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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검 서슬에 말 바꾼 고위 공직자들

다소 고루하지만 먼저 ‘명심보감’의 한 구절부터 읽어보자. “양약고어구 이어병(良藥苦於口 利於病) 충언역어이 이어행(忠言逆於耳 利於行)”. 어려울 것 없는 한자다. 풀어 쓴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을 고치고, 진실을 담은 말은 듣기 거슬리지만 인간의 행동을 바로잡게 한다는 의미일 터. 그게 최고 권력자건 필부(匹夫)건 제 앞에서 아부하고 아첨하는 인간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다. 아부와 아첨의 말은 너무나 달콤해 사람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왕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로 ‘간신과 충신을 골라내는 혜안(慧眼)’을 꼽았다. 통치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에도 쓴소리와 비판은 아끼고 그저 ‘잘하고 계십니다~’를 연발하는 간신을 곁에 둔 왕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바른 소리를 한다고 충신을 멀리 보낸 왕들 역시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흔했다. ‘간신’의 가장 큰 특징은 상황과 자리를 봐가며 말을 바꾼다는 것. 이를 번의(飜意)라 하고 공자는 번의하는 신하를 역적보다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선현의 옛말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서 고위직 공무원을 맡았던 이들이 최근 들어 말을 바꾸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들려온다.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대통령실 실세 중 실세’로 불리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격노설’ ‘체포 방해 혐의’ 등과 관련해 뻔뻔하게 ‘번의’를 했다고 한다. 간신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간신들을 곁에 두고 정치를 했으니 윤석열 씨의 몰락은 이미 예고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14

윤희숙 혁신위, 좌초위기 극복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가 첫발을 떼자마자 좌초 위기에 놓였다. 윤 혁신위원장은 지난 13일 당 출입기자들과 만나 ‘1호 혁신안(대국민 사죄 당헌·당규 수록)’과 관련해, “당이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잘못을 한 분들이 이제 개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면서 “더 이상 사과할 필요도 없고 반성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당을 죽는 길로 다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인적 쇄신의 0순위“라고 비판했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장동혁 의원 등 구주류 인사들이 ‘1호 혁신안’에 대해 “언제까지 사과만 하느냐”고 반발한 것을 염두에 둔 작심발언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최근 “의견수렴 없는 혁신안은 갈등과 분열을 되풀이하는 자충수다. 계엄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미 탈당했다”고 했고, 장 의원도 “언제까지 사과만 할 것인가. 서로 남 탓만 하는 내부총질 습성부터 고쳐야 한다”라며 혁신안을 직격했다. 두 사람 모두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있어, 당내 강경파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성 발언이라는 말도 나온다. 두 의원에 대한 윤 위원장의 작심비판으로 미루어, 혁신안을 둘러싼 당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 내홍이 증폭될 경우, 윤희숙 혁신위가 다음달 전당대회 때까지 순항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윤 위원장은 1호 혁신안 외에도 인적 쇄신의 제도화를 위해 ‘당원소환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당원소환제는 당원들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도부 등을 임기 중에도 해임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상당히 강도 높은 혁신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를 현실화하려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지도부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원 소환을 통한 강제적 인적 쇄신이 가능하려면 비대위 추인과 전국위원회 의결 등 높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앞서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인적 청산 문제로 당 지도부와 충돌하다 좌초한 전철을 윤희숙 혁신위가 그대로 밟는다면 국민의힘은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2025-07-14

포항의 미래 위해 시민 모두의 지혜와 연대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던 포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눈앞의 기회는 분명하지만 정체된 개발과 흔들리는 산업, 분산된 정책 속에서 포항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동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일만대교 사업은 18년째 가시적인 진척 없이,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2차 추경예산안에서 공사비 1,821억 원이 전액 삭감되며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포항 경제 또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철강을 비롯한 주력 산업은 글로벌 수요 위축, 공급망 불안정, 관세 인상, 중국산 저가 제품 확산 등 복합적인 악조건에 직면해 있으며,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전반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특히 포항 국가산단의 올해 1분기 가동률은 76%로, 불과 3분기 전인 지난해 2분기(93.1%)보다 17%포인트나 떨어졌다. 이처럼 산업 기반의 불안정은 고용과 소비를 연쇄적으로 얼어붙게 하고 있고, 지역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필자는 포항에서 태어나 산업과 정치, 행정을 직접 체득해왔다. 약 20년간 기업 현장에서 지역 산업의 구조와 경제 흐름을 실질적으로 경험했고, 19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 현안을 폭넓게 다뤄왔다. 포항시의회에서 세 차례 의원을 지냈고 두 차례 의장을 맡아 정책의 실질을 고민했으며, 복잡한 지역 쟁점에 대한 해법을 현장에서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경상북도의회 재선 의원으로는 운영위원장을 맡아 지방분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고, 전국시도의회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서 17개 시도의회의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왔다. 이러한 경험은 지역의 가능성과 함께, 넘어서야 할 과제를 날마다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포항을 지켜봤기에, 이 도시의 미래를 단순히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수많은 현장과 제도, 시민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과정을 오래 지켜보며, 자연스레 ‘포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도시의 변화는 어느 한 영역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과 행정, 정책과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조율될 때에만 변화는 작동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협력적 거버넌스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율되고 결합 되는 구조 없이 도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포항은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된 도시다. 최근 ‘한국형 수소 환원 제철 실증 기술개발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며, 철강 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고, 동시에 이차전지,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전략적 육성과 산업 구조의 점진적 다변화도 함께 모색되고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은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며,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도모하고 있고, 시민사회 역시 각종 도시 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역의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활력으로 창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산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지 않는다면 도시 전반을 이끄는 지속 가능한 동력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흐름을 하나로 연결하고 실행할 수 있는 체계다. 분산된 도시의 에너지를 하나로 묶고, 구체적인 변화와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절실하다. 여기에 실질적인 거버넌스의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구조적 리더십이 결합 될 때, 포항의 에너지는 분출되고 미래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포항의 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금은 산업의 대전환과 경제 회복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지역 전체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고, 포항의 미래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포항시민 모두의 지혜와 연대가 필요하다.

2025-07-13

이 지경이 되도록, 많이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러나 그 실수가 반복되면 문제다. 더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최악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수시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를 외친다. 신부에게 ‘고해(告解)’라는 것도 한다. 죄를 짓고, 용서만 빌면 해결이 되나. 자기 잘못을 성찰해 통회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이 앞서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43%, 국민의힘은 19%로 나타났다.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19%로 비슷하게 나왔다. 70대 이상을 포함해 모든 세대에서 민주당이 앞섰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한국갤럽조사는 대구·경북(TK)에서도 민주당 34%, 국민의힘 27%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찍은 유권자가 이민을 한 게 아니다. TK 주민의 정치적 성향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갑자기 예뻐서도 아니다. 국민의힘이 실망하게 한 탓이다. 정치를 하다 잘못할 수도 있다. 수많은 당원 중에 이상한 사람이 몇 명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수습할 생각도 없는 집단이라면 희망이 없다. 12·3 비상계엄 직후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한다’라는 의견이 70%, 탄핵 찬성이 74%였다. 아무리 내가 표를 준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다수 의원은 비상계엄을 막지 않았다. 그런 판단을 한 당 지도부에 항의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감쌌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명확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윤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 행동에 동조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반성은커녕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의원도 많다. 오히려 ‘친윤’ 핵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을 좌지우지했다. 윤 전 대통령 비판을 오히려 ‘배신’으로 몰아 비난했다. ‘의리’라고 포 장했다. 국민의힘이 조직폭력배 집단인가. 국민, 공익보다 의리가 중요한가. 국민의힘의 목표가 뭔가. 정강·정책을 국정에 반영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것 아닌가. 그러려면 집권해야 한다. 정당의 최고 목표는 집권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고, 당의 정책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국회 다수 의석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간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반대하는 길을 가는 이유는 뭘까. 나머지 3명이 그 정당에서는 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집권이나 보수 정책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당권 장악, 재선을 통한 개인적 영달을 노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TK에서마저 뒤집히고 있다. 부자 살림을 다 거덜 내고, 쪽박을 놓고 다툴 건가. 당의 주인은 누구일까. 파면된 대통령인가, 중진의원인가, 당원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당의 목표가 집권인가. 아니면 쫓겨난 대통령 경호인가. 중진의원들의 자리보전인가. 전체 국민을 반으로 나누면 오른쪽 반쪽에서는 30%만 해도 절대다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집권할 수 없다. 그래도 제2당으로는 살아남을 거라고 자위하는 걸까. 정당도 불멸의 조직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할 수 없는 불임 정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어물쩍 덮어도 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놓인 처지가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으면 잘 풀릴 것 같은가. 고통만 길어지고, 멸망으로 가는 길만 재촉한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김문수 대선후보에게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치는 본인의 영예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 봉사의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훈계했다.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이미 많이 하지 않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13

