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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편견

사람들은 편견 속에서 허덕인다. ‘그럴듯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정의라는 가면을 쓴 채, 괴로움이라는 달갑지 않은 속을 품고 있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충분한 근거 없이, 개인의 경험, 감정, 선입관에 따라 사물이나 사람을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일컫는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두 가지, ‘공정하지 못하다’와 ‘한쪽으로 치우치다’ 개념 중,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다’ 에 이르면 편견이라는 개념의 속내가 복잡해진다.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견 속의 괴로움을 들추기 전에, 공정하다는 것이 공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 잠깐 살펴보자. 최근의 존 롤스, 로버트 노직, 마이클 샌달과 그 이전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고전 철학자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했으나, 시대적·맥락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찾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이들의 정의에 관한 개념들은 그때는 맞았더라도 지금은 틀리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편견의 한 조건’은 사전적 의미에서 제거되어야 할지 모른다. ‘공정하지 못함’이라는 조건을 편견의 세계에서 제거하면, 남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침’이다. 사실, 어떤 견해이든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것은 견해가 갖는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다. 고로, 모든 견해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 견해가 비록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것은 편견이 되는 것이다. 견해는 드러내는 순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편견이 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왜 괴로움이 되는가. 그것은 치우침의 ‘계속됨’ 때문이다. 견해 자체가 어떤 조건 지워진 상황에서 ‘일시적 치우침(견해)’이면,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지혜’일지 모른다. 한번 멋지게 써먹고 버리면 그만인 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견해가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때, 편견은 ‘지혜라는 가면을 쓴 집착’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바른 견해일지라도 견해에 대한 집착이 계속되어 다른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견해는 괴로움이 되어, 나를, 나의 주변을, 힘들게 한다. 세상 만물이 변화하고 흐른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인간사의 기본 도리이다. 노자의 ‘상선약수’,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그러하다. 고정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편견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 속에서 허덕이고 있지나 않은지. 편견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여기서, 저기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지나 않은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밤낮없이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지나 않은지. 하지만, 잊지 말자. 내가 쏜 편견이라는 분노의 화살은 상대에게 도달하기 전에 나의 심장을 먼저 관통한다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2026-01-19

불안을 넘어서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은 인간 존재의 그림자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며, 미래를 대비한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삶의 질을 높이고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불안과 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불의의 사고는 한순간에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결국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보다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안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한편으로 불안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하다. 불안이 없다면 미래를 대비할 이유도, 현재를 소중히 여길 동기도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건강한 삶의 출발점이다. 불안을 극복하려면 우선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성숙한 이해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불안과 근심의 상당 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내일의 병과 사고, 노후의 불안까지 미리 끌어안고 오늘을 소진한다면 삶은 끝없는 걱정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감동과 기쁨, 일상의 노동과 휴식에 집중할 때 불안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세 번째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모든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할 때 불안은 견딜 수 있는 무게로 바뀐다.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의 불안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불안에 잠식된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스스로 묻게 된다. 거기에서 내면의 힘과 회복탄력성을 길러진다. 건강한 삶이란 불안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함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돈을 모으고 건강을 관리하는 노력은 계속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담대해져야 한다. 불안과 근심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계기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더 단단해지며, 더 인간다운 삶에 다가간다. 완벽하게 안전한 삶은 없지만,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고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삶은 가능하다. 근심의 안개 너머에도 여전히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내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정직한 한 걸음이다.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진정으로 건강한 생을 영위하는 길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6-01-19

위기의 포항, 경륜의 리더십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판단과 미숙한 처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경고다. 위기일수록 실험적 접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이 처한 현실이 바로 그렇다. 위기의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라 검증된 해법이며, 경험 없는 처방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축적된 경륜이다. 지금 포항이 맞닥뜨린 위기의 중심에는 철강산업이 있다. 철강산업은 포항 경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기반이다. 철강산업의 침체는 단순한 업종 부진을 넘어 협력업체와 자영업, 고용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포항의 상당수 기업이 경영 압박에 직면했고, 이는 소비 위축과 지역경제 전반의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 경기 침체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도시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이 여파는 도심 상권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중앙상가를 비롯한 구도심 상권의 공실률은 30%를 넘고 있다. 공장 가동률 저하와 협력업체의 연쇄적인 경영난,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포항의 경기는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기업의 위기는 기업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현장의 사정을 모른 채 탁상공론에 머문 정책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 ◇긴급 경제 전략, 선택과 집중이 해법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필자는 얼마 전 ‘3·3·3 긴급 경제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긴급 투자를 통해 산업과 기업의 숨통을 틔우고, 중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철강산업 정상화다.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자 포항의 생존 전략이다. 이를 위해 부지 조성과 기반 구축, 수소환원제철 실증 사업과 에너지 전환 사업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 ◇실험이 아닌 검증, 경륜 있는 리더십이 위기를 넘는다 산업 회복과 함께 도시 구조의 전환도 병행돼야 한다. 블루밸리 국가산단과 영일만 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워터랜드 구상과 영일만 백리길 순환 힐링 로드를 통해 바다와 도시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때 중앙상가와 죽도시장 같은 구도심 상권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지금 포항의 위기는 개별 정책이나 단편적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 기업이 살아야 포항이 산다. 선무당식 실험이 아니라 기업을 알고 기업과 함께 숨 쉬어 본 경험, 타고난 추진력과 검증된 전략을 갖춘 지도자의 경륜만이 위기의 포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공원식 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9

끊어야 할 악습 ‘공천 헌금’

‘헌금(獻金)’이란 특정 대상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걸 의미하는 단어. 그 앞에 ‘공천’이 붙으면 자신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해달라며 건네는 공천 헌금이 된다. 금전으로 벼슬자리를 팔고 사는 행위는 ‘매관매직’이라 칭하며,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악습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선 곤란하다. 선거 출마를 위해 힘 있는 권력자에게 몰래 거액을 전달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악습이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당을 떠났다. 탈당의 이유는 공천 헌금을 수수했다는 의혹 탓이었다. 이에 앞서 언론사들은 강선우 의원 측이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정황을 녹취와 함께 보도했다. 파문은 갈수록 커졌고 결국 서울경찰청의 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태와 관련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19일 자신의 SNS에 공천 헌금 관련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홍 전 시장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4년에도 공천 헌금이 공공연히 오갔으며 그때 ‘(공천 헌금은) 광역의원은 1억 원, 기초의원은 5000만 원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홍 전 시장은 “지방의원,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사실상 공천권이 전속적 권한으로 되어있는 각 당의 공천 구조와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돈을 주고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자리에 오른 이들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까? 분명 지역민은 아닐 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9

공중전화 부스

얼마 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었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무엇이냐고. 혹시나 다른 답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누구나 똑같은 대답이다. 휴대폰이다.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다. PCS의 도입으로 요금이 크게 낮아지면서 가속화가 되어 십대나 이십대에도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 당시는 통화시간, 문자 메시지 건당 별도의 요금이 부과되었다. 지인의 아들은 그 당시 학생이었다. 새로 사귄 여자 친구는 휴대폰이 있었다. 매일 저녁 집전화기로 그 친구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하루의 일들을 주고 받았다. 한 달 후 나온 전화요금에 아들은 얼굴이 노랗게 질렸다. 엄마도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려 160만원의 전화요금이 부과된 것이다. 초창기에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라져버린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삐삐와 공중전화다. 전화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때에는 거리 곳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 사람들은 동전을 바꾸고 부스 앞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부스 안 사람의 통화가 길어지면 밖의 길은 점점 더 길어졌다. 참지 못한 사람이 부스를 두드려가며 빨리 통화 좀 끝내라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가끔 길을 걷다보면 아직도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옛날의 그 바쁨은 휴대폰에 밀려 찾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덩그렇게 놓여 먼지가 쌓여가는 모습이 왠지 측은하다. 사용처를 잃어버린 것들은 한때의 활발함은 사라지고 거기에 있는지조차 잊혀지고 있다. TV를 보다보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기존 개념을 깬 행보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주로 쏘아 보내던 기존의 로켓은 천문학적인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회용이었다. 이 회사의 로켓은 다회용이다. 한 로켓은 올해 31번을 재사용했다.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경쟁 회사조차도 위성을 쏘기 위해 이곳에 의뢰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스타링크라는 것도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가 쓰는 휴대폰은 기지국이라는 것을 세워 통신을 하는 시스템이다. 기지국 하나를 세우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스타링크는 위성을 이용하는 것이라 기지국과 상관없이 지하든, 바다든, 동굴이든 어느 곳에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5년 이내에 통신사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삐삐나 공중전화가 없어지듯이 기지국이 사라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라짐이 아쉬운 것은 기계를 새로 배워야 한다거나 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물건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던 많은 추억과 기억이 함께 소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중전화에 얽힌 사연이 한 가지쯤은 있지 않을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없는 듯 덩그렇게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지나쳐가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우리 과거의 이야기들이 함께 스러져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스쳐 간다. 한 때는 사회의 주 구성원으로 젊음과 열정을 불태웠던 우리의 남편, 이웃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널널해진 시간과 적막 앞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있는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할지 예측이 어렵다고들 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지는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는데 그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추억과 기억들은 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손 안에 여전히 쥐어져 있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한 몸처럼 함께 움직이는 휴대폰도 어느 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이미 서랍 속에 존재도 희미하게 드러누워 있는 구형의 휴대폰처럼 말이다. 휴대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들은 또 어디론가 사장되어 버릴 것이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던 전화번호와 사진 등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더듬고 있을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6-01-18

