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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림으로 보는 조선 풍속도

지난 연말 ‘청도 인문학’ 종강하는 자리에서 어느 수강생이 툴툴거린다. 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12월 하순에 종강해서 2월 하순에 개강하는 것이니, 두 달 남짓한 기간이 방학이다. 이것은 여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한겨울과 한여름의 휴식은 필요하다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게 여겨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필시 열렬한 수강생 아닐까?! 잠시 생각을 고른 나는 방학 중에 두 번 정도 인문학 특강을 함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반색하며 ‘청도 인문학’ 수강생이 아닌 일반 군민들에게도 청강의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듣고 보니 아주 생산적인 발상이다. 그리하여 청도 도서관장과 과장, 그리고 실무자와 협의한 끝에 1월 20일과 2월 3일 오전에 도서관 강당에서 특강이 이뤄졌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동서양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선지 그림과 관련한 서책을 조금 읽은 편에 속한다. 한겨울에 열리는 인문학 강연 주제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림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혜원 신윤복과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한다. 1970년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 전신첩’에 실린 30점 풍속화 가운데 8점을 준비한다. 언젠가 큰아들 덕분에 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긴 제목의 서책에서 나는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조선 후기의 풍속과 만났다. 아주 평이하고 곡진한 글월로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독자들에게 날로 어지러워지는 조선 하대(下代)의 풍정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월하정인’이 눈길을 잡아맨다. 한여름 달밤에 두 남녀가 양반댁 담장 앞에서 은밀하게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림이다. 문제는 야삼경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기묘한 모습의 달이 하계에서 희롱하는 남녀의 통정(通情)을 굽어보는 것이다. 저 달의 본령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처음 ‘월하정인’을 보았던 당시 나는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원근법(遠近法)도 없고, 정체 모를 달은 떠 있고, 한문이 보란 듯 찍혀 있는 생소한 그림. 1793년 8월 21일 한양에서 일어난 부분월식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란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낯이 화끈거린 기억이 새롭다. 원근법이 금과옥조도 아니고, 그림과 화제(畫題)가 어울리는 전통 역시 나의 무지를 확인해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고는 하나, 혜원이 활동했던 시기의 조선은 그야말로 무너져가는 나라였다. 일반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지만, 풍족한 양반들의 법도는 나날이 어지러워진 세월이었다. 자유분방한 혜원은 그런 양반들과 기생들의 한바탕 풍류를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조선 생활상을 곡진하게 그려낸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담대한 구도, 적나라한 시선을 감추지 아니하는 정직한 화가의 시선을 유지한 혜원 신윤복. 그의 화첩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준다. 제한된 시공간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넌지시 귀띔하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8

속기록이 남긴 책임

의회에서 ‘속기록’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얼마 전 동료의원이 만난 한 민원인이 “건설 쪽에 그 여자 의원이 지역 업체에도 공정하게 수의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의 말이었기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속기록을 꼼꼼히 챙겨 보는 시민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책임감이 더해졌다. 의회에서 한 말 한마디, 남겨진 기록 한 줄이 시민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지난주 금요일 포항시의회 본회의장은 바로 그 ‘속기록’이 던진 파문으로 크게 흔들렸다.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연구모임의 세미나 비용 76만 원을 전액 회수 조치한 것이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연구모임 ‘블루오션’이 애초 사업계획서에는 환경과 기후 정의를 주제로 활동하겠다고 제출해 놓고, 실제로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초과이익 환수와 관련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 계획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회의의 내용은 속기록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몇 장의 속기록만으로 회의 전체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속기록을 살펴본 다수 의원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라는 것이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민간공원 특례사업 초과이익 환수’ 문제는 이미 건설도시위원회에서 중간보고까지 진행된 환호공원 타당성 용역이 출발점이다. 현재 포항에는 상생공원, 환호공원, 학산공원 등 3개의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제도 취지상 공공성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비공원 지역의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개발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초과이익을 환수해 공공기여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블루오션 연구모임이 진행한 세미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초과이익 환수를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해당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변호사를 초청해 제도적 쟁점과 정책 대안을 논의한 것이다. 만약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해당 세미나가 연구모임의 애초 취지인 환경·기후 정의,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전혀 무관하고 부적절했다면 환수 조치는 정당할 수 있다. 문제는 운영위 속기록을 살펴볼 때, 그 엄격함의 잣대가 모든 연구모임에 동일하게 적용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국민의 힘 연구모임에는 관대하고, 민주당에는 엄격했다”라는 정치적 공방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정하고 엄격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날 본회의장에서 한 선배 의원의 제안처럼 10대 의회에서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모임 심의위원회를 두어 ‘셀프 심사’의 한계를 보완하고, 특정 사안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의원은 제척과 회피를 통해 심의의 공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을 말한다면, 그 말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속기록은 결국 기록이지만, 동시에 책임이다. 의회가 시민 앞에서 지켜야 할 책임은 ‘말의 기록’이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어야 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2-08

골목길

1970년 초 나에게 동네 골목길은 지금 축구장의 절반 크기였다. 또래 아이들과의 모든 놀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기억으로 가득하다. 반골 축구, 자치기, 마리, 구슬치기, 연탄 던지기 심지어 야구까지 안되는게 없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보다도 동네 골목길에서 어울린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옛 생각에 동네 골목길을 찾았다. 어른 두 명이 지나가면 꽉 차 보이는 이 좁은 길을···. 그때는 그렇게 작은 몸이었던가. 이제는 보기 힘든 흙투성이 골목길에서 친구, 동생 그리고 형들과 함께 밤늦도록 누비던 그 길에서 나는 우리 동네 어른들과 집마다 키우던 강아지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그때의 부모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차 몇 대 다니지 않는 70년대의 2차선 도로는 한참을 걸어야 건너는 대로였다. 그 길 건너 골목길 한쪽 편 우리 집 마당 작은 꽃밭의 한가운데 풍성히 그리고 담벼락에 잔뜩 기울어 뾰족이 담 밖을 내다보는 검붉은 장미와 조금조금 경계 지어진 꽃밭 돌 틈 사이로 소담소담 올라온 노랑 빨강 채송화가 한창일 때의 향기로운 기억의 냄새가 나를 감싸며 옅은 미소를 배어나오게 한다. 길지 않는 좁다란 골목길에서의 추억들이 지금보다도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으로 남아있다니 행복했던가 보다. 옛 모습과 비슷이 남아있는 큰길 건너 첫 번째 모퉁이 돌아 세 번째 집 그리고 딱딱한 회백색 시멘트 깔려진 그때와 다른 골목길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공간에 오롯이 남아있는 골목길은 여전하다. 골목길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었다. 그곳은 삶이 이루어지는 가장 낮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자,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생활의 무대였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이자 교실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계획되거나 설계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관계와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문화의 핵심은 ‘우연한 만남’에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치고, 의도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쌓인 관계가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고, 다툼을 해결하며 사회를 배웠다. 경쟁보다 어울림이 먼저였고, 효율보다 관계가 우선이었다. 골목은 삶의 속도를 여유롭게 늦추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골목은 점점 사라지거나 기능을 잃었다. 흙길은 시멘트로 덮였고, 놀이는 위험과 소음으로 규정되었다. 골목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실내와 조그마한 화면 속으로 옮겨갔고,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졌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편리함이었지만, 그만큼의 공백도 함께였다. 이제 다시 골목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골목은 지역 문화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의 골목은 변했을지라도, 기억 속 골목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기억은 한 개인의 추억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싶은지를 이야기한다. 골목길 문화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감각이자 특별한 공간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2-08

날뛰는 시처럼, 말 달리는

책만 한 함선은 없다 우리를 먼 땅으로 데려다주는 시 한 편처럼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 여행은 가장 가난한 자도 통행세 없이 갈 수 있도다 얼마나 검소한 마차인가 인간 영혼을 실어 나르는 이 전차여.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 ╾ This Travel may the poorest take Without offence of Toll ╾ How frugal is the Chariot That bears the Human soul. ―Emily Dickinson, ‘There Is No Frigat Like a Book’ 전문 (ALLIE ESIRI, A POEM FOR EVERY DAY OF THE YEAR) 1455년 2월 23일은 구텐베르크 성경의 첫 인쇄일로 여겨진다. 대량 생산된 최초의 책으로 약 180부가 인쇄되었다. 따라서 이날은 책의 탄생일이다. 인쇄기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세상을 바꾼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 그것은 중세 성직자의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는 혁명의 서막이었다. 미국의 위대한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책과 문학을 기리며 이 짧은 시를 썼다. 비록 그녀 생전에는 단 일곱 편의 시밖에 발표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책은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먼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함선이라고 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한 소년을 향해 좀 더 먼 곳으로 말을 달려보자. 곧 초현실주의 스페인의 국민 시인으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를 만날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고 종종 꿈결 같은 이미지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 초기에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암살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반지로 만들어 그가 내 침묵을 새끼손가락에 끼게 하리라.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포로가 된 목소리는 멀리서 귀뚜라미 옷을 입었다. “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king of the cricktes had it.)/ I do not want itn for speaking with; I Will make a ring of it/ so that he may wear my silence/ on his little finger/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captive voice, far away, put on a cricket’s clothes. (‘The Little Mute Boy, Federico Garcia Lorca, translated by w.s. Merwin’)”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혹은 우리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비극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로르카에게 있어서는 침묵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마저 중요했을 것이다. 먼 데 시인 아니어도 가까운 동네 프리미엄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시인 김수영이 순경을 보자마자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라며 절을 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문제는 시인이 술이 깬 다음 날 불안했다고 하는 고백에 있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불신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때 느끼는 공포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혁명은 가르시아 로르카와 김수영을 경유해 이곳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떤 권력의 장이든 다르지 않다. 최근 항일운동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박열’에서 하네코 후미코의 마지막 변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이 대사는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우리가 나눈 모든 것들이 우리를 증명한다”라고 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암투하는 비본질이 본질을 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희정 시인

