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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솔선리더십이 주는 긍정조직문화

‘부하 직원은 상사의 등을 보고 배운다‘라는 속담이 있다. 리더가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기준을 보여 조직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솔선리더십이다. ‘하라‘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한다.‘ 규정·구호보다 현장에서의 실천, 권한이 아니라 신뢰로 이끄는 힘을 말한다. 현업 개선 활동 참여, 설비 환경 청소 등 똑같은 일을 직책보임자들이 먼저 행하는 것으로, 현장 직원들이 공감하고 상하 간 마음으로 통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발적 참여와 진정한 소통을 이루어 긍정조직문화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된다. 솔선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3가지 조건을 갖춰야 목적과 기능을 발휘한다. 첫째, 말과 행동의 일치로 일관성이다. 안전을 강조하려면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보이지 않는 잠재위험‘ ’사각지대 6대 잠재위험‘ 등을 직접 찾아 먼저 행하며, 비용 절감을 말하면 불필요한 회의·의전부터 줄여 나가는 것이다. 즉, 구성원은 말이 아니라 리더의 선택을 본다. 둘째, 불리한 상황에서도 먼저 행동한다. 문제 발생 시 책임 회피보다 책임을 수용하고, 성과는 팀원에게, 실패는 리더가 감당하는 자세이다. 솔선은 편할 때가 아니라 불편할 때 드러난다. 셋째, 현장 중심이다. 3현주의에 입각한 책상 위 보고보다 현장 눈높이에 맞춰 일하는 것을 말한다. 지시보다 함께 보고, 함께 고민하고, 숫자보다 사람·공정·흐름을 이해하는 것에서 솔선은 시작된다. 현장을 모르는 솔선은 ‘연출‘로 보이고, 현업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솔선활동은 ‘공개적 쇼‘라고도 하지만 진정성이 없거나 정말 쇼가 되어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솔선리더십은 긍정 조직문화로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구성원은 감시없이 기준을 지키고, 스스로 개선하는 조직문화는 통제 중심 조직에서는 불가능하다. 상하 간, 동료 간 신뢰가 형성되었을 때 가능하고, 진정한 솔선리더십이 조직의 신뢰를 형성시켜준다. ‘리더가 하는 데 내가 안 할 이유가 없다.‘라는 문화가 형성되어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준수한다. 지시 문화에서 자율 문화로 바뀌면,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이 강화된다. 안전, 품질, 윤리, 개선 활동이 구호가 아닌 관행이 되고, 편법, 타협이 설 자리가 줄어들어 조직의 기준이 높아지고 신입도 빠르게 조직 기준을 학습한다. ‘이번에도 말뿐이겠지’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구성원이 변화를 신뢰하고 따라온다. 솔선리더십은 지속 가능한 혁신과 개선 문화의 토양이 된다. 긍정조직문화는 개선이 살아있고 성과의 토양이 된다. 개인과 조직간 상호 신뢰를 토대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 조직이 하고자 하는 일의 수용이 빠르고, 함께 하는 일들이 시너지가 발휘되는 것이다. 숨김없는 일의 문화, 원칙과 공정성, 일관성이 살아있는 조직, 존중과 소통으로 함께 성장하는 교육·개선·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이다. 솔선리더십은 긍정 조직문화의 출발점이며, 긍정조직문화는 성과의 토양이 된다. 제도보다 빠른 변화는 리더의 태도와 행동이고, 조직의 리더가 허용한 수준까지 기업문화는 성장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1-28

포항시민 권정무 2

깔쌈하다는 경상도 촌말이 있어요 검색해 보세요 당신들이 울릉도 갈 때, 천 명이 넘는 손님들이 타는 크루즈, 객실의 바닥과 소금기 가득한 계단, 당신들이 싸지르는 화장실 청소를 이 사람이 합니다 어찌 보면 너무 일에 집착해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소주도 꼭 한 잔만 해요 술자리 끝나면 후배들 선배들 다 챙겨 보내요 그야말로 인생의 바닥을 싹쓸이하는 사람이에요 해충박멸, 방역과 청결, 하는 일 모두가 얼굴만큼 깔삼해요 기부도 잘 해요, 왼손은 몰라요, 부자도 아니에요 알릴 일도 아니고 그러지도 않아요, 그냥 해요 시니컬한 허세, 그러나 진정성 가득한 포스 덜떨어진 애교가 볼 만해요 그리고 맨발 달리기의 전도사예요. 비오는 날엔 시내를 맨발로도 달려요 영일대 바닷가를 죽자고 달리는 미친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거기에 더한 일도 합니다 시 한 편 제대로 못 외우는 이 삭막한 시대에 그는 삼 백 편의 시를 외우고 있고 필요로 하는 곳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낭송을 합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정말 열심입니다 정말이지 읽고 외워 인문을 함양하고 달리고 달려 신체를 구축하고 쓸고 닦아 생활을 바로 세우는 실존적인 삼종(三種) 세트 인간, 말릴 재간이 없습니다, 지켜보며 응원합니다 후배지만 선배 같아요, 그렇습니다 일부에 충실하여 전부를 말하는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 순수하다고 해서 맹탕일 필요는 없다. 생업은 치열할 뿐만 아니라 더러는 더럽고 저급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순화시키면 주위가 고요해진다. 그렇다고 고요가 적막은 아니다. 시장의 소음 속에서도 적막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 있고, 또 그것이 적막임을 모르면서도 그 적막을 지배하는 능력자들이 도처에 있음을, 본인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런 사람이 정말로 영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가장 잡놈이라 불릴 사람에게서 경지를 이룬 사람의 불가해한 능력을 보는 것은 대낮에 등불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거나 도태되었다. 그들의 마을에 가고 싶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28

꽃 뒤에 선 잎

지난해 가을, 수필집을 발간했다. 신문과 여러 매체에 흩어져 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새로운 숨을 얻었다. 어떤 글은 오래 묵은 슬픔에서 왔고 어떤 글은 지나가는 바람 같은 기쁨에서 태어난 글이었다. 책 속의 모든 글이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듯이 독자들에게도 은은한 치유의 서막이 되기를 바랐다. 12월 초입에 북콘서트를 했다. 한 독자가 내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까지 잘 키우세요”라는 말과 함께 포인세티아 화분을 안겨 주었다. 포인세티아는 초록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기에 크리스마스 꽃이라 불리며 꽃말은 축복과 행복이다. 갓 태어난 책을 축복하듯 눈부신 생명의 빛을 품고 있어 자태가 황홀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온종일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화분을 두었다. 전등을 켜자 붉은 잎이 실내의 공기를 따뜻하게 물들였다. 풍성한 초록 잎에 둘러싸인 포인세티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꽃이라 부르는 붉은 부분은 진짜 꽃이 아니다. 포엽(苞葉)이다. 꽃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잎. 가운데 작고 노란 꽃은 조용히 숨어 있었고, 포엽은 자신이 꽃인 듯 화려하게 빛나며 세상의 시선을 대신 받아주고 있었다. 포엽은 스스로를 꽃처럼 드러낸다. 하지만 사실은 꽃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잎이다. 그 희생과 배려가 없다면 진짜 꽃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문득 세상 만물의 이치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 서고 누군가는 무대 뒤에서 조명을 켠다.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는 이름 없이 지탱한다.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도와주는 돌봄의 손길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뒷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이웃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내 삶에도 포엽 같은 존재가 있다. 수필 동인과 독서회,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분들이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는 행위는 개인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지만, 여럿이 참여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는 타인의 관점을 들여다보며 내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 독서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책 읽기를 마칠 때도 있지만 토론을 통해 사고의 전환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나는 분들은 서로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이끌어 주고 토닥여 주는 포엽이다. 포엽은 화려하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빛을 잃고 이내 시든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꽃은 열매를 맺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포엽의 겉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열매라는 본질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한때 찬란히 빛났던 순간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참고 견뎠던 순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포엽은 말이 없다. 하지만 자기 역할을 알고 있다. 앞에 나서지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존재. 꽃을 위해 자기 색을 태우는 잎이다. 그 겸허한 구조를 바라보며 나는 오래 잊고 지내던 마음 하나를 다시 기억해냈다. 빛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드러나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진실이다. 나는 지금 포인세티아를 바라본다. 포엽 사이에서 작은 꽃이 살포시 숨을 쉬고 있다. 포인세티아는 나에게 은유 하나를 조용히 건넨다. 내 삶이 빛나고 싶다면누군가를 감싸 안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정미영 수필가

