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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응급실 마비 직전인데 코로나까지 유행

심충택 논설위원 응급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끔찍했던 코로나19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대형병원이 의사가 부족해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상태다. 대구·경북 지역민은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전염병으로 인한 응급의료시스템 붕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피부로 체험했다.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 명이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때,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대구경북을 봉쇄하라”,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며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질병관리청 집계에 의하면, 코로나 입원환자는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여름철 유행 동향과 추세로 볼 때 8월 말이면 주당 35만명의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니 충격적이다. 대구·경북 지역도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어 보건당국이 비상이다. 지난주에는 경북도내 노인요양시설과 요양병원 9곳에서 191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전염병 고위험군에 대한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특히 개학을 코앞에 두고 어린이 환자가 속출해 걱정이다. 어린이들은 감염돼도 무증상·경증이 대부분이어서 코로나 팬데믹의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대한아동병원협회가 소속병원 42곳의 코로나 아동 환자(16세 이하)를 조사했더니, 지난 7월 22~26일 387명에서 8월 5~9일 1080명으로 2주간 2.8배 늘었다. 초등학생·학부모 연쇄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지금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병원 이탈 사태가 6개월째 이어지면서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은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진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이라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 ‘의료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전문의나 간호사들을 통해 겨우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구지역 응급의료 대란설도 나와 시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대구시는 해당 글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하지만, 시민들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충남·충북 쪽에서는 24시간 365일 가동돼야 할 응급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때도 있는 모양이다. 동아일보 19일자 보도로는, 충북대병원은 지난 14일 오후∼15일 오전 분만과 심근경색 등 14가지 중증 응급질환 진료를 중단했다. 세종 충남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부분 폐쇄하고 있다.대학병원 교수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늘어나면 중환자 대응이나 치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최근 전국 수련병원이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마감한 결과, 대부분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지역 8개 수련병원도 추가모집 지원자가 전혀 없었다.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진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에 대비해 대형병원의 응급의료체계를 하루빨리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리사회에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

2024-08-20

APEC 통해 경주를 글로벌 도시로

경북도가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21개국 정상들이 머물 숙박시설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소식이다.21개국 정상들이 머물 숙소와 보문관광단지 인근의 숙박시설 재정비를 위해 PRS위원회도 구성한다고 밝혔다. PRS는 Presidential Suite의 약자로 거실 겸 응접실과 방, 욕실 등이 모두 갖춰진 최상급 객실을 뜻한다. PRS위원회는 외교부 추진단, 경주시, 호텔대표, 경북관광공사, 건축 및 리모델링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APEC 정상회의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내서 열리는 최대 규모 국제행사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21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행사일뿐 아니라 6000명이 넘는 각국 각료와 기업인, 언론인 등이 참석하는 행사다. 이 행사의 규모나 내용으로 볼 때 경주에 앞으로 이만한 행사가 또다시 유치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행사의 준비와 성공 개최는 매우 중요하다. 행사 성공 정도에 따라 천년고도 경주가 세계에 잘 알려질 수 있고 도시의 국제화를 꾀할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경북도가 앞장서 행·재정적 지원을 위한 조례도 만들고 각종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는 것은 APEC 경주 개최의 성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물론 범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은 필수지만 행사가 치러지는 장소인 경북도와 경주시의 준비와 노력이 행사 성공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 클 수도 있다.이철우 경북지사는 “경주 APEC을 역대 가장 성공한 행사로 만들어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고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과거 APEC 개최 도시 가운데 행사의 성공으로 도시를 국제적 명소로 만든 사례도 있다. 보문단지 내 호텔을 리모델링해 세계 최고 수준의 숙소를 만들고 행사장 주변의 도로 등 인프라를 잘 구축한다면 경주보문단지가 글로벌 명소로 뜨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 지사의 말대로 APEC 경주가 초일류 국가로 가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경주가 세계적 관광명소로 부상할 수 있게 완벽한 준비를 다해야 한다.

2024-08-20

‘포항지진은 人災’… 법원 이어 검찰도 인정

지난 2017년 11월 대학수능시험까지 연기시킬 정도로 피해가 컸던 ‘포항 지진’이 법원에 이어 검찰에서도 인재(人災)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그저께(19일) 포항지진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5명은 사업주관사인 넥스지오 대표와 이사,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대학 연구책임자, 정부 출연기관 연구원 등이다. 검찰이 포항지진 관련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것은 당시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지진을 충분히 예견하고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법원도 포항지진은 인재라고 보고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포항시민 5만여 명이 국가와 지열발전사업 관련 업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이번 검찰수사는 지난 2019년 피해시민들의 고소·고발로 시작됐다. 수사의 핵심은 지열발전소 측에 지진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17명(지진백서 인용)에 대한 과실 책임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번에 기소된 5명은 지난 2016년부터 지열발전사업소 건설 예정부지에 3개 단층대가 있음을 추정하고, 단층대에 수리자극을 줄 경우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하면서도 수리자극을 계속 준 혐의를 받고 있다.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지열발전소 허가에 참여한 고위공직자가 전부 배제되고 힘없는 연구원들 위주로 기소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범시민대책본부의 고소·고발 리스트에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포함돼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은 손해배상을 다툰 민사재판에서는 정부 과실이 인정됐는데도 불구하고,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포항지진 수사결과에서 나타난 검찰의 기소범위는 정부가 새로운 연구작업이나 정책을 시행하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주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4-08-20

어쩌다 보니 내몽고 여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사상 초유로 두 쪽 난 광복절 행사에 아랑곳없이 징검다리 연휴에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건국절 논란의 염증(?)을 떨치기라도 하듯 저마다의 목적지로 부담없이 떠났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니 하찮은(?) 일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홀가분한 여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정해진다. 아무리 지루하거나 빠듯한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라면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즐겁고 설렘이 가득할 것이다. 여행도 쉼의 일종이듯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의 풍경이 정겨움으로 다가올 것이다.반면 빨리 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보고 혼자 즐기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주마간산격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대부분 어떤 모임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마련이다.하지만 그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느 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여차저차 만나 우연의 일치로 떠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어떤 계기가 되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게 되는 것이다.그러고보니 지난 주 광복절을 전후해 다녀온 해외여행은 정말 즉석에서 던진 말에 우연찮게 동조하면서 어쩌다가(?) 다녀오게 된 것 같다. 길거리나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반가움을 더해 주듯이, 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정이 아닌 즉흥적인 발상과 추진이 한결 흥미와 설렘을 부추겨주지 않았을까 싶다.그렇게 떠난 곳이 내몽고이다. 중국의 다섯 개 자치구 중 첫번째로 지정된 내몽고자치구는 몽골,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17세기 무렵 당시 차르 러시아와 청나라의 이익 다툼으로 외몽고(몽골)와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는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정복을 이룬 불세출의 영웅 징기즈칸은 몽골에서는 영웅으로, 중국에서는 위인으로 추앙받기에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징기즈칸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르도스(궁전) 초원 한 켠에 유택(幽宅)을 마련하는 등 대대로 정복왕에 대한 존숭과 예우를 다하고 있다.광활한 초원에 말과 양이 풀을 뜯고 군데군데 전통가옥인 몽골포(게르)가 놓여진 목가적인 풍경은 더없이 낭만과 평온함이 느껴지지만, 유목민 몽골족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평균 해발고도 1300미터의 고지대로 밤하늘의 별들이 더없이 크고 초롱초롱 빛나며,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데 불현듯 빗금을 치고 사라지는 유성은 찰나의 삶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온순한 낙타를 타고 야트막한 사막을 둘러보다가, 그 옛날 아득한 고비사막을 건너며 삶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을 유목민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애잔함이 묻어나기까지 했다.그리고 푸른 초원에서 말타기를 해보니 척박한 땅에서 기마민족으로서 세계정복을 꿈꾸며 평원을 우렁차게 달렸을 몽골인들의 기개와 용맹함이 지평선 끝의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듯했다.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살고 말 위에서 바람처럼 사라져간다는 몽골인들의 애환과 운명이 곳곳에 펄럭이는 깃발로 아우성치는 듯했다.

2024-08-20

야생 코끼리를 움직이는 힘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야생 코끼리를 산 중턱 목적지까지 정해진 시간 내에 이르게 하는 것’이 조직의 변화관리이다. 미래를 향한 기업의 성장 과정은 변화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의 비전이 설정되고 이를 실현시킬 전략과 목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 속에 변화관리가 필요하다.변화관리(Change Management)는 조직이나 개인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계획, 과정, 도구 및 전략을 의미한다. 변화로 인한 저항을 최소화 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로 한다. 조직 내에서 새로운 전략, 기술, 프로세스 또는 구조의 도입과 같은 변화를 관리하고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조직의 변화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행동변화까지 포함한다. 변화관리는 조직의 목표 달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성공적인 변화관리를 위해서는 첫째, 조직의 비전과 목표 설정이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와 목표가 명확해야 하며, 모든 관련자에게 전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둘째, 리더의 강력한 지지이다. 변화의 성공 여부는 리더십의 지원에 달려 있다. 리더는 흔들림 없이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셋째, 참여와 소통이다. 변화 과정에서 관련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그들의 불만과 바람을 풀어줘야 한다. 넷째, 자원 제공과 교육 훈련이다. 변화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시간·인력·자금 등)이 제공되고 새롭게 도입되는 시스템이나 절차에 충분한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 다섯째, 점진적인 변화와 모니터링이다.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각 단계에서 성과를 평가하고 필요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변화 후 자리 잡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1980년대 GE는 변화 관리의 성공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다. 당시 CEO였던 잭 웰치는 비효율적인 구조와 문화를 바꾸고자 강력한 변화를 추진했다. GE는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구조를 평평하고 유연하게 바꾸고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품질 개선과 효율성 향상을 목표로 식스 시그마(Six Sigma)를 도입해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지속적인 성장과 높은 수익성을 유지 할 수 있었다.기업의 조직과 구성원은 야생 코끼리와 같다. 야생 코끼리의 습성은 본인 습관대로 움직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물가에 가서 놀고 쉬곤 한다. 이런 야생 코끼리를 원하는 목적지에 정해진 시간 안에 이르게 하는 길은 여러 요건이 있지만 아이(I) 관점이 아닌 유(You) 관점에서 생각하고 유도하는 것이 길이다. 기업에서는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생각과 문화의 차이로 시너지를 못 내는 경향이 있다. 조직에서 이를 해결하는 길은 MZ세대 생각을 반영하고 MZ세대 입장에서 해결안을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2024-08-20

