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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8월 25일 현재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이달 1~24일 전국 폭염일수는 14.8일로 집계되었다. 최근 10년간 전국의 8월 폭염일수 집계결과 순위는 2016년이 16.6일로 1등이고 올해가 2등이다. 1등과 차이가 불과 1.8일인데 아직도 8월이 1주일이나 남아있어서 아마도 올해가 1등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전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린피스 동아시아가 발표한 국내 주요 25개 도시의 최근 50년(1974~2023) 동안의 여름철 폭염 발생일수, 지속도 등의 분석결과는 놀랄 만하다.지난 50년간 25개 도시 평균 폭염일수(5~9월)는 계속 증가하여 최근 10년(2014~2023) 51.08일로 20년 전(2004~2013)의 20.96일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2일 이상 연속 폭염발생 일수도 최근 10년이 40.56일로 20년 전 14.68일에 비해 무려 3배 정도 증가했다. 압권은 도시별 통계인데 최근 10년간 폭염일수가 가장 많았던 도시는 구미(106일)이며, 그 뒤를 이어 광주(105일)와 대전(96일), 대구(83일), 포항(81일) 순이었다.전국 분석 대상 25개 도시에 포함된 대구시와 경북도의 구미, 포항 등 3개 도시 모두 5위 이내 순위에 포함된 것이다. 그린피스 동아시아는 이번 폭염 리서치 결과가 폭염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하여 전세계 정부가 즉각적인 탄소감축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경고했다.그래야만 지금까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에서 상상하기 싫은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시대’로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지방정부와 도시가 이제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협약(GCOM, Global Covenant of Mayors for Climate Energy)으로 시행하는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주목받고 있다.‘GCOM’은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전환에 대한 세계 최대 지방정부 공동 기후행동 추진계획(이니셔티브)으로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 2024년 8월 기준 세계 140여 개국 1만3500여 개의 지방정부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서울, 대구, 경기도 등 7개 광역지자체와 서울 도봉구, 수원시, 포항시 등 20개 기초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는 2021년부터 ‘CDP’에 참여하여 2022년에 최고 등급인 A점수를 획득하였고, 2023년과 2021년에는 바로 아래 단계인 A- 점수를 획득하였다. 이렇게 대구시는 ‘CDP’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폭염적응 정책의 글로벌 리더십 단계를 계속 유지하여 최대 폭염도시에서 물러나고자 하며,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구미시를 비롯한 대구경북의 많은 기초지자체들도 GCOM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와 같은 지방정부 주도의 탄소감축 행동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2024-08-26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지난해 경남 김해에서 여중생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인 가해자가 2주 넘는 기간 폭행했다. 담뱃불로 지지거나 오물을 먹이는 행위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범죄 연령은 낮아지고 폭행 장면이나 신체를 촬영하여 유포하는 등 죄질마저 나쁘다.50대의 사회인이 허위 예약하여 음식점에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했다. 붙잡힌 후에 단순히 골탕을 먹이고 싶어서 했다는 변명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여성은 음식을 엉터리 주소로 배달시키고 배달되지 않는다고 항의 전화까지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장사하는 사람의 아픔은 보이지도 않는지.사는 게 힘들다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라면 하나 산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감옥에 가고 싶어서,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람을 죽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6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도 뚜렷한 이유도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방치하는 사이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비슷한 여건에 처한 사람들이 따라 하는 듯한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건 맞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삭막해지는 걸까.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많은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같이 모여서 일하거나 회사에 출근하기보다 재택근무 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직장인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느끼기보다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어디 일만 그런가. 밥을 먹는 일도 노는 것도 혼자 하는 것을 사회는 부추긴다. 회사는 끊임없이 1인용 식사 거리를 제공하고 게임 업체는 집에 틀어박혀서 혼자 노는 상품을 수도 없이 개발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식사하는 일도 택배회사는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의 삶을 돈으로 바꾼다.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에누리를 하고 다양한 삶을 만나는 기쁨을 우리 사회는 상품화하기에 바쁘다.살아가는 데 과정은 없고 결과만 남는 일상이 계속된다. 사람을 네모난 공간에 가두어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는 시대다. 이런 과정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은 겪는 힘든 시기에 사람을 붙잡아 주는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에 이미 없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며 인간의 정을 느끼는 시간도 사라졌다.그런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간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의 따스한 손을 잡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가. 지금도 찾아보면 세상은 따뜻하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왜 따스한 이야기는 자꾸 사라지는 것일까. 사람의 삶마저 자극적인 뉴스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은 아닐까.정치인들이 국민의 삶은 모른다고 자기네들만의 다툼을 벌이더라도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손에서 손으로 따스함을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우리를 위한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인간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2024-08-26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은 오후 1시에 플레이 볼! 고시엔 상공은 투명할 정도로 푸릅니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 마지막 장면이다. 쾌청한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으로 종이비행기가 날아가고 라디오에서는 고시엔 결승전을 예고한다. 고교야구 선수인 히로와 히데오 그리고 이들의 연인인 히카리의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 찬란한 청춘의 열정을 그려낸 스포츠만화의 수작이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라는 캐스터 멘트는 등장인물들을 영원한 여름, 영원한 청춘에 머물게 한다.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고시엔은 일본의 최대 스포츠 축제이자 모든 야구소년들이 꿈꾸는 무대다. 일본에서는 이 고시엔이 ‘여름’과 ‘청춘’의 뜨거운 상징이다. 약 3800개의 고등학교 야구팀 중 단 49개 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한번이라도 고시엔구장의 흙을 밟는 건 엄청난 영광이다. 경기에서 패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한 소년들이 울면서 유리병에 흙을 담는 건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시엔에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했다. 전교생 130명의 작은 한국계 학교, 운동장이 작아 정상적인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터진 야구공을 테이프로 감아 쓰면서도 선수들은 꿈을 위한 노력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다. 1999년 야구부가 만들어지고 몇 년 동안은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창단 35년만인 올해 새 역사를 썼다. 연장 접전 끝에 2대 1로 승리한 간토다이이치고와의 결승전은 그야말로 야구의 정수였다.그런데 박수만 받아도 모자란 이 위대한 승리는 곧장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다. 우승한 학교의 교가를 부르는 전통에 따라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고 한국 언론은 바로 그 한국어 교가, 그중에서도 ‘동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예민한 독도 문제를 포함해 반일감정을 드리우면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마치 일본을 정복하고 그들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은 ‘한국의 승리’인양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세력이 수치니 굴욕이니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교토국제고를 제명해야 한다는 여론 몰이를 했다.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눈물의 드라마를 낡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정치병자 어른들이 더럽힌 것이다.하지만 혐한은 일부일 뿐 일본 국민 대부분은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축하하며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는 축제 분위기다. 지역 언론은 호외까지 발행해 우승 소식을 알리고, 상인들은 우승 기념 할인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는 ‘교토국제고’를 검색하면 “우승 축하해”라는 메시지가 팝업으로 띄워지도록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비판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교토국제고 야구부 주장 후지모토 하이키 군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야구부원 61명 중 한국계 학생은 단 세 명뿐이다. 일본인 학생들은 오직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왔다. 한국어 교가를 바꾸는 것을 반대한 것도, 경기장에서 “동해 바다”를 힘차게 외친 것도 일본인 학생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 고시엔과 같은 대회가 있고 일본계 국제학교가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 소년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령 “후지산의 태양 찬란하다”로 시작하는 일본어 교가를 부르는 일이 가능할까? 광복절에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일본인 선수의 출전을 반대한 일부 팬들의 비난으로 두산 베어스 시라카와 게이쇼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식민 지배를 한 국가와 당한 국가의 역사적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반일에는 과거사를 바로 잡자는 나름의 응당한 논리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스포츠를 어른들의 전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우리는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하면서 등장인물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청춘 서사에 감동하지만 그들의 원래 이름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 카에데라는 사실은 잊는다. 교토국제고의 남학생들은 야구를 위해, 여학생들은 한류에 대한 호감으로 입학했다. 한국 인디음악의 명곡인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은 만화 ‘H2’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졌다. 정치가 과거에 붙들린 사이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더 나은 미래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2024-08-26

