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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노멀(New Normal)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지금 활발하게 백신을 개발 중이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머지않아 퇴치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모로 변형이 된 삶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될 ‘뉴노멀’에 대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다. 뉴노멀이란, 2003년 미국의 벤처투자가인 로저 맥나미가 처음 사용한 말로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된 미국의 버블경제 이후 새로운 기준이 일상화된 미래를 일컫는 용어다. 당시 미국은 버블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급속도로 경기가 악화됐다. 그리고 악화된 경제 상황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경제의 기준을 형성했다. 그간의 경제를 좌우했던 기존의 규칙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원칙들이 정립되는 시대를 뜻하는 용어가 뉴노멀이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팬데믹 상황인 세계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대혼란을 겪고 있다. 탈세계화의 가속화, 디지털 전환의 촉진, 소비행태의 변화, 언택트(비대면)문화의 확산 등, 지난 일 년 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앞을 다투어 팬데믹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 사태를 인류의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거였다.지금까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왔던 삶의 기준에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 행복의 추구에 생태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물론 각종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상이변 등의 자연재해가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끝을 모르는 욕망의 과잉 때문이다. 80억에 육박하는 인구폭발에다 문명발전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자연파괴 행위는 결국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진단이다. 전염병 바이러스의 창궐도 생태계 훼손의 임계점을 넘어선 인류에 대한 가이아(Gaia)의 자정작업이 아닐까 하는 시각도 있는 것이고.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방역을 위한 통제와 수칙이 그런대로 잘 준수되는 편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방역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팽배해있는 게 현실이다. 정권의 비리와 횡포에 저항하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도 바꿀 수 있는 국회의석을 확보하였으니,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국민들의 집단행동을 막고, 정권에 복종하지 않는 검찰총장까지 몰아내면 그야말로 저들만의 세상이 되어 어떤 비리나 과오도 다 덮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인 것 같다.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법질서를 무시한 법무장관의 횡포에 검사들 전원이 반발을 하는가 하면 변호사협회와 법대 교수들까지 잇달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으니, 사필귀정의 뉴노멀이 도래하기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2020-12-03

길이 인간을 넓히지 않고 인간이 길을 넓힌다

소백산 중에서 십수 년 만에 만난 명호 형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째서 형은 서울을 등지고 형수님과 공부 잘하는 아들딸을 속세에 남겨두고 홀로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밤하늘 별빛 아래서 형은 말했다. 세상도 나를 찾을 수 없고 나도 세상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노라고.그로부터 이십 하고도 사 년이라. 형이 산중에서 삭혀야 했던 것은 세상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이었던가?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식을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세상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이었나?내가 조금만 더 형에게 성실할 수 있었다면 나는 형이 수 년 전에 ‘공자의 시작에 서다’라는 책을 보내오셨을 때 서가의 한가운데 꽂아 놓지만 말고 부지런히는 말고라도 하루하루 음미는 해보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뒤늦게 읽은 서문에서 형은 공자를 가리켜 혁명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공이 그 깊은 마음을 담아 ‘논어’를 펴냈지만 편집 과정에서 그 안에는 증삼 같은 이의 ‘가짜’ 논리도 끼어든 나머지 하나의 일관된 사상만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되지 못했다고도 했다. 왜 공자의 ‘시작’에 서야 하는가? 그것은 그를 잘못 읽음으로써 이 동양 세계가, 그 중요한 부분 한국이라는 사회가 잘못 이끌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러니까 형은 공자를 통하여 남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 자신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혁명을 위해 또 ‘논어’를 읽는 그 자신만의 독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즉, 형은 ‘논어’는 명문장들의 집합으로 읽으면 안 되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치열한 대화와 행위의 장으로서,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 읽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야만 그 실체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형이 그토록 자공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논어’의 그 전체적인 흐름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스승의 3년상을 치르고도 모자라 홀로 다시 3년상을 치렀다는 그의 성인(聖人)다운 면모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형은 산중에 오래 계신 분답게 오는 사람 반기고 떠나는 사람 소매 붙잡지 않는 도인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내려오실 때도 되었건만 또 형 자신도 새로운 삶이 이제는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이었다.나 홀로 하산하여 서울로 와 형의 ‘공자의 시작에 서다’를 진지하게 편다. 거기 ‘길이 인간을 넓히지 않고 인간이 길을 넓힌다’는 말이 써 있다. 형이야말로 길을 넓히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그 넓혀진 길을 조금이라도 뒤따라 걸어봐야 하겠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02

‘테스 형’에 열광하는 사회심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코로나 비상사태 하에서도 트로트 열풍은 종편을 강타했다. 남녀 트로트 가수 경연 이후 트로트는 여전히 방송가를 달구고 있다. 무명 가수의 가수왕 등극도 재미있었지만 나훈아의 방송 복귀는 더욱 재미있었다. 그의 신곡 ‘테스 형’은 엄청난 조회 수를 자랑하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나훈아는 부모님 무덤 앞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시상이 ‘테스 형’의 작곡배경임을 털어놓았다. 세상을 풍자하는 (소크라)‘테스 형’은 코로나 시대 답답한 사람들에게 흩어진 자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테스 형’은 첫 소절에서 ‘턱 빠지게 웃다가 찾아온 슬픔을 웃음 속에 묻는다’고 출발한다.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재미있게 빗대고 있다. 그는 뒤이어 ‘세상이 왜 이래’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어지럽기 때문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 TV만 켜면 정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싸움만 계속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유례없는 격투는 점입가경이다. 국회는 열기만 하면 패싸움이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코로나 보다 무서운 것이 불신과 혼돈이다. 세상이 왜 이래 하는 노랫말이 공감을 얻는 이유이다.노래의 둘째 소절은 아버지 산소를 찾은 이야기이다. 무덤가에 ‘거저 피는’ 제비꽃과 들국화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꽃들마저 자주오지 못하는 아들을 꾸짖는다. 모두가 세상 살기에 바빠 무덤도 찾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 불효를 후회하는 모습이 노랫말에 잘 담겨있다. 어느 늦가을 묘소 앞에 술 한 잔 올리고 회한을 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노래는 코스모스 핀 ‘고향 역’에서부터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영영’과 ‘누가 울어’에 이어 엄마를 그리는 ‘홍시’로 연결된다. 기성세대 누구나 공감하는 유행가가 되었다.마지막 절은 저 세상에 먼저 간 테스 형에게 ‘천국이 있던가요?’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세상의 구원 문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고 있다. 일전에 어느 모임에서 신부님은 이 노래를 ‘스도 형’으로 개사해 부른다고 했다. 물론 ‘스도’는 그리스도를 줄인 말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래도 종교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탈선된 종교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종교인이 정치하고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국에 대한 그의 도발적인 질문은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가수 나훈아는 그의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좋은 가수라고 평가받는다. 이번 공연에서 그도 이제 나이를 속일 수 없었지만 그의 예술혼만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칭송받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으로 등장시킨 그의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비례 대표 의원직 제의도 단 칼에 잘라버렸다. 그는 가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가슴에는 민족적인 애국심과 정서가 흐르고 있다. 일본 초청 공연에서도 그는 무대에서 할 말을 다해 버렸다. 흔해 빠진 CF 출연도 그만은 하지 않는다. 나훈아에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이다.

2020-12-02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자기정체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사실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그 까닭은 사람이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 간의 관계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얼마나 복잡다단하던가. 때에 따라서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경우도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 그렇고,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갈 목적으로 상황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대개는 자신의 얘기에만 집중하여 타인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므로 굳이 바로잡을 이유도, 그럴 기회도 없을 때가 많다.그림 소재로서의 길에 대한 내 생각도 그렇다. 화가로서 나는 주로 소나무를 그린다. 소나무만 그린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소나무 외에는 거의 그리지 않으니,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이들은 ‘소나무 화가’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싶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길’을 빼놓지 않고 말해왔다.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중요한 얘기도 아닐 것이며,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아서 뚜렷이, 힘주어 말하지는 않았으므로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길은 언제나 내게는 중요한 예술창작의 화두였다. 길은 보통 교통수단으로서의 도로를 말하지만 의미가 확장되어 방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행위의 규범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길은 유년을 보낸 고향마을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에 대한 기억과 엄마 손잡고 외갓집 가던 길에 대한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확장된 의미의 길도 늘 명심하고 있다.길은 시골길, 꽃길, 지름길처럼 앞에 관형어를 붙여서 의미를 구체화하는데, 교통기관의 발달로 개념이 확장되어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길인 물 위의 ‘뱃길’이나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이란 말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무슨 길이 없을까?’, ‘손쓸 길이 없다.’처럼 어떤 일에 대하여 취해야 할 수단이나 방법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길은 예로부터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해 ‘길로 가라 하니까 뫼로 간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등 속담에도 많이 등장하는 친근한 말이기도 하다.최근 언론에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꽃길이 화제가 되어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서초구 대검청사 앞길에 가득하더니 이에 맞서 법무부장관을 응원하는 꽃바구니가 장관의 집무실 출근길 복도를 가득 메웠다.‘절대 지지 않는 꽃길’이라는 리본도 달렸다 한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싸워서 지지 않고 반드시 이긴다는 의미인가. 화환과 꽃바구니는 죄가 없는데,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기는 몹시 불편하다.시인 장순하는 “어디에나 길은 있고 어디에도 길은 없나니”라고 노래했다.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 대화와 소통을 통하여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2020-12-02