2026-02-08

환각 현상의 메커니즘 - 믿되 확인하라

인공지능(AI)의 환각 현상 즉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과 관련된 실험 결과를 발표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MIT 그리고 보스턴 컬설팅 그룹(BCG)이 함께 진행한 연구 내용이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 소속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신사업 제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실험 결과였다. 실험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그룹과 AI를 사용하는 그룹, 그리고 AI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교육을 받은 그룹 등 세 그룹으로 나뉘어 수행되었다. 결과를 살펴보면, 창의적 아이디어 과제에서는 AI를활용한 그룹들의 성과가 40% 높게 나타나 AI 활용의 효용성을 확인했지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을 도출하는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한 컨설턴트그룹의 정답률이 오히려 19%포인트나 떨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 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AI가 언급한 ‘그럴듯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AI는 잘못된 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너무나 유려하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썼고, 엘리트 컨설턴트들조차 그 완벽해 보이는 문장에 속아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AI의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다. 마치 사람이 환각을 보듯, AI가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AI가 거짓말을 할 때 전혀 망설임이 없고, 오히려 전문가조차 속을 만큼 자신감 있게 답한다는 점이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의 유형 환각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사실 왜곡형으로서 존재하는 정보를 틀리게 전달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례 :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고,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다”는 맞지만,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실제 1446년)”고 하면 틀린 것이다. 둘째는 정보 날조 형이다. 즉, 없는 정보를 만드는 경우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통계를 진짜처럼 꾸며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맥락 오류형이다. 정보는 맞지만, 맥락이 틀린 경우다. 사례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맞지만, 수상은 광전효과로 받은 것이었다.” △왜 AI는 자신감 있게 거짓말하는가? 환각 현상의 원인은 AI의 작동 방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Chat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사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음에 올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기계라는 말을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확률 기반 토큰 예측의 함정으로 인하여 AI에게 “세종대왕은 무엇을 만들었나?”라고 물으면, 다른 여러 가지 발명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 데이터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훈민정음’을 선택한다. 문제는 AI가 이것이 ‘진실’이라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결된 단어이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를 ‘패턴 매칭’이라 한다. AI는 특정 질문에 대하여 “~일지 모른다”라고 답하기보다, 부족한 정보를 비슷하고, 그럴듯한 정보를 채워 넣고, “아마도” 같은 표현보다는 학습된 단정적인 표현에 근거하여 거짓말을 아주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자. “판사님, AI가 진짜라고 했습니다.” 환각 현상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알아보자. 30년 경력의 베테랑 법조인을 무너뜨린 사건을 그 예이다. 2023년 6월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스티븐 슈워츠라는 변호사는 아비앙카 항공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며 ChatGPT를 활용했다. 그는 AI에게 사건과 비슷한 “항공 사건 판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AI는 ‘바르기스 vs. 중국 남방항공’, ‘샤브리안 vs. 이집트 항공’ 등 그럴듯한 사건 판례 6건을 제시했다. 문제는 판례들이 모두 가짜였다는 점이다. 슈워츠 변호사도 의심을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AI에게 질문했다. 당시 대화 내용 중 AI의 확신에 찬 거짓말은 충격적이다. 변호사: “이 판례들(바르기스 사건)이 진짜 존재하는 거야?” ChatGPT: “네, 그렇습니다. 웨스트로(법률 DB) 및 렉시스넥시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변호사: “다른 판례들도 가짜가 아니지?” ChatGPT: “물론입니다. 제가 제공한 판례들은 실제 존재하며, 주요 법률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I의 너무나 확신에 찬 대답(“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에 변호사는 의심을 거두고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상대측 변호사와 판사가 아무리 찾아도 해당 판례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이 AI의 창작 소설임이 밝혀졌다. 슈워츠 변호사는 AI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벌금(5000달러)을 물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렇기에, 우린 환각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줄이는 프롬프트 활용의 구체적 예시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당분간 환각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지만,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으면 거짓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난주 배운 프롬프트 기법들을 활용해 환각 현상을 없애는 질문을 만들어보자. ▲첫 번째 질문 전략 : 불확실한 표현을 못 하도록 하라. AI는 스스로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억지로 답을 만들어내려는 성향을 억제해야 한다. [나쁜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의 성공 요인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450년 세종은 ‘조선통보’ 사용을 의무화하며 성공적인~” (사실 여부가 섞여 있어 구분이 어려움) [좋은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에 대하여 설명해 줘. 단, 역사적 사료로 확실히 검증된 내용만 포함하고, 불확실하거나 이견이 있는 부분은 반드시 ‘학계의 이견이 있음’ 또는 ‘확인이 필요함’이라고 명시해 줘.” [개선된 답변] “조선 초 화폐 개혁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실물 경제와의 괴리로 인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이견 있음). 태종 때 저화(楮貨), 세종 때 조선통보가 발행되었으나~” (신중하고 객관적인 서술) ▲두 번째 전략 : 출처(Source)를 확실하게 언급하도록 요구하라. 출처를 요구하면 AI는 답변 생성 과정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한 번 더 검증하게 된다. [나쁜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e-commerce) 시장 시장 점유율 순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위 A사 40%, 2위 B사 35%~” (학습된 데이터나 임의의 추정치를 섞어서 답함) [좋은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알려주되, 공신력 있는 기관(통계청, 공정위, 주요 연구(Research)센터)의 발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해 줘. 각 수치 옆에 [출처: 기관명, 연도]를 표기하고, 정확한 최신 데이터가 없다면 ‘최신 데이터 없음’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줘.” [개선된 답변] “정확한 2024년 확정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2023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A사와 B사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략 : 단계별 검증(Chain of Verification)을 유도하라. 한 번에 결론을 내라고 하면 AI는 성급해진다. 사고의 과정을 나누면 거짓말할 확률이 줄어든다. [나쁜 질문] “이 계약서 독소조항 찾아줘.” [AI의 환각 답변] “제5조 2항은 불공정합니다.” (근거 없이 무작정 지적하거나, 멀쩡한 조항을 트집 잡음) [좋은 질문] “너는 전문 법률 검토 AI야. 이 계약서를 제시하는 단계에 따라 분석해 줘. 1 단계: 계약서의 모든 조항을 요약한다. 2 단계: 현행 상법 및 표준계약서와 비교하여, 계약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다. 3 단계: 2단계에서 찾은 내용이 왜 위험한지 법적 근거와 함께 설명한다. 근거가 불확실하면 제외한다.“ [개선된 답변] “단계별로 분석하겠습니다. 1단계 요약~ , 2단계 불리한 조항 발견: 제10조 ‘계약 해지 시 즉시 전액 배상’ 문구는~ , 3단계 법적 근거: 이는 약관 규제법상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 부과’에 해당할 소지가 있습니다~“ ▲응답 검증 및 확인 방법, 이중 확인을 생활화 하자. AI의 답은 ‘초안(Draft)’일 뿐, 결코 ‘최종안(Final)’이 아니다. 다음 3단계 검증을 습관화해야 한다. ·원문 대조(Source Check) :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의심하라. 통계청, 국가법령정보센터, 다트(DART) 등 원천 데이터가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 인공지능(AI)이 말한 숫자가 맞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교차 검증(Cross Check) : 하나의 AI만 믿지 말라. 예를 들면, ChatGPT 에게 물어본 내용을 Gemini나 Claude 등에게 똑같이 물어보라. 세 AI의 답변이 일치한다면 신뢰할 수 있지만, 서로 딴소리를 한다면 셋 다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확인(Expert Check): 스티븐 슈워츠 변호사의 사례를 잊지 말자. 법률, 의료, 세무, 안전 설계 등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의 답변을 참고만 하고, 반드시 인간 전문가의 최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믿되 반드시 확인하라. BCG의 유능한 컨설턴트도, 30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 슈워츠도 AI의 ‘자신감 있는 거짓말’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는 AI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언어의 확률’을 계산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AI는 진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말을 잘하는 기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용운 계명대 교수·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2026-02-08

