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말이 시(詩)가 된다

김현욱 시인사람은 말로 배우고 말로 사귀고 말로 싸우고 말로 사는 존재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이유도 말의 무게 때문이다.정약용의 ‘이담속찬’에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는 속담이 전한다.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도 말조심하라는 뜻인데 조금 다르다. 평소 무심코 하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으니 불길한 말, 안 좋은 말보다는 즐겁고 이로운 말을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사람에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귀 기울여 경청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 ‘이청득심(以聽得心)’이 좋은 예다. 친구 사이에도 자기 말만 하는 친구보다 잘 들어주는 친구가 인기가 많고 대접을 받는다. 그뿐이랴. 가족이나 친구 말을 잘 들으면 마음도 얻고 시도 얻을 수 있다. 말이 씨가 되는 게 아니라, 말이 시가 된다.전동재의 ‘요섭이의 말’이라는 시가 그렇다. “걸어오는데/ 요섭이를 만났다// 요섭이가 갑자기/ 동재, 우리 반 김욱현 샘 좋지?/ 그 샘 누구?/ 우리 담임 샘!//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김현욱 샘? 이라고 말하니/ 요섭이가/ 아, 맞다. 하하하!// 요섭이는 샘 이름도 모른다.”// 네이버 카페 ‘시와 노는 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시를 쓴다. 2주에 한 번꼴로 시를 쓰는데, 아이들의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기 위해 가장 애를 쓴다. “아파트에서 생긴 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 “억울하면 시 쓰자!”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시작한다. 알맞은 마중시가 있으면 읽어주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할 때는 배한권의 ‘엄마의 런닝구’를 읽어준다. 엄마의 사투리 부분을 맛깔나게 읽으면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반 아이들에게 낭송을 부탁하면 더 재미있게 읽는다. 시 쓸 분위기 조성에 안성맞춤이다.매년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하는데 곧잘 재미있는 시가 나온다. 전동재의 시 ‘요섭이의 말’이 그렇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요섭이는 자기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거꾸로 알고 있다. 동재와 요섭이는 같이 학교에 오다가 요섭이가 김현욱 선생님을 김욱현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참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아침에 동재가 말로 먼저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줬다. 나는 ‘옳다구나!’ 동재에게 다음에 시 쓸 때 그걸 써보라고 했다. 동재는 요섭이 말을 잘 듣고 나는 동재 말을 잘 들었다. 말이 시가 된 것이다.우리는 말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공인들이 종종 말실수를 해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본다. 아이들의 세상에서 ‘말’은 시의 씨앗이다.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일은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잘 들으면 시가 생긴다. 말이 시가 된다.

2020-12-20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고령 만드는데 최선

곽용환고령군수올해는 누구도 우리 곁에 오길 원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황과 공포에 빠뜨렸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단절돼 비대면사회로의 전환이 급속히 진행됐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경영난을 겪고 있고, 고용불안이 심화됐으며, 취약계층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고령군민과 공직자는 그 어느 때보다 한마음이 되었고 새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게 대출·보증 등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생계지원을 위해 긴급 생활비와 한시적 주민지원,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지급해 위기를 극복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그 동안 가려져 있던 우리의 소중한 역사자원들이 하나하나 빛을 발하면서 도시의 매력을 더하고 있고, 통계청 국민행복지수 발표 결과 ‘삶의 만족도 대한민국 1위’에 오르며 작지만 강한 고령군의 저력과 역량을 입증 받아가고 있다.대가야 종묘 개관 및 대제 봉행으로 520년 간 국가적 위상과 문화적 독창성을 빛내며 존재한 철의 왕국 대가야가 ‘4국시대’로 인정받는 과정에 있으며, 지산동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최종관문을 통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 군은 유구한 역사와 독창성을 가진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대가야 궁성지와 대가야 관방유적 발굴·정비, 가야사 연구·복원사업 추진을 통해 가야사 복원과 재정립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대가야 생활체험 거점관광지인 대가야생활촌은 기존에 조성된 박물관과 문화누리, 역사테마 관광지와 농촌체험특구를 아우르는 관광단지에 ICT에 기반한 실감콘텐츠까지 접목해 대가야 문화벨트로 완성돼 가고 있다. 향후 즐기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으리라 확신한다.고령 100년 대계를 위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를 위해 온 군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왔으며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내년에도 군민의 교통편의 증진과 관광산업 연계를 위해 사통팔달의 전방위적 물류교통망 확충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스마트 상수도시스템 도입과 노후 상수관 개선, 깨끗하고 안정적인 수돗물을 공급하고, 농촌중심지 활성화와 기초생활 거점 육성을 통해 꿈과 활력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겟으며, 대가야 문화물길 정비와 스마트홍수관리시스템 구축, 성주댐 관리규정 개정으로 만약을 위한 안전 대비를 꼼꼼히 챙겨 나가도록 하겠다.대가야읍 도시재생 뉴딜과 왕릉로 거점공간 조성으로 쾌적한 주민생활환경을 조성하고 도시개발사업, 생활SOC복합화 사업, 공원조성을 통해 군민 삶의 질을 높여 대한민국 행복도시를 완성 하고자 한다.다산면은 지역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정주여건 개선사업을 통해 인구 2~3만 명의 살기 좋은 신도시로 개발하고, 다산문화공원 경관개선사업과 생태레저단지 조성, 바래미숲조성을 통해 新(신)낙동강 시대를 열어 가고자 한다.대구와 경북 통합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대구·경북 달성·고령의 상생협력을 위한 사문진교 경관개선사업을 통해 대구·경북민이 하나가 돼 화합할 수 있는 모범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지난 2일에는 김문오 달성군수와 함께 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보고회를 가졌으며, 28일에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문오 달성군수 등 단체장들과 함께 대구·경북이 상생의 미래를 여는 협약식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달성군의 피아노 100대와 고령군의 가야금 100대 공동 협연 문화교류사업, 대구·경북 상생 주말 장터 등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상생협력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우리는 지금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 개척자의 심정으로 2021년에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대가야 고도 고령을 완성해 나가고자 한다. 오늘도 군민과 함께하는‘I ♥ 대가야 고령’프로젝트를 추진해‘대한민국 대표 행복도시,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고령’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0-12-20

화양연화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 달 전 즈음, 교회에서는 뒷산에서 가져온 키 큰 소나무에 솜과 색종이 고리를 연결해서 둘렀다. 트리 장식이 첫 순서였다.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해 방과 후에 교회에 모여 연습도 했다. 언니 오빠들은 전지를 여러 장 눌러 만든 차트에 성가의 가사를 적었다. 창밖을 보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저~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천사 내려와…. 하루에 노래 한 곡 이상은 익혀야 발표회에 율동곡으로 또 합창곡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크리스마스이브가 D-day였다. 무대가 열리는 날은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예수쟁이가 아닌 어른들도 모두 구경하러 오시니 뒷자리에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예배당이 꽉 찼더랬다. 어린 반 친구들이 무대 첫인사를 하면 천으로 된 막이 스르르 열린다. 이 막을 열고닫는 일은 언니들의 몫이다. 작은 교회라 일인삼역은 기본이었다.초등학생 때는 발랄한 율동곡을 담당하다가 중 1이 된 그해에는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역할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엄마 치마저고리 입고 십자가 대형으로 앉아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에 맞춰 춤을 추었다. 양손에는 촛불을 들고 하는 나름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율동이었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옆 사람에게 촛불이 붙을까 조심하며 애쓰는 중1의 우리들이 보여 웃음이 절로 났다. 우리보다 큰 언니 오빠들의 연극이 마지막 무대였다. 돌아온 탕자를 연기한 오빠의 손에 담배가 있어서 저걸 피워도 되나 싶어 끝나고 무대 뒤로 가서 그 오빠에게 걱정을 늘어놓았더랬다. 싱겁게도 담배로 보였던 것은 하얀 모나미 볼펜 깍지였다.김순희수필가동네 어르신들 격려의 박수소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서 선물교환을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추위가 더해지고 통로에 톱밥 난로에 열기가 더해져 우리 볼은 더욱 빨갛게 들떴다. 낮에 교회로 올 때 선물 하나씩 포장을 해서 와야 했다. 누가 어떤 선물을 고를지 모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끝까지 긴장하며 즐기는 밤이었다. 커다란 상자를 골랐는데 그 속에 러시아 인형처럼 작은 상자를 겹겹이 넣어 마지막 상자에 달랑 볼펜 한 자루가 들어있기도 했고, 작고 가벼워 보여도 맘에 쏙 드는 앙고라 장갑이 툭 튀어나오기도 했으니까. 언니 오빠들의 우스갯소리까지 더해 크리스마스이브가 이브다운 밤이었다.그렇게 밤이 늦도록 놀다 보면 권사님들이 떡국을 끓여서 들통에 담아 내오셨다. 김이 술술 나는 국을 한 대접씩 나눠 먹고 조를 짜서 동네별로 새벽송을 다녔다. 교회 앞 강 건너 무릉 3동에 갈 때는 돌다리를 건넜던, 무지 아련한 추억도 있다. 저 아래 동네인 검암에서 골마를 지나 덕마까지 오며 대문도 없이 살았던 집집이 들어가 크리스마스 송가를 부르면, 한잠 들었던 집에 불이 켜지며 어설프게 겉옷을 걸치고 나와서 과일이나 사탕, 쌀을 한 됫박 안겨주고 들어가셨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크리스마스 행사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스케치북으로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케치북에 캐럴 싱어즈가 왔다고 말하라고 쓰여 있다. 자막엔 성가대라고 했지만, 성가대와 새벽송을 부르는 건 좀 다른 느낌이다. 새벽송을 듣고 소소한 것을 나누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 내 기억은 어릴 적 고향의 그 날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그때의 그 친구들이 2019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서울역 근처 힐튼호텔에서 만났다. 나 같은 소시민이 누릴 호사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교회 선생님이 호텔맨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뷔페로 점심을 먹고, 선생님이 마련해준 자리에서 선물교환을 하고 한 해의 좋았던 기억을 나누고 힘들었던 일을 서로 위로했다.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들과 새로운 기억 하나를 추가했다. 내년에도 이렇게 만나자 했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일상을 삼킬 줄 몰랐던 시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였다.

