴로운 것은 위에 있다.우뚝한 정상이 있기에 아래쪽 뭇 생명은 봄날을 노래한다. 정상에는 비바람과 땡볕, 칼바람과 눈보라 거세고, 환희의 날들은 훨씬 짧다. 산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꼭대기에 서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을 감내하라! 편하고 쉽고 달콤하며 아늑한 것은 아래 생명에게 넘겨주어라. 단, 정상에 있기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과 장쾌함을 보상으로 받는 것이라고.하지만 인간 세상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모든 것을 혼자 가지려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사랑까지 독점하려 든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웃으며 양보하고, 나누며 물러서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질시의 시선 받는 고독한 강자가 아니라, 축복과 박수를 받는 그런 부류가 되기를!….

2021-03-30

‘기후위기 교육의무화’ 제안에 공감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그저께(29일) 비대면 영상회의로 진행된 전국대도시(광역시 제외한 인구 50만 명 이상도시)시장협의회에서 “기후위기 환경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기후위기가 이제 인류생존의 문제가 된 만큼, 중·고교 교과과정에 필수과목으로 넣어 전 국민이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 제안의 배경이다.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도시의 단체장으로서 평소 탄소중립 실천에 주력하고 있는 이 시장이 제안한 의견이어서 더욱 공감이 간다. 이 시장은 이날 회의에서도 “전국대도시 시장협의회가 솔선수범해 탄소중립을 위해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시·군에 푸른 영향력을 전파해 나가자”고 강조했다.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기감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일으킨 바이러스 출현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도 기후변화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박쥐가 선호하는 산림 서식지를 확장시킴으로써 중국 남부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저께부터 전국을 뒤덮은 최악의 황사도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최근 20년 사이 중국과 몽골 황사 발원지의 폭염일수가 급증하면서 토양수분이 급격히 떨어져 사막으로 변하는 것이 황사가 더 심해지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숨 막히는 황사에서 보듯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됐다. 자연히 모든 교육단위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환경교육을 중요과목으로 다루는 것이 맞다. 환경교과목은 기후위기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난 2007년에는 전국 20% 정도의 중·고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채택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학교가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자라나는 세대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교육당국은 이 시장이 제안했듯이 환경교과목을 모든 중·고교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전국 교육대와 사범대의 교원양성과정뿐만 아니라 교사 연수에서도 반드시 기후위기 관련 환경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21-03-30

봄비에 매화가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양철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듯하다. 비에 젖어 떨어진 매화꽃잎이 가는 붓으로 곱게 그린 듯 아름다워 밟기가 조심스럽다.옛 선비들은 ‘송,죽,매’를 세한삼우라 하여 작품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는데, 소나무와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변함없는 모습이, 매화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모습이 미학의 상징이 된 것이다.조선의 화가 김홍도는 가난했으나 매화를 무척 좋아해 모처럼 그림을 팔아 3천 냥이 생기자 2천 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 결국 배고픈 식솔들의 몫은 200냥에 불과했으니 문인묵객들의 영감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나무였던가 보다. 퇴계 이황의 ‘저 매화나무에 물주라’는 유언은 유명하다.퇴계는 매화를 유달리 좋아해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겼으며, 말년을 보냈던 도산서원은 지금도 매화동산이라 부를 정도로 매화가 많다. 그는 매화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단양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외모며 글솜씨가 뛰어난 관기 두향을 몹시 사랑하게 됐는데, 풍기군수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관기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결국 두향을 혼자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이별을 슬퍼하며 매화화분을 선물로 보냈다. 이별이 너무 길어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였고, 관직을 떠난 퇴계는 도산서원에 은거하며 매화사랑에 집착했는데, 아마도 두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매화를 심고 꽃이 필 때면 밤이 깊도록 그 곁에서 시간을 보냈고,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술을 마시곤 했다. 두향이 보낸 매화는 도산서원 입구에 심어져 대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도 꽃을 피우고 있다니 간밤의 봄비에 그 꽃잎도 거의 내렸으리라.포항미협과 광양미협이 격년제로 교류전을 주관한다. 광양을 방문하는 해에는 섬진강 매화마을에 들러 매향에 취하곤 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화축제가 취소되었으나 매화마을은 상춘객들로 넘쳐나 꽃보다 사람이 많다는 소식에 씁쓸한 마음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문화관광 수입을 기대하며 각종 축제를 연다.매화축제도 전국의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봄을 즐기는 방법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 봄을 즐기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느끼는 것이다. 매화가 꽃을 피우는 것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후손을 남기기 위함이며, 꽃이 그토록 고운 것은 모진 겨울 추위에 인고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매화를 사랑한 까닭은 매화의 삶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나이 많은 매화를 고매(古梅)라 한다. ‘높고 뛰어나다’는 뜻의 ‘고매(高邁)’가 연상되는 말이라 어감이 좋다.고매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도와 제2도시의 수장을 뽑는 선거전이 치열하다. 오랜 코로나불황으로 빈사상태인 국민들에게 기쁨이나 위로가 될 내용은 없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언행과 LH사태 등이 불신을 끝 모르게 키우고 있다.“매 일생 한이나 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매화를 사랑한 옛 선비들의 기개가 그리운 봄날이 속절없이 깊어간다.