18년 만에 다시 찾은 송도해수욕장, 모래 위에 쌓는 포항의 새로운 100년

송도해수욕장이 18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한때 동해안 최고의 피서지였던 이곳은 방파제와 모래 유실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바다는 결국 사람을 다시 부른다. 되살아난 백사장 위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도해수욕장은 1960~80년대 ‘동해안 1번지 해수욕장’으로 불렸다. 여름이면 대구와 경북 전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로 백사장은 파라솔로 빼곡했다. 송도의 상징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입구를 지키던 ‘여신상’이었다.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린 듯한 여신상은 송도가 품은 여름의 낭만이었다. 해변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다이빙대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또렷하다. 청춘들은 거기서 몸을 던져 바다로 뛰어들며 한여름의 열기를 식혔다. 여신상 아래서 가족사진을 찍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 기억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무분별한 개발과 방파제 축조로 모래는 점점 사라졌다. 해수욕장은 2008년 문을 닫았고, 해변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송도는 추억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포항은 물러서지 않았다. 수년간 모래 복원과 해안 정비에 힘을 쏟았고, 마침내 송도는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여신상은 그대로고, 다이빙대도 깔끔히 단장됐다. 다만 이제 다이빙대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대신 상징으로서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춘다면 송도는 그저 추억 속 해수욕장에 머물 뿐이라는 것이다. 송도는 이제 시대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 여신상과 다이빙대가 과거의 낭만을 상징했다면, 지금은 그 위에 세계인을 불러모을 새 상징을 세워야 한다. 그 답이 해오름대교 전망타워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초대형 짚라인이었으면 한다. 파도를 내려다보며 하늘을 나는 짜릿함, 송도는 어쩌면 이 한 방으로 두바이 마리나, 하와이 와이키키 못지않은 글로벌 해양 액티비티의 격전지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는 추억이 아니라 경쟁이다. 아시아의 수많은 해변과 리조트들이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상상하고 투자하고, 놀 거리를 만든다. 과거의 명소에 머물러서는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발길을 돌린다. 그런 점에서 송도 짚라인은 관광 트랜드에 맞춘 변화의 상징이자 해양도시 포항의 새로운 얼굴, 해양관광의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체험시설, 상권 연계,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부수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만에 하나 진행한다면 세계 최고의 액티브 설계자가 구상하도록 해 그 이름을 보고 세계인이 송도로 오도록 했으면 한다. 송도는 이미 주변은 달라지고 있다. 첨단해양R&D센터는 해양바이오, 해양에너지, 스마트양식 같은 미래 산업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고, 곧 개통될 해오름대교는 물류와 관광을 잇는 대동맥이 된다. 이어 완공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의 후방 효과도 송도로선 기대할만 하다. 이제 남은 건 ‘발상의 전환’이다. 개장식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말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잡고 여신상 앞에서 사진 찍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죠. 지금은 못 뛰어내리지만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반갑습니다.” 그렇다. 송도는 추억만으로도 큰 밑거름이다. 거기에 짚라인이 얹히면 송도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닫혔던 해변 가게들도 다시 문을 열었다. 파라솔 아래 가족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얽혀, 송도의 여름을 되살려내는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웃음소리만으론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먼 곳에서 불러와야 한다. 철강 도시 포항이 바다로 다시 숨을 쉬고, 그 바다 위에, 세계인이 몰려들도록 길을 깔고 닦아야 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추억의 상징 여신상과 다이빙대 위에, 세계를 겨냥한 짚라인이 더해질 때 송도는 다시 태어나고 모래 위에 새겨지는 발걸음들은 포항의 새로운 100년을 쌓아올릴 것이다. 이제 송도는 다시 돌아보는 해변이 아니라, 다시 날아오를 해변이어야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7-13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아들의 첫 번째 생일이 지났다. 이맘때쯤 되니까 육아에 있어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온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어떻게 놀아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꿍까꿍만 해줘도 꺄르르 웃던 아들은 이제 자꾸만 새로운 것을 원한다. 집이 비좁아질 정도로 새로운 장난감을 구해다 바쳐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미디어의 유혹. 새로운 것이야 휴대폰에 깔려 있는 유튜브 어플에 무궁무진하게 있지 않은가. 돌쟁이 아기를 홀릴만한 신나는 콘텐츠들은 차고 넘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아직 이러한 유혹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기껏 조성해 놓은 TV 없는 거실이 아깝기도 하고, 뭔가 이제 와서 항복을 선언하기에는 자존심도 조금 상한다. 아기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시기를 미룰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그 이유도 여러 가지 들었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특하는 일이 아이의 지능과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손쉽게 자극이 주어지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아이가 새로운 놀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그렇게 되는 것이 아이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러한 이야기가 단지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변변한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소통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세상에 널려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 반면에 참 잘 노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저기 관심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품고 사는 사람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은 사람들. 이것은 삶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가와 직결되지 않는다. 돈도 시간도 많은데 ‘노잼’인 사람들이 있고, 분주한 일상 틈틈이 재미를 감춰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구분은 뻔한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놀아봤는가, 그 경험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어른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중에 놀라고 조언한다. 지금 놀면 나중에 실패하게 되지만 지금 인내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성공 이후에 더 풍요롭게 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꼭 옳은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들이 미디어를 비롯한 손쉬운 자극 없이 놀아 봐야 노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듯이 어른들도 성공과 풍요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젊은 시절에 없는 살림 속에서 어떻게든 노는 연습을 해야 나중에 더 잘 노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달에 삼십 만원 생활비로 살던 대학시절, 단돈 만원 한 장으로 데이트를 해 보았다면 함께 김밥 한 줄 씩 사 들고 공원을 거닐며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 앞에서 과자 한 봉지에 작은 캔 맥주 한 캔씩을 아껴 먹으려면 여름밤의 정취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기차 입석에 올라 힘들게 도착한 낯선 고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던 여행은 그 시절이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뒤늦게 성공해서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된 다음 놀아보려 애쓰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비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환상적인 야경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할 수 있겠지만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밤새도록 서로의 사이를 오갈 수 있을까. 분위기 좋은 루프탑 바에서 비싼 위스키를 시켜 먹으면 맛이야 있겠지만 진짜 여름밤 냄새를 맡을 수는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대륙으로 떠나서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며 그곳의 풍경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기억 속에 담아낼 수 있을까. 물론 풍요로운 삶은 좋은 삶이지만 그 이전에 실컷 놀아본 사람이라면 그 풍요를 훨씬 낭만적이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단지 풍요롭기만 하다면 그 풍요를 탕진하며 놀더라도 어딘가 공허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마주하는 씁쓸한 소식들이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도박, 마약, 아니면 그 어떤 부도덕한 행동을 통해 무너져버리고 마는 소식.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본질은 어쩌면 삶의 진정한 쾌락을 얻는 방법을 몰라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부정한 쾌락을 향해 손을 뻗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황정자가 1962년 발표한 곡인데, 제목이 낯설어도 노래의 첫 소절 가사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우리의 풍요가 완성되기 전부터,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노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7-13

의자의 목적

의자에 앉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근육이 필요하다. 엉덩이의 대둔근부터 시작해서 척주기립근, 허벅지를 지탱하는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까지. 특히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착석이야말로 고강도 근력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어찌나 하기 싫은지. 의자에 앉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늘 이런 식이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먼저 반기를 든다. 다리를 이리저리 꼬았다가 풀기 일쑤다. 몸을 비틀고 자세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침대 위에 누워서 앉기에 편안한 의자를 검색해 본다. 서울대 학생들이 사용한다는 의자, 인체공학적인 곡선으로 설계된 의자, 독일의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명품 의자…. 사실은 알고 있다. 의자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의자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전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회사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은 8시간 남짓. 이들에게 존경심이 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앉아 있음’이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의 감탄에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뭐 대단할 게 있나. 다들 그렇게 사는걸. 마음은 풍선보다 가볍다. 굉장한 근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마음이 붕 뜨는 것은 도무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고, 내 자리는 이게 아닌 것 같고, 오늘 하루가 괜히 억울해지고… 그런데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다는 건 근육의 힘보다는 마음의 싸움에 더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업무와 마주하고 떠나고 싶은 충동과 타협하며 더 편안한 자리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야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앉아 있음’이 언제나 책임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를 지키는 일과 의자에만 집착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후자는 그 자리가 곧 자기 자신인 줄 아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견제하고 눈치를 살핀다. 한 번 앉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이제 이것은 ‘버티고 있음’의 영역이 아니라 ‘붙들려 있음’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근육이 굳어버린 사람을 상상하면 예민하고 경직된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손에 땀을 쥐고 움켜쥐며, 이 의자에서 밀려나는 순간 존재가 증발할 것처럼 여기는 모습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고 그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 자신도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은 덤이다. 재미있는 것은 눈앞의 의자가 영영 자신의 것이 아니라잠시 빌려 앉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떠나면서도 거기에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음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의 흔적을 느낀다. 등받이에 남은 체온, 미세하게 기울어진 방향, 소음 절감을 위해 바퀴에 덧댄 고무 패드까지. 순식간에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흔적은 나의 자세를 되묻게 한다. 사실 나는 삶의 불편에도 너무나 쉽게 엉덩이를 떼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무 빨리 자리를 옮겨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너무 쉽게 자리를 고정해 버리고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다 한 것처럼 착각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근육을 늘리기 위해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앉는 것. 그 반복이 곧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의자에 앉는다는 건 몸을 단련하는 일. 의자의 목적은 결국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힘들게 버틴 몸이 제자리에서 단단해졌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한껏 솟아오른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면서 다음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문장을 매만지는 일을 회피하고 싶은 필자의 변을 늘어놓았다. 의자의 목적은 오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으니. 이제 나는 당당하게 일어나 냉장고로 향할 예정이다. 운동 후엔 단백질 보충이 필수이므로! /문은강(소설가)