‘윤 어게인’도 모자라 ‘도로 민정당’인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좌우에 세워놓고 민주자유당(민자당) 창당을 발표했다. 5공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두 야당의 ‘3당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민정당은 궁지에 몰렸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까지 정보기관이 만들어준 1, 2, 3중대 체제가 무너진 건 물론이다. 제1당 프리미엄 덕분에 겨우 과반을 유지했다. 서울에서 민정당이 27.3%를 얻은 데 반해 신민당은 43.9%를 얻었다. 거센 민주화 요구에 몰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양 김 씨가 표를 쪼개면 민정당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해 대선에서 조직과 돈을 모두 동원한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했다. 그러나 국회는 달랐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민정당이 33.96%를 얻어 사상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만들어졌다. ‘5공비리조사특위’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등이 설치됐다.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불려 나온 뒤 백담사로 쫓겨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됐다. 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이 확정됐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를 숙청해 쿠데타 가능성을 봉쇄했다. 까마득한 과거사가 된 그 시절을 돌아본 것은 최근 국민의힘 정체성 때문이다. 신군부 주역이었던 전·노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자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친위쿠데타에 실패했다. 법 규정을 따질 것도 없다.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은 정치학의 기초만 배우면 안다. 히틀러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고 한다. ‘패군지장 불어병’(敗軍之將 不語兵). 패배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느니, 국회의 횡포 때문이라느니, 우매한 국민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격하 운동을 벌였다. “정당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 불신을 초래한 체제”라며,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했다.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으로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다. 5공을 청산한 이후 보수 정당은 참회와 변신의 노력을 해왔다. 민주화 세력을 수혈하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었다. 천막당사의 고난도 견뎠다. 그런데 다시 전두환을 복권하자는 소리가 나오니 어리둥절하다. 경제민주화를 빼고, 반공을 넣는다는 말도 나온다.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중심에 모시자는 ‘윤 어게인’이 주류가 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물어 제명하고, 그 징계를 반대하면 같이 자리를 걸고 당원 투표를 해보자고 겁박했다. 윤 전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잘못됐다는 데는 장 대표도 동의했다. 해제 투표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윤 어게인’으로 치닫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을 잊으면 안 된다. 친위쿠데타를 했어도, 정권을 지키기 위해 탄핵하면 안 된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국민의힘 당사에서 YS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더 이상 그곳에 걸어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대표와 가까운 최고위원이 최근 영입한 한 유튜버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논의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반윤은 자리를 걸고 응징하면서, 극우 목소리에는 관대하다. 보수 정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은 5·18 묘지에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이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쳤다. 그런데 모든 걸 다시 되돌리자는 세력이 있다. 민정당의 34%로 돌아가자는 건가. 그보다 더 쪼그라들어도 당권만 쥐면 된다는 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2-08

[역사 에세이] 공신(功臣)인가 공신(空臣)인가, 임진왜란 원균을 둘러 싼 논쟁

임진왜란을 떠올릴 때 원균(元均)이라는 이름은 거의 반사적으로 ‘칠천량의 패장’ ‘무능한 장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기억된다. 반면 이순신은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너무도 익숙해, 그 이면을 의심하는 일 자체가 불경(不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조선 수군을 사실상 붕괴시킨 장수가 어째서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책봉되었을까.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원균의 모습이 전부일까. 통설에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선조의 편향과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선조는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이순신을 경계했고, 왕권을 보완할 균형추로 원균을 띄웠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논공행상 과정에서 원균을 1등으로 격상시키는 데 선조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날까. 당시엔 ‘공신도감’(功臣都監)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심사에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전쟁 직후의 조정이 ‘허위(虛僞) 공’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역사학자 백승종의 연구는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선조실록’ ‘난중일기’, ‘징비록’, 각종 장계와 상소문을 치밀하게 대조하며, 원균이 단순한 무능한 장수가 아니라 왜란 초기 조선 수군을 지탱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1592년 왜군이 20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부산포에 상륙했을 때, 경상우수사 원균에게 주어진 전력은 고작 10여 척뿐이었다. 그는 진주와 호남을 잇는 해로(海路)를 사수하기 위해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이순신과의 연합함대가 구성되기까지 약 20일 동안, 원균은 거의 소모전에 가까운 전투를 이어갔다. 연합이 성사됐을 무렵 그의 가용 전력은 4척에 불과했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이 총지휘한 연합수군의 승리가 맞다. 하지만 원균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 경상우수사였던 원균은 전력 열세 속에서도 선봉에 나서 왜군을 자극하고 외해(外海)로 유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투 초반 교전을 담당해 본대가 진형(陣形)을 갖출 시간을 벌었고, 조정 기록에서도 그의 공은 공식적으로 언급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칠천량(漆川梁) 해전이다. 이 전투는 원균을 ‘패장의 대명사’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그러나 실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무리한 출전을 강요한 조정의 판단과 육전(陸戰) 논리를 해전(海戰)에 적용한 권율의 압박이 참사의 원인이었음이 드러난다. 피해 규모 역시 후대 기록에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균은 그저 조정의 명을 받고 출전했고, 전투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원균은 400년 동안 ‘절대악’의 자리에 고정되었을까. 정치적 당쟁의 소멸, 살아남은 자의 기록, 그리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 요구된 ‘완벽한 충신 서사’가 겹쳐진 결과다. 이순신은 영웅으로 필요했고, 원균은 그 대척점으로 기능했다. 기억은 그렇게 단순화된다. 원균을 명장으로 예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 인물을 완전히 무능한 장수로, 다른 한 인물을 무결점의 성웅으로 만드는 방식이 과연 역사에 정직한가를 묻자는 것이다.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기억이 어떻게 엇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통설(通說)을 잠시 의심해 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역사 읽기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2-07

AI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인공지능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감정도 의지도 없는 기계에게 헌법을 적용해야 하냐는 뜻이 아니다. AI를 통해 행사되는 권력과 판단에 대해 우리가 어떤 헌법적 기준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AI 기술이 일상과 사회 전반을 구성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요즘, 더욱 깊이 되새겨야 할 근본적 물음이 아닐까. 헌법의 본질은 국가와 같은 남용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 균형을 도모해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데 있었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의 힘이 가장 컸다면 오늘날에는 기업과 사인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헌법이 쓰였다. 그리고 이제는 AI와 로봇, 알고리즘의 판단이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AI는 미디어와 광고, 금융,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AI 시대엔 판사와 변호사, 의사가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면 AI가 사법부의 대행이 되고 국민 보건소의 대행이 될 날도 머지않았나 보다. 하지만 AI의 판단이 제한과 검증 없이 그저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위협당할 위험도 커지게 된다. AI 기술의 발전이 그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약칭 ‘AI 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세계 최초로 AI 전략, 산업 진흥, 규제를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기본법이라고 한다. AI 기본법의 주요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 AI 경쟁력 강화와 산업 진흥이다. 연구개발, 표준화, 데이터 인프라, 전문 인력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 등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게 했다. 둘째, AI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고영향 인공지능(High-Impact AI)’과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나누어 정의하고, 이들 AI가 인간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투명성 확보 의무, 안전성 확보 의무, 영향 평가 의무 등을 부과했다. 이제 AI로 만든 결과물에는 워터마크 등 AI 생성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고, 고영향 AI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위험 식별과 완화 조치, 사용자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AI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다. AI 기본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AI 위원회를 명문화하고, AI 안전연구소 등 전문 기관을 설립해 정책과 안전기준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AI 진흥과 규제의 기본 골격이 될 AI 기본법이 제정된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그 규제 기준이 모호하고 개인정보 침해나 딥페이크 등 새로운 유형의 AI 범죄 피해에 대한 보호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계속해서 법을 수정하고 추가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다. AI에게도 헌법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AI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헌법적 기준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보다 앞설 수 없음을 잊지 말자.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2-05

‘영포티’의 과거

어느 시대에나 세대론은 제출된다. 특정 연령대를 단일 집단으로 묶어 사고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특정하는 명명이 요청될 때가 주로 그렇다. 대개의 세대론은 해당 시대의 청년 계층을 지시하기 위해 마련되곤 한다. 물론 세대론이 형성되는 맥락과 양상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령 1990년대의 ‘신세대’나 ‘X세대’는 해당 세대에 속한 청년 자신들이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가 자임한 개념이었다. 반면 2000년대에 주로 호명된 ‘88만원 세대’는 세대 바깥에서 어른들에 의해 규정적으로 공표된 것이었다. 세대 명칭이 사회변화나 역사 발전의 반영이 아니라 무력(無力)의 실태나 조건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에 유행한 ‘삼포세대’나 ‘N포 세대’는 또 달라서, 이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겠다는 자조적 선언에 가까웠다. ‘3포’에서 ‘5포’로, ‘7포’에서 ‘N포’에 이르는 과정 모두는 사회가 특정 세대의 현실을 재단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비참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한 유희적 언어 표출에 가까웠다. ‘헬조선’과 ‘수저론’이란 말이 함께 운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영포티’는 어떠한가? ‘영포티’ 역시 세대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포티’는 그 자신들에 의해 자임된 개념도 아니며 어른들에 의해 규정된 관념도 아니다. 아랫세대가 자기 윗세대를 멸시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꼰대’로 대표되는 (추상화된) 부모 세대 일반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다. 즉 시공간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오히려 사회의 지근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선배’ 정도 되는 이들에 대한 원망에 기초해 있는 세대 개념인 것이다. ‘젠지’에게 ‘영포티’는 학교(대학)에선 비교적 젊은 선생(교수)에 속하며 직장에선 ‘상사’이기도 하다. 이들 간에는 지식이나 교양 수준, 가치관, 역사의식, 문화적 취향과 기술 향유의 정도에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작은 격차에 입각하여 ‘영포티’는 바로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사회적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기도 하다. 실력에 비해 소득·수입의 갭은 너무 크고, 상대적으로 그러한 지위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의식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영포티’에 대한 경멸에는 어른 같지도 않은 이들의 어른 행세라는 인식이 선재해 있다. ‘영포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포티’는 ‘N포’를 자임했던 세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의 모순과 적극 대결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화에 대한 모색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그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N포’에서 ‘영끌’로의 이행으로부터 젠지 세대의 원망이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다. ‘영포티’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나? 집단적 저항이 아니라 개별적 체념에 몰두했던 우리가 누굴 탓하겠나? ‘영포티’라면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2-05