AI에게 말 거는 법 - 프롬프트, 질문이 답을 결정한다

지난주, 우리는 AI가 패턴을 학습해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주에는 인공지능(AI)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즉 ‘프롬프트(Prompt)’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자. 포항 영일대 카페의 작은 발견 영일대 해수욕장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 사장은 최근 ChatGPT로 SNS 홍보 문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물었다. “카페 홍보 글 써줘” AI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 카페에 오세요.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있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세요.” 너무 평범했다. 어느 카페든 쓸 수 있는 뻔한 문구였다. 실망한 박 사장은 AI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 손님이 조언했다. “사장님, 구체적으로 물어보세요. 카페 위치도 말하고,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도 알려주세요.” 박 사장이 다시 물었다. “포항 영일대 해변이 보이는 카페의 인스타그램 홍보 글을 작성해 줘. 30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감성적이고 따뜻한 톤으로, 오션뷰와 수제 케이크를 강조하면서 100자 이내로 써줘.” AI의 답변이 확 달라졌다. “파도 소리 들으며 마시는 커피라떼 한 잔, 영일대 일몰이 창밖 가득, 오늘 구운 수제 케이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바다가 주는 여유, 우리 카페에서 느껴보세요 #영일대 카페 #포항 감성 #오션뷰” 같은 AI인데 질문을 바꾸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롬프트의 힘이다. 프롬프트, 도대체 뭔가? 프롬프트는 AI에게 주는 구체적 명령문으로, 패턴 기반의 AI가 정교한 답변을 생성하도록 유도한다. 템플릿을 활용해 반복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카페 홍보”라는 막연한 패턴에서는 일반적인 답변을 생성한다. 하지만 “포항”, “영일대”, “30대 여성”, “감성적”, “100자”라는 구체적 패턴을 제시하면 훨씬 정교한 답변을 만들어낸다. 좋은 프롬프트의 5가지 조건 AI 프롬프트 전문가들이 수많은 실험과 연구 끝에 발견된 좋은 프롬프트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구체성 (Specific) 막연한 질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나쁜 예: “포항 관광 소개 글 써줘” 좋은 예: “포항 호미곶 해맞이 광장을 처음 방문하는 40대 가족 여행객을 위한 관광 안내 글을 200자로 써줘. 주차 정보와 인근 맛집도 포함해 줘.” 2. 맥락 제공 (Context) AI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나쁜 예: “사과 편지 써줘” 좋은 예: “고객에게 배송 지연 사과 편지를 쓰려고 해. 우리는 포항의 과메기 온라인 쇼핑몰이고, 택배사 파업으로 3일 지연됐어. 정중하지만 친근한 톤으로 150자 정도로 써줘.” 3. 역할 부여 (Role) AI에게 어떤 전문가 역할을 부여하자. 나쁜 예: “경영 조언해 줘” 좋은 예: “당신은 20년 경력의 소상공인 컨설턴트야. 포항에서 전통시장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데 매출이 줄고 있어. 온라인 진출 전략을 3가지만 추천해 줘.” 4. 형식 지정 (Format) 원하는 답변 형식을 명확히 제시하라. 나쁜 예: “포항 맛집 알려줘” 좋은 예: “포항 맛집 5곳을 표로 만들어줘. 열은 ‘식당명’, ‘대표메뉴’, ‘가격대’, ‘특징’으로 구성하고, 각 특징은 한 문장으로 요약해 줘.” 5. 예시 제공(Example) 원하는 스타일의 예시를 보여줘라. 나쁜 예: “블로그 글 써줘” 좋은 예: “다음 예시처럼 포항 호미곶의 일출 경험을 블로그 글로 써줘. [예시: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호미곶 해맞이 광장.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같은 요청, 다른 결과를 실전 사례를 통하여 비교해 보자. 사례 1: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 나쁜 프롬프트 사례 : “자기소개서 써줘” 결과: 누구나 쓸 수 있는 뻔한 문구. “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프롬프트 사례 : “포스코 공채에 지원하려는 20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써줘. 나는 ○○대학 기계공학과 졸업생이고, 학부 시절 철강 재료 연구실에서 2년간 인턴 경험이 있어. 협업 능력과 문제 해결 경험을 강조하면서 300자로 작성해 줘.” 결과: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내용. “ ○○대학 재료 연구실에서 철강 미세조직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례 2: 블로그 상품 리뷰 나쁜 프롬프트 사례 : “과메기 소개 글 써줘” 결과: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여 만든 경북 지방의 전통 음식입니다. 좋은 프롬프트 사례 : “포항 과메기를 처음 먹어본 서울 사람의 시점에서 블로그 후기를 써줘. 놀랐던 점은 비린내가 전혀 없고 쫄깃한 식감이었다는 것. 각종 채소와 김, 미역, 마늘과 파 등을 함께 쌈으로 먹는 방법도 소개하고,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톤으로 400자 정도로 써줘.” 결과: 생생하고 공감 가는 후기. “솔직히 비릴 줄 알았는데, 첫입에 놀랐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에···.“ 프롬프트 서식 즉 템플릿(Template) 활용하라 프롬프트를 매번 처음부터 만들 필요는 없다. 자주 쓰는 작업은 서식 즉, 템플릿을 만들어두면 편리하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알아보자. 템플릿 1 : 업무 이메일(e-mail) 작성용 “[받는 사람의 직책]에게 보내는 [목적] 이메일을 작성해 줘. 내용은 [핵심 내용], 톤은 [정중함/친근함/격식], 길이는 [○○자]로.” 템플릿 2 : 마케팅 카피 제작용 “[제품/서비스]를 [타깃 고객]에게 홍보하는 [SNS 종류] 게시글을 써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고, [감성적/유머러스/전문적] 톤으로, [○○자] 분량으로.” 이렇게 서식 즉, 템플릿을 만들어두면, 괄호 안만 바꿔가며 반복 사용할 수 있다. 질문의 창의성이 AI 활용의 한계를 결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AI시대에는 답을 아는 것보다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포항 인구가 몇 명이지?”라는 답을 아는 사람이 유능했다. 이제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포항 인구 감소 추세를 분석해서, 지역 소상공인이 대비할 수 있는 전략 3가지를 제안해 줘. 전략마다 실행 난이도와 예상 효과도 평가해 줘”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질문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우리의 질문에 달려 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과메기를 파는 김 사장이 “우리 가게 홍보 글 써줘”라고 물으면 평범한 답만 나온다. 하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귀성객들이 포항 특산물을 찾을 때, 과메기 선물 세트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SNS 광고 문구를 써줘. 건강과 전통을 강조하면서, 40~50대를 대상으로 해시태그 3개 포함해서 120자로”라고 물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연습이 실력을 만든다 프롬프트 작성도 기술이다. 처음에는 서툴러도 연습하면 늘어난다. 같은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바꿔가며 시도해 보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또한, 결과를 비교하면서 어떤 프롬프트가 더 나은 답을 끌어내는지 관찰하자. 처음에는 “블로그 글 써줘”였다가, 다음에는 “300자 블로그 글 써줘”가 되고, 그다음에는 “30대 여성을 위한 포항 여행 블로그 글을 감성 톤으로 300자 분량으로 써줘”가 된다. 이렇게 조금씩 구체화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프롬프트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질문이 답을 결정한다 AI시대의 핵심은 같은 AI를 써도, 누구는 평범한 결과를 얻고 누구는 놀라운 결과를 만든다. 그 차이는 질문에 있다. 박 사장의 카페는 이제 매일 새로운 SNS 콘텐츠로 가득하다. “카페 홍보 글 써줘”가 아니라 “영일대 일몰을 배경으로 한 감성 카페 콘텐츠를 인스타그램 캐러 셀 형식으로 3장 구성해 줘. 첫 장은 오션뷰, 둘째 장은 수제 디저트 클로즈업, 셋째 장은 행동 유도 문구”라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AI는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질문은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18

