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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광복을 기다린 대구·경북 독립운동 지사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대구·경북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곳이다. 2021년 7월 현재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전국 독립운동 유공자 1만6천685명 중 대구·경북 출신은 2천292명(13.74%)으로 서울·경기 출신 1천400명(8.39%)보다 월등히 많다. 또한 1910년 한일 합방을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정 순국자 70여 명 중 18명이 이 지역 출신이다. 왕산 허위나 육사처럼 옥중에서 순국한 사람도 여러 명에 이른다.대구·경북에는 한일합방 전후 여러 갈래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 지역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은 1894년 안동의 갑오의병에서 시작되었고 달성의 문석봉은 을미의병 시 의병장이 되었다. 1907년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일제 강점 이듬해 1911년 안동의 이상룡과 김동삼, 구미의 왕산 허위는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일제 강점 하에도 대구 달성공원에서는 1915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밀 무장 단체인 광복회가 창설되었고 박상진, 우재룡, 권영만은 이 조직을 이끌었다.대구의 3·1 운동인 3·8 만세 시위운동은 대구의 이갑성, 이만집, 김태련 등이 주도하고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경북도내 전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다. 성주의 혁신 유림 김창숙, 대구의 이봉로 등은 독립청원서를 파리에 보낸 장서 운동을 주도하였다. 대구 출신 이종암은 망명하여 의열단의 부단장이 되고 의열 단원 10명 중 5명이 이 지역출신이다. 상해 임정에서도 이상정, 현정건 등 여러 명이 중책을 맡고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백기만 등 대구 문인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대구 달성공원과 두류공원, 앞산공원에는 독립운동가의 기념비가 즐비하고, 안동, 문경, 의성, 성주 등 여러 지역에도 독립운동 기념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성주의 백세각 항일 의적비, 영주의 광복 탑, 영천의 산남의진 기념비 등이다. 대구의 국립 신암 선열공원은 전국 유일의 독립 유공자 묘지로 조성되었다. 대구 망우당공원에는 광복의 아침을 맞게한 조양회관이 이전 복원되었고, 대구·경북 항일 독립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대구의 상화 형제 기념관, 희움 박물관, 구미의 왕산 기념관, 안동 독립기념관은 이 지역의 소중한 기념관이다.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위대한 항일 독립 정신을 계승할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항일 유적을 찾아 잘 보존하고 그들의 항일 독립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지난 2019년 이 지역에서도 3·1 운동과 상해 임정 100주년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렸으나 모두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대구·경북의 관련 단체는 이 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하고 이들의 정신계승 사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그것이 극일(克日)의 길이고 이 지역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2021-08-17

안철수 독자출마, 야권의 轉禍爲福 될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그저께(16일)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을 선언하면서 대선구도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안 대표가 사실상 독자 출마방침을 굳히면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내년 대선도 국민의힘 후보와 제3지대 후보 간의 단일화 국면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합당결렬로 인한 야권통합 무산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리더십에 또 한번 상처를 입게 됐다.안 대표는 이날 국회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제1야당만으로 정권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 지지층 확대 없이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합리적인 중도층을 대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내년 대선을 3자 구도로 만든 뒤 막판 단일화 카드로 야권의 캐스팅 보트를 쥐겠다는 생각으로 해석된다.야권에서는 최근 안 대표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과 제3지대 후보단일화를 거친 뒤 국민의힘 후보와의 최종 야권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범야권 대통합이 일단 불발되면서 대선판에서 나쁠 게 없는 구도가 형성됐다. 범야권의 혼란상이 대선 국면에서 호재가 될 수 있는데다 여야 일대일 구도 대신 일대다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안 대표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약속했다. “작은 정당 하나 없애는 식의 통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결렬 책임을 국민의힘에 떠넘겼지만, 안 대표는 결국 대선불출마와 합당 약속을 스스로 깼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 내부에선 안 대표의 결정에 반발해 탈당하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안 대표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국민의힘으로서는 안 대표와의 협상창구를 항상 열어두면서 이번 협상결렬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당내 대선주자들도 “몇날 며칠 밤을 새우더라도 다시 협상하라”고 주문하지 않는가. 합당결렬이 현재로선 안타깝기는 하지만, 국민의힘은 궁극적으로 안 대표와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국민의당 지지기반은 호남과 중도층이다. 안 대표가 제3지대에서 외연을 확장하다가 국민의힘과 막판 단일화를 이룰 경우 파급력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

2021-08-17

포항·경주 코로나 확산세 서둘러 제압해야

경북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포항시와 이와 인접한 경주시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심상찮다. 이달 들어 포항·경주지역에서만 무려 4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당국도 비상이다. 두 지역의 최근 사흘간 확진자수 추이를 보면 포항이 47명→24명→16명이며 경주는 8명→27명→7명이다. 포항에서는 외국인 모임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3일 이후 거의 매일 두자릿수를 넘고 있다. 학원가와 철강공단, 외국인 노동자 등에서 발생이 이어지고 있다.경주는 강동지역 철강회사 관련 확진자가 22명이 발생해 추가 발생이 우려된다. 경주시는 이 회사 직원에 대한 검사와 함께 안강읍, 강동면, 천북면 등 3곳에 임시 선별소를 설치해 선제 검사도 벌이고 있다. 또 15일까지이던 특별방역기간도 22일까지 연장했다.전체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던 경북지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포항과 경주지역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면서 흔들리는 모양새다. 최근 3일간 경북지역 신규 확진자는 모두 189명이었으나 그 중 포항과 경주지역 확진자가 129명으로 68%를 차지했다. 포항시와 경주시는 4단계 상향은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불가피하게 거리두기 단계를 상향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거리두기 조치로 많은 자영업자 등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생각하면 방역수칙 준수가 특별히 요구된다.전국적으로도 42일째 1천명대 확진자 발생이 이어졌다. 17일 0시 현재 전국에서 1천373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전날보다 183명이 줄어들었다. 2주만에 1천400명대 아래로 내려왔지만 광복절 연휴 검사건수가 줄어든 탓이지 확산세가 꺾인 것은 아니다. 이번주 추이를 잘 지켜봐야 한다.지금은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없이 감염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각자가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서도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고 집단면역 접종률 상향을 검토 중이다.코로나19 상황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대구 경북은 가까스로 3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최근 급증하는 포항·경주에서의 확산세를 예의주시하며 이를 꺾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2021-08-17

싱크홀

재난영화 ‘싱크홀’은 간간히 뉴스에 등장해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도심의 싱크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코로나로 한산하던 국내 극장가에 그나마 이 영화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2021년 한국 영화 최고의 오프닝을 기록하면서 개봉 6일째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영화 속 주인공은 결혼한 지 11년만에 겨우 서울 변두리에 신축 빌라를 한 채 샀다. 내 집 마련을 한 벅찬 기쁨으로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불러 집들이를 하며 즐긴다. 이때 갑자기 빌라 한 채가 통째로 땅속 깊숙이 빠져든다. 영화는 위기 속의 인물들이 각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았다.싱크홀(Sink Hole)은 우리말로 땅 꺼짐이라 부른다. 땅의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 및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다. 갑자기 낭떠러지가 생기기도 해 인명 피해도 우려된다.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싱크홀이 발생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싱크홀은 지금도 진행 중인 재난사고다. 싱크홀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일부에서는 과도한 지하수 퍼내기라고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반 속의 물과 흙이 동시에 무너져 생긴 빈공간이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싱크홀 발생 원인은 지반 여건에 따라 다양하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자연재해보다는 인재가 더 많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지난 11일 대구시 동구 괴전동 도로에서 지름 10m, 깊이 7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 등의 사고는 없었으나 상수도관 파손으로 그 동네 일대 290가구가 단수되는 불편을 겪었다.싱크홀 사고는 해마다 증가한다. 싱크홀 사고로 일어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땅속 지하매설물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8-17

나사 풀린 구미시 공직기강

김락현​​​​​​​경북부 최근 구미시가 진행한 육상골재채취사업과 광평동 농로 개설 사업이 연이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구미시 공무원들의 공직기강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있을 수록 더욱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당연히 해야 할 업무도 서로 미루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11일 구미시가 해평취수장 관련 입장문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다음날 언론사에서 취재가 진행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담당부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당시 장세용 구미시장은 담당부서에 언론 취재에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담당부서장인 상하수도사업소장은 입장문 발표 다음날 휴가를 갔고, 수도과장은 전화를 다시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들의 태도는 말 그대로 ‘무책임’했다.또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광평동 농로 개설 사업 담당부서인 구미시 새마을과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당시 ‘공사책임’담당자를 바꿔 논란을 낳고 있다. 해당 사업은 지난 4월 공사를 시작했다가 도비 특혜 의혹으로 6월 1일 공사가 중단됐고 현재 경찰 수사와 경북도 감사가 진행 중이다.그럼에도 새마을과는 7월 21일 공사책임자를 교체했다. 인사이동으로 새로 온 직원에게 공사책임 업무를 맡긴 것이다.이에 대해 새마을과는 “당시 업무를 맡은 직원이 너무 힘들어 해 업무를 바꿔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이는 구미시 내부에서조차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업무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원이 힘들어도 끝까지 맡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업무조정이 불법은 아니지만,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담당자를 교체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뿐만 아니다. 만성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구미시청 부서간 ‘핑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상생국민지원금과 관련한 회의에서 시청 간부들이 서로 업무를 맡지 않으려 고성까지 오간 사실이 확인됐다.시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몸을 사리는 꼴이다. 시청 간부 공무원 업무 책상에는 대부분 구미시 기구표가 붙어 있다. 그 기구표 가장 높은 위치에 ‘구미시민’을 올려 놓은 이유를 정녕 그대들은 모르는가.구미/kimrh@kbmaeil.com