2025-07-13

“오이가 열리든 말든”

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아직 여름길은 나지 않았는데 바다로 산책을 나간 새들은 오이 향을 데리고 저녁이 닫히기 전 마을로 돌아 오더라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더라 바다에 빠진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 속에서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여름길이 열리고 그 노란 꽃 가녘에 흰 나비는 스르르 속옷을 열더니 쪼그리고 앉더라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오이가 열리든 말든 ―허수경,‘오이’ 전문(‘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허수경 시인의 시에서 시간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결코 잊히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 남아 무겁고 아름다운 감정을 고요히 쌓아 올리고 있다. 2018년 독일에서 지병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 그녀는“슬픔의 시간”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에는 늘 사라져가는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시간이 함께한다. 그 시간은 단지 과거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뒤섞이며 미완의 시간 감각으로 현전한다. 이를테면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라는 기표는 시인이 평생을 두고 붙들었던 변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에게 시간은 결코 질서정연하게 흐르지 않을뿐더러 계절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사랑은 예고 없이 저물며, 죽음은 삶의 맨 앞에 서기도 하는 그녀의 시간은 늘 어긋나 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의 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 오이넝쿨의 손이 하늘을 더듬”고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는 언술이 그렇다. 그녀에게 바다는 멀리 있지만,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고,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가 저녁을 덮기 직전까지 계절을 흔든다. 시인의 발화법으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먼저 깃들고, 오이꽃에서 바다향이 나듯, 삶의 어느 부분은 미래보다 앞서 살아지게도 한다고. 해서 이미 진 꽃에서 오이가 열리기도 한다고 말이다. 이때 시인의 몸을 통해 “나비는 조용히 속옷을 벗고, 쪼그려 앉는다.” 생명의 열매는 그저 피고 지고, 사랑은 “열리든 말든” 휘어진다. 태어나고 사라는 모든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며 “나는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시를 쓴다”고 했던,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허수경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199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가 말 없는 고국을 떠나 먼 나라의 언어 속에서 생을 견뎠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아직도 여름처럼 푸르다. 그녀에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가장 짙게 고여 있는 감각의 시간이다. ‘혼자 가는 먼 집’에서 그녀는 여름을 “사라지는 존재들을 가만히 붙들고 있는 계절”이라 했고,‘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서는 여름을 지나간 신들의 시간과 사람의 잊힌 시간과 다름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오이는 허수경의 다른 시 수박’이나‘레몬‘자두’처럼 그녀가 애써 피워 올리던 몸시의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오이넝쿨의 얽힘, 꽃의 노란색, 멍울 맺힌 생명의 시작, 향기로 스미는 바다의 기억, 이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탄생과 퇴락, 감각과 소멸과 다름이 아니다. 그녀의 시 속에서 여성은 늘 혼자서 피고 지며, 존재의 흔적을 조용히 남긴다. 시인은 여성적 존재를 섬세한 식물처럼 그려내고, 그 안에 언어 이전의 감정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숨긴다. 시인 허수경에게 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끝내 붙잡는 일이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자라게 하는 시간, 그리고 멀어지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그 시간까지 모두 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감정과 감각의 몸을 생명으로 남겨 두었다. 이것이 바로 허수경의 여름이고, 오이꽃이며, 향기로 스미는 바다일 것이다.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이희정 시인

2025-07-13

멈춤 없는 청송의 걸음

지난 3월, 청송은 거대한 산불을 겪었다. 푸르던 산과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군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길은 단지 산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타들어간 과수원, 무너져 내린 생계의 끈들… 그 현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군민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다. 그러나 청송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외면하지도 절망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상처를 껴안은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립주택 설치와 생계비 지원 같은 긴급한 대응은 물론, 산림 복구를 포함한 장기 재건 계획까지 행정과 민간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걸음은 단순히 원상 복구에 그치지 않는다. 청송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시 다지고 있으며, 공동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이 산불은 청송에 닥친 재난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폭염,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일시적 자연현상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청송 역시 최근에는 대형 산불에 이어 예기치 못한 우박 피해까지 더해 농업 현장의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현실이다. 청송은 이러한 기후 위기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송의 자부심인 ‘청송사과’가 있다. 1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선정된 청송사과는 이제 품질 경쟁을 넘어 기후 변화에 강한 지속 가능한 미래형 스마트 농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황금사과연구단지 조성이 그 출발점이다. ‘우량 사과묘 보급’과 ‘농업용 유용 미생물 생산 및 공급’을 추진하고, 실증시험포장 운영을 통해 ‘5연동 사과재배 하우스’, ‘황금사과 수형별 비교시험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무적엽 사과, 꼭지 무절단 사과 도입 등으로 청송사과의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냉해, 병해충, 이상기온에 대응한 첨단 재배기술도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품목으로 농가의 소득원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청송의 미래를 지탱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대한 변화다. 청송은 농업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과 가족이 돌아오고 싶은 고장, 어르신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한 공간 재설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체결한 농촌협약을 통해 총 346억 원 규모의 생활권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진보면을 비롯한 부남·현동·안덕면 등 각 지역에 복합커뮤니티 공간, 문화·복지시설, 주거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농촌에도 도시의 품격을 더한 삶터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송읍에 올해 말 준공 예정인 공공임대주택은 원룸 44세대로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이어 2027년 준공 예정인 진보면 공공임대주택(110세대)은 대규모 청년 주거단지로 청년층의 유입과 정착을 견인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송군 K-U시티 역노화 사업’을 통해 지역특산물 기반의 상품 개발, 공동연구와 창업지원, 역노화 산업 연계 인재양성 등 청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산불 피해가 없었던 산남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개장한 산남 파크골프장은 최신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선 지중화 사업도 지역 경관 개선과 안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송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청송은 산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쌓여가는 노력 하나하나가 바로 청송의 미래를 지탱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농업을 넘어 삶터 전반에 걸친 변화, 위기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혁신이야말로 청송의 다음 100년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산불이 청송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청송은 오늘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아픔을 딛고, 변화를 품고, 미래를 그리며. 그 걸음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07-13

‘다른’ 사람과 연결하기

지난 8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소속 장애인 부모들이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환한 얼굴로 ‘오체투지 보고대회’를 열었다. 4일 이재명 정부 첫 추경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249억원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잡은 2025년도 예산이 4천3십억 원이었으니 6%가량 증액한 셈이다. 이 추경 예산이 장애인 부모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무더운 날씨에 지난달 16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매일 100배 제자리 오체투지를 하면서 발달장애인 추경 예산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부모연대의 시위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거의 매년 발달장애인 복지를 위해 시위했고, 3년 전에는 부모들이 삭발 시위까지 했다. 이런 꾸준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인 셈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청소년과 자주 만난다는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다. 그 청소년은 지능지수가 경계선 지능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는 데도 부모의 각별한 관심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이 넘으니 독립에 대한 욕구가 많은데 사회적 지원 체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추경 예산 확정 소식을 본 것은 일간지가 아니라 어느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 소식 sns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주요 일간지에서는 다루지 않았고 장애인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만큼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뜻이리라. 심지어 발달장애인 권익 요구 관련 뉴스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댓글이 달린다. ‘지원해줄수록 더 달라고 한다’부터 심하게는 ‘발달장애인이 사람이냐’까지 부정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러나 정상이라는 범주를 설정해놓고 그 범주를 벗어난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장애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나치와 다를 바 없다. 지금 당장 내게, 내 가족에게 장애가 없다고 해서 장애가 영원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치매에 걸릴 수도 있고, 사고로 다칠 수도 있다. 며칠 전, 박산호의 ‘다르게 걷기’를 읽다가 장애인 인권활동가 변재원의 인터뷰를 만났다. 어려서 큰 병을 앓고 의료사고까지 당해서 척수마비에 걸려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 상황을 못 받아들인 엄마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다고 한다. 그가 발달장애와는 다른 후천적 신체장애이고 지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엄마가 불안이 컸던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로는 어렵다.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들도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급선무다. 서울 혜화동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도서관 ‘라이브러리 피치’가 있다. 이곳에 가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경험이 일상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면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사라질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13

