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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무라 마스오라는 아름다운 다리

2025년 6월 15일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이 날은 2023년 1월 15일 별세한 오무라 마스오 선생(1933-2023)이 살았던 집과 유택(幽宅)을 방문하는 날이었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온 S대학의 K교수, H대학의 Y교수 부부와 함께 선생의 댁이 있는 치바로 향했습니다. 이치가와오노에키(市川大野駅) 역에서 내려 15분 정도를 걸어가자, 생전의 선생처럼 단아하고 품위 있는 2층 단독집이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오무라 아키코 여사의 안내를 받아, 먼저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불단을 둘러본 우리는 이후 선생이 4년간이나 투병하셨던 방에서 오무라 아키코 여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사는 재일한인 2세로서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무라 선생과 결혼하여 평생 동안 문학적 동지로 살아온 분입니다. 재일한인과 일본인의 결혼이 쉽지 않았던 당시에, 두 분의 결혼에는 오무라 선생의 스승이자 루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까지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오무라 선생이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시인 윤동주의 묘소를 발굴한 일이었는데요. 그 역사적 현장에도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과 함께 했었습니다. 오무라 선생이 말년에 제주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이유도, 아키코 여사가 제주 출신 재일동포 2세라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여사는 본인이 유명한 화가이기도 해서, 작업실에는 직접 그린 유화 작품들이 여러 편 남아 있었습니다. 오무라 마스오 선생처럼 많은 존경을 받는 ‘조선’문학 연구자도 드물 겁니다. 이러한 존경의 이유는 우선 평생에 걸쳐 이룩한 연구업적에서 비롯되는데요. 선생은 한국문학과 북한문학은 물론이고 제주문학과 연변문학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학문적 성과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적 지평에 서서, 분단과 국경을 넘어 한민족이 남긴 모든 근대문학을 포괄적으로 연구했던 건데요. 더군다나 이러한 ‘조선’문학 연구가 일본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선생은 여러 자리에서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학문적으로 조선문학은 일본 사회 안에서 시민권이 거의 없었”으며, 그렇기에 ‘조선’문학 연구는 일본 사회에서 “뒷길 중의 뒷길”이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뒷길 중의 뒷길’이라 일컬어지는 소수파로서, 선생은 평생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조선’문학 연구에만 매진해 온 것입니다. 특히 일본인이 식민지 시절 ‘조선’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일본인이 한민족의 대표적 저항 시인인 윤동주의 무덤을 찾고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기에 오히려 수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에는 식민지 지배를 했던 나라의 연구자가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겪어야 하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불행한 역사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겁니다. 또한 오무라 선생은 오래 전부터 한국문학연구자들과 따뜻한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선생의 집을 방문한 이 날도 여사는 선생이 김우종, 김윤식, 임헌영 등의 한국 문인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무라 선생은 실증적 연구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오직 자료와 현장에만 입각하여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조선’문학의 실체를 성실하고 따뜻하게 규명해 온 것인데요. ‘실증적 연구’ 태도는 선생의 체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선생이 놓여 있던 역사적 상황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선생은 일본인이면서 과거 식민지였던 ‘조선’의 문학을 연구하는 독특한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연구 대상으로 삼는 ‘조선’은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된 처지였으며, 선생이 한창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에는 일본에서도 이념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는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장은 최소화하여 내면화하면서 자료나 증거 등은 전면에 내세우는 ‘실증적 태도’는, 연구를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윤식 평론가는 오무라 선생을 ‘농부’라는 애칭으로 부르고는 했다는데요. 오무라 선생이 늘 김을 매고는 했다는 집 뒤편의 텃밭이 훤히 보이는 방에서,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에 대한 사실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자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4년간 남편을 간병했던 이야기, 버려진 길고양이 에미짱을 수십년째 길러온 이야기, 자신이 평생 해온 그림 이야기 등을 해주었는데요. 특히 문정희 시인의 ‘물을 만드는 여자’를 낭독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여성의 숭고한 생명력을 강조한 그 시 속에는 오무라라는 지적 거인과 평생을 함께 걸어온 여사의 삶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 사후에 소장자료 2만여 점을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하여 세상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는데요. 이 날 선생의 자택 서고에는 여전히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 쪽 자료가 많아서, 전문적인 정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여사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나온 우리 일행은 선생의 유택이 마련된 근처의 사찰(木將寺)에 갔는데요. 하루 종일 흐렸던 날씨가, 그 곳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활짝 개어 있었습니다. 오무라 선생의 묘에 꽃을 바치고 돌아서면서 선생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심어 놓은 ‘조선’문학 연구의 씨앗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7-08

배움에는 쉼표가 없다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어느덧 손을 놓은 지 스무 해가 다 되어 간다. 악보를 보는 감각도, 박자를 가르는 손끝의 감성도 점점 퇴색되어 빛이 바랬다. 그런 나에게 찬양 지휘를 부탁한 사람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단 한 번의 부탁이었지만 그 말 한 마디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염려를 안겼다. 마치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야 하는 손길처럼, 묻어두었던 나의 음악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남의 일처럼 낯설었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양했을텐데, 망설임의 긴 여운이 사양할 시간을 앗아갔다. 찬양곡 하나를 맡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5일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또박또박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내 방식대로 정성껏 음원을 찾아듣고, 악보를 인쇄하고, 필요한 조표는 빨간 펜으로 그려 넣었다. 눈에 잘 띄게 박자를 나누고 헷갈릴 만한 쉼표는 두꺼운 선으로 표시했다. 삐뚤한 음표 하나에도 마음이 쓰여 또 다시 지우개로 지우며 화음을 그려 넣었다. 조심스레 골라낸 찬양 악보 위에 손으로 개사한 가사를 덧붙여 적었다. 서툴지만 정성껏 만든 내 악보를 옆에 있던 젊은 선생님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능숙하게 태블릿을 열어 단 몇 분 만에 깔끔한 디지털 악보로 바꾸어 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악보처럼 완벽하고 세련되었다. 화면 위에 정렬된 음표들과 가사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름 세상의 흐름을 따라왔다고 생각했지만 기술 앞에서 나의 시간은 오래전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내 방식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연필로 음표를 그리고, 지우개로 화음을 수정하며 시간을 들였다. 그 속에 나름의 애정과 고집이 있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디지털 작업은 그 모든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기술은 사람의 수고를 덜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수고의 의미마저 잊게 만든다.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은 과연 오래된 것들일까. 아니면 사라져 가는 것들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 앞에서 나의 느린 손끝은 질문을 품는다. 나는 뒤처진 걸까. 아니면 그만큼 오래도록 남을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손글씨에 의존하고 프린터보다 펜을 먼저 찾는다. 모니터보다는 종이의 질감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 속도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조금만 멈춰 서 있어도 세상은 너무 멀리 가 있다. 쉼표가 없는 악보처럼. 나는 생각했다. 익숙한 방법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만 고집해서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음악처럼 삶에도 새 음이 필요하고 때로는 전조가 필요하며 박자를 바꾸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걸. 기술을 배우는 일은 단지 도구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는 또 하나의 언어를 익히는 일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배움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학교를 졸업하면 배움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교실 밖에서 시작된다. 뒤처진다는 건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멈춘 상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른이 된 뒤부터 자꾸만 체면을 차리고 묻는 걸 두려워한다. “그 나이에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 한마디에 말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진짜 모른는 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 쪽이다. 배우지 못해 뒤처지는 게 아니라 물을 용기를 잃어 점점 자신을 접어 두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다. 나는 젊은 선생님 앞에서 낡은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았고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당위도 느꼈다. 배움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손으로 그린 악보를 다시 펼쳐본다. 삐뚤한 음표 사이사이에 내가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젊은 선생님의 손끝에서 척척 나오는 기술을 보며 감탄한 뒤 나도 배워보겠다고 다짐했다. 배움에는 정해진 리듬이 없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각자의 템포로 배운다. 중요한 건 끝내 쉼표를 찍지 않는 일이다. 배우는 사람은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젊은 사람이다. 나도 그 끝없는 악보 위를 다시 걸어가 보기로 한다. 쉼표 없이 흘러가는 이 악보 같은 세상에서 오늘 나는 새로운 박자를 하나 익혔다. 조금 더 느리지만, 나도 연주할 수 있다. 세상과 함께. /김경아 작가