2021-08-16

기능과 기술의 숙련,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장자의 천도편(天道篇)에는 수레바퀴를 잘 깎는 윤편(輪扁) 이야기가 나온다. 성인의 말씀은 지나간 사건이 남긴 이론일 뿐이며 재주의 지극한 것은 손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응하는 것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신령(神靈)이 모여져야 하는 것이지 입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로 미루어 지극한 도는 정교하고 미세하여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옛날 사람들은 이미 없고 생각이나 말을 책으로 써서 남겼지만, 이것은 단지 조박(糟粕·지게미)일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윤편은 자신의 핵심적인 손재주인 기능을 기술화하지 못하여 자식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옛 성인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우리는 ‘기능’과 ‘기술’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사용한다. 기능의 ‘能’은 ‘어떤 것에 능숙해지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기능이란 ‘숙련이 작업자의 몸과 혼연일체를 이루어 분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기술은 작업자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숙련을 분석, 분리하여 미숙련공에게 가르치고 일정기간의 훈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나 능력을 뜻한다.현장의 많은 작업자들이 본인의 익숙한 작업인 기능을 명확하게 기술화하지 못해 기술의 부족을 몸으로 메우거나 경험적인 지식에 의존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본다. 기능의 요소를 성문화하고 기술의 요체를 체계화, 기술화하여 빠르게 숙련에 이르게 하는 것이 개선이라 할 수 있다.숙련, 즉 능숙함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단계적인 연습과 장기적인 훈련을 거쳐 필요 수준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과 ‘분업화해서 숙련의 필요 수준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 또한 ‘숙련의 일부 기술을 기계에 이전’하여 사람에게 요구되는 숙련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방법이나 ‘감독자에 의한 숙련의 이전’ 등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세세하게 작업을 분석해서 차이를 관측하고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아주 쉽고 확실하게 ‘숙련 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작업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필자가 지도했었던 부서의 사례 중 하나는, 압연할 때 조이스틱을 이용하여 압연기에 들어가기 전 후판의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하루에 수백 번씩 손목이 아프도록 하고 있었는데, 이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축적하여 자동화한적이 있다. 압연기 운전을 하는 직원의 손끝의 감각 정도가 ‘가을날 산들바람이 불 때 낙엽이 흔들리는 수준’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수준의 감각적인 기능을 전부 기술화 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작업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숙련된 작업자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이를 전수할 수 있도록 기술화하는 것이 접목돼야 한다고 본다.그래야 개선의 첫째 목표인 작업자의 편리성도 실현되고 회사도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의 확장과 기술의 집약으로 꾸준한 개선이 이뤄질 때 사회와 문명은 계속적으로 진보, 진화할 것이다.

2021-08-16

떠나는 연습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벽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이슬 같은 물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어 얼핏 눈을 뜬 것이다. 무더운 탓에 여름 내내 거의 거실에서 서쪽과 남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게 되면서 새벽이면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를 자명종 삼아 깨어나곤 했었는데, 오늘은 빗소리가 대신한 것이다. 후드득 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더위에 지치고 코로나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듯 아침나절까지 시원하게 내렸다.그러한 빗줄기가 필자에게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하염없이 쏟아내는 슬픔의 눈물처럼 다가왔음은 왜일까?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어느 시구절을 차치하고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될 수도 시름을 더하는 홍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 새벽부터 처연히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보내는 친구의 말없는 전갈처럼 전해지니 착잡하기만 하다. 친했던 친구가 세상을 뜬지 꼭 1년만에 은죽(銀竹)으로 보내온 무언의 새벽 안부.“청순한 가슴 결로/주고받던 정겨움//열리고 트인 마음/스스럼없이 나누며//언제나/의형제 같은 눅진함이 있었지//섬과 육지로 이어진 정의(情誼)에는/고난의 갈퀴도 세파의 회오리도//함부로/끊을 수 없는 철석(鐵石)이 스몄는데//불현듯 드리워진/암울의 빗장에도//담담하고 초연하게/단호히 맞섰건만//사십년/학연의 섶은/구천(九泉)에서 떠도네” -拙시조 ‘별리·Ⅰ’ 전문울릉도가 고향인 그 친구와 고교 1년 때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성격이나 취향이 비슷한데다 집이 울릉도여서 왠지 모를 청순가련함이 들어선지 금세 친해졌다. 필자와 비슷하게 힐끗 잘 웃으면서 가끔 장난도 즐기고, 학업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서로 격려와 진솔함으로 다독이고 챙겨줬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육지에 나온 친구와 필자의 고향으로 가서 꼴과 나락을 베고 감을 땄는가 하면, 여름방학 때면 울릉도 태하엘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영과 잠수를 하고 홍합을 따서 열합밥을 함께 해먹기도 했었다. 졸업 후에도 수시로 친구와 연락하고 드나들며 우정을 쌓아 나갔었다.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에게 알 수 없는 병마가 스며들어 작년 이맘 때쯤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년 초여름에 태하성하신당과 친구의 고향집을 손수 찾아 ‘명랑 쾌유’를 간절히 빌었건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산만큼 더 살아도 아까운 나인데, 친구와의 삶의 곡진함을 더 나눠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해 기세(棄世)하듯이 떠나버렸는지 애절하고 비통한 마음 가눌 길 없다.우리는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하며, 매순간 누군가와 무엇을 떠나보내고 있다.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기에 죽음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하여 죽음과 차분하게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고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기에,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그 마음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2021-08-16

신라의 여왕들

신라 역사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여왕의 출현은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한 대상이다. 여왕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신라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의 관념으로 예전의 사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신라시대에 여왕이 나타날 수 있었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널리 알고 있듯이 신라시대에 여왕은 모두 3명이 있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서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각각 신라 27대와 28대 그리고 진성여왕은 51대 왕으로 시기적으로 삼국통일 직전과 신라가 멸망하기 직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신라왕들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없는 것은 성골(聖骨) 개념이다. 그런데 성골이 제1대 박혁거세부터 28대 진덕여왕까지 모든 왕을 가리킨다는 일제강점기 이래의 학설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과 그의 일족이 신성한 혈통을 지닌 특수한 집단이었음을 과시한 관념으로 보고 있다. 즉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그의 아내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인데 이러한 이름은 석가모니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과 같다.당시 불교를 숭상하던 신라 왕실의 혈통을 석가모니 가계와 견주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당연히 석가모니와 같은 존재가 되는데 불행하게도 아들은 없고, 덕만(德曼)이라는 딸만 있었다. 신라 왕실의 혈통을 석가모니 가계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그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진평왕이 죽기 2년 전에 귀족들이 반란을 꾀했지만 이를 진압하고 구족(九族)이라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죽였다는 점에서 왕위 계승을 두고 엄청난 대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54년이라는 진평왕의 재위기간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딸인 덕만도 즉위 당시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그녀가 왕위에 오른 직후 성조황고(聖祖皇姑·성스러운 여자 임금)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선덕여왕의 왕위계승은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고령(高齡)의 나이라는 불안정한 요소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즉위는 불만을 가지고 있던 세력과 타협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즉 선덕여왕이 즉위하는 것은 막지 않는 대신 정치에 대한 실권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선덕여왕대에는 관청이나 관리의 새로운 설치나 증원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절을 짓거나 법회를 연 기록은 많이 등장하는데 바로 선덕여왕이 정치적인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보기도 한다.647년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女主不能善理)’고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무렵 선덕여왕은 죽었거나 살아 있었더라도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선덕여왕의 사촌인 승만(勝曼)이 즉위했는데 곧 진덕여왕이다. 그런데 비담이 한 말은 보기에 따라서 선덕여왕의 치세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왕위에 오르기로 결정된 승만의 치세를 예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어찌되었건 진덕여왕은 반란과 진압 그리고 즉위라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비담의 난을 진압한 김유신 그리고 그와 뜻을 함께 한 김춘추 일파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여왕이 자신만의 정치를 펼칠 수 없었다. 전경효 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한편 진성여왕은 48대 경문왕의 딸이다. 경문왕 이후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순으로 왕위에 오르는데 이들은 모두 경문왕의 소생으로 형제나 남매지간이었다. 헌강왕의 재위기간이 12년으로 그의 아들이 있었지만 어렸으므로 동생인 정강왕이 왕위를 이었다. 하지만 정강왕도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진성여왕의 즉위는 겉으로 보면 형제들의 연이은 사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 경문왕의 장인인 헌안왕이 남긴 유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옛일에 비록 선덕과 진덕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과 비슷하므로 본받을 일이 못된다.’라고 했다. 헌안왕이 죽은 시점이 861년이므로 9세기 후반에는 여왕이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재위 11년(897년), 그녀가 죽기 직전 당에 보낸 글에는 오빠 헌강왕의 아들이 15세가 되었고, 정치를 임시로 맡겼다고 하였다. 이에 진성여왕의 치세는 자신의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임시로 왕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지금까지 살펴본 선덕, 진덕, 진성 등 3명의 여왕은 즉위를 전후한 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난 대립이나 타협의 산물이었다. 정치적인 고려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성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신라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관직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라의 여왕들이 등장한 배경을 논의할 때 오늘날의 관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2021-08-16