‘비국민’이 기억하는 한국의 광복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1930~1975)는 60년대 이후 일본에서 장르소설, 특히 기업소설이나 모험, 추리소설 등을 쓰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한국에서 경험했던 전쟁에의 기억을 다수의 작품에서 남겼다. 한국에서는 1967년 신상옥 감독이 그의 소설 ‘이조잔영(李祖殘影)’을, 1979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그의 소설 ‘족보(族譜)’를 각각 영화로 만드는 등 그가 보여준 1940년대 무렵의 한국의 기억에 이해와 공감을 보냈다. 사진은 1963년에 ‘이조잔영’으로 나오키상 후보가 되었을 무렵의 가지야마 도시유키. 소설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는 1930년 한국에서 태어나, 소학교와 중학교를 경성에서 졸업하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던 것은 바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광풍과 패전이라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그가 첫 번째로 쓴 습작이라고 해도 좋을 ‘족보’가 바로 그 시기를 다룬 것으로, 제국주의적 폭력이 극에 다다랐던 1940년대 초 한국인에게 강요되던 창씨개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기억해둘 만한 지점이 존재한다.이 작품은 미술학교를 졸업했지만, 전쟁 동원을 피하려고 당시 경기도청 총무부에서 창씨개명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은 다니 로쿠로라는 주인공이 700여 년이 넘는 가문의 역사를 지키려고 창씨개명만은 거부하려고 하는 설진영이라는 이를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이제 쉰사오 세쯤 된 설진영은 소작미 2만석을 총독에게 헌납할 정도로 친일파로 자신의 가문 외에 아무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창씨개명을 강요하기 위해 윗선의 명령을 받고 그의 집을 방문했던 다니 로쿠로는 설진영의 딸 옥순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술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궤짝 가득 쌓여 있는 족보를 보여주며 성씨의 개명만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그의 태도에 한편으로는 공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답답해 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대단한 것처럼 내선일체나, 창씨개명의 대의를 내세우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목표 달성만을 독려하는 총무과의 과장이나 계장의 이중적인 태도에 반감을 갖는다. 결국 설진영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담당자들은 헌병을 동원해 그의 딸과 결혼하기로 한 남자를 고문하거나, 그의 손주들이 다니는 학교를 압박해서 창씨개명을 하도록 강요하고, 결국 그는 창씨개명 서류를 제출한 뒤 집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만다.이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창씨개명이나 전쟁공출을 강제했는가 하는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어떤 문장보다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리 민족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을 광복 이전의 가장 어두운 분위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듯하다.목표 달성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경기도 총무부의 과장과 자신이 대물림한 족보를 지키기 위해 성씨를 바꾸는 것만큼은 거부하는 설진영 사이에서, 이 소설 ‘족보’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우유부단함은 양분된 현실 사이에서 이해를 도모하는 유일한 입장일 수밖에 없겠지만, 과장은 그런 그를 ‘비국민’으로 취급하고, 설진영의 가문 사람들은 그를 총독부의 앞잡이 정도로 취급한다. 친일과 반일 그 중간 어딘가에 끼어 있는 존재인 그는 유일하게 족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는 존재지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중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그의 존재야말로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증언한다.8월은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뜻깊은 기간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하고 점령해서 식민지로 만드는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해 되새기는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그 쓰라린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그런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비국민’이라는 다른 자리와 다른 목소리로, 마찬가지로 폭력의 역사에 대한 폭로와 이해에 동참한다. 그 역시 기억할 만한 소중한 증언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4-08-20

추억 지우기

좋은 추억은 영혼의 허기를 달래준다. 오래 묵은 편지는 추억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건네주었던 편지들을 꺼내 읽는다. 삐뚤빼뚤 적힌 연필 글씨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더위에 지쳐 사라졌던 입맛이 금세 돌아올 것 같다. 빛바랜 편지마다 빠짐없이 들어있는 사랑한다는 말이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성적이 떨어져서 미안하다며 쓴 편지도 지나고 보니 사랑스럽기만 하다.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는 말은 읽을수록 기운 난다. 어버이날마다 편지와 함께 받았던 안마 이용권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넣어두기만 했었다. 지금 보니 까무룩 넘어가도록 좋다. 아이가 철이 들어 남의 나라 여행 가서 보내온 편지는 어찌나 절절한지 코끝이 시큰하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소중해서 마음 안에 오래도록 품고 싶은 보물이다.메일함을 연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광고며 스팸 메일이 수두룩하다. 수신인이 원하지 않는데 마구잡이로 보내는 건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차단하기 바쁘게 발신인을 바꾸어 다시 보내는 데도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수시로 버리지만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읽고 버리지 않은 메일도 가득 쌓여있다. ‘디지털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일 중엔 메일함 비우기도 있다는 걸 알고부터 언젠간 몽땅 비워야지 했다. 그런데도 하루 이틀 시간만 보냈다. 지구별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끄럽게도 내 게으름을 따라잡지 못한 탓이다. 받은 메일함의 숫자를 살펴본다. 천 개가 훌쩍 넘는다. 게 중에 꼭 보관해야 할 중요한 메일은 몇이나 될까.받은 메일함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니 2004년 4월에 온 것부터 저장돼 있다. 이미 이십 년 전부터 손 편지 쓰기를 그만두었다는 확실한 물증이다.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던 어쩌면 삭막한 시대에 디지털카메라를 옆에 끼고 어릴 적 꿈꾸던 작가 공부를 시작했다. 보낸 이를 훑어보니 가까이 지내던 수필가며 사진 선생님에게서 받은 메일이 대부분이다. 그 무렵엔 좋아하는 수필가의 홈을 들락거리며 글 얘기와 사진 얘기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홈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메일로 주고받았다. 각 문예지에서 처음으로 받은 원고청탁서며 별것도 아닌 내 글을 읽고 여기저기서 보내온 격려 메일도 숱하다. 정성껏 꾹꾹 눌러쓴 펜글씨는 아니라도 언제든 위로가 되어주는 고마운 글이다. 게 중에 아껴가며 보고 싶은 것들만 추려서 보관 메일함으로 보낸다.보낸 메일함 역시 만만찮다. 행사 때마다 글쓰기 동인들의 사진을 찍어 일일이 보내주고도 지우는 게 귀찮아 그대로 둔 게 태반이다. 여기저기에 보낸 원고들도 버려야 할 것들이다. 후배 작가들이 부탁한 습작품에 도움을 준 글들도 꽤 있다. 선배 역할에 충실하느라 다정한 인사도 잊지 않고 빼곡히 적어 놓았다. 종이 편지였다면 이미 내 것이 아닐 것들이 전자 편지라서 남아 있다는 게 괜히 무겁게 느껴진다. 다만 한 사람, 나를 무채색의 세상에서 꺼내 준 아름다운 수필가에게 꼬박꼬박 보낸 메일만은 따로 챙겨둔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도 그녀에게 빠진 내 마음이 배어있어 향기로울 거라는 걸 안다. 나머지는 눈 딱 감고 삭제 단추를 누른다. 후련하다.내게 쓴 메일함이 남았다. 수업 자료를 저장했다가 출력하는 목적으로 이용하는 요긴한 곳이다. 청소를 싫어하는 아이처럼 소용이 끝난 후에도 제 때 비우지 않아 눈덩이처럼 쌓였다. 제목도 없는 내용들이 그득하다. 처음의 자료가 뭘까 열어보니 박성우 시인의 ‘오이를 씹다가’란 시가 들어있다. 이 시를 암송할 때만 해도 아직 푸릇한 나이였다는 착각을 하며 잠시 추억에 잠긴다. 퍼뜩 마음을 다잡고 한꺼번에 삭제 단추를 눌러나간다. 박월수 수필가 메일함 전부를 비우는 데 꼬박 여덟 시간이 걸렸다. 제때 정리하지 않은 까닭에 버려야 할 것과 보관해야 할 것들을 구분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이십 년 동안 쌓아두고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개인의 사소한 기록을 보관해 주느라 지구 한 귀퉁이는 병들고 있었다는 늦은 자각이 든 때문이다. 우리가 인터넷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동안 데이터 센터에서 내뿜는 온실가스 발생량은 계속 증가할 게 뻔하다. 메일함을 비우는 일은 어쩌면 추억을 지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별을 생각한다면 소소한 것들은 버릴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것들은 마음 안에 간직하면 될 일이다.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 탄소발자국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족’이란 말이 유행한 지도 꽤 되었다. 현대인들은 잠시도 스마트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도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뿐 아니라 폐기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은 엄청나다고 들었다. 환경오염 따위 먼 나라 얘기라는 듯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바꾸기보다 십 년째 같은 폰을 쓰는 이가 많았으면 싶다. 낡은 스마트폰을 들고 메일함을 자주 비우며 쓰지 않는 코드는 뽑아 놓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지구별은 반짝이지 않을까. /수필가◇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2024-08-20

개돼지는 되지 말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유력 신문사 주필 이강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업 기사에 분노하는 재벌 회장 오현수에게 “대중들은 개돼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대중들은 개나 돼지와 같아 적당히 먹고 살게만 해주면 더 이상 짖지 않는다는 이 말은, ‘내부자들’의 명대사로 아직도 회자하고 있다.특히 이 말은 2016년 교육부 고위 관료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사용하며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당시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 군 사건을 거론하며, 어차피 모두 평등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영화 대사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영화의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사회 고위층이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실제로 내뱉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게다가 교육부 관료의 말에 동의하는 시선을 보고 있자니,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에 대한 나의 사고가 잘못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이른바 ‘건국절 논쟁’이 촉매제가 되어 정부 주도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야당과 독립운동단체가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부터 건국절 주장을 하는 세력은 있었지만, 뉴라이트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대통령의 역사관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건국절 추진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여기저기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그런 와중에 먹고 살기 힘든 국민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보도 되었다. 자신은 건국절에 대해 언급한 적도 지시한 적도 없는데 지금의 논쟁은 납득이 어려운 정치 공세라는 것이다.독립기념관장이라는 상징성이 지니는 의미. 좀 더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과 역사 인식의 연결고리를 사고하지 못하는,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기사였다.그렇지만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것은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은 역사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누구보다 ‘먹고사니즘’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우리의 오랜 반일 정서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 내 전공 분야에서는 일본인 연구자와의 교류도 매우 활발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지난 과거, 잊힌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올바로 설계하기 위해서 반성해야 하는 시간이다. 반성하지 못할 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평범한 사람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먹고 살게만 해준다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개돼지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개돼지가 되어갈수록 권력자들은 뒤에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처럼 말이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도, 반대로 더욱 예민해진 사람도 많아졌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2024-08-19

