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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육이 녹아내린다

장규열한동대 교수국격이 높아졌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에 올랐다 하고 문화강국으로 위상도 한결 날아오른다. K-Pop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글로벌 영화계에는 우리 감독과 배우들로 넘실거린다. 지구 위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 어디에서도 이제는 소외되지 않는다.필자가 미국대학에서 가르쳤던 1990년대에만 해도 나라의 위상이 오늘같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언제였나 싶다. 이제는 어깨 펴고 다닐 만하다. 코로나19의 광풍이 걷히고 나면 그런 변화를 확인하러 나가봐야겠다. 그랬던 시절에도 우리 마음에 비수처럼 번득였던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다. 교육.잘살아보려는 다짐 덕이었는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배경이 되고 아이들도 잘 따라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회원국들의 교육상태를 비교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 실력은 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랬던 실력이 이제는 조금씩 꾸준히 내려간다고 한다. 학력과 인성이 균형있게 자라야 하는데, 학력의 평균적인 하향추세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교육을 비롯한 교육환경의 출렁거림 가운데 학력격차의 심화와 학력수준의 하향세는 더욱 시름을 깊게 만든다. 방역이 중요한 만큼 경제도 살려야 하지만, 미래를 담보할 교육의 기틀은 지켜야 한다.최근 한 시민단체의 조사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을 전후로 중학교에서는 학력중위권이 상하위권으로 분산되는 ‘학력 양극화’현상이 나타났으며 고등학교에서는 중위권과 상위권이 줄고 하위권이 증가하는 ‘학력저하’ 현상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학력저하 현상에 코로나19의 영향이 더해진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과 비대면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가운데,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사교육이 세차게 작동하여 학력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도 싶다. 교육당국은 ‘내려가는 비탈’에 선 학력저하 현상을 면밀히 분석해 장기적인 회복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방역에 성공하더라도 교육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그보다 큰 실패도 없지 않을까.초중등학교 교육의 성패는 대학에서도 감지된다. 교수들이 평가하는 대학신입생들의 기초학력도 해가 갈수록 내려간다고 한다. 학문적 성과는 하루아침에 초인이 가져오지 않는다. 산적한 과제들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서도 함께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갈 후학들이 계속 튼실하게 자라나야 한다. 성장과 발전의 바탕에는 든든한 공교육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학력저하는 위험하다. 밝은 내일을 열어내기 위해서도 실력있는 집단지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워서 익히고 다듬어 숙성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서로서로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실력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갈고 닦아야 쌓이는 게 실력이 아닌가. 실력있는 국민이 나라를 세운다.

2021-04-28

내부정보 이용한 공직자 부동산투기 엄단을

대구·경북지역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 의혹과 관련한 경찰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그저께(27일) 수성구 범어동 수성구청 도시디자인과와 홍보소통과 2곳에 수사관 13명을 보내 연호지구 개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김대권 대구 수성구청장이 과거 부구청장 시절 내부정보를 활용해 농지를 사들였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경찰은 김 구청장의 부인이 연호지구 개발 지정 전인 2016년 3월 연호지구 내 이천동 밭 420㎡를 2억8천500만원에 샀다가 3억9천만원을 받고 다시 판 것과 관련해 업무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경북경찰청 부동산투기 특별수사대도 같은 날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구미시의원 2명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A의원은 구미꽃동산민간공원 조성 사업예정지 부동산 수백평을 매입했으며, B의원은 낙동강 비산나루길 조성 사업 예정지에 있던 식당과 토지 965㎡를 평당 331만원에 매입했다고 한다. B의원이 산 식당 주변에는 도로까지 개설됐다. 이들 의원은 가족과 지인 등의 명의를 이용해 땅을 매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경찰청은 현재 공직자 9명을 포함해 108명을, 경북경찰청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8명, 지방의원 6명, 공공기관직원 1명, 일반인 11명을 대상으로 각각 부패방지법과 주민등록법·농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하고 있다.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회적 공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지역 공직자들도 대거 투기혐의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시·도민들에게 강한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들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한 법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 공적인 자리에 앉아 부동산투기까지 하며 사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특히 부동산 투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에 희생돼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기회만 오면 투기를 다시 하겠다’고 한 말이 중독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공직자들이 다시는 직위를 이용해 부동산투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부당 이득도 모두 환수하는 것이 맞다.

2021-04-28

‘문빠’와 ‘태극기’는 언제쯤 퇴장할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분단과 6·25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민중 항쟁과 촛불혁명은 오늘의 분열된 정치 지형을 낳았다. 흔히 우리는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를 받는다. 샤츠 슈나이더가 말하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로 아시아 최고의 정치의 발전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상호 부정과 거부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문빠’와 ‘태극기’라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간의 왜곡된 이념 갈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태극기 부대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박근혜 탄핵을 극력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절대 신뢰하고 현재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이 나라의 두 번의 군부 쿠데타까지 정당시하고, 선독(善獨)의 당위성을 주창한다. 지역적으로 영남을 주축으로 연령적으로는 60대 이후 세대가 많다. 이들은 반공에 철저하고 진보 정권을 좌파 용공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거듭 주장한다.한편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 옹호하는 세력을 ‘문빠’라고 부른다. 보수 진영은 그 중 ‘대깨문’을 친문 보위 세력의 핵심으로 본다. 이들은 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이라 보고 이들을 극히 혐오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적극 지지한다. ‘문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지를 무조건 존중하고 추종한다. 대통령을 향해 ‘인이 마음대로 해’라는 맹목적 정서가 깔려 있다. 이들은 보수가 재집권하면 나라가 거덜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촛불정권의 주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러나 위의 ‘태극기’ 부대도 ‘문빠’ 집단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 참 보수도 참 진보도 아닌 사이비 이념의 맹신자들이다. 이들 중엔 보수나 진보의 참뜻도 모르면서 상대를 감정적으로 비난 거부한다. 보수주의 원조 에드먼트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을 반성하면서 자유라는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자고 주장하였다. 진보는 정치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태극기’나 ‘문빠’는 본질에서 너무 이탈해 진영 프레임에 빠져 있다. 모두 이성적이지 못하여 상대에 대한 적대감만 노출하고 있어 이 나라 정치 발전에는 백해무익한 세력들이다.이러한 적대적 세력 간에는 화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서로 자신은 애국자이고 상대는 매국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상대를 적대시 하는 감정 프레임의 노예가 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목전의 이익 때문에 이들을 교묘히 정치에 이용한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의식 수준은 낮으나 정치에 과잉 동조하는 세력이다. 우리 정치를 부정적으로 활성화 시킬 뿐이다. 이제 친박과 친문에 기생했던 ‘태극기’와 ‘문빠’는 퇴장할 시간이다. 그 시점은 내년 대선이 끝나는 지점이며 빠를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2021-04-28

학교 외딴섬, 시험도(試驗島)의 비극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선생님, 저 영어 90점 맞을 거예요! 이거 복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서울에 사는 학생이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영어 선생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종이 파일을 건네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부탁한다.“90점!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이번 시험 쉽지 않을 거야. 괜찮겠어.”“그럼요, 걱정 없어요. 주말 동안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게 그 증거에요.”영어 선생님께서는 학생이 건넨 종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셨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선생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몇몇 부분을 수정해 주셨다. 학생은 선생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는 반갑게 답해 주셨다.“친구들과 시험 범위를 나눠서 요약하기로 했는데, 큰일 날뻔했어요. 감사합니다.”학생은 너무 즐거워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 학생을 필두로 교무실 앞에는 정리한 자료의 복사를 부탁하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은 모습에 주말 내내 무겁기만 하던 필자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주말, 필자는 시험공부에 몸살을 앓는 학생들을 보았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독서실이 있는데, 밤이면 간혹 어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아파트 놀이터로 나온다. 뭔가에 잔뜩 화가 난 그들의 모습은 필자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시험 포기했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혼잣말만 하고 나가버리고, 인터넷 강의는 들어도 모르겠고, 엄마한테 그냥 학원 보내달라고 했어. 학교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비록 필자와 거리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한숨과 원망 가득한 말은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 학원에 가기 위해 일어서는 학생을 붙잡고 필자는 말해 주고 싶었다.“얘들아, 모르는 것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여쭈어봐.”하지만 필자는 돌아올 답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내 포기했다. 일요일 늦은 밤, 학교 시험을 위해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성난 그림자가 필자를 노려보았다. 그 학생이 떠나고 남아 있던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가는 곳이 집과 독서실이 아님을 필자는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들을 필자는 잡아주지 못했다.죄책감으로 시작한 월요일, 어느 학생의 하소연을 듣는 순간 필자는 더 큰 죄인이 되었다.“오늘 시험 치는데, 선생님들이 틀린 문제 수정한다고 하도 다니셔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다 못 풀었어요. 근데 선생님들은 시험 방해한 거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세요.”시험에 갇힌 4월 학교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섬이다. 그 섬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세상은 코로나19를 핑계로 귀를 닫았다. 5월 함성보다 더 큰 학생들의 원성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거듭 부탁하지만, 그 파도가 학교를 휩쓸기 전에 시험에 대해 제발 다시 생각하자.