삶이 보내는 신호

최근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성격유형검사를 받고 왔다. TCI는 Robert Cloninger 박사가 개발한 성격 평가 도구로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7가지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는 심리검사다.생물학적 요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 그리고 환경적 요인과 개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성격’을 각각 나누어 평가하여 개인의 강점, 약점, 그리고 본인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검사를 마친 후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는데, 바로 기질의 위험회피(HA)부분에서의 예기불안이 만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인생에 만점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하필 심리 검사에서의 불안 부분이 만점을 받다니. 게다가 높은 두려움과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까지. 나의 못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아 와중에 얼굴이 자꾸만 붉어졌다.그 뒤로부턴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취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 떨어져 걷거나, 지나치게 좁고 거울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거나, 카페 테이블 모서리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컵을 보기 어려워하는 등,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 쓰는 행동들이 모두 불안도가 높아서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인 기질이라니 뭐 별 수 있나. 불안이 높다는 건 그만큼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싶어 조금씩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있다.나를 조금 더 알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좁고 어둑한 엘리베이터를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는 날에, 유난히 지독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날 때, 뭘 해도 일이 자꾸만 꼬일 때에 맞이하는 하루의 끝은 다시금 쓸쓸히 난처해진다.그럴 때 꺼내 드는 것이 감사일기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감사한 것들을 일기장에 부려놓는 것으로, 하루에 감사한 몇 가지들을 떠올린 뒤 단어로만 짧게 나열한다. 그날의 감사함은 친절한 사람에게 느꼈던 고마움일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일수도 있고, 또는 오늘 나를 편안하게 해준 물건일 수도 있다.조금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면 감사한 것들이 은근히 있다. 예를 들자면 이른 새벽의 맑은 숨,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모금, 버스에서 마주한 친절한 사람, 좋은 사람과의 건강한 대화 등. 종이 위로 기록되는 순간 그러한 것들이 선명해지며 불쾌한 불안보다 작은 기쁨들로 가득찬 하루로 기억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선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라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어려운 시절에 죽음을 생각하고’, ‘나는 이미 죽었으므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는 다짐을 한다.저자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다잡는 것처럼 나의 삶의 갈피는 감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기쁨을 주었던 날씨나 물건, 고마움을 느끼게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등 낯설고 불안했던 대상들을 하나씩 감사하게 기억할 때에 삶은 다정한 것임을 느낀다.또한 감사함을 기억하는 동안 따라오는 기쁨은 물을 길어 올릴 때의 마중물을 붓는 것과도 같다. 깊은 곳에서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많은 힘이 들지만 위에서 조금의 물을 부어준다면 금세 아래의 물이 빨려 올라온다.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삶의 즐거움은 불안 속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니 어려운 시절이 와도 삶에게서 온 편지에 회신을 남길 수 있다. 오늘도 작은 감사함을 느끼며 삶의 희열을 길어 올릴 것이라고. 다행히 삶은 답장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신호를 보내므로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써야한다.

2024-08-26

김동원 시인의 영덕 방언으로 바라본 바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입체물이 얹히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제 몸 하나로 일어섰다가 주저앉으며 하나로 모일 뿐이다. 바다의 소리가 있는가? 바다는 원래 언어를 잉태한 적이 없다. 바다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았지만 바다의 언어를 시로 쏟아낸 작품은 적지 않다. 바다,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대상으로서의 그 이전의 바다의 시니피에는 충돌이며 시니피앙은 하나의 몸일 뿐이다. 허만하 시인은 바다가 끊임없이 일어서려고 해도 본질적으로로 설 수 없는 존재의 한계를 노래했다. 선다는 것은 욕망이다.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것도 얹히는 것을 부정하듯 인간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동원(‘관해(觀海)’)은 ‘수평의 시’로서 바다를 관조한 철학적 함의를 품은 고급 시편을 발표하였다. 시인 김동원은 바다가 거부하는 사물을 바다의 몸 속에 투사시키는 고급의 시적 작위를 성공시킨 것이다. 경계와 이음, 주술과 접신을 배타적인 바다의 속성 안에 일즉다의 방식으로 내장시켰다. 일찍 바다에 침몰한 어부 아버지의 그리움을 일몰의 시간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저녁노을로 회생시켜내면서 고뇌와 아픔을 소멸로 녹여낸 멋진 시작으로 이어냈다.“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애, 뒷집 허삽이 아재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물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려오노!” -김동원의 ‘흐렁 흐렁, 흐렁’중김동원 시인의 내면에는 일찍 오징어배 침몰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웃 사람들의 죽음과 그토록 아름다운 바다와 상충되는 심층에 수장된 죽음을 그리고 그 물귀신들의 원혼들을 물려내치는 무술적인 기운이 서려 있다.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환영이 아니라 바다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적인 이물인 수장된 사람들의 이물과 그 영혼들을 바다 밖으로 불러내는 신굿을 하던 기억들과 만난다. 그 안스러운 물귀신들이 가 제 자식처럼 보였는지 ‘흐렁, 흐렁, 흐렁’이라는 시어는 물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신호이자 염원이다. “그래 그래 그래…. 물은 다 무탈하니” 동해에 빠져 죽은 모든 물귀신들아!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라는 강한 경상도 영덕 강구의 말씨로 염원을 빌고 있다.김 시인의 화법으로 “시는 풍경이다.” 그러니까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바다는 바다 이외에 어떤 것을 바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거센 파도를 세찬 풍파를 일으키며 살아 있음을 포효하고 있다. 그 바다를 관조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가 때로는 새로로 일어서려다가 때로는 가로로 끝없이 퍼져나가는 인력의 힘을 잠시도 쉬지 않고 위세처럼 펼치고 있다. 이 바다의 힘을 바다의 목소리로 전달할 때 제 맛이 살아난다. 김동원 시인이 바다를 관조하고 쓴 시들에 바다 소금바람에 쩐 강구 사투리로 시를 쓴 이유가 시적 현실감을 더 고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자 도구일 것이리라.“내가 바다를 바라본 까닭은, 밀물 속 흐릿하게 밀려오는 마흔에 가신 아버지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네 살 난 아들을 두고 가신, 그 흉중의 물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만 보면 청상의 어머니는 ‘아이쿠, 느그 아부지 바닷속에 장작불 때는 것을 좀 보래이’그러셨다. 동해를 숫제 우리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언나 고등어를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겨셨다. 나만 보면 까까머리 쓰다듬으며, ‘우예, 이리 제 아비를 닮았을꼬?’ 신기해 하셨다. 언재나 엇비슥 웃는 그 서른의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모란꽃처럼 환하셨다.”(김동원의 ‘흉중 1,’) 끊임없이 출렁이는 저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율동을 그리고 선율과 아침과 저녁이면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의 축제를 바닷속 깊은 가슴에서 끓어 올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솥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저 동해바다의 흉중에서 쏫아오르는 것을 아셨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을 집어삼킨 거대한 바다에서. 그 아침 핏빛 바다 물속 잠기여 꿈틀거리던 붉은 햇덩이는, 사무친 아비의 글썽이는형상이며 그것을 지켜본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이었음을 방언시로 노래하고 있다. 참 오랜만에 신선한 바다의 시와 자작 해설의 빼어난 글을 읽으니 무더위조차 저 멀리 달아난다.

2024-08-26

오스만, 끝나지 않은 제국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에 오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유럽에서조차 쉴레이만을 대제라 부르며 존경했다.‘쉴레이만법전’을 편찬해 그 옛날 로마제국이 누렸던 공존의 혜택을 골고루 부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입법자란 호칭이 따르기도 했다.당시에 잉글랜드 헨리 8세가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에스파냐 카를로스 1세인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호령했다. 또한 프랑스 프랑수아 1세와 더불어 쉴레이만 1세가 합세하면서 앞을 예측할 수 없이 유럽은 역동적이게 돌아갔다.1526년 초 오스만군대는 도나우강변의 노비사드 페트로바라딘 요새를 지키던 헝가리군을 물리치고 진군을 거듭했다. 그해 8월 헝가리군 외에도 도이칠란트, 체코, 폴란드군까지 합세한 ‘모하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당시 1만5000명의 기독교 군사가 전사하는가 하면, 헝가리 왕 러요시 2세마저 목숨을 잃어야 했다.헝가리 도나우강을 경계로 서쪽 부다는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가 귀족의 추대로 왕좌에 올랐다. 1529년 봄이 되자 오스만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했다. 동쪽 헝가리를 지배하던 자폴야가 쉴레이만 1세를 맞이하면서 왕위 상징인 보관(寶冠)을 바쳤다. 이때부터 1687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할 때까지 160여 년 간 페스트 지역은 이슬람 지배를 받아야 했다. 쉴레이만의 등장에 놀란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대공은 형 에스파냐 카를 5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카를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페르디난트는 보헤미아로 줄행랑을 쳤지만, 귀족들은 성 슈테판 성당을 지휘부로 하여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운이라고 해야 맞지만, 때마침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이슬람 군사들은 행군 내내 쫄딱 젖고 말았다. 장거리 행군에 비까지 맞은 터라 피곤에 절어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군사 장비도 대부분 망가지면서 가동이 어려웠다. 그런데도 공격이 개시되었다.견고한 빈의 성벽은 끄떡도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오스만제국의 막강한 군대도 지쳐갔다. 식량마저 바닥을 보였고, 기병과 포병 등도 기능을 잃어갔다. 천하의 쉴레이만도 알라가 더는 허용치 않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오스만제국 빈 공략의 실패가 주는 의미는 컸다. 제국이 팽창을 거듭하다 멈춘 시점이 바로 제국의 최고점이었다. 더구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가 등 뒤에서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고 있었다. 광분한 쉴레이만 1세가 동쪽으로 칼날을 돌렸다. 1533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크로드를 완전장악하기에 이른다. 그 여세를 몰아 이란의 북부지역까지 점령해버렸다. 두 손발 다 든 사파비 왕조는 1555년 아마샤조약을 맺음으로써 4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1683년에 다시 빈을 포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제국의 쇠퇴가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이었다.쉴레이만은 이스라엘 유대민족 중 가장 현명한 왕으로 칭송받는 솔로몬의 투르크식 이름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아이러니 할 수 있지만, 유대인의 능력을 아끼고 박해를 피해 제국의 품으로 도망쳐 온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한 공로를 유대인들이 존경했던 까닭이다.오스만은 쉴레이만이 죽자 예니체리 횡포와 셀림 2세의 난삽한 생활에 의해 하향곡선을 그렸다. 1571년 10월 7일 지중해 패권을 두고 베네치아공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연합해 오스만제국과 레판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이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가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레판토해전’이다. 이때 오스만제국이 궤멸하다시피 했다. 1678년, 때마침 헝가리 개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켜 신성로마제국 레오폴트 1세에게 대항했다. 개신교는 오스만제국의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슬람군은 역사에 있어 세 번째 빈을 포위했다. 이때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지휘하는 8만 명의 유럽연합군이 오스만 군사 뒤에 포진했다. 그러나 정작 포위된 성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카푸친 수도사 마르코가 포위망을 뚫고 성으로 잠입하여 협공작전으로 배후 기습 공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가 ‘칼렌베르크 전투’다.오스만의 상징 초승달을 닮은 빵 크루아상과 함께 카푸친 수도사 소속의 이름을 딴 카푸치노 커피가 이때 생겼다. 커피가 도망친 오스만 군사에 의해 빈에 남겨지고 이를 우유에 타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카푸치노다.서세동점의 시각 중 중요한 내용을 첨부한다. 그리스 독립전쟁과 관련된 역사작가이자, 여행 작가의 말이다.“기독교인이 무슬림을 죽이는 것은 옳은 행위이고,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죽이는 것은 판단 오류이므로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죽일 때 우리 마음은 잔혹하게 변한다.”오늘날 벌어지는 폭력의 선동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사다./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8-26