2025-07-08

뉴노멀 시대와 파괴적 혁신

신생 기업과 대기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10살 꼬마와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경쟁하면 누가 앞설까, 직장 생활 20년의 부장과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 마케팅을 맡으면 누가 더 잘할까, 답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한다면 꽤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고, 지금이 뉴노멀 시대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전 같으면 무조건 대기업이, 명문대 나온 엘리트가, 20년 넘은 부장이 이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젠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어도 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했다. 뉴노멀(New Normal)은 한 때는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이었던 현상이나 상태가 이제는 새로운 표준이 되는 상황을 뜻한다. 경제위기, 신기술 혁명, 전쟁, 관세 폭탄 등 큰 변화 이후 기존 질서나 방식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새로운 규범이나 기준이 자리 잡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지고, 고성장, 고수익에서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의 ‘뉴노멀’이 자리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근무, 원격 수업, 디지털로 전환되고,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는 일상화 되었다. 쿠팡 등 배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젊은 세대는 집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등은 일상 생활이 되어 버렸다. 2016년 초 파리에서 택시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우버(Uber)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니 파리에서 우버를 몰아내 달라는 것이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기사를 앱을 통해 연결해주는 기술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버는 택시 차량도 운전기사도 없다. 오르지 연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대신 모든 결재는 우버 앱을 통해 이루어지고 수수료를 챙긴다. 파업 당일 우버 측은 오히려 웃었다. 파업으로 시내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워 지는 순간 우버 요금이 오른다. 우버의 강점은 택시 이용하기 편리함에 있다. 택시 파업으로 평소에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도 우버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어 오히려 크게 홍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도 카카오택시가 편리하여 늘 이용한다. 이것은 기존 택시, 렌터카, 배달 업계를 파괴한다. 이는 소비자 심리를 담은 스타트업들에 의해 기존 산업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파괴적 혁신인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산업의 경쟁 질서를 파괴하여 새로운 경쟁 우위와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기존 제품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버린다. 파괴적 혁신을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유도하고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매장이지만 휴식공간, 일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창출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ESG 경영, AI 시대와 디지털혁명으로 생산성 혁신의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08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의 돋보이는 기획력

바다가 곁에 있고 사람과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창가에 이색적인 작품들이 드리워졌다. 마치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현수막 천에 서예와 문인화 또는 캘리그라피 시화작품들이 담기고, 나즈막한 이젤 위에는 한국화 작품들이 올려져 다양한 작품 코너로 채워지면서 넓직한 공간이 금세 갤러리로 변했다. 탁 트인 창 너머 가까이 동빈내항과 송도솔밭이 보이는 ‘동빈문화창고1969’ 2층에서 최근 펼쳐진 풍경들이다. 그곳에는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글과 그림으로 등장하고, 동해에 깃든 전설이나 유래, 시, 민담이 파도소리로 들리는 듯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다소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테마의 작품들이 다양성의 조화처럼 한국화와 서예·문인화·캘리그라피·시화 등의 저마다 특색 있는 모습으로 전시회 테마의 요건을 갖추는 듯했다. 6월 26~7월 6일까지 10일간 진행된 이번 전시회는 2025 경북문화재단의 예술거점지원사업 시각+문학 3권역(포항·영덕·울진·울릉)으로 포항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에서 기획한 ‘명불허_어전’ 1회차 테마전시다. 이 같은 기획전시는 흔하지는 않지만,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에 착안한 ‘명불허_어전’ 전시회 타이틀에 걸맞게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 즉 “전설은 시간 속에 잠들지 않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전설과 설화를 글과 붓으로 재현한 것은 과거의 시선을 담으면서도 현재의 이 땅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다”며 기획자의 의도를 밝히기도 했었다. ‘거북바위에 오른 태양, 비단에 내려 앉은 달빛’을 부제로 동빈문화창고에서 열린 ‘명불허_어전’이 차분하게 서막을 올렸다면 이번에는 울릉도에까지 가서 테마전시의 ‘진수’를 보일 전망이다. 새로 만든 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워 바다로 내보내기 전 음식과 치성으로 깃발을 달고 술을 뿌리며 풍어와 안녕을 비는 진수식(進水式)을 떠올리며 예술가와 주민, 관광객들이 깃발과 작품에 어우러지는 참여형 퍼포먼스를 펼치게 된다. 이를테면 울릉의 바닷가에서 주민들의 바다를 향한 염원과 경외심, 용기를 깃발이나 사진, 글귀에 담아 바람 결에 세우며 진수식을 재현하고, 생활예술이 마을과 사람과 바다를 다시 잇는 순간을 진지하게 연출해낼 것으로 보인다. 어부들의 염원과 주민들의 희망이 담긴 글귀와 깃발이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 깃발이 모여 바람에 나부끼고 펄럭이며 만선과 풍요를 꿈꾸는 또 하나의 색다른 진수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작가들의 공익법인인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의 참신한 기획력과 꾸준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작년의 ‘포구다방’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의 ‘명불허_어전’ 추진은, 경북 동해안 지역이 처한 현실과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문화예술적인 접근으로 일깨우고 활로를 모색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지역성을 살린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다각적이고 이색적인 테마를 지역민과 함께 발굴해 문화예술인들이 소통·교류하고, 새로운 기획과 네트워킹으로 체계화·담론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08

‘구미보 상류’, 대구취수원 후보지로 급부상

또다시 표류하게 된 대구취수원 이전 후보지로 ‘구미보 상류지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 7일 “환경부와 대구시의 요청이 들어올 경우 구미보 상류지점을 대구취수원 새 후보수역으로 공식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이날 “2022년 대구시 취수원 이전 논의 당시 대구·구미 실무진 협상에서는 해평 취수장 보다 구미보 상류수역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바 있다”면서 “이후 환경부에도 이러한 제안을 수차례 건의했다. 그러나 구미시 제안이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 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지난 2022년 4월 환경부·구미시·대구시·경북도가 ‘취수원 다변화 협정’(대구 취수원을 구미 해평취수장으로 이전)을 할 당시, 구미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협정 서약에는 반대했지만 대안으로 낙동강 구미보 상류지역(선산읍 신기리·독동리, 도개면 신림리 인근)을 대구·구미 공동취수원으로 적극 추천했었다. 구미보 상류수역은 1일 취수량 추정치가 30~60만㎥로 해평 취수장(30만㎥), 안동댐 직하류(46만30만㎥)에 비해 적지 않다. 예상 도수관로길이도 55km로 안동~대구 110km의 절반 수준이다. 사업비는 안동댐 직하류 수역보다 58% 가량 줄어들어 현실적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구미보 인근 지역에 취수원을 옮길 경우 그 상류 낙동강변에 있는 구미 도개·옥성·무을면과 상주시 동부지역, 의성군 서부지역민들의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새로운 문제로 부상할 수 있다. 취수원 상류 지역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 공장입지와 각종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안동댐으로 추진되던 대구취수원 이전사업이 또 표류하게 된 것은, 이재명 정부가 대구시의 맑은 물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이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한 만큼, 새 정부는 하루빨리 대구시와 구미시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 대구취수원 이전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2025-07-08

혁신 거부하는 국힘, 다음 선거는 포기했나

국민의힘 혁신위가 출범 닷새 만에 좌초됐다. 지난 2일 혁신위원장을 수락한 안철수 의원이 7일 전격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당내 인적 청산과 혁신위원 인선 문제에 대해 송언석 비대위와 충돌한 것이 이유다. 안 의원은 “최소한 두 분에 대한 인적 쇄신안을 제안했지만 비대위가 거부했다”고 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에 내정된 후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중심의 혁신위 구성과 12·3 계엄부터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책임있는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주장해왔다. 안 의원은 인적 청산 대상과 관련해선, “지난 주말 송언석 비대위원장을 만나 2명의 인적 쇄신안을 비대위에서 받을 수 있겠는지 여러 번 의견을 나눴지만 결국 ‘받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가 인적 청산 대상으로 지목한 2명의 실명(實名)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일종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라고 했다. 당시 당 지도부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를 지칭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 의원이 요구한 인적 청산은 출당 또는 탈당 조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 과정에서도 갈등을 빚었다. 안 의원은 이재영 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 박은식 전 비상대책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혁신위 합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 소속이고, 호남 출신의 박 전 위원은 마찬가지로 당의 개혁 필요성을 주장해 온 원외 인사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지난 7일 발표한 혁신위원 명단에는 2명이 쏙 빠졌다. 사실 국민의힘이 지난주 ‘안철수 혁신위’를 띄웠지만, 민심을 돌릴만한 혁신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지 않았다. 당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당 내외 비판 여론을 분산하고 자기희생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안철수 혁신위를 만들었다”는 뒷말이 나왔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아마 안 의원이 큰 운동장에 30평짜리 운동장을 따로 긋고 그 안에서만 혁신하라는 주문을 계속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영남 자민련’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과 인재 영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당3역’인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이 모두 친윤계인 TK와 PK 중진들이 장악하고 있어 자체적인 인적 쇄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도 5대 개혁안을 내걸었지만 친윤계의 반발로 끝내 의결이 무산됐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 발표한 정당별 지지도 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53.8%, 국민의힘이 28.8%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가 25.0%p까지 벌어졌다. TK지역에서는 민주당 42.4%, 국민의힘 45.7%로 오차범위 내 접전 상태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재 거론되는 ‘홍준표 신당’이나 이준석 개혁신당이 영남권에 유력한 후보를 낼 경우, 국민의힘은 TK지역의 기반마저 붕괴할 수 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08

눈물의 자영업

자영업자는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프리랜서, 개인 사업자, 소규모 사업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자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율은 약 20%정도 된다. 해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사업을 벌이면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5년 이내 자영업자 생존률은 겨우 20% 정도다. 거꾸로 말한다면 80%가 실패한다는 뜻이다. 초기자본 부족, 업소 간 경쟁 심화, 경영 능력 부족 등 여러 가지가 실패 이유로 손꼽히나 개별사업자 사정에 따라 사유는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쨌든 OECD 국가 중 실패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자영업 생존과 관련된 재미난 통계가 있어 소개한다. 국세청 통계를 근거로 분석한 자료다. 창업 3년 뒤 살아남기 가장 어려운 개인사업 1위가 치킨 전문점이다. 그 뒤로 통신판매업과 분식점이 뒤를 잇는데 10명 중 5~6명은 3년 후 폐업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업종이라 충격이다. 반면에 3년 뒤 생존율이 가장 높은 개인 사업 1위는 미용실(73.4%)이다. 생존율 73.4%다. 최근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게 문을 닫은 폐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관련 통계 집계 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폐업 사유는 절반 이상이 사업 부진을 꼽았다. 말이 사업 부진이지 사실은 도산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등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대규모 추경을 했다.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과연 닦아줄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8