2021-03-29

지속의 힘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봄의 잔치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전령으로 피어나던 매화, 갯버들에 이어 산수유와 진달래가 짙은 색감을 드러내더니 목련과 벚꽃이 우아하면서도 현란하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앞다투어 피는 것 같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가 있고, 표연히 흩날리며 돋아나는 잎새에 미련없이 꽃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알록달록, 멀리 가까이 파릇 푸릇한 봄날의 산자락과 들녘은 온통 파스텔톤이다. 양광과 난풍 속에 바야흐로 환희 같은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나무건 풀이건 봄날에 꽃을 피우고 움을 틔운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땅 속에서 생명수를 찾아 뿌리가 쉼없이 물을 길어 올리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자생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았었기에 개화와 생동의 설레임을 맛보는 것이다. 얼핏 보면 당연하고 무덤덤한 것 같지만,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뿌리에서 밑동, 줄기, 가지로 이어지는 물오름 작용이 끊이질 않았었기에 초목은 소생과 개화로 번성하는 것이다. 자연에 물이 오르고 만물에 생기가 도는 3월은 그래서 ‘물오름달’이라고도 한다.식물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물오름은 생명의 원천이요 성장의 근간이다. 그러나 뿌리를 통해 스며든 물이 가지 끝으로의 이동이 줄어든다거나 공급이 중단된다면 이내 시들거나 메말라 고사하게 될 것이다.단순해 보이는 초목의 생장이 이럴진대, 하물며 인간에게는 다양하고 미묘하며 고차원적인 물오름 현상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각양각색의 물긷기(?)를 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는 것이리라.어떤 뜻이나 꿈을 계속적으로 지켜나가기란 정말 만만찮은 일이다. 누구나 마음먹기는 쉬워도 꾸준한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간에 회자되는 괄목할만한 일들은 대체로 수많은 반복과 지속이 만들어낸 각고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끊어질 듯 이어지며 거듭되는 물오름의 창조적 노력으로, 울음인 듯 웃음인 듯 신열로 복받치는 꽃망울처럼-.비단 돋보이고 주목받는 시도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한 우물을 꾸준히 파게 되면 소기의 목표에 근접하고 최소한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테면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생활 속의 운동을 꾸준히 실천한다거나 독서, 시낭송 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취미활동의 지속으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누려가는 일들은, 자신을 새롭게 키워가는 도전이자 약속인 것이다. 실제 필자의 주위에선 1년 이상을 여명 속에 맨발로 해변을 걸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한편으론 해양 쓰레기까지 수거하는 플로깅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지인은 주말마다 맨발산행을 하기도 하고, 한 직장 동료는 새벽녘에 강둑을 어김없이 걸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반복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지속하는 습관과 반복하는 연습은 꿈의 현실화에 도움을 준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시사하듯, 끊임없는 연마와 꾸준한 습작, 지침없는 훈련을 통해 성취해가는 결실은 찬사와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