누구에게 맡겨도 더 좋아진다는 희망 줘야

김진국 고문 정치가 없는 시대다. 대통령의 축하난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을 축하하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했다. 속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선출되면 대통령이 축하해주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축하와 감사를 전달하며 훈훈해야 할 축하난 전달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그게 정치력의 최고수여야 할 대통령 정무수석과 야당 대표의 수준이다. 난초 화분 하나 전달하는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정치 쟁점들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입씨름 내용도 한심하다. “아침부터 연락했으나 답을 못 받았다.”, “정무수석 예방 일자를 조율했으나, 축하난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축하난 하나 전달하는데 문자를 남기고, 답이 없다고 발표하는 건 뭔가. 대통령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답을 주지 않는 건 또 뭔가.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그게 축하난 전달인지,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김명연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이해식 민주당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로 축하 난 공방을 멈추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축하난 전달을 위해 그렇게 바로 통화할 수는 없었는가.물론 양측이 의심할 수는 있다. 불신이 쌓여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보낸 난 화분을 돌려보냈고, 다른 소속 의원들은 ‘버립니다’라는 쪽지를 붙여 SNS에 올렸다. 그래도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라. 만나자”라고 전화하지 못하나. 윤 대통령도 직접 전화해 “축하한다”라고 말했으면,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치 초보도하지 않을 오해와 갈등을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쾌유를 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조문 외교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나선다. 핑계 김에 많은 정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문안도 마찬가지다. 난 화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담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푸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범부가 보기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고, 해답을 내놓는 게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다.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정권을 잡고, 국력을 낭비하며,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면 ‘큰 도둑’에 불과하다.한 대표 측에서는 회담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 측은 ‘정치 쇼’라고 의심했다. 밀실 회담은 오해를 낳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이다. 윈-윈하는 상생 정치는 서로 명분을 얻어야 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결국 양쪽의 강경 세력만 기세를 얻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주장을 이해하기는 하나도 어렵지만, 꼬투리를 잡을 일은 수백 가지다.의제도 서로 생색낼 생각만 가득하다. 한 대표는 금융투자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등을, 이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25만 원 민생지원금 등을 꺼낼 예정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은 생색이 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치 협상은 승패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크게 이기면 오히려 실패다. 당장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가 손을 잡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이 대표가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실무 협상이 중단됐다. 기회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를 복원하고, 두 사람 누구에게 맡겨도 나라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25

엄마의 눈이 붉다. 거친 손마디가 눈두덩이를 지나갈 때마다 짧은 속눈썹이 몇 가닥씩 뭉쳐져 보인다. 엄마는 새 집에 보금자리를 틀고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엄마는 옷소매를 한참 적셨지만 그저, 노인이 겪어온 지난날의 힘든 여정을 내려놓는 것으로 여기거나 새 집을 얻은 기쁨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처 구경하지 못한 집 안을 살폈다. 겨울이면 추웠던 집이 따뜻하게 변한 게 가장 좋았다. 안방을 둘러보다가 나는 이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침대 옆에는 주인을 잃은 외로운 화분이 2개 놓여 있었다. 그 곳에는 화초 대신 자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 쓸모없는 것을 엄마는 왜 버리지 않고 간직 하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엄마는 자갈의 사연을 말해 주었다. 엄마는 자갈을 버리려고도 해 보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 몸을 닦아 주듯이 자갈 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씻고 닦아서 말렸다고 한다. 자갈은 외할머니가 남겨준 하나 밖에 없는 유품이라며 한 가지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 “나, 죽거든 저 자갈 버리지 말고 무덤 옆에 차곡차곡 둑처럼 쌓아다오.”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죽고 혼자서 생계의 짐을 메었다. 5남매를 여자 혼자서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새벽 일찍 먼 길을 걸어가 생선을 떼어와 장사를 시작했다. 지치고 힘든 몸으로 다시 먼 길을 걸어 집에 오면 찬물 한 사발로 저녁을 해결했다.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입 하나라도 줄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첫 딸인 나의 엄마를 시집보내는 날, 집 안 곳곳을 뒤져도 도무지 나올 것이 없었다. 장독 두 개를 사 주며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며 밤새 베겟닛을 적셨다. 할머니의 걱정과 다르게 엄마는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하늘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엄마는 감당할 수 없는 무너짐 앞에서 망연자실 했다.그 해, 큰 홍수가 나면서 둑이 무너졌다. 물은 엄마의 보금자리도 함께 쓸고 가 버렸다. 할머니가 준 장독도, 애써 이룬 가구며, 살림살이도 모두 휩쓸고 갔다. 간신히 가족만 남겨진 걸 감사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큰 집의 건넛방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단칸방에서 갖은 서러움을 당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 가족이라는 커다란 둑이 있어서 힘을 내고 견디며 살았다.엄마는 5년 만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했다. 고생만 하던 딸이 첫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던 날, 할머니는 참 많이 우셨다. 이제 장독마저도 하나 사 줄 형편이 안 되었던 할머니는 다음 날부터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구석구석 청소를 하시더니 병든 몸으로 대야를 들고 공사판에 가서 자갈을 담아 장독대에 나르기 시작했다. 딸이 첫 장만한 집에 복을 나르는 마음으로 장독대가 넘쳐 나도록 자갈을 옮겼던 것이다. 햇빛을 받은 자갈은 엄마 삶을 축복해 주듯 반질반질 빛이 났다. 할머니는 자갈을 옮기며 아무리 거친 파도가 살과 뼈를 깎는다 해도 이 자갈처럼 둥글게 잘 이겨 내라고 했다. 많은 풍파 속에서도 자갈은 수많은 해초들을 잘 키워 내고, 인생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 막아내고 헤쳐 나가라는 할머니만의 철학을 담아 옮긴 것이다. 김경아 작가 축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 해,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마지막을 준비 하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6개월, 아버지에게 남은 삶의 기간이었다. 가정의 큰 둑이 점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다. 엄마는 팔뚝을 걷어 부치고 구멍 난 곳을 막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막기 시작했던 둑은 주먹으로, 팔뚝으로, 등으로. 온몸으로…. 엄마는 스스로 둑이 되어갔다. 둑이 되어버린 딸을 힘겹게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그해 자갈을 밟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독대 모퉁이 마다 남아있는 할머니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몇 날을 통곡했다.할머니의 바람대로 정말 자갈이 복을 가져다 준 것일까. 아버지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몇년 뒤 완치되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커다란 시련을 겪은 뒤 우리들에게 더 견고한 둑이 되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둑을 가지고 살아간다. 둑이 홍수를 잘 견디기 위해서는 구멍이 날 때마다 메워줄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엄마에게 할머니의 자갈이 있었듯이.