연이은 폭염에 가축농가도 과수농가도 비상

역대급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경북도내 가축 및 과수농가에도 폭염 피해가 덮치면서 비상이 걸렸다. 8일 경북 안동 길안면의 낮 기온이 39도로 올들어 최고 기록을 세운 가운데 9일에도 대구경북 전역에 걸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당분간 낮 최고기온은 33~35도 이상 되고, 열대야까지 겹치는 날이 많다고 예보했다. 포항과 대구에선 밤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열대야가 9일째 이어졌고, 온열질환자도 예년보다 빨리 발생하고 그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폭염이 길어지면서 경북도내 가축농가와 과수농가의 피해도 우려된다. 예년의 경우를 살펴보면 폭염에 의한 가축이나 과수 피해 정도가 상당했다. 피해 금액도 크지만 경우에 따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폭염 피해는 폭염에 대비한 사전 대응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가 중요하다. 전국적으로 2주 이상 이른 폭염이 찾아오면서 돼지 1만여 두와 가금류 12만여 마리가 벌써 폐사한 것으로 알려져 관련 농가가 비상이다. 경북은 가축이나 과수 면적이 넓어 해마다 폭염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은 곳이다. 발빠른 대응으로 피해를 줄여야 한다. 경북농업기술원은 예년보다 빨리 폭염이 찾아옴에 따라 폭염대응현장지원단을 가동했다. 지원단은 농업인 온열질환자, 농작물, 가축 등의 피해 예방을 위해 폭염 피해가 예상되는 과수농가, 밭작물 농가, 축사 등의 영농현장을 돌며 폭염대응 관리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기술원은 과수작물은 배수로 정비와 관수량 조절을 통해 토양의 수분이 적절히 유지되게 하고, 강한 햇빛으로 인한 일소현상 방지를 위해 가지 재배치 등의 요령을 당부하고 있다. 또 가금류 사육농가에 대해서는 사육밀도 조절, 시원한 음용수 제공, 축사 환기 등의 폭염 대응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관련 농가들은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기관의 지도와 지침에 맞게 영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 예상돼 당국과 농가의 비상한 각오와 준비가 있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2025-07-08

보행자 보호용 가드레일 설치, 어떤 사업보다 우선해야

3일 오후 서울 도봉구에서 발생한 택시 인도 돌진 사고는 또 다시 우리 사회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차량과 충돌한 택시가 인도로 돌진하며 50대 보행자가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는 지난 1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발생한 전기차 인도 돌진 사고, 2일 강릉 휴게소 식당가 돌진 사고와 함께 연이어 발생한 참사이다. 특히 마포구 사고는 시청역 참사 1주기에 발생해 더욱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연쇄적인 사고들은 우리 사회의 보행자 안전 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청역 참사 당시 현장에는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라 설계된 철제 가드레일이 있었지만, 차량 충격에 의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는 현재의 보행자 보호 시설이 실제 사고 상황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형식적인 안전 시설 설치로는 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심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 새고 곰팡이가 핀 집을 벽지만 계속 덧붙여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회 곳곳에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에도 임시방편적인 대책만 세우고 있다면 계속해서 같은 사고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서울시는 시청역 참사 이후 강력한 보행자용 방호울타리 설치를 약속했지만, 연이은 사고들은 이러한 약속이 아직 현실로 구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운전자의 부주의나 실수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이다. 최근 사고들을 보면 음주나 약물 운전이 아닌 페달 오조작이나 운전 미숙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령화 사회의 진행과 함께 더욱 빈번해질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운전자의 주의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물리적 방어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가드레일을 차량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강화된 구조물로 교체하고, 보행자 밀집 지역에는 더욱 견고한 보호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보행자 보호용 가드레일 설치는 시민 안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만큼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화려한 개발 사업이나 홍보성 사업에 앞서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기본적인 안전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미루거나 축소할 수 없는 필수 사업인 것이다. 더 이상 같은 사고가 반복되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보행자 보호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시민들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2025-07-07

‘살인 폭염’에 휴가도 무섭다

프랑스는 1300여개 학교가 문을 닫아걸었다. 남부 유럽인 포르투갈은 낮 기온이 섭씨 46도까지 올라갔다. 평년보다 무려 15도 높은 수치다. 미국인 가운데 1억7000만명 이상이 ‘폭염 영향권’ 아래서 생활하고 있다. 재론의 여지없이 역대 최고 숫자다. 유럽과 북아메리카만이 아니다. 아시아도 양은 냄비 속 라면처럼 펄펄 끓고 있다. 북부·중부 할 것 없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중국 정부는 폭염 경보와 농작물 피해 경보를 알리기에 하루가 짧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미 6월부터 45도 넘는 기온에 국민 절대다수가 숨을 몰아쉬는 지경. 두 나라는 에어컨 보급률이 아주 낮다. 어느 대륙, 어느 나라 특정할 것도 없다.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더위를 견디지 못해 사람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타는 듯 강렬한 햇살과 체온보다 높은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인간만이 아니라 짐승도 죽는다.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조금 부풀려 말하면 지난해인 2024년과 올해 더위는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흑사병 수준으로 인류를 위협한다. 여든 살 노인부터 10대 학생들까지 모두가 “더워도 너무 덥다”를 입에 달고 겨우겨우 불볕더위를 견딘다. 이제 겨우 7월 초순인데. 오는 8월의 폭염은 또 얼마나 끔찍할까? 이런 상황이니 휴가를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 어디를 가도 더운 건 한국과 마찬가지니까. 물론, 남극이나 북극으로 떠난다면 오뉴월 염천에도 덜덜 떨며 며칠을 지낼 수 있겠지. 그러나, 남극 여행비용 5000~6000만원을 휴가비로 선뜻 투자할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7

이번 주말 해수욕장 개장, 안전관리에 최선을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 25개 해수욕장이 이번 주말을 시작으로 일제히 개장에 들어간다. 나정해수욕장 등 경주지역 4개 해수욕장은 11일부터, 포항의 영일대 등 그밖에 해수욕장은 12일부터 개장을 하게 되는데, 일찍 찾아온 폭염으로 올해는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유난히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지난달 말 문을 연 강원도지역 해수욕장에는 지난 주말에만 7만여 명의 피서객이 몰려 일찍부터 북새통을 연출했다고 하니 폭염에 따른 피서인파 관리에 비상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포항에는 송도해수욕장이 18년만에 백사장을 회복하고 재개장에 들어가면서 새롭게 단장한 해수욕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피서객의 발길이 더 잦을 것이 예상된다. 알다시피 송도해수욕장은 일찌감치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전국에 소문난 곳이다. 1960~1970년대만 한해 12만명이 다녀간 유명 해수욕장이어서 이번 재개장이 특별히 주목된다. 해수욕장은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적정 수용 인원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때는 사고 위험도가 높아진다. 규모에 맞는 피서객을 수용하고, 안전 요원의 적정 배치가 중요하다. 또 안전 장비의 점검과 함께 수질 및 토양 오염관리로 해수욕장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해 급증했던 해파리 출현에도 대비하는 철저함도 필요하다. 해수욕장이 개장될 때마다 반복되는 바가지 요금 시비도 사전의 교육을 통해 최대한 줄어들어야 한다. 모처럼 여름 휴가철을 맞아 찾아온 해수욕장에서 바가지 요금을 덮어쓴다면 다음번에는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 뻔한 일이다. 내 고장의 이미지를 망칠 해수욕장의 바가지 요금 시비는 상인들이 앞장 서 근절해야 한다. 그 밖에도 여름철 최대 피서지인 해수욕장에서의 안전은 피서객 스스로가 안전 수칙을 지킴으로써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에서 일어나는 익사 사고는 한순간의 부주의로 발생한다. 해수욕장 개장에 따른 안전관리에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5-07-07