2021-03-29

쓸쓸한 삶 속에서 발견된 찬란한 작품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연출한 존 말루프는 동네 벼룩시장 경매에서 수십만장의 필름이 들어있는 상자를 단돈 400달러가 채 안되는 돈으로 낙찰받는다. 그가 집필중이던 역사책에 쓸 시카고의 옛날 사진을 위해 낙찰 받은 물건이지만 사진을 스캔하면서 그가 원하던 사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사진의 촬영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를 구글로 검색해보지만 전혀 정보가 없다. 스캔했던 사진들을 사진 공유 사이트에 올려 좋은 반응들을 확인하고는 전시회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 전시는 흥행에 흥행을 거듭하며 전세계 순회전시까지 이어진다.여기까지는 천재적인 작가의 성공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주인공인 작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 말루프 감독이 낙찰 받은 필름은 고인의 유품으로 단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사진작품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어떤 삶을 살다 갔길래 이 많은 사진과 그녀의 자잘한 유품들을 남기고 떠났는가를 추적한다.‘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몇 가지의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그 질문은 감독이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행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기저에 깔린 것으로, 스스로 그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질문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몇 개의 질문은 직접적으로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묵직한 질문들은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깔끔하게 풀리지 않고 과제로 남는다.1926년 미국 뉴욕 출신으로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보모로 생업을 삼고 사진을 찍으면서 미혼으로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다가 2009년 시카고에서 생을 마감한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그녀의 작품과 함께 펼쳐진다. 신문 스크랩과 영수증, 기차표와 메모 등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하며 단서들을 이어 붙이며 비비안 마이어의 생을 따라간다.그 여정 속에서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남겼는가’도 궁금하지만,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던가’에 무게감이 실린다. 전자의 의문은 작가의식에 관한 고찰이다. 그녀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짧거나 길거나 그녀가 길렀던 아이들과 그녀를 기억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그들의 기억에 담겨있던 비비안 마이어는 친절하고 다정하거나,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심술궂은 사람이었고, 따뜻하거나 어두운 사람이며 즐거운 사람, 염세적인 사람 등으로 평가가 갈린다. 그녀의 삶 속에서 독특한 이력을 토대로 작품 속에 담긴 예술적 의미들을 더듬는다.이는 분명한 작가의식과 주제의식을 가지고서 촬영된 사진의 예술적 평가를 작가론과 함께 작품론으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제 후자의 질문이었던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작품을 전혀 발표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작품으로 인한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진행형으로 남는다.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라질뻔했던 한 명의 천재적인(?) 작가를 발견한 과정과 그녀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가 잠시 살기도 했고 먼 친척이 있는 프랑스의 시골 사진관에서 그녀의 사진을 관광상품으로 팔고 싶어했음을 확인한 것이 전부다. 이것으로 온전히 그녀가 작품 발표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평가하기엔 미흡하다.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정작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현상을 만난다. 두 번째 의문이 확실하게 풀리지 않고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와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살다간 신비로움이 더해지면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그녀는 만족하고 있는가.지금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받는 보상은 온전히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감독도 이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떻게든 덜고 싶었음을 읽을 수 있다.흥미롭고 감동적인 영화가 끝나고(2013년) 난 이후 벌어졌던 저작권 수익 상속에 관한 법적인 진행(2018년)을 보면서 감독도 풀지 못했던 현실의 숙제가 남아서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녀의 삶에 대한 감동과 함께 쓸쓸함과 서글픔이 밀려온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