공자님 말씀은 아닌데

서원과 절의 공통점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친 현대인이 힐링할 곳을 찾는다면 절이나 사원 쪽으로 가면 거의 틀림없다. 내가 여행지를 정할 때 유독 그쪽으로 택하는 이유이다. 서원에 가면 육십이 훌쩍 넘은 듯한 중년 단체 방문객들이 열심히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본다. 주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다. 그저 사진이나 찍으면서 희희낙락이다. 마루에 신발 벗고 올라가지 않고 걸터앉아 해설사 이야기 듣는 중년들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이다. 마루에 걸터앉는 것은 예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인이 도산 서원에 다녀왔다기에 물었다. 마당 앞에 큰 나무 두 그루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도동 서원에 갔다 온 분에게 물어도 서원 앞쪽 큰 은행나무 이야기만 한다. 4변(籩) 4두(豆)나 축(畜)과 생(牲)의 이야기는 머리만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 그냥 입을 다문다. 서원에서 조상들이 던지는 말이 한가지가 아닌데 안타깝다. 한 2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중문과 전공인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교의 도(道)는 윗사람에서 유리하고 아랫사람에게 불리하며, 윗사람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 같으며, 아랫사람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 같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난리가 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유학자분들의 저항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세상은 그때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 젊은 사십 대가 지금 육십 대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있다. 요즘 서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우곤 한다. 젊을 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 나이 먹은 탓일까.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유교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우물안에 개구리란 말뜻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본 갓 쓴 선비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부모들이 자식에게 과한 기대치를 내걸며 부담시킬 것을 염려해서 교육은 주로 조부모가 맡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제사도 과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가정 형편에 맞게 올렸으며, 평소 먹던 반찬을 그대로 올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남자들이 직접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렸으며 그 집안 후손이 아닌 며느리들은 원래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알고 있었고 변질된 듯하다. 언제부터 강한 남존여비의 사상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 없다는 말을 듣고 컸다. 어릴 때 남자들은 상에서 밥을 먹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었다. 요즘도 장례식장에 가 보면 딸만 있는 집은 사위가 상주이다. 여자는 상주도 될 수 없다는 전통이 이어져 온다. 안경 쓴 여자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화제가 됐다는 말을 듣고 픽 웃음이 나온다. /노병철 수필가

2026-02-05

대기업 투자에 지방정부 혁신 노력 더해져야

국내 대기업들이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호응해 5년간 약 300조원의 지방투자를 약속했다. 4일 재벌 총수들은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한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인공지능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방산 등을 중심으로 거둔 역대급 실적을 지역균형 발전과 고용 확대라는 사회적 책무 수행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는 이 대통령이 정부가 지역발전 축으로 추진하는 5극 3특 체제에 보조를 맞춰 달라는 당부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다. 5극 3특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넘어서 5개 초광역권과 3개의 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국토를 재편하고, 지역중심으로 균형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새정부의 국가 전략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생존전략이라 하겠다. 정부가 대기업의 지방투자를 유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나 300조라는 투자 규모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지만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생리상 국가의 권유나 강요로 쉽게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력 구하기 어려운 지방소재 산업단지에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매력이 없으면 어렵다. 수도권에 투자가 집중되었고 과밀화된 것도 인재 구하기와 유관한 때문이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과거처럼 단순히 인허가 협조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원스톱 행정서비스는 기본이고 지방정부가 투자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도권보다 유리한 물류비나 인프라 비용을 제시하는 등 기업 환경부터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는 국토균형 발전뿐 아니라 대기업의 새로운 성장거점 확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특히 권역별로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시기여서 대기업의 지방투자가 갖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정부의 독려든 아니든 대기업의 지방투자 약속이 나온 것은 고무적이다. 이를 계기로 지방정부는 대기업이 투자에 매력을 느낄 혁신적인 기업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6-02-05

TK 행정통합에 브레이크 건 장동혁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남·광주 행정통합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재명 정부에서 내놓은 행정통합 방식은 선거공학적 졸속 방안”이라면서 “행정통합 TF를 만들어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고 했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3곳의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를 중단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지난달 어렵게 경북도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 대구·경북으로선 갑자기 행정통합에 제동을 건 장 대표에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장 대표의 이날 발언은 지역구(보령·서천)인 충남도의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4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대전·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김태흠 충남도지사(국민의힘)는 “행정통합 특별법은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는 형태의 법안”이라고 비난했고, 최정 충남공무원노조위원장은 “행정 통합으로 인한 근무지 강제 이전, 인력 감축 가능성 등 공직 사회에 불안감이 많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는 행정통합 특별법이 대전·충남 통합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위한 ‘맞춤형 법안’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대전·충남과는 달리 TK 행정통합 특별법은 주민 대의기관인 시·도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 국회에 발의됐다. 시·도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장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당장 10일부터 상임위 심사가 시작되는 3곳의 특별법 처리를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대구·경북에서는 여권이 TK특별법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여서 속이 부글 부글 끓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TK는 지역 주민 의사를 더 파악할 대목이 있다”고 했고,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TK 특별법은 합의 처리될지 국민의힘이 반대할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대표가 TK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원활하게 처리되도록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고 있으니 혀를 찰 일이다.

2026-02-05

더 벌어진 양극화 사회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최대 난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양극화 문제다. 중간계층이 줄고 상·하위 계층에 쏠리면서 소득, 고용, 교육 등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이런 양극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빈부격차나 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 집단이 미국 소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국가 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빠르게 진행됐다. IMF로 인한 실업과 고용불안이 만연하면서 고용없는 성장 속에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갈수록 깊어졌던 것이다. 최근 KB금융 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가 2011년 전 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도 안되는 이들 부자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이 국내 전체 금융자산의 60%나 된다고 하니 우리 경제의 양극화도 심상치가 않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기울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양극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서울로 인구와 산업이 쏠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지방의 수십 배로 폭등했다. 서울과 지방간 양극화는 이제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최근 데이터처 발표에 의하면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은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 가치가 더 커졌고, 그로 말미암아 집 없는 청년층과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 문제의 해법이 나올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5

‘니파 바이러스’ 공포

2019년 시작돼 몇 년 동안 한국을 포함 전 세계를 공황과 공포에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급박하게 만들어낸 코로나19 백신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사람이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괴이한 사회 분위기가 오래 지속됐다. 학자들은 이를 ‘현대의 흑사병’이라 불렀다. 그런데, 최근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니파 바이러스’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은 니파 바이러스는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호흡기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해 뇌염을 발생시키는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고 75%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감염되면 바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현재까지 니파 바이러스가 확인된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등이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과일박쥐의 서식지라는 것. 의료계는 이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고, 먹이가 되는 과일의 오염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감염된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고, 손 소독을 자주 하는 정도의 예방법만이 알려진 상태.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질병은 인간에게 패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의학계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중국 춘절에 니파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에 관광이 주요 산업인 동남아 국가들에선 방역을 강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공포가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04

울릉도 소등어리 초지

울릉도 소등어리 초지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다이제스트의 팔만대장경을 보는 듯 그러나 아무도 읽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파란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는데, 심성이 고약하나 정갈할 것 같은 주인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광대하면서 좁쌀 같은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그 배포는 썩 마음에 든다 나는 아직 집 한 채도 없는 가난뱅이지만 무색하게도 마누라 집에 얹혀 살고 있으니 최후로 가난하지 않다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모두가 가난하면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광활한 공허에 머물 수 있음에 기쁨의 치를 떤다 축약본 팔만대장경을 내려다보며 오줌을 누면 울릉도가 온통 따스해진다 생각하며 이것이 나의 울릉도에 대한 욱여넣음과 쟁여놓음이니, 그러나 부디 헛발질이기를. *피터 모린의 말에서 빌렸다. .....................................................................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것이다. 사랑은 유기적인 것에 대한 공감이며, 부패의 운명을 가진 유기체의 감동적이고도 방종한 포옹이다. 사랑은 아무리 근엄한 사랑이라 해도 육체적이지 않은 일은 없고, 아무리 관능적인 사랑이라 해도 근엄하지 않은 일은 없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리고 한 시집의 제목을 생각한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소등어리 초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2-04