‘TK행정통합’ 재추진, 공론화 되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17일 대구·경북(TK) 행정통합을 재추진하자고 전격 제안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행정통합을 가장 오래 준비한 TK가 동참해야 (시·도 행정통합이) 제대로 진행된다“면서 “우선 대구시장 권한대행을 만나고 도의원들과 상의를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지사는 전날 정부가 대전·충남, 광주·전남의 행정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파격적인 재정지원 (4년간 20조원 각각 지원) 방안을 내놓자, “재정지원이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포괄보조금(풀예산)'이라면 TK통합 논의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이번 발표의 진위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었다. 이 지사는 “중앙정부 고위인사에게 직접 확인해 보니 정부가 밝힌 연간 5조원 가운데 단순히 이양되는 사업비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지방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포괄보조금 형태로 지원된다고 한다”면서 “우리가 요구해 왔던 각종 특례들만 좀 더 챙긴다면 이번에는 대구·경북의 판을 바꿀 실질적인 대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지사는 20조원 규모의 재정이 풀예산으로 지원되면 대구·경북은 그 돈으로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공항 후적지 개발, 경북 북부지역 대규모 투자, 동해안권 전면 개발, 대구·경북 신산업 창출 등 미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지사의 말처럼 대구와 경북은 전국 시·도 가운데 행정통합을 가장 먼저 추진했었다. 이로 인해 TK지역민들은 그동안 대전·충남, 광주·전남 행정통합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 추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외감을 느껴왔다. 수도권 2차 공공기관 이전이나 기업유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제 TK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 것 같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이럴 때(대구시장 공석)가 찬스 아닙니까“라며 TK 행정통합을 독려하지 않았는가. 이 지사가 지난 2020년에 이어 다시 TK 행정통합 추진의 총대를 멨으니, 이번에는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2026-01-18

다시 변경되는 취수원 이전방식, 논란 끝내야

정부는 30년 이상 끌어온 대구취수원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안동댐 활용의 기존 방식을 백지화하고 강변여과수·복류수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할 뜻을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효정 물이용정책관은 지난 15일 대구시청을 방문, 대구 상수원을 이전하는 기존의 구상 대신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취수원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강변여과수는 강 부근에 우물을 설치, 취수하는 물이며 복류수는 강바닥 5m 안팎에 모래와 자갈층 속에 흐르는 물을 말한다. 김 정책관은 두 가지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취수하면 안동댐이나 해평취수장 활용 때 보다 경제성이나 수질 면에서 낫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수량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상수원 보호구역이나 공장 설립 규제 등 지자체 간 갈등을 피할 수 있는 해법이 된다는 취지 설명도 했다. 대구시도 이에 따라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이용하는 취수 방식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여 올 하반기에는 취수원 변경 방식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취수원 이전 문제는 1991년 페놀 사태 후 30년 이상 해법을 모색했지만 지자체 간 갈등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 대한 대구시민의 불안과 불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기후부가 제시한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활용한 취수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 큰 다행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우려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질, 수량, 수질변수와 장기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질 저하와 지반 침하 등을 우려한다. 강변여과수 시설이 도입된 창원의 경우 취수원 인근에서 지하수 고갈과 수질 악화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을 상기한 것이다. 취수원 이전 문제는 대구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중요한 문제다. 장기적 안목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적 관점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므로 과학적 접근으로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이 나와야 한다. 또다시 이전방식을 두고 번복이 된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해소키 어려워진다.

2026-01-18

부자들의 비밀금고

198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도(大盜) 조세형은 서울의 부잣집 금고에서 수백억원의 현금과 금품을 훔쳐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민들은 그의 대담한 도둑질에도 놀랐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부자들은 은행이 아닌 집안 금고에 이렇게 많은 돈과 귀중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쇼크를 받았다. 우리나라 부(富)의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된 탓인지 서울 부자들의 금고 이야기는 꾸준히 우리 사회에 회자돼 왔다. 요즘은 가정집 금고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아예 가구처럼 매립된 사례도 등장한다고 한다. 장롱 속에 숨겨진 금고나 그림 액자 뒤편에 숨겨진 금고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가정마다 금고에 보관해야 할 개인 소중품이 늘어나 금고를 비치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집안 주요 문서나 보험증서, 비상금, 심지어 배냇저고리, 태아초음파 사진 등도 보관하는 가정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집안에 금고를 비치한 가정이 유난히 많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는 쓰나미에 떠내려오거나 주택 잔해 속에서 발견된 금고가 경찰서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일본은행의 낮은 금리와 은행 가기를 꺼리는 노인가구가 많기 때문이라 한다.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김 의원의 개인금고 확보에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소식이다. 경찰은 김 의원 부부가 귀중품을 보관했다는 금고에서 범죄를 입증할 증빙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 부자나 권력가의 비밀금고도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때로는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8

참새를 위한 변명

경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지 어언 1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도회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 가운데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10층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소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불러서 거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언젠가 아이 엄마한테 그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에 삼삼하게 각인돼 있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지만, 이런 절정 고수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촌에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른 형태의 층간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에스파냐 기와를 얹은 나의 소담한 지붕에서 일어났다. 기왓장 사이마다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키우면서 잠꼬대하며 몸을 뒤틀거나, 기왓장 아래 나무판을 발톱으로 긁거나, 새벽마다 자기네 기상을 알리는 것이다. 햐, 이런 층간 소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일부 식견 놓은 건축주는 기왓장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시공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새는 천적을 피해 인가 부근에 둥지를 트는 인간 친화적인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는 참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말에 ‘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좋은’, ‘진정한’, ‘우수한’의 의미다. 참나리, 참깨, 참나물 같은 어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새에 이르면 나는 생각이 썩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똥오줌 내갈기고,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새벽잠을 깨우고, 여기저기 솜털이며 깃털을 날리는 불결하고 요란한 작은 조류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무엇보다 우두머리 참새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그러지곤 한다. 사람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언짢은 심사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참새의 ‘참’자는 풍자(諷刺)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놀라운 발상의 소유자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참새가 무상-무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는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요즘 농촌에는 완벽히 사라진 허수아비의 추억도 참새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의 지시로 3억 마리 이상의 참새를 잡아 죽인 까닭에 해충이 들끓어 식량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참새는 인간과 가까운 조류다. 세상에 ‘나’에게만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좋은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율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와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을 되풀이한다. 일방적인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는 없다. 참새를 위한 어느 인간의 소박한 변명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8

포항, 이제는 광역철도 시대로 가자!