2021-04-28

이순신과 영화 ‘명량’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 476주년 되는 날이다. 조선왕조 518년 사직을 돌아보면 세종과 이순신이 선두에 있다.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약관 21세에 왕위에 올라 훈민정음을 비롯한 문물 정비로 조선의 기틀을 놓은 이도(李7979) 세종. 조선 초기 정비되지 않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후세 왕들의 모범이 된 인물 이도. 그는 당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늦깎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순신은 몇 차례 난관을 뚫고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거북선을 건조한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이후 전공을 세운 그는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 총사령관에 오른다. 그 후 이순신의 행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하던 그는 전함 12척으로 적선 133척과 맞붙어 승리하는 ‘명량대첩’을 진두지휘한다.2014년 7월 30일 개봉된 ‘명량’은 1천762만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한다. 왜 ‘명량’에 수많은 관객이 몰렸을까, 하는 의문은 같은 해 4월 16일 온 국민을 낙담과 절망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대답한다. 안산 단원고교 250명 학생을 포함한 305명의 귀한 생명을 수장(水葬)시킨 씻을 수 없는 ‘국가범죄’가 21세기 첨단정보통신 국가에서 발발한 것이다.실시간 중계된 ‘세월호 대참사’는 우리에게 국가의 부재와 권력자의 실종이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빤히 보이는 배에, 서서히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치를 떨어야 했다.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권력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도록 만들었던 해양 참사가 우리를 바닥 모를 추락으로 인도했다.‘명량’에서 이순신은 ‘충’에 관해 맏아들 ‘회’와 나누는 대화에서 결연히 말한다.“충(忠)은 의리(義理)다. 의리는 왕이 아니라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누란지위의 백성을 지켜낸 이순신의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 417년 전 이순신의 생각과 실천이 임진왜란의 극복으로 나타났다면,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충이 없는 대통령의 권력 유희였다. 현대국가 존립의 첫 번째 근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가로 불리지 못한다.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의 권력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 있다.국가의 이름으로 국난극복의 선두에 섰으되, 파직과 고문을 겪어야 했던 이순신. 모친상도 치르지 못한 채 백의종군에 임해야 했던 이순신.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낸 이순신. 그런 지도자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명량’에 환호했다.충무공의 탄신을 맞이하여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난관의 중심에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자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떠올리는 것이다.

2021-04-27

펜트업 효과

한국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할 것인지 폭발한다면 언제쯤 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크게 떨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다소 비관적 전망이 많으나 연초 백화점을 중심으로 보복소비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최근 한국은행은 억눌린 소비가 터져나오는 펜트업(Pent up) 효과가 올해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펜트업 효과란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소비개념을 더하면 보복소비가 된다. 한은은 올해 펜트업 효과가 일어날 이유로 가계소득과 고용여건이 작년보다 나아지고 감염병 확산에 대한 소비 민감도가 약해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보다 4%정도 소비가 줄어들었으나 저축률은 IMF 이후 가장 높은 10%대를 유지해 시중에는 돈 쓸 준비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이후 소비가 급속 회복할 것이란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예측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코로나가 극심했던 기간동안 가계 저축률이 10∼20% 포인트 이상 올라갔고, 이들 돈이 풀리면 보복소비가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일자리 감소 등 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된 반면 고소득층은 큰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소비회복은 고소득층부터 시작할 거란 전망이다.가장 먼저 경기회복을 찾아가는 중국의 경우는 올해 소비 성장률을 13.5%까지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고소득층의 명품소비가 가장 먼저 회복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한은의 예측대로 우리도 펜트업 효과가 생긴다면 우리나라는 집단면역이 형성될 11월을 주목할 만 하다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27

대구·포항 교통 이제 AI와 IoT가 맡는다

국토교통부가 그저께(26일) ‘스마트 챌린지’ 시티형 예비사업 대상지로 대구, 포항 등 4곳을 최종 선정함으로써 올해 전국적으로 공모한 스마트 챌린지 사업 대상지 45곳이 모두 확정됐다. 이번에 공모한 스마트 챌린지 사업에는 모두 20곳의 지자체가 신청해 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스마트 챌린지 사업은 기업과 시민, 지자체가 힘을 모아 교통, 안전,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도시문제를 혁신적인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해 해결해 나가는 프로젝트다. 선정된 지자체가 예비사업(국비 15억원 지원)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면, 향후 2년간 200억원이 더 투입돼 도시 전역으로 사업이 확대된다.대구는 카카오 모빌리티와 한국과학기술원, 이모션, 이엠지 등이 참여해 인공지능(AI) 기반 도심교통 서비스 사업을 진행한다.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을 관제하고 내비게이션으로 차량흐름을 분산시켜 도심교통을 개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AI기반의 신호제어를 위해 경찰청과 업무협약도 맺었다. 스마트시티 사업이 완료되면 교통 혼잡대기시간이 크게 감소한다.포항은 포스코, 포항테크노파크, 포항공과대학교,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등이 참여해 도로안전과 교통 서비스 사업을 펼친다. 포항도심 도로는 고중량 차량과 염분으로 인해 도로에 매년 5천개 이상의 포트홀(도로파임)이 생겨 운전자들이 심한 불편을 겪어왔다. 앞으로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통해 도로정비가 필요한 구간을 자동으로 찾아내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주정차나 적치물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관리한다.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은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의 유명 도시가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영국 런던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대표적인 스마트시티다. 포항시는 이번 스마트시티 챌린지 공모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환동해 스마트시티 중심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앞으로 포항시를 비롯한 경북도내 주요도시와 대구시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교통체계를 구축해서 시·도민들이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스마트시티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2021-04-27

교통지옥 된다는데 대구시 방관할 일 아니다

대구 수성구 상동·중동·파동 일대 주민이 지상철 건설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단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대구은행역-상동-파동-가창에 이르는 이 구간에는 현재 재건축, 재개발로 6천여가구 아파트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으며 앞으로 최소한 2만가구 이상이 더 들어설 것으로 예상돼 지상철과 같은 획기적 교통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이 구간은 출퇴근 시간만 되면 평소 20분 걸리던 이동시간이 평균 1시간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빚는다 했다. 곧 6천여 가구가 입주를 시작하면 이곳은 교통지옥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지금 대구시내에는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유례없이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대구 수성구 상동·중동· 파동 일대 뿐 아니라 재개발 사업이 벌어지는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도시형 문제들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학군이 좋다는 수성구 일대에 집중되는 주상복합 건물 신축 러시로 곳곳에서 교통과 학군, 일조권 등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재개발 사업은 낙후된 도시의 면모를 새롭게 바꾼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 주거밀집 공간이 들어서면서 교통, 학군 등 각종 주거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치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대구시 건축행정이 도시개발과 관련해 문제 의식을 얼마나 가지느냐 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구의 미래와 도시미관을 좌지우지하는 문제인 동시에 시민들의 보다 나은 주거환경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대구 수성구 상동·중동·파동 일대 주민들은 수성구 남부선지상철추진위를 구성해 이 일대에 지상철 건설을 요구하며 현재 3천여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지상철 건설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하지만 이런 주민들의 민원에 대해 대구시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업 개시전 단계부터 세밀하게 문제점을 살펴 대책을 찾아보고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미래지향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구시의 대응이 대구의 미래 100년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 수성구 상동·중동·파동 주민이 제기한 교통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선 안 된다. 대구시의 대책안 제시가 빨리 있어야 한다.

2021-04-27

혐오해도 마땅한?

피터 스완슨의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주인공 릴리는 말한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생명이 너무나 많다. 나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빈번하고 무고한 이들은 피해를 본다. 법은 약자를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하므로 누군가가 직접 나서서 단죄해야 한다.” 릴리는 심판자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살인을 실행한다. 그녀가 살해하는 대상은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으며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그 때문에 독자는 릴리의 행동을 마음속으로 은근하게 응원하게 된다.소설은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타인에게 세상에서 사라지라고 발화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며 분명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여긴다. 나아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기 자신이 그들을 단죄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대상을 향해 멸시의 시선과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판단한다.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감정이며 이를 토대로 전염이나 오염의 상황을 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혐오 감정이 위험 요소가 없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게로 투사되면서 본격적인 문제가 된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순식간에 오염물로 치환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시선만이 존재하지 않고 주관적인 가치가 개입된다.사회적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혐오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시스템과 구조의 대변인으로 존재한다. 그 때문에 그들을 향한 혐오 표현은 타당성을 지닌다고 생각하기 쉽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문제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들로도 난도질당하기 마련이다. 상대를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저 혐오하는 행위 자체가 동기가 되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며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연예 기사면의 댓글 기능을 없애기도 했다. 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유명인은 마땅히 자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늙었다, 멍청하다, 못생겼다 등 혐오에 근간을 둔 표현을 적절한 비난이나 비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인터넷을 떠나 현실에서도 혐오 표현이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본다. 그런 점에서 혐오 표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과는 분명히 구분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혐오는 인간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것이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그저 오물과 같이 취급한다.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를 원한다. 더럽고 불결한 것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판단한다. 쓰레기가 모조리 사라진 완벽하게 깨끗한 거리를, 청결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정말 그럴까?혐오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특정 집단과 사람을 배척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의 끔찍한 비극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겨주었다. 증오와 폭력, 배제와 방관은 답이 될 수 없다.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는 것, 혐오자를 혐오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우리는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나’와 구별되는 ‘너’, ‘우리’가 아닌 ‘그들’이 상정될 때, 나의 반대편에 있는 집단은 열등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치부된다. 나와 우리는 도덕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상대편은 그렇지 않다. 이렇듯 선을 긋고 편을 나누는 것은 검열에 의해서다. 검열에 의해 결함이 생긴다. 납득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진 타자를 반사적으로 거부하고 밀어내게 된다.혐오를 통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일은 쉽다. 그리고 게으르다. 감정을 지탱하는 근거 역시 지극히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상대에게 가하는 하나의 폭력으로 끝날 뿐이다.그러니 ‘우리’라는 개념을 넓혀야 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해가 집단과 인종, 국가를 넘어 지구적인 공감까지 확장될 때 우리는 모두 비로소 존엄성을 가진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성실함이다.