2026-01-28

수소환원제철, 국가의 결단과 주도성이 중요하다

2025년 12월 26일자 파이낸셜뉴스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수소환원제철 큰일났다···한국은 R&D, 중국은 벌써 생산 시작.” 기사에 따르면 중국 최대 철강기업인 ‘중국 바오우(宝武)그룹’은 광둥성 잔장(湛江)시에 연간 10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생산라인을 완공하고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고, 전기로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이 공정은 기존 제철방식보다 탄소배출을 50~80%까지 줄일 수 있으며, 연간 300만 톤이 넘는 탄소감축효과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과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은 냉정하다. 한국은 아직 범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기반으로 한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8146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의미 있는 출발임은 분명하지만, 이미 생산 경쟁에 들어간 중국과의 격차는 분명하다. 이 차이를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철강산업이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국가전략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응 역시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독립적 존엄과 자유와 더불어, 국민 전체의 생활과 생존을 책임지는 공동체가 바로 국가이고 정부이기 때문이다. 수소환원제철에서 국가와 정부의 주도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먼저 수소환원제철의 고지에 깃발을 꽂은 사실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은 명확하다. ‘누가 더 좋은 기술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먼저 국가의 결단을 내렸는가’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개별 기업이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신기술이 아니다. 이는 철강 생산방식뿐 아니라 국가 산업구조와 에너지시스템을 동시에 바꾸는 전면적 대전환 프로젝트다. 수소환원제철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요구한다. 첫째, 수조~수십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투자다. 둘째, 흔히 “10년이 걸린다”고 말해지는 장기간의 기술적 불확실성이다. 셋째, 청정수소와 재생전력이라는 에너지 인프라의 동시 구축이다. 이 모든 조건은 개별 기업의 통제범위를 명백히 넘어선다. 시장에만 맡길 경우“누군가 먼저 하면 따라가겠다”는 조정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의 개입 없이는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어렵다. 실제로 주요국은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스웨덴은 정부·국영 전력회사·철강기업이 함께 실증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독일은 수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전력과 수소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보전하며 철강전환을 에너지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중국 역시 국가계획에 수소에너지 기반 제철전환을 포함시키고, 국영 철강기업에 상용화를 주문했다. 이들에게 수소환원제철은 기술 실험이 아니라 철강강국 간 생산능력 경쟁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수소환원제철은 단기간 성과를 내는 정책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국가 전환프로젝트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행정구조는 이러한 장기과제에 취약하다. 정권교체와 함께 정책 우선순위가 흔들리고, 조직과 예산이 단절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수소환원제철 논의는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 개인의 의지 차원을 넘어, 국가전략의‘계속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산업 전환과 탄소중립 전략이 실증을 넘어 상용화 단계까지 이어지려면, 정책의 시간표 역시 단임 임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구조에 대한 논의 또한 특정 인물을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이러한 장기 국가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고민 속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이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을 포스코라는 한 기업의 선택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이는‘기업의 혁신과제’가 아니라‘국가의 전환과제’이며, 국가전략기술로 공식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주도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첫째, 국가 비전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언제 실증을 끝내고 언제 상용화로 넘어갈 것인지 국가가 명확히 제시해야 기업이 움직인다. 둘째, 초기 단계에서 불가피한 수소·전력 가격 리스크를 국가가 흡수해야 한다.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탄소차액계약제도(CCfD)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핵심 수단이다. 셋째, 연구개발을 넘어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 지원과 금융보증이 필요하다. “실패하면 국가도 함께 책임진다”는 시그널이 있어야 투자 결단이 가능하다. 넷째, 수소 생산·저장·운송, 전력망, 항만과 같은 인프라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국가가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법과 제도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전환 특별법, 인허가 패스트트랙, 그린철강 공공조달 의무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위한 장치다. 특히 K-스틸법 시행령에 수소환원제철의 국가 주도 실증·상용화, 국고 직접 지원, 전담조직 설치가 명확히 담기지 않으면 법은 구호에 그칠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제를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설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산업·에너지·환경·인력 정책을 통합 조정할 국무총리실 산하의 수소환원제철 전환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또한 전환청(추진단)이 자리할 곳은 책상 위의 정책 공간이 아니라, 실제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그 장소다. 실증·생산·인력·연구가 공간적으로 집적된 곳에서 산업전환의 속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어 왔다. 수소환원제철이 뒤처질 경우 그 대가는 막대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수출 경쟁력을 잃고, 자동차·조선·방산 등 연관 산업이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안보의 문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기업이 알아서 하길 기다리자”거나 “R&D만 하면 언젠가 된다”는 접근으로는 늦다. 필요한 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수소환원제철 구축 기간의 계속성을 보장하며, 현장에서 실행하는 체계다. RE100을 모르고 시작해서 아까운 시간 3년을 허비했다. 다시 자세를 다잡아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중심, 포항에서 수소환원제철의 신기원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이 제2의 철강혁명이라면, 수소환원제철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결단이며, 그 결단은 국가의 문제이므로 정부와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임무이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28

진짜 두려운 것

어느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건조기였다. 전날 저녁, 건조기를 돌려놓고는 잠들어버린 것이다. 며칠 치의 수건이 겹겹이 몸을 포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건을 꺼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건조기가 있는 베란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밤새 꼭꼭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열고 건조기를 열었다. 건조기 깊숙이 상체를 밀어 넣고 건조된 수건 뭉치를 품에 안던 때였다. 오른발에 무언가 밟혔다. 바삭. 말 그대로 바삭한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서 감자칩을 먹은 적이 있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잠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불 꺼진 베란다는 어두웠고, 나는 손에 든 수건을 우선 거실 소파 위로 옮겨두었다. 그러곤 베란다 불을 켰다. 그곳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있었다. ‘공포’라는 단어에는 ‘두려울 공(恐)’과 ‘두려워할 포(怖)’라는 한자가 쓰였다. 말 그대로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공포라는 뜻인데, 두려운 것이 두 배가 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두려운 것과 두려운 것. 평소에 나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다. 공포나 고어 영화도 잘 보고 무서운 놀이기구도 즐겨 탄다. 높은 곳도 겁내지 않는다. 이런 내가 두려워하는 건 두 가지인데, 바로 어둠과 벌레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목격했다. 하나, 내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바퀴벌레. 둘, 그 바퀴벌레를 어둠 속에서 내가 밟았다는 사실. 나는 곧장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바퀴벌레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반쯤 울먹이며 화장실에서 발을 깨끗이 닦고, 살충제로 바퀴벌레를 익사시켰다. 겨우겨우 사체까지 치우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탈진한 채 소파에 누워 세스코 무료 상담을 검색했다. 가장 이른 날짜로 방문 신청을 하곤 며칠간 베란다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그날의 충격과 공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최근에 겪은 일 중 가장 끔찍한 일인데,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도 친구 한 명에게 바퀴벌레 이야기를 꺼내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뜨끈한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다. 식사하는 동안엔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있었던 근황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계획 중이었다. 친구의 애인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뒤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은 어디에 구하기로 했어? 음료를 마시며 가볍게 던진 질문에 친구가 잠시 머뭇거렸다.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괜히 민감한 주제를 던졌나 고민하던 찰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같이 집을 보러 다녔는데, 오빠가 나는 바퀴벌레 나오는 집만 아니면 돼, 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 친구가 유리잔에 꽂힌 빨대를 한참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오빠는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거든. 우리 집은 바퀴벌레가 종종 나오곤 했는데 오빠한테 말하면 아마 기겁할걸. 자기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 친구가 빨대를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이럴 때 조금 무서운 것 같아.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게.”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또한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독립하기 전까지 나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비롯한 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여름엔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서 날파리가 들끓고 몰래 침투한 모기가 가족들을 괴롭혔지만 그건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므로 제외하고). 그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사는 집에선 당연히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바퀴벌레가 징그러운 해충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평생 겪은 적 없는 미지를 앞으로 수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막막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든 건 아닐까. 내가 진짜 두려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진 순간이었다. “나도 그랬는데, 살면 또 살아지더라.” 나는 친구를 위로하듯 말했다. 친구가 빙긋 웃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바퀴벌레쯤이야 내가 잡으면 되니까.” 나는 친구에게 세스코 정기 구독료에 대해 알려주고, 친구는 바퀴벌레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약을 소개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어두웠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걸었다. 살면 또 살아지더라. 친구에게 건넨 말이 부드럽게 몸을 돌려 내게 다가오는 걸 느끼며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양수빈(소설가)

2026-01-28

글쓰기를 권함

나의 여덟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천천히 내 신간이 나왔다고 소문을 내야 한다. 주변에 책 나왔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준다. 처음에는 머쓱했는데 이제는 그냥 싱긋 웃는다. 누군가 자기 일을 하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모든 일들은 사실 모두 칭찬받을 만 한 일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사람들, 흙 밖에 없는 땅에서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 맛있는 스파게티나 떡볶이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칭찬받아 마땅하다. 신간 소식을 전하는 내게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자기도 언젠가 책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일단 글을 쓰라고 말한다. 책을 채우는 기본적인 내용물은 결국 글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 중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은 낼 수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생각에 글을 잘 쓰는 방법과 운동을 잘 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은 결국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 한다. 약간의 재능을 타고 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란 것은 그것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잘할 수 없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글쓰기도 운동도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그것을 잘 하기 위한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꼭 어디 발표하거나, 책을 내거나,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러닝 열풍에 힘입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황영조나 이봉주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 중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조금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이다. 나는 생활 속의 글쓰기 역시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흩어져있는 생각을 모아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쉽게 잘 정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있었던 생각이 구체화되고 또렷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생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람의 행동은 결국 생각의 산물이다. 생각이 정돈되면 확신이 생기고 행동에도 체계가 생긴다. 생각이 다양해지면 행동의 반경도 넓어진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또한 글쓰기는 휘발되고 마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은 점점 더 소중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허망하게 잊혀지고 마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다. 우리가 경험한 것과 그 안에서 품은 감정들을 짧게나마 글로 남기고 머리와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보다 촘촘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장황하고 거창하게 써 내려간 대단한 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몇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수필도 좋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몇 줄의 시를 써 보는 것도 좋다. 그것도 조금 막막하다면 몇 단어의 메모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해보면 아주 글을 쓰지 않고 쓰는 삶이라는 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지지 않았는가. 인터넷 기사에 쓰는 댓글도 글이고 SNS에 휙 던져놓는 몇 마디도 글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글이고 업무를 위해 주고받는 이메일도 모두 글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왕 쓰는 것 잘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 비결을 조금 공개하도록 하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글이건 일단 써 보고 요즘 널리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교정·교열을 요청한다. 그러면 맞춤법 오류와 비문 같은 것들을 수정한 새로운 문장을 내어 놓을 것이다. 기존에 쓴 문장과 수정된 문장을 비교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글은 좋은 글감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좋은 글감을 찾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지면이 부족하다. 강백수의 신간 《뭘 쓸까》에 상세히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백수(시인)

2026-01-28

생리대와 슈퍼카

‘생활필수품(생필품)’이란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물품을 의미하는 단어다. 생각해보자.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설탕과 생리대, 화장지 등을 구입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소비자의 약점을 이용해 높은 이익을 얻어내고, 그에 대한 세금은 피해가려 했다면 심각한 도덕적 일탈인 동시에 작지 않은 문제다. 비싼 생리대 가격은 이재명 대통령의 ‘저렴한 제품을 만들어 무상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언까지 불러왔다. 시장에서 생필품 가격을 높이는 요인은 원가 부풀리기와 담합 등이다. 최근 국세청이 앞서 언급한 생필품 가격을 높여 폭리를 얻고, 탈세를 반복한 업체에 칼을 빼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폭리와 탈세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거나, 비싼 슈퍼카와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는 등의 행위를 한 회사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 된 업체는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담합으로 생필품 가격을 크게 인상시키고, 세금을 회피한 곳이다. 더불어 소득 축소 신고와 유통 비용 상승 유발 업체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라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얻어낸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생필품 업체를 질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며 생필품을 높은 가격에 판매해 얻은 돈으로 법인용 슈퍼카를 사서 사주가 사적으로 이용했다거나, 법인 자금으로 취득한 수십억 원대의 아파트를 사주 자녀가 무상으로 사용하게 했던 생필품 제조업체들에겐 사람들이 납득한 만한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28