“국장님, 포항에 광역철도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까?” 2022년 10월 21일, 제299회 임시회 건설도시위원회 정책 질의에서 필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최근 지난 4년여 동안 의회에서 ‘철도’와 ‘트램’을 언급한 속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시정 질문과 위원회 정책 질의 곳곳에 남아 있는 기록을 읽으며, 그 시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건설도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 필요성을 포함해 포항·수서행 고속철도 도입, 포항역 주차장 확충문제, 트램 도입의 문제 등을 꾸준하게 제기했다. 지적한 내용 중 포항·수서행 고속철도는 실제 도입되었고, 포항역 주차장 확충 역시 유휴부지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현재 추진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사안은 ‘트램 도입’이었다. 2023년 12월 제311회 정례회 건설도시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트램 도입 관련 용역 3억 원’에 대한 집중 질의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집행부는 포항에 트램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용역이라 설명했지만, 위원회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기상조이며,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냈다. 당시 담당 국장은 “일단 용역을 한번 해보고 판단하자”라는 취지로 설명했고, 트램 관련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는 발언도 했었다. 열변을 토하던 국장에게 “국장님, 트램 회사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되묻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결국, 해당 용역비 3억 원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전액 삭감되었다. ‘일단 해보자’라는 말은 가벼웠지만, 시민의 혈세 3억 원은 절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램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현행법상 포항 도심에 트램등 도시철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철도보호지구는 경계선에서 30m, 도시철도법상으로는 10m가 설정돼 행위제한을 받게 된다. 만약 죽도시장 일대에 트램이 들어서면, 기존 4차선이 2차선으로 좁아져 교통대란은 불가피하다. 또 철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사유재산 침해까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행법을 무시한 채 추진하는 것은 문제다. 서울과 수도권을 보면, 지하철뿐 아니라 광역철도를 통해 서울과 경기권을 오가는 출퇴근이 일상화돼 있다. 그만큼 자가용 이용이 줄어들고 교통 체증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광역급행철도인 GTX까지 도입되었다. 이러한 현실과 비교할 때, 포항을 비롯한 비수도권 시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은 명백한 불균형이다. 그래서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항의 광역철도망 구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포항시는 이미 2024년 4월, 경상북도를 통해 국토교통부에 관련 계획을 공식 건의했고, 올해 6월 국토부 고시를 앞두고 있다. 포항시가 제안한 안은 동대구–영천–포항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와 부산권(부전–북울산) 노선을 경주와 포항까지 연장하는 구상이다. 포항에 광역철도를 도입해 대구권과 부산권을 연결한다면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지역 통합이라는 정부의 계획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올해 6월 국토부 고시에 포항 광역철도망 구축계획이 포함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18

21세기 도시 생존은 ‘차이’에 달려 있다

20세기 도시 발전의 목표는 ‘결핍 해소’와 ‘차이 제거’에 있었다. 서울과 지방 간 주거·교육·문화 등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곧 발전이며 진보라고 믿어졌다. 어디를 가나 동일한 아파트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상업시설, 효율 중심의 도로망은 도시를 빠르게 팽창시켰고, 우리에게 안정과 편의를 제공했다. 개발의 언어는 효율과 속도가 중심이 되었고, 차이는 불편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거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특별한 개성도 사라졌다. 낯선 도시의 역에서 내려도 어디선가 본듯한 대단지 아파트 숲이 눈앞을 가로막고, 골목마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서울 외곽의 수많은 신도시 프로젝트에서부터 지방 도시, 유럽 교외에서 아시아 해안 도시까지, 같은 건축물과 인프라, 접근 방식, 논리가 복사된 듯 반복되었다. 도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색무취한 공간으로 전락했다. 요즘 도시, 특히 지방 도시의 문제는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도로와 건물, 각종 시설은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진짜 문제는 “왜 굳이 이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나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도시가 더 이상 어떤 삶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 도시가 삶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일이 많은 도시만을 고르지 않는다. 일 이후의 삶까지 상상하며, ‘나다운 삶’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다. 결국 사람들이 도시를 고르는 기준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공기의 질감, 축적된 역사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고유한 관계의 방식 말이다. 포항과 경북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산업과 항만, 대학과 자연이라는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도시가 어떤 삶을 제안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와 똑같은 풍경으로 채워지는 ‘어디에나 있는 도시’가 되는 순간, 젊은 세대는 떠나고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 따라서 21세기 도시 전략은 장식이 아닌 구조적 차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일회성 축제나 화려한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보호하며, 어떤 삶의 방식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선택이다. 공간과 건축, 문화와 산업, 그리고 일상의 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차이다. 차이는 단순히 더 많은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 도시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이유다. 20세기의 인프라가 이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21세기의 도시는 여기에 더해, 관계·기억·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가가 아니다. 이 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다. 다름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차이를 잃어버린 도시에 미래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1-18

포항 교육, 서울 못지 않은 ‘기회’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

포항은 지금 교육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시행 1년 만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은 커졌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교육격차는 더 벌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33.5%가 자퇴를 실제로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한 번의 성적 부진이 곧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의 결과다. 경쟁에서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학부모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학생의 71%, 학부모의 90%가 고교학점제가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응답했다. 진로와 과목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공교육은 충분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사교육 컨설팅이 빠르게 채우고 있단 점이다. 지역의 한 고교에선 고교학점제 대비 컨설팅을 대치동 사설학원에 맡기고 총 1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내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받기 위해 대규모 학교로 진학해야 한단 말도 사교육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실제 고교학점제 1년의 시행 결과 대도시와 대규모 학교가 내신 혜택을 받아 지역 격차가 더 두드러진단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과 비서울 간 입시 정보 격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교육의 문제가 주거와 경제력의 문제로 더 심화하는 것이다. 이 정보 격차는 곧 기회 격차로 이어진다. 포항에 교육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포항은 자사고와 과학고 등 비교적 교육 선택지가 많고 교육열도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그렇기에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고교학점제로 인한 혼란과 지금의 교육격차를 방치하면, 더 많은 정보와 여유를 가진 가정의 자녀만 앞서 나갈 수밖에 없다. 공교육 안에서도 진로와 과목 선택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 받고, 정보의 속도와 질에서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포항형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구축하고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온라인 포털로 운영되는 경북교육청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로는 부족하다. 포항 지역 맞춤으로 학생들 누구나 우수한 강의와 진학 지도,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뿐만 아니라 질 높은 오프라인 컨설팅 공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진학관계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시가 적극적으로 입시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폐교된 용흥중학교 건물이 비어있으니 공간은 충분하다. 지원과 의지의 문제만 남아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현장과 제도, 두 곳에서 모두 고민해 왔다. 과거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실 수석보좌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교육 정책이 어떤 의도로 설계되고, 또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제도 하나가 학생과 학부모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직접 확인해 왔다. 그래서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말은 필자에게 ‘구호’가 아니다. 공정한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새로운 제도로 인한 혼란과 이미 구조화된 교육격차란 오랜 문제는, 이상적인 말로 해소할 수 없다. 서열을 없애겠단 말보다, 서울 못지않게 인프라를 제공하겠단 말이 더 현실적이다. 포항의 도약은 교육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 먼저 선택되는 도시, 가정의 배경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평가받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포항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생각하면, 가능한 이야기이고 해야만 하는 꼭 필요한 일이다. /박대기 전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 직무대리.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1-18

검찰은 없애고, 특별검사로 대체하나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한다. 자두를 따 먹는다고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은 오히려 오이를 따 먹으려고, 내놓고 신발 끈을 푼다. 그러고는 왜 오이를 딴다고 음해하느냐며 버럭 화를 낸다. 얼굴이 참으로 두껍다. 민주당은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2차 종합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28일 3대 특검 수사가 끝난 지 19일 만이다. 3대 특검(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 순직 해병 특검)이 미진했다는 이유다. 새롭게 드러난 의혹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577명의 수사 인력이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며 180일간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탈탈 털었다. 2차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16일에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첫 1심 판결이 있었다. ‘체포 방해’와 관련해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것 말고도 7개 재판부가 1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핵심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다. 내란 우두머리에게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두 가지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한다면 모를까, 최소 무기징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특검을 또 하겠다고 한다. 2차 특검은 검사 15명에, 특별수사관 100명, 파견 공무원 130명으로, 내란 특검과 비슷한 규모다. 수사 기간은 최장 170일, 추가 비용만 154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방해는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만 특검을 오래 끌어야 징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새 정부는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국민이 적극 지지했다. 그런데도 아직 미진하다고 한다. 미진한 점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굳이 특검을 다시 해야 하는 걸까. 특검은 권력자를 수사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 대통령이 수사 검사를 해임했다. 이 때문에 의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할 ‘독립검사법’을 만들었다. 그 뒤로 21년 동안 20여 차례 특검을 임명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분별한 수사로 정쟁의 도구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바람에 1999년 그 법을 폐기하고, 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하도록 특검 제도를 수정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 무렵 특검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27년 동안 19개 특검이 활동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민주당은 검찰을 해체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검수완박’(檢搜完剝·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쳐왔다. 정치적 수사를 하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특검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현재 검찰과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민주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다. 내란 수사를 방해할 권력자는 없다. 내란 수사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추가 수사까지 통상의 수사기관에 맡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검찰을 ‘정치적’이라며 없애자는 민주당이 가장 정치적인 특검을 반복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정작 집권 세력이 연루된 사건에 대한 특검은 외면한다. 김병기·강선우 의원 사건은 고발한 뒤에도 묻어두다가, 끈이 떨어진 뒤에야 수사기관들이 움직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공천 비리 특검은 거부했다. 수사기관은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도 경찰이 저질러놓고 은폐한 것을, 검찰이 흘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더구나 2차 특검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상계엄에 동조했는지,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한다. 지방선거가 겨우 130여 일 남았다. 특검이 확정되지 않은 야당 후보의 의혹을 최장 170일 동안 쏟아내면 선거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하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사건 수사를 선거기간에는 중단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않는 절제를 보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당은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풀고 있다. 그런데도 참외를 따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린다. 정치인의 낯가죽이 참으로 두꺼운 시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18