2020-12-20

연말 모임·행사 자제로 대유행 위기 넘어야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고심 중인 가운데 17일 또 다시 신규 확진자 수가 1천 명을 넘어섰다. 서울서는 역대 최고인 하루 423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 1천 명대가 3번째를 기록하면서 3차 대유행의 속도가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지난 3월 이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면서 대구경북형 방역체계에 대한 우려도 있다. 17일 대구는 20명, 경북은 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그 전날에는 대구 27명, 경북은 28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했다. 대구는 교회 관련 확진자가 17명이나 됐고 경북은 지난 3월 이후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다. 안동, 구미, 포항, 경산 등 도내 곳곳에서 신규 확진자가 발생, 불안한 양상이다.최근 국내에서 발생하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전방위적 발생 분포를 보이고 있다. 어느 한쪽을 틀어막는다고 방역의 고삐가 잡힐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전국이 동시에 강도 있는 방역체제를 구축해야만 겨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최근 1주간 일 평균 확진자(12월 11∼17일)는 882.6명으로 이미 3단계 범위 안에 들어온 상태다. 특히 최근 확진자 3명 가운데 1명이 감염병에 취약한 60대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령자와 위중환자, 사망자까지 급증하는 추세다. 일부 전문가는 하루 2천∼3천명까지 신규 환자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경북을 비롯 전국적으로 응급환자 병상 부족이 심각해지고 의료진 확보도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대구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유지하면서 오는 21일부터 1월 3일까지 2주간 연말·연시 특별방역 기간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시는 이 기간동안 연말연시 각종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고 10인 이상 음식물 섭취 모임행사는 취소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 개인방역 수칙 준수와 교회시설의 참석자 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도 통보했다.코로나가 3차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으로 긴장감이 예전만 못하다. 모두가 다시 긴장감을 곧추세우고 위기극복의 시기를 넘겨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연말연시 행사. 모임을 자제하고 방역수칙 준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2020-12-17

제야의 종

새해맞이 행사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벤트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볼 드롭’ 행사를 빼놓을 수 없다.12월 31일 자정을 앞두고 시작되는 볼 드롭은 새해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타임스퀘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화려한 불빛 장식의 거대한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3만개의 LED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 볼에 불이 켜지면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관중들의 환호로 이 행사는 절정에 달한다.뉴욕 최고의 랜드마크인 타임스퀘어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매년 내외국인 등 100만 명이 현지를 찾고 TV 등을 통해 최소 10억 명 정도가 관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영국, 프랑스 등 각국이 그들만의 전통적 방법으로 신년 맞이 행사를 벌이고 있으나 올해는 뉴욕의 볼 드롭과 함께 대개가 온라인 중계로 진행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코로나19는 인류가 즐기는 모든 종류의 행사를 멈추게 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 행사로 실시되던 우리나라 제야의 종 타종행사도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 때문에 멈춘다고 한다. 서울 보신각과 대구의 달구벌 대종에서도 신년을 알리는 타종 소리를 못 듣게 될 전망이다. 보신각 타종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보신각을 중건한 1953년 이후 6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제야(除夜)의 종은 불교에서 중생들의 백팔 번뇌를 없앤다는 제석(除夕) 타종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에겐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새해맞이 행사다. 비록 온라인으로 재현된다고 하나 국민이 받을 서운함을 채울 방법이 없다.코로나로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올 연말은 유례없이 조용한 송년이 될 것 같아 암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7

역지사지(易地思之) vs 화이부동(和而不同)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왼쪽에 있는 사람보다 오른쪽 부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사물을 보는 시야의 범위가 위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직접 볼 수 없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왼쪽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이처럼 물리적 시야의 한계에 의해 생기는 오해는 어떻게 하면 될까.해답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즉, 서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바꾸면 상대가 얘기한 것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상대의 말을 곧바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시야가 서로 다를 경우는 어떨까. 선입관이나 고정관념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바꾸려면 마음이 서 있는 자리를 역지사지해야 가능한 데,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럴 때도 서로 정면대치하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해법은 있다.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바로‘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면 두 사람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결정과 추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문제는 이제부터다. 윤 총장이 17일 징계 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법적공방에 나섰기 때문이다.이쯤에서 추-윤 사태를 둘러싼 두 당사자의 입장을 짚어보자. 정부 여당은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와 원전 수사의 예에서 보듯 산 권력이나 정권 관련 수사에는 물불 안 가리면서 야권 수사나 검사 술 접대 수사, 윤 총장 장모와 부인 수사 같은 제 식구 수사에는 미온적이라고 눈엣가시로 본다. 즉, 검찰이 관심 많은 사건에만 매달리면서 조직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치판을 흔드니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윤 총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반면 검찰은 “산 권력도 봐주지 말고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에 따라 마땅히 할만한 수사들을 했을 뿐인데 적폐수사 땐 힘을 실어줬던 여권이 돌변해 윤 총장을 부당하게 찍어내려 하고,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훼손하려 든다고 여긴다. 결국 집권세력은 검찰이 독립성·중립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무간섭 향유를 의미한다는 것이고, 윤 총장 측이 보는 집권세력의 민주적 통제란 검찰 길들이기 내지 검찰장악을 뜻할 뿐이다. 이처럼 서로를 보는 마음의 시야가 다르니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무릇 정치는 화이부동해야 하건만….이러니 과연 이 나라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2020-12-17

임대료, ‘갈라치기’ 아닌 ‘고통 분담’으로 풀어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구해내기 위해 임대료 부담을 줄여주는 문제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공론화에 따라 민주당이 앞장서서 입법과 정부 지원대책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 임대인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제하는 편협한 법안을 덜컥 내놓아 걱정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치기’하는 정략적 발상을 너무 쉽게 하는 기계적인 의식구조가 참으로 고약하다. 민주당 이동주 의원은 며칠 전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으로 불리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집합금지가 된 업종에 대해 임대인이 차임(임차물 사용의 대가)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집합제한 업종에 대해서는 차임의 2분의 1 이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강제조항을 담고 있다.이 법안은 즉각적으로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야당에서는 물론 부동산 전문가 등으로부터 ‘임대인과 임차인을 편 가르기 한다’, ‘정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임대인에게 떠넘겼다’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이 박탈될 수 있다는 ‘위헌 논란’도 불거졌다. 이처럼 반발과 ‘위헌 논란’까지 일자 민주당은 당론이 아니라며 한 발 빼고‘착한 임대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무게를 옮겨 싣는 모습이다.코로나19 재확산과 방역 강화 조치로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임대료 부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덜어주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은 73%에 달한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임대료 멈춤’ 법안처럼 법률로 강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40%로서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견해 49%를 밑도는 것으로 집계됐다.호주, 캐나다 등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자영업자의 임대료 곤란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임대료 인하’에 동참하는 임대인에게 세금 인센티브를 주거나, 소상공인 계층에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해주는 정책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임차인들을 선동대상으로 여기고 임·대차인 사이를 ‘갈라치기’하는 못된 발상을 하는 일은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 금기다.