악성 댓글은 그만

김연아가 남편과 찍은 사진을 SNS에 공개한 후 심한 ‘악플’이 달리자 이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껏 충분히 참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복적으로 달리는, 저희 둘 중 누구를 위한 말도 아닌 댓글은 삼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악의적 댓글이 또 이어졌다. 김연아는 “3년 동안 들어온 선 넘는 주접, 드립 댓글들 이제는 그만 보고 싶어요”라고 다시 글을 올렸다. 선수 시절에도 심각한 편파 판정에도 불평이나 부정적인 말을 안 하는 김연아다. 악의적 댓글은 그렇게 착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마저 인내심을 잃게 만든다. 본인이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데 사람들은 왜 그리 난리를 칠까.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는 건지. 두 사람이 조용히 살아갈 수 있도록 그냥 놓아둘 수는 없을까. 우리는 sns와 언론 매체를 통하여 악의적 댓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럼에도 악의적 댓글은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제주 항공 참사에 있어서도 악의적 댓글은 멈추지 않는다. 유가족 대표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악의적인 명예훼손을 거듭한 30대에 법원은 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에 싸인 유가족에 대한 악의적 댓글은 그만두어야 한다. 익명으로 악의적 댓글을 올린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분명히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댓글을 다는 데는 자유도 주어지지만 책임도 따른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허위 사실을 올리며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내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익명으로 악의적인 글을 올리고 잠자리에 들 때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다. 익명이라는 이유로 악의적인 인신공격과 모욕적 언어가 난무하고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익명의 다수에 의한 집단 공격은 한 개인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내몬다. 집단 공격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확산하며 통제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것이 SNS를 넘어 언론에 드러날 때 피해 당사자는 심각한 고통을 당한다. 피해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에 힘들어하지만,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할 말을 잃는다. 온라인상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익명으로 글을 쓰면 자기표현을 솔직하게 할 수 있고 자기를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익명으로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인 생각을 활발하게 밝히는 것도 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교내 폭력, 가정 폭력, 정신 건강 문제 등 민감한 문제도 익명이기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누구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한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건강한 온라인 문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있는 것만을 말하고 남의 말을 좋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유명인이라고 하여 무분별하게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을 침해하는 글을 올리는 건 그만두어야 한다. 내 삶을 살아가기도 바쁘지 않은가. 시간이 있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 건 어떨까. /김규인 수필가

2025-07-13

TK신공항 국정과제 채택에 정부가 답해야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이 지난 주 국정기획위원회를 방문하고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비롯해 지역 핵심 현안들의 국정과제 반영을 건의했다. 재정 문제로 지지부진한 TK신공항 사업과 지역 현안의 조속한 진행을 위해 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첫 자리여서 지역관가 등에서도 관심이 컸다. 특히 지역 최대 현안인 TK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의 절실함을 역설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과 박수현 국가균형성장특별위원장은 사업 부지를 종전 부지 개발로 충당하는 기부대 양여 방식으로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데 공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대구는 대구시장이 부재한 가운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역의 현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TK신공항 사업은 전국 최초로 민군공항 통합 이전을 추진하는 사업이나 정부의 재정지원 문제에 부딪쳐 진척이 안되고 있다. 이전 사업비 11조5000억원을 지자체가 조달하기에는 감당 불능이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그동안 정부의 공공자금 지원을 여러 통로를 통해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 권한대행이 국정기획위원회를 방문한 것은 무엇보다 지역 최대 현안인 TK신공항의 국정과제 반영을 희망해서다. 국정과제가 되면 정부의 지원 아래 군공항 이전사업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군공항 이전사업은 국정과제로 공식화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SNS를 통해 “우상호 정무수석이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을 사실상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공식화했다”는 발표를 했다. 대구 군공항 이전사업과 보조를 맞춰 추진하던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의 국정과제 채택 소식은 TK신공항 국정과제 반영을 바라던 지역민에게는 다소 충격이다.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간에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TK신공항 사업도 적극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TK신공항 사업의 국정과제화에 정부가 답할 차례다.

2025-07-13

삼복(三伏) 더위

7월 중순과 8월 중순 사이에 들어있는 초복, 중복, 말복을 삼복이라 부른다. 하지를 기준으로 10일 뒤가 초복, 초복에서 10일 뒤는 중복이다. 말복은 입추를 기준으로 하는데, 연도에 따라 10일 혹은 20일 뒤가 될 수 있다. 삼복이 있는 초복과 말복 사이는 대략 47일이다. 이 기간은 예로부터 일년 중 가장 무더운 날로 여겼다. 날씨가 아무라 더워도 농사일은 손을 놓을 수 없기에 우리 조상들은 이 시기에 보신용 음식을 먹으며 체력을 관리했다. 대표적 음식이 개고기로 만든 보신탕이다.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도 이런 시중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삼계탕은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대용 음식으로 이용됐다. 개고기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서 지금은 삼계탕이 여름철 보양식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에도 우리와 비슷한 토용축일이 있다. 더운 여름철에 지치기 쉬운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들은 이 시기에 장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올해 초복은 이달 20일, 중복은 30일, 말복은 8월 9일이다. 푹푹 찌는 폭염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잠못 드는 밤 체력이 소모돼 더위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온열질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때 이른 무더위에 전국이 비상이다.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더위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정부가 온열질환 사고 예방을 위해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어서면 근로자가 2시간 작업 후에는 20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올해는 유난히 긴 더위와의 전쟁을 해야 할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3

한강과 의성 교육청 도서관

대중 강연을 한다는 것은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2007년 하반기부터 전국 곳곳의 대중을 상대로 강연해 왔으니, 어언 18년 세월이 흘렀다. 오산 시청에서 ‘공자와 논어’를 강연한 기억도 새롭고, 부산진 경찰서의 ‘혜원에게 조선의 풍속을 묻다’ 강연도 떠오른다.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강연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도 불러주는 곳이 있음은 고맙고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명예교수’보다 ‘초빙교수’라 불리는 게 좋다. 명예교수는 연구와 교육에서 멀어진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생과 작별하는 최후의 시각까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대중과 함께하는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평생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각설하고, 지난 7월 9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소서(小暑) 지난 사흘째 무더위 속에도 적잖은 군민들이 모였다. 강연 시작 전에 도서관장과 인사 나누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것은 강연자가 자기검열을 해서는 온전한 강연이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구·경북에서는 다소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아를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청주나 전주, 포항이나 부산, 광주에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묘한 곳이 이른바 ‘티케이’ 지역이다. 이 점에서 포항은 예외적인 곳이다. 강연 첫머리에 나는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기검열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청중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강연 중에 듣기 거북하거나 괴로운 청중은 조용히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40-50명 청중 가운데 두 사람이 나간다. 절대다수 청중은 진지한 태도와 눈빛으로 강연을 경청한다. ‘검은 사슴’ (1998),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같은 소설을 중심에 두고 한강의 창작과 거기서 우리가 생각할 골자를 말한다. 첫 번째 장편소설 ‘검은 사슴’부터 한강은 생명에 관한 묵직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한강은 탄광에서 빈발하는 매몰사고와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산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그런 정황을 한강은 성수대교 붕괴 (1994), 대구(大邱) 상인동 가스 폭발과 삼풍 백화점 붕괴(1995)처럼 차마 있을 법하지 않은 대형참사와 자연스레 연결한다. 한강은 생명 존중 사유를 제주 4·3 항쟁과 5·18 광주항쟁으로 넓혀 나간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기리면서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토록 자명하고 지고지순한 생각을 전달하는 강연에서 자기검열이 들어설 자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8년의 티케이 강연은 자발적인 검열을 요구해 왔으니 참 애석한 노릇이다.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강연은 유쾌하게 끝났고, 도서관장과 담당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흐뭇한 심사였다. 학살자를 학살자라 부르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한 민주 평등 사회가 속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13

李 정부 청문회 오늘 스타트…송곳검증 필요

오늘(14일)부터 이재명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오늘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열린다. 당장 첫날부터 일부 후보자들이 법률 위반이나 보좌진 갑질 등의 의혹을 받고 있어, 여야 간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우선 국민의힘이 낙마 공세를 집중시키고 있는 강선우 후보자는 보좌진 갑질 논란이 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국민의힘은 강 후보자가 갑질 의혹에다 거짓 해명까지 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자도 가족이 태양광 사업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태양광 지원 법안을 발의해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배우자가 보유 중인 농지를 실제로 경작하지 않아 농지법 위반 의혹도 추가로 제기된 상태다. 이외에도 많은 후보자가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특혜·갑질, 논문 표절 등의 부정행위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니 대통령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후보자들의 불성실한 태도다.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납득할 만한 자료나 해명을 내놓지 않고 하나같이 “청문회에서 소명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장관 후보자는 야당이 아무리 반대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어 ‘청문회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자격 없는 후보자들은 알아서 거취를 결정하는 게 순리지만, 여권은 의혹수준에 따라 음참마속의 결단도 내려야 한다. 청문회 시작 전부터 “한 명의 낙마도 없다”는 강경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지난 8일부터 ‘공직 후보자 국민검증센터’를 가동하고 있는 국민의힘도 후보자 검증에 한치의 빈틈이 없어야 한다. 각종 논란에 대한 꼼짝 못 할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의혹만 제기하는 수준에서 그치면 ‘김민석 총리 청문회 시즌2’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된다.