2021-04-26

80년대생도 있다

최근 1년 간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몇 가지 열풍이 있었다. 첫 번째는 BTS 열풍이다. 7인조 보이그룹 BTS는 국내 정상의 자리를 뛰어넘어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오른 바 있다. 두 번째는 트롯 열풍이다. TV조선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여러 방송사가 앞 다투어 트롯 경연 프로그램을 내어 놓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트롯 스타가 탄생하였다. 세 번째는 본 연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열풍이다. 국방 TV 위문열차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유튜브 조회수에 힘입어 각종 음원차트와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최정상 자리를 휩쓸었다.이 열풍들은 모두 그것을 촉발시킨 주역이 되는 세대가 있다는 게 주목할 만 하다. 먼저 BTS열풍의 주역은 현재 10대 후반부터 20년대 초반을 이루고 있는 2000년대 생이다. 트로트 열풍은 현재 40대 이상을 이루고 있는 7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브레이브 걸스 열풍은 최근 몇 년 간 군복무의 대상자였던 90년대 후반 출생자들과, 브레이브 걸스 멤버들과 비슷한 연령대인 9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러 세대가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문화적 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상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런데 이러한 열풍들 사이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대가 있다. 바로 현재의 30대부터 40대 초반을 아우르는 80년대 생이다. 80년대생이 주도한 가요 열풍은 한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다가, 최근 2~3주 사이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발견됐다. 바로 3인조 남성 보컬 그룹인 SG워너비의 역주행 현상이다.김용준, 이석훈, 김진호 등 3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이 한창 인기를 얻었던 시기는 이들이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기 이전까지였다. 이후 한동안 잊혀진 것처럼 보이던 이들이 최근들어 다시 음원차트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게 된 일이다. SG워너비의 유사 그룹인 ‘MSG워너비’를 만드는 프로젝트 도중 원조가수로 등장해 흘러간 그들의 히트곡들의 라이브를 선보인 것이다. 이들의 라이브는 이들의 동세대이자 전성기시절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팬들이기도 했던 80년대 생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리고 80년대 생들의 향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어 SG워너비를 음원차트에 다시 불러올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Top 10 곡들 가운데 ‘Timeless’, ‘라라라’, ‘내 사람’등 이들의 곡이 세 곡이나 올라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이러한 현상은 80년대 생이라는 세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한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두 책 ‘90년생이 온다’와 ‘70년대생이 운다’가 떠오른다. 두 세대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세대인 그들 역시 현재 90년대생과 200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Z세대가 그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인 Z세대가 그러했듯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했다.이들의 선배들에게 천리안, 하이텔같은 PC통신이 있고 후배들에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모바일 SNS가 있다면 이들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온라인 문화를 창조하곤 했다. 싸이월드는 최근 기존 운영사인 SK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스카이이엔엠, 인트로메딕 등 코스닥 상장사 2곳을 포함해 총 5개 회사의 컨소시엄, ‘싸이월드제트’로 매각됐다. 80년대생의 향수가 여전히 사업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다.이들만의 문화를 패러디한 유튜브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피식대학 제작)의 조회수가 최대 350만에 육박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한다.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동년배인 80년대생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건네고 싶다. 비록 때때로 90년대생만큼 트렌디하지 않고, 70년대생들 만큼의 권력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소외되곤 하지만, 회사에서는 신입도 아니고 리더도 아닌 위치에서 겉돌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육아와 내 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과업 앞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대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2021-04-26

학생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린다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코로나19로 3분의 2만 등교를 한다. 필자의 학교에서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급별 축구대회를 실시했다. 물론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진행됐다.점심시간과 저녁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축구를 한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선수들 모두 이기려는 의지가 모두 강하다. 하지만 한 팀은 이기고 한 팀은 반드시 져야만 한다. 모두 경기를 하는 팀은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승리하는 팀은 한 팀뿐이다. 운동장에서 체조를 한다. 사진도 찍는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된다. 어디에서 이런 에너지가 나올까? 바로 학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이기는 한 방법이다.예선전에서 필자의 반은 참패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학급별 축구대회는 학생들에게 흥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담임 선생님들도 분주하다. 음료수와 빵과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승패를 떠나 승리를 한 반, 패배를 한 반,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다.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축구를 하고 골대를 향해 공을 찰 때마다 엄청난 함성이 들린다. 젊음의 소리를 들어본 사람만이 함성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하늘을 찌르는 함성으로 공을 차는 학생, 공을 막는 학생, 응원하는 학생, 가슴 조이는 선생님, 모두가 한마음이다.학급 대표 선수를 뽑는 과정도 중요하다. 학생들끼리 회의를 엄청나게 많이 한다. 학생이 감독이 되어 협의를 통해 포지션에 대한 다양한 선수기용을 배정해 본다. 학생 자치가 스스로 이뤄진다. 참 재미있다. 이렇게 바람직한 학급 회의는 없다. 이것이 살아있는 학교이다. 젊음이 부럽다. 필자도 뛸 수 있을까? 마음뿐이다. 학생들과 마음으로 축구를 하는 것도 가슴이 뛴다. 각각의 반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주먹에 힘을 잔뜩 실어서 꽉 쥐었다가,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가, 혼자 헛발질을 하다가, 가슴을 치다가, 공이 골대로 들어가면 환한 미소에 함성의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경기 중 선수가 넘어지면 “넘어지면 안돼” “안돼 안돼 다치면 안돼” 소리를 치다가 선수가 툭툭 털면서 일어나면 소리친다. “민석아 괜찮아!” 담임 선생님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또한 승부차기의 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가 있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킥이 준비된 선수부터 한 명씩 정해지면 공수 모두 긴장한다. 공을 차는 순간 숨죽여 응원하는 학생들이 모두 엄청난 함성이 나온다. “와-” 골이 들어가도, 못 들어가도, 골을 막아도, 골을 못 막아도 엄청난 함성이 나온다. 이런 경기를 또 어디서 볼 수 있는가? 학교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경기이다. 교사 대표와 학생 대표 경기로 대미를 장식한다. 축제 중의 축제였다. “와 - 와 2013 와” 학생의 함성의 소리가 지금도 들린다.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면 자연히 극복될 것이다. 학생이 학교에 있고, 학생이 교실에 있고, 학생 앞에 교사가 있으면 학교는 건강하다. 학생은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이다.

2021-04-26

성장과 일하는 기쁨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봄날이 깊어지니 초목의 성장이 한창이다. 가지가지 연록, 청록의 잎새가 나부끼고 군데군데 담록, 초록의 풀잎들이 손짓하는 산야는 온통 생동과 성장의 산실이다. 눈길 한번 돌리기가 무섭게 풀과 잎들은 성큼성큼 자라고 아찔할 정도로 금세 무성한 모습을 보이니, 과연 대지는 봄의 장단에 맞춰 싱그런 생동의 춤사위를 펼치는 듯하다. 생명이 깃든 온갖 만물은 이렇게 색과 빛을 드러내거나 소리와 모양으로 환호하고 몸짓하며 봄의 환희를 누리고 있다.생명이 있는 모든 물체는 움직임과 드러남으로써 성장하고 번식하며 번성해진다. 이러한 움직임과 성장은 저절로 나타나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자생을 위한 노력과 일련의 작용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즉 생존하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일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가 이어지고 더해져 생태계는 생장하고 번성하게 되지만, 사람이건 동, 식물이건 활동이나 성장을 멈추게 된다면 이내 모든 기능이 감쇠하고 자연순환의 법칙에 따라 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인간에게는 신체적인 발육이 일어나는 육체적인 성장과 마음의 작용이 이뤄지는 정신적인 성장이 있다. 신체적인 변화와 발달은 일정기간에 단계적으로 나타나다가 어느 시점에 멈추게 되지만, 사고와 지능에 따른 정신적인 영역은 시기나 범주에 관계없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엔 아이들의 생각이 어른들의 지식을 앞설 수도 있고,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얼마든지 젊은이 보다 참신한 생각을 던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경험과 습관, 인지와 사유에 따라 다르고 차이 나는 정신연령이나 수준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어느 때건 움직이고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고 본다. 농작물을 가꾼다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거나 취미를 계발하고 작품을 만들며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는 따위의 일들은, 일의 가치와 보람을 차치하고라도 대상 자체를 즐기며 몰입과 희열을 느낄 수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성장의 폭과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 육체노동이든 정신적인 감정노동이든 모두 생각하고 움직여야 실행으로 이어지며, 그러한 과정에서 수반되는 행위자의 건강, 의지, 소신, 인내, 절제, 천착, 안목 등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매번 새롭게 무장되고 온전해야만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일거리를 찾거나 만들어서 일하고, 꾸준한 자기계발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애씀 자체가 성장의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일하는 기쁨으로 심신의 강건함과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면 한결 뜻있고 넉넉하지 않을까?초록의 푸르싱싱함이 성장의 활력을 부추겨선지 곡우 지난 들판엔 새로운 일 년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일손이 많아지고 바빠지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성장과 일하는 기쁨을 누려보자. 땀과 정성은 수고와 결실을 결코 배반하지 않으리라.