환경권

강길수 수필가 열대야가 모자라는지 일부 지역은 초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 한여름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지 않아 가로수 밑 잔디가 타들어 간다.방학과 휴가기가 겹쳐서인지 출퇴근 길이 한산하다. 한데도, 이따금 보행 중 흡연자가 있고, 보도 위엔 담배꽁초가 자주 보이며, 명함 광고지도 더러 있다. 또, 생활 폐기물 모으는 곳은 더 너저분하다. 공원 등의 낮은 담장 위에는 마시다만 컵, 캔, 병 같은 것들이 눈살 찌푸리게 한다. 그 외 이면도로변의 폐타이어, 물통 같은 주차 방지용 개인 설치 방해물 등 쾌적한 환경을 저해하는 것들이 많다.우리나라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환경권’을 천명하고 있다. 이 1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모든 국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음을 선포한다. 다음으로 ‘국가와 국민이 함께 쾌적한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상쾌하고 즐거운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은 국가나 국민만의 책무가 아니라, 공동목표이자 과업이라는 점이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환경 관련 법령과 규칙, 조례 같은 것들은 헌법에서 정한 ‘환경권’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법령도 실제 시행하는 규칙, 공고, 조례 등 하위 규정들의 디테일이 부족하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면도로 후미진 곳들의 지저분함, 시 우회도로 변의 쓰레기, 보도 위의 담배꽁초나 명함 광고지 같은 것들은 디테일의 부족함을 말하고 있다.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포항시 환경기본조례’와 포항시 ‘2020 환경백서’ 등을 폐기물 관련 항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대부분 국가나 상위 기관의 제도나 지침에 따른 원론적이고 거시적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시민들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디테일한 것들, 그 지역만의 특별한 문제 같은 사항들을 더 다룰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산뜻한 홍보 슬로건을 보았다. “바쁘신 고객님의 ‘깨끗할 권리’를 되찾아 드립니다”가 광고문의 요체였다. 회사명도 ‘깨끗할 권리’다. 30대 사장과 직원 1명의 소기업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헌법이 천명하는 ‘환경권’을 다른 말로 ‘깨끗함을 누릴 권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함에는 공기, 물, 소리, 음식물, 의복, 주택, 자연 및 생활환경 등 모든 인간 삶의 여건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그렇다면 공공재들인 건축물, 거리, 도로, 공원, 산하, 바다, 하늘까지 즉, 자연과 인공 환경 모두가 깨끗하게 관리, 지속되어야 한다. 그 주체가 국민과 국가라는 것이 우리나라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환경권이라고 본다. 나아가 이 환경권은 전 지구촌이 함께 추구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다. 환경에 관한 한, 지구촌이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결국, 나라의 온 기관과 국민이 담배꽁초 하나, 휴지 한 조각 안 버리기 같은 기초부터 해 나아가는 디테일을 살려내는 길이 환경권을 이루는 방안일 것이다.

2024-08-19

프란츠 파농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이날 우리는 간월암 거쳐 수덕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마지막 회의를 그쪽에서 갖기로 한 것이다. 합정동에서 셋이 만나고, 다른 세 사람은 간월암에서 합류하기로 했다.내려가면서 나는 계속 프란츠 파농을 생각했다. 마침 그의 평전 ‘나는 내가 아니다’를 읽고 있던 참이다. 파농은 1925년생인데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길지 않은 일생이었다. 백혈병이었지만, 그 전에 프랑스 정보당국에서 이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일종의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프란츠 파농은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출신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 노예의 후예였다. 비록 어머니는 흑백 혼혈이었다지만 그는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검은 피부를 타고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철학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평전은 말한다. 파농은 프랑스 정규 군대 군인이 되었다가 의대를 거쳐 정신과 의사가 되지만 결국 철학적인 저서를 쓰게 된다.‘검은 피부, 흰 가면’은 전체를 읽어보면 흑인의 ‘정신적’ 해방에 관해 쓴 책이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 사람들의 해방운동에 깊이 참여하지만 그의 저서는 흑인들의 진정한 자기의식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한국에서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사람은 김남주였다. 이 시인은 ‘남민전’ 준비위 사건으로 15년형을 받고 9년여를 살다 석방되었다. 그가 이 책을 번역, 출간한 때는 1978년이다. 그는 영감어린 시인의 문체로 이 책을 완역했다.김남주에 관한 회상들은 그가 전대 영문과 시절부터 이 책을 읽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그에게 한국 농민의 상황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상황과도 같은 것으로 느껴졌던 게 아닐까?김남주가 감옥에 갇혀 있던 1980년대에 상당수 지식인들은 한국이 ‘제3세계’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제3세계’라면 한국은 그 정태적 패러다임이 계시하는 탈식민지 해방 혁명이 아니고서는 구원될 수 없다.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의미의 혁명이 없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로 변모했다. 한국은 식민지의 유제라 할 분단을 청산치 못한 가운데에도 제1세계와 같은 ‘형상’을 취하게 된 것이다.이 문제는 아주 까다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 끝에 내가 찾아낸 해법은 제3세계론, 종속이론, 올드 마르크시즘 등 1970~1980년대를 풍미한 해방의 이론들은, 그 정태적 패러다임, 즉 어떤 불변의 구조를 상정하고 이 구조는 진정한 혁명 없이는 타파될 수 없다는 신념을 공유한다는 것이다.프란츠 파농, 김남주, 남민전, 제3세계, 혁명, 해방…. 혹시, 그 해, 1987년, 6월부터 7~8월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는 ‘전형적인’ 제3세계 혁명과는 다른 의미의 ‘진짜’ 혁명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짜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간월암이라는 이름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간월암 저편으로 아름다운 핏빛 석양이 졌다. 사람이 진실을 안다는 것은 단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한다.

2024-08-19

이젠 ‘천국의 미남’이 된 알랭 들롱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세기 중반. ‘지구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불렸던 프랑스 영화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알랭 들롱. 1935년생이니 향년 89세.지금은 70~80대 할머니가 된 한국 여성 다수가 영사막에 비춰지는 알랭 들롱의 우수어린 눈빛과 회색빛 트렌치코트에 매료됐다.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열광이었다.‘태양을 가득히’를 필두로 ‘한밤의 암살자’ ‘고독한 추적’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알랭 들롱의 반항적 이미지와 강렬한 눈빛은 동시대 미국 미남배우인 제임스 딘(1931~1955)과 비교되며 ‘프렌치 느와르(암흑가 남성들의 파멸을 다룬 영화)’라는 조어(造語)까지 생겨나게 했다.“인물값 한다”는 옛말처럼 알랭 들롱은 무수한 스캔들 또한 만들어냈다. 독일 출신 열아홉 살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시끌벅적했던 연애를 시작으로 나탈리 들롱, 미레유 다르크 등 사망 때까지 공식적으로만 5명의 여성과 결혼 혹은, 동거를 이어갔던 것.‘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알랭 들롱이 아기였던 시절 동네 산책을 나갈 때면 그의 엄마가 유모차에 이런 팻말을 붙였다. ‘제발 내 아기를 만지지 마세요.’ 너나없이 천사처럼 귀여운 알랭의 볼을 쓰다듬으려 했기 때문이다.뿐인가. 10대 땐 식당 앞에 서있으면 식당 주인이 스테이크를 공짜로 주고, 옷 가게 앞을 서성거리면 의상실 주인이 돈 안 받고 외투를 줬다는 이야기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돌았다.알랭 들롱에게 ‘미남으로 평생을 사는 게 어땠는가?’ 묻고 실은 남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그는 ‘지구의 미남’이 아닌 ‘천국의 미남’으로 닉네임을 바꿨기에. 멀리서 명복을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9

고준위법, 22대 국회서 반드시 통과돼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특별법안(이하 고준위법)이 어제 국회 산자위에 상정됐다. 이에 따라 21일 법안소위에서 관련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 이뤄질 것으로 전망이 된다. 지난주 여야가 본회의에 앞서 쟁점없는 여야 합의 법안을 신속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 따른 후속조치로 고준위법의 국회 통과가 또한번 주목을 끌고 있다.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 법안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될 만큼 다급한 법안임에도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22대 국회로 넘겨졌다. 1978년 우리나라가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이후 50년 가까이 쌓여온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한 방폐장 건립에 관한 법안으로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도 나와 있다.그동안 쌓여온 사용후 핵연료가 1만8000여t에 이르고 있고, 원전내 임시저장시설은 거의 포화상태다. 한빛원전은 2030년, 한울원전은 2031년, 고리원전은 2032년이면 더 이상 저장할 수가 없다. 원전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특히 고준위방폐장을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 37년이나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방사성폐기물 처리 과정에 원전주변 주민들의 관심이 비상하다. 원전주민들은 원자력내 임시 설치된 건식저장고가 영구 저장시설로 바뀔 것을 우려하고 있는 형편이다.원전산업은 탄소중립과 인공지능(AI)산업 발전에 따른 전력수요 폭증을 감당할 유일한 대안이다. 탈원전을 주장하던 유럽 주요국들이 원전으로 회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전생산 상위 10개국가 중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국가 원전산업의 발전과 안정적 유지, 원전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원전지역 주민들의 부담감 해소 등을 위해 고준위법의 국회 통과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그러나 이번 심의 과정에 야당의원의 법안 내용이 올라오지 않아 또다시 공전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국회가 쟁점없는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여야가 대승적 차원의 약속을 한 만큼 고준위법의 통과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2024-08-19

‘주민투표’가 새 쟁점이 된 TK행정통합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 합의안 마련과정에 ‘주민투표’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저께(18일) 경북도가 마련한 특별법안을 공개하면서, “행정통합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인 만큼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대구시와 경북도는 주민투표를 거치지 않고도 여론조사 및 ‘시·도의회 의결’을 거치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시·도가 지금까지 밝힌 행정통합 로드맵은 올해 안에 지역별 주민설명회, 여론조사, 시·도의회 의결 과정을 거친 후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지사가 이날 “주민투표를 하게 되면 특별법 제정이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고 말해, 이달 중 합의안 마련을 서두르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의중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 홍 시장은 “8월말까지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특별법안 마련은 장기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홍 시장은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도 “수백억원이 소요된다. 여론조사를 해서 일정 수준의 찬성 여론이 있으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언급했었다.경북도가 그저께 공개한 자체법안 내용 중 통합청사 수와 위치, 기초단체(시·군·구) 관할 방식도 대구시 안(案)과 달라 핵심쟁점으로 분류된다. 경북도 안은 통합청사의 경우 현행 시·도 청사 두 곳으로 유지하고, 기초단체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성돼 있다. 앞서 대구시가 내놓은 통합청사 수(대구·안동·포항 3개 청사)와 차이가 있다. 대구시는 통합의 중심을 대구청사에 두겠다는 생각이고, 경북도는 현 대구·안동 청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시·도 합의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예견됐었다. 대구중심의 행정시스템이 구체화 될 경우, 경북도내 시·군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전체적인 특별법안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합의가 이뤄진 만큼, 핵심쟁점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경북도가 최근 제안한 ‘공동추진단(행정통합 전문가와 지역대표 참여)’ 운영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24-08-19