2024-08-25

경주 APEC, 도시 브랜드 가치 높일 절호의 기회

주낙영 경주시장 전 세계의 눈과 귀가 경주를 향하고 있습니다.미·일·중·러 세계 4강을 포함한 아·태 21개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25 APEC 정상회의’가 바로 이곳, 대한민국 경주에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이번 APEC 정상회의는 ‘2005 부산 APEC’ 이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매머드급 이벤트로 대한민국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전체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국제회의입니다.이를 통해 경주가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됨은 물론, 단순히 회의 개최지로서 역할을 넘어 그간 경주가 축적해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발전상을 전 세계에 선보일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세계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정체성과 첨단도시로 나아가는 확장성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일례로 2016년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하노이 하이바쯔엉구의 ‘분짜 흐엉 리엔’이라는 식당을 찾았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방문 이후 이 식당은 ‘분짜 오바마’로 불리며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답니다. ‘분짜’는 쌀국수의 일종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을 찾은 덕분에 베트남 국민 음식 ‘분짜’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는 만찬 메뉴로 ‘도화새우’를 내놨는데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이 새우가 잡힌 곳의 지명을 따 ‘독도새우’라고 소개한 것이 바로 그것이죠. 이후 독도새우는 ‘미국 대통령이 먹었던 그 새우’라는 별칭과 함께 ‘국민 수산물’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답니다.이처럼 세계 정상들이 어느 식당을 찾았는지, 어느 숙소에 묵었는지, 어느 상점에 들렀는지, 이들의 동선 하나 하나는 곧 뉴스가 되고 이슈가 됩니다. 세계 정상들이 방문하는 장소, 먹는 음식, 사용하는 상품은 단순한 뉴스 이상의 파급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세계 정상들의 방문과 선택은 해당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임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할 것입니다.저 역시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의 어느 식당이 제2의 ‘분짜 오바마’가 될지, 또 경주의 어떤 전통 음식이 제2의 ‘독도새우’가 될지 기대가 매우 큽니다. 이를 통해 경주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수많은 전통 음식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이뿐만이 아닙니다. APEC 정상회의 개최지는 도시 브랜드 가치 또한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실제로 러시아 동부 끝단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톡’은 2012년 APEC 정상회의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베트남 남중부 상업도시 ‘다낭’은 2017년 APEC 정상회의 이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습니다.이는 APEC 정상회의가 그 지역이 가진 가치를 뛰어넘는 상전벽해의 영광과 그 도시가 품은 역량을 넘어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준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그간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 정상들이 머무르고 체험하는 모든 것이 곧 경주의 도시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APEC 정상회의로 경주는 역사 문화관광 도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위상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저는 확신합니다. 경주는 2015 세계물포럼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하우와 APEC 미래 비전인 ‘포용적 성장’에 가장 적합한 도시인 덕에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함에 부족함이 없습니다.이로 인해 경주는 그간 쌓아왔던 무궁한 역사와 문화의 유산을 바탕으로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를 개회한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이와 함께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서는 질서 유지, 친절 봉사, 도심 청결 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선진 시민의식이 더해질 때, 경주는 전 세계에 더욱 빛나는 도시로 기억될 것입니다.

2024-08-25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CSPC법인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필자가 QSS 혁신 활동을 중국법인에 처음 전파한 시기는 2008년 7월로 쿤산시에 있는 POSCO-CSPC라는 자동차 강판 가공법인이다. 2003년에 설립한 이 법인은 작년 누적 판매량이 897만 톤에 달하는 포스코 최대규모의 자동차용 강판 전문 가공센터이다. 이 법인은 글로벌 전기차 회사가 밀집해 있는 상해가 포함된 화동지역에 있다.이 활동은 낭비제거를 통해 수익성 향상은 물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포스코 고유의 현장혁신 활동이다. 이 활동은 직원의 성장 즉 지식근로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 활동은 직원 스스로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낭비 요소와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과제 활동과 일상관리하에서 설비의 성능을 저해하는 불합리 요소를 발굴, 개선하여 설비의 강건화, 고도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상활동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2008년 가을 이 법인의 법인장은 필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해 주었다. 바로 이 법인의 혁신 시작을 알리는 QSS Kick Off 행사를 중국에서 가장 긴 잔도를 가지고 있다는 삼청산(1819m)이란 산의 정상에서 전 직원과 함께 진행하였다.이 산을 가기 위해 버스 5대를 전세하여 6시간의 이동하였으며 산 중턱 숙소에서 1박을 하고 곤돌라로 1시간, 걸어서 1시간을 올랐다. 정상에서 보는 기암절벽의 풍경은 가희 절경이었다.그때 준비했던 말은 ‘산이 높아 명산이 아니라 신선이 살면 명산이 된다는 말처럼 명산을 만들려면 신선이 있어야 하듯 좋은 기업을 만들려면 조직을 빛낼 인재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여 명가 CSPC법인을 만들자’라는 메시지였다.직원들 앞에서 추진 방향을 설명하면서 ‘이 정성이면 실패하는 것이 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법인은 2010년 해외 최우수 법인으로 선정되었고 중국 가공법인 전체에 혁신이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다음 해인 2011년 북경에 있는 POSCO-China에 통합 혁신 Hub가 탄생하였다. 현재도 Hub을 중심으로 15개 법인에 혁신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가 향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라는 나비효과처럼 그 시절 중국 삼청산 정상에서 외쳤던 혁신 함성의 시작이 현재 중국 가공법인 전체에 확산되어 곳곳에서 성과를 이루고 있다.‘토요타 TPS’는 기업혁신의 모델로 많은 기업이 벤치마킹하며 그 방법론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을 도입해 성공한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토요타의 TPS가 방법론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즉, ‘사람’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先革人, 后革物’은 모름지기 사물을 변화시키기 전에 사람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말로 혁신은 사람이 우선이고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전 세계 기업이 토요타의 TPS 혁신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QSS 혁신을 벤치마킹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24-08-25

선물이란 무엇인가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와 선물 문제로 멀어졌다. 동년배 세 여자가 가끔 만났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핑계로 밥을 여러 번 샀다. 그렇게 내가 밥을 산 날이면 디저트는 그 둘이 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 A가 책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밥을 사면서 등가교환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에 끝내 책을 주지 않았다.그렇게 그 일은 넘어갔지만 얼마 안 있어 A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하니 A는 취직 사실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주고받기를 의식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사는 줄 알았던 내 몫의 디저트는 언제나 B가 냈다고 한다.이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 해도 결국 모든 선물은 기브앤테이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 간에 대가 없는 선물이라도 그 안에는 돈독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고, 등가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리는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을 줄 때는 암묵적인 봉양의 의무가 전제되어 있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봉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회수하기도 한다.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갚는 의무’가 그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도 일어난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선물이나 증여는, 고대 사회처럼 강한 의무가 동반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선물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선물을 받으면 경조사 부조금처럼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빚으로 느낀다.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추석 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내용이 이상하다. 누구든지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홍보물 순서를 보면 마치 선물을 장려하는 캠페인처럼 보인다. 뒤를 이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5만 원까지, 농수산물이라면 15만 원까지 허용되는데, 명절 전후 30일 동안은 30만 원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아무래도 공직자가 하는 선물은 아니고, 민간인이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에 해당할 텐데, 왜 친구나 친지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를 맨 처음에 하는지 의아하다. 직무 관련 여부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직무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 주는 100만 원어치 선물에는 대가성이 없다는 장담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은 커피 한 잔,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갚을 궁리를 하는데, 공직자들은 그런 선물을 받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2024-08-25

냉동난자 시술

우정구 논설위원 냉동난자는 난임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는 시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불치병이나 항암 치료를 앞둔 암환자들이 난소 기능 상실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던 수단으로 주로 이용했다.그러나 요즘은 2030 젊은여성을 중심으로 냉동난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활용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국 의료기관에 보관 중인 냉동난자는 2020년 약 4만개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10만개로 늘었다. 불과 4년 사이 2.5배가 증가한 셈이다.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난임가정이 늘자 난자를 미리 보관하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 이유라고 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의 건강한 난자를 미리 보관해 놓음으로써 난임에 대비할 수 있고, 건강한 2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 늘어난 것이다.전 세계적으로도 미혼여성이 만혼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려는 현상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세계보건기구가 기준으로 삼는 노산(老産)의 연령은 35세. 여성이 35세에 이르면 자궁과 난소의 노화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20세 이전 결혼한 여성의 불임률은 5% 미만인데 35세 이상부터는 30%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남성들의 늦둥이 출산이 화제가 된 적은 자주 있었다. 영화배우 안소니 퀸은 84에, 피카소는 90세에 아이를 낳았다. 공자의 아버지는 16살 부인을 통해 70세에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냉동난자 시술은 늦둥이와 달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면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건강한 2세를 위한 의술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까 두렵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5

무지개를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두 번이나 무지개를 보게 되니 마음이 적잖게 설렌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바다낚시를 하다가 무지개 떴단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아주 짧게 내린 소나기가 주고 간 선물치고는 후한 녀석이다. 잡지도 못할 물고기를 노리다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 탐욕스러운 몸뚱이가 못내 아쉽고 성가시게 다가온다. 언제나 자유를 얻을 것인지?!지난 목요일 경산에 갔다가 잠시 내린 상큼한 빗줄기 뒤로 무지개가 다시 나를 찾는다. 감출 수 없는 기쁨과 환희가 나의 전신을 감싼다. 휴대전화기를 서둘러 꺼내 무지개 영롱한 하늘을 향한다. 그리고 속으로 떠올린다. 고3 시절 체력장 시험 마치고 친구들과 찾은 청평에서 만난 쌍무지개의 화사한 풍광이 찬연하게 남아있는 것이다.무지개를 가장 많이 본 곳은 어학 과정 다녔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수도 쾰른이었다. 분단 상황이었던 그곳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특히 여름철이면 무지개가 창궐(猖獗)하다시피 했다. 언젠가 쌍무지개 떴다는 반가운 소식을 같은 기숙사 사는 계명대 출신 부부에게 알렸다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하는 퉁명한 답변에 머쓱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사람마다 정서가 다르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늦게 알았다. 하지만 그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속상했던 기억은 죽기 전까지 차마 나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웃 사는 유학생이 알려주는 멋진 쌍무지개 소식을 그렇게 냉담하고 무신경하게 받아치는 인간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 지금도 헤아리기 어렵다.그런 점에서 이육사 시인의 단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는 정말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서릿발 칼날 진 고원에서 시인이 만난 무지개 재료는 ‘강철’이었다. 일곱 빛깔이 아니라, 회색 강철의 부자연스럽고 냉정한 무지개가 걸린 고원 지대의 어디선가 육사는 절망의 정점, 혹은 절정의 절망과 한탄을 날려 보내야만 했을 터였다.더욱이 육사가 만난 무지개는 한겨울에 뜬, 상상 속의 무지개였으니, 그 심사가 어땠을까 돌이키면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이 앞다투어 시와 소설 출간하던 시절에 육사는 절필을 선언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시절. 그가 군자금을 안고 설한풍(雪寒風) 뚫고 고원 넘어가며 느꼈을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적막함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한순간에 스러질 운명이되,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무지개와 아침이슬과 한단지몽과 벽력같은 우레, 이와 같은 운명적인 허망을 육사는 정녕 알았던 것일까?! 육사는 북경 감옥에서 한겨울에 소리도 없이 스러졌다. 1944년 1월 16일의 일이다. 그날 북경에는 강철 무지개가 떠올랐을까?! 혹은 조국광복과 해방의 기막힌 무지개가 떴을까?!요즘 건국절이란 전대미문의 용어가 국민을 현혹하고 ‘중일마’라는 듣보잡 어휘가 횡행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이라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본 무지개가 진정 헛것이었는지, 혼잣말로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

