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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과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 높푸르고 흰구름 둥실 떠가니 억새가 손짓하며 반긴다. 정갈한 햇살에 마음의 습기마저 말려지는 듯한 10월, 과연 문화의 달 답게 시월은 연일 행사가 한창이다. 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시·공연·음악회·백일장·기념·체험·버스킹·축제 등의 온갖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음악이나 함성소리가 들리고 문화시설마다 온갖 행사로 광고나 홍보물이 빼곡하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니 밝고 활기차 보인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묵향이 피어나는 학생들의 서예작품이다. 삐뚤삐뚤 서툴고 미숙한 듯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점획들이 정겹기만 하다. 마치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쳐왔듯이 자신들이 아득한 학생시절로 되돌아가 티없는 순박함으로 무작정 붓 가는 데로 쓰고 그린 붓질처럼 여겨져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시간의 단면 같은 아득함이랄까, 박제된 그리움마냥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먹내음이 진하고 무던하기만 하다. 이러한 전시회는 최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충효학생서예대전’의 입상 작품전이다.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주관한 충효학생서예대전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타 시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예 꿈나무들의 발굴과 육성, 장려를 위해 지난 1992년부터 한번도 거른 적 없이 매년 개최해온 학생 서예 공모전이다. 갈수록 응모작품과 참가학생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예학원과 학교 출강 지도강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33회째 명맥을 이으며 성황리에 열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첨단기기의 정보화 사회에서 옛 선인들의 정신과 기예를 되살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올바른 교육문화 형성에 보탬을 주는 서예 꿈나무 발굴·육성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갈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등한시돼 버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이와 같은 서예대회를 통해 명맥을 잇고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통의 가치제고와 정신문화 고양에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예술적 감성을 북돋우는 학생서예대회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글로벌 정신과 다양한 콘텐츠 창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를 평소 갈고 닦음으로써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실을 습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족한 예산과 출품 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충효학생서예대전은, 지역 서예계 꿈나무들의 발표 기회와 희망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후진양성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공부와 학원 수업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갈고 닦으며 서예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입상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갈수록 인구와 학생수가 감소하지만,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계승을 일깨우고 예술적 탐색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 나가는 충효학생서예대회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과 지자체의 육성·지원으로 활성화되고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10-15

다시 마약 청정국이 되기를

김규인 수필가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마약 복용자는 더 늘어난다. 예산도 늘리고 단속도 열심히 하는데도 그렇다. 마약은 수시로 형태를 바꾸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마약의 유통 경로는 다양해지고 구석구석 스며든다. 누구나 원하면 인터넷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마약을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유흥 업소를 중심으로 집단 투약이 늘어나고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관마저 마약과 연류되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에서 어린 학생들까지 마약을 투약한다. 학생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일회성으로 투약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마약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한다. 공원이나 주택가, 지하철역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소비자를 기다리는 마약은 숨겨져 있다. 이제 마약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된 느낌마저 든다. 마약으로 인한 사고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거나 시내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약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을 뿌리 뽑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왜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시민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자꾸만 모두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가 이것을 막을 수 없을까.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은 더 이상 지구가 여러 나라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소비국처럼 되었다. 온라인의 활성화로 시간마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선진국이요 부유한 한국은 모든 산물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약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 소비가 급속히 늘어난다. 마약의 유통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세관의 눈을 피해 들어온다. 각종 과자나 음식의 모양을 한 마약은 손쉽게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다. 공산품에 숨겨 들여오거나 배를 통한 밀수도 예외는 아니다. 수입하는 모든 물품을 조사하기는 힘이 들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늘어난 경제 규모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한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마약에 대해 외국과의 공조와 수입하는 물품에 대한 효율적인 검사와 마약 유통 정보 수집에 인력을 늘려야 한다. 마약 생산지에 대한 조사와 마약 유통조직의 흐름을 파악하고 국내 유통을 근절해야 한다. 아울러 마약 공급자와 투약자에 대한 엄한 처벌과 일원화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마약을 할 때 가족은 무너진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나라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다. 법을 다시 정비하고 단속을 강화하며 정보교류를 활성화하여 다시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하자. 건전한 정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쳐야 한다. 젊은이들은 내일을 개척하기에도 바쁘다. 우리는 마약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2024-10-14

읽고 쓰는 즐거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고등학교 재학시절,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는 성실히 했지만,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상위권의 학생이었다. 아직 체벌이 있던 시대에 특별히 선생님께 매 맞을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을 넘는 선생님의 폭력에 속으로만 분노하던 경험도 있다. 그 시절 소위 노는 아이 몇 명을 제외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부분 학생은 대학입시를 위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많은 학생이 입시를 위한 폭력적인 학교 교육을 묵묵히 견디며, 그 속에서 각자 즐거움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고등학교 시절의 위기는 2학년이 되자 찾아왔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 똑같은 교과서로 정답 찾기만 강요하는 학교의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내가 닭장 속의 닭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책상에 놓여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그 친구와 책과 학교 이야기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똑같은 책으로 공부하며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른 독서가 다른 생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이후 대학생의 문해력 문제가 언론을 통해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주로 ‘심심한 사과’‘사흘’ 등과 같은 한자어를 알지 못하는 대학생의 어휘력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스마트 폰에 익숙한 학생들이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마트 폰과 함께 살아온 대학생의 문해력 저하가 학생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재는 ‘챗 GPT’가 상징하는 AI의 시대가 아닌가! AI는 긴 문서의 요약 정리나 독후감 쓰기 등의 일을 해준다. 아직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성능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AI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긴 글을 읽고 요약하는 고전적인 교육 방법의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AI를 적절히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무엇을 읽고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일상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훈련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읽고 쓰는 행위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가령 ‘심심한 사과’의 뜻을 몰라도 당장 내 일상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심심(深深)’이란 어휘를 알면 그만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른 세상을 알고 나의 삶을 변화할지 아니면 익숙한 세계에 남아 있을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흥분과 걱정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다른 삶은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2024-10-14

한강이 내게 보내준 선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10일 밤에 멀리 스웨덴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문학의 의미를 단번에 바꾸어 버렸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그 한 사람 작가의 영예가 아니었다. 그것이 한국문학 전체의 밝은 빛임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첫날, 다음날에 사람들은 오로지 기쁨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틀째 되는 날 ‘조선일보’1면은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종일 웃었다”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만의 기쁨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아주 명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언론사의 기자분들, 그리고 문학인들과 전화로, 문자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룻새 달라진 한국문학의 색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부터 벌써 다음 날 있었던 ‘한국현대문학사’ 수업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노벨문학상으로 ‘긴급 편성’을 해야 했다. 출생률 저하로 한국어 인구가 바싹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짓눌려온 한국문학을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해도 좋다는 푸른 신호를 받아든 것 같았다. 어두운 복도에 형광등이 일제히 켜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고,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떤 착잡한 심경에도 사로잡힌 것이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너무나 기쁜 가운데 심중에 스며드는 한 가닥 세차지도 않은 쓸쓸한 바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과연 나의 문학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결코 부러워 해서도, 시샘해서도 아닌, 부드러운 회색빛의 마음의 어스름은 나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찬찬히 한번 되돌아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명함을 가진 사람의 ‘논평’이 필요한 라디오나 티비에서 나를 부르기도 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의미 부여하기도 했다. 해남에서는 카프카와 관련해서도 한강 이야기를 했고, 불광동에서도 작가 이호철 선생의 행로를 말하며 다시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했다. 김유정문학촌의 발표를 앞두고도 한강의 ‘채식주의’는 김유정과 크로포트킨의 ‘사랑의 투쟁’과도 비교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강 문학의 앞뒤 사정을 생각해 보고, 그것이 한국현대문학의 큰 나무의 소산일 수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문학은?,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문학인들은 한강으로 인해 자신의 길이,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잘은 보이지 않은 한 줄기 희미한 생각의 빛을 쫓아 시선을 먼 앞으로 던져 보고 있었다. 한강이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 질문 그것에 있었다. 나는 짧은 며칠 사이에 지난 십 년 동안 생각해 본 것보다 더 많이 나 자신의 문학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시는 무엇이었나? 소설은 무엇이었나? 어떤 궁극의 질문을 가지고 있었나?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급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은. 걸어온 길과 남은 길을 ‘측량’할 수 있음은. 사위가 고요하고도 기쁜 날들이다.