원전 집적지 경북, 원전허브 도약 기회 잡아야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탈원전 등을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되던 정부의 원전건설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6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라 2038년까지 신규 대형원전 2기와 소형 모듈원전(SMR) 1기를 신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과 탈탄소 전환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신규 원전건설이 불가피해서라고 한다. 또 원전 필요성에 대한 높은 국민적 공감 여론이 형성돼 애초 생각했던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내 원전 26기 중 절반인 13기는 경북에서 운영된다. 경북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피해지역이다. 2017년 이전만 해도 경북 영덕과 울진 등에 6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립하기로 하였으나 백지화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울진의 2기가 다시 건립되기 시작했지만 영덕 천지원전 사업은 모두 백지화됐다. 원전 유치로 영덕군은 정부로부터 받은 특별지원금 380억 원을 이자를 붙여 되돌려주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2022년 11월까지 가동하기로 했던 경주의 월성 1호기는 2018년 6월에 조기 폐쇄됐다. 문 정부의 이런 조치로 경북도는 탈원전에 따른 경제적 손실액이 무려 28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신규 원전건설 계획이 유지된 것은 원전을 주요 산업으로 안고 가는 경북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정부는 조만간 원전 부지 공모 절차에 착수하게 되는데, 현재 경주, 영덕, 울진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져 신규 원전 건립에 경북이 유력하다. 특히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SMR은 원전 인프라가 우수한 경주에서 국가산단을 추진 중인 사업이어서 경북은 국내 원전산업의 허브로써 이미 탄탄한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 경북에는 원전 13기와 함께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비롯해 원자력환경관리공단, 원자력연구기관 등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원전 생태계 조성에도 매우 유리하다.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이 경북 원전산업의 새로운 도약 기회가 돼야 할 것이다.

2026-01-27

국힘, 이제 ‘自害정치’ 그만둘 때 안됐나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26일 ‘당론에 어긋나는 언행’ 등의 이유로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탈당 권고’를 결정하면서 당 내분이 재발하는 모습이다. 김 전 최고위원은 대표적인 친한계(친한동훈계) 인사로 꼽힌다. 앞서 사건을 조사한 당무감사위원회가 윤리위에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지만, 윤리위가 징계 수위를 더 높인 것이다. 탈당 권고는 당규에 따라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윤리위 의결 없이 자동 제명된다. 이후 최고위 의결을 거치면 제명이 최종 확정된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지난 14일 새벽 당원 게시판 사건의 관리 책임 등을 물어 한동훈 전 대표에게 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장동훈 대표 단식 기간 주춤했던 친한계에 대한 ‘찍어내기’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탈당 권고는 한 전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예고편’이라는 해석이다. 장 대표는 곧 당무에 복귀하고 29일에는 최고위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는 ‘한 전 대표 제명’이 의결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장 대표 단식이 계기가 돼 “이제 논란을 끝내야 한다”며 제명 쪽으로 기류가 확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에는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징계 철회를 요구하자,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 “한동훈에게 시급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치료다. 제명당하면 오은영 선생님부터 찾아가길 권한다”고 조롱했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한 전 대표 제명 문제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처럼 당내 갈등이 확산될 경우 지지층 분열은 불 보듯 뻔하다. 최근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에 합당을 제안하면서 지방권력 장악을 준비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또다시 내홍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최근 20%대 바닥을 헤매는 당 지지율을 생각하면, 이제 ‘자해(自害)정치’를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2026-01-27

6·3 지방선거 최대변수된 ‘TK 행정통합’

대구·경북(TK) 행정통합이 6·3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면서 시장·도지사 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주자들은 행정통합이 실현될 경우에 대비해 출마를 준비하고 선거전략도 짜야 해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통합단체장 선거는 정치적 무게감이 현재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공약이나 자금조달, 캠프 구성 등에서 완전히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현재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출마를 서두르고 있는 예비주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TK 행정통합에 대한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행정통합에 대해 찬성하는 예비주자들이 다수이긴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찬성론자들은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TK가 영원히 낙오된다”는 입장인 반면, 신중론자들은 “공론화 절차와 공감대 형성 없이 행정통합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행정통합에 찬성하는 대구시장 예비 주자들은 대체로 인지도가 높은 현역의원들이다. 이미 시장 출마를 공식화 한 주호영(수성구갑)·추경호(달성군) 의원은 “행정통합이 빠를수록 좋다, 이번에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는 윤재옥(달서구을) 의원도 “우리가 손 놓고 있다가는 ‘죽 쒀서 남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며 행정통합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주자로 꼽히는 홍의락 전 의원은 “TK행정통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며 찬성했다. 반면 최은석(동구군위갑) 의원은 “행정통합은 돈(인센티브)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며 반대했고, 홍석준 전 의원도 “행정통합은 사실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경북도지사 여야 예비주자들의 입장도 첨예하게 엇갈린다. 그동안 TK 행정통합을 주도하며 3선에 도전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지금이 우리가 원하던 행정통합을 실현할 골든타임”이라고 했고, 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며 도지사 출마설이 나오는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도 “광역 단위 행정통합은 국토 균형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다. 환영한다”고 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이강덕 포항시장은 행정통합에 대해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행정통합은 지방선거용 이벤트”라며 평가절하했고 최 전 부총리는 “도민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절차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주민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진행되는 통합 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지방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행정통합에 대한 쟁점이 예비주자들의 주요 토론의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그리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당연한 현상으로 봐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호남이나 충청, PK 지역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다만, 유권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통합특별시의 ‘초대 단체장’ 역량을 갖췄는지를 기준으로 지지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27

국가도 각자도생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 한국에서만 통하는 사자성어다. 그 출처는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나온다.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왜적들의 약탈과 횡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선조는 백성들에게 각자 살길을 찾아나서라고 권하는 대목에서 이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니 백성들이 알아서 살길을 찾아가라는 뜻이다.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동체 속의 각자가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통 각자도생이라 부른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발 안보 불확실성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미국의 방위망을 믿고 있던 유럽도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독일주둔 미군감축을 공식화하고,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을 압박한다. 러시아에 대한 위협은 유럽에 맡기고 그들은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밝힌 2026년 국가방위전략에 북한 억지의 1차적 책임은 한국이 지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 지원에 그친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다. 한미방어 구조를 미국 주도에서 한국 주도 미국 지원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한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높은 국방비, 견고한 방위산업, 의무복무를 들었고 이것만으로 한국은 북한 억제의 1차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바이든 정부가 안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했던 국방보고서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이 세계 수호자임을 자처하던 시대가 물러가고 있다. 미국은 미국 수호자일 뿐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우리가 갈 길도 각자도생이다. 자강만이 국가를 지켜줄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27

멈춰 선 갈채

겨울의 끝자락은 언제나 시리고도 투명하다. 작년 12월,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 아버님은 당신이 평생을 지탱해온 견고한 육신을 잠시 내려놓았다. 평생을 공직이라는 좁고도 곧은 길 위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어오신 분이다. 남들이 빠른 길, 쉬운 길을 택해 앞서나갈 때도 아버님은 정직이라는 무거운 보따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당신의 진급은 늘 동료들보다 한 뼘씩 늦었고 그만큼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노을은 남들보다 조금 더 깊고 고즈넉했다. 아버님은 한 번도 그 ‘늦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인 남편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한 단계씩 위로 솟구칠 때마다 당신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아들의 승진은 아버님에게 단순한 직급의 상승이 아니었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 정직한 삶의 방식이 아들의 생(生)을 통해 비로소 만개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증명이었으리라. 아버님에게 아들은 당신의 인생이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마지막 마침표이자 가장 화려한 수식어였다. 새해 첫 아침, 남편의 손에는 잉크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새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그토록 기다리셨을 아들의 성취가 오롯이 박힌 작은 종이 한 장,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 순간 앞에 깊고 어두운 강을 하나 놓아버렸다. 뇌졸중이라는 불청객은 아버님의 의식 속에 깃든 기억의 등불을 하나둘 꺼뜨렸고 이제 그 강 건너편에서 아버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요양병원의 창백한 조명 아래, 남편은 아버님의 초점 없는 시선 앞에 그 명함을 내밀었다. “아버지 저 진급했어요. 명함 새로 나왔어요.”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차가운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명함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받아들고 몇 번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셨을 분이다. ‘장하다 내 아들’그 인자한 웃음과 사투리 섞인 칭찬 대신 돌아오는 건 규칙적이고도 서늘한 기계의 숨소리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이 견뎌온 지루하고 올곧은 시간은 아들을 위한 밑거름이었다. 당신의 진급이 늦어졌던 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영혼이 지급해야 했던 귀한 세금이었음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는다. 아들은 그 비옥한 정직의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마침내 오늘날의 푸른 숲을 이루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쳐 기다려 주지만, 정작 자식이 부모의 갈채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늘 ‘조금만 더 있으면, 이번 일만 마무리 되면’이라는 유예의 언어로 효도를 미룬다. 그러나 생의 시계추는 자식의 성공을 기다려 줄 만큼 너그럽지 않았다. 아버님의 정직함이 아들의 명함 속에서 깊이 뿌리 내려 결실을 보았을 때 정작 그 뿌리의 주인은 자신의 꽃향기를 맡지 못하는 적막의 세계로 유배를 떠나버렸다. 이 지독한 비대칭성이 우리가 생에서 마주하는 형벌이 아닐까. 인생은 어쩌면 어긋나는 타이밍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모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즈음 부모는 이미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노을 지는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아들의 명함에 박힌 글자를 읽어줄 한 사람의 시선은 멈춰버렸다. 아버님의 침묵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남겨진 갯벌처럼 황량하고도 깊은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다. 아버님의 육신은 비록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깊은 심연(深淵) 어딘가에 남아 있는 영혼의 감각은 아들의 성취를 느끼고 계실 것이라고. 아들의 명함에 묻어있는 긍지가 당신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다려 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자식은 늘 죄인이 된다. 하지만 아버님이 보여주신 강직한 삶의 궤적은 이제 아들의 삶 속에서, 또 손주들의 삶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부자(父子)가 맞잡은 손등 위에 명함을 올려두고 바친 아들의 눈물 한 방울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버님의 따스한 시선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처럼 보였다. 비록 육신의 대화는 멈췄지만 아버님이 물려주신 따뜻한 영혼의 언어는 아들의 생애를 통해 메아리칠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6-01-27