육근상 시인 ‘동백’ 의 충청 방언 맛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평론가 임우기는 그의 비평문집인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솔, 2024)에서 “방언은 삶의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시를 직접 가져오는 것일 테니까 그야말로 삶의 내부에서 우러나온 자재 연원의 언어이고, 그것이 여러 현장의 구체성을 확보할 테니까 인위적 공교함을 앞서는 언어”라며 방언문학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외된 삶을 사는 자들의 방언 복권으로 아버지의 삶의 승리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문학적 승리라는 해독은 매우 난해하다. 시인의 눈에 비친 여항의 사람들의 삶을 방언으로 그려내면서 여항인들이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햇볕이 자주 다가서지 못하는 세계의 모든 소리들 그 가운데 기거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태양의 밝은 햇살에 조명된 표준어로 쓴 시에 가까이 다가서게 해준다는 자율적 시론을 확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문학방언이 놓여야 할 자리”라고 방언문학론을 펼쳤다. 그가 대표적 방언 시인으로 꼽은 시인 육근상은 충청 방언으로 온전한 시를 창작한 많지 않은 시인 중의 한 분이다.육근상의 시집 ‘동백’(솔, 2024)에 실린 ‘해나무팅이’라는 작품을 보자. “해나무팅이라는 곳은/다 헐 수 웂는 말 빈 마당 휘돌먼/천장 내려온 먹구렝이 문지방 넘어 대숲 아래 똬리 틀고 있다는거다//새벽밥 준비허던 엄니/투거리 들고 장 뜨러 나왔다/아달아 오짠일여 언능 들어가자/아니다아니다 정짓간 들어가/주먹밥 쥐여주며 잽히먼 안 된다/엄니는 암시랑토 않응게 호따고니 넘어가그라/지푸재 새앙바위 뜬 그믐달인 거다/뒤안길 달음박질치다 넘어져/손톱 빠지고 이마빡 깨고/옆구리 터져 돌아와 보니/뚜껑이 개터래기 땅개 모르는 척이다/아무 말 허지 않는다/그슨새 지나간 자리 않고서야/숨죽이고 핀 꽃들 펀던 달려나갔겠는가/돌아보도 않고 피반령 넘어 갔겠는가“그는 왜 이 시를 방언으로 썼을까? 햇살이 내리는 마을의 한 모퉁이 자리인 ‘해나무팅이’는 시인의 고향집이다. 운동권 수배자 신분의 시적 화자가 꼭 시인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수배자 신분으로 숨어든 고향집 ‘엄니’와 동네 친구들과 문 앞에 매인 개도 이 시의 서사의 핵심이다. 이 시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부 토박이의 말로 표현함으로써 현장감과 서사를 더 견고하게 다져 준다. ‘암시랑토 않응기 호따고니 넘어가그라’가 이 시의 핵심행이다.‘나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경찰에 잡히지 말고 빨리 산을 넘어가 피신하라’는 ‘엄니’의 말은 캄캄한 밤하늘에 뿌린 핏빛별이 된다.반정부 시국 사건에 연루된 자의 실화사건이 문학장치에 올려져 엄청난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의 강압조치가 부풀어오른다. 문제는 이런 민중성을 이용한 작품의 상투성의 문제나 허구성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칠 사이가 없었다.부들부들 먹기좋게 잘 부풀어 오른 빵에 요기조기 보기 좋고 맛있게도 박혀있는 콩과 같이 친근한 방언 ‘그슨새’ ‘호따고나’, ‘펀들’은 독자들의 식감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육근상 시인의 ‘화엄장작’, ‘꿀벌’, ‘가을’과 같은 뛰어난 시에 펼쳐진 시의 말씨를 보면 그는 고향지명과 토박인 말씨의 청각적 인상을 매우 중시하며, 문학방언으로 진지하게 시작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꿀벌’이라는 시에서 “엄니가 생을 하다여/사경을 헤매고 있던 날/마당 가득하게 작약은 피어있었네/뜰팡에 벌통 몇 개 놓고/꿀 따곤 하셨는데/겨울날이면/늬덜두 목숨인디 먹구살으야지/아나 아나/벌통에 설탕물 부어주곤 하셨네(중략)/허리에 상복 무늬 하고/끝없이 걸어나오던 꿀벌들/밀랍을 먹감나무 가지에 발라놓아도/영영 돌아오지 않았네.”‘꿀벌’의 묘사를 엄니 장례에 면한 상복으로 처리한 점도 대단하지만 그 이전 수배자 신분으로 엄니 곁을 지키지 못한 시적 화자를 대신한다는 상상력도 뛰어나다. 엄니는 아들 대신 벌들을 자정으로 키웠고, 벌은 아들 대신한 상주 역할로 보답하는 것이다. 육 시인과 같은 민주운동의 세력을 배출한 것은 세상일과 아무 관계없는 듯한 무지랭이 농사꾼의 아내요 육시인과 같은 아들을 키운 ‘엄니’들이다. 민주화의 주류 레짐의 밑에는 한국의 어머니가 ‘지령의 기화’(임우기, 329)임에 틀림이 없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노동에 시달린 못난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류를 키워내었기에 그들의 시골 방언은 그들의 심회를 그대로 전달하는 강력한 힘의 언어인 것이다.

2024-08-19

바다 위에 떠 있는 신사(神社)를 찾아

지금까지는 히로시마와 관련해 원폭이나 전쟁에 관련한 이야기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그러나 히로시마는 아름다운 경치로도 유명한 곳인데요. 히로시마현을 일컬어 ‘일본의 축도(縮圖)’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로시마에는 일본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바다, 섬, 산, 평야 등이 모두 존재합니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세토나이카이국립공원’(1934년 지정)의 중심지도 바로 히로시마현이며, 히로시마현에는 두 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두 개의 유산 중 하나가 바다 위에 지어진 이쓰쿠시마신사(53B3島神社)인데요. 4월 27일 우리 일행이 향한 곳은 바로 이 신사입니다.이쓰쿠시마신사가 있는 히로시마현 남서부의 이쓰쿠시마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히로시마 시내에서 열차를 타고 35분 정도를 달려 미야지마구치역에서 내린 후에, 다시 페리로 갈아타고 10여 분 정도를 더 가야 합니다. 이 날은 미야지마구치역에서부터 수많은 일본인들로 발걸음을 떼어 놓기도 어려울 정도였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은 골든위크(황금연휴)로 불리는 긴 연휴의 첫 번째 날이었습니다.보통 4월 29일인 ‘쇼와의 날’부터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일주일이 넘는 연휴 기간을 일본인들은 ‘골든위크’라 부르며,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고는 하는데요. 2024년에는 토·일요일과 대체 공휴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골든위크가 무려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저희는 미처 그 정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일본인들이 모두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골든위크의 첫 번째 날, 일본 3대 절경(나머지 두 개는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와 미야기현의 마쓰시마)의 하나로 꼽혀 평소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이쓰쿠시마에 간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면 가장 이색적이면서도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이 아마도 신사일 텐데요. 신사는 그야말로 일본인의 일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초가 되면 유명 신사에는 수백만의 사람이 방문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기도 하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날 때면 일본인들은 늘 신사에 가고는 하니까요. 이러한 신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사를 의미하는 옛날 단어가 ‘모리(森, 숲)’였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모든 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먼 옛날의 일본인들도 장엄하거나 아름다운 자연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는데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성한 장소에 신전을 짓고 의례를 치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신사라고 합니다. 지금도 신사는 신성한 느낌을 주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이쓰쿠시마의 자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섬의 중앙에 자리한 해발 535m의 미센산(5F25山)이 지닌 능선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쓰쿠시마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요, 수백만 년 동안 화강암이 풍화되며 연출된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인하여, 고대로부터 일본인들은 이 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섬 전체가 ‘신의 섬’으로 신성시되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미센산의 능선이 마치 관세음보살이 누워 있는 모습에 비유되기도 했다고 하는군요.그랬던 이쓰쿠시마신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크게 개축된 것은 1168년 다이라노 기요모리에 의해서입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자신의 구미에 맞춰 천황을 갈아치울 정도의 막강한 실력자였는데요. 그는 당시 송나라와의 무역 거점을 하카타(후쿠오카의 일부)에서 오오다와토마리(고베의 일부)까지로 확장시켜 더욱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자 했으며, 이 때 세토나이카이에 자리한 이쓰쿠시마신사를 해상활동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쓰쿠시마의 광장에는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지금도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페리에서 내려 이쓰쿠시마신사로 향할 때는, 수많은 관광객만큼이나 많은 사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는데요. 이쓰쿠시마에는 현재 약 500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신사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붉은 색 도리이(鳥居:신사 입구에 세운 문)인데요. 무게가 60톤이나 나가며, 높이 16미터 둘레 10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도리이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습니다. 이 도리이를 제대로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스팟에 서기 위해서는 길게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습니다.이쓰쿠시마신사에는 일본의 신불습합(神佛習合,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융합되어 하나의 종교 체계를 이룬 것)이라는 종교적 전통을 반영하여, 수많은 불교 유산이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 날 우리는 점심으로 히로시마 특산의 장어덮밥을 먹었는데요. 독특하게도 이곳에서는 우나기(민물장어)가 아닌 아나고(바닷장어)를 사용하여 덮밥을 만들었습니다.가격은 우나기보다 저렴하면서도 담백한 맛은 오히려 나은 아나고덮밥과 함께, 이번 히로시마 답사는 조용히 저물어 갔습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8-19