책방,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사람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발소리인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눈을 반짝이며 앞을 본다. 기대와는 다르게 나를 그냥 지나쳐 간다. 기대는 어느새 실망으로 바뀌고 마음은 초조해진다. 벌써 몇 번째 자리를 옮겼는지 모른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끝자리로 옮긴 지 오래다.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새 책이 들어온다. 새로 들어오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팔리지 않으면 구석으로 밀려난다. 나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처세술책 앞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괜히 화가 난다. “마음을 키우는 나를 읽어야지 처세에만 신경을 쓰다니.” 딱하다는 듯 나무라지만 주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나를 보니 자꾸 작아진다. 이제는 누구라도 와서 한 번이라도 만져주기를 바란다. 동화책과 처세술책은 가운데에서 보란 듯이 웃는다. 아이는 책장을 넘기며 책을 살핀다. 옆에 있는 책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긴다. 책을 보다가 크게 웃는다. 동화책 주변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도 책을 고른다. 옆의 처세술책 앞에는 사회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책을 살핀다. 책을 사려는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수필집은 독거노인이 된 지 오래다.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다. 같은 처지의 천자문이 다독이면서 한마디를 건넨다. “나이가 들면 다 그래요. 힘이 없어 멀리 다닐 수도 없잖아요.” 말이 끝나자, 어색한 정적만 감돈다. “저벅저벅” 발소리만 들어도 시집은 기겁한다. 매일 출근하듯이 와서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 몸이 온통 불었다. 어제 부은 몸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온다니 시집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오늘은 책장을 세게 잡아서 넘기는 바람에 몸이 아프다. 만질 때마다 몸을 움츠린다. 시집의 하소연을 듣고 동화책이 거든다. “말도 하지 마. 어린아이들이 오면 온종일 붙들려 시달려서 힘이 들어. 나를 읽고는 아무 곳에나 던져놓는 바람에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어.” 볼 때마다 그러는 바람에 몸뚱어리는 멍투성이에 노숙자가 될 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책장을 가볍게 넘긴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며 책을 읽고 싱긋이 웃을 때는 얼마나 예쁜지. 나를 읽고 가슴 뿌듯한 표정을 지을 때는 큰일을 한 것 같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체취를 느낀다. 따뜻한 마음씨는 향기로 남고, 나는 다음날을 기다린다. 수필집은 혼기를 놓친 노처녀처럼 오늘도 팔리지 않아 초조해진다. 어떤 사람이 나를 살지 궁금했다. 그것도 이제는 시들하다. 여러 달을 바람 맞듯이 찾는 사람 없이 보내니 발만 동동 구른다.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하는 데 그저 멍한 눈으로 본다. 언제 책장에서 밀려날지 몰라 몸이 흔들린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산다. 그래서인지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가끔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 아날로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책과 가깝다. 사람들은 책을 천천히 읽고 생각한다. 빠르기를 강조하는 디지털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멀다. “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전에는 감동적인 문구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자신만의 느낌을 적는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은 자신을 찾는 그림자조차 찾지 못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오늘도 바람을 접지 않고 기다린다. 주인을 만난 처세술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집은 침에 부풀린 몸을 말리기 바쁘고 동화책은 멍 자국에 약을 바르며 집을 찾기 바쁘고, 수필집은 오늘도 독거노인 신세가 된다. 팔려 간 처세술책에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내일도 새로운 처세술책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입을 닫는다. 읽고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이 언제나 올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름만 깊어진다. 오늘은 외롭고 몸이 부풀고 멍이 들어도, 내일은 주인을 만나 하루를 나누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6-02-04

해오름대교, 연결 효과는 운영이 가른다

해오름대교는 개통 전부터 포항의 새로운 상징으로 기대를 모았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남북 연결축, 도시 동선을 바꿀 핵심 인프라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며칠간 현장을 오가며 느낀 점은 이 다리가 가진 가능성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하다. 정체만 아니라면 남단과 북단 사이 이동 시간은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든다. 해안선을 돌아가던 동선이 단순해졌고, 일부 구간에서는 체감상 주행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반응도 들린다. 출퇴근과 일상 이동에서 남북 연결성이 개선됐다는 점은 이 교량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개통 직후의 관찰은 동시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저녁 6시 30분 무렵, 남단에서 교량에 진입해 북단 교차로를 통과하기까지 대략 10분이 걸렸다. 교량 전체 길이가 4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균 속도는 시속 2~3킬로미터 수준이다. 초기 혼잡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구조적인 요인을 떠올리게 하는 수치가 아닐까. 병목의 핵심은 북단 교차로에 있다. 좌회전이 금지되면서 차량들은 교차로를 지나 약 50미터 지점에서 유턴을 해야 한다. 유턴 차선의 대기 공간은 차량 다섯 대 정도에 불과하다. 오후 2시 40분, 러시아워가 아닌 시간에도 이미 포화 상태. 출퇴근 시간대에는 직진 차로까지 정체가 번질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퇴근 시간에는 그 영향이 교량 상판을 넘어 남단 오르막 구간까지 이어졌다. 정상부에 이르기도 전에 브레이크등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이는 교량 진입부보다 출구 쪽 처리 용량이 부족해 다리 전체가 일종의 ‘대기 공간’처럼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안전 측면에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북행 정상부에서는 하행 구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남행 하향부에서는 곡선이 이어져 전방 시야가 제한된다. 제한속도인 시속 50킬로미터로 주행하다 갑작스런 정체를 만나면 급제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황색 신호에서 가속과 급정거가 동시에 나타나는 장면도 관찰됐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해오름대교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구조적으로 남북을 직선으로 잇는 새로운 축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시 교통망에는 큰 변화다. 운영이 안정되고 병목이 해소된다면 출퇴근길과 생활 이동에서 실질적인 시간 절감 효과를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이 더 중요하다. 개통 초기에 출퇴근 시간대 교통량과 유턴 수요를 면밀히 관찰하고, 유턴 대기 공간을 늘이거나 시간대별 좌회전 허용 같은 탄력적 운영은 가능한지, 교량 위 정체를 미리 알릴 안내 시스템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작은 조정 하나가 시민 체감도를 크게 바꾸고 사고 위험을 방지한다. 도시의 새 다리는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하루하루에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기능하느냐가 진짜 기준이다. 해오름대교가 포항의 새로운 명물이 되기 위해서 지금 드러난 성과와 과제를 함께 직시하고 분석하여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완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2-04

국회에서 냉대받는 TK 행정통합 특별법

국회에 발의된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에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여권에서 제동을 거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3일 기자들과 만나 “전남·광주, 충남·대전 행정통합 특별법은 당론으로 발의했고 이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설 이전까지 처리하겠다”고 언급하면서, TK 특별법은 그 대상에서 쏙 빼버렸다. 그는 TK 특별법에 대해 재차 묻자, “적어도 2월 말까지 처리해야 되는데 TK 특별법은 합의 처리될지 국민의힘이 반대할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지난 2일 행정통합과 관련한 정부 재정지원 부담을 언급하면서, “TK의 경우에는 지역 주민의 의사가 어느 정도로 반영됐는지 조금 더 파악할 대목이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국회는 5일 행정안전위원회에 특별법을 상정한 뒤 설 전에 상임위 심사를 끝내고, 이달 중 본회의를 열어 최종의결을 할 예정이다. 여권에서 TK 특별법 처리에 방관자적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전남·광주, 충남·대전의 경우 특별법이 민주당 당론으로 발의됐지만, TK 특별법은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지난 2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일부 광역단체장들이 현 정부가 행정통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다 경북 북부권 의원 3명은 구자근(구미 갑)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에 서명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러니 여권에서 TK 특별법을 대놓고 냉대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의 사분오열된 상황을 감안하면, TK 특별법 심사과정에서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TK 행정통합에 대해 재정적인 부담을 가지고 있는 여권으로선 이를 ‘TK 배제’의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다행히 3개지역 특별법을 병합해서 수정작업을 하는 행안위 법안심사 제1소위에 대구출신 이달희(비례대표) 의원이 소속돼 있어서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해서 TK 정치권이 특별법 처리에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6-02-04

영덕 풍력발전기 사고, 확실한 원인 규명해야

지난 2일 영덕군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내에서 발생한 대형 풍력발전기 전도사고가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영덕군과 발전사가 나서 안전진단 및 블레이드(날개) 파손 원인에 대한 합동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다양한 의견만 표출된 채 직접적인 원인 규명을 못해 주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난 영덕 풍력발전단지 내 풍력발전기 대부분이 20년 안팎의 설계 수명을 채운 상태여서 노후설비 안전성에 의심을 두고 있으나 확증할 수는 없다고 한다. 풍력발전기는 1970년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대체에너지로 떠올라 우리나라서는 1975년 제주도에 첫 설비가 세워졌다. 정부는 에너지 대전환을 위해 2030년까지 100조원을 투자, 육상풍력을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의 풍력에너지 확대 계획과는 달리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자주 있었다. 작년 전남 화순에서 완공 2년도 안된 발전기가 두 동강났고, 2016년에는 강원 태백에서 4년도 안된 발전기가 무너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고에 대한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영덕 풍력발전기 사고 시 순간풍속은 초속 12.4m로 발전정지 범위(20m)내에 있었다. 또 영덕풍력은 작년 6월 전체 24기 중 이번에 파손된 발전기를 포함해 영덕군유지에 있는 14기에 대한 안전진단도 받았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20년이 지난 풍력 타워도 외부 충격 없이는 단순히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해 사고 원인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번 사고가 난 장소는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라 영덕군의 인생샷 명소로 꼽힌다. 거대 프로펠러가 쓰러지는 순간 지나가는 차량이나 보행자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다. 풍력발전기는 강풍 등 불규칙한 하중을 받는 설비다. 중간점검과 보강 조치는 필수다. 이번 사고에 대한 정밀한 원인 규명으로 풍력발전기의 안전성을 입증하길 바란다.