2020-12-17

친절과 정보화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90년대 초 이야기이다.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8월 하순 김포공항의 오후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간단한 짐검사를 마치고 대합실로 걸어나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공항 실내에서 웅성거리는 한국사람들의 한국말은 내게 달콤하게 들려왔다.여기서 다시 포항에 가는 비행기는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고 후덥지근한 몸을 잠시 물에 담그고 여행의 피로를 풀고 싶었다. 긴 줄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택시를 탔다. “어디 가시죠?” 괜히 화난듯한 모습의 기사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근처 아무 곳에서 목욕을 하고 싶은데요…. 아, 화곡동 까지 갑시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리시죠. 그렇게 가까운 곳은 안갑니다” “네??” 그 다음은 말할 것 없이 대화는 거칠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는 화곡동 네거리 한복판에 내던져졌다.사우나 간판이 보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불과 2시간 전의 일본 큐슈 오이타 공항의 택시기사가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하이, 하이, 도모 아리가또 고자이 마쓰다(네, 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던 모습, 손님을 제일로 여기며 항상 친절히 대하던 그 모습, 정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던 그 깔끔한 모습이….실제로는 내가 들렀던 관공서, 기업, 가게의 모든 장소가 그렇게 친절헀다. 당시 여행은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방송국의 현지 프로그램을 위한 여행이었다. 그 당시 사회 구석구석을 보고 경비행기를 타고 공중 취재도 하면서 느낀 건 “우리는 아직 멀었구나”였다. 우리는 우리가 친절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제한된 친구, 가족 간 또는 이해가 얽혀 있는 사람 간에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택시기사도 그렇지만, 길에서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는 낯선 사람들….친절과 정보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별로 관계도 없고 비교도 안되는 두 개의 단어이다. 사실 한국은 정보화가 웬만한 선진국보다 낫다고 하는데 진정한 정보화는 공평성이 보장되는 공개(Openness)와 약속을 지키는 준수(Observance)를 기반으로 한다.결국 친절은 공개와 준수의 산물이다. 한국인들은 아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식사값을 지불하려고 하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잡고 서있는 예의는 부족하다. 택시운전사가 친절해야 하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를 받는 자의 약속이다.모르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건 형평성의 공개 원칙과 부합하지 않고 택시운전사가 친절하지 않은 것은 준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니가타의 한 호텔을 떠나던 날 일주일간을 주말도 없이 우리를 안내하던 현의 한 직원이 안녕의 표현으로 굽혔던 그 허리를 잊을 수 없다. 그 굽힌 허리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 책임감으로 가득찬, 정돈된, 깨끗한 질서있는 사회에 놀랐던 기억이다. 대부분의 물질적 기반과 문화가 선진화 되고 있지만 친절만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020-12-17

겨울밤 이야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밤밤 겨울밤은 추워도/ 우우 우리들은 즐거워/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호호 밤을 구워 먹으며/ 먼먼 옛날얘기 듣지요.// 밤밤 겨울밤은 깊어도/ 우우 우리들은 안 졸려/ 손 쳐들고 그림자놀이/ 멍멍 바둑이도 나오고/ 깡충 옥토끼도 뛰지요.” 어렸을 적에 불렀던 노래다. 독일 민요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동요인데,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지요.”라는 노랫말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겨울밤의 정경이다.동지(冬至) 무렵이면 밤이 낮보다 네 시간이나 더 길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물론 전깃불조차 없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동짓달 기나긴 밤’이었다. 그 겨울밤 어둑한 호롱불 밑에서 할머니는 바느질을 하거나 이를 잡고, 아이들은 숙제를 하거나 손장난 발장난을 하며 놀았다. 위의 동요에 할머니와 아이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이들과 할머니가 한 방을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왜 그런지 할아버지가 없는 집이 많았다.창호지문 하나로는 겨울밤 바깥의 한기를 다 막기에 역부족이면 방안에다 화로를 들였다. 군불을 때거나 저녁을 짓고 남은 잉걸불을 재와 함께 무쇠나 놋쇠로 된 화로에 담아 방안에 들여놓으면 그 열기가 오래 갔다. 화로를 가운데 놓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손을 쬐면서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던 정경이 눈에 선하다. 화로의 용도는 난방뿐이 아니라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을 수도 있고 할머니 담뱃불을 붙이는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를 잡을 때도 옷을 화롯불에 쬐면 솔기에 숨어있던 이들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 나왔다.밤늦도록 놀다보면 배가 출출해지기 마련이다. 화롯불에 구워먹을 밤이나 고구마가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밭머리에 묻어둔 무를 꺼내와 깎아 먹는 것도 겨울밤의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감나무가 있는 집에는 홍시나 곶감을 만들어 두고 겨우내 먹기도 했다. 그도 저도 없으면 처마 밑의 고드름이라도 따다 먹었다. 동네 총각들이 사랑방에 모여 놀다가 닭서리를 하는 것도 겨울밤이었다.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던 그 시절에는 할머니의 옛날 얘기가 드라마나 영화 이상의 몫을 했다. 효녀 심청, 흥부 놀부, 콩쥐 팥쥐, 장화홍련, 우렁각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선녀와 나무꾼, 소금 맷돌…. 여러 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심심할 때마다 그 얘기를 또 해달라고 할머니를 졸랐다. 긴긴 겨울밤 할머니의 ‘이바구’는 권선징악(勸善懲惡)과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교훈과 함께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옛날 어느 고을에’로 시작해서 ‘잘 묵고 잘 살았더란다’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재미와 감동은 안정된 정서의 바탕이 되고 굳건한 삶의 근간이 되었던 것 같다.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그 겨울밤이 문득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 ‘겨울밤’

2020-12-17

윤석열 끝내 징계… ‘야만’의 역사 시작되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징계위)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끝내 2개월의 정직 처분을 강행 결정했다. 검찰총장 정직 징계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윤 총장은 법무부 징계 결정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과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번 징계 결정은 사유나 절차 모두에 있어서 무리수다. 우려했던 대로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야만’의 역사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징계위는 정한중 위원장 직무대리,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 4명으로 구성됐다. 인정된 윤 총장의 혐의는 재판부 사찰 의혹과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 4개였다. 윤석열 총장은 입장문에서 “불법 부당한 조치”라면서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혀 법정투쟁을 선포했다.징계위는 15일 시작된 2차 회의에서 윤 총장 측이 낸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와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기각했다. 검사징계법의 규정대로 징계위원 7명을 채워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당초 증인으로 채택됐다가 이날 취소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별도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은 증인들의 증언과 제출된 의견서 검토 등을 위해 속행 기일 지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항의 차원에서 최종진술을 포기하고 회의장을 나왔다. 윤 총장의 특별변호인인 이완규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법무부에서는 이미 (결과를) 정해놓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징계위는 처음부터 ‘소추와 심판 분리’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친(親)정권 인사들로 급조해 졸속 징계를 강행했다. 징계결과 또한 ‘요식행위’라는 항간의 의혹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권 수사를 틀어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찍어내면서 검찰개혁을 운운하는 정권의 위선과 파행이 도를 넘었다. 윤 총장 정직 2개월 동안 공수처를 출범시켜서 정권 관련 수사를 다 훑어가서 뭉개자는 심산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데, 그런 기막힌 사태가 정말로 벌어지는 건가.

2020-12-16

원안위 경주 이전 합목적성에 부합한다

원자력안전 관련 최고 의결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의 경주 이전에 경북도와 경주시가 강력한 유치의사를 밝혔다.원안위의 원전 소재지역 이전은 국회에서 이미 법령 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여서 이전지 결정을 둘러싼 유치전이 이젠 곧 뜨거워질 전망이다. 개정 법률안에는 원안위는 원전 반경 30km이내 지역에 소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북 경주를 비롯 부산, 울산, 전남 영광 등이 원안위 이전 예상지역으로 분류된다. 원안위는 현재 서울 종로구 소재 빌딩에 임차해 내년 6월이면 임차계약이 만료될 예정으로 있다. 늦어도 내년이면 이전문제가 구체화돼야 할 형편이다.경북도와 경주시는 최근 원안위의 경주 이전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회 등 관계요로에 건의했다. 원전시설이 밀집한 경주가 원안위 업무의 효율성에서 가장 적합하며 지역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경주가 이전지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얼마 전 정부는 원안위의 세종시 이전을 검토하다가 원전지역 정치권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원전의 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원안위를 원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으로 이전하겠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원안위 이전은 합당한 이유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지역발전을 위해 지자체마다 중앙 공공기관의 지방 유치에 목을 걸고 있으나 정부가 업무의 효율성이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결정을 해야만 해당 지자체들도 수긍할 수 있다.지난해 원전해체연구소 설립부지 선정을 둘러싸고 격렬한 유치전 끝에 부산과 울산 경계지역으로 결정난 것에 대해 정치적 비판이 뒤따른 것도 설립의 합목적성이 결여된 데 원인이 있다.원안위는 원전의 안전을 관리할 최고 의결기관이다. 주요 안전규제를 받는 기관들이 경주에 밀집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원자력 환경공단, 중·저준위 방폐장 등에 이르기까지 경주에 소재한다. 또 경북은 국내 원전의 절반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피 시설이었던 원전 설립의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원안위가 경북 경주로 오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원전 클러스터가 조성된 지금에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균형발전 측면에서 경주가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곳이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원안위 유치의 당위성을 무기로 정부 설득에 총력 질주해야 한다.