모방의 모방, 불완전의 불완전

미술사는 미술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분야이다. 연구대상은 미술작품과 미술가이다. 미술에 대한 이론이나 미술작품 혹은 미술가에 대한 문헌적 기록들은 간헐적이나마 고대에서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특정 작품이나 미술가에 대한 단편적인 것들로 구체성과 체계성이 떨어진다. 철학자들은 세계의 근원과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탐구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들을 펼쳤으며 그러는 가운데 미술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컨대 이데아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대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미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그의 이론은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현상계의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불완전한 현상계의 모든 것들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다. 이데아는 모든 대상들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이데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상계에서 대상들이 실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이데아론을 설명하기 위해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를 든다. 동굴에 갇힌 죄수들이 벽만 바라보도록 결박되어 있다. 동굴 입구로부터 빛이 새어들어 오고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죄수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벽에 비친 그림자들뿐이다.동굴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이고 이곳에서 경험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그림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가능하게 한 본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 플라톤에게 현상계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오직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에만 존재하며 현상계는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 이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플라톤에게 현상계의 이미 불완전한 대상을 다시 모방하는 미술은 모방의 모방, 복제의 복제, 불완전의 불완전으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여겨진다.‘모방(mimesis)’은 서양미술을 이끌어 온 중심 개념이다. 그리스가 이루었고 로마가 계승한 찬란한 예술정신은 중세 초기 혼란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사라지고, 잊혀졌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면서 이미 절정을 이루었던 미술은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고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치명적인 단절의 시기가 찾아 왔다. 800년 경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영토 확장과 함께 학문과 문화 예술을 장려하면서 이른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일으킬 무렵 고대와 중세 사이의 문화 예술의 질적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샤를마뉴로부터 고대의 복원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하나의 유의미한 결실을 맺기 까지는 무려 600여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면서 되살아난 관념이 다름 아닌 모방이다. 모방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미술작품 속에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재현’이라고 부른다. 가장 완벽한 재현은 가장 완벽한 눈속임이다. 평면적인 화면에 공간감을 불어넣기 위해 원근법을 고안해 냈고, 과학적으로 분석해 정밀하게 묘사된 인물과 대상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움직임과 감정의 표현으로 생생함이 더해졌고, 색채와 명암대비를 통해 모방과 재현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만약 모방과 재현이 미술이 추구하려던 유일한 종착역이었다면 미술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는 적중했을지 모른다. 아니 더욱 극단적으로 말해 미술은 사진이 출현하면서 일찌감치 종말을 고했을지 모른다.다행히도 플라톤의 이론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이원론적 틀 속에서 미술을 보았고, 시대와 함께 미술의 속성도 유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모방해 내는 사진이 출현했어도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미술은 살아남았다. 미술은 사진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플라톤에게 현대추상미술을 보여주고 싶다. “플라톤 선생님, 세계를 재현하지 않는 추상미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추상에 대해서도 이데아가 존재하는지요?”하고 말이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1-08-16

대구, 글로벌 로봇산업 중심도시로 飛躍하길

대구시가 3천억원 규모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유치에 성공했다. 대구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온 지역으로서는 모처럼의 낭보다. 서울, 부산 등 전국 6개 도시가 경합을 벌였으나 일찍부터 로봇산업 생태계 조성에 많은 투자를 해온 대구시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구 테크노폴리스에 유치한 국가로봇테스트필드는 서비스 로봇 규제혁신을 위한 인증체계 및 실환경 기반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최근 시장이 급성장하는 서비스 로봇 상용화를 앞당기는 국책사업이다. 대구가 서울 등을 물리치고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성공한 것은 10여년 전부터 로봇산업과 관련한 인프라 구축에 꾸준한 투자를 해온 덕분이다.대구시는 2010년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와 로봇산업 클러스트, 규제자유특구 지정 등을 선점했고, 2015년부터는 생태계 조성에 막대한 사업비를 투자해 왔다. 또 로봇테스트필드가 들어설 장소에 위치한 디지스트 등 각종 연구시설이 풍부한 점과 경북도와의 협력 등이 국내 로봇산업 발전을 선도할 기반으로 평가단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유치로 대구는 기존 인프라와 더불어 로봇산업 전주기 지원체계를 확립할 수 있게 됐다. 연구개발과 실증체제 구축, 테스트필드, 사업화 지원 등이 동시에 연결되는 로봇기반이 구축된 것이다. 사업의 확장성과 장래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제 대구시는 독보적인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구를 로봇산업 글로벌 선도도시로 육성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로봇 분야는 기대되는 미래성장 산업이다. 대구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게 잘 관리해 대구와 경북의 경제를 견인토록 해야 한다.대구시는 2030년까지 지역의 로봇기업수를 662개, 고용 1만1천여명, 매출액 4조원 규모로 성장시킬 것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경북의 구미, 포항 등과 연계되면 더 높은 시너지 생산도 가능하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모두 힘들어하는 이때 대구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유치 소식에 지역경제계도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테스트필드 유치를 계기로 대구가 글로벌 로봇 메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구시가 또 한번 매진하길 바란다.

2021-08-16

피지털 경제

코로나19로 언택트 라이프 스타일이 일상화하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상점들이 늘었다. 그런데 일부 유통업체들은 오히려 큰 폭의 매출증가를 자랑한다. 바로 피지털(Phygital)경제를 활용한 업체들이다. 피지털은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과 온라인을 의미하는 ‘디지털’의 합성어로, 디지털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육체적 경험을 확대한다는 의미다.예컨대 미국의 대형슈퍼마켓 체인점인 타깃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 유통업체가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올해 2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80%이상 증가한 230억달러(약27조원)라고 밝혔다. 타깃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으로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고객들이 이 방식으로 구매하는 비중이 이전 분기보다 7배나 늘었다고 한다.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라도 온라인에서와 같은 편리함을 제공하면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골자다.피지털 경험은 소비의 각 단계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온라인 쇼핑을 하는 이유가 간단한 검색만으로 상품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때문이지만 수십, 수백개의 검색결과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럴 때 오프라인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은 후 상품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상품정보 및 리뷰 등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상품을 찾아가는 픽업단계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주문한 제품을 연중무휴 24시간 집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품 교환 및 반품단계서도 QR코드만 보여주면 포장해서 반품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이제 피지털 경제는 언택트 시대 기업에 중요한 경쟁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16

플레이 플레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무관중으로 진행한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극적인 경기로 배구를 꼽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잘 아는 운동도 없지만, 배구만은 깊은 인연이 있어서 조금 볼 줄 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로지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구선수로 발탁이 돼서 1년 정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큰 경기에는 치어리더나 응원단이 있어서 보기 어렵지만, 초등학교 수준의 작은 경기에서는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다. ‘플레이 플레이 한동구’, 현재 공을 잡고 있는 선수를 응원하는 소리다. 여기서 한동구는 ‘플레이 볼’이라는 이현의 장편 동화의 주인공이다.동화 작가 이현이 쓴 ‘플레이 볼’은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이야기다. 이현은 스토리텔러로 꽤나 단단한 내공을 가진 작가인 듯하다. 야구를 하나도 모르지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주인공 한동구는 3학년에 야구를 시작해서 이제 6학년이 되었고 중학교 야구부에 스카웃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영민이 전학 오기 전까지는 가장 잘한다고 인정받아 4번을 달고 있다. 그러나 5학년 때 전학 와서 뒤늦게 시작한 이영민한테 4번을 뺏기고 만다. 이영민은 야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천재적으로 잘한다.동구 아빠는 숫자를 들이대며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초등학교 야구 선수가 5,000명, 고등학교 야수 선수는 700에서 800명, 프로 야구에서 뛰는 선수는 100명도 안 되고, 그중 1군 선수는 훨씬 더 적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동구는 실의에 빠진다.재능이 없다는 건 좀 슬픈 일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좋아하고 열심히 해도 재능 있는 사람만큼 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샘낸 살리에르의 불행은, 비록 그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살리에르에게 저절로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플레이 볼’에는 푸른이라는 동구 친구 이야기도 있다. 푸른이 역시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동구보다도 더 재능이 없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야구부에서 나와 보습학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동네 아마추어 야구단에 들어가서 야구를 즐긴다. 프로 선수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동호회 실력으로는 최고였다.동구는 중학교 선발에 중요한 시합에서 제대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도 야구를 놓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메이저리그 구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호아킨 안두하르가 남긴, ‘(앞일은) 알 수 없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다. 이 말 한마디가 동구에게 계속 야구를 하게 하는 힘이다.참, 초등학교 때 배구 선수 생활은 벤치를 지키는 것으로 마감했다. 키만 컸지 재능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8년 전 동네 주부 배구단에 들어가서 센터를 맡아 구 대회에도 출전하여 맹활약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 배구 팀 라바리니 감독은 선수 출신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 플레이’할 뿐이다.