2026-02-04

요즘 곡학아세

지난 1월 28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통일교 청탁 금품 수수 혐의 등으로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했다고 기소된 김건희 씨가 1심에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15년 구형도 적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구형의 9분의 1인 1년 8개월이 선고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해야 할 영부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영리를 취한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문에 쓴 것도 공분을 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은 김부식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온조왕 15년(BC 4년) 기사에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유홍준의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백제와 조선의 미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통미를 설명할 때마다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사자성어를 나란히 놓은 것은 좀 어색하다. 누추함과 가까운 검소와 사치와 가까운 아름다움이 한 건물에 공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부식이 백제의 새 궁궐을 검소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고 한 것은 임금이 사는 궁궐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궁궐이 검소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아름다움만 추구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개의 사자성어의 출전은 다르지만 모두 유학의 경서다. ‘검이불루’라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는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검소해야 한다’거나 ‘꾸밈이 본바탕보다 지나치면 겉치레가 심한 것이고, 본바탕이 꾸밈보다 지나치면 거친 것이다. 꾸밈과 본바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해서 본바탕만 강조하는 것을 경계했으니 ‘검이불루’와 통한다. ‘아름답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은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한 구절을 ‘중용’의 저자가 인용하면서 비단의 아름다움을 감추기 위해 홑옷을 덧입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홑옷의 재료도 아주 고급 천이라서 귀족만 입을 수 있고, 그 홑옷 때문에 안에 입은 비단옷 더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중용’의 저자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점이 있다. 그래도 그동안 겸양의 뜻으로 인용해왔다. 그런데 판사가 ‘권력자가 영리를 추구하면 안 된다’거나 ‘청탁과 결부된 선물로 자기를 치장하는 데 급급한 것은 문제’라면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인용한 것은 영부인에게 누추하지 않을 정도의 검소함을 요구하는 것이라 영부인의 지위에 전혀 맞지 않는다. 더 문제는 영부인이 사치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다. 뇌물을 받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어떤 인용이든 원문의 뜻에서 변형되는 것은 글의 숙명이다. 그러니 판사가 고전에서 사자성어를 재해석해서 인용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전혀 상황에 맞지 않게 사자성어를 맥락과 상관없이 단장취의하여 인용하는 것은 교묘한 곡학아세다. 그 판사가 아첨하고 싶었던 세상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2-04

살을 빼야 하는 진짜 이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소리는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정작 왜 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살이 찌면 몸만 커지는 게 아니라 몸의 숫자들이 하나둘씩 무너진다. 혈압과 혈당이 올라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나빠진다. 이 변화들은 각각 따로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체중이 늘면 혈관 안을 흐르는 혈액이 늘어나고 심장은 더 큰 압력으로 혈액을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혈압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또 지방 조직이 늘어나면서 인슐린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지며 혈당이 쉽게 올라가는 몸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한다. 중성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함께 올라가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라는 병이 생긴다. 이 수치들이 약으로 조절된다고 해서 몸이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체중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수치만 누르고 있으면 몸은 불균형한 상태로 있다. 그러나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간다. 체중의 5~10%만 감량해도 혈압이 떨어지고 공복혈당이 낮아지며 중성지방 수치가 개선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살을 빼는 것은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치료가 되는 이유다. 그럼 다이어트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몸의 시스템이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살이 쪄 있었으면 자율신경과 호르몬 균형이 깨져 있어 식욕 조절과 에너지 소비가 쉽지 않다. 한의학에서 다이어트 한약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이어트 한약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환 형태의 한약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체질과 상태에 맞춰 처방하는 맞춤 한약이다. 환 형태의 다이어트 한약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입맛을 떨어뜨리고 몸을 각성 상태로 만들어 소비 에너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교감신경을 적절히 항진시켜 먹는 양을 줄이고 활동성을 높여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식욕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환만 복용하면 살이 빠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얕아지거나 생리 주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 이때는 맞춤 한약으로 처방하는 것이 좋다. 맞춤 한약은 환자의 체질, 현재의 자율신경 상태, 호르몬 균형 동반 증상을 함께 고려해 처방한다. 예를 들어 다낭성 난소증후군처럼 체중과 호르몬 불균형이 얽혀 있는 질환에서는 체중 감량이 증상 개선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무리한 방식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살이 빠지면서 몸이 더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이어트는 숫자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는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일상생활이 덜 피로해진다. 살을 빼는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몸이 보내고 있는 경고 신호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 과정은 참거나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몸의 방향을 다시 맞추는 치료가 되어야 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2-04

“힘의 균형서 인류의 공존” UN이 바꾼 새 패러다임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이기적 욕망을 지닌 인간들의 관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UN(국제연합)이 설립되기 전까지의 국제질서는 철저하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원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19세기 빈 체제(Congress of Vienna)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국가 간의 평화는 강력한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 유지될 때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비극 이후, 인류는 처음으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라는 집단 안보 체제를 고안했다. 하지만 국제연맹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연맹의 제안자였던 미국의 불참과 강대국의 탈퇴를 막을 강제력 부재, 그리고 의사결정의 ‘만장일치제’는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과 독일의 재무장을 방관하게 만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불참과 실질적인 힘의 부재는 곧 국제질서를 유지와 세계를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연맹은 명목상으로만 세계를 대표하는 유명무실한 기구나 다름 없었다. 결국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같은 2차대전의 파국과 절망 속에서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통해 출범한 UN(United Nations)은 단순히 국제연맹의 연장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제법과 규범이 국가의 주권만큼이나 중요하다는‘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국제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 국제연맹의 부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 속에 탄생한 UN은 국제협력을 증진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가 간 연합체이자 가장 많은 국가가 모이는 다자 회의 기구이다. UN 설립 이후 국제질서는 예전과 달리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앞선 국제연맹의 무기력함을 반면교사 삼아, UN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실질적인 군사적·경제적 제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이는 전쟁을 ‘국가의 권리’가 아닌 ‘국제법적 범죄’로 규정하는 질서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국가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인권을 국제적인 감시와 보호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오늘날 중요시되는 ESG에서 ‘Social(사회)’ 영역의 근간이 되었다. UN은 신탁통치와 독립 지원을 통해 수많은 신생 독립국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지배에 놓였던 수많은 나라의 독립을 이끌어 내었고, UN 회원국의 참전을 통한 전쟁 억지와 평화 유지 등 과거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국제 정치를 193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주권 평등’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UN의 설립 이후 지구는 비로소 세력균형의 원리가 아닌 다자주의의 국제협약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질서가 시작되었지만 순조롭게만 항해한 것은 아니었다. UN체제 초기, 국제질서는 미·소 냉전이라는 거대 양극체제에 의해 한계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UN은 이 시기에도 유니세프(UNICEF), WHO 등 전문기구를 통해 질병, 빈곤, 교육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며 ‘기능주의적 협력’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에는 단순한 분쟁 중재를 넘어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인류의 생존 자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0년의 MDGs(새천년개발목표)를 거쳐 2015년 채택된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는 국제질서의 중심축을 ‘국가 안보’에서 ‘인간 안보’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으로 옮겨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강조하는 ESG 경영이나 탄소중립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UN이 80여 년간 구축해 온 국제질서의 산물이다. 과거의 세계 질서가 “어떻게 전쟁을 막을 것인가”의 힘의 균형에 집중했다면, UN 이후의 질서는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의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묻고 있는 새로운 문법이다. 이제 국제질서는 영토를 넓히는 힘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UN이라는 국제기구의 플랫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글로벌 난제 앞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다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UN은 완벽하지 않지만, 인류가 야만으로 돌아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규범의 닻’이 되어왔다.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규범의 닻’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납세자의 자금 지원을 끝내고 미국 우선순위보다 세계주의 의제를 우선하는 단체에 대한 관여를 끝내겠다”며 유엔 및 산하 기구에 대한 자금을 대폭 줄이고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해 들어 이달 초에는UN산하기관 31개를 비롯한 66개 국제기구의 탈퇴를 전격 선언했다. 미국의 유엔 지원금이 중단되면서 UN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93개 회원국에 보낸 서한에서 “UN의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여러 사업 진행이 중단됐고 재정 붕괴 위험이 커졌다”며 “곧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법이 강대국에 의해 짓밟히고 국제협력이 약화되고 있다. 국제법 훼손과 국제협력의 붕괴, 다자기구들에 대한 공격의 트럼피즘에 의해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원리에 의한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에 뿌리를 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UN을 중심으로 인류 공존의 가치를 지켜내어야 한다. 지구상 모든 국가가 1945년 UN 설립의 초심으로 돌아가 포용적이고 파트너십을 통해 균형을 창출할 수 있는 다극화를 지향해야 한다. 지구와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공유된 책임과 가치에 기반한 강력한 다자간 국제기구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여러 나라와 인류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2-04