'내 일’이 있는 포항, ‘내일’이 있는 포항으로

포항은 지금 도시의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 산업은 흔들리고, 청년은 떠나고, 원도심은 비어간다. 골목의 불이 하나둘 꺼질 때, 시민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 도시가 지금 방향을 잃고 있구나”. 포항은 분명 위대한 산업도시였지만, 그 위대함이 시민의 삶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제 포항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내 일’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내일’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지금 포항의 문제는 단순한 불황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철강은 여전히 포항의 중심이지만, 세계 시장은 관세와 공급과잉, 탄소 규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산업을 지탱하는 비용 구조는 악화하고, 협력업체와 하도급 노동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충격이 먼저 전달된다. 한편, 청년들은 “포항에서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일자리와 주거, 문화, 교육, 의료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야 하는데, 이 연결이 약하다. 이대로는 산업도, 도시도, 삶도 함께 지치게 된다. 그래서 포항의 해법은 분명하다. 산업을 살리되, 시민이 체감하는 방식으로 살려야 한다. 기업만 성장하는 포항이 아니라, 시민의 월급과 가게의 매출, 아이들의 미래와 부모의 안심으로 이어지는 포항이어야 한다. ‘내 일’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 그 첫 단추는 산업의 재설계다. 철강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철강을 지키면서, 수소와 이차전지, AI, 신소재, 바이오, 해양에너지 같은 신산업을 철강과 연결해 포항형 산업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만한 조건은 결국 원가와 전력, 물류, 인력, 규제의 문제다. 포항은 이 기반을 다시 다져야 한다. 산업이 숨을 쉬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야 인구가 붙는다. ‘내일’은 산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이 견딜 만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가고, 늦은 밤에도 불안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청년이 즐길 문화와 도전할 공간이 있어야 하고, 어르신이 존중받는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포항의 원도심은 개발이 아니라 사람이 돌아오는 재생으로 되살려야 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야 지역경제의 혈관이 다시 뛴다.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불편이 줄어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포항은 지금 ‘다시 설’ 시기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도시는 결국 실행력에서 갈린다. 말로 위로하는 시대는 지났다. 시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포항은 바뀔 수 있다. 산업의 힘과 바다의 가능성, 사람의 성실함이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민의 삶을 중심에 두고, 산업과 생활을 하나로 묶어내는 시정의 방향이다. “‘내 일’ 있는 포항, ‘내일’이 있는 포항”. 이 말은 구호가 아니라 포항이 다시 살아나는 조건이다. 일자리 만들고, 삶의 질 높이고, 도시의 연결을 복원하는 일. 포항의 내일을 시민과 함께 다시 세우겠다. /박용선 경북도의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27

피의 평원과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태동 ①서유럽 문화권으로 흡수

11세기 말, 소아시아 셀주크투르크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반대로 유럽을 호령했던 비잔티움제국은 국제적으로 나약한 존재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다. 그러나 천 년 제국은 쉬이 망하지 않는 법, 비잔티움제국 알렉시우스 1세가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교황은 기독교권 방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군 원정을 추진한다. 1095년 교황은 예루살렘으로 출병을 위해 기독교 사상 최초의 십자군을 꾸리고자 크로아티아에 약속대로 참전할 것을 종용했다.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의 반 즈보니미르는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맹세하면서 로마교황청에 의해 왕좌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1098년 크로아티아 귀족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일어나 즈보니미르를 암살해버린다. 경제적 이득과는 하등에 상관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할 영주들이 아니었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함께 재정파탄을 우려했다. 이후 국왕의 빈자리는 무주공산처럼 보였다. 욕망은 욕망을 욕망하는 법, 왕위 계승문제로 바람 잘 날 없던 크로아티아는 귀족들 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면서 졸지에 헝가리는 손도 대지 않고 크로아티아를 흡수해버린다. 불가리아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아내면서 비잔틴제국과 연합전선을 펼치며 이어가던 크로아티아왕국은 종말에 가까운 운명을 맞았다. 그 까닭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암살당한 즈보니미르의 왕비 엘레나 리예파는 헝가리 출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지위가 위험에 처하자 해결책을 내놓았다. 오빠 라디슬라브를 크로아티아 왕으로 추대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헝가리로 편입된 것이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에게는 불운의 시작이었다. 오스트리아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될 때까지 제국 치하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와 자치권을 보장받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가 차지할 수 없다면 너도 차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헝가리 왕과 크로아티아 왕을 겸업하던 라디슬라브가 죽자 1102년 그의 동생인 칼만이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때부터 헝가리 아르파드 왕조는 온전하게 크로아티아 왕권을 손아귀에 거머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가 헝가리에 복속된 사건은 미래의 시각에서 보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크로아티아가 이때부터 온전히 동유럽의 문명권에서 서유럽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만트루크제국 아래 놓여 정교만 고집한 채 어둠에 세월을 보내야 했던 세르비아와는 딴판으로 전개가 된 셈이다. 이때부터 세르비아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아가던 크로아티아는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이질감이 형성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민족성과 가치관의 차이로 변화된다. 이는 서유럽 전통이 쌓여가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마찰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자치권을 넘어 왕권을 넘보았으나, 오스만제국의 두 차례 빈 공격의 실패 후 오스트리아제국의 힘이 강성해지면서 꿈으로 끝났다. 그러나 탐욕은 멈추지 않았다. 힘을 축적한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경제력을 이용해 땅을 사들이며 경쟁적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오스만트루크제국의 침략이라는 혼란한 틈을 타 재산을 끌어 모으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무주공산에 깃발 꽂기, 위기의 땅 주인을 겁박해 헐값에 사들이기, 영토 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토지세로 강제로 거둬들이기 등 약탈에 가까운 방법으로 힘을 축적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가격경쟁과 풍부한 물량으로 골목상권까지 노리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이들의 롤 모델은 자치독립국이면서도 합스부르크제국의 우산 아래서 살아가는 헝가리를 본받고 싶어 했다. 한편 번영의 기세에 동승한 수도사들에 의해 라틴어로 된 성경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읽혀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책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13세기 중반이 되자, 헝가리는 몽골의 침략에 노출되면서 기세가 꺾였다. 더구나 헝가리의 보헤미아 공략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헝가리 땅은 초라하게 줄어들었고, 승리한 보헤미아는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루돌프에 의해 크로아티아와 체코, 슬로바키아는 물론 헝가리 땅 일부까지 그들의 발아래 들게 된다. 이때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합스부르크를 지원하면서 최초로 제국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는다. 이 일로 인해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인연은 무려 19세기 중반까지 싫던 좋던 줄기차게 이어지게 된다.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기세를 몰아 초라해진 헝가리 왕 찰스 1세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경제적 독립과 함께 사법권에 이어 독자적으로 권리를 행사했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역시 이때를 기회로 주요 무역도시로 거듭났다. 아드리아해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공국 역시 경제는 물론 문화적 발전에 전성기를 구가한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그늘에 들면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1-27

TK행정통합 운명, 이번 주에 결정된다

이번주에 대구·경북(TK) 행정통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의회는 오는 28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경북도가 곧 제출할 ‘경북도와 대구시 통합에 대한 의견청취의 건’을 심사한다. 이 안건에 대한 도의회의 찬반 여부에 따라 TK행정통합이 속도를 낼 수도, 멈출 수도 있다. 행정통합은 반드시 시·도의회 찬반여부를 물어야 하며, 대구시의회는 이미 동의를 한 상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현재 실무 협의회를 통해 도의회에 제출할 행정통합 특별법 초안을 다듬고 있다. 특별법안에는 도의회가 민감하게 여기는 통합청사 문제와 경북 북부권 균형발전에 대한 국가지원 내용 등이 명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경북도는 26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경북 국회의원들과 행정통합 관련 간담회를 가졌다. 특별법 제정 후속 절차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도 경북도는 행정통합의 당위성과 방향, 북부권 균형발전, 통합청사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도의회는 본회의에 앞서, 27일 의원 총회를 열고 ‘행정통합 의견청취의 건’ 처리에 대한 사전 조율작업을 할 예정이다. 현재 북부권 도의원들 사이에서는 ‘통합특별시’에 대한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재정지원, 2차 공공기관 이전 등)가 대구권과 경북 남부권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군과 예천군 의회의 경우 지난 24일 경북도청을 통합시 행정의 중심지로 명확히 하고, 재정지원 인센티브와 공공기관 이전도 북부권에 우선 배분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TK행정통합에 대한 경북도의회의 동의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의 경우, 시군의회까지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뽑자는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번에 광주·전남만 행정통합에 성공하게 되면 모든 정부 인센티브를 독식할 가능성이 있다. 대구·경북도 서둘러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행정통합이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2026-01-26