2021-08-16

해평취수원 같이 사용하면 대구·구미는 한식구

대구시민의 30년 숙원인 ‘취수원 낙동강 상류이전’이 구미시의 조건부 동의로 성사된 것과 다름없어 정말 다행이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지난 11일 “7월 14일 열린 구미지역 합동설명회에서 한정애 환경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은 해평취수원 공동이용으로 인한 구미시민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환경부의 심의 내용과 대구·경북지역의 상생관계, 구미시의 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경부의 정책안을 신뢰하되 앞으로 정부의 이행여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환경부의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권영진 대구시장은 즉각적으로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활용에 구미시장이 조건부 동의 입장을 밝힌 것에 감사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권 시장은 “구미시와 협정을 체결하는 즉시 해평취수장 인근 지역 주민을 위한 예산 100억원을 구미시에 지원하고 농축산물 직거래 장터를 통해 인근 농가 소득 향상을 도울 계획이다. 그리고 구미국가산업단지 제5단지 분양 활성화를 위한 입주 업종 확대 등 구미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해평취수장 공동사용에 대한 공식적인 협정식은 추석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권 시장은 “국무총리가 주재하고 대구시와 경북도, 구미시 등이 참여하는 협정서 체결을 시·도민에게 추석 선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 30년간 이어져 온 해묵은 과제다. 구미공단 입주업체의 페놀유출 사건을 계기로 대구시민들은 식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구미공단 위쪽 낙동강 상류로 취수원을 이전하길 희망해 왔지만 구미시가 계속 반대하면서 그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구미시장이 해평취수장 공동활용에 대해 조건부 동의를 하긴 했지만, 협정서를 체결하기 까지는 아직 난제가 남아 있다. 구미시의회와 구미시장이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구미시는 해평취수장 공동사용에 반대하는 측을 대상으로 끝까지 설득을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2021-08-16

이기는 편이 이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대선 승부를 점치는 이들의 예측이 각양각색이다. 여야 모두 대권후보가 누가 될 지 예측불허인 데다 여야가 팽팽한 승부를 벌일 것이란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더구나 대선 직후인 6월에 지방선거까지 치를 예정이어서 대선 결과에 따라 지방선거 공천향방도 달라질 수 있다. 자칫 줄을 잘못 섰다가는 현직이라 할지라도 공천에서 물을 먹을 수 있으니 대선향방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 밖에 없다. 어쨌든 현 상태에서 대선이 치러진다면 경제·외교 정책 미스가 많았던 현 정부와 여당에 다소 불리한 국면이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부동산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폭등, 백신 미확보 등 백신정책 실패, 비핵화 남북정상회담의 무산, 일본·중국 등 주변국과 껄끄러운 외교관계, 소득주도성장 이론에 따른 경제정책 실패, 일자리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실패 등 현 정부의 정책미스가 표심을 잃고 있는 악재다.하지만 승부는 통상 여야 대권후보가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어떤 후보가 대권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승부 국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당과 야당에 대한 지지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국민의힘의 경우 윤석열·최재형·홍준표·유승민·원희룡·하태경 예비후보가 대권 예비후보로 뛰고 있다. 이달 중 후보경선준비위가 대선경선버스를 출발시킬 예정이다. 지금으로선 누가 대선후보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여론조사상 야권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일 1구설’로 지지율을 깎아먹고 있고, 다크호스로 꼽힌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대선출마 후 기자들의 질문에 대부분 “모른다. 나중에….”라고 답해 준비부족 후보란 이미지가 덧씌워진 상황이다.더구나 국민의힘 대선 경선준비위가 준비하고 있는 대선 경선후보 토론회가 정치신인들에게 고난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5선 중진인 홍준표 의원이나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전 의원, 3선의원 출신의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겨루는 토론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윤 전 총장 저격수를 자청한 홍준표 의원의 활약이 돋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홍 의원이 정치 경험과 정책 이해가 부족한 윤 전 총장을 거칠게 몰아세울 경우 윤 전 총장의 밑천이 드러나면서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전 총장이 참석 여부를 놓고 고심이지만 피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과연 누가 야당 대선후보가 되는 걸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도 치열하다. 여권 대권후보로 가장 적합한 인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위를 달리고 있고, 이낙연 전 대표가 뒤를 쫓고있다. 여론조사대로라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민주당 후보가 될 듯 보이지만 아직 승부가 결정난 게 아니다. 이 전 대표의 추격과 다른 후보들과의 단일화 등이 어떤 반전을 가져올 지 미지수다. 이러니 정치인들의 단골 점집이 문전성시다. 점술사들의 예언을 종합하면 “이기는 편이 이긴다”였다. 예측불허의 대선이 흥미진진하다.

2021-08-12

황당 공약

파격적인 공약으로 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가 내년 대선에도 출마할 거라 한다. 대선 도전만 세 번째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나서 결혼부를 만들어 결혼 수당 1억원과 주택자금 2억원을 무이자로 지원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결혼 공영제 도입과 미혼자에게는 매월 20만원의 연예 수당도 주겠다고 약속했다.정치공약이라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져 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게 내용이 파격적이서 자주 화제를 일으켰다. 공약의 믿음성보다 기성 정치와 비교되면서 대중에게는 일종의 통쾌감도 안겨주었다. 만약 유력 대선후보가 허경영식 공약을 들고 나왔다면 국민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다.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국민 누구나 최대 1천만원의 기본대출을 장기 저리로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모든 국민에게 1천만원을 나눠주고 정부가 보증을 서겠다는 것이다.유승민 전 의원은 이와 관련 “허경영식 공약을 흉내 낸 악성 포퓰리스트”라고 규정했다. 이 지사는 이에 앞서 기본대출 외에도 전국민에게 매월 8만원씩 주는 기본소득도 공약으로 내세워 대선 후보자간 논란을 일으켰다.정치인에게 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이런 공약을 투표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공약의 장래성이나 신뢰성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일수록 공약에 대한 절대적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당선이 되고 보자는 식으로 공약이 남발된다면 우리 정치는 후진적 면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난무할 때다.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8-12

‘슬로 운전 5030’으로 사망사고 절반 줄었다

대도시 도심에서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전면 시행한 이후 대구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이전보다 절반 이상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다. 도심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지난 4월 17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됐으며, 석 달 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7월 17일부터 단속 및 과태료(범칙금) 부과가 시작됐다. 대구경찰청이 안전속도 5030 정책 시행 이후 100일간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 제도가 적용된 속도 하향 구간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22명에서 올해 10명으로 54.5% 감소했다. 대구는 사망자 감소율이 전국 특별·광역시 7곳 중 가장 높았다. 이 제도를 적용하지 않은 구간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6명에서 올해 9명으로 늘었다. 차량 속도를 낮추는 정책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대구의 과속단속은 유예기간인 3개월 동안은 하루 평균 879건이었다. 그러다가 단속 및 과태료 부과를 시작한 이후에는 801건으로 줄었다. 과속단속 건수가 생각보다 크게 줄지 않은 것은 아직 과태료 부과 초기여서 운전자들이 제한속도가 낮춰진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안전속도 5030정책이 시행된 이후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다. 매일 도심을 운행해야 하는 택시·버스 업계에서는 “도로마다 제한 속도가 다르다 보니 단속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그러나 보행자 안전을 지키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려면 도심도로에서 차량속도를 낮추는 정책은 꼭 필요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안전속도 5030정책 시행 이후 운전자들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속도를 크게 줄이거나 멈춰서는 경우를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 정책이 정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차가 당연히 속도를 줄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분하게 도로를 건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주행 제한속도 낮추기는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의 선진 교통문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정책이 성공해서 교통사고율을 확 낮추려면 운전자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필요하다.