2021-04-26

살아 돌아온 DC 유니버스의 영웅들

2017년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슈퍼히어로 세계관 구축을 위해 기존 히어로와 새롭게 등장하는 멤버들의 상견례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영웅들이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른바 세계관을 공유하는 자리로서의 본격적인 영화였다. 바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다.영화사 워너 브라더스는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일찍부터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을 필두로 실사영화를 제작해 왔으며, 히어로 간의 연계되는 영화 속 세계관을 구상해 왔었다. 그러나 마블 코믹스를 기반으로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던 마블 스튜디오에 밀려 뒤처지게 된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블 스튜디오는 코믹스에 등장하는 개별 히어로의 영화를 바탕으로 이들을 하나의 세계로 묶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세계관을 구축한다.워너 브라더스는 2016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을 통해 통합 세계관의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이듬해 본격적인 궤도진입을 위해 제작되었던 ‘저스티스 리그’가 개연성 부족과 플롯의 산만함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져스 시리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취급되며 깔끔하게 안착하지 못한다.새로운 스타일의 슈퍼맨을 알렸던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을 중심으로 DC의 세계관 확장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감독직에서 중도 하차하면서 마블의 ‘어벤져스’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연출을 맡았던 조스 웨던 감독이 영화를 마무리 짓게 된다.DC와 마블은 코믹스를 기반으로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마블에 비해 DC는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고뇌하는 히어로,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영웅의 등장이 그러하다. DC의 세계관에 마블의 영화를 제작했던 감독이 긴급하게 투입되면서 2017년 ‘저스티스 리그’는 마블과 DC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색깔을 잃어 버리고 만다.이후 ‘저스티스 리그’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공개해달라는 팬들의 요구를 지지하게 되면서 마침내 2021년 감독판으로 재개봉(?)하게 된다.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한 지 4년 만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기준의 차이가 있겠지만 2017년 영화와 2021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다.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시간 남짓이던 영화가 4시간이 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두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거의 동일하지만 늘어난 시간만큼 개연성이 부족했던 새로운 캐릭터에게 배경 설명과 함께 캐릭터의 감정을 살리는 내용들로 채워지면서 가장 혹평을 받았던 부분을 보완했다. 또한 사연을 알 수 없었던 악당 스테픈 울프의 캐릭터 서사가 강화되면서 그의 행동에 개연성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한층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이뿐만 아니라 영화 비율이 1.85:1이었던 2017년작이 4:3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잘 사용되지 않는 비율로 수평보다는 수직적인 이미지로, 영화의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겠다.영화가 개봉한 극장판 이후에 감독판의 경우는 재편집의 영역에 머무른다. 극장판에서 잘려 나간 촬영 분량을 삽입해 영화에 살을 붙이거나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거나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와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단순히 감독판이라고 하기엔 전혀 다른 영역에 머무른다.2017년 영화를 2021년에 재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화를 관람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디렉터즈 컷’이 아니라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이며, 컬러풀 했던 영화 포스터가 무겁고 차분한 톤으로 만들어진 이유다. 같은 영화의 다른 버전이 아닌 유사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전혀 다른 영화로 봐달라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개봉으로 2017년 ‘저스티스 리그’는 가장 독특하게 잊혀지는 영화며 특이한 사례로 영화사에 남게 될 것 같다./영화기획사 엔진42 대표 김규형

2021-04-26

600여 년의 왕궁 역사를 간직한 월성 해자

월성은 마립간기가 개시되는 4세기 중엽(내물마립간·356~402년) 전후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신라 멸망 때까지 명맥을 유지한다. 신라 왕족 및 귀족, 관료들이 600여 년 동안 궁중 생활을 지낸 기나긴 세월이 월성에 남겨져 있다.하지만 아쉽게도 월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최근에 들어 본격화되는 단계라 아직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월성의 축조 시점이 문헌 기록(101년·파사왕 22년)보다 250년 정도 늦춰진다는 사실만이 확인됐을 따름이다.다만, 부분적이나마 신라 왕궁 역사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월성 성벽에 인접한 해자다.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을 일컫는다. 성벽에 부속된 방어 시설로 취급되며, 출토 유물 또한 물길에 휩쓸리거나 인근에서 폐기된 것으로 간주돼 학술적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했다.하지만 월성 해자는 기존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해자의 면적은 고구려, 백제, 가야 왕궁의 것에 비해 2~3배 이상 넓었고, 퇴적된 토사의 깊이는 2.5~3m에 달했다. 그리고 신라 월성의 해자만이 삼국~통일신라시대라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그 기능이 방어, 배수 구조물에서 조경 시설로 변화됨이 확인된 것이다.해자 조사의 발굴 연혁을 보면 월성 성벽이나 내부 궁궐과 달리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간헐적이긴 하지만 꾸준히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중요 사적지인 월성을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하기에는 부담됐기 때문에 그 주변 일대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러한 까닭에 1984~85년 1차 시굴조사, 1985~89년 2차 발굴조사, 1999~2006년·2007~2009년 3차 발굴조사, 2015년~현재까지 4차 발굴조사로 마무리되고 있다. 특히, 4차 발굴조사는 월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성벽, 내부 궁궐 조사도 함께 진행 중이며, 융복합 연구를 위한 고환경팀, 문헌팀 등을 포함해 조사단을 꾸려 혁혁한 성과를 매년 선보인 바 있다.이렇듯 월성 해자는 꾸준한 조사 성과를 통해 삼국 통일을 기점으로 삼국시대 수혈 해자(구덩이를 파서 만든 해자)와 통일신라시대 석축 해자(석재로 만든 연못형 해자)로 구분됨이 밝혀졌다.수혈 해자는 최초에 월성 성벽의 북쪽 방면으로 너비 25~45m, 깊이 1~1.2m의 구덩이를 굴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다른 왕궁의 해자가 10~15m 정도의 폭을 지닌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대규모 면적으로 축조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설계의 배경에는 홍수 범람이나 지하수 용출에 취약한 지형 조건이 고려됐으며, 대규모 해자를 활용해 적군을 막기 위한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유로를 통제하는 배수 기능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시간이 흘러, 수혈 해자는 한 차례 보수, 정비가 이뤄지는데 해자 너비-면적 차이가 특정 구간별로 극심한 데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른 조치로 해자 바닥을 다시 굴착해 높이가 1.2~1.5m에 달하는 목제 판자벽 시설을 25~30m의 폭을 유지하게끔 설치한다. 이런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통해 건기, 우기에 상관없이 배수량, 유로 흐름의 관리를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행해진 제의 절차로 배, 방패 모양의 의례 목제품이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장기명학예연구사월성 해자는 삼국 통일을 맞이하면서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는다. 해자는 외부의 위협이 낮아지면서 방어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석축 원지(苑池·관상용 연못)로 개축해 조경 시설로서 새롭게 단장됐다. 조경 시설로 거듭난 석축 해자는 6개의 석축 원지가 중간 지점마다 설치된 입·출수구를 통해 물이 흐르도록 설계됨으로써 월성 왕궁의 북편 일대가 운치 가득한 정원 단지로 느껴지게끔 조성됐다.현재 경주 관광 명소로 유명한 안압지 또한 동궁에 부속된 석축 원지로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당시 ‘월지’로 불리었고 월성 석축 해자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을 띤다.이후 석축 해자는 2~4차례 개축되면서 전체 면적이 대폭 축소된다. 석축 해자가 줄어들면서 확보된 공간에는 관청 건물이 일렬로 늘어서 채워졌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삼국 통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만끽했던 풍류를 넘어 국정 운영의 현실적 고충이 우선시된 배경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또 당시는 월성 왕궁뿐만 아니라 신라 왕경 전 구역이 도시 개발의 절정기에 도달하면서 전반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확장되고 개축되는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신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천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현재 월성 해자에서는 천년이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그 안에 담겨진 600여 년 간의 신라 왕궁 흔적을 흙 속에서 찾고 있다. 역사의 물길이 흘러 퇴적된 흙 속에는 소그드인(실크로드로 교역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으로 추정되는 토우, 국가 주도 토목 공사에 의한 징발령이 적힌 목간, 고대에 수풀을 이뤘던 나무, 식물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머지않아 해자에 대한 발굴조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만, 흙 속에서 찾은 유물과 고환경 시료는 지속적으로 분석돼 신라 왕궁 생활을 다각도로 밝혀줄 것이라 기대된다.