2025-07-13

청소년 미래와 꿈 지키는 경찰… 자전거 절도 제로화하기

학생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접하기 쉬운 교통수단이자 비싸고 가벼운 최고의 유행 아이템이다. 이런 유행에 따라 학생들 사이 자전거에 관련된 문제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 중학교 교사의 말에 의하면 자전거 절도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고 한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자전거 절도 통계에 따르면 절도 피해자 연령의 52.5%가 10대이고 절도 피의자 연령의 63.6%도 10대로 각 부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필자는 청소년들의 선도를 담당하는 학교전담경찰관(School Police Officer 약칭: SPO)으로서 어떠한 이유로 학생들 사이의 자전거 절도 문제가 심각한지에 대해 고민하였고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허락 없이 들고 가다 신고가 된 초등학생에게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자 “주인 없는 자전거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갔으며 이런 행동이 범죄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버려진 자전거로 판단되면 가지고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다. 필자는 학생들의 자전거 절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 행동이 범죄라고 인식시켜 줄 수 있는 교육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가에 있는 자전거라도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닌 자전거를 함부로 가져가는 행위는 절도가 될 수 있으며 이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이러한 처분을 받은 학생 중 장래에 공무원이나 경찰을 꿈꾸는 학생들이 있다면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지방공무원법 제31조 경찰공무원법 제8조에 의한 결격 사유에 해당해 꿈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에 대구강북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들은 △자전거 절도 예방 카드 뉴스 제작 및 배부 △자전거 절도 다발 지역 순찰 및 홍보물 부착 △지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전거 절도 예방 SPO-LIGHT(소식지) 배부 및 관련 교육을 통해 자전거 절도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알지 못해서 저지른 행동이라도 범죄라는 것은 변치 않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강북경찰서 여성청소년계는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박소정 대구 강북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순경

2025-07-10

새 정부의 참신한 교육정책을 기대한다

참으로 어수선한 교육 정책이 벌어졌었다. 제대로 점검이나 하고 시행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정책과 방향이 주목받는다. 이미 선거 전에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8대 공약을 발표했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 교사 면책 강화, 디지털교과서 삭제, AI 교육특구 지정 등 전 정부에서 하지 못한 교육 정책을 발표한 터라 과연 공약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중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정말 가능한 일인지 계속 눈여겨보게 된다. 충북대, 충남대 등 지역의 거점국립대학(지거국) 9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으로 상향하고 지거국을 중심으로 한 대학 통합과 구조조정 등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또 서울대를 한국대로 명칭을 바꾸고 새로 생기는 서울대를 한국대 2, 한국대 3 등으로 개명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서울대가 10개쯤 있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마치 의사 수 2000명 늘이겠다는 정책처럼 말이다. 의사 수가 적다는 사실은 공감을 했지만 2000명이나 되는 숫자를 한꺼번에 늘려 잡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릿수였다. 그래서 서울대 10개도 현실성이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교원의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고의 중대 과실이 아닌 경우 교육활동을 행한 교원에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한다. 교사지위법도 개정해 교원의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교육감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먼저 지도록 하며 교원의 위법 또는 고의 중과실의 경우 교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교원의 교육 활동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 시 무조건 검찰에 송치되는 것이 아니고 경찰 수사 후 정당한 교육 활동으로 판단되면 검찰에 송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교원의 정치활동도 전면 허용될 전망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교단에서 교사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이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리박스쿨‘도 결국 그런 행태가 아닌가 말이다. 방과 후라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가장 문제화되어 논란이 되었던 AI(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도 학교 현장에서 사라질 판이다. 89억원을 투자해서 채택률 98%로 전국 최고라 자랑하는 대구가 실제 활용률을 보면 초등기준으로 11%란다. 돈을 거의 갖다버린 수준이다. 예산 낭비도 이런 무자비한 예산 낭비가 없다. 현장 교사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소리 내어 외쳤건만 ‘웃대가리’는 왜 이를 외면하고 밀어붙였을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정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거늘 아직도 정치권에선 이익 단체의 고성에 휘둘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에 진보, 보수가 없다. 정치성을 띤 교육자가 이 나라 정신을 말아 먹은 예는 여러 군데에서 우린 보아왔다. 백년대계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기대해 본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10

민주적 배제와 협력적 살해

‘숨바꼭질’과 ‘줄넘기’, ‘달고나’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열광하는 전 세계인들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한창이다. 마지막 시즌이 공개된 지 단 3일 만에 글로벌 TOP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는 물론, 공개 첫 주에 93개국 차트를 석권했다. 이는 넷플릭스 사상 최초의 TOP10을 집계하는 모든 국가에서의 ‘올킬’이라고 한다. ‘오징어게임’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초상을 담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유튜버, 딸의 치료비를 구하는 화가, 성전환 수술 비용이 없는 트랜스젠더, 100억 빚의 기업가와 도박꾼 등은 각자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아도 이들 대다수는 주어진 현실에 목숨을 건 요행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즉 그들은 사회의 단순한 ‘루저’가 아니라 일한 만큼 벌어서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흔한’ 좌절을 안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한국적인(?) 오락거리를 기묘하게 펼쳐놓았으면서도 전 세계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도 여기 있어 보인다. 노동이 계층 상승에 대한 보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을 때, 혹은 복지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개인이 기댈 곳이라고는 도박과도 같은 요행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굴복시켜야만 하는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동질감이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 시즌에는 목숨을 건 생존 게임에 합리와 공정, 토의와 민주적 절차라는 외양을 갖춘 집단적 폭력을 다루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존자가 줄어들수록 탈락자를 고르는 기준을 둘러싼 협의가 시작된다. 그들 나름대로는 민주적인 절차에 입각하여 죽여도 되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별해 가는 것이다. 이때 그 선별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그저 남들보다 나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동정심’이나 ‘인간애’따위는 타인에게 만만해 보일 수 있어 저어될 뿐이다. 그야말로 ‘민주적 배제’와 ‘협력적 살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현실사회의 적확한 유비이다.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자는 천박한 구호에 별의별 구실이 동원된다. 사회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성적·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는 희생되어도 무방하며, 출근길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부정되기도 한다. ‘갈라치기’ 정치가 혐오스러운 건, 인간의 나약한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행위에 불과하면서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척하는 그 위선에서 비롯된다. 늙고 병들어서, 장애가 있어서, 국적과 민족이 달라서, 가난해서, ‘퀴어’라서 사회 제 영역에서의 경쟁에 조차 참여할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그저 남의 사정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특정한 국면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존 법칙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오산이 ‘오징어게임’의 비참을 추동한다. 이 시리즈의 성공에는 열패 의식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7-10

양육비 선지급제

양육비란 미성년 자녀를 보호·양육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주로 이혼한 부모 중 비양육 부모가 양육 부모 일방에게 지급한다. 양육비는 아이가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 생활을 누리며 자라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간혹 양육비를 아이를 키우는 전처나 전 남편에게 주는 돈으로 생각하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애 엄마가 다 쓸 텐데 양육비를 보내는 건 애 엄마 배만 불리는 짓이라고 말하는 의뢰인이 있으면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를 위한 돈입니다. 무조건 줘야 하는 걸로 생각하세요” 아이를 직접 키워보면 월 소득의 20% 선에서 정해지는 양육비가 사실 대단히 큰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성과 고뇌와 육체적·정서적 노동에 더해 꽤 많은 돈까지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양육비 지급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법과 제도를 마련해왔다. 지금 양육비 지급 채무는 다른 금전채무와는 완전히 다르게 취급된다. 불이행 시 비양육자의 근무 회사에 바로 청구할 수 있고, 교도소에 감치나 과태료 부과, 형사처벌, 운전면허 정지와 출국금지, 신상정보공개까지 다양한 제재수단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양육비 지급 이행률은 낮은 수준이다. 최근 양육비 지급을 위한 새로운 강제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양육비 선지급제도가 이번 달 1일부터 시행된 것이다. 양육비 선지급제란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한 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국가가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을 먼저 지급해주고 추후에 비양육자에게 회수하는 것이다. 양육비 선지급을 받기 위한 요건은 첫째, 양육비 채무자가 선지급 청구를 하기 직전 3개월 혹은 과거 3회 연속해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어야 하고, 둘째, 양육비 채권자가 속한 가구의 소득 인정액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중위소득의 150%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150%는 약 589만 원이다. 셋째, 그동안 양육비 채권자가 못 받은 양육비를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데,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확보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신청했거나 가사소송법 등에 따른 양육비 이행확보 절차를 진행한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양육비를 받지 못하던 양육자는 국가로부터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자녀 1인당 월 20만 원 한도의 양육비를 선지급 받게 된다. 양육비를 못 받고 한 부모 가정의 입장에서 국가의 양육비의 선지급은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겠지만 허점도 존재한다. 양육비채무자가 1회 아주 소액이라도 양육비를 지급하면 연속 3회 양육비 미지급 요건이 충족되지 않고, 나중에 양육비가 지급되면 국가의 선지급은 중단되기 때문에 또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런데 사실 실제 양육비를 못 받는 사람들은 소송비용이 없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기존에 있던 양육비 제재 수단을 하나도 취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청 비용을 지원하거나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방안, 또 실제 집행에서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한 감치의 실효성 확보가 필요하다. 좋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원래 있던 좋은 제도들을 잘 활용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10