2020-12-16

폴더블폰 vs 롤러블폰

휴대폰의 진화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폴더블폰은 디스플레이 자체를 접을 수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화면을 선호하거나, 태블릿을 별도로 구비하기 번거로운 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초창기의 휴대전화가 거대한 부피를 자랑했다가 숫자 패드와 스크린을 각각 분리하는 폴더 폰이 개발되어 부피를 줄였으나, 2010년초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숫자 패드가 사라지고 스크린만 남게되어 다시금 점점 거대해졌다. 이렇게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실용화되면서 휴대전화를 접을 수 있게 되면서 다시금 휴대전화를 사용 면적 대비 더 작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와 중국의 화웨이가 세계최초로 지난 2019년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며, 이후 삼성전자가 갤럭시 Z시리즈로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9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며 나홀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폴더블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해 디스플레이가 말렸다, 펼쳐졌다 하는 최초의 롤러블 폰은 LG전자가 내년초 출시할 예정이다. LG전자의 롤러블폰은 왼쪽 측면에 돌기를 넣어 액정이 톱니처럼 말리는 형태로, 긴 직사각형 디스플레이 화면의 우측이 쭉 늘어나는 형태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만 돌돌 말렸다 펼쳐지기 때문에 폴더블폰 대비 두께와 무게에서 우위를 갖는다. 폴더블폰처럼 접히는 부분에 ‘주름’이 생기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펼치기 전에는 6.8인치 크기지만, 펼치면 1.5배인 7.4인치가 된다. 디스플레이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도록 내구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예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폴더블폰에서 롤러블폰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속도는 눈부시다 못해 아찔할 정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16

코로나블루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 해가 저문다. 이제 곧 10대뉴스를 간추릴 터이다. 단연 1위는 코로나19가 아닐까. 설 명절 즈음에 찾아온 바이러스는 모든 뉴스를 삼켜버렸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보이지 않는 힘에 먹히고 말았다. 누구의 탓이냐 묻는 손가락질이 끊이지 않는다. 병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절규마저 들리지 않는가. 만나고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계와 소통이 낯설고 힘들다. 어렵고 고단한 언덕을 넘게 하는 즐거움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개인도 사회도 무섭게 가라앉은 한 해가 아닌가.국민의 건강은 정치가 아니다. 겨울로 들어서며 코로나19 상황이 더욱 어렵다. 최선을 던지며 막아내려는 의료진과 보건당국이 있다. 확진자 숫자에 흔들리기보다 일상의 안정을 유지하며 방역에 힘을 보태야 할 터이다. 정치와 이념이 간섭할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인구대비 확진자수와 사망자수에서 OECD 평균을 현저히 밑돌며 뉴질랜드 바로 다음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중이다. OECD 평균으로 보자면, 한국은 지금보다 수십 배의 확진과 사망기록을 가졌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당장 오르는 숫자에만 주목하여 비난의 화살을 던지면, 국민과 사회를 불안하게만 하지 않을까. 자료와 통계를 기반으로 우리 방역의 토대를 보다 견실하게 구축하도록 주문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라와 국민이 더욱 안정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도록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언론도 사실에 입각한 분석과 보도를 통해 국민들 간의 소통과 이해의 범주를 넓혀가야 한다.방역의 어려움은 경제도 흔든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당장이라도 필요해 보이지만, 서민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한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보듬고 위로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밑바닥 경제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며 개인도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난관을 이겨내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짧지 않은 기간을 두고 진행되면서 지속적인 어려움이 정서적으로도 영향을 미쳐 우울에 이르는 코로나블루(Corona Blue)현상이 보고된다고 한다. 힘든 일에 버겁다 못해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거나 부적절한 결정에 이르는 가족이나 이웃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 사회적 공동체에 있어야 할 상생과 협력의 안전망이 오히려 든든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2020년은 이렇듯 허망하게 저무는가 싶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다투느라 왠지 중요한 가닥들을 놓치지 않았을까도 걱정이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만큼 중요한 게 다시 있을까. 세상의 모든 영화를 눈앞에 두고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개인이든 국가든 건강을 지키는 일만큼 기본이 없다.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경제에도 건강한 의식과 건강한 소통이 생명이 아닌가.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가는 일도 건강이 받쳐줘야 가능하다.나라경영의 모든 가닥에서 건강하지 않은 구석들을 두루 살펴 회복에 이르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블루는 가라.

2020-12-16

코로나 속에서 살아남기

며칠 전 충격적인 뉴스 하나가 전달되었다. 김기덕 영화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이 육십이라 하는데, 증세가 나타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나는 그의 영화 스타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피에타’만큼은 이 ‘철공장’ 돈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전통적 해법을 일신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한갓’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코로나가 지금 하루 확진자 일천 명을 넘어선지 벌써 며칠 되었다. ‘K-방역’이 바야흐로 호된 시험대 위에 올랐고, 방역 단계를 올림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 살림은 더욱 압박을 받게 됐다.학교에서도 수시면접을 전후로 하여 이틀씩 학과가 있는 건물 출입을 완전히 차단한다고 하여 일이 바쁜데도 결국 오늘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다. 며칠 전에 학과 교수들끼리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몇 사람만 마스크를 끼고 만났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줌(Zoom)으로 참여했다. ‘문학의 오늘’ 잡지 편집기획 회의도 바로 어제 화상회의로 진행했고 곧이어 있었던 학교의 BK21 관련 회의도 비대면이었다. 학과장실 비품을 바꾸는 문제로 분당에서까지 손님이 오시는데, 그것도 날을 다시 고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어제는 엄동설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서울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바이러스도 그러면 좋겠지만 이건 무슨 일인지 추울수록 감염이 더 쉬워진다고도 한다. 강력한 방역 대책에, 어떤 두려움으로 서울은 아홉시만 되어도 벌써 시골 마을처럼 조용하다.이런 와중에도 정치는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살아 난리가 난 듯하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경합주에서 주지사와 의회가 각각 따로 선거인단을 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검찰총장 징계 문제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 둘 다 사람살이하고는 직접 관련 없는 듯도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표면상의 난리 밑에서는 코로나를 맞은 사람살이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첨예한 입장 대립이 꿈틀거리고 있다.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요즘처럼 자기를 지키는 일이 어려운 때도 없었다는 생각이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의 ‘나다움’을 지키는 일이 큰일이다. 정치라는 남의 말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사이에 세월은 화살처럼 흐른다.모두들 안녕하시라. 무서운 염병에,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어지러운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모두들 잘 견뎌 살아남으시라./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16

세모로 가는 장미

강길수수필가지지 않는 꽃이라도 된 걸까. 세모(歲暮)로 가는 12월 중순. 밤에 서리가 내릴 기온인데, 붉은 장미가 제법 많이 피었다. 높은 적색 벽돌 담장 위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잎 스카프 두르고, 앳된 볼을 붉히며 일제히 해를 바라본다.오뉴월의 화려한 얼굴의 장미는 아니지만, 사춘기 소녀같이 수줍다. 봄, 여름, 가을 다 겪은 장미가 어찌 저리도 풋풋한 얼굴을 피워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저승 문턱을 넘었을지도 모를 때인데, 아직도 이팔청춘을 구가하고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금단의 집이라도 되는 양, 옛 성채(城砦)같이 높은 담장 위로 피어난 수줍음에 신비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오랜 세월, 숱한 곳에서 많은 장미를 보았다. 하지만 젊은 날, 부푼 꿈속에 시작한 첫 직장의 철망 울타리에 일제히 피어났던 장미의 장관(壯觀)을 잊을 수가 없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 되면, 철 울타리는 온데간데없고 장미 울타리가 근 십리 길을 밝혔다. 차를 타고 지나가도 사람들은 감동했다. 하물며 장미 울타리 곁 보도를 걷거나 자전거 타고 지나가노라면, 그 모습과 향기가 사람을 홀리고도 남았다. 마치, 하늘나라 울타리를 보고 있는 듯도 하였다.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작가도 되며, 음악가가 되고, 화가도 되게 만들었다.어링불 아름답던 해변에 세워진 거대한 제철소. 그 앞으로 연오랑 세오녀의 고장 도기야로 가는 길이 옮겨졌다. 길옆 보도와 공장지대를 구분하는 철망 울타리도 세워졌다. 자칫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는 제철소의 철망 울타리에 장미를 심은 것은, 지금 되돌아보아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였거나, 군에 바로 다녀온 젊은 사원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때의 제철소. 봄날이면 출퇴근 때마다 만나는 장미 소녀의 예쁜 얼굴과 온몸을 감싸는 그녀의 향기에 저절로 즐거운 일터가 되었다.직장을 바꾸고, 일에 매달리며 장미의 기억은 멀어져 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중, 장년으로 가는 동안 마음도 시나브로 메말라 갔다. 시간의 강물이 흐르는 동안 장미 나무는 늙고, 회사의 경영진도 바뀌었다. 아름다웠던 장미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장미가 있던 자리엔 낯선 나무가 들어서고, 그 뒤로 녹지가 조성되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서, 제철소의 장미도 내 마음에서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긴 세월이 흘렀다. 다른 곳에서 해마다 장미는 피고 지고를 반복했건만, 젊은 날의 장미는 내 마음에 좀처럼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은 많이도 변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를 거쳐 지식정보화사회에 와 있다. 오프라인의 현실 정보가 온라인 곧, 정보통신의 가상세계 안에서 처리되고, 가공되며, 조정되는 시대다. 영화 ‘매트릭스’가 말해 주듯,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를 좌우하는 상황들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미증유의 사태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일반 시민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생존환경의 변화가 사람은 물론 동, 식물계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보도를 통해 익히 아는 바다. 내 눈에는 사람보다 식물이 그 변화에 더 빨리 대응하고 있어 보인다. 장미도 그 중의 하나다. 장미 생육 정보를 찾아보았다. 보통 장미는 기온 25℃ 전후가 적정 생육온도이며, 밤에도 16℃ 전후가 좋단다. 또, 5℃ 정도에 생육이 멈추고, 0℃ 이하가 되면 낙엽이 지고 휴면에 들어간다고 한다.이 정보대로라면, 저 높은 담장 위의 장미는 벌써 휴면에 들어갔어야 한다. 요즈음의 밤낮 기온은 적정 생육온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앳된 소녀 얼굴을 내민 저 장미들은, 무언가 절박함이 틀림없으리라. 하여 세모로 가는 장미는, 저 높은 성채 담장 위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닐까.“사는 환경이 이리도 빨리 변하니, 우린 겨울까지 꽃피우고 열매 맺으렵니다!”