평범함에 대한 존경

지난달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이제 약 50일 정도를 함께 한 셈이다. 그 중 아내의 회복을 위한 입원 기간과 산후조리원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내 손으로 육아라는 것을 하게 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육아는 고단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내와 둘이 함께 아기를 돌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육아는 쉽지 않다. 세 시간 반에 한 번 아기는 분유를 먹는다.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잠투정을 받아주다 다시 잠을 재우는 과정은 아무리 빨리 해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두 시간 쉬고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인데, 체감적으로는 물 한 번 마시고 나면 또 아기가 깨어나 밥을 달라고 보채는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백일의 기적’을 우리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 무렵이면 아기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백일까지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것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그래도 우리의 아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과정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육아 선배들이 이미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고단함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겨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오기가 되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만들기도 한다. 육아는 평범한 행위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었고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고 해서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한 책임감으로 한 생명을 끌어안고 고단한 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걸 해내었거나 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육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일들이 아주 많고 매일같이 그것을 해내며 살아가는 위대한 사람들도 아주 많다. 나는 살면서 ‘나인 투 식스’라고 이야기하는 고정된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살아본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부터 그런 삶을 가까이서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매일 아침 이른 시각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은, 그것을 언제나 해 나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이라 느껴질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대단한 일이다.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는 나도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웃는 얼굴로 아내의 출근을 배웅한 뒤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는 침대에서 간신히 손만 뻗어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고, 또 언제부터는 아내의 출근을 보지 못한 채 홀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이 많아졌다.회사에 출근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하루는 계속된다. 회사에 책상이 있다는 것, 아니면 근로 현장에 자신만의 포지션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출근 하지 않는 프리랜서 예술인인 나 역시 책임감을 느끼며 내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책임감이 있는 것과 책임이 주어지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필요한 시간만큼 책임감의 스위치를 켰다가 다시 끌 수 있지만,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최소한 그 조직의 업무시간 만큼은 지속적으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일상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매우 무거운 일이며 대단한 일이다. 자신이 놓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분명 위대한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퇴근해서는 어떤가. 우리는 또 다른 호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을 맞이하곤 한다. 부모, 자식, 때로는 친구라는 호칭조차도 책임감을 요할 때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역할 또한 잘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경우처럼 육아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부모님을 챙기기도 하며 외로운 친구들에게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그 과정마저 해내고 나면 진정한 자유시간이 잠시 주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마저 다음 날을 또다시 위대하게 보내기 위해 절제력을 발휘하곤 한다.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하루는 사실 이토록 위대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남들이 그렇게 해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부터 자신을 존중하고 칭찬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위대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2024-08-19

그렇게 있어 줘, 빛나는 별처럼

‘킹 오브 프리즘’이 개봉할 것이라는 소식(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면 이미 개봉한 뒤겠다)을 들었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겠지만 어쩐지 관련 내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애니메이션은 내게 ‘응원상영’이라는 흥미로운 문화를 알려준, 일종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호흡하는 모습. 스크린에 명시되는 배급사를 향해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엔딩곡이 끝나면 “앵콜!”을 외치는 장면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런 식의 관람도 가능하구나. 저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고.극장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정숙을 요구해 왔다. 나 또한 예민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으로 극장의 침묵을 중요시 생각한다. 이러한 뾰족함은 영화가 시작하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데, 옆자리 사람이 팝콘을 먹기 위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고 타인의 불규칙한 호흡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힘겨울 정도다. 가끔은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고 싶다. 이봐요. 당신의 숨소리가 매우 크다는 걸 알고 있어요?응원상영은 다르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고 응원봉을 흔들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당연하다. 작품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킹 오브 프리즘’에는 여자 캐릭터의 대사를 관객에게 넘겨주는 부분이 있으니. 남자 캐릭터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 목소리 높여(그리고 진심을 가득 담아) “좋아!”하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나는 오랫동안 이 애니메이션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찾아온 꿀 같은 공휴일, 나는 마음먹고 이 작품을 정주행하기로 했다. 전작인 ‘꿈의 라이브 프리즘 스톤’을 감상하는 것부터 시작, ‘킹 오브 프리즘’의 극장판과 애니메이션을 차례로 독파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의 서사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어떤 부분에서는 눈물을 찔끔 흘리기까지 했다.한동안 나는 ‘프리즘 스타’들에게 빠져 지냈다. 방 청소를 하다가 “작사, 작곡은? 신도하!”라고 외친다든지, 강아지가 나를 향해 폴짝 뛰어들면 “미안, 난 모두의 것이니까” 하고 너스레를 떨고, 운전 중에 채우리의 ‘Blowin’ in the Mind’를 튼 뒤에 신명나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양자택일 극단적이야 넌 너무 긴장하지 마라, 냥냥 냥냥냥 냥냥!” 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정말이지 수치스럽겠지만, 나도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또한 내 동생이었다. 그녀의 2D 사랑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국적 불문, 장르 불문, 모조리 섭렵해 내는 2D계의 척척박사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나를 앉혀 놓고 ‘킹 오브 프리즘’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내가 감흥 없이 건성으로 듣자 맥 빠진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이 장르를 진심으로 즐기는 게 아니잖아. 다만 신기한 것뿐 아니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럴지도. 오랜 기간 나에게 있어 2차원의 존재는 ‘진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현실보다 더 현실다움을 느끼고 그 안의 인물이 떠나갈 때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하나의 캐릭터가 빚어지는 데는 무엇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조물주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나 완벽하게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와 “좋아하는 2D 캐릭터가 생겼어”는 충분히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어라 형용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 ‘너’로 향하는 일. ‘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의 하루가 맑아지는 일. 마음이 멀리 뻗어나갈수록 세계는 확장되고 혼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영역까지 가닿을 수 있다.어쩌면 나는 그러한 마음을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 하루를 보내고 자신 있게 “좋아해!” 하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그 힘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그것은 불행을 피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 ‘덕질’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 좋아하는 마음은 함께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고. 물론 그 세상이 늘 기쁘기만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애호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계속 그렇게 있어 주면 좋겠다. 빛나는 별처럼.

2024-08-19

인사 시스템에 문제 있다

김진국 고문 광복절에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데, 같은 시각 효창공원의 백범기념관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이 숙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북통일은커녕 남쪽마저 두 쪽이 난 광복절 경축식을 치렀다. 광복회 기념식 맨 앞줄에 민주당을 비롯해 야당 대표들이 앉았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정부 행사에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문제가 온 나라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려놓았다. 광복회 행사 발언은 더 고약하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다”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야당은 기념식장에 입장하기 직전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대회’를 열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년이 지긋지긋하게 길다. 혁신당은 야당·시민사회와 함께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이 이종찬 광복회장의 반발에서 비롯했다. 이 회장은 백범의 장손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을 추천했으나 탈락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뉴라이트’다, 건국절을 만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도, 검토한 적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김 관장을 사퇴시키라고 요구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회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과 종조부 성재 이시영 전 부통령 형제는 전 가산을 팔고, 온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명문가다. 이 회장은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작은할아버지(성재)께서는 정부 수립 전후로 사이가 틀어진 백범(김구)과 우남(이승만) 사이에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라고 말했다. 단독정부수립에는 우남 노선을 따라 부통령이 되었다. 더구나 이 회장은 지난해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 ‘이승만 우상화’라고 주장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광복을 위해 모두 바친 선조를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김형석 관장은 “건국절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뉴 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광복회나 야당이 밝힌 그의 발언을 봐도 딱히 문제 삼을 내용이 아니다. 광복절 행사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축식이다. 인사에 이견이 있다고, 오물을 뿌릴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 경영 능력에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관이 인사할 자리가 많다. 부처 내에는 물론 산하 단체 임원도 인사한다. 이것을 장관이 모두 임명하면 안 되고, 산하단체는 물론 부처 내 인사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실의 의견, 국·과장 재량권도 일정 비율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야 국장도 부하직원들을 지휘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종찬 회장은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사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이 아들 친구다. “모욕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인사를 들어주든 말든, 성의를 다했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더구나 임기가 절반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공공기관장·감사 자리 39%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52%, 나머지는 공석이다. 임기가 끝난 사람들도 후임 인사가 오지 않아 1년 넘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미루자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에게 줄자리인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총선이 지나도 그대로다. 낙선자 배려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꼭 챙겨야 할 자리 외에는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다 쥐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집착해 분란을 일으킨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의 관심사인 경우다.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정권 창출 기여에 대한 보상도, 검증도 모두 문제가 있다. 임기가 절반이 다 가도록 이 모양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2024-08-18

자생력 갖춘 미래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박남서 영주시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도시의 근간이 되는 경제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고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해나가면 제자리걸음뿐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시가 가진 산업의 경쟁력을 배가시키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영주시는 베어링으로 대표되는 첨단산업이 그 마중물이다.베어링은 산업제품의 정밀성·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산업의 쌀로 불린다.자동차 한 대당 100~300개가 사용되며 기차, 항공기, 스마트폰에도 필수 부품이다. 영주시는 일찍이 국가 기간 산업으로 꼽히는 첨단베어링에 주목하고 지역 특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최종 지정, 승인받았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으로는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첨단베어링 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경우 1만 명 이상의 인구증가와 760억 원 규모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 13일, 영주시는 경상북도 개발공사와 임종득 국회의원과 함께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500여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는 임종득 국회의원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최은석 의원, 최형두 의원, 이인선 의원, 이달희 의원을 비롯해 박성만 경북도의회 의장,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 박태규 재경영주시향우회 회장. 김진영 영주시민추진위원장 등 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단 지정에 힘을 모아온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해 영주시 베어링산단이 대규모 기업 및 투자유치에 성공해 경북은 물론 국가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해주기를 함께 기원했다.영주에 지어지는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는 영주 IC와는 4.3㎞, 영주역에서는 2.4㎞ 떨어진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게 된다.향후 첨단베어링 제조 기술을 활용한 많은 기업들의 입주와 함께 새로운 정주 인프라 등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다양한 사업들이 함께 추진될 계획이다.또, 이와 함께 지역에 위치한 동양대학교와 경북전문대에 베어링 산업 관련 인력양성을 위한 학과를 운영하고 고용보조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우수한 인력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문인력양성 사업도 차곡차곡 추진 중에 있다.시는 현재 국가산단 기업유치전략 수립 용역을 추진 중으로, 지속적인 기업 면담을 통해 친기업적인 지원제도를 발굴하고 있다. 또한 베어링 관련 산업과 경량소재산업을 하나로 묶는 ‘베어링·경랭소재 관련 기업 집적화 단지’ 조성도 추진 중에 있다.영주시는 일반산업단지 5개소, 농공단지 6개소 등 총 11개소의 산업, 농공단지를 운영 중인 경북 북부권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 산업도시로, SK스페셜티, 노벨리스코리아, 베어링아트, KTG 영주공장 등 관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168개 기업과 기업해피모니터, 1인 1기업 담당운영 등 소통창구를 원활하게 유지, 상생해 온 경험이 풍부한 도시다.지난 8월 6일 경상북도에서는 기업을 위한 경북을 민선8기 후반기 경제정책의 핵심 화두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영주시 또한 경북도와 발맞추어 일사천리 경제도시 조성을 목표로 기업지원실과 일사천리팀을 신설하는 등 인허가 원스톱 지원, 규제 완화 등 경제도시 영주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특히 올해에는 100개 이상의 베어링 관련 기업 방문 등 국가산업단지 기업유치에 적극 힘써 경북 북부 대표 산업도시에서 대한민국 대표 첨단도시로 도약해 나갈 계획이다. 도시의 자생력은 도시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과 매력에서 나온다. 경기침체와 인구감소 등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영주시는 도시의 매력을 하나하나 추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더욱 단단한 자생력을 갖추어 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변화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다. 영주시는 변화와 도전에 두려움 없이 계속해서 전진해 인구가 돌아오는 도시, 자생력 있는 도시 영주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2024-08-18