경북도 산불 책임제, 시·군에 페널티 매긴다

민선단체장이 선출되기 이전에는 관할구역에 산불이 나면 시장·군수는 피해정도에 따라 문책을 받는다. 1990년대는 피해면적 500ha가 넘으면 해당 단체장은 직위해제되는 중징계를 받았고 심할 경우 단체장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산림이 많은 경북도내의 관선 시장·군수들은 휴일에도 산불예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산불예방에 노심초사했다. 민선단체장으로 바뀌면서 산불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단체장에 대한 페널티는 사실상 구경할 수가 없다. 단체장은 산불 진압의 법적·행정적 책임은 있지만 실제로 처벌이나 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드물다. 가령 경북도내 장기 건조주의보가 내려졌다고 가정하자. 산불 예방에 관한 협조를 경북도가 기초단체장에게 전달하지만 과거처럼 긴장감 있는 대응을 하는 시군은 많지 않다. 경북은 산림면적이 넓고 수종도 불에 약한 소나무가 많다. 경북북부지방은 소나무 밀집률이 80% 이상이다. 산림과 인접한 마을도 많아 산불에 매우 취약한 곳으로 손꼽힌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통계로 보면 경북(연 129건)은 강원도(연 157건) 다음으로 많다. 작년 3월 경북은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로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 5개 시군에 걸쳐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를 입었다. 2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고, 6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산불 피해면적만 서울시 면적의 절반을 넘었다. 경북도는 올해를 대형산불 제로의 해로 정했다. 도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산불종합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과거 홍보·계도 중심에서 벗어나 책임중심으로 대책도 전환했다. 예방관리가 미흡하거나 반복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시군에 대해서는 교부금 지원 제한 등 재정페널티를 매기기로 했다. 기후변화 심해지면서 대형산불이 상시화할 소지가 커지고 있다.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보다 강력한 예방조치 차원의 재정 페널티는 바람직하다. 권한만큼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공기관의 관심과 경각심에도 도움이 된다.

2026-01-15

여당, 'TK 지방정치 구도’ 바꿀 수 있을까

이번 대구·경북(TK) 지방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중량급 인사들이 광역단체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접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안동이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중량급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후보를 물색해 당선자를 꼭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 TK 공략 인재발굴을 위해 ‘영남발전특위’도 가동할 예정이다. 민주당 허소 대구시당 위원장(전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행정관)과 임미애 경북도당 위원장(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지난 14일 경북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시장·도지사 후보로 출마할 경우 TK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인 지지율 상승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정부와의 원활한 협력을 통해 대구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면 실행력이 담보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서 “2월까지는 이에 걸맞은 대구시장 후보를 찾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현재 중앙당 차원에서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대구시장 후보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위원장은 “TK 주요 현안에 대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려면 경북에서도 정부와 호흡을 맞출 인물이 필요하다”면서 “경북이 그동안 보수정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왔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경북도지사 후보로는 임 위원장 본인과 안동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임 위원장은 1990년대 초부터 경북 의성에 정착해 살고 있으며, 재선 의성군의원과 경북도의원을 지냈다. 미디어토마토가 15일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61.5%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TK에서도 긍정(52.4%)이 부정(40.8%) 비율보다 높았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지역 민심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을 보면 부동층과 무당층이 꾸준히 30~40%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야의 선거캠페인 방식에 따라서 이 지역 정치구도가 크게 출렁일 수도 있다.

2026-01-15

로봇 세상이 코앞에

최근 막을 내린 CES 2026 전시 현장에는 인간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가득했다. 관람객들은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앞으로 로봇이 인간에게 제공할 무한한 노동의 영역을 상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부분 대체할 거라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예측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세상은 로봇천지로 바뀌고 있다. 국내 어느 대기업의 CEO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년 후면 많은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 말했다. CES 2026에서 보았듯이 LG전자의 클로이드는 빨래, 요리 같은 집안 일을 척척해낸다. LG전자는 가사노동 제로화를 비전으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두렵기도 하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하면 생산비 절감과 동시에 작업 성공률도 높아진다. 지금의 속도로 가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안에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으로 바뀔 것 같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하면서 인공지능 위력에 깜짝 놀란 지 불과 10년 만에 AI 로봇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이 인류의 미래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학계에서는 현재 인류가 수행하는 일자리의 절반 가량은 로봇 등으로 사라질 거란 전망을 내놓는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기막힌 세상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15

인서울 대학 경쟁은 공정한가?

‘공정’은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이 단어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되었고,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선거에서, 학교에서, 채용과 승진의 장에서 공정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해졌는가.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격차는 더 벌어지고, 분열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왜곡된 공정이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노력과 능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승자에게 정당화된 우월감을, 패자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을 남긴다. 성공은 자격이 되고, 실패는 낙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서열은 고착화되고 공동체의 연대는 느슨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영역은 교육 분야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시는 극도로 민감한 공정의 최전선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문자 그대로의 계급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오늘날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 서열은 ‘태정태세문단세’로 암기되는 조선왕조 계보보다 더 유명하고 확고한 계급 체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학 서열화는 공정한 입시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인서울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격차에서 공정의 허상은 보다 명확해진다. 대학의 소재지는 능력과 가능성을 대신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교육 수준이 아닌 대학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으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인서울 여부는 능력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지방 대학은 2등 시민을 양산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감춰진 공정 담론은 지역과 서울 간 교육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애써 정당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채용과 승진을 넘어 삶의 경로를 결정한다. 한 번 형성된 서열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사람들은 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이 인서울 대학, 인서울 직장, 인서울 아파트 구입을 목표로 경쟁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서울 경쟁에서 승자의 명예와 패자의 수치는 간극이 너무 크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거의 없다. 공정 담론이 쉽게 분노와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이유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면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인서울 대학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교육의 질보다 대학의 위치를 먼저 따지는 사회는 건강한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우리는 공정한 민주 시민인가. 공정은 과소 평가되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없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지리적 위치가 삶의 서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역과 학교를 넘어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문법이어야 한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1-15

주사 이모

골프장에 가면 호칭은 단 하나다. 모두가 “사장님”이다. 진짜 사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손사래를 쳐도 “사장님 나이스 샷”은 멈추지 않는다. 호칭은 사실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다. 반복되면 어색함은 사라지고, 결국 말은 의미를 잃는다. 골프장에서 사장님이 넘쳐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호칭이 존중의 표현이기보다 서비스의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듣는 쪽도, 부르는 쪽도 그 허구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사 이모’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낯설었다. ‘주사 아줌마’도 있을 수 있고, ‘주사 도우미’도 가능할 텐데, 왜 하필 이모일까. 더 묻게 된다. 고모는 왜 안 되는가. 외삼촌은 왜 상상조차 되지 않는가. 호칭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함을 남긴다. 이모라는 호칭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동네 병원에서도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무난한 말이 되었다. 이름 대신 불리고, 직함 대신 쓰이며, 개인은 자연스럽게 지워진다. 친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친근함은 대체로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부르는 쪽은 편하고, 불리는 쪽은 선택권이 없다. 과거 드라마 속 가사도우미는 “청주댁”, “안성댁”으로 불렸다. 본래 ‘댁’은 존칭이었지만, 어느 순간 출신과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고, 급기야 비하의 언어로 굳어졌다. 지역과 혈연을 담던 말이 노동과 종속을 표시하는 기호로 변한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계층을 정리하고, 한 번 굳어진 호칭은 좀처럼 위로 이동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모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워졌는지, 재벌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실장님”이라 부른다. 반면 골프장에서는 모두 사장님이고, 글 쓰는 세계에서는 모두 선생님이다. 미술계에서는 작가라 부른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모’라는 호칭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모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계층에만 허용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호칭 하나로 공간의 위계가 구분되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이모라는 호칭이 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곳에서는 “저기요”면 충분하다. 아가씨도 아니고, 이모는 더더욱 아니다. 호칭을 지우는 대신, 서비스 공간의 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모라는 말이 그만큼 낮은 위치로 고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평생 이모라는 호칭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는 외동이었고, 아버지 쪽에는 고모만 있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도 이모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오십쯤 되어 보이면 무조건 아가씨라 부른다. 그 말에 불쾌해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불편함은 말보다 맥락에서 생긴다. 내게 이모는 친족 호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모는 여성 노동자를 부르는 가장 손쉬운 말이 되었다. 친근함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개인을 지우고 역할만 남기는 언어가 된 것이다. 만약 주사를 놓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우리는 뭐라고 불렀을까. ‘주사 외삼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요즘 꽤나 심심하긴 한 모양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1-15