2020-12-16

무겁고도 가벼운 삶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 형식을 빌려왔을 뿐 철학 에세이로 봐도 무방합니다. 쿤데라식 소설 문법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는 한없이 꼬리 무는 철학적 연상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충실하고, 독자는 그것을 자기 식으로 해석할 때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런 소설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소설 문법과는 다른 그 방식은 지나치게 독자의 사유를 간섭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과도한 풀이와 친절로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맛에 매혹을 느껴 확고한 독자들이 모여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비나와 프란츠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인 토마스와 테레사보다 훨씬 공감 가는 캐릭터입니다. 그들 역시 토마스나 테레사 못지않은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의 상징이지요. 제목처럼 이 소설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무거움’도 그만큼 언급됩니다.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연과 운명의 소산물로 기능합니다. 서로 동경하거나 파행하는 상호 관계적 성격을 띱니다.엄숙주의를 경멸하는 사비나의 삶은 한없이 가볍습니다. 데모대의 행진 대열에 끼는 삶이 그녀의 현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공산주의와 민주화 운동 모두에 냉소적입니다. 반면, 유럽표 샌님인 프란츠는 서재에서 고뇌할 때 가장 현실적이지요. 책상물림 프란츠 눈에는 운동, 혁명, 행진 등 모두가 순수한 열정으로 비칩니다. 모험과는 거리가 먼 그에게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비나야말로 꿈의 세계이지요. 사비나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때 배반을 택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는 게 사비나식 삶이구요.사심 없이 가벼운 사비나의 눈에는 삶 이면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너무 잘 보입니다. 배반이 어울리는 사비나는 입버릇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투덜거립니다. 사비나가 얻은 결론은 부조리한 키치적 삶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진실하다는 것이지요.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그 자체가 우연이며, 영원회귀로의 그 행진이야말로 인간사의 영원한 숙제라고 보는 것이지요.키치(Kitsch)는 한마디로 ‘저속함’을 말합니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 이후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가짜의 태도’로까지 영역을 확대합니다. 쿤데라 식으로 이해하자면 키치는 싸구려 잣대로 공감대를 유도하는 유치한 놀음이자, 우연하고 당위적인 실체를 위선적인 미적 가치로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카레닌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습니다. 카레닌은 테레사가 키우는 개입니다. 토마스와 처음 만날 때 들고 있던 책이 안나 카레니나였는데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습니다. 제 경우 그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것인데,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하면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그야말로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돌보기엔 성정이 게으른데다, 비염이니 알레르기 체질이니 하는 핑계마저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평생 함께하지 못할 그들에게 마음만은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카레닌으로 대표되는 개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애초에 뭔지 모르고 사랑을 합니다. 계산 따위나 기브앤테이크가 없는 절대적 그 무엇이지요. 괴롭히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대조차 없습니다. 저울질도 탐색도 없으며 파괴와 집착과도 거리가 멉니다. 거기 그대로 변함없이 있을 뿐이지요. 가변하는 인간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압니다. 그리하여 이 불변하는 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은 안락사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믿음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끼리는 할 수 없는 최대의 선물인 카레닌의 안락사. 죽음으로써 시퍼렇게 살아있는 카레닌의 순정을 목도하는 것은 이 소설의 덤이구요.테레사의 사랑은 의심하는 순정이고, 욕망하는 관계이며, 질척이는 무거움입니다. 이 모든 원인 제공자는 바람둥이 남편 토마스이지요. 하지만 그 누군들 무거움의 껍질을 벗고, 세파에 스스로를 가볍게 내던지는 그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과정에 치졸함과 실패가 따르는 건 인간사 가벼움에 어쩔 수 없는 항목 아니던가요. 이 또한 영원 회귀이자 불변진리이지요. 이런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상징적 의미로 카레닌을 등장시킨 것 아닐까요. 끝까지 무거움과 가벼움의 숙제로 독자를 고급한 심란 속으로 몰아가지요.거대한 돛 달린, 무거움과 가벼움이 출렁거리는 삶의 요트에 오르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감행해야 할 영원회귀의 목록 중 하나겠지요.

2020-12-16

항일독립운동 집안은 3대가 망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해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다. 지난해에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떠들썩하게 펼쳤다.대부분 행사 위주로 끝나고 애국 독립지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실질적인 현창사업은 여전히 부족했다. 사전 준비도 부족했고 시행착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의 역사 왜곡으로 초래된 한일 갈등의 고삐는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반일과 항일을 넘어 극일(克日)을 위해서 일제치하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바르게 계승해야 한다. 우선 항일 투사들이 방치된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해야 한다.다행히 독립 운동가 전국 유일의 묘지인 신암선열 공원 승격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일제 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안식처가 이곳인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동대구역 북쪽,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국립선열공원이 있다. 대구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구 만세시위에 앞장선 김태련 부자가 앞뒤로 누워있고, 중국 광복군 출신 지사들과 항일 독립을 외치던 문인들도 같이 묻혀 있다. 이러한데도 정작 대구 시민들은 국립공원 묘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몇 해 전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를 창설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대구의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대구는 의외로 여러 갈래의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지역임이 분명했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구 앞산 안일사는 1915년 조선 국권회복단 결성지이고, 달성 공원에서는 이 나라 최초의 항일 비밀 결사조직 광복회가 탄생했다. 대구의 3·1운동은 서문시장에서 출발해 연인원 2천여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했다. 대구 삼덕동 대구 형무소는 독립 운동가 156명이 억울하게 순국한 성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대구 사람은 점점 드물다.지난해 대구의 독립 운동가들의 거사 장소와 생가를 찾은 적이 있다. 장진홍 의사가 분을 참지 못해 폭탄을 던진 장소에는 표지석 하나 없다. 달성 공원 광복회 창설지에도 안내판 하나 없다. 대구 항일운동 유공자의 생가는 대부분 방치되어 씁쓰레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을미사변 후 최초의 의병장 문석봉, 광복군가의 작사 작곡가 달성군의 이현수, 독립운동을 하다 20세에 순국한 무태의 구찬회, 이육사의 고가마저 방치돼 있었다.시인 상화의 형 이상정의 생가는 바보주막이라는 엉뚱한 영업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루 빨리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 장소와 생가에는 표지석이라도 부착해야 한다.후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가를 떠나고 애국지사들의 유물 유적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항일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을 눈으로 확인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대구시는 ‘3·1 운동 거리’와 망우공원의 ‘역사의 길’을 조성했다. 이러한 사업도 중요하지만 대구 독립 운동가들의 유물 유적이나 생가 보존 사업부터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2020-12-16