2021-04-26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완벽한 준비 있어야

포항시가 천혜의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한 호미반도 일원을 국가해양정원으로 조성키로 한 사업에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주 포항시는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조성 기초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를 가졌다. 내년 중 해양수산부 예비타당성 사업 신청을 목표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에 용역을 주고, 국가 사업화에 맞는 최적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생각이다. 해양정원사업이란 육상 중심의 정원 개념을 해양까지 확대한 것이다. 해양 동식물 보호 등 해양생태계 보전과 연안해양 환경 복원 등을 통해 해양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이다. 사업비 등이 많이 투자됨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국내 대표적 사례로 순천만 국가정원을 손꼽을 수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습지 복원 및 난개발을 막고 생태계 보호를 위한 57개의 조경정원을 설치해 연간 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외국의 사례로는 황폐화된 섬을 거대한 예술공간으로 바꾼 일본의 나오시마 섬과 홍콩의 마이포 습지공원 등을 들 수 있다. 해양생태계를 복원시키면서 관광자원화한 우수한 사례라 하겠다.포항 호미반도는 이미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생태학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검증된 곳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해안단구지역이며 해저 바닥에 사는 저서동물이 94종에 이른다. 호미반도에는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있고 장기읍성, 장기 유배문화, 동해 이팝나무 군락지 등 자연과 역사문화 자원도 많다. 특히 호미곶은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는 뜻을 가진 곳으로 새해 첫날 대규모 해맞이 축제가 열리는 의미 있는 장소다.또 경북도와 포항시가 역점을 주고 추진하고 있는 동해안대교가 건설되면 접근성의 제고로 동해안의 해양생태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된다. 포항을 비롯 동해안의 관광산업 진작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포항의 도시 이미지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포항시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업의 타당성을 비롯 정부를 설득할 충분하고 과학적인 근거자료를 갖추어 반드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포항시와 경북도의 행정적 노력과 동시에 정치권의 공조도 필요하다. 정부를 설득하는 자치단체의 역량이 바로 지방정부의 경쟁력이다.

2021-04-26

문학적 독서의 힘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아버지가 미워요! 절대로 우릴 못 가게 했어야죠!’ 조엘이 울부짖는다. 그러나 조엘은 곧 자신 때문에 토니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토니가 수영을 못 하는 걸 알면서도 모래톱까지 수영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조엘, 너랑 아버지랑 토니는 제각각 선택을 했어. 다만 토니만이 스스로 선택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야.’ 조엘은 자신의 고통을 없애지도, 없애 줄 수도 없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엘은 울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가 안도한 듯 탄식했다. …. 조엘의 숨소리가 헐떡거릴 때에도 아버지는 조엘을 꼭 안고 있었다. 곧이어 조엘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아버지의 고동소리에 맞춰 숨을 쉬기 시작했다.위 장면은 마리온 데인 바우어의 ‘잃어버린 자전거’의 끝부분을 조금 줄여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136쪽의 얇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읽은 지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생생하다. 열네 살의 두 소년 조엘과 토니는 아기 때부터 같이 자랐다. 조엘은 토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토니의 무리한 요구를 잘 받아준다. 그날도 조엘은 12㎞나 떨어져 있는 위험한 절벽에 가기 싫었지만 토니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따라나선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중간에 토니가 수영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던 아버지의 당부를 어기는 줄 알면서도 조엘은 금방 받아들인다. 그러나 토니는 익사한다.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예상하기 쉬운 부모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듣지 않았느냐고 조엘을 나무랐을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할까? 조엘이 자기 몸에서 나는 강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며 냄새를 없애 달라고 할 때 아버지는 그 냄새를 없애 줄 수 없다고 한다. 토니가 자기 탓이라며 울부짖을 때 아버지는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이런 전개는 예상을 완전히 넘는다.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소설의 전개는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최근 번역된 ‘신경미학’은 미학적 경험을 신경학적으로 분석한 여러 학자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 중 데이비드 마이얼의 논문 ‘문학적 독서의 신경미학’에서는 문학을 읽을 때 독자의 경험에 대해 설명해준다.저자에 따르면,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상황에 참여할 때 문학적 독서가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이화’이다. 이화라는 것은 독자의 예상을 넘는 전개를 만났을 때 생기는 낯선 느낌이다. 이 낯섦은 독자에게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도록 촉발한다. 각자 자신이 선택했을 뿐이라는 아버지의 설명은 단순히 네 책임이 아니야 하는 보통의 위로를 넘어 앞으로 조엘이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다.이런 아버지의 대응은 독자에게 낯선 느낌을 주면서 ‘지나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슬픔을 이겨내는 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이화를 통해 독자는 직접경험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활성화된다. 문학적 독서는 힘이 세다.

2021-04-26

민주당 당권주자들 TK공약 ‘德談’ 아니길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 대표후보들이 5·2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24일 대구 엑스코에서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후보들은 이날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대구시 상수원 이전문제 등을 거론하며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집권여당 지도자들이 대거 대구에 와서 이 지역 현안해결을 약속하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4선인 홍영표 의원(인천부평을)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TK가 어렵다. 구미형 일자리가 성공하도록 확실히 챙기고, 문경에서 김천까지 연결되는 내륙철도 확충,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 건설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역시 4선인 우원식 후보(서울 노원을)는 “TK 지역민들의 염원인 대구시내 통과 경부선 지하화, 구미형 일자리를 완성해 TK 경제 활성화의 물꼬를 트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등 균형발전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인천 계양을 출신 5선 의원인 송영길 후보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하드웨어가 되더라도 성공 여부는 소프트웨어다. 국제적인 항공사 유치에도 뒷받침해서 신공항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김부겸 총리와 상의해 대구의 수질 문제 등 현안을 반드시 해결하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날 합동연설회에 대한 대구와 경북의 여론은 한마디로 싸늘했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반대했던 민주당이 신공항 조기 건설을 역설하는 것은 코미디다’, ‘어차피 다시 찾지 않을 것 같은데, 당원들의 표만 얻으려는 수작’이라는 등의 비판이 많았다. 그동안 집권여당이 행해온 대구·경북 차별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민심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 후 여러 자리에서 “지역주의 정치를 끝내고 민주당을 전국 정당으로 만들자는 것이 정치에 뛰어든 목표 중의 하나”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국책사업 입지 선정이나 예산배분, 인사 등에서 노골적으로 대구·경북을 소외시켜왔다. 역대 정권은 지역 간 안배에 신경을 써온 것이 관례였다. 그런 최소한의 관례가 문 정부 들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합동연설회장에서 한 말을 그냥 덕담으로 넘기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1-04-26

디지털 치매

‘디지털 치매’는 10~30대 젊은이들이 문명의 이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치매와 유사한 인지적 저하를 보이는 일련의 증상을 가리킨다. 젊은 나이에 겪는 심각한 건망증이라 해서 ‘영츠하이머’라고도 한다.실제로 20~30대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 검색창을 띄우자 마자 자신이 뭘 검색하려했는 지 생각이 나지 않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않다.디지털 치매는 스마트폰이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마트 폰이 인간 뇌를 대신해 ‘기억’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의 연락처나 생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한 사소한 일들에 대한 기억도 메모기능이 대신하고 있다. 디지털 치매 진단을 위해 다음 증상 가운데 2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위험성이 높다. △전화번호는 회사번호와 집 번호밖에 외우지 못한다. △전날 먹은 식사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처음 만났다고 여긴 사람이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다.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지적을 받은 적 있다 △아는 한자나 영어단어의 뜻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애창곡인데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몇 년째 사용중인 집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이같은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려면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뇌 전체의 고른 발달을 위해 머리를 쓰는 다양한 취미생활과 함께 신문이나 TV 통해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술 담배를 삼가하는 것이 좋다.무엇보다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게 두뇌건강에 도움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건강한 삶은 건강한 두뇌가 있어야 가능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26

행복한 엄마와 아이의 미래가 있는 김천

김충섭김천시장저출산 시대다. 2019년도 국내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관련 통계작성(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가 1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2020년 발표된 유엔인구기금(UNFPA)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조사 대상 201개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데 따른 늦은 결혼, 주택문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양육 부담 등이 저출산 시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김천시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출생아수는 838명으로 전년대비 4.6%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1.27명으로 전국평균보다 0.35명 상회하고 있다. 김천시는 이 같은 인구절벽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전담부서인 인구정책팀과 출산장려팀을 운영하며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김천’ 만들기 공약사업으로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김천시 공공산후조리원은 인구 구조의 변화, 가족기능 약화에 따라 산모의 산후조리를 지원하여 안정적인 출산·육아환경을 조성하고, 산모와 아기가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모암동 190-2외 8필지 1천689.6㎡ 부지에 70억원을 투입하여 지상 2층 규모로 지난 3월에 조달청 원가심사 및 공사발주를 시작했으며, 5월 중에 기반시설 및 건축공사도 착수하여 2022년 2월 완공 계획이다. 공공산후조리원은 12개의 모자동실과 신생아실, 모유수유실, 영유아실, 사전관찰실, 프로그램실, 급식시설을 갖추게 된다. 모자동실에는 개인 좌욕기, 거동이 불편한 산모를 위한 전용 샴푸실, 감염병예방을 위한 비대면 면회실이 있고, 신생아실에는 언제 어디서나 신생아의 상태를 확인 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하는 등 다른 시군의 시설과는 차별화를 도모했다.또한 2020년부터 시작한 산모·아기 돌봄 사업은 출산 후 가장 힘든 시기인 100일까지, 총 30일의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본인부담금의 90%를 김천시에서 지원하여 초기양육의 고충을 덜어주고, 출산가정의 경제적인 도움과 행복한 육아 돌봄이 되고 있다.산모 아기 돌봄 사업은 지속적으로 신청자가 늘어나 서비스 이용률이 지난해 보다 10% 증가한 68%를 기록하였고, 출산장려금도 대폭 인상하여 출산가정의 경제적 부담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20년 지자체 저출산 대응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특별교부세 6천만원을 수상하기도 했다.2021년에도 저출산 극복과 출산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출산장려금 33억4천만원, 산모·아기 돌봄 사업에 24억2천만원 등 총 96억 2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다양한 모자보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김천시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0.92명 보다 0.35명 높은 1.27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2020년 김천시 출생아수는 전년대비 4.6% 감소한 838명이다. 인구 14만 도시 김천시에 1년 동안 출생아수가 800여명 밖에 되지 않고 그것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인구절벽이 바로 눈앞에 닥쳤음을 의미한다.그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들을 보면, 출산지원금, 아기돌봄 서비스, 건강검진 및 진료지원 등으로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그 한계가 있다.취업, 주거 및 주택, 자녀교육, 일과 가정의 양립, 양육부담, 미혼모 및 한부모 출산, 비혼자 증가 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 초등학생 이하 양육비 지원, 청년주택, 신혼부부 임대주택 공급 등 중앙정부가 미래사회를 위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저출산 극복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때다.