2024-10-14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인간적 태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964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를 지목한다. 노벨문학상이 가지는 위상이 지금보다 높을 때였다. 수상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영광으로까지 여겨지던 시절. 헌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한다. 사르트르가 스웨덴 한림원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그만 섬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게 상을 받을 일은 아니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것 또한 아니다.’ 60년 전 사르트르의 태도는 소설가와 시인을 포함한 전 세계 작가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을 받으려고 작품을 쓰는 소설가와 시인은 세상에 없다. 문학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우주이고,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므로. 만약 상에 욕심내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재론의 여지없는 삼류인간일 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건 아니다”라는 언술은 수학 문제처럼 명료한 답이 없는 문학에 몸을 던진 이들의 현재를 위로하고, 미래를 추동한다. 사실 소설은 노벨문학상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노벨문학상이 사라진다 해도 존재할 것이 자명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건 ‘상’이 아니라 지향해온 문학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은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수상 축하잔치를 벌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강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문학적으로 위무하며 주목받은 작가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적 태도’가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귀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14

TK 행정통합, 정부 중재로 급물살 탄다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논의가 정부(행정안전부, 지방시대위원회) 중재로 다시 불씨를 살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주(11일) 열린 시의회 본회의에서 “정부 중재안이 오늘 나왔다. 잘 되면 다음 주 중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홍 시장은 이미 중재안에 대한 수용 의사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중재안과 관련,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이날 “새로운 조정 중재안을 매우 의미 깊게 생각한다”고 밝혀, 향후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 지사는 지난달 시·도 행정통합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대통령실과 행안부, 지방시대위원회 등에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었다. 홍 시장은 시의회에서 “경북에서 요구하는 시·군 권한 보장이 중재안에 포함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시의원들의 질의에 즉답을 피하면서 “협상 전략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여지를 남겼다. 행정통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대의 기관인 의회가 동의하면 끝나는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중재안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통합을 둘러싼 핵심 쟁점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특별법 합의안 마련의 걸림돌이 돼 온 통합지자체 법적 지위와 시·군 권한, 청사소재지 문제 등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통합지자체 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는 홍 시장이 요구해온 대로 중재안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으로 한다’고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시장은 그동안 “대구경북은 그대로 두면 소멸되지만, 광역개발 권한과 균형발전 권한을 갖는 특별시가 되면 달라진다”고 말해왔다. 예를 들어 소멸위기에 처한 경북 북부지역도 통합단체장이 직접 개발을 주도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중재안 제시로 행정통합 논의가 재개된 것은 무엇보다 다행이다. 앞으로 정부가 행정통합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만큼, 대구시와 경북도도 쟁점에 대한 활발한 협의를 통해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기를 기대한다.

2024-10-14

포항 타보소 택시, 시민 호응해야 성공한다

공공앱은 민간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시장 점유로 인한 수수료 횡포 등에 맞서기 위해 출발한 공공형 모바일 서비스다. 식당 점주와 직접 연계된 민간 플랫폼 기업인 배달의 민족은 최근 지나친 수수료 문제로 비판대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정부도 최근 민간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말썽이 되자 공공앱 육성 등을 통해 시장에 적극 개입할 뜻을 밝힌 바 있다. 택시업계도 민간 플랫폼인 카카오 택시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논란을 빚은 지 오래됐다. 이에 따라 전국 많은 지역에서 지자체가 나서 공공앱 택시를 출시하며 이용자와 택시기사의 권익보호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가 출시한 대구로 택시는 시민의 호응 속에 최근에는 대리운전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포항시가 모바일 앱으로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타보소 택시를 지난달 출시했다. 그러나 출시한 달이 지났음에도 이용시민과 택시기사가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본사 취재팀에 의하면 경쟁앱인 카카오 택시는 5분 이내에 호출이 잡히는데 반해 타보소 택시는 10분을 기다려도 배차를 받을 수 없고, 예상 도착시간 보다 실제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서비스의 문제점은 타보소 택시 이용 현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총 호출건수 약 240건 가운데 주행 완료된 건수는 약 130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호출이 취소되거나 호출 오류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각종 공공앱이 지역민을 위한 목적으로 출시됐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률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공앱의 홍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공공앱 서비스가 주민에게 만족감을 제대로 주지못한 데 이유가 있다. 이제 막 시작한 포항 타보소 택시가 시민의 호응을 얻으려면 서비스 질적 향상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용자와 택시기사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공공앱 서비스에 시민이 외면한다면 공공앱 서비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24-10-14

축제의 성공은 인원수가 아닌 진정성

심한식 경북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청도야외공연장 일원에서 개최된 2024 청도반시축제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이 지방 축제가 나갈 방향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모든 지역에서 축제의 성공을 방문객의 수로 판단하고 있지만, 축제의 진정한 성공은 준비과정과 현장의 분위기, 지역의 참여도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축제 참가 방문객의 수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대부분 부풀린 숫자가 발표되는 관례를 생각하면 숫자보다는 축제를 맞이하는 진정성을 우선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많은 축제에서 대부분 방문객이 자치단체장이 참석하는 개막식과 가수들이 출연하는 음악회에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정한 축제의 성공은 지속으로 사람들로 붐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축제의 특색을 살리며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프로그램들이 꼭 필요하다. 청도반시축제와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은 다양하게, 끊임없이 연결된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따지지 않고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여기에다 준비과정과 지역의 참여도, 방문객을 위한 배려 등 모든 면에서 지방 축제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사례들이 넘쳤다. 방문객들이 손에 잡을 수 있는 리후렛은 축제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곳곳에 안내도를 설치해 방문객의 동선을 분리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다가왔다. 물론 제1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 박람회가 함께 진행돼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았다 해도 축제장의 곳곳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즐기고 입을 만족하게 할 먹거리가 넘치며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축제의 성공을 알려주었다. 많은 축제장이 어른 위주의 즐길 거리와 음악회 중심, 특히 축제의 주제를 벗어나는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와 비교해 확실한 차별성을 보였다. 청도군은 군민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변모시키고 주변의 곳곳을 주차장으로 활용해 축제를 찾는 방문객을 배려하고 지역의 많은 기관이 봉사자로 나서 손님들을 맞았다. 특히 민의의 대의기관이라는 청도군의회도 축제장에 자리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지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하는 등 협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지역의 축제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함에도 지역민이 즐기지 못하고 때가 돼 개최하는 행사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청도반시축제와 같이 축제의 주제를 잘 살리며 지역민과 외지의 방문객에게 다가서는 축제를 주변에서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shs1127@kbmaeil.com