해방군은 없다

새해 벽두부터 참담한 소식이 전해온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고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군은 새벽 두 시에 침입하여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베네수엘라 측은 8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명분은 마두로의 부정선거와 미국 내 마약 판매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상식적으로 보아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트럼프는 1기 대통령 시절부터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반미 성향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마약과 폭력을 전파한다고 비난하면서 마약 실은 배를 습격하는 등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부정선거에 미국이 개입할 정당성도 없거니와, 대통령을 납치한다고 마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미국의 개입을 환호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두로가 얼마나 독재를 했으면 미국의 침공을 환영할까 싶은 것이다. 사실 마두로가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는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노동운동가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마두로는 자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명분만 사회주의를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사익만을 위했다. 예를 들어, 마두로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지만, 그것은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 작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였던 것은 마두로의 독재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마차도는 차베스가 대통령일 때부터 독재를 비판해왔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갖은 위협으로 마차도의 인권 운동을 방해했지만 마차도는 수년간 꿋꿋하게 독재에 맞서 왔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노벨상 위원회가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마차도 같은 인권 운동가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올 뿐이다. 과테말라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처럼 미국이 개입해서 친미 정권이 들어선 나라들은 내분만 격화할 뿐 제대로 발전한 나라는 없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다. 그러나 이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트럼프가 마두로 부부를 납치한 것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뿐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차도 같은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는다고 안심만 할 수는 없다. 사람은 변한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얀마의 정치 지도자 아웅 산 수 치도 노벨상 수상 이후 반민주적인 행보에 비판이 많다. 아무리 민주 투사였던 사람이라도 처지가 바뀌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현재까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복덩어리가 되려면 마두로의 부정투표와 독재에 저항하고 트럼프의 군사 개입에도 항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15

껌팔이 소년에서 교수로,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160시간의 사회복지실습이 일깨운 ‘스마트 복지’의 미래

포항시 북구 기계면 고지리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도움터기쁨의집’(원장 황순희)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작된다. 160시간의 사회복지 실습을 마친 지금, 나는 이곳에서 한국 사회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다. 껍질을 벗고 본질로 1970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구의 한 방직공장으로 향했다. 실을 잇는 손가락 사이로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기계에 끼어 오른팔이 절단될 뻔한 사고를 당했으나, 동료 선배가 재빨리 스위치를 꺼준 덕분에 팔은 남았고 상처만 남았다. 부상 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시골의 비인가 중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포항으로 이사했다. 당시 가난은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굴레였다. 극장에서 껌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매점 사장의 배려로 포항문화원 사환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맹모삼천지교’의 현대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비인가 중학 과정인 포항중앙재건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나를 가르쳐준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 교사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과 여러 선배들의 도움으로 중학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포항고를 거쳐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장학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는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 현장에서 일했고, 새벽 우유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대학교 해양연구소에서 ‘복어독 생성균과 해양환경에서의 독 축적 메커니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약학부에서는 적조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오로지 포항영일만환경과 발효식품연구에 매진을 하였다. 그 후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하며, 특히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로 10여 년간 봉사와 복지의 경계를 고민해왔다. 은퇴 후, 어린 시절 나를 일으켜 세워준 이름 모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사회로 환원하고자 사회복지사의 길을 선택했다. 잔여주의에서 제도주의로, 그리고 그 너머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인 ‘도움터기쁨의집’에서의 160시간은 한국 사회복지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현장은 여전히 잔여주의 복지의 그늘 아래 있다. 가족과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때 비로소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다. 발달장애인은 가족의 돌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시설로 오고, 예산은 항상 ‘최소한’에 머문다. 정확한 통계는 아닐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복지사 1인당 돌봄 대상자는 10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관련 종사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 미만, 연 이직률은 20%를 상회한다. 낮은 처우와 과중한 업무 때문이다. 복지는 여전히 ‘권리’가 아니라 ‘시혜’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말한다. “이분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것이 제도주의 복지의 관점이다. 복지는 소수의 불운한 사람을 돕는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실습 기간 중 가장 거주인들의 인기 있는 활동은 노래와 춤이었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거주인과 사회를 잇는 소통의 다리였다. 특히 은하수로타리 여성봉사단의 후원, 하모니카 봉사단과 예술봉사단 및 참붕어빵학교의 참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방송대학생들의 실습생들도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거주인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도 아쉬운 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에 모든 거주인들이 다 함께 국내외에 나갔으면 하는 마음과 거주인들을 움직이는 짧은 공간의 애마(이동수단)를 변경하는 것이 나의 작은 올해의 소망이기도 하다.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 실습 중 만난 40대 발달장애인 L씨는 간단한 문장 표현이 어려웠지만, 태블릿 PC와 그림 소통 앱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했다. 또 다른 시설의 B씨는 IoT 센서가 부착된 침대 덕분에 야간 낙상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서 ‘스마트 복지’의 가능성을 보았다. AI와 기술은 돌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손을 덜어주고, 발달장애인의 선택권과 안전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태블릿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주인, IoT 센서로 밤사이 낙상을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존엄을 지켜주고 있었다. 복지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복지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아니다. 사회가 한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시 현장에 서서 묻는다. 우리는 복지를 여전히 시혜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권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 평범한 하루가 포항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스마트 복지’와 ‘따뜻한 연대’가 만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포항에서 시작할 MIND 프로젝트 BTS 민윤기씨가 제안한 MIND(Music, Interaction, Network, Diversity) 프로젝트는 음악을 통한 치유와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새로운 복지 모델이다. 나는 이를 포항에서 실현하고 싶다. 지역 기업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포항형 스마트 복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AI 기반 개인 맞춤형 돌봄 시스템, 지역 기업과 연계한 의미 있는 일자리, 시민 참여형 온라인 플랫폼 구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다. 기술이 아닌 사람, 시혜가 아닌 연대 껌팔이 소년이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연대 덕분이었다. 이제 내가 그 연대의 고리를 잇고자 한다. 포항 시민 여러분, 지역 기업 여러분. 함께 포항형 MIND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발달장애인이 존엄하게 사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존엄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나는 한때 극장에서 껌을 팔던 소년이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했고, 기계에 팔이 끼어 절단될 뻔한 사고도 겪었다. 가난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 정확히 말하면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와 어른들의 연대였다. 나 역시 이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배우고 다시 사회로 환원하려는 사회복지예비실습자 (혹은 선배시민)로서의 모습으로 서 있다. 교수였던 과거의 직함은 이 공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누가 더 잘 듣고, 더 천천히 기다리며,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도움터기쁨의집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거주인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였다.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추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과 감정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음악·예술 활동 시간은 거주인들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확실한 통로였다. /도형기 한동대 명예교수 •한동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현재) •도쿄대학교 농학박사(해양생명과학·해양미생물·복어독) •전 한동대학교 사회봉사 담당 주임교수 •포항시 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 센터장 (현재)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이사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과정 중(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현재) •승강기대학교 션사인학부 파크골프학과 1학년 재학 중 (현재)