제자리 온라인 수업과 후퇴 정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020년이 마지막까지 힘들다. 정확하게는 힘듦을 넘어 최악으로 가고 있다. 최악 중 최악은 정치다. 한풀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막가파 쇼는 통제 불능이다. 현대판 민주주의는 떼거리 정치임을 잘 보여주는 밀어붙이기 달인의 불도저 정치에 희망은 뿌리째로 짓밟혔다.지천명(知天命)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필자는 하늘의 뜻 대신 윈스턴 처칠의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된 다른 통치체제를 제외하면 최악의 통치체제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대체해서 쓸 수 있는 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숫자 놀음이다. 누군가는 집단 운영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다수결 원칙을 말하지만, 이 역시 숫자 놀음이다. 수가 많은 쪽이 무조건 갑이 되는 것이 현대판 민주주의다.정치인에게 있어 생명은 국민이 아니라 숫자다. 정치인 그들을 탄생시킨 것도 숫자고, 또 그들을 죽이는 것도 숫자다. 링컨의 연설을 이 나라 정치인에게 대용하면 아마 “숫자의, 숫자에 의한, 숫자를 위한 정치”라는 정치 구호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들이 지지율과 통계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정말 정치가 정의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가면 갈수록 왜곡되는 정치에 종교와 학문 등 모든 것이 왜곡되고 있다. 지금의 극심한 혼돈, 국민이 겪는 고통 또한 왜곡 정치의 결과이다. 하지만 왜곡 중독에 빠진 다수 정치인은 모른다.왜곡된 정치의 대표적인 결과는 왜곡 교육이다. 현재 교육을 두고 정상적인 교육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지금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을 보면 더 그렇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에 수도권 모든 학교가 등교 중지 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 또한 부분별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 유형을 보면 실망 그 자체다.지난 9월 15일 익산에서 열린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의 학사 운영 및 원격수업 질 제고’를 위한 교육부와 시도교육감협의회 간담회 후 교육부는 다음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원격수업 기간 중 모든 학급에서 실시간 조·종례 운영, 학생과 쌍방향 소통하는 수업 비율 점진적 확대, 주 1회 이상 학생·학부모와 상담하는 등 원격수업의 질 제고 (….)”온라인 수업을 실시한지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과연 학교 현장에서의 온라인 수업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학교는 오리 새끼와 같다. 알을 깨고 나온 오리가 가장 처음 본 걸 엄마라고 생각하듯이 학교는 처음 시작한 것을 절대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 형태 또한 마찬가지다. 학교는 온라인 수업이 처음 나왔을 때 수업 형태로 콘텐츠 활용 수업과 과제 중심 수업을 선택했다. 학부모들은 학생을 방치하는 수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소리는 학교 담장을 넘지 못했다. 당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5%도 안 되었다.과연 지금은 어떨까! 퇴보하는 정치처럼 온라인 수업 질 역시 더 최악으로 가고 있다.

2020-12-16

성공한 이들의 TV, 그리고 미란이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된 지 며칠이 지났다. 틈나는 대로 전시회 보는 것을 즐기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 씩 나누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으나, 아무래도 외출을 삼가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나의 삶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커다란 변화를 꼽자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TV시청 시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름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버라이어티 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요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과거에 느끼지 않았던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그 헛헛함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한 누리꾼이 SNS에 적어둔 짧은 글을 우연히 접하고 무릎을 탁 쳤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도 치료해 주거나 집을 고쳐주는 방송도 있었는데, 요새는 연예인들이 방송사 돈으로 국내외 여행가고 먹고 마시거나 준재벌 3세의 수십 억대 아파트 소개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연예인들 집 정리를 도와주는 방송들이 나온다. 방송들이 낯설다.”코로나 19로 경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TV속에는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이 나온다. 1인 가구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MBC의 ‘나 혼자 산다’에는 언제부터인가 강남이나 한남동 같은 곳에 수십 억대 주택에 사는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협소한 빌라에 살거나 어딘가에 얹혀살던 출연진들도 모두 고가의 주택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을 시청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규모의 경제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은 우리나라 1인가구 10가구 중 4가구에 해당하는 38%가 월세로 생활하고 있으며 1인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2116만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평균적인 1인가구 생활자의 시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진과 자신의 삶 사이의 간극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온앤오프’라는 프로그램으로 논란이 되어 누리꾼들로 하여금 ‘플랙스님(Flex 스님)’이라 별명을 지어 부르는 등 수많은 원성을 듣는 승려 혜민의 사례는 어쩌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응집된 박탈감이 터져 나오며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집과 일상이 공개된다. 그들의 집과 일상은 우리의 것과 다르다. 새로이 정리된 집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신박한 정리’의 출연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미니멀하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좁아터진 원룸에서 무슨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하겠는가. 그나마 정리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넓은 집 덕분일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귀여운 아기들, 그들의 부모가 돈 걱정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좁아터진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아기 장난감들 탓에 인테리어고 무엇이고 포기해버린 가정을 본 적이 있는가?과거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의 ‘눈을 떠요’라는 예능에서는 가난을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해 주기도 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였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는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주택 리모델링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 조금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장면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TV 속 세상은 국제 스포츠행사의 개최를 앞두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청소’라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가둬버렸던 어느 정권의 만행을 떠올리게 만든다.이것이 꼭 방송사 제작진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풍요만을 비추는 프로그램의 제작 배경에는 그러한 콘텐츠를 원하는 대중의 부추김이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것이므로. 최근 일본에서는 만화 콘텐츠에 대한 소비 경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같은 만화는 재능은 있으나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특출나지는 않았던 주인공들이 숱한 위기와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그 세계의 최강자가 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들 사이에서 노력으로 무언가를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새로운 경향의 만화 콘텐츠가 유행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순조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먼치킨’류가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예 비현실적인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대중들도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언젠가부터 포기하게 되었고, (적어도 대중들의 눈으로 보기에는)애초부터 막대한 부를 갖춘 셀러브리티들의 삶 속으로 피신하고 싶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이처럼 허탈한 생각들로 TV를 보다가 특별히 눈길이 가게 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9 였다. 가장 주목받는 출연자는 아마 여성 랩퍼인 ‘미란이’일 것이다.Hey new water new vv 난 알바 째고 무대 위Yeah go get it go get it 가사 위 가난이 빛나지안 가 무한리필 살아봐야겠어 내 빌딩 Yeah개 같던 세상의 뒤통수 치러 왔지더 크게 Callin’ ma name 모두 날 보고 놀래‘미란이가 TV에’ 떼버려 Tag사 새롭게 Yeah yeah 타고 비행Skrr skrr 난 올라가 Skrr skrr 난 빛이 나내가 뭐라 했어 Mom 꺼내겠다고 포차맨 밑바닥의 소녀 엄마의 술병이 날 만들어허기져 이를 꽉 물어 Chit chat bout me 덤벼 겁쟁이 너VVS on ma neck 꿈 앞에 녹슨 팔찌 버려 문 앞에구제 벨트 아직 허리에 원망하던 과거와 춤출래-VVS 중 미란이 part.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포차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소녀가 랩퍼가 되고, 쇼미더머니9에 출전해 패자부활전을 통해 겨우 살아남더니 이제는 동료 랩퍼인 머쉬베놈과 함께 꾸민 무대가 유튜브 1000만 뷰를 돌파하고,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음원차트 1위까지 쟁취해내는 모습은 드래곤볼의 손오공이나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같은 성장형 캐릭터들의 방불케한다.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이 이토록 많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스토리가 필요한 것 같다. 2021년에는 부디 보면서 주눅 드는 TV보다, 보면서 희망을 얻는 TV가 되길 바란다.

2020-12-15

‘줄탁동시(啐啄同時)’ 들어본 적 있나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줄탁동시(啐啄同時)’. 이 말은 안과 밖에서 함께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로서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 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세상 밖으로 새 생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국태민안은 여야나 정부와 국민이 줄탁동시 할 때 가능하고,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 줄탁동시 할 때 이루어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제(師弟)가 줄탁동시의 노력을 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 줄탁동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관계개념의 줄탁동시의 신비로운 변화의 체험을 위해서는 몇 가지 깊이 새겨야 할 묵상이 요구된다.첫째는 줄(啐)을 통해 ‘내가 먼저’라는 이치다. 즉, 받고 주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원리, 그것은 물질도, 사랑도, 섬김도, 용서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줄’의 지혜이다. 둘째는 탁(啄)을 통해 경청의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병아리가 안에서 어떤 부위를 공략하여 쪼고 있을 때 밖에서 어미 닭은 어느 부위인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병아리의 쪼는 것을 잘 듣고 있어야 하듯 인간관계도 탁(啄)의 이치는 경청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들을 줄 알되 바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줄(啐)을 인지할 때 탁(啄)의 타이밍이다. 즉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배고플 때 밥 한 그릇, 목마를 때 물 한 사발, 어떤 것이 필요할 때 채움의 타이밍이 절실한 것이다.코로나19로 어두워진 현실 앞에 정치적인 오리무중의 상황이 하루하루 힘든 씨름에 혼 힘을 다 빼앗긴 모든 백성들이 다시 여와 야, 안과 밖, 어두움과 밝음, 너와 나의 줄탁동시를 통해 우리는 생명처럼 신비로운 감동을 다시 경험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2020-12-15

트럼프로 흔들리는 미국

김규종 경북대 교수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출간한 ‘문명의 붕괴(원제 Collapse)’를 읽고 깨우친 바가 많았다.서책의 부제(副題)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붕괴했는가’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체(要諦)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는 유일한 생명체로서 인간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획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까닭에 지나간 날들은 화석화되거나 허울만 남은 빈껍데기가 아니라, 오늘을 인식하고 내일로 인도하는 나침반과 다르지 않다.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책에서 지은이는 사회가 붕괴하는 다섯 가지 요인을 거명한다. 환경 훼손, 기후변화, 적대적인 이웃의 존재,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중단이나 감소, 사회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그것이다.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7천만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60만을 돌파했다는 우울한 전갈이 들려온다. 급속한 세계화의 물결로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 인류가 어떤 재앙과 마주할 것인지 예측 불가능하다.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은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훼손으로 인한 인재(人災)였다. 코로나19도 다르지 않다.그러나 우리는 기후변화와 환경 훼손이 가져올 폭력적인 결과에 전연 무심하다. 스웨덴의 환경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가는 많지 않다.트럼프나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 같은 자들은 툰베리를 모욕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집에 가서 친구들과 영화나 보라는 그들의 말투는 매우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이다.트럼프가 붕괴시키고 있는 것은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과 기후문제만은 아니다. 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세계인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과 충격까지 던져주고 있다.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용광로이자 인종전시장이며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양키 아메리카 제국의 민낯과 속살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자신이 패배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소인배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승복(承服)의 문화’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는 2000년 대선에서 억울한 패배를 감수하고 승복했던 앨 고어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있다. 고어는 당시에 조지 부시 후보보다 전국적으로 54만 표를 더 얻었음에도 미국의 전통을 따랐다. 트럼프는 자명한 패배를 수용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미국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그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을 외면하고 있다. ‘사회문제(대선)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그것이 핵심이다. 미국인들이 이번 대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그것이 미국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트럼프의 행동이 2024년 대선을 노리는 정치적인 술수인지, 자신을 향하는 법의 칼날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세계 제1의 제국 미국과 미국인들이 감내해야 할 고난은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다. 그의 깊은 성찰과 사유를 촉구한다.