TK가 변해야 보수가 산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TK(대구·경북)를 흔히 ‘보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선거 때마다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으니 TK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보수의 심장이 건강하지 못하면 보수정치도 건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TK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라. 대통령이 오판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당 지도부가 오판하여 대선후보 교체 쿠데타를 벌여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 살길 찾기에 바빴다. 대선에 참패했음에도 반성과 혁신은 없고, 오직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TK 송언석(김천)을 밀어서 원내대표에 당선시켰다. 대의(大義)보다 소아(小我)에 집착하는 정치꾼들이 어떻게 보수정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보수의 덕목인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모르는 TK정치인들이 보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TK정치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TK유권자들이다.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TK유권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한 결과’이니 누구를 탓하랴.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TK유권자들의 업보(業報)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 지지는 민주시민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보수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TK의 일편단심이 결과적으로 오만하고 무능한 ‘국민의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TK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보수가 회생할 수 있을까?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지역주의, 전통적 연고주의, 배타적 파벌주의에 얽매인 정치적 편견을 버리고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합리적 사고를 해야 한다. TK정치인들이 “우리가 남이가”라고 감정적 선동을 해도 TK유권자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TK가 ‘보수의 인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인들은 TK를 더 이상 만만하게 보지 않고 바른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TK유권자들은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충신’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뜻을 거역한 유승민이나 윤석열의 잘못을 비판한 한동훈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는 것은 왕조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대통령에게 맞서면 무조건 배신자인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배신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은 머슴’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두둔하는 것은 주권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제 보수의 심장, TK가 깨어나야 한다. TK유권자들이 각성해야 TK정치가 변하고, TK정치가 변해야 보수가 산다. 특히 TK유권자들은 ‘지지할 때’와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를 엄격히 구분해야하며, 지금은 TK정치인들이 뼈저린 반성과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7-07

대구 취수원 이전, 하루빨리 대안 찾아야

대구시민이 먹는 수돗물의 안전성을 위한 취수원 이전 사업이 또다시 표류하게 됐다. 그동안 대구시가 추진해왔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낙동강 상류인 안동댐에서 대구까지 110㎞ 길이의 도수관로를 연결해 문산·매곡 정수장까지 원수 공급)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열린 국회 예결위 정책질의에서 금한승 환경부 차관은 “대구 취수원 이전 사업은 어느 한 대안에 매몰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점에서 다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임미애 의원(비례대표, 전 경북도의원)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묻자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임 의원은 “안동댐 수질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나온 중금속으로 굉장히 오염돼 있다”면서 맑은물 하이웨이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반대해 왔다. 이와관련, 구미시가 최근 구미보 상류지점을 대구취수원 이전 새 후보수역으로 정하고 환경부와 대구시의 요청이 들어올 경우 이 수역을 공식 제안할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구미공단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된 낙동강 물을 수돗물로 사용하고 있는 대구시민들로선 취수원 이전 문제가 최대 숙원이다. 지난 1991년 수돗물 페놀오염사태를 경험한 대구시민 대부분은 현재 수돗물을 바로 식수로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대구 취수원 바로 위에서 구미공단이 수천 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페놀 오염사태가 언제든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환경단체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낙동강 원수의 질이 전국에서 가장 오염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매곡·문산취수장 원수에 포함된 전체 탄소량을 의미하는 총유기탄소량(TOC) 농도가 낙동강 최하류에 있는 부산 물금취수장과 매리취수장의 농도보다 더 짙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에 브레이크를 건 만큼, 하루빨리 대안을 마련해 수돗물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대구시민의 불안을 없애줘야 한다.

2025-07-07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인지’란 말이 유행한다. 어떤 개념의 상위 수준이나 다른 관점을 나타내는 ‘메타((Meta)’와 대상을 분별·판단하여 안다는 뜻의 ‘인지(認知)’를 합성한 이 말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간략하게 말해서, 학습이나 문제해결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1970년대에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이 창안한 용어다. 그는 아동의 인지(認知) 발달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인지능력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 과정을 통제하고 점검하는 능력이 학습과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교육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메타인지는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학습 능력 향상, 비판적 사고, 자기 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중요한 기능으로 연구되고 있다. 메타인지의 주요 기능으로는 우선 비판적 사고와 자기반성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을 의심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독단이나 편견에 빠지지 않게 한다. 다음으로는 분노,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객관화하여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운다. 또한 다수의 견해라고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집단적 의사결정에서의 오류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메타인지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는 평소에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습관,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 생각의 흐름을 말로 표현하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피드백(feedback)을 받기, 독서와 글쓰기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메타인지 능력이 떨지는 게 아닌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정보 과잉의 시대다. 수많은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SNS 환경에서는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특히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점점 더 확증 편향적 오류에 빠져들게 된다. 메타인지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수시로 ‘내가 접한 정보는 과연 믿을 만한가?’, ‘내가 속한 진영의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나의 사유체계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기성찰은 바로 메타인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메타인지는 단순한 심리학의 용어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민의식이자 삶의 태도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태도는 오늘날처럼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 불확실성과 분열이 심화되는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것은 양비론이나 양시론이 최선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비겁한 현실도피나 냉소적 방관자의 태도도 물론 메타인지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여 국가와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메타인지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현상들은 다 메타인지의 결핍에서 오는 것일 터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7-07

악마의 맷돌과 노예의 길

칼 폴라니는 ‘거대한 변환’에서, ‘시장’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기계’라고 진단한다. 자율적 시장경제는 위험하며, 사회적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며,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가 시장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폴라니에겐 시장이란, 자연이 선물한 토지, 인간의 신성한 노동 그리고 사회적 신뢰인 화폐를 상품화하여 모조리 갈아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다. 이 거대한 제분기는 노동을 분리하여 시장의 법칙에 종속시키고, 유기적인 삶의 모든 형태를 말살하고 원자화하여, 개인주의를 파괴하여 결국은 인간과 자연을 말살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에서, ‘시장’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는 가장 정교한 자생적 체계‘라고 진단한다, 자율적 시장경제는 진정한 인간 자유의 기반이며, 시장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 주장한다. 하이예크에게 시장이란, 인간의 이성이 설계하지 않은 자생적 질서이며, 시장가격은 흩어진 지식의 조화이다.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파멸로 가는 길이며, 평등이나 정의를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면 자유는 무너지고 노예의 길로 향할 것이라 하였다. ’시장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하여, 폴라니는 자유의 길,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이라 판단했다. 하이예크가 두려워한 ’국가의 팽창‘은 독재 권력을 낳기도 하였지만, 폴라니가 경고한 ’시장의 전면화‘는 더 넓은 영역에서 실현되기도 하였다. 지금쯤 눈치를 챘겠지만, 폴라니는 진보의, 하이예크는 보수의 경제 정책이다. 여기서 나는 두 거장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대해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악마의 맷돌에서 갈려져 나오는 위대한(?) 생산물이자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인도하는 거룩한(?) 인도자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생산물이자 인도자는 ’돈‘ 이다. 우리는 갈려서 돈이 되고, 우리는 돈에 의하여 인도된다. 절대 신 ’돈‘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다. ’돈‘ 교다. 근사한 말로 포장하면 ’자본주의‘ 교다. 자본주의는 모든 종교에 탁란한 뻐꾸기다. 신앙인들이 믿고 있는 신은, 어쩌면 돈이라는 신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주식 시장은 매일 요동치며, 우리의 노동은 시간 단위로 팔리고 있다. 어떤 신을 믿어야 하나. 이정표 없는 거리다. 아니, 이정표는 오직 돈일지도 모른다. 악마의 맷돌은 자연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갈아서 돈이라는 신을 창조한다. 그 신은 생각보다 전지전능하며, 은혜롭다. 신에게 바칠 재물이 신이 되었다. 우리가 창조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신이 되었다. 구원도, 속죄도 없다. 가짜가 진짜가 되었다. 우리의 모든 아우라는 돈의 빛 속에서 흐려졌다. 이야기도 신화도 모두 사라졌다. 오늘도 우리는 돈이 활개 치는 시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폴라니도 하이예크도 시장 속에서, 돈 속에서 죽었다. 나 자신의 가격을 묻는 시대, 모든 것이 가격으로 환원되는 시대. 딴따라는 춤춘다. 돈 신을 어떻게 모셔야 할까? 인류 전부가 개종할 날을 기대하여 본다. /공봉학 변호사

2025-07-07

코스트코 유치… ‘왜 지금, 왜 포항인가’에 답해야

글로벌 창고형 유통업체 코스트코(Costco)의 포항 입점이 가시화되고 있다. 포항시는 남구 구룡포읍 일대를 중심으로 후보지를 검토 중이며, 연내 협약 체결을 목표로 코스트코 코리아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시는 소비자 혜택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변수는 코스트코의 입점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생활권 인구 100만 명, 약 3만3000㎡(1만 평) 이상의 부지, 산업 성장 가능성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항(50만), 경주(24만), 영덕(3만)을 모두 포함해도 생활권 인구는 80만 명 수준에 그친다. 울산을 내세우는 의견도 있지만, 울산에는 이미 매장이 운영 중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단순 인구 수만으로 시장 잠재력을 판단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포항의 연간 관광객은 750만 명, 경주는 4000만 명, 울릉도도 40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유동 인구를 고려하면 소비 기반은 작지 않다. 더불어 포항은 철강 중심에서 벗어나 이차전지,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지로 빠르게 재편 중이다. 익산처럼 생활권 인구가 기준에 미달해도 경제성과 확장성, 지자체의 적극성에 따라 입점이 성사된 사례도 있다. 구룡포는 해안 관광지로서 특색이 뚜렷하고, 호미곶을 중심으로 국가해양공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선 몇 가지 우려도 제기된다. 코스트코는 대규모 유통 구조를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영세 상권이 밀집한 구룡포에 입점하면 기존 상점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지역경제 균형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리적 측면에서도 과제가 있다. 포항 북구에 거주 인구가 더 많고, 구룡포 진입도로는 주말과 휴가철에 교통 혼잡이 심각하다. 이는 이용자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코스트코 내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북구 흥해읍은 입지 타당성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인구가 집중된 북구에 있고, 고속도로 및 KTX 접근성이 뛰어나 동해안 북부까지 상권 확장이 가능하다. 영일만항, 울릉도행 여객선 등과 연계한 복합 상권 형성도 기대된다. 인근에 신산업 거점이 있어 프리미엄 소비층 유입 가능성도 높다. 입지 논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과거 포항시는 전통시장 보호를 이유로 롯데마트 입점을 불허했지만, 이번엔 시가 주도적으로 코스트코 유치에 나서며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반된 정책 적용에는 투명하고 일관된 논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왜 지금, 왜 포항인가”에 대한 시민 대상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입점 효과는 특정 지역만이 아닌 포항지역경제 전체를 시야에 두고 설계돼야 하며, 장단점 공유와 함께 입지 선정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KTX역사 위치 선정이나 롯데마트 인허가 갈등처럼 미리 정해진 대답에 특정 계층, 특정 지역에 매몰된다면 코스트코 유치도 실패로 끝날 수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7-06