2024-10-14

‘애비’ 말은 안 듣고, ‘내비’ 말만 듣는 시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추석날 가족 나들이 나서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점심 무렵 “다양하고 맛있는 뷔페는, 아이리스 뷔페”에서 베란다 ‘섀시’가 ‘샷시’로 ‘바이닐봉투’가 ‘비닐봉투’로 ‘프로페인가스’가 ‘프로판가스’로 ‘뷰테인가스’가 ‘부탄가스’로 표기된다. 뭐가 맞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생활 속에 침범해 들어온 외국어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외래어의 남용, 신조어와 축약어의 범람, 두문자만 이어 쓰는 등 올바른 소통의 장애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음차표기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파티, 톱, 라이프, 라인, 바캉스, 스팀, 레스토랑, 블라우스”는 일상화된 사례다. 우리말과 외국어음차표기가 마구 뒤섞인 “게임광, 깜짝쇼, 디지털화, 치킨집, 레게 음악, 휴대폰, 광케이블, 비피더스 유산균, 빵나라”도 있다. 외래어처럼 표기한 “예그리나, 타미나, 더존 전자 믹스, 조아 약국, 비치나, 유니나, 푸르미, 예스런, 맛나니, 새우깡, 조아라, 푸르지오” 등은 국적 불명의 언어로 변질된 예이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경제, 패션, 컴퓨터, 공학, 과학 계열의 언어들은 일반 국민이 충분히 소통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자어처럼 계급과 지식의 범주에 따른 언어 차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자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국어의 조어능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물을 우리말로 잘 다듬어내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방언들을 조금 더 미화시킨 문학용어로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나의 방언에 대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표준어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언과 표준어의 경계를 다소 느슨하게 하여 순수한 모국어의 운용의 폭을 넓혀줌으로서 고유어 조어능력을 키워내자는 의도이다. 표준어 한가지로만 소통하라면서 강제하던 국가어문정책이 쏟아져 나온 외국어, 외래어, 약어, 두문자 쓰기 등 공공언어의 소통 체계가 몰락하는 지경은 왜 방관하고 있는가? 경북 성주 출신의 고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를 보자. “엉퍼드기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웅굴을 뻐져나온 동캉맨치로 그래/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우묵하이 짓은 풀대 풀 떼 새로 똥근 것들, 장꼬방이 비고/통시 여불데기 담우락엔 헌 수굼포 한 잘리 서 있다.//먼 산 산날망에 먹구름 걸려서/올라카나 말라카나 우쨀라카노 비,/매불대 씹은 매분 가심 묽쿠고 싶다.” 시인은 방언을 오래된 집, 곧 오래된 사유와 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으로 오래 묵은 방언으로 지은 한 채의 존재의 집이다. ‘엉퍼드기(웅덩이 물을 푸듯)’, ‘모지리(모조리)’, ‘수굼포(삽)’, ‘산날망(산꼭대기)’, ‘매불 때(여뀟대)’, ‘매분(매운)’ 등 경상도 방언을 하나하나 예술적 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국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시인협회에 지원하여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라는 시집이 만들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안동 출신 송종규 시인의 ‘고등어’라는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방언들을 살펴보자. “다무 한 번의 태무심에 허를 찔렸니더 다무 한 번의 신뢰가 결국 지 모가지 줄을 잡아 땡겼니더 뭐 별꺼 있니껴? 이녁의 손가락 끄티에서 맛있는 밥풀떼기와 향기로운 불빛이 번들거리던 그맘때, 하마 게임은 끝났니더, 지는 젔니데이,//오늘 내 삶의 소용돌이와 먼 길의 고저장단 전부를/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솟구치는,/흰 글씨들/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이 첫눈처럼, 닥쳐왔다/저녁의 불빛이 등을 구불이고 태연하게/입을 닦는다”. 그냥 슬쩍 읽고 넘어갈 작품이 아니다. 시골 안동 가람의 진한 말투는 깊은 심해에 유유히 헤엄치는 싱싱한 한 마리의 고등어, 그 고등어는 과거 안동의 처녀 송종규였다. 이녁(당신, 안동방언에서 2인칭 대명사)이 놓은 불빛 낚시에 코가 매였을 때 이미 잔치는 끝이 났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차리고 그 차린 밥상은 내 삶의 소용돌이와 고저장단으로 차린 흰 글씨들 고등어가 낚시에 낚여 올라갔듯이 “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 이 무렵 시인 송종규의 삶은 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의 첫눈처럼 은빛 반짝이는 생선 고등어였을 뿐이다. 고등어를 소재로 열여덟 살 안동 소녀의 꿈과 무너진 스토리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와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추억을 자아올리고 있다. 방언은 변두리의 무력한 언어가 아니라 이토록 가열찬 언어의 찬가이다.

2024-10-14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지난 번에는 관동대진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며칠 전 학교 구내서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용덕(李龍德)이 쓴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あなたが私を竹槍で突き殺す前に, 河出書房新社, 2020)라는 장편소설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근대에 들어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관동대진재 당시 죽창으로 많은 사람을 찔러 죽인 것으로 유명하죠. 당시 유언비어에 들려 있던 자경단원들은 칼, 창, 곤봉, 도끼, 심지어는 피스톨까지 동원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사용한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죽창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재일 한인 3세인 이용덕은 다른 글에서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제목이 1923년 관동대진재 당시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더군요. 관동대진재가 재일 한인의 비극적 과거를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재일 한인의 비극적 미래를 보여줍니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배외주의자들이 꿈꾸던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하게 실현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살아나가는 다양한 재일 한인들의 분투기가 이 작품의 기본 서사라 할 수 있는데요.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가시와기 다이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한국으로 가는 박이화(야마다 리카),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양선명(스기야마 노리아키), 한국행 페리에서 몸을 던지는 마수미, 완력으로 차별에 맞짱을 뜨는 다우치 마코토(윤신), 배외주의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김마야,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각성에 이르는 김태수(기무라 야스모리)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4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에는 으스러진 뼈와 온몸을 철철 흐르는 피,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무서운 증오와 모멸의 헤이트 스피치가 빼곡한데요. 그러나 저에게 가장 끔찍하게 다가온 차별과 폭력은 마수미의 아버지가 체험한 것입니다. 마수미의 아버지는 우수한 엔지니어로 일본에 스카우트된 한국인이지만, 끝내 일본에서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혹시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공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인데요. 그가 느낀 의심과 공포는 지극히 사소한, 그렇기에 일상에 편재한 것이었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먼저 진료실에 들어간 것은 혹시 차별 때문은 아닐까?’, ‘구청 직원의 냉정한 태도는 일본인에게도 똑같은 것일까?’, ‘한국식 이름을 밝힌 후 콜센터 직원의 태도가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재일 한인끼리 간 식당의 음식은 과연 깨끗할까?’와 같은 의심과 불안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기에, 떨쳐낼 수 없는 끈적함과 생생함을 동반하여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이 상황이야말로, 그 어떤 폭력적인 장면보다도 저에게는 더욱 아찔하게 느껴지더군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다이치도 “제노사이드나 강제수용소의 반복만이 디스토피아가 아니야. 디스토피아는 지금이지”라며, “독가스 대신 단지 증오를 발산해서 공기를 더럽히고, 마이너리티를 숨막히게 하는 이 방법이야말로 새로운 학살법이야”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표지. 과거라는 점과 미래라는 점을 연결하여 선을 그을 때, 그 중간쯤에 위치한 것이 현재라고 한다면, 관동대진재와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가 그려 보인 디스토피아의 중간쯤에 놓인 것이 아마도 재일 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현재는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텐데요. 이용덕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진정한 작가는 “시대(時代)”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말한 ‘시대’란 도쿄 신오쿠보 등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울려 퍼지던 2010년대 초반을 말합니다. 이러한 극우단체의 데모도 2016년 시행된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과 인종차별에 맞선 카운터 데모에 의해 현재는 극적으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 등에서는 재일 한인을 향한 차별적 발언이 유통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죠. 작품은 뜻밖의 상황으로 끝나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다이치의 계획대로 양선명, 김태수, 윤신 등이 목숨을 잃은 후에, 그 죽음과는 무관하게 갑자기 한일 해빙 무드가 연출되며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것은 한일 공동의 적이 탄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요. 서아프리카에 파견된 자위대가 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고, 이때 한국군이 자위대를 원조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고,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인 오사카의 츠루하시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교류 이벤트가 성황을 이룰 정도로 화기애애한 상황이 펼쳐지는군요. 이제 헤이트 스피치는 재일 한인이 아닌 이슬람교도들을 향하게 됩니다. 거리에서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배외주의 운동이 펼쳐지고, 그 군중 속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자와 일장기를 들고 있는 자가 공존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는군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제 3의 적이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용덕이 ‘당신이 죽창으로 나를 찔러 죽이기 전에’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늘 적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슬픈 본성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10-14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노래들

의미 있는 앨범 하나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 곡의 노래가 담겨있는 디지털 EP 앨범 ‘기후 레시피’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세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는 10월 15일 정오에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한 예술 사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로’라는 이름의 예술인 파견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업에 지원한 각종 기관과 예술인들을 매칭하여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예술인들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마을 카페인 ‘즐거운 반딧불이’와 매칭이 되었다. 즐거운 반딧불이가 예술인들과 함께 해 나가려고 했던 일은 기후위기에 예술활동으로 한 번 맞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참여 예술인들은 자주 모여 이 문제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갖기도 하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내어 놓은 결과물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이끌었던 것은 일명 ‘기후송’이라 부르기로 한 캠페인 송을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0월에 발매된 ‘땅으로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당장 그 파급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뜻 깊은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팀원들과 기관, 재단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감해주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첫 해의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년차, 즐거운 반딧불이와의 논의 끝에 기후송 제작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여섯 명의 예술인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예술인 집단을 재구성했다.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님을 필두로 나(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싱어송라이터 이매진 님이 각각 한 곡 씩을 만들어 세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싱어송라이터 각자가 하나씩 기후 캠페인을 진행하여 이를 통해 곡의 내용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 전체를 지원하고 활동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베테랑 연극인 권기대 님이 맡게 되었고, 영상예술인인 정훈 님과 최휘찬 님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첫 번째 곡인 ‘나의 작은 기후 선언’은 내가 만들고 부른 곡이다. 즐거운 반딧불이를 찾아주신 손님에게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 한 가지씩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십 분의 손님들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실천거리들을 적어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완성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작고 사소한 걸음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도약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곡은 강헌구 님의 ‘기후 레시피’. 강헌구 님이 즐거운 반딧불이에서 운영하는 ‘탄생화(탄소 중립 생활화)’ 모임과 함께 친환경 세제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만들게 된 노래다. 지구를 해치지 않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세제 레시피를 아주 깜찍하고 발랄한 멜로디에 담아 누구라도 한 번 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노래다. 세 번째 곡은 타이틀곡으로, 이매진 님의 ‘나는 나무잖아’. 이매진 님은 이번 활동 기간 중에 가로수의 생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트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가로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매진 님은 노래 속에서 직접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한켠을 지켜내는 외롭고도 고단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노래들이 반드시 히트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미세하게나마 이 행성의 생태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틀어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장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노래 몇 곡 들어보며 나와 이 아름다운 행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잠시 가져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4-10-14