배문경수필가1894년 음력 12월 2일, 이날은 갑오농민전쟁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된 날이다. 얼마 전 전주 동학혁명관에 들렀다. 어두운 조명 아래 동학의 역사가 사건별로 붙어있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유일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부러진 그가 관원의 들것에 실려 사형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의 혁혁한 눈빛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향해 포효할 기세였다.앞선 그림 속에서는 짚신을 끌며 동학농민군이 죽창을 들고 세상을 바꾸겠노라 고함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조총 앞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쌓이는 모습들은 처참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향해 고통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들을 이끌던 그의 발도 밤새 부르트도록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노라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풀도 밟고 흙도 딛고 물길도 건너며 세상의 온갖 것을 모두 지났을 그의 발은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갔으리라.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의 나이 41세에 손화중, 김덕명과 같이 효수를 당한 후 몸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지 않았고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다. 체포과정에서 동지의 배신으로 다리와 발을 다친 후 그는 걷지 못했다. 부은 발이 그의 사상을 향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 죽음에 다다라 지그시 눈을 감고 절명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가 없구나.”그는 많은 유혹 앞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보이기 위해 당당하게 무소의 뿔처럼 죽음 앞으로 향했다.그의 발 앞에서 내 발을 내려다본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다. 스무 살, 교대근무를 하던 내 발은 신발 안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오후 출근을 하는 삼 교대근무로 나의 발은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자던 발은 곰팡이가 잠식하면서 자는 시간에도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종일 무게에 짓눌려 지상에 그 바닥을 댄 채 머슴처럼 견뎌주던 발의 저항이었다. 가려움과 물집은 약을 먹어도 쉬 낫지 않았다.쭈뼛쭈뼛하며 제자리를 지킬 때 저항에 앞장선 것도 발이었다. 발과 발이 앞과 뒤를 혹은 옆으로 대열을 갖추었을 때, 무리가 되고 하나의 큰 힘으로 뭉쳐졌다. 태극기의 모서리를 잡고 도로로 나설 때도 나의 발은 정당했다. 손과 머리가 보이는 것에 집중할 때, 나의 발은 좀 더 성숙했다. 거리의 행렬은 독재 타도를 외치고 발은 정의를 향해 그 보폭을 넓혀나갔다. 나의 스무 살은 거리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로 보내는 날이 많았다.전봉준의 발, 그의 고뇌와 삶의 그림자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지나고 보면 악행은 악행으로 선행은 선행으로 각자의 갈림길로 나뉜다. 역사란 거대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난다. 보부상처럼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을 그의 발은 뻗은 산맥과 깊은 계곡처럼 갈라 터졌을 것이다.죽음 앞에서조차 퉁퉁 부은 발은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의 땅을 딛지 못했다.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그의 절규 앞으로 나아가 슬픔에 가닿는다.그의 큰 발걸음을 생각한다. 어둡고 눅눅한 세상을 개벽시키려 했던 그의 기개가 느껴진다. 두 발이 만들어냈던 좁은 영토의 큰 발자국.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담고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그와 함께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여전히 혼란 속에서 몸부림친다.전시관 문을 열고 나서자 겨울 한풍이 매섭게 불었다. 칼바람에 맨몸으로 나섰을 그가 내 앞을 지나 저벅저벅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20-12-02

출근 시간

제게도 출근 시간이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 직장이 있는 것도 내세울만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가 정한 출근 시간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집안을 후다닥 정리하면 아홉시. 보무도 당당히 컴퓨터가 있는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만의 유쾌한 출근을 감행하는 것이지요.근무처(?)에서 해야 할 업무는 당연 글쓰기입니다. 일가를 이룬 대작가들처럼 하루에 원고지 열 장 내지 스무 장씩 정해놓고 써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직장인이 사무를 처리하듯 글쓰기도 자연스레 일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니 의지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미숙한 업무처리로 질책을 앞둔 신입사원처럼 안절부절못합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지요. 대가들을 벤치마킹하겠다던 불타던 의지는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스스로 약속한 원고 매수를 지키는 날보다는 그렇지 못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책상에 앉으면 곧바로 글쓰기 목록파일을 클릭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건만 박약한 의지력은 언제나 포털 사이트부터 접속합니다. 세상사 이런저런 간접 경험이라도 해야 쓸거리가 주어진다는 변명을 진작 준비해놓은 것이지요. 움직이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저에게 ‘간접 경험’이라는 핑계는 그럴듯한 방어벽이 되어 주긴 합니다.오랜 딴 짓 끝에 겨우 목적한 원고를 완성합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가 한 말입니다. 초고 완결이라는 잠깐의 자부심도 헤밍웨이의 저 일갈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객관적인 눈썰미를 보탤수록 쓴 글은 허섭스레기로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 ‘걸레’가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닙니다. 퇴고를 거듭하면 얼추 쓸 만한 면 보자기로 거듭 나기도 합니다. 그걸 믿고 그냥 써나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걸레조차 만들지 않거나 만든 걸레를 방치하는 것이겠지요.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초고는 형편없었다지요. 하지만 절박한 궁핍, 절절한 외로움이 그녀의 초고를 천문학적인 재산으로 바꿔놓았겠지요. 이혼과 육아 설상가상으로 실업까지 겹쳐왔지만 끝내 초고의 끈을 버리지 않았기에 성공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걸레를 기워 온전한 조각보로 변모시키려는 에너지만 있다면 글쓰기보다 정직한 노동은 없을 거예요.같이 글쓰기를 시작했어도 오라는 데 많은 재주꾼들은 절실함이 사라져 쓰는 데 전력투구하지 못합니다. 반면, 글재주가 덜한 이들은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아 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습니다. 절치부심, 그저 쓰고 또 쓸 뿐이지요. 그러다 보니 작가가 되어 있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우직하게 쓰는 자 앞에 장사 없습니다. 쓰다 보면 빛이 보이겠지요. 제대로 쓴다는 전제가 붙긴 하겠지만.제대로 쓴다는 건 무엇일까요. 글쓰기에 비결이 있을 리 없습니다. 쓰는 순간이 곧 비법일 뿐입니다. 잘 쓰는 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옹골찬 자기 확신도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예민한 손끝과 묵직한 엉덩이입니다. 그 두 도구를 활용해 읽고 쓰기만 하면 됩니다.글쓰기는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달리 재능이 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재능보다는 열정이지요. 지속적으로 읽고 쓰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문체와 이야기로 연결되겠지요. 이때도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머리와 가슴이 글을 쓰게 하는 줄 압니다. 단언컨대 글을 오래 쓰게 하는 힘은 엉덩이와 손가락이 먼저입니다.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묻고 더 이상 예민해질 손끝이 없다 할 정도로 온몸으로 쓰면 됩니다.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순간만이 글쓰기의 진정한 과정이자 비결입니다. 자판에 누른 글자가 늘어날수록 쓰는 비법을 터득하는 시간은 짧아집니다.김살로메소설가글 한 번 잘 써보기가 저의 평생 숙제입니다. 하지만 욕망한다고 어디 글이란 게 써지더란 말입니까. 답을 알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쉽게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합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쉬 내려놓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숱하게 넘어지고 한없이 작아져도 결국 쓰는 자리에 있을 때만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기에. 돈도 많으면 좋겠고, 좋은 친구도 얻으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이 모든 걸 유예하고서라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끈질기게 쓰는 자는 끝내 이기고, 어영부영 자기검열에 빠진 자는 출근한 일터에서 이런 반성문이나 쓰게 됩니다. 자기 긍정과 자기 확신으로 무장된 스스로를 기대해 봅니다. 어느 작가가 말하는 걸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오래 쓰는 자가 이긴다.”