2026-01-15

‘한동훈 제명’ 후폭풍···국힘 사생결단 충돌 안타깝다

지난 12일 가까스로 ‘6인 체제‘를 갖춘 국민의힘 윤리위가 14일 새벽 기습적으로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면서 당이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제명’은 당적을 박탈하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또 다른 계엄”이라고 반발하며 “이번에도 반드시 막겠다”고 했다. 윤리위는 이날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당원게시판 사태’를 여론 조작으로 규정, 최고 수위인 제명 결정을 내렸다. 한 전 대표와 가족들이 지난 2024년 국민의힘 익명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당시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대거 작성했다는 게 제명 사유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특검이 ‘사형 구형‘을 내린 날이어서 당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하다.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를두고 '한밤의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제명 확정은 15일 최고위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러나 최고위 인적 구성을 볼 때 친한계인 우재준 청년최고위원, 비주류 양향자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반대 의견을 낼 분위기가 아니어서, 한 전 대표 징계안이 반려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한 전 대표 징계를 주도해온 장동혁 대표도 14일 “윤리위 결정을 뒤집고 다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며 제명 수순을 시사한 상태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리위 결정이 이미 답을 정해놓은 결과다. 재심을 신청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명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또 다른 계엄 선포“라면서 “국민, 당원과 함께 이번 계엄도 반드시 막겠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한 전 대표가 이를 법적인 분쟁으로 끌고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회견에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형동, 배현진, 박정훈, 정성국, 고동진, 유용원 의원과 윤희석 전 대변인이 함께했다. 국민의힘 내에서 비교적 ‘중수청’ 외연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내온 ‘대안과 미래(소장파와 초·재선 의원이 주축인 모임)'도 이날 긴급 회동을 하고 윤리위 결정을 재고하라는 입장을 냈다. 이 모임 주요 멤버인 김재섭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명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처벌을 했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의힘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일부 초·재선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 TK 중진 의원들은 공개 발언을 자제한 채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국민의힘 당내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고,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아마 한 전 대표 제명은 국민의힘 내분을 더욱 심화시키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당 일각에선 15일 오전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당내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장동혁 대표의 그간 발언내용을 종합해 보면 윤리위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방선거 초반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설 연휴 민심를 감안해 보면, 국민의힘이 집안싸움의 격랑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2026-01-14

장판 밑에 숨겨둔 돈

한국과 외국을 가릴 것 없다. 고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파렴치한이나, 무시로 뇌물을 받아온 권력자의 집에서 수 억,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서민들은 아연실색한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듯 엄청난 현금을 집에 두는 걸까?’라는 생각에서다. 고액권이나 달러 등 외화를 숨겨 놓은 곳도 기상천외하다. 방처럼 거대한 금고는 물론이고, 드물게는 천장 위나 김치냉장고 속에 5만원권 지폐나 100달러짜리 지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이른바 부정한 ‘검은 돈’이 아닌 당당한 자기 재산이라면 숨길 이유가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은행에 예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부가 “금융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19세기에나 통할 변명처럼 들린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현금을 집이나 자신 소유의 공장 등 생활공간에 숨겨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안방 장판 밑에 놓아둔 거액의 현금이 뜨거운 열에 손상돼 그걸 부랴부랴 은행에 가져가 교환했다는 소식, 신문지에 싸서 창고에 보관하던 지폐가 습기 탓에 원형을 잃어 낭패를 봤다는 뉴스가 최근 있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2025년 손상 화폐 폐기 규모’를 공개했다. 발표에 의하면 손상돼 폐기된 금액은 모두 2조8404억원. 지폐 3억6401만장의 엄청난 양이다. 이걸 한 장, 한 장 이어 붙이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해마다 소요되는 지폐와 동전 제작비가 만만찮다. 그러니, 돈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작은 애국이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14

더 좋은 미래

본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되면 여의도나 석촌호수 부럽지 않을 만큼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되겠다. 그냥 집 앞에 돗자리 깔고 벚꽃 구경하면 되지, 뭐. 우리 가족은 그런 말을 하며―실제로도 벚꽃 개화 시즌에 맞춰 피크닉을 한 적은 없다―바람에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을 지켜보곤 했다. 벚꽃이 마음에 든 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면, 단지 곳곳에서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댔다. 아이들이 그만 찍겠다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 계속. 그래서인지 그 집에 사는 동안 내게 봄은 아이들을 보는 계절로 인식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주시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꽃잎이 사방에 뿌려진 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강아지는 이따금 길가의 꽃잎을 주워 먹는다. 집안의 화분들엔 관심도 없으면서 밖에만 나가면 코를 들이밀고 입을 벌려 꼭꼭 씹다가 퉤 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봄에는 마음이 들뜨는 걸까? 그래서 안 하던 짓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꽃은 있지만 봄꽃이 아니면 뜯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강아지가 봄바람에 코를 씰룩이는 것처럼, 아이들도 봄에는 유독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를 보는 순간 스위치 켜진 장난감처럼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강아지다! 외치는 것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강아지를 만지려고 겁 없이 작은 손을 뻗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그럴 때 보호자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아지 귀엽지? 만지고 와도 돼, 하고 멋대로 지시하는 보호자와 강아지 귀엽지? 그래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하고 제지하는 보호자. 반려인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를 선호하고 또 지지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전혀 예상 못 한 세 번째 유형의 보호자를 만났다. 정확히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강아지를 본 아이는 대번에 흥분해선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강아지, 강아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몹시도 엄격한 얼굴로 크리스,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한댔지? 강아지가 아니라 퍼피라고 해야지,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곳을 보는 척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스피크 잉글리시. 올웨이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이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가 따라 할 때까지 퍼피, 퍼피,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말이 없자, 급기야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퍼피 스펠링을 하나하나 그리기까지 했다. Puppy, puppy. 결국 아이가 더듬더듬 퍼피, 하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로 리멤버, 크리스.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단호히 되뇌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종종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애한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웃음이 거두어진 자리에 남은,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얼굴이. 강아지든 퍼피든 뭐가 중요할까. 애가 그렇게 웃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엄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잊었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날의 아이 엄마도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토록 단호했던 거겠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미래를 보고 있던 거겠지. 그렇지만 강아지든 퍼피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는가, 얼마나 기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일 테니까.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미래가 아닌 더 중요한 지금을 보고 싶다. /양수빈(소설가)

2026-01-14

영포티 말고 ‘굿포티’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단지 달력을 바꾸어 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만 나이 보다는 우리식 세는 나이가 익숙하다. 그런 식으로 따져 보면 경북매일의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의 독자님들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 2020년,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른 네 살이었기에 마흔 살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일도 없었고 그때까지 이 연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런 제목의 연재를 맡게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나는 금세 마흔 살이 되었다. 서른아홉이 마흔이 되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살아온 선배들은 마흔도 충분히 젊고 심지어 어린 나이라 이야기 해주시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청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이라는 단어 역시 여러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정책에서 다양하게 규정되지만 마흔은 거기 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그런 것들보다 마흔 살에 접어든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 문화다. 영포티(Young Forty)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을 마주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단어다. 원래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나 패션, 취향 면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십대를 일컫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어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20대 감각을 무리하게 흉내 내는 사십대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무장한 채 이십대-삼십대 초반 여성에게 추근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밈으로 많이 돌고 있는 영포티 패션에 대한 조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이키, 스투시 같은 브랜드는 지금의 사십대가 이십대 때부터 선호하던 것들이다. 이제와 젊은 척 하려고 입는 게 아니라 원래 입던 것을 입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젊을 때 돈이 없어서 못 입던 것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에야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입는 것이다. 그다지 조롱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영포티의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딱히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직도 자기가 어린 줄 알고 이삼십대 노는 데 끼어들어서 젊은 척 하고 돈 자랑 하고 어린 이성의 환심을 사려 하는 사십대는 나도 종종 목격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조롱은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굳이 영포티 대열에 합류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하지는 않아도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굿포티’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굳이 어떤 것을 사십대 다운 것이라고 정의하고 꼭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삼십대를 거치며 새롭게 알게 된 것,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나는 마흔 살을 맞아 굿포티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새해 다짐을 해 보았다. 먼저 하루하루 좋은 루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의 생활을 무절제하게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노하우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다음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기. 이제는 종종 사회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과 어떤 관계를 쌓아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비록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간혹 우리에게 무례하곤 했을지라도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들에게 예의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말을 절제하는 것도 필요해졌다. 지저분하거나 거친 말들로부터 이제는 멀어질 것이며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말을 절제해야 하므로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조롱받는 영포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이 조롱받을 만큼 하찮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살아온 삶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야 한다. 영포티 말고, 굿포티로 살아갈 내 또래들을 응원한다. /강백수(시인)