2024-08-25

포항의 홍등가, 시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길

지난 23일자 본지에 보도된 한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대부분 성매매 여성이 그렇듯이, 그녀도 ‘선불금(2000만원)’ 때문에 서울 영등포와 포항 성매매업소에서 지옥같은 22년을 보내야 했다. 선불금은 고율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한 번 올가미에 묶이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힘들다.포항시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에는 현재 약 35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6·25전쟁 직후 포항역 주변에 형성된 업소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아직도 성매매 집결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포항시는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노력을 하긴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지난 2021년부터는 민·관이 참여하는 ‘지역 협의체’를 구성해 지속적인 집결지 정비 대책을 수립해 왔으며, 올들어서는 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TF까지 가동시키고 있다. 지난해는 옛 포항역 주변부지를 용도변경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건립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구 도원동(자갈마당)의 경우도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성매매 집결지를 정비할 수 있었다.포항시내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공론화시키는데는 포항시의회 김은주 의원(민주당)의 역할이 컸다. 김 의원은 오래전부터 시민들과 함께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포항시 여성가족과는 성매매여성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종사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성매매집결지 정비가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올해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특별법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대부분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곳은 포항을 비롯해 10여 곳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첨단 산업도시로 변신해가는 포항시내에 아직도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것은 도시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앞으로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이 일대가 쾌적하고 안전한 시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길 바란다.

2024-08-25

박정희 광장을 정쟁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대구시가 동대구역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설치한 것을 두고 민주당 대구시당이 고발하자 대구시가 맞고발로 맞서는 등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박정희 광장 명칭은 196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이곳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세울 예정이다. 특히 대구시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과 1960년 2·28 민주화 운동, 1960년대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대구근대 3대정신으로 선정한 바 있다.문제는 박정희 광장 표지석 설치에 대해 민주당 대구시당이 불법이라며 홍준표 대구시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구시당의 고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회 국토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내 정쟁화로 이끄는 분위기다. 표지석 설치가 국토부 등과 협의 없이 설치된 점과 명칭변경은 역명에 따르게 돼 있는 관리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 문제를 따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광장 명명 등의 문제는 지역여론 등을 살펴 지자체가 판단할 영역이 많다는 점에서 중앙 정치권의 개입은 적절치 않다. 지방자치 정신에 기초한 자치단체의 판단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뜻이다. 홍 시장은 박 전 대통령 표지판 설치와 관련 “목포나 광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과 공원, 기념관이 많다”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과를 논할 때는 과만 보지말고 공도 기리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밝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정희 광장 명칭과 동상 건립에 시민의 70%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적 있다. 지금 와서 민주당의 입장이 달라진 지 모르나 박정희 광장 명명을 두고 민주당이 시비 거는 것은 이념공세를 통해 정쟁화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절차가 잘못됐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사업으로 고발을 일삼는 것은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다.

2024-08-25

아직도 친일몰이, 피해망상인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를 입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을 가지는 심리적 상태를 피해망상(被害妄想)이라 한다. 이는 정신질환의 주된 증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유발될 수도 있다. 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도 있고 약물남용이나 신체적 질병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피해망상의 주요 증상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격, 감시, 음모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이용하려 한다고 믿는가 하면, 주변의 사소한 일에도 자신을 겨냥한 의도적인 공격이나 비난이 있다고 느껴서 과민반응을 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CCTV를 설치하는 등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이 직간접적으로 받은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나 일제에 대항해 싸우다 순국하신 분들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옥살이를 하신 분들, 그 유족들의 원한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제의 죄악상을 낱낱이 밝히고 항일투쟁을 하다 순국하셨거나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와 보상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상은 학자들이 철저히 규명할 일이고, 개별적이고 개인사적인 일들은 문학작품 등을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9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80세 이상 되는 노인들 뿐이다. 그분들 중에는 아직도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방심하다가는 또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는 단계에 이른 지금도 그런 우려를 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친공·좌파들은 아직도 일본에 극도의 피해의식을 가진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일제의 식민지라는 착각에 죽창이라도 들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좌파들의 친일몰이는 그런 피해망상이나 위기의식은 아닌 것 같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수시로 친일몰이를 꺼내드는 것은 궁지에 몰린 국면을 뒤집어 보려는 교활한 수작인 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프랑스와 독일이 지금 우방으로 지낸다고 침략전쟁의 과거를 잊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정책도 일제의 침탈을 망각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좌파 정치인들이 당면한 사법리스크 방탄용으로 써먹는 친일몰이에 현혹되어 퇴행적 과거집착에 함몰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오로지 새로운 역사를 쓸 때다.

2024-08-22

무더운 8월의 망각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가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숲속에는 매미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바다 물놀이가 즐거웠던 영일대 해수욕장도 지난 18일 일요일 저녁에 폐장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으나 해변을 찾는 시민의 발걸음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이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 놓고 휴식을 취하는 농한기에 들어가겠지만 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들은 작은 삽을 들고 김장용 배추나 무를 심을 즐거운 계획을 세우겠지…. 이때쯤 한줄기 큰비라도 내려 더위를 씻어주는 ‘처서 매직(magic)’을 기다려 보지만, 올해의 첫 태풍인 9호 ‘종다리’는 기세 좋게 서해로 올라오더니 어저께 열대성 저기압으로 기세가 꺾인 후 소멸하여 돌풍과 함께 엄청난 폭우를 뿌리며 중부지방을 지나가 버렸다.올해는 8월 중순까지 태풍 소식이 없는 이례적인 기상 상태를 보여주더니 이번 백중사리 때에 맞추어 종다리의 날개짓으로 서해안을 넘치게 하고 습한 찜통더위로 전력수요도 100GW(기가와트)급으로 급증시켰다. 종다리는 종달새, 노고지리라는 텃새인데 북한이 제시했던 태풍의 이름이다. 이 종다리는 6년 전에도 12호 태풍으로 우리나라를 위협하더니 일본 본토를 휘젓고 거꾸로 한 바퀴 돌고는 남중국 쪽으로 빠져나갔었다. 그때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서울 지역을 40도 가까이 달구었었는데 이번 종다리는 대구 포항 권역을 35도 이상의 찌는 듯한 열기로 덮어 계속 달굴 모양이다.이런 무더위 속에 덮쳐 온 나쁜 소식이 있다. 잊혀져 가던 코로나19의 재확산이다. 새로운 변이로 의료공백 장기화로 가뜩이나 불안한 의료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감염자 수가 한 달 사이 6배로 빨라졌고, 질병관리청은 이달 말까지 35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증상이 감기나 독감과 유사하여 유행 속도가 빨라지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 더운 여름철에 다시 마스크를 써야 하는 고민이 생겼다. 65세 이상 고령자나 기저질환자는 증세가 인지되면 즉각 검사하여 확산을 막아야 하는데 이제 팬데믹 현상으로 4급 감염병이라 격리 의무는 없다.또한 8월 말은 각급 학교의 개학 기간이다. 초중등은 이미 개학한 곳이 많겠지만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모든 학교가 문을 열게 되니 철저한 방역으로 지난 4년간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현재 코로나19가 계절독감과 같이 치명률이 낮은 만큼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치료제와 백신 접종에 대한 대책을 확실하게 세우고 있는지 염려스럽다.폭염은 계속되고 있다. 두 달간 돼지와 닭 등 가축이 100만 마리 가까이 폐사하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양식어류도 500만 마리 이상이 물 위로 떠올랐다. 배추, 시금치 등 채소도 피해를 입어 밥상 물가를 들썩이고 있으며 이상기후가 추석을 앞둔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걱정이 태산이다.갈수록 뜨거워지는 기온으로 인해 강에는 녹조, 바다에는 적조가 두터워지고 가을을 맞으며 밀려온 태풍은 집중호우를 퍼붓는다. 무더운 8월, 잘 익은 붉은 복숭아의 달콤함에 빠져 시원한 휴식을 취해보고 싶다.