공공기관장 임기 재정리할 때다

공직자 물갈이가 쟁점이 된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4·19나 5·16으로 정권이 뒤집히면 집권 세력 자체가 바뀌었다. 신군부가 등장한 12·12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로 넘어간 때나, 다시 김영삼 정부로 바뀐 때도 고위 공직자가 대거 물갈이됐다. 그렇지만 개인의 영락으로 받아들였다. 김대중 정부는 달랐다. 1961년 5·16 이후 한 번도 여야 정권 교체가 없었다. 36년 만의 정권 교체다. 공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정권에게 새로운 선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이었던 한 인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공공기관장들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은 어떻게 해왔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일괄 사표를 받는 게 관례”라고 보고하자, 김 전 대통령은 “임기가 1년 미만으로 남은 사람은 임기를 마치게 하고, 그 이상 남은 사람은 사표를 받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전 공공기관장들에게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며 안심시켰다.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공공기관장 45.8%가 교체됐다. 한국방송공사(KBS) 등 24개 주요 공공기관장 가운데 1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같은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26명 중 6명(21.3%)이 물러났다. 다시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이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각계에 남아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추종 세력’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정부 기관장과 공기업 사장은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받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 권력이 언론계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독재로 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정권 교체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운 후유증이 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출범 초 공공기관장은 일괄사표를 냈다. 재신임과 교체 절차를 밟았다. ‘노무현 정부 사람은 써도 이명박 정부 사람은 안 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히 물갈이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 사람들을 국정농단 세력으로 몰아 쫓아냈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했다. 언론·문화계는 물론 심지어 법조계도 손을 댔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 혐의로 구속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파격 발탁했다. 사법부가 특정 연구단체 중심으로 재편됐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임기제 산하단체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넣은 것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그 이후 공공기관장들이 임기를 내세우며, 버티는 일이 반복됐다. 그뿐만 아니다. 퇴임을 며칠 앞둔 대통령이 임기 3년의 공공기관장을 ‘알박기’했다. 연봉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했다. 비행기에 역추진 로켓을 붙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59명이라고 국민의힘은 주장했다. 특히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방송통신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문제 됐다. 국정 방향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그런 윤석열 정부도 임기 말 알박기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도 공공기관장 54명을 ‘알박기’했다고 민주당은 파악했다. 공직의 정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정했다. 검찰총장의 임기도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정작 새 대통령의 공약을 추진해야 할 공공기관장이 전임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도 있다. ‘알박기’와 어깃장 놓기와 불법 물갈이를 주고받고 있다. 이참에 공공기관장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존중되어 마땅하다. 그 방향으로 공직자도 개편돼야 한다. 당장은 민주당이 국회도 장악하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럴수록 여야가 제도화에 합의할 기회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06

축제, 그 열기 속에서

장미축제에 갔다. 장미원 가까이에 가니 차량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비교적 먼 주차장인데도 이미 차가 꽉 차 있다. 한참을 돌다 어찌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서 장미원으로 갔다. 임시매표소를 여러 군데 만들어 놓아서 표 끊기가 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부스에서 여러 체험을 하고 있다. 저녁 무렵의 장미원은 낮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장미향이 코에 훅 들어온다. 265종의 장미 삼백만 송이가 피어 있다고 한다. 이 향을 좋아하는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 맡기에 바빴다. 어스름 지는 해를 바탕으로 경호원인 듯 나무들을 주변에 세워두고 한껏 자신을 과시하며 눈길을 끌어당긴다. 가족, 친지, 친구,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봄밤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꽃만큼이나 화사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앙의 분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꾸며 놓은 것도 특징이지만 장미원 근처를 둘러 싼 나무들, 연못이 더한 정취를 덧붙인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음악회가 있다 해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전 요원들이 배치되어 자칫 일어날 사고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도 인상이 깊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붐비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문득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강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군악대의 연주 소리에 트로트 노래 소리가 섞여 들린다. 조금 걷다보니 작은 무대에 젊은 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관객의 수는 20여 명 남짓. 소박한 작은 축제이다. 옆에서 트로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악기 소리가 파묻힐 정도이다. 몇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이름을 내건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악기 소리와 가수의 쨍한 소리가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얼른 발길을 돌렸다. 섞인 두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에 불과했다. 산책을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왜 같은 날 저리 가까운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축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와 함께 해 왔다. 초기에는 겨울의 어둠과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을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공동체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후 축제는 각 나라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국가 위주의 축제는 각 지자체로 넘어갔다. 지자체는 그 지방을 알리는 문화산업으로 인식하고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놀이문화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행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보령의 머드 축제, 화천의 산천어 얼음낚시 축제, 해운대 모래 축제 등은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리면 대부분 시간이 가면서 성공적인 모습을 갖춘다. 그것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일 년에 무려 16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축제 풍년이다. 비슷한 형태와 주제로 열리는 작은 행사들도 있는 것 같다. 축제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좋은 경험의 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비슷비슷해서 특징도 없고 전문성도 없다면 성공적인 모습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잠깐 시행되다가 스러지는 것이 아닌 전문성을 갖고 지방의 특색을 살린 많은 축제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무대 위에는 지역의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하고 있다. 중앙의 유명한 음악가가 아닌 지역의 음악가가 나와 더 좋은 듯하다. 아는 부분에서는 따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너와 내가 함께 해서 봄밤을 즐기는 모습이 따사롭다. 끝까지 앉아 있지 못하고 늦은 시간을 핑계로 일어서는 일행들의 얼굴에 진한 여운이 남아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보낸 것에 대한 행복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장미축제라는 말이 실감난 밤이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7-06

성주의 변화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행정을 맡아온 지난 시간 동안 늘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지금 이 변화가 군민의 삶을 바꾸고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사업보다 더 중요한 건, 군민이 체감하는 변화다. 민선8기 3년, 성주는 말이 아닌 ‘모습’으로 그 물음에 답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변화는 분명히 진행형이다. 도시의 골격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성주읍 터미널 자리에 조성한 ‘창의문화센터’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합실이면서 동시에 어린이집, 체육관, 영화관, 돌봄센터, 지하주차장이 함께 있는 복합생활공간이다. 성주의 중심이 다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단순히 건물이 새로 지어진 게 아니라, 공간을 쓰는 방식이 바뀌었다. 구 읍사무소와 농협 주차장, 체육관 같은 낡은 시설들도 어울림복합타운, 별의별 문화마당, 건강문화캠퍼스로 다시 태어났다. 면 단위 지역에도 복지회관 신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체력단련실, 동아리실, 여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공간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말보다 ‘다시 찾고 싶은 동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삶의 흐름도 달라진다. 어르신은 운동하러 나오고, 아이들은 영화 보러 들르고, 마을은 공동체의 온기를 되찾는다. 정비된 공간이 단지 시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일상을 지탱하는 배경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재생이 물리적 환경 개선을 넘어서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 지금도 현장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농업의 구조도 함께 바꿔나가고 있다. 성주의 상징인 참외는 이제 연간 조수입 6000억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기반이다. 농업예산을 900억 원 이상으로 확대했고, 참외 관련 지원도 3배 넘게 늘렸다. 그 과정에서 전국 최초로 비상품 참외를 수매해 액비로 전환하는 ‘자원화센터’를 만들었다. 농가의 부담은 줄이고, 고품질 유통의 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AI 스마트 선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수출 판로를 넓히기 위한 전략도 진행 중이다.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것을 넘어, 더 잘 팔고, 더 멀리 나가는 구조로 전환 중이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민감도와 준비 속도는 이제 행정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교통은 오랫동안 성주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다. 남부내륙고속철도 성주역 유치는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초기 계획에는 역 없이 단순 신호장만 설치 될 예정이었지만 , 군민들과 함께 지속적인 대응에 나섰고 결국 2022년 성주역 신설이 확정됐다. 또한 국도30호선 6차로 확장, 성주~김천 연결도로 추진 등 사통팔달 광역교통망 구축을 위한 사업들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지역발전의 가장 기본은 연결이다. 산업도, 사람도, 정보도 길을 따라 움직인다. 고립된 지역은 결국 경쟁력을 잃는다. 성주는 지금, ‘연결의 출발점’으로 바뀌고 있다. 교통이 바뀌면 투자와 인구 유입, 산업 확장까지도 차례로 따라온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것이 지금 시점의 중요한 과제다. 관광 분야는 처음부터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잡는 데 집중했다. 성주호는 그동안 산림보호구역으로 개발조차 쉽지 않았지만, 2023년 보호구역 해제를 이끌어 내며 본격적인 개발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52년 만에 가야산 국립공원 종주코스를 성주 구간에서 열었고,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테마파크 조성도 속도를 내고 있다. 관광은 단기간의 성과보다 긴 호흡으로 봐야 하는 분야다. 기반이 없다면 방문객은 흘러가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 숙박·체험·스토리까지 하나로 묶는 입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성주가 지닌 자연과 역사, 인물이라는 자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덧붙여 체류형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민선8기 3년 동안 집중해온 결과다. 그 이전 시기부터 행정의 뿌리를 다지고, 방향을 조율해온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보여주기식 변화가 아니라, 군민의 삶에 실제로 파고드는 변화여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은 1년은 변화의 마무리가 아니라, 생활 속에 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잘 띄는 사업보다, 그늘진 불편을 덜어주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말 달라졌다’는 말이 정책이 아니라 일상에서 나올 수 있도록, 작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더 많이 챙겨나가겠다. 행정은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성주의 변화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2025-07-06