은밀하게 선 넘기

사람들 안의 선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아, 정말 어렵네. 요즘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모조리 틀린 것만 같다. 이것은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다는 투정만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언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편한 방식으로 문장을 쓰게 된다. 좋지 않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삼십 대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는 안도감은 허상이었던 걸까. 애인과 만난 지 육 년이 넘어가는데 결혼으로 나아가기엔 용기가 없다는 친구부터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된다는 친구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단 한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내 이야기도 얹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내 고민의 규모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일정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책임의 무게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사회가 말하는 사회적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십 대에는 거침없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서. 단지 한 발 더 갔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풍경이 새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선. 그것은 항상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선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그어놓은 것이다. 망망한 백지만큼 막연한 건 또 없으니까. 최대한 반듯하게, 예쁘게. 그리하여 이 안의 내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요즘의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밟고, 지우고, 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맘껏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시치미 떼고 싶다. 금기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선을 거침없이 밟는 사람을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해봐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강한 힘이 나를 자꾸만 주저앉힌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견고함이 내 목을 옥죄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뀌다니.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것이 어렵다면, 은밀하게 스리슬쩍 넘어볼까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 먹기.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기. 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속에 꾹꾹 누르며 하지 않았을 말을 해보기도 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도 관둔다.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멈춰 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아주 미세한 변화.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엔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해 본다.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본다.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을 완전히 삭제해 보기도 한다. 더하고 덜어내고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언어라는 건 참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만 같다. 안으로 가두려고 할수록 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놓아본다. 마음껏 선을 넘도록. 세상에,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땅따먹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너 선 밟았어, 나가! 그 외침이 정말이지 싫었다. 맥이 풀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까. 선 밖은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내 안의 선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언제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조금씩 옮겨 긋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2024-10-14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13

쓰기의 기술, 삶의 기술

유영희 작가 시를 전공한 선생님에게서 글쓰기를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동안 몰랐던 시적 표현의 압축미와 비유에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철학이 전공이다 보니, 논리를 강조하는 글을 써왔고 글쓰기 강의에서도 주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묘사로 정확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시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면, “엄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탁대에서 빨래를 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오랫동안 손을 물에 담가 비누 거품을 많이 낸 다음 옷의 물기를 짜 줄에 널었다. 그러고는 집게로 고정했다. 무슨 옷이나 그렇게 차례대로 빨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파울랴베르 박사댁의 빨래를 맡아 했던 것이다.” 같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강조했다. 반면,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와 같은 글을 모범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감성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이런 방식이 개인을 닫힌 존재로 남게 하고 의사소통에도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어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와 표현주의적 글쓰기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의 글쓰기가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이수명 시인이 쓴 산문집 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글이 움직이다가 형체를 이루거나 시처럼 이미지가 형성되려고 하면, 돌아나와 느슨한 호흡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글쓰기가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맞는데, 몇 마디의 언어, 몇 줄의 글에 내가, 하루가 의탁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작가와 깊게 맞닿는 느낌이 든다. 지난 10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한국을 흔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자 바로 한강 작품에 실린 시적 표현들이 기사로 올라왔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나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흰’)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런 표현은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지만, 이런 글은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런 시적 표현은 평소 작가의 깊은 문제의식과 절실함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친 말, 거친 글은 물론이고, 평평하고 밋밋한 글쓰기도 결국은 삶에 대한 얄팍한 태도에서 나온다. 그런 글쓰기로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없다. 쓰기와 살기는 하나다.

2024-10-13

氣살리기 활동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서 들판은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풍요로움이 가득하여 저마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이른바 수확의 계절이다. 지금의 결과는 이른 봄부터 씨앗을 파종하고 잡초를 제거하거나 적당한 거름을 하였던 수고로움의 결과일 것이다. 현재의 결과만 보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결과는 과거에 행한 노력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기에 과정이 관리돼야 결과를 제어할 수 있다. 2022년 9월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냉천’이 포항제철소로 범람하여 제품 생산라인의 지하가 완전히 침수되어 조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었다. 포스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 중단을 겪은 포항제철소의 매출 피해는 약 2조400억 원, 피해 복구를 위해 임직원과 협력사 등 연인원 140만여 명이 복구 작업에 나섰고, 제철공정의 핵심인 2열연공장을 재가동하는 등 4개월여 만에 모든 공정이 정상 가동되었다. 135일 만에 완전 복구를 선언하고 정상조업을 이어갔지만 복구 과정에 발생된 불 필요품과 필요품이 섞여 있어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아슬아슬한 상태로 조업을 하는 실정이었다. 이때 압연 부소장이 “냉천 범람 복구의 범 사회적 지원으로 큰 틀은 정상화되었으나 경영활동의 근간인 기본 조건의 정상 수준에는 의문이 있다”라는 지시를 계기로 정상 조건 갖추기를 위한 방법론을 고민했다. 압연 군 전체의 환경 쇄신을 통하여 쾌적한 작업환경 복원으로 직원들의 氣가 살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氣살리기 활동’ 4단계를 제언하고 실행하였다. 1단계, ‘들어내氣’로 현장이나 사무실의 자그마한 문제라도 들어내는 단계이며, 대상은 현장의 통로 상에 일체의 불필요한 물품이 없이 안전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 공장이 Layout에 물건을 두는 장소를 표시하고 그 외 모두 들어내어 필요품을 표준화하였다. 2단계, ‘자리잡氣’로 필요한 위치를 쓰는 사람이 직접 정하여 꺼내기 쉽고, 사용 후 되돌리기 쉽도록 자리를 확정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대상은 안전, 환경. 설비 및 프로세스에 알맞은 복원작업과 지그(Jig)와 공구에 대한 정위치를 명확히 하여 재고품을 없애고 수량을 통제하여 자원을 효율화하였다. 3단계, ‘표시하氣’로 물건이나 자재류, 지그류, 각종 유틸리티 배관 및 게이지류에 대한 VM(Visual management)을 적용하여 수량 및 형적 관리를 통해 정상과 이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마지막으로 4단계, ‘유지하氣’로 앞의 3단계가 지속 관리될 수 있도록 습관화 시키는 것으로, 주기적인 진단, Check 및 Audit, Survey 추진으로 Rule이 살아있는 현장 만들기 완성을 추진하였다. 본 활용 완료 후 압연 부소장이 현장을 방문하여 미비점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도록 지원하고 격려하여 실질적으로 침수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본 활동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기억은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고, 기록은 실행을 이기지 못한다’이다. 성공이나 실패는 실행의 다른 이름이다.

2024-10-13

어떤 충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얼마 전 나의 누옥(陋屋)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찾아왔다. 상당히 격조(隔阻)했던 터라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2월 20일 청도에서 시작한 나의 인문 강연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문명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연이 거의 30회에 이르고 있는데, 두 차례 강연을 마치고 나면 ‘논어’함께 읽기로 방향을 전환할 요량이다. 강연이나 강의할 때 내가 취하는 태도가 이내 도마 위에 오른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강의를 시작하여, 예정된 시각에 어김없이 강의를 마치는 습관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사적(私的)인 얘기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함구한다. 한 시간 강의나 강연을 위해서 나는 곱하기 3의 법칙을 준수하고자 애쓴다. 1시간 강연을 위해 최소 3시간 이상 준비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명민한 청중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빠른 속도로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서 쏟아내는 나의 강의 방식에는 낭비되는 측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호흡으로 정보를 소화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나의 강의 방식은 이른바 ‘최대 강령 주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지적-정신적 수준에 맞춰서 최소한의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도 있는데, 그것을 일컬어 ‘최소 강령 주의’라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최대 강령 주의에 기반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중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연에서 강연자가 제공해야 하는 최대한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대중과 작별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귀중한 시간과 정성,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강연에 참석한 대중의 교양과 지식을 고양하지 않을라치면 무엇 때문에 강단에 선다는 말인가?! 강연자의 농담과 헛헛한 개인사 혹은 허언(虛言)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게 충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청중의 심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정서적-지적인 용량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강연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는 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쇠귀에 경 읽기식’의 강연이 된다면, 그 또한 난감한 일 아니겠는가?! 쉽고 재미있게 강연을 인도하는 것 역시 강연자의 기초적인 소양(素養)이므로! 그러하되 내 생각은 결이 아주 다르다. 강연에 참여하는 청중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눈과 마음을 통찰하여 강연의 난도(難度)와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청중이 나의 강연에 몰입하여 무엇인가 깨우침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강연으로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교양의 보완이 매우 절실하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청중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다.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강연자와 청중의 어설픈 공존은 오히려 인문 강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024-10-13