2024-08-22

박정희 영문 표기조차 통일하지 못하나

홍석봉 언론인 TK라는 단어는 대구·경북의 로마자 표기 줄임말로 많이 사용된다. 정치 성향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인다. PK(부산·경남)와 대비된다.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TK가 아니라 DG(Daegu-Gyeongbuk)가 맞다.하지만, 개정 로마자 표기법(2014년 시행)이 사용되기 이전에 굳어진 말로 관행화됐기 때문에 TK(Taegu-KyEB20ngbuk)가 보편화했다. 현재 DG는 대구시의 머리글자로 더 많이 쓰인다. 언론 등에서도 ‘DG’와 ‘TK’를 병행 사용하는 등 한동안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TK’로 굳어졌다.우리나라 5대 성씨인 김, 이, 박, 최, 정은 Kim, Lee, Park, Choi, Jung으로 표기한다. 개정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Gim, I, Bak, Choe, Jeong이 맞지만, 표기법에 어긋난 Lee, Park, Choi 등이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5대 성씨가 표준을 이기고 정설이 된 것이다. 성씨 표기는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급기야 국립국어원이 성과 이름은 독자적으로 표기를 정할 수 있도록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했다. 원칙을 깨고 관례화된 표기를 공인한 것이다.동대구역의 박정희 광장, 영문 표기 논란이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 이름을 ‘박정희 광장’으로 바꿨다. 이곳에 세운 표지석에 ‘Park Jeong Hee’라고 명기했다. 논란이 거셌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은 여권과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Park Chung Hee’로 썼다”며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영문 표기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록물에 고유명사처럼 쓰였고 정부 대통령기록관,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도 그대로 표기됐다고 했다.반면 대구시는 로마자 표기법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정’은 ‘Chung’이 아니라 ‘Jeong’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박정희기념사업위원회에서 재논의했지만 결국 원안을 유지하기로 했다.박정희 영문 표기는 두 가지의 공존이 불가피해졌다. 외국인들은 헷갈리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통일했어야 했다.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공동추진 중인 대구·경북신공항 이름을 박정희 공항으로 짓는 방안이 유력하게 대두한다. 현재 대구·경북 통합과 관련, 통합 청사 위치와 관할 범위 등을 두고 신경전을 펴는 마당에 양 시도가 신공항의 영문표기를 두고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제7항에는 ‘인명, 회사명, 단체명 등은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쓸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한때 ‘짜장면’ 표기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표준어는 ‘자장면’이 맞지만 ‘짜장면’이라는 말이 워낙 대중화돼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이 ‘짜장면’과 ‘자장면’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말았다. 그만큼 언어 습관은 무섭다. 대구시의 결정에 아쉬움이 남는다.

2024-08-22

영화 관람료 논쟁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는 과학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과학의 산물로 탄생한 영화는 이후 예술영역의 주요 분야로 자리를 잡고 산업으로도 영역을 키우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힐링을 위해 즐겨 찾는 문화 콘텐츠로서도 입지를 잘 굳혀가고 있다.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매체의 하나가 됐다. 지금 이 시간도 전 지구적으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영화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미디어 산업의 발달로 이제는 영화관에서만 상영되는 것이 아니고 TV나 스마트폰, 인터넷, DVD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일반인의 문화생활 도구로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정신 건강을 돕는 수단으로서 영화는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영화배우 최민식이 TV에 출연해 영화 티켓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말을 한 후 영화 관람료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가 관람료가 최고 50%가량 인상된 게 촉발 배경이다. 구경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이 나온다. 일각에선 코로나 때 죽었다 살아났으니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있으나 관람료 인상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여기에 티켓가격 인상과는 별개로 볼 것이 별로 없다는 한국영화 콘텐츠에 대한 비판까지 가세되면서 논쟁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문제는 영화관람 대신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찾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TV 화면보다 영화관 대형 화면에서 보는 재미가 분명 있을 텐데 관객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영화의 위기로 볼 수 있다. 가격일까, 콘텐츠 부족의 문제일까 한국영화산업이 고민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2

“양귀비·대마 불법재배는 무서운 범죄다”

최근 서울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마약 동아리’가 적발돼 사회적 충격을 준 가운데, 농촌 비닐하우스까지 마약 원료 재배지로 이용된다니 놀랍다. 남의 일로 여겨졌던 마약이 직업이나 연령,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깊숙하게 우리사회에 침투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경북경찰청이 지난해 마약류인 양귀비·대마 밀경(密耕)사범에 대한 집중단속을 편 결과, 59명을 적발하고 양귀비와 대마 7383주를 압수했다. 양귀비 개화기인 4~6월에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불시 점검했더니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양귀비 2540주가 발견되기도 했다. 올들어서도 울진과 영덕지역에서는 양귀비·대마 사범 14건이 적발됐다.양귀비 재배 사범의 연령대는 주로 60대 이상 고연령층이다. 경찰은 “신경통, 배앓이, 불면 증 질환을 앓는 고령층이 병원에 가는 대신 양귀비를 몰래 복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양귀비 유액을 모아 굳히면 중독성이 강한 아편이 된다. 양귀비나 대마가 마약류로 지정된 이유는 자주 복용하면 환각작용·중추신경 마비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허가 없이 재배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농촌 비닐하우스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은밀한 마약파티 장소로 이용된다는 기사는 몇차례 보도된 적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마약을 구매한 뒤 비닐하우스나 숙소에서 술을 마실 때 이를 투약한다는 것이다. 최근 농어촌지역 인구가 급감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마약당국은 양귀비와 대마처럼 누구나 경작할 수 있는 마약류부터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지금처럼 마약 원재료가 아무 경각심 없이 주변에서 유통되면, 사회 전체가 금방 병들게 된다. 우선은 농촌주민들에게 양귀비나 대마 재배가 무서운 범죄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가들을 보면, 의학적 효과가 있다는 속설 때문에 불법인지 모르고 죄의식도 없이 키우는 경우가 많다.

2024-08-22

전세사기법 통과, 피해자 구제 촘촘히 살펴야

전세사기 피해지원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이달 말 본회의 문턱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랫동안 끌어왔던 전세사기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법 통과를 앞두고 있어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전세사기는 죄질이 나쁜데다 피해자가 받는 고통도 심각해 사회적 파장도 크다.전세사기가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현재까지 밝혀진 사기피해는 전국적으로 1만5000건에 이른다. 내년까지 3만건이 넘을 것이란 보고도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공식 집계된 피해 사례만 400건이 넘는다.서민층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피해를 입히는 전세사기는 죄질이 나빠 대법원도 최근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하도록 양형기준을 조정하기로 했다. 전세사기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사기 피해자 중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5월 대구에서도 다가구주택에 전세를 살던 30대 여성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번에 제정된 특별법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피해 세입자에게 주택을 장기 공공임대하거나 경매 차익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피해자는 LH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에 기본 10년을 거주하고 더 원하면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10년을 더 거주하도록 했다. 전세사기 피해인정 요건인 보증금의 한도도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했다.그러나 맹성규 국토위원장의 말대로 이번 법안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집행과정과 지원방안에 문제가 없는지 피해자 인정에 또다른 사각지대는 없는지 등을 세밀히 살펴봐야 한다.이번 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극한 대립하는 과정에 최초로 합의한 민생법안이란 점에서 국민의 기대가 크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정쟁을 중단하고 국민이 바라는 민생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여야 합의한 전세사기 특별법도 국회의 늑장 대응으로 피해가 커지고 피해자들은 일상을 잃어버린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전세사기와 유사한 민생법안은 산적하다.

2024-08-22

양념딸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나는 여형제가 없다. 위로 세 살 터울의 오빠, 아래로 연년생인 남동생 가운데다. 엄마는 종종 남들에게 나를 가리켜 양념딸이라고 했다. 양념은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해 쓰는 참기름, 들기름, 깨소금, 간장, 소금, 파, 마늘 등등의 온갖 식재료를 일컫는다. 음식은 원재료도 좋아야 하지만 맛깔나게 하는 건 무릇 갖은 양념들이다. 왜 양념딸이지? 궁금했지만, 재미없고 무심한 아들들만 있는 것보단 하나 있는 딸이 마치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걸로 미루어 짐작했다. 알고 보니, 양념딸은 고명딸의 사투리이고, 아들 여럿 있는 집의 외딸이라는 의미였다. 그럼 고명딸의 고명은 무엇인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 음식에 꼭 필요한 게 아니어도 음식을 더 예쁘고 맛있어 보이게 치장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떡국 위에 얹는 노란색, 하얀색 달걀지단과 붉은 소고기 꾸미, 까만색의 김과 같은 색색의 웃기나, 감주 위에 동동 띄워 얹는 잣과 같은 것, 곧 서양요리의 토핑이 바로 고명이다. 양념이든 고명이든 간에 음식을 맛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듯, 양념딸이나 고명딸은 아들 많은 집에 양념처럼 맛내고, 고명처럼 예쁘게 얹힌 하나뿐인 딸이라는 뜻이니 고마운 치사가 아닌가. 실제로 아버지와 엄마는 하나뿐인 딸을 무던히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고 지지해 주셨다. 아들과 딸을 전혀 차별하지 않는 두 분이셨다.어느 날 엄마에게서 그걸 절실히 깨닫게 한 얘기를 들었다. 예전 내가 초중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귀한 흰쌀밥 대신 보리밥을 주로 해먹었다. 미리 한 번 삶은 보리쌀을 밥솥 맨 밑에 깔고 그 위에 흰쌀을 한줌 넣어 지은 밥이다. 밥을 푸는 순서에 따라 흰쌀이 좀더 섞였다. 엄마는 아버지 밥을 먼저 푸고 난 뒤, 3남매 도시락밥을 펐다. 그 다음엔, 얼마 남지 않은 흰쌀과 보리쌀을 모조리 두루 섞었다. 그 순간 누구 밥을 먼저 푸나 항상 고민했다는 엄마. 맏아들 밥을 먼저 푸려니 양념딸이 걸리고, 딸 밥 먼저 푸려니 막내아들이 밟혔다는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훗날 이 얘기를 남동생에게 했더니, 금시초문이라면서도 누나가 우리 삼남매 중 항상 우선이었어. 가난했지만 누나가 해 달라는 건 거의 다 해줬잖아. 우리집은 남아선호가 아니라 여자우대였어 한다. 그런가? 그렇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양성평등 부모님 덕에 난 매사에 남자애들과 겨뤄도 앞장섰고, 당당한 사회생활도 그 덕이었다. 그러나 내가 우리집에서 제대로 양념이나 고명의 역할을 했는진 모르겠다.당시 여형제 많은 친구와 이종들이 있었다. 아들 보기 위해 딸을 줄줄이 낳은 게 확실한 이모님이 계셨다. 이종사촌들은 그 남동생을 귀히 아끼고 극진히도 보살폈다. 맏딸로 여동생만 넷을 둔 내 친구는 6학년 때 어머니가 남동생을 낳았다며 신나게 자랑했었다. 어쨌든 여형제 많은 이종사촌이나 친구가 부러웠다. 아무래도 오빠나 남동생보다는 여형제가 더 다정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언니나 여동생이 없어 외로웠던 나는 최근 사촌언니들과 가끔 만나 언니의 살가운 온정을 느끼며, 언니 없는 설움을 푼다.