치킨 마이크와 해병대원

“1945년 미국 콜로라도 양계장에서 대가리가 잘린 닭이 살고 있었다. 주인 로이드가 도끼로 닭 모가지를 내리친 뒤 몸뚱이만 살아서 대가리 없는 닭, 마이크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안창섭 시, ‘치킨 마이크’ 부분) 대가리가 잘린 채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마이크’를 꿈꾸며 멀쩡한 닭의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쳤다. 일확천금의 희박한 확률을 위해, 인간의 쾌락과 유희를 위해 수천마리의 닭이 비참하게 죽임 당한 것이다. 돈벌이 서커스의 목적으로 닭의 대가리를 자른 인간의 잔인함은 밀렵으로 멸종된 북부흰코뿔소와 절멸 위기에 놓인 호랑이, 마운틴고릴라, 향유고래, 마구잡이로 도살된 소와 돼지에게도 뻗쳤다. 인간은 다른 종들은 물론 인간까지 타자화해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전쟁을 일으켜 인간끼리 죽이고, 조화롭던 자연을 파헤친 폐허에 혐오와 갈등, 전염병과 집단학살, 그리고 방사능 오염수와 플라스틱 쓰레기만을 남겨두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시작된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인류세’라고 한다. 대개 지능이 낮은 사람을 가리켜 ‘닭대가리’라고 부르는데, 탐욕을 위해 전 지구의 황폐화와 생명체의 멸종을 초래한 인간은 스스로 제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친 “겁 대가리 없는 닭”이다. ‘치킨 마이크’는 곧 인간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근대적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술문명과 산업화, 자본에의 탐욕으로 망가진 이 세계를 인간의 손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근대주의는 자연스럽게 생태, 환경 담론과 이어진다. 근래 들어 전 세계의 관심사는 신유물론이다. 신유물론은 인간이 더 이상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동물, 식물, 유기물은 물론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등 비인간존재들이 새로운 주체가 되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꾸짖는 영화와 문학 작품들은 신유물론의 구체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이처럼 근대 너머로 나아가려하는데 아직까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근대적 지배논리에 뇌가 절여진 인간들이 있다. 전근대 아니 원시시대보다 더 끔찍한 그들의 야만적 행위는 인신공양에 미쳐 있던 중세 아즈텍인들의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경남 거제의 한 식당 마당에 있던 개들을 향해 한 시간 동안 비비탄 총을 난사한 20대 해병대원들과 그 일행 이야기다. 목줄에 매여 도망도 갈 수 없는 개들에게 수천 발의 비비탄을 쏴 결국 한 마리가 죽고 나머지 두 마리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나? CCTV에 촬영된 학살 장면을 보며 치가 떨렸다.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다. 그들은 예비 살인마다. 그런 짓을 해놓고는 “개들이 물어서 정당방위를 위해 비비탄총을 쐈다”며 비겁하고 졸렬한 핑계를 대는 걸 보니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만 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그 부모도 가관이다. “개값을 물어주겠다”는 망발은 제대로 된 인간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부모나 자식이나 다 ‘닭대가리’다. 아니다. ‘닭대가리’는 물론 “개보다 못하다”거나 “짐승 같다”는 말은 닭과 개와 짐승에게 실례다. 그 자식들과 부모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으며 나아가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도 안 될 악마적 존재들이다. 때로 공동체는 집단의 안전과 이익에 위협이 되는 이질적 존재들을 추방, 격리시킴으로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들의 악마 같은 학살 행위는 현대적 법 제도에서는 물론 비인간존재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포스트모던 신유물론의 담론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저 재미로 동물을 죽인 학살자이자 훗날 사람한테도 똑같이 할 예비 살인마들에게는 입대 무효처리, 징역형, 신상공개, 공공기관 취업제한 같은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다.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의 소속 부대는 피해자에게 “공론화시키지 말아달라”며 은폐를 시도했다. 국민들은 지금 철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군과 사법부를 지켜보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7-06

여름날의 마음가짐

요즘 자기 전 매일 취침 명상을 하고 있다. 정말 졸리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하고 자려고 하는 편인데, 오늘도 치열하게 산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순간이자 내일을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다 잡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유독 생각이 많은 걱정거리를 잠시 미뤄두기 위해, 또는 하루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도망친다면 오히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면을 보게 된다거나 오히려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잠이 들면 어쩐지 다음날 아침까지 피곤해지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정신과 몸 상태에 집중할 수 있는 명상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몸이 뒤척일 때마다 나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한한 어둠의 세계, 나는 두 눈을 감고서 내 방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고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내면의 깊이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시선을 돌려 이마의 한 가운데에 머무른다거나,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의 사이, 배꼽, 오른쪽 허벅지에 있던 시선의 무게를 왼쪽으로 옮겨가 잠시 머물러 볼 수도 있다. 생각을 몸에 집중하는 동안은 신기하게도 온갖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며 편안함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럴 땐 꼭 7년 전 여름, 더위를 피하려 찾은 경주 불국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불자들 사이, 기둥 옆에 몸을 숨겨 가만히 앉아 있었고 시원한 나무 바닥을 손으로 쓸며, 지금 내가 감내하고 있는 마음의 고통에서 조금 물러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한참 빌었다. 그 시간은 마치 전생이나 희미한 꿈결 같았고, 한참을 앉아 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예약해둔 경주 시내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그곳에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단 대학생 3명과 퇴사 후 홀로 경주를 찾았단 언니가 있는 6인실 방을 배정받았다. 우리는 주로 그때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었고, 앞다투어 그간 숨겨두었던 비밀을 구덩이에 발설하듯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마음은 가볍지만 어쩐지 묘한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무척 방황하던 시기였기에 그때의 힘듦을 눈을 감고 떠올리라고 한다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시큰시큰 아릿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또 다른 걱정과 새로운 불안으로 또다시 잠 못 들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덜 상처받고, 덜 노력하고, 덜 힘들지 않기 위해 나는 무척 애쓴다.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대도, 아니 어쩌면 더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힘을 내어 할 수 있는 것이 명상인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고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결국 스스로 찾은 적막 속에서 평안에 다다르게 된다. 순간을 알아차리고 편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동시에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더욱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면 드디어 하루의 스위치를 끌 수 있게 된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생각의 조절이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로워지며, 결국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선택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수 있게 된다. 내가 내 정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긴박한 상황이 오더라도 한 발자국 멀리 벗어나 사건으 바라보게 되고, 집에 돌아와선 온전한 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쉼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회사에서 내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들, 하루에 끝내야 하는 일과등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이 시간들이 내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저번주 주말엔 현재 내 마음가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여름의 경주로 향하는 기차를 끊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다 편히 몸을 뉘일 한옥 숙소도 마련해두고, 그곳에서 어떤 것을 먹을지 어떤 길을 걸을지 찾아보며 또다시 시작되는 한 주의 시작을 기다린다. 억지로 편안함을 이끌고 행복에 다가가기보단, 그저 힘을 빼고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 조금씩 노력하며 집중한다면 결국 내가 하려 했던 목표는 이루어지고 결국 편안함과 행복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여름날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윤여진(소설가)