2020-12-02

코로나 수능

장규열 한동대 교수202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눈부신 문명을 쌓아 올리던 가운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온 세상이 얼어붙었던 한 해. 치솟는 감염자 숫자에 마음을 졸이며 삶의 가닥들이 쪼그라들었던 일 년. 사계절을 건너고도 꺾이지 않는 기세 앞에 다음 세대마저 위태로운 오늘. 코로나와 함께 수능의 아침이 밝았다.우리만큼 대학입시에 목숨을 거는 나라가 없다. 수능시험이 헤드라인 뉴스가 되는 나라. 사찰과 교회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부모. 하루의 승부에 인생을 거는 수험생 자신.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 신입생 정원보다 적다는데도,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은 잦아들지 않는 모습. 초중고 공교육이 대학입시로만 향하는 습관과 제도. 대학을 나와도 취업전선에 일자리가 사라진 사회. 누구도 정색하고 따져 묻지 않는 수능. 정부와 학교, 가정과 사회는 길들여진 나머지 문제의식마저 실종된 느낌이다. 코로나의 습격으로 교육의 모습이 몇 달째 일그러진 끝에 수능은 다가오고 말았다.일정을 연기했던 뒤라 더는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와 정면대결을 하듯 수능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에게 미안하다. 대학 간판이 그 어떤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 터에 나어린 고등학생들이 입시의 질곡을 아직도 겪는 일은 구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선생님에게도 미안하다. 사람 만드는 교육을 기대하며 교사로 헌신했을 당신이 대입 성공을 기준으로 일과를 지내게 만든 일도 구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학부모에게 미안하다. 당신의 ‘나 때’만큼 대학이 일생을 보장하지 못하는 걸 뻔히 함께 보면서 아직도 당신의 자녀들을 대학입시에 매달리게 하는 일도 구태가 아니면 무엇인가.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데 수능은 거북이처럼 제자리걸음이다. 먼저, 수능을 학생들 간에 ‘실력’을 평가하고 비교하기 위한 시험에서 해방하여 대학교육을 받기 위한 최소 기준과 소양을 확인하는 ‘인증’ 시험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제공하는 시험에 그의 일생이 달린 듯한 분위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수능을 건강하고 교육적인 틀 안에 들어오는 인증시험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수험생도 학부모도 부적절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다음, 일 년에 단 한 차례 제공하는 일정 관행도 수정해야 한다. 학생들이 편안하게 준비하여 대학을 향한 꿈과 비전이 무르익었을 적에 시험에 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회를 여러 번 제공하여 유연하고 자유로운 인증시험으로 자리를 잡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그런 후에, 대학 입학을 위한 최종 선발은 대학이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바꾸어 갔으면 한다.코로나 수능. 기억에 남을 오늘 시험에서 수험생들이 각자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기원한다. 보고 듣는 것처럼, 나라와 사회에는 바꾸어야 할 일들이 태산처럼 쌓여있다. 수능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기대하며 구상하는 젊은이들을 캠퍼스에서 만나고 싶다. 코로나는 지나가겠지?

2020-12-02

윤석열 직무 복귀 ‘사필귀정’… 징계위 취소해야

서울행정법원 4부(재판장 조미연)는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정지 명령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몰각(沒却·없애버리는)하는 것”이라며 효력을 중단시켰다. 같은 날 열린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만장일치로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배제·수사의뢰는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어 부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정지 처분을 무효화함에 따라 추-윤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윤 총장의 복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하지만 고기영 차관까지 반기를 든 상태에서도 청와대와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 절차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쯤 됐으면 위법 부당한 검찰징계위원회는 취소되는 것이 옳다.장문으로 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의 몇몇 대목에는 국민적 여론이 정직하게 담겨 있다. 재판부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그 임명 과정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이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검사징계법상) 규정은 법무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으로까지 전횡되지 않도록 그 필요성이 더욱 엄격하게 숙고돼야 한다”고 판시해 추 장관이 저질러온 그동안의 인사 전횡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부정적 판단을 내렸다.검찰 구성원 전체가 추 장관의 막무가내식 권력 행사를 ‘위법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변호사단체와 법학자,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추 장관의 행태를 무법 불법한 권력 남용으로 규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이 떼지어 나서서 쩨쩨한 법 기술을 동원해 추악한 술수를 계속 부리면 민심이 완전히 이반되는 곤경에 처할 개연성이 높다.최근의 윤석열 검찰총장 수난은 본의든 아니든 이 나라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는 검찰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로 내몰고 있다. 여권이 줄기차게 주창해오던 ‘검찰개혁’의 실상이 고작 ‘검찰 장악’, ‘검찰 무력화’, ‘여권인사에 대한 수사차단’이라는 비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은 안 된다. 국민은 제기된 의혹에 대한 총체적인 진실규명을 원한다. 이 반역사적인 작태는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

2020-12-02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중앙은행을 뜻하는‘Central Bank’와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를 합친 용어로,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CBDC는 블록체인이나 분산원장기술 등을 이용해 전자적 형태로 저장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와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등의 민간 암호화폐보다 안정성이 높다. 또 국가가 보증하기 때문에 일반 지폐처럼 가치 변동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시간으로 가격 변동이 큰 암호화폐와 차이가 있다. CBDC는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므로 현금과 달리 거래의 익명성을 제한할 수 있으며, 정책 목적에 따라 이자 지급·보유한도 설정·이용시간 조절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2019년 페이스북의 암호화폐인 리브라가 공개되면서 위기를 느낀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질서를 재편할 목적으로 2014년부터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기 시작해 지난달 5만명의 주민에게 1인당 200위안씩 디지털위안화를 시범적으로 배포해 CBDC 개인사용을 광범위하게 실험하고 있을 정도다. 스웨덴은 2020년부터 디지털 화폐‘e-크로나’ 테스트를 본격 가동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일본은행(BOJ) 등도 2020년 1월 CBDC에 대해 공동연구 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2020년부터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로 현금 사용이 줄고 온라인 결제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화폐가 주목받고 있다.한국도 CBDC 기술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암호기술 사업을 지원하고, 특허 확보에 노력해야 할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02

무대책인 집값 상승, 무주택 서민은 “멘붕”

11월 중에도 집값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런 추세라면 무주택 서민에게 집이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판이다.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한 아파트 등 집값 파동은 이제는 전국적 현상이 됐다. 수도권뿐 아니라 대구를 비롯 부산, 울산, 창원 등 전국 대도시 집값 상승은 거의 광풍에 가깝다. 자고 나면 “억”소리가 나니 집값이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현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그동안 24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책 발표 때마다 값은 되레 올랐다. 오죽하면 정책을 내놓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정부 정책이 세금과 금융 등 지나친 규제 일변도로 작동하다 보니 시장에서의 자율적 조정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다주택자를 규제하니 똘똘한 한 채쪽으로 수요가 몰리고, 임대차 3법을 만드니 전세값이 뛰고 물량도 사라져 버렸다.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무주택자에게 근심만 안겨주었다.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1월 중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지역의 주택매매 가격은 1.06%, 전세 가격은 0.69%가 올랐다. 전국의 주택가격 상승률(0.54%)과 전세가격 상승률(0.66%)을 모두 웃돌았다. 특히 대구 수성구의 매매가격은 2.69%, 전세는 1.42%가 올라 지역의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수성구의 집값은 2003년 8월 이후 17년 만에 최고다. 전국에서 4번째로 높았다.정부가 지난달 대구 수성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해 12월 이후 주택가격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부동산 업계는 대폭적인 가격조정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풍선효과로 타지역으로의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고 했다.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실효적 효과를 내지 못하자 집값 폭등은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했다. 11월 중 5대 광역시 아파트의 상위 20% 평균가격이 하위 20% 대비 5배나 높았다. 무주택자뿐 아니라 서민층이 받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부동산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폭등하는 집값에 대한 박탈감으로 근로의욕을 상실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상태가 확대되면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과감한 손질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금 무주택 서민은 “멘붕” 상태다.

2020-12-02

문학은 우리를 위안하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얼마 전에 정지창 선생이 ‘문학의 위안’이라는 서책을 출간했다. 조금 낯설지만 정겨운 느낌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문학작품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완화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미학적 구조물”이라는 설명이 와 닿는다. 그는 인생은 고해라는 자명한 사실을 위로하고, 삶에 지쳐버린 사람에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북돋우는 미학적 구조물로 문학을 포착한다.희곡은 물론 시와 소설마저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20세기 20년대에 문학에서 위안을 구하는 선생의 자세는 놀라운 것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문학을 벗하는 한국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화기에 눈과 코와 얼굴을 밀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홍수에서 느닷없이 문학과 위안이라니?! 이런 담대한 기획의 이면에는 노장의 패기와 경륜이 담겨있을 것은 정한 이치다.3부로 구성된 서책 가운데 나는 1부에 등장하는 ‘고은과 그의 시대’와 ‘백무산이 만난 최제선’을 주의 깊게 읽었다. 박정희의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하여 억압과 폭정에 저항했던 고은 시인의 편력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펜’ 하나에 의지하여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운 기개(氣槪) 높은 시인은 이제 코로나 블루 만큼이나 우울한 만년과 대면하고 있다.신화는 깨지게 되어있다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하나의 시대가 뭇매를 맞고 소멸하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일초 선생의 기행과 괴담은 익히 알려졌으나, 그것의 붕괴가 삽시간에 진행되는 바람에 우리는 거기 담긴 함의마저 제대로 읽지 못하고 눈감아버린 것은 아닌가! 시대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시대를 만드는 법!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하는 김상헌의 시조 가락이 가슴을 저민다.1990년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로 노동시의 지평을 넓힌 백봉석. 부모가 지어준 ‘봉석’이라는 이름 대신 무산, 프롤레타리아로 자신을 자리매김한 시인. 그가 찾아낸 실패와 좌절과 회한의 인물 최제우의 본명은 최제선이었다. 어리석은 민중을 구하겠다고 새로 지은 이름 제우(濟愚)처럼 봉석도 노동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산(無産)이란 이름을 가진다.“스스로 일어나 스스로를 구하라/ 그리 일어나 스스로 구하는 자 모두 한울이라/자신의 모가지를 허공에 베어버린/선생이여/수운 선생이여/어찌 허공으로 세상을 내리쳤더란 말입니까” (‘최제선’ 부분)백성이 스스로를 구하기를 바랐던 혁명가 최제우는 모가지를 길게 드리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자신의 존재를 넘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허공을 가르는 칼을 만들었던 최제우. 하지만 빈틈없는 세상은 그를 살해한다. 최제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는 백무산의 비애가 바로 곁에 있다. 무너지고 스러진 시인들의 형상에서 작가는 시의 위안과 우리가 떨치고 나갈 동력을 찾는다. 문학은 언제까지 우리를 ‘위안’할 수 있을 것인가?!