세계시장서도 경쟁력 입증된 대구 치과산업

대구지역 치과의료기기 기업들이 2026 두바이 치과기자재 전시회에서 높은 성과를 올리며 대구 치과산업의 명성을 날렸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된 두바이 치과기자재전시회는 중동 최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치과의료기기전문전시회다. 올해 30회 전시회며 60여 개 참가국에서 4316개 기업이 참가했다. 지역기업들로 구성된 대구공동관 회원들은 전시기간 동안 모두 1422만 달러 수출 상담과 462만 달러(약 67억원)의 현지계약을 달성했다. 특히 (주)하이니스는 임플란트 및 디지털 보철 시스템 기술을 앞세워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 등과 175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했다. 또 코리아덴탈솔루션은 발치된 치아를 활용해 골이식재를 자동으로 제조하는 의료기기를 선보이며 중동지역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다. 예스바이오테크는 임플란트 관련 제품 중심으로 이란, 이집트, 인도 바이어들과 총 98만 달러 계약을 추진 중이라 한다. 특히 대구기업들이 보유한 임플란트, 치과용 레이저, 디지털 구강스캐너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중동 및 유럽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면서 세계시장에서의 확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를 강력히 희망하는 가운데 지역기업의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은 치의학연구원 대구 유치의 당위성을 입증한 결과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구는 비수도권 최대 치과산업 도시다. 치과기업 수에서 전국 3위, 생산액과 부과가치액 2위다. 국내 10대 치과기업 가운데 메가젠임프란트 등 굵직한 업체가 이곳에 포진해 있다. 연구 분야 또한 탄탄하다. 경북대 치과대학을 비롯해 대학의 치위생, 치기공 분야 재학생만 수천 명에 이른다. 연구와 산업이 융합할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두바이전시회에서 나타난 성과 역시 대구지역의 이같은 치의학 분야의 탄탄한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시대다. 대구의 치의학생태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유치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6-01-2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며칠 전에는 날이 흐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저녁에 약속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다음 날은 또 강의가 있어 낮에는 어떻게든 그 준비도 해야 했다. 어떻게 낮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금방 저녁 시간이었다. 불광동에서 용산까지 ‘카카오티’를 이용하려니 택시비가 부담스러웠다. 요즘 물가 같아서는 바깥 바람 쏘이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전철은 두 번 세 번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하고, 근 삼십 분은 족히 늦을 것 같다. 하는 수없이 택시로 서둘러 가니, 도합 넷이어야 할 자리에 한 사람이 빈다. 참, 한 사람은 갑자기 눈이 안 보여 나오지 못한다고 했었다. 자가면역 질병이라는데, 심하면 실명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던가. 모임을 주관한 작가의 나오지 못한 사람 걱정이 심하다 싶을 정도다. 나는 이 작가가 생각보다도 정이 더 깊은데 ‘놀란다’. 알고 보니, 오늘의 자리는 이 작가가 내 옆의 평론가 후배에게 어느 날 술을 먹고 전화를 걸어 추천서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작가는 평론가를 알고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고는 만나서 이야기해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후배 평론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맞아들여 서류에 도장까지 찍어 보냈고, 다음날 술이 깨서 두고두고 미안했던 작가는 벼르고 벼르던 끝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래서 상은 받았고?” “그랬으면 좋았죠.” 우리는 모두 추천서를 들고 간 날의 진풍경을 떠올리며 가가대소를 금하지 못했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우리들의 대화는 이리저리 돌다 결국 시국 얘기로 흘렀다. 나는 처음에는 되도록 말을 아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본심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대실수’를 범했다. 후배들인 평론가와 작가는 나를 알 만큼 알고 교류도 잦은 까닭에 생각이 다른 것은 다른 대로, 가급적 문제를 예각화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작가가 예약한 식당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맛집으로 소문나 있었다. 우리들의 ‘논쟁’은 썩 좋은 한국식 생선회 요리 메뉴들 때문에 자주 끊겼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생각은 본도(本道)에서 벗어나 옛날 우리들의 추억들로 흘렀다. 후배 평론가와 나 사이에는, 그의 지도 교수가 내 아주 존경하는 대선배이기도 한, 깊은 인연이 있었다. 우리는 그분이 일찍 돌아가시매 같이 한없이 슬퍼했던 슬픔의 ‘동지’였다. 나는 또 이 후배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이 ‘사서’ 하루 공부 끝나는 한밤에 자주 만나 새벽까지 함께 술을 퍼마신 사건들이 있었다. 우리는 셋이서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평론가 후배의 갑작스러운 병이 제발 어서 낫기를 기원했다. 분위기가 좋아져 나는 평소에 마시지 않는 맥주까지 마시자고 청해 차수를 변경하기도 했다. 자리가 파하고 바깥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밤이 늦고 힘들어 또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했다. 사람은 역시 무슨 이념이나 정견 따위로 같이 가는 게 아니요, 서로 정들고, 위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가는 것이라고, 몸은 지쳤건만 마음은 더없이 따뜻해져 있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1-26

진실과 허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

진실은 복잡하지만, 허구는 간단하다. 진실은 불편하지만, 허구는 편안하다. 진실은 발견하기 어렵지만, 허구는 만들기 쉽다. 진실은 복잡하다. 단일한 원인이나 선명한 결론을 주지도 않는다. 진실 속에는 여러 조건과 맥락이 얽혀있고, 발견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마주하게 되더라도 종종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 무엇보다 진실은 불편하다. 책임을 요구하고, 믿어온 것들을 수정하라고 명령하며, 때로는 우리가 속해 있던 집단의 안락함을 파괴하기도 한다. 반면, 허구는 단순하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선과 악이 갈라져 있으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즉시 판별된다. 허구는 고통을 요구하지 않으며, 불편한 자기 점검 대신, 감정적 안정을 제공한다. 인간이 진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반복적으로 허구를 선택해 온 이유이다. 진실과 허구는 ‘정보’라는 네트워크에서 작동한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넥서스’에서, 진실과 허구의 양면적 속성에 기반하여, 정보의 목표가 오직 ‘진실 발견’에 있다는 순진한 정보관을 비판한다. 정보네트워크 속에는 진실 발견 이외에 ‘질서유지’라는 매우 중요한 속성이 있음을 통찰한다. 정보의 주된 임무가 진실 발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진실 발견에서 ‘지혜와 힘’이 나온다고 믿지만, 이건 매우 순진하다는 것이다. 진실 발견과 더불어 질서유지라는 정보의 작용을 문제 삼는 것이다. 질서유지에서도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정보의 두 가지 기능 중 진실 발견 보다 질서유지의 작용이 더 큰 작용을 하는 경우, 이때 작동하는 정보가 진실에 기반하는지 허위에 기반하는지가 문제이다. 서글프게도(?) 역사적으로 많은 질서유지 기능의 상당 부분은 허구에 기반해 왔다. 정보의 숲에서 진실 발견과 질서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특히 권력자들은) ‘질서유지를 위하여’ 정보를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 이외에, 허구, 환상, 선전, 때로는 새빨간 거짓말도 이용한다. 정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현실을 조작하기도 한다. 진실은 조작하기 어렵지만, 허구는 조작이 쉽다. 진실은 모순된 데이터들을 함께 포함하고, 단일한 감정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즉각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에, 허구는 몇 개의 감정적 연결만으로 강력한 서사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생산된 서사는 빠르게 확산한다. 오늘날 인간들은 더 이상 개별 사실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연결된 정보 묶음, 즉 서사를 소비한다. 알고리즘과 플랫폼은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한다. 복잡한 진실은 클릭을 유도하지 못하고, 불편한 진실은 공유를 방해한다. 반면, 단순한 허구는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나 위안을 제공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넥서스’는 이러한 반응을 학습하고 더 유사한 허구를 추천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허구의 연결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허구가 강력해지는 이유는, 인간이 거짓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허구를 따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통 회피다. 진실은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만, 허구는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 문제는 언제나 ‘그 들’ 때문이고, 나는 피해자이거나 정의 편에 서 있다. 진실보다는 ‘허구의 질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 질서가 진실하든 말든···. /공봉학 변호사

2026-01-26

나라꽃 열매

새해 1월 중순. 일하러 간 중학교 화단에서 무궁화 나무 열예닐곱 그루를 만났다. 자른 밑둥치에서 여러 새 가지가 일제히 하늘로 돋아오른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손들이 모인 곳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새싹 나고, 새잎 피우고, 새 무궁화 꽃을 피워내 학생들에게 우리나라를 묵언 수행자처럼 드러냈을 기도 손들이다. 학생들은 아마도 예전의 나처럼 무궁화 꽃을 그냥 나라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앙상한 가지들을 보며 지난해 무성한 잎 사이로 나라꽃이 활짝 피었을 장면을 떠올린다. 한데, 하늘 향해 벌어진 무궁화 열매가 난생처음 눈에 들어왔다. 열매는 속을 열고 씨앗 내보낼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예전에도 지나치며 많이 만났을 텐데도, 열매를 못 보고 살아온 나다. 나라꽃 열매 앞 눈뜬장님, 마음으로 못 보는 나였다. 나라꽃인데 싹과 잎, 가지와 열매도 제대로 안 보고 먼발치에서 꽃만 대충 보는 걸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징집되어 복무했던 군대에서, 생의 황금기 3년을 나라를 위해 고스란히 바쳐 나라 지킴이 교육 훈련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런 내가, 나라꽃에 관심 없이 수십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한심하다. 웬 연유일까. 나라꽃을 심고 가꾸며 연구, 개발하는 일은 국가나 지자체, 학교, 식물원에서나 하는 일이라 지레짐작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치부했던 걸까. 혹, 나라꽃을 홀대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하기야, 포항시에서 만든 철길숲에서도 나라꽃을 못 보았다. 전에 사설 식물원에 갔을 때, 무궁화만 여러 종 심어 가꾸는 코너가 있어 감탄했었다. 수줍은 여인 같은 흔한 무궁화와는 달리,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품종도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나라꽃을 가로수, 공원수, 화단수 등으로 심어 가꾸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 전, 인천 출장 때 만나 행복했던 무궁화 가로수 거리가 생각난다. 국립산림과학원 무궁화연구팀의 연구자료(산림청연구자료 제487호)를 검색했다. 그 서문에,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 시키고 우리 생활 속에 보다 사랑받는 관상수로서 거듭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겨울에 일하며 만났던 S 중학교 화단의 나라꽃 나무들이 허전한 나를 위로한다. 벌어진 열매 안에서 갓털 단 까만 나라꽃 씨앗도 처음 만났다. 여남은 개를 받아 봉투에 넣고 날짜와 받은 곳을 적었다. 훗날 심기 위해서. 나라꽃 무궁화는 나 말고 누군가 심고 가꾸겠지 하는 심보는 나 하나면 좋겠다. 이런 맘보가 나라에 대한 무관심 같아서 슬프다. 지난날, 함께 잘살아보자고 똘똘 뭉쳐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대한민국 공동체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주무르는 것만 같다. 진실을 말해도 들으려는 이가 적고, 가짜가 판쳐도 모르쇠만 보인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정말 살아있는지 살피는 국민도 적어 보인다. 내가 나라꽃을 피상적으로 대했듯이···. 이제, 우리의 길은 하나다. 국민이 마음 모아 나서서 다시 나라꽃 무궁화를 심어 가꾸고, 나라를 살피며 살아내는 길 말이다. /강길수 수필가