2021-04-25

오래된 고전을 왜 우리냐구?

빨강 머리 앤 카페에서 모였다. 오늘 토론할 책이 ‘빨강 머리 앤’이기에 이리로 정했다. 월포해수욕장에 자리 잡은 이 카페 이름은 ‘커피선’이지만 가게 안에 온통 앤의 굿즈들이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입구부터 여행 가방을 든 앤의 까만 실루엣이 우리를 반긴다. 가방 안에 커피콩이 가득 들었다.빨강 머리 앤 애니메이션은 나보다 열 살 어리다. 캐나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1908년에 글로 탄생시킨 것을 일본 후지 TV에서 그림으로 우리에게 펼쳐놓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주인공의 모습을 삽화로 책에 그려 넣어 출판했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 읽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노란 머리의 빨간 마후라를 한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할을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했다. 이 카페에는 그 앤의 모습이 가득하다.고아 소녀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초록 지붕의 커스버트 남매의 집으로 오는 장면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소심한 모태솔로 매튜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사과꽃이 흐드러진 가로수길을 지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고작 200미터 정도의 길이인 김유신 묘 입구가 벚꽃길의 최고 명소인데, 500미터가 이어진 길이라고 하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수다쟁이 앤이 한동안 가슴이 아픈 듯 먹먹해서 입을 다물만했을 것이다.어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빨강 머리 앤을 왜 독서토론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란 농담이 있다. 그 농담에 다 같이 웃는 것은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목과 줄거리는 들려오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 두께가 주는 중압감과 바쁘다는 핑계로 거실 책장에 비싼 장식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빨강 머리 앤은 술술 읽기 쉬우니 다들 읽었겠지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릴 적 TV에서 방영한 것을 보았을 뿐 원작을 읽지 않았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2021년 토론 목록에 명작읽기 코너를 만들고 키다리 아저씨와 빨강 머리 앤을 넣었다.나는 드라마도 새로운 것보다 좋았던 것을 몇 번 더 우려서 보는 곰탕 스타일이다. 처음 볼 땐 스토리 위주로 보고 두 번째엔 캐릭터가 보이고, 서너 번 더 보면 처음에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느낌이 들고 처음엔 들리지 않던 대사가 살아서 귀에 꽂힌다.빨강 머리 앤도 이번에 읽으니, 몽고메리가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 곳곳에 있었다.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는 그리스도’라는 석판화를 보고 앤이 화가가 예수님 얼굴을 저렇게 슬프게 그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의 많은 예수님 그림이 전부 저래요 한다. 아시아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백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부터가 아이러니다.앤이 처음 교회 간 날, 장로님은 기도하는 게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셔서 기도를 드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나도 늘 앤처럼 느끼던 바라 그 문장이 도드라져 보였다. 지난해인가, 우리 교회 장로님 중에 한 분의 기도가 진심처럼 느껴진 날이 있었다. 그 장로님은 자신이 담근 젓갈이 잘 익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맛보고 가셨으면 좋겠다, 베란다 화분에 난이 꽃을 피웠다며 향기로운 예수님 생각이 난다고도 했다. 사실 많은 기도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는데 비해 예수님을 가까이 사는 친구처럼 대하는 그 기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앤이 그려진 벽화 아래서 토론은 점심때가 지나도록 이어졌다. 카페를 나오기 전 굿즈 하나씩도 사서 나왔다. 우리 집에는 작은 시계를 들고 선 앤의 옆모습 나무인형을 데려왔다. 그동안 책꽂이 한 칸을 채울 만큼의 다양한 앤을 데려 왔지만, 앞으로도 쭉 들일 참이다. 새로운 번역이 나오면 사서 또 읽고 밑줄을 그을 것이다. 덕질의 즐거움이 이런 것일 테니. /김순희(수필가)

2021-04-25

코로나 장발장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고 무료급식소까지 문을 닫게 되자 배고품을 견디지 못해 삶은 계란 18개를 훔쳐 달아났다 붙잡힌 40대 남자의 사연이 경기도에서는 화제다. 누범이라는 이유로 그는 5천원 상당의 계란을 훔친 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검찰이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했고, 해당 자치단체서도 그의 생계 지원을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가난이 죄일 수는 없다. 죄는 믿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까지 미워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윤리관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같은 생계형 범죄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우리를 암울하게 하는 소식이다.검찰청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강력, 폭력, 교통범죄 등 주요 범죄는 전년보다 6∼9% 감소했지만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포함된 재산범죄는 전년보다 5%가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경제 사정이 나빠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고 한다. 자영업자 등의 파산신청도 한달에 1천건을 넘는다고 한다. 코로나의 위력에 또한번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서울 영등포구청에서는 ‘영원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 3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부담없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품값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0원마켓이라 명명했다고 한다,‘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빵 조각 하나를 훔쳤다가 19년의 징역형을 살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다.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 이같은 장발장 인생을 양산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아프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25

아편보다 더 중독성 강한 ‘權力’

심충택논설위원문재인 정권이 역대 다른 정권과 크게 구별되는 것은 노골적으로 국민을 양 진영(陣營)으로 나눠 전쟁하듯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다. 이제 국회와 법조계, 학계, 방송계, 시민단체 등 사회 전 분야를 장악하다시피 한 이 정권의 권력자들은 국가 시스템과 자원을 마음대로 주물러도 된다는 망상에 젖은 듯하다.가장 위험한 것은 법률까지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그들의 발상이다. 대표적인 게 여당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최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최 대표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피해자의 의사표시와 상관없이 제3자의 고소로 수사 착수를 할 수 있는데, 이 법이 시행되면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가 가능해진다. 최 대표에 대한 검찰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수사는 피해자인 이 전 기자가 아닌 제3자인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됐기 때문에, 개정안 통과 이후였다면 최 대표 사건은 수사조차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자신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형적인 ‘셀프구제법안’이라는 비난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며칠 전 철회되긴 했지만,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도 ‘셀프특혜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법안의 취지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만 관련자들을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고 있는데, 유신반대투쟁과 6월 항쟁유공자까지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등을 부당하게 특별채용한 혐의로 감사원에 의해 경찰에 고발됐는데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권력집단의 탈법적이고 비상식적인 특권 행위는 이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서울 교통방송(TBS)이 김어준 씨에게 예외규정까지 적용하며 고액 출연료를 주고 있다는 의혹은 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에게 절망을 주고 있다. 서울 한남동 김명수 대법원장 공관을 리모델링하는데 16억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간 것, 경기도 안성 소녀상 설립 모금액 중 1천500만원이 방송인 김제동씨에 대한 강연비(2시간)로 지출된 것,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 도구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윤미향 민주당 의원 사건 등도 국민의 눈엔 기가 막힌 일로 비쳐진다.진보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중앙지에 쓴 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너무 많아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고 언급한 부분에 공감한 적이 있다. 민주화 운동의 대명사격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이런 일은 없었다. 양 김 씨는 적어도 국민을 대상으로 자원을 고루 배분했고 국민세금을 남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권력을 행사하는 습관은 아편보다 훨씬 더 큰 중독성을 가졌기 때문에 멈출 줄을 모른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2021-04-25

경북 12개 군 5인금지 해제… 방역은 더 강하게

경북 12개 군지역이 오늘부터 5인이상 사적모임 금지가 해제된다. 경북도 건의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앞으로 일주일간 코로나 확진자가 적은 도내 12개 군을 거리두기 개편안 시범지역으로 지정하고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따라서 군위, 의성, 청송, 영양, 영덕, 청도, 고령, 성주, 예천, 봉화, 울진, 울릉 등은 사정에 따라 기초단체가 사적모임을 8명까지 제한을 할 수도 있으나 방역수칙은 거리두기 1단계 수준으로 완화된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번 경북 일부 지역의 거리두기 완화 조치가 코로나로 고통을 받는 도민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당 시군도 긍정의 뜻을 밝혔다. 소상공인의 고통이 완화되고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반응이다. 이번 시범지역에 포함된 12개 군은 최근 1주일 사이 신규 확진자가 14명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또 이 가운데 6개 군은 같은 기간 동안 확진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 도시 중심으로 발생하는 확진자 추이 속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는 군단위 지역에 대한 차별적 완화 조치라는 점에서 향후 성과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800명에 육박하는 등 4차 대유행을 우려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번 완화조치가 성급하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선진국에 비해 백신 확보나 접종률이 크게 뒤진 우리나라로서는 철저한 거리두기 수칙 준수가 단기적으로는 유일한 방역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12개 시범지역 대부분이 인근 도시를 끼고 인적 왕래도 잦아 방역관리에 구멍이 생길지 걱정이다. 자치단체는 종전보다 더 철저한 방역망 구축으로 어렵게 시도한 차별적 방역기준 적용이 성과를 낼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특히 노인이용시설과 요양원, 종교시설 등 취약지에 대한 강화된 방역관리가 있어야겠다. 또 지역민도 철저한 방역의식으로 무장해 모처럼 돌아온 좋은 기회를 살리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전국은 1천명대가 넘는 확진자 발생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지난 23일엔 하루 확진자가 797명에 달해 106일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북지역도 연일 하루 20∼30명대의 신규 확진자가 이어지고 있어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12개 군의 5인금지 해제가 방심으로 연결되는 일이 없도록 긴장의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