2020-12-01

수능 신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연습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지금이다. 출근길에 우연히 들은 가수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이라는 노래 제목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한때 필자도 모든 순간이 연습이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특히 큰 시험 이후에는 그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아쉬움에서 오래 허우적거렸다. 아쉬움은 언제나 후회와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이어졌다.당시를 회상하면 제일 힘들었던 것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정하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의 이면에는 늘 주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응원은 필자에겐 큰 부담이었다. 물론 이 또한 실패에 대한 핑계라는 것을 잘 알지만, 실패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필자에겐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비겁하게도 필자는 그것을 부담감 탓으로 돌렸다.실패를 거듭할수록 탓하기는 더 심해졌다. 그 방향이 필자였다면 실패의 횟수를 훨씬 많이 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탓 앞에는 늘 남이 있었다. 남 탓하기는 문제를 해결책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시험 불합격 등 어떤 일이 좌절될 때마다 필자는 다른 곳에서 핑곗거리를 찾기 바빴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격언 속에서 희망 없는 위안을 얻었다.필자를 탓하기의 비겁함에서 구한 것은 책, 특히 신화, 동화, 위인전 등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읽는 이 책들은 느낌부터 달랐다. 이들 이야기에는 명확하면서도 유사한 서사구조가 있다. 그 서사구조는 우리 고전소설에 나오는 영웅의 일대기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이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늘 시련 속에 산다. 시련 대상은 사람, 사회제도, 운명 등 다양하다. 이들 주인공이 필자와 다른 점은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것이다. 간혹 시련이 중복되기도 하지만, 승자는 늘 주인공이다. 시련을 겪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련은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수능을 보는 모든 이에게 수능 신화를 소개한다. 신화 속 주인공은 2021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모든 수험생이다. 시련은 성적 지상주의 입시제도와 코로나19이다. 어느 해보다 2020년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 겪는 시련은 혹독하다. 하지만 수험생 모두는 신화 속 주인공이자 현실 속 주인공이기에 그 시련을 이겨낼 힘을 충분히 가졌다. 그리고 그 힘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를 마쳤다. 그러기에 시련 따위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뜻한 것을 꼭 이룰 것이다.수험생들이 만들어낸 수능 신화는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그 결과 코로나19도 조기 퇴치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큰일을 하는 것이 수능 신화의 주인공인 수험생이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수험생에게 꼭 한 가지만 당부한다. 필자처럼 연습 타령과 남 탓을 하면서 궁상맞게 지내지 않기를! 주인공답게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2020-12-01

혜민 스님과 마라도나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들소 떼의 이동을 따라 유목생활을 했던 인디언들이 농사꾼처럼 추수가 끝난 11월의 들판을 보며 그런 은유를 떠올려내진 않았을 것이다.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잎사귀를 떨군 나무들과 초록빛을 잃어버린 풀들, 땅에 떨어진 열매들, 금방 어두워지는 하늘 등 초겨울이 자아내는 쇠락의 분위기 속에서도 무언가 희망적인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보다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매년 11월마다 환절기 질병이 돌아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월동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곰이 인디언 주거지역까지 침범해 인명피해가 자주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의 영혼은 바위와 구름과 강물에 남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정신에 각인되기에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른 듯하다. 써놓고 보니 근사하다. 앞으로 이렇게 우길 작정이다.지난 11월, 서로 아무 관련 없는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뜨다’라는 말은 중의적 표현이다. 한 사람은 속세를 떠났고, 한 사람은 이승을 떠나 저세상으로 갔다. 속세를 떠난 이는 ‘라이언 봉석 주’라는 영어 이름을 지닌 ‘스타 승려’ 혜민이고, 이승을 떠난 이는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다. 혜민은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했고, 마라도나는 스스로 신이 되었다. 혜민을 따르는 수많은 중생들과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신흥종교 ‘마라도나교’를 떠올리면 둘 사이에 아무 접점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두 사람 다 종교적 광휘를 입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멘토이자 우상이었다.혜민은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SNS에 글을 올리면 수십만 회 공유되는 ‘셀럽’이었다. 40대의 젊은 승려가 대중들로부터 이렇게 큰 주목을 받는 일은 그동안 없었다. 미국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각각 종교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햄프셔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이력이 ‘스펙’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스펙을 내려놓고 돌연 출가해 승려가 된 ‘무소유’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소개되어 사람들을 더욱 매료시켰다. 온갖 방송 출연과 대중 강연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얻으면서 그는 ‘국민 멘토’로 각광받았다. 무소유, 비움, 내려놓기, 멈추기 등 욕심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곧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설파했다.그런데 얼마 전 ‘무소유’가 ‘풀(full)소유’임이 탄로 나면서 큰 비판을 받았다. 현각스님은 ‘기생충’, ‘도둑놈’, ‘연예인’, ‘사업가’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까지 했다. 발단은 혜민이 한 방송에 출연해 남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고급 대저택에서의 ‘럭셔리 라이프’를 소개한 것이었다. 호화주택에서 명상 어플리케이션 홍보와 유튜브 구독자 늘리기에 매진하는 일상은 참선이나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무욕의 형식으로 물욕을 추구해온 라이언 봉석 주의 민낯에 대중들은 실망과 분노를 토했다. 결국 혜민은 SNS에 참회의 글을 올리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속세를 떠난 척 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된통 걸려 자의반 타의반 정말로 속세를 떠났다. 미련이 크게 남을 것이다.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핸들링 파울을 헤딩으로 교묘히 위장해 골을 넣은 후 ‘반은 신의 손이 넣었다’고 말하면서 신화의 플롯이 짜이기 시작했다. 논란의 득점 바로 5분 뒤, 70미터를 드리블하면서 잉글랜드 수비수 6명을 제치고 넣은 추가골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회자된다.그는 혼자서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후 이탈리아 프로축구에 진출해 만년 하위팀 나폴리에게 리그 우승컵과 UEFA(지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겼다.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나폴리에서 신이 되었다.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신으로 추앙받았다.하지만 늘 ‘악동’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찬란한 영광은 마약, 술, 금지약물, 폭력, 탈세로 얼룩졌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로 처참히 실패했다. 온갖 궤변과 기행을 일삼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죄를 짓고 패배하는 신, 마치 아즈텍인들이 숭배하던 케찰코아틀 같았다. 폭음, 폭식, 흡연 등 무절제한 생활은 병을 키워, 최근 뇌수술을 받은 후 심장마비로 쓰러져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속세를 떠난 것과 실제 죽음은 만져지는 부재의 질감이 서로 다르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두텁고 짙고 무겁다. 그러므로 둘을 나란히 두고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니다. 안 될 것도 없다. 죽은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김현)이기 때문이다. 잠시 종적을 감춘 것이든 영영 사라진 것이든 세상에 영향을 끼친 이들의 부재는 완전한 사라짐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남긴 것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혜민이 남긴 것은 실망감과 배신감이다. 앞뒤가 다른 위선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이 분노는 결국 ‘이미지’가 허상이라는 데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겉을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가짜’들은 혜민 말고도 넘쳐난다. 직접 요리하는 대신 인스턴트를 사 먹는 현대인들은 생각도 남이 대신 해주길 바라고, 마음도 남이 가꿔주길 바란다. ‘내가 의지하고 마음을 맡겼던 멘토가 사기꾼이었다니’라는 허탈감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마음을 다잡는 지혜를 잃어버린 대중들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혜민도 남들처럼 부와 명예를 좇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더 영악한 가짜들은 본모습을 들키지 않는다. 세속의 가치, 즉 ‘인간’을 내려놓으라고 하면서 끝내 인간을 벗지 못한 혜민은 그렇게 인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파했던 부처의 가르침과 멘토로서 사람들에게 준 감명, 그의 선한 이미지는 모두 사라져도 곳간에 쌓은 물질적 풍요는 다 사라지지 않을 테니, 꽤 남는 장사였는지도 모른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마라도나가 남긴 것은 스포츠의 감동과 환희, 열정, 꿈 그리고 희망이다. 물론 나쁜 짓도 많이 했다. 탐욕이라면 혜민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평생 돈과 명예에 집착하며 코카인과 금지약물과 쿠바산 시가와 색욕을 즐겼으니 불가의 표현으로 ‘마귀’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죽음 앞에 전 세계가 슬퍼하는 것은 그가 인류에 남긴 위대한 유산들이 개인 생의 과오를 덮고도 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선자가 아니었다. 인간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초월했다. 혜민이 만인을 위하는 척 자신만을 배불린 데 비해 마라도나는 오직 자기 앞의 싸움인 축구에 육체와 영혼을 다 던져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한 사람의 쾌락적 인간으로는 타락했지만 축구 선수로는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롤모델이 되었다. 그는 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다.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중남미의 혁명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자선 축구경기를 열어 수익금을 교황청에 기부하기도 했다. 마라도나의 육체는 모두 사라져도 그가 보여준 열정과 집념,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혜민과 마라도나, 두 ‘떠남’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인문학 회의론자, 마음 불신자가 될 것만 같다. 마음은 교활하고 육체는 정직하다. 마음은 여러 개로 갈라질 수 있지만 육체는 오직 하나 뿐이다. 말과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마음을 속일 수 있는지,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만 횡행하는 지식인 사회와 종교계가 좀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스포츠 세계야말로 정토(淨土)가 아닐까. 그 어떤 사상가, 대문호, 종교지도자보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 마라도나, 마이클 조던이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돈과 명예를 좇아 욕망 안에 갇히는 바보가 아니라 매 순간의 한계를 이겨내며 마침내 육체를 초월하는 운동선수들, 또 가난과 소외를 내내 견디며 지금껏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려는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지극히 인간이지만 때로 인간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인간에서 자유롭다. 아, 혜민이 사라져도 우리에겐 흥민이 있다. 마라도나만큼 위대해질 것이다.