나의 30대는

최근 유튜브에서 에픽하이의 영상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한 콘텐츠였고, 에픽하이 멤버들이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형식이었다. 대화 도중 타블로는 게스트에게 “40대에서 30대를 돌아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는 말을 꺼냈다. 다소 의외라는 듯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는 곧이어 “그때는 정말 건강했고,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30대에 들어선지 2년이 흘렀다. 올해 32살인 나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나이를 말하거나 약 봉투에 내 나이 만 31세라는 숫자가 찍혀있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아주 어린 날, 내게 알파벳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이 34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숫자가 정말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려면 34살쯤은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했고, 선생님의 오른손목에 걸린 금시계나 반짝이는 높은 구두를 보며 어른의 삶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하고 몰래 동경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제 34살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30대가 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통장이 더 두둑할 줄 알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고, 자차도 멋지게 끌면서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도 멋지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에 가까워서 생각보다 서른이란 별 볼 것이 없는 것 같다가도 실은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의 능력치에 한참 못미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른이 의미 없거나 초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태껏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다.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접시를 닦고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버텼던 시간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노력의 형태들은 아직도 내게 너무나 선명하고 소중하다. 30대에서 20대를 돌아보니 20대에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직장도, 직무 경력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도 모두 다 서툴렀다. 그래서 하루 빨리 내가 더 성숙해져서 모든 것이 안정화되었음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담 40대가 되어서 30대를 돌아보면 어떨까? 나도 가수 타블로의 말처럼 40대가 되어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30대 초반인 나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훗날 40대가 되어 30대를 돌아볼 때 “그때 참 좋았지, 정말 씩씩했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주어진 30대라는 나이를 잘 살아내야만 한다. 확실히 20대에 비해서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달라졌다. 예전에는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아 타인에게 이끌려 다니기 일쑤였고, 악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휘둘리거나 손해 보기 바빴다. 이제는 내 안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해져 사람을 대하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좋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지난 여름 함께 시를 쓰던 언니를 만났다. 언니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는 지금 내 나이가 한참 반짝인다며, 어떤 도전이든 응원한다고 말했다. 언니가 건넨 다정한 말이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언니 말대로 늦은 것은 없다. 너무 늦은 애정도, 너무 늦은 후회도, 도전도, 열정도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동시에 30대에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목표도 행복이라는 강박도 없다. 법륜스님은 인생에는 해야 하는 게 없고 안 해야 되는 것도 따로 없다고 말한다. ‘뭘 해야 한다’ 이전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 있는지 알아차리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각 이후 선택만이 있을 뿐. 그러니 요즘은 조금 천천히 살아보려 한다. 불안해지면 억지로 앞서가려 하기보다 지금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완벽한 30대를 만들기보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30대를 살아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으면 언젠가 돌아본 내 30대가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조급함 대신 오늘의 속도를 믿어보려 한다. 크고 화려한 성취보다, 작지만 단단한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윤여진(시인)

2026-02-04

그래도 아날로그...

여러모로 나는 참 느린 아이였다. 걸음걸이,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에 홀로 가득한 백지, 말하는 속도까지 참 느렸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아도 절대 뛰지 않았다고 하니 부모님은 정말이지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느렸다.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 등에 딱히 열광하지 않았다. 계속 열광하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장난감의 열기가 제법 식었을 때 비교적 싸게 구매해서 놀곤 했다. 드라마도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다가 뒤늦게야 푹 빠져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그냥 느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문물과 낯선 사이다. SNS는 특히 내게는 너무 빠르다. 눈으로 단어 하나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멈춰 있다고 싶은데, 계속 밀물이 밀려드는 것만 같다. 그렇게 세상 참 빠르다란 생각을 하면서 근처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이 집 가까이에 있는 게 좋다. 도시에 맛집들이 많아서 좋다. 맞다. 모순이다. 내가 느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그럼 뭘까. 아날로그가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걸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전자책(e-book)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싫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크게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책의 크기, 무겁거나 가벼운 책 각각의 무게, 새 책이나 헌책에 밴 특유의 냄새, 표지부터 만져지는 질감, 펼쳤을 때 양손에 들어오는 페이지의 감각. 공교롭게도 그런 것들을 빼놓고 나는 책을 잘 읽지 못한다. 지인이 쥐어준 리더기로 시집이나 소설집을 한 권은 읽어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리더기로 이북을 읽는 게 좋아지면 진짜 편할 것 같은데. 가방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도 어디에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몇 번쯤 더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커피잔 옆에 단정하게 책이 놓여 있는 게 좋다. 손끝으로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는 페이지 모서리를 접는 게 좋다. 그러다 잘못 접어서 접은 부분이 살짝 비뚤어지는 것도 좋고, 다시 접다가 접은 흔적이 두어 개 정도 남는 것도 좋다. 종종 느끼지만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책이 지닌 물성과 그 안의 텍스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노래를 검색만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곡에 몰입하는 힘이 조금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1절만 듣고도 음 내 취향이 아니군, 하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고 몇 단계의 검색만 거치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뭘까. 배고플 때 먹은 에이스 과자 하나가 고급 베이커리의 다쿠아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아직도 나는 어릴 때 침대 옆 탁상에 놓여 있던 커다란 검은 라디오 하나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근 10년간 그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물론 심야 라디오를 켜고 자는 일이 많았지만, 내가 유독 아끼고 많이 들은 건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였다. 나는 중학생이 된 다음에도 아이돌, 연예인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를 자주 틀고 잤지만 특별히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다가 너무 심심해서 누나와 함께 휴게소에서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구매했을 뿐이었다. 하나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 하나는 신화의 ‘너의 결혼식’이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 두 앨범을 내내 들었다. 가사에 담긴 뜻은 전혀 몰랐다. 누나한테 “왜 아틀란티스야?”, “영화 ‘졸업’에서 생기는 일이 뭐야?”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누나도 잘은 모른다고 했다. 지금처럼 많은 곡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심심하거나 잠들기 전에 두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 틀곤 했다. A면과 B면을 계속 돌려가며 수록곡들의 음과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때 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화자가 되어 웃거나 울었다. 되감기를 하며 한 곡에 빠져 흥얼거리던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날로그적으로만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계속 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자주 아틀란티스 소녀와 너의 결혼식을 듣는다. 그 노래를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시절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2-04

유적지는 잉카의 삶을 노래한다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아르마스 광장을 찾았다. 여행자의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 광장은 잉카와 스페인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쿠스코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관광객들의 활기찬 이야기가 넘실대고, 해가 저물면 돌바닥 위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광장 주변에는 수많은 여행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인 활발한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마추픽추행 교통편, 가격, 일정을 꼼꼼히 비교한다. 정보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선택지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은 정보만으로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중, 우연히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한인 민박을 소개받았다. 숙소 주인장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녀는 어쩌다 이 먼 타국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게 되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잉카의 돌담처럼 견고하고, 안데스의 바람처럼 끈질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분명한 것은 마추픽추를 향한 여정에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도보다 정확한 것은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이었고, 검색보다 깊은 것은 그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광장에서 출발하여 12인승 밴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성스러운 계곡’과 ‘모라이’였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한 차에 함께 탔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삶의 궤적을 지닌 그들이었지만, 좁은 길 위에서 우리는 금세 하나가 되었다.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무엇보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리라. 밴이 안데스의 굽이진 산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는 동안,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모건 하우절의 저서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해답을 제시하는 듯했다. 잉카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강의 흐름을 존중하며, 산의 능선을 따라 건축물을 지었다. 이곳의 유적은 화려함보다는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웅변하고 있었다. 정교한 석축 기술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정복이 아닌 공존, 속도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 수백 년 전의 현명한 선택이 오늘날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마라스 염전을 지나 도착한 모라이(Moray)는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대한 원형 계단식 구조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잉카 시대의 첨단 농업 실험장이었다고 한다. 고도와 기온, 바람의 미묘한 차이를 층층이 계산하여 다양한 작물을 시험 재배했던 혁신적인 장소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장면 앞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었다. 이 놀라운 유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찰과 수많은 실험의 숭고한 결과물이었다. 인간은 시대를 초월하여, 결국 동일한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모라이의 거대한 원형 계단 앞에 서 있노라면, 종종 로마의 웅장한 원형 경기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닮은 점은 단지 원형이라는 형태뿐이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권력과 통제, 그리고 대중의 맹목적인 열광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모라이는 침묵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던 지혜로운 성찰의 공간이었다. 겉모습은 같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정반대였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유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문명은 과연 무엇을 위해 공간을 창조하는가? 이 묵직한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해 질 무렵 다시 쿠스코로 돌아온 나는, 익숙한 아르마스 광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침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출발점은, 이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부드러운 바람은 속삭이는 듯했다. 덧없이 사라지는 문명 속에서도, 삶의 지혜로운 방식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이제 나의 다음 여정은 신비로운 티티카카 호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성스러운 호수, 신화와 현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잉카 문명은 또 어떤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줄까? 다시 한번,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닌 깊은 사색을 즐기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가슴으로, 다가올 여정을 간절히 기다린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6-02-04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지금 포항은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철강산업의 침체로 산업 현장이 흔들리고 있고, 그 여파는 도심 상권과 시민의 삶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상가 700여 개 점포 가운데 약 30%가 비어 있는 현실은 단순한 경기 부진을 넘어 도시 전체의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일부 공장은 문을 닫거나 가동 규모를 축소했고,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 역시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럴수록 경계해야 할 말이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오래된 경고다. 위기일수록 준비되지 않은 판단과 경험 없는 대응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2017년 포항 지진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포항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뒤흔든 대형 위기였다. 수많은 시민이 주거와 생계의 불안을 겪었고, 많은 피해 시민들은 오랜 시간 정신적 고통 속에서 일상을 견뎌야 했다. 초기에는 일반 재난 기준에 따라 소파 약 5만 세대에 세대당 평균 100~200만 원 수준의 지원이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회복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에도 말만 앞서는 해법과 즉흥적 대응은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환점은 지진특별법이었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원 범위가 대폭 확대되면서 약 11만 세대에 총 4900여억 원 규모의 보상과 지원이 이뤄졌다. 이는 지진 피해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제도적 선언이었다. 종교시설을 포함한 다수의 공공·생활 시설이 추가 지원을 받았고, 보건소 신축과 체육·수영장·도서관 등 생활 인프라 확충, 각종 안전·편의 시설 개선 사업도 함께 추진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포항이 ‘지진 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구호가 아니라 경험과 책임에 기반한 판단, 다시 말해 선무당식 대응을 배제한 결과였다. 다만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 문제는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피해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책임 있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시민과 정치, 행정이 다시 한 번 단합하는 일이다. 위기는 선언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끝까지 관리할 수 없는 말과 약속은 또 다른 ‘선무당’을 낳을 뿐이다. 지금 포항이 마주한 철강 위기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철강 위기는 곧 기업의 위기이며, 기업의 위기는 노동 현장과 지역 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상 위에서 만든 이론보다 기업과 산업 현장의 경험,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결국 기업이 살아야 포항이 산다는 말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판단이다. 위기 앞에서 선무당식 처방은 가장 위험하다. 포항은 지진이라는 한 차례 대형 위기를 시민의 힘과 제도적 대응으로 관리해 본 도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말이 아니라, 검증된 경험과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철강 위기와 지진 극복의 교훈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모아진다. 선무당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공원식 전 포항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2-03