2026-01-26

과거에 발목 잡힌 이혜훈

짧지 않은 시간 국민들의 분노와 한숨을 불렀던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결국 철회됐다. 25일 홍익표 대통령정무수석은 브리핑을 열고 “보수정당에서 세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이혜훈 후보자의 낙마 소식을 알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향후 열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국민 통합과 전문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이 후보자를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했다. 이를 놓고 즉각적인 반대와 찬성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호의적인 목소리는 힘을 잃었고, 비판 의견만이 높아졌다. 그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등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서울 서초구 아파트 부정청약 논란이 뒤를 이었다. 영종도에서 땅 투기를 했다는 이야기와 아들의 대학 입학에 특혜가 있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등장하는 악재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 후보자가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이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언급했고, 이어 열린 청문회에서도 이혜훈 후보자는 그간 제기된 의혹과 논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청문회에선 보기 드물게 여당과 야당 의원 모두가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후보자의 지명이 철회된 후 야당은 인사 검증 시스템을 쇄신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람의 과거는 그냥 흘러간 시간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때론 과오가 미래를 막을 수도 있다. 이번 ‘이혜훈 장관 후보 지명 논란’이 주는 교훈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26

잠깐이라는 시간을 오려

잠깐이라는 시간을 오려 하루의 시간을 오려 하늘 한 번 보는 일 당신이 재촉하는 겨울 문턱을 넘다가 잠깐은 어디까진가 멈추고 선 날이다 기차를 기다릴 때 밥물이 끓고 있을 때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라진 간이역처럼 먼 데서 오는 것들* 한눈팔기 좋아하고 제멋대로 꿈을 꾼다 돌아와 생각하면 놓치는 일이 태반인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으로 가 보는 일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는 두고 간다 누군가 다녀가는 잠깐이라는 산책에선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 그마저도 소름이다. ―김진숙, ‘잠깐이라는 산책’ 전문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 , 걷는사람) 인공지능이 산업구조를 바꾸는 시대를 살고 있다. 김진숙의 이 시는 현대인들이 놓치기 쉬운 마음의 궤적을 섬세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잠깐”이라는 시어로 휴지를 걸며 시간이라는 관념을 시각적인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고 온 모니터 속 눈동자”는 숫자를 쫓고 성과를 계산하는 데 능하다. 화자는 그 눈동자를 두고 잠시 떠나 볼 것을 권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밥물 끓는 소리”, “지우지 못한 번호를 망설이는 마음” 등 사실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은 효율적이고 빠른 이동이 아니라, 그 사이의 머무름과 그리움에 있지 않을까. 아즈마 히로키에 의하면 “사회는 계속해서 규칙이 바뀌어 가는 게임이지만, 이 역동성을 지탱하는 것은 정정하는 힘이며, 인공지능은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간의 ‘정정하는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들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순간, 즉 무언가 기다리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떨림이나 결과가 나오기 직전의 긴장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인공지능의 “빠른 채근”과 달리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은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신체 감각의 영역이다. 현대사회는 이 “뜸을 들이는” 시간을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간과하기 쉽지만, 시인은 이것을 “소름” 돋는 힘의 순간, 즉 정정하는 힘으로 인식한다. 화자를 따라 알고리즘 밖의 “한눈팔기”를 통해 정해진 궤도인 알고리즘을 벗어나 길을 잃어보는 것은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기억 속으로 이동하게 한다. 우리가 좋아할 법한 것만 골라주며 시야를 좁게 가둔 생산성이라는 비본질에 매몰되지 않는 것, ‘나’라는 존재의 내면 감정들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본질을 찾는 과정일 테니. 이때 바쁜 일상 속 “시간을 오려”낸다는 것은 정작 소중한 것들은 시선의 옆자리나 멈춰 선 찰나에 있다는 각성을 불러온다. “기차를 기다리”거나 “밥물이 끓는 시간”은 무언가를 위한 대기의 시간이니 말이다. 화자는 이 효율적이지 않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하늘을 보고, 한눈을 파는 사이 꿈을 꾼다. 이는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틈새가 보여주는 출구가 된다.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의 막막함과 “사라진 간이역”처럼 지나가 버렸거나 사라진 것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이정표처럼 남아 있는 기억들이 그 “잠깐의 산책” 동안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 산책의 끝에서, 혹은 밥물이 다 끓은 뒤 불을 끄고 기다리는 그 “뜸”의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기 직전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생길 것만 같지 않은가.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 /이희정 시인

2026-01-26

혼탁해지는 지방선거, 이대로 괜찮은가?

작은 불씨가 결국 큰 산을 태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왜곡과 오염이 방치될 경우,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키워 공동체 전체에 큰 피해를 남긴다. 이 비유는 지금의 지방선거 국면을 돌아보게 한다. 확인되지 않은 말 한마디, 검증되지 않은 주장 하나가 작은 불씨가 되어 여론을 달구고, 그 열기가 선거 전체를 혼탁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사회 전반에서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거워지고 있다. 정책과 비전, 지역의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할 지방선거가 본래의 취지와 달리 자극적인 말과 확인되지 않은 주장, 감정적인 공방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시민의 선택을 통해 지역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기대보다는 혼란과 피로감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또한 점차 흔들리고 있다. ◇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시중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주장들이 떠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 확인이나 절차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빠르게 확산한다는 점이다. 일부 사실을 과장하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기정사실처럼 유포하는 때도 적지 않다. 이러한 말과 정보는 후보자에 대한 이미지를 먼저 규정하고, 시민의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선거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관계가 확인될 즈음에는 이미 선거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시간의 공백 속에서 왜곡된 정보와 자극적인 주장은 여과 없이 퍼지고, 이미 달아오른 여론은 뒤늦은 해명만으로는 쉽게 식지 않는다. 오염된 작은 불씨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수록, 그 불은 점점 커져 선거판 전체를 태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보 전달 방식 또한 중요하다. 민주주의 선거는 사실 위에서 작동해야 하며, 확인되지 않은 말과 정보가 앞서는 순간 선거의 공정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 왜곡된 여론조사는 선거를 혼탁하게 만든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최근 일부 여론조사를 보면 그 취지와 다르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논란의 여지가 큰 내용을 질문에 포함해 응답자의 판단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민심을 흔드는 장치로 작동한다면, 이는 선거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 지방선거는 지역의 백년대계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지방선거는 단순히 한 사람을 뽑는 절차가 아니다. 산업과 일자리, 도시의 성장 방향, 복지와 안전, 교육과 환경 등 시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선거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 공방으로 흐른다면, 정작 논의되어야 할 지역 현안과 미래 과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선거는 상대를 공격하는 과정이 아니라 시민 앞에서 평가받는 민주적 절차다. 후보자들은 소문이나 논쟁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한 정책과 비전으로 정정당당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선거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지방선거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원식 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2026-01-25

코스피 5000 돌파···지방경제는 언제 살리나

코스피 지수가 지난주 5000선을 돌파했다. 코스피 지수가 적용된 1980년 이후 46년만이다. 국내 증시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시달리며 2000선 후반 박스권 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불과 반년 만에 꿈의 지수 5000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한해 국내 증시는 75% 이상 오르며 전 세계 주요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상승세가 이어져 6000선 돌파도 전망한다.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오른 것은 정부의 주주 친화정책과 풍부한 유동성 등이 한몫했고, 특히 인공지능 수요로 촉발한 경기회복의 영향이 컸다. 코스피 상승률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개 종목과 현대자동차 등 반도체와 인공지능 관련 종목이 이끌었다. 반면에 반도체 등을 제외한 상당수 국내기업의 실적은 지수상승과는 거리감이 있다.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등 중국을 압도했던 주력 업종들이 역대급 위기에 몰려 있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0.97%에 그쳤다. 지난 4.4분기는 전분기 대비 0.3%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경제 전반에 걸친 고른 성장이 아닌 특정 분야 성장에 따른 효과로 주식시장이 활황을 이룬다면 지금과 같은 주식시장의 활황은 지속되기 어렵다. 증시호황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거품이 빠지기 때문이다. 지금 대구와 경북 등 지방의 경제는 주식시장 활황과는 거리가 먼 경기를 체감하고 있다. 철강도시 포항은 최악의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다. 집값이 크게 오르는 서울과는 다르게 지역은 오랜 부동산경기 침체로 집값은 폭락상태다. 내수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문을 닫는 자영업자는 줄지 않으며 서민의 살림살이도 높은 물가고에 허덕인다. 지방에 사는 서민들은 주가 5000 돌파로 떠들썩하다 해도 남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더 걱정은 이런 양극화 현상이 올해는 더 심해진다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성장의 양극화를 가져올 K자형 성장을 우려했다. 주가 상승을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지방경제를 살리는 정부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2026-01-25

장동혁 단식효과, ‘보수 결집’으로 나타날까

장동혁 대표의 단식 승부수가 국민의힘 지방선거 판세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국힘은 이번 단식 목표인 ‘쌍특검(통일교·민주당 공천 뇌물 특검)’을 관철하진 못했지만, 일정 부분 범보수 결집 성과는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이후 10년 만에 국회 본청을 찾아 단식 중단을 설득했고, 지도부의 강경노선을 비판해온 당내 초·재선 의원들도 단식에 힘을 합쳤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 당시 장 대표와 경쟁했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중도 성향의 유승민 전 의원,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단식현장을 찾았다. 당 원로들과 지자체 단체장의 발길도 이어졌다. 다만 이러한 보수결집이 외연 확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단식현장을 찾은 정치인 대부분이 지방선거 공천과 얽혀있고, 국힘 내분의 주원인인 계파 갈등도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가 예정대로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강행하게 되면 국힘은 또다시 홍역을 치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에는 한 전 대표 지지자 수만 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징계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주(20∼22일)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힘 윤리위의 한 전 대표 제명 결정에 대한 찬·반 민심은 팽팽했다. 국힘 지지층과 보수층에서는 제명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전체 응답자의 찬·반 비율은 1% 오차범위 내에서 엇갈렸다. 주목할 것은 국힘의 외연확장 대상인 중도층에서 부적절하다는 응답(37%)이 적절하다는 응답(26%)을 크게 웃돌았다는 점이다. 이는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강행하게 되면 국힘이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조사 결과다. 이러한 ‘경고등’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를 비롯한 국힘 지도부가 지금처럼 강성 지지층에만 기대는 행보를 계속할 경우 지방선거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8일간의 단식효과가 ‘보수진영 통합’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장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다.