2020-12-01

中企 ‘주52시간 근무제’, 아직 무리 아닌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판이한 실태조사 결과를 각각 내놓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고용부는 대상 기업의 91.1%가 준수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발표한 반면, 중기중앙회 자체조사에선 84%가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나왔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우려와 비명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창궐로 인한 최악의 경영환경에서 왜 지금 꼭 이걸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고용부가 지난 6~8월 조사해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81%는 이미 주52시간제는 준수하고 있고, 10%는 연말까지 준비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중기중앙회의 조사결과는 반대다. 최근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통해 중기의 39%가 준비돼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필요 업체만으로 산출하면 비율이 84%까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이 같은 차이는 고용부가 ‘준비 중이나 연말까지 완료 가능하다’는 응답을 ‘준비 완료’로 분류한 한편, 중기중앙회는 이를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분류했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장이다. 현장의 목소리와 진짜 사정이 어떤지가 관건이다.중소기업은 이미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들이 신청한 외국인 인력은 10월말 기준으로 2만여 명에 달하지만, 실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10분의 1수준이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내년에도 중소기업 인력 사정이 나아질 가망은 없다.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초과·연장 근무수당 감소로 월급이 20%가량 줄어드는 사태를 걱정한다. 퇴근 후 ‘저녁 있는 삶’은커녕 생계유지를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투잡’ 생활에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여차하면 숙련공의 대규모 이직사태도 우려된다. 중소기업들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도 국회는 보완 입법을 1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 “주52시간 계도기간 연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국회가 중소기업 현장을 실용주의 관점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길 바란다.

2020-12-01

수능 D-1, 수능 방역에 혼신의 힘 쏟자

전국에서 49만여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치르는 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상황 속에 치러지는 이번 수능시험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가 지속하느냐 억제되느냐 하는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정부는 어제부터 전국에 걸쳐 사회적 거리두기를 1.5단계로 높이고 수도권에 대해서는 2단계에 더해 추가 조치를 도입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본격 조이고 있다.그러나 코로나19 신규확진자수가 사흘 연속 400명대를 유지하고 있고 코로나19 전파력을 뜻하는 감염 재생산지수도 1.43으로 높아져 있는 상태다. 환자 한 명이 1명 이상을 전파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3일 치러지는 수능 고사장에는 전국에서 49만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끼칠 파장은 매우 걱정스럽다. 수능방역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험장을 통해 옮겨진다면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마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다. 외국 언론조차 주목할 정도로 코로나 위기 속에 치러지는 우리 수능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최근 일주일간 코로나19 국내 상황을 보면 382명-581명-503명-450명-438명-451명 등으로 불안한 흐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2주 후 최대 하루 1천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수능시험을 무사히 치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관심과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스크 쓰기, 손씻기, 모임이나 행사 자제하기 등 방역수칙 준수에 보다 적극적인 동조가 있어야 한다. 국민 각자가 수능생을 둔 학부모의 심정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대구와 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코로나 방역 관리가 잘되고 있다. 시도민의 높은 방역의식의 결과다. 그러나 경북에서는 29일 이후 국내 김염자만 15명이 새로 발생했다. 방역의 고삐를 조금이라도 늦춰선 위험해 질 수 있다.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한창이다. 이번 겨울만 잘 견딘다면 희망도 있다. 수능과 수능 이후 상황 관리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0-12-01

안지랑 곱창골목

여행이 관광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무렵 유럽에서다. 교통수단의 획기적 발달이 관광산업을 선도했다. 그 이전에는 돈 많은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 정도로 일반인에겐 관광이란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었다.여행을 뜻하는 영어의 Travel은 고통과 고난의 뜻인 Travail에서 유래됐다는 것은 여행 자체가 힘든 고난의 길임을 말해주고 있다.생활이 윤택해진 요즘은 해외여행이 보편화 되고 여행 자체가 삶의 일부이자 휴식이 되고 있다. 여행을 통해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고 내 삶도 재충전한다.먹는다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 지역 그 나라의 대표적 음식을 찾아 맛을 보며 문화와 생활방식을 이해할 때 우리는 여행의 특별한 의미를 느낀다. 미국에 가면 우리의 주먹보다 더 큰 햄버거를 먹고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 이탈리아에서는 스파게티, 체코의 족발요리 같은 것을 먹어 보면 진정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실감할 수 있다.IMF 이후 대구시 남구 앞산 안지랑 골짜기에 하나둘 생겨났던 곱창전문식당가가 합쳐져 형성된 안지랑 곱창골목이 농림축산부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 외식거리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 전국 5대 음식 테마거리로 뽑힌 바 있고,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되는 등 짧은 시간에 제법 유명세를 탄 먹거리 동네다.이곳에서 취급되는 막창구이는 대구 10미(味)의 하나로 전국 어디서도 구경하기 힘든 대구만의 특화 요리다. 1970년 초부터 대구에서 유행한 막창구이는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 특별히 제조된 된장 소스와 마늘과 쪽파를 곁들여 먹는 맛은 별미라 하겠다.전국 최고의 외식거리로 선정된 안지랑 곱창골목이 바로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01

으악새와 만반잘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가수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 1절과 2절 첫 소절을 되뇌어 본다. 어느새 으악새와 뜸북새가 슬피 우는 가을이 가버렸다. 이렇게 슬프고 힘들게 20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2절의 ‘뜸북새’가 새 이름이니 1절의 ‘으악새’도 조류의 한 종류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손목인의 가요인생’이라는 책에는 ‘짝사랑’의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작사가인 박영호에게 직접 물었을 때 “고향 뒷산에서 ‘으악, 으악’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으악새’로 했다.”라고 심드렁하니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새 우는 소리를 듣고 그냥 갖다 붙인 것이라는 말이다. 한때는 ‘으악새’에 대해 다른 설이 있었다.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풀 이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으악새는 갈대와 비슷한 억새풀의 경기도 방언이다. 가을 바람이 불 때쯤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라는 설이었다. 그런데 노랫말을 쓴 장본인이 새라고 했으니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사라진 셈인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떠돌아 다닌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곧,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작사가가 자기 마음대로 갖다붙였으니 나름 개연성 있는 다른 설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제법 그럴싸하다. 작사가가 침묵하고 있었다면 ‘으악새 슬피 우니’라는 구절은 ‘으악으악’하고 우는 괴기스럽기까지 한 새의 소리로 이해하기보다 ‘억새’풀의 흔들리는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 짝사랑의 심경을 노래하는 데에는 더 잘 어울렸으리라.듣는 이와 말하는 이, 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의 언어적 약속이 잘 맺어지고 그 약속이 지켜져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으악새를 새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까닭은 언어대중 사이의 사회적 약속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이 임의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불리고 있기에 으악새는 공공의 언어 마당에서 새의 이름이라는 지위를 그나마 확보할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다.그런데, ‘슬세권’을 아는가? ‘보배’는 들어 봤는지? ‘슬세권’은 ‘슬리퍼를 신고 편한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역세권’이라는 말이고, ‘보배’는 ‘보조 배터리’를 줄인 말이다.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쳐 줄여 만든 ‘스몸비’(Smombie)라는 영어식 신조어도 있다. 이런 새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가히 줄임말 신조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터넷 공간을 박차고 나와 젊은이들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줄임말 신조어들은 세대 간의 소통 부재 현상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말들로 세대 간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 안에서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까지 한다.‘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라고 하며 줄임말 앞에 억지로 머리 조아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가뜩이나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소통의 어려움까지 겹쳐 무지근해지는 12월이다.