국힘 대구시당위원장 경선… 공천권 노리나

국민의힘이 지난 9일 대구시당 위원장 후보 접수를 마감한 결과, 권영진(달서병)·이인선 (수성을) 의원 2명이 등록했다. 그간의 추대 관행을 깨고 두 사람이 후보 등록을 함으로써, 차기 시당위원장은 경선을 통해 선출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내년이 지방선거가 있는 해라서 자연적 공천권을 둘러싼 욕심이 빚은 결과라는 뒷말이 나온다. 두 사람은 이날 후보 등록을 하기 전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먼저 후보 등록을 한 권 의원은 “대구는 하루아침에 야당도시가 된데다 행정의 수장인 대구시장마저 장기간 공석이다. 대구 정치 부활의 시작은 이번 대구시당위원장 선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에 후보 등록을 한 이 의원은 “대구시당 위원장은 대구의 보수 정치가 제자리를 찾고 국민의힘이 진정한 국민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책임과 헌신의 자리다. 그간 대구 국회의원들이 함께 협의 절차를 거쳐 시당 위원장 자리를 추대했지만 이번에는 그 화합과 협치가 깨졌다”며 추대 관행을 깬 권 의원을 비판했다. 대구지역 국회의원 9명(권·이 의원 제외)은 이달 초 차기 시당위원장 선출 문제를 논의한 끝에 관례(선수와 나이순)대로 이 의원을 추대하기로 내부 결정을 한 상태였다. 권 의원과 이 의원 모두 재선이지만, 나이는 1959년생인 이 의원이 권 의원보다 3살 더 많다. 최근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가운데 보수 산실인 대구시당에서 위원장 자리를 놓고 집안싸움을 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은 현재 TK에서조차 민주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게 바로 이 지역 국회의원의 성적표인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표류하고 있는 TK지역 현안을 고려해보면, 대구 국회의원들이 시당위원장 자리를 두고 싸움할 때가 아니다. 누가 위원장이 되든 TK신공항 건설사업이나 대구 수돗물 취수원 이전 등 현안 해결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시당위원장 자리를 마치 구청장이나 지방의원 공천하는 ‘권좌(權座)’로 생각했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

2025-07-10

광역형 비자, 지방 이민정책의 전환점으로

경북도가 경북 도내 전역에서 우수한 외국인을 유치하는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국내 체류자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특화형 비자와는 다르게 이번에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광역형 비자 사업은 해외 신규 인력까지 유치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고 하니 지방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더 커졌다. 광역형 비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전국 처음으로 재안한 제도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필요한 외국인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의 체류자격 등을 직접 설계하는 제도다. 정부도 지방 실정에 맞는 특화형 비자가 효용성이 있다고 판단, 국가 사업으로 채택해 전국으로 확대를 했다. 이 제도는 본래 농촌지역의 심각한 인력난 해소와 지방소멸 등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광역형 비자를 통해 해외 우수인력까지 유치할 수 있게 됐으니 제도가 진일보 한 셈이다. 특히 경북도가 23개 직종의 전문인력과 2개 직종의 준 전문인력에 대한 자격 요건을 정해두고 해외 우수인력 유치에 나섰으니 그 성과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경북도는 내년 연말까지 산업인력 250명, 요양보호사 100명 등 총 350명의 해외 신규 인력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생명 과학전문가, 컴퓨터 하드웨어 기술자, 전기공학 기술자, 플랜트 공학 기술자 등 전문 분야 기술자들도 광역형 비자 발급 대상자에 포함해 지방정부가 의도한 인력들이 얼마나 유입될 지가 궁금하다. 광역형 비자 제도는 지방자치 시대에 지방정부가 관장하기에 적합한 제도다. 특히 심화되는 지방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지방의 기업들이 희망하는 전문인력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 1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정부가 관련한 업무를 다 맡기가 버겁다. 지방정부로 관할업무를 넘기면서 지방분권을 촉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이민정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북도의 광역형 비자 사업이 지방 이민정책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2025-07-10

인구 10만 돌파하는 대구 중구

대구광역시 중구는 대구의 모체(母體)다. 서울로 치면 한양 4대문 안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중구가 구청으로 승격된 것이 1963년이니 대구 9개 구군 가운데 맏형인 셈이다. 서울 강남 학군 다음으로 잘 나간다는 수성구는 17년이나 늦은 1980년 구청이 설치됐다. 그래서 대구 중구에는 대구역사와 관련한 문화재가 많다. 특히 근대역사와 관련한 자료가 많아 대구 중구를 중심으로 근대역사문화 여행길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경상감영, 대구성곽, 대구향교, 계산성당, 달성공원, 이상화 생가, 약령시, 서문시장 등 수없이 많다. 그러나 중구는 대구 9개 구군 가운데 2년 전 대구로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하고는 가장 인구와 면적이 작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남구와 함께 1명만 뽑는다. 한군데 구에서 2명 내지 3명을 뽑는 다른 구와는 비교 불가다. 달서구 인구의 5분의 1수준이다. 도시가 팽창되면서 대구 외곽으로 아파트가 건립되고 사람들이 빠져 나가 중구의 인구가 매년 줄어 한때 21만여 명이던 것이 7만여 명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대구의 모체답게 비즈니스 빌딩과 상업시설 등이 집중돼 낮시간대는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대표적 구역인 동성로는 서울의 명동과 같이 전국적 번화가로 소문 나 있다. 주말에는 수십만 명이 오간다. 대구의 모든 교통은 중구로 통한다. 최근 중구청이 신이 났다는 소문이다. 마냥 줄어들지 알았던 중구 인구가 재개발 등에 힘입어 다시 1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7년만이다. 10만 번째 전입자에게 줄 명패를 준비하는 등 청 내가 축하 분위기라 한다. 대구 모체로서 축하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0

재떨이 무덤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엄마는 갓난쟁이인 막내를 업고, 아버지와 함께 밤마실을 갔다. 다섯 살, 네 살인 두 동생을 잘 데리고 있으라고 내게 신신당부했지만, 잠이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눈이 말똥한 그들은 같이 놀자고 칭얼댔다. 달랠 재미난 일을 찾다보니 평소에는 손도 대 보지 못했던 성냥이 보였다. 깨끗이 씻어둔 재떨이를 방 한가운데에 놓고, 조심스레 성냥을 그어댔다. 길게 줄만 생길 뿐, 불이 붙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힘주어 탁 치자, 불꽃이 일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쳤다. 어둠 속 불꽃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넋을 잃었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은 잠깐이었다. 방안을 채우던 불빛이 서서히 사그라지자, 주변은 어둠 속에 갇히기 시작했다. 다시 성냥개비 하나를 던지다시피 올렸다. 까무러지던 불이 빨간 성냥개비 머리에 화르르 옮겨 붙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던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소리 질렀다. 나는 팔각 성냥 통이 반쯤 비워질 때까지 불을 붙이고 또 붙였다. “퍽!” 유리 재떨이가 두 동강이 났다. 순간, 우리는 얼어붙고 말았다. 두껍고 단단해 바닥에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았던 그것이 성냥개비 불에 쩍 벌어졌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확 다가왔다. 불장난보다 깨진 재떨이 때문에 더 혼날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도 이미 깨진 그것을 다시 붙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감추기로 했다. 타다만 성냥 꽁지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다. 자욱한 화약 냄새를 내 보내려 문이란 문은 다 열었다. 찬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엄마 아버지가 들어설 것 같았다. 삽을 찾아 뒤곁을 뒤졌다. 호미가 먼저 손에 잡혔다. 내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호미를 든 내 뒤로 재떨이 반쪽씩 든 동생들이 따라왔다. 매장지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평소 잘 다니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눈 쌓인 비탈에 달빛이 비쳐 주변이 환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꽁꽁 언 땅에 호미가 튕겨져 나왔다. 보다 못했던지 동생이 재떨이를 땅에 놓더니 눈을 끌어다 덮기 시작했다. 나는 흙을 긁어모아 눈 위에 덮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재떨이 무덤을 돌아보았다. 동생들이 내 양손을 힘주어 잡았다. 후다닥 뛰어 들어간 방에 신발도 따라 들어왔다. 신발을 내던지고 방문을 닫자, 그제야 맨발들이 보였다. 코도 귀도 발갛게 얼어있었다. 언 손을 이불 밑에 넣으며 동생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비밀이라고 손가락을 걸었다. 벌건 얼굴들이 주억거렸다. 그 이후, 아버지가 재떨이를 찾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는데, 그 밤은 꿈이었을까. 얼마 전, 막냇동생까지 모인 자리에서였다. 에어컨 바람 밑에서 수박을 먹으며 지난 흑백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빛이 고즈넉이 분위기까지 깔아주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던 여동생이 그날도 달빛이 참 밝았다고 했다. “이제 엄마 아버지도 안 계시니 얘기해도 되지?” 그녀가 재떨이 무덤을 열었다. 그때 네 살이었던 동생이 자기도 공범이었다고 했다.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놀라웠다. 풀어 놓는 얘기가 내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우린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을까. 엄마 등에 업혔던 남동생도 이야기에 빠져든다. 셋이서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남동생의 말에 여동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도 공범이지 않느냐며 손이 창밖 하늘을 가리킨다. 반백년 넘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달이 구름 사이로 숨는다. 막냇동생이 공범자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기억하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제야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되뇌었다. 전 국민이 마음 졸였던 크나 큰 산불 기억이 퍼떡 떠올라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시커먼 무덤 같은 산을 보지 않으려 애써 눈을 감는다. /윤명희 수필가