手法 교묘한 ‘스미싱’ 급증… 전담수사 필요

스마트폰의 스팸문자가 기승을 떨치면서 스미싱(문자결제 사기)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상휘 국회의원(포항남·울릉)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새 스미싱 범죄가 8배 늘어나면서 피해금액이 무려 36배나 증가했다. KISA는 유포된 스미싱 문자에 포함된 피싱사이트 접속이나 악성앱 유포 인터넷주소(URL)를 차단하는 업무를 한다. KISA가 스미싱 문자를 탐지한 건수는 2020년 95만 건에서 지난해 50만3000건으로 줄었다가 올들어서는 8월까지 109만3000건으로 늘었다. 피해건수(금액)도 2019년 207건(4억원)에서 지난해 1673건(144억원)으로 증가했다. 유형을 보면 ‘공공기관 사칭’이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116만여 건으로 71%를 차지했다. 지인사칭(청첩장·부고장)도 27만여 건(16.8%)에 달한다. 주식·가상자산 투자 유도, 투자·상품권 사칭 유형도 2만여건(1.3%)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스미싱 범죄는 거짓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평생 모은 돈을 순식간에 가로채는 최악의 범죄다. 최근의 스미싱이나 보이스피싱 사례 하나하나를 분석해 보면, 피싱에 대한 인지가 확실한 사람들도 쉽게 넘어갈 만한 수법이 사용되고 있다. 누구든 경각심을 가지지 않으면 스미싱 범죄에 속절없이 당하게 된다. KISA는 악성 앱에 감염됐던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했다면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등 금융 거래에 필요한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당장 해당 정보를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악성 앱이 주소록을 조회해 다른 사람에게 유사한 내용의 스미싱을 발송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지인들에게도 스미싱 피해 사실을 알릴 필요도 있다. 스미싱 범죄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예방교육이 중요하지만, 철저한 경찰수사가 선행돼야 한다. 스미싱 범죄가 ‘경찰 위에서 날고 있다’는 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신종수법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면 전담 수사 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2024-10-13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전쟁 선포라도 해야

최근 국민의힘 김성교 국회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0∼2024년)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한 재선충병 소나무는 총 305만여 그루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123만여 그루로 가장 많고, 경남이 69만여 그루로 그다음이다. 특히 포항, 경주, 안동 등은 산림청이 피해 정도에 따라 분류하는 5등급 중 최상위 등급인 극심지역에 분류됐다. 경북은 22개 시군 가운데 19개 시군에서 소나무 재선충병이 발생하는 등 전국에서 재선충병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난 5년간 3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방제작업을 벌였지만 매년 증가세다. 2020년 40만여 그루이던 것이 2024년에는 90만 그루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소나무 생육환경이 악화되고 소나무 재선충병의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활동 기간이 늘어난 것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은 100년 전 소나무 재선충병이 침입해 지금은 소나무가 거의 멸종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 삼아 우리는 재선충병 방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감염이 확인된 재선충병은 36년간 모두 1500만 그루에 피해를 입혀 감염된 소나무는 모두 잘려나가 버렸다. 소나무는 환경, 문화, 휴양 등의 공익적 가치 창출이 높은 나무다. 우리나라 산림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심어져 있어 국민나무로도 불린다. 경북도가 내년 3월까지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총력을 쏟기로 했다고 한다. 14일에는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지역협의회를 개최해 재선충병 관련한 정보 공유와 공동협력 방안을 논의, 모색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재선충병 발생으로 10년 내 소나무의 78%가 사라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내놓고 있다. 재선충병 방제에 지자체 등 관계기관의 특별한 대책과 각오가 필요하다. 일본처럼 방제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없는 우리나라 산은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경북도의 이번 방제작업은 더이상 물러설 데 없다는 단단한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관련기관의 분발이 있길 바란다.

2024-10-13

독서의 계절

우정구 논설위원 사람들은 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 할까.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당나라 학자 한유가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며 지은 시에 나오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사자성어다. “가을은 서늘하고 심신이 상쾌하여 등불 앞에서 글 읽기 좋은 계절”이란 뜻의 등화가친은 시대가 흘러 어느덧 가을을 대표하는 표현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한 신문사가 1920년대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표현한 것이 시초라 한다. 그밖에도 가을이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 사람이 고독감에 빠지고 사색에 잠기게 된다고 해 독서의 계절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독서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고력, 상상력, 문제 해결력을 향상시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좋은 지혜를 준다. ‘나니아 연대기’ 소설가인 영국의 루이스는 ‘책 읽는 삶’에서 “독서는 내가 사는 세계가 너무 작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고 말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즐거운 독서는 운동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라고 했다. 사람이 운동을 함으로써 건강해지는 것처럼 독서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을 발달시켜 준다.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안목과 지혜를 가르쳐 주며 무엇보다 사람다운 인간성을 갖게 한다. 책읽는 사람이 많아야 나라와 국민이 똑똑해진다. 작년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43%.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통계다. 우울해지는 독서의 계절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낭보가 그것이다. 작가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며 책 읽는 국민이 많아지는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3

호미반도의 획기적인 발전 가져올 추모공원 조성

이강덕 포항시장 시대와 종교, 국가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인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또 다른 시작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장묘 시설과 문화는 사회 성숙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생활 필수시설인 화장장과 공동묘지를 기피·혐오시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본격 조성되면서 노후화된 공간과 환경 문제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사회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반면, 유럽 등 해외에서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추모 공간이 기피 시설이 아닌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는 그 자체가 관광 명소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관광객 발길을 끊이질 않고 있다. 베토벤, 슈베르트 등이 묻힌 오스트리아의 빈 중앙묘지도 도심 속 공원으로 연간 100만 명 관광객이 들리는 명소이다. 우리 시가 만들려고 하는 추모공원 ‘영일의 뜰’ 역시 이렇듯 해외 선진 사례와 같이 기피시설이란 고정 관념과 부정적인 인식을 말끔히 떨쳐 버리고 도시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로 삼고자 한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고품격 명품 공간으로, 추모객은 물론 시민과 관광객에게 평온함과 감동, 체험과 즐거움까지 전하고자 하는 철학에서 기획됐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눌태리 산 일원에 들어설 추모공원은 2028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색·무취·무연의 친환경 화장시설과 봉안시설 2만기, 자연장지 6만기, 유택동산 1곳이 들어선다. 33만㎡(10만 평) 규모 부지의 20% 정도만 장사시설이며 나머지 80%는 조각 공원과 문화 공간 등으로 조성된다. 특히, 추모공원의 화장시설을 지하화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상부에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각공원을 설치해 유족과 방문객이 함께할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공원은 ‘북유럽의 로댕’이라 불린 조각가 비겔란과 제자들이 만든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조각품을 곳곳에 배치해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복합적인 휴양지이자 관광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구룡포 눌태리에 조성하는 추모공원도 이에 못지않은 명품 조각공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또한 구룡포 자연 경관과 인문학적 특성을 살린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타워, 수목원, 민속학 박물관, 숲속 미술관 등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치한다. 추모공원 조성을 계기로 구룡포를 중심으로 호미반도 일대를 환동해를 대표하는 해양 휴양관광 거점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도 실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호미반도가 보유한 천혜의 해안 경관과 말목장성, 구룡포항 등 자연과 역사적 자산을 모두 활용해 호미반도 명품 관광특구 조성을 추진하는 등 호미반도의 종합적인 발전을 가져올 계기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호미반도 블루 레일로드를 건설해 추모공원과 인접한 해안선을 따라 모노레일을 단계적으로 설치하고, 다양한 해양관광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 에코 트레킹로드와 오션 투어로드 등 자연과 어우러진 체험형 관광 코스를 만들어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특색있는 휴양지로 만들고자 한다. 단순한 추모공원 조성이 아닌 이렇듯 종합적인 접근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구룡포와 호미반도가 환동해권의 새로운 관광 중심지이자 일류 생활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해 시민들의 삶과 지역 사회에 도움을 되고자 하는 고민의 결과이다. 구룡포 주민들과 소통과 협업을 통해 조성될 포항 추모공원이 지속 가능한 환동해중심도시 또 다른 랜드마크이자 상생 발전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한다. 추모공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을 해주신 시민 여러분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룡포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4-10-13