2021-04-25

‘일본發 방사능 공포’ 어시장에 직격탄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최근 경북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이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이 죽도시장에서 혹시 일본산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기자가 현장을 취재한 결과, 고객들이 해산물을 가리키며 “이거 일본산 아니에요. 왜 이렇게 커요?” 등의 질문을 하며 구매를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수산업계에서는 “일본이 끝내 오염수를 버린다면 수많은 우리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며 불안해 하고 있다. 수산물이 생계수단인 어민들과 어시장 상인들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와 2013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 사고 때도 큰 피해를 보았다.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오염수를 2023년부터 약 30년 동안 태평양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으며,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등 인접국가가 강경대응하고 있다. 해양연구기관에 의하면 일본이 오염수를 일부 처리해 태평양에 방류한다면 약 229일 후에 제주도에 도착한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체내에 축적되면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공포감은 한층 증폭되고 있다.수산업계가 현재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결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수단이 사실상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하는 걸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소여부도 장담할 수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국제사회와 공조를 더욱 강화하여 오염수 해양방류 저지를 위해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후쿠시마 현지에서 직접 시료를 가져와 측정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공동으로 검증하는 작업도 효과적일 것이다. 경북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 확대와 수산물 원산지 허위 표기 단속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21-04-25

포스트코로나, 디지털 치료기기 산업의 급성장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지난 20일 국내에서 최초로 ‘메신저 기반 불안장애 치료기기’인 ‘마음정원’이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인증을 획득했다. 디지털 치료기기 ‘마음정원’은 정기적으로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 불안장애,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대화형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만든 치료 서비스이며 상용화를 위해 올해 강남세브란스 병원과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디지털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민원인 안내서, 2020.08)’에 의하면 디지털 치료기기를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정의하고 있다. 통상적인 의료기기는 질병이나 상해·장애를 진단, 치료, 경감, 처치 또는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계, 장치, 재료 등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내시경, 호흡기, 혈압계, 심장 박동기 등이 해당된다.최근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덜불어 바이오헬스 분야의 새로운 트랜드로 디지털 치료기기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1세대 치료제인 합성 신약,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어 3세대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디지털 치료기기는 먹는 알약이나 주사제 대신 앱(응용프로그램), 게임, VR(가상현실)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치료제로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치료나 정신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최근 만성질환인 당뇨나 비만 예방·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기기인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사의 약물중독 치료 앱인 ‘리셋(reSET)’을 비롯해 마약성 진통제 중독에 대한 디지털 치료기기인 ‘리셋-오’,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솜리스트’, 최초의 게임기반 디지털 치료기기인 ‘엔데버Rx’ 등이 FDA 허가를 받았다.국내 기업의 경우, 라이프시맨틱스사에서 호흡기질환 환자를 위한 호흡재활 프로그램 ‘숨튼’, 암 환자 예후 관리 프로그램 ‘레드필케어’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뉴냅스사에서는 뇌 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를 치료하는 가상현실(VR) 기반 디지털 치료기기 ‘뉴냅비전’이 개발 중이다.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산업의 성장이 가속화 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가 급부상하면서 치료 중심의 의료에서 소비자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데이터 기반의 예방 의료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령화 및 만성질환자 증가로 인한 의료비 지출 확대, 의료데이터 급증, 스마트 기기의 보급 확산 등의 사회적 변화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기존 신약은 개발기간이 평균 15년이 걸리며 3조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디지털 치료기기는 3.5년~5년의 개발기간에 100~200억원이 소요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기존 치료와 달리 체내에 직접 작용하지 않아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이 적고, 비대면 건강모니터링과 원격진단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최근 충북 오송(오송첨단의료재단)에서는 감염병 대응을 위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비대면 건강관리 시스템을 개발하여 생활치료센터, 노인 요양원, 보건소 등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에서도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공동개발, 알츠하이머병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며 일부 대형 제약사(한미사이언스, 한독)에서도 디지털 치료기기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경북도와 포항시에서도 디지털 치료기기 신성장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작년 6월 국내 대표적 제약기업인 한미사이언스가 포항에 3천억원 규모의 스마트 헬스케어 기반 구축을 위한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을 위해 11월 포항에 코리포항을 설립했다. 포항은 인공지능 대학원(포스텍), 디지털 데이터 수집 및 분석(한동대, 코리포항), 경북SW진흥본부(포항TP)를 비롯하여 디지털과 바이오분야 중소벤처기업 유치와 육성을 위한 포항지식산업센터, 바이오 오픈이노베이션센터(BOIC) 등 디지털 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한 필요한 핵심기술과 기반시설을 보유하고 있다.포항의 우수한 기술역량과 인프라를 활용하여 생체정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대사질환 및 당뇨병 치료·예측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개인별 맞춤형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을 위해 건강검진 데이터, 라이프로그(생활패턴) 데이터, 유전체 데이터와 장내 균총 데이터 등 건강 빅데이터와 다중 오믹스 분석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할 예정이다.포항은 철강산업 부진 등으로 인해 청년 유출이 약 2만명에 달하며, 청년 실업률이 11.2%로 전국 1위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경북 주도형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 인구 유출 방지 및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최근 지진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침체된 지역사회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1-04-25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지역발전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한때 웅도(雄道)로 자타가 인정했던 경북은 물론이고, 해방 이후 한때는 2대 도시로, 그리고 그 후 50년 이상은 3대 도시에 머물렀던 대구는 이제 4대 도시로 몰락함으로써 과거의 영광만을 자랑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대구·경북 인구의 감소는 지역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지역의 일자리 및 기회 요인의 미흡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대구·경북은 청년층의 인구유출이 심각하다. 청년층의 인구유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눠 표출된다.첫 번째 단계의 인구유출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나타난다. 과거와는 달리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소재 대학으로 진학하길 희망하는 것이 현실이고, 실제로 많은 우수 학생들이 지역을 떠나 서울소재 대학으로 진학한다.두 번째 단계의 인구유출은 지역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수도권에 있는 임금이 높고 비교적 명망 있는 기업들의 끌어당기는 요인(pulling factor)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높은 주거비용과 열악한 환경에도 수도권에 있는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다.이제 대구·경북도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정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대구·경북을 기회의 땅으로 인식하고 찾아올 수 있도록 구체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산업정책도 중요하지만,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국제공항은 지역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사회간접자본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KTX 역을 중심으로 광역경제권 혹은 광역도시권이 형성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광역경제권 혹은 광역도시권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경제성장,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및 소득성장, 그리고 저비용항공사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로 말미암은 항공요금인하 효과로 국제항공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단순히 출입국을 위한 관문 혹은 통로(gate-way)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한 성장거점(growth pole)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항건설 자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항 주변에 공항도시(air-city) 건설을 위한 청사진 계획과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전문가와 시·도민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새롭게 건설될 공항은 대구·경북 시·도민들의 아웃 바운드(out bound) 여객수요 못지않게 외국인들의 인 바운드(in bound) 여객수요를 겨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항도시와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인 바운드 해외여행객들을 위한 문화관광·쇼핑관련 인프라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대구·경북에 산재해 있는 역사문화관광자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자원 확충에 힘써야 한다. 예컨대 공항 주변에 국외여행객들을 위한 호텔, 리조트, 카지노, 테마파크, 프리미엄 아웃렛 몰 등의 유치가 필요하고, MICE 산업관련 인프라의 확충도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관광자원이 안동, 경주 등 경북지역에 산재한 역사문화관광자원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공항도시와 주변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긴요하다.새로운 국제공항의 건설은 주변지역의 산업생태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공항 주변에 국제 업무단지, 문화관광 관련 산업 외에도 물류산업과 첨단산업이 번창하는 것을 볼 수 있다.따라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주변지역에 대구·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규모는 인천공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 인천공항이 포화상태에 있어 새로운 기능을 확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살핀다면 통합신공항의 경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실제로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공항은 비록 항공여객수요는 많이 없는 소규모 공항이지만, 국제특송업체인 페덱스(FedEx) 익스프레스의 항공운송 허브(hub)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 최대의 물류공항으로 성장했다.바로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경우도 전자상거래의 확대를 겨냥해서 국제 택배화물의 처리를 위한 물류허브공항으로 육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은 이제 막 시작단계에 있다. 통합신공항 건설은 새로운 공항의 건설로 종결돼서는 안 되고, 공항의 건설을 통해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새로운 공항과 공항도시 건설, 그리고 주변지역 개발을 통해 대구·경북이 글로벌경제 환경에서 나름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통합신공항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지역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2021-04-25