2025-07-09

분옥정(噴玉停)

마을에 다다르며 천천히 읽었다 봉좌(鳳座) 용계(龍溪) 분옥(噴玉) 개념으로 정명(正名)된 관념은 현실을 상징한다 봉황과 용을 대체 누가 보았는가 튀어오르는 맑은 물이 옥과 같다는 것은 물성(物性)과 세속에의 입신양명에 대한 스스로 자처한 지속적인 소외라 나는 해석했다 선비는 목숨을 저당잡힌 위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의지는 굳건하나 현실은 냉소적이었을 것이다 얼어죽어도 글을 읽겠다는 마음이 마루에 가득하다 녹음과 낙엽이 공존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것을 햇살은 거두어두지 못한다 뒤로 열린 하늘을 두고 물과 산을 바라본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이 깊으면 글은 저절로 담길 것이다 현실과 본질, 사직(社稷)과 사림(士林)은 대체적으로 대척점이다 한양에서 멀어져 이 좋은 곳에 머물 결심이었다면 나는 잊고 후학에 머물러야 하리라 우리가 쉽게 생각한 존재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나 무시당할 존재는 없다 다만 마음의 아름다움과 의지의 표상으로 날마다 서툴더라도 잡풀이라도 뽑을까 한다 그래도 불알 떨어질 일은 없으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싶다 땅을 짚고 솟아오르는 맑은 물이 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하여 나는 분옥정에서 소신(所信)을 소신(小信)으로 개혁했다. … 이 시는 분옥정 혹은 용계정사의 역사적 평가와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시인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분옥정은 너무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하늘을 뒤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심(洗心)하고 풍경에 젖습니다. 비라도 내리면 거기서 죽어도 좋을 듯 합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09

감정성 통증의 이해와 한방 접근

사람은 단지 근육과 뼈, 신경만으로 이뤄진 기계가 아니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은 물리적인 자극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종종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어 있다. 특히 분노, 억울함, 외로움 같은 감정은 몸의 기운을 울체시키고 혈류를 막아 결국 통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70%는 신체증상을 겸하고 있으며 신체증상과 감정의 문제는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임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이, 통증의 발단이 특정 사건이나 스트레스, 억눌린 감정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의학에서 분노와 화는 간과 심장의 기운을 상하게 한다. 한의학에서 간은 소통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기운을 매끄럽게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화를 참거나, 표현하지 못한 분노가 누적되면 이 간기의 흐름이 막히고, 기운의 흐름이 막히면 이로 인해 통증이 생긴다. 이때 아픈 통증의 대표적인 예가 옆구리의 당기거나 찌르는 듯한 통증, 늑간신경통, 편두통이다.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가 나면 꼭 어딘가가 아파요.” 이럴 때는 단순한 근골격 치료 뿐만 아니라 감정의 근원이 되는 간이나 심장의 화를 식히는 약을 같이 복용 시키면 더 빨리 그리고 확실히 치료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억울함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은 더 깊은 체내 울체를 만들어낸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담과 어혈의 형태로 체내에 머무를 수 있다. 특히 목과 어깨의 긴장, 명치의 뻐근함, 그리고 생리통과 같은 하복부 통증도 이런 억눌린 감정과의 연결성을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억울한 상황을 겪은 후 찾아오는 만성 통증 환자들은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나눠보면 속에 쌓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밥먹다가 안좋은 말을 듣고 체해서 오는 경우도 이런 경우다. 감정의 무게가 몸의 통증으로 옮겨간 것이다. 외로움과 상실감은 부교감신경을 약화시키고, 교감신경을 만성적으로 항진시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근육이 풀리지 않고, 수면의 질이 나빠지며, 통증 민감도가 올라간다. 똑같은 자극에도 더 아프고, 더 예민해진다. 이런 환자들은 혈액순환과 기혈 순환이 모두 약화되기 쉬우며, 맥이 약하고 설태가 끼는 경우도 흔하다. 신경을 쓰면 더 아프고, 혼자 있으면 통증이 더 부각된다. 몸의 통증은 결국, 감정과 환경의 반영이 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감정의 문제에서 한약과 침술을 사용해서 같이 치료한다. 대부분은 화를 풀어 주는 시호나 황련 그리고 억울 된 감정을 풀어주는 치자 같은 약재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처방한다. 감정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는다. 침술로는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 있는 혈 자리에 약침을 놓는 것으로 화가 난 감정이나 억눌린 감정을 치료한다. 실제로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을 조절 할 수 있는 곳에 약침을 꾸준히 맞으면 수면 가슴 두근거림 소화 불량 등의 감정으로 인한 증상들이 개선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의 본질이다. 통증은 단순한 말초 신경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가 보내는 신호다. 이를 그냥 보내지 말고 몸의 치료와 함께 마음의 치료를 같이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09

‘드래곤 길들이기’, 그리고 OSMU

더워도 너무 덥다. 에어컨은 며칠째 24시간 풀가동 중이고 바깥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무더운 날 범보다 무서운 손님이 온단다. 모 방송국에서 남편을 인터뷰한다고 연락이 왔길래 집으로 오라고 했단다. 허걱 기가 막혔지만 대처해야 했다. 궁리 끝에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난 집에서 나가 있기로 마음먹었으며 남편에게도 단단히 일렀다. 몇 시간을 촬영할 것인진 모르겠으나 그동안에는 소음 때문에 에어컨은 반드시 꺼야 할 것이고, 난 방안에 숨죽이고 있거나, 옷을 대강이라도 차려입고 그들을 접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신 청소를 그어느 때보다 꼼꼼히 해두고, 촬영할 방도 채비해 두었다. 몇 가지 과일을 정갈하게 썰어 래핑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음료도 두어 가지 준비해 두었다. 식탁에 컵과 포크를 몇 개 가지런히 내어두고는 집을 나섰다. 남편이 어디 갈 거냐고 묻길래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고 했다. 차에 시동을 건 채 현재 개봉영화 검색을 했다. 내 취향의 영화는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지금 가서 바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딱 하나 있어 다행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 장르는 판타지, 액션, 모험. 평소 같았으면 절대 보지 않을 것이었으나 선택지가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끊고, 팝콘과 제로콜라 사들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래 난 지금 시원한 곳에서 다만 시간 죽이러 온 것일 뿐이야. 재미없으면 자면 되지. 나 빼고 두 명의 관객이 더 있었으니 영화관은 적막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의 전사들과 기괴한 드래곤들과 싸우느라 시끄러웠다. 고대의 시간과 장소, 험준한 버크섬에는 바이킹들이 산다. 그들은 그저 북유럽인만이 아니다. 전세계 여러 곳에서 온 종족들이 같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와 극동에서 온 사람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들 바이킹은 그들을 괴롭히는 드래곤들과 철천지원수였다. 수시로 출몰하는 드래곤들과 싸워 죽고 죽이거나, 드래곤의 둥지를 퇴치하려 배 타고 원정을 가기도 한다. 싸워 이기는 자만이 살 수 있고, 이겨서 영웅이 되는 것만이 존중받는, 전쟁이 곧 삶이자 생활이었고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원수인 드래곤을 길들이고 친구로 삼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아닌 함께 사는 방법을 찾게 된다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울림은 컸다. 맞다. 싸움보다는 당연히 평화지. 멋지고 훌륭한 CG 화면도 몰입도를 높였다. 어라 괜찮은데 하는 생각에 깬 채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즐겼다. 이 영화 뭐지 하는 생각에 검색해 보았다. 과연 ‘드래곤 길들이기’는 유명한 OSMU 콘텐츠였다. 영국의 여성 소설가인 크레시다 코웰의 판타지 아동문학 소설 ‘드래곤 길들이기’가 원작이다.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도 영국인인데···.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총 12권의 소설로 나왔고 2010년부터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3편까지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으며 TV 시리즈, 그래픽 노블, 테마파크 어트랙션 등 다양한 미디어로도 확장되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인 셈이다. 한 작가의 상상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천만의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우리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려나 생각이 깊어진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09