2026-01-25

안과 밖

긴 한파(寒波)가 이어지고 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더 매섭게 만드는 것은 칼바람이다. 바람에 칼날이 달렸다는 뜻을 가진 복합어 ‘칼바람’은 요즘 같은 추위를 잘 드러내는 어휘다. 지난 1월 20일이 대한(大寒)이었고, 지금 계속되는 한파는 대한의 끝자락이라 할 것이다. 하되, 2월 4일이면 봄을 알리는 입춘이다. 어쩌랴, 시작과 끝은 만나기 마련인 것을! 복층 베란다에서 창밖을 보면 여러 감회가 오간다. 서북풍이 휘휘, 소리 내며 지나가면 감나무 앙상한 줄기가 세찬 바람에 흔들린다. ‘세한도’의 소나무는 푸르름을 유지하지만, 전신을 떨며 고적(孤寂)하게 서 있다. 지나치게 자라나 이웃집 지붕을 관통한 장미는 전지(剪枝)된 채 갈색 이파리만 우줄 우줄 흔들린다. 가로등 전선도 어쩔 줄 모르고 바람에 자못 위태롭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면 청도와 창녕을 잇는 20번 국도에 트럭과 승용차 무리가 가도(街道)를 질주한다. 스치듯 오가는 차량 행렬 기사들은 언제 다시 재회할지 알 도리 없다. 주말 아침부터 그들을 차가운 거리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필시 그것은 생존 욕망을 채워줄 필수적인 경제활동일 터다. 삶의 기반은 오래 살아남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보존된 안쪽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면 상황이 일변(一變)한다. 찬바람이 어느새 목덜미를 휘감고 살갗을 매섭게 찔러온다. 부신 햇빛 아래 웅크린 채 사위(四圍) 돌아본다. 꽉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온 물이 밤새 얼어붙어 굵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붉은 남천 이파리들은 허수아비처럼 몸을 비틀며 바람의 기세에 잔뜩 주눅 들어 있다. 잠시 숨 고르며 생각한다. 온실 효과로 포근한 베란다 안쪽의 공간과 차가운 대기에 노출된 외부의 차이를 숙고한다.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안과 밖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폭력적인 자연에 저항하여 인간은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그들만의 영역을 건설한다. 이름하여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공격에 무방비로 방치되지 않는 문명 공동체! 하지만 계급과 종교와 국가가 생겨나면서 문명 공동체의 허울은 쉽게 벗겨져 나간다. 문자 지식과 창칼의 무력과 우월한 경제 권력을 앞세운 소수의 인간 무리가 다수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30만 년 사피엔스 역사에서 불과 1만 년 전에 형성된 계급과 지배-피지배 관계는 21세기 20년대에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맹추위 속에 누군가는 포근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혹자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한파와 맞서야 하는 엄혹한 시절. 여기서 떠오르는 장편소설의 놀라운 문장. “부자는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932)의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의 짧지만,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 나는 자유보다 평등을, 평등보다 형제애를 주장해왔다. 부자들이 내세우는 자유, 가난뱅이들이 외치는 평등이 아니라, 양자 모두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는 ‘형제애’야말로 우리의 미래 아닐까. 안과 밖의 거리가 최대한 좁혀지기를 고대하는 차가운 아침이 지나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25

정치 중립성 위협받는 월드컵

스포츠에서 정치 중립성은 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은 국제간 스포츠가 열리는 동안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스포츠 단체의 규정에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한다는 규정을 반드시 두고 있지만 스포츠 행사 운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현실적 문제 앞에선 이 규정도 무시될 때가 많다. 202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적 선수의 국제대회 참가를 제한할 것을 국제스포츠기구에 권고했다. 러시아가 올림픽 헌장의 핵심 가치인 평화, 존중, 인권을 정면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IOC는 두 국가 선수의 2024 파리올림픽 참가를 허락했다. 허락 이유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이라 했다.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같은 단체가 상반된 판단을 내린 경우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인판티노 회장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찬양 발언이 논란을 빚은 적 있다. 그는 트럼프는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피면서 FIFA가 작년에 처음 제정한 FIFA 평화상 수상자로 트럼프를 선정해 정치적 중립위반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보이면서 유럽 국가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올 6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국이 공동 개최하는 월드컵 참가를 거부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노골적 야욕의 맞대응으로 일부 유럽 국가가 제시하는 월드컵 보이콧이 얼마나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컵의 흥행에 악영향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스포츠의 정치 중립화는 영원한 숙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25

대구·경북 행정통합, 민주적 절차가 먼저다

“경북 도민의 의견 수렴 절차가 없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2024년 11월, 제319회 포항시의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필자가 밝힌 내용의 일부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정부가 지방 행정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경북도는 오는 28일 경북도의회 찬반 표결로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통합을 선택하는 광역자치단체에 대해 대규모 재정 지원과 제도적 특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북 22개 시·군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대구시와 경북도의회 표결만으로 통합을 강행하는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는 이미 여러 차례 진행돼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은 한계에 부딪혔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속도만 앞섰고, 통합 이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되지 못했다. 특히 경북 북부권과 동해안권에서는 행정과 재정, 핵심 기능이 대구로 집중돼 결국 ‘흡수 통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반복돼 왔다. 경북 22개 시·군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경북도는 이번에도 시·군 단위의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28일 도의회 찬반 표결로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경북도는 4개 권역에서 단 한 차례씩 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공론화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후 대구시장 사퇴 등의 정치적 변수로 통합 논의는 중단됐고, 충분한 숙의 과정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광역지자체 간 통합을 선택할 경우 최대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 부여, 공공기관 이전 우대, 산업 활성화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점에서, 이는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가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하자, 경북도는 다시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행정통합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제도적으로 명문화하는 일이다. 경북 22개 시·군의 운명을 도지사 한 사람의 의지와 경북도의회 표결만으로 결정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특히 경북처럼 정치 지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역일수록, 민주적 절차를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장치가 더욱 필요하다. 행정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통합 자체가 목표가 되는 순간, 지역은 다시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중대한 결정일수록 속도보다 내실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의 행정통합 구상이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 실질적인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촘촘한 제도 설계와 함께 도민과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내는 민주적 절차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25

이야기에서 삶으로

그동안 지역의 문화정책이나 행사는 잘 말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서 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보여야 할 것인가가 기획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 문화가 시민의 삶 속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가, 문화를 경험한 후 일상생활의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는 물음이다. 대부분의 경우 문화는 계속 소비되지만,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에서 시작하여 해보기, 그리고 살아내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스토리두잉(storydoing), 스토리리빙(storyliving)이라는 세 단계로 구분하여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문화가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지속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문화의 시작점이다. 지역의 역사와 장소의 기억, 사람들의 삶을 서사로 엮어 전달하는 과정이며 공연과 전시, 아카이브와 해설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공감도 형성된다. 그러나 시민은 여전히 관람자에 머물고 있으며 이야기는 전달되고는 있지만, 아직 삶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은 반복되고 연출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행사가 끝난 뒤의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고, 문화는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전환이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다. 스토리두잉은 이야기를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게 만드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며 전시를 ‘보는’ 대신 그 과정을 체험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대신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문화는 머리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되는 즐거운 경험이 된다. 시민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대신, 이야기를 해봤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면 한계는 분명하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삶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문화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단계는 스토리리빙(storyliving)이다. 스토리리빙은 이야기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 속 관계와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상태를 의미한다. 시민은 공동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서사를 살아가는 주체가 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역의이야기를 따로 배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하고, 문화는 콘텐츠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부가 되어진다. 스토리텔링만 반복되는 문화는 쉽게 소진된다. 스토리두잉이 더해질 때 문화는 참여가 되고, 스토리리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 된다. 지금 문화정책과 예술기획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가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이다. 문화는 말할 때 시작되지만, 해볼 때 깊어지고, 살아낼 때 비로소 지역의 얼굴이 된다. 지금의 지역 문화가 향해야 할 방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1-25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초