말 못할 첩첩은 내게도 있지

이희정시인 밤을 새워 만드는 사과파이에 첩첩이 있지수십 장 종이 같은 마음을 아주 얇게저미고 밀어 만드는 말 못할 첩첩이 있지물 마른 진흙 첩첩 비늘도 없는 미꾸라지들이가쁘게 서로의 몸을 휘감는 첩첩이 있고그래도 건널 수 없는 첩첩 마음이 거기 있지첩첩 모퉁이 돌아 첩첩의 고개가 있고오가는 걸음 첩첩, 얼싸안는 가슴이 첩첩우리가 함께 못하는 그 평생도 첩첩이지-김수환, ‘첩첩’전문 (‘사람이 간다’, 시인동네)김수환 시인의 ‘첩첩’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구조물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떤 시어나 비유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딱 들어맞는다.자칫 이런 상징은 언어유희로 한정될 수도 있지만, 이런 디테일은 시의 진정성을 담보한다. 이를테면 이 시에는 덜 조여진 ‘첩첩’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여유롭게 관조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매끄럽게 흐른다. 첩첩이 닿는 공간마다 적확하고 깊은 이 시는 말 못 할 첩첩이 제각기 한 작법으로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밤을 새워 만든 사과파이”에서 시작된 첩첩은 “수십 장의 종이 같은 얇은 마음”에도 잘 드러난다. 행간에 진입할수록 수사적 진술을 무척이나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테면 첩첩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간접화법으로 에둘러 가지만, 어김없이 첩첩에 적중한다. 시의 리듬을 통해 발화되는 첩첩들은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거느리고 있다. 첩첩이라는 어사(語辭) 하나가 이렇듯 많은 서사를 거느릴 수 있다니 충분히 다성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저미고 밀어 만드는”첩첩은 겹겹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전적 의미로 첩첩은 걱정이나 근심이 겹으로 쌓여있는 것으로 눈으로 보이는 외상의 겹겹으로 설명될 수 없는 더 깊은 정서가 내진한다.말하자면 이 시에서 첩첩은 도무지 “넘을 수 없는 고개”와 끝끝내“건널 수 없는 마음”을 되짚어 넘어보려는 태도이며, 서로의 몸으로 가슴으로 반복해서 설명되어 온 우리가 될 수 없는‘우리’에 대한 함축을 풀어내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시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서사 구조 속에서‘관찰되는 객체’일 수밖에 없는 첩첩을 말하지만, 특유의 생동감 있는 리듬으로‘정서적인 주체’로 환원되고 있다.여기서 첩첩은 압축된 현대시조의 말 부림만으로는 환유할 수 없는 시상이 중첩되어 있다. 크루아상의 외피처럼 사실상 속은 공기로 부풀어 비어있는데, 플롯은 꽉 차 있다. 원심력만으로 평생을 끌고 가는 첩첩은 가벼운 듯하나 아픔이 깊다. 바로 이 점이 “김수환 시인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은 그리움과 아픔”이라는 독해에 동의하게 되는 지점이다.이 시에 드리운 첩첩의 배경을 보라. “밤을 새워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물 마른 진흙”이고, “비늘도 없는 미꾸라지”이지 않은가. 풀리지 않는 매듭 앞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이 시는 헤어 나오기 어려운 늪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해도 독자에 따라 저 깊이까지 파고들게 하는 구심점을 목도 할 수는 있겠다.막막한 내면의 벽을 달콤하고 부드러운 외양 속에 숨긴 대상의 비유도 놀랍지만, 더 감탄스러운 것은 저마다의 첩첩을 대하는 자세다. “아주 얇게”“모퉁이 돌아”“가쁘게”시인의 이 작품은 시조라는 장르가 진부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고 입체적이다.그렇다면 이 첩첩의 막막함이 주는 무기력한 안온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벼운 듯 깊은 이 시의 정조가 당신에게 어떤 방향을 작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라앉아 가는 당신의 밤을 첩첩은 흔들어 놓을 것이다. 치료제는 없을지라도 사과파이 같은 달콤한 각성제는 들어 있기 때문이다.“오가는 걸음 첩첩, 얼싸안는 가슴이 첩첩, 함께 못하는 그 평생도 첩첩”

2024-08-18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 운동과 건강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통제를 받았다. 다시 말해 90개 이상 국가와 지역이 39억 명 이상의 사람을 집에 머무르도록 권고 또는 명령한 것이다. 이 같은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바이러스 확산은 둔화했지만, 운동 등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야외 장소나 공간 폐쇄로 중·고강도 신체활동량이 줄어들며 신체적·정신적 건강 불균형과 수면의 질 저하 등이 나타났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이 머문 자리에는 ‘신체활동 감소’라는 흔적의 자국이 남았다.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신체활동량 감소와 좌식시간 증가로 체력 저하는 불가피한 현실이 됐다. 특히 고령자뿐만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의 복합적 건강 위험이 컸다. 체력 감시 자료를 분석한 해외 연구에서도 팬데믹 기간의 5~17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모든 범주에서 체력이 떨어졌다는 보고가 나왔다. 체력의 변동은 코로나19 초반기에 가파르게 저하했다가 후반기에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비만 남자어린이들은 회복을 하지 못했다. 이처럼 취약집단에서 코로나19 건강 위험이 노출됐음에도 적절한 대안은 미흡했다.우리나라 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코로나19 이전 기간에는 신체활동 수준이 일관성을 보이다가 팬데믹 기간에 현저하게 줄었다고 보고가 됐다. 특히 노년층을 포함하여 개인이나 집단에서 팬데믹 기간에 신체활동량 감소가 뚜렷했다. 신체활동 감소는 비만과 마찬가지로 ‘감염병’ 범주로 다뤄지고 있다. 전 연령층에서도 어린이들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은 마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위기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코로나19 이후 수행된 대규모 전향적 코호트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19 발생 전 주당 최소 150분 중·고강도의 신체활동량을 유지해 왔던 성인들은 코로나19 감염이나 입원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또다시 닥쳐올 팬데믹을 대비하는 전략으로 정부나 지자체 및 기관이 나서서 노인과 학생들을 위한 신체활동 부족과 건강체력 유지 개선을 위한 온라인 기반 운동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이 부각되고 있다.코로나19의 경우 급성 단계가 지나면 일련의 증상들이 남아 만성 코로나19 증후군을 보일 수 있다. 이때도 운동은 관련 증상을 개선하고 코로나19의 장기적인 영향을 줄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적 운동재활 평가에서 신체적 운동은 호흡곤란, 피로, 우울증 개선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이 신체적 운동재활은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에 대한 잠재적 치료 전략으로 선택될 수 있고, 코로나19에서 회복한 사람들을 위한 임상 지침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운동 등의 신체활동 부족은 심장과 폐, 혈관의 기능을 떨어뜨려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암과 같은 만성질환 유발과 연관이 있다. 게다가 골다공증, 일반적인 골절, 치매 위험, 불안과 우울증 발생률 증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활발한 신체활동은 심혈관질환 및 사망률 위험을 감소시키고, 비만, 치매 및 알츠하이머 질환의 예방과 개선에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신체활동은 최소 25가지 만성질환에 대응하는 보호적 메커니즘에 작동한다. 신체활동이 잠재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감염에 대응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코로나19 팬데믹은 감염병에 대응하는 운동 이점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보건의료 연구 분야에서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했다.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코로나19 예방, 치료, 재활의 핵심 수단으로 역할을 했다. 즉 운동은 면역 감시 기능을 개선하고, 코로나19 감염에 저항하며 증상을 감소시키고, 회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재확인된 것이다.팬데믹 이전 주당 9시간 정도 빠르게 걷기에 해당하는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19% 낮았다. 특히나 신체활동이 활발한 성인의 경우 감염 위험이 11% 낮았고, 입원 위험이 36% 낮았으며 사망 위험도 43% 낮았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에서 우리가 다음 팬데믹을 대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욱 명확해진다.코로나19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한 번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운동 정보를 검색하고 따라 하려는 시도도 했을 것이다. 일부 지자체가 기본적인 신체활동 권고나 운동 동영상을 개발했으나 활용도나 적합성 평가는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최근 들어 다양한 운동 정보가 늘어나면서 코로나19 기간 중 운동 참여 여부에 따른 방해요인에 대한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다.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향후 팬데믹에 대응할 신체활동력 및 면역력 강화를 위해서는 참가자의 선호, 건강 및 체력 상태, 운동 시간과 강도, 부상 방지 대책, 교육 및 지도, 접근성, 사회적 연결 등을 고려한 근거기반의 맞춤형 온라인 운동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이 시급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및 기관의 세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4-08-18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뉴라이트(new right)의 역사관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광복절 행사마저 양쪽으로 갈라져 개최되었다.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뉴라이트란 무엇인가. 한국의 뉴라이트는 2004년 자유주의연대로 출범하여, 2007년 뉴라이트 전국연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보수적 학자 중심의 이들은 반공주의, 신자유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등 극우적 사고를 선호한다. 이들 중에는 과거 진보 좌파에서 ‘신흥 보수’를 표방하며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까지 있다. 이들은 ‘교과서 포럼’을 통해 역사 교과서의 개편을 시도하면서 ‘현대 사학회’를 통해 자신들의 극우적 주장을 파급하려 했다.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주요 기관이나 독립운동기념 단체 등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주요 공직에 뉴라이트 인사를 대거 기용하였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관련 대한광복회가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정치의 극한적인 대결의 기저에 뉴라이트의 극우 편향적 역사 인식이 한 몫하고 있는 셈이다.첫째,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시하는 친일사관과 상통한다. 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영훈 교수 등 뉴라이트 인사들이 출판한 ‘반일 종족주의’(2019년)는 한국사회 위기의 근원을 한국인들의 ‘반일 종족주의’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한국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비하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수많은 동포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전 민족이 고통 받은 역사를 인정치 않고 있다. 이들 중엔 일제의 ‘양곡 수탈’을 ‘수출’로 둔갑시키고 있다. 일제 시 일부 친일 부역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 백성들이 수난 받은 역사까지 부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그들의 역사 인식은 일본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의 역사인식과 괘를 같이한다. 쇼윈은 이토오 히로부미 등을 길러 조선 침공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그러므로 뉴라이트의 천박한 역사인식은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반민족적 친일사관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둘째, 뉴라이트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결국 상해 임정 등 항일 독립운동까지 폄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낙성대 연구소의 정안기 교수는 올해 ‘김구는 테러리스트로 살았다’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이렇게 되면 일제 시 대구에서 출범한 항일 무장비밀 결사인 광복회의 활동까지 모두 테러행위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의열단의 이종암, 청산리의 김좌진, 광복회의 우재룡, 상해 임정의 윤봉길의 활동마저 테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일제 시 수많은 항일 투사들이 일본 법정에서 폭력 테러 살인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김구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은 결국 일제의 단죄를 정당화시킬 뿐이다. 그들의 1948년 8·15 건국절 제정주장도 1919년 상해 임정의 역할을 비하 시키려는 의도일 뿐이다. 이들 뉴라이트 일부는 상해 임정을 정부가 아닌 ‘임의 민간운동 단체’로 폄훼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상해 임정에서 탄핵된 이승만 대통령을 극찬하고 있다. 이는 분명 반 헌법적 반역사적 역사인식이다.셋째, 뉴라이트적 인식은 대일 외교 등 현안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까지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노동자 강제 징용, 종군위안부 문제까지 일본의 요구에 양보해 버렸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요건인 한국인 강제 동원사실까지 기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일본정부는 최근 그것을 한국 정부와 수차례 협상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달 다녀온 일본 야마구치의 장생 광산에도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 137명이 수장되어 있다. 일본의 민간단체까지 이 문제 해결을 주창하지만 일본 정부도 한국정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뉴라이트 일부 인사들은 노동자 동원마저 강제가 아니고 위안부도 자발적 생계형이라고 동조하고 있다. 불행한 과거에 묶여 대일 협상마저 거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역사의 바른 인식은 협상의 전제이다. 신채호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주장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뉴라이트적 시각은 학자들의 연구 차원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허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런 뉴라이트 인사 25명을 정부 요직에 기용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윤석열 정부 들어서 국방, 통일부 장관, 국편 위원장, 한중연 원장, 동북아 역사재단 이사장, 과거사 정리 위원장 등 정부 요직에 이들을 임명 전진 배치한 것은 유감 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인식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대북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극한 이념 대결 정치로 치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라이트의 이러한 역사 논쟁이 국익에 도움보다는 분란만 야기하니 안타까운 일이다.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교육, 노동, 연금 개혁 등 3대 국정과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대통령의 30%대의 지지율 반등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 라이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은 민족의 정통성을 약화시키고,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훼손시킨다.