보물찾기

엄마는 한글을 모른 채 인생의 절반을 넘겼다. 둥글둥글한 엄마의 인생 중에 한 부분이 이가 빠져 있었다. 어려운 환경으로 놓쳐버린 것, 바로 엄마의 문자인생이다. 내가 글을 배우면서 엄마의 문자인생의 빈 공간에 조금씩 땜질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완전한 동그라미를 만들지는 못해도 문자로 답답해했던 엄마를 대신해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나는 엄마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손발이 되어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외할머니는 이런 저런 삶의 시련 끝에 장사를 시작했다. 자식들 배는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였다. 외할머니가 장사를 나가면 장녀였던 엄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이모와 외삼촌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고 할머니 이상으로 엄마의 삶도 고달팠다. 그러니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고기 팔아 돈 많이 벌어 와서 학교 보내주께. 동생들 잘 보고 있거라.” 외할머니의 말이 엄마에게는 달콤한 사탕 같았다. 내일이 되어도 똑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또 다시 엄마는 할머니를 졸랐다. 늘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 이어지면서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맺힌 채로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고 나를 낳았다. 자식에게만은 한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에 또 다짐을 한 엄마는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았다. 자식을 통해 간접적인 한풀이를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한풀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10년 전 어느 날, 친정에서 일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권은 악보가 그려진 노래책이고 한 권은 ㄱ, ㄴ이 적혀있는 한글 기초 떼기라는 책이었다. 엄마는 지난달부터 노인학교에 한글반이 생겼다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한글을 배워서 노래방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모두 불러볼 것이라 했다. 금방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엄마의 모습에 나도 얼떨결에 기뻐해 주었다. 엄마의 각오는 대단했다. 한글은 엄마 인생의 목표였고 희망이었다. 김경아 작가 다음 해 봄, 엄마는 노인학교 한글 반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들이 한글공부라는 한에 동질감을 느끼며 ‘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가는 소풍,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이 될지 모른다. 엄마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 모양이다. 내 어릴 적 소풍 때 엄마처럼 나도 엄마의 소풍을 챙겼다. 뜨거운 김이 나는 하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반지르한 김 위에 밥을 깔고 계란과 시금치무침, 우엉조림을 넣고 내 미안한 마음까지 돌돌 말았다. 나는 왜 엄마에게 지금까지 글 세상을 열어줄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의 마음을 진작 읽어 드리지 못함에 자꾸 눈이 붉어졌다. 맛있는 간식을 사드시라고 용돈도 챙겨 엄마 생애 ‘첫 소풍 가방’을 챙겼다. 저녁 무렵 대문을 들어서는 엄마의 소풍 이야기는 시리즈로 이어졌다. 먼저, 노래자랑을 해서 받은 양은 냄비를 자랑했다. 그다음 보물찾기를 했는데 겨우 찾은 종이가 ‘꽝’이었는데 얼른 꽝 된 종이를 다시 숨기고 자리를 비켰단다. 다른 곳에서 엄마는 3장이나 더 찾았다. 보물찾기에서 받은 선물이라며 수세미, 비누, 치약들을 내놓았다. 엄마의 김밥이 최고 맛있었다는 다른 할머니들의 칭찬에 흡족해 하시는 엄마 모습에서 30년 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엄마. 기나긴 인생의 여정 가운데 노래자랑 때처럼 설레는 순간도 있었겠고 처음 해 보는 보물찾기의 종이에 적힌 것처럼 `꽝’인 순간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 줄 수 있고, 노래방에서 글을 보고 노래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엄마의 인생은 멋지고 아름답게 변했다. 소풍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수세미나 비누, 치약이 엄마 인생의 보물찾기에서 선물 받은 한글에 감히 비길 수가 있겠는가. 엄마 인생 최고의 보물찾기는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돈도 아닌 한글일지 모른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엄마의 인생 소풍 끝나는 그날까지 더 많은 보물들을 속속 찾아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돋보기를 끼고 손자의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오늘따라 힘이 실린다.

2024-10-13

한강의 정신 승리, 한국어 글쓰기의 성취

소설가 한강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발표는 순식간에 전 세계 뉴스 1면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한글날 바로 다음날에 얻은 기쁜 소식이었다. 한강은 2016년 5월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하였을 때부터 작가로서의 뛰어난 기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다양한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쓸더니 결국 노벨문학상에 도달했다. 한국어 글쓰기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다. 한국어는 영미권의 언어에 비해 어휘수와 문법적 논리가 부족하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완전 히 벗어던지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 작가가 나오기 어렵다는 자조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쏟는 공력만큼이나 번역 능력과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역량과 성숙도가 함께 버무려져 얻은 기쁜 결과다. 한강 작가의 개인적 글쓰기의 역량과 사유 세계의 깊이와 폭이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이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 보급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가슴 벅차다. 이는 한강 작가의 정신적 승리인 동시에 한국어와 한글 글쓰기의 위대한 성취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프랑스가 정치혁명으로, 독일이 정신혁명으로, 미국이 지식정보혁명으로 인류의 삶을 한 단계 추동했다면 이제 21세기는 대한민국의 문화 역량이 세계를 이끈다. 그런 취지로 2007년 국립국어원장으로 일할 때 한국어와 한글을 전세계에 보급하고 문화상호주의적 소통을 목표로 ‘세종학당’을 설립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가의 언어를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상호간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탈제국주의적 언어문화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상규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명예교수 채 100년도 안된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선진을 일군 대한민국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공교롭게도 음이 같다-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기적을 이뤄 한류의 최정점을 찍었다. 전세계인들이 한강의 작품을 읽고 한강과 대한민국의 한국어와 한글 글쓰기를 명료하게 가슴에 새기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는 해외에서 원자로나 대형 토목공사 수주로 가져오는 경제적 확장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강의 위대한 작가 정신이 인류 삶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 연이어 한국의 시인과 작가들이 그 대열을 이어줄 것을 바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문학 작품이 전세계 인류의 읽을거리가 되고 세계인에게 따뜻하되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인류 보편성과 세계성을 지님을 입증한 가치있는 성과다. 노벨문학상의 한강은 위대하다. 그런 한강을 낳고 가진 한국은 더욱 자랑스럽고 위대하다.

2024-10-13

축제의 계절, 10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폴짝폴짝 징검다리 뛰어 건너듯 쉬었던 10월 초순의 휴일은 한글날을 쉬고 또 주말을 맞아 그 기분은 이어지고 있다. 가을 축제가 많은 계절에 태풍 소식이 언뜻 들려오기도 하지만 가을비와 함께 추워진 날씨에도 행사들은 무사히 잘 치러졌으면 한다. 지난 5일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는 ‘제20회 포항사랑 연날리기 한마당’이 열려 꼬리연 날리기와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오천읍 포은 정몽주 묘역 광장에서는 제20회 포은문화제가 열려 오천읍민 화합을 유도하며 배우들의 공연과 함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게 펼쳐졌었다. 이번 주에는 11일부터 사흘간 양덕체육공원에서 ‘수제맥주 페스티벌’이 열리고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벼룩시장도 열려 지난 폭염에 시달렸던 시민의 마음을 흥겹게 할 것이고, 13일에는 11월에 개최될 포항국제음악제 준비를 위한 작은 페스티벌이 문화예술회관 일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외에도 만인당(萬人堂)에서는 5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취업박람회가 열려 현장 면접을 통하여 구직희망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니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19일부터는 ‘전환’을 주제로 ‘강철과 예술의 만남’ 스틸아트 페스티벌이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에서 펼쳐지며, 이 밖에도 몇몇 공연과 전시회가 있으니 10월은 즐거운 축제의 달이 될 것이다. 한편 경주에서는 10일부터 제51회 신라문화제가 봉황대와 대릉원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행사는 대릉원에서 신라복 패션쇼를 시작으로 갖가지 예술공연이 벌어지는 거리예술 축제이다. 이제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 절기이니 오곡백과를 수확해 마무리 타작하는 농부의 마음은 풍요로워 국화 꽃잎 따서 화전(花煎)을 구워서 술 한 잔 하며 가을 놀이를 생각할 것이고, 여름 더위로 잃은 원기 회복을 위해서 가을 고기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으면 좋겠지. 양수 9가 두 개 겹쳐진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라는 세시 명절이고, 10이 둘 겹쳐지는 양력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모자보건법’에 의거 제정되어 임산과 출산이 줄어가는 국가적 위기에서 임산부들의 사회적 배려를 통해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이루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이렇듯 다양한 축제를 기웃거리다 보면 많은 사람과 접촉하게 되는데 다시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독감에도 전염될 수 있기에 65세 이상 노인들은 반드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달 11일부터이다. 현재 의료계의 불협화음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꼭 예방주사를 맞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겨울철 독감은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이제 곧 단풍의 계절이다. 이번 여름의 긴 더위로 작년보다 6일가량 늦게 시작한 단풍은 설악산을 시작으로 남하 중인데 포항 동해안 지역은 10월 말경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돌아 일교차가 10도 이상이 되니 계절이 바뀌었나 보다. 여름옷은 세탁하여 집어넣고 깨끗한 겨울옷을 꺼내 입고는 강남으로 내려가는 제비들을 전송하고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마중하는 축제도 벌여야겠다.