‘TK 행정통합 이상징후’ 정치권이 막아라

TK 행정통합 특별법 국회 처리가 곳곳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면서 난항이 예상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행정통합과 관련 “정부 인센티브 방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광주·전남, 대전·충남이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구·경북까지 3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면서 “정부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서 재정지원 부담 시뮬레이션을 세밀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 지역의 광역 통합을 밀어붙이거나 지연시킬 생각이 없다”면서도, TK의 경우에는 지역 주민의 의사가 어느 정도로 완숙하게 반영됐는지 조금 더 파악할 대목이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듣기에 따라서는 호남·충청과는 달리 TK 행정통합에는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행정통합을 심사할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한 여권 의원도 ‘TK지역을 함께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정부 재정 부담과 경북 북부권 주민들의 반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서울에서 회의를 열고 현 정부가 행정통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현장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이날 시·도지사 중 이철우 경북도지사만 “지방소멸이 시급한 만큼 통합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행정통합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광역단체장 모두 TK 행정통합이 ‘졸속 추진’되고 있다며 제동을 걸고 있지만, 대구·경북은 호남·충청에 앞서 지난 2019년부터 행정통합을 추진해왔다. ‘졸속 추진’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행정통합 특별법은 2차 공공기관 유치를 비롯한 지역별 특례조항으로 인해 처리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자칫 국회 심의과정에서 잘못 대처했다간 대구·경북이 호남, 충청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TK정치권이 최대한의 정치력을 발휘할 때다.

2026-02-03

한동훈, 대구에서 정치할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 게시판’ 논란에 발목이 잡혀 당적을 잃었지만,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가지는 대구시민이 많다. 대구에서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리가 생기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친한계인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대구 국회의원 중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분이 있으면 의석이 비게 된다. 그 자리에 한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신지호 전 의원도 3일 오전 KBS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전 대표가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진짜 보수가 누구인지를 가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4년 4월 치러진 22대 총선 때도 한 전 대표의 대구 출마설이 나돈 적이 있다.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 2023년 11월 그가 업무 차 대구를 방문했을 때, 그를 가까이서 보려는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마치 총선 유세 현장을 방불케 했었다. 그는 이날 대구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 응하느라 미리 예약해 둔 저녁 7시 표를 취소하고 세 시간이나 늦게 열차를 타기도 했다. 당시 한 장관이 “대구는 처참한 6·25 전쟁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적에게 이 도시를 내주지 않았고, 전쟁의 폐허 이후 산업화를 처음 시작했다”면서 “평소 대구시민을 깊이 존경해왔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 시민이 많다. 지금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에 얽혀 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그 당시 대구시민은 대구의 정체성을 높게 평가해준 그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 전 대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설에 대해 찬반 여론이 팽팽한 것 같다. 그가 당선돼서 대구의 정치적 색채를 ‘보수꼴통’에서 ‘합리적 보수’로 바꿔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배신자 이미지’로는 당선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친한계 인사들 중에서도 그가 대구에 출마해 낙선하고 대신 민주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면 정치 은퇴까지 해야 될 정도의 충격파가 올 수 있다며 출마를 말리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사가(好事家)들 사이에서는 한 전 대표가 대구에 출마할 경우 국민의힘에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공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른바 ‘자객공천’이다. 이 전 위원장이 그동안 꾸준히 대구시장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 데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이 오는 9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북콘서트를 여는 것을 보면, 그의 출마설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와 고성국씨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전 위원장이 대구에 출마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유한 적이 있다. 대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리가 생길지는 지방선거 공직자 사퇴시한인 3월 5일까지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한 전 대표에게 어떤 정치적 변수가 생길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당무감사위·윤리위를 통해 정치생명을 끊으려 한 한동훈의 정치적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2-03

성장잠재력 추락하는 대구, 특단대책은 없나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발표한 대구경제 성장잠재력 점검 및 발전 방향에 의하면 대구경제의 성장잠재력이 1%대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이 됐다. 한은대경본부가 분석한 대구경제의 평균 성장률은 1991~2000년 4.4%, 2011~2024년 2.0%, 2016~2024년에는 연평균 1.2%에 그쳤다. 추세성장률도 2000년대 초반 3%대에서 2024년에 와서는 1% 중반까지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력산업의 성장 둔화와 산업구조 고도화 지연, 고용여건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을 했다. 알다시피 대구경제는 지역내총생산(GRDP)이 33년째 전국 꼴찌다. 도시 덩치만 컸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력이 전국에서 가장 떨어진다는 의미다. 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지역소득 자료에 따르면 대구경제의 실질 성장률은 마이너스 0.8%다. 충북·강원과 함께 전국 특광역시 중 역성장한 도시로 밝혀졌다. 전국 평균은 2.0%다. 1인당 GRDP는 서울과 충남의 절반 수준이었다. 대구 경제를 지탱하던 섬유, 자동차 부품, 기계금속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반면 신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일자리 부족을 이유로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속속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는 노인인구가 채우고 있다. 지역 내 소비가 위축되는 건 당연하다. 도시의 활력도 자연 떨어진다. 성장잠재력이란 그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 요소를 사용하여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 성장률을 뜻한다. 한 나라 경제성장이 얼마나 가능한지 가늠하는 잣대며, 지역경제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치다. 그동안 GRDP 30년 넘게 전국 꼴찌를 기록한 대구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정치인은 많으나 아직 대구는 여전히 전국 꼴찌다. 이제는 성장잠재력마저 낮아져 몰락 위기에 몰리고 있다. 행정통합의 시너지가 일어나든 어떤 형태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 차기 단체장의 리더십도 경제위기 해법에 달려 있다.

2026-02-03

입춘대길

입춘방은 입춘을 맞아 대문이나 기둥, 문설주 등에 붙이는 좋은 글귀를 이르는 말이다. 입춘첩이라고도 한다. 우리 민족이 오래 지켜온 민속풍속 중 하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대표적 글귀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햇빛이 세워지니 경사가 많다는 뜻이다.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맞아 올 한해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는 축원이 담겼다. 조선 중기 선조실록에도 입춘대길을 행궁 내 붙이라는 전교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 이 풍속이 오래됐음을 짐작케 한다.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도 봄에 붙이는 입춘방의 내용 중 하나다. 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청결한 마음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넉넉한 마음을 갖추면 만사형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은 입춘방이지만 나라의 평안을 기도하는 내용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하며 집집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개인과 나라의 평안함을 입춘시기를 맞아 소망했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겨울 추위가 멀어지고 따뜻한 햇살이 찾아오면서 만물이 소생한다. 파릇한 새싹만큼 우리의 마음도 새로운 각오로 다짐을 하게 된다. 올 한해도 뜻한바 이뤄지기를 바라며 입춘방을 집안 곳곳에 붙여놓는다. 예전의 조상이나 현시대를 사는 우리나 다르지 않다. 오늘이 입춘이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으나 마음만은 벌써 봄곁에 와 있다. 우리 속담에는 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고 했다. 입춘 추위라고 방심말라는 뜻이다. 올 한해는 집집마다 건강하고 좋은 일로 가득하였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