2024-08-18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

유영희 작가 생협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 일본 생협 활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를 영웅으로 배웠는데 한국에 오니 그들이 한국 사람에게 천하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리에게 사과했던 일이 있다. 올해는 부쩍 그때 일이 생각난다.79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광복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만 50회 외쳤을 뿐 일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8월 6일,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이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주로 맡았던 독립기념관장에 전혀 결이 다른 김형석 고신대 교수를 속전속결로 임명했다.김형석 신임 관장은 평소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여 뉴라이트 친일 인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임용 면접 때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들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 후 기자들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답변하여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는 대북지원금 5억을 통장 조작으로 횡령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사실도 있다.그런가 하면, 작년 12월에 나온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는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표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달 초에 나온 수정본에서는 독도 표기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교재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김좌진 홍범도 김구의 이름이 사라졌다. 국방부에서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을 실어 광복군과 독립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토대임을 명확하게 기록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색하다. 지난 16일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전시회도 보훈부의 압박으로 취소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고 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광복절에 맞추어 발간된 낙성대연구소 정안기의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테러리즘’을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라고 정의하고 김구의 9건의 테러 중 테러리즘 있는 테러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1건일 뿐, 나머지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라고 하면서 김구가 개인적 재물 탐심과 보복,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테러를 이용했다고 비판한다.그런데 암만 봐도 이 주장에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제목의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리스트라는 의미일 텐데, 저자가 말하는 테러리스트의 원뜻은 테러리즘 있는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테러리즘은 크게 109개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중 폭력과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는 특성은 대부분의 테러리즘 정의의 공통적 요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폭력과 정치적 목적으로 김구를 비판하는 저자의 테러리즘 정의는 상당히 주관적이기도 하다.같은 행위라도 내 편이냐 남의 편이냐에 따라 평가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묻는 79주년 광복절이 너무나 씁쓸하다.

2024-08-18

더운 여름날, 독서를 생각하다

최선희 경운대 교수 절기상 말복이 지났지만 당분간 폭염과 열대야가 전국적으로 계속될 거라고 한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사람들은 에어컨 아래로, 바람 솔솔 부는 나무그늘 아래로 모여들어 더위를 식히거나 바다나 계곡으로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도심 가로수의 싱그러운 초록빛은 더욱 짙어가지만 우리는 삼복염천(三伏炎天)에 힘겨워하며 기진해간다. 연일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지친 몸을 식힐 좋은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본다.인터넷으로 무더위 날리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도서관은 쿨 하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서울도서관을 비롯하여 서울지역 180여 개의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이 행사는 시원한 동네 도서관에서 더위를 피하고 냉방비를 절약하며 기후위기 극복에도 동참하자는 취지의 도서관 방문캠페인이다.경기도도 376개의 작은 도서관을 무더위 쉼터로 운영하며 더위를 피해 주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서 독서문화 정착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여름 독서캠페인은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그렇다. 더위를 이길 좋은 방법은 독서 삼매경에 빠져 편안하게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난무하는 정보에 휘둘리거나 타인에게 내둘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바라보며 적절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는 데 독서는 아주 유용하다.일찍이 사회학자 하워드 레인 골드(Howard Rheingold)는 로봇이 인간을 위해 남겨둔 일자리는 사고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상상하며 생각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자신만의 사고로 어떤 새로움을 창조해낸다는 점이다. 기계는 인간이 프로그래밍 하여 부여해준 일만 한다. 때문에 인간은 기계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남다르게 사고하며 상상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면 된다. 이런 창조성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며 그 힘의 원천은 독서라고 생각한다.인문학자이며 교육가인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그의 저서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에서 “21세기에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양분되는 계층사회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독서습관을 강조하며 독서유무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음을 역설했다.이제 독서는 우리의 취미와 선택을 넘어선 행위이며 사람이 기계에 대체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그만큼 독서는 인공지능시대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하는 경쟁력이 된 것이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경쟁력은 ‘생각’이며 이 생각을 길러줄 좋은 방법은 독서인 것이다.푹푹 찌는 날씨에 도서관에서, 시원한 계곡에서 한 박자 쉼표를 찍으며 독서에 몰입해보자. 저자의 생각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나아가 새롭게 해석하면 내 인생의 해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는 모범 답안이 없지 않은가. 내 삶의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거늘. 더운 여름날, 책읽기에 빠져 나를 통찰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 해보자.

2024-08-18

‘철쭉 작은 도서관’과 인문 강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열흘 전 무렵 전북 완주군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가까웠던 후배 2주기 행사로 울산에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원(疏遠)했던 터라, 비록 전화상이지만 매우 반갑고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인문 강연을 해보면 어떨지 넌지시 묻는다. 아주 적은 액수의 강연료를 걱정하기에 우리가 만나는 일이 중요하지, 강연료가 대수냐고 대답한다.그렇게 창졸간에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철쭉 작은 도서관에서 니체의 명저 ‘비극의 탄생’을 강연하게 되었다. 대학원 시절 읽으려고 무던히 애썼건만 완독하지 못했던 서책 가운데 하나가 ‘비극의 탄생’이다. 난삽하기로 유명한 니체의 첫 번째 저작이기도 했지만, 역자들의 역량 부족이 큰 문제였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見)’이 도통 불가능했던 터였다.지금까지 10명의 역자가 ‘비극의 탄생’ 번역에 도전했으며, 그 가운데 이젠 읽을만한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역시 세월이 명약(名藥)인 모양이다. 소양면의 근면한 독서인들이 모여서 니체의 난해한 책을 중간 정도까지 읽었으며,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빙해서 인문 강연을 요청했고, 내가 그것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비극의 탄생’ 강연회가 이뤄졌다.청도에서 대략 3시간 남짓 걸리는 철쭉 작은 도서관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강연을 위해 나는 꼬박 사흘을 바쳤다. 재차 독서하고, 내용을 정리하여, 파워포인트 형태로 재구성한 다음 서너 번 반복하면서 내용을 재삼재사 점검했다. 전문적인 독자들이 아니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서 가능하면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강연을 인도하기로 작심(作心)한다.어려운 내용을 전달하려면 우선 연사가 전체 내용을 숙지하고,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편안하고 평이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완주로 떠나는 시각까지 강연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강연장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채로운 연령대지만, 주력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효율적으로 독서하려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야’,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일과 나날’,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이것에 기초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로마의 호라티우스의 ‘시학’,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기의 부알로가 남긴 ‘시학’과 1980년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까지는 읽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인간이 나다.그런데 소양면 주민들의 학구열과 독서 의욕은 하늘을 찔렀고, 별로 재미도 없을 강연에 몰입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졸거나 딴전 피우는 사람 하나 없이 집중하는 그들 모습이 몹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강연 직후 질의응답 시간, 그 후에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이어져 멀리서 온 나그네의 마음을 흡족하게 인도하는 것이다.또 와주겠느냐는 질문에 응당 그리하겠노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고 크게 울려 나와 나도 내심 놀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인문 강연을 다시 떠올려 본다.

2024-08-18

대프리카 간판 내리나?