2024-10-10

좌경화 한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는 유엔의 감독 하에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이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8월 15일에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고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국민의 70% 이상이 좌익 편이었다. 그러나 반공주의자 이승만의 지도력과 미군정의 지원으로 좌파들의 반발과 저항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좌·우의 갈등과 대립은 상존했고, 북쪽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게 되었다. 반공이 국가 존립의 근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학습한 셈이었다. 박정희 군사혁명위원회도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을 ‘혁명공약’으로 명시했다. 지금 60대 이상은 초등학생 때부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누기 뭐라 해도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들과 손잡은 결과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나라들 편에 선 북한이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을 보더라도 자명한 결론이다. 그런데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교교육에서 반공이 사라졌다. 누가 반공이란 말을 꺼냈다가는 ‘지금이 어느 땐데 색깔타령이냐’는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노동운동 등을 명목으로 반정부 투쟁이 잦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친공·사회주의자들이나 종북·주사파들까지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좌파세력이 집권을 하고부터는 반공교육 대신 오히려 사회주의교육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대학 강단과 서클에서 이념학습을 하고, 전교조를 통해 초·중·고에도 좌파이념이 주입되었다. 교육계, 노동계, 문화예술계에 침투한 좌파 이념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도적 경향이 되어버렸다.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계는 물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치고 좌파성향이 아닌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경화 되어갔다. 나라가 심각하게 좌로 기울어져도 자각증상이 없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좌파 범죄 집단이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도 먼 산의 불구경이거나 오히려 극력 지지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 짓을 보더라도, 정권이 다시 좌파들에게 넘어가면 회복불능으로 기울어져 대한민국은 결국 침몰하고 말 것이다. 다시금 반공교육, 반공의식의 고취가 절실한 까닭이다.

2024-10-10

가을 축제

우정구 논설위원 어느 시인은 가을이 봄보다 좋은 이유에 대해 화려하지 않지만 맑고 깨끗한 분위기에서 정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가을의 상쾌함에 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을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청명하고 파란 하늘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또 다른 행복감이다. 특히 가을은 하늘이 높고 곡식이 익어가는 풍요를 상징하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여기에 전국 곳곳이 축제로 가득하니 가을을 우리가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대구와 경북도 가을 축제로 한창이다. 지난달 안동에서 열린 국제탈춤페스티벌은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올 만큼 대성황을 이뤘다. 세계 무대에 나서도 조금도 손색없는 명품축제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대가야의 본고장인 고령에서는 문화유산 야행이란 이색 축제가 열렸고, 구미에서는 푸드페스티벌에 수만명 인파가 몰려 먹거리와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상주의 모자축제도 무난히 성료했다. 이번 주에는 경주신라문화제와 영주 풍기인삼축제, 청도 반시축제가 열린다. 그밖에도 문경사과축제와 경산대추축제 등 각종 지방축제들이 줄줄이 준비돼 있어 이름 그대로 축제 풍년이다. 축제는 본래 신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지역민 모두가 즐기는 문화축제로 승화하고 있다. 특히 지역을 알리고 주민의 소통 수단이 되면서 경제적 가치도 높아져 주목을 받는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모두가 축제 속으로 한 번쯤 빠져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0

DIFA 2024, 미래차 모든 것 볼 수 있다

대구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미래모빌리티 분야 전문 전시회인 ‘2024 대한민국 미래모빌리티엑스포(DIFA 2024)’가 오는 23일부터 나흘간 대구시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다. 지난 2017년 처음 개최한 이후 8회째를 맞는 DIFA 2024는 지난해부터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주최하는 국가행사로 자리잡았다. 행사 위상이 격상된 만큼 DIFA 2024는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행사장에서는 전기·수소·자율주행차 등 완성차부터 모터, 배터리, 충전기 등 모빌리티 핵심 밸류체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대구시가 집중 육성하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특별관에서는 UAM의 예약부터 체크인, 보안절차, 탑승까지 체험할 수 있다. DIFA 2024에서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국제 포럼도 열린다. 첫날 기조강연은 지난해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인’으로 선정된 현대자동차 이상엽 부사장이 맡고, 지난해 10조원 매출을 돌파하며 LG전자의 미래먹거리로 떠오른 전장사업부의 이상용 연구소장도 연단에 오른다. 포럼 특별세션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엔비디아’와 ‘메타’ 관계자들도 참가한다. 관람객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나흘간 완성차 구경뿐 아니라 최신 전기차와 전기이륜차를 시승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대구는 현재 전국 자동차부품 생산의 2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자동차부품 산업 경쟁력이 뛰어나다. 국내 100대 자동차부품 기업 가운데 11개 기업이 대구에 있다. 대구에 둥지를 튼 한국자동차연구원과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 대구기계부품연구원은 다양한 미래모빌리티 지원 사업을 추진해 관련 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언급했듯이, 대구는 TK신공항 건설 등으로 도심 이동수단인 미래모빌리티 산업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도시다. 정부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DIFA 2024를 계기로 대구가 대한민국 미래모빌리티 중심도시로 확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4-10-10

농촌이 도시보다 교통사고 더 많다니

차량이 붐비는 도시보다 한적한 농촌지역에서 교통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다면 선뜻 이해가 안된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이 한국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시스템 TAAS에서 제공하는 교통사고 통계를 활용해 경북의 22개 기초자치단체의 2023년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인구 10만명 이하 지역이 인구 10만명 이상 지역보다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 부상자 수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 의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인구 10만 이상 지역(이하 도시)에서는 평균 405.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0.2명이 사망하고 587.3명이 부상을 입었다. 반면에 인구 10만명 이하 지역(이하 농촌)에서는 422건의 교통사고로 19.4명이 사망하고 613.7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심 중심으로 설계한 교통안전 인프라 공급과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농촌지역의 고령화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 두 지역의 교통사고 유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도시보다 농촌지역에서 교통사고가 왜 더 많은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고령자의 교통사고 사망자 비중을 보면 농촌(52.7%)이 도시(49.1%)보다 높고 부상자도 마찬가지다. 또 차대 사람, 차대 차 사고는 두 지역 비슷하나 차량 단독사고는 농촌지역이 도시지역보다 2배 이상 많다. 특히 도로이탈과 도로전도·전복 등은 농촌지역에서 월등히 많다. 이에 대해 임 의원은 “농촌지역은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데 길은 좁고 인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고 따라서 “인구 구성과 생활양식 등이 다른 두 지역은 지역 실정에 맞는 교통안전 시설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을 구분않고 일률적 기준으로 설치되는 교통안전 시설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곳의 시설을 개선했더니 사망사고가 대폭 감소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 있다. 교툥시설 개선만으로도 교통사고는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결과이다. 고령화로 교통약자가 많아지는 농촌과 도시의 교통 사정을 적절히 감안한 교통 인프라 개선작업이 이제라도 서둘러져야 한다.