2025-07-06

취향과 옳음, 그 사이

우연한 계기로 21년째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질병으로 죽으면 다시 길냥이를 들여서 많을 때는 네 마리를 키운 적도 있고, 지금도 12년 째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 기사에는 눈이 간다. 지난 2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이 A씨가 자기 반려견을 공격한 개의 주인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A씨 손을 들어주었다는 기사도 그 중 하나다. 피해견 견주는 개 치료비 80만원, 본인 손 다친 치료비 3만원에 위자료 200만원을 더해 283만원을 청구했는데 승소한 것이다. 사건 발생일이 2023년 9월이라고 하니 거의 2년 동안 재판한 셈이다. 이 기사가 특별했던 것은 A씨가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반려견과 교감해와 A씨에게 개는 가족에 준하는 존재였다고 했기 때문이고, 이 판결을 반대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위자료가 2백만 원일 수는 없으므로 재판부가 개를 실제 가족이라고 간주한 것은 아니다. 개가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해 견주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매체에서 뉴스로 다뤘다는 것은 위자료 지급이 여전히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댓글에는 판사가 사람과 개를 구분 못 한다는 비난부터 밴에 개 5마리 태우고 가면 버스전용차선으로 가도 되느냐는 조롱까지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실제로 현행 민법(98조)에서는 동물을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으로 본다. 그러나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와는 달리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때 주인은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이 죽은 뒤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상)을 겪는다. 그래서 이런 사고에 대해 법원도 정신적 피해 부분을 인정해준다. 위자료 산정을 둘러싼 논란에는 동물의 위상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담겨 있다. 키우는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주 글쓰기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는 주제로 쓴 글에도 이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동물 학대와 유기도 문제지만 지나친 동물 사랑도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설날에 강아지 떡국을 마련하거나 집을 비울 때 강아지를 비싼 호텔에 맡기기도 하고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화장하고 납골함을 마련하는 사람들의 세태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사람과 동물을 다르게 보는 것을 ‘종 차별’이라며 비판한다. 피터 싱어의 목적은 동물 착취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 논리를 확대해서 동물 복지를 추구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이런 이론을 동원할 것도 없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는 옳음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이기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의 취향이나 관심을 존중해야 하듯이 정말로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동물에게 인간 문명을 적용하려 드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동물들의 이익관심(interests)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피터 싱어의 말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06

기술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해야

지난 2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BBC방송에 고대 이집트인의 전체 인간유전체 서열(full human genome sequence) 분석 성공 기사가 실렸다. 1902년 이집트의 누와이라트에서 발견된 남성 유해의 치아에서 추출한 시료를 분석했다. DNA 분석으로 갈색의 눈과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피부색은 짙거나 검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뼈와 치아의 화학 분석으로 남성이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자랐으며, 동물성 단백질과 밀·보리 등을 먹은 것으로 분석했다. 60대에 사망했으며 키는 157.4∼160.5㎝로 추정했다. 남성의 DNA 중 이집트나 모로코 등 당시 북아프리카 쪽 혈통 80%에 메소포타미아 쪽 혈통 20%로 분석했다.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에 따르면 생존 시기는 기원전 2855년에서 기원전 2570년경으로 발표했다. 놀라운 과학기술이다. 5천 년도 더 지난 뼈와 이빨 분석만으로 얻은 결과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면 이것보다 더 한 일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영역을 대체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 IoT 기술, 로봇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서비스로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은 정확한 의료 진단과 성공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이다. 여러 분야의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로 우리 삶은 나아질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신뢰할 수 없다고 설문에 답했다. 이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부당한 사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도 하지만 한 순간에 인간의 문명을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 기술 개발이 우선이라 윤리적인 면을 다루는 기술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유전자 조작 기술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도덕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공지능의 사용으로 개인의 인권이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으며, 민감한 개인 정보의 유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생명윤리 문제를 불러온다. 과학기술과 정보의 불평등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은 과학기술 개발에만 중점을 두기에 많은 사람이 불안감을 느낀다. 과학기술의 성과에 급급해 우리에게 닥칠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이 시점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성급하게 개발에만 몰두하며, 앞으로 인간이 겪어야 할 심각한 부작용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개발 단계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넘어갈 때, 보다 건강한 과학기술의 토양을 다질 수 있다. 미래엔 인간이 중심에 서고 자연 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개발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측면만큼이나 기술의 부작용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7-06

李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 기대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한 달째를 맞아 연일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지난 4일 대전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으로 자원배분이 다 몰리면서 나머지 지역은 전부 생존 위기를 겪는 상황이 됐다“고 했고, 하루 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한달 기자회견에서도 앞으로 예산 배정에 있어 비수도권 지역 발전에 힘이 실리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거리에 따른 가중치 표를 만들어 정부 정책 결정, 지방교부세, SOC(사회간접자본)결정, 예산 배정을 할 때 지침으로 삼겠다”고 했다. 지방균형발전 영향분석을 법률상 의무화하는 방법도 고려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다양한 국가 현안 중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정책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 대부분 집권 초기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해 왔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됐다. 지역균형발전은 반드시 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대통령실이 광주 민·군 공항 이전 TF를 꾸려 문제 해결을 주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 K2 민·군공항 이전도 마찬가지지만, 대도시 군공항은 소음과 도심확장 제한 등으로 도시발전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군공항이전 사업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결국 국가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배분하는 과정이다. 지난 문재인·윤석열 정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해 왔지만, 수도권 여야 의원들의 막강하고 조직적인 파워를 이길 수 없어 물거품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정권과는 다르게 압도적인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민들은 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2025-07-06

천재와 범재(凡才)

얼마 전에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아마데우스’는 1984년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1985년에 개봉되었다. 당시 나는 음악에 문외한(門外漢)이었는데, 동생이 입장권을 구해준 덕에 난생처음 음악영화를 보는 귀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실은 16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영화에 몰입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불세출(不世出)의 천재 작곡가다. 그의 적대자로 설정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모차르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재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영화 전편(全篇)에 깔린 살리에리의 절망적인 한탄과 출구 없는 상황은 마침내 그를 치매 수준의 노인으로까지 몰고 가는 극적인 결말로 우리를 인도한다. 40년 전 ‘아마데우스’를 처음 보았을 때나, 이번에 다시 보고 나서도 나를 사로잡는 문제의식은 천재와 범재에 관한 것이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어떤 특별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를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밀로스 포만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면모를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모차르트는 집 안에 있는 당구대에서 공을 굴리면서, 아내와 잡담을 해가면서 능수능란하게 작곡한다. 반면에 살리에리는 오직 작곡에만 몰두하면서 하나하나의 음을 직접 피아노로 확인해야 근근이 작곡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저한 대조가 영화 전편에서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남달리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식에게 가혹할 정도로 음악 훈련을 시켰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에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시기하고 선망하는 살리에리의 신을 향한 분노와 바닥 모를 절망이 강조된다. 그런 까닭에 관객은 천재 모차르트와 범재 살리에리 사이의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간극(間隙)을 곳곳에서 확인한다. 천재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는 만화가 이현세 선생의 일화로 들었다. 타고난 만화가의 자질을 가진 동료의 아스라한 높이에 전혀 미칠 수 없었던 이현세는 하루에 100장씩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년 동안 그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이현세는 천재 동료가 넘을 수 없던 절망과 탄식의 관문을 먼저 통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리에리와 이현세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소회는 단출하다. 그것은 거대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해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다. 사람들은 피눈물 나는 처절한 연습과 반복으로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르는 초인적인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그것은 딴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은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범재로 이뤄져 있다. 양자의 조화로운 공존과 협력으로 세상은 전진해왔다. 다수 범재가 소수 천재를 겁박(劫迫)하는 21세기 정치지형은 우리에게 ‘아마데우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속삭인다. 다수와 소수가 공영하는 세상을 꿈꾸는 아침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06

일본의 지진 괴담

지난 3일 일본 가고시마현 남단에 있는 오카라 열도에서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최근 10일 동안 무려 1000회 이상의 지진이 발생, 일본인들을 긴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다. 실제로 지진 피해도 컸다. 일본 남서부 해안을 따라 형성된 난카이 해저협곡은 필리핀판과 일본판이 충돌하는 곳으로 100년-150년 주기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주목받는다. 일본 정부도 앞으로 30년 내 이곳에서 80%의 확률로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사망자가 3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도 했다. 최근 오카라 열도에서 일어난 지진은 일본의 인기만화 예지몽 속의 지진예측과 심해어의 연이은 출몰 현상과 맞물려서 일본 사회에 신빙성 있게 지진설을 유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카라 열도에서의 지진과 난카이 대지진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지진 발생에 대비하라는 당부는 한다. 일본은 2011년 2만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과 그와 유사한 지진 피해를 경험한 나라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익숙하지만 강한 트라우마다. 최근 대지진 괴담이 퍼지면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확 줄고 있다. 일본은 지질학적으로 대형지진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일본의 지진 괴담이 괴담으로 그친다면 다행이겠으나 실제로 일어난다면 일본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학계서는 일본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 대공황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를 한다. 국제사회가 일본 지진 괴담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6

부산 어린이 화재사고 남의 동네 일 아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남겨진 자매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부산에서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2일 밤 11시쯤 부산시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8살, 6살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4일에도 부산시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 10살, 7살 자매가 숨진 일이 있었다. 불과 10여 일 만에 똑같은 사고로 어린이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자 우리 사회가 크게 충격에 빠졌다. 두 사고는 모두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안타깝게 했다. 또 노후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비한 초기 진압장비가 없었던 점도 비슷하다. 사고 경위를 꼼꼼히 살펴 정부 차원의 근본대책을 마련해야겠다. 정부도 부산 어린이 화재 참변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고, 우선 저소득가구를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집중 지원하고, 심야돌봄에 대한 수요 조사도 벌이기로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복지부의 아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주 양육자가 아동을 방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6.5%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수급 가구의 방임 경험 비율은 38.9%로 일반 가구보다 1.5배나 높았다. 또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경우 방임 비율이 30.7%에 달해 20%를 기록한 다른 소득구간보다 높았다 고 한다. 위의 조사를 근거로 보면 저소득 맞벌이 가구에서 어린이 방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경제활동을 위해 부모가 모두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고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취약점이 보완돼야 하는 문제도 있으나 저소득 가구의 어린이를 보호할 심야돌봄이나 아동청소년 야간보호 사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이번 아파트 화재 어린이 참사가 부산에서 일어났지만 전국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부산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지자체 등은 적극적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2025-07-06