2024-08-21

구내염과 면역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입안이 헐거나 염증이 생기는 경우는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 그 고통이 심하다. 처음엔 한두 군데가 헐거나 염증이 생기나 내 몸이 건강한 경우는 1~2주가 지나면 자연 회복이 된다. 그러나 내 몸의 면역이 떨어지고 몸의 자율신경이 항진되어 몸의 균형이 깨어져 있는 경우는 염증회복이 더디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많은 곳이 헐거나 염증이 생겨 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가 지속된다.구내염은 구강 점막에 염증이 발생하여 헐거나 염증반응이 일어나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구내염이 생기면 입안에 찌르거나 따가운 통증, 뜨거운 통증을 느끼고 가만히 있어도 고통스럽다.특히 음식을 먹을 때 그곳에 음식이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상당히 고통스럽고 자극적인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염증반응이 더 심해져 하루 종일 입안이 얼얼하다. 구내염이 있는 경우는 입술 주변과 입 주변까지 염증이 생겨 고생하는 경우도 많으며 입가에 염증이 생기면 입을 벌리는 거 자체가 고통스럽다.구내염은 세균감염, 바이러스나 곰팡이, 알러지 반응 등으로 생길 수 있다. 내 몸의 면역상태가 건강하다면 금방 사라지나 스트레스나 피로 감기 등으로 몸의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선 잘 낫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게 된다. 내 몸의 면역 기능이 건강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괴로운 질환이다.구내염이 낫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이 피로하고 과로한 상태이며 교감신경 항진 상태로 몸의 밸런스가 깨어진 경우다. 흔히 면역이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휴식을 충분히 취해주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면역이 저하되어 생기는 이런 질환들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 보충 적절한 영양공급이 이뤄지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낫는다. 그리고 고춧가루나 자극성이 있는 음식은 절대 금해야 한다. 입안이 아프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니 먹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먹을 땐 천국이지만 먹고 나면 지옥이 펼쳐진다. 자극성이 없는 밥과 간단한 간이 되어 있는 나물반찬 그리고 간이 덜된 고기반찬을 천천히 씹어서 먹는 것이 좋다.운동은 상태에 따라 달리 해야 하는데 몸이 피로하고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라 격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줄이는 것이 좋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벼운 산책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하는 것이 좋다. 날이 선선한 저녁에 하는 것이 좋고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면 잘 때 염증반응이 더 심해지니 꼭 간단한 산책 위주로만 하는 것이 좋다.한의원에선 한약으로 치료를 하는데 그 환자에 맞게 면역을 높이고 부수증상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처방을 하게 되면 대부분 보름에서 한 달 이내로 좋아진다.사실 한약을 몸에 맞춰 먹으면 금방 좋아지기 때문에 위의 음식 관리나 운동은 차선으로 하고 한약 복용을 최선으로 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근처 한의원에 가서 처방받아 고통을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다.

2024-08-21

은메달과 동메달

장규열 고문 인류의 축제, 여름 올림픽이 멋지고 훌륭하게 지나갔다. 대한민국 대표단 젊은 선수들은 기대를 넘는 좋은 결과를 낳으며 개선하였다. 금, 은, 동메달을 열 셋, 아홉, 열 개씩 획득하였다.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물론 더없이 행복하였겠지만, 은과 동을 딴 선수들은 누가 더 기뻤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 2등이 낮은 3등보다 낫지 않았을까도 싶다. 하지만 정작 해당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미국 코넬대학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만족도를 10점 척도로 조사하였다. 은메달리스트의 만족도는 평균 4.9점이었던 반면, 동메달 획득자는 평균 7.1점을 기록하였다. 은메달리스트는 마지막 순간에 금메달리스트에게 이기지 못한 짙은 아쉬움을 가졌으며, 동메달리스트는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승리를 맛보며 시상대에 오른 터이다. 메달의 색깔이 결정되기 직전에 은메달 획득 선수는 졌지만, 동메달은 이긴 게 아닌가. 하마트면 마지막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였겠지만, 결국 승리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심리학이 말하는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와도 맞닿아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반드시 가지게 되는 생각의 구조로서, 인생을 되돌아보거나 벌어진 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을 일컫는다. 그리 반갑지 않는 일을 당했을 때 사후가정사고는 안도감, 즉 부정적인 생각을 진정시키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후가정사고가 은메달리스트에게보다 동메달리스트에게 보상적 심리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 결과, 보다 높은 행복감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미국 시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가지 않은 길’을 노래하였다. 노란 숲속에 난 두 길을 우리는 어차피 모두 가 볼 수는 없다.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지만, 결국 한 길을 택해야 한다.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으로든 나아가야 한다. 그런 끝에 우리는 모두 돌아보지만, 결과에 대한 감상은 드러난 등수나 점수보다는 늘 마음 속에 있다. 그 누구의 노력과 성과를 겉으로 보이는 결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남도 평가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우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결과를 딛고 계속 나아가는 힘을 기르는 길이기도 하다.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메달리스트들은 물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우리는 고맙고 고맙다. 대한민국이 세상과 겨루어 결코 뒤지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그대들이 자랑스럽다.영국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가. 젊은 선수들에게 나라 안 모습은 부끄럽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한껏 올려준 자부심의 기대치만큼, 나라의 품격을 오늘보다 한층 올려야 할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 다음 올림픽을 기약하며 열심히 땀을 흘릴 젊은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나라를 나라답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낼 새 힘과 용기를 온 나라가 가져야 한다.

2024-08-21

베트남 국가문화유산이 된 쌀국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현지인들은 ‘퍼(Phở)’ 또는 ‘포’라고 불렀다. 한국 사람들은 ‘쌀국수’라고 한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중부 후에, 남부 호치민 모두엔 조리법과 국물의 농도, 면의 굵기를 달리하는 쌀국수가 있다.바로 이 ‘베트남 퍼’가 국가문화유산이 됐다.최근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 쌀국수와 북부 남딘성의 쌀국수, 중부 꽝남성 비빔국수 등 3종류의 퍼를 국가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쇠고기나 닭고기로 육수를 낸 베트남 퍼는 숙주나물 등 여러 채소를 함께 식탁에 올린다. 독특한 향신료 냄새 탓에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몇 번 먹다보면 중독성 강한 매력적인 음식이란 걸 알게 된다.이래저래 베트남을 4번쯤 여행했다. 그때마다 값싸고 편리하게 뚝딱 한 끼를 해결하는데 쌀국수만한 게 없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쌀국수 맛을 비교해보는 재미까지 있었다.베트남 쌀국수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생겼다. 2011년. 베트남에 이상 한파(寒波)가 닥쳤다. 늦봄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하노이의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진 것.얇은 민소매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하노이역에 도착한 건 새벽 5시였다. 여벌의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어깨는 움츠러들고 턱이 덜덜 떨렸다. 한국의 12월 같았다.아직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시간. 역 광장에서 양동이에 육수를 담고 바구니에 면을 담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말아준 500원짜리 따끈한 쌀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허겁지겁 젓가락질 하는 낯선 여행자에게 한 국자 가득 국물을 덤으로 퍼주던 아주머니의 미소가 지금도 선연하다. 오늘 점심 메뉴는 ‘베트남 퍼’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21

영일만 석유개발 국회 차원 지원은 필수

그저께 국회 도서관에서는 ‘자원안보시대 산유국의 꿈, 시추는 대박이다’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서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개발은 국가가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으로 판단된다”며 “국회 차원의 입법, 예산, 재정 지원을 뒷받침 하겠다”고 밝혔다.영일만 석유·개발사업은 진작부터 국회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할 사업이다. 성공 확률 20%를 이유로 민주당이 애초부터 개발사업에 대한 비판적 독설을 쏟아내면서 국회내에서 석유·가스 개발사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영일만 앞바다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최대 140억 배럴의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권위 있는 기관의 탐사결과가 있었다는 설명을 배경으로 이렇게 밝혔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1990년 후반에 발견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고, 매장 가치는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규모로 추정되는 것으로 분석이 됐다.그러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SNS를 통해 “뜬금없는 산유국론”이라며 “십중팔구 실패할 사업인데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이 걱정”이라 했다. 민주당 대변인도 “국면전환용 정치쇼”로 평가절하했다.본래 자원개발이란 매장량 측정과 경제성 평가 등은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하는 위험성을 내포한 사업이다. 야당이 지적한 20% 성공확률에 대해 미국 탐사전문기업 액트지오의 아브레오 고문은 다른 외국 사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설명했다.탐사사업의 특성을 고려, 신중하게 접근은 하되 탐사개발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국회 내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여야 구분없이 적극 도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이다. 성공확률만으로 사업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뒷날 큰 후회를 남기는 일이 될 지 모른다. 국민의힘이 국회 차원의 지원을 밝힌만큼 야당도 대승적으로 동참해야 통큰 정치를 할 수 있다.