2021-08-12

지방은 애초 들러리로 확인된 이건희 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건희 미술관 입지 선정논의 과정에서 비수도권 지역을 검토단계에서부터 배제하려 했다는 문체부의 회의록이 공개돼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 문체위 소속 김승수 국회의원(대구 북구을)은 11일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입지선정 관련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문체부는 이미 공무원 중심으로 ‘이건희 미술관의 지역공모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고 회의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문체부가 진행한 9차례 회의 중 3차 회의에서 지자체간 과열을 우려하며 2016년 국립한국문학관 지방공모 실패 사례를 언급한 것은 미술관 건립부지 논리에 지방은 배제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사전 제시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철저히 지방을 배제한 ‘답정너’ 방식의 선정 과정은 유치전에 뛰어든 전국 40여 자치단체와 지방에 사는 국민을 우롱한 처사”라고 강력히 비판했다.멋도 모르고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 입장은 참으로 허탈하다. 지역 발전을 위해 사활을 건 싸움까지 벌였건만 중앙정부는 지방배제 논리부터 먼저 생각했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지방의 간절한 소망을 여지없이 밟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남권 5개 광역단체가 요구한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공모 요구에 일언반구 반응이 없었던 이유도 이제야 알 만하다.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한 것은 지방의 낙후와 소멸 위기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한 두군데도 아니고 40여 자치단체가 왜 미술관 유치에 목을 걸어야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날로 심각해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중앙부처가 이런 절박한 지방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이건희 미술관은 공모절차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청회 정도는 여는 게 당연한 일이다.지금도 이건희 미술관 입지 수도권 선정에 항의해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술관 입지 선정이 지방민에 준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국토균형발전과 공평한 문화향유권을 요구한 지방의 목소리를 이런 방식으로 외면하는 중앙부처의 사고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2021-08-12

아름다운 노메달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노관중으로 치루어진 도쿄 올림픽에서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한국은 금년에 메달 수로 10위안에 들지 못하면서 최근 올림픽 성적으로는 저조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그러하지만 아름다운 노메달에 대한 찬사들이 많아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여자 배구다. 여자 배구는 선수 모두 혼신의 투혼을 발휘하여 4강에 들었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4강까지 가는 길에 숙적인 일본, 터키를 이기면서 아주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메달을 못딴 것에 대해서 팬들은 원망하지 않고 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을 따듯하게 환영해 주었고 주장인 김연경 선수는 갈채를 받았다. 최선을 다한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높이뛰기 최상혁 선수도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도 4위에 머물어 노메달이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항상 웃는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팬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남자 다이빙의 우하람을 또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 선전했던 그는 비록 4위에 그쳤지만 멋진 모습이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수영의 자유형 황선우 선수 역시 아름다운 노메달이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 신기록,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면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거의 반세기만에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보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무명의 한국 선수가 츨전하여 선전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 보였다.올림픽 하면 우리는 항상 금메달 중심으로만 관심을 가져왔다.그러나 진정 메달의 색깔을 뛰어넘어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지의 그 과정을 귀하게 보는 게 더 아름답다고 본다. 럭비는 12등, 꼴찌를 하였지만 첫 출전에서 많은 이들의 격려와 찬사를 받았다.이제 우리 국민도 성숙한 올림픽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일등지상주의를 벗어나서 그 노력의 과정이 아름답게 평가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되어야 한다.메달을 따지 못하고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이나 팀들을 비난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왔다. 그러나 가장 문제의 본질은 메달을 따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였었는가, 그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평가가 본질이라고 본다.비록 메달을 땄어도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고 메달을 따지 못하였어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야구 등 일부 선수들에 대한 악플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선수들에 대한 박수갈채는 이번 올림픽의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로 번져나갔으면 한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물론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칭찬, 격려, 이러한 것들이 사회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전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간에 정책으로 승부하고 서로간에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팬데믹 속에서 치뤄진 도쿄 올림픽은 노메달의 아름다움이 빛난 올림픽으로 큰 의미로 남았다.

2021-08-12

정상화(正常化) 운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서울 종로구 한 고서점 벽에 야권 대선주자의 배우자를 모욕하는 벽화를 그려 논란이 되자 그 벽화를 그리게 한 서점주인은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 타인의 인격을 짓밟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그야말로 상식이 전도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무엇이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아니 비정상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곧 망국(亡國)의 징조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이 정권 들어 정상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법치, 경제, 외교, 안보, 국방, 언론, 교육 등 어느 하나도 정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라의 기강인 법치가 무너진 것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온통 죄파세력이 장악하고 오로지 저들의 출세와 집권연장을 위해서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는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도 퍼주기 매표행위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국방은 핵무기를 쥔 적 앞에서 정신적 무장해제를 하고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한사코 거꾸로만 가는 외교로 나라망신을 자초하고, 좌경화된 교육과 언론은 국가의 정체성마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에 국운이 달려있다. 산업화로 굶주림을 벗어나고 민주화로 독재를 청산 했다면 지금은 정상화 운동으로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민주화 과정에 틈입한 불순세력들이 민주화의 기수를 종북·사회주의로 돌려놓은 걸 모르고 그대로 추종해 가다보니 나라 전체가 좌측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방향을 바꾸었지만, 아직도 무지와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권력과 돈에 맛을 들인 대다수의 운동권 출신들은 거머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다보니 나라가 비정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선 우선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 더이상 좌파들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북한과 베네수엘라 같은 패망의 길을 면할 수가 없다. 비단 좌경화된 이념적 비정상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준법은 물론 상식과 도의가 무너지고 전도되어 불법과 파렴치와 내로남불이 민심을 혼란과 타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것이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스탈린이나 모택동을 지지한 것도, 김일성을 신으로 떠받든 것도 민심이었다. 교활하고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와 표퓰리즘으로 얼마든지 의도대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 민심이다. 특히나 정보통신이 전 국민을 하나의 그물로 엮어놓은 지금은 왜곡과 거짓선동으로 민심을 뒤집기가 손바닥 뒤집듯 쉬워졌다.양식(良識)과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헌신적 역할을 해야 희망이 생긴다. 이런 시국에도 사리분별을 못하고 좌경화된 시류에 편승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죄를 짓는 일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구국의 사명감으로 정상화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것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2021-08-12

야권 내분 심해지자 원내·외 중진들이 나섰다

야권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비상시국국민회의’가 지난 10일 출범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오후 청와대 앞 광장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내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선거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를 인질로 삼는 극악한 행위를 끝내기 위해서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야권후보 단일화다. 이 길에 야당도, 범야권도 하나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회의 상임대표는 이재오 전 의원이 맡았으며, 강석호·김문수 전 의원, 이희범 전 장관, 윤상현·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고, 전국 회원이 10만여명에 이른다. 출범식에는 국민의힘 홍준표·원희룡·장기표 대선주자 등도 참석했다. 이 기구는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심각한 내부분열로 후보 단일화가 물건너갈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원내·외 중진들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결성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그저께 이달 30일부터 최종 후보가 선출되는 11월 5일 전당대회까지 68일간 이어지는 경선일정을 확정했다. 그러나 경선준비위가 후보등록에 앞서 컨벤션 효과를 위해 마련한 토론회부터 당내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재원·조수진 최고위원이 “토론회 개최는 최고위 논의를 거쳐야 한다”며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에 이준석 대표가 “토론회를 강행하겠다”고 바로 대응하면서 경선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합당문제도 야권으로선 걱정되는 현안이다. 현재로선 안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막판 야권 단일화를 추진하고 나설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고 안 대표와 외연확장을 명분으로 연대한다면 야권통합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최근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윤 전 총장 입당으로 국민의힘이 시너지효과를 얻어야 하는데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으로 여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원외에 있는 당 중진들도 나서서 통합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켜보는 지지자들이 더 큰 실망에 빠지지 않도록 내부갈등을 조속히 정리하기 바란다.