2026-01-14

탄소의 시대에서 수소의 시대로-기후위기와 포항의 다음 10년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는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복사량, 즉 일사량(日射量)이 달라지고, 그 결과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지구는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기온 변동을 겪어왔고, 현재 인류는 약 1만2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Holocene)라는 간빙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는 농업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간빙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약 1만 년가량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금의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켰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자연적 기후 변동과 인간이 초래한 급격한 온난화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 역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을 다녀 본 이들은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배웠던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를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푸리에급수를 정립한 프랑스 과학자, 죠제프 푸리에(1768~1830)가 ‘대기가 열을 붙잡아 가둔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표한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일부 과학자들만의 전문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동안 인류는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루어왔다. 방적기와 증기기관, 제철산업으로 시작된 탄소 문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탄소산업이 이제는 인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수백 년 후에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 월드(Water World)’에서처럼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아 인간이 육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에 살며, 육지를 찾아 떠돌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 역시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후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운명이 결코 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나서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와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그 실행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탄소 에너지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1만년의 간빙기 동안, 탄소 문명이 아니라 수소 문명이 인류 사회를 떠받쳐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필자의 중학생 시절 포항 송도동에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다. 형산강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솟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해도동 자전거도로를 따라 출퇴근했다.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산업재해로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그 무렵 들려왔다. 포항은 그렇게 한국 산업화의 현장이었다. 당시 포항에서 일하던 이들은 주로 1차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한국의 탄소산업을 이끌며 산업화를 완성한 세대이다.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탄소에서 수소로 전환되는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포항에는 석탄화력발전소 못지않은 이산화탄소 배출원인 포스코의 용광로가 있다. 이를 대체할 핵심 해법이 수소환원제철이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포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포스코는 대기업이므로 당연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또 일반사람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잘 알 수도 없다. 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떻게 힘을 합쳐 개척해나가야 하는지 서로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K-스틸법이 통과되어 법률로 확정되었다. 이 법은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6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포항은 이미 철강 집적지이자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이다. K-스틸법에서 규정한 저탄소철강특구 포항지정과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포항의 향후 10년, 그리고 그 10년 이후의 미래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이다. 탄소의 시대는 저물고 수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의 10년은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에너지 공급망, 신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 변화는 지켜볼 일이 아니라, 포항시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지역 협력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공적토론영역이 자유로운 사회문화적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포항의 10년은 협력과 연대가 어젠다가 되길 희망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1-14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역사, 국민은 참담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내란죄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무기금고인데, 가장 무거운 사형이 구형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징후가 없었음에도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범행 모의부터 실행 단계까지 주도한 내란 우두머리다. 대한민국 형사사법에서 ‘사형’은 집행해 사형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가 재판을 통해 범죄 대응 의지와 그에 대한 신뢰를 구현하는 것으로 기능한다”며 구형이유를 밝혔다.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폐지국가’이긴 하지만, 더 이상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8년 이후 28년째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 주범인 전두환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구형이 이뤄진 417호 형사 대법정은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곳이기도 하다. 이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겐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도 위헌·위법 행위가 일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나라를 지키고 헌정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헌법상 국가긴급권 행사가 내란이 될 순 없다“면서 비상계엄이 국민을 향한 호소형 계엄이자 ‘계몽령’이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갑작스러운 계엄이 남긴 국가적 상처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반성하는 모습은 끝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특검팀이 사형을 구형하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재판은 이제 재판부 판결만 남게 됐다. 실제 사형을 선고할 것인지는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역사를 대해야 하는 국민 마음은 참담하다.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2026-01-14

주민건강 해치는 미세먼지, 저감대책 힘써야

겨울철과 봄철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가 경북도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겨울철 난방수요 증가와 최근 잦은 산불 발생이 겨울철 미세먼지를 더욱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당국의 보다 강력한 저감 대책이 요망된다. 지름 10㎛ 이하의 먼지를 미세먼지라 부르고 미세먼지 중 지름 2.5㎛ 이하는 초미세먼지라 부르고 있다. 초미세먼지는 사람 머리카락의 25분의 1수준으로, 코 점막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 몸속 깊숙이 들어와 폐 질환 등을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초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최근 대기정보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포항·구미 등 경북도내 주요 산업도시의 초미세먼지(PM2.5) 평균농도는 20-25㎍/㎥로 환경기준치(15㎍/㎥)를 웃도는 날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포항 제철동과 3공단지역은 25㎍/㎥까지 치솟았다. 미세먼지(PM10) 역시 평균 40㎍/㎥안팎으로 나쁨 수준을 유지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작년 통계서도 경북의 겨울철 초미세먼지 수준은 전국 평균보다 높은 등 나쁨 상태가 많았다. 경북도내 주민은 한달 중 절반 가까이를 나쁜 공기속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초미세먼지 농도 10㎍/㎥ 증가 때마다 천식·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 환자는 5~10% 증가한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미세먼지는 관광객 지역 방문의 장애가 되고 야외 활동 감소로 인한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등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북도는 2029년까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13㎍/㎥까지 낮춘다는 계획 아래 올해부터 미세먼지 경보제 권역을 기존 3개에서 5개로 세분화하는 등 정밀한 미세먼지 대책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당국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활동에서 비롯된 문제로 에너지 절약, 대중교툥 이용, 일회용품 사용 절감과 같은 주민 개개인의 생활 속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 3월까지는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는 시기다. 우리 모두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2026-01-14

AI를 어찌하나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인류는 새로운 편리함과 함께 오래된 불안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잠식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술낙관론자들은 AI를 세탁기나 청소기에 비유한다. 손빨래와 손청소에서 해방되었듯, 인간은 이제 번거로운 사고노동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럴듯하게도 들리지만, 이 비유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빨래와 청소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지만, ‘생각하는 힘’은 다르다. 사고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 능력이 아닌가. 최근 한국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시험과 과제에서 AI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대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까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질문이 설득력을 갖는다. AI가 논문을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토론문까지 만들어 준다면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닐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거꾸로 본 진단이다. 대학의 위기는 AI의 등장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처음부터 정답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았다. 질문을 만드는 지혜,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 타인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수단을 훈련하는 공간이었다. 오늘의 대학강의실에서 사고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만이 평가된다면, 학생들은 생각하기보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이는 부정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본질의 문제다. 대학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평가방식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결과중심의 과제평가 대신에 사고의 경로와 질문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AI사용 여부를 단속하기보다, AI에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그 답에 어떤 분석과 판단을 거쳤는지를 서술하게 해야한다. 생각의 궤적을 평가하지 않는 교육은 AI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둘째, 커리큘럼은 ‘도구사용법’이 아니라 ‘판단과 분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리터러시는 버튼 설명이 아니라, 한계인식과 오류탐지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AI가 쏟아낸 답을 검증하고 반박하는 수업이 정규과정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은 다시 ‘느린 공간’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되새기는 훈련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을 감내하지 않는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침묵과 명상, 토론과 성찰, 그리고 도전과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강의실에서 사고는 성장할 길이 없다. 대학이 아직도 필요한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은 필요 없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만 살아남을 터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대학은 정답 공장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질문 광장으로 거듭날 것인가. 대학이 오늘의 모습만으로는 쇠락의 길에 설 수 밖에 없다. 선택여부에 따라 대학은 오히려 부흥할 지도 모른다.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14

구룡포 응암산 박바위

구룡포 바다를 장악하려면 구룡포에서 멀어져야 한다 박바위가 제격이다 거기는 공허의 공간이나 단단하게 마음을 다지는 힘줄이 있다 전각 하나 없어도 마음에 그것을 세울 평평함을 제공한다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기운이 있다 바위 끝에 서서 구룡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가움이 인간의 체질임을 박바위는 지적한다 그것은 냉혈(冷血)이 아니라 침착과 질서이다 따스해지려면 더욱 차가워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꽁초처럼 버려질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의 뜨거움으로 영원을 추구할 수는 없다 박바위는 걸어온 먼 길을 스스로 지우며 안으로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 박바위로 가는 길은 참 아늑하다. 반드시 걸어서 도착해야 한다. 수신(修身)에서 멈추어야 한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는 나중의 일이다. 그러한 책무를 감당하고자 하는 잡놈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치세에 지치면 박바위에 가서 자신을 뒤집어놓고 잘 관찰하면 길이 보인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늘 첩첩산중이라, 그곳에서 바라보는 겹겹의 수묵화와 같은 산들이 상징적이다. 박바위에서 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잠시의 위안으로, 돌아봄으로, 진통제와 같지만, 혹은 박하사탕 같지만, 하나의 길이 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