지난주, 우리는 같은 인공지능(AI)을 써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영일대 카페 박 사장의 사례처럼, “카페 홍보 글 써줘”와 “포항 영일대 해변이 보이는 카페의 인스타그램 홍보 글을 30대 여성 대상으로, 감성적 톤으로, 바다 전망과 수제 케이크 강조하며 100자로 써 줘”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 주에는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구체적인 기법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 씨의 고민 포항에서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김 씨는 최근 고객 피드백이 담긴 메일에 답글 작성할 때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막막하다. “클라이언트가 ‘로고가 마음에 들어요’라고 하면, 저는 그냥 ‘감사합니다. 수정 사항 있으시면 말씀 해주세요’라고만 써왔다. 답글에 대하여 AI에게 물어봐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비슷한 답만 나와서 무척 답답하다.” 이런 고민을 옆에서 본 대학생 아들이 다음 네 가지 기법을 우선 알려 줬다. 첫 번째 기법: 예시로 가르치기(Few-Shot Learning) 사람은 예시를 보면 더 잘 이해하는데, AI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스타일의 예시 2~3개를 보여주면, AI는 그 패턴을 이해하고 따라 한다. 김 씨 아들이 이렇게 해보라고 했다. 다음 예시처럼 클라이언트 피드백에 답변을 작성해 줘. 예시) 고객 피드백: 로고 색상이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네요. 답변: 브랜드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명함과 간판 시안도 같은 컬러 시스템으로 전개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예시를 알려준 후 ‘폰트가 읽기 편하네요’라는 고객의 피드백에 대하여 같은 “스타일로 답변 써 줘”라고 요청하면 AI는 익힌 예시를 기반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이 서체는 인쇄물과 디지털 환경 모두에서 최적화되어 있어, 향후 다양한 매체에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시만 보여줬는데, AI는 김 씨가 원하는 전문적인 어조와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전문 용어 사용, 간결한 톤, 다음 단계 제안까지. 이 기법의 핵심은 ‘보여주기’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자. 특히 글의 톤, 길이, 구조가 중요한 작업에서 강력한 결과를 보여줄 것이다. 두 번째 기법: 단계별로 생각하게 만들기(Chain-of-Thought)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풀기는 어렵다. 사람도 단계별로 생각하듯, AI에게도 그렇게 시켜야 한다. OO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박 양은 ‘포항 지역 창업 생태계 분석’ 리포트를 작성 중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물었다. “포항 창업 생태계에 대해 써줘”, AI 답변은 일반적인 창업에 대한 정의, 전국 평균 통계, 성공 사례 몇 가지 등, 포항 지역만의 특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단계를 나눠서 다시 물었다. “포항 지역 창업 생태계를 분석하려고 해. 다음 단계들을 고려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줘 1단계: 포항의 산업 구조 특징 분석 (철강, 조선, 해양 중심) 2단계: 이 산업 구조가 지역 창업에 미치는 영향 (긍정/부정) 3단계: 포항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의 역할 4단계: 다른 지역 산업도시와 비교·분석 (울산, 창원) 5단계: 포항만의 차별화된 창업 육성 방향 3가지 제안“ AI는 제시한 단계별로 차근차근 분석한 후 답변을 제시할 것이다. “1단계: 포항은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 집적지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나 서비스업 비중 낮음. 대기업 중심 고용구조로 인해 창업 문화는 상대적으로 약함”, 최종적으로 나온 제안은 ‘철강 부산물 재활용 창업’, ‘산업 안전 IoT 솔루션’, ‘해양 친환경 에너지 기술’ 등 포항의 산업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이 질문 기법은 기획서, 분석 리포트, 전략 수립처럼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에 특히 효과적이다. 세 번째 기법: 역할을 맡기기(Role Prompting) AI에게 전문가 역할을 부여하면 답변 내용이 달라진다. 같은 질문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답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다르다. 중견기업 기획팀에 근무하는 최 과장은 ‘탄소중립 실행 계획서’ 작성을 맡았다. 그래서 AI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기업 탄소중립 계획서 작성법 알려줘”, 인공지능(AI)의 답변은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하고, 감축 목표 세우고, 실행 방안 수립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일반적인 내용뿐이었다. 이때 최 과장은 역할을 부여하고 질문을 시도했다. “당신은 제조업 기업의 ESG 컨설팅을 15년간 해온 전문가야. 나는 중견 철강 부품 제조사의 기획팀 과장이고, 처음으로 탄소중립 계획서를 작성해야 해. 우리 회사는 직원 50명, 연 매출 700억 규모이고, CEO는 ESG에 관심은 있지만 과도한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어. 향후 3년간 실행가능 한 계획서 목차를 우선순위대로, 각 항목의 예상 비용과 기대효과도 함께 알려줘.” 그렇게 되면 답변이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달라지 게 된다. “1 순위: 현황 진단 및 베이스라인 설정 (예상 비용: OOO 만원, 외부 전문 기관과 협력 할 경우 정부 지원금 활용 가능, 이 단계 없이는 감축 목표 수립 자체가 불가능) 2 순위: 에너지 효율화 저비용 프로젝트 (LED 교체, 폐열 회수 시스템 등. 투자비 O 천만 원, 연간 절감액 O 천만 원, 3년 후 회수 가능, 가시적 성과지표로 CEO 설득 용이) 3 순위: 협력사 ESG 평가 체계 구축 (비용 거의 없음, 대기업 납품 조건 강화 추세에 선제 대응)“ 이렇게 중견 제조사의 현실을 반영한, 실행가능 한 구체적 조언이 나오게 된다. 예산 제약, 경영진 설득, 정부 지원금 활용까지, 역할 부여는 단순히 “전문가처럼”이 아니다. “어느 입장에서,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제약 안에서” 답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네 번째 기법: 제약 조건 명확히 하기(Constraint Definition) “이것만은 피해줘”라는 조건도 중요하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주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포항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남OO 활동가는 ‘영일대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를 포항시에 제출하려고 AI에게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 써줘”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AI는 전국 어디에나 적용되는 일반적 방안들, 예산 규모 불명확, 실행 주체 모호, 거창한 목표만 가득한 결과를 제시해 실제로 시청에 제출하기엔 부족했다. 이때 남OO 활동가는 제약 조건을 명확히 넣은 질문을 AI에게 제시했다. “포항시 환경정책과에 제출할 ‘영일대 해변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제안서를 작성해 줘. 단, 예산 1000만 원 이내로 3개월 동안 실행 가능한 (안)만 제시하고, 거창한 구호나 추상적 목표는 배제해 줘, 구체적 실행 방안 중심으로 시민 참여 유도 방법을 반드시 포함 (자발적 참여 유도, 강제 금지)해 줘, 기존 다른 지역 실패 사례(일회성 이벤트, 참여 저조)를 기반으로 실패를 피할 방안 명시하고, A4 2장 이내, 표와 그래프 없이 텍스트만으로 담당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쉬운 간결한 문체”로 작성해 줘, 라고 질문했다. 그렇게 되면 답변 아래 내용과 같이 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사업 개요 영일대 방문객(연 200만 명) 중 여름 성수기(7~9월) 이용객을 대상으로 ‘쓰레기 되가져가기’ 캠페인 전개. 1회 용 플라스틱 사용 20% 감축 목표. 실행 방안 · 해변 입구 3곳에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 설치 (250만 원) · 주말 자원봉사자 운영, 분리배출 안내 및 참여자에게 친환경 비치백 증정 (300만 원, 자원봉사센터 연계로 인건비 절감) · 해변 카페·편의점 5곳과 협약, 텀블러 지참 고객 할인 (예산 불필요, 업체 자발 참여) 기존 실패 사례 방지책 · 다른 지역은 1회 성 행사로 끝났으나, 본 캠페인은 3개월 지속 운영. 매주 SNS 참여 인증 이벤트로 자발적 참여 유도 (SNS 경품 비용 150만 원). 예산 · 총 950만 원 (설치비 250만 원, 운영비 550만 원, 홍보비 150만 원) 기대효과 · 여름 3개월간 약 15톤의 플라스틱 감축 추정. 시민 환경 의식 제고 및 포항시 친환경 이미지 강화.“ 제약 조건은 현실의 벽이다. 예산, 기간, 금지 사항, 필수 포함 내용, 분량 등 이런 제약을 명확히 알려줄수록 실제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답을 얻는데 용이하다. 중요한 건 이 기법들을 조합해 보다 강력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 씨의 업무를 들어 예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 “당신은 10년 차 브랜드 디자이너야. (역할/Role) · 다음 예시처럼 고객 피드백에 전문적으로 답변을 써줘 (예시/Few-Shot) 단, 전문 용어는 최소화하고, 구체적 다음 단계를 반드시 제안할 것. (제약/Constraint) · 다음 단계로 작성해 줘: (단계/Chain-of-Thought) 1단계: 피드백의 핵심 요소 파악 2단계: 디자인 의도 설명 3단계: 브랜드 전략 연결 4단계: 다음 작업 제안 이들 질문들은 처음의 “답글 써 줘”와는 차원이 다른 질문이다. 그리고 결과도 당연히 다르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부른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25

매관매직이 제도가 되어선 안 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강선우 의원(민주당 소속이었다가 공천 헌금 의혹으로 제명)은 1억 원이 든 쇼핑백이 자기 집에 있는 데도 석 달 동안 몰랐다고 한다. 2022년 1월 자신의 보좌관이자 지역 사무국장이었던 남 모 씨가 김경 서울시의원 후보로부터 1억 원을 받아, 강 의원 집에 두고 갔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석 달 뒤인 4월에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남 보좌관에게 돌려주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8월이 되어서야 돌려주었다고 한다. 강 의원은 공천 헌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가, 보좌관이 받았다고 뒤집었다. 강 의원과 김경 시의원, 남 보좌관, 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돈이 전달됐다는 증언이 나오자, 강 의원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끼리 주고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 의원이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살려달라”며 돈 받은 사실을 고백하자 김병기 의원은 돌려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컷오프 대상이었던 김경 시의원이 단수 공천됐다. 경쟁 기회도 빼앗겼던 후보, 그것도 공천 헌금으로 말썽이 난 후보가 하루 사이 어떻게 단독 후보로 확정된 것일까. 공천 기준이라는 게 있는 건가. 김병기 의원은 또 어떤가. 돈 거래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단수 공천을 해줬을까. 정치인들에게 빠지지 않는 게 부동산 문제, 자녀 입시와 증여 문제다. 김 의원도, 이혜훈 전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전 의원 아들은 할아버지가 내무부 장관을 해서 연세대에 입학했단다. 전직 고위 관리의 자녀뿐 아니라 손자·손녀까지 명문대에 특혜 입학시켜 주는 나라인가. 자손 대대로 그런 특혜를 누리려고 기를 쓰고 장관이 되려고 하나. 국회의원은 성역이다. 웬만한 죄를 지어도 처벌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제도를 바꾸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선거법이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다”라고 하겠는가. 의원들은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개헌보다 자신의 사소한 이권에 목숨을 건다. 그런 의원들이 법을 고치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가 면죄부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 대상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으로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힘없고, 연줄 없는 장삼이사에게나 엄격하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치외법권에 산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했다. 피감기관들이 100만 원이 넘는 부조금을 넣어 말썽이 났다. 부조금 한도가 5만 원이라는 건 서민들이나 신경 쓰는 모양이다. 유관기관 인사들이 100만 원이 넘게 부조한 명단을 본회의장에서 검토하다 들통이 났다.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법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출판 기념회는 정치활동이 아닌 저술 활동이라고 한다. 정치자금 모금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얼마를 모으든 상관없다. 회계 보고나 공개할 의무도 없다. 6월 3일 지방선거다. 4개월여 남았다. 김경 시의원의 공천 사례가 특별한 경우일까. 김병기 의원도 1천만 원, 2천만 원씩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구의원의 활동비 카드를 가져다 썼다는 의혹도 있다. 사후 뇌물죄에 해당한다. 그러니 다하는 일인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기초의원 5000만 원, 광역의원 1억 원이라는 소문은 사실일까. 이번 선거도 그렇게 공천할까. 그 돈은 어디서 충당하나. 김경 시의원의 의혹처럼 가족회사를 만들어, 국고를 수억 원씩 빼먹어야 하나. 심지어 어떤 지방에서는 5급 승진에 5천만 원, 4급 승진에 1억 원으로 정해져 있다는 소문도 있다. 결국 돈 공천은 매관매직 (賣官賣職)과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이어진다. 먹이사슬이다. 세도정치로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왕조시대가 떠오른다. 정치가 해 먹는 돈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돈으로 공천받고, 돈으로 승진한 공직자가 주민을 위해 일할 리 없다. 아무리 해 먹어도 우리 편이면 면죄부를 주는 썩은 당파정치를 반복할 순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