2020-12-15

꿈을 키우는 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방탄소년단(BTS)의 맹활약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방탄소년단을 ‘올해의 연예인’으로 선정했다. BTS는 팝의 본 고장 미국에서 지난 9월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싱글차트(핫100) 1위에 오르더니,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즈 온’으로도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한 빌보드 싱글·앨범·아티스트 차트의 세 부문에서 그룹으로 동시에 1위를 한 가수는 BTS가 유일하다 하니, 한국 대중가수로는 단연 최초이거니와 비영어권 곡으로 데뷔하자 마자 1위에 오른 것은 빌보드 차트 62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보여주는 이와 같은 지표만 봐도 BTS의 독보적인 음악과 눈부신 활약상이 실감된다. 더욱이 암울의 터널 같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겨워하는 때,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며 음악으로 따스한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이를테면 ‘다이너마이트’가 밝고 경쾌한 톤의 ‘힐링송’이라면, ‘라이프 고즈 온’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단순한 K팝 선두주자가 아니라, 세상이 멈춘 듯한 시기에 사람과의 연결, 다정함, 안심, 긍정 에너지로 세계적인 BTS팬덤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만 하다.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을까? 독창적인 음악성과 퍼포먼스, 팬들과의 교감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겠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포용과 희망, 융화와 시스템의 진화가 압도적인 성공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엔터테이너와 팬들 사이의 진정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음악의 소비방식에의 새로운 변화, 현실을 반영한 진정 어린 메시지를 SNS 메커니즘으로 유효적절히 활용하며 가수멤버와 스태프가 혼연일치로 만들어낸 꿈과 상상력의 다이나믹한 표출로 여겨진다.이 모든 것들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현재진행형으로 꿈의 현실화는 계속되고 있다. 과연 꿈은 무엇일까? 꿈은 인생의 길이며 목표이며 그 빛깔이다. 또한 꿈은 강력한 에너지이다. 때로는 빛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밝혀 주기도 한다.‘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남 모르게 흘리는 땀이 비범을 낳으리라/처절한 몸부림만이 경이를 보이리라//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활시위의 긴장과/눈물 같은 땀방울로/무진장/뒤척거리는 고독/기적의 꽃이 피리라’ -拙시조 ‘꿈-기적의 꽃’중현재의 BTS가 세계적으로 우뚝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 좌절과 인내가 있었을까? BTS의 RM 김남준이 UN연설에서도 밝혔듯이, 진정한 사랑은 자신에서부터 시작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에 대한 얘기로 자기만의 빛나는 별무리의 꿈을 이루는 것을 강조했었다. 많이 휘청거리고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지침없이 나아가려는 노력이야말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가 아닐 듯싶다.꿈은 끼를 먹고 자란다. 끼가 있는 당찬 포부와 눈물겨운 노력으로 기적의 꽃은 피어난다. 긍정과 용기, 시도와 모험으로 꾸준히 추구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마침내 BTS처럼 꿈은 현실화되는 것이다.

2020-12-15

코로나 대응 급해도 취약층 복지 챙겨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사회복지 안전망이 크게 흔들린다는 소식이다. 특히 연말연시를 맞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은 많으나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온정의 손길은 되레 뜸해지고 있어 취약층의 겨울나기가 걱정이다.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까지 여파를 미치면서 이곳 상황도 심상찮다. 추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선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폐쇄 등 선제적 조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취약층을 위한 복지시설에 대한 재제로 파생하는 복지 공백에 대해서는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10여년간 지역 소외계층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며 사랑방 역할을 해 왔던 포항노년자원봉사회 연일무료급식소가 문 닫을 처지에 빠졌다고 한다. 하루 이곳을 찾아 식사를 해결했던 150여명의 노인들의 끼니가 당장 걱정이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감염을 우려한 자원봉사자가 줄어들고 시중 경기마저 침체해 경제적으로 운영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 한다.지난 2-3월 대구경북에서는 코로나19가 집중 발생하면서 무료급식소와 노인복지회관 등 각종 복지시설들이 줄줄이 휴관에 들어간 적이 있다. 노인복지시설의 휴관으로 노인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특히 홀몸 노인 등은 끼니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지금과 같은 코로나 대유행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인복지시설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시설의 안전망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연일무료급식소처럼 무료급식소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느라 일손이 부족하더라도 취약층을 위한 배려에 당국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올 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온 사회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볼 마음적 여유가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사랑의 온도탑도 이런 점을 감안, 예년보다 모금액을 낮추는 등 코로나 여파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을 돕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대구경북은 이웃돕기에 남다른 실천력을 보여온 곳이다. 코로나 대처로 미처 살피지 못한 곳이 있다면 당국이 나서 보완하고 시민들은 정성으로 동참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2020-12-15

굽혔다 펴기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내 연구실 책상 앞의 의자는 굽혔다 펴지는 의자이다. 굽혔다 펴진다기보다는 뒤로 펼쳐졌다가 바로 세워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그 의자가 얼마 전부터 소리가 나고 뭔가 불편했는데 나사 하나가 빠져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의자 몸통과 다리를 연결해주는 나사였다. 제 자리를 찾아 단단히 돌려 넣으니 훨씬 편해진 느낌이다. 제대로 굽혀지고 펴진다는 사실이 몸과 맘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의자 나사 하나로 하여 새삼 삶의 이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이치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시인 한우진은 ‘굴신(屈伸) 이후’라는 시에서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본 사람은 알지 / 오징어나 쥐포를 구워보면 그것들의 몸땡이가 / 여실히 뜨거운 쪽으로 오그라지듯이…. 가진 자를 향해, 후끈한 쪽으로 / 아, 사람들 등때기 휘는구나! 구부러지는구나”라며 힘 있는 사람들 앞에 몸을 굽히는 인간 군상을 오징어와 쥐포에 비유하였다.굴신(屈伸)은 ‘다리 따위를 굽혔다 폈다 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몸을 앞으로 굽힘. 겸손하게 처신함’을 뜻하는 굴신(屈身)이 있다. 우리말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굴신(屈伸)은 굽었다 펴지는 것이지만 굴신(屈身)은 계속 구부린 채 있는 것이다.‘굽신거리다’라는 우리말도 있다. 이 말이 굴신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굽신거리다’는 원래 ‘굽실거리다’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그런데, ‘굽신거리다’를 하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는 2014년 표준어 사정 때 ‘굽실거리다’의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둘다 맞는 말이라는 것이다.김명인 시인은 그의 시‘안정사(安靜寺)’에서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가 한다”라고 하였다. 절하는 여인과 함께 나무 그늘이 불상 앞에 드리워진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 세계는 모두 코로나 앞에 굴신 중이다. 되우 몸을 굽히고 몹시도 움츠러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굴신(屈身)이 아닌 굴신(屈伸) 중이라 여기고 싶다.1340년대에 유럽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페스트는 당시 유럽 인구의 1/3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인구 감소는 노동력의 부족을 초래했고, 농노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는 몰락하게 되었고 이는 르네상스 운동의 경제적 근거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페스트가 르네상스의 동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럽은 페스트를 극복하고 되살아났다. 그리고 몇 세기 후에는 세계를 휘어잡는 대륙이 되었다.계속 굽은 채로 있으면 그대로 굳어버린다. 계속 편 채로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굴신(屈伸)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만들고 탄력성을 부여해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잠시 굽히고 있을 뿐, 우리는 지금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굴신 운동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0-12-15

절체절명의 시간

14세기 중엽 유럽지방으로 번진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많게는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행성 바이러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의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는 어떤 경로에 의해 병에 감염되는지 알지 못해 오로지 기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회로만 사람이 몰렸다 한다. 교회가 되레 집단감염의 매개가 되고 말았으니 흑사병의 유행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1918년 시작한 스페인 독감도 최대 5천만명에 달하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 가을부터 겨울 사이 스페인 독감이 돌기 시작해 당시 조선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독감에 걸렸으며 그 중 약 14만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7천만명의 환자를 발병시켰으며 그 중 150만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불과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 끼친 피해는 막강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줄지는 알 수가 없다.인류는 오래전부터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역병이라 일컬어지는 미지의 병과의 싸움은 현대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국내 코로나 확산 분위기가 심상찮다.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시간이라 하면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 유발 하라리 교수는 세계적 연대를 통해서만이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인류를 공격할 미래의 또다른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지구촌 인류의 연대가 유일하다는 그의 말이 실감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15