울릉도 ‘중국 쓰레기 천국’ 이라 한 일부 미디어… 더 고민하고 보도했어야

환경단체인 환경재단이 울릉도 청년들과 함께 최근 울릉군 북면 현포리 웅포에서 드론을 이용한 과학적 해양쓰레기 수거에 나서 약 158l 규모의 해양오염 쓰레기를 수거했다. 이번 수거된 해양쓰레기는 낚시줄, 폐로프, 스티로폼, 페트병, 부표 등 어업 관련 쓰레기가 대부분이고, 생활 쓰레기 플라스틱 용기, 비닐류도 다수 있었다. 국적 확인 가능한 수거물중에서는 중국산 해양쓰레기가 85.1%를 차지했다. 국내 일부 미디어는 이를 문제삼았다. 울릉도가 마치 중국에서 버린 쓰레기로 큰 몸살을 앓는 것처럼 보도했다. 중국산 쓰레기로 인해 울르이 망한 것처럼 비쳐지게 한 것이다. 제목은 삽질이라도 하듯 더 어이없었다. ‘이건 정말 끔찍하다’ ,물이 가장 깨끗한 ‘울릉도’…중국 플라스틱’ 여기 울릉도 맞아?, 이러다 ‘中 쓰레기 섬 될 판’ 분통, ‘중국 때문에 망했네, 청정 울릉도에 쌓인 이것’이라는 등을 달아 네티즌들을 자극했다. 또, ‘중국 때문에 다 망했다’…‘세계 최고 수질’ 울릉도에 가득 쌓인 ‘이것’ 뭐길래? 등 자극적인 제목들이 줄을 이었다. 울릉도는 이제 청정지역이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둔갑했다고 앞다투어 보도한 것. 울릉도의 수질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의뢰한 ‘추산용천수 먹는 샘물 개발’ 용역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울릉도에서 분출되는 용천수는 생수의 생명이라고 할 미네랄 성분이 육지 생수보다 월등하고 풍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울릉 군민들도 우리나라에서 물이 가장 깨끗한 것으로 유명한 곳에서 사는 것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이러함에도 이번에 일부 미디어는 먹는 물까지 시비삼아 수질 명성을 잃고 해양쓰레기로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군민들도 어이없는 험 잡기를 보고 기가 차다는 반응이다. 특히 일부 매체는 해양쓰레기에 대해 소설같은 논리를 만들기도 했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운데다 장마로 육상 쓰레기가 늘어나는 데 더해 중국·일본 등 인근 나라에서 건너온 쓰레기들까지 울릉 해역에 넘쳐난다고 보도했다. 과연 맞을까? 울릉도 북쪽 지역은 북한이다. 그러다보니 북한수역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버린 쓰레기가 간혹 떠내려오기도 한다. 또 발견되는 쓰레기를 보면 일본에서 올라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북한과 러시아 사이 해안선 일부가 있는 중국 본토 쓰레기가 울릉도에서 발견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번 수거된 쓰레기는 전체량은 1.8l 88개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출처가 확인된 페트병 등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분석하니 이중에 85%가 중국 쓰레기였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 쓰레기가 울릉도를 쓰레기 천국으로 만든 배경이 됐다. 울릉도는 동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섬 둘레가 60km에 이른다. 해안을 안은 섬에는 계절과 바람에 따라 북한, 일본, 강원도 등 한반도에서 쓰레기가 밀려오기 일쑤다. 그게 자연의 순리고 법칙이다. 이번에 중국 쓰레기가 85% 차지한 것은 중국 오징어 쌍끌이 어선 수백 척이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면서 버린 해양쓰레기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일치된 의견이다. 어선에서 버린 쓰레기가 언론보도 처럼 울릉도가 난리 날 정도로 오염될 쓰레기는 아닐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울릉에서 사단이 난 것처럼 보도됐다. 이번에 확인된 중국 쓰레기는 대부분 떠 다니는 플라스틱 종류로 확인돼 북한 수역내 조업 어선들이 내다버린 것임을 더욱 자명케 한다. 북한수역에서 중국어선들이 버린 쓰레기가 하더라도 전부 울릉도까지 도달하는 것은 성립불가능이다. 울릉도에 떠밀려 오기도 하지만 북한, 일본, 러시아 연안 등으로도 밀려간다. 북서풍 등 바람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국내 일부 미디에에서 호들갑 떠는 만큼 울릉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작은 쓰레기라도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울릉도는 동해 한 가운데 위치하고 한반도, 일본, 중국, 러시아가 에워 싸고 있어 일정 부분은 감수해야하고 주민들도 당연시 받아들인다. 특히, 울릉 샘물은 중국 해양쓰레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이번에 수거한 1.8l 페트병 88개 분량의 쓰레기가 울릉도를 오염시킬 정도는 아니다. 일부 미디어의 호들갑이 오히려 울릉도를 더 심각하게 오염시킨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7-06

‘러브버그’

올여름 수도권은 때아닌 ‘사랑 벌레’, 즉 ‘러브버그(Lovebug)’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짝짓기 상태로 날아다니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이런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지만, 도심을 뒤덮은 개체 수에 시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잦은 비 등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러브버그’가 대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수도권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이 도시 해충의 공습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도 ‘러브버그’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 지역 역시 기후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해충 문제에 대한 선제적인 대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브버그’는 다행히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거나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충 시절에는 숲 바닥의 낙엽과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성충은 꽃의 꿀을 빨며 수분 활동을 돕는 등 생태계에서는 ‘익충’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 도시에서의 대량 발생은 이야기가 다르다.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관을 해치고, 건물 외벽이나 창문, 자동차 등에 달라붙어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 특히 산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나 공원 주변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며, 사체는 자동차 도장 면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이는 생태계 교란의 신호탄이자,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수도권 지자체들은 ‘러브버그’의 대량 발생에 방역소독 위주의 ‘사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 방역은 ‘러브버그’뿐만 아니라 꿀벌과 같은 다른 유익한 곤충까지 없애 생태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수십 년간 ‘러브버그’를 겪어온 미국 플로리다주는 화학적 방제보다는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와 시민 교육에 집중한다. ‘러브버그’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가 자연 소멸하는 단기적 현상임을 알리고, 자동차 보호 덮개 사용법이나 친환경 벌레 퇴치법 등을 안내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법은 무분별한 방역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제 대구·경북 지역도 ‘러브버그’를 포함한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도시 해충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단기적인 방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선 우리 지역의 ‘러브버그’ 발생 현황과 서식 환경에 대한 정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방제 기술을 개발하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행동 요령을 제공하는 체계적인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원과 녹지 조성 시 해충의 대량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식물 종을 도입하는 등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생태적 고려를 포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러브버그’의 등장은 우리에게 불편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중요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은 곤충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03

최고의 효심

‘禮記’에 나오는 불효의 3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혼인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것. 둘째,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무조건 부모의 의지를 쫓아 부모가 옳지 못한 데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무조건 선물이나 안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선물도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와라. 고르기가 귀찮고 힘들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가 그 돈으로 알아서 잘 사용을 할게. 어찌 되었든 ‘효’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고 빨리 시집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효가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대를 잇는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첫 번째는 ‘혼인하지 않는다.’ 는 말에 방점을 찍어 불효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뿌린 부좃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들어오는 부좃돈은 다 부모 돈이고,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오는 돈은 너희들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쓸데없이 좋은 날 침 바르는 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을 잘 봐라. 그 옛날에도 자식들이 부모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그만두고 빈둥빈둥하는 꼴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리라. 네 놈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병간호 받기 싫다. 그냥 내가 아프면 예쁜 간병인 구해다 붙여주면 된다. 너희는 열심히 일해서 간병인 인건비만 보태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특히 유념할 것은 내가 병실에 누웠다고 네 엄마보고 나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 아비의 간절한 망부가(望婦歌)로 알면 되겠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다면 이건 불효 중의 불효라고 알면 되고 돈 아낀다고 얼굴 안 보고 간병인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조건이 많이 헷갈릴 것이다. 요즘 덜떨어진 노인네들은 ‘충’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데 충(忠)의 개념이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고 맹자라는 분이 분명히 정의하였다. 그래서 군신이 없는 지금엔 ‘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국민이 ‘충’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정자들이 지네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는 핑계로 교묘히 활용하고 있고 일부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추종하는 꼴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조건 ‘부모 말’이라고 해서 따라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물레 다방 김 마담에게 빠져 술이나 퍼먹고 도박을 일삼고 있으면 말려야지 아비의 권위를 위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수천 년 전에 말이 어떻게 오늘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게 쓰였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마치 ‘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그녀가 산에 간 이유가 바로 죽은 자기애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시에 엉망진창이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나도 몰래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서 일종의 환희심까지 생긴다. “아빠, 결론이 뭐고?” “그냥 돈으로 달라는 거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