2021-08-11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산불이 먼저 일었다. 코로나19로 인류가 시달리기 전에 이미 호주대륙은 화마에 삼켜지고 있었다. 팬데믹이 세계인의 보건과 방역환경을 힘들게 하는 사이에도 산불과 자연재해는 끊이지 않았다. 터키 산불은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면서 섬 하나를 집어삼켰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도 솟아오른 불길이 잦아들지 않으며 북극 지역마저 위협하는 중이다. 캘리포니아도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인 딕시(Dixie)를 잡지못해 서울의 세 배도 넘는 산야를 잃어버렸다. 캐나다도 이탈리아도 알제리도…, 기후변화로 초래된 높은 온도와 건조한 공기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다. 코로나19에 빼앗긴 관심은 지구온난화를 살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걱정은 많이 하지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좋은 생각들은 떠올리지만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다. 기온상승의 마지노선 1.5도에 달하는 데 2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름이 이처럼 더웠던 것도 기후변화의 탓일 터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에어컨 과소비와 전력부족을 걱정하면서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코로나19 위기도 빌게이츠(Bill Gates)가 수년 전에 이미 예견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가올 미래는 거의 보이는데 준비는 누가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역사는 그저 기억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지난날 기억을 살피며 내일을 준비해야 실수가 없다. 오래된 패착에 남 탓만 하다가는 같은 일을 다시 겪지나 않을까. 말로만 넘어가기엔 문제가 심각하다.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이 위험하다.우리에겐 할 일이 많았다. 나라엔 바꿔야 할 일이 한 가득이었다. 국민이 일어나 세상을 바꾸었다. 나라가 바뀌고 상식이 돌아올 줄 알았다. 이제는 모든 게 바로 잡히는가 높은 기대를 걸었다. 기득세력의 반발이든 정권실세의 무능이든 까닭이 있었겠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뒤로 돌아갔나 싶은 가닥마저 보이는 게 아닌가. 나라는 다시 좀스러운 정치배들로 드글거린다. 생각은 듣지도 않고 세력만 불린다. 준비는 부실한데 구호만 가득하다. 정치를 공격과 수비로만 이해하며 국민의 민생은 언제나 뒷자리다. 지구온난화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는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시 한번 믿어볼 것인지 다시 한번 바꿀 것인지 국민은 혼돈스럽다.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지만, 사람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해 본 사람만 하게 마련이다. 좋은 생각만으로는 나라가 바뀌지 않는다. 착한 태도만으로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바른 생각이 중요하지만 행동 습관이 보여야 한다. 실패를 딛고라도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한다. 생각만 화려하고 주장이 번들거리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불만으로 가득하나 계획이 없는 이들도 멀리해야 한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행동이 없이는 변화도 없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1-08-11

로봇테스트 필드 입지, 로봇도시 대구로

3천억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될 국가 로봇테스트 필드의 최종 입지가 내일(13일) 결정된다. 대구와 서울, 부산, 광주, 충남, 경남 등 전국 6개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 등 대형사업 유치에 실패한 비수도권 도시들이 도시 발전에 또 한번 명운을 건 싸움에 나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대구시는 경북도와 함께 공동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경북도는 구미와 포항에 로봇테스트 필드 유치를 검토했지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대구를 지원키로 하고 유치의향서를 내지 않고 대구를 밀고 있다.로봇테스트 필드는 국내 로봇산업의 거점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로봇산업 인프라다. 투입 비용도 막대하지만 로봇제품과 시장을 연결해주는 핵심고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로봇산업이 비약적 발전을 할 새로운 계기가 될 프로젝트다. 대구는 비수도권 도시에서는 로봇기업과 로봇관련 인프라가 가장 많은 도시다. 특히 로봇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높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역의 로봇기업 수는 2010년 23개에서 2019년에는 202개로 증가했다. 로봇 기업체의 전국 비중은 9%(2019년)까지 올랐다. 산업용 로봇제조 분야 국내 1위 업체인 현대로보틱스가 역내에 있고 이 사업을 전담할 로봇산업진흥원도 대구에 있다. 테스트 필드가 온다면 대구는 기존 인프라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단단히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구시는 일찌감치 로봇산업을 대구의 주요 산업으로 손꼽고 기업 유치와 인프라 조성에 역점을 뒀다. 향후 로봇산업이 대구경제를 주도하도록 대구시 산업지도를 바꿀 계획이다.문제는 비수도권보다 여건이 좋은 서울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산업통상부가 마련한 부지선정 평가 기준에 균형발전 항목이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국내적으로 가장 많은 ICT 기업이 몰려 있는 수도권이 무조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 걱정거리이다.비수도권 도시들은 이미 이건희 미술관이나 K-바이오랩 공모 과정에서 비수도권이란 이유로 심한 홀대를 받았다. 국책사업이 지금 정부 방식대로라면 지방은 영원히 낙후도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 테스트 필드 공모에서 또다시 비수도권이 소외됐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2021-08-11

로맨스 스캠

로맨스 스캠은 SNS에서 이성에게 호감을 산 후 결혼 등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말한다. 로맨스(romance)와 기업 이메일 정보를 해킹해 거래처로 둔갑시켜서 무역 거래 대금을 가로채는 범죄 수법을 가리키는 스캠(scam)의 합성어다.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해 상대방에게 접근한 후 마음을 이용해서 교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크다. 상대방과 만날 필요가 없이 메시지로 자연스러운 교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층 이상이 미군사칭에 당하는 일이 많다. 주요 수법은 상대방에게 친근함을 표현하고 이성적으로 어필해 서로 간의 경계심을 허물고, 점차 속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지며, 금전을 통장으로 송금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돈을 보내라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기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깊은 감정적 교류를 맺은 사이이기에 자신이 사기를 당한 건지 의심할 생각도 없이 돈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자신이 로맨스 스캠을 당했다고 의심되거나 사기를 당했을 때는 지체하지 말고 경찰서나 사이버안전국으로 신고하는 것이 좋다. 또한 모르는 사람의 SNS 친구추가는 되도록이면 피해야 하며, 인터넷에서 연인을 사귀지 말고 오프라인인 집밖에 나가서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당할 확률이 적어진다. 주요 타깃은 한국과 일본, 터키 등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태국 등 친미국가인 사람들이다. 최근 경기 파주경찰서가 ‘로맨스 스캠’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20대 남성과 카메룬 국적의 30대 남성 두 명을 구속해 관심을 끌었다. 소셜 네트워크가 비대면범죄를 늘리는 것도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새 풍속도인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11

윤석열과 최재형의 정치실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 핵심 사정기관 책임자였던 두 분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개혁과 조국 교수 일가 수사 과정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탈 원전관련 감사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두 사람 모두 임기 중 공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들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후보 중 1, 2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 초년생이며 정치 신인인 셈이다. 과거 정치 경험이 없는 이회창, 고건, 반기문 등도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과연 대권 도전의 정치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이 두 분의 정치 행보에는 우선 유사점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료 출신이면서도 몸 담았던 문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점이다. 이들의 대권 도전을 열렬히 환영하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공직자의 책임을 버린 배신자라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대체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불만이 누적된 야당 지지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에 대한 지지는 기존 야당 후보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계속 유지될 것인가 일부의 관측처럼 폭락할 것인가.두 후보의 출신 배경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윤 후보의 부친은 대학 교수, 최재형 후보는 전쟁 영웅 대령 가정 출신이다. 두 사람 다 남이 부러워하는 소위 금수저 출신이다. 이들은 검사와 판사 시절부터 원칙과 소신이라는 강직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출신 배경은 앞으로 상대할 여권 유력 후보들과는 대조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화전민에다 소년공 출신으로 독학하여 성공했고, 이낙연 후보 역시 빈농의 언론인 출신이다.정치 신인인 두 후보는 정부에 대립각을 세워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정치 신인인 이들은 기성 야당 정치인들에 비해 신선감은 준다. 그러나 자신들이 구상하는 확고한 정책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최근 잦은 말실수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에서부터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발언까지 연일 구설수에 올라 있다. 최재형 후보 역시 출마 기자회견에서 산업 규제법이나 대북 정책 현안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하고 사과만 했다. 대선후보의 잦은 말실수나 무지는 후보의 이미지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후보 자질이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을까.현재 국민의힘 경선에는 13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경선이 시작되면 두 분은 초반부터 후발 후보들의 공격 타깃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가 현재처럼 현저할 때는 갈등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정치 초년생인 이들이 후보 검증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는 의문이다. 당내에서부터 후보들 간의 송곳 검증이 예상되고 있다. 대선 후보 윤석열과 최재형은 이제 오월동주 신세가 되었다. 윤석열의 ‘타이슨 식’ 정치와 최재형의 ‘선비 형’ 정치는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2021-08-11