인구감소에 의한 학교 통폐합 도시까지 왔다

저출생 현상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문제는 하나둘이 아니다. 지방소멸의 문제가 여기서 출발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도 따지고 보면 저출생에서 비롯한다. 태어나는 아이가 적으니 학교에 들어오는 신입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국 곳곳에서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속출한다. 과거처럼 북적대던 초등학교 입학식은 구경할 수 없고, 매년 많은 초등학교가 입학식 자체를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등학교 신입생 수는 약 35만명으로 전년보다 5만명이 줄었다. 최근 3년간 학생 수 감소로 전국에서 통폐합을 한 학교가 72개나 된다. 그중 80%가 초등학교다. 학교는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사회 요소다.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경제가 돌아가는데, 학교가 문을 닫으면 지역사회는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지금 농촌지방의 실정이 바로 그렇다. 폐교는 아니더라도 폐교 위기에 봉착한 학교는 수두룩하다. 작년에 신입생이 0명인 학교가 전국에 157곳이며 대부분 농촌지역 소재 학교다. 대구시교육청이 학령인구 감소로 서구 비봉초등학교와 달서구 월곡초등학교를 내년 3월 폐교하고, 남은 학생은 인근 초등학교와 통합한다고 밝혔다. 두 학교는 현재 재학생이 100명 미만으로 교육청 기준 통합 대상이다. 농촌 중심으로 나타나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학교 통폐합이 대도시인 대구에서도 현실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는 최근 5년간 4곳이 폐교됐다. 2023년부터는 매년 1개교씩 폐교가 발생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조사 전망치에 따르면 지난해 11만6000여 명이던 대구지역 초등학생 수가 2028년에 가서는 8만7000여 명으로 줄 것으로 예측됐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의 통합은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선호학군에 따라 도심 내 지역별 격차가 더 심화될 소지가 많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섬세한 교육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25-07-09

영덕바다에서 잡힌 참치는 왜 폐기돼야 할까

영덕 앞바다 정치망에서 지난 8일 평균 무게 130kg에 달하는 참다랑어(참치) 1300여 마리가 잡혔지만, 모두 폐기됐다. 국제협약에 따른 어획 쿼터 한계로 위판을 할 수 없게 돼 사료공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정치망은 그물을 끌어 올려야 어획물을 확인할 수 있어 현장에서 참치를 빼고 잡기는 불가능하다. 참치를 어획한 7척의 어선 선주들은 고깃값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영덕군 강구수협에 따르면, 이날 강구와 남정 앞바다 정치망에서 잡힌 참치는 평균 무게가 130kg에 달할 정도로 상품성이 좋았다. 1마리당 500~700만원에 거래되는 200kg급도 300여 마리나 됐다. 선주들은 이날 포항수협 등에도 쿼터 물량이 있는지 수소문했지만, 이미 물량이 찼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참치 쿼터제는 해역별로 연간 포획할 수 있는 양(허용어획량)을 규제하는 국제법이다. 경북도 전체에는 올해 110t의 쿼터가 배정됐고, 이 중 영덕군은 47.28t을 할당받았다. 하지만 지난 8일 기준 영덕군의 누적 어획량은 이미 99.19t에 달해 쿼터를 두 배 이상 초과했다. 관련 규정에 따라 초과한 참치 어획물은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최근 영덕 뿐만 아니라 포항, 경주, 울진, 울릉 등 경북도내 전 수협에서 발생하고 있다. 규정을 어기면 수산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아열대 바다에 사는 참치가 동해에서 무더기로 잡히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상승 때문이다. 지난 2022년 7월에도 영덕 장사해수욕장 백사장에 폐사한 참치 수천 마리가 파도에 떠밀려와 쌓이는 일이 발생했다. 영덕군은 오래전부터 정부에 참치 쿼터 확대를 요청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지 못했다. 소중한 자원인 참치를 보호하기 위한 쿼터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어획 상황에 따른 쿼터의 유연한 적용은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들도 긴급 할당 시스템 구축이나 정부 차원의 참치 수매제 도입 등의 해법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25-07-09

현수막이 정치인가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여당의 실정을 지적하고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권을 다시 맡겠다는 정당이라면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야당은 그같은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여당과 정부가 실수라도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정권을 빼앗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정권교체를 바랐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까닭은 외부의 음모나 여당의 술수 탓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내세운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으며 개혁은 지지부진하였고 소통은 닫혀 있었다. 자살골처럼 펼쳐진 비상계엄의 결과로 파면된 대통령을 만들었던 정당이 아니었던가. 야당은 실패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는 착각에 머물고 있다. 지역정치가 답답하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이라 여겼던 경북에서도 민심의 변화는 뚜렷하다. 한때 지역 곳곳을 뒤덮었던 야당의 깃발이 점차 빛을 잃고 있다. 그런 중에 지역 출신 국회의원 두 명이 각각 야당의 정책위의장과 홍보위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명색이 당의 정책을 총괄하고 전국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정작 내어놓은 정책은 무엇이고 어떤 전략으로 국민과 소통할 것인지 청사진은 들리지 않는다. 정책위의장은 나라 살림의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경제, 복지, 노동, 기후, 외교, 산업구조 등 당면한 수많은 현안에 대해 어떤 철학과 로드맵을 가졌는지 지역민들은 궁금하다. 홍보위의장 역시, 현수막 축하나 SNS 게시물로 떠들썩할 일이 아니다. 야당의 메시지가 국민의 삶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감동과 공감을 끌어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눈에 뜨이는 건 정책도 철학도 아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는 현수막이 펄럭거릴 뿐이다. 감투는 무엇인가. 가문의 명예인가, 공천의 보증서인가, 아니면 정치경력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한 이력 소재인가. 받은 직책은 자랑이 아니라 책임이다. 중앙당 지도부에 이름을 올렸으니 나라와 지역의 미래에 대해 더 적극적 책임을 져야 하고, 지지층의 회의와 비판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현실은 너무나 조용하다. 지역 언론에도 이들의 입장은 소개되지 않았고 받은 책임에 대한 시민들과의 소통도 들리지 않는다. 무거운 직책을 안고 돌아왔지만, 정작 지역민들은 그들이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야당은 여당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의 본령은 견제보다 대안이다. ‘그래도 저들이 낫지 않겠나’는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너진다면, 정권 재창출은 커녕 지역에서 존립 기반조차 잃고 말 것이다. ‘언더친윤’의 가림막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정책과 소통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 시민은 지역의 정치인이 성공하길 바란다. 나라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며 국민이 일상을 회복하는 길에 두 정치인이 능동적으로 기여하길 바란다. 자리에 걸맞는 책임과 실천은 어디에 있는가. 현수막은 정치가 아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09

국회의원 박수영의 필화(筆禍)

박수영은 부산 남구가 지역구인 국회의원이다. 그가 얼마 전 SNS에 올린 글과 잇따른 반응이 며칠째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왕 이전하기로 한 해수부는 연말까지 남구로 보내주시고 당선축하금 25만원 대신 산업은행도 남구로 빨리 보내주세요. 우리 부산시민은 25만원 필요 없어요’라는 게 박 의원이 쓴 글.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해양수산부와 산업은행을 부산 남구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을까.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부탁이고 주장이다. 그런데, ‘부산시민은 25만원 필요 없어요’란 마지막 문장은 쓰지 말았어야 할 실언이 아닐지. 적지 않은 네티즌이 “당신은 필요 없지만, 나는 필요하다” “산업은행 이전과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무슨 관계가 있냐”는 의견을 달며 박 의원을 질타했고, 심지어 “그럼 25만원 네가 줄 거야?”라고 거칠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호재(?)를 민주당이 놓칠 리 없다. 이나영 부대변인으로부터는 “무슨 자격으로 부산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려 드나. 여당 의원으로 재적하던 3년간 국민을 외면해 놓고, 이제 와서 큰소리 치는 꼴이 파렴치 그 자체”라는 힐난까지 받은 것. 여러 보도에 따르면 박 의원이 올해 신고한 재산은 36억원. 25만원이 작은 돈으로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남구에도 소비쿠폰으로 오랜만에 자식들과 돼지갈비로 저녁 한 번 먹는 계획을 세웠을 주민이 없지 않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 했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SNS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 21세기 필화는 주로 SNS에서 발원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