2024-10-10

초선의원 좌충우돌 여의도 적응기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 9월은 결산국회, 10월은 국정감사, 11월은 예산국회다. 추석을 쇠고 나면 국회는 계속되는 일정으로 하루하루가 빡빡하다. 예결위에 소속되어 있어 결산 관련 대정부질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결산에서 정부는 56.4조라는 역대 최고의 세수펑크를 냈다. 이 경우 어딘가에서 세출을 줄이거나 국채를 발행, 균형재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단 한 차례의 추경이나 국채발행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은 놀랍게도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에 내려갈 돈 18조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세수결손을 때웠다. 더 황당한 일은 주겠다고 약속했던 돈 18조원이 지방에 내려가지 않았는데 행정당국이나 교육당국은 너무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현장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당장 여러 부분에서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 집행이 일부 중단되는가 하면, 소방관들의 출동수당 지급에 문제가 생겼으며 경찰들의 초과근무와 순찰업무에 제동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오면서 결국 행정당국이나 교육당국은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어딘가에서 끌어오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살림을 살아야 했다. 지방교부세법에는 지방재정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내국세가 덜 걷히는 경우 지방에 내려 보내는 예산을 2년간의 시차를 두고 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방재정 평탄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지방정부가 재정을 운용하는데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해 제정됐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지난해 18조원을 미지급한 부분은 결국 지방재정법, 지방교부세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위반한 셈이다. 정부의 예비비 집행도 모순 자체였다. 규모가 크거나 재난재해 발생으로 긴급하게 사용해야 할 경우 지방에서는 의회와 사전 논의를 거쳐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라살림도 응당 대의기관인 국회 논의가 있어야 함이 타당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본 사업에서 확정된 예산보다 더 큰 규모로 예비비를 집행하면서도 해당 상임위와 어떤 논의나 동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필자가 군의회, 도의회에서 의정 생활을 할 때 지방의회의 모델은 국회였다. 지금도 지방의회 의원들은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다. 현실은 과연 그럴까. 국회에 들어와 몇 달을 지나보면서 느낀 건 국회가 지방의회의 모범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했으며 중앙정부 또한 지방정부의 모범이 라고 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국회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발언권의 제약이다. 지방의회는 다른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로 발언에 시간제약을 두는 경우는 있으나 횟수에 제한을 두는 경우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의원의 발언권이 보장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국회는 발언시간 뿐 아니라 횟수도 제한이 되어 있다. 답변시간 포함해서 1차 질의는 7분, 2차 질의 5분, 3차 질의 3분이니 조급해진 의원들이 질의 과정에 국무위원의 답변을 끊는다거나 언성이 높아지거나 말이 빨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예산서를 통째로 놓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질의를 했던 시절과 예산서 원본을 구경하기도 힘든 국회 예산심의는 무척 낯설다. 이래서 상시국감을 얘기하는가 보다.

2024-10-10

진시황제가 찾아 헤맨 최고의 건강식(중)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채식을 하면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거나 편향되지 않을까 하는데 바르게 채식을 하면 오히려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잎과 뿌리 줄기 등의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해조류들도 반찬에 올려 섭취를 하면 영양 불균형을 피할 수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들기름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칼슘은 녹황색 잎채소를 통해 섭취할 수 있다. 비타민 A, E, 마그네슘 등은 채식을 하는 사람의 섭취율이 오히려 높다. 비타민 B12도 해조류나 식물성 발효식품으로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이처럼 제대로 된 채식을 하면 우리 몸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에 부담을 주지 않아 인체가 필요 없이 많이 들어온 음식을 소화 시키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도 않는다. 채소만으로 식사를 하긴 힘들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제부터 백미는 멀리 치워 버리자. 현미나 잡곡으로 밥을 한다. 현미는 당지수가 50이하이고 백미는 당지수가 80 이상이다. 같은 밥이라도 당을 급격하게 올리는 백미는 현미보다 건강에 좋지 않다. 모든 음식은 당지수를 보고 낮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혹시나 고기없이 채소와 밥만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루 세끼 기준으로 현미밥을 먹는다면 우리 몸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백질은 보장된다. 다만 현미밥은 백미에 비해 딱딱하고 까끌하기 때문에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그 안에 있는 모든 영양소를 섭취 할 수 있다. 대충 두어 번 씹고 꿀떡 삼기면 먹으나 마나다. 꼭꼭 100번 정도 씹어 입에서 죽을 만들어 삼켜야 한다. 이미 입에서 소화가 끝난 상태로 위장으로 넘기면 위장이 할 일이 줄어들고 간과 췌장 그리고 소장 등 모든 오장육부가 하는 일이 줄어든다. 오장육부의 휴식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오장육부가 오래 쉴수록 내 몸은 살아난다. 면역력이 높아지고 아픈 것이 사라진다. 건강하게 장수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소식을 한다. 하루에 두끼 혹은 세끼만 먹는다. 소식은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현미식과 다양한 채소 위주로 먹으면 현미와 채소 특유의 그 질긴 식감 때문에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대한 입에 들어온 음식을 죽을 만들 때까지 씹고 삼키면 식사시간은 30분 이상 걸리고 1시간 내외로 걸린다. 이렇게 먹으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적게 먹게 되고 어느 정도 먹으면 배가 찬다. 이렇게 먹으면 적게 먹어도 나중에 심한 혈당저하 증상 같은 게 오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먹을 때 3시간 후 손이 떨리고 허기지고 땀이 나는 혈당저하 증상이 나타나지 이렇게 식사를 하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증상들이 싹 사라진다. 채식과 현미식 소식을 하게 되면 공복감이 생긴다. 이는 그동안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으로 사람에 따라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가 든든하지 않다 뿐이지 공복감은 배가 고픈 것과 다른 것이고 힘이 없는 것과도 다른 것이다. 이는 내 몸속이 깨끗하고 속이 비워져서 생기는 느낌이고 이때 내 몸의 세포는 쉰다. 세포가 쉴 때 내 몸은 스스로 치유를 한다. 이제 몸이 살아난다.

2024-10-09

지구온난화와 환경미화원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더워도 너무 더웠다. 장장 40여 일 가까운 열대야를 기록하며 푹푹 찐 여름이었다. 마치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공항에서 바깥으로 나서면 훅 끼치던 열기와 같은 무더위를 매일 겪어야 했던 여름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한여름 열흘 정도밖에 켜지 않았던 에어컨을 24시간 풀가동했다. 두 개의 선풍기도 꺼지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10년도 더 된 선풍기 하나는 모터 과열로 고장이 나 버렸다. 더위를 잘 견디는 나는 여름나기가 겨울추위보다 더 수월했다. 여름철 더위 안부를 들으면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뭐 그리 덥지 않다고. 거의 에어컨이 있는 실내, 차안, 집에서 지내니, 더울 틈이 없다. 잠시 에어컨 없는 데로 나와 이동할 때는 따뜻하다고 느낀다며 여름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싫었다. 내복을 챙겨 입고 옷을 켜켜이 껴입어야 하는 겨울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더 좋다는 나였다. 실제로 땀 빨빨 흘리는 여름이 추위에 덜덜 떠는 겨울보다 나았다. 그렇게 더위를 잘 이기는 나였으나 올해는 아니었다. 글쎄,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버텨내기 어려운 폭염이었다. 폭염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이요, 그 주원인은 지구온난화라고 한다. 2021년 6월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 활동에 의해서만 200년만에 1.1도가 상승했다고 한다. 인간이 자초한 일이니 인간이 풀 수밖에 없다. 지구를 지켜야겠기에 일상생활에서 작은 변화를 감행했다. 내가 불편해지면 지구가 편하다니 감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세탁할 때 세탁망을 활용하면 미세섬유를 걸러내 수질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식기세척기는 물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식기세척기는 9~12L의 물을 소비하는 반면, 손 설거지는 최대 40L의 물을 사용한다니 편리함보다 환경을 위해 식기세척기를 자주 쓰기로 한다. 일주일치 식단을 미리 계획하고,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요리해 소분해 둔다. 일요일 저녁에 일주일치 야채샐러드를 만들어 두면 육류보다 더 건강한 채소 식단도 챙기면서 냉장고도 비우고 음식물쓰레기도 줄인다.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자동차도 하나 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혼자 이동할 때는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으로 나를 길들이기로 한다. 탄소포인트제에 동참하려 테라스에 작은 태양광발전시스템 설치도 해뒀다. 얼마나 에너지가 절약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실천해보는 뿌듯함도 있다. 폭염이, 기후변화가, 지구온난화가 나의 일상을 이렇게나 바꾸었다. 지구온난화는 손녀의 장래 희망까지 바꾸었다. 얼마 전이었다. 린이 환경미화원이 될 거라고 말했다. 평소 아픈 사람 병 고쳐주는 의사가 될 거라면서, 할머니 허리도, 다리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주름도 펴 줄 거라던 린이었다. 커서 의사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라던 린이었다. 왜 꿈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백번 지당하다. “지구가 안 아파야 사람이 살지요. 사람보다 지구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 지구를 지키는 환경미화원이 될래요.”

2024-10-09