계절 아우성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집 앞 도로변에는 벚나무들이 가로수길을 이루고 있다. 줄지어 선 나무들은 계절마다 살아있는 전시회를 연다. 봄에는 화려한 벚꽃으로, 여름에는 짙은 녹음으로,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낙엽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겨울을 건너는 강인함으로! 집 주변에 나무를 비롯하여 자연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자연은 필자에게 철마다 철을 가르쳐준다.그 나무에서 필자는 이번 주 때 이른 낙엽을 보았다. 물론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지를 떠나 하늘하늘 비행을 시작한 잎에는 분명 단풍이 들어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건 단풍이 곱게 든 낙엽이었다. 입추가 지났지만, 불볕더위에 낙엽을 보는 건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연신 감탄사를 불렀다. 입에서는 한동안 “벌써”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그러면서 그 낙엽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자연에는 급격한 것이 없다. 자연은 다음 일을 하기 전에는 항상 준비 기간을 둔다. 밤과 아침 사이에 새벽이 있듯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도 새벽과 같은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자연은 보냄과 맞이함을 충분히 준비한다.먼저 이륙한 낙엽은 나무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받았을 것이다. 먼저 가서 때를 살피고 가야 할 때를 알리라고, 또 사람들에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전하라고. 그리고 제발 계절이 가고 있음을 알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라고. 그래서인지 여름 낙엽들의 활동력은 왕성하다. 그 모습은 정찰병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매미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절규가 낙엽의 절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의 귀를 더 활짝 연다. 그렇다, 자연은 이미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준비는 이번에 끝난 올림픽처럼 결코 맹목적이거나 요란하지 않다. 불볕더위에도 철을 잊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모습은 최선을 다해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을 닮았다.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자신의 경기에 완주하는 선수들과 자연의 공통점은 “준비”이다. 그들이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과정을 잘 알기에 결과를 떠나 우리는 그들에게 경외심 가득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필자는 지난 주말 새롭게 2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이 나라 교육의 절망적 상태를 확인했다. 학습 격차를 줄이기 위해 2학기 전면 등교를 한다는 교육 당국에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전한다.“거리상 많이 힘들 텐데 왜 서울에서 산자연중학교로 전학을 오려고 합니까?”“학교를 왜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에서는 수업도 거의 안 해요. 원격 수업 때는 EBS만 봐요. 학교에 가서는 수업보다 시험을 더 많이 쳐요. 자유 학년제지만, 선생님은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늘 시험 이야기만 해요. 뭔가를 제대로 배우고 시험을 친다면 그래도 덜 억울할 거예요. 정말 학교에는 시험밖에 없어요. 학교 때문에 학원에 가요. 학교 너무 싫어요!” 2학기 준비를 함에 있어 코로나 예방, 학습 격차 해소도 중요하지만, 딱 한 번만이라도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면 안 될까!

2021-08-11

물줄기를 찾아서

정미영 수필가 개구리가 없어졌다. 양동이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들이 뒷산에 갔다가 개구리를 데려와 거실에 들여놓으려는 것을 내가 손사래 치자 현관에 두었다. 양동이 반쯤 물을 채우고 비닐봉지에서 개구리를 꺼내 담더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책을 덮고도 모자라 신발 한 짝까지 올려놓았다.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개구리가 없어진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죽을 거라 여긴 아들이 손톱만큼 구멍을 열어두긴 했다. 그 곳으로 나온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온 집을 이 잡듯 들쑤셔 찾았다. 신발 속에 들어갔는지, 소파 밑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식구들을 들들 볶으며 찾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 나오거나 방 안에 죽어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행방을 알고 싶었다.주말 아침부터 한 바탕 개구리 소탕 작전을 폈다. 구석구석 한참을 찾았다. 온 식구가 기운 없어 더는 못 찾겠다며 주저앉았다. 나도 지칠 대로 지쳤다. 빨래나 널어야지, 베란다로 가서 햇볕 잘 받을 수 있게 탁탁 펴 널었다. 간만에 베란다 물청소도 해야지, 배수구 옆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었다.순간 배수구 안에 까맣고 동그란 것이 보였다. 화분에 물주다가 잔돌이 몇 개 빠져 배수구를 막았거니 했다. 손으로 꺼내려다 흠칫 물러섰다. 그 속에 뭔가 움직였다. 나는 두서너 발자국 뒤로 더 물러서서 작은 구멍을 유심히 살폈다.개구리가 쑤욱 튀어 나왔다.드디어 찾았다. 그 작은 구멍에 숨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뼈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작은 구멍에서 길쭉한 고무풍선처럼 몸통을 빼낸 것이 마술 같았다. 저렇게 좁은 틈을 들어갈 수 있으니 양동이쯤이야 쉽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개구리는 양동이 속에서 물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현관에 있던 개구리가 다른 방으로 가지 않고 마루를 가로질러 배수구로 향한 걸 보면 분명 그러했으리라. 간간히 배수구를 타고 흘렀을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살았던 뒷산의 작은 물줄기를 찾아가듯 밤새 바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 물은 태어난 보금자리요, 생명을 이어주는 감로수기에.나도 언젠가 물줄기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산에 나물을 하러 갔었다. 바구니 가득 나물이 채워질 때쯤이면 목이 탔다. 조금 전까지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른 나였지만 이젠 목마르다고 짜증을 냈다. 할머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참아 봐라. 이 근방 어디 샘이 있었다 안카나.”나를 다독거렸다. 쉽게 찾을 것 같던 샘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옹달샘 찾아 비탈을 헤맸다. 나는 토끼마냥 그 뒤를 쫓았다. 드디어 물줄기를 찾았다. 땅에 귀 기울이기를 반복하던 할머니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무뿌리 근처에 정말로 손바닥만한 물이 고여 있었다. 겨우 목을 축일 정도였지만 나무 향이 깊게 밴 탓인지, 달콤했다.그 물맛이 그립다. 요즈음은 산을 찾아도 선뜻 계곡물에 목 축이기가 겁난다. 물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므로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나 또한 내 작은 관심이 물을 지키는데 제일이라 여겨 실천하는 것이 있다.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미용 팩으로 활용한다. 어머님께 배운 것인데 쌀뜨물의 윗물을 버리고 남은 것에 약간의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어 걸쭉해질 때까지 젓는다. 그것을 얼굴에 펴 바른 뒤에 약간 꼽꼽해지면 떼어낸다. 곧장 물로 헹구면 물을 더 오염시키므로 꼭 떼어내고 얼굴을 씻는다.물은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희망이니 참으로 귀하다. 가뭄이 심할 때는 농부의 소망이 되고, 물 부족 국가에서는 희망이다. 오늘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은 시원한 물이 더 생각난다.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물줄기를 찾아서 뒷산으로 향한다.

2021-08-11

옛집, 그 그리움의 정경들

참한 색시 얻어 새끼 낳고 알콩달콩 살 거라고 초가삼간 오막살이를 마련했다. 처음 가진 내 땅이라 마음이 뿌듯해 여기까지 내 영역이라고 줄을 긋기는 좀 그랬다.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 돌을 져 날랐다. 하나 둘 쌓아 나지막이 두르다 보니 돌담이 되었다.입구를 비우니 뭔가 허전했다. 지게를 지고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갔다. 싸리나무를 추려 한 짐 지고 와 얼기설기 엮었다. 입구에 말뚝 하나 박고 거기에 엮은 것을 붙이니 싸리문이 되었다. 내 집에 잡귀가 들지 말라고 뾰족한 가시가 많은 엄나무도 얹었다. 늘 비스듬히 서 있다고 해서 사립문(斜立門)이라고 불렀는데, 말이 문이지, 사립문은 손님을 막아서지 않았다. 바깥에서 슬쩍 밀면 제가 먼저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집만 있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양식을 얻으려면 비탈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봄이면 논밭을 갈아야 했다. 장날 장터에 나가 대장간에 들러 농기구를 샀다. 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나무나 풀 등을 잘라 손으로 만들었다. 솜씨야 있을까만 손으로 만들면 얼기설기한 대로 살림이 되고 투박한 대로 도구가 되었다.따비 - 쟁기보다 작고 보습이 좁게 생겨, 풀뿌리를 뽑거나 밭갈이를 하는 데 쓰는 농기구.보습 - 쟁기나 극젱이의 술바닥에 맞추는 삽 모양의 쇳조각.극젱이 - 쟁기와 비슷하나 보습 끝이 무디고 술이 곧게 내려감(굽정이).써레 -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거나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 데 쓰는 농기구.써레뭉둥이 - 써레의 몸이 되는 나무.고무래 -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는 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丁’자 모양의 기구.쇠스랑 -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 풀 무덤 따위를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미 - 김을 매거나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캘 때 쓰는 쇠로 만든 농기구.슴베 - 칼·호미·괭이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부분.괭이 -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날의 모양에 따라 가짓잎괭이, 삽괭이, 수숫잎괭이, 토란잎괭이).여우호미 - 삼각괭이.도롱이 - 짚이나 띠 따위로 촘촘히 엮어 비 오는 날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망태기 - 가는 새끼나 노 따위로 엮어 만든 그릇.낫, 삽, 갈고리, 조리, 멍석, 삿갓, 쑤세, 깔판, 부지깽이, 똬리, 물동이, 뒤주, 주걱, 화로, 곰방대, 굴대, 채, 됫박, 나막신, 짚신, 목침, 풍로, 남포, 등잔, 돗자리, 요강, 물레, 함지박, 광주리, 코뚜레.“새끼 짊어지고 고개를 넘어 닿은 두메, 햇살 맑은 언덕에 터를 다진다. 나무를 잘라 뼈대를 세우고 흙을 이겨 벽을 쌓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을 모아 나지막한 담을 두른다. 가지 닮은 나무 둘 맞대 지게를 만들고 기다란 나무를 낫으로 툭툭 잘라 바지랑대를 세운다. 싸리나무 한 줌 묶어 어지럽게 흩날리는 생각을 쓸어내고, 수수대궁 두엇 꺾어 내면에서 재채기를 일으키는 먼지를 털어낸다. 댕댕이덩굴로 멍석을 짠 다음 그 위에 앉아 말린 옥수수자루로 삶의 뒷면에서 자분거리는 가려움을 긁어도 본다”(‘너와집’/ 김이랑 수필에서 발췌)가을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깨나 콩을 널었다. 뙤약볕에 깨와 콩이 잘 마르면 도리깨를 휘둘러 내려쳤다. 타닥타닥 알곡은 깍지 밖으로 튀어나와 멍석 위에 떨어졌다. 알곡이 다 떨어지면 빗자루로 쓸어 키 위에 담았다. 키를 들고 까불면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은 키 위에 떨어졌다. 곡식에 섞인 검부러기가 나비처럼 날아간다고 하여 이를 나비질이라고 했다.이른 새벽부터 가을마당에 탈곡기가 돌아갔다. 와랑와랑 자욱한 먼지를 피우며 나락을 털어내면 고사리손도 한몫 거들었다. 나락은 가마니에 담겨 곳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버지가 쌀 한 가마니 지고 장에 간 날, 아이들은 종일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드물게 소고기국이 올랐고 달각딸각 수저 부딪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초가집 용마루를 하얀 달빛이 쓰다듬을 때, 고봉밥을 다 비운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아이들 불룩한 배를 한 번씩 쓰다듬고는 툇마루로 나갔다. 자식을 배불리 먹였다는 포만감에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 들이켜며 고단한 하루를 위무했다.사립문은 단지 드나드는 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좋은 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른 아침 사립문을 열었다. 행여 자식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풍년초 한 대 태우며 사립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밤마실 나간 식솔이 다 들어오고 나서야 사립문을 닫았다.지금은 사람도 풍경도 과거로 떠나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끔 그 시절로 돌아가면 사립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8-11