2020-12-01

길과 인생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서양에서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동양에서는 인생을 길을 가는 나그네로 비유한다. 이백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하면서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했다. 동양적 사고에서 길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말하지 않고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의미한다.길에는 바른 길로 지칭되는 큰 길과 바르지 않은 길로 지칭되는 갓 길이 있다. “군자대로행”이라는 말에서 대로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바른 길이고 어떤 길이 바르지 않은 길일까? 또 그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루쉰은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지금 내가 편히 가고 있는 길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돌과 바위를 치우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만든 길이며, 그 거친 길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다듬어 지고, 그 길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으로 넓어져 비로소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긴 길을 사람들은 제 길 인양 걷는다. 길이 손상 되었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지면 왜 길을 보수하지 않고 만들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모든 길은 누군가가 없던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잊은 듯하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는 만들어진 길을 가는 사람과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없던 길을 만든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라 하고 성인이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길들을 만들었지만 그 길이 가치를 상실하여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게 되고 그래서 대부분 소멸된다. 소수의 길만이 남아 지금도 사람들이 따르는 길이 된다.길은 고전과도 같다. 고전은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여 과거에 지닌 가치가 현재에도 남아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고전과 같은 길일까? 그 길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죽임의 길이 아니라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림의 길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내가 가는 길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는 진리의 길이고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갔기 때문에 오늘의 길이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간다.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나는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일까? 없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뭔가를 받기만 하는 수혜적 사람일까, 뭔가를 주려고 하는 호혜적 사람일까? 길은 만든 사람이 없이는 길이 있을 수가 없고, 그 길을 함께 가며 다듬은 사람이 없이는 길이 될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겐가 단 한번이라도 그 길을 만들어 주었거나 그 길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2020-12-01

덮으려는 자 밝히려는 자

강희룡 서예가2009년 10월 MBC ‘PD수첩’은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계급이 소령인 한 현역 해군장교가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 없이 출연해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 간부들이 최소 9억이 넘는 돈을 빼돌린 정황을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으나 ‘혐의 없음’이라는 답변만 들었고 관련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방송 이후 재수사로 해군 간부 등 현역과 군무원 등 31명이 사법처리 된 방산비리 사건이다. 이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하고 음해로 인해 뇌물공여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2011년 권익위에서 주요 부패 신고자로 선정돼 훈장까지 받았지만 스스로 전역을 택했다. 2018년 1월 ‘1급기밀’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하는 범죄 실화극이다.내용은 독도 인근 해상에서 비행훈련 중이던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블랙박스와 기체를 수거해 추락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군에서는 정부와 고위 장성까지 얽혀있는 사건이기에 조종사의 음주비행의 과실을 사건의 원인으로 몰아가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 장교에 의해 이 사건과 관련해 군과 미국의 전투기 부품업체 더 나아가 국방부와 미국 펜타곤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방송기자와 함께 언론에 폭로하면서 그들이 감추려 했던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엄청난 방산비리사건이 천하에 드러난 것이다.이 영화는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군복 뒤에 숨어 사건을 은폐하려는 집단에 맞서는 용기 있고 정직한 인물이 부조리를 저격하고 적폐청산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보겠다. 생명과 직결된 방위산업비리는 대한민국 군내에 만연한 고질적인 문제이다. 총알 뚫는 방탄복, 휴전선에 군(軍)이 도입한 중국산 CCTV 등 모든 비리 중에서도 방산비리가 더욱 위험한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자 연인인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국가 안보의 적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 옵티머스 사태, 월성원전 등 현 정권의 굵직한 권력형 비리수사를 더 이상 밝히지 못하게 덮으려는 추미애 법무장관은 급기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모호한 이유를 들어 징계청구,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고, 윤 총장 역시 집행정지 신청과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러한 권력형 대형비리는 패거리의 음모가 그 계략의 얼개를 형성하고 있기에 진실을 밝히려는 자에 대한 임명권자의 최종적인 결정을 보면 그 정부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진실을 덮으려는 발상인 공수처 설치나 검찰개혁보다 국민들의 시대적 요구는 권력형 비리나 고위직 부패는 반드시 척결해서 반칙과 불공정이라는 신적폐를 청산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것이다. 진실은 감추려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것은 진리이다.

2020-11-30

덕실(德室)마을

김유복전 포항뿌리회 회장지난 주말 한나절은 산행으로 풀고 돌아오는 길에 흥해 덕실마을로 오래 못 본 선배도 뵐 겸 발걸음을 옮겼다.덕이 있는 사람들의 마을이라 하여 ‘덕실(德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마을로 형성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1492년경) 경주 김씨가 입향(立鄕) 하였다는 설명으로 봐서 500년은 족히 넘은 유서 깊은 고장으로 현재는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마을에는 경주 이씨 입향조를 기리는 재실인 이상재(履霜齋)가 있고 지방 문인들이 시회(詩會)를 하던 담화정(湛和亭)이 있는 기품(氣品)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이 마을은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마을 출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으로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영광에 엄청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 곳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일국의 대통령까지 된 포항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갖가지 공(功)과 과(過)는 있겠지만, 그 공과는 역사가들이 평가할 문제로 차치하고 그 당시 지역 출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에 열광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가난과 어머니가 나의 스승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고 꿈을 키우기 위한 도전과 용기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인생역정만큼은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기념 전시관으로 만들어진 덕실관을 둘러봤다. 지상 2층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에 그 간 꿈을 키우며 살아온 일대기와 대통령으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 영상관에서는 대선 후보 당시 홍보물과 포항과 덕실마을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덕실관 뒤에는 누런 초가지붕의 생가를 복원한 건물이 가을볕을 받으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주말이라 더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긴 하지만 요즈음은 코로나 감염증 등으로 현저히 줄어든 모양새다. 최근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덕실관 운영에 관한 비판의 소견을 내놓은 뉴스를 접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찾아본 덕실마을은 늦은 가을의 뒤끝처럼 조용했다.한때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평가가 엇갈리면서 열기가 식은 것 같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우리 지역 출신 인사가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역사는 지울 수가 없고 포항 사람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영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지역을 위해 해놓은 게 별로 없다는 게 지역 민심(?)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비록 법의 심판을 받아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것 또한 역사에 기록되겠지만 잘못된 역사 때문에 지역의 자부심마저 상실될 수가 없는 노릇이다.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잘난 역사는 이어가는 게 미래를 위한 바람직함이 아닐까. 포항의 자랑거리는 시민 모두의 것이며 후대를 위해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충절의 고장에 사는 마을 분들과 선배가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덕실마을을 떠나왔다.

2020-11-30

길 위에 서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어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간 찰나였다. 세상은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거친 정글이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걷기만 했던 지난날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자신감이었다. 이제와 잠시 내려놓고 뒤돌아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던 길이었다. 길의 마디마디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치열하고 비장한 전투였다. 죽기 살기로 덤비고 이기려 안간힘을 다 쏟았었다. 그렇게 힘겹게 마디마디를 넘길 때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위안 삼았고 자신을 대견해하며 칭찬하고 위로했었다. 매 순간 임전무퇴의 각오로 전투에 임하듯 비장했었고 필승의 각오로 임했다.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나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하는 긴장감으로 곳곳에 난 상처가 아물 겨를도 없었다.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뒤돌아보며 나를 쉬게 할 여유를 나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그 순간에도 소중함이 내 안에 담아지기 때문이다.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옹이 없는 나무 없듯이 돌부리 없는 길 없으니 넘어지지 않고 상처가 남겨지지 않게 쉬어가며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유병재(사진작가)

2020-11-30

토마토와 시금치

평상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값이 뛰면 괜히 더 먹고 싶어지고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 걸까?몇 년 전 수박값이 폭등했을 때 그랬고, 올해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토마토 공급이 어려워,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에서도 토마토는 넣어 드릴 수 없다는 사과문까지 나온 요즘,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파스타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샌드위치에도 구운 토마토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영락없는 청개구리 같다.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낮은 온도의 오븐에 구워(꽤 긴 시간 공을 들여)낸 구운 토마토의 달달함은, 당류가 들어간 음식의 스윗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난다. 마트에서 소포장으로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사다 먹다가, 결국 꽤 센 가격표가 부착된 방울토마토를 상자째 사 와서, 물에 씻고 식초 탄 물에 담가두었다 다시 헹구고 오븐 예열을 시작했다.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반쪽 낸 토마토를 조심스레 가지런히 놓고선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구워지는 동안 샐러드로 먹을 어린잎 시금치도 씻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썰었다. 이탈리아 국기 색을 나타낸다는 마르게리타 피자에서의 녹색 담당 루꼴라처럼 오늘 여린 시금치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며칠 전 코로나로 집밥의 횟수가 늘며 자칫 빠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먹으면 좋은 식재료들을, 다섯 가지 영양소로 구분해서 설명해 놓은 잡지 기사를 봤는데, 시금치에 네 개 부분의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었다. 비타민A와 C, 칼륨, 엽산이 풍부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아주 예전에 뽀빠이라는 만화영화에서 시금치만 먹으면 팔뚝 근육이 순간 솟아나는 뽀빠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채소를 먹이기 위한 전략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 이유 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잘 구워진 토마토를 옮겨 식힌 후, 시금치를 깔아둔 접시에 담고 발사믹 시초와 올리브유를 섞어 두른 한 끼 샐러드가 완성됐다. 시금치를 먹기 꺼렸던 아들도 두 손 엄지 척이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융통성 있는 여자