‘포항 근·현대 문화사’와 KBS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프랑스 사회학자 장 피에르 르고프는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모든 곳에서의 일상의 질서가 되어 맹목적 현대화라는 형태로 사회적 관계의 중심에 설치되는 현상을‘부드러운 야만(la barbarie douce)’이라고 부르며, 그 어떤 것도 평온 상태에 놓여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복의 메커니즘을 비판했다. IT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유니버스와 메타버스(Metaverse)의 공존을 목도하며 디지털 노마드로서 불안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위무해 주고 긍정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코로나19로 침체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향유권을 환기시키고자 포항문화원에서‘포항 근·현대 문화사’를 발간했다. 포항 문화의 변천사를 19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12개의 주제로 나눠 집필한 역작인데,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방송국의 역할과 지역문화’에 대한 평가이다.“1961년에 첫 전파를 쏜 KBS포항방송국의 라디오방송은 방송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발전을 견인하는 일을 해냈다. 제대로 된 문화예술단체나 변변한 예술공간조차 없던 시절에 전후 황폐한 포항을 KBS가 추슬러 문화도시로서의 초석을 다졌고, 방송국 직원들은 스스로 예술단체를 결성하고 활동하면서 전파를 쏘는 등 척박한 토양에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중략) 지역 문화단체도 채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의 연극, 음악, 희곡 등 장르를 총괄해 주도적인 문화예술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해 냈다.”이러한 평가는 IPTV나 OTT 기반의 유료방송인 유튜브, 웨이브, 넷플릭스 등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KBS의 존재 의미와 나아갈 길을 천착하게 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으며 수십 년간‘아침마당’,‘6시 내고향’,‘전국노래자랑’,‘열린음악회’등 여러 장수 프로그램을 제작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의 인생 동반자로서 방송문화를 향유하게 하고자 하는 사명감과 오랜 시간을 관통하며 삶의 궤적에 합치하는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시대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의 층위를‘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통해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나눠 설명했는데 스투디움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피상적 평범함이라면, 푼크툼은 무엇인가 가슴을 자극하는 본질적 경험과의 결합이라고 주장했다.국민의 방송 KBS 채널에는 뉴미디어 등의 다른 매체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공익적 프로그램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시청자 개개인의 푼크툼적 시대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애자일(agile) 조직화가 화두인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시간을 갖고 함께 모일 수 있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역할을 하며 시대적 과제로서의 지역균형발전 등을 추구하는 가운데 문화발전의 한 축이 되어 시청자들의 벗이 되는 것이 KBS포항방송국의 책무이다.

2021-04-25

기억의 정리

윤영대수필가1년 전, 애용하던 USB를 잘못 건드려 귀중한 데이터를 날려버렸다. 그동안 백업(backup)해두는 것을 잊고 써왔기에 중요한 최근의 자료들이 많아서 복원을 해보았지만 70% 정도이다. 그래도 필요한 자료 몇 개는 되찾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컴퓨터 기억장치들을 살펴 자료들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없앨 것은 없애고 간직해야 할 것은 따로 분류하여 모아두고 있다. 이러한 작업, 특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자료들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디지털화하여 모아두는 것을 아카이브(archive)라고 하며 백업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이 아카이브 ‘기록 보관소’에 넣어두려는 것은 주로 나의 사진들과 글 쓴 자료들이다. 여태 남아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찍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부터이고 휴대폰으로는 10년이 된 것을 알았다.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부터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대용량 메모리를 몇 개 구입하여 따로 보관해 두고 있고 최근에는 앨범에 있는 사진들도 가끔 스캔하여 디지털 사진으로 모아두고 있다.글을 쓸 때도 먼저 펜으로 초고(草稿)를 쓰고 나서 컴퓨터로 옮겨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 그 흔적이 컴퓨터에 남아있곤 한다. 며칠 전, 오랫동안 잊고 처박아 두었던 옛날 컴퓨터를 버리려고 전원을 켜고 하드디스크 내용을 살펴보다가 많은 자료 중에서 몇 개의 한글 파일을 발견했다. 저장 날짜가 1992년으로 되어있다. 30년 전의 글인데 읽어보니 쓴 기억이 전혀 없다. 글자체도 요즈음 쓰지 않는 것이고 한자가 많이 들어있지만 내용도 괜찮고 오랜 시간 누렇게 변한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라 더 반가웠고 소중해서 그대로 새 기억장치로 옮겨두었다.어떻게 30년 동안 그 작은 반도체 속에서 지워져 버리거나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물론 종이로 된 책이나 노트를 긴 시간 동안 구석에 두어 먼지가 쌓이고 변색이 되어도 내용은 읽을 수 있겠지만 전기라는 생명의 끈을 끊어버린 반도체의 기억이 나노메타(10-9) 급의 미세한 회로에서 유지되다니 디지털 기술이 신비롭다.우리 뇌는 1천억 개의 뉴런이 있어서 단기기억은 해마가 담당하고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에 저장한다고 하지만 보고 듣는 수많은 정보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업데이트를 하는데, 한 달이면 80%는 잊어버리고 20%는 뇌의 한구석에 보관하는 자정(自淨) 능력이 있다고 한다. 서재에 있는 많은 서적과 문서, 여러 권의 앨범에 꽂혀 있는 사진들도 정리하여 버리고 평생 가져가야 할 것들만 남겨야겠다. 그리고 필요할 때, 보고 싶을 때 꺼내보면 좋으리라.복잡했던 일상을 단순화하고 내 주위에 모아둔 자료를 정리 정돈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지만 쉽지만은 않다. 전공 서적은 퇴직 때 대부분 버렸고 백과사전 등은 한 중학교에 기증했으며 깨끗한 최신 문학 서적 수십 권은 작은 도서관에 보냈다. 그러나 많은 CD, 테이프, 필름 등은 어찌할까? 요즘 차고 넘치는 정보와 복잡한 일상을 정리하는 습관과 기술도 삶의 지혜이다. ‘비우며 살자’라는 말과 생각이 또 머리와 가슴에 저장된다.

2021-04-25

골목상권 살리기에 시민들도 적극 참여를

대구시가 올해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과 함께 골목상권 30군데를 발굴, 공동 마케팅을 지원하기로 해 성과가 주목되고 있다. 대구시는 그저께(21일) “골목상권을 이끌어 갈 크리에이터(상인대표)를 공모해서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골목상권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동마케팅 지원 사업은 점포가 20군데 이상 모여 있는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조직화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대구시는 우선 10억원을 들여 상권 실태조사를 한 후 후보지 공모를 한다. 선정된 곳은 공동체 조직에 필요한 행정지원, 역량강화 및 컨설팅, 공동마케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사업계획서가 우수한 15군데는 심사를 통해 ‘희망 첫걸음 지원사업’(공동시설 개선, 환경개선 등)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 사업의 중요성은 골목상권 붕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온 국민으로부터 인기를 끄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백 대표가 전국 골목 가게를 누비며 영세 자영업자에게 희망을 주고, 유명 맛집을 만들어내는 헌신적인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상권분석과 창업 컨설팅, 신메뉴 솔루션까지 제공하며, 상인들의 비전문성, 나태함, 불결함, 불친절 등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유쾌하다. 대구시의 이번 골목상권 경제공동체 사업은 백 대표의 활동과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시장 전체가 침체돼 있지만, 대구시내 골목상권은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일반주택가에 파고들면서 대부분 붕괴상태에 직면해 있다. 행정당국뿐 아니라 시민들도 지역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골목상권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똑같은 돈을 골목 가게에서 쓰는 것하고 대형마트에서 쓰는 것하고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극명하게 다르다. 대형마트에서 쓰는 돈은 당일 바로 서울본사에 이체 되지만 골목가게 상인들에게 들어간 돈은 바로 지역시장으로 나와 경제를 활성화한다.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더라도 골목상권을 배려하는 현명한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

2021-04-22

할머니 전성시대

영화 ‘미나리’에서 74세의 윤여정은 유창한 영어와 ‘쿨’한 연기로 단번에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올랐다.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 미국 안팎에서 32개의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가 아니더라도 윤여정은 국내서는 최고 수준급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윤스테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만의 카리스마가 화제가 됐고, 그녀의 인기를 분석한 평론도 언론매체를 통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고집스럽고 까칠한 면도 있지만 젊은이의 말을 경청하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오픈마인드가 그녀의 장점이라 했다.최근 그녀는 10∼20대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패션 온라인 플랫폼에 광고 모델로 등장해 또 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그녀가 등장한 광고는 일주일도 안돼 조회수 140만을 기록했다. 영화 ‘미나리’ 개봉 이후 할머니 전성시대를 그녀가 열고 있다.‘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할머니의 사투리 할매와 밀레니엄이 합쳐진 표현이다. 옛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음식과 패션에서 그 트렌드가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패션가에서는 ‘그래니룩’이란 말도 생겼다.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패션 스타일의 룩(Look)이 합쳐진 것이다. 대표적 상품은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니트 가디건과 펑퍼짐하고 강렬한 색깔의 원피스나 긴주름 치마다. 장년의 여성이 즐겨 입을 법한 옷이지만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심리가 복고풍의 흐름과 겹쳐 나타난 현상이라 한다. 복고풍은 따뜻함, 포근함, 향수 등의 이미지가 있다. ‘할매니얼’의 등장과 더불어 신시대 할머니의 활약 또한 기대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