야당·언론의 입 틀어막는 ‘민주주의’는 없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집권 여당의 폭주가 갈수록 태산이다. ‘공수처법’과 ‘기업규제 3법’에 이어 ‘국정원법’ 등 문제투성이인 법안들을 완력으로 밀어붙였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법조 기자단을 해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과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민주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 년 피땀으로 일궈온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삽시간에 위태로워지고 있다.‘필리버스터’란 국회(의회)에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이다. 지난해 이 필리버스터에 느닷없이 끼어들어 해외토픽감을 만들었던 집권 여당이 올해는 아예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야당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입법폭주를 하고 있다. 더욱이 야당의 무제한 토론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또다시 ‘코로나’ 핑계를 도깨비방망이처럼 써먹으며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고 있다.민주당이 본회의에 올라온 국정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했다.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을 또 활용한 것이다. 소속 의원들과 범여권을 총동원해 180석을 채웠다. 토론을 보장해야 할 무당적의 박병석 국회의장까지도 찬성투표에 끼어든 일은 참으로 낯부끄러운 기록이다.작년 2월 이른바 ‘대구 경북 봉쇄’ 발언으로 대변인직에서 사퇴했던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이번에는 필리버스터 도중 추미애 장관에게 ‘법조 기자단 해체’를 권유했다. 국회 출입기자단 운영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국회에서 출입기자 소통관을 왜 만들어서 (운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집권 더불어민주당의 거침없는 과속질주는 이 나라 자유 민주주의를 위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친위대를 창설하고, 권력층의 비리 부정을 파고드는 검찰총장을 쫓아내고, 국정원을 국가안보 조직이 아닌 초헌법적 민간사찰기구로 개악하는 일을 하면서 야당과 언론에 재갈까지 물리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바뀐 세상이라도, 이게 어떻게 자칭 ‘민주화 투사’들의 새로운 사명이 될 수 있나.

2020-12-15

거실 공부방

공부방처럼 꾸며진 허명화씨의 거실.거실을 공부방처럼 꾸미기로 했다. 차일피일 미루어둔 일이라 양치 안 한 식후처럼 불편하던 터였다. 거실을 지나다니며 ‘정리를 해야지’하면서 신경이 쓰이는 순간부터 마음도 들쑥날쑥 했더랬다. 며칠 전 집 정리 tv프로그램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늘 바쁘다는 남편에게 아이들도 자랐으니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면 완벽한 공간이 될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한 동안 거실을 중심으로 삼고 지내온 흔적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버려야 할 것들을 아이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피아노 위에 도토리 키 재기로 앉은 인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어릴 적 사촌들에게 받은 거며 벼룩시장을 통해 하나둘 쌓인 것들이다. 이웃에 나눔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후줄근 한 건 버리고 그 수를 줄이기로 했다.다음은 책장이다. 무엇보다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 떠나보내기 아쉬운 책들과 어린이집과 유치원 때의 추억의 활동 파일들, 학원 수업 자료, 문제집들, 해마다 늘어나는 나와 남편의 책들까지 한 몸이 되어 아우성 치고 있다. 이 공간이 안고 있는 무게를 쏟아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방과 거실의 책장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옮기는 건 남편의 몫이다. 키가 높았던 책장이 새로운 장소에서 옆으로 누우니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울렸다. 서로의 책들을 묵혀둔 빨랫감을 빨아버리듯 말끔히 정리했다.공부방 꾸미기의 가장 골칫거리는 TV였다. 남편에게 TV시청보다 가족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견물생심이라고 대거리를 해보지만 tv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의 지론이다. 그렇다고 방으로 옮기기도 침대위치까지 바꿔야 하는 탓에 쉽지 않았다. 떡하니 놓여있는 tv와 남편을 째려보며 주말에만 보기로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선다.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빈 벽에는 방에 있던 세계지도와 대한민국전도를 내걸었다. 탐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둘째가 지도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에도 관심이 생기고 지도를 보며 유럽이랑 아시아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니 벌써부터 성공인 셈이다. 비어있는 거실 한가운데는 베란다에 잠들어 있던 긴 탁자를 가져와 책상으로 쓰기로 했다. 탁자까지 자리를 잡으니 시작할 때 그렸던 공부방의 모습이 갖춰졌다.마지막은 이 공간을 채울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공부방으로 정리된 모습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 놓을 것이고 나와 남편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볼 것이리라. 때로는 가족회의와 나의 열람실도 되어 주면서. 책상에 앉은 아이들 사이로 초겨울 햇살이 한 가득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빛이 난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우현동)

2020-12-14

약봉지

지금 나는 내가 스무 살 일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열아홉 살부터 아들 다섯을 드문드문 낳았다. 나는 엄마 나이 서른여덟에 늦둥이 고명딸로 태어났다.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내가 몇 개월 동안 현실의 아픈 손가락의 고통으로 고생 중이다. 저녁이면 붓고 아프고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밤잠을 이룰 수도 없고 통증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어떤 이는 류머티스라 하고, 어떤 이는 퇴행성관절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갱년기 증상이라고도 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알아야 뭐든 노력해 볼 것 같았다. 한 달째 온갖 검사를 하고 의사는 내 안의 나를 공격하는 놈이 있다며 처방전을 내렸다. 다행히 나는 아직 젊고 그것들은 착한 녀석들이니 두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때는 좀 좋아져 있을 거라고 희망을 던졌다.예전에 아버지가 사 오시던 뻥튀기 봉지만 한 약봉지를 받아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심하게 보아왔던 그분들의 수두룩하던 약봉지들, 마치 고정 멤버처럼 식탁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 아버지의 약봉지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때는 그냥 연세가 들면 어른들은 다들 저런 약들을 드시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하고 무심한 딸이고 며느리였을까? 멀리 산다는 핑계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빼먹지 말고 드시라고 약봉지에 날짜를 적어드리거나 약 드실 시간에 고작 알림 설정을 해 드렸을 뿐이었다.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약을 타는 것은 늘 부모님 근처에 사시는 오빠나 시아주버님의 몫이었다. 그분들의 그림자 같았던 효심과 수고로움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어느새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러나 아직 누구에게 의지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 있다. 자신의 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시대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체감하고 겪어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병도 그렇다. 어떤 병이든 자기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비가 오는 병원 담벼락을 끼고 한 손에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걸었다. 약봉지가 비바람에 흔들린다. 약봉지 크기만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내 마음도 자꾸 흔들린다./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12-14

책 읽기는 당분간 금지

오늘 사진을 네 장이나 찍었다. 내 모습을 찍기는 오랜만이다. 자세를 잡아주는 남자분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찍기 전 목걸이가 거슬린다고 빼란다. 내가 혼자 빼려고 애쓰고 있으니 그것도 손수 빼주신다. 자상도 하시지. 목부터 전면 옆모습, 그러더니 누우란다. 난 마지못해 누웠다. 옆으로 돌아누운 모습까지 찍고서야 됐다고 나가 있으란다.의사가 사진을 보더니 목이 많이 삐었단다. 한동안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약도 처방해준다. 그리고 물리치료실로 갔다. 이곳은 물리치료를 잘한다고 지인이 추천한 병원이다. 뜨듯한 찜질팩을 목과 허리에 대고 누우니 잠이 온다. 목에 뭔가 한참을 문질러 주기도 하고 전기 충격 같은 것도 주고 원적외선도 쬐었다.그렇게 오래 기다리니 물리치료사가 나타났다. 아까 다정히 사진을 찍어준 그 사람이다. 다방 면에서 일하는군. 내 옆 침대의 할머니를 먼저 만졌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어떻게 다친 건가요. 손을 잡고 요리조리 움직이게 하고 한참 돌려도 보고는 아픈 데를 찾았는지 치료를 시작했다. 허리벨트 같은 걸 자신의 몸에 두른다. 어머나 왜 자기 몸에 저걸, 하는 그 순간, 그 띠를 할머니 팔에 같이 끼고, 당기고 밀고를 반복한다.그러는 동안 내내 조곤조곤 할머니께 왜 아픈지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치료가 끝나자 할머니는 팔을 잘 움직였다. 마법 같다. 내 목도 만졌다. 눕혀 놓고 당기고, 앉혀놓고 인사시키고, 뒤로 젖히고. 그러고 나니 금방 움직여진다. 완벽하게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움직임이 훨 편해졌다.책 읽기는 당분간 하지 말아라, 스마트 폰도 들여다보지 말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만지는 솜씨도 좋지만 잘 들어주고 환자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차분히 답해주는 게 환자들의 마음을 낫게 하는 거 같았다. 집에서 한참 먼 거리라 세 시간은 비워야 가능하지만 낼 또 가야지. /김상동(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