라넌큘러스의 계절이다. 개구리 왕자처럼 볼품없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서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라넌큘러스. 이름도 개구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장이 넘는 하늘하늘한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어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하기 쉬운데, 겉모습은 습지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정원에 피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꽃이라 습도가 맞지 않으면 쉽게 잎이 마르거나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두꺼워 보이는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 꺾어지기 쉬우므로 살살 다뤄야 한다.꽃병 속 꽃을 오래가게 하려면 아스피린을 넣어주라는 기사를 어제 봤다. 집에 아스피린은 없고, 타이레놀이 있길래 넣어주고는 걱정이 되어 밤에 약사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이레놀도 괜찮지? 하고 물었더니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아스피린은 산성이라 오래가게 할 수 있는데, 타이레놀은 아니란다. 이런!아침에 약물 오남용으로 축 처진 라넌큘러스 버터를 보니 미안하다. 그래서 얼른 줄기도 자르고 물도 갈아줬다. 약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적극적인 융통성을 발휘하는 건 위험하니 특히나 조심해야겠다. 융통성 발휘의 나쁜 예다.약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까스명수이다. 어릴 적 배앓이 할 때마다 엄마가 사주신 약이다. 그 맛이 어찌나 맛난지 먹고 싶을 때마다 융통성을 발휘해 배가 아픈 척을 했다. 엄마는 장에 넣어두었던 한 병을 꺼내서 따 주셨다. 아 감질나는 양이었다.어른이 된 지금은 소화 안 될 때 내 몸무게를 생각해 꼭 두 병씩 먹는다. 한 병은 성에 차지 않아서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병의 크기는 왜 아직 그대로인지. 요구르트도 대용량이 나왔는데 까스명수는 왜 큰 병을 안 만드는 걸까.장식장 위의 라넌큘러스가 물끄러미 이런 나를 본다. /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1-30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수첩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표지의 스프링 형식이었다. 손바닥만 한 공책을 보니 또 다른 공책이 떠올랐다.남편과 연애 시절이었다. 삐삐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이었지만 내겐 그런 거 하나 가질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사람이었지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보내면 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저 스프링 공책이었다.내가 먼저 마음을 적어 주고 다음 만날 때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안 썼다면 나오지 말라는 반협박을 얹어 주었다. 1년 동안 연애하며 그렇게 손바닥만한 공책 한 권을 주고받았다.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들과 책꽂이를 정리하다 그 스프링 달린 공책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지 하며 들쳐 본 아들이 큰소리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H에게” 아들이 첫 구절을 읽으며 닭살 돋는다며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웃는다. 가로등을 배추꽃으로 표현한 남편의 편지, 글씨도 궁서체로 반듯하게 썼다.아들도 오래도록 ‘모태 솔로’이더니 군대를 다녀와서 연애를 시작했다. 과 후배와 캠퍼스 커플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20대를 데이트도 하며 좋은 사람도 만나 편지도 보내라고 등을 떠밀었다.아들의 눈에 나이 든 엄마와 아빠가 닭살 돋는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또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카톡으로 빠르게 마음을 전하는 시대이니 이렇게 종이에 글을 써서 주고받는 연애가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라떼는 말이야, 꼰대처럼 우리 때는 단짝 친구와도 비밀노트를 주고받았고, 위문편지도 쓰고, 일기장에 자물쇠도 달아놓고 썼다는 ‘썰’을 풀었다. 이런 게 진짜 연애지 하며 뻐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연애편지와 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런 아들을 향해 묵묵히 책 정리만 하던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나도 내 손을 찍고 싶다.”/이규헌(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지혜의 등불을 찾아… 경남 합천 해인사 원당암(願堂庵)

해인사의 중후한 품격은 변함이 없다. 열세 개의 해인사 부속 암자들까지 모여 있는 가야산,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불국토에 들어선 듯 무심(無心)이 된다. 사람들이 몰리는 해인사를 지나쳐 무생교 너머 외길 끝에 앉아 있는 암자로 향한다.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당암(願堂庵)이다.계곡 옆 푸른 이끼를 두른 거대한 바위는 인파당 스님의 자연석 사리탑이다. 백련암에 주석하던 인파당 스님은 살아생전 고매한 인품과 학문에 능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무위자연의 도인이라 칭송받았다. 1846년 열반에 드시자 기대했던 사리가 나오지 않아 허탈감에 빠진 제자들이 나름의 견해들로 큰스님을 평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다비식이 있던 마당에 오색 빛이 나타나 사라지는 곳으로 따라와 보니 바위 위에 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그제야 어리석은 분별심을 깨우쳐 주고 죽음 후에 자연으로 돌아가 바람처럼 묻히기를 원했던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바위 위에 구멍을 파서 스승의 사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초겨울의 문턱에서도 굴하지 않는 푸른 이끼 때문일까. 바위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진리를 찾아 정진하는 선승처럼 범상치 않아 보인다.신라 애장왕 3년(802년), 부처님의 가호로 공주의 난치병이 낫게 되자, 순응과 이정 두 대사의 발원으로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당시 왕은 서라벌을 떠나 원당암에서 불사를 독려하면서 국정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원당암을 ‘수도 서라벌의 북쪽에 위치한 궁궐’이라는 의미에서 북궁(北宮)이라 불렀다.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飛鳳山) 기슭에 위치해 봉서사(鳳棲寺)라 이름하였고 진성여왕 때부터 본격적인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여 원당암이라 불렀다. 또한 1887년 전후에는 원당정토사(願堂淨土寺)라 칭해 중창불사와 함께 염화만일회를 결사해 국난극복을 발원했다.아름드리 팽나무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전나무가 산문을 대신하고, 이내 크고 작은 전각들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린다. 묵언수행 하듯 서 있는 고목들이 암자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 주는데 절은 조용하다. 묵직한 고요가 나를 긴장시킬 때, 까마귀 울음이 정적을 깨며 숲을 흔든다.지혜의 칼을 찾는 집, 심검당(尋劍堂) 뒤쪽에 중심 전각인 듯한 보광전이 숨어서 기다린다. 고요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작은 법당의 꽃문살이 애써 쓸쓸함을 들키지 않으려 유난히 화려하다. 매화와 목단, 소나무, 학 들이 펼치는 무한 긍정의 세계는 추운 날이 와도 흔들림이 없으리라.법당 안에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과 해인사에서 주석한 아홉 분의 고승진영이 모셔져 있다. 누군가 피워놓은 향이 법당 안을 경건하게 밝히고 나는 남편과 나란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 향 내음이 게으름으로 괴로워하는 세포들을 깨운다.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살다간 선사들의 향기를 더듬는 동안 내 기도는 싸늘하게 식어가도 좋다.보광전 앞을 지키는 보물 제 518호인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은 단아하면서 공예적 수법이 뛰어난다. 벼루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점판암을 화강암 위에 탑신으로 세운 다층석탑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석탑과 석등, 지난했던 시간들이 응축되어 빛난다.미소굴이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혜암 큰스님의 사자후가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평생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만 공양하며 용맹정진하신 큰스님의 서늘한 기운을 미소굴은 흐트러짐 없이 간직하고 있다.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으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아들인다는 최고의 전망대 운봉교에 서자 법보종찰 해인사가 손닿을 듯 가깝다. 오랜 세월, 수많은 선지식들이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머물다 간 신성스러운 수행도량, 그 엄숙한 눈빛과 마주한다. 가야산을 감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들이 잡힐 것만 같아 오래도록 자리를 뜰 수가 없다.조낭희 수필가그런 나를 달마선원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생전에 큰스님이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던 시민선방, 그 침묵 앞에서 나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지혜의 빛을 찾아 먼 길을 달려 왔을 사람들, 봄날이 오면 저 선방의 댓돌 위에 내 신발 한 켤레도 안부를 여쭐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요즘 의도치 않게 당면하는 문제들과 우연히 만나지는 선지식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고 캄캄해도 변하지 않을, 그런 당신 내 안에 함께 하라고 이곳으로 이끈 이는 누구일까?청량한 바람이 인다. ‘공부하라’는 거룩한 말씀 하나 품고 무생교를 건너는데 어떤 부부가 말을 걸어온다. “원당암에도 볼거리가 있던가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나란히 암자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의 돌아 나오는 발걸음에도 지혜의 등불 하나 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

2020-11-30

가장 모범적인 미술사 교과서 ‘서양미술사’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서양미술사 입문서로 미술사의 흐름을 가장 교과서적으로 서술한 책은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이다. 1950년 파이돈 출판사가 소개한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어를 포함해 25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700만부 이상 판매된 미술사 관련 서적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스테디셀러이다. 그런데 정작 책을 쓴 저자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곰브리치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곰브리치는 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곰브리치라고 발음되지만 독일어식 발음으로하면 ‘곰브리히’가 맞다. 곰브리치는 교육수준이 높은 오스트리아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곰브리치는 1928년 빈 대학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한다. 당시 빈 대학은 ‘빈 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미술사의 학문적 전통을 세운 주요 인물들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술사학은 이제 막 주요 대학들에서 학과로 설치되기 시작한 신생학문이었기 때문에 연구방법에 대한 학문적 토대가 조금씩 정립되어 가던 상황이었다.빈 대학 재학 중 곰브리치는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잠시 빈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시간을 보냈다. 뵐플린은 ‘미술사 기초개념’이라는 저서를 남긴 미술사학인데, 미술작품의 형식 분석적 연구방법 발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두 대의 디아프로젝터를 이용해 두 점의 미술작품을 나란히 투사해 비교하는 강의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 뵐플린이다.곰브리치는 1933년 이탈리아 만토바에 자리한 줄리오 로마노의 팔라초 델 테를 연구해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5년 청소년을 위한 짧은 세계사를 출판했고, 이듬해인 1936년 런던으로 건너갔다. 1944년부터 런던의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바부르크 연구소는 서양미술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곳으로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바부르크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 아비 바부르크(1866∼1929)이다. 바부르크 가문은 함부르크에서 은행을 운영하던 대부호였고, 아비 바부르크는 가문의 장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아야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고전 문헌과 역사 그리고 미술사 연구에 심취해 있었다. 아비 바부르크는 동생에게 가업을 양보하는 대신 평생 원하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그 후 동생의 경제적 지원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했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함부르크에 미술사 연구소를 설립한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으로 연구소를 안전한 런던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편집증적인 성격의 아비 바부르크가 발전시킨 미술사 연구 분야는 도상학이다. 도상학은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밝혀내는 미술사 연구 분야로 하나의 작품을 역사, 문화, 정치, 사회적 관점 등을 통하여 다층적으로 해석한다. 바부르크와 함께 도상학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미술사학자로는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3)가 있다.곰브리치는 1944년부터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50년 시대를 초월한 미술사 스테디셀러 ‘서양미술사’를 세상에 선보였다. 곰브리치는 1959년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어 1976년 까지 직책을 이어갔으며, 1970년 바부르크의 일생과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전기를 출판했다. 지금도 런던에는 바부르크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바부르크 연구소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서양미술사 연구소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미술사학자