2024-08-21

TK행정통합, ‘시·도합의’ 1차관문 못 넘나

대구경북(TK) 행정통합 특별법 일부 조항에 대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두 단체장이 예민하게 다루는 부분은 주민투표와 공론화위원회 설치, 통합청사 위치, 청사별 관할지역이다. 홍 시장이 우선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이 지사가 제안한 주민투표와 공론화위 설치 문제다. 홍 시장은 이 지사가 최근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 찬반의사를 묻는 절차로, ‘주민여론조사 후 시·도의회 의결’ 대신 ‘주민투표’를 제안하자 ‘통합을 하지 말자는 것이냐’며 발끈했다. 공론화위 설치 제의에 대해서도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일축했다.이 지사가 주민투표나 공론화위 설치를 제안한 것은 도내 각 시·군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내린 결론으로 짐작된다. 이 지사는 지난 20일 간부회의에서 “청사 위치, 관할구역 등의 문제는 지역대표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위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이 지사가 공론화위를 언급한 이유는 대구시와 경북도는 행정통합의 본질인 자치권 강화와 재정확보를 위해 중앙부처와 협의하는데 집중하자는 취지였다. 이 지사는 앞서 대구시가 제시한 3개 청사별 관할구역 문제에 대해서는 “더 크고 비대해진 대구권과 둘로 나눠진 경북으로 관할구역이 설정돼 경북도민 누구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홍 시장은 이달 말까지 특별법안에 대한 합의가 안 되면 행정통합을 장기과제로 넘기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8월말이면 이제 열흘 남짓 남았다. 홍 시장의 단호한 성격상, 자칫 행정통합 논의가 중단될 위기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 일극주의로 가속하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추진되는 TK행정통합이 이번에도 무산되면 다시 거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구·경북 두 광역단체장이 통합원칙에 찬성했을 때, 성사시키는 것이 맞다. 오늘(22일) 대구시청에서 행정통합 관계기관(대구시·경북도·행정안전부) 회의가 열린다고 하니, 이날 회의에서 쟁점사항이 어느 정도 정리되길 기대한다.

2024-08-21

송도, 그리다

정미영 수필가 포항 송도 거리의 풍경을 마음에 그리려고 길을 나섰다. 구부정한 골목의 등허리를 밟으며 사잇길로 빠져 내려갔다.그 곳은 바닷길로 이어져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갈매기들이 내 기척에 놀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새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를 눈으로 훑어보니 무수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각각 존재의 무게만큼 깊고 얕은 흔적을 남겨둔 채 떠나간 새떼를 주시하며, 내 삶은 어떤 무늬의 흔적을 남기게 될지, 궁금했다.송도해수욕장을 걸으면 도시의 소음이 점차 멀어지고 파도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파도 소리는 때때로 내 마음의 울림 같았다. 내면까지 파문을 일으키는 짙푸른 물결을 보며 지나온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잔잔한 물결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헤치다 보면, 바다를 배경으로 나만의 서사시가 한 편 완성되는 듯 했다.단순히 눈에 보이는 장면을 넘어 하얀 포말 속에 수많은 생각의 파편을 담아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그림으로 완성될 때도 있었다.오늘처럼 송도의 길을 이리저리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멈춰 설 때가 있다.마치 영화 ‘일 포스티노’에 등장하는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인 마리오처럼 “아름다워요.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라고 외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난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풍경들을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이다.결혼해서 포항에 정착한지 30년이 되어 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서 생활할 때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바닷가 근처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건물 숲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실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순간이 많았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를 보면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일 것만 같았다.그런 내가 결혼을 하면서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다. 이른 새벽, 돋을볕이 떠오를 때 바닷가에 서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고요하고 평화로울 때가 많았다.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독여준 것은 구룡포나 칠포, 여남 등에서 만난 바닷바람이었다. 파도 소리 실은 바닷바람의 따스한 손길이 내 피부에 닿으면 가슴이 충만해지며 위로가 되었다.포항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대구와 비교했을 때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지명에 도(島)가 들어가 있는 곳은 예전에 섬이었다는 것이다.해도, 상도, 송도, 죽도, 대도가 섬이었는데, 지금은 다리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송도는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염전이 유명했다고 한다. 우리 전통 소금인 ‘자염’을 생산했는데, 나라에 진상할 정도로 특산물이었단다.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송도에 위치한 ‘동성조선소’였다. 뜨거운 햇살 줄기를 등에 업고 여름날 송도해수욕장에 핀 갯메꽃과 참질경이꽃을 눈에 담은 뒤 솔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동성조선소가 나온다. 열린 문 사이로 조선소 안을 바라보면 거대한 크레인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선박의 몸체를 들어 올려 수리를 받게 하는 모습은 마치 철의 거인이 일하고 있는 것 같다.동성조선소는 한때 지역의 경제와 산업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축이었다.초기에는 소형선박을 건조하는데 주력했으나, 점차 규모를 키워 대형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소를 바라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겹쳐졌다. 사람들은 배를 만들며 개인과 가족에 대한 꿈과 의지, 삶에의 희망을 쏟아 부었으리라.다시 걸음을 옮겨 솔밭을 거닐었다. 솔향기 가득한 숲속에서 숨을 들이마셨더니 푸른 생명력이 느껴졌다. 햇살 조각이 솔잎에 매달리면 작은 그림자가 춤추듯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눈부신 햇살 그림자의 향연들을 잘 갈무리하여 내 마음 속 화폭으로 옮겨 그렸다.나는 지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내가 그린 마음 속 광활한 송도 그림을 펼쳐놓으며 나 혼자 향유한다.

2024-08-21

숙자는 힘이 세다

숙자라는 사람이 있다죽도시장이라는 큰 세상에 산다그는 키가 커서 멀리 보는 게 아니라마음이 높아서 그럴 거다세상의 장터인 죽도시장을 지키는 사람으로그 길목에서 바람을 감지한다태평양에 어제 밤에 오줌을 누었단다새침하게 내륙의 향기를 바다에 풀었단다비린내 나는 사람의 온기가 아니어도꽉 차게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그런 사람이 있다세상이 살만 하다는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이 된다짜고도 씀씀한, 늘 그렇게,그의 생업처럼 사람과의 관계를숙성시키고 버무릴 줄 아는,젓갈이 왜 아름다운 밑반찬인가그렇게 숙자는 사람을 사랑하는힘이 센 사람이다나팔꽃 같고 사르비아 같다그런가 하면 쌍욕으로 무례를 응징할 줄 안다나는 그런 것에서 용기를 얻었다우리 곁에는그런 사람이 꼭 있다그래서 산다실핏줄이 동맥보다 못 하랴.숙자라는 사람은 개인인 동시에 죽도시장 대부분의 상인을 지칭하는 일종의 대명사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들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편향되지 않고 묵묵하게 인생의 서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오페라보다 화려하다. 그러나 결코 사치스럽지 않다. 검소하면서도 조금도 누추하지 않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08-21

꿈틀대는 불의 고리

우정구 논설위원 칠레는 영토 전체가 환태평양 지진대에 해당된다. 크고 작은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고 금세기 역사에 기록될 만큼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지진만 세 번이나 발생한 나라다.1960년 5월 22일 칠레 발디비아에서 일어난 지진은 지진관측 사상 가장 큰 규모인 9.5를 기록했다. 아직도 이 기록을 깬 지진은 없다. 이 지진으로 칠레에서는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태평양 건너인 하와이, 일본, 필리핀, 미국 서해안까지도 지진의 영향이 미쳤다고 하니 칠레 지진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환태평양 조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지진과 화산이 발생하는 곳이다. 남미 서안에서 북미 서안을 거쳐 러시아 동부, 일본을 지나 뉴질랜드까지 이어지는 지역이다.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말발굽 모양의 띠를 형성하고 있어 불의 고리라 부른다.불의 고리로 지목된 이곳을 중심으로 최근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대지진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9일과 10일 도쿄 서쪽 가나가와현과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 북동쪽 해역에서 잇따라 지진이 발생했다. 또 19일에는 이바라키현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등 최근 잇따른 지진으로 일본 전역에 지진 공포감이 커지는 분위기라 한다. 지난 16일에는 대만 화렌현에서, 18일에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앞바다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이른바 불의 고리를 중심으로 잦아지는 지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는 대지진 전조란 분석도 내놓는다.우리나라는 정말 지진의 안전지대일까. 날로 괴팍해지는 지구촌 자연현상 앞에 인간의 무력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