우정구 논설위원 매년 한증막 더위로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대구의 한여름 무더위가 올해는 대프리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다.오히려 서울은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져 118년만에 신기록이 세워졌고 부산도 2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강릉과 속초에서는 밤사이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많은 시민이 밤잠을 설쳤다는 소식도 들린다.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대구는 지난 50년간 폭염 일수가 1261일로 같은기간 광주(668일), 서울(393일)보다 2배 내지 3배가 많았다.대구는 팔공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안에서 생성된 뜨거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여름철이면 뜨거운 공기가 계속 머물면서 도시를 한증막처럼 대우고 있는 것이다.2010년 이후 대구 더위를 빗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고 대구 도심에는 더위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등장했다. 여름철만 되면 한증막처럼 무더운 대구의 날씨는 늘 전국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했다.최근 기상청이 10년간 5∼9월 사이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광주가 29∼32도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주와 대전이 그 뒤를 이었고, 대구는 전국 11번째로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열섬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가로수와 도시숲 조성사업을 지속 펼쳐온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없는 곳보다 3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 대구의 상징처럼 쓰였던 대프리카 간판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가 된 걸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8

외국인 광역비자, 지방소멸 막을 대안 되길

경북도가 전국 최초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던 외국인 광역비자 제도가 올 하반기부터 허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지난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지역 기반 이민정책 활성화 간담회를 통해 광역비자 발급 계획을 하반기 중 구체화할 것임을 밝혔다.광역비자는 광역단위 지방정부가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다. 법무부의 비자발급 및 체류기간 결정 권한의 일부를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넘겨받아 지역에 필요한 외국인 인력과 인재를 주도적으로 선정, 유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그동안 법무부가 비자를 발급하면서 수도권 중심의 외국인 정책이 펼쳐지는 등 외국인 근로자조차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문제를 야기했다. 경북도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지방의 인구소멸에 대응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계시키는 방안으로 광역비자제 도입을 정부에 제안한 것이다.전국 시도지사협의회의와 함께 전방위적 노력을 벌인 결과, 정부가 비자발급 권한의 일부를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넘겨주기로 결정한 것은 잘된 일이다.지방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의 상당수가 임금을 더 주는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현상은 그동안 다반사로 있어 왔던 일. 겨우 기술을 익힐만하면 수도권으로 인력이 빠져나가 지방의 업체들이 겪은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경북연구원 류형철 박사는 “경북의 생산연령인구가 최근 5년 사이 13만명이 감소하는 동안 경북에는 유일하게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났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안정되게 고용할 광역비자제가 절실하다”고 오래전 밝힌 바 있다.이 제도가 시행되면 지방정부는 지역실정에 맞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비자를 발급하게 되는데 제도 취지에 맞는 지역단위의 효율적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또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입법 추진도 필요하다. 2022년 광역비자 법률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돼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입법화가 돼야 한다.광역비자가 인구소멸 극복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단초가 되는 성과가 나오도록 하는 데에는 지방정부의 역할도 크다는 점 명심해야 한다.

2024-08-18

지방의회, ‘국회그늘’ 벗어나 전문성 갖춰라

지방의회는 항상 부정적인 이유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 중의 하나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33년이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지방의회 무용론’이 제기된다. 의원 개개인의 역량과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지방의회를 ‘지침’ 하나로 좌지우지하려는 중앙정부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공천횡포 탓도 크다. 포항시의회를 예로 들면, 지난달 후반기 원구성을 하면서 다수당의 전횡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시의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은 야당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의원총회를 열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지도부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구성된 시의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포항시의원 개개인의 자질론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본지가 시의원 33명의 본회의 시정질문 횟수를 점검해 봤더니, 단 한 번도 시정질문을 하지 않은 의원이 21명이나 됐다. 통상적으로 지방의원들이 자신의 홍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시정질문에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포항시의원 상당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조례안 발의에도 무관심했다. 제9대 전반기 임기 동안 조례를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이 7명이나 됐다. 물론 지방의회 출범 후, 일부 지방의원들은 생활정치를 실천하며 자신의 지역구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의원은 본연의 업무인 조례제정, 민원 해결, 정책 감시기능에 소홀했다는 것이 각종 통계자료로 입증된다.지방의원 자질론 문제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공천권과 관계있다.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공천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아마 국내 어느 지역이든 예외가 없을 것이다. 대구·경북의 경우 특히 특정정당 공천이 당선과 직결되기 때문에, 지방의원들이 의정활동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심 경쟁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난 2022년부터는 지방의회의 권한이 많이 강화됐다. 이제 지방의원 스스로 국회의원 그늘에서 벗어나 생활정치에 대한 역량과 전문성을 키워나갈 때가 됐다.

2024-08-18

누구도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탄탄 스님(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 예전 청주의 한 공원에서 몸소 겪은 일이다. 앞을 못 보던 어느 맹인이 타인의 수십 년 먼 훗날의 운세를 봐주고 있기에 하루 종일 그를 지켜보며 소일했던 적이 있다.점사를 묻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그의 호구지책이 염려가 되기는 하였지만 ‘크게 구김은 없겠구나’ 하며 해가 저물어가던 공원 벤치에서 막 일어서 요기를 하려가려는 찰나였다. 그도 일과를 다 마친 듯 접어두었던 맹인용 하얀 스틱을 꺼내 들고 공원을 막 나서려고 하다가 가로수 나무에 걸려 휘청거리는 모습을 봤다. 맹인이 고객들의 수십 년 세월의 운세와 점을 잘도 쳐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몇 시간, 몇 분 후의 운명은 모르는 법이다. 살아간다는 건 예측불허 미지의 세계다.현대사회가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천기를 읽어내고 일기를 예측하지만, 오늘 오후엔 비가 올 것이라던 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사람의 운명도 어느 날 어느 시에 운명의 장난에 의해 어찌 될지 모르는 처지여서 근친 혈육들이 재산상속 문제로 법적 송사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왔다.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살아생전 유서나 유언을 해 두는 것이 사후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한 치 앞조차도 예측불허인 삶을 예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16세기 일본은 백년이 넘도록 센고쿠시대(전국시대)로 수많은 다이묘들의 힘의 각축장이었다. 날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화가 그침이 없던 시절, 일본 열도의 통일을 거의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라는 무장은 18세가 되던 해 부친인 오다 노부히데로부터 가독(가장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물려받았다.가독이나 당주란 안동 명문 집안의 장자에서 장자로만 이어지는 종손처럼 가문을 번성케 하는 막중한 책무와 재산과 노비들이 주어진다.봉건영주의 시대, 많은 가신을 거느리고 전쟁에서 오직 승전을 하는 길만이 다이묘 자신 뿐 아니라 가문의 멸문지화와 가신들의 불운을 막는 최선의 상황. 그는 독점적으로 물려받은 가독의 자리를 기반 삼아 천하통일을 위한 기틀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고 있었다.오다 노부나가 또한 스물네 명의 자녀 중 장자인 오다 노부타다에게 가독을 물려주려는 의도였다. 일단의 군사를 맡겨 고도의 훈련을 시키던 시기에 그는 명리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49세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어느 날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측근에게 자신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동일한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을 데려 오도록 명령했다.교토의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 머무르고 있던 그에게 불려온 대장장이에게 물었다.“그대는 나와 사주팔자가 똑같은데, 어찌 하찮은 대장장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가?“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은근히 내세우며, 대장장이의 변변치 못한 모습을 보며 즐기듯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장장이는 고개를 바로 들고 이렇게 말했다.“현재 주군의 명성이야 세상에 자자하니 누구든지 부러워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제의 일인 것이고 내일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이 말에 불같은 성격의 오다 노부나가가 칼을 빼들고 대장장이의 목을 치려 하자 곁에 있던 측근들이 말렸다. 주군의 명성에 흠이 된다며 참으시라 한 것이다.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 노부나가가 머물던 임시 처소인 혼노지의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있어 잠에서 깼다. 자신의 측근 중 가장 충신으로 불리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휘하의 부하장졸 1만3천여 명의 군사를 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이다. 일본 역사의 그 유명한 반란, 즉 혼노지의 변고(本能寺の変)가 발생한 것이었다.당시 그는 불과 100여 명의 남짓의 가신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어 제대로 응전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예감하며 혼노지에 불을 질러 생을 마감한다. 인근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훈련 중이던 장남 또한 몰려드는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할복해 자살했다. 대장장이가 말한 그대로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왜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오다 노부나가의 성정이 매우 거칠고 부하를 함부로 다루면서 원한을 품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돈다. 또한 천하통일의 과실을 아케치 미츠히데가 가로채려 했을 수도 있다.그런 점에서 혼노지의 변고는 한국 현대사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박정희의 친위대장이기도 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10.26사태 하극상과 유사하다는 사가들이 평가가 있다.오다 노부나가처럼 박정희도 가장 신뢰하던 측근에게 배신을 당했다.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이다. 혼노지의 변이나 궁정동 만찬장에서의 시해 사건에서 보듯 역사의 흐름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급격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난다.일본 전국시대의 종결과 통일시대를 여는 변곡점이 된 혼노지의 변처럼 1979년 10월 26일도 한국 현대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다 노부나가와 박정희의 비극적 죽음. 그 이면에는 사소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고 추정된다.천하통일을 달성한 후 장자에게 가독을 상속하려던 오다 노부나가의 꿈도 그렇게 혼노지의 변고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권력과 부는 영원할 수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권력을 독점한 이도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린 이도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처참히 몰락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영웅도 한순간에 비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 이 두 사건에 잘 나타나 있다.권력을 지키려고, 재산을 지키려고 아무리 철저히 대비한다 한들 운명을 피해 갈 수는 없으니 그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다.“敵は 本能寺に あり!!”무장 가문들 간에 처절한 살육과 암투가 절정을 치닫던 그 센고쿠시대, 1582년 6월 2일 새벽 6시,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1528-1582)가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묵고 있는 혼노지를 포위하고 쳐들어가면서 부하들에게 내지른 명령은 이 한마디였다.불의에 모반을 당한 오다 노부나가는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피와 땀으로 어렵게 일구어 온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화염 속으로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헤이안(平安) 시대 이후 오랜 세월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을 이루어 온 교토(京都)의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대찰 혼노지에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던 오다 노부나가는 충천하는 살기와 날름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마지막 광기를 드러내며 불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024-08-16

기회발전특구내 기업 유치 지금부터가 시작

지난주 대구시는 모빌리티 부품기업 (주)하이박과 500억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6월 대구국가산단과 수성 알파시티, 금호워터폴리스가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이후 첫 투자 사례란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다.(주)하이박은 기회발전특구인 대구국가산단에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미래친환경차 부품 생산공장을 빠르면 오는 10월 착공한다. 하이박은 현재 현대·기아차 전 차종에 하이박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유망기업이다.기회발전특구는 교육발전특구와 함께 현 정부가 지향하는 균형발전을 통한 지방시대를 여는 핵심정책이다. 기회발전특구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상속세 공제를 확대하고 특구내 창업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7년간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 많은 인센티브를 준다.특히 지방정부가 규제를 직접 설계하는 규제특례를 도입해 기업이 지방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도록 했다.정부는 대구 3곳, 경북 4곳을 비롯 전국적으로 8개 시도에 20개 지역을 특구로 지정했다. 지역경제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각 지자체는 특구내 기업 유치에 경쟁적이다.대구는 대구국가산단에 하이박의 투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업 유치에 나서야 한다. 대구의 산업구조를 바꿀 혁신적 기업 유치로 대구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방균형발전을 목표로 정부가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한 기회특구에 기업을 얼마나 많이 유치하느냐는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노력에 달렸다.많은 기업이 몰려오면 지역에는 지역 인재들이 일할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덩달아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문제도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단지 정부기 각지자체의 기업유치 노력에 반하는 정책을 펴선 안 된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에 기회발전특구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생각은 정책적 모순일뿐 아니라 지방이전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의 발길을 막는 일이다. 지자체들의 기업유치 노력에 정부는 도움될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202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