2020-11-30

민주 시민(市民)인가, 팬덤 신민(臣民)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이다.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해야 할 ‘이성적 시민’이 팬덤(fandom)정치의 광풍(狂風)으로 ‘감성적 신민’으로 전락했다. 이른바 ‘문빠’나 ‘대깨문’처럼 정치권력에 예속된 신민들의 광신도적 행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물론 정치팬덤은 ‘빛과 그림자’가 있지만, 이들의 공통적 특성은 매우 감성적이고 편향적이며 과격하다. 대통령이나 정권의 실세가 좌표를 찍으면 ‘신민이 된 팬덤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신상털이·악플·문자폭탄·협박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떼처럼 달려든다. 같은 진영이라도 금태섭 의원의 경우처럼 ‘원팀(one team)’에서 이탈하거나 주군(主君)을 따르지 않으면 응징대상이 된다.‘문빠’에게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절대군주나 다름없다. 그는 ‘무류(無謬)의 신(神)’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신도가 된 팬덤들은 ‘최고 존엄(?)’을 위해 자신들이 기꺼이 ‘개싸움’을 하겠다고 나선다. 문 대통령을 지켜줄 테니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한다.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전광판에 “당신을 지켜드리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를 믿으세요.”라는 생일축하 광고까지 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주 시민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포기하고 ‘예종의 길’을 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에리히 프롬(E. Fromm)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갈파했던 것처럼, 자유를 포기한 신민들의 도피처가 바로 ‘파시즘’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유를 버리고 복종을 선택’하며, ‘듣기 싫은 사실’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원한다. ‘자유라는 소중하지만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싫어서 스스로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신민들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중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반지성적 광신도들에 의존하는 대통령의 팬덤정치는 국론 분열과 대립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이성적 시민의 감성적 신민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한다. ‘시민은 권력의 주체’이지만 ‘신민은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스나이더(T. Snyder)가 “이성이 감성으로 대체되고, 논리가 마비된 반지성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를 부른다.”고 경고했던 것처럼, 사실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정치팬덤들의 행태는 반민주적이다.이성적·균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민들’이기 때문에 그의 잘못을 비판할 수 없다. 외눈박이 광신도가 된 팬덤들은 대통령이 이용하기 좋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대상일 뿐이다.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이다. 시민은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자율성을 상실한 신민과는 다르다. 따라서 시민은 ‘신민이 된 팬덤들’의 무지와 반지성주의, 광신과 선동에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광신도들이 판치는 ‘광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민주시민의 사명이다.

2020-11-30

태양광발전의 진화

친환경·신재생에너지로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태양광발전이 진화하고 있다.그동안 태양광발전을 위해 산과 들을 온통 파헤쳤다가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인명피해를 입는 낭패도 적지않았다. 면적대비 발전효율이 낮다는 점도 약점이다.하지만 태양광발전 분야에도 혁명적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태양광 발전의 형태처럼 별도의 공간에 일률적으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에너지를 집합하던 형식에서 벗어나, 별도의 공간이 필요 없이 건축자재로 패널이 설치되며, 아름다운 외관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태양전지 패널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일명‘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System)’시스템이다. 이는 태양광 모듈을 건물의 외벽, 지붕, 창호, 발코니, 차양 시설 등 건축자재로 활용해 태양광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2000년대 이후 전력수요의 증가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에 따라 녹색 건축물의 건설이 요구되면서 최근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에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국내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코오롱글로벌, 에이비엠과 건물 일체형 태양광 모듈인 솔라스킨을 활용한 플러스 에너지 플랫폼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한 신성이엔지가 ‘솔라스킨’을 개발,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솔라스킨은 태양광 모듈에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제품으로 외관에서는 태양전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 일반 건축 외장재와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고, 무광으로 만들어져 빛 반사를 최소화한 것도 특징이다.특히 건물 외벽과 조화를 이뤄 고급 건축 외장재로 활용할 수 있다니 태양광발전이 우리 생활주변에 깊숙이 자리잡을 때가 머지않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30

선상 시위에 등장한 동해안 횡단대교

동해안 횡단대교(영일만 횡단구간) 건설사업은 2008년 정부의 광역경제권 발전 30대선도 프로젝트에 선정된 사업이다. 2011년 국토부의 타당성 조사로 동해안 고속도로 영일만 횡단이 최적안으로 도출된 지 10년 가까이 흘렀으나 예산 문제로 지금까지 미뤄져 오고 있다. 올해 경북도가 2021년도 국가 예산안에 영일만을 횡단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설계비로 200억원을 요청했으나 국토부 예산안에는 또다시 반영되지 않았다.작년 1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예타면제 사업에서도 탈락한 동해안 횡단대교는 동해안 고속도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 부분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2015년 포항-울산 구간이 개통되고 2023년 포항-영덕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나 영일만 횡단구간이 완성되지 않으면 동해안 고속도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지역민은 포항지진 특별법에 동해안 횡단대교 건설을 연계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측은 대답이 없다. 1조6천억원에 이르는 동해안 횡단대교 사업은 포항지진으로 침체에 빠진 포항의 경제를 견인하는 사업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특별법 연계 이유다.동해안 횡단대교가 조속히 건설돼야 하는 이유는 많다. 국가의 지역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실현돼야 할 사업이다. 전국에는 35개 해상교가 있으나 바다를 낀 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북은 해상교가 없다. 인천은 7개, 부산과 경남은 각 5개, 전남도 4개가 있다. 국토면적의 20%로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의 경북이지만 면적당 도로연장은 전국에서 꼴찌다.영일만항을 중심으로 한 환동해권 산업벨트 구축과 동해권 관광레저의 거점으로서 횡단대교 건설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지난 11월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포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이 즐길 국내 관광명소 개발이 필요한 점에서 검토해 볼만한 사업”이라 한 것이 그나마 희망적이다. 그러나 내년 예산에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으면 또다시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이강덕 포항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동해안 대교 건설을 촉구하는 해상 퍼레이드를 펼쳤다. 말이 퍼레이드지 해상시위나 다름없다. 10조원이 넘는 가덕도 공항건설에 특별법 발의까지 해놓은 여당이 동해안 대교 건설에는 무심하다면 이보다 심한 역차별은 없다.

2020-11-30

AI가 온다…코로나에 겹친 비보, 무조건 막아야

2년 8개월 만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전국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7일 전북 정읍 육용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AI 위기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바이러스 유형은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H5N8형’이다. 이번 AI는 세계적인 확산세와 맞물려 있어 더 심각하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은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검출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21일 천안 봉강천을 시작으로 같은 지역 병천천(11월 10일), 경기 용인 청미천(10월 28일, 11월 25일), 이천 복하천(11월 14, 19일), 제주 하도리(11월 22일), 강원 양양 남대천(11월 28일) 등에서 총 8건의 고병원성 AI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확인됐다. 정부는 시베리아 등 북쪽에서 유입된 철새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우리나라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건 2018년 3월 이래 처음이다. 정부는 정읍농장 오리 1만 9천 마리를 살처분했고, 반경 3㎞ 내 농장 6곳의 닭과 오리 39만 2천 마리에 대해서도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 중이다. 반경 10㎞를 방역대로 설정해 30일간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고 정밀검사를 벌이고 있다.유럽에서는 올해 349건의 AI가 발생해 지난해보다 30배 넘게 늘었다. 일본에서도 2018년 1월 이후 처음으로 AI가 나왔다. 이달 초에는 일본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돼 일본산 닭고기·계란 등의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원인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변이를 일으켜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현재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 전파된 적은 없다. 그러나 2014년 중국, 라오스 및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한 H5N6형 AI의 경우, 올해 11월 기준 중국에서 16명이 감염되고 그중 10명이 사망했다.코로나19 창궐로 가뜩이나 시름이 깊은 국민에게 AI경보는 공포마저 불러오는 비보다. 최고의 강력방역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2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