안갯길 나라

강길수 수필가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가을 새벽, 아직 어둡다, 첫길이다. 내비게이터도 없던 시절이라 이정표만 따라야 했다. 대청봉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하루 허용 등정(登頂) 인원이 다 차 더는 입산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일행은 실망했다. 꼭두새벽부터 서둘렀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왕 온 김에 한계령 고갯길이나 다 넘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인제 방향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장막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일행들은 ‘와! 설악산 안개다!’하고 소리쳤지만, 운전대를 잡은 나는 되레 바짝 긴장되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의 안전이 내 운전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안개 장막은 쉬 열릴 것 같지 않았다.포항시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두 자릿수를 3일째 이어가고 있다. 걱정이다. 셋째 날의 숫자가 보이는 순간, 그 옛날 한계령 안갯길을 운전해 내려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장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안개 속에 처음 기항지에 내리는 비행기 조종사의 심사와도 같을까. 큰 숨 쉬어 자세를 가다듬는다. 저속으로 차선을 지키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이마에 땀이 송송 났다. 탈 없이 원통에 닿았다.수도권은 ‘거리 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시행한 날이 제법 오래되었다. 비수도권은 3단계라 하지만, 온 사회에 짙은 안개가 낀 기분이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언택트 시대’, ‘메타버스시대’라고 말하지만, 비대면으로 사는 국민은 안갯속에 사는 마음이다. 게다가 자칭 ‘촛불혁명’을 기치로 내세우며 시작한 현 정부는, 어디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지 안갯길처럼 도통 알 수가 없다.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에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취임사를 들을 때, ‘국가 최고지도자의 취임사가 너무 관념적이고, 정서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뭔가 안개 낀 날처럼 희미하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한 나라는 경제와 외교, 치안과 국방, 교육과 문화, 건설과 교통 등 제 분야가 실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구체성 없는 관념과 정서적 수사(修辭)는 들을 때 기분이 좋을 뿐 현실이 되기 어렵다.부뚜막 위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다. 따사한 햇볕에 안개는 걷힌다. 맑은 하늘에서 태양 빛이 식물에 내려앉을 때, 엽록소는 탄소동화작용으로 몸과 잎과 열매를 키운다. 그리하여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도 준비한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안개를 구체적인 기획, 소통과 개방, 협력과 상생의 햇빛을 비추어 걷어 내야 한다.집권 세력이 소위 ‘적폐 청산’의 칼을 안개 속에서 휘두르는 동안 나라는 사분오열로 갈라져 갔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매고, 소상공인은 생존에 아우성친다. 진실의 햇볕을 비춰야 할 많은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다. 정의가 그 생명일 법조계 천칭의 추는 권력 하수인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일어났어도 피해 야당은 웬일로 침묵하고, 다윗의 단 한 발 돌 무릿매질은 아직 힘이 부족하다.하늘의 개입이라도 필요한 세태인가.

2021-08-10

하루

김규종 경북대 교수 밤새 울어대는 벌레와 지렁이들의 합창으로 선잠에서 깨어난다. 처서 전후부터 울기 시작하는 지렁이의 맑은 음색도 좋지만, 가을 초입을 알리는 풀벌레 울음소리도 그에 못지않다. 어제 아침나절 서울의 후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새벽녘의 기억이 잠시 상념에 잠기게 한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이토록 다른 세상과 만난다는 일이 낯설다. 그것도 같은 나라 같은 하늘 아래서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하루라는 시간이 제법 길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시간에는 상대성이 개입한다. 상황에 따라서 길게도 짧게도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다. 마음 설레게 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찰나 같은 짧음과 지겹고 싫은 관계에서 느껴지는 영겁의 장구함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미인과 함께하는 시간의 짧음과 뜨거운 화덕 위에서 맛보는 기나긴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성을 말한 바 있다.같은 시간을 달리 경험하는 인간을 생각하면 무상하다는 어휘가 떠오른다. 늘 그러하지 않다는,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 폐부를 찌른다. ‘붓다 연대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자명한 사실 하나. 우리 기분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단순하고 명쾌하게 인간의 기분과 감정 상태를 규정한다. 항상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무시로 변하는 감정과 기분!여기서 우리는 항심이나 항상성을 연상한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과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는 성질 말이다. 자신의 기분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언제나 같은 마음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희일비하지 않는 무거움과 자신을 향한 엄중함이 상존(常存)하는 내면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손에 닿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동서양 지혜를 다룬 서책마다 등장하는 공통의 문장 있다.“늘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는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제의 위대한 승리와 환희가 오늘과 내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가르침. 하지만 욕망의 화신인 인간은 어제의 축복과 광희(狂喜)가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거기서 좌절과 실의가 생겨난다. 실패는 망각하고, 성공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선택적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허우적대면서….언젠가 김범수의 ‘하루’가 레코드 가게와 방송을 초토화한 적이 있다. 거리에도 광장에도 지하철에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하루’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 부를 수도 없이 어렵고 신비로운 노래 ‘하루’. 고통스러운 이별을 발라드풍으로 애절하게 노래하는 가수의 절규가 저물어가는 하오의 먼지 풀풀 일어나는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풍경. 거기서 되풀이되는 하루와 또 다른 하루의 균질한 시간의 경과.똑같은 색깔과 향기와 무게로 하루가 겹쳐지고 포개지는 날들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청춘의 상실과 비련은 눈물겹다. 그래도 내일은 다른 얼굴의 하루가 되기를!

2021-08-10

위드코로나 시대

백신개발로 곧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툭하면 백신공급 차질을 빚는 우리나라 보건당국의 방역체계를 믿고 있기에도 불안하다. 코로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지금껏 국민은 정부 지침에 잘 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따라만 하다가는 언제 코로나로 멈춰진 일상을 회복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방역수칙도 곰곰이 따져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환자 수가 조금 감소하면 방역을 풀고, 그 수가 증가하면 방역을 옥죄는 방식만 되풀이할 뿐이지 실제적인 효과를 입증한 적이 없다.모임의 인원도 주먹구구식이다. 예식장에 모이는 사람 수와 종교시설에 모이는 사람 수가 왜 달라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낮에는 4인까지 식사가 가능한데 저녁에는 2명만 하라니 이것 또한 이해가 안 된다.의학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계획한 백신 접종률 70%를 달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델타 변이가 판을 치면 코로나19의 유행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주요 선진국이 코로나 방역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전체 확진자 수를 줄이는 것보다 사망률을 낮추고 위중증자 관리에 더 치중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에 주력하면서 일상과 경제활동의 제약은 푸는 이른바 위드(with)코로나 전략이다.한국의 백신접종 완료율이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변종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음을 던지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전략도 중심을 잡고 위드코로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